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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오강호 8 완결

3학년2반 | 2022.03.16 07:16:48 댓글: 0 조회: 170 추천: 0
분류무협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56259


소오강호 제 8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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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먼 곳에서 팍팍 하고 손바닥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설씨 성을 가진 자는 말을 했다.

[두장로(杜長老)께서 오셨읍니다.]

갈장로는 역시 팍팍팍 손바닥을 세번 쳤다. 발걸음소리가 나더니 네 사람이 빠른 걸음으로 달려왔다. 그중 두 사람의 발걸음이 무거웠다. 가까이 이르자 영호충은 이 두 사람이 어떤 물건을 들고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 수가 있었다.
갈장로는 기뻐서 말을 했다.

[두노제(杜老弟), 악가의 작은 계집을 잡았읍니까?]

한명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웃으면서 말을 했다.

[악가의 사람은 사람인데 작은 계집이 아니라 큰 계집이오.]
갈장로는 억 하고 소리를 냈고 이 소리는 놀람과 기쁨이 교차되는 소리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래서 말하였다.

[어떻게.... 어떻게 악불군의 마누라를 잡았읍니까?]

영호충은 이 소리에 깜짝 놀랐다. 즉시 몸을 날려 구출하고 싶었다. 그러나 자기 몸에 아무런 무기도 지니지 않고 있음을 알았다.
그의 손에는 장검이 없으므로 고수들을 상대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내심 초조해졌다.
두장로라는 자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아니랬읍니까?]

갈장로는 말을 했다.

[악 부인은 검법이 대단한데 두형은 어떻게 그녀를 잡았읍니까? 틀림없이 혼미약을 썼겠지요?]

두장로는 웃으면서 말을 했다.

[악가의 마누라는 정신이 나가 있었고 넋이 빠져 있었읍니다. 객주집에 오자 생각지도 않고 술을 한잔 마셔 버렸읍니다. 다른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악가의 마누라는 대단하다고 했지만 알고보니 맹추였읍니다.]

영호충은 내심 화가 나서 암암리에 말을 했다.

(나의 사모님은 딸이 상처를 입고 실종되었다는 소리를 듣고는 며칠동안 이곳저것을 찾아 헤매었을 것이다. 그래도 찾지를 못하자 자연히 넋이 나갔을 것이다. 이것은 바로 딸을 사랑하기 때문이지 절대로 맹추이기 때문은 아니다. 너희들이 나의 사모님을 능욕했으니 내가 너희들 한놈한놈을 모두 내 검 아래서 죽도록 해주겠다.)
깊이 생각하였다.

(어떻게 장검을 한자루 빼앗아야 된단 말인가! 검이 없으면 칼이라도 좋다.)

갈장로라는 자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우리가 악불군의 마누라를 잡고 있는 이상 일이 잘 될 것이야.
두형제, 어떻게 악불군을 이곳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까?]
두장로는 말을 했다.

[끌어들인 다음에 또 어찌하겠읍니까?]

갈장로는 약간 주저하더니 말을 했다.

[우리들은 악불군의 마누라를 인질로 삼고 그가 항복하도록 해야 합니다. 악불군 부부는 금슬이 좋다는 소문이 자자하니 절대로 섣불리 반항을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두장로는 말을 했다.

[갈형의 말씀이 맞습니다. 그러나 만약 악불군이 악랄하여 만에 하나 부부간의 금실이 좋지 않다면 일을 그르칠지도 모르는 일이요.]

갈장로는 말을 했다.

[이건......이건......설형제 당신의 의견은 어떠하오?]
그 설씨 성을 가진 자가 말을 했다.

[두분 장로 앞에서 제가 무슨 할 말이 있겠읍니까?]

여기까지 말을 했을 때 저쪽에서 또 한 사람이 손바닥을 세번쳤다.
두장로는 말했다.

[포장로(包長老)도 오셨구료.]

영호충은 암암리 아뿔사 했다.

(발걸음소리를 들어보니 이 두사람의 무공은 갈장로 두장로의 무공보다 더 높은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맨손이니 어떻게 사모님을 구해야 한단 말인가?)

갈장로, 두장로가 일제히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포형, 막형도 오셨군요. 참 잘되었읍니다.]

갈장로는 또 말했다.

[두형제는 큰 공을 세웠읍니다. 악불군의 마누라를 잡아 왔소.]
한명의 늙은이가 웃으면서 말을 했다.

[거참 잘 되었어. 참 잘 된 일이야. 두분은 수고하였소.]
갈장로는 말을 했다.

[그것은 두형제의 공로입니다.]

그 노자는 말을 했다.

[모두들 교주의 명령을 받고 하는 일이니 누가 공로를 세우든지 간에 모두 교주님의 흥복입니다.]

영호충은 이 늙은이의 목소리를 어디서 많이 들었다고 생각하였다. 내심 생각하기를, (혹시 흑목애에서 본 사람들이 아닐까?)

그는 내공을 운행하여 그 사람들의 말을 듣고 있을 뿐 고개를 내밀어 쳐다보지는 못했다. 마교의 장로는 모두가 무공이 강한 자들이어서 그가 약간 움직이기만 해도 그들에게 금방 발각될 것이기 때문이다.
갈장로는 말을 했다.

[포형, 막형 나는 지금 어떻게 악불군을 이곳으로 끌어들이고 그를 잡아서 흑목애로 데려갈 것인가를 상의하고 있었읍니다.]
또 다른 한 명이 말을 했다.

[당신들은 어떤 계략을 세웠소?]

갈장로는 말을 했다.

[우리는 지금 좋은 계책을 생각해내지 못하고 있읍니다. 포형과 막형께서 오셨으니 아마 좋은 방책이 생길 것입니다.]

한 노자는 말했다.

[오악검파는 숭산의 봉선대에서 장문자리를 다투었다고 하는데 악불군이 좌랭선의 두눈을 멀게 하여 그 명성이 숭산에 자자합니다. 오악검파 중에는 그 누구도 감히 악불군에게 도전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들리는 소문에 이자는 이미 임가의 벽사검법의 진수를 얻었다고 하는데 반드시 완전한 계략을 세워 절대로 실수를 해서는 안 됩니다.]

두장로는 말을 했다.

[그렇습니다. 우리 네 사람이 합세하여 달려든다면 그에게 지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승리를 보장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막장로는 말을 했다.

[포형께서 좋은 계략을 생각하셨다면 말씀 좀 해보시오.]
그 포씨 성을 가진 장로는 말을 했다.

[내가 묘책을 하나 생각해냈지만 평범하기 짝이 없어서 아마 세분께서 듣고는 웃으실 것입니다.]

막장로, 갈장로, 두장로 등 세 장로는 일제히 말을 했다.

[포형은 우리 교파의 지혜주머니입니다. 생각하신 계책은 틀림없이 훌륭할 것입니다.]

포장로는 말을 했다.

[사실 이것은 제일 미련한 방법이지만 깊은 구덩이를 파고 그 위에다 나뭇잎과 풀을 덮어서 흔적을 없앤 다음 악불군 마누라의 혈도를 찍고 나서 그녀를 구덩이 옆에 놓아 악불군을 유인하는 것이 어떻겠읍니까? 그는 마누라가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보면 틀림없이 앞으로 다가가 구하려고 들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는 말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떨어지는 시늉을 하였다. 세명의 장로와 그 나머지 네 사람음 모두 껄걸 웃기 시작하였다. 막장로는 웃으면서 말을 했다.

[포형의 계략은 참 좋은 것 같군요. 우리는 옆에 매복해 있다가 악불군이 함정에 빠지면 즉시 입구를 막고 그가 올라오지 못하도록 합시다. 그렇지 않으면 그자는 무공이 강하여 구덩이에 빠진다해도 즉시 뛰어올라 올 것입니다.]

포장로는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그러나 이 일을 하는데는 어려움이 있겠군요.]

막장로는 말을 했다.

[어떤 어려움입니까? 아 알았읍니다. 포형은 악불군의 검법이 뛰어나 함정에 빠진다 해도 우리들이 그 입구를 봉하지 못할까 걱정을 하시는군요.]

포장로는 말을 했다.

[막형의 추측이 맞습니다. 우리가 상대할 사람은 오악검파를 합병한 대고수입니다. 우리가 교주님을 위해서 죽는다면 대단히 영광스런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신교와 교주님의 명예를 훼손시킬 뿐입니다. 속담에 말하기를 군자는 편협하다고 했고 독하지 않으면 대장부가 되지 못한다고 하였소. 우리가 군자를 상대하는 이상 악독한 방법을 써야 합니다. 우리는 미리 함정에다가 다른 장치를 해놓아야 합니다.]

두장로는 말을 했다.

[포장로님의 말씀은 내 생각과 딱 일치합니다. 이 백화소혼산(百花消魂散)은 아마 여러분들 몸에도 적지않게 가지고 다닐 것입니다. 전부 함정의 나뭇가지에 뿌려 놓읍시다. 악불군이 함정에 빠져 즉시 깊은 호흡을 하면......]

네 사람은 여기까지 말을 하고 또 일제히 껄껄 웃기 시작하였다.
포장로는 말했다.

[일이 더 늦기 전에 빨리 손을 씁시다. 함정을 어디다 설치하는 것이 제일 좋을 것 같습니까?]

갈장로는 말을 했다.

[이곳에서 서쪽으로 삼리정도 가면 한쪽은 하늘을 찌를 듯한 깎아지른 절벽이고 다른 쪽은 깊은 연못이어서 오직 작은 길 하나만이 지나갈수 있지요. 악불군이 안 온다면 몰라도 온다면 틀림없이 이 작은 길을 지나가야 할 것입니다.]

포장로는 말을 했다.

[참 좋은 방안이오. 모두 가서 살펴봅시다.]

말을 하면서 그곳으로 갔다. 나머지 사람들도 그를 따라갔다.
영호충은 내심 생각하였다.

(그들이 함정을 하는 일은 금방 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빨리가서 영영에게 알리고 장검을 가져와 사모님을 구해도 늦지 않겠다.)

마교의 사람들이 멀리 가는 것을 기다렸다가 살며서 원래 길로 돌아왔다. 몇리를 걸어가자 갑자기 땅을 파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심 생각하기를, (어째서 그들은 이곳에서 땅을 파고 있을까?)

몸을 숨기고 고개를 들어 살펴보니 과연 네명의 마교 사람들이 허리를 굽혀 땅을 파고 있었다. 몇명의 노인들은 한쪽 옆에 서있었다. 이때 거리가 상당히 가까왔다. 한명의 늙은 사람의 옆모습이 보이자, 갑자기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알고 보니 이 사람이 바로 그 옛날 항주고산장(杭州孤山莊)에서 만나본 포대초(鮑大楚)였구나. 쌀 포자의 장로가 아니라 고기어변의 포장로였어. 그날 임아행이 서호에서 탈출하여 맨처음 굴복시킨 마교의 장로가 바로 이 포대초이었지.)

영호충은 그가 손을 써서 황종공(黃縱公)을 제압하는 것을 본적이 있기 때문에 그의 무공이 심히 높은 것을 알고 있었다. 내심 사부가 오악장문을 맡았으므로 마교에게 괴로움을 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마교는 앉아서 좌시할 수가 없어 임아행이 많은 사람을 파견하여 그를 상대하라고 했겠는데 아마 장로 네 사람만은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이 네 사람은 삽과 곡괭이로 흙을 파내고 다시 손으로 흙을 모아 밖으로 퍼냈다. 내심 생각하기를, (그들은 분명히 저 깎아지른 절벽이 있는 곳에서 함정을 판다고 햇는데 어째서 이곳에다 파고 있을까?)

약간 생각을 해보니 그 뜻을 알 수가 있었다.

(깎아지른 절벽 옆은 모두가 괴암투성이니 함정을 판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갈장로는 생각이 얕은 사람이라 입이 열리는 대로 아무렇게나 말을 했던 것이야.)

이렇게 되니 길이 막혀 영호충은 검을 갖고 올 방법이 없었다.
눈앞의 네 사람은 적과 교전을 할 때 쓰는 병기로 땅을 파자니 심히 불편한 듯하였다. 함정을 파는 일은 순식간에 되는 일이 아니었으므로 그는 금새 길을 갈 수가 없었다.
갑자기 갈장로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악불군은 나이가 적지 않은데 그의 마누라는 정말 여전히 젊고 아름답구나.]

두장로는 웃으면서 말을 했다.

[생긴 것은 괜찮으나 그리 젊지는 않은 것 같구먼. 내가 보니 아마 사십 정도는 됐을 것 같애. 갈형이 흥미가 있으시다면 악불군을 잡아 놓고 교주님께 알리어 이 여자를 마누라로 달라고 하시지.]
갈장로는 웃으면서 말했다.

[이 여자를 마누라로 얻게 된다면 나는 감장할 수 없소. 가지고 논다면 몰라도 말입니다.]

영호충은 크게 노해서 내심 말했다.

(이 무례한 잡것들 같으니라구. 감히 나의 사모님을 우롱하다니. 조금 후에 내가 네놈들을 하나하나씩 처치해 주겠다.)
갈장로의 음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고개를 내밀어 살펴보니 갈장로가 손을 내밀어 악 부인의 뺨을 만지작거리는 것이 보였다. 악 부인은 요혈을 찍혔기 때문에 반항 할 수가 없었고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다. 마교의 사람들은 모두 껄껄 웃기 시작하였다.
두장로는 말했다.

[갈장로께서는 매우 급한 모양이지만, 아마 이곳에서 이 마누라와 놀 배짱은 없겠지요?]

영호충은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이 갈씨 성을 가진 자가 사모님에게 무례하게 군다면 자기 손에 검이 없을지라도 이 마교의 간사한 놈과 죽든 살든 맞붙어야만 했다.
갈장로의 음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 계집과 놀려면 왜 놀지 못하겠읍니까? 그러나 만약 교주의 대사를 망치게 된다면 내 몸에 열개라도 아마 모자랄 것입니다.]
포대초는 냉랭하게 말을 했다.

[그렇게 생각한다니 다행한 일이오. 갈형과 두형께서는 경공이 뛰어나니 가서 악불군을 유도해 오시오. 아마 한시간 정도면 이곳에 모든 것이 준비될 것이오.]

갈장로, 두장로는 일제히 말을 했다.

[그렇게 하겠읍니다.]

몸을 날려 북쪽으로 갔다. 두 사람이 떠나자 빈 계곡에는 땅을 파는 소리만 들렸고, 가끔 가다가 막장로가 몇마디 주의를 주는 소리가 들려왔다.
영호충은 수풀속에 숨어서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이곳에서 오랫동안 움직이지 못해 돌아가지 않는다면 영영은 틀림없이 걱정이 되어 찾으러 올 것이다. 그녀가 땅 파는 소리를 들으면 이쪽으로 화서 살펴볼 것이고 나의 사모님을 구하려고 할 것이다. 마교의 장로들이 어찌 임소저가 오는 것을 보고 반항을 하겠는가? 임교주, 상형님, 영영의 체면을 보아 마교의 사람들에게 손을 쓰지 않는 것이 제일 좋겠구나.)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오히려 오래 기다릴수록 좋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호색가인 장로가 이미 떠났으니 사모임 또한 치욕을 받을 염려는 없었다.
그들은 마침내 함정을 다파고 그 안에 풀을 깔고는 정신을 빼았는 독약을 뿌려놓고 다시 함정 위에다가 풀을 덮었다. 포대초 등 여섯사람은 각각 수풀 속으로 들어가 몸을 숨기고 악불군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영호충은 가볍게 한개의 돌멩이를 집어들고 내심 생각하였다.

(사부가 이쪽으로 와 함정에 가까이 다가가면 돌멩이를 함정에다 던지자. 만약 돌멩이가 함정 속으로 빠지면 사부는 그것을 보고 틀림없이 경계심을 가질 것이다.)

때는 이미 초여름이라 조용한 계곡속에서는 매미가 이곳저곳에서 울고 있었으며 또한 새들이 울면서 날아가곤 하였다. 그밖에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영호충은 호흡을 작게 내쉬며 귀를 기울여 악불군, 갈장로, 두장로 세사람의 발걸음소리를 유심히 들었다.
한 반시간 정도 지났을 때 먼곳에서 여자가 악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영영이었다. 영호충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영영은 다른 사람들이 나타나는 것을 발견했을까? 그녀가 본것은 나의 사부님일까 아니면 갈장로, 두장로일까?)

이어서 발걸음소리가 들려오더니 한 사람은 앞에서 한사람은 뒤에서 질풍처럼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영영은 계속해서 외쳤다.

[충 오라버니, 충 오라버니, 당신 사부가 당신을 죽이려고 합니다. 절대로 나오지 마세요.]

영호충은 깜짝 놀랐다.

(사부님이 어째서 나를 죽이려고 할까?)

영영이 또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충 오라버니 빨리 도망치세요. 당신 사부가 당신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녀는 온힘을 다하여 외쳤다. 영호충이 멀리서 자기의 말을 듣도록 배려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외치면서 머리카락이 튿어지고 손에는 장검을 쥐고 있었으며, 급히 달려오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악불군은 두순에 아무것도 쥐지 않고 뒤에서 따라오고 있었다. 영영이 앞으로 십여 걸음만 달려온다면 함정에 빠질 것 같았다. 영호충과 포대초 등은 매우 초조하여 금방 어떤 방법을 강구해야할지 몰랐다.
갑자기 악불군이 동작을 신속하게 하더니 좌측손으로는 영영의 뒷덜미를 거머쥐고, 우측손으로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그녀의 양손을 뒤로 꺾었다. 영영은 금방 꼼짝 할 수가 없었으며 장검이 손에서 떨어졌다.
악불군의 행동은 몹시 빨랐다. 영호충과 포대초는 손쓸 겨를이 없었으며, 영영은 무공이 상당한 경지에 이르렀으나 순간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일초 사이에 그에게 잡혔던 것이다. 영호충은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를 뻔했다.
영영은 계속해서 외쳤다.

[충 오라버니, 빨리 도망가세요. 당신 사부가 당신을 죽이려고 합니다.]

영호충은 뜨거운 눈물이 가득히 고이며 생각했다.

(그녀는 단지 내 위험만을 생각하여 자기 자신은 돌보지도 않고 있구나.)

악불군의 좌측손이 풀어지면서 바로 손가락으로 영영의 등허리의 몇군데 혈도를 찍어서 그녀의 혈도를 막히게 하였다. 손을 풀자 그녀는 땅바닥에 꼬꾸라졌다.
바로 이때 악불군은 악 부인이 땅에 쓰러져 꼼짝도 하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 악불군은 깜짝 놀랐다. 그러나 즉시 부근에 틀림없이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되어 곧바로 자기 아내 몸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 소리도 없이사방을 두루 살펴보았다.
아무런 이상항 점이 없자 당당히 말을 했다.

[임소저, 영호충 이 악독한 놈이 내 딸을 죽였는데 너도 거기에 가담을 하였느냐?]

영영은 말을 했다.

[당신 딸은 임평지가 죽인 것이오. 영호충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소. 당신은 말끝마다 영호충이 당신 딸을 죽였다고 하는데 엉뚱한 사람에게 누명을 씌우지 마시오.]

악불군은 껄껄 웃더니 말을 했다.

[임평지는 나의 사위인데 너는 그것을 모르느냐? 그들은 신혼이고 깨가 쏟아지게 서로가 사람을 하고 있었는데 어찌 그런 자가 아내를 살해할 수 있겠느냐?]

영영은 말을 했다.

[임평지는 숭산파에 들어가 좌랭선의 신임을 받고 당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보이기 위해서 당신 딸을 죽였소.]

악불군은 또 껄껄 웃더니 말을 했다.

[무슨 수작을 지껄이느냐. 숭산파라니 이 세상에서 또 무슨 숭산파가 있단 말이냐. 숭산일파는 벌써 오악파에 합병이 되었다. 무림에 숭산파의 이름이 없어졌는데 임평지가 어찌 숭산파에 들어가겠느냐? 더우기 좌랭선은 이미 나의 부하인 것을 임평지가 어찌 모르고 있단 말이냐. 그가 어찌 오악파의 장문인인 장인을 따르지 않고 눈이 멀고 자기 몸도 주체하지 못하는 좌랭선에게 붙을 수가 있느냐? 천하의 아무리 멍청한 녀석일지라도 절대로 그런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영영은 말을 했다.

[당신이 못 믿겠다면 그것은 당신이 알아서 할 입니다. 당신이 임평지를 찾아낸 후 당신 스스로 그에게 물어보는 것이 좋겠군요.]

악불군의 말투가 갑자기 험해지더니 말을 했다.

[내가 찾으려는 자는 임평지가 아니라 영호충이다. 강호에서 모든 사람은 다 알고 있다. 영호충이 내 딸에게 무례한 짓을 하여 내 딸이 있는 힘을 다하여 완강히 거부하자 죽였던 것이야. 너는 쓸데없는 거짓을 하나 조작해 놓고 영호충을 위해서 속이려 하고 있구나. 틀림없이 너는 그자와 한패이다.]

영영은 몇번이고 경멸에 찬 냉소를 하였다.
악불군은 말했다.

[임소저, 너의 아버지가 일월교의 교주여서 본시 너를 잘 대해 주려고 하였다. 그러나 영호충이 나오도록 하기 위해서 별수없이 네 몸에다가 약간의 형벌을 가해야 되겠다. 내가 먼저 좌측 손을 잘라 버리고 그리고 나서 너의 우측손을 자르고 그래도 영호충이 나오지 않으면 너의 좌측발을 없애 버리고 다시 너의 우측다리를 잘라버릴 것이다. 영호충 이 악독한 놈이 약간이라도 양심이 있다면 즉시 나타날 것이다.]

영영은 큰 소리로 말을 했다.

[아마 당신은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오. 내몸에 솜털 하나라도 건드린다면 나의 아버지는 당신의 오악파 모두들 쥐새끼 하나 남기지 않고 없애 버릴 것이오.]

악불군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왜 내가 못 하리라고 보는가?]

말을 하면서 허리춤에서 천천히 장검을뽑아들었다. 영호충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수풀 속에서 뛰어나오더니 외쳤다.

[사부님, 영호충은 여기에 있읍니다.]

영영은 악 하고 소리를 지르며 급히 말했다.

[빨리 도망치세요. 빨리 도망치세요. 그는 절대로 나를 해치지 못합니다.]

영호충은 고개를 흔들며 앞으로 가까이 몇걸음 다가와서 말을했다.

[사부님......]

악불군은 엄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이 못된 놈아 네놈이 무슨 낯으로 나를 사부라고 부르느냐?]
영호충은 눈물이 핑돌며 땅에 무릎을 끄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했다.

[하늘에 두고 맹새를 합니다. 영호충은 악소저를 심히 존경해왔고 절대로 그녀에게 무례한 짓을 하지 않았읍니다. 영호충은 어르신께서 양육해준 크나큰 은혜를 입었읍니다. 죽이시려면 자 죽이십시오.]

영영은 급해서 외쳤다.

[충 오라버니, 이 사람은 여자도 아니고 남자도 아닌 실성한 사람입니다. 빨리 도망치지 않고 뭐 하고 있읍니까.]

갑자기 악불군의 얼굴에 한줄기 살기가 나타나더니 몸을 돌려 영영을 향해서 무서운 목소리로 말을 했다.

[너의 그 말은 무슨 뜻이냐?]

영영은 말을 했다.

[당신은 그 벽사검법을 연마하기 위해서 스스로...... 스스로 자멸의 길을 걸었읍니다. 충 오라버니, 당신도 동방불패를 기억하고 있지요. 그들은 다 미친 자들입니다. 당신은 절대로 그들을 보통사람으로 여기면 안 됩니다.]

그녀는 오로지 영호충이 빨리 도망치기를 바라고 있었다. 이렇게 말하면 악불군이 틀림없이 자기를 놔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자기 자신을 돌보지 않았다.
악불군은 냉랭히 말을 했다.

[너는 그 괴상망칙한 소리를 어디서 들었느냐?]

영영은 말을 했다.

[임평지가 친히 말해 주었읍니다. 당신이 임평지의 벽사검보를 훔친 사실을 그가 모른다고 여기고 있읍니까? 당신은 그 가사 장삼을 협곡에 버렸는데 그때 임평지는 창밖에 숨어서 손을 내밀어 그 가사 장삼을 주웠읍니다. 그래서 그가......그도 역시 벽사검법을 연마했지요. 그렇지 않다면 그가 어찌 목고봉과 여창해를 죽일 수 있었겠읍니까? 자기 스스로 벽사검법을 연마했기 때문에 그래서 당신이 어떻게 그 벽사검법을 연마했는가를 알 수가 있었겠지요. 충 오라버니, 악불군의 말소리를 들어보세요. 마치 여자와 같지 않습니까? 그는......그는 동방불패와 똑같습니다. 이미 남자가 아닙니다.]

그녀는 임평지와 악영산이 수레 속에서 말하는 소리를 들었으나 영호충은 듣지 못했다. 그녀는 영호충이 사부님을 존경하고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 말을 꺼내어 그를 괴롭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까지 한마디도 언급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이 이렇게 긴박해지자 별수없이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영호충이 알도록 하여 눈앞의 사람은 결코 무림의 종사 장문이 아니고 단지 성을 잃은 괴상망칙한 사람일 뿐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이 미친 자와 무슨 은혜나 의리를 따질 수 있겠는가? 악불군의 두눈 속에는 살기가 번쩍이며 매섭게 말을 했다.

[임소저, 나는 본래 너를 살려 주려고 있는데 그렇게 함부로 말을 하니 나는 너를 절대로 용서할 수가 없다. 이것은 네 스스로 무덤을 파는 꼴이니 나를 탓하지 말아라.]

영영은 외쳤다.

[충 오라버니 빨리 도망치세요. 빨리 도망치세요.]

영호충은 사부의 동작이 극히 빠름을 알고 있었다. 장검이움직이기만 하면 영영의 생명은 그것으로 끝장이 나는 것이다. 악불군이 장검을 드는 것을 보니 금방이라도 내리칠 것 같았다. 그래서 크게 외쳤다.

[당신이 죽이려면 나를 죽이시오. 그녀에게는 손을 대지 마시오.]

악불군은 고개를 돌려 냉소하며 말을 했다.

[너는 어린애 장난이나 하는 검법을 배워서 강호를 주름잡을 수 있다고 여기느냐? 자 검을 들어라 내가 네놈이 죽어도 여한이 없도록 해주겠다.]

영호충은 말을 했다.

[절대로 그럴 수는 없읍니다. 절대로......절대로 사부님과 겨룰 수는 없읍니다.]

악불군은 큰 소리로 말을 했다.

[일이 오늘에 이르렀는데 네놈은 아직도 점잖은 체하며 무슨 수작을 꾸미려고 하느냐? 그날 오패강(五覇江)에서 너는 좌도의 인사들과 결탁을 하여 고의로 내 체면을 깎아 내렸다. 그때 나는 너를 죽이려는 생각이 있었으나 꾹 참고 지금까지 살려두고 있었다. 복주에서 네놈이 내 손에 있을 때 내 마누라가 아니었다면 너는 벌써 염라대왕 앞으로 갔을 것이다. 그런데 네놈은 오히려 내딸에게 못된 짓을 하려고 했다.]

영호충은 너무 급해서 외치기만 했다.

[나는 하지 않았읍니다. 나는 그런 일을 하지 않았읍니다......]

악불군은 화가 나서 일갈을 했다.

[자 검을 집어라. 네 놈이 내 수중의 장검을 이길 수만 있다면 바로 나를 죽여버려라. 그렇지 않다면 나는 절대로 너를 살려 두지는 않을 것이다. 이 마교의 요녀 입에서 이런 되지 못한 말이 나오니 내가 먼저 이 요녀를 없애 버리겠다.]

말을 하면서 검을 들어 영영의 목을 향해 내리쳤다. 영호충은 좌측손에 줄곧 한개의 돌맹이를 가지고 있었다. 본래는 악불군이 함정에 떨어지는 것을 방지할 때 쓰려고 했으나 더 이상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즉시 악불군의 가슴을 향해서 돌맹이를 던졌다. 악불군은 몸을 옆으로 하여 피했다. 영호충은 땅바닥에 한번 구르더니 영영이 떨어뜨린 장검을 집고는 검을 들어 악불군의 우측 겨드랑이를 향해서 내리찍었다. 만약 악불군이 이 일검으로 영호충을 향해서 내리찍었다면 그는 아무런 반항도 않고 죽음을 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악불군이 영영이 자기 비밀을 간파하여 놀라고 노한 나머지 일검으로 그녀를 베어버리려고 하자 영호충은 그녀를 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악불군은 장검을 막고 뒤로 두발짝 물러나 내심 놀라고 기이하게 생각되었다. 지금 막 쓴 삼초식에 자기 손이 얼얼하게 마비가 되어 왔던 것이다. 그날 스승과 사제 두 사람이 소림사에서 수천 초식을 겨루워 보았으나 영호충에게서 진정한 내공을 볼 수가 없었는데 지금 일이 급하니 이 삼초식은 더욱 양보를 하지 않았다. 영호충은 악불군을 뒤로 물러나게 하고는 손을 써서 영영의 혈도를 풀었다.
영영은 외쳤다.

[나는 상관하지 마세요. 조심하세요.]

백광이 번쩍이며 악불군의 장검이 이미 눈앞에 들어왔다. 영호충은 동방불패, 악불군, 임평지 세사람의 무공을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상대방의 동작이 귀신처럼 신속하고 민첩하기 짝이 없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 만약 상대방이 공격할 때 초식의 빈틈을 찾아 공격을 한다면 때는 이미 늦으리라. 그래서 즉시 장검을 휘둘러 악불군의 아랫배를 내리찍었다.
악불군의 두다리가 튕겨지더니 뒤로 물러나며 욕을 했다.

[악독한 놈 같으니라구.]

사실 악불군은 영호충을 어려서부처 키워오고 자라는 것을 보아왔지만 그의 사람됨을 모르고 있었다. 만약 그가 영호충의 반격을 상관하지 않고 일검을 똑바로 내리찍었다면 영호충의 생명을 빼앗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영호충이 사용한 것은 두사람이 같이 목숨을 잃는 초식이었지만 실제로 그는 일검으로 절대로 사부의 아랫배를 찌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악불군은 자기의 생각만 가지고 사람을 대했기 때문에 뒤로 물러나 영호충을 없앨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잃었던 것이다. 악불군은 여러 초식을 썼으나 이길 수 없자 검이 더욱 빨라졌다. 영호충은 정신을 차려 그와 격돌을 하였다.
처음에 그는 사부의 손에 자기가 죽더라도 아깝지 않으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영영이 틀림없이 그에게 살해당할 것이고 또 영영이 그의 아픈 곳을 말했기 때문에 죽이기 전에 고통을 줄 것이라는 짐작을 하고 있는 힘을 다하여 상대방의 초식을 막았다. 모두가 영영을 지키려는 일념에서였다.
수십초식을 다시 맞붙자 악불군의 검초는 복잡하게 엉키었으며 영호충은 정신을 똑바로 차려 접전을 하였다. 점점 마음속은 텅비어오고 눈빛이 집중되는 곳을 오로지 상대방 장검의 끝이었다.
독고구검은 적이 강할수록 더욱 강해졌다. 그날 서호의 호수 밑바닥 감옥에서 임아행과 검시합을 했을 때 임아행의 무공이 실로 대단하여 그의 검초가 변화가 많고 날렵했는데도 영호충의 독고구검의 초식이 즉시 변화되어 나왔으며 공격을 하거나 또는 수비를 하거나 상당히 날카로왔다. 지금 영호충은 흡성대법(吸星大法)을 배웠고 내공은 호수 밑바닥에서 검시합을 했을 때보다는 크게 증진되어 있었다. 악불군이 배운 벽사검법의 검초는 괴이했으나 필경 연마한 시일이 너무 짧아 영호충이 독고구검을 연마한 기간에 훨씬 미치지못했고 동방불패보다 악불군은 실력이 뒤떨어져 있었다.
백오십육 초식을 맞붙은 후에 영호충의 검에는 조금도 주저함이 없었다. 악불군의 검초의 빠름에 영호충은 더 이상 주저할 수 만은 없었던 것이다. 임가의 벽사검법은 비록 칠십이 초식이었으나 일초식마다 각각 수십개의 변화가 있어써 크게 변화가 되면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머리가 빙글빙글 돌아 이 변화무쌍한 검법에 빠져들어 손을 쓸 숙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영호충이 배운 독구구검의 초식이란 일정한 격식은 없고 적의 초식에 의해서 자연히 사용되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적의 초식이 한초식이라면 오로지 한초식만 있을 뿐이고 적의 초식이 천초식 만초식이라면 그의 검법도 역시 천초식 만초식으로 변화되었다. 그러나 악불군은 상대방의 검법이 복잡하고 자기 위에 있는 것을 보고 삼일밤 삼일낮을 겨룬다면 새로운 초식이 나올까봐 염려되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자기도 모르게 암암리에 겁이나 생각하였다.

(임가의 이 요망한 계집아이가 나의 비밀을 파헤쳐 놨으니 오늘 이 두놈을 죽이지 않는다면 이 일이 강호에 전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내 어찌 무슨 낯으로 오악파의 장문인에 앉아 있겠는가? 예전에는 이러한 일들을 모두 물처럼 깨끗하게 처리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임평지 이 못된 놈이 이 요망한 계집에게 모두 말한 이상 그 어찌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하지 않았겠는가? 이건......이건 정말로......)

내심 초조하여 검초는 더욱 매서워졌다. 그에게 불안한 마음이 생기자 검초는 약간 속도감이 떨어졌다.
벽사검법은 원래 빠른 것이 장점이었으나 백여초식을 급히 공격해도 아무런 효과를 얻지 못하자 검법의 날카로운 기는 이미 꺾이고, 더우기 마음을 진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검의 위력은 더욱 크게 감소되었다.
영호충은 내심 상대방의 검법의 빈틈을 발견할 수 있었다. 독고구검의 요지는 적의 무공 중에서 빈틈을 찾아내는 것이다. 어떤 초식이라도 반드시 빈틈이 있기 마련이어서 이 빈틈을 찾아 공격해 들어간다면 일격에 승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날 흑목애에서 동방불패와 격돌을 했을 때 동방불패는 한개의 수바늘만을 가지고 있었으나 몸을 번개처럼 놀려 빠르기가 이를 데 없었다. 비록 신법과 초식중에는 여전히 빈틈이 있었으나 이 빈틈은 순식간에 없어지고 다시 또 그 빈틈을 보았을 때 그 빈틈은 앞의 빈틈과 다르므로 그 빈틈을 공격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영호충, 임아행, 상문천, 영영 네명의 고수들이 힘을 합쳤지만 한개의 수바늘을 이길 수 없었던 것이다.
영호충은 그후로 악불군과 좌랭선이 봉선대에서 격돌을 하고 임평지와 목고봉, 여창해 청성 여러제자들이 격돌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후로 계속 노심초사하면서 이 검초식을 파괴하는 방법을 생각하곤 하였다. 그러나 결국 상대방의 검초가 너무 빠르고 검초의 빈틈이 나타났다가 바로 사라져서 공격하기가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했던 것이다.
영호충은 악불군과 이백여 초식을 맞붙었다. 그의 일검이 휘둘러오자 그의 우측 겨드랑이에서 빈틈이 노출된 것을 보았다. 악불군은 이 초식을 앞에서 한번 사용한 적이 있었다. 본래 그의 검초의 변화는 복잡하여 이백여초식 안에서는 중복을 하면 안 되었다. 그러나 필경 중복이 되었던 것이다. 수초 후에 악불군의 장검이 가로질러 오면서 좌측 허리에는 빈틈이 나타나고 이 일초는 또다시 중복되어서 나왔던 것이다.
그러한 사이에 영호충의 마음속에서는 생각이 번뜩이었다.

(그의 벽사검법은 너무나 빠르기 때문에 빈틈이 있어도 빈틈이 되지 않았는데, 검법 중의 빈틈을 마침내 내가 찾아냈구나. 헛점은 바로 검초의 중복에 있었어.)

천하의 어떠한 검법이라도, 변화가 무쌍한 것일지라도 결국은 끝이 나는 법이 있는 것이다. 만약 계속해서 시합할 수밖에 없다면 앞에서 사용했던 검초를 다시 한번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명가의 고수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십로팔로(十路八路)의 정통한 검법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일로에는 수십초의 검법이 있고 초식마다 변화가 있으니 극히 천여초식을 쓰고나서 다시 승부가 나지 않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악불군이 사용하는 검초는 많았지만 영호충의 검법이 실로 너무 강했고 또한 화산파의 검법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벽사검법을 제외하고는 다른 검법으로 그를 이길 수가 없었다. 영호충은 그의 초식이 중복되자 이길 수 있는 기회를 찾았고 그래서 내심 기뻤다.
악불군은 그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떠오르는 것을 보고는 암암리에 놀랐다.

(이 못된놈이 어째서 웃는가? 설마하니 그가 나를 이기는 법을 찾아냈단 말인가?)

즉시 내공을 운행하여 진퇴가 신속했으며 영호충의 몸을 에워싸고 돌았다. 검초는 마치 바람처럼 빨랐으며 갈수록 더욱 빨랐다.
영영은 땅바닥에 드러누워 악불군의 몸체를 분명하게 볼 수 없었다. 악불군이 빙빙 도는 것을 보자 어지럽고 메스꺼워 구토를 하고만 싶었다. 또 삼십여초식을 맞붙자 악불군의 좌측손이 앞을 가리키며 우측손이 움츠려든 것을 보았다.
영호충은 그 일초식이 세번째 쓰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그때 오랫동안 맞붙고, 상처기 갓 나은 상태라 이미 피곤하고 힘이 없었다. 그러나 이 국면은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악불군의 번개와 같은 빠른 공격하에서 약간이나마 소홀한다면 자기의 생명이 사라질 뿐만 아니라 영영이 큰 변을 당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는 일초식 일초식에 신중을 기하고 있는 힘을 다하였다.
즉시 장검을 집어넣어 상대방의 우측겨드랑이를 겨냥해 똑바로 찔러 들어갔다. 검끝이 가리키는 곳은 일초식에 나타난 빈틈이었다. 그것은 바로 적을 알고 선기를 잡아 적의 빈 헛점을 공격하는 것이다. 악불군의 일초는 빨랐지만 영호충의 일검이 눈앞에 찔러 들어오자 벽사검법의 초식을 변화시키지 못했다. 또한 상대방의 검초가 이미 자기의 겨드랑이로 찔러 들어와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었다. 악불군은 날카롭게 외쳤다. 말투 속에는 놀람과 분노가 충만되었고 또한 절망한 의미였다. 영호충은 검끝이 상대방의 겨드랑이로 들어갔을 때 그의 날카로운 외침소리를 듣고 즉시 놀랐다.

(내가 너무 정신이 빠졌구나 내가 어찌 그를 해칠 수가 있겠는가?)

즉시 검을 세우고 더이상 들어가지 않고 말을 했다.

[승패는 이미 났읍니다. 빨리 사모님을 구해야 합니다. 이건......그만 여기서 멈추도록 하시지요.]

악불군의 얼굴은 잿빛이 되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했다.

[좋다, 내가 졌다.]

영호충은 장검을 던지고 고개를 돌려 영영을 보았다.
갑자기 악불군은 일갈을 내지르며 장검을 번개처럼 앞으로 하고 똑바로 영호충의 좌측허리를 찔렀다. 영호충은 깜짝 놀란 나머지 급히 땅에 버려진 장검을 주우려고 했다. 그러나 때는 늦었다.푹 하고 소리가 나면서 검끝이 이미 그의 허리를 찔렀다. 다행이 영호충의 내력이 매우 두꺼워 검끝이 몸의 피부에 닿았을 때 자연히 튕겨져 그 검끝은 옆으로 스쳐지나갔다. 날카로운 검끝이 옆으로 스쳐지나가면서 다행히 그의 급소를 찌르지 못하였다. 악불군은 검을 빼들고 또 다시 일검을 내리찍었다. 영호충은 급히 뒤로 몇걸음 도망쳤다. 악불군은 쫓아와 검을 휘두르며 맹렬히 찔러대었다. 영호충은 또한번 굴렀고 짱그랑 소리를 내면서 검날은 땅바닥을 내리쳤다. 그의 머리통과 거리는 겨우 수촌에 불과했다. 악불군은 장검을 들고 교활한 웃음소리를 지르면서 장검을 높이 들더니 앞으로 한발짝 나와 일검으로 영호충의 머리통을 박살내려고 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발 아래가 텅비는 느낌이 들더니 몸은 똑바로 함정에 빠져 들어갔다.

영호충은 죽음에서 살아나 좌측손으로 허리의 상처를 누르고 버둥거리면서 앉았다. 수풀 속에서 수십사람이 동시에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아가씨! 성고(聖姑)!]

몇사람이 뛰어나왔다. 바로 포대초, 막장로 등 여섯사람이었다.
포대초는 함정 옆으로 달려나가 숨을 멈추고 칼을 거꾸로 하여 칼자루로 악불군의 머리를 향해서 일격을 가했다. 설령 그의 내공이 대단할지라도 이 일격은 한참동안 정신을 잃게 할 수가 있었다.
영호충은 급히 영영의 몸 앞으로 달려나가 물어보았다.

[그가......그가 당신의 몇군데 혈도를 찍었소?]

영영은 말을 했다.

[당신......당신은......당신은 아무일도 없읍니까?]

그녀는 놀란 나머지 말소리가 떨려왔고 자기 스스로를 억제하지 못하였다. 이가 서로 부딪쳐서 덜그락 덜그락 하는 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영호충은 말을 했다.

[죽지 않았읍니다. 그러니......너무 염려하지 마시오.]
영영은 큰 소리로 말을 했다.

[이 못된 놈을 죽여버려라.]

포대초는 말을 했다.

[녜.]

영호충은 급히 말을 했다.

[그의 몸에 손대지 마시오.]

영영은 그가 급히 말을 하지 말을 했다.

[알았읍니다. 그렇다면 빨리......빨리 그를 꽁꽁 묶어두시오.]
그녀는 함정에 이미 정신을 잃는 약이 살포되어 있는 줄 모르고 악불군이 다시 올라오면 모든 사람이 그의 적수가 아니기 때문에 크게 염려스러웠던 것이다.
포대초는 말을 했다.

[알았읍니다.]

그는 절대로 함정은 자기들이 판 것이고 자기를 포함해서 여섯 사람이 벌써 이곳에 숨어 있었던 사실을 말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 않고 임소저가 악불군에게 곤경을 당하고 있을 때 각자 죽음이 두려워 숨어서 몸을 나타내 구하지 않았다는 것을 추궁한다면 실로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별수없이 거짓으로 이곳에 막 도착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손을 내밀어 악불군의 뒷목덜미를 거머쥐고 질풍처럼 그의 몸의 열두군데 대혈을 연신 찍었다. 그리고는 끈을 꺼내더니 손과 발을 꽁꽁 묶었다. 약을 마시고 얻어터지고 혈도가 찍히고 꽁꽁 묶여 있으니 악불군이 아무리 재주가 용하다 할지라도 도망 칠 수가 없었다.
영호충은 영영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마치 꿈속에 있는 듯하였다.
한참 지난 뒤에야 비로소 영영은 `흐흑'하고 큰 소리로 울기 시작하였다. 영호충은 손을 내밀어 그녀를 꼭 껴안고 죽음에서 빠져나온 것이 자기 평생 이렇게 기분좋게 느껴질 때는 없었다. 그녀에게 혈도가 막힌 곳을 물어보고는 그녀의 혈도를 풀어주었다.
옆눈으로 보니 사모님은여전히 땅바닥에 드러누워 있었다. 그래서 외쳤다.

[아이고!]

급히 달려가서 일으켜 세우고 그녀의 혈도를 풀어주며 외쳤다.

[사모님 제 죄가 너무나 큽니다.]

조금 전에 벌어진 상황을 악 부인은 모두 친히 두눈으로 보았다. 그녀는 영호충의 사람됨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영호충은 악영산을 좋아했으며 마치 그녀를 선녀처럼 대했고 절대로 무례한 행동을 하지 않았으며 심한 말 조차 그녀에게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으며, 악영산을 위해서라면 목숨으라도 기꺼이 버릴 사람이었다. 무슨 강간을 하려다가 미수에 그치고 또한 살해했다는 말은 정말 황당무계한 것이었다. 하물며 그녀는 그가 지금 영영과 이렇게 사랑을 하고 있는데 어찌 다른 마음을 먹을 수 있는가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영호충은 손을 써서 남편을 제압했지만 차마 죽이지는 못했다. 그러나 남편은 오히려 그에게 악랄한 수법을 썼으며 설령 좌도의 인사일지라도 그러지는 못했을 것인데 당당한 오악파의 장문인이 이런 비굴한 수단을 쓴다는 것은 너무 창피한 일이어서 모든 것이 순식간에 물거품으로 사라지는 듯하였다.
그래서 담담하게 물어보았다.

[충아, 산이는 정말로 임평지가 죽였느냐?]

영호충은 마음이 시큰해오더니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는 목소리로 말을 했다.

[제자......전......전......]

악 부인은 말을 했다.

[내 남편이 너를 제자로 여기지 않을지라도 나는 여전히 너를 나의 제자로 여기고 있다 네가 좋다면 나를 여전히 사모님이라고 불러다오.]

영호충은 내심 크게 감격하여 땅에 엎드려 외쳤다.

[사모님! 사모님!]

악 부인은 그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눈물을 뚝뚝 흘리더니 천천히말을 했다.

[그렇다면 임소저의 말이 틀림이 없구만. 임평지도 벽사검법을 배워 좌랭선에게 의지하려고 산이를 죽였겠지.]

영호충은 말을 했다.

[바로 그렇습니다.]

악 부인은 흐느끼며 말을 했다.

[몸 좀 돌려보거라. 내가 너의 상처를 좀 보고 싶구나.]
영호충은 대답하였다.

[녜.]

하고 몸을 돌렸다.
악 부인은 그의 등허리의 옷을 찢더니 상처 주위를 혈도를 찍으면서 말을 했다.

[항산파의 약을 가지고 있느냐?]

영호충은 말을 했다.

[가지고 있읍니다.]

영영은 그의 품속에서 약을 꺼내더니 악 부인에게 건네 주었다.
악 부인은 그의 상처의 핏자국을 깨끗이 닦은 다음에 약을 바르고 품속에서 깨끗한 하얀 손수건을 꺼내더니 그의 상처부위에 갖다대고 또 자기 치마를 찢어서 길다란 붕대를 만들어 그의 상처를 싸매주었다. 영호충은 지금까지 악 부인을 어머니처럼 여기고 있었다.
지금 그녀가 이렇게 자기를 대하는 것을 보자 마음이 안정되고 감격하여 상처의 아픔도 잊었다.
악 부인을 말을 했다.

[장차 임평지를 죽여 내 딸의 복수를 해야 하는데 이 일은 네가 처리할 수 있겠지.]

영호충은 눈물을 흘리며 말을 했다.

[소사매......소사매는 임종할 때 저에게 임평지를 보살펴 달라고 부탁을 하였읍니다. 저는 악영산의 상처가 깊고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는 것을 보고 이미 그녀의 부탁에 대답을 하였읍니다. 이 일은......이 일은 정말 처리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악 부인은 길게 한숨을 쉬더니 말을 했다.

[이건 업보야! 이것은 업보야!]

또 말을 했다.

[충아, 넌 앞으로 사람을 대할 때 너무 잘 대해주지 말아라.]
영호충은 말을 했다.

[녜.]

갑자기 뒤목덜미에게 뜨거운 물이 흐르는 것 같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악 부인의 안색이 창백해지는 것을 보았다. 깜짝 놀라서 외쳤다.

[사모님! 사모님!]

급히 일어나 악 부인을 부축하였을 때 그녀의 가슴에 한자루의 비수가 꽂혀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비수는 심장에 꽂히어 이미 절명을 하였다.
영호충은 깜짝 놀라서 멍청해지며 입을 적 벌린 채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영영 역시 너무나 놀랐다. 그녀는 악 부인과 그리 친밀한 감정은 없었기 때문에 단지 놀랬을 뿐 그리 상심하지는 않았다.
즉시 영호충을 부추겨 세웠다.
한참 지난 뒤에 영호충은 비로소 방성대곡을 하였다. 포대초는 두 사람이 갑자기 크나큰 변고를 만났기 때문에 할 말이 많을 것이라고 여기고 옆에서 묵묵히 서 있을 뿐 끼어들지 않았다. 또 영영이 이 함정의 내력을 추궁할까 염려되어 여섯사람은 그녀의 추궁에 답변할 말을 상의해야만 했다.
그래서 즉시 악불군을 들쳐매고 막장로 등 일행과 멀찌감치 물러났다.
영호충은 말을 했다.

[그......그들이 내 사부를 어찌하려고 그러오.]

영영은 말을 했다.

[당신은 그래도 그를 사부라고 부르는군요.]

영호충은 말을 했다.

[음, 습관이 되어서요. 사모님은 어째서 자결을 했을까요. 사모님......어째서 무슨 이유로 자결을 했을까요.]

영영은 미움이 가득 찬 목소리로 말을 했다.

[그것은 악불군 그 간사한 작자 때문이겠지요. 비굴하고 쓸모없는 남편에게 시집을 와서 그를 죽이지 못하니까 별수없이 자결을 하셨겠지요. 우리는 빨리 악불군을 죽여서 당신 사모님의 복수를 해드려야 합니다.]

영호충은 주저하여 말을 했다.

[그를 죽여야 한다고요. 그는 어쨌든간에 나의 사부였읍니다. 그리고 나를 키워 주셨고요.]

영영은 말을 했다.

[그는 비록 당신 사부이고 옛날에 당신을 키워준 정이 있지만, 여러차례 당신을 죽이려고 했으니 은혜는 벌써 없어진거나 다름이 없읍니다. 그런데 당신 사모님이 당신에게 쏟은 은혜는 아직 갚지를 않았어요. 사모님은 자진을 하셨지만 결국은 저 악불군이 죽인 거나 다람이 없읍니다.]

영호충은 한숨을 쉬더니 처량하게 말을 했다.

[사모님의 은덕은 평생토록 갚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설사 악불군과 나 사이에 아무런 관계가 없다해도 나는 그를 죽일 수 없읍니다.]

영영은 말을 했다.

[그 누구도 당신에게 죽이라고 하지 않았읍니다.]

목소리를 높이더니 외쳤다.

[포장로!]

포대초는 큰 소리로 대답하였다.

[녜, 아가씨.]

막장로 등이 그녀 앞으로 다가왔다.
영영은 말을 했다.

[나의 아버지가 당신들을 파견해서 일을 처리하라고 했읍니까?]
포대초는 손을 모으며 말을 했다.

[녜, 교주께서 명령을 내려 갈장로, 두장로, 막장로 세분의 장로에게 열명의 형제들을 데리고 악불군을 잡아서 대령하라고 하셨읍니다.]

영영은 말을 했다.

[갈장로, 두장로는 어디 있소?]

포대초는 말을 했다.

[그들은 두시간 전에 악불군을 이곳으로 유도하기 위하여 나갔읍니다. 그런데 아직 돌아오지 않았읍니다. 아마......아마......]
영영은 말을 했다.

[당신은 가서 악불군의 몸을 뒤져보시오.]

포대초는 대답했다.

[알겠읍니다.]

악불군이 있는 곳으로 가서 몸을 수색하였다. 그는 악불군의 품속에서 한개의 금기(錦旗)를 끄집어내었다. 그것은 오악검파의 맹기였다. 그리고 또 다른 두개의 동패(銅牌)를 꺼내었다.
포대초는 분격하여 큰 소리로 말을 했다.

[아가씨에게 알립니다. 갈장로, 두장로는 과연 이미 이자의 손에 죽었읍니다. 이것은 두분 장로의 교패(敎牌)입니다.]

말을 하면서 발을 높이 들더니 악불군의 허리를 향해서 무섭게 걷어찼다.
영호충은 큰 소리로 말을 했다.

[그에게 손대지 마시오.]

포대초는 아주 공손하게 대답하였다.

[녜.]

영영은 말을 했다.

[냉수를 가져다가 이자를 정신들게 하시오.]

막장로는 허리춤에서 물통을 꺼내더니 마개를 뽑아 악불군의 머리에다 차가운 물을 부었다.
좀 지나자 악불군은 신음소리를 내면서 두눈을 떴다. 정수리와 허리에 극심하게 아픔을 느끼고 또 한차례 신음소리를 내었다.
영영은 물어보았다.

[당신이 본교의 갈장로와 두장로를 죽였소?]

포대초가 두개의 동패를 들고 흔들자 쨍그랑 쨍그랑소리가 났다.
악불군은 욕을 하였다.

[바로 내가 죽였다. 마교의 사도들은 모두 다 죽여야만 한다.]
포대초는 다시 한번 걷어 차려고 했다. 그러나 영호충이 교주와 교분이 깊고, 또 임소저의 장래의 남편이라 절대로 악불군을 해치지 말라는 그의 말을 감히 거역하지 못하였다.
영영은 차갑게 웃으면서 말을 했다.

[당신은 정교의 장문인이라 자부를 하면서도 하는 짓거리들은 우리 일월신교의 사악함보다도 백배 천배 더 하군요. 무슨 얼굴로 우리를 사악한 무리라고 욕을 하시오. 당신 부인조차도 당신이 하는 꼴이 역겨워 차라리 자결을 할망정 당신을 남편으로 섬기길 원하지 않았는데 앞으로 당신은 무슨 염치로 이 세상을 살아가겠소?]
악불군은 욕을 하였다.

[이 요망한 계집아 내 안사람을 너희들이 죽여놓고 억지를 부리는구나. 너희놈들이 죽여놓고 그녀가 자살을 했다고 말을 하고 있구나.]

영영은 말을 했다.

[충오라버니, 당신도 그의 말을 들으셨지요. 정말로 무례하고 염치가 없는 자입니다.]

영호충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했다.

[영영, 나는 당신에게 한가지 일을 부탁하고 싶소.]

영영은 말을 했다.

[나보기 이 작자를 놓아 주라고 하시려고요. 호랑이는 잡기는 쉬워도 놓아 주기는 어려운 법입니다. 이자는 흉악하고 간교한 사람이며 무공 또한 강해, 앞으로 다시 그를 잡으려면 오늘과 같이 그리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영호충은 말을 했다.

[오늘 그를 풀어준다면 나와 그는 사제의 정이 끊어지는 것입니다. 나는 이미 그의 검법의 모든 것을 알고 있으니 그가 다시 공격을 한다해도 그를 꼼짝 못하게 할 자신이 있읍니다.]

영영은 영호충이 절대로 자기로 하여금 그를 죽이도록 허락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영호충이 앞으로 그와 옛정을 끊기만 한다면 악불군에 대해서도 그리 무서울 것이 없었다. 그래서 말하였다.

[좋습니다. 오늘 우리가 한번 살려줍시다. 포장로, 막장로 당신들은 강호에 나가면 우리들이 어떻게 악불군을 놔주었는지 사방에 전하시오. 또 악불군이 그 벽사검법을 연마하기 위하여 스스로 몸을 망치고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라는 것을 모두가 알게 하시오. 오늘 우리가 본 일과 들은 것들을 숨김없이 천하의 영웅들이 알도록 하여야만 합니다.]

포대초와 막장로는 일제히 대답을 하였다.
악불군의 얼굴은 마치 잿빛이 되어 있었고, 두눈에는 악독한 기가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자기의 생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고는 얼마간의 기쁜 표정이 눈빛에 역력하였다.
영영은 말을 했다.

[당신이 나를 증오한다해도 내가 당신을 두려워할 줄 아시오?]
장검을 몇번 휘둘러 그의 몸을 꽁꽁 결박하고 있는 밧줄을 끊었다. 몸 가까이 다가가더니 그의 허리의 한곳을 혈도를 풀어 주었다. 우측 손바닥은 그의 입을 누르고 좌측손으로 그의 뒷통수를 한대 쳤다.
악불군이 입을 열자 그의 입속에 한개의 알약을 집어넣었다. 동시에 영영의 우측손의 두손가락이 이미 그의 콧구멍을 비틀고 있어서 악불군은 금방 숨이 막혀 호흡을 할 수가 없었다. 영영이 악불군의 결박을 풀고 그의 몸의 혈도를 풀어주고 있을 때 등허리가 영호충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알약을 악불군의 입속에 집어 넣는 것을 영호충은 볼 수가 없었다. 단지 그녀가 자기의 체면을 보아서 사부를 놓아 준다고 생각하고 내심 퍽이나 안심이 되었다.
악불군이 코가 막혀 입을 벌려 숨을 들이 쉬었을 때 영영의 손으로부터 경력이 나오면서 삽시간에 그 알약은 기류를 따라서 그의 뱃속으로 들어갔다.
악불군의 알약을 삼키자 너무나 겁나 혼비백산하였다. 이것은 마교에서 제일 무서운 삼시뇌신단(三尸腦神丹)이라고 생각하였다. 악불군은 사람들 입을 통해서 이 단약(丹藥)을 복용하면 해마다 단오절 때 반드시 해독약을 먹어야만 약 속에 들어있는 시충(尸蟲)을 제압할 수가 있고, 해마다 약을 먹지 않으면 시충이 약속에서 나와 뇌를 파고들어 갉아먹기 때문에 그 고통은 말할 필요도 없고 광란기가 크게 발작이 되어 미친개보다도 못하게 된다는 소리를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그는 평시에 침착하고 지혜로와 어떤 위험한 상황에서도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았으나 지금 이런 곤경을 당하자 얼굴은 식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으며 안색은 흙빛으로 변하였다.
영영은 몸을 똑바로 세우더니 말을 했다.

[충 오라버니, 그들이 손을 쓸대 너무 중하게 하여 이 혈도는 상당히 풀기가 힘드는군요. 나머지 두곳을 혈도는 잠시 쉬었다가 조금 후에 다시 풀도록 하지요. 지금 푼다면 그는 견뎌내지 못할 것입니다.]

영호충은 말을 했다.

[장멀로 감사하구료.]

영영은 피식 웃고는 내심 말하였다.

(내가 당신 모르게 손을 써 당신을 속였지만 그것은 모두 당신을 위해서입니다.)

잠시 후에 악불군의 뱃속에 들어 있는 약이 퍼지면 공력을 써도 토해 내지 못할 정도가 되자 그 나머지 두곳을 혈도를 풀어 주었다.
고개를 숙여 그의 귀에다 입을 대고 낮은 소리로 말을 했다.

[매년 단오절 때 흑목애에 오시오. 나는 당신에게 해독약을 주겠소.]

악불군은 이 말을 듣고 조금 전에 자기가 복용한 것이 바로 삼시뇌신단이라는 것을 알았다. 자기도 모르게 온몸이 덜덜 떨려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했다.

[이건......이건 삼시......삼시......]

영영은 킥킥 웃더니 큰 소리로 말을 했다.

[그렇소, 축하합니다. 이 영단묘약은 제조하기가 그리 쉽지 않읍니다. 우리교에는 위치가 높고 무공이 탁월한 거물만이 비로소 이 약을 복용할 자격이 있지요. 포장로, 그렇지 않습니까?]
포대초는 고개를 숙이며 말을 했다.

[교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이 신단을 저에게 복용토록 해주셔서요. 저는 충심을 가지고 섬기고 절대로 두마음을 갖지 않겠읍니다. 그 신단을 복용한 후 교주님의 신임이 더욱 두터워 졌고 실로 적지않은 은혜를 받고 있읍니다.]

영호충은 깜짝 놀라서 물어보았다.

[당신은 나의 사......그에게 삼시뇌신단을 복용케 했군요.]
영영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그 스스로 입을 벌려 그것을 삼켜 버렸읍니다. 아마 그의 배가 무척이나 고팠던 모양입니다. 아무거나 다 먹게요. 악불군, 앞으로 당신이 있는 힘을 다하여 충 오라버니와 나의 생명을 보호한다면 당신에게 크게 이로울 것이오.]

악불군은 내심 한이 맺혔다. 그러나 생각하기를, (만약 이 요녀가 뜻밖의 사태를 만나 죽기나 한다면 난......나는 정말로 큰일이구나. 심지어 이 요녀가 목숨은 붙어 있지만 상처를 받고 신음하고 있어서 단오절 전에 흑목애에 돌아가지 못한다면 내가 어디 가서 그녀를 찾는단 말인가? 사실은 나에게 해독약을 주고 싶지 않은거야.)

여기까지 생각하지 온몸이 벌벌 떨려왔다. 신공을 몸에 지니고 있지만 진정하기가 어려웠다. 영호충은 한숨을 쉬었다. 내심 영영의 출신이 마교이므로 일을 할 때 어느 정도의 사악한 기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번 행동은 자기를 위해서 그러했으니 그녀를 탓할 수가 없었다.
영영은 포대초를 향해서 말을 했다.

[포장로, 당신은 교주에게 돌아가서 오악파의 장문인인 악선생이 성심껏 우리교에 복종을 하기 위해 교주님의 신단(神丹)을 먹었으며 이제는 반역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아뢰주시오.]

조금 전까지 포대초는 영호충이 악불군을 풀어주려는 것을 보고는 자기가 교주 앞에 돌아가면 책망을 받을까 염려되어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나 악불군이 삼시뇌신단을 복용하는 것을 보고 기뻐서 즉시 흔쾌히 대답하였다.

[이미 모든 것을 아가씨께서 주도하여 비로소 이 일을 마칠 수가 있게 되었읍니다. 교주 어르신께서 틀림없이 매우 기뻐하실 것입니다. 교주께서는 성교(聖敎)를 중흥하시고 세파에 시달리는 창생을 구할 것입니다.]

영영은 말을 했다.

[악선생이 우리 교파에 귀순을 했으니 그의 명예에 훼손되는 일은 절대로 밖에서 말하지 마시오. 그가 신단을 복용했으니 한 마디도 새어 나가면 안 되오. 이 사람음 무림 중에 명망이 매우 높고 지략 또한 뛰어나며 무공이 대단하기 때문에 교주께서 틀림없이 그를 중하게 여길 것입니다.]

포대초는 대답하였다.

[녜, 아가씨의 분부를 기꺼이 따르겠읍니다.]

영호충은 악불군의 이런 낭패한 모습을 보고는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비록 그가 여러차례 자기를 죽이려 했고 악랄한 수법을 썼지만 과거 이십년 동안 그와 사모님이 길러주이서 지금까지 줄곧 그를 아버지처람 여겨왔었다.
갑자기 서로 반목이 생겨 원수지간이 되자 내심 말할 수 없는 괴로움을 느꼈다. 몇마디 위로의 말을 하려고 했으나 목구멍이 막혀 말할 수가 없었다.
영영은 말했다.

[포장로, 막장로, 두분은 흑목애로 돌아가서 나를 대신해서 아버님께 안부를 여쭤주시고 상아저씨에게도 안부를 대신 여쭤주세요.
얼마 후에......얼마 후에 영호공자의 상처가 나으면 우리는 바로 가서 아버님을 만나 뵙겠읍니다.]

만약 영영이 아니고 다른 여자였다면 포대초를 틀림없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공자께서는 빨리 회복하시고 아가씨와 흑목애에 오셔서 하루 빨리 국수를 먹게 해 주십시오.]
라고 했을 것이다. 젊은 남녀에게 이런 말은 얼마든지 할 수 있었으나 영영에게는 감히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을 향해서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몸을 낮추어 정색을 하며 대답만 하였고, 그저 황송하고 죄송한 그런 표정이었다. 오로지 자기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음을 영영이 알까봐 염려를 하였다. 영영은 사람들이 그녀와 영호충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고 비웃는 것을 제일 두려워하였다. 그래서 적잖은 강호의 인사들이 많은 피해를 입은 것이다. 그것은무림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일이었다.
그는 더 이상 지체하지 못하고 즉시 영영과 영호충에게 고별을 하고 여러 사람들 데리고 돌아갔다. 고별인사를 할 때 영호충에게 대한 예의는 영영보다도 더욱 깎듯하였다. 그는 강호에서 태어나 강호에서 늙었으므로 사람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영호충에게 깎듯하게 대할수록 영영이 더욱 기뻐한다는 것을, 영영은 악불군이 우뚝 서 있는 것을 보자 말을 했다.

[악선생님, 악선생님도 돌아가도 됩니다. 부인의 시체는 당신이 화산에 모시고 가서안장을 할 것입니까?]

악불군은 고개를 흔들며 말을 했다.

[두분께서 번거롭겠지만 이 작은 산 옆에 묻어 주시오.]
말을 하면서 두 사람을 쳐다보지도 않고 빠른 걸음으로 갔다. 순식간에 모습이 사라졌다.
저녁때가 되어서 영호충과 영영은 악 부인의 시체를 악영산의 무덤 옆에 안장하였다. 영호충은 또 한번 크게 울었다.
다음날 아침에 영영은 물어보았다.

[충 오라버니, 상처는 어떻습니까?]

영호충은 말을 했다.

[이번 상처는 그리 깊지 않으니 너무 신경 쓰지 마시오.]
영영은 말을 했다.

[그렇다면 얼마나 좋겠읍니까? 우리가 이곳에 있는 것을 모든 사람이 알고 있읍니다. 내 생각에는 이곳에서 며칠 쉬다가 장소를 바꾸는게 좋겠읍니다.]

영호충은 말을 했다.

[그것도 좋겠지요. 소사매는 어머니가 옆에 있으니 아마 무서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음속이 울적하여 한숨을 쉬며 말을 했다.

[내 사부님은 평생 정직한 분이셨는데 그 사악한 검법을 연마하신 후로 성격이 크게 바뀌었던 것입니다.]

영영은 고개를 흔들며 말을 했다.

[반드시 그렇다고는 볼 수가 없읍니다. 옛날 그분이 당신 소사매와 노덕약을 복주에 파견해서 작은 술집을 차리게한 것은 모두 벽사검보를 얻으려고 한 것이니, 그때부터 군자의 태도는 아니었읍니다.]

영호충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이 일에 대해서 마음속으로 생각을 해 보았지만 절대로 아무리 생각해도 좋게는 말할 수가 없었다.
영영은 또 말했다.

[이것은 사실 벽사검법이 아니라 응당 사문검법(邪門劍法)이라 불러야 옳을 것 같습니다. 이 검보가 강호게 퍼지면 그 피해가 무궁무진할 것입니다. 악불군이 아직도 세상에 살아 있고 임평지는 그것을 기억하고 있읍니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 그는 절대로 모든 것을 좌랭선과 노덕약에게 들려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간사하고 생각이 깊은 임평지놈이 그 어찌 기꺼이 검보를 다른 사람에게 내주겠읍니까?]

영호충은 말했다.

[좌랭선과 임평지는 모두 두 눈이 멀었소. 그러나 노덕약은 눈이 멀지 않았으니 약간은 이익을 볼 것이오. 총명하기 그지없는 사람들이 함께 있어 서로 암투를 하고 지지 않으려 할테니 그 결과가 주목이 되는구료. 두 사람이 한 사람을 대하고 있으니 임평지가 좀 손해를 볼 것 같습니다.]

영영은 말을 했다.

[당신은 정말 임평지를 보호하려고 하십니까?]

영호충은 악영선의 무덤을 바라보고 말을 했다.

[나는 실로 소사매에게 임평지는 보호한다는 대답을 하지 말아야만 했읍니다. 그놈은 개 돼지만도 못한 놈이어서 천갈래 만갈래 찢어 죽여야만 하는데 어찌 내가 그를 도와 줄 수가 있겠읍니까? 단지 나는 소사매에게 대답을 했읍니다. 만약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면 그녀는 틀림없이 지하에서 눈을 꼭 감지 못할 것입니다.]
영영은 말을 했다.

[그녀는 세상에 살아 있을 때 누가 정말 그녀에게 잘 해주는가를 몰랐읍니다. 죽은 뒤 혼령이라도 있다면 응당 알았을 것입니다. 그녀는 더 이상 당신보고 임평지를 보호하라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영호충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소사매는 임평지에게 줄곧 정을 쏟아부었소.
분명히 그가 자기를 죽이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그에게 어떤 불행이 닥치는 것을 바라고 있지 않았읍니다.]

영영은 내심 생각하였다.

(그말도 일리가 있다. 내가 만약 남자였다면 당신이 나를 어떻게 대해주든 간에 나는 온갖 마음을 다하여 당신이 잘 되기를 빌었을 테니까?)

영호충은 산계곡에서 십여일간 정양을 하자 상처가 많이 나았다. 그는 항산에 가서 장문의 자리를 의청에게 넘겨주면 그후로는 아무런 근심도 없이 영영과 천하를 돌아다니며 마땅한 장소를 택하여 은거를 하겠다고 말했다.
영영은 말했다.

[임평지의 일을 어떻게 하겠읍니까?]

영호충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했다.

[내게 있어 그것은 제일 골치 아픈 일이오. 그러니 될 수 있는대로 그 말을 하지 마시오. 내가 기회를 봐서 적당하게 처리하겠읍니다.
영영은 웃더니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두개의 무덤 앞에 절을 하고 그 자리를 떠나갔다.

영호충과 영영은 계곡을 나와 반나절을 걸어 한읍에 도착하고는 식당에 들어가 빵과 국수를 먹었다.
영호충은 젓가락으로 길다란 국수가락을 건져 올리더니 웃으면서 말을 했다.

[당신과 나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읍니다......]

영영은 갑자기 얼굴이 새빨개지면서 정색하였다.

[누가 당신과 결혼한다고 했읍니까?]

영호충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했다.

[어쨌든간에 우리는 결혼을 해야만 합니다. 당신이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당신의 다리를 붙잡고서라도 결혼할 것입니다.]
영영은 웃는둥 마는둥 하면서 말을 했다.

[계곡에서는 퍽 점잖으시더니 계곡을 나오자 또 점잖지 못한 말을 하시는군요.]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종신대사이니 그 이상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읍니까? 영영, 그날 나는 산계곡에서 갑자기 이런 생각을 했읍니다. 앞으로 당신과 결혼하게 된다면아들을 몇명이나 낳아야 할지 말입니다.]
영영은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눈쌀을 찌푸리며 말을 했다.

[당신이 만약 이런 말을 계속한다면 나는 당신과 함께 항산에 가지 않겠읍니다.]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좋소, 좋소. 나는 말하지 않으리다. 더 이상 말하지 않으리다.
그 산 계곡에는 많은 복숭아나무가 있길래 계곡이 마치 하나의 도곡(桃谷)이라고 생각되었소. 만약 아이들 여섯명이 그곳에서 놀고 있다면 소도곡육선(小桃谷六仙)이 되지 않겠소?]

영영은 앉더니 물어보았다.

[어디서 온 여섯명의 아이들입니까?]

말을 하자마다 즉시 영호충이 또 다시 장난을 치고 있음을 깨달았다. 눈을 한번 흘기고는 고개를 숙여 국수를 먹었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는 매우 달콤하였다.
영호충은 말을 하였다.

[당신이 나와 함께 항산에 가면 마음이 삐뚤어진 무리들은 당신과 내가 이미 부부가 된 것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그들이 생각도 없이 그런 말을 한다면 당신은 틀림없이 불쾌하게 여길 것입니다.]

이 말은 영영의 생각과 똑같았다. 그래서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지금 당신이 시골 농부의 옷을 입고 있으니, 다른 사람들은 쉽게 우리의 신분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영호충은 말을 했다.

[당신의 꽃과 같은 모습은 어떤 분장을 해도 다른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것입니다. 그들은 내심 `정말 멋진 시골 아가씨이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멍청하게 생기다만 놈과 함께 있는가. 정말 어여쁜 꽃 한송이가 소똥 위에 꽂혀 있구나' 라고 말을 하겠지요. 그리고 자세히 보면 이 어여쁜 꽃이 일월신교의 임소저라는 것을 알 것이고 소똥은 물론 임소저의 청춘을 앗아가 버린 영호충이라는 것을 알아버리겠지요.]

영영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귀하께서는 그리 겸손할 필요가 없읍니다.]

영호충은 말을 했다.

[내 생각에 항산에 가면 나는 먼저 보잘것 없는 사람으로 변장을 하여 마음놓고 살펴보겠읍니다. 만약 그들이 태평하고 무사하다면 내 스스로 정체를 나타내어 장문의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물려주고 그리고 나서 당신과 어떤 장소에서 다시 만나 함께 하산한다면 정말로 귀신도 모를 좋은일 아니겠소?]

영영은 그가 이렇게 말하는 소리를 듣고 자기 입장을 생각해 주는 것 같아 심히 기뻤다. 그래서 웃으면서 말을 했다.

[그거 참 좋겠군요. 그러나 당신이 변장을 해서 항산에 가 그 사태를 만나야 한다면 하는 수 없이 스스로 머리를 빡빡 깎고 사태로 분장해야만 다른 사람이 의심하지 않겠지요. 충 오라버니, 자 이리 오세요. 내가 당신을 비구니로 만들어 드리겠읍니다. 그렇게 되면 참 멋지겠군요.]

영호충은 연신 손을 내저으며 말을 했다.

[안 됩니다. 그건 안 됩니다. 비구니를 보면 반드시 돈을 잃는다는 속담이 있지 않습니까? 내가 비구니로 분장을 한다면 앞으로 크게 재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건 절대로 있을 수 없읍니다.]
영영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대장부가 하면 하지 왜 그렇게 가리는 것이 많습니까? 나는 반드시 당신의 머리를 빡빡 깎아야 되겠읍니다.]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비구니로 분장할 필요까진 없읍니다. 그러나 견성봉(見性峯)에 가려면 여자로 분장해야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읍니다. 단지 내가 말을 하면 남자인 것이 금방 탄로나겠지만 이런 때를 대비해 제게 계략이 하나 있읍니다. 당신은 항산 자요구 취병산에 있는 현공사(懸空寺)의 그 사람이 기억납니까?]

영영은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손뼉을 치며 말했다.

[그거 참 좋은 생각입니다. 좋은 방법이고요. 현공사에는 귀먹고 말 못하는 노복이 하나 있었지요. 현공사에서 우리가 하늘이 뒤집힐 정도로 싸웠지만 그녀는 조금도 듣지 못했읍니다. 또한 당신이 뭘 물어보면 그녀는 멍청하게 당신을 쳐다볼 뿐이었지요. 당신은 그 사람으로 분장을 하겠다는 말씀입니까?]

영호충은 말을 했다.

[그렇소.]

영영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좋습니다. 지금 가서 옷을 사고 당신은 그 모습으로 변장을 하세요.]

영영은 두냥의 은자를 써서 시골부인에게 긴 머리카락을 사 성심껏 빗질을 하고는 영호충의 머리에 달아 주었다. 그리고 그로하여금 농부 옷을 입게 하니 틀림없는 여자였다. 얼굴에는 노란분을 칠하고 일곱여덟게의 흑점을 찍었으며 좌측 볼에는 고약을 발랐다.
영호충은 거울을 보니 자기 자신도 거울에 비친 자기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
영영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모습은 같은데 표정은 아직 닮지 않았읍니다. 표정은 더 얼이 빠지고 멍청해야만 하겠군요.]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멍청하고 얼빠진 표정을 짓는 것은 제일 쉬운 일입니다. 거짓으로 꾸밀 필요도 없지요. 멍청한 것은 영호충의 본래의 모습이 아닙니까?]

영영은 말을 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큰 소리로 벌을 준다고 해도 절대로 자신을 노출시켜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가는 길에 영호충은 귀가 먹고 말을 못하는 그 노복으로 변장하고 먼저 연습을 하였다.
두 사람은 객주집에 투숙치 않고 낡은 사당이나 집에서 밤을지샜다.
영영은 때때로 그의 몸 뒤에서 갑자기 큰 소리를 질렀으나 영호충은 못들은 척하였다. 하루가 되지 않아 항산의 산허리에 당도하여 영영과 삼일 후에 현공사 옆에서 만나기로 하고 서로 헤어졌다. 영호충은 혼자 견성봉을 향해서 갔고 영영은 부근에 산경치를 구경하였다.
견성봉 정상에 당도하니 이미 저녁무렵이었다. 영호충은 깊이 생각을 하였다.

(내가 곧바로 암자에 들어간다면 의청, 정악, 의림 사제들은 영리하고 꼼꼼한 사람들이니 금방 나의 마각이 드러날 것이다. 아무래도 몰래 훔쳐 봐야겠다.)

즉시 황폐한 동굴을 찾아 잠을 잤다. 눈을 떠보니 달은 이미 중천에 걸려 있었다. 그때서야 비로소 견성봉의 주암인 무색암(無色庵)에 당도하였다. 주암에 가까이 다가가니 쨍그랑 쨍그랑 장검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영호충은 내심 동하였다.
(어디에 적이 왔단 말인가?)

몸에 숨겨두었던 단검을 빼어 들고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서 달려가 보았다. 병기가 부딪치는 소리는 무색암 옆 십여장 떨어진 기와집에서 나왔다. 그 기와집의 창문에서는 불빛이 새어 나왔다. 영호충은 달려가 보니 병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더욱 자세하게 들려왔다. 문틈 사이로 눈을 들이대고 보고는 마음을 놓았다. 알고보니, 의화, 의림 두 사람이 검을 연마하고 있었던 것이다. 의청 정악 두 사람은 옆에 서서 구경을 하고 있었다.
의화, 의림 두 사람이 사용하는 검법은 바로 자기가 옛날에 전수해준 화산 사과애 뒷동굴 석벽에서 배워온 항산의 검법이었다. 두 사람의 검법은 퍽이나 숙달되어 있었다. 두 사람은 정신없이 검을 겨루고 있었다. 의화의 검이 점점 빨라졌다. 의림은 넋이 나가 가슴 앞에 의화의 검이 똑바로 내리찍히자 검을 들어 막으려고 했으나 이미 때는 늦어 악 하고 가볍게 소리를 질렀다. 의화의 장검의 검끝이 이미 그녀의 가슴을 겨누고 있었다.
웃으면서 말했다.

[사매 너는 또 졌구나.]

의림은 심히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며 말을 했다.

[저는 아무리 연습을 해도 진보가 없읍니다.]

의화는 말을 했다.

[지난번과 비교해 볼 때 많이 진보하였다. 우리 다시 한번 해보자.]

장검을 허공에 갖다대고 일초식의 자세를 취하였다.
의청은 말을 했다.

[소사매는 피곤한 모양이구나. 바로 정사매와 가서 자고 내일 다시 연마해도 늦지는 않다.]

의림은 말을 했다.

[그렇게 하겠읍니다.]

검을 거두어 칼집에 집어넣고 의화, 의청을 향해서 인사를 하였다. 의림은 정악의 손을 잡고 문을 밀쳐 밖으로 나갔다. 그녀가 몸을 돌릴 때 영호충은 그녀의 안색이 몹시 초췌함을 보았다.
그래서 내심 생각하기를, (소사매는 마음이 그리 즐거운 것 같지는 않구나.)

의화는 문을 닫더니 의청과 함께 서로를 쳐다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의림과 정악의 발걸음소리가 멀리 사라지기를 기다렸다가 말했다.

[소사매는 마음을 안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마음이 엉뚱한 곳으로 가 있읍니다. 그것은 우리 수도를 하는 사람이 제일 금기로 삼아야 하는데 어떻게 그녀를 구원해서 마음의 안정을 찾도록 해야 할지 모르겠읍니다.]

의청은 말을 했다.

[구원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자기 스스로가 깨달아야지요.]

의화는 말을 했다.

[나는 그녀가 어째서 마음을 안정시킬 수 없는가를 알고 있읍니다. 그녀는 내심 언제나 그런 생각을......]

의청은 손을 흔들며 말을 했다.

[이곳은 수양을 쌓는 곳이니 사저께서는 그런 말을 함부로 하지 마세요. 만약 급히 사부님의 원수를 갚지 않는다면 그녀로 하여금 천천히 깨달케 하여도 괜찮을텐데.]

의화는 말했다.

[사부님께서는 항상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세상의 모든 사물에는 인연이 있어 절대로 억지로 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마음을 거두는 것은 순리를 따라서 해야 된다. 급히 서둘다가는 오히려 나쁜 결과가 돌아온다.'고요. 내가 보기에 의림 소사매는 겉으로는 매우 온화하나 마음 속으로는 매우 정열적인 사람입니다. 그래서 수도를 쌓는다는 것이 그녀에게는 사실 어울리지 않는 듯합니다.]
의청은 한숨을 쉬더니 말을 했다.

[그것에 대해 나도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단지......단지 우리파는 불문의 사람이 장문인을 이어받아야 합니다. 영호사형께서 말씀하시지 않았읍니까? 그가 장문을 맡고 있는 것은 단지 일시적인 생각에 의해서라고요. 제일 중요한 것은 악불군 그 못된 자가 우리 사부와 사숙을 죽였다는 사실입니다......]
영호충은 여기까지 듣고 깜짝 놀랐다.

(어째서 나의 사부가 그들의 사부와 사숙을 죽였다고 하는가?)
의청의 계속되는 말이 들려 왔다.

[이 원한을 갚지 않는다면 어찌 우리들이 잠을 자고 편안히 지낼 수가 있겠읍니까?]

의화는 말했다.

[나는 마음이 급합니다. 좋습니다. 내일 나는 그녀에게 더욱 정진해서 검을 연마하도록 독촉을 하겠읍니다.]

의청은 말했다.

[속담에 이르기를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고 하였읍니다.
서두른다고 모든 일이 금방 되는 것이 아니니 너무 시키지는 마세요. 근래에 소사매는 갈수록 정신이 퇴색해지는 것 같습니다.]
의화는 말을 했다.

[그렇소.]

그들은 병기를 거두고 불을 끄더니 방에 들어가서 취침하였다.
영호충은 조용히 창밖에 서서 생각에 잠겼다.

(그녀들은 어째서 나의 사부가 그녀들의 사부와 사숙을 죽였다고 말했는가? 어째서 사부의 복수를 위해서 또 항산 문호의 장문인을 위해서 어린 소사매를 밤낮으로 재촉하여 검법을 연마하게 해야만 할까?)

한참동안 생각을 했으나 그 이유를 깨닫지 못했다. 천천히 자리를 뜨면서 내심 생각하기를, (앞으로 의화, 의청 두 사저에게 물어보면 되겠지.)

갑자기 땅바닥에 자기의 그림자가 천천히 움직이는 것을 보고 고개를 들어 달을 쳐다보았다. 달은 비스듬하게 나무 끝에 걸려 있었다. 갑자기 어떤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자기도 모르게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하였다.

(내가 이미 생각을 했어야만 했다. 그녀들은 그 사실을 벌써 눈치채고 있었는데 어째서 나는 지금까지 생각을 못했을까?)
몸을 잽싸게 벽에 기대어 항산파 사람들이 자기의 그림자를 보지않나 살폈다. 몸을 숨기고 나서 비로소 마음을 진정하여 그날소림사에서 정한, 정일 두분의 사태가 죽음을 당할 때의 상황을 회상 하였다.

그때 정일사태는 이미 숨을 거두었고 정한사태는 나에게 항산파 문호를 맡으라고 분부를 하시고는 곧바로 돌아가셨지. 결코 그녀들은 자기들을 죽인 자가 누구라는 것을 말씀하지 않으셨지. 내가 두분의 시신을 검사했을 때 두분 사태의 몸에는 아무런 상처가 없었고 내상을 받은 흔적도 없었으며 더우기 중독에 의해서 살해된 것같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어째서 죽음에 이르렀는가 심히 이상하게 생각을 하고 있었지. 단지 상처를 자세히 살피기 위해서 그들의 옷을 벗기기가 좀 뭐했었지. 나중에 소림사에서 나와 눈덮인 야산의 동굴 속에서 영영이 말하기를 소림사에서 두분 사태의 옷을 벗기고 상처를 살펴보았는데 두 사람의 가슴에는 바늘만큼 작은 빨간 점이 나 있었으며, 틀림없이 그분들은 바늘에 의해서 죽음을 당했다고 말을 하였었다.
당시 나는 깜짝 놀라서 말했었다.

[독침(毒針)? 무림에서 어느 누가 독침을 사용할 줄 알까?]
영영은 말을 했다.

[아버지와 상아저씨는 견문이 넓고 아는 것이 많지만 그들도 모르고 있읍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말씀하시기를 이 침은 독침이 아니고 하나의 병기인데 급소에 들어가면 생명에 지장을 줄 수도 있다고 하였읍니다. 단지 정한사태의 가슴을 뚫고 들어온 그 바늘은 약간 방향이 삐뚫어져 있었읍니다.]

내가 말하였다.

[맞소, 내가 정한사태를 보았을 때 그녀는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았었읍니다. 바늘이 가슴에 꽂혔으니 암살된 것이 아니고 정면에서 서로 부딪친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 두분의 사태를 죽인 자는 틀림없이 무공이 높은 고수일 것입니다.]

영영은 말을 하였다.

[나의 아버님도 그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이런 단서가 있는 이상 범인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고요.]

당시 나는 손바닥으로 동굴의 벽을 힘껏 치며 큰 소리로 말을 하였다.

[영영, 우리 두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 반드시 두분 사태의 원수를 갚아야만 합니다.]

영영은 말을 하였다.

[그렇습니다.]


영호충은 두 손을 벽에 기댄 채 계속해서 몸을 떨며 생각했다.

(작은 바늘을 사용해서 고수인 두분의 사태를 죽인 자는 규화보전(葵花寶典)을 연마한 자가 아니면 바로 벽사검법을 연마한 자이다. 동방불패는 줄곧 흑목애의 규방에서 수를 놓고 있었기 때문에 소림사에 가서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을 것이고, 그의 무공으로 보아 정한사태를 일격에 쓰러뜨리지 못하는 실수를 범할 리 없다. 좌랭선이 연마한 벽사검법은 가짜이다. 아마 그때는 임사제도 검보를 손에 넣은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검법을 모두 연마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아직 검보를 얻기 전일지도 모르지......)
그날 눈 쌓인 벌판에서 악영산과 임평지를 만났을 때의 정경을 회상하고는 내심 생각하기를, (그렇다. 맞다. 그때 임평지의 말소리를 변성이 되지 않았고 이미 그가 검보를 얻었든 얻지 못했든 간에 아직 벽사검법을 연마하기 전이다.)

생각이 여가까지 이르자 이마에 식은 땀이 줄줄 흘렀다.
그때 정면에서 격돌하여 한개의 가늘고 작은 바늘로 항산파의 두 명의 고수를 해쳤으나 무공이 정한사태보다 그리 강하지 못해서 단숨에 그녀의 생명을 빼앗지 못할 사람은 오로지 악불군 한 사람뿐이었다. 그리고 악불군은 계략을 꾸며 오악파의 장문인이 되려고 노덕약을 그의 문하에서 십여년 동안 머물도록 하여 비밀을 폭로하지 못하게 하고 결국 그로 하여금 가짜 검보를 훔쳐가게 해서 가볍게 좌랭선이 두 눈을 찔러 이겼던 것이다. 정한, 정일 두 사태는 오파의 합병을 몹시 반대했는데 악불군이 기회를 틈타서 그들을 제거하여 방해자를 없애 버린다는 것은 충분히 있을수 있는 일이었다. 어째서 정한사태는 그녀를 죽인 자가 누구인가를 폭로하지 않았단 말인가? 물론 그것은 악불군이 그의 사부이기 때문이리라. 만약 범인이 좌랭선, 또는 동방불패였다면 정한사태가 어찌 말하지 않았겠는가?
영호충은 또 그 당시 산 동굴 속에서 영영과 나누었던 말을 곰곰히 생각하였다. 그가 소림사에서 악불군에게 걷어채였을 때 그는 상처를 받지 않았는데 악불군의 다리뼈가 오히려 분질러져서 영영은 크게 이상하게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녀는 말하기를 그녀의 아버지마저도 한참 생각해봐도 그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하였고 또 영호충은 적지 않게 다른 사람의 내공을 흡수하여 스스로 몸을 보호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스스로 공력을 운행시켜야만이 비로소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다고 하였다. 또한그가 연마한 내공으로는 공력을 운행시키지 않고 스스로 상대방이 공격해 오는 힘을 반격할 수 없다고 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악불군은 스스로 그렇게 꾸민 것이다. 고의로 자기의 나약함을 좌랭선이 보도록 했던 것이다. 다리가 거짓으로 부러진 체하지 않았다면, 내공을 운행시켜 스스로 발을 절단시켜 좌랭선으로 하여금 자신의 무공이 별볼일 없으니 그리 걱정하지 말고 오파 합병의 계획이나 잘 추진하도록 했던 것이다. 좌랭선은 무수한 땀과 노력으로 마침내 오파의 합병은 이루었지만 들러리에 불과하였고, 악불군이 단숨에 오악 장문의 자리를 빼앗아 갔던 것이다.
이런 이치는 너무나 뻔한 것이었다. 단지 그는 누가 뭐라 해도 사부를 의심할 수는 없었으며 설사 마음속으로 어느정도 눈치를 채고 있었다고 해도 그런 생각이 떠오르면 스스로 회피하고 감히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에 이르러서 의화, 의청의 말을 듣고 비로소 그런 생각이 피할 수 없는 사실임을 알았던 것이다. 자기가 평생토록 존경하고 사모했던 사부가 이같은 인물이라니 인생의 모든 것이 그 의미를 상실했다. 의기소침해지고 의욕을 잃어 더이상 항산 별원에 가서 살펴보고 싶지 않아서 한적한 산허리에 드러누워 잠을 청했다.
다음날 이른 새벽 영호충이 통원곡(通元谷)에 이르렀을 때 날은 이미 밝아왔다. 그는 작은 개울가에 가서 수면에 자기의 변장한 모습을 살펴보았다. 또한 자세히 옷차림과 신발을 살펴보고는 비로소 별원을 향해 걸어갔다. 그는 정문을 돌아 옆문으로 들어가려고 생각을 하였다. 문앞에 들어서자 곧바로 떠들썩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뜰에는 많은 사람들이 큰 소리로 떠들고 있었다.

[정말로 이상하구나! 제미랄, 누가 이런 짓을 했을까?] [언제 이런 짓을 했을까? 어떻게 귀신도 모르게 해치웠지! 정말로 깨끗하구나.]
[이들의 무공은 매우 높다! 어째서 다른 사람들은 그 낌새도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영호충은 곧 이상한 일이 발생했음을 알았다. 그래서 옆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뜰과 복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모두 한그루의 큰 나무 꼭대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영호충이 머리를 들어보니 정말 괴이한 사건이 벌어져 자기도 어리둥절 하였다. 나무의 높은 곳에 여덟 사람이 매달려 있는데, 그들은 구송년, 장부인, 서보화상, 옥령도인(仇松年, 張夫人, 西寶和尙, 玉靈道人)등 일곱 사람과 활불유수(滑不留手) 유신(遊迅)이었다. 여덟 사람음 모두가 혈도가 찍히고 사지가 꽁꽁 묶인 채 나뭇가지에 매달려 바람에 흔들거릴 뿐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심히 민망하고 죽을 상이었다. 두마리의 시커먼 뱀이 여덟사람의 몸위로 꾸불꾸불 기어 다니고 있는데 그것은 쌍사악걸 엄삼성(雙蛇惡乞 嚴三星)이 몸에 지니고 다니는 애완 동물이었다.
이 두마리의 뱀이 엄삼성 몸에 감겨져 있다면 그리 신기한 일이 아니었으나 다른 일곱 사람의 몸에까지 기어올라가 있었다. 그들은 모두들 화가 나고 부끄럽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약간은 무섭고 징그럽다는 표정이었다. 여러 사람들 중에서 한 사람이 뛰어올랐다.
바로 야묘자 계무시였다. 그의 손에는 비수가 들려져 있었고 나뭇가지에 올라가 동백쌍기(桐柏雙奇)의 몸에 묶여져 있던 끈을 끊었다. 이 두 사람이 공중에서 떨어지자 밑에 있던 키가 작고 뚱뚱한 노두자(老頭子)가 손을 내밀어 받아서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순식간에 계무시는 여덟사람을 모두 구해서 각자 막혀져 있던 혈도를 풀어주었다.
구송년 등은 몸이 자유롭게 되자 쌍소리를 하며 욕을 해댔다. 그들은 여러 사람들이 모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기들을 쳐다보면서 이들 중 어떤 자는 웃고 있고 어떤 자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어떤 자가 말하였다.

[기(己)!]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음(陰)!]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소(小)!]

어떤 자는 말하였다.

[명(命)!]

이라고 한사람 한사람 말들을 하였다. 장부인이 고개를 옆으로 돌려 보니 구송년 등 일곱 사람의 이마에는 모두 빨간 글씨가 하나씩 써져 있었다. 어떤 자는 `기'자가 써져 있었고, 어떤 자의 이마에는 `음'자가 씌여 있었다. 자기 이마에도 틀림없이 글자가 씌여져 있다고 생각을 하고 즉시 손을 내밀어 문질렀다.
조천추는 이미 그 글자들을 모두 잃고는 여덟 사람의 이마에 써져 있는 여덟 글자를 한군데 모아 놓더니 말을 하였다.

[음모기패 소심구명(陰謀己敗 小心狗名)]

나머지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는 서로 다투어 말을 했다.

[음모가 이미 탄로가 났으니 개 같은 생명을 조심하여라.]
서보화상은 큰 소리로 일갈했다.

[무슨음모가 탄로 났단 말이냐! 누구의 개 같은 생명을 조심하라는 소리냐!]

옥령도인은 급히 손을 흔들어 막고는 손바닥에 침을 퇘퇘 뱉더니 좌측손을 내밀어 머리팍의 글자를 문질렀다.
조천추는 말을 했다.

[유형(遊兄), 여덟분이 어떻게 이런 꼴을 당하게 됐는지 말씀해 주시겠읍니까?]

유씨는 웃더니 말했다.

[말하자니 창피하군요. 저희들은 어젯밤 곤히 잠들고 있었는데 무슨 영문인지 혈도를 찍히어 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게 되었읍니다. 우리를 이 꼴로 만든 자는 오경계명환혼향(五更鷄鳴還魂香)과 같은 정신을 잃는 약을 쓴 것 같습니다. 우리같은 무공이 별볼일 없는 자들이 당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렇지 않다면 옥령도장, 장부인과 같은 지혜롭고 무예를 겸비한 인물들이 어떻게 이와 같은 꼴을 당하겠읍니까?]

장부인은 흥하고 콧방귀를 뀌더니 말을 했다.

[그 말은 맞기는 맞는 말이오.]

다른 사람들과 더이상 말하고 싶지 않아서 급히 안으로 들어가 거울을 보고 얼굴을 씻었다. 옥령도인 등도 따라 들어갔다.
군웅들은 제각기 의견이 분분하였고 모두들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모두들 말하였다.

[유신의 말은 믿을 수가 없읍니다.]

어떤 자는 말했다.

[우리 수십 명은 안에서 모두 함께 자고 있었읍니다. 정신을 잃는 약을 사용했다면, 응당 수십명이 함께 정신을 잃어야 옳을 일인데 어째서 그들 몇명만 정신을 잃을 수가 있읍니까?]

여러 사람들은 `음모기패'라는 말 속의 음모는 무엇을 가리키는지 또한 그 말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추측하기 시작했다.
어떤 자는 말을 하였다.

[이 여덟 사람을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은 고수는 누구일까?]
어떤 사람이 웃으면서 말을 했다.

[다행히 도곡육괴들이 오늘 이곳에 도착하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한참 기뻐서 떠들어댔겠구만.]

또 다른 한 사람이 말을 했다.

[당신은 어째서 도곡육선들이 한 짓이 아니라고 단정짓고 있읍니까? 그 여섯 형제는 매우 이상한 사람들입니다. 아마 그들의 장난일께 뻔합니다.]

조천추는 고개를 흔들며 말을 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절대 그들의 짓은 아닙니다.]

맨 먼저 말을 한 사람이 말했다.

[조형(祖兄)은 어떻게 그것을 아시오?]

조천추는웃으면서 말을 했다.

[도곡육선들은 무공은 높지만 아는 것은 별로 없읍니다. 그 음모(陰謀)라는 두 글자를 그들이 어떻게 썼겠읍니까?]

군웅들은 껄껄 웃으며 그 말이 퍽이나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모든 사람들은 이 일에 대해서 흥미를 가지고 담론을 하였으며 영호충은 쳐다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영호충은 내심 생각을 하였다.

[이 여덟 사람이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을까? 그건 아마 우리 항산파에게 불리한 일이겠지.]

그날 오후 갑자기 어떤 자가 달려오며 외쳤다.

[이상한 일입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모두들 나와 보시오.]
군웅들은 뛰쳐나갔다. 영호충이 천천히 그들 뒤를 따라 나가보니 별원의 우측에 수십명이 에워싸고 있는 것이 보였다. 군웅들은 급히 달려가 보았다. 영호충은 가까이 다가가보니 여러 사람들이 한마디씩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십여명이 산허리에 앉아서 얼굴을 봉우리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틀림없이 혈도가 찍히어 꼼짝달싹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산 절벽에는 황토흙으로 `음모기패 소심구명'이라는 여덟개의 큰 글씨가 씌여져 있었다. 즉시 어떤자가 그 열몇 사람의 몸을 돌렸다. 그속에는 사람의 고기를 즐겨 먹는 막북쌍웅(漠北雙熊)도 끼어 있었다.
계무시는 앞으로 걸어나가 막북쌍웅의 허리를 몇번 툭툭 쳐서 그가 말할 수 있도록 아혈(啞穴)의 혈도를 풀어주었다. 그러나 나머지 혈도는 풀어주지 않았다. 그것은 그들을 꼼짝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래 놓고 말하였다.

[내게 한가지 의문점이 있는데 좀 가르쳐 주시겠읍니까? 두형께서는 도대체 어떤 음모에 빠졌읍니까? 우리 모두 알고 싶습니다.]
군웅들은 모두 말을 하였다.

[그렇소, 그렇소, 무슨 음모가 있소? 궁금합니다. 빨리 말씀 좀 해주시오.]

흑웅(黑熊)은 욕을 하였다.

[제미랄! 조상 대대로 굴려 먹은 놈들! 무슨 음모가 있다는 말이냐? 무슨 얼어붙은 음모가 있단 말이냐?]

조천추는 말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누구에게 혈도를 찍혀 쓰러진 것입니까? 그것까지는 말해 줄 수가 있겠지요?]

백웅(白熊)은 말하였다.

[무슨 비밀이 있는가는 당신들이 알 필요가 없소. 단지 이 늙은이가 점잖게 산보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허리가 마비가 되면서 이 빌어먹을 함정에 걸려들었단 말이오. 영웅호걸이라면 정정당당하게 대결을 할 것이지 뒤에서 습격을 하다니 그 무슨 돼먹지 못한 사람이오?]

조천추는 말했다.

[두분께서 말하고 싶지 않다면 말을 마시오. 이 일은 이미 모든 사람에게 노출되었으니 아마 이루지는 못할 것입니다. 단지 모두 조심하시고 방비를 소홀히 하지 마시오.]

어떤 사람이 큰 소리로 말을 했다.

[조형, 그들은 토론하고 싶지 않은 모양인데, 그들로 하여금 산허리에서 사흘낮 사흘밤을 아무것도 먹지 못하게 합시다.]
또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그렇소. 묶은 자가 있으면 풀어주는 자도 있겠지요. 그들을 놓아 준다면 그자는 당신을 탓할 것이오. 또한 당신도 쓰러뜨려 나무 꼭대기에 매달 것이니 조심하시오.]

계무시는 말했다.

[그 말이 맞습니다. 여러 형씨들, 제가 수수방관하는 것이 아님을 아시겠지요. 저 또한 그 일이 약간 걱정이 됩니다.]
흑웅, 백웅은 서로 마주 쳐다보고는 욕을 해댔다. 그러나 욕하는 정도는 그리 심하지 않았다. 자기들은 꼼짝을 할 수가 없는데 공연히 계무시에게 욕을 해대서 상대방의화를 돋구어 일격을 가하게 한다면 자기들은 꼼짝도 못하고 당할 판이었기 때문이다.
계무시는 웃으면서 공수를 하더니 말을 했다.

[자 여러분들 돌아갑시다.]

몸을 돌려 가버렸다. 그 나머지 사람들도 몇마디씩 하더니 천천히 모두들 다 흩어져 버렸다.
영호충은 천천히 돌아와 뜰 밖에 이르자, 또 안에서 어떤 사람들이 떠들고 히히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보니 그 큰 나무에 또 두 사람이 매달려 있었다. 하나는 불가불계 전백광(不可不戒田伯光)이었으며 또 다른 한 사람은 바로 불계화상(不戒和尙)이었다.
영호충은 심히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불계대사는 의림소사매의 아버지이고 전백광은 소사매의 제자이니, 이 두 사람은 누가 뭐라 해도 항산파를 괴롭힐 사람이 아니다. 항산파가 어려운 일을 당한다면 오히려 그들은 있는 힘을 다하여 도와 주려고 할 것 이 분명한데 어떻게 나무 위에 매달려 있단 말인가?)

그동안 벌어졌던 일에 대해서 마음 속에 무엇인가 떠오르는 것이 있었지만 갑자기 이 광경을 보자 모든 것이 허물어졌다.
머릿속에 무엇인가 섬뜩하게 스쳐 지나갔다.

(불계대사는 천진난만하고 사람들과 원한관계가 없는데 어떻게 해서 나무에 매달리게 됐는가? 틀림없이 어떤 자가 그를 골탕먹이려고 한 짓이다. 불계대사를 잡으려고 한다면 한 사람의 힘으로 할 수가 없다. 아마 이 짓을 한 자들은 도곡육선일 것이다.)
그러나 앞전에 조천추가 도곡육선은 음모라는 글자를 쓸 줄 모른다고 한 말을 상기하고는 그 말을 다시한번 음미해 보았다. 그는 마음속 깊이 의문을 삼킨 채 천천히 뜰 안으로 걸어들어가 보았다. 뜰 안으로 들어가보니 불계대사와 전백광의 몸에는 노란천이 매달려 있었다. 그 위에는 글자가 써져 있었는데 불계화상의 몸에 달려 있는 천 조각에는, [이 자는 천하에서 으뜸가는 박정하고 무례한 사람이고, 또한 호색가이다.]

라고 써져 있으며, 전백광의 몸에 달려 있던 천조각에는, [이 자는 천하에서 으뜸 가는 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이고 일을 할 때 성심성의껏 하지 않는 사람이다.]

라고 써져 있었다.
영호충은 이 글씨들을 보고 생각했다.

(이 두 쪽의 쪽지는 잘못 걸려져 있는 것 같다. 불계화상이 어째서 호색가라는 말인가? 호색가라는 말은 응당 전백광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그리고 멋대로 행동한다는 말은 불계화상에게 붙어져야 어울리는 말이다. 불계화상은 중이 된 뒤에도 살생을 하고 생선이나 고기를 먹고 있었으며, 비구니를 아내로 삼았으니 그것이야말로 멋대로 하는 행동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나 일을 할 때 힘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말은 또 어떤 연유에서일까?)

그러나 매달려 있는 두개의 쪽지가 두사람의 목덜미에 잘 걸려져 있었고 또한 급해서 잘못 걸려져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군웅들은 손가락질을 하면서 자기 나름대로 평가를 하였다.
모두들 말하였다.

[천하에서 으뜸가는 호색가는 전백광이다. 어찌 이 대화상이 그를 능가할 수가 있느냐.]

계무시 조천추 두 사람은 낮은 소리로 상의를 하였다. 모두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으나 불계화상은 영호충과 교분이 상당히 두텁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두사람을 구해놓고 다시 생각을 하기로 하였다.
급히 계무시는 몸을 날려 나무에 오르더니 두사람의 손과 발에 꽁꽁 묶여져 있는 끈을 끊고는 두 사람의 혈도를 풀어주었다. 불계와 전백광은 모두 고개를 푹 숙이며 침울한 표정을 하였다. 구송년, 막북쌍웅 등이 욕을 해대던 상황과는 완전히 달랐다.
계무시는 낮은 소리로 물어보았다.

[대사께서 어찌 이런 변고를 당하셨읍니까?]

불계화상은 고개를 흔들며 천 조각을 천천히 풀고는 그 천조각에 씌여져 있는 글자를 한참 들여다보더니 갑자기 발을 동동 구르며 울기 시작하였다. 이런 변고는 정말로 뜻밖이었다. 여러 사람들은 말소리를 멈추고 멍청하게 그의 행동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두 주먹으로 자기 가슴을 치며 매우 상심한 것 같았다.
전백광은 말을 하였다.

[태사부(太師父)님, 그렇게 괴로와 하실 필요는 없읍니다. 우리가 실수를 하여 이렇게 되었으니 그놈을 잡아다가 몸을 천갈래 만갈래......]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데 불계화상은 일장을 가하였다. 불계화상이 일장을 가하자 그는 똑바로 한장정도 나가 떨어지더니 몸을 기우뚱거리며 하마터면 꼬꾸라질 뻔하였다. 한쪽 뺨이 금새 퉁퉁 부어올랐다.
불계화상이 욕을 하였다.

[이 못된 놈아! 우리들이 이곳에 매달리게 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야. 네놈은......네놈은 어찌 감히 그 사람을 죽이겠다고 하느냐?]

전백광은 영문을 몰랐다. 그러나 대사부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는 자기들을 이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사람은 너무나 큰 인물이라 태사부조차도 감히 그를 어쩌지 못한다는 것으로 알고는`녜녜'라고 대답만 할 뿐이었다. 불계화상은 한참 멍청하게 있더니 또 다시 가슴을 치며 울기 시작하였다. 갑자기 일장을 가해 전백광을 향해서 내리쳤다. 전백광은 몸이 매우 빠르기 때문에 살짝 피하였다.
그리고 외쳤다.

[태사부님!]

전백광이 불계화상의 일격을 피하자 그는 더이상 쫓아서 때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바로 일장을 돌려 뜰에 있는 의자위를 내리쳤다. 의자는 산산조각이 났다.
군웅들은 모두 깜짝 놀라 그 누구도 한마디 말조차 감히 하려고 들지 않았다. 만약 그가 화가 나서 자기를 향해 화풀이를 한다면 설사 머리가 열개라고 산산조각이 날 것이 분명했던 것이다. 조천추, 노두자, 계무시 세사람은 서로 얼굴만 쳐다보며 어리둥절해 했다.
전백광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을 보고 말을 했다.

[여러분께서 우리 태사부님을좀 보살펴 주세요. 내가 가서 나의 사부님을 모셔 오겠읍니다.]

영호충은 깊이 생각을 하였다.

(비록 분장을 했지만 의림소사매는 영리하고 세심하기 때문에 분명히 내 정체를 알아차릴 것이다.)

그 옛날에 군인의 행세를 한 적도 있고 시골 농부의 행새를 한적이 있었으나 그때는 모두 남자의 차림새였다. 이번에는 여자로 분장을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어색함이 드러나 있었고 마음속으로 정체가 드러날까봐 염려되어, 자기 스스로도 이번 변장에는 자신이 없었다. 그는 즉시 뒤뜰 나무를 쌓아두는 창고에 숨어들고는 내심 생각을 하였다.

(막북쌍웅 등 일행은 아직도 혈도가 찍히어 꼼짝도 못하고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니 계무시, 조천추 등은 저녁에 그들이 무슨 말을 주고 받는지를 살피러 갈 것이다. 나도 오늘밤에 가서 그자들이 무슨 말을 주고 받는가를 엿들어야겠다. 지금은 잠이나 푹 자두자.)
귓속에는 불계화상의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렸으므로 매우 이상하다고 생각했으나 재미는 있었다. 이러는 사이에 자기도 모르게 잠속으로 푹 빠져들어 갔다.
눈을 떠보니 날이 저물었다. 주방에 가서 찬밥을 찾아 배를 채웠다. 또 한참 기다리고 나서 사방이 조용해지자 뒷산으로 다가가 천천히 막북쌍운 등이 앉아 있는 곳으로 갔다. 멀리 수풀 속에 꿇어 앉아 귀를 세우고 그들의 말을 경청하였다. 얼마 안 있자, 호흡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적게 잡아도 이십여 명이 사방 잡목속에 흩어져 있는 것 같았다.
영호충은 암암리에 웃었다.

(계무시 등도 이곳에 와서 엿들을 생각을 했구나. 정말로 영리한 사람들이야)

또 생각하기를, (계무시는 필경 똑똑한 사람이다. 그는 오로지 막북쌍웅만 말을 하도록 아혈을 풀어주고 다른 사람들은 아혈을 풀어주지 않았구나. 그렇지 않았다면 막북쌍웅이 입을 열어 말을 할라치면 같은 패거리 중에서 똑똑한 자가 말을 하지 못하도록 제지하였을 것이다.)

백웅이 계속해서 욕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미랄! 이 산에는 모기가 왜 이렇게 많냐? 정말 이 늙은이의 피를 다 빨아 먹어야 속이 다 시원한 모양이군. 제미랄, 이 못된 놈의 모기 같으니라구.]

흑웅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모기는 자네만 물 뿐 나는 물지 않는데 무슨연유인지 모르겠네.]

백웅은 욕을 하면서 말했다.

[당신의 피는 썩은 것이라 모기들조차도 먹으려고 하지 않는 것이오.]

흑웅은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차라리 피가 썩을망정 몇백 마리의 모기에게 물어 뜯기지는 않겠네.]

백웅은 또 육두문자를 써서 욕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한참동안 욕을 한 다음에 말을 했다.

[혈도가 풀린 다음에 이 늙은이가 제일 먼저 야묘자를 찾아서 복수를 해야겠어. 이 자라대가리 같은 놈의 혈도를 찍은 다음 그의 넙적다리 고기를 한입한입 뜯어서 먹어버려야겠다.]

흑웅은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차라리 그 비구니들의 고기를 먹겠네. 그 고기는 연하고 하얗고 맛있겠지.]

백웅은 말했다.

[악선생님이 분부하시길 비구니들을 화산에 전부 잡아오라고 했지, 먹으라고 하지 않았소.]

흑웅은 웃으면서 말했다.

[몇백 명의 비구니 가운데 서너명을 잡아 먹었다고 해서 악선생이 눈치 채지는 못할 것이야.]

영호충은 깜짝 놀랬다.

(어째서 사부가 분부했단 말이냐? 어째서 그들 더러 항산파의 제자들을 화산에 잡아 오라고 했단 말이냐? 음모라는 것은 이것을 두고 한 것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그들이 어째서 나의 사부의 명령을 따르고 있는가?)

갑자기 백웅이 큰 소리로 욕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못된놈 같으니라구.]

흑웅은 노해서 말했다.

[자네나 비구니를 잡아먹지 않으면 그만이지 어째서 욕을 하느냐?]

백웅은 말했다.

[내가 욕을 하는 것은 모기이지 당신이 아니오.]

영호충은 의혹에 차 있었다.

갑자기 등뒤의 수풀 속에서 발걸음소리가 들려왔다. 어떤 사람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내심 생각하였다.

(이 사람이 가까이 오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 사람은 그를 향해서 걸어오고 있었다. 몸 가까이 다가오더니 무릎을 꿇고 앉아서 가볍게 그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영호충은 약간 놀랬다.

(누구일까? 나를 알아본 것이 아닐까?)

고개를 돌려보니 몽롱한 달빛 아래서 한개의 아름답고 속되지 않은 얼굴이 나타났다. 바로 의림이었다. 그는 놀래고 기뻐서 내심 생각하였다.

(알고 보니 나의 행적을 그녀가 꿰뚫어 보았구나. 내가 아무리 여자 차림새를 했다 해도아마 여자처럼 보이지는 않았던 모양이지.)

의림은 고개를 옆으로 하더니 천천히 일어났다. 여전히 자기의 옷자락을 잡아당기고 있는 것이 멀리 자기를 데려가서 말을 건네려는 뜻인 것 같았다.
영호충은 그녀가 서쪽으로 가는 것을 보고 그녀 뒤를 따라갔다.
두 사람은 아무말 하지 않고 서쪽으로 걸어갔다. 의림은 작은 산길을 따라 통원곡을 향해 걸어 가더니 갑자기 말을 했다.

[사람들의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는 사람이 이 같은 위험한 곳에 있다는 것은 정말 위험한 일입니다.]

그녀의 이 몇마디는 자기를 향해서 하는 것 같지 않고 혼자서 중얼중얼 거리는 것 같았다.
영호충은 멈칫하면서 내심 생각하였다.

(나 보고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고 하는데 그것은 무슨 뜻일까? 그녀는 거짓으로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정말로 내 정체를 알아내지 못한 것일까?)

의림은 지금까지 자기와 농담을 하지 않았으므로, 영호충은 그녀가 자기의 정체를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였다.
그녀는 다시 북쪽으로 방향을 꺾어 점점 자요구(磁요口)를 향해서 걸어가고 있었다. 산허리를 하나 돌더니 작은 냇가 옆에 이르렀을 때 의림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항상 이곳에서 말을 했으므로 당신은 내 말을 듣기가 이제는 싫증이 나시지요?]

이어서 가볍게 웃더니 말했다.

[당신은 지금까지 내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읍니다. 귀머거리 할머니, 만약 당신이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면 나는 당신과는 이야기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영호충은 의림의 진지한 말투를 듣고는 자기를 현공사의 귀 먹고 말을 못하는 노복으로 착각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는 장난기가 크게 일어나서 내심 생각하였다.

(그래 잠시 내 정체를 밝히지 말고 그녀가 나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나 보자.)

의림은 그의 옷자락을 끌고서 큰 나무가 있는 바위 옆에 가 앉았다. 영호충은 따라 앉으며 몸을 약간 옆으로 하여 달을 등지고 앉았다. 의림이 자기의 얼굴을 자세히 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깊이 생각하기를, (설마 하니 내가 그렇게 변장을 잘 했단 말인가! 의림조차도 속아 넘어갈 수 있게 말이다. 그렇다 컴컴한 밤중이라 어느 정도 비슷하면 쉽게 분간해내지 못할 것이다. 영영의 변장술은 대단하구나.)

의림은 달을 바라다보면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영호충은 참을 수가 없어 물어보려고 하였다.

(당신처럼 어린 나이에 어째서 그렇게 많은 번민이 있읍니까?)
그러나 말을 입밖에 내지 아니하였다.
의림은 가볍게 말을 했다.

[귀머거리 할머니, 당신은 정말로 좋으신 분이세요. 나는 늘 당신을 이끌고 당신에게 나의 마음속에 있는 고민을 털어 놓곤 하였죠. 그런데 당신은 싫어하는 눈빛도 없이 끝까지 참고 기다리며 내가 말을 하고 싶은대로 내버려 두었읍니다. 나는 본래 고충을 당신에게 이야기해서는 안 되었읍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에게 잘 대해주니 마치 당신은 나의 어머님처럼 느껴집니다. 나는 어머니가 없읍니다. 내게 만약 어머니가 있다해도 나는 어머니에게 이와 같은 나의 고민을 이야기했을까요?]

영호충은 그녀가 마음속의 고충을 털어놓는 것을 듣고 어딘가 모르게 자신의 행동이 심히 정당하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내심 생각하기를, (그녀는 지금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일까? 내가 그녀를 속여서 마음속을 비밀을 털어 놓게 한다는 것은 그녀에게 너무나 미안한 일이다. 아무래도 빨리 가는 것이 좋겠구나.)

즉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의림은 그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더니 말했다.

[귀머거리 할머니 당신......당신은 벌써 가시려고요?]
말소리는 실망한 빛이 역력하였다. 영호충이 그녀를 쳐다보니 그녀의 표정은 처량하였으며, 두 눈빛 속에서는 무엇인가 갈구하는 표정이 깃들어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약해져 깊이 생각하였다.

(소사매의 모습은 요며칠동안 많이 초췌해졌구나. 마음 속에 가득 찬 답답한 심정을 누구에게라도 호소하지 않고 그냥 이대로 묶어둔다면 아무래도 생병을 앓겠구나. 내가 잠시 그녀의 호소를 들어줘야 겠다. 그녀가 내가 누군지 눈치 채지 못한다면 그리 창피하게 여기지는 않겠지.)

천천히 앉았다.
의림은 손을 내밀어 그의 목덜미를 거머쥐더니 말했다.

[귀머거리 할머니, 당신은 정말로 좋으신 분이세요. 저와 함께 이곳에 잠시만 더 있다 가세요. 당신은 내 마음이 얼마나 답답한 지 모르실 겁니다.]

영호충은 내심 생각하였다.

(영호충은 할머니와 인연이 깊구나. 처음에는 영영을 할머니인 줄 착각하였는데, 이번에는 또 의림이 내가 할머니인 줄 착각하고 있구나. 영영을 할머니라고 몇백번 부르더니 지금은 내가 할머니 소리를 듣는구나. 이것이 무슨 인연이고 인과응보일까?)
의림은 말하였다.

[오늘 나의 아버님이 하마터면 목을 매달고 죽을 뻔하신 것을 당신은 아세요 모르세요? 아버님은 누군가에 의해서 나무에 매달려졌읍니다. 또 그는 아버님의 몸에다가 천하에서 제일 무정하고 여자들 뒷꽁무니만 따라다니는 호색가라는 쪽지를 붙였답니다. 아버님이 평생동안 마음 속에 둔 사람은 나의 어머님 한사람뿐이었읍니다. 여자들 뒤만 쫓아다는 호색가라니요? 그것은 말도 안 됩니다.
그 사람은 틀림없이 잘못 알았을 겁니다. 본래 전백광의 몸에다 붙여야 할 쪽지를 나의 아버님 몸에 잘못 붙였을 거예요. 사실 잘못 붙였다면 바꿔 놓으면 될텐데 어찌해서 나무에 목을 매 자진하려고 했을까요?]

영호충은 깜짝 놀랐고, 한편으로는 매우 우스웠다.

(어째서 불계대사가 자진하려고 했을까? 그녀는 하마터면 목을 매 죽을 뻔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어직 죽지 않았겠구나. 두개의 쪽지에 모두가 좋지 않은 말만 써 있는데 뜯어내면 그만이지 어째서 쪽지를 다시 바꾸어 달 필요가 있는가? 소사매는 정말 천진난만하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있구나.)

의림은 말했다.

[전백광은 견성봉(見性峯)에 달려와서 나에게 그와 같은 사실을 말해주려고 했읍니다. 그러나 의화 사저와 맞부딪치게 되었지요.
의화 사저는 그가 견성봉에 침입하였다고 이유 여하를 묻지 않고 검을 들어 내리치려고 했지요. 하마터면 그의 생명은 거기에서 끝장날 뻔했읍니다. 그때는 위험하기 짝이 없었읍니다.]

영호충은 내심 생각하였다.

(내가 별원 중의 남자들은 절대로 나의 명령 없이는 견성봉에 오를 수 없다고 말한 적이 있었지. 전형의 명성은 평소에 좋지 않았고, 또한 의화 사저는 성질이 급한 사람이라 그자를 보는 순간 칼을 뽑아 죽이려고 했겠지. 단지 전형의 무공이 그녀보다 높으므로 의화는 절대로 그를 죽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는 막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의 표시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즉시

(그녀가 무슨 말을 하든지간에 내가 찬성을 해도 그만 반대를 해도 그만 절대로 고개를 끄덕이거나 흔들면 안 된다. 그 귀머거리 할머니는 그녀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을테니 말이다.)
라고 스스로 깨달았다.
의림은 계속해서 말했다.

[전백광이 말을 다했을 때는 의화 사저는 이미 십칠팔검을 내리찍었지요. 단지 그녀가 약간 봐줬기 때문에 그를 죽이지는 못했읍니다. 내가 그 소식을 듣고 급히 통원곡에 갔을 때 아버님은 이미 보이지 않았읍니다.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니 그들은모두 아버님이 뜰에서 울고 떠들다고 매우 화가 나셨다고 하였읍니다. 그 누구도 감히 아버님에게 말을 할 수가 없었는데 나중에 보니 아버님이 보이지 않았다고 했읍니다. 나는 통원곡의 여기저기를 찾아다녔지요. 결국 뒷산의 산허리에서 아버님을 볼 수가 있었읍니다. 내가 아버님을 보았을 때 아버님은 높은 가지에 목을 매달아 놓고 있었읍니다. 나는 몸을 날려 나무에 올라가 그의 목을 매고 있는 끈을 단숨에 끊어버렸지요. 진정 보살님께서 보호하셔서 다행히 때늦지 않게 아버님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내가 아버님을 정신들게 하자 아버님은 저를 껴안고 한참동안 우셨읍니다. 나는 아버님의 몸에 천하의 제일 박정하고 어쩌고 하는 글자들이 써 있는 쪽지가 달려 있는 것을 보았지요. 그래서 제가 말을 했지요. `아버님 그는 정말로 나쁜 사람이군요. 아버님을 한번 매달면 됐지 두번씩이나 매달았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쪽지를 잘못 걸어놓고 또 잘못 걸었군요.' 아버님께선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씀하셨읍니다. `다른 사람이 목을 매달은게 아니라 내 스스로가 목을 매단 것이다. 난......난 정말로 살고 싶지가 않다.' 내가 아버님께 말하였죠.`아버님, 그 사람은 틀림없이 몰래 아버님을 급습했고, 아버님께서는 주의를 하지 않아서 그의 함정에 걸려들었으니 그리 괴로워하실 필요는 없읍니다. 우리가 그를 찾아내어 그에게 한바탕 따지고 그가 만약에 말을 흐지부지하게 한다면 이번엔 우리가 그를 나뭇가지에 매달아 버리지요. 그리고 이 쪽지를 그자의 머리에다 달아놓아요.' 아버님은 말씀하시기를, `이 쪽지는 내 것인데 어찌 다른 사람 몸에다 매달아 놓을 수가 있는냐. 천하에서 제일 무정하고 여자들 뒤만 졸졸 따라다니는 사람은 바로 나 불계화상이다. 그 누가 나를 필적할 수 있겠느냐? 얘야, 그렇게 함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귀머거리 할머니, 나는 아버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마음속으로 이상하게 생각하였죠. 그래서 물어보기를, `아버님, 이 쪽지는 잘못 걸리지 않았읍니까?' 아버님께서 말씀하시를, `물론 잘못 걸리지 않았다. 난......난 정말로 너의 어머니에게 미안할 뿐이다. 그래서 이 나뭇가지에다 목을 매달고 자진하려고했던 것이다. 너는 나를 상관할 필요가 없다. 나는 정말 살고 싶지가 않다.'] 영호충은 지난번에 불가불계가 자기에게 한 말이 기억이 났다.
불계화상은 의림의 어머님을 사랑하게 되었는데 단지 그녀가 비구니였으므로 그녀를 따라서 출가하여 중이 되었다. 사실 중이 비구니를 아내로 맞이한다는 것은 해괴하고 망측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불계화상은 의림의 어머니에게 미안하다고 했는데 틀림없이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마음이 생겨 그래서 스스로 천하에서 박정하고 여자들 뒤꽁무니만 쫓아다니는 호색가라고 자인을 했을 것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마음속으로 무엇인가가 점점 분명해졌다.
의림은 말했다.

[나는 아버님께서 무척이나 상심하여 우시는 것을 보고 따라 울었지요. 아버님께서는 오히려 나에게 말씀하시기를 `착한 아이야 울지 말아라. 울지 말아라. 만약 아버지가 죽는다면 너는 홀로 이 세상에 남게 될 것이고, 누가 너를 보살펴 준단 말이냐?'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나보다 더 한층 처량하게 울기 시작 했읍니다.]

여기까지 말을 하자 그녀의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고 얼굴은 더욱 처량해 보였다. 또, 말을 하였다.

[아버님은 말씀하시기를, `됐다 됐어. 나는 죽지 않겠다. 단지 너의 어머니에게 너무나 미안하고 송구할 뿐이다.' 내가 물어보았지요. `도대체 아버지는 어찌하여 어머니에게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버님은 탄식을 하시더니 말씀하셨지요.
`네 어머니는 볼래 비구니다. 너도 그것을 알 것이다. 나는 네 어머니를 보자마자 미치도록 사랑하였지. 그 누가 뭐라해도 너의 어머니를 아내로 맞이하고 싶었다. 네 어머니는 말하기를 `나무아미타불, 이런 생각을 하면 보살님께서 틀림없이 크나큰 화를 내리실 것입니다.' 내가 말하기를 `보살께서 크나큰 화를 내린다면 단지 나 한사람에게 내릴 것이오.' 너의 어머니가 말하기를 `당신은 출가하지 않았으므로 아내를 얻고 어들딸을 낳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나는 출가하고 불문에 있는 사람으로서 마음을 깨끗히 하고 잡념을 없애야 하는데 마음속으로는 다른 엉뚱한 생각을 한다면 보살님께서 나를 책망하실 뿐이지 결코 당신에게 화를 내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나는 너의 어머니가 이와 같은 말을 하는 것을 듣고 너의 어머니의 생각이 맞다고 여기었지. 그러나 나는 끝끝내 너의 어머니를 아내로 맞이하려고 했지. 절대로 너의 어머니가 나에게 시집을 오고 싶어했던 것은 아니었지. 만약 보살께서 너의 어머니께 책망을 내린다면 너의 어머니가 죽어서 지옥에 가 고통을 받을 텐데 내가 어찌 너의 어머니에게 미안하지 않겠느냐. 그래서 나는 중이 되었단다. 보살께서는 물론 나를 먼저 책망하실 것이고 설사 지옥에 가더라도 우리 부부가 함께 갈 것이다.']

영호충은 내심 생각하였다.

(불계대사는 정말 정이 많고 좋은 사람이구나. 보살의 책망을 짊어지기위해서 중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어째서 나중에 또 다시 변심하단 말인가?)

의림은 계속해서 말했다.

[나는 아버님에게 물어보았죠. `아버님은 어머니를 아내로 맞이하셨읍니까?' 아버님은 말씀하시기를, `물론 아내로 맞이했지. 그렇지 않았다면 어떻게 너를 낳을 수가 있단 말이냐. 그것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될 일이지. 네가 태어난 지 겨우 삼개월이 되었을 때 나는 너를 껴안고 문앞에 나가 햇볕을 쬐었단다.' 내가 말하기를, `햇볕을 쬔 것이 무엇이 잘못됐읍니까?' 아버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때 일이 너무나 교묘하게 되었지. 어떤 아름다운 부인이 말을 타고 문앞을 지나가다가 중인 내가 예쁜 계집아이를 안고 있는 것을 보고 약간 이상하게 느꼈는지 우리를 몇번이고 쳐다보면서 칭찬을 하였지. `정말로 예쁜 계집아이로군요.' 나는 마음속으로 기뻐서 말했지. `당신도 정말 아름답구료.' 그 젊은 부인은 나를 쳐다보더니 물어보았지. `당신은 아이를 어디서 훔쳐 왔읍니까?' 내가 말하기를 `훔쳐오다니 내가 낳은 자식이오.' 그 젊은 부인은 갑자기 화를 벌컥 내더니 욕을 하였지. `내가 점잖게 물어보는데 당신은 나를 비웃고 있군요. 죽지 못해서 안달이난 모양이구료.' 내가 말하기를 `내가 어째서 비웃었다고 그러시오. 중은 사람이 아닙니까? 중은 아이도 낳지 못합니까? 당신이 정 믿지 못한다면 내가 당신에게 낳아서 보여드리겠소.' 그런데 그 여자가 그토록 흉악한 사람인지 내가 어떻게 알았겠느냐. 그녀는 등에서 칼을 뽑더니 나를 향해서 찔렀단다. 그것은 너무나 이치에 벗어난 일이 아니냐?']

영호충은 내심 생각하였다.

(불계대사는 성격이 강직하고 바른 말을 하는 사람이라 말하는 것이 모두 진실이었지만 듣는 상대방은 무례하고 자기를 조롱하는 말인 줄 알겠지. 그는 아내를 맞아 딸을 낳았으면서 어째서 환속하지 않았을까? 중이 어린아이를 안고 있으니 어울리지 않는 법이지.)

의림이 말했다.

[내가 말하기를 `그 부인은 너무나 흉악하군요. 나는 분명히 아버지의 자식이니 그녀를 속인 것이 아닌데 어째서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 칼을 뽑고 덤벼들었을까요?' 아버지는 말씀하시기를, `맞다 네 말이 맞단다. 당시 나는 몸을 피하면서 말을 했지. 당신은 어째서옳고 그름을 알지도 못하면서 검을 뽑아 죽이려 하시오.' 이 아이를 내가 낳지 않았다면 당신이 낳았단 말이오.' 그 여자는 더욱 화가 나서 나에게 연신 삼검을 내리쳤단다. 그녀는 칼을 휘둘러도 나를 찌르지 못하자 검을 더욱 빨리 휘둘렀지. 나는 물론 그녀를 두려워하지 않았어. 단지 그녀가 칼을 잘못 휘둘러 너에게 상처를 입히지나 않을까 그것이 걱정되었지. 그녀가 여덟뻔째 칼을 내리쳤을 때는 나는 발을 날려 그녀를 걷어차 버렸단다. 그녀는 무릎을 일으켜 세우더닌 크게 나를 욕하였지. `창피한 줄도 모르는 중놈 같으니라고 무례하고 염치가 없구나. 감히 부녀자를 희롱하려고 하다니.' 바로 이때 너의 엄마가 냇가에서 옷을 빨고 돌아오다가 옆에서 이 말을 들었지. 그 여자는 몇번이고 욕을 하더니 제풀에 꺾였던지 땅에 떨어뜨린 검을 줍지도 않고 말을 타고 돌아갔단다. 나는 몸을 돌려 너의 어머니에게 말을 했지. 너의 어머니는 한마디 말도 않고 단지 울기만 하고 있었지. 나는 너의 어미니에게 왜 우느냐고 물었지만 너의 어머니는 대꾸도 아니했단다. 그 다음날 아침에 너의 어머니가 보이지 않았어. 탁자 위에 종이 한장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글자들이 써 있었지. 네가 한번 알아맞취 보아라. 그 종이에 무슨 글자들이 써 있는가를, 그것은 바로 천하에서 제일 무심하고 여자 뒤꽁무니만 따라다니는 호색가라는 글이었단다. 나는 너를 안고 방방곡곡을 찾아다녔지만 너의 어머니를 찾을 수가 없었지.' 내가 말하기를 `어머니는 그 여자의 말을 믿어 버렸군요.' 아버지가 말씀하시기를, `그렇단다. 그러니 너무나 억울한 일이 아니냐. 그러나 나중에 내가 생각을 해보니 그것은 억울한 누명이 아니었어. 맨처음내가 젊은 부인을 보았을 때 마음속으로 정말 멋지게 생겼구나 라고 생각 했었지. 너도 생각을 해봐라. 나는 이미 너의 어머니를 아내로 삼고 있었는데 마음속으로 다른 여자의 미모를 칭찬하고 있었으니, 마음속으로 칭찬할 뿐만 아니라 입속으로도 칭찬을 했지. 그 어찌 천하에서 제일 무정하고 여자들 뒤만 쫓아다니는 호색가가 아니라 하겠느냐.']

영호충은 내심 말하였다.

(알고 보니 의림의 어머니는 질투심이 대단한 여자로구나. 둘 사이에 어떤 오해가 있었다면 그때 당시 분명하게 물어 보았다면 아무 일이 없었을텐데.)

의림이 말했다.

[내가 말하기를 `나중에 어머니를 찾으셨읍니까?' 아버지가 말씀하시기를 `나는 사방으로 찾아다녔지만 너의 어머니를 찾을 수가 없었단다. 내 생각에는 너의 어머니가 비구니이니 틀림없이 암자에 갔을 것이라고 믿고 모든 암자를 찾아나섰단다. 어느날 항산의 백운암을 찾아갔을 때 너의 사부 정일사태는 너를 보자 매우 귀여워했었단다. 그때 너는 병중이라 정알사태는 너를 암자에다 맡기라고 하셨단다. 내가 너를 데리고 강호에 돌아다닌다면 너의 목숨을 부지할 수 없다고 하시면서 말이다.']

의림은 정일사태가 생각났던지 눈물이 글썽해지며 말을 했다.

[난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없었읍니다. 사부님이 나를 키위주셨읍니다. 그러나 사부님은 살해를 당했읍니다. 나의 사부님을 살해한 자는 바로 영호 오라버니의 사부입니다. 당신도 생각해 보십시오.
정말 괴롭습니다. 영호 오라보니는 나처럼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없어서 그의 사부 밑에서 자라왔지만 그는 나보다도 더욱 불행한 사람입니다. 어머니가 없을 뿐 아니라 아버지조차도 없는 그는 세상에서 자기의사부를 제일 사랑하는데 내가 만약 그의 사부를 죽여 사부의 복수를 한다면 영호 오라버니는 틀림없이 슬퍼할 것입니다. 나의 아버님은 또 말씀하시기를 나를 백운암에 맡겨놓고 천하의 비구니가 살고 있을 만한 암자는 모두 찾아나섰다고 하셨읍니다. 나중에는 몽고(蒙古), 서장(西藏), 관외(關外), 서역(西域)까지 가셔서 찾으셨다고 했읍니다. 그러나 어머님의 소식을 알아내지 못했지요. 생각해 보니 나의 어머님은 틀림없이 아버님이 여자를 희롱하는 것을 보고 그 다음날 자진을 한 것입니다. 귀머거리할머니, 나의 어머니는 출가했을 때 보살님면전에서 맹세를 하셨었지요. 불문에 들어오면 절대로 사사로운 감정을 갖지 않겠다고요. 그러나 결국은 아버지의 사랑 때문에 시집을 갔고 나를 낳고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가 여자를 희롱하다 천하에서 제일 못된 사람이란 말을 듣는 것을 보고 화가 나셨겠지요. 어머니는 성격이 매우 강직한 분이었읍니다. 스스로 잘못을 저질렀는데 또다시 잘못을 저지를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자진을 했겠지요.]

의림은 한숨을 쉬고 계속해서 말했다.

[아버님이 이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시자 나는 비로소 아버님이 그 쪽지를 보고 왜 이렇듯이 상심을 하셨는가 알 수 있었죠. 내가 말하기를 `어머니가 그런 쪽지를 써서 아버지를 욕했을 때 아버지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줬읍니까? 어째서 다른 사람이 그와 같은 사실을 알았을 까요.' 아버님이 말씀하시기를 `물론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지 않았지. 나는 누구에게도 말을 한 적이 없어. 이 말을 퍼뜨리면 내 얼굴에 침뱉는 격이 아니냐. 틀림없이 귀신이 그랬을 것이야. 너의 어머니가 귀신이 되어 나를 찾아온 거야. 내가 너의 어미니의깨끗함을 더럽혔고 또 다른 여자를 희롱했다고 복수를 하러 온거야 그렇지 않다면 내 몸에 붙어 있는 쪽지에 다른 글자도 아닌 왜 그 글자가 써 있었느냐. 나는 너의 어머니가 내 생명을 달라고 하는 것을 알고 있다. 잘된 일이지. 나는 너의 어머니를 따라 가겠다.' 아버님은 또 말씀하셨죠. `어차피 너의 어머니를 찾지 못했는데 저세상에라도 가서 너의 어머니와 만날 수 있다면 그것은 평생 내가 바라던 일인 것이다. 그러나 내 몸이 너무나 무거워 나무에 목을 매달아도 밧즐이 끊어져 버렸단다. 두번째 다시목을 매달았을 때 끈이 또 끊어졌지. 나는 칼을 집어들고 목을 자르려고 했으나 칼이 분명히 옆에 있었는데 갑자기 없어져 버려 죽어 버리려고 해도 쉽지가 않구나.' 내가 말하기를 `아버님보고 자진하지 말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끈이 끊어지고 칼이 보이지 않게 된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아버님을 찾았을 때 아버님은 벌써 숨이 끊어졌을 것입니다.' 아버님이 말씀하시기를 `너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아마 보살님께서 내가 이 세상에서 아직 고통을 덜 받았다고 여기서 즉시 죽지 못하게 했고 너의 어머니를 만나보지 못하도록 한 것이야.' 내가 말하기를 `전백광의 몸에다 걸어놓아야 한 것을 아버지에게 잘못 걸어 아버지가 크게 화가 나신 줄 여기고 있었읍니다.' 아버님이 말씀하시기를 `어째서 잘못 걸렸겠느냐? 불가불계는 옛날 너에게 무례한 짓을 하려고 했는데 그 어찌 함부로 행동하는 놈이 아니란 말이냐? 나는 또 그놈에게 영호충이 너를 아내로 맞이 할 수 있도록 중매해 달라고 했는데, 그는 요리조리 미루고 결국은 일을 성사시키지 못했다. 그것은 일을 하는데 힘을 쓰지 않았다는 증거가 아니냐. 그런 쪽지가 그의 몸에 걸리게 된 것은 그 놈에게는 퍽이나 타당한 일이다.' 내가 말하기를 `아버님, 아버님께서 또다시 전백광에게 그러한 일을 하라고 시키신다면 나는 정말 화를 낼 것입니다. 영호 오라보니는 옛날에 그의 소사매를 좋아하였지만, 지금은 마교의 임소저를 좋아하게 되었읍니다. 그는 나에게 잘 대해주지만 그렇다고 나를 마음속에 두고 있지는 않습니다.']

영호충은 의림과 이와 같은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퍽이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자기를 향한 그녀의 마음을 처음에는 그리느낄 수는 없었으나 나중에 점차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자기는 틀림없이 의림이 말한대로 옛날엔 악씨집안의 소사매를 좋아했고, 지금은 영영에게로 옮겨갔던 것이다.
의림은 말했다.

[아버님은 내가 이렇게 하는 말을 들으시고는 갑자기 화를 내시면서 영호 오라버니를 크게 욕했읍니다. `영호충, 이놈은 정말 눈이 삔 놈이다! 불가불계보다도 못한 놈이야. 불가불계 같은 놈도 나의 딸의 아름다움을 알고 있는데, 영호충은 천하에서 제일 멍청한 놈이다.' 아버님은 많은 나쁜 말로 욕을 하였지요. 너무 듣기가 민망한 말이라 내가 지금 옮길 수가 없읍니다. 아버지는 말씀하시기를 `천하에서 제일 눈이 먼 자는 누구인고 하면 좌랭선이도 아니고 영호충이다. 좌랭선은 눈이 바늘에 찔려 멀었지만, 영호충은 좌랭선보다 더욱 눈이 먼 자야.' 귀머거리 할머니, 아버지가 이렇게 한 말은 틀린 말입니다. 아버지가 어떻게 영호 오라버니를 욕할 수 있읍니까? 내가 말하기를 `아버지, 악소저와 임소저는 저보다 더욱 아름답습니다. 제가 어찌 그들과 비교를 할 수가 있읍니까? 더우기 저는 이미 불문에 들어온 몸이고, 단지 영호 오라버니가 목숨을 아끼지 않고 구해주신 은덕에 감격해 있기 때문에 저는 더욱 영호 오라버니를 잊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머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불문에 귀의하면 마음을 깨끗이 비우고 더이상 잡다한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보살님께서는 책망하실 겁니다.' 아버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출가를 했다고 시집을 가지 말란 법이 있느냐? 천하의 여자들이 모두 출가를 하고 시집을 가서 아이를 낳지 않는다면 세상에는 아마 사람이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너의 어머니는 비구니인데나에게 시집을 오지 않았느냐 그리고 너를 낳지 않았느냐?' 내가 말하기를 `아버님 우린 이런 얘기는 그만 하지요. 나는 차라리 그 옛날 어머니가 나와 같은 딸을 낳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하고 있었읍니다.']

그녀는 여기까지 말을 하고 또 흐느끼고 있었다. 한참 지나고 나서 비로소 말을 했다.

[아버님은 말씀하시기를 반드시 영호 오라버니를 찾아서 그에게 나를 맞이하라고 하겠다고 하셨읍니다. 나는 그때 아버지께 말씀드렸지요. 아버지가 영호 오라버니에게 이런 일을 이야기하면 나는 영원히아버지와 말 한마디 안 하겠다고요. 그리고 아버지가 견성봉에 나를 만나러 오면 나는 절대로 아버지를 만나지 않겠다고 하였읍니다. 그리고 전백광이 영호 오라버니에게 이런 말을 한다면 나는 의청, 의화 사저들에게 영원히 전백광이 항산에 한발짝도 들여놓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하였읍니다. 아버지는 애가 말한 것은 반드시 실행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한참 멍청하게 계시더니 탄식을 하면서 혼자 가 버렸읍니다. 귀머거리 할머니, 아버지가 이렇게 가시면 언제 다시 나를 보러 오실지 모릅니다. 언제 다시 아버지가 자살할지 모릅니다. 정말로 걱정이 됩니다. 나중에 내가 전백광을 찾아 그에게 아버지를 잘 보살펴 달라는 말을 하고 나서 보니까 많은 사람들이 살며시 통원곡 밖으로 가서 수풀 속에 숨어있길래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읍니다. 나도 살며시 따라가서 보고 있는데 그때 당신을 보게 되었지요. 귀머거리 할머니, 당신은 무공을 할 줄 모르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수가 없으므로 다른 사람에게 발견이 된다면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앞으로는 절대로 사람들을 따라서 수풀에 가서 숨어 있지 마세요. 그들이 지금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 줄 아십니까?]

영호충은 하마터면 웃을 뻔하였다. 내심 생각하기를, (소사매는 정말로 어린애 같구나.)

의림은 말했다.

[이 며칠동안 의화, 의청 두분의 사저는 나보고 검술을 연마하라고 성화가 대단하십니다. 진견 소사매가 의화, 의청 몇분의 대사저들이 상의한 말을 엿듣고 나에게 말해 주었읍니다. 모두들 말하기를, 영호 오라버니는 장래에 틀림없이 항산파의 장문인을 맡지 않을 것이고 악불군은 우리의 사부를 죽인 원수이므로 우리는 자연히오악파가 병합하는데 동의할 수 없다고요. 더우기 그를 우리의 장문인으로 모실 수는 없다고 하였읍니다. 그래서 모두들 나보고 장문인이 되어야 한다 하였답니다. 귀머거리 할머니, 난 정말 믿을 수가 없읍니다. 그러나 진사매는 이 말이 절대로 거짓이 아님을 맹세했읍니다. 진사매는 말하기를 몇분의 대서저들은 모두 항산파의 의자(儀字)돌림의 비구니들 가운데 영호 오라버니가 나에게 제일 잘 대해 주므로 내가 장문인이 된다면 틀림없이 영호 오라버니의 마음에 들 것이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녀들이 나를 결정한 것은 영호 오라버니를 위해서지요. 그녀들은 내가 무술연마를 열심히 하기를 바라고 또한 악불군을 죽여 항산파의 장문인이 된다면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을 것이라고 했읍니다. 그녀가 이렇게 해석을 하자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지요. 그러나 항산파의 장문인을 내가 어찌 맡을 수 있읍니까? 나의 검법은 앞으로 십년 동안 연마해도 절대로 의화, 의청 사저들에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악불군을 죽인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지요. 나는 지금 마음이 뒤숭숭해 있는데 이 일을 생각하기만하면 더욱 어찌할 바를 모르겠읍니다. 귀머거리 할머니, 어떻하면 좋을까요.]

영호충은 비로소 확연하게 깨달았다.

(그녀들이 이렇듯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의림에게 무술연마를 시킨 것은 의림이 앞으로 내 뒤를 이어 항산파의 장문인이 되기를 바래서 그러했구나. 그녀들이 이렇게 결정한 것은 모두가 나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야.)

의림은 조용히 말했다.

[귀머거리 할머니, 난 늘 당신에게 말을 했읍니다. 나는 밤낮으로 영호 오라버니를 생각하고 꿈 속에서도 영호 오라버니를 생각하고 있다고요. 나는 영호 오라버니가 나를 구하기 위해서 생명을 돌보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했고, 그가 상처를 받은 후에 내가 영호 오라버니를 안고서 달려갔던 때를 생각하곤 했읍니다. 영호 오라버니가 나에게 농담했을 때를 생각했고 내가 영호 오라버니에게 이야기를 들려 주던 광경을 떠올리곤 했읍니다. 그리고 형산현(衡山縣) 군옥원에서 난......난 영호 오라버니와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자고 똑같은 이불을 덮었을 때를 생각하였읍니다. 귀머거리 할머니, 나는 당신이 내 말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읍니다. 그래서 내가 당신에게 이와 같은 말을 하면서도 창피한 줄도 모르고 있읍니다. 내가 만약 말을 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끙끙 앓고 있다면 나는 정말 미쳐 버릴 것이예요. 내가 할머니에게 말을 하고 가볍게 영호 오라버니의 이름을 부르면 마음속은 며칠동안 편안해지곤 합니다.]

그녀는 잠시 멈추었다고 가볍게 외쳤다.

[영호 오라버니!]

그녀의 이 외침소리는 너무 뜻밖이었으므로 영호충은 자기도 모르게 몸이 떨려왔다. 그는 이미 소사매가 자기에게 잘 대해주고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그녀의 작은 마음속에 이렇듯 깊은 뜻이 담겨져 있고 이렇게까지 감동적이라고는 생각지 못하였다.
그래서 내심 생각하기를, (그녀가 나에게 이러한 마음을 품고 있는데 나는 앞으로 그녀에게 어떻게 보답을 해야 옳단 말인가?]

의림은 가볍게 탄식을 하더니 말했다.

[귀머거리 할머니, 아버님은 나를 잘 모르십니다. 의화, 의청 사저들도 나를 잘 모르고 있읍니다. 내가 영호 오라버니를 생각하고 잊지 못하는 것은 전적으로 나의 잘못이라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읍니다. 출가한 몸으로서 어찌 남자를 잊지 못하고 있을 수가 있겠읍니까? 하물며 영호 오라버니는 우리 문파의 장문인이 아닙니까? 나는 날마다 관세음보살께 나를 구원해 달라고 기구를 하고 있고, 내가 영호 오라버니를 잊도록 보살펴 달라고 빌고 있읍니다. 오늘 아침에도 경을 읽으면서 관세음보살님의 이름을 불렀으며 내 마음속으로 또 보살님께 영호 오라버니에게 아무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보살펴 달라고 기원을 했읍니다. 그리고 그와 임소저가 아름다운 부부가 되기를 바라고 두사람이 해로할 수 있도록 보살님께 기도하였읍니다. 내가 너무나 많은 부탁을 했으므로 보살님께서는 틀림없이 화를 내실 것입니다. 오늘부터 나는 단지 영호 오라버니가 평생 즐겁게 살 수 있기를 보살펴 달라고 보살님께 부탁 드리겠읍니다.
영호 오라버니는 구속되지 않는 것을 제일 좋아하십니다. 임소저가 앞으로 영호 오라버니를 잡아 놓고 있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고 있읍니다.]

그녀의 표정이 밝아지더니 가볍게 경을 읽었다.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그녀는 몇번이고 되뇌이더니 고개를 들어 밝은 달을 바라보면서 말을 했다.

[저는 돌아가겠읍니다. 할머니도 돌아가세요.]

품 속에서 두개의 떡을 꺼내어 영호충의 손에 쑤셔넣더니 말을 했다.

[귀머거리 할머니, 오늘은 어째서 나를 쳐다보지 않으세요. 어디가 불편하세요.]

한참 있다가 영호충이 말을 하지 않자 혼자 중얼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당신은 들을 수가 없는데 내가 당신께 공연히 물어 보았군요.
나는 장말로 멍청해요.]

천천히 몸을 돌려 사라졌다.
영호충은 바위에 걸터 않아서 그녀의 뒷그림자가 컴컴한 밤에 사라지는 것을 불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녀가 조금 전에 했던 말들이 한마디 한마디 마음속에 다시 떠올랐고, 또한 그 애절한 사연이 떠올랐다. 애절한 사연이 떠오를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자기자신을 억제할 수 없어 한참동안 멍하니 않아 있었다.
얼마나 그렇게 앉아 있었을까. 무의식중에 개울물을 쳐다보니 자기도 모르게 깜짝 놀랐다. 물속에 두개의 그림자가 비쳐 왔던 것이다. 그는 자기의 눈이 피로하고 흔들리는 물결의 움직임 때문에 그러할 것이라고 여기고는 다시 정신을 차려 자세히 봤다. 분명히 두개의 그림자였다. 삽시간에 등에서는 한줄기의 식은땀이 주르르 흘러나왔고, 몸이 굳었으며, 감히 고개를 들어 뒤를 볼 수가 없었다. 물 속의 그림자를 보니 자기 몸에 불과 두척 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멍청히 앉아 있을 뿐 몸을 날려서 피하려고 하지도 못하였다. 그 사람은 소리도 없이 몸 가까이 다가왔는데 자기는 그것도 모르고 있었다. 이것만 봐도 이자의 무공은 실로 대단한 것이다.
삽시간에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귀신이 아닐까?)

귀신이라는 단어가 머리속에 떠오르자 마음은 덜컹 내려 앉았다. 한참 멍청히 있다고 또다시 겨울 속을 쳐다보았다. 개울물은 여전히 흐르고 있었으며 몽롱한 달빛 아래 분명히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두개의 그림자는 똑같았다. 모두 넓은 옷을 입고 있었으며, 머리모양 또한 역시 똑같았다. 그것은 바로 자기의 분신이었던 것이다. 영호충은 너무 놀라고 당황하여 심장과 맥박이 금방이라도 멈출 것 같았다. 갑자기 용기를 내어 몸을 돌려 그 귀신과 얼굴을 마주했다. 고개를 돌려 분명히 쳐다보자 마음이 약간은 놓였다. 눈앞에 나타난 중년여자는 바로 그 현공사의 귀먹고 말을 못하는 노복임을 알 수가 있었다. 그러나그녀가 자기몸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데 자기는 어찌하여 이제껐 모르고 있었을까? 실로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두려움이 사라지고 의아한 생각만이 불쑥 떠올랐다.
그래서 말을 했다.

[귀머거리 할머니, 알고 보니......알고보니 당신이었구료. 이건......저는 깜짝 놀랐읍니다.]

그러나 자기의 목소리가 떨리고 심히 쉰 듯한 느낌이 들었다. 벙어리 할머니는 머리에 쪽을 지고 회색의 옷을 입고 있었다. 자기의 차림새와 완전히 같았다. 그는 한참 정신을 가다듬고 억지로 웃었다.

[너무 책망하지 마세요. 임소저가 기억력이 좋아서 당신의 차림새와 당신의 모습으로 나를 변장시켜 주었읍니다. 마치 당신과 내가 쌍둥이처럼 보이지요.]

귀머거리 할머니는 마치 나무토막처럼 얼굴에는 아무 표정이 없었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 깊이 생각하기를, (정말 괴상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구나. 내가 그녀와 똑같은 모양으로 변장하고 있는 것을 그녀가 보았으므로 나는 이제 이곳에 더 오래 머무를 수가 없다.)

즉시 몸을 일으켜 세워 귀머거리 할머니를 향해 읍을 하고 말했다.

[밤이 너무 깊었읍니다. 자, 여기서 저는 그만 물러가겠읍니다.]

몸을 돌려 온 길로 되돌아갔다. 몇발짝 걸어가니 앞에 갑자기 한 사람이 우뚝 멈춰서 있었다. 바로 귀머거리 할머니였는데, 어떤 몸동작으로 이렇게 소리도 없이 자기 몸 앞에 서 있을 수가 있을까? 동방불패는 적과 마주할 때 그 몸놀림이 마치 번개처럼 신속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 동작은 볼 수는 있었다. 그러나 이 할머니의 몸은 갑자기 땅속에서 솟아난 것 같았다. 그녀의 몸놀림은 동방불패보다 신속하지는 않았으나 소리도없이 움직이는 기술은 실로 사람의 것이 아닌 듯하였다.
영호충은 깜짝 놀라 오늘 저녁 무공이 상당히 높은 사람을 만났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영영은 다른 모든 사람을 놔두고 하필 귀머거리 할머니로 변장시켰을까? 틀림없이 할머니는 자기의 모습에 화를 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즉시 말했다.

[할머니, 제가 너무나 당돌했읍니다. 지금 가서 변장을 고치고 다시 현공사에 가서 사죄를 드리겠읍니다.]

그 귀머거리 할머니는 여전히 나무토막처럼 묵묵히 표정을 나타내지 않았다.
영호충은 말을 했다.

[아, 맞습니다. 당신은 내 말을 알아 들을 수가 없지요.]
고개를 숙여 손가락으로 땅바닥에 글자를 썼다.

[죄송합니다. 앞으로 이런 일을 다시 없을 것입니다.]
그 할머니는 꼼짝도 않고 서 있었다. 영호충은 연신 읍을 하면서 손으로 옷을 벗는 시늉을 하고 또 고개를 속여 연신 죄송한 뜻을 나타냈다. 그 할머니는 시종 꼼짝도 하지 않았다.
영호충은 어찌할 수가 없어서 머리를 박박 긁으면서 말을 했다.

[당신이 알아듣지 못하니 나는 정말 어쩔 도리가 없군요.]
몸을 돌려 그 할머니의 몸 옆을 지나갔다. 그녀는 좌측발을 움직이더니 몸이 기우뚱하면서 이미 자기의 앞을 막고 있었다. 영호충은 가만히 숨을 한번 내쉬고 말을 했다.

[어쩔 수가 없군요. 정말로 미안합니다.]

우측발을 내딛어 갑자기 몸을 날리더니 좌측으로 뚫고 들어갔다. 좌측발이 막 떨어졌을 때 그 할머니는 이미 자기의 몸 앞에 서서 길을 막고 있었다. 그는 연신 몇번이고 뚫고 지나가려는 동작을 취하였다. 그러나 그 할머니는 끝끝내 그의 몸 앞을 지키고 있었다.
영호충은 급해졌다. 손을 내밀어 좌측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밀쳤다. 그 할머니는 우측장을 질풍처럼 들어올리더니 그의 손목을 내리쳤다. 영호충은 급히 손을 거두었다. 그는 스스로 자기가 잘못한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감히 그녀와 맞서 싸우려 하지 않고 단지 몸을 빠져나오려고만 하였다. 고개를 숙여 그녀의 몸 옆으로 뚫고 지나가려고 하였다. 몸을 움직이자 장풍이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그 할머니는 이미 일장을 그의 머리 정수리쪽으로 내리쳐 들어왔다.
영호충은 몸을 옆으로 하여 급히 피했다. 그러나 이 일장은 심히 빨라 퍽 하고 소리가나면서 자기 어깨 위에 와 닿았다. 그 할머니의 몸이 약간 기우뚱거렸다. 알고 보니 영호충의 체내의 흡성대법이 반응을 일으켜 그 일장의 힘을 빨아들였던 것이다. 그 할머니는 잽싸게 좌측손을 내밀어 두개의 날카롭고 뾰족한 손가락으로 영호충의 눈을 향해서 찍어 들어왔다. 영호충은 깜짝 놀라 고개를 숙여 피했다. 이렇게 되자 등허리에는 금방 크나큰 헛점이 노출된 결과가 되었다. 다행이 그 할머니는 그의 흡성대법이 무서워 감히 빈틈을 내리치지 못하였다. 우측손을 구부려 위로 치켜 올리더니 여전히그의 두눈을 파고 들어왔다. 그녀는 그의 두눈을 공격하려고 작정한 듯하였다. 그의 흡성대법이 아무리 대단하다 하여도 손가락이 눈속에 들어오면 눈이 멀지 않을 수가 없고 연한 눈은 다른 사람의 공력을 빨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영호충은 팔뚝을 내밀어 막았다. 그 할머니는 손바닥을 회전시키더니 다섯손가락이 갈퀴가 되어 그의 좌측 눈을 할퀴었다. 영호충은 좌측 손을 급히 내밀어 막았다. 그 할머니의 우측 손가락은 이미 그의 우측 귓구멍을 뚫고 들어갔다. 이 몇차례의 행동은 독수리가 병아리를 채 가는 행동같이 빨르기가 이를데 없었다. 그녀의 모든 초식은 해괴망칙하였다. 마치 시골 아낙네들이 엉켜서 싸움을 하는 것과 같았다. 그러나 손이 빠를 뿐 아니라 상당히 매서웠다.
수초 사이에 영호충은 뒤로 연신 물러났다. 그 할머니의 무공은 사실 그리 높은 편은 아니었다. 단지 장점이라면 행동할 때 소리도 없이 아주 신속하게 적을 습격하는데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무공은 악불군, 좌랭선과 비교할 때 미치지 못하였으며, 영영조차도 이 할머니보다는 한참 위인 듯하였다. 그러나 영호충의 권법의 공력은 수중 이하였다.
만약 이 할머니가 그의 흡성대법을 염려하지 않고 공격을 했다면 영호충은 벌써 일장에 쓰러졌을 것이다. 또 몇초식을 붙고 나서 느는 검을 쓰지 않는다면 오늘밤 안으로 빠져나가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즉시 손을 내밀어 품속에서 단검을 빼어들려고 하였다. 그의 우측손이 막 검자루를 만졌을 때, 그 할머니의 초식은 번개처럼 빨라져 연신 칠팔초를 공격하였다. 영호충은 좌측을 막고 우측을 막으며 검을 뽑을 여유가 없었다. 그 할머니의 초식은 갈수록 매서웠고 분명히 아무런 원한과 이유가 없는데 자기의 두눈을 파내려고 하였다.
영호충은 크게 일갈을 하고 좌측장으로 자기의 두눈을 막고 우측손으로 다시 품속의 검을 뽑으려고 하였다. 설사 다시 그녀에게 일장을 막고 걷어 채일지라도 즉시 단검을 뽑으려고 생각을 하였다.
바로 이때 머리에 힘이 들어오더니 머리카락이 이미 그녀에게 잡히는 꼴이 되었다. 이어서 두 다리가 땅에서 떨어지고 바로 하늘이 돌고 땅이 빙빙 돌았다. 몸이 허공에서 신속하게 돌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 할머니는 그의 머리카락을 거머쥐고 그를똑바로 날려보낼 듯이 원을 그리며 빙빙 돌렸다.
영호충은 크게 외쳤다.

[보시오, 보시오.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것이오.]

손을 내밀어 마구 이곳 저곳을 쳐서 그녀의 팔뚝을 잡으려고 했다. 갑자기 겨드랑이가 마비가 되어오더니 이미 그녀에게 혈도가 찍혀 있었다. 이어서 등, 허리, 앞가슴, 목덜미 몇군데 혈도가 그녀에게 찍혔다. 온몸이 마비가 되면서 더이상 꼼짝할 수가 없었다. 그 할머니는 손을 멈추지 않고 그의 몸을 계속 돌렸다.
영호충의 귓가에는 바람소리가 쌩쌩 들려왔다. 그래서 내심 생각하기를, (내 평생 이상하고 해괴한 일을 많이 경험했지만, 오늘같이 재수가 엉망이고 미친 늙은이에게 이렇게 팽이처럼 놀림감이 된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 할머니는 계속 돌리다가 그의 눈에 별똥이 튀기고 혼절을 하려할 때 비로소 혼을 멈추었다. 탕 하고 소리가 나면서 그는 매섭게 땅바닥에 꼬꾸라졌다.
영호충은 본래 자기가 죄송한 짓을 했으므로 그 할머니에게 적의를 품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에게 이런 꼴을 당하자 참을 수 없이 화가 나 욕을 하였다.

[못되 먹은 늙은이 같으니라구. 정말 잘 해준 것도 모르는구나.
만약 내가 검을 썼다면 너의 몸에 몇개의 구멍을 뚫어 놨을 것이다.]

그 할머니는 냉랭히 그를 쳐다보고 있을 뿐 얼굴에는 여전히 나무토막처럼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영호충은 내심 생각하기를, (더 이상 싸워도 승산이 없다. 만약 통쾌하게 욕지거리라도 하지 않으면 너무 억울하지 않는가? 그러나 지금 나는 그녀에게 잡힌 꼴이니 이 늙은이가 내가 욕하는 것을 알아차리면 틀림없이 나에게 괴로움을 줄 것이다.)

즉시 한 방법을 생각하였다. 그래서 껄껄 웃으면서 욕을 하였다.

[못된 늙은이, 못된 할망구 같으니라구. 하나님도 네 마음씨가 나쁜 것을 아시고 타고날 때부터 네 귀를 멀게 하신 것이다. 그래서 웃을 줄도 모르고 울 줄도 모르는 바보처럼 멍청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개, 돼지라도 아마 너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는 욕을 할수록 더욱 심하게 했으며 얼굴에는 갈수록 웃음기가 번졌다. 그는 자기가 욕하고 있는 것을 이 할머니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껄껄 거짓으로 웃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욕을 하여도 그 할머니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자기의 계략이 맞아떨어진 줄 여기고 자기도 모르게 의기양양하며 진짜로 껄껄 웃기 시작하였다.
그 할머니는 천천히 그의 몸 가까이 다가오더니 단숨에 그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그를 질질 끌고 갔다. 그녀는 갈수록 더욱 걸음이 빨라져 영호충은 혈도는 찍혔지만 감각은 잃지 않고 있었으므로 몸이 땅바닥에 부딪쳐 여기저기 긁히자 너무 아픈 나머지 입으로는 계속 욕을 해댔지만 이제는 더 이상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그 할머니는 그를 뜰고서 똑바로 산위로 가고 있었다. 영호충은 지형을 살펴보았다. 그녀가 서쪽으로 꺾어 들어가자 현공사로 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영호충은 이때 이미 불계화상, 전백광, 막북쌍웅, 구송년 등이 그런 꼴을 당한 것은 다 그녀의 짓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귀신도 모르게 갑자기 나타나 꽁꽁 묶어버리는 이와 같은 괴상망칙한 짓은 그녀외에 다른 사람은 할 자가 없었다. 단지 자기가 현공사에 가서 이 귀먹은 할머니를 봤을 때 아무 느낌을 받지 못했으므로 지금에 와서 이런 실수를 한 것이다. 방증대사, 충허도장, 영영, 상관운과 같은 고수조차도 그녀를보고는 의심을 하지 않았었다. 이 귀머거리 할머니의 속임수는 정말로 대단하였다.
갑자기 또 생각이 들었다.

(이 늙은이가 나를 높은 나무에다 매달아 놓고 또 내 몸에다가 천하에서 제일 못된 놈이라고 글을 써서 붙인다면 항산파 장문인의 신분으로서 체면이 말이 아닐 것이고, 또한 하필이면 사람 같지도 않은 늙은 여자의 모습으로 변장을 하고 있으니 이거야말로 체면이 말이 아니겠구나. 다행이 그녀가 나를 끌고 현공사로 가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고 공공연히 사람 앞에 나를 내놓는다면 정말 죽을 맛이겠구나.)
오늘 저녁은 재수가 없지만 항산별원에서 높게 매달려 사람에게 자기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것만 해도 불행중에 다행이라고 생각하였다.
또 생각하기를, (이 늙은 할망구가 나의 신분을 알고 있을까? 역시 내가 항산의 장문인이니 약간의 체면을 세워주고 있는지도 모르지.)
산에 질질 끌려가면서 땅바닥에 튀어나온 돌멩이는 그의 온몸에 상처를 입게 했다. 다행히 얼굴은 윗쪽에 있었으므로 그의 오관(五官)은 상처를 입지 않았다. 그 할머니는 그를 비각으로 끌고 갔으며, 바로 좌측의 영귀각(靈龜閣)최고층으로 끌고 올라갔다.
영호충은 외쳤다.

[아이고, 큰일났구나.]

영귀각 밖에는 한개의 비교(飛橋)가 있는데, 아래는 수만길 낭떠러지였다. 그 할머니가 자기를 그 비교 위에 매달려 놓을까봐 크게 염려가 되었다. 현공사는 인적이 드물어 열흘, 한달이 지나도 사람을 보기가 힘든 곳이었다. 이 할머니가 만약 자기를 그곳에 매달아 놓는다면 굶어 죽을 것이고, 그 기분이야말로 그리 좋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 할머니는 그를 누각의 한쪽에다 쳐박아 놓더니 혼자서 아래로 내려갔다. 영호충은 땅바닥에 드러누워 이 못된 늙은이의 정체가 무엇인가 생각하였다. 그러나 아무런 단서도 잡을 수가 없었다. 틀림없이 항산파의 한명의 선배 고수이며 마치 우수(于嫂)와 같은 인물일 것이라고 짐작을 하였다. 어쩌면 그 옛날 정정, 정한 등 사태를 섬겼던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마음이 약간은 놓였다.

(내가 항산파의 장문인데 절대로 나를 그렇게 괴롭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이런 꼴로 변장을 했으니 아마 나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만약 이 늙은이가 나를 장부인(張夫人)으로 보고 고의로 자기의 모습을 하여 이곳에 와서 정탐을 하고 항산에 불리한 의도가 있다고 여긴다면 나를 가만히 두지는 않을 것이고 나에게 많은 고통을 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정말 큰일이로구나.)

계단을 오르는 발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그 할머니는 이미 올라와 있었다. 손에 든 끈으로 영호충의 손과 말을 꽁꽁 묶었다.
또 품속에서 한개의 노란천을 꺼내더니 그의 목에 걸어주었다. 영호충은 호기심이 발동하여 그 천조각에 무슨 글자들이 씌여져 있나 보려고 하였다. 그러나 바로 이때 눈이 컴컴해지면서 그녀가 이미 검은 보자기를 자기의 두눈을 가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영호충은 내심 생각하기를, 이 늙은이는 퍽이나 영리하구나. 내가 그 쪽지롤 보려고 함을 알고 보지 못하게 하는구나.)

또 생각하기를, (영호충이 천하의 부랑아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이 쪽지에는 틀림없이 좋은 말은 써 있지 않을 것이다. 보지 않아도 다 알 수가 있지.)

손과 발목이 조여오더니 몸이 허공에 둥둥 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이미 몸은 기둥 위에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영호충은 화가 충천하여 또 욕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겉으로는 비록 덤벙덤벙 거렸지만 생각이 깊었다.

(내가 이렇게 마구 욕을 해댄다면 필경 빠져나가기 어려우리라.
반드시 천천히 기를 운행하여 혈도를 풀고 일검이 손에 들어오기만 하면 그녀를 제압할 수 있다. 나도 이 늙은이를 높이 매달고 목에 노란쪽지를 하나 걸어두자. 쪽지에 무슨 글자를 쓰면 좋을까? 천하에서 제일 악독한 늙은이 아니 천하의 제일이라고 칭한다면 오히려그녀는 마음속으로 더욱 기뻐할지도 모른다. 천하의 열여덟번째로 악독한 늙은이라고 쓰자. 그녀는 아무리 생각해도 깨닫지 못할 것이다. 자기가 왜 첫번째도 아니고 열일곱번째도 아닌 열여덟번째가 되었는가를.)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더이상 숨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이미 이 늙은 노파는 아래로 내려간 것 같았다. 한 두시간 정도 매달려 있자, 영호충은 배가 고파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그러나 기를 운행해 보니 혈도가 점점 통하는 것 같아서 내심 기뻤다.
갑자기 몸전체가 움직이더니 텅 하고 소리가 나면서 마룻바닥에 굴러 떨어졌다. 그 늙은 노파가 끈을 풀어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언제 다시 올라왔는지 자기는 전혀 알 도리가 없었다.
그 노파는 눈을 가리고 있는 검은 보자기를 걷어냈다. 영호충은 목덜미의 혈도가 아직 풀리지 않았으므로 그 천조각의 글자를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언뜻보니 제일 끝에 써 있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 글자는 다름 아닌 낭(娘)이란 글자였다. 그는 암암리에 외쳤다.

(글렀구나 글렀어!)

그녀가 이 낭자를 쓴 것은 틀림없이 자기를 여자고 여기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할망구가 자기를 악독한 떠돌이라고 썼다면 그리 염려할 것이 없지만 여자로 본다면 그것은 정말로 큰 일이었다. 그 할머니는 탁자에서 그릇 하나를 가지고 왔다.
내심 생각하기를, (나에게 물을 마시게 하려고 하는가 아니면 국을 마시게 하려는가? 술이라면 더욱 좋겠지.)

갑자기 머리에 뜨거운 느낌이 들어 크게 외쳤다.

[아이고!]

그릇에 담아 있던 것은 뜨거운 물이었다. 그 뜨거운 물을 자기의 머리에 부었던 것이다.
영호충은 크게 욕을 하였다.

[이 미친 늙은이야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느냐?]

그녀가 품속에서 한자루의 머리 깎는 칼을 꺼내는 것이 보였다.
영호충은 깜짝 놀랐다. 쓱쓱 하는 소리가 나면서 머리가죽이 아파왔다. 그 노파는 지금 자기의 머리를 빡빡 깎고 있는 것이었다. 영호충은 또 놀라고 화가 났지만 이 미친 늙은이가 무슨 의도를 품고 있는지 몰랐다.
한참 지나자 머리카락은 깨끗하게 깎여져 있었다.
내심 생각하기를, (좋다! 영호충이 오늘 정말 중이 되었구나. 아이고, 큰일났네.
일이 잘못 되어서 여자차람을 하고 있으니 나는 비구니가 된거야.)

갑자기 마음이 철렁 가라앉았다.

(영영이 본래 장난으로 나보고 비구니로 변장하라고 했는데, 그말이 씨가 되었구나. 일이 참 묘하게 돌아가는데 어쩌면 이 못된 늙은이가 내가 누구라는 것을 알고서 남자가 항산파의 장문인이 된 것을 탐탁치 않게 여기고는 내 머리를 깎고, 또...... 또 나를 거세하려고 하는 것이구나. 그녀는 불계처럼 불문의 성질을 더럽히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구나. 이 할망구는 항산파에 충성한 나머지 미쳐서 무슨 일이든 다 해내는 사람일 것이다. 아이고! 나는 오늘 큰 화를 당하게 되었다. 내가 거세를 당한다 해도 절대로 벽사검법은 연마하지 말아야지.)
그 할머니는 머리를 다 깎고 땅바닥의 머리카락을 깨끗하게 다쓸어 담았다. 영호충은 내심 일이 너무나 긴박하여 내공을 운행하여 혈도를 풀려고 하였다. 몇군데 막혀져 있던 혈도가 약간 느슨해져옴을 느꼈다.
갑자기 허리, 어깨 몇군데가 마비가 되어 오더니 다시 그녀에게 혈도가 찍히었다. 영호충은 길게 탄식을 하며 욕할 기운마저도 잃었다. 그 할머니는 그의 목덜미에서 천조각을 끄집어 내어 한쪽에 놓았다. 영호충은 비로소 볼 수가 있었다. 그 천조각에는 `천하에서 눈이 제일 먼 자는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이 못된 늙은이다.'라고 씌여져 있었다. 그는 갑자기 마음속으로 외쳤다.

(알고보니 이 늙은이는 거짓으로 귀가 먹은 척하고 있었구나. 그녀는 말을 들을 수가 있어. 그렇지 않았다면 불계대사가 나보고 천하에서 눈이 제일 먼 자라고 말한 것을 그녀가 어떻게 알 수가 있단 말인가? 만약 불계대사와 딸이 말을 할 때 그녀가 옆에서 훔쳐 듣지 않았다면 의림이나하고 말하고 있을 때 옆에서 훔쳐들었던 거야. 어쩌면 두번 다 훔쳐들었는지도 모르지.)

즉시 큰 소리로 말을 했다.

[이젠 그만 본색을 드러내시오. 당신은 귀머거리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 할머니는 여전히 대꾸도 하지 않았다. 손을 내밀어 그의 옷을 풀어 헤쳤다.
영호충은 깜짝 놀라 외쳤다.

[무엇하는 짓이오.]

싹 하고 소리가 나면서 그 노파는 그의 몸에 입혀진 여자 옷을 두조각으로 찢어놓았다.
영호충은 깜짝 놀라서 외쳤다.

[당신이 내 몸에 난 털 하나라도 없앴다면 당신을 죽여서 가루로 만들 것이오.]

그러나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이미 내 머리카락을 싹뚝 잘랐는데 어찌 털 하나가 문제이겠느냐?)

그 노파는 작은 숫돌을 가져다가 숫돌에다 물을 뿌리더니 그 머리 깎는 칼을 갈고 또 갈고 손가락으로 문질러 시험을 해보고 나서 만족을 했음인지 옆에다 놓아 두었다. 그리고 품속에서 작은 자기병 하나를 꺼냈다. 그 병에는 천향단속교(天香斷續膠)의 다섯글자가 써져 있었다.
영호충은 여러차례 상처를 입어서 이 항산파의 상처를 치료하는 약을 여러번 써 보았으므로 이 병을 보자마자 그 글자를 볼 필요도 없이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를 알 수가 있었다. 또 다른 한병은 백운웅담환(白雲熊膽丸)인데 이것은 내복약이었다. 과연 그 노파는 바로 품속에서 또 한개의 자기병을 꺼내었다. 틀림없이 백운웅담환이었다. 그는 또 다시 품속에서 몇개의 하얀 천을 끄집어냈다. 그것은 상처를 싸매는 붕대였다. 영호충은 옛날에 입었던 상처가 다 나아서 다른 상처는 없었다. 저 할망구가 이렇듯이 안배를 하는 것은 분명히 자기 몸에 새로운 상처를 내려고 함이 분명하였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암암리 아뿔사 하고 외쳤다. 그 노파는 모든일의 안배를 끝내더니 두눈으로 영호충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한참 후에 그녀는 그의 몸을 일으켜 세워 널다른 탁자 위에 내려놓고 또 나무처럼 표정도 없이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영호충은 많은 경험을 하였고 몸에 깊은 상처를 받고 적에게 갇혀 있었을지라도 그리 무서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이 노파를 대하고 있자 말할 수 없이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그 노파는 천천히 칼을 집어들더니 촛불에 칼을 비춰보았다. 검의 빛이 번쩍이더니 영호충의 이마에서 식은 땀이 뚝뚝 밑으로 떨어졌다.

갑자기 그의 마음에 무엇인가 스쳐 지나갔다. 더욱 자세히 생각해볼 필요도 없이 큰 소리로 말을 했다.

[당신은 바로 불계화상의 마누라이다.]

그 노파는 멈칫하더니 뒤로 반발짝 물러서며 말했다.

[넌......넌 어떻게......어떻게 알았느냐?]

말소리를 처음에 말을 배우는 어린애처럼 이어지지가 않았다. 영호충은 처음에 이 말을 내뱉었을 때 머리속에 그리 확신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가 이렇게 말을 하지 비로소 자기가 어떻게 알았는가를 생각을 하였다. 그래서 냉소하여 말했다.

[흥, 나는 당연히 알 수가 있지. 나는 벌써부터 알아 차렸다.]
내심 신속하게 추리를 하였다.

(내가 어떻게 알았단 말인가? 맞다, 불계대사의 목덜미에는 천하에서 제일 박정하고 여자뒤만 쫓아다니는 호색가라는 쪽지가 붙어 있었는데 이 말은 불계대사를 제외하고는 오로지 그의 마누라만이 알고 있다.)

그래서 큰 소리로 말을 했다.

[당신의 마음속에는 천하에서 박정하고 여자 뒤만 졸졸 쫓아다니는 호색가를 잊지 못하구 있군. 그렇지 않았다면 그가 밧줄에 목을 걸고 자진을 하려고 했을 때 어째서 당신은 그의 목덜미에 걸려져 있는 밧줄을 끊었소? 그가 자진을 하려고 할 때 당신은 어째서 그의 병기를 훔쳐 가버렸소. 그렇게 박정하고 여자만 밝히는 자라면 죽는게 낫지 않았을까요?]

그 노파는 냉랭하게 말을 했다.

[그자......그자를 그렇게 쉽게......쉽게 죽게 내버려 둔다면 그건......정말 너무나 공평......공평하지 못한 일이지.]
영호충은 말을 했다.

[그렇소. 그는 십년동안 노심초사하여 이 세상에 안 가본데 없고 모든 비구니절은 모두 샅샅이 찾아 해매었소. 그것은 오로지 당신을 찾기 위함이었소. 그런데 당신은 이곳에 숨어서 편안히 지내고 있으니 당신을 찾는다는 것이 그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소.]
그 노파는 말을 했다.

[그것은......그것은 당연한 죄값이오. 그는 나를 아내로 맞아놓고 어째서......어째서 다른 여자를 희롱한단 말이오?]
영호충은 말을 했다.

[누가 그가 여자를 희롱했다고 하더이까? 그 여자가 당신 딸을 쳐다보니까 그도 그 여자를 쳐다보았을 뿐이고 그게 뭐 어쨌단 말이오?]

그 노파는 말했다.

[아내를 맞이한 사람은 다른 여자를 넘볼 수가 없다.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영호충은 이 여자가 퍽이나 억지를 부린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말하기를, [당신은 시집을 간 적이 있는데 어째서 다른 남자를 쳐다보았소?]

그 노파는 화가 나서 말했다.

[내가 언제 다른 남자를 쳐다보았느냐? 그런 말을 함부로 하지 말아라!]

영호충은 말을 했다.

[당신은 지금 나를 쳐다보고 있지 않소이까? 설마하니 내가 남자가 아니란 말이오? 불계화상은 단지 여자를 몇번 쳐다봤을 뿐이지만, 당신은 오히려 내 머리카락을 끌어당기고 내 머리가죽을 만지고 또 만졌소. 내가 당신에게 말하건데 남자와 여자 사이엔 몸가짐을 분명히 하여야 하오. 당신이 내 몸의 살갗을 건드렸다면 그것만으로 바로 불문의 규율을 어긴 결과가 되오. 다행히 당신은 단지 내 머리카락만 만졌을 뿐 내 얼굴을 만지지 않았소. 그렇지 않았다면 관세음보살께서 틀림없이 당신을 용서하지 않았을 것이오.]
그는 이 여자가 바깥 세상에 잘 나가지 않고 또한 세상사를 잘 모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여 그녀에게 겁을 좀 주어야만 비로소 그녀가 자기 몸에 칼을 함부로 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그 노파는 말하였다.

[내가 너의 손과 발과 머리를 베려고만 한다면 너의 몸을 건드리지 않고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

영호충은 말을 했다.

[목을 자르든지 손을 자르든지 마음대로 하시오.]

그 노파는 냉소를 하며 말을 했다.

[나는 너를 그리 쉽게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두가지 길이 있다. 네 마음대로 선택하여라. 하나는 네가 흔쾌히 의림을 아내로 맞이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그녀가 상심하여 죽지 않을 것이다. 만에 하나 네가 끝끝내 버티고 대답을 하지 않는다면 너를 거세하여 네놈을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괴물로 만들어 버릴 작정이다. 네놈이 의림을 맞이하지 않는다면 절대로 다른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십여년동안 귀머거리 행세을 하여서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혀가 이미 굳어 있었다. 한참 말을 하지 비소소 말투는 유창해지기 시작하였다.
영호충은 말을 하였다.

[의림은 물론 좋은 아가씨요. 하지만 이 세상에서 그녀의 제외한 다른 여자들은 모두 분수를 모르는 나쁜 여자들뿐입니까?]
그 노파는 말했다.

[거의 다 그렇지, 모두가 그렇고 그런 여자들이야. 너는 도대체 대답을 할 것이냐, 안 할 것이냐? 빨리 말을 해라.]

영호충은 말을 했다.

[의림 소사매는 나의 좋은 친구요. 그녀는 당신이 나를 이렇게 협박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틀림없이 화를 낼 것이오.]
그 노파는 말했다.

[네가 그 아이를 아내로 맞는다면 그녀는 기뻐할 것이고, 그런것은 다 잊어버릴 것이다.]

영호충은 말을 했다.

[그녀는 출가한 사람이고 시집을 안 간다는 맹세를 했읍니다. 만약 마음이 변한다면 보살께서 책망을 할 것입니다.]

그 노파는 말을 했다.

[네가 중이 되면 보살께서는 아마 그녀 하나만을 탓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너의 머리를 깎은 것이 괜히 깎은 줄 아느냐?]
영호충은 참을 수 없어서 껄껄껄 크게 웃으면서 말을 햇다.

[알고 보니 당신이 내머리를 빡빡 깎은 것은 중이 되어 비구니를 아내로 맞이 하라는 소리였군요. 당신 남편이 옛날에 그리했으니까 당신은 나보고 당신 남편을 본받으란 소리요?]

그 노파는 말했다.

[바로 그렇다.]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했다.

[이 세상에 머리를 깎은 사람은 많고도 많습니다. 머리를 깎았다고 다 중이 되는 것은 아니잖읍니까?]

그 노파는 말했다.

[그것은 쉬운일이지. 그것은 내가 너의 정수리에다 중이 되었음을 나타내는 향불로 점을 찍으면 그만 아니냐? 머리를 빡빡 깎았다고 반드시 중이 되는 것이 아니라면 빡빡머리에 또 향으로 지져놓으면 그것이야말로 중이 되는 것이다.]

말을 하면서 손을 쓰려고 하였다.
영호충은 급히 말하였다.

[천천히 하시오, 천천히. 중이 된다면 자진해서 되야지 어찌 이렇게 강제로 할 수 있읍니까?]

그 노파는 말했다.

[중이 되지 않겠다면 너는 내시가 되어라.]

영호충은 내심 생각을 하였다.

(이 늙은 노파는 약간 미친 듯하니 아마 무슨 짓이라도 해낼 것이다. 반드시 먼저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야겠다.)

그래서 말하기를, [당신이 나를 내시로 만들어 놓은 다음에 갑자기 내 마음이 돌아서서 의림소사매를 아내로 맞이하고 싶어지면 그때 가선 어떻게 하겠소? 두 사람의 일생을 망치는 것이 아니오.]

그 노파는 화가 나서 말했다.

[무예를 배우는 사람은 무슨 일이든지 화끈하게 해야 된다. 한마디로 결정을 해놓고 무슨 마음이 돌아서고 돌아서지 않고가 어디 있느냐? 중이 되려면 중이 되고 내시가 되려면 내시가 되지 대장부가 어찌 그리 질질 끄느냐?]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했다.

[내시가 되면 대장부가 되지 못합니다.]

그 노파는 화가 나서 말했다.

[누가 너하고 농담을 하지고 그랬느냐.]

영호충은 내심 생각하였다.

(의림 소사매는 온화하고 아름답다. 그녀는 나에게 마음을 두고 있지만, 내 마음은 이미 영영에게 있는데 어찌 배반할 수 있겠느냐? 이 늙은 할망구가 이렇듯이 무례하게 협박한다고 해도 대장부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굴복하지는 않겠다.)

그래서 말을 했다.

[한 말씀만 여쭤 보겠읍니다. 대장부가 박정하고 여자 뒤꽁무니만 졸졸 쫓아다니는 호색가라면 좋은 일입니까 나쁜 일입니까?]
그 노파는 말했다.

[그건 물어볼 필요도 없지 않느냐. 그런 사람은 개 돼지만도 못한데 어찌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느냐?]

영호충은 말했다.

[맞소, 의림 소사매는 아름답고 나에게 그지없이 잘 대해주고 있소. 그런데 내가 왜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지 않습니까? 단지 나는 벌써 다른 한 아가씨에게 혼인의 약속을 하였고 이 아가씨는 내게 있어서 그 은혜가 하늘과 같습니다. 설사 당신에게 온몸을 난도질을 당한다 해도 나는 절대로 그녀의 기대를 저버릴 수가 없읍니다. 만약 그녀를 배반한다면 천하에 제일 박정한 사람이 되고 여자의 몸만 탐닉하는 호색가가 되지 않겠읍니까? 불계대사의 이런 천하 제일이라는 호칭을 어찌 이 영호충이 빼앗아 와야 하는가요.]
그 노파는 말했다.

[네가 말하는 그 아가씨는 마교의 임소저이고 마교의 교중들이 이곳에서 너를 포위하고 있을 때 바로 손을 써서 구해준 자이지?]
영호충은 말을 했다.

[바로 그렇소. 그 임소저를 당신도 두눈으로 친히 보았을 것이오.]

그 노파는 말했다.

[그 일은 간단하지. 내가 임소저로 하여금너를 포기하도록 하겠어. 그녀가 스스로 너를 배반케 하되 네가 그녀를 배반하지 않게 하면 되지 않겠느냐.]

영호충은 말했다.

[그녀는 절대로 나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 그녀는 기꺼이 나를 위해서 목숨을 버릴 것이고, 나 또한 그녀를 위하여 기꺼이 목숨을 버릴 것이오. 나는 절대로 그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고 그녀 또한 내 기대를 절대로 저버리지 않을 것이오.]

그 노파는 말했다.

[일이 막판에 이르면 그녀도 별 수가 없겠지. 항산 별원에는 쓸모없는 남자들이 수없이 많으니 아무나 한놈 잡아서 그녀의 남편으로 만들어 주면 되겠지.]

영호충은 노해서 일갈했다.

[함부로 지껄이지 마시오.]

그 노파는 말했다.

[왜 내가 그 일을 못할 것 같으냐?]

걸어나가더니 옆방문을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노파는 다시 방 안으로 들어왔다. 손에는 한 여자가 들려져 있었는데 손과 다리가 꽁꽁 묶여져 있었다. 바로 영영이었다.
영호충은 깜짝 놀랐다. 영영이 이 여자의 손에 잡혀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다. 그녀의 몸에 아무런 상처가 없는 것을 보고는 약간 마음이 놓였다. 그래서 외쳤다.

[영영, 당신도 왔구료.]

영영은 웃더니 말했다.

[당신들이 말하는 소리를 나는 모두 들었읍니다. 당신이 절대로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나는 무척 기뻤읍니다.]

그 노파는 일갈을 했다.

[내 눈앞에서 창피한 줄도 모르고 그런 말은 하지 말아라. 아가씨, 아가씨는 중이 좋겠는가 내시가 좋겠는가.]

영영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당신의 말은 정말로 듣기가 민망하군요.]

그 노파는 말을 했다.

[내가 곰곰히 생각해 보니 영호충 이놈에게 너를 포기하고 의림을 맞이하라고 한다면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

영호충은 큰 소리로 갈채를 보냈다.

[당신이 입을 열어 말한 이래 제일 멋진 말이오.]

그 노파는 말했다.

[이 늙은이가 선심 쓰는 셈치고 양보를 하지. 영호충, 네 놈은 두명을 아내로 맞이해야 한다. 네가 중이 된다면 두사람을 다 맞이해야 하고 내시가 된다면 한명의 아내도 거느릴 수가 없다. 단지 결혼을 한 뒤에 절대로 내 착한 딸을 괴롭히지 말아라. 네 나이가 의림보다 몇살 많은 것 같으니 그렇다면 의림으로 하여금 언니라고 부르게 하면 되겠구나.]

영호충은 말을 했다.

[난......]

그는 단지 나라고 말했을 때 아혈이 마비가 되더니 그녀에게 혈도를 찍혀서 더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 노파는 곧바로 영영의 아혈을 찍더니 말을 했다.

[이 어르신이 결정한 일은 너희들이 이러쿵 저러쿵 절대로 하지 못한다. 너로 하여금 두명의 꽃과 같고 옥과 같은 마누라를 맞이하게 하겠다는데 무슨 잔소리가 그리 많으냐? 흥, 불계 이 중놈은 무슨 쓸모가 있느냐? 딸아이가 상사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는데 수수방관만 하고 있으니. 이 어르신이 손을 쓰면 이렇게 간단한 것을.]

말을 하면서 몸을 날려 방을 나갔다. 영호충과 영영은 서로 마주 쳐다보고 씁쓸히 웃었다. 말도 할 수 없을 뿐더러 손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영호충은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아침 햇살이 막 떠 올라 빛이 창문을 통해 비추어 들어왔고, 책상 위의 빨간 초는 아직 꺼지지 않았으므로 계속해서 흐느적거렸다. 영영의 백옥 같은 얼굴이 햇빛을 받아 더욱 아름다왔다. 그녀의 눈빛은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칼을 봤다. 그리고 바로 또다시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약병과 붕대를 보고는 얼굴에는 조롱의 빛을 나타냈다. 그를 놀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즉시 눈빛을 돌리어 아래로 향하였다. 얼굴에는 빨간 홍조가 떠올랐다. 이 일은 말할 수도 없을뿐더리 생각조차도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영호충은 그녀의 얼굴에 부끄러움이 일어나는 것을 봤다. 마치 낯 뜨거운 짓을 하여 자기에게 잡힌 표정이었다.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불덩어리가 되어오며 계속해서 이런 생각을 하였다.

(내가지금 몸이 자유로와질 수만 있다면 즉시 달려가서 그녀를 껴안고 입맞춤을 해야겠다.)

그녀의 눈빛이 천천히 자기 쪽으로 다가왔다. 영호충과 눈빛이 마주쳤을 때 급히 피하였다. 뺨에는 홍조가 이미 사라졌으나 갑자기 또 얼굴이 새빨개졌다.
영호충은 내심 생각하기를, (나는 영영에 대해서 당연히 지조를 지켜야 한다. 그 못된 여자가 나와 의림 소사매를 결혼하도록 억압을 하고 있는데 몸을 빠져나가기 위해서라도 잠시 하는대로 내버려두자. 좀 있다가 그녀가 나의 혈도를 풀어주면 내 수중에 지금 검이 있으니 그녀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이 악독한 여자의 권법은 쓸만하지만 좌랭선, 임교주 그들과 비교할 때 아직도 한참 아래일 뿐 아니라 검의 공력은 절대 나의 적수가 되지 않는다. 이 늙은 노파의 장기라면 손의 동작이 빠르고 소리도 없이 급습을 하므로 방비할 틈이 없는 것이다. 진정 싸운다면 영영은 그녀를 이길 것이고 불계대사의 공력도 그녀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는 이런 생각을 하자 안심이 되어 마음이 놓였다. 눈빛을 돌려보니 영영이 자기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번에는 부끄러운 표정이 없었다. 그녀는 더 계속해서 내시에 관한 일을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녀는 자기를 쳐다보고 입가에는 웃음을 흘리고 있었는데, 그것은 단지 자기의 머리가 깎이어 대머리가 되어 있는 것을 보고 웃는 것이지 내시에 관한 일을 생각하고 그러는 것은 아니라는 증거이다. 영호충은 껄껄 웃었으나 웃음소리는 터져 나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영영은 더욱 기쁘게 웃는 것 같았다.
갑자기 그녀의 눈동자가 몇바퀴 돌리더니 교활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눈을 깜빡이고 또 한번 깜빡이었다. 영호충은 그녀의 의도를 확실히 알 수가 없었다.
그녀가 좌측 눈을 두번 깜빡이자 내심 생각하기를, (연신 두번 눈을 깜빡였다. 그것은 무슨 뜻일까? 그래, 그녀는 내가 마누라 둘을 얻게 됨을 비웃고 있는 것이다.)

즉시 좌측눈을 한번 깜빡였다. 웃는 얼굴을 거두고 얼굴의 표정은 매우 엄숙하게 변해 있었다. 그 뜻은, (나는 당신 하나만으로 족하지 절대로 두마음을 품고 있지 않소.)

영영은 약간 고개를 흔들며 좌측눈을 두번 깜빡거렸다. 그 뜻은 마치, 마누라 둘을 얻게 되면 얻으세요라고 말하는 듯하였다.
영호충은 또 고개를 흔들며 좌측눈을 한번 깜빡거렸다. 그는 고개를 흔들면서 힘을 주어 자기의 강력한 의지를 나타내려고 했으나 온몸의 혈도가 막혀 있어서 힘을 쓸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얼굴을 표정은 진지하기 이를 데 없었다. 영영은 약간 고개를 끄덕이며 눈빛은 또 그 칼에 와 멎었다. 다시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영호충은 두눈으로 똑바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영영의 눈빛은 천천히 이동을 하더니 그와 딱 마주쳤다. 두사람의 거리는 한장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두쌍의눈이 서로 쳐다보니 이제는 더이상 서로가 말이 필요 없었다. 오히려 상대방의 마음을 더욱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의림을 맞이하느냐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고 중이 되느냐 내시가 되느냐 그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두사람이 죽든지 살든지 이미 한마음이 된 이상 서로 만족하고 있었다. 눈앞에 둘이 이렇게 마주하고 있는 이 순간은 설령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진다 해도 이 시간이야말로 절대로 가져갈 수 없고 끊어놓을 수도 없는 것이었다.
두사람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한참동안 쳐다보았다. 얼머나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계단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계단에서 어떤 사람이 누각 위로 걸어오고 있는 것이다. 두사람은 비로소 꿈속에 취해 있는 상태에서 현실로 돌아왔다.
한 여자의 맑고 깨끗한 음성이 들려왔다.

[귀머거리 할머니, 당신은 왜 나를 이곳으로 데려왔읍니까?]
바로 의림의 목소리였다. 그녀가 옆방에 들아와 앉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노파도 틀림없이 그녀와 함께 있을 것이라는 짐작이 들었다. 그러나 그녀의 움직이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한참 지나자 그 노파가 천천히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보고 이제는 귀먹은 할머니라고 부르지 말아라. 나는 귀머거리가 아니다.]

의림은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극히 놀래는 듯하였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당신은......당신은 귀가 먹지 않았군요! 정상인으로 회복이 되었읍니까?]

그 노파는 말했다.

[난 옛날부터 벙어리가 아니다.]

의림은 말했다.

[그럼......그럼......당신은 옛날부터 귀가 먹지 않고 옛날부터......옛날부터 내 말을 모두 알아 들었군요.]

말투 속에는 극히 놀랜 빛이 역력하였다.
그 노파는 말했다.

[얘야, 넌 무엇을 무서워하느냐? 내가 너의 말을 알아 들을 수 있다면 그것은 더욱 좋지 않니?]

영호충은 그녀의 말투 속에 자상하고 친절함이 배어 있음을 알수 있었다. 자기가 낳은 친딸하고 이야기하고 있으니 어머니의 정이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의림은 매우 당황하여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나는 가겠읍니다.]

그 노파는 말했다.

[좀더 앉아 있거라. 너는 나하고 급히 상의할 것이 있다.]
의림은 말했다.

[아닙니다, 나는......듣지 않겠어요. 당신은 지금까지 나를 속여 왔읍니다. 나는 단지 당신이 내 말을 알아 들을 수 없는 줄로 만 알고 있었읍니다. 그래서 난......당신에게 그런 말을 한 것입니다. 당신은 날 속였어요.]

그녀의 목소리를 흐느끼고 있었고 이미 너무 당황하여 울기 시작하였다. 그 노파는 가볍게 그녀의 어깨를 툭툭치면서 부드럽게 말했다.

[애야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속이려 했던 것은 아니다. 나는 네가 그 모든 것을 가슴에 묻어 두고 있다가 병이라도 날까봐 그래서 못들은 척했던 것이다. 나는 항산에 와서 줄곧 말을 못하고 귀가 먹은 척하였기에 그 누구도 내 신분을 알지 못한다.
결코 고의로 너를 속이려든 것은 아니었다.]

의림은 계속해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고 있었다.
노파는 또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네게 한가지 좋은 일이 있어 너에게 말하겠다. 네가 듣는다면 분명히 기뻐할 것이다.]

의림은 말했다.

[나의 아버님에 관한 일입니까?]

노파는 말했다.

[너의 아버지, 흥 나는 그를 상관도 않는다. 바로 너의 영호 오라버니에 관한 일이다.]

의림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절대로 그런 말을......그런 말은 하지 마세요. 나는......나는 영원히 그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가서 경을 읽겠읍니다.]

노파는 말을 했다.

[아니다, 너는 잠시만 더 내 말을 끝까지 들어라. 너의 영호오라버니는 나에게 말하기를, 마음속으로 너를 그 마교의 임소저보다도 백배 천배 더욱 사랑한다고 하였다.]

영호충은 영영을 향해서 한번 쳐다보더니 마음속으로 욕지거리를 하였다.

(저런 못된 늙은이 같으니라고 대낮부터 무슨 저런 새빨간 거짓말을 할까.)

의림은 한숨을 쉬더니 가볍게 말을 했다.

[당신은 나를 달래여고 그러지 마세요. 내가 처음 그를 알았을때 오로지 그는 그의 소사배만을 죽도록 좋아했읍니다. 마음속으로는 오직 그 소사매 뿐이었읍니다. 나중에 그 소사매가 그에게 하지 못할 짓을 하고 다른 사람에게 시집가 버리자, 그는 별수없이 임소저를 사랑하게 되었지만 나중에는 목숨을 바쳐 사랑하게 됐읍니다.
지금 그의 마음속에는 오로지 임소저뿐입니다.]

영호충과 영영은 서로 마주보며 마음속으로는 달콤하기 짝이 없었다.
그 노파는 말했다.

[사실, 그는 계속해서 너를 좋아하고 있었던거야. 단지 너는 출가한 사람이고 그는 또한 항산파의 장문인이라 그런 뜻을 말할 수 없었을 뿐이지. 그는 지금 크나큰 결심을 하여 너를 맞이하려고 작정을 하였다. 그래서 먼저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지.]

의림은 또 깜짝 놀라더니 말했다.

[아닙니다......아닙니다......절대로 그럴 수가 없읍니다. 안됩니다. 안 됩니다. 그럴 수는 없읍니다. 당신은......당신은 그에게 중이 되라고 말하지 마세요.]

그 노파는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이미 늦었다. 그는 이미 중이 되었다. 그가 말하기를 어쨌든간에 반드시 너를 아내로 맞이해야겠다고 말했어. 만약너를 맞이하지 않는다면 그는 자진을 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내시가 될 것이야.]

의림은 말했다.

[내시가 된다고요. 나의 사부님이 말씀하시길 그것은 천한 사람이 하는 말이고 우리 출가한 사람은 입네 담을 수 없는 말이라 하였읍니다.]

노파는 말했다.

[내사라는 말은 그리 나쁜 말이 아니다. 그것은 황제, 황후를 시중드는 아랫사람일 뿐이다.]

의림은 말했다.

[영호 오라버니는 구속되기를 싫어하고 남을 구속하는 것 또한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그 어찌 기꺼이 황제나 황후를시중들려 하겠읍니까? 그는 황제를 하기도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황제를 시중드는 것은 고사하고 그는 물론 내시도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노파는 말했다.

[그는 임소저도 아내로 맞이할 것이고 너도 아내로 맞이할 것이다. 알았느냐, 두명의 아내를 맞이한다는 것이다. 이 세상의 남자들 가운데 아내를 셋, 넷씩 거느리고 있는 사람도 있는데 그까짓 둘이라면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의림은 말했다.

[그럴 리는 없읍니다. 어떤 한 사람이 만약 어느 누구를 사랑하고 있으면 그 사람은 오직 그 한사람만을 생각해야 합니다. 아침에도 생각을 해야 하고 저녁에도 생각을 하애 하고 밥 먹을때도 잠잘 때도 생각을 해야합니다. 어떻게 다른 사람을 생각할 수 있겠읍니까? 마치 나의 아버지처럼......어머니가 떠나신 직후 아버님은 온 천하를 휘집고 다니면서 샅샅이 어머니가 가신 곳을 찾아다녔읍니다. 이 세상에 여자는 많고 많습니다. 만약 두여인을 얻을 수 있다면 어째서 나의 아버님은 또 다른 아내를 맞이하지 않았을까요?]
노파는 묵묵히 한참동안 듣고만 있다가 탄식을 하며 말했다.

[그는......그는 옛날에 잘못한 것을 나중에 후회를 한 걸거야.]

의림은 말했다.

[나는 가겠읍니다. 할머니, 할머니가 다른 사람에게 영호 오라보니가 다른 누구 누구를 아내로 맞이하려 한다는 말을 한다면 나는 정말로 죽어 버리겠읍니다.]

노파는 말했다.

[그것은 또 어떤 연유에서이냐. 그는 말하기를 너를 반드시 아내로 맞이하겠다고 하였다. 너는 그게 기쁘지 않느냐?]

의림은 말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나는 항상 그를 생각하고 있고 항상 보살님에게 그를 편안히 있을 수 있도록 보호해 달라고 축원을 하고 있읍니다. 오로지 그가 별탈없이 마음속으로 원하는대로 그 임소저와 결혼을 할 수 있도록 바라고 있을 뿐입니다. 할머니 나는 단지 그가 마음속으로 나를 생각하길 바라고 있었을 뿐 그에게 나를 아내로 맞이해 달라고 바란 적은 없었읍니다.]

노파는 말했다.

[그가 만약 너를 아내로 맞이하지 않는다면 그는 살아 있어도 별로 즐겁지 아니할거야.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아 가겠느냐.]
의림은 말했다.

[모두 나의 잘못이예요. 단지 당신이 말을 알아 듣지 못하는 줄로만 알고는 당신에게 그 많은 영호 오라버니에 관한 일을 말씀드렸던 것인데......그는 당세의 대영웅이고 대호걸이십니다. 나는 단지 아무것도 모르는 비구니일 뿐입니다. 영호 오라버니께서 말씀하시길 비구니를 보기만 하면 재수가 없다고 하였읍니다. 나를 보면 재수가 없을텐데 어째서 나를 아내로 맞이할 수가 있겠읍니까? 나는 출가를 하여 법문에 들어왔으니 응당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올바른 일을 행하여야 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을 생각하지 않겠읍니다. 할머니, 할머니도 절대로 다시는 그 얘기를 꺼내지 마세요. 나는......나는 앞으로 절대로 당신을 만나지 않겠어요.]
노파는 급해서 말을 했다.

[너는 정말로 알쏭달쏭한 애로구나. 영호충은 이미 너를 위해서 중이 되었고 반드시 너를 아내로 맞이할 것이라고 약속하였다. 만약 보살께서 책망을 하시더라도 오직 영호충 그가 책망을 받을 것이다.]

의림은 가볍게 탄식하더니 말을 했다.

[그가 나의 아버지처럼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고 보십니까? 틀림없이 그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나의 어머니를 영리하고 아름답고 부드러우시고, 온화한 사람이고 모든 사람들에게 잘 대해주시는 이 세상에서 제일 좋으신 여자입니다. 아버님이 어머니 때문에 중이 된 일을 마땅한 일입니다. 나는......나는 어머니의 반쪽도 따라갈 수 없읍니다.]

영호충은 내심 암암리에 웃었다.

(너의 어머니는 총명하고 아름다운 것은 고사하고 너와 비교해 보더라도 그녀는 너의 반쪽도 따라가지 못한다.)

노파는 말을 했다.

[너는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었느냐?]

의림은 말했다.

[나의 아버님은 매번 나를 보실 때마다 항상 어머니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읍니다. 어머니는 온순하고 점잖으시며 절대로 욕을 하지 않고 성질도 부리지 않는 분이라고요. 일생동안 기어다니는 개미조차도 한마리 밟아 죽이지 않으셨고, 천하의 좋은 여자를 모두 묶어 놓아도 나의 어머니와 비교할 수 없다고 아버님은 말씀 하셨읍니다.]

노파는 말했다.

[그가 정말로......정말로 그렇게 말을 했느냐. 아마......아마 거짓일 것이다.]

말을 하면서 목소리는 떨려 왔고, 퍽이나 감동을 받은 듯하였다.
의림은 말했다.

[물론 정말입니다. 아버지가 어째서 나를 속이겠읍니까?]
삽시간에 영귀각에는 침묵이 흘렀다. 노파는 침묵속에 빠진 것 같았다.
의림은 말했다.

[귀머거리 할머니, 나는 가겠읍니다. 앞으로는 절대로 영호 오라버니를 만나지 않겠어요. 나는 단지 날마다 관세음보살님께 그를 지켜달라고 축원을 하겠읍니다.]

발걸음소리가 나면서 의림은 천천히 아래로 걸어 내려갔다.
한참 후에 노파는 마치 꿈속에서 깨어난 것처럼 낮은 소리로 중얼중얼대었다.

[그가 나보고 천하에서 제일 좋은 여자라고 말을 했다고, 온 천하를 돌아다니면서 나를 찾았다고, 그렇다면 그는 박정한 사람도 아니고 여자 뒷꽁무니나 따라 다니는 호색가도 결코 아니다.]
갑자기 목소리 높여 외쳤다.

[의림아, 의림아, 게 있느냐?]

그러나 의림은 벌써 멀리 가버렸다.
노파는 또 두번 외치더니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자 급히 아래로 달려 내려갔다. 그녀는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발걸음 소리는 점점 작아 졌으며 이제 거의 들을 수가 없었다.

영호충과 영영은 이렇게 말없이 서로를 쳐다보는 동안 모든 감정이 교차되었다. 햇빛은 창을 통해서 비춰들어와 방바닥에 놓여진 약병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이 났다.
영호충은 내심 생각하기를, (악몽이 이렇게 끝이 날 줄은 생각지도 못하였다.)

갑자기 현공사 아랫쪽에서 은은하게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리가 멀어서 분명하게 들을 수는 없었으나 한참 지나자 어떤 사람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영호충은 외쳤다.

[여기 사람이 있읍니다!]

이렇게 소리지르고 나자 비로소 자기의 아혈이 이미 풀어졌음을 알았다.
아혈은 사람 몸에 제일 옅은 곳에 있었고 그의 내공은 영영보다 비교적 강했으므로 스스로 풀어졌던 것이다.
영영은 고개를 약간 꼼짝거렸다. 영호충은 손과 다리를 움직이려 하였으나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잠시 후 칠팔 명의 떠드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현공사로 들어오는 것 같았다. 이어서 영귀각의 계단을 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목소리가 굵은 사람이 숨을 헐떡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현공사에는 쥐새끼 한마리도 보이지 않는데 무엇을 찾는단 말씀입니까?]

바로 두타 구송년(頭陀仇松年)이었다.
서보화상이 말했다.

[윗분의 명령이니 그래도 명령대로 하는게 낫지 않소.]
영호충은 급히 기를 운행시켜 혈도를 풀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의 내공은 주로 다른 사람의 기로 충만되어 있어서 강했지만, 자기 마음대로 스스로 기를 운행시킬 수는 없었다. 마음이 급해지자 혈도는 더욱 풀려지지 않았다.
엄삼성(嚴三星)은 말했다.

[악선생께서 일이 성공하면 벽사검법을 우리에게 전수한다고 했는데 내가 보기에 그것은 믿을 수가 없는 말이오. 이번에 항산에 와서 일을 처리하여 성공을 한다 해도 공을 세운 사람이 이렇게 많고 또 우리는 무슨 큰 힘을 쓴 것도 아닌데 그가 무엇 때문에 우리에게 벽사검법을 전수해 주겠읍니까?]

말하는 동안에 몇 사람은 이미 올라왔다. 문을 밀치고 들어와 영호충과 영영 두 사람의 손과 다리가 꽁꽁 묶여 기둥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고 일제히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활불유수(滑不留手)유신이 말하기를, [임소저께서 어떻게 이곳에 계십니까? 아! 옆에는 한명의 중이 있구료.]

장부인은 말을 했다.

[어떤 놈이 이렇듯 임소저에게 무례한 짓을 했소?]

영영의 몸에 다가가더니 기둥에 묶여 있는 끈을 풀어 주었다. 유신이 말했다.

[장부인, 잠깐만 기다리시오. 잠깐만!]

장부인은 말했다.

[왜 기다리라고 하십니까?]

유신은 말했다.

[이것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옥령도인은 갑자기 외쳤다.

[어! 이것은 중이 아니라 바로......바로 영호장문 영호충입니다.]

몇사람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영호충을 쳐다보니 금방 알 수가 있었다. 이 여덟사람은 평소 영영을 어려워했고 또한 영호충에게는 무척이나 두려움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 얼굴만 마주보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엄삼성과 구송년은 갑자기 동시에 말을 했다.

[이건 크나큰 공을 세울 기회이오.]

옥령도인은 말을 했다.

[그렇소, 우리가 그 많은 비구니들을 다 잡아들인다 해도 그 무슨 대수입니까? 항산파의 장문인을 잡아야 크나큰 공이 아니겠소.
이번에야말로 악선생은 우리들에게 벽사검법을 전수해 주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오.]

장부인은 물어봤다.

[그렇다면 어찌 하시렵니까?]

여덟 사람음 마음속으로 모두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만약 임소저를 풀어준다면 영호충을 잡는 것은 고사하고 우리들 몇사람의 목숨조차도 보전하기 어려울 것이다.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그러나 영영의 막강한 세력을 생각할 때 그녀를 풀어주지 않는다면 그 화근이야말로 실로 대단할 것이다.)

유신은 낄낄 대며 말을 했다.

[옛말에 이르기를 도량이 작은면 군자가 아니라고 했고 독한 사람은 대장부가 아니라고 하였소. 군자가 아니 되어도 그만이고 대장부가 되지 못한다고 해도 그것은 아까운 일이 아니오만 이 기회만큼은 정말로 아깝소이다.]

옥령도인은 말했다.

[당신의 말은 이들을 없애버리고 서로 입을 틀어막자는 소리가 아니오?]

유신은 말을 했다.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소. 당신이 말한 것이지.]
장부인은 매서운 목소리로 말을 했다.

[성고(聖姑)께서는 우리에게 크나큰 은혜를베푸셨는데 누구든지 성고에게 예의없이 군다면 맨먼저 내가 가만있지는 않을 것이오.]
구송년은 말을 했다.

[사태가 지금애 이르렀는데 그녀를 풀어준다면 그녀가 우리들의 호의를 알아 주기나 한단 말입니까? 더우기 우리가 영호충을 잡아가는 것을 그녀가 어찌 눈뜨고 보고 있겠읍니까.]

장부인은 말을 했다.

[우리는 좋든 싫든 항산파에 들어와 있소. 그들의 스승을 능멸하고 반약을 하는 것은 의로운 일이 아닙니다.]

말을 하면서 영영의 결박을 풀어주려고 하였다.
구송년은 매서운 목소리로 일갈했다.

[잠깐만!]

장부인은 화가 나서 응수했다.

[당신이 그렇게 큰 소리로 호통을 친다고 내가 무서워할 줄 아시오?]

구송년은 칼집에서 계도(戒刀)를 빼들었다. 장부인의 행동 또한 민첩하여 재빨리 품속에서 단도를 꺼내더니 영영의 손과 발을 묶고 있는 끈을 풀었다.
그녀는 영영의 무공이 강하므로 그녀의 결박을 풀어 주기만 한다면 일곱 사람이 떼를 지어 공격을 하더라도 그리 두려울 것은 없다고 생각하였다. 검광이 번쩍이더니 구송년은 단칼을 내리쳤다. 장부인은 싹싹 소리를 내며 단도로 연신 삼도를 내리찍어 구송년을 뒤로 두발짝 물러나게 하였다. 나머지 사람들은 영영의 결박이 풀어지자 은근히 두려운 생각이 들어 문쪽으로 물러서 다투어 아래로 뛰어 내려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영영이 땅바닥에 떨어지고도 몸을 일으켜 세우지 못하는 것을 보고 그녀가 혈도를 찍혔음을 알고는 천천히 몸을 돌려 돌아왔다.
유신은 교활하게 웃더니 말했다.

[내가 말하지 않았읍니까? 우리는 모두 사이가 좋은 친구들인데 왜 서로가 죽이려 하고 있읍니까? 그렇게 되면 우리의 우애가 끊어지지 않습니까?]

구송년은 외쳤다.

[임소저의 혈도가 풀어지면 우리가 살 수 있다고 보시오?]
그의 검은 또다시 장부인을 향해서 덮쳐들어갔다. 계도와 단도가 서로 부딪쳐 삽시간에 매우 격렬하게 싸움을 하였다. 구송년은 몸집이 크고 강하였고 계도 또한 심히 무거웠다. 그러나 장부인이 몸을 바싹 들이대고 육박전을 전개하지 구송년은 칼을 휘두를 수가 없었다.
유신은 웃으면서 말하였다.

[싸우지 마시오. 싸우지 마시오. 할말이 있으면 천천히 상의를 합시다.]

부채를 가지고 가까이 다가가 말을 붙이려고 하였다.
구송년은 일갈을 하였다.

[꺼져라. 왜 방해를 하려고 하는거냐!]

유신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그러지요. 그러지요.]

몸을 돌려 갑자기 우측 손을 잽싸게 내밀자 장부인은 비명소리를 질렀다. 유신이 손에 들고 있었던 그 강철로 된 부채살이 이미 그녀의 목덜미에 박혀져 있었다.
유신은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는 모두 한 패거리이므로 당신에게 칼을 쓰지 말라고 권고하지 않았소. 당신이 이렇듯이 내 말을 듣지 않으니 우리들의 기분을 몹시 상하게 한게 아니겠소?]

부채를 뽑아 버리자 장부인의 목구멍에서는 빨간 피가 펑펑 쏟아져 나왔다. 행동은 실로 뜻밖이었다.
구송년은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서면서 욕을 하였다.

[제미랄, 나를 도와 주었군.]

유신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당신을 도와주지 않는다면 누굴 도와 준단 말입니까?]
몸을 돌려 영영을 향해서 말을 했다.

[임소저, 당신은 임교주의 딸이라, 우리 모두가 당신 아버지의 체면 때문에 예를 갖추고 있는 것이오. 그러나 우리가 당신을 두려워하고 존경하는 진정한 이유는 바로 당신의 그 삼시뇌신단의 해독약 때문이오. 그 해독약을 우리에게 주시오. 그 해독약이 없다면 당신의 존재는 우리에게 더이상 필요가 없소.]

여섯 사람은 일제히 말을 했다.

[옳소, 옳소. 그 해독약을 빼앗고 그녀를 죽여서 입을 막게 합시다.]

옥령도인은 말했다.

[우리들 모두가 먼저 맹세를 해야 합니다. 이 일을 누설하는 자가 있다면 몸에 있는 삼시뇌신단이 즉시 발작을 할 것이오.]
모두들 영영을 죽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임아행이 떠오르자 두렵고 무서운 생각을떨칠 수가 없었다. 이일이 누설된다면 강호가 아무리 넓다 해도 자기들이 숨어 있을 곳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즉시 그들은 맹세를 하였다.
영호충은 그들이 맹세가 끝나면 즉시 영영을 죽일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급히 내공을 운행하여 막혀 있는 혈도를 풀려고 하였다. 그러나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그는 다급해서 영영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아름다운 두눈은 자기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고 그 반짝거리는 눈빛에는 아무런 두려움이 나타나 있지 않았다.
그래서 영호충은 마음이 놓여 생각을 하였다.

(어차피 죽어야 한다면 우리 두사람이 동시에 죽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구송년은 유신을 향해서 말을 했다.

[빨리 처치하시오.]

유신은 말했다.

[구두타(仇頭陀)께서는 모든 일을 깨끗하게 처리하고 영웅의 기개를 제일 높게 간직하신 분이니 아무래도 구형(仇兄)께서 처치하심이 어떨는지요.]

구송년은 욕을 하고 말을 했다.

[네가 내리치지 않는다면 내가 네놈을 내리치겠다.]

유신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구형께서 못 하시겠다는데 엄형(嚴兄)께서 하시면 어떻겠소?]
구송년은 욕을 하며 말을 하였다.

[제미랄! 내가 어째서 못한단 말이냐? 오늘 이 어르신은 단지 사람을 죽이고 싶지 않을 뿐이다.]

옥령도인은 말했다.

[누가 죽이든 간에 똑같소. 어차피 그 누구도 발설하지 않을 테니까요.]

서보화상은 말을 했다.

[그렇다면 도형(道兄)께서 죽이는게 어떻겠소?]

엄삼성은 말했다.

[왜 서로가 미루기만 하는거요. 솔직히 터놓고 이야기 하자면 우리들은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소. 그러나 모두들 병기를 뽑아들고 임소저를 편안하게 가도록 합시다.]

그들은 비록 흉악하기 짝이 없는 무리들이었고 서로가 결의를 하여 영영을 죽이려고 작정을 하고 있었으나 그녀를 우롱하는 말은 하지 못하였다.
유신은 말했다.

[잠깐만 내가 먼저 해독약을 찾아내고 봅시다.]

구송년은 말했다.

[어째서 당신이 먼저 찾아내려고 하시오. 그걸 손아귀에 넣으면 그것을 가지고 당신은 분명히 우리들을 협박할테니 내가 꺼내도록 하겠소.]

유신은 말했다.

[당신이 꺼낸다고 해도 당삥니이 그것을 가지고 협박하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하겠소?]

옥령도인은 말했다.

[절대로 시간을 끌면 안 되오. 이러다가 그녀의 혈도가 풀어지면 큰일이오. 먼저 죽여놓고 다시 약을 분배하도록 합시다.]
그의 칼집에서 싹 하고 소리가 나더니 칼을 뽑아들었다.
나머지 사람들도 병기를 뽑아들고 영영의 주위를 에워쌌다.
영영은 마지막 손간이 다가온 것을 알고는 눈도 한번 깜박이지 않고 영호충을 바라다보고 있었다.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엄삼성은 외쳤다.

[내가 하나 둘 셋 하고 외칠테니 모두들 동시에 내리칩시다. 하나, 둘, 셋.]

그가 셋 하고 소리를 질렀을 때 일곱개의 병기를 동시에 영영의 몸을 향해 내리쳤다. 그런데 일곱개의 병기를 그녀 몸 가까이 다가가더니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멈추고 말았다.
구송년은 욕을 하였다.

[째째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어째서 내리치지 않고 있소. 자기가 내리치지 않았다고 그 죄가 없는 줄 아시오.]

서보화상은 말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어떠하오. 당신의 계도 또한 내리치지 않고 이렇듯 멈추어 있지 않소.]

일곱 사람은 모두가 다른 사람이 먼저 영영을 죽이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자기 병기에 피를 묻히고 싶지 않았으며 더우기 평소에 존경하고 두려움을 갖고 대하는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구송년은 말을 했다.

[우리 모두 같이 합시다. 이번에도 만약 병기를 내리치지 않고 중간에 멈추는 자가 있다면 그는 버러지만도 못한 인간이고 애비없는 자식이요, 개, 돼지만도 못한 사람입니다. 내가 다시 하나, 둘하고 외치겠소. 하나...... 둘......]

셋 하고 세려고 할 때 영호웅은 외쳤다.

[벽사검법이다.]

그들은 이 소리를 듣고 즉시 고개를 돌렸다.
네 사람이 일제히 물어봤다.

[무엇이라고?]

이 일곱사람은 평소에 악불군이 벽사검법으로 봉선대에서 좌랭선의 두눈을 찌르고 무림을 진동시킨 일을 매우 흠모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때 이들이 밤낮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바로 벽사검법이었다.
영호충은 줄줄 읽어 내려갔다.

[벽사검법(벽邪劍法)은 검술(劍術)의 지존(至尊)이다. 먼저 검기(劍氣)를 연마하고 다시 검신(劍神)을 연마한다. 기신(氣神)이 정정해지면 검법은 스스로 통달케 되느니라. 검기(劍氣)는 어떻게 키워야 하는가. 검신(劍神)은 어떻게 생기는가. 기공(奇功)과 묘결(妙訣) 그 이치는 모두 이 안에 있느니라.]

그가 한마디 읽을 때마다 일곱사람은 그에게 한발짝 한발짝 다가갔다.
여섯일곱마디를 읽었을 때 이 일곱사람은 이미 영영의 곁에서 떨어져 그의 몸 가까이로 다가오고 있었다.
구송년은 그가 계속해서 읽어내려 가는 소리를 듣고는 물어봤다.

[이건......이것이 바로 벽사검보인가?]

영호충은 말했다.

[벽사검보가 아니면 내가 읽은 것이 사벽검보(邪벽劍譜)란 말이오?]

구송년은 말했다.

[계속해서 읽어라.]

영호충은 읽었다.

[기를 연마하는데 있어 제일 중요한 이치는 정성에 있다. 온 마음을 집중하고 마음을 텅비게 하면......]

여기까지 읽어 내려오더니 우뚝 멈췄다.
서보화상은 재촉하며 말을 했다.

[계속 읽어라, 계속해서 읽어 내려가라.]

옥령도인은 입을 중얼거리며 같이 따라 읽으면서 들은 것을 열심히 외웠다.

[기를 연마하는데 있어 제일 중요한 이치는 정성에 있는 것이다. 온 마음을 집중하여 마음 속에 잡념을 거두고......]
사실 영호충은 지금까지 벽사검보를 한번도 읽어보지 못하였다.
그가 읽고 있는 것은 단지 화산검법의 가결(歌訣)이었다. 화산의 검법은 날렵하고 기민하다 라는 글들을 벽사검법은 검술의 최고의 지존이다 라고 바꾸어 불렀을 뿐이었다. 이것은 동시에 악불군이 전수해준 기종(氣宗)의 가결(歌訣)이었다. 그래서 먼저 검기를 연마하고 다시 검신을 연마하라는 내용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영호충은 공부를 많이 하지 않아 자기가 알고 있는 글자수가 제한되어 있었에 순식간에 그렇게 문장을 이룰 수가 없었으며 그런 흉내를 내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구송년 등 일행은 화산검법의 가결을 들어본 적이 없었고 또한 마음속으로는 벽사검법에 미쳐 있었기에 영호충이 벽사검법의 가결이라하며 암송하는 소리를 듣자 모두가 눈이 뒤집혀서 검보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판별을 할 여유조차도 없었다.
영호충은 계속해서 읊조렸다.

[몇년이 계속되면 검기가 충만되고 벽사검을 휘두르면 깨끗하게 죽일 수가 있다......]

이 깨끗하게 죽일 수 있다는 말은 그가 아무렇게나 지껄인 것이다. 화산검결에는 이러한 설법이 없었다.
그는 여기까지 읊조리고는 말했다.

[이건......이건......책에는 깨끗이 죽이지 못하면 검법이 영민하지 못한다라고 써 있는 것 같았는데 맞는 것도 같고 틀린 것도 같고 약간 기억할 수 없소이다.]

서보화상 등은 일제히 물어봤다.

[검보는 어디에 있는가?]

영호충은 말했다.

[이 검보는...... 내 몸에는 절대로 지니고 있지 않소.]
말을 하면서 눈으로 자기의 배쪽을 슬그머니 바라다보았다. 이 말투는 마치 자기 배에 귀중한 것을 지니고 있으면서 입으로는 내 배에는 아무것도 없소 라고 말하는 듯하였다. 그의 말이 떨어지자 두 개의 손이 동시에 그의 품속을 더듬었다. 한쪽 손은 서보화상의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구송년의 손이었다.
갑자기 두 사람이 처참한 비명소리를 질렀다. 서보화상의 머리통이 빠개지고 구송년의 등허리에 기다란 장검이 관통되어 있었다.
그들은 각각 엄삼성과 옥령도인의 일검을 맞은 것이다.
엄삼성은 냉소를 하며 말하였다.

[우리 모두가 힘들게 벽사검보를 찾아왔고 이제 가까스로 검보가 나타났는데 이 못된 두놈이 독점하려고 하는구나. 세상에 그렇게 쉽게 되는 일이 어디 있느냐.]

즉시 발을 날리어 두 사람의 시체를 걷어찼다.
영호충이 가짜 벽사검보를 읊조린 것은 처음에는 눈앞의 영영의 생명이 경각에 달려 있음을 보고 급한 나머지 꾀를 써서 그들을 좀 떼어 놓아 얼마정도 시간을 벌어서 자기와 영영의 막혀져 있는 혈도를 풀려고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 꾀는 예상외로 매우 적중되었다. 일곱사람의 시선을 다른데로 돌리게 했을 뿐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서로 죽이게끔 만든 것이다.
일곱사람 중에 다섯사람이 남게 되자, 자기도 모르게 영호충은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유신은 말했다.

[검보가 정말로 영호충의 몸에 있는가는 그 누구도 보지 못했읍니다. 우리가 서로 먼저 다툰다면 너무 조급하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그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엄삼성은 얼굴을 씰룩씰룩 거리며 매섭게 그를 노려다봤다. 그리고는 말을 했다.

[당신은 우리보고 마음이 급하다고 하는데 내심 못마땅하단 말이오? 그렇소? 그렇다면 아마 당신도 그 검보를 독점하려고 하는 것이겠지.]

유신은 말했다.

[독점이라니 그것은 생각도 못한 일이오. 이 대화상이 이렇게 머리에 꽃이 피었는데 내가 왜 실없는 마음을 품겠소. 그러나 이 검보는 워낙 유명한 것이라 우리가 함께 보자는 것이오.]
동백쌍기(桐柏雙奇)는 일제히 말을 했다.

[그렇소. 누구도 독점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한번 구경을 해보자는 것이오.]

엄삼성은 유신을 향해서 말을 했다.

[좋소. 그렇다면 당신이 가서 저놈의 품속에서 검보를 꺼내 오시오.]

유신은 고개를 흔들며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결코 독점하려는 마음은 없소이다. 그리고 먼저 보고 싶지도 않고요. 엄형이 꺼내다가 우리들에게 보여준다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엄삼성은 옥령도인에게 말을 했다.

[그렇다면 당신이 가서 꺼내도록 하시오.]

옥령도인은 말을 했다.

[아무래도 엄형께서 친히 꺼내는게 좋겠읍니다.]

엄삼성은 동백, 쌍기 두사람을 쳐다보았다. 두사람은 역시 고개를 흔들었다.
엄삼성은 화가 나서 말을 했다.

[당신들 네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내가 모를 줄 아시오? 당신들은 이 늙은이가 검보를 꺼내려고 할 때 그 기회를 틈타 죽이려고 하는 것이겠지. 나는 절대로 그 꾀에 말려들지는 않겠소.]

다섯 사람은 서로 뚫어져라쳐다보고 있었고 상황은 매우 이상한 방향으로 흘렀다.
영호충은 그들이 또 영영을 해칠까봐 염려되어 말을 했다.

[당신들은 그리 조급하게 굴 필요는 없소. 내가 한번 더 자세히 생각해 보리다. 음......, 벽사검을 쓰면 깨끗히 처치할 수 있고 깨끗히 처지하지 못한다면 검법이 영민하지 않은 것이고......아니다. 아니다. 검법이 영민한 것이 아니고 꼭 독점할 필요가 있겠는가. 아이고 큰일났다. 큰일났어. 이 검법은 너무나 오묘한지라 아무리 노력해도 다 기억할 수가 없구나.]

다섯사람은 한마음 한뜻으로 검보를 얻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는데 이 검결이 말이 되지 않는 엉뚱한 것임을 그 어찌 알 수가 있겠는가! 오히려 더욱 궁금하여 참을 수가 없었다.
엄삼성은 단도를 휘두르며 일갈을 하였다.

[나보고 이놈의 품속에서 그 검보를 꺼내오라고 했는데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당신들 네사람 모두 문쪽으로 잠시 물러나 있으시오. 그렇게 해야만이 내가 안심하고 꺼낼 수 있지 않겠소.
그렇지 않다면 내가 꺼내려고 할 때 당신들은 분명히 내 뒷 머리통을 치려고 할 것이오.]

동백, 쌍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즉시 문 밖으로 물러나 있었다. 유신은 껄껄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 옥령도인은 약간 주저하더니 역시 뒤로 몇발짝 물러났다.
엄삼성은 일갈을 했다.

[당신의 그 두 다리까지도 문밖에 나가 있어야 하오.]
옥령도인은 말했다.

[무슨 잔말이 그렇게 많소. 이 늙은이는 하고 싶은대로 할 것이오. 당신은 나를 상관할 자격이 없소.]

말은 비록 이렇게 했지만 결국은 문지방 너머로 걸어갔다. 네 사람은 똑바로 그 사람을 감시하고 있었다. 이 영귀각은 현공사에 건축되어 있었으므로 만약 도망친다면 계단만이 도망치는 유일한 길목이었다. 그가 검보를 취득한 후 하늘로 날아가지 않는 이상 절대로 달아날 수 없다고 모두들 생각하였다.
엄삼성은 몸을 돌려 등을 영호충에게 향하고 있었으나 두 눈은 계속해서 문 밖의 네 사람을 감시하고 있었다. 그들이 갑자기 행동을 하여 자기를 급습하지나 않을 까 염려하고 있었다.
좌측손을 뒤로 하여 영호충의 품속을 뒤졌다. 한참 뒤져도 책은 보이지 않았다. 즉시 단도를 옆으로 하여 입에 물고 좌측손으로 영호충의 가슴을 잡고 우측손으로 뒤졌다. 좌측손에 힘을 주자 갑자기 내력이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깜짝 놀라 급히 손을 떼려고 했으나 손이 마치 영호충의 피부에 딱 들어 붙은 것처럼 다시 빼낼 수가 없었다. 그는 급히 공력을 썼다. 공력을 쓰면 쓸수록 내공은 더욱 빨리 빠져나갔다. 그는 있는 힘을 다하여 발버둥쳤다. 내공은 마치 강뚝이 무너진 것처럼 바깥으로 밀려 나갔다.
영호충은 이 위급한 상황에서 상대방의 내공이 자기 몸에 들어오자 내심 기뻤다. 그래서 말하기를, [너는 하필이면 나의 심맥(心脈)을 잡고 있느냐? 내가 그 검결을 너에게 들려 주겠다.]

입술을 움직이며 말하는 시늉을 하였다.
문밖에서 그러한 모양을 보고 있던 옥령도인은 그가 검보를 정말로 암송하는데 자기는 한마디도 들을 수 없다고 여기고 깜짝 놀라서 몸을 날려 영호충의 몸 가까이에 다가왔다.
영호충은 말을 했다.

[맞다. 이것이 바로 검보이다. 네가 꺼내서 모두들에게 보여주거라.]

그러나 엄삼성의 좌측손은 그의 몸에 딱 붙어서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가 없었다. 옥령도인은 단지 엄삼성이 그 검보를 거머쥐고 다시꺼내지 않는 것은 혼자서 독점하려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는 즉시 손을 내밀어 영호충의 품속을 뒤졌다. 영호충의 피부에 맞닿자 내공이 바깥으로 새어나가 한쪽 손이 딱 굳어버렸다.
영호충은 외쳤다.

[보시오, 보시오, 당신 두 사람은 서로 다툴 필요는 없소. 검보가 찢어진다면 모두들 볼 수가 없지 않소.]

동백, 쌍기를 서로 눈짓을 하였다. 노란 빛이 번쩍이더니 두개의 황금괴장(黃金拐杖)은 허공을 치고 들어왔다.
엄삼성과 옥령도인은 금방 머리통이 깨져 죽어버렸다. 두사람이 죽자 내공이 소실되어 두손은 영호충의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영호충은 갑자기 두사람의 내공을 얻게 되어 안쪽으로 충격을 가하자 봉해져 있던 혈도가 삽시간에 풀어졌다.
그는 본래 내공이 굉장히 강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약간 힘을 주자 손에 묶여져 있던 결박은 즉시 끊어졌다. 급히 손을 품속에 집어 넣고 단검의 자루를 거머쥐고 말을 했다.

[검보는 여기 있소. 누가 가지러 오겠소.]

동백, 쌍기는 머리가 약간 모자란 편이었다. 그의 두손이 결박에서 풀려져 있었는데 그들은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가 검보를 내준다는 소리만 듣고 너무 기뻐 일제히 손을 내밀어 받으러 왔다.
갑자기 은빛 광채가 번쩍이더니 팍팍 두소리가 나면서 두사람은 팔목이 떨어져 나가 똑같이 방바닥에 떨어졌다. 두사람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더니 뒤로 물러났다.
영호충은 다리에 묶여져 있던 끈을 풀고는 몸을 날려 영영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유신을 향해서 말을 했다.

[유형(游兄), 이 검보를 한번 구경해 보시겠소?]

간계하고 영악한 유신이었지만 이때에는 무서워 얼굴이 흑빛으로 변하였다. 떨리는 소리로말하였다.

[고맙습니다만 나는...... 나는 보지 않겠읍니다.]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게 겸손할 필요는 없소. 한번 쳐다봐도 괜찮을 것이외다.]
손을 내밀어 영영의 등과 허리를 몇번 쳐서 그녀의 막혀져 있던 혈도를 풀어줬다.
유신은 온몸을 덜덜 떨면서 말을 했다.

[영호공...... 공자...... 영호대...... 대...... 대협 당신은...... 당신은......]

두 무릎을 땅바닥에 꿇더니 엎으려 말을 했다.

[소인은 백번 죽어도 마땅합니다. 더 이상......더 이상 말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읍니까? 존귀하고 위대하신 성고와 장문인의 명령이시라면 소인은 불속이라도 뛰어들 것이고 물속이라도 뛰어들 것입니다......]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했다.

[벽사검법을 익히면 아마 재미있을 것이오. 어디 한번 익혀 보시오.]

유신은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말을 했다.

[성고와 장문인의 마음이 하해와 같으신 것은 무림의 많은 사람들이 주지하고 있는 바입니다. 오늘 소인으로 하여금 공을 세우게 해 주십시오. 소인은 틀림없이 강호에 나가서 두분의 성덕을 선양할 것입니다......아닙니다. 아닙니다......]

그가 두분의 성덕이란 말을 입밖에 내자마자 경황중에 자기가 또 화를 자초하였구나 생각하였다. 영영이 제일 싫어하는 것은 바로 다른 사람이 그녀와 영호충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번 뱉은 말이라 거둘 수가 없었다.
영영은 동백, 쌍기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두사람은 비록 각자 한쪽 손목이 잘리어 나가 피를 흘리고 있었지만 얼굴에는 아무런 두려운 기색이 없었다. 그래서 물어보기를, [당신 두사람은 부부입니까?]

동백, 쌍기 중에 남자는 이름이 주고동(周孤桐)이었고 여자는 오백영(吳柏英)이었다.
주고동은 말했다.

[오늘 우리 둘은 당신 손에 잡히는 꼴이 되었소. 죽이려면 죽이시오. 우리 두사람은 절대로 눈하나 깜박하지 않을 것이오. 빨리 죽이지 무얼 그렇게 물어 보시오?]

영영은 그의 오기가 퍽이나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냉랭하 말했다.

[나는 당신들 두 사람이 부부인가 아닌가 물어보가 있는 것이오.]

오백영은 말했다.

[나와 이 양반은 정식으로 맺은 부부는 아니오. 그러나 이십년 동안 정식으로 맺어진 다른 부부보다도 사이가 더 좋소.]
영영은 말했다.

[당신 두사람 중에서 오로지 한사람만이 살 수가 있소. 당신 두사람은 모두 손 하나가 절려져 나갔고, 또 하나가......]
자기 아버지도 그 두사람처럼 눈이 한쪽 밖에 없다는 생각이 나 더 계속해서 물어보지 않았다.
한참 말을 멈추었다가 말을 했다.

[당신들 두사람은 서로 결투를 하시오. 상대방을 죽이고 난 다음 이긴 자는 이곳을 나갈 수 있소.]

동백, 쌍기는 일제히 소리를 내어 말했다.

[좋소.]

노란빛이 번쩍이며 두사람은 황금괴장(黃金拐杖)을 쳐들어 각자 자기 자신의 이마팍을 향해서 내리쳤다.
영영은 외쳤다.

[잠깐만!]

우측손의 장검과 좌측손의 단검이 동시에 나가 두사람의 괴장을 향해 내리쳤다. 쨍그랑쨍그랑 소리가 나면서 영영은 어깨가 마비되어 오는 느낌을 받고 쌍검을 하마터면 손에서 떨어뜨릴 뻔하였다.
이렇게 하여 두개의 괴장을 막을 수가 있었으나 좌측 손의 힘이 비교적 약했기 때문에 오백영의 괴장은 약간 이마팍을 스쳐서 금새 새빨간 피가 흘러내렸다.
주고동은큰 소리로 말했다.

[나 스스로 죽으면 그만이오. 성고의 말은 산과 같소. 그래서 당신을 살려주려고 하는데 왜 스스로 죽으려는 것이오?]

오백영은 말했다.

[내가 죽고 당신이 살아야 당연한 일이지요. 내가 살자고 당신과 다툴 필요가 있겠읍니까?]

영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습니다. 부럽습니다. 당신 두사람은 나로 하여금 존경심을 불러일으키게 했읍니다. 두사람 모두 죽이지 않겠읍니다. 빨리 잘려진 손의 상처를 싸매시오.]

두사람은 크게 기뻐하여 괴장을 땅바닥에 내던지고 상대방의 상처를 싸매주었다.
영영은 말했다.

[그러나 한가지 해야할 일이 있읍니다. 당신들은 반드시 내 말에 따라야 합니다.]

주고동과 오백영 두사람은 일제히 대답을 하였다.
영영은 말했다.

[하산을 한 후 반드시 두분은 결혼식을 올리시오. 두사람이 함께 있으면서도 정식으로 부부가 되지 않는다면 그 무슨......]
그녀는 본래 그 무슨 꼴이 되겠읍니까 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즉시 자기와 영호충 또한 이렇게 함께 있으면서 아직까지 정식으로 혼인한 사이가 아님을 생각하자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달아올랐다.
주고동과 오백영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더니 일제히 고개를 숙여 감사의 표시를 하였다.
유신은 말을 했다.

[성고께서는 대은대덕하십니다. 목숨을 살려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종신대사까지도 생각해 주고 계십니다. 당신 두사람은 정말로 명이 길군요. 나는 벌써부터 성고께서 아랫사람에게 잘 대해 준다는 것을 알고 있었소.]

영영은 말했다.

[당신들이 이번에 항산에 온 것은 누구의 명령을 받아서입니까? 또 무슨 음모가 있읍니까?]

유신은 말했다.

[소인은 화산 악불군의 그 개 같은 속임수에 당했읍니다. 그는 신교의 임교주님의 흑목령지(黑木令旨)를 받았다고 말했읍니다. 항산의 비구니들을 일제히 흑목애에 잡아가 임교주님의 처분을 받아야 한다고 말을 했읍니다.]

영영은 물어봤다.

[악불군 수중에 흑목령(黑木令)이 있읍니까?]

유신은 말을 했다.

[녜녜, 제가 똑똑히 보았읍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일월신교의 흑목령이었읍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저희들은 교주와 성고에게 충성을 다하고 있는데 어찌 악불군의 말을 들었겠읍니까?]

영영은 깊이 생각하였다.

(악불군이 어떻게 우리 교의 흑목령을 가지고 있을까? 아, 맞다! 그는 삼시뇌신단을 복용했으니 물론 나의 아버지의 명령을 들었겠지. 그것은 분명 아버지가 그에게 준 것이다.)

또 물어보았다.

[일이 성사된 뒤에 악불군은 당신들에게 벽사검법을 전수해 준다고 말하지 않았소, 그렇소이까?]

유신은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말을 하였다.

[악불군, 그 개 같은 자식은 사람을 속이기만 합니다. 그 누구도 그의 말을 믿지는 않고 있었읍니다.]

영영은 말했다.

[당신들이 이번에 항산에 와서 어떤 일이 성공을 거두었다고 말을 했는데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오?]

유신은 말했다.

[어떤 사람이 산의 우물 속에 약을 풀었읍니다. 항산파의 여러 사부들을 함께 쓰러뜨렸지요. 그러는 동안 내막을 모르는 많은 사람들 역시 모두 그 우믈을 먹고 정신을 잃었읍니다. 아마 지금쯤 많은 사람들이 흑목애에 가고 있을 것입니다.]

영호충은 급히 물어보았다.

[사람을 죽였읍니까?]

유신은 대답을 했다.

[한 여덟 아홉명 정도 죽였읍니다.죽은 사람들은 모두가 별원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모두 우물물을 마시지 않고 정신을 잃지 않아서 저항을 하길래 죽여버렸읍니다.]

영호충은 물어봤다.

[죽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오?]

유신은 말했다.

[소인은 그들의 이름을 말할 수 없읍니다. 영호대협 당신.....당신의 친구들은 그 안에 없었읍니다.]

영호충은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을 놓았다.
영영은 말을 했다.

[우리 그만 내려갑시다.]

영호충은 말했다.

[좋소.]

땅바닥에서 서보화상(西寶和尙)이 남겨둥 장검을 집어 들고 웃으면서 말을 했다.

[그 악독한 늙은이를 보면 정말로 한바탕 혼내 주어야겠읍니다.]

유신은 말했다.

[성고와 영호장문께서 저를 살려준 은덕에 감사드립니다.]
영영은 말했다.

[그리 겸손할 필요가 있소?]

좌측손을 휘둘러 단검을 날리자 싹 하고 소리가 나면서 유신의 가슴에 꽂혔다. 이 간계한 활불유수 유신은 곧 절명하였다.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아래로 내려왔다. 산엔 적막이 흐르고 오로지 새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영영은 영호충을 한번 쳐다보더니 자기도 모르게 킥킥 웃어 버렸다.
영호충은 탄식을 하며 말했다.

[영호충은 삭발을 하여 중이 되었읍니다. 지금부터 이 몸은 불문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여시주님, 우리는 여기서 그만 헤어져야겠읍니다.]

영영은 그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의 말투가 너무 진지했으므로 자기도 모르게 몸이 떨리어 그의 팔뚝을 잡고 말했다.

[충 오라버니, 당신은......당신은 절대로 나에게 그런 말을 장난으로라도 하지 마세요. 난......난......]

그녀가 조금 전에 칼을 휘둘러 유신을 죽였을 때에는 눈도 한번 깜박하지 않았는데 지금 이 말투 속에는 형용할 수 없는 두려움이 들어 있었다.
영호충은 내심 감동을 받아 좌측손으로 자기의 박박 깎은 머리를 툭툭 치면서 탄식을 하며 말했다.

[그러나 세상에 이러한 옥과 같은 낭자가 있으니 대화상은 별수없이 환속을 해야겠군요.]

영영은 활짝 웃으면서 말을 했다.

[나는 유신만 죽이고 나면 무림 중에 혀만 굴리는 간사한 무리가 없어질 뿐 아니라 그런 말을 다시는 듣지 않을 줄 알았는데 뜻밖에......호호.]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당신도 내 머리를 한번 만져 보시오. 미끌미끌한 활불유수(滑不留手)가 아닙니까?]

영영은 얼굴이 빨개지며 흥 하더니 말했다.

[우스개 소리는 우리 그만 하고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지요. 항산의 여러 제자들이 잡혔다는데 흑목애에 가서 그들을 구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그리고 그것은 나와 아버님의 관계가 악화되는 일이기도 하고요......]

영호충은 말했다.

[더우기 나와 장인과의 교분이 많이 손상되겠군요.]

영영은 눈으로 그를 한번 흘겨 주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그리 싫지 않았다.
영호충은 말했다.

[일이 더 지체되기 전에 빨리 달려가서 그들을 구해 줍시다.]
영영은 말했다.

[달겨가서 놈들을 모두 없애야 합니다. 그래야만이 나의 아버님이 알지 못하지요.]

그녀는 몇발짝 걸어가더니 탄식을 하였다. 영호충은 그녀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이러한 큰일을 임아행의 이목을 속이면서 한다는 것이 그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그러나 자기는 항산파의 장문인으로 항산파 문인들이 잡혔다는데 어찌 수수방관만 할 수 있겠는가. 그녀는 아버지의 명령을 위반하면서까지 자기 때문에 어떤 결정을 했던 것이다.
그는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무엇인가 결달을 내려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좌측손을 내밀어 그녀의 우측손을 꼭 쥐었다. 영영은 그 손을 뿌리치려 하더니 사방에 아무도 없음을 보고는 그가 그렇게 손을 쥐도록 내버려 두었다.
영호충은 말했다.

[영영, 나는 당신의 마음을 잘 알고 있소. 이 일로 인해서 당 신과 당신 아버지와의 관계가 서먹해지겠구료. 정말로 미안하게 되었소.]

영영은 약간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버님께서 만약 나를 생각하셨다면 항산파의 사람들에게 그런 짓을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내추측이지만 아버지는 절대로 나쁜 마음을 품고 그러지는 않으셨으리라고 봅니다.]

영호충은 금방 무엇인가 깨닫고 말했다.

[그렇습니다. 당신 아버지가 항산파 제자들을 잡은 뜻은 나를 협박하여 일월신교로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일 것이오.]

영영은 말했다.

[그렇습니다. 아버님은 사실 당신을 매우 좋아하시고 계십니다.
하물며 당신은 아버님의 신공대법(神功大法)의 유일한 계승인이 아닙니까?]

영호충은 말했다.

[나는 진정 신교에 입교하고 싶지 않습니다. 천추만재(千秋萬載)일통강호(一統江湖)라든가, 문무를 겸비하고 창생을 보호한다는 등하는 그 입에 발린 말들을 난 듣기만 해도 구역질이 납니다.]
영영은 말을 했다.

[나도 당신을 잘 알고 있읍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나는 당신에게 한번도 권해본 적이 없었잖습니까. 만약 당신이 신교에 들어 온다면 장래에 교주가 되실 것이고 하루종일 그 입에 발린 말을 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그렇게 되면 지금처럼이렇게 자유롭게 지낼 수도 없을 것입니다. 아버님께서 다시 흑목애로 가신 후로 그분의 성격이 많이 변하셨읍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그러나 당신 아버님의 화를 돋우게 해서는 안 됩니다.]
영호충은 우측손을 내밀어 그녀의 나머지 좌측손도 꼭 쥐었다.
그리고 말을 했다.

[영영, 항산문인들을 구해낸 뒤에 아버님의 명령이 어떻든간에 우리 둘은 즉시 결혼식을 올립시다. 당신과 나는 무림에서 은퇴하고 검을 거두어 은거를 하면서 바깥 세상일을 절대로 상관하지 말고 아들이나 낳고 오순도순 삽시다.]

영영은 이 말을 들으며 행복에 겨워 얼굴이 빨개지면서 마음속으로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 소리를 듣자 깜짝 놀라 정색을 하며 그의 두손을 밀쳐버렸다.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하였다.

[부부가 되고도 아들을 낳지 않겠단 말이오?]

영영은 토라져서 말을 했다.

[당신이 계속해서 허튼소리를 하면 나는 이제부터 삼일동안 당신과 일체 말을 하지 않겠어요.]

영호충은 그녀가 한번 한다면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두손을 저으면서 말했다.

[좋습니다. 장난은 그만하지요. 우리 할일이나 합시다. 한시라도 급히 견성봉에 올라가서 상황을 살펴봅시다.]

두사람이 경공을 전개하여 견성봉에 올라와 보니 무색암에는 아무도 없었다. 여러제자들이 거처하는 텅빈 방에는 옷들이 방바닥 여기저기 널려져 있었고 땅바닥에는 칼과 검이 흩어져 있었다. 땅바닥에 피 흔적이 없음을 봐서 다행이 사람들은 피해를 입지 않은 듯하였다. 두사람은 다시 통원곡의 별원에 가서 살펴보았다. 그러나 역시 한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탁자에는 술과 안주들이 잡다하게 널려져 있었다.
영호충은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지만 여기 있는 술은 마실 수가 없었다.

[무척이나 배가 고픕니다. 빨리 산아래로 내려가 술과 밥을 먹읍시다.]

영영은 영호충의 옷자락 한쪽을 찢어서 그의 머리를 싸매 주었다.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이제야 사람이 된 것 같구료. 그렇지 않았다면 중놈이 처자를 데리고 이곳저곳을 다니는 꼴이 되어 체면이 말이 아니었겠소.]
산아래에 당도해보니 시간은 이미 미시였다. 가까스로 작은 주막을 찾아내어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두사람은 흑목애에 가는 길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서둘러 길을 재촉했다. 한시간 동안을 달리자 갑자기 산 저편에서 시끌벅적 욕지거리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발걸음을 멈추고 들어보니 바로 도곡육선들 같아 보였다. 두사람은 말소리가 흘러 나오는 쪽으로 다가가 보았다. 가까이 가서 말소리를 들어보니 그들은 필경 도곡육선들이었다.
영영은 낮은 소리로 말하였다.

[이 여섯 괴물들이 누구와 다투고 있는지 모르겠군요?]
두 사람은 산허리를 돌아 나무 뒤에 몸을 숨겨 살펴보니 도곡육선들은 욕지거리를 하며 한 사람을 에워싸고 심히 격렬하게 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 사람의 몸놀림이 어찌나 빠른지 오로지 한개의 회색 그림자가 여섯 형제들 사이에 빠져나가고 들어가는 것만 볼 수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의림의 어머니, 현공사에서 거짓으로 말을 못하는 척했던 그 노파였다. 도근선과 도실선은 꽥꽥 큰 소리를 질러댔다.
모두 그녀에게 뺨을 얻어맞은 것이다.
영호충은 크게 기뻐하며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이제야 내가 당했던 빛을 갚을 수 있게 되었구나. 나도 이 여자의 머리를 박박 깎아 놓자.)

손을 검자루에 갖다 놓고 도곡육선들이 이기지 못하면 즉시 몸을 날려 복수를 하려고 하였다. 철썩철썩 하는 소리가 연이어 들리더니 여섯형제들은 그녀에게 뺨을 연신 얻어맞고 있었다. 도곡육선들은 화가 치밀어 그녀를 잡기만 하면 네조각으로 갈기 갈기 찢어 놓으려고 했다. 그러나 이 노파의 행동이 어찌나 빨랐던지 마치 귀신같았다. 몇번이고 잡힐 듯하였으나 결국은 그녀를 잡지 못하고 계속 뺨만을 얻어 맞고 있었다. 그 노파는 여섯 사람의 무공이 대단한걸 알고 그리 강하게 힘을 쓰지는 못하고 잽싸게 파고들어 그들의 뺨을 갈겨주었다가 즉시 몸을 물리곤 하였다.
또 한참 격투를 벌였다. 이제 그 노파는 이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는 두개의 손바닥을 펼쳐서 네사람의 뺨을 후려 치더닌 갑자기 몸을 돌려 도망을 쳤다. 그녀는 마치 번개처럼 달렸다. 순식간에 수장밖으로 멀어져 가고 있었다. 도곡육선들은 일제히 큰소리로 욕지거리를 했지만 더 이상 쫓아갈 수는 없었다.
영호충은 검을 들고 일갈하였다.

[어디로 도망치려 하느냐!]

은빛 광채라 번쩍이더니 그녀의 목구멍을 향해서 검을 내리쳤다. 이 일검은 똑바로 급소를 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노파는 깜짝놀라 재빨리 고개를 숙이고 피했다.
영호충인 다시 검을 옆으로 하여 그녀의 어깨를 내리치니 그 노파는 더이상 피할 수 없어 뒤로 두발짝 물러났다. 영호충의 일 검이 또 날카롭게 들어오자 그녀는 뒤로 한발짝 더 물러났다. 그의 손에 장검이 들려져 있는 이상 그 노파는 이제 그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싹싹 장검을 몇번 휘두르자 그녀는 연신 뒤로 다섯 발자국 물러났다. 만약 영호충이 그녀의 생명을 해치려고 했다면 이 노파는 벌써 요절이 났을 것이다. 도곡육선들이 지르는 환호성 속에서 영호충이 잡고 있는 장검의 끝날은 이미 그녀의 가슴을 겨냥하고 있었다. 도근선 등 네사람들은 일제히 달려들어 그녀의 사지를 거머쥐고 공중으로 떠받쳤다.
영호충은 일갈했다.

[그녀를 죽이지 마시오.]

도환선은 손바닥을 내밀어 힘차게 그녀의 뺨을 내리쳤다.
영호충은 일갈을 했다.

[그녀를 매어단 다음에 결정을 합시다.]

도근선은 말했다.

[녜! 알았읍니다.]
[끈을 가져오너라!]
[끈을 가져와!]

그러나 여섯 사람의 수중에는 끈이 없었으므로 도화선과 도간선은 사방을 뒤지며 끈을 찾기 시작했지만 황량한 벌판이라 쉽게 끈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때 갑자기 손이 느슨해지더니 그 노파는 몸부림을 쳐 그들의 손에서 빠져 나왔다. 그리고는 땅바닥에 굴러 떨어진 뒤에 도망치려고 하였다. 그러나 등허리에 아픈 느낌이 들었다.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꼼짝 말고 서 있으시오.]

장검의 검끝으로 가볍게 그녀의 살갗을 긁었다. 그 노파는 깜짝 놀라 얼굴색이 창백해지더니 별수없이 꼼짝도 않고 서 있었다. 도곡육선들은 달려와 여섯 손가락을 일제히 내밀어 그 노파의 허리와 겨드랑이와 팔과 다리에 여섯군데 혈도를 찍었다. 도간선은 그 노파에게 얻어맞아 부어오른 뺨을 어루만지면서 자기도 그녀 뺨을 때리려고 하였다. 영호충은 내심 의림의 체면 때문에 그녀에게 손찌검하는 것을 막으려 하였다.
영호층은 말했다.

[잠깐! 우리들은 먼저 이 여자를 높게 매달아 놓고 나서 다시 의논하기로 합식다.]

도곡육선들은 그녀를 높게 매단다는 소리를 듣고 크게 기뻐서 즉시 나무가죽을 벗겨 끈을 만들었다.
영호충은 여섯사람이 이 노파와 싸우게 된 연유를 물어봤다.
도지선은 말을 했다.

[우리 여섯형제들이 이곳에서 기분좋게 똥을 누고 있는데 갑자기 이 늙은이가 미친 듯이 달려와서 물어보기를 `여보시오. 당신들은 작은 비구니를 보지 못했소.' 그녀의 말은 매우 예의가 없었고 더우기 우리가 기분좋게 똥을 누고 있느데 훼방을 놓았지요......]
영영은 그가 지저분한 말을 하는 것을 듣고는 눈쌀을 찌푸리며 멀찌감치 떨어졌다.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그랬군요. 이 노파는 정말로 몰염치한 사람입니다.]

도엽선은 말을 했다.

[우리들은 물론 이 노파의 말에 대꾸도 않고 빨리 없어지라고 하였지요. 그러나 이 노파는 즉시 우리들을 때리기 시작하였읍니다.
이렇게 해서 싸움을 하게 되었지요. 본래 우리들은 금방 이길 수가 있었읍니다. 단지 똥을 미처 깨끗이 닦지 못했으므로 싸움을 하자니 좀 언짢았읍니다. 영호 형제, 당신이 때맞춰 오시지 않았다면 이 여자가 도망칠 뻔하였읍니다.]

도화선은 말했다.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리들은 노파가 도망치도록 내버려 두었을 것입니다. 좀 도망을 치도록 두었다가 우리가 금새 뒤쫓아가서 잡으려 하였지요.]

도실선은 말했다.

[일당 도곡육선들의 손에 들어왔다 하면 도망칠 자는 그 누구도 없읍니다. 틀림없이 우리는 잡아오고 말지요.]

도근선은 말했다.

[이것이 바로 고양이가 생쥐를 잡는 법이지요. 고양이는 생쥐를 잡을 때 먼저 놓아주고 다시 잡고 또 놓아주고 다시 잡고 잡는 재미를 즐기는 법이지요.]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한마리의 고양이는 여섯마리의 생쥐를 잡을 수 있는데 하물며 여섯마리의 고양이가 한마리의 생쥐를 잡을 수 없었겠읍니까? 그것은 이미 잡힌거나 다름이 없는 것 아니겠소?]

도곡육선들은 영호충이 자기들의 구미에 당기는 말을 하자 심히 기뻤다. 말하는 사이에 이내 나무가죽으로 끈을 만들었다.
그 노파는 손과 다리를 꽁꽁 묶어서 한그루의 나무에다 매달아 놓았다. 영호충이 검을 집어들어 그 나무를 향해 일검을 가하자 나무의 가죽이 벗겨지만서 칠팔척 길이의 팻말이 되었다. 그는 다시 검을 들어 그곳에다 `천하에서 제일 질투가 강한 여자'라고 검끝으로 새겨 넣었다.
도근선은 물어보았다.

[영호형제, 이 노파가 어째서 천하에 제일 가는 질투심이 많은 여자입니까? 천하의 제일이라니 말도 안됩니다. 나는 정말 믿지 못하겠읍니다. 노파를 내려놔 주십시오. 나는 노파와 한번 겨루어 보고 싶습니다.]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시기심이 많다는 것은 그리 좋은 말은 아닙니다. 도곡육선 당신들 여섯영웅들은 무공이 천하제일이고 의로운 사람들일뿐 아니라 문무가 겸비된 분들이라 여러 사람들이 따르고 있읍니다. 이 악독한 늙은이를 어찌 도곡육선과 바교하겠소이까. 노파와는 겨루워 볼 필요조차 없읍니다.]

도곡육선들은 벌려진 입을 다물 줄 몰랐다. 그래서 모두들 말하기를, [맞습니다. 맞습니다. 맞습니다.]

영호충은 물어보았다.

[당신들은 혹시 의림사매를 보셨읍니까?]

도지선은 말했다.

[당신은 지금 항산파에 이쁘장한 작은 비구니를 말하는 것입니까? 그 비구니는 보지 못했지만 중들은 두명 보았지요.]
도간선은 말했다.

[하나는 그 비구니의 아버지이고 하나는 그 비구니의 제자입니다.]

영호충은 물어보았다.

[언제 그들을 봤읍니까?]

도엽선은 말했다.

[한시간 정도 됩니다. 그들은 본래 우리들과 이 앞의 읍에서 술을 마시기로 되어 있었읍니다. 우리들은 똥을 눈 뒤에 곧 따라가려고 했는데 이 악독한 늙은이가 와서 우리가 갈길을 훼방 놓았읍니다.]

영호충은 내심 어떤 기막힌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그래서 말하기를, [좋습니다. 당신들은 천천히 오도록 하십시오. 우리는 읍에 먼저 가 있겠읍니다. 당신들 여섯 영웅들은 항복한 사람에게 절대로 손찌검을 안 한다는 것을 사람들은 잘 알고 있읍니다. 만약 이 노파의 뺨을 때린다면 당신들 여섯 영웅들의 명예는 크게 손상될 것입니다.]

도곡육선들은 일제히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영호충은 즉시 영영을 데리고 빠른 걸음으로 갔다.
영영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당신이 그 노파의 머리를 깎지 않은 것은 결국 의림 소사매의 체면 때문이겠지요.]

약 십여리를 달려가자 그들은 약간 큰 읍에 당도하였다. 두번째 술집에 찾아드니 불계화상과 전백광이 탁자를 마주하고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두사람은 영호충과 영영을 보고 벌떡 일어나 반색을 하며 기쁘게 맞이하였다. 불계화상은 급히 술을 따르고 안주를 시켰다.
영호충은 그들이 떠나온 이유를 물었다.
전백광은 말했다.

[지난번 항산에서 제가 그러한 추태를 보이고 나자 더이상 그곳에 머무를 염치가 없었읍니다. 그래서 태사부님께 청하여 급히 그곳을 떠났기 때문에 이제 통원곡에는 갈 수가 없읍니다.]
영호충은 내심 생각하였다.

(알고 보니 그들은 아직까지 항산파 제자들이 변고를 당한 일을 모르고 있는 것 같구나.)

불계화상을 향해서 말을 했다.

[대사님 대사님께 한가지 청이 있는데 부탁해도 될지 모르겠군요.]

불계화상은 말했다.

[되지요, 뭐가 안 되겠읍니까.]

영호충은 말했다.

[그러나 이 일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당신의 제자인 전백광조차도 그 일에 가담할 수 없읍니다.]

불계는 말했다.

[아! 그거야 쉬운 일이지요. 절대로 이 일에 가담하지 못하도록 하면 되지 않습니까?]

영호충은 말했다.

[이곳에서 동남쪽으로 십여리 떨어진 곳에 큰 나무가 한그루 있는데 그곳에 어떤 자가 높이 매달려 묶여져 있읍니다.]
불계는 억 하고 소리를 질렀다. 표정은 괴상망측해졌고 몸은 약간 떨고 있었다.
영호충은 말했다.

[그 사람은 나의 친구입니다. 수고스럽지만 제발 가서 그를 구해주십시오.]

불계는 말했다.

[아 그거야 쉬운 일인데 어째서 당신이 집적 구하지 않는 것이오?]

영호충은 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읍니다. 그 사람은 사실 여자입니다.]
그는 영영의 눈치를 보는 척하더니 말했다.

[이렇게 임소저가 나와 함께 있으니 약간 불편하군요.]
불계는 껄껄 웃더니 말했다.

[아! 이제야 알았읍니다. 당신은 임소저가 질투를 할까봐 염려가 되어서 그러는거지요.]

영영은 눈을 크게 뜨고 번갈아 두사람을 째려보는 표정을 지었다.
영호충은 웃더니 말을 했다.

[그 여자야말로 질투심이 강한 여자입니다. 그 옛날 그녀의 남편이 한 여자를 쳐다보고 그 부인의 아름다움을 칭찬했다 하여 그 여자는 그로부터 간다는 말도 없이 사라져 버렸읍니다. 그 후 그녀의 남편은 천지사방을 돌아다니면서 그녀를 몇십년 동안이나 찾아다녔다 합니다.]

불계는 들을수록 눈이 둥그레졌다.
연신 말을 하였다.

[이것은...... 이것은...... 이것은......]

숨소리는 더욱 거칠었다.
영호충은 말을 했다.

[듣기로는 그녀의 남편은 지금까지도 그녀를 찾지 못했다 합니다.]

여기까지 말을 하고 있는데 도곡육선들이 히히덕거리며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불계는 그들을 본 척도 않고 두손으로 덥석 영호충의 손을 잡더니 말을 하였다.

[정말로...... 정말입니까?]

영호충은 말했다.

[그녀는 내게 말하길 설사 그녀의 남편이 자기를 찾아내어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빈다 해도 그녀의 마음은 절대로 돌아서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읍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만약 그녀를 놓아준다면 즉시 도망쳐버릴 것입니다. 이 여자의 몸놀림이 어찌나 빠른지 눈깜짝할 사이에 그녀는 사라져 버릴지도 모릅니다.]

불계는 말했다.

[눈깜짝이라니요? 절대로 나는 눈도 깜박이지 않겠읍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내가 또 그녀에게 물어보았지요. 어째서 남편과 상면을 하지 않느냐고 말입니다. 그녀는 말하길 그녀의 남편은 이 세상에서 제일 박정하고 여자 뒷꽁무늬만 졸졸 쫓아다니는 호색가라고 했읍니다.
설사 다시 본다해도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하였읍니다.]
불계는 큰 소리를 지르며 몸을 돌려 뛰어가려 하였다.
영호충은 단숨에 그의 손목을 끌어당기며 그의 귓가에다 낮은 소리로 말했다.

[내가 당신에게 한가지 비결을 가르쳐 드리겠읍니다. 내 말을 듣는다면 그녀는 절대로 도망칠 수가 없읍니다.]

불계는 너무나 놀라고 기뻐서 한참동안 멍청히 서있다가 갑자기 무릎을 꿇더니 마룻바닥이 꺼지도록 절을 세번하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

[영호 형제, 아닙니다. 영호 장문, 영호 할아버지, 영호 사부님, 빨리 제게 당신의 그 비결을 가르쳐 주십시오. 그 비결만 가르쳐 준다면 나는 당신을 스승으로 삼겠읍니다.]

영호충은 웃음을 참으면서 말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빨리 빨리 일어나십시오.]

그를 끌어 당기며 그의 귓가에다 낮은 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그녀를 나무에서 내려놓은 뒤에도 그녀의 결박과 혈도를 풀어주지 마시오. 단지 객주집까지 그녀를 안고 와서 한방에 묶으시오. 당신도 생각해 보시오. 어떻게 하면 여자를 도망치지 못하게 할 수 있는가를.]

불계는 손을 내밀어 머리를 긁적이더니 주저하며 말을 했다.

[이거...... 이거 정말로 모르겠는데요.]

영호충은 낮은 소리로 말을 했다.

[당신은 먼저 그녀의 옷을 몽땅 벗긴 다음에 혈도를 풀어 주시오. 발가벗은 몸으로는 제아무리 발버둥쳐도 도망치지 못할 것입니다.]

불계는 크게 기뻐하며 외쳤다.

[좋은 계략입니다. 좋은 방법이고말고요. 영호 사부님 나는 당신의 은덕을......]

그는 말도 채 끝내지 못하고 길가로 뛰쳐나가더니 날 듯이 달려갔다.
도근선은 말을 했다.

[어어, 저스님 정말로 이상도 하구나. 그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을까?]

도지선은 말했다.

[그는 틀림없이 오줌이 급해서 참을 수 없었던 걸거야.]
도엽선은 말했다.

[그렇다면 그는 어째서 영호 형제에게 고개를 숙여 절을 하고는 사부님이라고 불렀을까. 설마 하니 나이를 그렇게 먹었는데 오줌 누는 것도 가르쳐 줘야 하나?]

도화선은 말했다.

[오줌 누는 것하고 나이가 많은 것하고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이냐? 세살 먹은 아이는 사람들이 가르쳐 주어야만 오줌을 싼다더냐?]

영영은 이 여섯 사람의 말을 더 계속 듣는다는 것은 괜히 시간만 낭비하는 일임을 알고는 영호충에게 눈짓을 한번 하고는 아래로 걸어 내려갔다.
영호충은 말했다.

[여섯분의 주량은 바다와 같아서 천하에서 대적할 사람이 없다고 평소에 들었는데 당신들은 천천히 드십시오. 저는 술이 약하기 때문에 그만 물러가야겠읍니다.]

도곡육선들은 그가 자기들을 주량을 이렇게 칭찬하자 싱글벙글하며 만약 자기들이 몇단지의 술을 마시지 않는다면 체면이 서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크게 외쳐 말했다.

[먼저 술 여섯 항아리를 가져오너라.]
[물론 당신의 주량은 우리들 하고 상대가 되지 않겠지요.] [당신들은 먼저 가세요. 우리들이 이 술을 양껏 다 마시려면 아마 내일 이맘때나 되어야 할 겁니다.]

영호충은 단 한마디로 여섯 사람을 떨쳐놓고는 아래로 걸어 내려갔다.
영영은 웃으면서 비양거렸다.

[당신은 부부를 재결합시켜 놨으니 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가르쳐준 방법이 약간...... 약간은 너무......]
영호충은 히히덕거리며 그녀를 쳐다봤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사람은 읍을 나와 한참동은 잠자코 길을 걸었다. 영호충은 계속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쳐다봤다.

영영은 약간 토라진 목소리로 말을 했다.

[뭘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고 계세요. 내 얼굴 처음 봤어요.]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했다.

[그 악독한 노파가 당신과 나를 기둥에 매달아 고생시켰으므로 우리가 다시 그 노파를 나무에 매단 것은 인과응보라 할 수 있소.
그녀가 내 머리를 박박 깎아 놓았기에 내가 그녀의 남편으로 하여금 그녀의 옷을 벗기도록 한 것 또한 응당한 댓가라고 나는 생각하오.]

영영은 킥킥 웃더니 말을 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뭐가 인과응보입니까?]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했다.

[단지 내가 바라는것은 불계대사가 너무나 멍청하게 일을 처리하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오. 이번에야말로 진정 이들 두사람이 파경에서 다시 같이 살아야 하지 않겠소.]

영영은 웃으면서 말했다.

[앞으로는 조심하세요. 다음에 다시 그 노파를 만나게 된다면 당신은 정말 봉변을 당할거예요.]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그 두사람이 재결합하는 것을 도와줬으므로 그들은 나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백번 천번 해도 부족할 것이오.]

말을 하면서 영호충은 또 영영을 슬그머니 몇번 쳐다보고 웃었다. 그 표정은 실로 괴상하였다.
영영은 말했다.

[왜 또 웃으세요?]

영호충은 말했다.

[나는 지금 불계대사 두 부부가 다시 만나면 서로 무슨 말을 할 것인지가 궁금하오.]

영영은 말했다.

[그런데 당신은 어째서 나를 은근슬쩍 쳐다보고 있는 것입니까?]

영영은 영호충이 아까부터 자기를 쳐다보고 웃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있었다.
그는 지금 불계대사가 그의 아내의 옷을 싹 벗기는 장면을 상상하고 있는 것이다. 머리속으로 이런 일을 생각하면서 그는 지금 눈을 똑바로 뜨고 자기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그 시커먼 속은 말을 안 해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삽시간에 뺨이 빨개지면서 영영은 손을 내밀어 그를 후려치려고 하였다.
영호충은 살짝 피하고 웃으면서 말을 했다.

[여자가 남편을 때리면 남들이 못된 마누라라고 욕을 하오.]
바로 이때 갑자기 먼곳에서 호각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영영은 이 소리가 일월신교들이 서로 주고받는 신호임을 알고 있었다. 영영은 좌측손 식지를 입술에 갖다대고 조용히 하라는 시늉을 하더니 우측손으로는 소리나는 쪽을 가리켰다.
두사람이 수십장을 달려 그쪽으로 가보니 한명의 여자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급히 뛰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이 서있는 지역은 광활한 평지였으므로 몸을 감출 만한 곳이 없었다.
그 사람은 영영을 보고는 멈칫하며 급히 앞으로 나와 절을 하였다.
그리고 말하기를, [신교에 속해 있는 천풍당향주상삼랑(天風堂香主桑三娘)입니다.
성고에게 인사드립니다. 교주께서는 천추만재하시고 일통강호하십니다.]

영영은 그의 인사를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동쪽에서 한명의 노인이 나타나 급한 걸음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 역시 영영을 향해서 고개를 숙이며 말을 했다.

[진위방(秦偉邦) 성고님께 인사드립니다. 교주님께서는 억조를 창생하시고 중흥성교하시오 그 성덕은 하늘에 닿아 있읍니다.]
영영은 말을 했다.

[진장로께서도 이곳에 계시는구료.]

진위방은 말했다.

[녜, 소인은 교주님의 명을 받아 이 일대에서 소식을 염탐하고 있읍니다. 상향주(桑香主)께서는 무슨 소식이라도 알아내었소?]
상삼랑은 말했다.

[성고와 진장로에게 알립니다. 오늘 아침에 저는 임풍역(臨風驛)에서 숭산파 사람들인 듯한 육칠십명의 사람들이 떼를 지어 화산에 가고 있는 것을 보았읍니다.]

진위방은 말했다.

[그들이 진정 화산에 가는구만.]

영영은 물어보았다.

[숭산파의 많은 사람들은 화산에 가서 무얼한다고합니까?]
진위방은 말했다.

[교주께서는 화산파의 악불군이 오악파의 장문인이 된 후로 우리 신교에 해가 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셨읍니다. 악불군은 요즘 오악 각 문파의 제자들을 화산으로 소집하고 있읍니다.
그의 행동거지를 보아 아마 우리 흑목애에 대거 습격을 하려는 듯합니다.]

영영은 말했다.

[그러한 일이 있었군요.]

그리고 나서 내심 생각하였다.

(이 진위방은 교활하기 짝이 없는 늙은이다. 그는 아버지의 명령을 받아 항산파의 문인들을 잡아들이는 일을 벌써부터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이것을 남에게 미루고 있구나. 단지 상삼랑의 말은 거짓인 것 같지는 않은데 보아 하니 무슨 우여곡절이 있는 것이다.)

영영은 말했다.

[영호공자께서는 항산파의 장문인이신데 어째서 이 일을 모르고 있단 말입니까? 그것 참 이상하군요.]

진위방은 말했다.

[제가 조사를 한 바로는 태산, 형산 두파의 문인들은 이미 화산으로 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만 항산파의 사람들은 아직까지 움직임이 없읍니다. 상좌사(尙左使)께서는 어제 소식을 보내셨는데 포대초 장로는 이미 부하들을 이끌고 항산별원의 동태를 살피러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곳에서 소식을 기다리라는 명을 받고 포장로의 소식만을 기다리고 있읍니다.]

영영과 영호충은 서로 쳐다보며 내심 생각하였다.

(포대초가 항산 별원에 잠입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진위방 그가 지금 하고 있는 말은 모두 진실이란 말인가?)

진위방은 영호충을 향해 고개 숙여 절을 하며 말했다.

[소인은 명령을 받고 일을 처리하고 있을 뿐입니다. 영호 장문께서는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영호충은 포권을 하여 예에 응하고 말을 했다.

[나와 임소저는 머지않아 곧 결혼을......]

영영은 얼굴이 새빨개지며 놀란 표정을 지었으나 부인하지는 않았다.
영호충은 계속해서 말을 했다.

[진장로께서 나의 빙부의 명을 받아 일을 처리하시는데 우리들은 그 명령에 따를 수밖에요.]

진위방과 상삼랑은 얼굴이 환해지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두분께 축하드립니다.]

영영은 몸을 돌려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진위방은 말했다.

[상좌사께서는 줄곧 포장로와 저에게 절대로 항산 문인들에게 무례한 짓을 하지 말고 소식만 알아내라고 하셨읍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그 명에 따르고 있읍니다.]

갑자기 그의 몸 뒤에서 한 여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영호 공자의 검법을 따를 사람은 이 천하에 아무도 없소. 상좌사께서 당신들에게 무례를 범하지 말라고 한 것은 당신들을 위해서였소.]

영호충이 고개를 들어 보니 나무가 우거진 숲 속에서 한 여자가 걸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바로 오독교(五毒敎) 교주 남봉황(敎主藍鳳凰)이었다.
영호충은 그녀를 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동생은 그동안 잘 있었소?]

남봉황은 영호충은 바라보며 말했다.

[큰 오라버니께서도 안녕하십니까?]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진위방을 향하더니 말을 했다.

[당신은 나에게 공수를 하면 했지. 어째서 눈쌀을 찌푸리고 있는 것입니까?]

진위방은 말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는 그녀의 몸에 독이 있어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영영을 향해서 몇발짝 앞으로 나가더니 말했다.

[이제 어떻게 일을 처리해야 할지를 성고께서 명을 내려주십시오.]

영영은 말했다.

[당신들은 교주님의 명령에 따라 일을 처리하시오.]

진위방은 고개를 숙여 말을 했다.

[녜, 알겠읍니다.]

진위방과 상삼랑 두사람은 영영 등에게 절을 하고 떠나갔다.
남봉황은 그 두 사람이 멀리 사라지는 것을 보고 말을 했다.

[항산파의 비구니들이 모두 잡혀 갔는데 당신들은 어째서 구하러 가지 않습니까?]

영호충은 말했다.

[우리들은 지금 항산에서 뒤쫓아 오는 중이오만 그들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소.]

남봉황은 말했다.

[이 길은 화산으로 가는 길이 아닙니다. 당신들은 길을 잘못 들어섰읍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화산에 가는 길이라고요? 그들은 화산으로 잡혀갔읍니까? 당신이 그것을 보았소?]

남봉황은 말했다.

[어제 아침 나는 항산별원에서 이상한 약이 들어있는 차를 마셨읍니다. 물론 이미 나는 알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하지 않았읍니다. 다른 사람들이 쓰러지는 것을 보고 그때서야 거짓으로 정신을 잃은 체하였던 것입니다.]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했다.

[오선교 남교주에게 독약을 먹인다는 것은 자기 스스로 함정을 파는 것과 같지요.]

남봉황은 멋적게 웃더니 말했다.

[그런데 이 못된 놈들은 정말 사람도 아니었읍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어찌하여 당신은 그들에게 독약공세를 취하지 않았소?]
남봉황은 말했다.

[그걸 말할 필요가 있을까요? 두명의 못된 놈들이 내가 정말로 쓰러진 줄 알고 나에게 다가와 못된 짓을 하려고 하기에 단번에 독살해 버렸읍니다. 그 나머지 놈들은 겁이나 내가 쓰러진 곳으로 더이상 다가오지 못했지요. 그 놈들은 내가 죽었지만, 죽어서도 독을 쓴다고 떠들고 있었읍니다.]

말을 하면서 깔깔대고 웃었다.
영호충은 말했다.

[그후로는 어떻게 되었소?]

남봉황은 말했다.

[나는 그들이 무슨 못된 짓을 하는지 보기 위해 줄곧 정신을 잃은 체하였읍니다. 나중에 이 못된 놈들은 견성봉에서 많은 비구니들을 잡아 왔읍니다. 그런데 그들을 지휘하는 사람은 바로 당신의 사부였던 악선생이었읍니다. 큰 오라버니, 내가 보건데 그는 사람도 아닌 것 같습니다. 오라버니가 항산파의 장문인인데도 부하들을 이끌고 와서 태연하게 오라버니의 제자와 비구니들을 모두 잡아 가다니 이 어찌 오라버니의 체면을 떨어뜨리려는 심산이 아니겠읍니까?]

영호충은 묵묵히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남봉황은 말했다.

[나는 볼수록 화가 치밀어 즉시 그를 독살해 죽여 버리려고 하였읍니다. 그러나 오라버니의 뜻이 어떤지 몰라 그를 독살하지 않았읍니다. 그를 독살하는 것은 마음만 먹으면 죽먹듯 쉬운 일 입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나의 체면을 많이 봐주었구료. 정말 감사하오.]

남봉황은 말했다.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그들이 말하는 것을 모두 들었읍니다. 그들은 오라버니가 항산에 돌아오기 전에 서둘러 일을 처리하자고 하였고, 어떤 자는 말하기를 하필이면 오라버니가 산에 없을 때 와서 오라버니를 함께 잡아가지 못하여 후환을 남겨 놓았다고 불평을 하였읍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동생이 그 자리에 있는데 그들이 나를 잡아가려 했다면 쉽지 않았을 것이오.]

남봉황은 심히 의기양양해서 말했다.

[그들은 재수가 좋았읍니다. 만약 그들이 오라버니의 털끝 하나라도 건드렸다면 아마 족히 이백 명은 독살당했을 것입니다.]
고개를 돌려 영영을 향해 말했다.

[임소저, 임소저는 그리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세요. 나는 항상 영호공자를 친오라버니처럼 여기고 있을 뿐입니다.]
영영은 얼굴이 빨개지며 미소를 띄우고 말했다.

[영호공자께서도 늘 당신의 말을 하곤 했읍니다. 당신이 매우 잘 대히 주신다고요.]

남봉황은 크게 웃으며 말했다.

[그것 참 잘 되었군요? 난 오라버니가 당신 앞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 당신 눈치를 볼까봐 걱정하고 있었읍니다.]
영영은 물어봤다.

[당신은 거짓으로 정신을 잃은 척했다는데 어떻게 그들을 따라 나설 수 있었읍니까?]

남봉황은 말했다.

[그들은 나의 몸에 독이 있을까봐 염려되어 더이상 나의 몸을 만지려고도 하지 않았읍니다. 어떤 자는 단칼에 나를 죽이자고 했고, 어떤 자는 암기를 쓰자고 했지만 그들은 말만 앞세울 뿐 어느 누구도 앞에 나서지를 못했읍니다. 그리고는 그대로 떠나갔읍니다. 나는 한참 동안 뒤를 밟아 틀림없이 그들이 화산으로 가는 것을 확인하고 오라버니를 찾아 이 일을 알려드리려고 이곳에 있었던 것입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이거 정말 감사하오. 만약 당신이 이 일을 알려주지 않았다면 우리들은 흑목애로 헛걸음만 칠 뻔하였읍니다. 일이 늦기 전에 우리 빨리 화산에 갑시다.]

세 사람은 즉시 길을 바꾸어 서쪽으로 갔다. 재촉하여 가는 동안 수소문을 해봤으나 어떠한 단서도 잡을 수 없었다. 영호충과 영영은 마음속으로 걱정을 하면서 생각했다.

(그들 일행은 수백명이어서 이곳을 지나갔다면 본 사람이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흔적이라도 남아 있을 것이 아닌가? 어째서 그들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단 말이냐. 설마 그들이 다른 길로 간 것이 아닐까?)

삼일째 되던 날 작은 주막에서 네명의 형산파 문인들을 볼 수 있었다. 이때 영호충은 이미 변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영호충을 알아 보지 못했다. 영호충은 몰래 그들의 뒤를 밟으며 그들이 주고 받는 이야기들을 엿들었다. 과연 그들은 화산에 가고 있었다. 그들이 기쁜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을 보니 마치 그들 앞에 금덩어리라고 기다라고 있는 것 같았다.
한 사람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다행히 황사형께서 우리에게 직접 연락을 주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는 산서(山西)에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서둘러 간다해도 늦었을 것이네. 형산의 사형사제들은 이번에 좋은 기회를 놓쳐버렸어.]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우리는 아무래도 좀더 서둘러야 될 것 같군. 이런 일은 시시각각으로 변하기 때문에 자칫하면 일을 그르치기가 쉽지.]
영호충은 그들이 무엇 때문에 급히 화산에 가려고 하며, 또 그들의 음모가 무엇인지를 알고 싶었다. 그러나 이 네 사람은 끝내 그 일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았다.
남봉황은 물어보았다.

[이 네 놈에게 독을 써서 불게 할까요?]

영호충은 형산 장문인인 막대선생이 평소에 자기를 잘 대해 주었기 때문에 그의 문하 사람들을 괴롭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말했다.

[우리가 빨리 화산에 가면 자연히 알게 될 것이오. 괜히 일을 크게 벌리지 맙시다.]

수일 후에 세 사람은 화산 아래에 당도하였다. 이미 날은 저물었다. 영호충은 어려서부터 화산에서 자랐기 때문에 화산의 지리에 대해 너무나 익숙하였다. 그래서 말했다.

[우리가 산 뒤편의 좁은 길로 올라가면 사람들을 만나지 않을 것이오.]

화산은 험준하기가 오악 가운데 최고라고 평이 나 있는데 더우기 산 뒤편은 험준하기가 이를데 없어서 인적이 뜸했다. 다행히 세 사람의 무공이 높아서 험한 봉우리나 깍아지른 절벽도 가볍게 올라갈 수 있었다. 그래도 화산의 정상에 도달하였을 때는 이미 사경(四更)이 지나 있었다.
영호충은 두 사람을 데리고 정기당(正氣堂)에 당도하였다. 정기당은 등불이 켜있지 않아 몹시 컴컴하였다. 창 아래 숨어 귀를 기울였으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다시 여러 제자들이 묵는 거처에 가서 살펴보니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영호충이 창문을 열고 들어가 불을 켜고 보니 과연 방안에는 한사람도 없었으며, 책상 위와 방바닥에는 먼지가 쌓여 있었다. 다른 방들도 살펴보니 모두 이와 같았다. 이것을 보니 화산의 제자들은 아직 돌아오지 않은 듯하였다.
남봉황은 일이 잘못되어 가는 것을 눈치 채고 말을 하였다.

[설마하니 못된 놈의 속임수에 걸려든 것은 아니겠지요? 혹시 그들이 화산에 간다고 해놓고 다른 곳으로 간 거은 아닐까요?]
영호충도 놀라 주저하고 있었다. 그날 소림사를 공격하였을 때 좌랭선의 계략에 넘어가 참혹한 패배를 맛보았던 것이 떠올랐다.
설마하니 이번에도 악불군이 파 놓은 함정에 걸려든 것이 아닐까? 그러나 지금은 단지 세사람 뿐이기 때문에 설사 포위를 당하더라도 빠져나가는 것은 극히 쉬운 일이었다. 다만 악불군이 항산 제자들을 찾기 힘든 은밀한 곳에 감금해 놓아 여러 날이 지나도록 그들을 구하지 못하게 될까봐 염려스러울 뿐이었다.
세 사람은 정신을 집중하여 귀를 기울여 보았으나 들리는 것은 오직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소리뿐 산에는 정적이 가득했다.
남봉황은 말했다.

[서로 떨어져서 찾기로 합시다. 한 시간 후에 이곳에서 만나기로 하구요.]

영호충은 말했다.

[좋습니다.]

그는 남봉황이 독을 매우 잘 썼으므로 그 누구도 그를 해치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걱정이 되어 한 마디 말을 하였다.

[다른 놈들은 겁낼 필요까진 없는 놈들이오. 그러나 나의 사부 악불군의 검법이 매우 빠르므로 반드시 조심을 해야 합니다.]
남봉황은 어둠속에서 자기를 걱정하는 그의 말투가 매우 간절하게 들렸는지라 자기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깊이 감동이 되어 말했다.

[오라버니, 내 일은 내가 알아서 잘 처리하겠읍니다. 너무 걱정 마십시오.]

문을 밀치고 밖으로 나갔다.
영호충은 영영을 데리고 또 한번 샅샅이 살펴보았다. 천금협(天琴峽)에 있는 악불군 부부의 거소까지 살펴보았다. 그러나 결국은 한 사람도 찾을 수가 없었다.
영호충은 말했다.

[정말 이상한 일이군요. 옛날 우리 화산파의 모든 사람이 하산을 할 때에는 반드시 문을 지키는 사람을 남겼는데 어째서 지금은 한 사람도 없을까요?]

마지막에는 악영산이 살던 집에 당도하였다. 그 집은 바로 천금협 옆에 있고, 악불군 부부의 거소와는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영호충은 문 앞에 이르자 그 옛날 소사매와 함께 놀며 검술을 연마하던 정경이 떠올랐다. 그러나 이제 다시는 그러한 시절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눈가가 촉촉히 젖어왔다.
그는 손을 내밀어 문을 밀쳤으나 문에는 빗장이 걸려 있었다. 영호충이 열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 것을 보고 영영이 가까이 다가오더니 빗장을 뽑아 문을 열었다.
두 사람은 안으로 들어가 불을 켰다. 침대와 책상 위에는 먼지가 뿌옇게 쌓여 있었고 텅빈 방은 썰렁하였다. 그녀가 화장하던 경대조차도 볼 수가 없었다.

영호충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소사매와 임사제는 결혼한 후 각기 따로 방을 쓰고 함께 살지 않았으므로 일상용품은 모두 옮겨 갔구나.)

책상 서랍을 열어보니 소사매가 어렸을 때 가지고 놀던 장난감들이 아직까지 그대로 놓여 있었다. 악영산은 그것을 버리지 않고 모두 모아두었던 것이다. 영호충은 가슴이 미어져 더이상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영영은 살며시 밖으로 나가 천천히 방문을 닫았다.
영호충은 악영산이 살던 방에서 한참 동안 옛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 결국 마음을 독하게 먹고 불을 끄로 그곳을 나왔다.
영영은 말했다.

[화산에는 당신과 관계가 깊은 곳이 한곳 있다고 했지요. 저도 구경 좀 하게 데려다 주세요.]

영호충은 말했다.

[음, 당신은 바로 사과애를 말하고 있군. 좋소, 내가 데려다 주리다.]

표정이 점차 밝아오더니 말하기를, [그런데 풍태사숙께서는 아직도 그곳에 계신지 모르겠소?]
즉시 앞장을 서더니 사과애를 향해 올라갔다. 이곳은 영호충이 자주 다니던 길이었으므로 잘 알고 있었다. 길은 그리 가깝지 않았으나 두 사람이 재촉하여 가자 금방 당도할 수가 있었다.
사과애에 올라오자, 영호충은 말했다.

[내가 이 동굴에다가......]

갑자기 굴 속에서 쨍그랑 하는 병기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은 깜짝 놀라 빠른 걸음으로 그 소리가 나는 쪽으로 달려가 보았다. 잠시후 한 사람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상처를 받고 지르는 소리였다. 영호충은 장검을 뽑아들고 다가가 보았다. 원래 막아놓았던 동굴 입구는 열려져 있었고, 그곳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영호충과 영영은 즉시 동굴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한 너무나 뜻밖의 광경을 보았다. 동굴 안에는 수십 개의 횃불과 이백여명의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모두 석벽에 조각되어 있는 검초와 무공의 초식을 넋을 잃고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한 곳에 정신이 팔려 있었기 때문에 동굴 안은 매우 조용하기만 하였다. 영호충과 영영은 비명소리만 듣고 얼핏 동굴안은 컴컴하고 피비린내나는 싸움이 벌어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동굴 안은 대낮처럼 밝았으며 많은 사람들은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꼼짝도 않고 서 있었던 것이다. 동굴 안은 매우 넓었으므로 이 많은 사람들을 수용하고도 비좁지 않은 것은 당연하지만 이 많은 사람들이 꿀먹음 벙어리처럼 한 곳을 응시하고 있는 정경을 보자 두사람은 너무나 놀랐던 것이다.
영영은 몸을 약간 우측으로 기울여 영호충과 어깨를 나란히 하였다. 영호충이 얼굴을 돌려보니 그녀는 안색이 눈처럼 하애게 질려 있었으며 눈동자에는 두려운 빛이 역력히 나타나 있었다. 좌측손을 내밀어 가볍게 그녀의 허리를 거머쥐었다. 그들의 옷차림을 살펴보고 단번에 숭산, 태산, 형산 세 파의 문인 제자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중에는 머리가 약간 센 중년의 사람도 끼어 있었고, 또 백발의 노인도 섞여 있었는데 이곳에는 이 세파의 많은 선배 명인들이 섞여 있는 듯하였다. 그러나 화산과 항산 두파의 문인들은 보이지 않았다.
세파의 인사들은 각기 무리를 지어 쳐다보고 있었으며 다른 파와는 서로섞이지 않았다. 숭산파 사람들은 석벽에 조각되어 있는 숭산파의 검초를 쳐다보고 있었고, 태산과 형산 두 파는 각기 자기 파의 초식을 살펴보고 있었다. 영호충은 이러한 광경을 보고 길에서 만났던 그 네 명의 형산 제자들의 말이 문뜩 떠올랐다. 그 네명의 제자들은 어떤 정보를 얻고 화산에 가는 중이며, 그들에게는 그것이 큰 행운이라고 말했는데 알고 보니 그들은 화산 뒷 동굴 석벽에 형산파의 정교한 검초가 조각되어 있다는 소문을 듣고는 서둘러 길을 재촉하였구나 하고 생각을 하였다. 유심히 살펴보니 형산파 무리 가운데 백발이 성성한 사람이 석벽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바로 막대선생이었다. 영호충은 가서 인사를 해야할지 그대로 그 자리에 서 있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였다.
갑자기 숭산의 무리에서 어떤 자가 매섭게 일갈을 했다.

[당신은 숭산의 제자가 아닌데 어째서 이곳에 와 그림을 보고 있소?]

말하는 사람은 노란 옷을 입은 노인이었다.
그는 몸집이 거대한 중년 남자를 향해서 눈을 부릅뜨고 있었으며 손에 든 장검으로 그의 가슴을 겨냥하고 있었다.
그 중년 남자는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언제 이 도형을 보았다고 그러시오?]

숭산파의 그 노인은 말했다.

[보아 놓고도 안 보았다고 생떼를 쓰는 구나. 너는 어느 파의 사람이냐? 네놈이 숭산 검법을 배우고자 않다면 내가 얼마든지 가르쳐줄 수 있다. 그런데 너는 어찌해서 우리 숭산 검법을 깨뜨리는 초식만을 자세히 보고 있느냐?]

그가 이렇게 일갈을 하자 삽시간에 사오명의 숭산 문인들은 몸을 돌려 그 중년 남자의 주위를 포위하고 번뜩이는 칼날을 겨누고 있었다. 그 중년 남자는 말했다.

[나는 당신파의 검법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고 있소이다. 그런 사람이 숭산 검법을 깨뜨릴 수 있는 검초를 보았다고 해도 무슨 쓸모가 있겠소이까?]

숭산파의 그 노인은 말했다.

[네놈이 우리 숭산 검법의 초식을 자세히 살펴보는 것은 아마 우리들에게 흑심을 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중년 남자는 칼자루를 잡더니 말했다.

[오악파 장문인이신 악선생은 우리에게 이 석벽에 조각되어 있는 검초를 구경하도록 허락하시었소이다. 절대로 어떤 초식은 보고 어떤 초식은 보지 말라는 지시는 없었지 않소.]

숭산파의 그 노인은 말했다.

[네놈이 우리 숭산파를 골탕먹이려고 한다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 중년 남자는 말했다.

[오파가 하나가 되었소. 지금은 오직 오악파만 있을 뿐 숭산파는 없읍니다. 만약 오파가 하나로 되지 않았다면 악선생은 이곳을 공개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우리에게 보라고 열어놓지도 않았을 것이오.]

이 말이 나오자, 그 노인은 아무 말이 없었다. 한 명의 숭산 제자는 손을 내밀어 그 중년남자의 어깨를 밀치며 일갈을 했다.

[네 놈의 입이 상당히 건방지구나.]

그 중년 남자가 그의 손을 뿌리치자 그 숭산 제자는 기우뚱하더니 땅바닥에 쓰러졌다.
바로 이때 태산파의 어떤 사람이 큰 소리로 일갈을 했다.

[너는 누군데 감히 우리 태산파의 옷을 입고서 이곳에서 태산의 검법을 훔쳐보고 있느냐?]

태산파 옷차림을 한 소년 하나가 급히 밖으로 도망치려고 하였다. 동굴 입구에서 한 사람이 번개처럼 나오더니 일갈했다.

[꼼짝하지 마라. 어떤 놈이 이곳에서 훼방을 놓고 있느냐!]
그 소년은 칼을 휘두르며 잽싸게 앞으로 달려나갔다. 입구를 막고 서 있던 자가 급히 손을 내밀어 그의 눈을 할퀴었다. 그 소년은 급히 뒤로 한발짝 물러섰다. 이번에는 문을 지키고 있던 자가 두손으로 질풍처럼 그의 눈을 향해 찔러들어갔다. 그 소년은 장검이 길게 뻗쳐 있었으므로 초식을 써서 막을 수가 없었다. 별수 없이 또 뒤로 한발짝 물러섰다. 그 문을 지키고 있던 사람이 우측발을 공격하자 그 소년은 잽싸게 피했다. 그러나 펑 하는 소리가 나더니 가슴에 일장이 격중되었다. 그 소년은 뒤로 벌렁 자빠졌다. 뒤에서 몇명의 태산파 제자들이 달려나오더니 그를 꼼짝 못하게 붙잡았다.
그때 숭산파 중에는 네명의 문인들이 그 중년 남자를 에워싸고 장검을 휘두르며 싸우고 있었다. 그 중년 남자는 손은 날카로웠다. 그러나 검법은 오악검파에 속하지 않았으므로 그 광경을 쳐다보고 있던 몇명의 숭산파 제자들은 외치기 시작했다.

[이놈은 오악검파의 사람이 아니다. 이곳에 숨어 들어온 밀정이다!]

검을 휘두르며 결투를 하자 조용하기만 했던 동굴은 삽시간에 혼란에 빠졌다.
영호충은 내심 생각했다.

(나의 사부가 이 사람들을 이곳에 불러 모은 것은 틀림없이 나쁜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내가 막사백님에게 알려서 그로 하여금 문인들을 이끌고 물러나도록 해야겠다. 그 석벽에 적힌 형산파의 검초는 내가 동굴을 나간 뒤에 그들에게 가르쳐줘야겠다.)
즉시 석벽에 몸을 바짝 붙이고는 살며시 막대선생을 향해 다가갔다. 몇발짝을 옮기는데 갑자시 산사태가 난 것처럼 덜커덩하는 큰 소리가 났다. 여러 사람들이 놀라서 외치는 가운데 영호충이 급히 몸을 돌려 보니 동굴 입구에 흙과 돌덩이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는 막대선생을 찾아갈 겨를이 없었다. 급히 영영을 향해서 달려갔다.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미친듯이 날뛰고 칼이 난무하고 있는 동굴안은 온통 먼지로 뒤덮혀 있어 영영이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많은 사람들을 헤치고 마구 들어오는 칼을 잽싸게 피하면서 동굴입구로 다가 갔다가 영호충은 자기도 모르게 아뿔사 하고 외쳤다. 무게가 수만근이 되는 바위가 동굴 입구에 떨어져 이미 동굴 입구를 막아놓고 있었다. 이 경황중에 주위를 살펴보니 나가는 통로는 없는 듯하였다.
그는 큰 소리로 외쳤다.

[영영! 영영!]

그가 영영 하고 외치자 동굴 안쪽에서 대답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였다. 그러나 이백여명이 우왕좌왕하고 떠드는 소리에 휩싸여 분명하게 들리지 않았다. 내심 생각하기를, (영영은 어째서 동굴 입구에 있지 않고 안쪽으로 들어갔단 말이냐.)

그러나 문득 머리에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맞다, 큰 바위가 떨어졌을 때 영영은 동굴 입구에 서 있다가 혼자 피하려 하지 않고 내가 걱정이 되어 안쪽으로 나를 찾으러 갔구나. 나는 동굴 입구를 향해서 그녀를 찾으로 갔고 그녀는 안쪽으로 가서 나를 찾으려 했던 것이다.)

즉시 몸을 돌려동굴 안쪽으로 들어갔다.
동굴 안에는 원래 수십개의 횃불이 켜져 있었다. 그러나 큰 바위가 떨어졌을 때 사람들은 너무도 놀란 나머지 어떤 자는 횃불을 던져버렸고, 어떤 자는 실수로 횃불을 땅에 떨어뜨렸기 때문에 이미 반 정도가 불이 꺼져 있었다. 동굴에는 흙먼지가 가득 찼기 때문에 동굴안은 어둠침침하고 흐릿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놀라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굴 입구가 막혔다!]

어떤 자는 화가 나서 말했다.

[악불군, 이 못된 놈의 음모다!]

또 다른 사람이 말했다.

[그렇다. 이 못된 놈이 우리들에게 제미럴! 검법을 보라 해놓고 속인 것이다!]

수십명은 동시에 그 큰 바위를 밀어 내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 큰 바위는 산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비록 수십 명이 일제히 힘을 썼으나 꼼짝도 하지 않았따.
또 어떤 자가 외쳤다.

[빨리 지하갱도로 나갑시다.]

그러나 벌써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이십여명의 사람들이 지하갱도 입구에서 다투고 있었다. 그 지하갱도는 그 옛날 마교의 대도신마(大刀神魔)가 도끼로 파놓은 것인데 겨우 한 사람만이 들어갈 수가 있는데 이십여명이 한꺼번에 달려드니 그 어찌 들어갈 수가 있겠는가. 이렇게 한바탕 혼란이 일어나자, 횃불은 또 다시 몇개가 꺼졌다.
그들 가운데 두명의 덩치가 큰 사내가 있는 힘을 다해서 옆사람을 밀치고 지하갱도를 향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갔다. 지하갱도는 매우 좁았으므로 두 사람이 부딪치자 그 누구도 들어갈 수가 없었다. 우측의 사내가 좌측손을 휘두르자 좌측에 있는 다른 사내는 비명소리를 질렀다. 그의 가슴에는 이미 비수가 꽃혀 있었었다. 우측의 사내는 그를 밀치고 지하갱도로 들어갔다. 그 나머지 사람들은 서로가 밀치며 함께 따라 들어가려고 생각을 하였다.
영호충은 영영이 보이지 않자 내심 또 생각을 하였다.

(마교 십장로는 모두가 무공이 걸출한 자들인데도 함정에 빠져들어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다. 나와 영영이 오늘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만약 이 모든 일을 나의 사부가 안배를 해 놓았다면 아마 빠져나가기가 어려울 것이다.)

여러 사람들이 지하갱도 입구에서 서로 밀치고 싸움을 하고 있자 영호충은 놀라고 초조하여 내심 살기가 동하였다.

(이놈들은 모두가 방해만 하는 놈들이다. 반드시 이놈들을 하나하나 죽여버려야만 나와 영영이 이곳을 빠져나갈 수가 있다.)
장검을 휘둘러 사람들을 죽이려고 하였다. 이때 어떤 소년이 땅바닥에 엎드려 두손으로 머리카락을 거머쥐고 안샌이 흑빛으로 변하여 두려움에 사로잡혀 벌벌 떨고 있는 광경을 보자 갑자기 영호충은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나와 그들은 모두 어려운 곤경에 빠져 있다. 당연히 그들과 생사를 같이해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어찌 그들을 죽여 화풀이를 할 수 있겠는가?)

장검을 이미 쳐들었으나 즉시 검을 거두고 자기 방어 자세를 취하였다.
지하갱도의 이십여명이 큰 소리로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빨리 들어가거라!]
[어째서 움직일 수가 없느냐?]
[어째서 기어들어갈 수가 없느냐?]
[그를 빨리 끌어내려라!]

지하갱도에 기어들어갔던 사내의 두 다리가 밖으로 나왔다. 마치 안에는 길이 막혀 더이상 들어갈 수 없는 듯하였다. 그러나 나올 생각도 하지 않는지 꿈쩍도 않고 있었다. 두 사람은 고개를 숙여 각각 그 사내의 양쪽 다리를 잡고 힘껏 안으로 잡아당겼다. 갑자기 수십명은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 두 사람이 힘껏 끄집어 낸 것은 머리가 없는 시체였던 것이다. 시체는 머리가 잘라져 나갔으며 목에는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이 사내의 머리는 지하갱도 저편에서 잘린 것이다.
바로 이때 영호충은 동굴 구석에 한 사람이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언뜻 보아하니 희미하게 영영인 것 같았다. 그는 기뻐서 달려갔다. 그러나 두어 발짝 걸음을 옮겼을 때 칠팔 명의 사람들이 갑자기 그의 앞을 막고 섰다. 이때 동굴 안은 이미 아비규환이 되어 많은 사람들은 이성을 잃고 있었으며 머리잘린 파리처럼 갈피를 못잡고 아무데나 부딪쳤다. 어떤 자는 미친 듯이 칼을 휘두르고 있었으며, 어떤 자는 자기 손으로 가슴을 치며 울부짖고 있었고, 어떤 자들은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있었으며, 또 어떤 자들은 땅바닥을 기고 있었다.
영호충은 있는 힘을 다하여 앞으로 몇발짝 나아갔다. 그런데 갑자기 두 다리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어떤 자가 자기의 두 다리를 거머쥐고 있었다. 그는 손을 내밀어 그자의 머리에 일격을 가하였다. 그자는 큰 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죽어도 손을 놓지 않겠다는 것 같았다.
영호충은 일갈했다.

[이놈아, 빨리 다리를 놓아라! 놓지 않는다면 네놈을 죽여버리겠다.]

갑자기 허벅다리에 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자기 다리를 거머줬던 자가 다리를 물었던 것이다. 영호충은 깜짝 놀라고 화가 났다. 많은 사람들이 모두 미친 것처럼 보였다. 동굴의 횃불은 갈수록 그 숫자가 적어 들었다. 오로지 두개의 횃불만이 껌뻑이고 있었다. 그러나 횃불 하나는 이미 땅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그 누구도 꺼져가는 횃불을 집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큰 소리로 외쳤다.

[빨리 횃불을 주우시오.!]

한 명의 뚱뚱한 사내가 껄껄 웃더니 자기가 잡고 있던 한 자루의 횃불마저 비벼 꺼 버렸다. 영호충은 장검을 들어 자기 다리를 거머쥔 자의 허리를 찔렀다. 갑자기 눈앞이 컴컴해 오면서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한 자루 남은 횃불마저도 꺼진 것이다.
마지막 남은 횃불이 꺼지자, 굴 속은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갑자기 닥친 변괴에 모두들 놀라 어찌할 바를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조금 지나자 여기저기에서 심한 욕지거리가 터져 나왔다.
영호충은 내심 말했다.

(오늘의 상황은 오로지 죽음만 있을 뿐 살아나갈 가망은 전혀 없구나. 다행히 영영과 함께 있으나 죽어도 여한이 없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두려움이 사라지고 마음이 안정되었다. 영영이 있는 곳을 짐작 하고는 더듬어서 건너갔다. 몇걸음 걸어 나가자 옆에서 어떤 자가 달려나오며 영호충의 몸에 힘껏 부딪쳤다. 이 사람의 내공은 상당히 높아서 부딪치자 영호충은 뒤로 몇발짤 굴러떨어졌다. 몸을 일으켜 또 다시 영영이 있을 만한 곳을 향하여 걸어갔다. 귓속에는 오로지 서로 욕지거리하는 소리와 우는 소리 그리고 수십 자루의 무기가 부딪치는 소리만이 들릴 뿐이다.
컴컴한 어둠 속에 갇히자 많은 사람들은 당황하고 조급해져 대부분이 반정도 미쳤고 모든 사람들은 자기자신을 방어하느라고 정신없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나이 많고 신중하고 무공이 강한 사람들은 처음에는 진정을 하고 여러 사람들에게 임기응변을 하고 있었으나 다른 사람들이 병기를 마구 휘둘러대고 있는데다가 너무나 어두워 지척을 분간할 수조차 없고 몸도 피할 수가 없자 그들 또한 병기를 휘둘러 몸을 지킬 수 밖에 달리방법이 없었다. 오로지 병기가 부딪치면서 지르는 외침소리와 비명소리가 들려왔는데 그것은 상처를 입은 자의 입에서 흘러나온 저주의 외침이었다. 영호충의 귓가에는 오로지 병기가 난무하는 소리만 들려오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그의 검법이 아무리 높다해도 전개할 도리가 없었다.
한순간 순간마다 누구에게 영문도 모르게 죽을을 당할지 모르는 상태, 그는 번뜩 이러한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자 즉시 장검을 휘둘러 자기의 몸을 막았다. 한걸음 서서히 벽을 향해서 다가갔다. 손이 벽에 닿기만하면 벽을 기대어 걸어갈 수 있고 또한 많은 위험을 피할 수가 있을 것이다. 조금 전에 영영이 벽을 기대고 서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이렇게 더듬어 간다면 즉시 그녀와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다. 그가 서 있는 곳에서 벽까지는 불과 수장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검이 여기저기서 난무한 상태에서는 한걸음을 옮기기가 힘들고 한 발짝을 뗄때마다 그곳에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영호충은 내심 생각하였다.

(만약 내가 무림의 고수의 손에 죽는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지만 지금 상태로 보아 자칫하면 영문도 모르게 죽을 수가 있고 어쩌면 나를 죽이려 하는 자가 무공의 무자도 모르는 멍청이 일지도 모른다. 설령 독고대협(獨孤大俠)이 다시 소생을 한다 해도 이런 상황을 만나면 아마 그 역시 일초식도 전개하지는 못하리라.)
독고구패(獨孤求敗)가 생각나자 영호충은 마음이 삽시간에 철렁 하였다.

(맞다, 오늘의 국면은 내가 영문도 모르게 죽음을 당하거나 아니면 바로 내가 영문도 모르게 사람을 죽이는 것 뿐이다. 한사람을 죽이면 내 자신이 죽을 확률이 그만큼 적어지는 것이다.)
장검을 들어 독고구검 중에 파전식(破箭式)을 전개하여 앞과 좌우의 적들을 향해서 칼을 휘둘렀다. 초식을 전개하니 주위에서 몇사람이 신음소리를 내며 땅바닥에 나뒹굴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서 장검이 또 한사람의 몸에 들어가는 감각이 전해왔다. 갑자기 악 하는 가는 신음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여자의 목소리였다.
영호충은 깜짝 놀라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으며 하마터면 장검을 떨어뜨릴 뻔했다. 가슴이 방망이질하듯 뛰었다.

(혹시 내가 영영을 죽인 것이 아닐까? 내가 잘못해서 영영을 죽인 것은 아닐까?)

그래서 큰 소리로 외쳤다.

[영영, 영영, 당신이오?]

그러나 그 여자는 더이상 신음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는 평소에 영영의 목소리를 익히 들어왔기 때문에 평상시 같았으면 이 외마디 비명소리가 그녀의 입에서 나왔는가 나오지 않았는가를 극히 쉽게 판명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혼란 속에 뒤섞여져 버린 어렴풋한 비명소리는 지금 신경이 매우 곤두서있는 영호충에게 매우 불안한 심정을 일게 했다. 영영 그녀의 입에서 나온 외침소리인 것 같기도 했고 아닌 것 같기도했다. 그래서 또다시 몇번인가 불러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대답을 들을 수가 없었다.
고개를 숙이어 땅바닥을 더듬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힘껏 자기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영호충의 몸은 앞으로 똑바로 나가 허공에 붕 떴으며 동시에 좌측다리가 아파왔다. 어떤 사람에게 채찍을 맞은 것이다. 그는 즉시 좌측손을 내밀어 손바닥을 펴서 머리를 보호하는 자세를 취하였다. 이내 퍽 하고 소리가 나면서 영호충은 동굴 벽에 부딪쳐 땅에 떨어졌다. 머리와 팔뚝 그리고 다리, 엉덩이 아프지 않은 곳에 없었고 온몸에 골절이 하나하나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정신을 차리고 또다시 두어번 영영 하고 불러보았다. 자기가 들어봐도 자기 입에서 나온 목소리가 몹시 쉰 듯하였으며 그 목소리에는 울음마저 섞여 있었다. 그는 급해서 크게 외쳤다.

[나는 영영을 죽였다. 내가 영영을 죽였어.]

앞으로 나가 연속해서 장검을 휘둘러 몇사람을 칼로 찔러 죽였다.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에서 갑자기 은은하게 악기를 켜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영영의 요금(瑤琴)소리였다. 가냘프게 들려오는 이 소리는 영호충의 귓가에는 마치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였으며 너무나도 기뻐서 혼이 다 빠질 것 같았다.
그는 미친듯이 크게 외쳤다.

[영영! 영영!]

순간 금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서 달려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금소리가 흘러나오는 곳은 자기가 서 있는 곳과 상당히 멀었고 이 수십장의 길을 건너간다는 것은 강호의 수십리 아니 수만리 길을 가는 것보다 백배 천배 어렵다는 것을 순간 생각했다. 진정 이 몇십장의 길을 죽지 않고 갈 수 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금소리는 물론 영영이 내는 것이고 그녀가 건재한 이상 자기의 생명을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 만약 두 사람이 손과 손을 마주잡고 함께 죽을 수가 없다면 죽어서 구천에 가서라도 그 여한이 남을 것 같았다.
그는 뒤로 두발짝 물러나 등을 동굴벽에다 바짝 기대고는 내심 생각하였다.

(이렇게 벽에 바짝 기대어 있으면 안전하겠구나.)

갑자기 강력하게 바람이 불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자가 검을 휘두르며 질풍처럼 달려오고 있는 것이다.
영호충은 일검을 내리찍었다. 장검이 움직였으나 내심일이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독고구검의 요지(要旨)는 바로 상대방의 초식에서 빈틈을 발견하여 그 빈틈을 이용해서 공격해 들어가는데 있는 것이다. 즉 먼저 공격할 수는 없지만 상대방의 빈틈을 찾아 정확하게 꽂음으로서 일초에 상대방을 제압하는데 있는 것이다. 상대방의 얼굴도 볼 수 없는 이 컴컴한 동굴속에서 그의 초식은 말할 것도 없고 초식중에 빈틈은 더욱 볼 수가 없었다. 이런 상황중에 독고구검은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영호충은 장검을 한척정도 내밀다가 급히 좌측으로 몸을 피하였다. 몸을 피하는 순간 동시에창그랑 하고 소리가 났다. 이어서 퍽 하는 소리가 나더니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생각을 해보니 틀림없이 그자의 병기는 석벽에 부딪쳐 부러져 나갔으며 반쪽으로 부러진 병기가 도로 그의 몸을 꿰뚫은 것 같았다.
영호충은 귀를 기울여 그 자의 신음소리를 들으려 했으나 더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틀림없이 즉사한 것 같았다. 내심 생각하기를, (내가 아무리 검술이 높더라도 컴컴한 어둠속에서는 배우지 못한 자와 다를 바가 없었다. 이렇게 잠시 참고 기다린다면 영영과 다시 만날 수가 있으리라.)

그러나병기 부딪치는 소리가 더욱더 난무했으며 외치고 떠드는 소리와 신음소리는 조금도 줄어드는 것 같지 않았다. 이것으로 보아 이 사이에도 많은 사람들이 쓰러지고 있는 듯하였다. 그는 장검을 신속하게 몸앞에서 휘둘러 대었다. 검을 세게 휘둘러 하나의 검망(劍網)을 짜서 갑자기 공격해 들어오는 것을 방비하기 위해서였다.
요금 소리는 끊이지 않고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그러나 그 음계는 토막토막 끊어지고 곡조 또한 완전하지 못했다.
영호충은 다시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내심 생각하기를, (혹시 영영이 상처를 입은 것이 아닐까? 어쩌면 금을 타는 사람이 그녀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약 그녀가 아니라면 다른 사람이 어찌하여 금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한참 지나자 비명소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땅바닥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신음을 하고 욕지거리를 하고 있었으며 어쩌다가 병기가 부딪치는 소리와 일갈하는 소리가 띠엄띠엄 들려왔다. 병기가 부딪치는 소리와 일갈하는 소리는 모두 벽 가까운 곳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영호충은 내심 말을 하였다.

(나머지 죽지 않은 자들은 벽에 기대어 서 있구나! 이 자들은 틀림없이 무공이 비교적 높거나 침착한 고수들일 것이다.)
그는 참지 못하고 또 외쳤다.

[영영, 영영, 영영 당신은 어디 있소?]

맞은편에서 청아한 금소리가 청그랑 청그랑 울려왔으며 마치 영호충의 말에 대답을 하는 듯하였다.
영호충은 몸을 날려 서둘러 앞으로 나갔다. 좌측발을 땅에 내딛는 순간 자기 발밑이 물컹한 것을 밟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한사람의 몸 위에 발을 내딛었던 것이다. 이어서 순식간에 바람 소리가 나더니 땅바닥에서 한 자루의 병기가 힘차게 자기를 향해서 들어오고 있었다. 어쨌든 영호충의 내공은 상당한 경지에 이르고 있었으므로 비록 상대방의 병기를 볼 수는 없었으나 자기를 향해 공격하는 것을 느낌으로 알 수가 있었다.
좌측발을 한발짝 뒷걸음질쳐 다시 원위치로 물러섰다. 깊이 생각하기를, (땅바닥에는 많은 사람들이 쓰러져 있는데 그중에는 상처만 입고 아직까지 죽지 않은 자들이 있을게다. 절대로 가로질러 건너가면 안 되겠다.)

그러나 쌩쌩 하고 세차게 병기를 휘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모두가 등을 벽에 기대고 병기를 휘둘러 몸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이에 또 몇사람이 죽거나 상처를 입었다.
갑자기 나이 든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러 친구들, 우리들은 악불군의 간계에 빠졌읍니다. 서로 위험한 상태에 처해 있으니 응당히 서로 협조하여 이 곤경에서 빠져나가야 합니다. 절대로 병기를 마구 휘둘러 서로를 죽이지 맙시다.]
남아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말을 했다.

[그렇소, 그 말이맞소.]

영호충은 이자의 목소리를 들어보니 육칠십은 능히 된 사람 같았다. 지금 이 사람들은 몸을 벽 가까이 바싹 붙이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살아 남은 이 자들은 본래가 다른 사람보다 조금은 침착한 사람이었으므로 일순간의 위험이 약간 수그러들자 모두 냉정을 되찾아 조금씩 생각을 가다듬을 수가 있었다.
그 노인은 또 말했다.

[빈도는 태산파의 옥경자(玉鏡子)입니다. 자, 이제 모두들 검을 거두시오. 굴 안이 컴컴하므로 사람과 사람 몸이 부딪친다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소. 설사 다른 사람이 자기 몸을 부딪친다해도 절대로 무기를 휘두르면 아니되오. 여러 친구들은 이 약속을 지킬 수 있소이까?]

여러 사람은 일제히 말했다.

[그렇게 하겠소.]

이 대답이 끝나자 병기가 일제히 멈추었다. 몇사람은 여전히 검을 휘두르고 있었으나 조금 지나자 서로 제각기 자제를 하였다.
옥경자는 말했다.

[모든 사람들은 맹세를 해야 됩니다. 만약 나 혼자 살겠다고 이 동굴 속에서 다른 사람을 죽인다면 우리 모두 이곳에서 영원히 나갈 수가 없을 뿐아니라 다시는 광명천하를 볼 수가 없을 겁니다.
빈도 태산의 옥경자가 먼저 맹세를 하겠소.]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맹세를 하였다. 그리고는 모두 생각을 하였다.

(태산의 옥경자라는 도장은 극히 견문이 넓은 사람이야. 모두 협력하고 합심해야만이 이 곤경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조금천처럼 칼을 마구 휘두른다면 영원히 이곳에서 빠져나가지 못할 뿐 아니라 모두들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옥경자는 말했다.

[좋소, 그렇다면 여러분께서는 각자 자기의 이름을 대시오.]
즉시 어떤 사람이 말했다.

[저는형산파의 누구요.]
[저는 태산파의 누구입니다.]
[저는 숭산파의 누구입니다.]

그러나 막대선생의 이름은 들리지 않았다.
여러 사람이 말을 한 뒤에 영호충은 말했다.

[저는 항산파의 영호충올시다.]

여러 군웅들은 억 하고 소리를 질렀다. 모두들 말했다.

[항산 장문인인 영호대협께서 이곳에 계시다니 그것 참 잘 되었소.]

말투속에는 퍽이나 위안이 되는 듯하였다.
영호충은 내심 생각하였다.

(나는 큰일났는데 좋신 뭐가 좋단 말이냐.)

그도 물론 알고 있었다. 자기의 무공이 높으므로 군웅들은 자기와 함께 있으면 이곳에서 빠져나갈 희망이 조금은 더 있다는 위안을 갖는다는 것을.
옥경자는 말했다.

[영호 장문님께 여쭤보겠읍니다. 어째서 귀파는 오직 장문인 혼자만 이곳에 오셨읍니까?]

노인은 생각이 깊은 사람이다. 그가 암암리에 자기들에게 불리한 짓을 할까봐 의심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영호충의 출신은 화산이고 또한 악불군의 제일 큰 제자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바이다.
이 동굴 속에 갇혀 있는 태산과 형산 숭산 세파의 수백명 제자 가운데 오로지 영호충, 그 혼자만 항산파이니 자연히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영호충은 말했다.

[나는 또 다른 동반자가 한사람 있소......]

그는 영영을 찾고 싶어서 큰소리로 외쳤다.

[영......]

단지 영자라는 외마디 소리를 부르고 즉시 생각하였다.

(영영은 일월교의 교주의 하나밖에 없는 딸이다. 정사(正邪)쌍방은 옛날부터 기름과 물처럼 서로 으르렁대는 사이인데 괜히 그녀의 이름을 대었다가는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

그래서 즉시 입을 막았다.
옥경자는 말했다.

[자기 몸 주위에 횃불이 있는 자는 먼저 횃불에 불을 당기시오.]

여러 사람은 일제히 환호를 했다.

[맞소, 그말이 맞소.]
[모두들 멍청이가 된 모양입니다. 어째서 그 생각을 미처 못했을까요?]
[빨리 횃불에 불을 켜시오.]

사실 조금 전 대혼란 중에 모든 사람들은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지키는데 혈안이 되었기 때문에 불을 붙일 여유조차도 없었다. 만약 불을 당겼다가 자기의 몸체가 남들에게 노출이 되어 그 즉시 죽음을 당할지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탁탁 하고 부싯돌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떤 자가 부싯돌을 꺼내어 불을 켜고 있었다. 부싯돌이 부딪치자 불꽃이 튀어나왔는데 어둠속이라 그 불빛은 더욱 환해 보였다. 이어서 기름종이에 불이 붙자 동굴 속에는 또 한바탕 환호소리가 들려왔다.
영호충이 언뜻 주위를 살펴보니 동굴별 주위에 사람들이 꽉 차게 들어서 있었으며 그들의 몸과 얼굴은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또 어떤 자는 손에 검을 거머쥐고 천천히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아주 조심스러운 사람들이다. 비록 맹세를 하였지만 필경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영호충은 큰 걸음으로 맞은편 동굴벽을 향해 걸어가 영영을 찾으려고 하였다.
갑자기 무리들 가운데 어떤 자가 일갈을 하였다.

[없애버려라!]

칠팔명이 검을 휘두르며 지하갱도에 나타났다. 군웅들은 크게 외쳤다.

[누구냐!]

서로 다투어 병기를 휘두르며 방어를 하였다. 칼과 검이 몇번 부딪치자 횃불에 붙었던 불은 꺼져버렸다. 영호충은 큰 걸음으로 잽싸게 맞은편 동굴벽에 가 기대섰다. 그런데 그의 우측으로 병기가 갑자기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동굴 안이 너무나 컴컴했으므로 어떻게 막을 수가 없어서 별수 없이 땅바닥에 엎드렸다. 챙그랑 하고 소리가 나면서 한자루의 단도가 동굴벽에 와 닿았다.
그는 생각하였다.

(이 사람은 나를 죽이려 한 것은 아닐 것이다. 너무 어두워서 자기의 몸을 지키려 한 것뿐이다.)

즉시 땅바닥에 엎드려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 자는 몇번 칼을 헛치자 역시 동작을 멈추었다. 한사람의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개 같은 놈들을 모조리 죽여버려라. 절대로 한놈도 남기지 말아라.]

십여 사람은 일제히 대답을 하였다.
일곱여덟 사람은 외치기 시작했다.

[좌랭선이다! 좌랭선.]

또 어떤 사람은 말했다.

[사부님, 제자가 여기 있읍니다.]

영호충은 그 명령을 내린 목소리가 틀림없이 좌랭선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내심 생각하기를, (어떻게 그가 이곳에 있을까? 알고 보니 함정은 이 못된 놈이 파논 것이로구나. 나의 사부는 켤코 아니었어.)

악불군은 비록 여러 차례 자기를 죽이려고 했지만 그와 자기와는 이십년동안 맺어온 스승과 제자의 관계였고 또한 그것은 부자지간의 정분으로 두텁게 맺어온 것이기 때문에 그의 마은은 이미 확정적으로 좌랭선이 함정을 판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흉계를 꾸민 자가 악불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자기도 모르게 퍽이나 위안이 되고 안심이 되었다. 만약에 좌랭선의 손에 죽는다면 사부에게 죽음을 당하는 것보다도 천배 만배 한결 마음이 편할 것이다.
음산한 좌랭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놈들은 무슨 염치로 나를 사부라고 부르르냐, 나에게는 알리지도 않고 스스로 화산에 들어 오다니, 이미 너희들은 스승을 배반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나의 문하에 어찌 너희같은 못되먹은 놈들이 있느냐.]

한명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부님, 저는 화산 사과애의 동굴속에 우리파의 검초가 조각되어 있다는 소식을 들었읍니다. 볼래 산에 가서 사부님에게 먼저 알려드리려고 하였읍니다. 그러나 사부님에게 알린 다음 다시오면 그 사이에 석벽에 조각되어 있는 검초를 다른 사람이 지우지나 않을까 염려되어서 이렇게 급히 이곳에 먼저 당도를 하였읍니다. 검법을 보고난 후에 제자는 즉시 산에 가서 그 검초를 사부님에게 알려드리려고 했읍니다.]

좌랭선은 말했다.

[네놈은 내가 두 눈이 멀었다고 나를 속이고 있다. 너는 이미 나를 안중에도 두고 있지 않은 것이다. 어찌 정묘한 검법을 배운 뒤에 나 같은 사부를 알아보겠느냐. 악불군은 자기에게 충성할 것을 맹세한다는 서약을 받아 놓은 후에 비로소 너희들에게 이 동굴에 와서 검초를 보도록 허럭하지 않았느냐. 그 일이 없었다고는 말하지 않겠지.]

그 숭산의 제자는 말했다.

[녜, 그렇습니다. 제......제자는 죽어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은 방편이었을 뿐입니다. 오악검파가 하나가 되었고 악불군이 장문인이 됐으니 그의 명령을 듣는다는 것은 그것은......그것은 응당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 못된 놈이 이와 같은 함정을 파놓고 우리를 이곳에 가뒤둘 줄은 생각지도 못하였읍니다.]
또 한 사람이 말했다.

[사부님, 사부님께서 우리를 이곳에서 빠져나가게 해주십시오.
우리 모두가 악불군 못된 놈을 잡아서 그 빚을 갚을 것입니다.]
좌랭선은 흥하고 콧방귀를 뀌더니 말했다.

[네놈음 퍽이나 머리를 잘 굴리는구나.]

그는 잠시 멈추었다가 또 말했다.

[영호충, 너도 이곳에 왔다는데 무엇하러 이곳에 왔느냐?]
영호충은 말했다.

[이곳은 옛날에 내가 살던 곳이오. 내가 오고 싶으면 오는 것 아니겠소. 그런데 귀하께선 어떻게 오셨소이까?]

좌랭선은 냉랭하게 말했다.

[죽을 때가 가까와오니 선배한테도 이렇게 무례하구나.]
영호충은 말했다.

[암암리에 음모를 꾸며 천하의 영웅들을 함정에 빠뜨려 모두를 죽이려고 하는 당신이 어떻게 나의 선배가 될 수 있단 말이오.]
좌랭선은 말했다.

[평지(平之)야, 네가 가서 저놈을 없애버려라.]

컴컴한 가운데 한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녜.]

바로 임평지의 목소리였다.
영호충은 내심 깜짝 놀랐다.

(알고 보니 임평지도 이곳에 있었구나. 그와 좌랭선은 모두가 눈이 멀었다. 얼마동안 그들은 이미 맹인의 검법을 익숙하게 연마해서 눈이 할 일을 귀가 대신하여 바람소리만을 듣고 사물을 분간하는 공력을 매우 정묘하게 터득했을 것이다. 컴컴한 상황이라 형세가 뒤바뀌었구나. 내가 눈이 먼 꼴이 되었고 그들은 오히려 눈이 멀지 않은 꼴이 되었으니 말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내가 어찌 그들의 상대가 될 수 있단 말이냐.)

등허리에서 식은 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임평지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영호충, 너는 강호에서 종횡무진으로 활약을 하고 있는데 오늘은 결국 내 손에 죽게 되었구나 하하하!]

그 웃음소리에는 차가운 기가 음산하게 스며 있었다. 임평지는 한걸음 한걸음 영호충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조금 전에 영호충과 좌랭선이 말을 주고받고 있을 때 이미 염평지는 영호충이 어디에 있는가를 짐작하고 있었다. 오로지 들리는 소리라고는 임평지의 발자국소리뿐 동굴속에는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그가 한걸음 뗄 때마다 영호충은 자기가 이미 염라대왕 앞으로 한발짝 걸어가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갑자기 어떤 사람이 외쳤다.

[잠깐만! 영호충은 내 눈을 멀게 하였소. 바로 이자가 내 눈을 멀게 하여 그로부터 나는 광명천지를 볼 수 없게 되었소. 나에게 이자를 없앨 수 있는 기회를 주시오.]

몇몇 사람이 일제히 말을 따라 하더니 모두들 함께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영호충은 내심 멈칫하였다. 이자들은 바로 낡은 사당 밖에서 자기와 격투를 벌였던 그날 저녁 눈이 멀게 된 사람들이었다. 숭산의 오파가 하나로 병합되는 집회에 참석하러 간 그날에도 영호충은 숭산에서 이자들을 만났던 것이다. 이자들은 오래 전부터 눈이 멀어 버려서 귀로 눈을 대신하여 사물을 분간하는 그런 재주는 틀림없이 뛰어날 것이다.
임평지 하나도 막을 수 없는데 열다섯사람이 합세를 해 공격해 들어온다면 사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고, 자기는 이미 상대방의 맞수는 못되었다.
그들의 발걸음소리가 가까와 오는 것을 들을 수가 있었다. 그는 살며시 좌측으로 몇발짝 물러났다. 창그랑 소리가 나더니 몇자루의 장검이 자기가 방금 서 있었던 동굴벽에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행히 이 열몇 사람은 동시에 공격을 했고 자기들의 발걸음소리에 영호충의 발걸음소리가 감춰져서 누구도 그가 어느쪽으로 이동을 했는지 모르고 있었다.
영호충은 고개를 숙여 땅바닥에서 한자루의 장검을 붙잡았다. 장검을 멀리 던지자 창그랑하면서 장검음 맞은편 동굴벽에 부딪쳤다. 십여명의 눈먼 자들은 일제히 그쪽으로 달려갔고 병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왔다. 다른 사람들과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비명소리가 여기저기서 끝이지 않더니 순식간에 여섯일곱 사람이 칼에 맞아 절명을 하였다. 이 사람들은 본래 무공이 그리 약한편은 아니었으나 사물을 볼 수가 없는 컴컴한 상황이라 이 눈먼 봉사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영호충은 이 기회를 틈타 좌측으로 미끄러져 갔다. 석벽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는 천천히 땅바닥에 꿇어앉아 깊이 생각을 하였다.

(좌랭선은 임평지와 눈먼 자들을 데리고 이곳에 왔다. 그것은 컴컴하고 빛이 없는 것을 이용해서 나와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을 죽이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그가 어찌 이 동굴을 알아냈을까?)
순간 무엇인가 확연하게 깨달았다.

(맞다. 그날 소사매가 봉선대에서 이곳 석벽에 조각되어 있는 초식으로 태산, 형산 두 파의 고수들을 물리치고 좌랭선의 면전에서 숭산의 검법을 펼쳐 보였으며 항산의 검법으로 나와 검시합을 하였었다. 그녀가 이곳에 와서 검술을 익히고 있었으므로 임평지 또한 자연히 이 장소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소사매 생각이 떠오르자 마음이 아파왔다.
임평지의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영호충, 빨리 모습을 나타내어라. 숨어 있으면서 어찌 영웅이라 하겠느냐!]

영호충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으며 성질 같아서는 몸을 내밀어 그와 결전을 하고 싶었지만 자기 스스로 타일렀다.

(대장부는 굴욕도 참을 수 있어야 한다. 어찌 혈기만 가지고 이자와 싸우겠는가? 내가 영영을 찾지 못하면 절대로 쉽게 죽을 수 없다.)

또 생각을 하였다.

(나는 소사매에게 임평지를 보살펴 주겠노라고 대답을 하였다.
만약 달려나가 그와 결투를 하여 그에게 죽임을 당한다면 그 죽음에는 값어치가 없을 뿐 아니라 반대로 그를 죽인다 해도옳은 일은 아닐 것이다.)

좌랭선은 일갈을 했다.

[동굴 속에 있는 모든 반역한 놈들과 첩자들을 모두 죽여 없애 버려라. 그렇게 되면 영호충은 숨어 있을 곳이 없게 될 것이다.]
순식간에 동굴안에는 또 다시 병기가 서로 부딪치는 소리와 고함소리와 비명소리가 크게 일었다.
영호충은 그래도 땅바닥에 꿇어 앉아 있었다. 그 누구도 그를 향해서 공격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귀를 세워 영영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하였다. 깊이 생각하기를, (영영은 나보다고 똑똑하고 총명한 사람이다. 지금 사방이 매우 위험하므로 절대로 금소리를 내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상황으로는 조금전에 내가 일검을 휘두들 때 쓰러진 여자가 영영이 아니었으면 좋겠구나.)

군웅들과 눈먼 자들이 심히 치열하게 싸움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편으로는 싸우면서 한편으로는 욕을 해대었는데 가끔 지할머니할놈들이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할머니할놈이란 말은 듣기가 심히 거북하였다. 통상적으로 사람에게 욕을 할 때 제미랄놈이라든가 지미랄 새끼 또는 곱게 못해 먹을놈이라는 말을 사용하긴 하지만 지할머니를 붙어먹을 놈이라는 욕은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깊이 생각하기를, (이 말은 어쩌면 특별한 지방에서 사람들에게 욕을 할 때쓰는 사투리가 아닐까?)

잠시 더 들어보니 지할머니를 붙어먹을 놈이라는 말을 할 때 두 사람이 동시에 욕을 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이 욕이 나오면은 병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그쳤으며 만약 한쪽에서만 욕을 하면 싸움이 계속되었던 것이다. 그는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즉시 무엇인가 깨달았다.

(알고 보니 그것은 눈먼자들이 서로를 식별하는 암호이구나.)
컴컴하고 또한 눈이 멀었기 때문에 적과 자기편을 분간하기 어려웠으므로 이 눈 먼 사람들은 틀림없이 약속을 하고 초식을 쓸때는 먼저 지할머니할놈들하고 욕을 했던 것이다. 두 사람이 일제히 욕을 하면 동료이므로 서로 피하고 그렇지 않으면 즉시 상대편을 죽여버리는 것이다. 지할머니할놈들이라는 말은 사람들이 평소 사용하지 않는 욕이었기에 이런 암호를 모르는 상대방은 절대로 이런 말로써 사람이게 욕을 하지는 않았다.
그는 상대방이 쓰는 암호를 깨닫자 즉시 몸을 일으켜 검을 앞으로 하고 가슴을 막았다. 지할머니할놈들이라는 말이 많이 들리는 곳일수록 병기가 서로 맞부딪치는 소리와 비명소리가 점점 더 적어들었다. 그것은 태산, 형산, 숭산 삼파의 사람들이 거의가 살해를 당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영호충은 지금까지 영영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조금 전에 자기가 그녀를 죽이지 않았나 하고 걱정을 했으나 한편으로는 눈먼 자들의 손에 아무런 화를 당하지 않았음에 퍽이나 안심이 되었다.
또 생각하기를, (숭산의 제자들이 화산동굴에 자기파의 검초가 조각되어 있음을 알고 모두가 달려와 구경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단지 먼저 사부에게 알리지 않았다 해서 좌랭선이 그들을 모두 죽인다는 것은 너무 지나친 처사이다. 그의 의도는 틀림없이 내 생명을 빼앗는데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나를 분간할 수가 없으니 아예 그들과 함께 묶어서 작은 과실을 핑계삼아 자기의 제자들을 모두 죽여버리고 있는 것이다.)

조금 지나자 싸우는 소리가 멈췄다.
좌랭선은 말했다.

[무두들 동굴 구석구석에 칼을 휘둘러 한바탕 내리쳐라!]
여러 눈먼 사람들은 일제히 대답을 하였다. 검을 내리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휙휙 들려왔다. 두 자루의 검이 영호충을 향해서 들어왔다. 영호충은 검을 들어 막고는 쉰목소리로 지할머니할놈들 하고 두어번 욕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더이상 공격을 해오지 않았다. 자기가 그들의 암호를 이용하고 있는 것을 그 누구도 아직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눈먼 자들이 욕을 하면서 칼을 허공에 내리치는 소리가 들렸을 뿐 더이상 다른 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영호충은 마음이 조급해져 울음이 나오려고 하였다. 단지
(영영, 영영, 당신은 어디 있소?)

라고 크게 외치고 싶을 뿐이었다.
좌랭선은 일갈을 했다.

[자, 그만 멈추시오.]

여러 눈먼 자들은 일제히 검을 거두고 그 자리에 똑바로 섰다.
좌랭선은 껄껄 크게 웃더니 말했다.

[모든 반역자들은 깨끗이 청산을 하였다. 이자들은 정말로 염치가 없는 자들이다. 검초를 배우기 위해서 악불군 이 못된 놈에게 충성을 맹세하다니 영호충 이 못된 놈 역시 그들과 함께 지옥계에 갔을 것이다. 하하하 영호충, 영호충 너는 죽었느냐 살았느냐.]
영호충은 숨소리도 내지 아니했다. 좌랭선은 말했다.

[평지야. 너는 결국 오늘 평생동안 네가 제일 싫어하는 자를 없애버렸구나, 이제 한시름 놓으려므나.]

임평지가 말했다.

[이 모두가 좌형(左兄)의 묘수이고 안배를 교묘하게 해논 까닭입니다.]

영호충은 내심 말을 했다.

(그와 좌랭선은 호형호제 하는구나. 좌랭선은 그의 벽사검법을 터득하기 위해서 그를 매우 공손하게 대해주고 있구나.)
좌랭선이 말했다.

[만약 네가 동굴을 들어오는 다른 비밀통로를 알지 못했다면 우리는 원수를 갚지 못했을 것이다.]

임평지는 말했다.

[제일 애석하게 생각되는 것은 너무나 혼란해서 내가 친히 영호충 이놈을 죽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영호충은 내심 생각하였다.

(나는 지금까지 너에게 잘못한 것이 없는데 너는 어째서 이렇듯이 나를 미워하고 있단 말이냐.)

좌랭선은 낮은 소리로 말했다.

[누가 그놈을 죽였든 간에 모두 똑같은 것이다. 이제 모두 이곳을 빠져나가자 어쩌면 악불군이 우리가 나가고 있는 동굴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들이 동굴 밖에서 지키고 있다면 큰일이 아니냐.]

임평지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발걸음소리가 나더니 일행은 지하갱도를 들어가 발걸음소리는 이내 멀어졌다. 한참 지나자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영호충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영영 어디 있소.]

말투 속에는 울음이 섞여 있었다. 갑자기 머리 위쪽에서 어떤 사람의 낮은 소리가 들려왔다.

[난 여기 있어요. 소리를 내지 마세요.]

영호충은 너무나 기뻤다. 두 다리에 힘이 빠져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눈먼 자들이 칼을 마구 난도질하고 휘두들 때 제일 안전한 것은 단하나 높은 곳에 숨는 것이었다. 높은 곳에 몸을 숨기고 있으면 병기가 닿지 않아 안전하다는 것은 하나의 단순하고 평범한 이치이다. 그러나 죽음에 임박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미 정신이 혼란한 상태이므로 이러한 것을 미처 생각지 못하는 것이다.
영영은 몸을 날려 땅바닥으로 내려왔다. 영호충은 달려나가 장검을 땅바닥에 버린 후 그녀를 품속에 꼭 껴안았다. 두 사람은 모두 너무나 기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영호충은 가볍게 그녀의 볼에다 입맞춤을 하고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

[조금 전에는 얼마나 걱정하였는지 모르오.]

어둠속에서 영영은 피하지도 않고 가볍게 말을 했다.

[당신이 지할머니할놈들 하고 욕을 할 때 나는 그 소리가 당신의 목소리임을 알고 있었지요.]

영호충은 그녀가 자기를 흉내내는 소리를 듣고는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 정말 어디 다친데는 없소?]

영영은 말했다.

[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읍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맨처음 당신이 금을 타는 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그리 걱정을 하지 않았소. 그러나 내가 한 여자를 칼로 찔렀는데 그 일이 있은 후 금타는 소리가 끊어졌다 이어지고 이어졌다 끊어지고 해서 도저히 당신이 켜는 곡조라고 여길 수가 없었소. 그래서 나는 당신이 상처를 입지 않았나 하고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그소리 마저 뚝 끊겨 버리자 정말로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고 있었소.]

영영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나는 벌써부터 위로 올라가 숨어 있었으나 다른 사람이 내가 있는 곳을 알아낼까봐 소리를 질러 당신을 부르지 못했읍니다. 그래서 별수 없이 위에서 땅바닥에 남겨 두었던 요금에 동전을 하나하나 떨어뜨려 소리를 내게 했던 것입니다. 당신으로 하여금 내가 살아있음을 알도록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영호충은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일이 그렇게 되었구료.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왜 그것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정말로 난 멍청하기 짝이 없군. 정말로 나는 멍청한 사람이오.]

품안에 있는 그녀의 손으로 가볍게 자기의 뺨을 때리고는 웃으면서 말했다.

[이런 못난 놈에게 시집을 오겠다니 여기 임소저라는 사람은 너무나 손해를 보는 것 아니겠소. 난 지금까지 줄곧 이상하다고만 여기고 있었소. 당신이 만약 요금을 탄다면 어째서 청심보안주(靑心普安呪)나 소오강호(笑傲江湖)와 같은 곡들을 타지 않는가하고 말입니다.]

영영은 계속이렇게 그에게 자기의 몸을 맡기면서 말했다.

[내가 만약 컴컴한 데서 동전으로 요금을 때려서 하나의 곡조를 완전히 탈 수 있다면 나는 사람이 아니고 신선일 겁니다.]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은 본래가 나의 선녀요.]

영영은 그의 말투속에 장난기가 섞여 있음을 알고는 몸을 움직여 그의품속에서 빠져 나오려고 하였다.
영호충은 이러는 그녀를 더욱 꼭 껴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리고 물어보았다.

[그런데 어째서 나중에는 그 금을 동전으로 내리치지 않았소.]
영영은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부자가 아닙니다. 수중에 돈을 많이 지니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동전을 몇개 던지자 몸에 동전이 남아 있지 않았읍니다.]
영호충은 탄식을 하며 말했다.

[애석하구료, 애석하구료. 동굴속에는 금고도 없고 또한 물건을 맡길 전당포도 없는데 임소저가 돈이 없다니 정말로 어디서 돈을 빌려야 할지 몰랐겠구료.]

영영은 또 한번 웃더니 말했다.

[나중에는 나는 머리 위에 꽂고 있던 비녀와 귀에 달린 귀거리까지 풀어서 던졌읍니다. 그후에 눈먼 자들이 나타났읍니다. 그자들은 귀가 매우 밝기 때문에 나는 더이상 무엇을 던질 수가 없었읍니다.]

갑자기 갱도입구에서 음산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영호충과 영영은 모두 비명소리를 질렀다.
영호충은 좌측손으로 영영을 거머쥐고 우측손은 땅바닥의 장검을 집어 들려 일갈을 했다.

[누구냐?]

한 사람이 냉랭히 말하였다.

[영호대형, 바로 나올시다.]

바로 임평지의 목소리였다.
작은 갱도에서 발걸음소리가 들려왔다. 틀림없이 돌아갔던 눈먼 자들이 다시 되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영호충은 내심 자기자신이 너무 경솔했음을 책망했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좌랭선이란 자가 얼마나 교활한 자인데 그들이 떠났다고 방비를 하지 않았단 말인가. 틀림없이 그들은 지하갱도에 매복해 있다가 동굴 안의 동태를 엿듣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자기가 혼자 동굴에 갖혀 있었더라면 잠시 숨을 죽이고 있다가 이곳을 빠져나갔었을 것이다. 그러나 영영이 옆에 함께 있었고 한바탕 그 혼란을 치르고 죽을 뻔했다가 둘이 다시 만나게 되자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강적들이 돌아가지 않고 밖에서 엿듣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은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영영은 손을 내밀어 영호충의 겨드랑이를 들어 올리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올라갑시다.]

두 사람은 동시에 몸을 날렸다. 영영은 좀전에 툭 튀어나온 바위에 숨어 있었으므로 바위틈이 움푹 들어간 곳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컴컴한 가운데도 자기가 숨어 있던 장소를 정확하게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영호충이 헛것을 짚어서 또다시 아래로 떨어지려 하자 영영은 재빨리 그의 손목을 잡고는 끌어당겼다. 이 툭 튀어나온 바위는 그 넓이가 삼사척에 불과했다. 두사람은 함께 꽉 붙어 있었으나 자칫하면 떨어질 위험이 있어서 똑바로 서 있기가 그렇게 쉽지 않았다.
영호충은 내심 생각하였다.

(영영은 정말 생각이 빨리 돌아가는 사람이다. 우리 두 사람은 지금 높은데 숨어 있고 그들은 아래에서 우리를 찾고 있는 상황이니 쉽게 이 눈먼 사람들의 공격을 받지는 않겠구나.)

좌랭선의 말이 들려왔다.

[쥐새끼 같은 두놈이 위로 올라갔다.]

임평지는 말했다.

[그렇습니다.]

좌랭선은 말했다.

[영호충, 너는 위에서 평생토록 숨어 있을 작정이냐.]
영호충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만약 자기가 말을 하면 그들로 하여금 자기가 서 있는 위치를 노출시키는 결과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우측손으로 검을 쥐고 좌측손으로 영영의 실 같은 허리를 거머쥐고 꼼짝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영영의 좌측손에는 단검이 쥐어져 있었으며, 우측손으로 영호충의 허리를 꼭껴안고 있었다. 같이 있을 수 있고 또한 같이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다.
좌랭선이 일갈을 했다.

[당신들은 도대체 누구 때문에 그렇게 눈이 멀었소? 설마하니 그 일을 잊지는 않으셨겠지?]

십여명의 눈먼 자들은 일제히 포효를 하며 위쪽으로 검을 마구 휘둘러 댔다. 영호충과 영영은 그 자리에서 꼼짝도 않고 있었고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여러 눈먼 자들은 계속 허공만 찔러 대었다. 한 명의 눈먼 자가 몸을 두번 날리더니 이미 영호충과 영영이 숨어 있는 튀어나온 바위에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다가왔다. 영호충은 그가 휘두르는 검에서 나오는 바람소리를 듣고 일검을 내리쳐 그의 가슴을 찍었다. 그 눈먼 자는 크게 비명소리를 지르며 땅바닥에 굴러 떨어졌다. 이렇게 되자 눈먼 여러 사람들은 그 두 사람이 숨어 있는 장소를 알아차렸다. 여섯일곱 사람이 동시에 몸을 날려 검을 휘두르며 찔러 들어왔다. 영호충과 영영은 비록 이 칡흘같은 어둠 속에서 눈먼자들의 몸체는 볼 수 없었지만 툭 튀어나온 바위와 바닥과는 두장 정도 여유가 있었으므로 몸을날려 다가올 때 그 낌새를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두 사람은 각자 일검을 내리쳐 단칼에 또 두 사람을 죽였다.
여러 눈먼 사람들을 고개를 들어 욕을 해대었고 그 누구도 감히 공격을 하려 들지 않았다. 한참 무거운 정적이 흐른 뒤 갑자기 강한 바람소리가 두 사람 사이로 들어오고 있었다. 두 사람은 각기 좌측 우측으로 재빨리 몸을 날렸다. 영호충과 영영은 제각기 검을 들어 들어오는 검을 막았으며 `창그랑 창그랑' 소리가 나면서 네개의 검이 공중에서 서로 부딪쳤다. 이 일검으로 영호충의 우측팔이 시큰하게 저려 왔고 하마터면 장검이 손에서 빠져나갈 뻔했다. 이번에 공격을 하는 자는 바로 좌랭선 자신임을 영호충은 순간 알았다. 영영은 악 하고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어깨에 검을 맞고 영영의 몸은 기우뚱 흔들렸다. 영호충은 좌측발로 급히 공력을 서서 그려를 끌어 당겼다.
그 두 사람은 다시 한번 몸을 날려 공격해 들어왔다. 영호충은 있는 힘을 다해 영영을 공격하는 자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두개의 검이 교차되자 상대방의 장검의 변초는 상당히 빨랐으며 검끝은 똑바로 일직선이 되어 왔다. 이때 영호충은 상대방이 틀림없이 임평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검을 들어 임평지의 공격을 막기에는 시간이 너무나 없었다. 급한 나머지 머리를 살짝 숙여 머리위로 검이 그냥 스쳐 지나가도록 하였다. 차가운 바람소리가 일어나더니 순간 임평지의 일검이 영영을 향해서 내리치는 느낌이 들었다. 임평지의 몸은 허공에 떠 있었고 단지 한번 뛰어오르는 시간을 이용해서 연신 공중에서 삼초의 검법을 변화 시켰던 것이다. 이 벽사검을 실로 무섭기 짝이 없었다. 영호충은 영영이 임평지가 내리치는 일검에 상처를 받지나 않을까 염려되어 그녀를 꼭 껴안고 아래로 몸을 날려 등을 벽에다 바짝 기대고 검을 휘둘렀다.
갑자기 좌랭선의 차가운 긴 웃음소리가 들려오더니 검이 들어 왔다. 창그랑 하면서 날카롭게 검이 서로 부딪쳤다. 영호충은 몸이 멈칫하였다. 한줄기의 내공이 장검을 통해서 짜릿하게 전해오는 느낌이 들었다. 좌랭선의 공력이 자기 몸안으로 들어오자 자기도 모르게 몸서리가 쳐졌다.
지난번에 임아행이 소림사에서 흡성대법으로 좌랭선의 내공을 흡수하고 있었을 때 좌랭선의 차가운 내공이 너무나도 매서워 오히려 임아행이 얼어죽을 뻔한 사실이 순간 영호충의 머리에 떠올랐다.
좌랭선은 지금 고의로 그러한 수법을 또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절대로 그의 속임수에 말려들 수는 없다. 급히 공력을 써서 바깥으로 그의 내공을 내보냈다. 상대방의 공력이 한줄기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자 자기도 모르게 손가락에 힘이 빠져서 장검이 스스로 손에서 빠져 나왔다. 영호충의 유일한 재주는 몸에 지니고 있던 한 자루의 장검에 의지하고 있었으므로 즉시 영호충은 고개를 숙여 손을 내밀어 땅바닥을 더듬었다.
동굴속에는 이백여명이 죽어 있었으므로 땅바닥에는 병기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을 것이다. 아무거나 검을 한자루 잡으면 얼마동안 막아낼 수가 있었다. 자기와 영영은 이 어두컴컴한 동굴 속에서는 눈먼 봉사나 마찬가지였고 열 몇명의 사람들은 눈은 비록 멀었지만 어둠에 익숙한 사람들이라 그들의 공격을 개속해 받는다면 이미 살아날 수 있는 확률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어찌되던 간에 자신과 영영을 그들 맘대로 요리하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그는 한참 더듬거리다가 죽은 자의 얼굴을 만졌다. 죽은 자의 얼굴은 차가왔으며 축축하고 끈끈하였다. 영호충은 급히 영영을 껴은고 뒤로 두발짝 물러났다. 창그랑 창그랑 소리가 나면서 영영은 연거푸 단검으로 들어오는 두 검을 막아냈다. 이어서 툭 하는 소리가 나더니 영영의 손에서 단검이 빠져 나갔다.
영호충은 상당히 다급해서 고개를 숙여 또 한번 바닥을 더듬거렸다. 손에 잡히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한 개의 짧은 막대기였다. 급한데 그렇게 이것저것 가릴 겨를이 없었다. 바람소리가 또다시 휭하고 나더니 똑바로 검이 들어왔다. 즉시 들고 있는 막대기로 막으니 탁 하고 소리가 나면서 그 짧은 막대기는 두동강이 났다.
영호충은 고개를 살짝 숙여 장검을 피했다.
갑자기 눈앞에 몇개의 불빛이 보이는 것 같았다. 이 몇개의 불빛은 극히 희미했으나 컴컴한 동굴 속이라 마치 컴컴한 밤하늘에 밝은 별이 나타난 듯하였다. 이제는 상대방의 몸체와 검광을 어렴풋하게나마 분간할 수 있게 되었다. 영호충과 영영은 서로 약속이나 한 듯히 환호를 질렀다.
눈 앞에 좌랭선의 일검이 또 들어왔다. 영호충은 짧은 막대기를 들어 좌랭선의 목구멍을 내리쳤다. 바로 그곳만이 적의 검초 중에서 유일하게 빈틈이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비록 좌랭선은 눈이 멀었지만 상황에 대처하는 술수는 여전히 기묘하게 민첩했다. 즉시 그는 이요용문(鯉曜龍門)의 초식을 쓰더니 뒤로 물러났다. 입으로 소리 높혀 저주의 욕을 해댔다. 이때를 틈타 영영은 고개를 숙여 땅바닥에서 한자루의 장검을 집어 들었다. 그녀는 영호충의 손으로부터 단곤(短棍)을 받아쥐고 장검을 그에게 건네주었다. 영호충이 장검을 휘두르자 동굴 속에는 희미한 푸른 빛이 번쩍였다. 영호충은 크게 진정되어 마음속으로부터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절대로 상대방을 봐줄 수 없다는 각오가 새삼 용솟음 쳤다.
지할머니할놈 하고 외마디 욕지거리를 하더니 한명의 눈먼자를 찔러 죽였다. 그의 손에 검은 그가 입으로 적들에게 욕하는 속도보다 더욱 빨라서 지할머니할놈 하고 여섯마디 욕을 했지만 이미 열두명의 눈먼자들이 모두 그의 칼에 쓰러졌다. 머리가 조금 둔한 몇명은 영호충이 지할머니할놈 하고 큰 소리로 욕을 하자 내심 자기 편이라고 여기고 더 이상 검을 휘두르지 않았다. 그러니 진상이 밝혀지기도 전에 이미 그들의 목구멍에 칼이 들어왔으며 영문도 모르는 채 염라대왕 앞으로 갔던 것이다. 좌랭선과 임평지는 왜 자기들이 당하고 있는지를 몰랐다.
일제히 물어보았다.

[횃불이 있을까?]

목소리에는 놀라움과 당황함이 뒤섞여 있었다.
영호충은 말했다.

[그렇다 횃불이 있다.]

좌랭선을 향해서 연신 삼검을 공격했다. 좌랭선은 바람소리로 분간하여 삼검을 내리찍어 영호충의 공격을 막았다. 영호충은 손목이 마비되는 느낌이 들었다. 또 한줄기의 차가운 기가 장검을 향해서 전해오고 있었다. 언뜻 무엇인가 집히는 게 있어서 즉시 검을 멈추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좌랭선의 검의 움직임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자 내심 급해서 장검을 질풍처럼 휘둘러 자기의 몸을 방어하였다. 영호충은 영영 손에 들려져 있는 단곤 끝에서 발생하는 희미한 빛을 이용해서 천천히 검을 돌려 임평지의 우측팔뚝을 향해 조금씩 조금씩 검을 디밀었다. 임평지는 귀를 세워 그의 검이 오는 방향을 분간하고 있었다. 그러나 영호충의 일검은 아주 천천히 들어갔으므로 임평지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고 더우기 검이 움직이는 바람소리는 더이상 들리지 않았다. 영호충의 검끝과 그의 우측 팔뚝과는 불과 반척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갑자기 몸을 앞으로 내밀자, 삭 하고 소리가 나면서 임평지의 어깨의 근골(筋骨)이 끊어져 버렸다. 임평지는 크게 외마디 비명소리를 지르고 장검이 손에서 빠져나와 몸과 함께 땅바닥에 굴러 떨어졌다.
영호충은 삭삭 두 검을 내리쳐 각각 그의 좌측과 우측 다리를 찔렀다. 임평지는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에 데굴데굴 굴렀다.
영호충은 몸을 돌려 좌랭선을 뚫어져라 쳐다 보았다. 희미한 불빛 아래서 입술을 지근지근 깨물고 있는 그의 표정은 심히 일그러져 있었다. 그는 장검을 계속해서 급히 휘두르고 있었다. 그의 검에서 나오는 검초는 비록 요묘하고 끊임이 없었지만 독고구검 아래서는 이 모든 것이 다 헛점이었다.
영호충은 내심 생각하였다.

(이자는 무림에 풍파를 일으킨 괴수이다. 어찌 그를 살려둘 수가 있겠는가?)

외마디 기합소리를 넣으니 장검이 춤을 추었다.
좌랭선은 목구멍과 가슴에 각각 상처를 입었다. 영호충은 몸을 날려 뒤로 두발짝 물러나 영영의 손을 꼭 거머쥐었다.
좌랭선은 한참 똑바로 서 있다가 땅바닥에 털썩 고꾸라졌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검을 땅바닥에 세워 거꾸로 하여 자기의 아랫배를 찔렀다. 그 장검은 배에서부터 등 뒤로 관통되어 나왔다. 영호충은 정신을 가다듬고 영영과 함께 사방을 휘둘러 보려고 하였다.
그러나 영영의 손에 들려져 있던 그 단곤의 빛은 너무나 약해서 분명하게 볼 수가 없었다. 임평지와 좌랭선 그 두사람의 몸에는 부싯돌이 없었다. 영호충은 임평지가 죽지 않고 살아서 또다시 반격을 해올까봐 염려되어 그의 좌측팔뚝에 일검을 가하여 그의 힘줄을 끊어 버렸다. 그제서야 비로소 죽은 사람들 몸에 가서 부싯돌을 찾았다. 두 사람을 만졌으나 그들의 품속에는 부싯돌은 커녕 아무것도 없었다.
영호충은 금방 무엇인가 생각을 하더니 입에서 욕이 나왔다.

[제미랄 것, 눈먼자가 부싯돌을 가지고 다닐 필요가 있겠는가!]
다섯번째로 죽은자의 몸을 뒤졌을 때 비로소 부싯돌을 찾아낼 수가 있었다. 부싯돌을 쳐서 기름종이에다 불을 붙였다. 두 사람은 동시에 악 하고 비명을 질렀다.
영영손에 쥐어져 있던 단곤은 막대기가 아니라 바로한개의 백골(白骨)이었는데 한쪽 끝은 조금 전에 들어오는 검을 막느라고 잘라져 달아나 버리고 없었다. 영영은 한참 멍청이 서 있다가 그 백골을 땅바닥에 내던져 버리더니 웃으며 욕을 하였다.

[제미랄......]

제미랄놈 하고 욕을 하려고 했으나 그런 말은 여자가 할 말이 아님을 알고 곧 입을 막아 버렸다.
영호충은 무엇인가 크게 깨닫고는 말했다.

[영영, 우리들의 생명은 바로 신교의 어떤 선배분이 구해준 것이오.]

영영은 이상해서 물어 보았다.

[신교의 어떤 선배님이라니요?]

영호충은 말했다.

[그 옛날 신교의 십장로(神敎十長老)가 화산을 공격했을 때 모두가 이 동굴에 갇혀서 탈출할 수가 없었읍니다. 그래서 천고의 한을 머금은 채 결국 이런 해골로 변했던 것입니다. 이 다리뼈는 어떤 장로의 다리뼈인지는 모릅니다. 나는 무의식중에 하나를 집어들어 검을 대신하여 사용을 했는데 천행인지 모르나 좌랭선은 이것을 두토막으로 만들었읍니다. 죽은 사람의 뼈속에는 빛을 내는 인이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이 뼈 덕분에 비로소 생명을 건진 것입니다.]

영영은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하얗게 변한 백골을 향해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알고 보니 본교의 선배님이시군요. 정말 죄송하게 되었읍니다.]

영호충은 또다사 기름종이를 몇장 꺼내서 불을 붙이자 불은 더욱 커져서 두개의 횃불로 옮겨 붙였다.
영호충은 말했다.

[막사백께서는 어찌되시었는지 모르겠구료.]

큰 소리로 외쳤다.

[막사백님! 막사백님!]

그러나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영호충은 내심 평소에 자기를 매우 아껴 주셨던 막사백님이 오늘 비명 횅사를 하게됐다는 생각을 하자 마음속으로는 실로 괴롭기 짝이 없었다. 눈을 들어 동굴 속에 널려져 있는 시체를 바라다보니 그곳에서 막대선생의 시신을 찾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았다.
그래서 내심 생각하기를, (지금은 아직 위험한 상황이므로 이곳에서 더 오래 머물 수가 없다. 반드시 돌아와 막사백님의 시체를 찾아내 잘 안장을 해드려야겠다.)

몸을 돌려 임평지의 가슴을 거머쥐더니 갱도를 향해서 걸어갔다.
영영은 그가 임평지를 보살펴 달라는 악영산의 말에 이미 승낙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않았다. 동굴 한쪽 구석에서 몇군데 구멍이 난 요금을 집어 들고 그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그 옛날 대도신마가 도끼로 뚫어놓았던 좁다란 갱도로 해서 한걸음 한걸음 걸어나갔다. 영호충은 검을 들어 방비를 하였다. 내심 좌랭선이 심히 간계하여 산동굴의 입구를 막아버리고 틀림없이 사람을 파견하여 이 작은 갱도의 입구를 막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호충은 사방을 두루 살피며 한걸음한걸음 발길을 옮겼다. 그러나 갱도의 끝을 당도했어도 사람의 그림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영호충은 가볍게 입구를 막고 있던 석판(石板)을 밀치었다.
갑자기 햇살이 들어와 눈이 부시었다. 알고 보니 동굴 속의 삶과 갈림길에서 헤매고 있는 사이에 날이 벌써 밝았던 것이다. 그는 동굴 밖이 텅비고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는 즉시 임평지를 끌고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영영은 뒤따라 나왔다. 영호충의 손에는 검이 있고 눈 앞에 햇살이 찬란하게 비치고 있는 것을 보자 진정으로 위험한 상황에서 벗아났음을 알 수가 있었다. 신선한 공기가 뱃속으로 들어가서 정말로 말할 수 없는 상쾌한 감이 들었다.
영영이 말했다.

[옛날 당신 사부가 당신에게 벌을 주었을 때 당신은 이 동굴 속에 있었읍니까?]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했다.

[맞습니다. 당신이 보기에 어떻습니까?]

영영은 잔잔히 웃더니 말했다.

[내가 보기에 당신이 이곳에서 생각한 것은......당신의 그......]

그녀는 본래 당신의 그 소사매라고 말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또다시 악영산을 거론한다는 것은 틀림없이 그가 기분 상해 할 것이라고 여기고 즉시 입을 다물어 버렸다.
영호충은 말했다.

[풍태사숙은 바로 이 근처에 계십니다. 그 어르신께서는 편안하신지 모르겠구료. 나는 줄곧 그분을 생각하고 있었읍니다. 그 양반은 결코 화산파의 사람을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읍니다. 그러나 나는 이미 화산파의 사람이 아닙니다.]

영영은 말했다.

[그렇습니다. 우리 빨리 가서 만나뵙도록 하지요.]

영호충은 검을 칼집에 집어넣고 임평지를 그대로 내버려 둔 채 영영의 손을 잡아끌고 어깨를 나란히 하여 동굴을 나왔다.

막 동굴 입구를 나서는데 갑자기 머리 위에서 검은 빛이 번쩍이더니 무슨 물건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영호충과 영영은 동시에 몸을 날려 피했다. 그러나 크나큰 어망 하나가 두사람을 감싸고 있었었다. 두사람은 깜짝 놀라 급히 검을 뽑아들고 어망을 내리쳤다.
몇번 내리쳤으나 어망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바로 이때 또 한개의 어망이 위에서 내려오더니 두사람의 몸을 꽁꽁 감싸 버렸다. 산 동굴꼭대기에서 한사람이 내려오더니 손에 끈을 거머쥐고 힘껏 잡아당겨 어망을 꽁꽁 사매 버렸다.
영호충은 큰 소리로 외쳤다.

[사부님!]

알고 보니 그 사람은 바로 악불군이었다. 악불군은 어망을 더욱 꽁꽁 묶었다. 영호충과 영영은 마치 두마리의 고기처럼 어망에 갇혀 버렸다.
처음에는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었으나 나중에는 몸도 까딱 못할 지경이었다. 영영은 너무도 놀래고 당황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눈을 옆으로 하여 영호충을 바라다보니 그는 태연히 웃고 있었고 표정은 매우 득의양양해 보였다. 내심 생각하기를, (혹시 그에게 이 어망에서 벗어날 방법이 생긴 것은 아닐까?)
악불군은 교활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이놈아, 네놈이 의기양양하게 동굴에서 나왔지만 이렇게 큰 재난이 너를 기다리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겠지?]

영호충은 말했다.

[이게 무슨 큰 재난이란 말입니까? 어차피 우리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죽어야만 합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죽을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내게 있어 진정한 행복이 아니겠읍니까?]

영영은 이때서야 비로소 영호충이 왜 의기양양하고 얼굴에는 웃음기가 서려 있는가를 알 수가 있었다. 영영은 놀라고 당황한 기색이 이내 사라지면서 순간 달콤한 기쁨마저 느꼈다.
영호충은 말했다.

[당신은 이렇게 우리 두 사람을 죽일 수 있다해도 절대로 우리 부부를 떼어 놓을 수는 없을 것이오. 더우기 떼어 놓고 죽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오.]

악불군은 화가 나서 말했다.

[이놈아! 죽음을 눈앞에 둔 놈이 아직도 입만 나불거리고 있구나.]

끈으로 또 다시 그 두 사람의 몸을 칭칭 몇번인가 감더니 꽁꽁묶어 버렸다.
영호충은 말했다.

[이 어망은 분명히 당신이 어떤 어부에게서 공들여 훔쳐온 것 일게요. 당신은 나에게 끝까지 이토록 잘 대해주고 계시군요. 우리 두 사람이 서로 헤어지기를 원치 않는 것을 알고는 끈으로 이렇게 우리 부부를 단단하게 결합시켜 주고 있다니 감격했소. 당신은 어려서부터 나를 키워왔으니 당신만이 내 뜻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진정 이 세상에서 나를 알아주는 사람은 악선생 당신 한사람뿐이오.]

그는 될 수 있는 대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여서라도 시간을 벌고 싶었고 시간을 벌고나면 무슨 수라도 생길 것 같았다. 또 한편으로는 풍청양(風淸揚)이 갑자기 나타나 구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악불군은 냉소하며 말했다.

[이 못된놈, 네놈은 어려서부터 함부로 지껄였는데 지금까지도 그 못된 버릇을 고치지 못하였구나. 내가 먼저 네놈의 혓바닥을 잘라 놓겠다. 네가 죽은 뒤에 지옥에 가더라도 다시는 그 혓바닥을 놀리지 못하도록 말이다.]

몸을 날려 좌측발로 영호충의 허리를 한번 걷어찼다. 삽시간에 영호충의 아혈(啞穴)을 찍어서 더이상 말을 못 하도록 하였다.
악불군은 말했다.

[임소저, 말씀 좀 해보시지, 이놈을 먼저 죽여야 할지 아니면 그대를 먼저 죽여야 할지 말이오?]

영영은 말했다.

[그게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오. 내 몸에는 삼시뇌신단의 해독약이 오직 세알밖에 없소.]

악불군은 삽시간에 얼굴색이 변하였다. 그는 영영에 의해서 강제로 삼시뇌신단을 복용을 한 후로 밤낮으로 어떻게 하면 그 해독약을 구할 수 있는가만 생각하였다. 그는 몰래 이곳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두 사람이 죽지 않고 동굴속에서 빠져나와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자기 방어를 하지 않을 때를 틈타서 금사어망(金絲漁網)을 던져 그들을 잡으려고 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영호충과 영영을 각각 죽인 다음 다시 그녀의 몸에서 해독약을 찾아내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지금 그녀가 자기의 몸에는 해독약이 세알뿐이라는 말을 듣고는 그렇게 된다면 이 두 사람을 죽인 다음 자기는 겨우 삼년밖에 살 수가 없고 삼년 뒤에는 시충(尸蟲)이 뇌속에 들어가 미친듯이 발광을 하며 죽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말로써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운 일인 것이다. 결국 그는 지금 헛고생한거나 다름이 없었다. 그는 오랫동안 수양을 쌓아 희노애락의 빛이 쉽사리 얼굴에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때가 때인 만큼 그는 두손을 벌벌 떨고 있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좋다, 그렇다면 우리는 서로 흥정을 하자. 만일 네가 그 해독약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겠다면 너희들을 죽이지 않고 살려주겠다.]

영영은 웃으면서 담담히 말했다.

[소녀는 어리고 견문이 좁으나 익히 군자검 악선생의 사람됨을 잘 알고 있읍니다. 귀하가 만약 신의를 잘 지키는 어르신이라면 절대로 사람들이 군자검이라고 부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악불군은 말했다.

[너는 영호충을 따라다니면서 아무데서나 혀를 놀리는 못된 버릇만 배웠구나. 그 해독약을 만드는 비방을 절대로 너는 말해주지 않겠지?]

영영은 말했다.

[물론 말하지 않을 것이오. 삼년 뒤에 귀신이 되어 저승에서 영호 오라버니와 나는 당신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겠읍니다. 단지 그때 귀하의 오관이 온전치 못하고 얼굴모양도 없어지면 어떻게 당신을 알아 봐야할까 그게 걱정이 되는군요.]

갑자기 악불군은 등허리에 한줄기 차가운 냉기를 느꼈다. 그녀가 소위 말하는 오관이 온전치 못하고 얼굴모양이 없어진다는 것은 삼시뇌신단을 복용한 사람의 말기증세 발작이 시작될 경우 전신이 썩어 문드러지거나 얼굴이 무엇이 할퀸 것처럼 짓이겨져 죽게 된다는 뜻이다. 그때의 정경을 생각하니 악불군은 정말로 자기도 모르게 몸서리가 쳐졌다.
열통이 터지고 화가 나서 말했다.

[설사 내 몸이 문드러지고 얼굴이 알아볼 수 없는 형체로 바뀐다 해도 너는 나보다도 삼년을 먼저 저승길에 오르게 될 것이다. 아니, 나는 너를 죽이지 않겠다. 단지 너의 코와 귀를 잘라버리고 너의 백옥같이 흰얼굴에 칼로 흠집을 죽죽 내어주마. 그리고 난뒤에 그래도 너의 다정다감한 낭군이 너 같은 사람도 아니고 귀신도 아닌 괴물을 사랑할지 두고 보겠다.]

삭 하더니 칼집에서 장검을 뽑아 들었다. 영영은 놀래서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죽는 것은 두렵지 않았으나 만약 악불군에게 얼굴이 귀신처럼 할퀴어 흉칙한 모습이 된다면 영호충과 같이 죽는다 해도 영원히 그 여한이 남을 것 같았다. 영호충은 아혈이 찍혔지만 손과 발은 아직까지 움직일 수가 있었다. 그는 영영의 이와 같은 마음을 이해하고 팔뚝으로 그녀를 툭툭 쳤다. 그리고 바로 우측손의 두 개의 손가락을 내밀어 자기의 눈을 향해서 찔러 들어갔다.
영영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급히 외쳤다.

[충 오라버니, 절대로 안 됩니다.]

악불군은 정말로 영영의 얼굴을 망가뜨릴 생각은 없었다. 단지 이렇게 위협하여 그녀로 하여금 해독약의 처방법을 토로하도록 만들려고 하였던 것이다. 영호충이 만약 스스로 두눈을 망친다면 마지막 남은 이 한수는 아무 효과가 없는 것이다. 악불군의 손놀림은 신속하기 짝이 없었다. 좌측손을 급히 내밀어 어망속에 집어 넣더니 영호충의 우측팔뚝을 거머쥐고 일갈을 했다.

[손을 멈추어라.]

두 사람의 피부가 맞닿자 악불군은 자기몸에 있는 내공이 바깥으로 빨려나감을 느꼈다.
악불군은 외마디 소리를 쳤다.

[으악!]

급히 빠져 나오려고 하였으나 자기의 손바닥이 마치 영호충의 손목에 딱 붙은 것처럼 뗄 수가 없었다. 영호충은 손으로 그의 손바닥을 거머쥐고 찍었다. 악불군의 내공은 더욱 끊임없이 빠져나와 마치 둑이 무너지는 것처럼 바깥으로 쏟아져 나갔다. 악불군은 깜짝 놀라 우측손으로 검을 휘둘러 그의 몸을 향해서 찔러 들어갔다. 영호충은 손을 싹 비키며 그의 몸을 끌어 당겼다. 이 일검은 빗나가 땅바닥에 내리쳐졌다. 악불군의 내공은 급히 빠져 나가자 다시 한번 검을 들어 내리치려고 했으나 이미 힘이 빠져 검은 고사하고 손목조차 들을 수가 없었다. 그는 억지로 검을 들어 검끝으로 영호충의 이마를 겨냥하였다. 손목과 장검은 덜덜 떨고 있었고 천천히 들어왔다.
영영은 깜짝 놀라 손을 내밀어 악불군의 장검을 빼앗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두팔이 모두 영호충의 몸에 깔려 있었고 어망에 몸이 꽁꽁 묶여져 있었기 때문에 힘껏 몸부림쳤으나 결국 손을 뺄 수가 없었다. 영호충의 좌측손이 영영에게 눌려져 있었으므로 그역시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눈앞에 검끝이 천천히 들어오자 갑자기 생각을 하였다.

(나는 무림검법으로 좌랭선과 임평지를 끝내 죽여버리고 말았다. 지금 사부 역시 내가 썼던 그 방법으로 나를 죽이려고 하는 구나. 그 댓가가 이렇게 빨리 올 줄이야!)

악불군은 내력이 너무나 빠르게 소실됨을 느꼈다. 그러나 검끝은 이미 영호충의 이마와 불과 수촌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악불군은 기쁘고 또한 초조하였다.
갑자기 뒤에서 한 소녀가 날카롭게 외쳤다.

[당신은, 당신은 지금 무엇하고 있는 것이오. 빨리 검을 거두지 못하시겠소.]

발걸음소리가 일어나더니 어떤 사람이 급히 가까이 다가왔다. 이제 악불군은 검끝으로 몇촌정도만 더 들어간다면 영호충을 죽일 수가 있었다. 이때 자기의 생과 사는 한순간에 달려 있었다. 어찌 손을 뺄 수 있겠는가.
있는 힘을 다해 힘껏 밀어 쳤다. 검끝이 이미 영호충의 이마에 닿았다. 바로 이때 등뒤가 썰렁해 지더니 한자루의 장검이 그의 등에서 앞가슴으로 똑바로 관통되었다.
그 소녀는 외쳤다.

[영호 오라버니 아무일 없으셨지요?]

바로 의림이었다. 영호충은 가슴에 피가 용솟음치는 것 같아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영영은 말했다.

[소사매, 영호 오라버니는 아무일도 없읍니다.]

의림은 기뻐서 말했다.

[그것 참 다행이군요.]

멈칫 하다가 놀래서 외쳤다.

[어머! 악선생이군요. 내가......내가 그를 죽이다니......]
영영은 말했다.

[그렇소. 당신은 이제야 당신 사부의 원수를 갚았읍니다. 축하드립니다. 자. 여기 있는 어망을 풀고 우리를 구해 주십시오.]
의림은 말했다.

[녜. 녜.]

눈앞에는 악불군이 땅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검이 관통된 부위에서 검붉은 피가 줄줄 쏟아지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보자 의림은 겁이 나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그래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바로......바로 내가 그를 죽였읍니까?]

어망을 잡고 끈을 풀려고 했다. 그러나 두손이 너무 떨려서 힘을 쓸 수가 없었다.
누가 뭐라해도 풀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갑자기 좌측에서 어떤 사람이 외쳤다.

[어린 비구니 주제에 나이 많은 선배를 죽였구나. 오늘 너에게 한번 본때를 보여 주겠다.]

노란옷을 입은 자가 검을 들고 달려왔다. 그 사람은 노덕약이었다.
영호충은 마음속으로 외쳤다.

[조심하시오.]

영영은 외쳤다.

[소사매, 빨리 검을 뽑아 막으시오.]

의림은 멍청히 서 있다가 악불군의 몸에서 장검을 뽑아들었다.
노덕약은 삭삭삭 삼검을 급히 전개해 들어왔다. 의림은 가까스로 삼검을 막았다. 세번째 내리친 검은 그녀의 좌측어깨에 스치고 지나가서 긴상처를 남겼다. 노덕약의 검초는 갈수록 빨라지더니 그중에 몇초식은 벽사검법이 섞여 있었다. 단지 벽사검법은 아직 경지에 도달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 겉모습만 나타날 뿐이었다. 검의 빠르기란 임평지와 비교할 때 상당히 차이가 났다.
본래 노덕약은 경험이 많고 숭산, 화산 두 검파의 장점을 지니고 있는데다가 새로이 벽사검법을 배웠기 때문에 의림은 그의 적수가 될 수는 없었다.
다행히 의화, 의청 등이 그녀를 항산장문인의 후계자로 키우려고 요사이 영호충이 전해준 항산검법의 절묘한 공력을 연마하도록 밤낮으로 훈련을 시키고 있었으므로 의림의 무공은 많은 진보가 있었다. 또한 노덕약은 벽사검법을 배운지 얼마되지 않아 아직 경지에 이르지 못했으므로 마음만 앞섰을 뿐 초식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
더우기 숭산, 화산 두파의 검법까지 섞여 쓰자 오히려 난잡해져 원래 자기가 가지고 있던 검법에 미치지 못하였다.
의림은 처음에 상대방의 검법이 극히 빠름을 보고 내심 당황하여 세번째 검에 좌측어깨에 상처를 입었지만 자기가 패한다면 영호충과 영영은 위험에서 빠져 나오지 못할 뿐만 아니라 금방 어떤 처참한 비극을 맞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자에게 영호충을 죽이도록 내버려 두느니 차라리 자기가 먼저 그의 손에 죽으려는 필사의 생각으로 자기몸을 돌보지 않고 초식을 휘둘렀다. 노덕약은 그녀가 목숨을 걸고 들어오는 바람에 금방 그녀를 쓰러뜨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일갈을 하며 계속 욕을 해댔다.

[정말 악독한 중년이구나!]

영영은 의림이 숨을 헐떡거리며 억지로 지탱해 나가는 것을 보고 더이상 시간을 끈다면 틀림없이 패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즉시 몸을 움직여 좌측 손을 빼내서 영호충의 아혈을 풀었다. 그리고 품속에서 단검을 끄집어 내었다.
영호충은 외쳤다.

[노덕약 이놈아! 네 등뒤에 무엇이 있는지 봐라.]

노덕약은 경험이 풍부하기 때문에 영호충이 이렇게 외쳐도 고개를 돌려 보려 하지 않았다. 고개를 돌리면 상대방에게 틈을 내주는 꼴이 되는 것이다. 그는 영호충의 일갈에 대꾸도 하지 않고 더욱 맹렬하게 공격을 하였다. 영영은 단검을 거머쥐고 어망속에서 던지려 하였다. 그러나 의림과 노덕약이 너무나 가까이 엉켜서 싸우고 있었기 때문에 만약 단검이 약간이라도 빗나간다면 잘못했다간 그녀를 찌르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잠시 주저하고 던지지를 못했다.
갑자기 의림이 악 하고 소리를 질렀다. 좌측 어깨에 또 일검을 맞은 것이다. 첫번째 상처는 비교적 가벼웠으나 이번의 일검은 깊이 들어갔다. 파릇파릇하게 돋아난 풀에 피가 떨어져 그 주위가 새빨갛게 물들었다.
영호충은 외쳤다.

[원숭이다. 원숭이야! 이것은 육사제의 원숭이다. 착한 원숭아, 빨리 달려들어 그 자를 물어 버려라. 이자가 바로 너의 주인을 죽인 악독한 놈이다.]

노덕약은 악불군의 자하신공의 비법을 약탈해내기 위해서 화산파의 육제자인 육후야를 죽였었다. 육후아는 평소 원숭이를 한마리 기르고 있었는데 그것을 늘 어깨에 두고 다녔다. 육후아가 죽고 나자 원숭이는 행방을 감췄던 것이다.
지금 갑자기 영호충이 원숭이를 부르는 소리를 듣자 자기도 모르게 모골이 송연하였다.

(이 짐승이 달려들어 나를 물면 퍽이나 성가시겠구나.)
즉시 몸을 옆으로 하여 일검을 휘둘러 자기의 몸뒤를 내리찍었다. 그러나 어디에 원숭이가 있단 말인가! 바로 이때 영영의 단검은 손에서 힘차게 빠져나가 휙 하고 소리가 나더니 그의 뒷덜미를 향해서 들어가고 있었다. 노덕약이 몸을 살짝 낮추자 단검은 그의 정수리 위로 날아갔다. 갑자기 좌측 발목에 무엇이 와닿는 느낌이 들었다. 이미 한개의 밧줄에 묶여져서 자신의 몸과 함께 밧줄은 뒤로 급히 끌려 가고 있었다. 갑자기 몸을 주체 하지 못하고 벌렁 자빠졌다. 원래 영호충은 노덕약이 고개를 숙여 검을 피하는 것을 보고 다시없이 좋은 기회다 싶어 어망에 갇힌 채 재빨리 어망의 긴끈을 던져서 그의 좌측다리를 감쌌던 것이다.
영호충과 영영은 일제히 외쳤다.

[빨리 죽이시오!]

의림은 검을 쥐더니 노덕약의 정수리를 내리치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너무 자애롭고 또한 마음이 약했다. 처음에 악불군을 죽일 때는 단지 영호충을 구하기 위해서 너무 다급한 나머지 검을 똑바로 휘둘렀던 것이었고 자기가 비록 검을 휘둘렀지만 사람을 죽이리라고는 생각지 못하였다. 지금은 장검을 노덕약의 정수리에 내리치려고 하였지만 마음이 흔들려서 검끝이 약간 비켜나가 삭하는 가벼운 소리와 함께 그의 우측 어깨를 내리찍었다. 노덕약의 비파골(琵琶骨)은 즉시 베어졌다. 장검이 손에서 떨어졌다. 그는 의림이 두번째 검을 다시 내리칠까봐 두려워 어망의 끈을 발버둥쳐서 풀어내고 아픔을 참으면서 날으는 듯이 언덕아래를 향해서 도망쳤다.
갑자기 산언덕에서 두 사람이 달려오고 있었다.
맨앞에 달려오는 여자가 일갈을 했다.

[이봐 좀전에 내놈이 내 딸에게 욕을 했지.]

바로 의림의 어머니 즉, 현공사에서 귀머거리로 가장을 했던 그 노파였다. 노덕약은 발을 날려 그녀를 걷어찼다. 그 노파는 몸을 살짝 피하고는 팍 하고 소리를 내면서 세차게 그의 뺨을 후려쳤다.
그리고 일갈을 했다.

[조금 전에 네놈이 `제미랄년이 되게 악독하구나.' 라고 말하였지. 그녀의 어머니가 바로 나다. 네가 감히 나를 욕하다니.]
영호충은 외쳤다.

[그를 잡으시오. 꼭 잡으시오. 절대로 그를 풀어주지 마시오.]
그 노파는 본래 손바닥을 내밀어 노덕약을 정수리를 내리치려고 하였다. 그러나 영호충의 일갈 소리를 듣고는 외쳤다.

[이놈을 잡으라고? 나는 이놈을 잡지 않고 풀어줘야겠다.]
몸을 살짝 피하여 노덕약을 엉덩이를 걷어찼다. 노덕약은 마치 형장에서 사면이나 받은 사람처럼 쌩 하니 산아래로 도망쳤다. 그 노파의 뒤에 또 한 사람이 따라오고 있었는데 바로 불계화상이었다.
불계화상은 히히덕거리면서 다가오더니 말했다.

[어디 놀 때가 없다고 어망에 들어가 놀고 있읍니까?]
의림은 말했다.

[아버지, 빨리 어망을 풀어주세요. 빨리 영호 오라버니와 임소저를 풀어주세요.]

그 노파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이 못된놈하고는 아직 계산이 끝나지 않았어. 절대로 풀어 줄 수가 없다.]

영호충은 껄껄 크게 웃더니 외치기를, [부부가 한이불 속에 들어 갔다고 해서 이제와서 중매쟁이는 쓸모가 없단 말입니까? 당신 두 부부가 다시 해후를 했는데 어째서 당신들은 이 중매쟁이한테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는 것이오.]

그 노파는 그의 몸을 한번 걷어차더니 말을 했다.

[이 일격이 나의 감사의 표시이다.]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했다.

[도곡육선들아 빨리 나를 구해다오.]

그 노파가 제일 두려워 하는 자는 도곡육선이었다.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려 보았다. 영호충은 이틈을 타 어망의 틈새로 손을 내밀어 끈의 매듭을 풀었다.
영영은 바깥으로 내보내고 자기도 막 나오려고 했을 때 그 노파는 일갈을 했다.

[나오지 말아라.]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했다.

[나오지 말라면 안 나가면 될 것 아니오. 이 어망 속은 진정 별천지요. 대장부는 현실에 잘 적응하는 법이오. 내밀 곳이 없으면 숨어있고 발 뻗을 곳이 있으면 뻗으면 그만이지 무슨 대수입니까.
나 영호충이는......]

한바탕 되는 대로 지걸이려고 했다. 그러나 언뜻 악불군의 시체가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는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지고 돌연 눈속에는 눈물이 팽 돌며 이어서 빗방울 같은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 노파는 자기가 희롱을 당하자 화가 나서 욕을 했다.

[이 못된놈아 내가 네놈을 한바탕 늘씬하게 패 주겠다. 그래야만이 내 마음속의 한이 조금이나마 풀어질 것이야.]

좌측손을 내밀어 영호충의 우측 뺨을 향해서 힘껏 내리쳤다.
의림은 외쳤다.

[어머니...... 어머니 오라버니에게 그러면 안 돼요.]
영호충은 우측손을 들었다. 손에는 이미 한자루의 장검이 쥐어져 있었다. 그 검은 그가 악불군의 시체를 쳐다보면서 상심하고 있을 때 영영이 슬그머니 그의 손에 쥐어줬던 것이다. 그는 장검으로 똑바로 그 노파의 우측 어깨에 요혈을 찍었다. 별수없이 그녀는 뒤로 한발짝 물러났다. 그녀는 몸놀림을 질풍처럼 빠르게 하여 손바닥을 휘두르고 주먹을 썼으며 팔뚝을 이용해서 부딪쳐서 다리를 돌려서 순식간에 연속 칠팔초식으로 공격해 왔다.
영호충은 몸이 어망 속에 갇혀져 있었지만 장검은 자기 마음대로 휘둘렀다. 일검일검마다 모두 그 노파의 급소를 가리켰으며 단지 검의 끝이 그녀의 몸에 닿았을 때 즉시 뒤로 때곤하엿다. 이 독고구검의 초식은 천하에 당할 자가 없었다. 영호충이 만약 양보를 하지 않았다면 그 노파는 벌써 일곱여덟 차례는 죽었을 것이다. 또 한차례 수초식을 맞붙자 그 노파는 스스로 자기의 무공이 영호충에게 미치지 못하는 것을 알고 길게 한숨을 쉬더니 손을 놓고 더이상 공격을 하지 않았다. 얼굴의 표정은 극히 일그러져 있었다.
불계화상은 권하듯이 부드럽게 말했다.

[여보 마누라, 우리는 모두 좋은 친구들인데 그렇게 성질을 내서야 되겠소?]

그 노파는 화가 나서 말했다.

[왜 그리 말이 많은시우?]

마음속의 울화를 더이상 풀 데가 없어서 그녀는 이제 자기 남편에게 쏘아 주고 있는 것이다. 영호충은 장검을 던지고 어망에서 나왔다.
그리고 웃으면서 말하기를, [당신이 나를 때려서 화가 풀린다면 자! 마음대로 때리시오.]
그 노파는 손바닥을 들어 팍 하고 세차게 그의 뺨을후려쳤다.
영호충은 아이고 하고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피하지는 않았다.
그 노파는 화가 나서 말했다.

[너는 어째서 피하지 않느냐?]

영호충은 말했다.

[피할 수가 없는데 내가 어떻게 피한단 말이오?]

그 노파는 흥 하고 소리를 질렀다. 의림의 체면 때문에 그가 자기에게 양보를 해주고 있음을 마음속으로는 알고 있었다. 또 좌측 손바닥을 쳐들었으나 계속 내리치지는 않았다.

영영은 의림의 손을 끌고 와서 말했다.

[소사매, 다행히 소사매가 때마침 와서 우리를 구해주었소. 당신은 어떻게 이곳에 왔읍니까?]

의림은 악불군의 시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말했다.

[나와 여러 사저들은 모두 그의 부하들에게 잡혔읍니다. 나와 세 분의 사저는 같은 동굴속에 잡혀 있었는제 조금 전에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저를 구해 주셨읍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불가불계 그리고 세분의 사저들은 각기 흩어져 그 나머지 항산파의 제자들을 구출하려고 찾아나섰읍니다. 나는 저 밑에 있다가 위에서 어떤 사람들이 말하는 소리를 들었지요. 말소리 중에 영호 오라버니의 목소리가 섞여 있는것 같았읍니다. 그래서 급히 쫓아 올라와 본 것입니다.]

영영은 말했다.

[나와 영호 오라버니 또한 사저들이 묵은 곳을 샅샅이 찾아 봤읍니다. 그러나 한사람도 찾을 수 없었읍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당신들은 지금까지 동굴속에 갇혔었군요.]

영호충은 말했다.

[조금 전에 그 노란 옷을 입은 자는 이 세상에서 제일 악독한 자이오. 그런 놈을 도망치도록 내버려 두었으니 정말로 화가 치밀어 오를 일입이다.]

땅바닥에 장검을 집어들더니 말했다.

[우리 빨리 뒤쫓읍시다.]

다섯명의 일행은 사과애를 내려갔다. 얼마가자 전백광(田伯光)과 일곱명의 항산파 제자들이 산계곡을 기어 오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 중에는 의청(儀淸)도 끼어 있었다. 서로 만나자 모두들 뛸듯이 기뻤다.
영호충은 내심 생각하기를, (화산의 지형을 이 세상에서 나만큼 잘 아는 자는 없을 것이다.
나는 이 계곡 아래 또다른 동굴이 있는 것조차도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어찌하여 전형은 화산과 상관없는 외지의 사람이 오히려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을까? 정말로 이상하구나!)

전백광의 옷소매를 잡아끌어 눈짓을 하고는 둘은 여러 사람 뒤로 처져 걸었다.
영호충은 말했다.

[전형, 화산의 계곡에 또다른 비밀동굴이 있다는 것은 나도 모르고 있었는데 당신이 찾아냈다니 정말로 감탄했소이다.]
전백광은 약간 웃더니 말했다.

[그런 곳을 찾아내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아! 그렇군요. 당신의 화산의 제자 한명을 잡아다가 그 자에게 물어봐서 알아 냈군요?]

전백광은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그렇다면 당신이 어떻게 알았읍니까? 좀 가르쳐 주십시오.]
전백광은 약간 멋적어하더니 말하였다.

[말을 하자면 그리 점잖은 이링 못되니 아무래도 하지 않는게 좋겠읍니다.]

영호충은 더욱 호기심이 발동하여 그내력을 듣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과 나는 모두 강호에 그이름이 떠들썩한 부랑아인데 점잖고 점잖지 못할게 뭐가 있겠소. 빨리 좀 말해주시오.]

전백광은 말했다.

[내력을 말해도 영호장문께서는 절대로 나를 힐책하시면 안 됩니다.]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이 항산파의 여러 사저와 사매들을 구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도 다 못했는데 어떻게 힐책을 할 수가 있겠읍니까?]
전백광은 낮은 소리로 말했다.

[사실대로 말씀드리겠읍니다. 옛날 저에게는 종종 나쁜 버릇이 있었는데 당신도 알고 계시겠죠. 태사부께서 내 머리를 자르고 나에게 불가불계라는 별명을 지어주신 후로 다시는 그 색계(色戒)는 범할 수가 없읍니다......]

영호충은 불계화상이 그를 징계한 방법이 독특했음을 생각하고는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전백광느 그가 마음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얼굴이 빨개지며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나 내가 옛날부터 배워온 재주는 잊어버릴 수가 없읍니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라 해도 여자가 모여 있는 장소라면 저는...... 저는 바로 금방 알 수가 있읍니다.]

영호충은 심히 이상해서 물어보았다.

[그것을 어떤 방법으로 알 수 있소이까?]

전백광은 말했따.

[나도 무슨 방법인지는 잘 모르고 있읍니다. 아마 여자들 몸에는 남자들과 다른 냄새가 있나 본데 저는 그걸 맡을 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영호충은 껄껄껄 웃더니 말했다.

[듣기로는 어떤 고승들은 천리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고 어떤 고승들은 천리밖에 있는 말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지고 있다는데 전형은 절말로 천리 밖에 있는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코를 가지셨군요.]

전백광은 말했다.

[염치가 없읍니다. 제가 염치가 없읍니다.]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했다.

[전형의 그 재주는 나쁜 일을 많이 해서 얻은 것인데 그것으로 해서 오늘 우리 항산파의 제자들을 구하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읍니다.]

영영은 몸을 돌려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느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전백광의 표정이 이상야릇한 것을 보고는 별로 점잖은 이야기는 아닐 것이라 생각하고 즉시 입을 다물었다.
전백광은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말했다.

[이 부근에 항산파 제자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는 코를 벌렁거리면서 언덕 아래에 수풀 속으로 걸어갔다. 고개를 숙여 한참 코로 냄새를 맡더니 갑자기 환호를 질렀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땅바닥을 가리키며 외쳤다.

[여기에 있읍니다.]

그가 가리킨 곳에는 십여개의 큰 바위들이 한군데로 가득 모아져 있었는데 그 바위들은 하나가 약 이삼백근은 훨씬 나갈 것 같았다. 즉시 바위를 조심조심 옮겼다. 불계화상과 영호충도 건너가서 전백광을 거들어 주었다.
순식간에 열몇개의 큰 바위는 옮겼는데 바닥에는 널다란 청석판(靑石板)이 있었다. 세사람이 힘을 합쳐서 그 청석판을 들어 내어 보니 한개의 동굴이 나타났다. 그 속에는 몇명의 비구니들이 드러누워 있었으며 과연 모두가 항산파의 제자들이었다.
의청과 의민(儀敏)은 급히 동굴로 뛰어 들어가서 동문들을 부축해 나왔다. 몇명을 부축해 나오자 안에는 또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모두들 숨이 가느다랗게 쉬고 있었다. 여러 사람들은 급히 갇혀 있는 항산의 제자들을 끌어내었다. 의화, 정악, 진견 등도 그안에 모두 있었다. 이 동굴에는 항산파 제자들이 모두 삼십여명이 갇혀져 있었다.
만약 하루 이틀만 더 지났더라도 그들은 모두 숨이 막혀 죽었을 것이다. 영호충은 이 광경을 보고 사부의 악독함에 자기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
그는 전백광을 칭찬하며 말했다.

[전형 당신의 재주는 정말로 대단하오. 많은 사저, 사매들이 이렇게 깊은 곳에 숨겨져 있었는데 당신은 냄새만으로 그들이 있는 곳을 알아내다니요. 정말로 탄복했소이다.]

전백광은 말했다.

[그리신기할 것은 없읍니다. 다행히 이 가운데 출가하지 않은 사백과 사숙들이 많이 있어서요......]

영호충은 말했다.

[사백과 사숙이라니 아! 맞군요. 당신은 의림 소사매의 제자이니 마땅히 그들을 사백 사숙이라고 불러야겠지요.]

전백광은 말했다.

[만약 여기에 갇혀져 있던 사람들이 모두 출가한 사백 사숙들이라면 아마 찾아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알고 보니 출가한 사람과 출가하지 않은 사람은 냄새가 다른가 보군요.]

전백광은 말했다.

[그야 물로닝지요. 출가하지 않은 여자들 몸에는 화장을 한 분 냄새와 향기가 나기 마련입니다.]

영호충은 그때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여러 사람들은 허둥지둥 끌어내어 이들을 구출하였다. 의림, 의청 등은 산에서 모자에다 물을 떠와 그들 한사람 한사람에게 먹였다. 다행히 그 산동굴에는 조그만 틈이 있어 공기가 조금씩 유통되었고 항산의 여러 제자들은 내공을 연마했기 때문에 이미 심한 상태였으나 생명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의화 등은 내공이 비교적 깊기 때문에 물을 마시고 나자 곧 정신을 차리고 회복을하였다.
영호충은 말했다.

[우리가 구출해 낸 인원은 아직껏 삼분의 일밖에 되지 않습니다. 전형, 전형께서는 그 신통한 묘기를 발휘하여서 빨리 나머지 사람들을 찾아 주시오.]

현공사의 그 노파는 눈을 치켜 세우더니 전백광을 크게 째려보면서 심히 의심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노파는 물어보기를, [사람들이 이곳에 갇혀 있는 것을 당신이 어떻게 알았지? 아마 이들이 여기 감금을 당할 때 당신은 옆에 있었던 거야. 그렇지?]
전백광은 급히 말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나는 줄곧 태사부님을 따라 다녔읍니다.
그 어르신 몸에서 한발자국도 떨어져 본 적이 없읍니다.]
그 노파는 얼굴이 갑자기 변하더니 일갈을 했다.

[당신이 줄곧 그를 따라 다녔다구?]

전백광은 내심 아뿔사 하고 외쳤다. 그들 부부가 파경에서 다시 만나서 둘이 울고 웃으면서 또 욕지거리를 하다가 서로가 다정다감하게 같이 있는 재미있는 광경을 자기가 암암리에 보고 엿듣고 하였는데 태사낭(太師娘)에게 그것이 탄로난다면 자기는 큰일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급히 말했다.

[약 반년 전부터 제자는 줄곧 태사부님을 따라 다녔읍니다. 그러다가 십일 전에 서로 헤어져 있다가 가까스로 오늘에야 화산에서 다시 만났읍니다.]

그 노파는 반신반의 하면서 물어보았다.

[그렇다면 비구니들이 이 동굴에 갇혀 있다는 것을 어찌 알았소.]

전백광은 말했다.

[그건...... 그건......]

금방 핑계될 말을 찾지 못하고 심히 난처한 입장이 되었다.

바로 이때 갑자기 산허리에서 수십개의 호각소리가 울리고 이어서 붕붕거리는 여러 사람들이 목소리가 들려 왔다. 마치 천군만마가 다가오는 듯하였다. 사람들은 모두가 아연실색하였다.
영영은 영호충의 귓가에 낮은 소리로 말하였다.

[나의 아버님이 도착하셨읍니다.]

영호충은 억 하고 외마디 비명소리를 지르고, [알고 보니 나의 장인어른이 도착하셨구료.]

그러나 내심 이곳은 이 말을 할 수 있는 마땅한 자리가 아님을 느끼고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으나 즉시 참았다.
한참동안 북이 울리더니 잠시후 호각소리가 들려왔다.
그 노파는 말하였다.

[혹시 관병(官兵)이 온 것이 아닐까?]

갑자기 북소리와 호각소리가 일제히 멈추었다.
일곱여덟 사람이 크게 외쳤다.

[일월신교의 문무를 겸비하시고 창생을 구하신 임교주의 수레가 도착하였소.]

이 일곱여덟 사람은 모두가 공력이 대단한 고수였으므로 일제히 소리를 지르자 이 말은 산계곡을 쩌렁쩌렁 울렸으며 산 이곳저곳에 메아리쳐졌다.

[임교주님의 어가가 도착하였다! 임교주님의 어가가 도착하였다!]

그 기세가 하늘을 찔러 불계화상 등 모두가 안색이 변하였다. 대답소리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여기저기서 큰 소리로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천추만재 일통강호(千秋萬載 一統江湖) 임교주님은 성교를 흥하게 하시고 산처럼 오래오래 장수하시기를 빕니다.]

이런 말을 한 사람은 적게 잡아도 이삼천명은 된 듯하였다.
사방에서 또 한바탕 목소리가 들려왔다.

[성교를 흥케하시고 임교주님이 천년만년 살기를 우리 모두는 바라고 있읍니다. 성교를 흥케하신 임교주님이 천추하시기를 빌고 있읍니다.]

한찬 지나자 사람들의 외침소리가 멈추었다. 사방이 조용해지더니 어떤 자가 낭랑한 소리로 말했다.

[문무를 겸비하시고 억조창생을 하신 일월신교의 임교주님의 명령이시다. 오악검파의 장문인과 문하제자들은 들어라. 모두들 조양봉석루(朝陽峯石樓)에 모이도록 하여라.]

그 말은 연신 세번 울려 퍼졌다. 조금 지나자 또 말했다.

[십이당(十二堂)에 정부향주는 교중들을 이끌고 모든 계곡과 산봉우리를 샅샅이 뒤지고 길을 지켜서 잡다한 사람들이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도록 하여라. 명령을 듣지 않는 자는 죽여도 무방하다.]
삽시간에 이삼십 명이 일제히 대답을 하였다. 영호충과 영영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고 내심 무엇인가 깨달았다. 그자가 봉우리와 계곡들을 샅샅이 뒤지고 길목을 지키라고 한 것은 오악파 사람들이 반드시 조양봉에 가서 임교주를 만나도록 강제로 손을 쓰고 있는 것이다.
영호충은 내심 생각하였다.

(그는 영영의 아버지다. 나는 머지않아 영영과 결혼을 할테니 만나보기 싫어도 한번은 임교주를 만나봐야 되지 않겠는가.)
즉시 의화 등 사람들에게 말했다.

[많은 우리의 동문사저 사매들이 아직도 위험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읍니다. 전형이 길을 인도하여 빨리 그들을 구출하도록 하시오. 임교주는 임소저의 아버지이니 우리들에게 그리 못할짓을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나와 임소저는 먼저 동봉(東峯)에 가 있을테니 여러 사저사매들은 나중에 함께 다 모여서 동봉에서 다시 만나도록 합시다.]

의화, 의청 등은 대답을 하였다. 그리고는 전백광을 따라 발길을 재촉했다.
그 노파는 화가 나서 말을 했다.

[그가 뭘 믿고 이곳에서 호령을 하는지 모르겠구만. 나는 그를 만나보지 않을 것이야. 그 임가놈이 어떻게 나를 대하는가 두고 보자.]

영호충은 그녀의 성격이 워낙 고집스러워서 설득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설사 그녀를 설득해서 임아행을 만나보도록 한다 해도 그녀는 틀림없이 임아행과 충돌을 일으킬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안 만나는 것보다는 못할 것이다. 그래서 즉시 불계화상 부부에게 작별의 인사를 한 후에 영영과 함께 동봉을 향해서 갔다.
영호충은 말했다.

[화산에서 제일 높은 세개의 봉우리는 바로 동봉(東峯), 남봉(南峯), 서봉(西峯)이오, 특히 동과 서봉 두 봉우리가 제일 높습니다. 동봉은 원래 조양봉(朝陽峯)이라 부르지요. 당신 아버지가 그 봉우리를 선택하여 오악검파의 군웅들을 만나자고 하는 것은 분명히 군웅들로 하여금 일제히 그곳에 와서 조배(朝拜)를 하라는 뜻이 감겨져 있읍니다. 당신 아버님은 오악검파의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일제히 조양봉에 모이라고 했는데 혹시 모든 파의 사람들이 지금 화산에 모여있는 것이 아닐까요?]

영영은 말했다.

[오악검파 중에 악선생, 좌랭선, 막대선생 세분의 장문인은 오늘 이미 죽었읍니다. 태산파는 누가 장문인이 되었는지 아직 소식이 없읍니다. 오대검파 중에서 사실 남아 있는 장문인은 당신 혼자뿐입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오파중에서 항산파를 제하고는 각파의 고수들 모두가 사과애의 동굴 안에서 죽음을 당했소. 그리고 항산파의 여러제자들은 지금 모두 갇혀 있는 상황이지 않소. 그래서 나는......]

영영은 말했다.

[당신은 우리 아버지가 이 기회를 틈타서 오악검파를 일망타진 할까봐 그게 염려가 되시지요.]

영호충은 고개를 끄덕이고 탄식하며 말했다.

[사실은 당신 아버지가 손을 쓰지 않아도 오악검파는 이미 얼마남지 않았소.]

영영은 역시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악선생은 오악검파의 고수들을 유혹해서 화산에 가서 석벽의 검초를 보라고 했읍니다. 화산에 가서 여기있는 검초를 보라고 한 것은 각파중에 무공이 강한 인사들을 전부 없애려는 그런 의도였겠지요. 그래야만이 그가 편안하게 오악파의 장문인이 될 수가 있는 데다 다른 파의 유능한 자와 다툴 일도 없을테니까요. 이런 수법은 심히 고명했으나 뜻밖에 좌랭선이 그런 소식을 알아 차리고 기회를 틈타 한무리의 봉사들을 불러서 그 컴컴한 동굴 속에서 그를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좌랭선이 죽이려고 한 것은 내가 아닌 나의 사부란 말이지요.]
영영은 말했다.

[그는 당신이 올 줄은 미처 생각지 못한 것 같습니다. 당신은 검술이 고명하기 그지 없고 이미 석벽에 조각되어 있는 모든 초식을 초월했으므로 동굴에 와서 그 검초를 구경하리라고는 생각을 못 한 것이지요. 우리가 동굴에 들어간 것은 정말 우연이었읍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당신 말이 옳소. 사실 좌랭선과 나는 원수지간은 아니었소. 그의 두눈은 나의 사부에게 당했고 오악파의 장문인 자리마저 그가 빼앗아가 버렸으니 그는 원한이 뼈에 사무쳤을 것이오.]
영영은 말했다.

[좌랭선은 모든 계획을 먼저 알아 차리고 악선생이 먼저 동굴에 들어 가도록 꾸몄겠지요. 그리고 난 후 기회를 틈타 그를 죽이려고 했읍니다. 그러나 어떻게 된 영문인지 계책을 악선생이 알아 버린 것이지요. 그는 오히려 동굴입구를 막아 서서 어망을 던져 사람을 잡으려고 했읍니다. 그것이야말로 기는 자 위에 뛰는 자가 있고, 뛰는 자 위에 나는 자가 있다는 경우가 아니겠읍니까? 당신 사부와 좌랭선이 이제 모두 죽었으니 그간에 우여곡절은 아마 그 누구도 알지 못할 것입니다.]

영호충은 처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영영은 말했다.

[악선생이 오악검파의 여러 고수를 오도록 유혹한 것이 이미 오래 전부터 계획을 한 것이지요. 그날 숭산에서 검시합을 하여 승자를 가릴 때 당신 소사매는 태산, 형산, 숭산, 항삥나 각파의 정묘검초를 펼쳐 보였읍니다. 사파의 고수들은 그 광경을 보고 모두가 애가 탔겠지요. 단지 항산파의 제자들은 당신이 이미 석벽에 있는 검초를 전수해 주었기 때문에 그리 신기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태산, 형산, 숭산 삼파의 문인제자들은 물론 여기저기에 알아 보려고 했겠지요. 악 소저가 검초를 어디서 배워왔는가를 알아 보기 위해서 말입니다. 악선생은 암암리에 그 비밀을 누설시키고 날짜를 정해서 뒷동굴의 석벽을 개방했던 것입니다. 이 삼파의 고수들이 어지하여 만사를 제쳐놓고 오지 않을 수 있었겠읍니까?]
영호충은 말했다.

[무예를 배우는 사람이라면 고수의 무공을 배울 수 있는 장소만 알아내어도 설사 자기에게 크나큰 위험이 닥쳐온다 할지라도 몸이 근질근질해서 가지 않고는 못배기는 법이오. 특히 자기파에 고명한 초식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오. 그렇기 때문에 막대선생 같이 고결하고 침착하신 분도 동굴 속에서 목숨을 잃은 것인 게요.]
영영은 말했다.

[악선생은 당신네 항산파 사람들은 오지 않을 것이라 짐작하여 미리 다른 계획을 짜 놓았던 것입니다. 그 계획이란 바로 정신을 잃는 약을 써서 항산파 사람들을 잡아 가두려한 것인데 다른 사람 또한 정신을 잃고 쓰러지자 모두다 함께 화산에 잡아온 것입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나는 아직까지도 사부가 어재서 그렇게 큰 공력을 들이면서 우리 문하의 많은 제자들을 산으로 잡아왔는지 모르겠읍니다. 당시 제자들을 항산에서 모두 죽여버렸으면 깨끗했을텐데 어째서 이렇게 먼곳까지 잡아왔을까요?]

그는 잠시 멈추었다가 말했다.

[아! 알았읍니다. 항산파의 제자들을 모두 죽이면 우악파중에는 항산 일악이 없어질 것입니다. 사부가 오악파의 장문인이 되려고 하는데 항산일파가 사라지게 된다면 오악파장문인은 다리 하나가 없어진 꼴이 되어서 명실상부한 오악파의 장문인이 되지 못하지요.]

영영은 말했다.

[그것도 하나의 원인입니다. 내가 추측해 보건대 또다른 크나큰 이유가 있읍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그것이 무엇이오?]

영영은 말했다.

[물론 당신을 잡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나와 흥정을 할 수가 있을테니까요. 그렇지 않다면 당신 문하의 제자들을 모두 잡아다가 당신을 협박했을 것입니다. 나는 수수방관할 수가 없으니 별 수 없이 해독약을 그에게 주고 사람들과 맞바꿔야 되겠지요.]
영호충은 확연히 깨달았다. 무릎을 치더니 말했다.

[맞소. 나의 사부는 삼시뇌신단의 해독약이 필요했을 겁니다.]
영영은 말했다.

[악선생은 강제로 그 약을 먹은 뒤에 밤낮으로 불안하여 그 해독약을 급히 구하려고 했읍니다. 하루라도 빨리 해독약을 먹지 않는다면 하루 하루가 불안했을테니까요. 그는 오로지 당신을 잡아야만 해독약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읍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그야 물론이지요. 나는 당신이 아끼는 사람이니 오로지 나만이 당신과 흥정을 할 수가 있을테니까요.]

영영은 삐죽거리며 말했다.

[그가 당신을 잡아서 약과 바꾸자고 한대도 나는 바꾸지 않을 거예요. 해독약의 약재는 구하기도 어렵지만 만들기도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값으로 따질 수 없는 보물인데 그렇게 쉽게 그에게 줄 수가 있겠읍니까?]

영호충은 말했다.

[옛말에 이르기를 가격을 매길 수 없는 물건은 쉽게 구할 수는 있으나 마음속의 남자는 구하기가 어렵다고 했소.]

영영은 뺨이 새빨개지더니 작은 소리로 말했다.

[새앙쥐가 저울에 올라가 자화자찬을 하면서 창피한 줄도 모르는군요.]

말하는 사잉에 두 사람은 이미 좁다란 산길로 들어섰다. 산길은 깍아진 듯 위로 향하고 있었으며 심히 가파랐다.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갈 수가 없었다.
영영은 말했다.

[먼저 앞장서 가세요.]

영호충은 말했다.

[아무래도 당신이 먼저 가구료. 떨어진다면 내가 당신을 잡아 줄 것이오.]

영영은 말했다.

[아닙니다. 먼저 가세요. 그리고 앞에 가다가 절대로 뒤를 돌아 보지 마세요. 할머니가 할 말을 당신은 꼭 들어야 합니다.]
말을 하면서 웃기 시작했다. 영호충은 말했다.

[좋소. 내가 먼저 앞장 서겠소. 내가 떨어진다면 당신은 나를 꼭 잡아 줘야 합니다.]

영영은 급히 말했다.

[안 됩니다. 안 됩니다.]

그가 거짓으로 실축한 체하여 장난을 할까봐 염려되어 자기가 산길을 앞장섰다.
영영은 그가 웃고 있지만 표정이 심히 우울하였고 웃고 나서 또다시 표정이 처량하게 변하는 것을 보고 악불군의 죽음에 대해서 심히 애석해 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가는 길에 장난을 치고 농담을 하면서 그의 걱정을 풀어 주려고 하였다.
이렇게 산고비를 돌자 옥녀봉(玉女峯)에 당도하였다. 영호충은 손가락으로 저것이 바로 옥녀가 얼굴을 씻던 세숫대야고 이것이 바로 옥녀의 화장대하고 손가락으로 가르쳐 보여 주었다. 영영은 옥녀봉은 틀림없이 악영산과 옛날 놀던 장소임을 알고 그가 더욱 마음아파 할까봐 힐끗힐끗 쳐다보며 빠른 걸음으로 지나쳤다. 그리고 더 자세하게 물어보지를 않았다.
다시 언덕 하나를 내려가니 바로 조양봉을 향하는 작은 길목이었다. 길목의 곳곳에는 초소가 서 있었으며 일월교의 교중들의 옷 색깔은 모두 일곱색깔로 구분되었다. 깃발의 신호에 따라서 모두가 질서정연하게 움직이고 있었으며 그 옛날 흑목애에 배치한 것에 비해 또다른 기상을 엿보게 했다.
영호충은 암암리에 탄복을 하였다.

(임교주는 진정 큰 인물이다. 내가 수천명의 사람들을 이끌고 소림사를 공격했을 때는 엉망진창으로 지휘를 하였는데, 그는 마치 수천사람들을 자기 수족을 부리듯이 지휘하는구나. 그 어찌 임교주와 나를 비교할 수 있는가? 동방불패도 역시 대단한 인물이다. 단지 나중에 그가 정신이 돌아 재사를 양련정에게 건네주어흑목애는 스산해졌고 그래서 위엄이 없어졌던 것이야.)

일월교의 교중들은 모두 영영을 보자 고개를 숙여 절을 하였으며 영호충에게도 극히 예를 다하였다.
신호를 알리는 깃발이 봉우리 아래서 중간 봉우리로 전달되고 중간 봉우리에서 다시 봉우리 정상으로 전달되어 임아행에게 그들이 오는 것을 보고하였다. 조양봉의 아래에서부터 산허리 그리고 정상에 이르기까지 모든 길목에는 교중들이 배치되어 있었으며, 적게 잡아도 그들이 이천명 정도는 됨직하였다. 일월교의 교중들은 적잖은 좌도의 인사들을 끌어 모은 것 같았고 대거 출동한 듯하였다.
만약 오악검파의 여러 장문들이 한명도 죽지 않고 모두 화산에 모였더라도 사전에 세밀하게 계획을 짜지 않고 순식간에 접전을 한다면 승산보다는 패할 가능성이 높았다. 또한 지금은 인재들이 모두 사라지고 없어졌으니 더우기 일월신교들과 대항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임아행의 이러한 허세를 보자 틀림없이 오악검파에게 불리한 짓을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일이 이미 정해진 이상 혼자서 지탱하는 데까지 지탱해 보다가 모든 것을 천운에 맡기고 오로지 한걸음 한걸음 있는 힘을 다하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임아행이 오악검파의 모든 사람들을 죽이려면 그도 별수없이 있는 힘을 다하여 용전을 해야만 할 것이고 항산파 제자들도 일제히 조양봉에서 죽으면 되는 것이다.
그는 총명하고 영리했지만, 지략이 부족했고 더우기 생각이 그리 깊지 않았다. 또한 어떤 대사나 임기웅변에 대처할 수 있는 그런 인재는 아니었다. 눈앞에 항산의 모든 사람들이 이미 그물에 걸려들었지만 항산파를 보존시키고 위기에서 벗어날 계획을 생각해 내지도 못하고, 모든 것을 천운에 맡겼다. 도한 영영과 임교주는 피를 나눈 혈육의 관계이므로 그녀가 두 사람들 모두 다 도와주지 못한다면 절대로 자기를 돕기 위해 자기 아버지에게 대항할리는 없다고 생각하였다. 지금 조양봉의 상황은 일촉즉발의 국면이었다. 많은 교중들이 활에 화살을 넣고 실을 당기려고 하고 있고 금방이라도 칼집에서 칼을 뽑아 달려들 기세였으나, 그는 단지 보고도 못본 척 영영과 아무 상관 없는 농담만을 주고 받고 있었다.
영영은 그러나 벌써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녀는 영호충처럼 유유자적하거나 아무렇게나 행동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오는 길에 이생각 저생각 하면서 대책을 생각하였다.
영영은 생각하기를, (충랑(庶郞)은 하늘도 무서워하지 않고 땅도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이다. 설사 하늘이 무너져 내린다 해도 눈도 껌뻑이지 않고 단지 떠들고만 있을 사람이다. 어쨌든 그를 도와줄 좋은 방법을 생각해야만 한다.)

아버지가 교중드릉띵 대거 이끌고 이곳에 온 것은 절대로 좋은 일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듯 험악한 상태에서 둘 다 좋게 결말을 맺는 방법은 도저히 없었다.
두 사람은 천천히 올라갔다. 산 정상에 오르자 갑자기 호각소리가 울리더니 펑펑펑 하고 화약터지는 소리가 났다. 이어서 폭죽과 음악소리가 크게 일어났다. 그것은 성대히 귀빈을 환영하는 예식이었다.
영호충은 낮은 소리로 말했다.

[빙장 어른께서는 사위를 영접하시는 모양이구료.]

영영은 그를 한번 힐긋 쳐다보고 내심 심히 걱정이 되었다.

(이 사람은 그 무엇도 마음에 두고 있지 않구나. 상황이 이렇게 되었는데 아직도 농담을 하고 있다니.)


한 사람이 껄껄껄 길게 웃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이어 낭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대소저, 영호 동생, 교중들이 당신들을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소.]

몸에 자주색 도포를 입은 마르고 나이가 많은 노인이 큰 걸음으로 다가오더니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짓고 영호충의 두손을 꽉 쥐었다. 그는 바로 상문천이었다.
영호충은 그를 만나자 매우 기뻤다. 그래서 말하기를, [상형님, 안녕하십니까? 나는 늘 형님 생각만 하고 있었읍니다.]

상문천은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흑목애에서 자네가 무림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다는 소식을 계속해서 듣고 있었지. 자넬 위해서 축배도 많이 들었어. 적게 잡아도 열단지는 족히 먹었을 거야. 빨리 교주님을 찾아 뵙게나.]
그는 손을 거머쥐고 석루를 향해서 걸어갔다.
그 석루는 동봉 위에 있었다. 거대한 바위가 우뚝 솟아 천연적으로 한개의 누각처럼 되어 있는 것이다. 석루의 동쪽은 바로 조양봉의 정상인 선인장(仙人掌)이었다. 그 선인장은 우뚝 솟은 큰 석주(石柱)로 되어 있었다. 중간에 우뚝 서 있는 것은 제일 높았다. 그 위에는 한개의 의자가 놓여 있었는데 한 사람이 의자에 단정히 앉아 있었다. 바로 임아행이었다.
영영은 선인장 앞으로 다가가더니 고개를 숙이고 외쳤다.

[아버님!]

영호충도 고개를 숙이고 절을 하면서 외쳤다.

[후배 영호충 교주님께 인사드립니다.]

임아행은 껄껄껄 크게 웃더니 말했다.

[참 때맞춰 잘 왔네. 우리는 한가족이나 다름없는데 그렇게 예를 차릴 필요는 없네. 오늘 본교는 천하의 영웅들을 만나보기로 하였네. 먼저 공사를 처리하고 집안 이야기는 나중에 하세. 현......현제(賢弟)는 옆에 앉아 있게나.]

영호충은 임아행이 현제라는 말을 하다가 잠시 머뭇거리는 것을 보고는 그가 현서(賢壻)라고 부르려고 했음을 알았다. 단지 명분이 아직 정해지지 않아 바로 현제라고 말투를 바꾼 것이다. 보아 하니 내심 자기와 영영과의 혼사를 매우 찬성하고 있고, 그래서 우리는 한가족이라든가 또는 공사를 먼저 처리하고 가족일은 나중에 이야기하자 하는 말을 한 것이다. 그는 마음속으로 기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갑자기 단전에서 한줄기의 차가운 기가 북받쳐 올라왔다. 온몸이 마치 얼음구덩이에 빠진 느낌이 들었다. 몸이 떨려왔으며 아무리 떨지 않으려고 해도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영영은 깜짝 놀라 앞으로 몇발짝 다가가더니 물어보았다.

[어째서 그러십니까?]

영홍충은 말했다.

[난...... 난......]

그러나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임아행은 높은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눈빛이 예리하여 물어보았다.

[자네는 좌랭선과 한바탕 붙었는가?]

영호충은 고개를 끄덕였다.
임아행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아무 일도 없겠네. 자네는 그의 차가운 진기를 흡수했으니 조금 후에 그 기를 바깥으로 발산시키면 아무 일도 없을걸세. 좌랭선은 어째서 아직도 오지 않는가?]

영영은 말했다.

[좌랭선이 함정을 파서 영호충과 나를 죽이려고 하였읍니다. 그래서 이미 영호 오라버니에게 죽음을 당했읍니다.]

임아행은 가벼운 비명을 질렀다. 그의 좌석은 심히 높아서 그의 안색을 살필 수는 없었으나 말투 속에 실망한 감이 충분히 배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영영은 아버지의 뜻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오늘 깃발을 휘날리며 기세를 보여 오파의 사람들을 모두 굴복시키고 또한 그의 평생의 강적인 좌랭선이 친히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이는 것을 보지 못하자 크게 실망을 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좌측손으로 영호충의 우측손을 꼭 거머쥐고 그가 찬기를 바깥으로 발산하도록 도와 주었다.
영호충은 좌측손으로 상문천에게 꽉 잡히었다. 두 사람은 동시에 기를 운행시켰다. 영호충은 몸에 있는 차가운 한기가 점점 없어짐을 느꼈다.그날 임아행가 좌랭선이 소림사에서 결투를 했을때 임아행은 좌랭선의 한빙진기(寒氷眞氣)를 적지 않게 빨아들여 눈발이 휘날리는 가운제 영호충과 영영, 상문천 세사람이 동시에 눈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영호충은 단지 장검으로 서로 부딪쳤기 때문에 좌랭선의 진기를 약간 받았을 뿐 그리 심하지는 않았다.
한참 지나자 몸떨림은 멈추었다. 그래서 말하기를, [되었읍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임아행은 말했다.

[자네가 내가 오라고 하는 소리를 듣고 즉시 이곳에 와서 이렇게 나를 만나보다니 거참 잘된 일일세, 잘된 일이야.]

고개를 돌려 상문천을 향해서 말했다.

[어째서 나머지 네파의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보이지 않는가.]
상문천은 말했다.

[제가 또한번 재촉을 해보겠읍니다.]

좌측손을 휘두르자 여덟의 노란 옷을 입은 너이 먹은 사람들이 일렬로 봉우리 앞에 섰다. 그리고 일제히 외쳤다.

[일월신교의 문무를 겸비하시고 억조창생을 하신 교주님의 명령이시다. 태산, 형산, 화산, 숭산, 네파의 모든 사람들은 속히 조양봉으로 오라, 각파의 당주는 신속하게 재촉을 하여 착오없게 하여라.]

이 여덟명은 모두가 내공이 깊은 고수들이었으므로 일제히 외치자 목소리가 멀리 전해지고 각 봉우리에서 모두 들을 수가 있었다.
동서남북 각 방향에서 수십개의 목소리가 일제히 대답을 하였다.

[명을 받들겠읍니다. 교주님은 천추만재하시고 일통강호하십니다.]

일월신교 각 당주들이 호응을 하는 소리였다.
임아행은 잔잔히 웃더니 말을 했다.

[영호 장문, 잠시 옆에 앉아 있으시오.]

영호충은 서쪽에 다섯개의 의자가 배치되어 있음을 보았다. 의자는 모두가 비단으로 싸여 있었으며 각기 흑백홍청황 다섯색깔로 구분되어 있었다. 비단 위에는 각기 한개의 산봉우리가 수놓아져 있엇다. 북악 항산은 검은 색이었으므로 검은 비단에 흰색으로 수놓아져 있었는데 바로 견성봉이었다. 수는 매우 정교하게 놓아져 있었으며 이 한개의 의자를 보고도 일월신교가 이번에 얼마나 정성을 다하고 치밀한 계획을 짜고 있었는가를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오악검파는 본래 중악 숭산이 우두머리고 북악의 항산은 그 끝에 있었다. 그러나 좌석의 배치는 거꾸로 되어 있어서항산파의 장문인 자리가 상석에 놓여 있었고 그 다음이 서악의 화산, 숭산파의 자리는 마지막에 놓여 있었다. 그것은 임아행이 자기를 높게 평가를 하고 의식적으로 좌랭선을 무시하려는 것 같았다. 어차피 좌랭선, 악불군, 막대선생, 천문도인은 모두 이 세상 사람이 아니므로 영호충은 겸양하지 않고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러면 앉겠읍니다.]

검은 비단이 덮여져 있는 의자에 가서 앉았다. 조양봉에는 많은 사람들이 묵묵히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 지나자 상문천은 또다시 여덟명의 노란옷을 입은 자를 지휘하여 다시한번 불러 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올라오는 사람이 없었다.
상문천은 말했다.

[그들은 아무리 잘 봐주려고 해도 안 되겠구만. 어째서 이렇게 교주님을 만나뵈로 오지 않을까? 우리 사람들은 먼저 올라오도록 해야겟구만.]

여덟명의 노란옷을 입은 사람들이 일제히 외쳤다.

[오호사해 각도, 각동, 각방, 각채, 각산, 각당의 여러 형제들은 모두 조양보에 올라와 교주님을 알현하시오.]

그의 입에서 교주라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옆의 봉우리에서 갑시간에 우뢰와 같이 외쳤다.

[명령을 따르겠읍니다.]

외치는 소리는 계곡을 진동하였다. 영호충은 자기도 모르게 깜짝 놀랐다. 소리를 들어보니 적게 잡아도 이삼만명은 족히 되는 듯하였다. 이 많은 사람들이 암암리에 매복을 하고 있으면서도 아무런 흔적을 노출시키지 않았던 것이다.
영호충은 추측하기를, (임아행의 본래의 목적은 오악검파의 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도착하면 쥐도새도 모르게 숨어 있는 수만명의 사람들을 불러내서 상대방을 압도시키고 오악검파가 더이상 감히 반항할 생각을 못하도록 짓누르려고 이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온 것이 아닌가?)

삽시간에 조양봉 사방팔방에서 무수한 사람들이 꾸역꾸역 올라오고 있었다. 사람의 숫자는 많았지만 조금도 떠드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각자 모두 자기의 위치에 서 있었다. 보아 하니 먼저 충분하게 연습을 한 그런 모습들이었다.
봉우리에 올라온 자들은 약 이삼천명 되었으며 그들은 좌도의 우두머리급 인사들이었으며, 그 나머지 부하들은 봉우리 아래서 기다리고 있는 듯하였다.
영호충이 살펴 보니 남봉황, 조천추, 노두자, 계무시 등도 모두 그안에 섞여 있음을 보았다. 이 사람들은 일월신교를 관할하고 있거나 이들과 내통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날 영호충이 군웅들을 이끌고 소림사를 공격했을 때 대부분이 참가를 했던 사람들이었다.
여러 사람들은 눈빛으로 영호충을 맞이했다. 모두들 얼굴에 미소를 띠었으나 누구도 말을 걸거나 아는 체를 하지 않았다. 발걸음이 삭삭 움직이는 소리 외에는 수천명이 봉우리에 당도했어도 아무런 말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상문천은 우측손을 높이 들어 둥그런 원을 그렸다.
수천명은 일제히 무릎을 꿇고 말을 하였다.

[후배들은 신교의 문무를 겸비하시고 억조창생을 하신 성교님께 인사드립니다. 성교주께서는 천추만재하시고 일통강호하십니다.]
이들은 모두 무공이 강한 사람들이어서 힘껏 외치자, 한 사람이 족히 열 사람의 목소리를 대신했다. 마지막에 성교주께서 천추만재하시고 일통강호하십니다 라고 말을 할때 일월교중들과 산허리에 있던 많은 사람들은 일제히 따라 외쳤다. 그 소리는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였다. 임아행은 미동도 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의 외침이 끝나자 손을 들어 표시를 하엿다. 그리고 말하기를, [여러분, 모두 수고하셨소. 어서들 일어나시오.]

수천명은 일제히 말했다.

[성교주님, 정말 감사합니다.]
하고 일제히 일어났다.
영호충은 내심 생각하였다.

(당시 내가 처음 흑목애에 올라갔을 때 교중들이 동방불패를 우뢰와 같이 떠받들고 있는 것을 보고 메스꺼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뜻밖에 임아행이 교주가 된 후 더욱 심해지고 교주라는 말에 더우기 성(聖)을 붙여 성교주가 되었구나. 아마 문무백관들이 지금의 임금을 알현하면서 임금님 만만세! 라고 외쳐도 이와 같이 비굴하게 무릎을 꿇고 조아리지는 않을 것이다. 무예를 숭산하는 사람들은 영웅호걸을 자처하는데 이렇듯이 무릎을 꿇고 자기를 낮추다니, 이게 무슨 하늘을 지붕삼아 살아가는 영웅호걸들이고 대장부란 말인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속에 받쳐 있던 기가 올라와 갑자기 단전이 극심하게 아파오고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거의 기절을 할 지경이었다.
그는 두손으로 의자를 붙들고 아랫입술을 너무 세게 깨물고 피가 날 뻔하였다. 자기가 흡성대법을 배운 후에 비록 사용하지 않을 것을 맹세하였지만 조금 전에 산동굴에서 악불군의 어망에 잡혔을 때 삶과 죽음이 한순간에 달려 있어서 별수없이 이 사법(邪法)으로 악불군의 내공을 흡수했던 것이다. 그러나 자기는 이미 크나큰 피해를 입고 있었다. 그는 강제로 아픔을 억제하면서 입속에서 신음소리를 내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머리에는 땀이 줄줄 흘러내렸고 온몸은 덜덜 떨려왔으며 얼굴에 근육이 비뚤어지고 고통스러운 표정은 누가 보아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조천추 등은 눈을 똑바로 뜬 채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심히 걱정이 된 표정이었다.
영영은 그의 몸 가까이 다가가 작은 소리로 말하였다.

[충 오라버니, 저는 여기 있읍니다.]

군웅들의 수천개 눈이 주시하고 있어서 그녀는 별수없이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그러나 말을 하고서도 얼굴이 새빨개졌다. 영호충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한번 쳐다보자 마음이 약간은 놓이는 듯하였다.
그는 바로 그날 임아행이 항주에서 한 말이 생각났다. 임아행이 말하기를 그가 흡성대법을 배운 후에 다른 사람의 진기를 몸안에 모아두면 결국은 어느 날인가 발작을 하게 되고 발작의 횟수가 거듭됨에 따라 그 고통은 더해 간다고 했다. 임아행은 그당시 바로 몸 안에 다른 진기가 들어있어 밤낮으로 진기를 풀 방법을 생각하느라 만사를 돌보지 않아 동방불패가 그틈을 이용해서 자기자리를 빼앗아 갔던 것이다. 임아행은 서호의 밑바닥에 십여년 동안 갇혀 있으면서 연마를 하고 연구를 하여 푸는 방법을 깨우쳤던 것이다.
그러나, 영호충이 일월신교에 가입을 해야만 그에게 비법을 가르쳐 준다고 하였다.
그때 영호충은 그의 제의를 뿌리쳤던 것이다. 뿌리친 연유는 어렸을때 사부의 가르침에 따라 정과 사가양립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깊이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절대로 마교와 한 무리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중에 좌랭선 등 정교의 대종사들이 한 사악하고 흉악한 행동들이야말로 마교와 비교해 그리 차이가 없어 정과 사의 구분을 그때부터 별로 따지지 않게 되었다. 내심 임교주가 자기에게 입교를 해야만 영을 아내로 삼는 것을 허락한다고 하면 그댄 그냥 얼렁뚱땅 신교에 입교하면 될 것이라고까지 생각하기도 하였다.
그는 천성이 자유분방하고 구속됨을 싫어했고 어떤 일이든지 그리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신교에 입교를 하든지 또는 입교를 하지 않든지 그것은 그리 그에게는 큰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날 흑목애에서 많이 호걸영웅들이 동방불패와 임아행 두 사람의 교주에게 이렇듯이 비굴하고 말끝마다 성덕이 어쩌고 억조창생이 어떻고 하는 달콤한 말만하자 자기도 모르게 반감이 일어났던 것이다. 내심 자기가 일월신교에 입교를 한 후에 역시 이처럼 노예 같은 생활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니 대장부의 삶과 죽음은 하늘에 있는 것인데 구걸을 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은 절대로용납을 할 수 없다고 마음속으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금에 이르러 눈앞에 임아행의 행동이 황제보다도 더욱 휘황 찬란하고 위세가 당당함을 보고 내심 그날 호수 밑바닥 감옥에서 임아행이 어떠한 꼴을 하고 있었는데 천하의 영웅들에게 오늘 사람같지 않은 대답을 요구하다니 무례하기 그지없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대 갑자기 어떤 사람의 낭랑한 소리가 들려왔다.

[성교주님께 알려드립니다. 항산파 문하제자들이 오고 있읍니다.]


영호충은 멈칫하여 보니 의화, 의청, 의림 등 항산제자들이 서로 부축하며 봉우리를 올라오고 있었다. 불계화상 부부와 전백광도 뒤따르고 있었다.
포대초는 낭랑하게 말했다.

[여러 친구들은 성교주님을 알현하시오.]

의청 등은 영호충이 옆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장차 임아행이 빙부가 됨을 알고 있었으므로, 정과 사가 양립할 수는 없지만 장문의 체면을 봐서 후배의 예로 인사를 하려고 하였다. 그래서 즉시 선인장 앞으로 걸어나와 고개를 숙이고 예를 갖춰 말을 했다.

[항산파의 후배제자들은 임교주님께 인사드립니다.]

포대초는 일갈을 했다.

[모두 모릎을 꿇고 절을 하시오.]

의청은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출가한 사람이외다. 부처님과 보살님과 그리고 사부님에게 절을 하는 것외에는 일반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절을 하지 않습니다.]

포대초는 큰 소리로 말했다.

[성교주님은 범인이 아니고 신선 성현이시며 바로 부처이고 바로 보살님이시다.]

의청은 고개를 돌려 영호충을 향해 바라보았다. 영호충은 고개를 끄덕였다.
의청은 말했다.

[죽이려면 죽이시오. 항산의 제자들은 절대 범인에게는 절을하지 않소.]

불계화상은 껄껄 웃더니 말했다.

[그말 잘 했다. 그말 한번 잘했다.]

상문천은 화가 나서 말했다.

[당신은 어느 문 어느 파에 속하는 사람이오. 이곳에 뭣하러 왔소.]

상문천은 항산파 제자들이 임아행에게 무릎을 꿇고 절을 하지 않는 형세가 굳어지는 것을 보자, 만약 이들에게 시비를 건다면 영호충의 체면에 좋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즉시 불계화상을 상대하여 임아행의 마음을 분산시켜 고개를 숙이고 절을 하는 일을 그럭저럭 무마시키려고 하였다.
불계화상은 웃으면서 말했다.

[이 중놈은 큰 절에서도 받아주지 않고 작은 절에서도 받아주지 않는 떠돌이 땡중이오. 문파도 없읍니다. 듣건데 이곳에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기에 무슨 좋은 일이 있나 하고 구경하러 왔소.]
상문천은 말했다.

[오늘은 일월신교가 이곳에서 오악검파를 회견하는 날이니 상관없는 사람은 이곳에서 떠들고 구경할 수가 없소. 당신은 산을 내려가시오.]

상문천이 이렇게 말한 것은 영호충의 체면을 많이 봐준 것이다.
그것은 진정 최대한의 배려였다. 그는 불계화상과 항산파 사람들과 친분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에게 심하게 대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불계는 웃으면서 말했다.

[이 화산은 당신 마교들의 것은 아니오. 내가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가는 것입니다. 화산파 사람들을 제하고는 누구도 나를 이곳에서 쫓아낼 수 없소.]

이 마교라는 두 글자는 일월교에서는 금기의 말이었다. 무림의 사람들은 등뒤에서 마교라는 말을 입밖에 올리지만 그들 앞에선 절대로 이와 같은 호칭을 쓰지 않았다.
불계화상은 강직하고 입이 바른 사람이라 말을 할 때는 누구의 눈치를 보거나 주저함이 없었다. 상문천이 자기를 보고 하산을 하라고 일갈을 하자 매우 못마땅해서 상대방의 사람이 많고 적고간에 아무 주저함이 없이 그와 말을 했던 것이다.
상문천은 영호충을 향해서 말을 했다.

[영호 형제, 이쪽은 귀파와 무슨 관계가 있읍니까?]

영호충은 가슴이 아파서 더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분...... 이분은 불계대사......]

임아행은 불계가 공공연히 입에 마교라는 말을 올리자 극히 화가 치밀어 올랐다. 영호충의 입에서 이 화상과 관계가 있다고 말을 하면 그를 죽이지 못할까봐 염려되어 영호충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즉시 일갈을 했다.

[이 못된 중놈을 없애버려라.]

여덟명의 노란옷을 입은 장로들은 일제히 대답을 했다.

[명을 따르겠읍니다.]

여덟명은 권장을 써서 불계를 향해 공격을 했다. 불계가 말했다.

[당신들은 사람이 많다고 우쭐대는 모양인데.]

몇마디를 하는 사이에 여덟명은 이미 공격해 들어왔다.
그 노파는 욕을 하였다.

[이 못된놈들 같으니라고.]

무리 속에 끼어들어 불계화상과 등과 등을 마주하고 적을 맞아 싸웠다. 그 여덟명의 사람들은 일월교 중에서도 제일등의 인재들이었으므로 무공은 불계와 그 노파와 모두 백중하였다.
여덟명이 두 사람을 상대하자 수초사이에 승부가 확연하게 드러났다.
전백광은 단도를 뽑아들고 의림은 장검을 들고 들어가서 함께 싸웠다. 그 두 사람의 무공은 현저하게 차이가 났으므로 여덟 장로중에 두 사람이 나와서 전백광과 의림에게 덤벼들었다. 전백광은 칼을 손에 쥐고 있으므로 어느정도 막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의림은 상대방에 밀려서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만약 그 장로가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이 항산파의 옷차림이고 영호충의 체면을 보아서 양보를 해주지 않았다면 이미 그녀를 없애 버렸을 것이다.
영호충은 허리를 숙여 좌측손으로 배를 누르며 우측손으로 장검을 뽑아들고 외쳤다.

[잠...... 잠깐만.]

싸우는 무리속에 끼어들어 장검을 움직여 연속 팔초식을 써서 네명의 장노를 뒤로 물러나게 하였다. 또 몸을 돌려 여덟검을 썼다.
이 십육초의 독고 검법은 매초식마다 각 잘로의 급소를 찔렀다. 이 여덟명의 장로는 그에게 밀려서 어찌 할 수가 없었다. 또 감히 그와 대항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할 수 없이 뒤로 물러났다.
영호충은 고개를 숙이고 땅바닥에 엎드렸다. 그리고 말했다.

[임...... 임교주님 저의 체면을 봐서라도 그들로 하여금......
그들로 하여금......]

그들로 하여금 내려가도록 하여 주십시오라고 입 밖으로 말할 수가 없었다.
임아행은 이런 상황을 보고 그의 체내에는 다른 진기가 발작하고 있음을 추측하였다. 마음속으로 딸아이가 이자가 아니면 절대로 시집을 가지 않는가는 것을 알고 있었고 자기 또한 이자의 인물됨을 퍽이나 좋아하고 있었다. 더우기 자기에게 아들이 없으므로 장래에 그가 신교의 교주자리를 맡아주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던 터였다.
그래서 즉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영호장문의 부탁이니 오늘 한번 봐 주기로 하겠소.]

상문천의 몸이 번쩍이더니 두 손을 연신 휘둘러 이미 각각 불계부부와 전백광과 의림, 네 사람의 혈도를 찍었다. 그의 손놀림이 너무나 빨랐으므로 실로 신기에 가까웠다. 그 노파는 몸놀림이 불빛처럼 빨랐으나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영호충은 놀래서 말했다.

[상...... 상......]

상문천은 웃으면서 말했다.

[안심을 하시오. 성교주께서 이미 한번 봐주라고 말씀하지 않았소.]

몸을 돌려 외치기를, [여덟 사람들은 오시오.]

즉시 여덟명의 파란옷을 입은 교도들이 무리 앞에 나와서 고개를 숙이며 말을 했다.

[상좌사께서는 분부를 내려주시오.]

상문천은 말했다.

[네명의 남자와 네명의 여자가 나오시오.]

즉시 네명의 남자교도가 물러나고 네명의 여자교도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상문천은 말했다.

[이 네사람의 말투로 보아 오늘 살아 남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성교주님의 넓은신 아량과 영호장문의 체면을 보아 그래서 처분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을 봉우리 아래까지 매고 가서 그때 혈도를 풀어주고 석방하도록 하여라.]

여덟 사람은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을 하였다.
상문천은 낮은 소리로 분부를 하였다.

[영호장문인의 친구들이니 절대로 무리해선 안 된다.]
그 여덟 사람은 대답을 하였다.
네 사람을 2짊어지고 봉우리 아래로 내려갔다.
영호충과 영영은 불계 등 네 사람이 죽음의 고비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보고 모두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영호충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정말로...... 정말로 감사합니다.]

땅바닥에 엎드려 다시는 일어나지를 못하였다.
그는 조금 전 연속 십육초식을 써서 공격을 하여 비록 여덟명의 장로를 물리치기는 했으나 여덟명의 장로는 모두 무공이 상당한 경지에 이르는 사람들이라 그의 검초는 그들에게 상처를 입힐 수가 없었다. 이 십육초식을 사용하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지만 이미 정력을 크게 소모시켜 가슴의 통증은 더욱 매서웠다.
상문천은 암암리에 걱정이 되었으나 얼굴에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웃으면서 말했다.

[영호형제는 몸이 좀 불편하신가?]

그와 영호충과는 그 옛날 힘을 합쳐 군웅들과 대항했고 그들의 사이는 금란지교였다. 비록 같이 지낼 기회는 적었지만 교분에 있어서는 생사를 초월한 그런 관계였다.
그는 영호충의 손을 잡고 부축하여 의자에 앉혀서 암암리에 진기를 불어넣어 그의 몸 안에서 진기의 변화에 대항하도록 도와 주었다.
영호충은 내심 자기 몸 안에 흡성대법이 있는데 상문천이 이렇게 하는 것은 자기로 하여금 그의 공력을 흡수토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였다. 그래서 급히 힘껏 그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상형님 안 됩니다. 난...... 난 이미 나았읍니다.]

임아행은 말했다.

[오악검파중에서 오로지 항산일파만이 이곳에 왔다. 그 나머지 사파의 스승과 제자들은 감히 이곳에 오지 않는구나. 우리는 절대 그들을 용서할 수가 없다.]


바로 이때 상관운은 빠른걸음으로 봉우리에 달려와 선인장 앞에 걸어가더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성교주님께 알려드립니다. 사과애 동굴속에서 수백구의 시체를 발견했읍니다. 숭산파 장문인인 좌랭선도 그곳에 있었읍니다. 그리고 숭산, 형산, 태산 여러파의 고수들도 그 수가 얼마나 되는지 모를 정도입니다. 아마 그들이 서로가 죽이고 죽음을 당한 것 같습니다.]

임아행은 억 하고 가볍게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형산파 장문인인 막대선생은 어디에 가 있느냐?]

상관운은 말했다.

[제가 자세히 검사를 해보았는데 시체중에 막대는 없었읍니다.
화산의 여러 곳에서도 그의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읍니다.]
영호충과 영영은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놓였고 또한 의아하게 생각되었다. 두 사람은 서로 마주 쳐다보더니 내심 생각을 하였다.

(막대선생의 행동은 정말로 신출귀몰하다. 그런 곳에서 살아남을 수가 있다니 그는 당시 아마 시체더미 속에서 거짓으로 죽은 체하고 있다가 조용해 진 후 그 자리를 떠난 것이 틀림없다.)
상관운이 또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태산파의 옥경자, 옥금자 등은 모두 함께 죽었읍니다.]
임아행은 크게 불쾌하여 말하였다.

[이건...... 이건 어디서부터 말을 해야 옳단 말이냐?]
상관운은 또 말했다.

[그 동굴밖에는 또 한 구의 시체가 있었읍니다.]

임아행은 급히 물어보았다.

[누구이더냐?]

상관운은 말했다.

[제가 검시를 해보니 틀림없이 화산파의 장문인이었읍니다. 바로 새로 오악파의 장문인을 맡은 군자검 악불군 선생이었읍니다.]
그는 영호충이 머지 않아 본교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그리고 또 악불군은 그의 스승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말투속에는 상당한 예를 갖추고 있었다.
임아행은 악불군이 이미 죽었다는 말을 듣고 자기도 모르게 아연실색하여 물어 보았다.

[누가...... 누가 그를 죽였단 말인가?]

상관운은 말했다.

[제가 사과애의 동굴에서 검시를 하고 있을 때 싸우는 소리를 들었읍니다. 나가 보니 한무리의 화산파 문인들과 태산파 도인들이 격렬하게 격투를 하고 있었읍니다. 모두들 상대방이 본파의 사부를 죽였다고 말했읍니다. 쌍방은 매우 무섭게 싸움을 했고 사상자가 적지 않았읍니다. 지금 모두 봉우리 아래로 잡아다 놓았읍니다. 성교주님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읍니다.]

임아행은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악불군은 태산파에게 죽음을 당했느냐? 태산파에 그만한 고수가 있단 말이냐?]

항산파 중에서 의청이 낭랑한 소리로 말했다.

[아닙니다. 악불군은 나의 사매가 죽인 것입니다.]

임아행은 물어 보았다.

[그럼 그자가 누구요?]

의청은 말을 했다.

[바로 조금 전에 봉우리로 내려간 의림 소사매올시다. 악불군은 우리파의 장문인인 사부와 정일 사숙을 죽인 자입니다. 그래서 우리파의 사람들이라면 위아래 너나할 것 없이 모두가 한이 맺혀 있었고 원수를 갚으려고 하였지요. 오늘 보살님이 보호하심과 장문사부와 정일사숙의 도우심으로 본파의 무공이 미천한 소사매 손에 그 악독한 원흉은 죽음을 당하였읍니다.]

임아행은 말했다.

[음, 알고보니 일이 그렇게 되었구만. 그것도 인과응보라고 할 수 있겠지.]

말투 속에는 매우 흥이 깨졌다는 투였다. 상문천과 여러 장로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면서 모두가 흥미를 잃은 듯하였다.
이번 일월교에서 대서 화산에 온 것은 사전에 세밀하게 계획을 하였으며, 고수들이 모두다 왔을 뿐 아니라 더우기 각방, 각채, 각동, 각도의 군웅들을 소집하여 일거에 오악검파를 복종시키려고 하였다. 오파가 만약 항복을 하여들지 않는다면 즉시 한꺼번에 몰살시키려고 하였다. 그렇게 된다면 그로부터 임아행가 일월신교의 위세는 하늘을 찌르고 온 천하를 호령할 수가 있었다.그 다음에 소림 무당 두파를 없앤다면 정교 중에서 그 누구도 대항할 자가 없고 그러므로써 천추만재일통강호의 기염을 쌓고 이 모든 것들을 화산 조양봉에서 멋지게 이룩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뜻밖에 좌랭선, 악불군 및 몇명의 고수들이 모두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죽음을 당했으며, 막대선생은 어디로 갔는지 행방을 감춰버렸고 네파의 후배제자들도 얼마 남지 않았던 것이다.
임아행이 힘과 정력과 마음을 쏟아 계획했던 일은 결국 빈 껍질만 만지는 꼴이 되었다. 임아행은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 큰 소리로 말했다.

[오악검파의 죽지 않은 잡놈들을 모두 봉우리로 압송해 오너라.]

상관운은 대답을 하였다.

[녜.]

몸을 돌려 아래로 가서 명령을 전하였다.
영호충의 몸 안에 있는 진기가 한바탕 요동을 부리더니 점점 가라앉았다. 임아행이 아직 오악파의 죽지 않은 그 잡놈들을 데려오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는 비록 그의 뜻은 결코 자기를 욕하는 것이 아니었지만 항산파는 필경 오악검파의 한파이므로 속이 몹시 좋지 않았다.
한참 지나자 호통소리가 들려왔다. 두명의 장로가 교중들을 이끌고 숭산, 태산, 화산, 형산 네파의 서른 세 명의 제자들을 압송하여 봉우리로 올라오고 있었다. 화산파 제자들은 본래 많지 않았고, 숭산, 태산, 형산 세파의 고수들은 열명이면 아홉은 이미 싸움을 하다가 죽었다. 이 서른세 명의 제자들은 모두가 이름이 없는 소인들 일뿐 아니라 모두 몸에 상처를 입고 있었다. 만약 일월신교의 교중들이 부축을 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자기 힘으로 봉우리를 올라올 기운조차 없었다.
임아행은 그런 꼴을 보자 크게 대노하여 모든 사람들이 가까이 오기를 기다리지도 않고 일갈을 했다.

[그놈들 데려와서 뭘 하여 하느냐! 데리고 가거라! 모두 산 아래로 데리고 가거라!]

그 두 명의 장로는 대답을 하였다.

[성교주님의 명령에 따르겠읍니다.]

서른세명의 상처를 입은 네파의 제자들을 모두 봉우리 아래로 데리고 갔다.
임아행은 허공에다 대고 몇번인가 욕지거리를 하다가 껄껄 길게 웃고는 말을 했다.

[오악검파는 하늘을 노하게 해서 자멸해 버렸다. 우리들이 힘을 쓰지 않고 그들 서로가 내분을 일으켜 모두 죽은 것이다. 앞으로 강호에서 그들의 이름은 영원히 없어질 것이다.]

상문천과 열명의 장로는 고개를 숙이며 일제히 말했다.

[이 모두가 성교주님의 홍복이십니다.]

상문천은 또 말했다.

[오악검파 중에서 오직 항산파 한파만이 홀로 남았읍니다. 그것은 모두가 영호 장문인이 잘 이끌고 지도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앞으로 항산파와 우리의 신교는 하나의 뿌리를 이루어 부귀와 영화를 같이 누릴 것입니다. 성교주님은 한분의 소년영웅을 얻으셨고 이 세상에서 둘도 없는 인재를 얻으셨읍니다. 정말로 축하드립니다.]

임아행은 말했다.

[그렇소. 상좌사의 말씀이 맞소. 영호 형제, 오늘부터 당신은 항산일파를 해산시켜도 좋소이다. 문하의 교중들과 사태와 여제자들이 우리 흑목애에 오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두손을 들어 환영 할 것이오. 그렇지 않고 항산에 머무르길 원한다면 그것도 괜찮은 방법중에 하나지요. 항산을 당신 부교주의 친위대로 여겨도 좋소이다.
하하하.]

하늘을 향하여 걸껄 웃었다. 그 웃음 소리는 계곡을 진동시켰다.

여러 사람들은 부교주라는 세글자를 듣고 모두가 멍청해졌다. 이어서 환호소리가 진동을 하였다. 사방팔방에서 모두 외치기 시작하였다.

[영호대형께서 우리 교의 부교주가 되셨다. 이와 같은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성교주님께서 팔하나를 얻으셨으니 축하드립니다.]
[성교주님께 축하드립니다! 부교주님께 축하드립니다.] [성교주 만세! 부교주 만세!]

여러 교중들은 머지 않아 영호충이 교주의 사위가 될 것이고, 또한 부교주가 되었으니 앞으로 교주의 자리는 자연히 그의 것이라는 것을알고 있었다. 여러 사람은 영호충의 사람됨이 온화한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는 지금처럼 긴장 속에 살지 않아도 되고 언제 화가 자기 코앞에 닥칠지 모르는 상황이 약간 가라앉으리라 여기고 있었다. 그 나머지 강호의 호걸들은 반정도가 영호충을 따라 소림사를 공격 했을 때 그하고 같은 어려움을 나눴고 또한 영영에게는 약을 건네받은 은혜를 입고 있어 이 환호 소리는 모두가 가슴속에서 우러나는 소리였다.
상문천은 웃으면서 말했다.

[축하하네 부교주, 우리 먼저 자네가 우리교에 입교한데 대해서 축하주를 마시고 그리고 나서 자네와 아가씨가 결혼하는 축하주를 마시세. 이것이야말로 크나큰 경사가 아닌가? 경사가 겹쳤네, 겹쳤어.]

그러나 영호충의 마음은 어리둥절하였다. 단지 이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러나 어떻게 물리쳐야 옳을 지 몰랐다. 자기가 만약 거절을 한다면 영영과의 혼약은 절망적일테고 임아행이 격노하면 자기의 생명은 부지할 수가 없음을 알았다. 자기가 죽는 것은 아깝지는 않으나 항산의 모든 제자들도 아마 살아서 이곳을 떠날 수가 없을 것이다. 즉시 물리쳐야 옳은 일이나 잠시 가만히 있다가 항산파의 제자들이 이 위험에서 빠져나간 다음에 그때 가서 두고보기로 하였다.
그는 천천히 몸을 돌려 항산의 여러 제자들을 둘러보았다. 어떤 자들은 얼굴에 노기가 충만되었고 어떤 자는 고개를 푹 숙이고 힘이 빠져 있으며 어떤 자는 크게 당황하여 어떻게 행동해야 될지를 모르고 있었다. 상관운의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들은 성교주님의 선두를 해서 부교주님을 모시고 소림을 무지르고 무당 곤륜 아미를 공격하고 그 다음에 개방을 멸합시다. 그들을 없애는 것은 누워서 식은죽 먹기지요. 성교주님의 천추만재하시고 일통강호하시고 부교주님께서는 산처럼 오래 사시고 복이 무궁무진하시기를 바랍니다.]

영호충은 마음속으로 이 말이 몹시 탐탁치 않았다. 상관운의 산처럼 오래 살고 복을 무궁무진하게 받으라는 축송 소리는, 만약 자기가 부교주가 된다면 아마 영원히 자기 뒤를 따라다니게 될 것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모든 것이 매우 우스웠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킥킥킥 몇번 웃어댔다. 이 웃음 소리는 풍자와 조롱의 뜻이 담겨 있었으므로 모든 사람이 그의 웃음소리를 듣자 삽시간에 조양봉은 조용해 졌다.
상문천은 말했다.

[영호 장문, 성교주께서는 부교주의 자리를 전수해 주셨읍니다.
그것은 이 광명천지 무리에서 일인지하이고 만인지상의 자리입니다. 빨리 가서 감사의 말을 전하시오.]

영호충은 마음속이 갑자기 밝아졌다. 더이상 주저하지 않고 몸을 일으켜 세워 선인장을 향해서 낭랑한 소리로 말했다.

[임교주님, 저는 두 가지의 큰 일이 있는데 임교주님께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임아행은 웃으면서 말했다.

[말을 해보시오.]

영호충은 말했다.

[첫번째 저는 항산파의 장문이인 정한사태의 부탁을 받고 항산파의 장무인의 직함을 맡았읍니다. 설사 항산파의 문호를 광대시키지는 못해도 결코 항산일파를 데리고 일월신교에 들어갈 수는 없읍니다. 만약 내가 일월신교에 들어간다면 구천에 가서 어찌 정한사태를 만나볼 수 있겠읍니까? 이건 첫번째 일이고 두번째는 내 개인적인 일입니다. 나는 교주님께서 교주님의 따님과 결혼을 하도록 승낙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말한 첫번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모두 큰일이 났구나 하고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두번째 공공연하게 구혼을 청하자 모든 사람들은 그제서야 마음이 놓였다.
임아행은 껄껄껄 웃더니 말했다.

[첫번재 일은 처리하기가 쉽구만, 자네는 항산파 장문인 자리를 한분의 사태에게 건네주면 되지 않나. 자네 혼자서 신교에 들어오고 항산파가 우리 교에 들어오느냐 들어오지 않는냐는 그다음 일이네. 두번재 일은 자네와 영영이 의기가 투합하고 사이가 좋다는 것은 온천하가 다 알고 있는 일일세. 나는 물론 자네에게 내 딸을 자네 아내로 삼도록 허락을 하겠네. 그게 무슨 걱정인가? 하하하.]
여러 사람은 임아행이 큰 소리로 웃자 모두 기뻐서 함께 웃었다. 영호충은 고개를 돌려 영영을 한번 쳐다보았다. 그녀의 뺨이 새빨개지면서 얼굴에는 기쁜 빛이 역력하였다.
여러 사람들이 웃기를 기다렸다가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교주님께서 저를 귀엽게 봐주어 저에게 신교에 가입을 하라고 했고 또한 높은 자리를 제수해 주셨읍니다. 그러나 저는 평소에 규칙 따위를 지키기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만약 신교에 입교를 한다면 교주의 대사를 틀림없이 망칠 것입니다. 제가 심사숙고 해본 결과 아무래도 교주님께서는 그와 같은 말씀을 거두어 주셨으면 합니다.]

임아행은 마음속으로 크게 대노하여 냉랭히 말을 했다.

[그렇게 말을 하는 것을 보니 자네는 결코 신교에 입교하지 않겠단 말인가?]

영호충은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는 칼로 물베듯이 자기의 의사를 확실히 대답하였다. 조금도 주저함이 없었다. 일시에 조양봉의 모든 군웅들은 아연실색하였다.
임아행은 말했다.

[자네 몸에 축척되어 있는 진기는 오늘 이미 발작을 하였네. 앞으로 길면 반년 적게 잡으면 삼개월 후에 또다시 그런 발작을 할걸세. 발작을 할때마다 그 고통은 더욱 심해지네. 그 진기를 풀어내는 방법은 이 세상에서 오로지 나 한사람만 알고 있을 뿐이야.]
영호충은 말했다.

[그 옛날 항주매장(抗州梅莊)과 그리고 소실산의 눈밭에서 교주님은 그와 같은 말씀을 하신 적이 있읍니다. 저는 조금전에 그 진기가 발작되어 고통을 맛보았읍니다. 그것은 몸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고통이었읍니다. 그러나 사내 대장부가 강호에 살면서 어찌 그 많은 생사고락 따위들을 염두에 두고 그것을 하나하나 따지며 살겠읍니까?]

임아행은 흥 하고 콧방귀를 뀌더니 말했다.

[자네의 말은 퍽이나 멋지군. 오늘 자네 항산파는 내 손아귀에 들어 있네. 그 누구도 살아서 돌아가지는 못해. 그것은 손바닥을 뒤집는 것보다 더욱 쉬운 일이야.]

영호충은 말했다.

[항산파는 대부분이 여자들이지만 두려움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교주께서 만약 죽이신다면 우리는 맹세코 여기서 끝까지 싸우다 죽을 것이오.]

의청이 손을 휘두르자 항산파의 여러 제자들은 영호충 몸 뒤에 가서 서 있었다.
의청은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하아산파제자들은 오직 장문인의 명령에 따를 것입니다.
죽어도 아무런 여한이 없읍니다.]

여러 제자들은 일제히 말을 했다.

[죽음이 두렵지 않고 죽어도 여한이 없읍니다.]

정악은 말했다.

[적은 많고 우리는 적습니다. 우리는 또 함정에 빠져있는 꼴이니 아픗로 강호의 호걸들은 결국 알 것입니다. 우리 항산파가 어떻게 싸웠고 어떻게 굴복을 하지 않았는가를.]

임아행은 극히 노하였다. 하늘을 향해서 껄껄 웃으며 말했다.

[오늘 너희들을 죽인다면 우리가 비굴한 수단을 써서 죽였다고 할테니영호충 너는 제자들을 이끌고 항산에 돌아가거라. 일개월 안으로 나는 친히 견성봉에 올라갈 것이다. 그때 항산에 만약 개 한마리, 쥐새끼 한마리라도 남겨놓는다면 나는 이 임씨 성을 내놓겠다.]

교중은 큰 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교주께서는 천추만재하시고 일통강호하십니다. 능히 항산의 모든 것을 없앨 수 있읍니다.]

일월교의 기세로 만약 견성봉에 가서 항산파를 도살한다면 지금 즉시 손을 쓰는 것과 별로 차이가 없었다. 항산파가 돌아가서 어떻게 방비를 하던지간에 일월신교들은 틀림없이 깨끗하게 쓸어 버릴 것이다. 옛날에 오악검파와 일월교가 서로 맞붙었을 때 오파는 서로 지원을 하였고 한파에서 어려움이 있을 땐 네파가 일제히 도와주었었다. 그렇게 하므로써 백여년 동안 서로가 백중세를 이루었던 것이다. 지금 오악검파에서는 오로지 한파만이 남아 있고 자연히 일월교와 대항할 방법이 없었다.
이 모든 것을 항산파의 모든 사람들은 잘 알고 있었다. 임아행이 항산에 와서 항산의 모든 것을 쓸어버린다고 호언장담하는 것은 결코 허풍이 아니었다. 사실 임아행의 마음속에는 지금 또다른 생각이 젖어 있었다.
영호충이 검술에 정통하나 필경 고장난명(孤掌難鳴)일 것이고 항산일파야 그리 걱정되지 않았다. 그가 걱정하고 있는 것은 소림과 무당 두 파였다. 영호충이 돌아가면 틀림없이 소림과 무당에게 구원을 청할 것이고 이 두 파에서는 틀림없이 모든 고수들을 파견하여 견성봉에 가서 도우려고 할 것이다.
그는 항산을 공격하지 않고 사람들이 생각을 못하는 사이에 무당파를 급습하고 다시 소실산과 무당산 사이에 세개의 무서운 함정을 파리라고 생각하였다. 무당산과 소림산은 불과 수백리 밖에 떨어지지 않았으므로 무당에서 일이 있으면 자연히 가까이 있는 소림사로 통지를 할 것이다. 이때 소림사의 고수들은 틀림없이 소림사에서 나와서 무당파를 도와주려 갈 것이다. 그때 일월신교는 일거에 소림파의 본거지를 장악하고 먼저 소림사를 태워 버린다. 그리고 나서 매복한 사람들이 일제히 협공을 하여 무당에 응원을 하러가는 소림사 중들을 섬멸해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겹겹이 무당산을 에워싸고 즉시 공격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항산에 소림, 무당 두파의 고수들이 무당산이 포위되었다는 소식을 들어면 천리가 멀다하지 않고 무당에 쫓아올 것임으로 우리 일월신교는 가만히 기다리고 있다가 급습을 하면 틀림없이 성공을 거둘 것이다. 그 다음 무당을 공격하고 항산을 멸하는 것은 손바닥 뒤집기만큼 손쉬운 것이었다.
그는 순식간에 이미 소림 무당 두 파를 없앨 계획을 짜놓았다.
마음속으로 계속 주판을 튕겨 보았다. 틀림없이 성공하리라는 확신을 얻었다.
영호충이 신교에 가입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자기의 체면을 크게 깎는 것이었으나 이로 인해서 오히려 일월신교가 일통강호하는 대업을 이룩할 수 있으니 마음속으로는 실로 기뻤다. 너무 기뻐서 말로써 다 형용할 수가 없었다.
영호충은 영영을 향해서 말했다.

[영영, 당신은 나와 함께 갈 수가 없게 되었구료.]

영영은 벌써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이때 더 이상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이 양쪽 뺨을 타고 주르르 쏟아져 내려왔다.
영영은 말했다.

[내가 만약 당신을 따라서 항산에 간다면 그것은 불효일 것이고 또 당신을 저버린다면 그것은 하나의 불의(不義)가 되겠지요. 효도와 의로움을 두개 다 이룩할 수가 없군요. 충 오라버니, 앞으로는 절대로 내 생각을 하지 마세요. 어차피 당신은......]

영호충은 말했다.

[어떻단 말이오.]

영영은 말했다.

[어차피 당신의 생명은 그리 길게 남지 않았읍니다. 나도 맹세코 당신보다 하루라도 더 살지는 않겠읍니다.]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 아버님이 나에게 친히 당신과 나의 결혼을 승낙하셨읍니다. 그분은 천추만재하시고 일통강호하시는 성교주님인데 어찌 자기가 한 말을 지키지 않겠읍니까? 나와 당신은 이곳에서 결혼을 올려 부부가 되는게 어떻습니까?]

영영은 멈칫하였다. 그녀는 비록 영호충이 생각이 엉뚱하고 자유롭게 행동하는 사람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그가 이 마당에서도 이와 같은 말을 할 줄은 생각지도 못하였다.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새빨개지면서 말을 했다.

[이건...... 이건 어찌 그렇게 할 수가 있읍니까?]

영호충은 껄껄껄 크게 웃더니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 그만 여기서 헤어집시다.]

그는 영영의 마음을 너무나 깊이 알고 있었다. 임아행이 교중들을 이끌고 항산을 공격하여 자기를 죽인다면 그녀는 틀림없이 목숨을 끊을 것이라는 것을.
일이 이렇게 진행된 이상 그 누구도 돌이킬 수가 없었다. 만약 세속의 상념을 깨고 그녀가 기꺼이 자기와 조양봉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함게 항산에 돌아가 며칠동안 신혼의 재미를 누리고 손을 잡고 함께 죽으면 더이상 미련은 없을 거이다. 이런한 계획은 너무나 기발한 착상이므로 영호충은 주저하지 않을 것이나 결코 여자인 임소저가 기꺼이 따를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하물며 그렇게 한다면 그녀는 불효자라는 이름을 뒤집어 쓸 것이었다.
즉시 껄껄 웃더니 임아행에게포권을 하여 예를 갖춘 후 또 상문천과 여러 장로들을 향해서 읍을 한 다음 말했다.

[영호충은 견성봉에서 여러분이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겠읍니다.]

말을 하면서 몸을 돌려 걸어갔다.
상문천이 말을 했다.

[잠깐만! 술을 가져오너라. 영호동생, 오늘 크게 취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우리가 언제 같이 술 마실 기회가 있겠나.]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했다.

[참 좋은 묘안입니다. 묘안이구 말구요. 상형님이야말로 진정한 나의 지기입니다.]

일월교는 이번에 화산에 올 때 사전에 계획이 다 짜여져 있었으므로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었다. 상문천이 술을 가져오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부하들은 몇단지의 술을 가져와 단지의 뚜껑을 열더니 그릇에다 술을 퍼담았다.
상문천과 영호충은 각각 한자의 술을 비웠다. 무리 주에서 키가 작고 뚱뚱한 한 사람이 걸어나오고 있었다. 그는 바로 누두자 였다.
노두자는 말하기를, [영호공자, 당신의 대은대덕을 이 늙은이는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오. 오늘 내가 당신을 위해서 한잔을 술을 따르겠소.]
말을 하면서 술잔을 높이 들고 술을 싹 비워버렸다. 그는 단지 일월교의 관할하에 있는 강호의 사람이었으므로 상문천의 지위와는 현격한 차이가 있고 같은 자리에 앉을 수도 없었다. 더우기 영호충이 오늘 신교에 입교하지 않아 공공연하게 임아행의 노여움을 산 형편인 것이다.
노두자와 같은 작은 인물이 감히 그에게 와서 술을 따르는 것은 임아행에게 노여움을 사서 순식간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그는 의를 중히 여기고 목숨을 가볍게 보는 위인이라 이미 죽음을 각오한 사람이었다.
군웅들은 그와 같은 행동을 보자 모두들 암암리에 탄복을 하였다. 이어서 조천추, 남봉황, 계무시, 황백류 등이 차례차례 다가와서 술을 따랐다. 영호충은 많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자기에게 다가와서 술을 따르자 내심 생각하였다.

(이 많은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까지 대접하고 있구나. 나는 생을 헛산 것이 아니야. 그렇다고 그들의 생명까지 바치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큰 그릇을 높이 쳐들고 말했다.

[여러 친구들이여 영호충은 주량이 강하지 못하므로 오늘은 더이상 마실 수가 없읍니다. 여러분께서 항산을 공격하러 오실 때 나는 항산 아래서 맛있는 술을 준비하여 여러분들과 한바탕 마시도록 하겠읍니다.]

말을 하면서 손에 들고 있는 술잔을 단숨에 마셔 버렸다.
군웅들은 일제히 외쳤다.

[영호 장문인은 진정 호탕한 사람입니다.]

영호충은 술잔을 땅바닥에 던진 후 술이 약간 취해서 봉우리 아래로 걸어갔다.
의청, 의화 등 항산에 여러 제자들은 그를 따라서 봉우리를 내려갔다.

군웅들이 영호충과 술을 마시고 있을 때 임아행은 단지 웃고만 있을 뿐 아무말 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계획을 짜고 있었다. 소림사와 무당 사이에 어떻게 매복을 해야만 될 것인가 어떻게 거짓으로 항산을 공격하는 체해야만 소림, 무당 두파의 고수들을 끌어낼 수가 있을까? 무당산을 어떻게 공격하고 한쪽을 어떻게 터 놔야만 무당파 사람들이 소림사로 갈 것인가? 어떻게 해야만 함정을 알아내지 못하도록 할까? 영호충이 크게 취해서 산을 내려갈 때 그는 무당을 파괴시키고 소림을 제압하는 여러 계획들을 마음속에 이미 다 결정해 놓고 있었다.
속으로 또 생각하기를, (이놈들이 내 면전에서 감히 영호충에게 술을 권하다니 내가 천천히 그 빛을 갚아 주겠다. 많은 사람들이 있으니 잠시 참았다가 소림, 무당, 항산 세파를 멸한 다음에 오늘 영호충에게 술을 권한 놈들을 하나하나씩 죽여 본때를 보여주리라.)

갑자기 상문천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모두들 들으시오. 성교주님께서는 영호충의 성격이 완고하고 또 직위를 줘도 받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읍니다. 그러나 계속하여 좋은 말로 권하였읍니다. 그것은 성교주님께서 아량이 넓고 인재를 아끼는 까닭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또다른 깊은 뜻이 있었는데 영호충과같은 졸부가 어찌 그것을 알 수 있겠읍니까! 우리는 오늘 힘도 들이지 않고 숭산, 태산, 형산, 화산 네 파를 격파시켰읍니다. 그리하여 우리 일월신교는 그 이름을 천하에 진동케 하였읍니다.]

여러 교중들은 일제히 외쳤다.

[성교주님은 천추만재하시고 일통강호하십니다.]

상문천은 교중들이 외치는 소리가 멈추기를 기다렸다가 또 말했다.

[무림에는 아직 소림, 무당 두파가 남아 있읍니다. 이 두파는 우리교의 두통거립니다. 성교주님께서는 영호충을 미끼로 해서 소림을 소탕하고 무당을멸하실 것입니다. 성교주님께서 아직 좋은 계획이 없다손치더라도 모든 계획은 마음속에 모두 그려져 있을 겁니다. 그 어르신께서는 영호충이 입교하지 않으리라고 여기셨는데 정말 영호충은 입교하지 않았읍니다. 영호충에게 술을 권한 것은 바로 성교주님께서 사전에 준비하신 것입니다.]

교중들은 모두 그말을 듣자 마음속으로 암암리에 생각을 하였다.

(알고 보니 일이 그렇게 되었구나.)

또 큰 소리로 외치기 시작하였다.

[성교주님은 천추만재하시고 일통강호하십니다.]

상문천이 임아행을 몇년 동안 수행하여 왔기 때문에 그의 사람됨을 너무나 깊숙이 알고 있었다. 자기가 일시적인 의분과 흥분으로 영호충에게 술을 권한 일에 대해서 그는 틀림없이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자기는 그렇다손치더라도 그 나머지 사람들 역시 자기를 따라서 술을 권했는데 그것 때문에 그들이 어떤 화를 당할지 모르는 것이었다. 그래서 즉시 말을 꾸며 그를 기쁘도록 했고 그의 체면을 세워 주었으며 이 몇마디로 노두자, 계무시 등의 생명을 구할 수 있기를 바랬다.
이렇게 말하므로써 여러 사람이 영호충에게 술을 권했던 사실이 임아행의 위엄에 아무런 손상을 입히지 않을 뿐더러 그의 견문이 넓고 모든 일을 귀신처럼 안배한 것처럼 더욱 돋보이게 했다.
임아행은 상문천이 이토록 말하는 것을 듣고 마음속으로 내심 기뻐하였다. 그래서 암암리에 생각하기를, (필경 상좌사는 나를 여러해 따라다녔기 때문에 나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구나. 그러나 그는 비록 내사 소림을 소탕하고 무당을 소멸하는 계획을 알고 있지만 어떤 방법으로 그들을 소멸시키는가에 대해서 결국 예측해내지 못할 것이다. 앞으로 이 계획들은 하나하나씩 보여주겠다. 그러니 상좌사조차도 모르게 해야겠다.)
상관운은 큰 소리로 말했다.

[성교주님께서는 여의봉을 손에 쥐고 계십니다. 천하의 모든 일은 어르신 계산 속에 있읍니다. 어르신이 뭐라고 하시면 우리는 거기에 따르면 되고 그렇게 하면 절대로 착오가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포대초는 말했다.

[성교주님의 손가락 하나에 우리는 물속으로도 들어갈 수도 있고 불속으로도 들어갈 수고 있을 것입니다.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할 것입니다.]

진위방은 말하였다.

[성교주님을 위해서 일을 한다면 설사 수천번 죽는다 할지라도 의미없이 사는 것보다도 더욱 유쾌할 것입니다.]

또 한 사람이 말했다.

[모든 형제들이 말하기를 일생중에서 제일 즐거운 때는 우리들이 날마다 성교주님을 볼 수 있는 며칠 동안이라고 했읍니다. 성교주님만 한번 뵙기만 하면 온몸에 힘이 생기고 몸이 불덩어리처럼 달아올라 십년 동안 공력을 쌓는 것보다도 더한 효과가 있다고 하였읍니다.]

또 다른 한 사람이 말하였다.

[성교주님은 하늘의 태양이시고 달이십니다. 우리 일월신교의 위세를 넓히시고 지상에다 단비를 내려주는 인물이십니다. 우리 모두는 성교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신 것을 기뻐하고 있고 마음속으로 감격하고 있읍니다.]

또 한사람이 말했다.

[동서고금의 대호걸 대영웅 대성현중에 그 누구도 성교주님을 따를 자가 없읍니다. 관운장의 필부지용(匹夫之勇)이 어찌 성교주님의 지략과 비견될 수가 있읍니까. 제갈량의 계책이 아무리 높아도 검을 들고 우리 성교주님과 검시합을 한다면 어찌 되겠읍니까?]
여러 교중들은 일제히 갈채를 보내며 외쳤다.

[관운장, 제갈량 그 어느 누구도 우리 성교주님보다 못합니다.]
포대초는 말했다.

[우리 신교가 일통강호한 다음에 천하에 있는 문묘(文廟)중에 공자의 신상을 옮겨내오고 또 다시 천하에 있는 무묘(武廟)중에 관운장의 신상을 모셔 내옵시다. 그 두분에게 양보를 해달라고 해놓고 우리 성교주님의 장생보위(長生褓位)를 모십시다.]

상관운은 말했다.

[성교주님께서는 천세를 사시고 만세를 사십시오. 우리들의 자자손손 모두가 성교주의 휘하에서 성교주님을 떠받들 것입니다.]
여러 사람들은 일제히 크게 외치기 시작했다.

[성교주님께서 천추만재하시고 일통강호하십시오.]

임아행은 아랫사람들의 아부소리를 듣고 어떤 말들은 황당무계 했으나 그리 싫지가 않았다.
내심 생각하기를, (이 말들은 사실 틀린 말이 아니다. 제갈량의 무공은 물론 나의 적수가 아니고 그는 여섯번 기산(?山)에 출전했지만 아무런 공을 세우지 못했다. 지략으로 말할 것 같으면 어찌 나를 따라올 수 있겠는가. 관운장은 종횡무진의 활약을 하여 사람들은 모두 그를 신용(神勇)을 갖췄다고 말을 하지만 나하고 일대 일로 싸운다면 그 어찌 나의 흡성대법을 따르겠는가? 공자의 제자는 불과 삼천명에 불과하다. 나의 부하들은 십만명이 넘지 아니한가? 그는 삼천명의 제자를 이끌고 천하를 호령하고 있고 마음먹은 대로 행동하여도 아무도 막을 사람이 없다. 공자의 지혜가 어찌 나 임아행과 비교될 수 있겠는가?)

천추만재 일통강호 천추만재 일통강호의 소리는 천지를 진동하였으며 산허리에 있던 강호의 호걸들이 따라서 함성을 지르자 사방의 산에서 메아리가 쳐왔다.
임아행은 만족하여 몸을 일으켜 세웠다. 교중들을그가 일어나자 일제히 땅바닥에 엎드렸다. 삽시간에 조양봉은 정적이 흘렀고 누구하나 기침소리를 내지 않았다.
햇빛이 임아행의 얼굴과 몸에 비추었다. 일월신교 교주의 위풍은 당당하였으며 마치 신과 같았다.
임아행은 껄껄 크게 웃더니 말했다.

[천추만재하기를 원하고 영원히 오늘처럼......]

오늘처럼까지 말을 하더니 갑자기 목소리가 막혔다. 그는 기를 운행시켜 말을 계속하려고 했으나 가슴이 꽉 조여오면서 아무리 말을 하려해도 말이 입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는 우측손으로 가슴을 누르고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혈압을 내리려고 하였다. 단지 머리가 혼미해지고 햇빛이 눈에 부셨다.

영호충은 만취하여 봉우리를 내려와 밤중이 되어서야 술이 깨었다. 술이 깨자, 비로소 자기가 들판에 있고 항산의 여러 제자들을 멀리서 자기를 지켜 보고 있음을 알았다.
영호충은 머리가 빠개지도록 아팠다. 이제부터 영영과 다시는 만날 기약이 없읍을 알고 자기도 모르게 가슴이 메어져 왔다.
일행은 항산 견성봉에 이르러 정한, 정정, 정일 사태의 영위 앞에 이제 복수를 다했음을 아뢰는 제사를 지냈다. 모든 사람들은 일월교가 조만간 공격하리라는 것과 만약 싸움을 하게 되면 항산파는 틀림없이 전멸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어차피 승부는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가지고 그 누구도 근심을 하지 않았다.
전백광, 의림, 불계부부 등 네사람은 화산 아래서 만나 함께 항산에 들어왔다.
항산파 사람들은 모두 일월교가 공격해 올 때까지 최선을 다해 무공을 연마한다 해도 단지 몇명의 일월교 교중들을 더 죽일 뿐이지 대세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여기고 있어서 아예 검술 연마조차도 포기하고 있었다. 건실한 사람들은 그들 나름대로 날마다 경문을 외고 있었지만 그 나머지 사람들은 진탕 놀고 있었다.
항산파는 원래 계율이 엄격하여 아침에는 공부를 하고 저녁에는 경을 읽으면서 태만한 것을 엄격히 배격했으나 이 며칠 동안은 퍽이나 자유로운 생활을 누렸다. 이렇게 며칠을 지내고 있는데 견성봉에 열명의 스님이 찾아왔다. 앞에오는 자는 바로 소림사의 방장인 방증대사였다. 영호충은 이때 암자에서 자작을 하면서 탁자를 두드리고 노래를 부르며 흥이 나 있었는데 갑자기 방증대사가 온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라 급히 나가서 맞이했다.
방증대사는 그가 너무나 당황하여 벌겋게 주기 띤 얼굴을 한 채 신발도 신지 않고 달려 나오고 있는 것을 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옛사람들은 신발을 거꾸로 신고 반가운 손님을 맞이했어도 양말을 신고 맞이하지는 않았읍니다. 영호 장문께서 이렇듯 신발도 신지 않고 우리를 환대해 주시니 감격했소이다.]

영호충은 고개를 숙여 절을 하며 말했다.

[방증대사님이 오신다는데 멀리 마중도 못가고 실로 죄송하기 짝이 없읍니다. 방생대사님도 같이 오셨군요.]

방생은 잔잔히 웃었다.
영호충은 그 나머지 여덟명의 스님들 모두가 백발이 성성한 노승들인 것을 보고는 그들의 법호(法號)를 물어보았다.
그들은 모두 소림사의 방자(方字)돌림을 가진 고승들이었다. 영호충은 여러 스님들을 암자로 맞이하여 방석 위에 앉도록 권하였다.
이 암자는 본시 정한사태가 거처했던 곳으로서 예전에는 티끌하나 없이 깨끗한 장소였다. 그러나 영호충이 들어와 입거를 한 후로 온통 방안은 술단지와 술잔으로 엉망진창이 되었다.
영호충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제가 이렇듯 분별이 없읍니다. 여러 대사께서는 너무 책망하지 마십시오.]

방증대사는 웃으면서 말했다.

[노승이 오늘 항산을 방문한 것은 어떤 일을 같이 상의하고자 함이니 영호 장문께서는 그리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읍니다.]
한참 멈추더니 다시 말했다.

[듣건데 영호 장문께서는 항산일파를 지키기 위해서 일월신교의 부교주 자리를 거절하셨다고요. 그것은 자기의 생명을 버리고 더우기 자기 몸처럼 소중하게 아끼던 임소저와 기꺼이 헤어지겠다는 것인데 실로 어려운 결심을 영호장문께서는 하신 것이오. 무림의 동료들은 이 일에 대해 모두 흠모하고 칭찬을 하고 있읍니다.]
영호충은 멈칫하였다. 그리고 내심 생각하였다.

(나는 항산일파 때문에 무림의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누를 끼치고 싶지 않아 이 일을 절대로 누설하지 말도록 각별히 지시하였다. 만약 이 사실이 누설되어 소림, 무당 여러파 사람들이 구원하러 온다면 이사람들 모두 많은 피해를 입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뜻밖에 방증대사께서 직접 그 소식을 들어구나.)

그래서 말했다.

[아닙니다. 이것은 전정 대사님의 과분한 칭찬이십니다. 저와 일월교의 임교주 사이에는 많은 사연이 있읍니다. 그것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겠읍니까? 또한 임소저에게는 이제까지 많은 은혜를 입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읍니다. 대사님께서는 이 몸을 책망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칭찬을 하시니 이몸은 몸둘바를 모르겠읍니다.]

방증대사는 말했다.

[임교주는 부하들을 이끌고 이곳에 와서 피비린내나는 싸움을 할 것입니다. 오늘에 와서 숭산, 태산, 화산, 형산 네파는 이미 그 존재가 미약한 터라 항산일파를 도와줄 자는 그 누구도 없는 실정입니다. 그런데 영호 장문께서는 사람을 파견하여 우리들에게 한마디 소식도 전하지 않으셨으니 대체 우리들을 어찌 보고 그러십니까? 혹시 소림파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 하고 무림의 의리를 돌보지 않는 그런 사람들이라고 영호장문께선 여기는 것이 아닙니까?]
영호충은 벌떡 일어나서 말했다.

[절대로 그런 생각을 한 적은 없읍니다. 제가 일찍 깨달음이 모자라 일월교의 수뇌에 속하는 사람들과 사귀었기 때문에 이제 와서 많은 화를 불러일으킨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저 때문에 일어난 일이고 혼자 저지른 일은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데 이미 항산파까지 연류되어 버렸읍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읍니다. 그 어찌 대사님과 충허도장에게까지 폐를 끼칠 수 있겠읍니까? 만약 소림, 무당 두파가 의리를 내세워 구원을 하러 오신다면 그것은 많은 인명의 손실만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죽어간다면 제가 그 죄를 어지 감당할 수가 있읍니까?]

방증은 잔잔히 웃더니 말했다.

[영호장문인께서는 사실을 모르고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마교는 우리 소림, 무당 그리고 오악검파를 궤멸시키려고 백여년 전부터 이미 저들의 음모를 꾸미고 있었읍니다. 그때는 소승 또한 이 세상에 나오기 전인데 어찌하여 영호 장문께서만 상관이 있는 일이겠읍니까?]

영호충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의 사부께서는 자고로 정과 사는 양립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마교와 우리 정교의 각파들은 계속해서싸움을 해왔고 그 원하 또한 매우 깊은 것이라고 저에게 가르쳐 주셨읍니다. 저의 얕은 소견은 쌍방이 각각 양보를 하면 풀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읍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임교주와 저하고는 상당한 인연을 맺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결국은 이렇게 칼과 칼로 결말을 내야 하는군요.]

방증은 말했다.

[쌍방이 각각 한치씩 양보를 한다면 풀어질 수 있다는 말은 백번 맞는 말입니다. 일월교와 우리 정교의 각 파는 수년 동안 싸움을 해왔는데 사실 그렇게 싸워야할 분명한 이유는 없었읍니다. 단지 쌍방의 우두머리를 모두가 무림을 독점하고 상대방을 궤멸시키려는 마음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날 소승과 충허도장, 영호장문 세 사람이 현공사에서 숭산의 좌장문이 오악검파를 하나로 묶는 계획에 대해 심히 걱정하고 있었읍니다. 그러나 우리가 걱정을 한 것은 오악검파가 하나로 묶어진다는 사실이 아니라 바로 무림을 독점하려는 그런 그의 야심을 걱정했던 것이지요.]

말을 하면서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천천히 말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일월신교 안에서는 천추만재 일통강호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하는데 그들이 그런 마음을 품고 있는 이상 무림에 어찌 편안한 날이 있겠읍니까? 강호의 각파 각방은 모두 자기파의 종지에 따라서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읍니다. 일통강호가 된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지요.]

영호충은 깊이 그 말을 새겨듣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방장대사님이 말씀이 심히 옳습니다.]

방증은 말했다.

[한달 안으로 항산에 와서 쥐새끼 한마리 남기지 않고 죽여버린다고 임교주가 말한 이상 그는 그 말을 꼭 지킬 것이지 다시 번복하지는 않을 겁니다. 지금 소림, 무당, 곤륜, 아미, 공동 각파의 고수들이 이미 항산 아래에 운집해 있읍니다.]

영호충은 깜짝 놀라서 몸을 벌떡 일으켜 세우더니 말했다.

[진정, 그러한 일이 있읍니까? 선배 어른들께서 구원해 주러 오셨는데 저는 이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니요. 소인 죽어 마땅합니다.]

항산파 사람들은 마교가 공격을 해오면 그 누구도 살아 남을 자가 없으리라고 생각하고는 계획은 물론 방비조차도 하지 않고 있었고 산아래 있는 처소조차도 모두 철수했던 것이다.
영호충은 또 말하였다.

[여러 대사님께서는 이곳에서 잠시 쉬고 계십시오. 저는 급히 본문의 제자들을 이끌고 아래로 내려가서 그분들을 맞이하겠읍니다.]

방증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지금은 모두가 같은 처지이오. 손을 잡고 같이 적에 항거할 때입니다. 그런 예의는 지금 필요가 없읍니다. 우리들은 이미 모든 것의 안배를 끝냈읍니다.]

영호충은 대답을 하였다.

[녜.]

또 물어 보았다.

[그런데 방장대사님께서는 어떻게 일월교가 항산을 공격한다는 것을 알았읍니까?]

방증은 말했다.

[소승은 한분의 선배님의 서찰을 받고 비로소 알았읍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선배라니요.]

방증대사는 무림 중에서 서열이 극히 높기 때문에 그 어찌 다른 선배가 있을 수 있는가 하고 내심 생각하였다.
방증은 잔잔히 웃더니 말했다.

[이 선배는 바로 화산파의 명인이십니다. 그리고 영호장문에게는 검법을 가르쳐 준 분이지요.]

영호충은 크게 기뻐하여 외쳤다.

[풍태사숙(風太師叔)이시군요.]

방증대사는 말했다.

[바로 풍선배님올시다. 풍선배님은 여섯 분의 친구를소림사에 보내어 그날 조양봉에서 영호장문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모두 알려 주셨읍니다. 이 여섯친구들은 제각기 말이 분명치 않았고 약간은 꾸며대는 투였으며 또한 자기가 잘 났다고 다투느라 정신이 없었읍니다. 그러나 제가 인내심을 갖고 몇시간 동안 이들의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내용을 확연하게 알 수 있었지요.]

여기까지 말을 하자 참을 수가 없었던지 방증은 껄껄 하고 웃었다.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했다.

[그 사람들은 도곡육선들이지요?]

방증대사는 웃으면서 말했다.

[바로 도곡육선들이오.]

영호충은 기뻐서 말했다.

[제가 화산에 도착했을 때 풍태사숙님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려고 하였읍니다. 그러나 사건이 벌어지고 일이 여의치 않아 이곳으로 그냥 오게 되었지요. 그래서 결국 그 어르신을 찾아뵙지 못하고 인사도 드리지 못했읍니다. 그런데 그 어르신께서는 이미 모든 사실을 알고 계셨군요.]

방증은 말하였다.

[풍선배님의 행적은 마치 연기와 같아 아무도 볼 수가 없지요.
그러나 일월교가 화산에서 만행을 저지르고 있는데 화산에 깊이 은거하고 계신 그어르신께서 어찌 가만히 쳐담나 보면서 그들을 내버려 둘 수 있으셨겠읍니까? 마침 도곡육선들이 화산에서 못된 짓을 하여 풍사숙님에게 며칠동안 잡혀 있다가 나중에 풍사숙님 분부로 그들은 소림사로 서찰을 가지고 왔지요.]

영호충은 내심 생각을 하였다.

(도곡육선들은 풍태사숙님에게 잡혀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에는 틀림없이 숨기고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말 저런말 하다가 결국 자기들의 행적이 밝혀졌겠지.)

영호충은 말하였다.

[풍태사숙께서는 우리를 보고 어떻게 하라고 하셨는지요?]
방증은 말하였다.

[풍 노선배님의 말씀은 너무나 겸허하셨읍니다. 단지 그분은 이 일을 알고 나서 소승에게 전하신다고 하셨읍니다. 영호장문은 그 어르신께서 특히 아끼고 있는 제자이기 때문에 이번 조양봉에서 마교의 유혹을 뿌리친데 대해 그 어르신은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고 하셨읍니다. 또한 소승에게 영호장문을 잘 보살펴 주라고 하셨읍니다면 사실 영호장문인은 무공이 소승보다 한수 위인데 영호장문을 보살피라는 말은 그 어르신께서 이 소승을 너무나 높이 보신 겁니다.]

영호충은 내심 감격하여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방증대사님께서 저를 어찌 한 두번 보살펴 주셨읍니까?]
방증은 말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소승이 이 일은 알고 있는 이상 설사 풍선배님의 명령이 아니더라도 응당히 도와 드려야지요. 옛날부터 친분을 맺어온 소림과 항산 두 파의 내력을 봐서도 그렇고 영호장문과 소승의 교분으로 봐서도 절대로 수수방관할 수만은 없는 일입니다. 이 일은 또한 각파의 생사존망과 직결된 일입니다. 마교가 항산을 궤멸한 후 그 어찌 소림, 무당 등 각파를가만히 놔두겠읍니까? 그래서 즉시 서찰을 보내어 각 파에게 이 일을 통지했고 모두 화산에 모이도록 했읍니다. 우리는 함께 힘을 합쳐 마교와 대항할 것입니다.]

영호충은 화산의 조양봉에서 항산으로 온 그날 이후로 이미 낙심이 되어 의기가 소침하여 있었다. 두 눈으로 일월교의 기세를 똑똑히 보았으므로 항산파는 결코 그들의 적수가 되지 못하리라 단정하였다. 단지 임아행이 공격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항산파의 모든 사람들이 있는 힘을 다해 싸우다가 모두 같이 죽으면 그만이라고 생각을 하였다.
그나마 어떤 자가 소림, 무당, 여러파에게 구원을 요청하자는 제안을 했지만 영호충은 '설사 소림 무당 두 파가 일제히 우리를 구하러 온다손치더라도 마교에 대항할 수 없은 것이다'라고 그 제안을 일축하여 그 방법을 건의한 자는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영호충은 또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항산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이상 소림무당의 많은 사람들까지 피해를 입힐 필요가 있겠는가.'
그는 마음속으로 임아행, 상문천 등과 싸움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싸움을 하게 된다면 그들과원수지간이 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영여과의 관계는 이것으가 영원히 끝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자포자기하게 되고 세상살이가 무의미해졌으며 극단적으로는 일찌감치 죽는게 낫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에 이르러 방증 등 일행이 풍청양의 부탁을 받고 모두들 도와주러 오자 마음이 크게 진작되었다. 그러나 정말로 일월신교의 사람들과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 그리 마음이 가지 않았다.
방증은 또 말하였다.

[영호 장문, 출가한 사람들은 자비로움을 그 목표로 삼고 있읍니다. 소승은 절대로 싸움을 좋아하는 무리는 아닙니다. 이 일이 마무리가 잘 된다면 그 이상 좋을 것이 없겠지요. 다시 말해서 우리가 한발짝 양보하고 임교주가 한발짝 양보한다면 말입니다. 문제는 결코 우리가 한발짝 양보하려 하지 않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임교주가 우리 정교의 각 파를 궤멸하려고 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 모두는 그에게 절을 하고 큰 소리로 성교주님이 천추만재하시고 일통강호하십니다 라고 높이 외치는 길 밖에 없읍니다. 아미타불.]

방증이 성교주님이 천추만재하시고 일통강호하십니다 라는 말끝에 아미타불이라는 말을 붙이자 매우 우스웠다.
영호충은 자기도 모르게 웃고는 말했다.

[그렇습니다. 저도 성교 무슨 성교주라든가 또는 천추만재하시고 일통강호한다 라는 말을 들으면 온몸이 근질근질하고 메스꺼워 견딜 수가 없읍니다. 저는 몇단지의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으나 그 무슨 천추만재하시고 일통강호한다 라는 말만 들으면 머리가 아주 어지러워지고 금방이라도 취해서 쓰러질 것 같습니다.]
방증대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들 일월교의 저주받은 말은 정말 듣기도 싫소이다.]
잠시 멈췄다가 도 말했다.

[풍선배께서는 조양봉에서 영호 장문인이 고통받는 장면을 목겨하시고 특별히 도곡육선편으로 내공의 구결(口訣)의 한편을 보내왔읍니다. 소승더러 영호 장문에게 전해 주라고 하시면서요. 도곡육선들의 말투는 너무나 얼토당치 않지만 입으로 전하는 내공의 비결은 퍽이나 조리가 있고 분명했읍니다. 그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인데 풍선배님께서는 그들 여섯형제에게 숙달되게 외우라고 진정 어떤 방법을 쓰신 것 같습니다. 자, 영호 장문께서는 길을 인도하십시오. 내당에 가서 구결을 전수해 드리겠읍니다.]

영호충은 공손히 방증대사를 모시고 조용한 실내로 들어갔다. 이것은 풍청양이 방중대사에게 명하여 대신 전해주는 구결이었지만 마치 태사부님이 눈 앞에 있는 듯하였다.
즉시 방증을 향해서 무릎을 꿇고 말했다.

[풍태사숙님의 은혜는 산과 같습니다.]

방증도 매우 겸양을 하여 그의 예를 받더니 말을 했다.

[풍선배님께서는 영호 장문인에 대한 기대가 매우 크십니다. 구결대로 열심히 연마를 하시기 바랍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녜, 제자는 그 며에 따르겠읍니다.]

즉시 방증은 구결을 한마디 한마디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영호충은 온갖 정성을 다하여 암송을 하였다.
이 구결은 그리 길지가 않았다. 앞 뒤가 한 천여자 정도 되었는데 방증은 한번 일고 영호충에게 마음속으로 깊이 암기하라고 하였다. 또 한참 지나자 한번 더 읽어주었다. 앞 뒤 해서 모두 다섯번을 읽으니 영호충은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외웠고 하나도 틀린 데가 없었다.
방증은 말했다.

[풍선배님이 전한 이 내공의 심법(心法)은 비록 천여 자에 불과 하지만 그 속에는 오묘한 이치가 담겨져 있읍니다. 이곳에는 우리 둘 만이 있으니 소승이 한마디 충고를 하겠읍니다. 영호 장문인은 검술은 정묘하나 내공은 아직 경지에 이르지 못하였읍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저의 내공은 빈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대사님은 저버리지 마시고 제게 많은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

방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풍선배님의 이 내공 심법은 소림파의 내공과는 퍽이나 다릅니다. 그러나 천하의 무공은 모두가 하나로 귀속되고 그 가운데 근본 요지는 그리 큰 차이가 없읍니다. 영호 장문인께서 거절하지 않는다면 소승이 해석을 해 드리겠읍니다.]

영호충은 그가 현존 무림의 첫째 둘째 가는 고인임을 알고 있었다. 그의 가르침은 풍태사숙이 친히 전수해 준 것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풍태사숙이 그를 대신해서 전수하게 한 것은 물론 그의 내공이 정묘하고 깊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깊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저는 기꺼이 대사님의 가르침을 받겠읍니다.]

방증은 말했다.

[그렇게 승낙을 해주니 고맙소이다.]

즉시 그 내공심법에 관해서 한마디 한마디 해석을 하고 분석을 해주었다. 또한 여러가지의 호흡, 운기, 토납, 반운(呼吸, 運氣, 吐納, 搬運)의 방법을 자세히 가르쳐 주었다. 영호충은 그 구결을 외울 때 억지로 외웠으나 방증대사가 이렇게 해석을 해주고 이해를 드와주자 비로소 구결중에는 무수히 정묘한 이치가 포함되어 있음을 알았다.
영호충은 깨달음이 워낙 빠른 사람이었으나 이 내공의 정묘함은 그가 한참 동안 생각을 해야만 했다. 다행히 방증대사가 이렇게까지 설명해 주자 그는 금새 무학중에 지금까지 깨닫지 못한 또 다른 경지를 보았던 것이다.
그는 탄식을 하며 말했다.

[저는 몇년 동안 강호에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설치고 다녔읍니다. 그것은 실로 자기자신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지금에 와서 그런 것을 생각하니 낯이 뜨거울 따름입니다. 비록 제가 오래 살 수 없어서 풍태사숙이 전해 주시는 정묘한 내공의 이치를 다 깨우칠 수 없다 하더라도 음 거 뭐였드라 아침에 큰 이치를 들으면 설사 저녁에 죽는다 해도 여한이 없다는 옛 사람들의 말이 있지 않습니까? 제 말이 맞지 않습니까?]

방증이 말했다.

[공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침에 도를 깨우치고 저녁에 죽는다 할지라도 아무런 여한이 없다 하셨지요.]

영호충은 말했다.

[맞습니다. 바로 그 말입니다. 저는 그 말을 사부님께 들은 적이 있읍니다. 오늘 태사부님의 가르침을 받고 마치 봉사가 눈을 뜬 양 광명천지를 보는 듯하여 제 마음속에는 기쁨으로 가득 차 있읍니다.]

방증은 말했다.

[우리 정교 각 파는 이미 항산 부근에 운집해 있고 각처 요로를 지키고 있읍니다. 마교가 공격해 온다 하더라도 우리가 모두 합심하여 막으면 반드시 진다고 할 수는 없읍니다. 영호 장문께서는 어찌 그리 소심하십니까? 이 내공의 심법은 한 두해 연마해서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루를 연마하면 그만큼 보탬이 되고 한시간을 연마하면 한시간 연마한 만큼 잇점이 있는 것이지요. 앞으로 며칠 동안은 아무 일이 없으테니 영호 장문인께서는 연마에만 정진하십시오. 제가 이곳에 함께 있는 동안 같이 연마를 하고 연구를 해 봅시다.]

영호충은 말했다.

[대사님의 정성에 저는 실로 감격하고 감동을 했읍니다.]
방증은 말했다.

[아마 지금쯤 충허도인께서는 오셨을 것이오. 우리 나가서 살펴보는 게 어떻겠소?]

영호충은 급히 일어나며 말했다.

[충허도장께서도 오셨군요. 제가 너무 태만했읍니다.]
즉시 방증대사와 영호충은 외당(外堂)으로 나왔다. 불당 안에는 이미 촛불이 켜져 있었다. 두 사람이 내공을 전수하고 전수받는 동안 이미 날이 저물었던 것이다.

세명의 도인이 방석에 앉아서 방생대사 등과 말을 나누는 것이 보였다. 그 중에 한 사람이 충허도인이었다. 세 도인은 방증과 영호충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일제히 일어났다.
영호충은 인사를 하며 말했다.

[항산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아시고 여러 도장께서 천리를 멀다 않으시고 이렇게 찾아주시니 항산의 모든 사람들은 실로 어찌 다 보답을 해야할지 모르겠읍니다.]

충허동인은 즉시 몸을 바로 세우더니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이곳에 일찌감치 왔읍니다. 방증대사께서 동생에게 내싱에서 내공의 정묘함을 전수해 주는 것을 알고 미리 알리지 않았읍니다. 동생은 내공의 정묘함을 배워서 임아행이 올라오면 그에게 한번 본 때를 보여주어야 하오.]

영호충은 말했다.

[이 내공의 심법은 그 경지가 오묘하고 대단하지라 며칠동안에 어찌 제가 그 어려운 것을 배울 수가 있겠읍니까? 듣건데 아미, 곤륜, 공도 여러 파의 선배님들도 오셨다는데 응당 이곳으로 모셔와서 함께 상의를 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여러 선배님들의 의향은 어떠신지요.]

충허는 말을 했다.

[마교의 염탐꾼들에게 그들이 숨어 있는 곳이 발각될까봐 그들은 지금 매우 은밀한 곳에 숨어 있읍니다. 만약 산을 오르게 한다면 아마 비밀이 새어 나갈지도 모르지요. 우리가 산에 올라올 때도 모두가 변장을 했었읍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찌 귀파의 제자들이 먼저 통조를 하지 않았겠읍니까?]

영호충은 맨처음 충허도인을 만났을 때 그가 나귀를 타는 노인으로 변장을 하였고 또 다른 두 명의 사내가 따르고 있었으므로 사실 모두 무당파의 고수들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이때 자세히 두분의 도인을 보니 그 옛날 호북(湖北)의 길에서 자기와 검시합을 한 두 명의 사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고개를 숙여 웃으면서 말했다.

[두 분 도장의 변장술은 정말로 기가 막힙니다. 만약 충허도장께서 말씀해 주시지 않았다면 저는 정말 짐작도 못했을 것입니다.]
다른 두 늙은 도인은 그때 시골농부로 변장하고 있었다. 한사람은 땔나무를 짊어지고 있었고, 또 한사람은 배추를 짊어지고 있었는데 매우 숨을 헐떡거려 마치 몸에 병이 있는 듯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두 사람 모두 정신이 멀쩡하고 건장해 보였다. 단지 다시 한번 살펴보니 그때의 눈의 형태만 희미하게 기억났다.
충허는 그 댈나무를 짊어진 사내로 분장했던 사람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분이 바로 청허(淸虛) 사제입니다.]

그때 배추를 가지고 있었던 사내를 가리키며 또 말했다.

[이분은 바로 나의 사질입니다. 도호는 성고(成高)라고 합니다.]

네사람은 서로 마주보며 껄껄 웃었다. 청허와 성고는 모두 말했다.

[영호 장문인의 검술은 매우 고명하십니다.]

영호충은 겸양을 하며 연신 말을 했다.

[그때는 정말 죄송했읍니다. 죄송했읍니다.]

충허는 말했다.

[나의 사제와 사질은 검술에는 정통하지 못하나 젊었을 때 그들은 서역(西域)에서 한 십여년 동안 살았던 적이 있읍니다. 그때 서역에 살면서 특별한 기술을 배웠는데 한분은 매복시키는 기술이 뛰어나고 또 한분은 폭약을 매우 잘 다루지요.]

영호충은 말했다.

[이 세상에서 보기 드문 기술입니다.]

충허는 말했다.

[영호 형제, 내가 그들 두 사람을 데리고 온 것은 다른 의도가 있어서입니다. 그들 두 사람은 우리들에게 중대한 일을 해줄 것입니다.]

영호충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물어보기를, [중대한 일이라니요?]

충허는 말했다.

[노도는 실례를 무릅쓰고 한 가지 물건을 이곳에 가지고 왔읍니다. 영호 형제는 한번 보시겠소?]

원래 충허도인은 성격이 소탈했고 방증대사보다 구김살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영호충을 영호 형제라고 허물없이 불렀는데 반면 방증대사는 영호 장문이라고 불렀다.
영호충은 퍽이나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그가 품속에서 도대체 어떤 물건을 꺼내나 쳐다보고 있었다.

[이 물건은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작으나 실로 많은 것을 담을 수가 있지요. 청허사제, 당신이 그들에게 가지고 들어오라고 하시오.]

청허는 대답을 하고 나갔다. 금방 네명의 시골농부 차림을 한 사내를 데리고 들어왔는데 그들은 모두 맨발이었고 모두가 배추를 짊어지고 있었다.
청허는 말했다.

[영호장문인과 방증대사에게 인사를 드리시오.]

네명의 사내는 일제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였다. 그들은 틀리없이 무당에서의 신분이 그리 낮지 않은 사람들일 것이라고 영호충은 짐작했다. 그래서 즉시 공손하게 예로써 대하였다.
청허는 말했다.

[이제 그 물건을 꺼내서 조립하시오.]

네명의 사내가 짊어지고 온 배추와 무우를 걷어내니 그 안에서 몇개의 보따리가 나왔다. 보따리를 풀자 거기에는 나뭇조각, 쇳조각, 나사못, 대나무 조각들이 들어 있었다. 네명의 행동은 극히 민첩하였다. 이 몇개의 물건들을 서로 조합하고 꾸미더니 순식간에 한개의 태사의자(太師椅子)를 만들어 내었다.
영호충은 매우 이상해서 깊이 생각하였다.

(이 태사의자에는 많은 비밀장치가 부착되어 있는데 무슨 용도가 있는지 모르겠구나. 설마 하니 내공을 수련하는데 쓰이는 것은 아니겠지.)

의자가 만들어진 후 네명은 두 개의 보따리에서 의자를 덮는 덮개를 꺼내어 태사의자 위에다 내려놓았다. 어둠침침한 실내에 갑자기 광채가 번쩍거렸다. 그 태사의자를 덮는 덮개는 담황색의 비단으로 만들어졌는데 금황색의 비단실로 아홉마리의 금룡(金龍)이 수놓아져 있었고, 이 금룡은 막 바다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들고 있었다. 좌측에는 중흥성교 택피창생(中興聖敎澤被蒼生)의 여덟 글자가 수놓아져 있고, 우측에는 천추만재 일통강호(千秋萬載一統江湖)가 써 있었다. 아홉 마리의 용은 마치 살아 있는 듯했으며 이 열여섯 글자들은 모두가 은색으로 수놓아져 있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황홀하게 하여 탐이 날 정도였따. 글자의 주위에는 많은 명주, 금강석과 많은 비취보석들이 꽂혀 있었다. 누추한 작은 암자에 갑자기 보석의 빛이 가득찼다.
영호충은 박수를 치며 갈채를 보냈다. 조금 전에 청허가 서역에서 기계장치에 대해 배웠다고 한 말이 생각 나 물어봤다.

[임교주가 이 의자를 보면 반드시 앉지 않고는 못배길 겁니다.
임교주가 이 의자에 앉으면 의자의 장치가 발동되어 그의 생명은 사라져 버리겠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충허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

[임아행은 임기웅변에 능하고 행동 또한 번개처럼 빠릅니다. 의자에 비록 기계장치가 되어 있지만 그가 조금이라도 이상한 것을 느낀다면 즉시 몸을 날릴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를 없앨 수가 없읍니다. 이 의자의 다리에는 어떤 장치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 장치는 폭약을 건드리게 되어 있읍니다.]

이 말이 나오자 영호충과 방증대사의 얼굴색이 순식간에 변하였다.
방증은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나무아미타불!]

충허는 또 말했다.

[이 장치의 장점은 잠시 이 의자에 앉아 있는다면 누구든지 아무탈 없이 앉을 수 있읍니다. 즉 이 의자는 차 한잔 마실 시간을 앉아 있어야만이 비로소 폭약이 터지게 되어 있읍니다. 임아행은 의심이 많고 또한 세밀한 사람이므로 항산 견성봉에 이러한 의자가 있는 것을 보면 틀림없이 곧바로 앉지는 않을 것입니다. 틀림없이 부하들에게 먼저 앉아 보라고 할 것입니다. 이 의자에는 금룡이 하늘을 떠받들고 있고, 또 천추만재 일통강호라는 글자가 써 있으므로 마교의 두목은 그 누구도 오래 앉아 있게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일단 한번 앉기만 하면 틀림없이 내려오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도장의 생각은 정말 용의주도하십니다.]

충허도장은 말했다.

[청허사제는 또 다른 계획이 있읍니다. 만약 임아행이 곧바로 앉지 않고 사람들에게 의자의 덮개나 방석을 내려놓으라고 하거나 심지어 의자를 일일이 뜯어보려고 한다면 그때를 대비하여 의자를 풀기만 해도 똑같이 장치가 작동되게 해 두었읍니다. 성고 사질이 이번에 여기에 가져온 것은 총 이만근의 폭약입니다. 이곳의 아름다운 경치를 어쩌면 다시는 보지 못할지도 모르지요.]

영호충은 내심 가슴이 철렁하였다. 깊이 생각하기를, (이만근의 폭약이라. 이 많은 폭약이 폭발을 하면 옥석을 가릴 것 없이모두 죽는 것이다. 임교주 뿐만 아니라 영영과 상형님도 죽음을 면치 못하겠구나.)

충허는 그의 안색이 어둡게 변하는 것을 보자 말을 했다.

[마교는 공공연하게 항산파의 모든 사람들을 죽이고 항산파를 멸한 다음에 또 다시 우리 소림, 무당을 공격하여 무림에서의 화근을 뽑아버리겠다고 하였읍니다. 우리가 이런 계획을 짜내어 임아행을 상대하는 것은 조금 자니친 처사라고 할 수 있으나 이번 기회에 마교의 괴수를 제거하여 무림 수천만의 생명을 구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읍니까.]

방증대사는 합장을 하며 말했다.

[아미타불, 우리는 자비로움을 가지고 중생을 구하고 또한 벽사항마(酸邪降魔)를 해야합니다. 한 사람을 죽여서 수천 사람을 구할 수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대자대비의 뜻입니다.]

그가 이 말을 할 때의 얼굴 표정은 장엄했으며 모든 스님들은 일제히 일어나 합장하면서 말했다.

[방장대사의 말씀이 심히 옳습니다.]

영호충도 방증의 말이 맞는 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일월신교가 항산파를 씨도 남기지 않고 없애려고 하기 때문에 정교의 각 파는 자연히 임아행을 죽이려고 계획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분명한 이치이고 그 누구도 그 말에 반대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영호충은 임아행을 죽이는 것을 내심 원하지 않았고, 상문천을 죽이는 것 또한 차라리 자기가 죽을망정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영영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는 오히려 아무런 고통이 없었다. 어차피 두 사람이 함께 살고 함게 죽기로 맹세한 이상 그것 때문에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여러 사람이 자기를 쳐다보고 있는 것을 알고는 약간 주저하더니 말했다.

[일은 이미 시작되었읍니다. 일월신교가 우리들을 꼼짝달싹 못하도록 했으니 어쩔 수가 없지요. 충허도장의 계획은 어떤 면에서는 이쪽의 인명피해를 최소한 줄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인 것 같습니다.]

충허도인은 말했다.

[영호 형제의 말씀이 맞는 말이오. 인명피해를 최대한 줄이려는게 우리들이 바라는 바입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저는 견문이 얕고 아는 것이 없으니 오늘부터 항산의 일은 방증대사와 충허도장께서 맡아서 해 주십시오. 단지 저는 본파의 제자들을 이끌고 함께 도울 것입니다.]

충허는 웃으면서 말했다.

[절대 그럴 수는 없으빈다. 당신이 항산의 주인인데 나와 방증대사가 어찌 주인의 자리를 빼앗을 수 있읍니까?]

영호충은 말했다.

[영호 장문의 뜻이 그러하니 도형께서는 그리 사양하지 마시오.
지금의 대사는 우리 세 사람이 함께 수행해야 합니다. 도형께서는 명령을 내리고 우리들이 거기에 호응하는 것으로 합시다.]
충허는 몇번이고 사양하다가 대답을 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항산에 오르는 각 길목에 우리는 이미 매복하고 있읍니다. 마교가 이곳에 공격해 오면 사전에 우리는 알 수가 있읍니다. 그날 영호 형제가 군웅들을 이끌고 소림사에 왔을 때 우리들은 좌랭선의 계략에 따라 공성계(空城計)를 썼었지요......]

영호충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말했다.

[그때는 제가 너무나 모르고 섣불리 행동을 했었읍니다. 정말로 죄송하기 짝이 없읍니다.]

충허는 웃으면서 말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군요. 우리들은 다시 공성계를 쓸 수는 없을 것입니다. 틀림없이 임아행이 의심을 할 테니까요. 저의 소견으로는 항산파는 모두 산에서 방어를 하고 소림과 무당 두 파는 각각 수십명을 선출하여 파견하는 걸로 합시다. 마교의 사람들이 공격해 오는 것을 알면서 소림과 무당 두 파가 만약 누구도 사람을 파견하여 구하러 오지 않는다는 것은 일반적인 논리를 벗어나는 일입니다. 그렇게 되면 임아행 이 교활한 자는 틀림없이 우리의 계획을 알아차릴 것입니다.]

방증과 영호충은 모두 말을 했다.

[바로 그렇습니다.]

충허는 말했다.

[그 나머지 곤륜, 아미, 공동 등 여러 파는 모습을 노출시킬 필요가 없고 모두들 산동굴에 매복을 하고 있어야 합니다. 마교가 공격을 해오면 항산, 소림, 무당 삼파의 사람들은 있는 힘을 다하여 대항해야 하고 반드시 진짜로 싸우는 것처럼 보여야 합니다. 우리 삼파의 고수들은 모두가 일류 고수여야 합니다. 상대방을 많이 죽일수록 좋고 우리들은 될 수 있는대로 손해를 피해야 합니다.]
방증은 탄식하며 말했다.

[마교의 고수들은 마치 구름과 같은 무사들인데 이번에 틀림없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쳐들어 올 것입니다. 이번 싸움은 틀림없이 쌍방에 많은 사상자를 낼 것이오.]

충허는 말했다.

[우리들은 몇군데 깎아지른 절벽에다 밧줄과 사닥다리를 설치 할 것입니다. 한참 싸움을 하고 있을 때 우리가 질 것 같으면 하나하나 그 밧줄과 사닥다리를 타고 내려가서 적이 더이상 뒤쫓아 오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임아행은 승리를 한 후에 다시 이 의자를 보면 매우 의기양양하게 앉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폭약은 폭팔하게 됩니다. 임아행이 아무리 크나큰 재주가 있다 하더라도 틀림없이 그 화를 면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어서 항산의 산길에 서른 두군데의 지뢰(地雷)를 설치하여 동시에 폭파하면 마교의 교중들은 그 누구도 산아래로 내려오지는 못할 것입니다.]

영호충은 이상해서 물어보았다.

[서른 두군데의 지뢰라니요?]

충허는 말하였다.

[바로 그렇습니다. 성고사질은 내일 아침 일찍 산에 오르는 여덟 개의 길목에다 제일 위험한 네개 장소를 선택하여 강력한 지뢰를 묻을 것입니다. 지뢰가 폭발하면 산에 올라가 든 내려가든 그 길이 완전히 끊기게 됩니다. 만약 마교의 교중들 만명이 산에 오른다면 만명 모두가 굶어 죽을 것이고 이만명이 산에 오르면 이만명 모두가 굶어 죽을 것입니다. 우리가 배운 것은 좌랭선이 옛날에 쓰던 그런 계략입니다. 그러나 이번엔 절대로 그들이 지하갱도를 통해서 바깥으로 빠져나올 수는 없읍니다.]

영호충은 말하였다.

[그때 소림사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지하갱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무엇인가 생각이 나서 억하고 소리를 질렀다.
충허는 물어보았다.

[영호형제 우리들의 계획에 잘못된 점이 있읍니까?]

영호충은 말했다.

[저의 생각으로는 임교주가 항산에 와서 그 의자를 보면 틀림없이 매우 기뻐하기는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의심할 것입니다.
어째서 항산파가 이러한 의자를 만들었으며 또한 천추만재일통강호라는 여덟 글자를 수놓았는가 하고요. 일을 잘 처리해 놓지 않으면 그는 틀림없이 우리 계획에 말려들지 않을 것입니다.]

충허는 말했다.

[그 점은 나도 생각을 해 보았읍니다. 사실 임교주가 그 의자에 앉고 안 앉고는 그리 중요하지 않읍니다. 그가 굳이 의자에 앉지 않더라도 우리는 암암리에 다른 폭약을 장치할 것이고 똑같이 이 폭약들은 터질 것입니다. 단지 그가 의기양양하게 천추만재 일통 강호 어쩌고할 때 죽음을 당한다면 그것으로서 충분히 무림에서 이야기 거리가 되겠지요?]

영호충은 고개를 그덕이며 말했다.

[그렇군요.]

성고도인은 말했다.

[사숙님 저에게 생각이 하나 있는데 들어 보시렵니까?]
충허는 웃으면서 말했다.

[자네가 직접 방장대사님과 영호 장문인에게 말씀드려 가르침을 받게나.]

성고는 말했다.

[소인은 영호 장문인과 임교주의 따님께서는 예전부터 혼인약속이 되어 있었는데 정과 사는 같은 길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에 포기 했다는 소문을 들었읍니다.만약 영호 장문인께서 두 명의 항산제자를 임교주에게 파견하여 임소저와의 관계 때문에 손재주가 좋은 목수를 시켜 특별히 이 의자를 만들어 교주에게 선물하는 것이니 이제 두 집안이 휴전을 하고 화기를 되찾았으면 한다고 하면 어떻겠읍니까? 임교주가 대답을 하든 안 하든간에 그가 항산에 와서 그 의자를 보면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충허는 박수를 치고 웃으면서 말했다.

[정말로 묘안이네. 첫째로는......]

영호충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안 됩니다.]

충허는 멈칫하고 이미 그방법이 채택되지 못할 것을 알았다. 그래서 물어보기를, [영호형제는 어떤 고견을 갖고 계신가?]

영호충은 말했다.

[임교주가 우리 항산의 모든 사람들을 죽인다고 한 이상 나는 있는 힘을 다해서 막을 것이고 우리가 가진 지혜로 정정당당하게 맞서 싸울 것입니다. 그가 그곳에 온다면 우리는 그를 죽이면 그만인 것입니다. 절대로 거짓을 꾸며 이기고 싶지는 않습니다.]
충허는 말했다.

[좋소이다. 옳은 생각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합시다. 임아행이 의심을 품든 품지 않든 그가 항산에 와서사람들에게 못된 짓을 하면 그때 가서 본때를 보여줍시다.]

모든 사람들은 즉시 적을 맞아 싸울 방법을 논의하였다. 어떻게 적과 대항하고 어떻게 엄호를 하고 어떻게 퇴각을 하고 어떻게 폭약을 장치하며 어떻게 지뢰를 묻는가에 대해 하나하나씩 서로 상의 하였다.
충허는 매우 조심스런 사람이라 적이 공격할 때 폭약을 맡은 책임자가 만에 하나 어떤 변고가 일어날 때를 대비해 또 다른 조수를 정해 두었다.
다음날 아침 영호충의 인도하에 여러 사람들은 여러 곳을 두루 살피며 지형을 관찰하였다. 청허와 성고 두 사람은 폭약을 묻고 폭약을 폭파시키는 장치와 지뢰를 묻을 곳을 선정하여 각각 작업에 들어갔다. 충허와 영호충은 아주 험한 장소를 네곳 선정하여 퇴각의 길로 삼았다.
방증, 충허, 영호충, 방생 네 사람은 각기 한곳씩 맡아 지켜 적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고 적과 마주 싸우는 사람들이 모두 밧줄과 사닥다리를 타고 깊은 계곡으로 퇴각을 하면 이 네 사람이 최후로 계곡으로 퇴각을 하여 마지막으로 검을 휘둘러 끈을 자르고 사닥다리를 끊어 더이상 적이 추격해 오지 못하도록 작전을 짰다.
그날 오후 무당파 중에 열 사람이 시골농부와 나무꾼으로 변장하여 산을 오르는 길목을 정하여 청허와 성고의 지시로 폭약을 장치하였다. 항산파의 여제자들은 각 처의 산 입구를 지켜 자기들과 상관없는 사람들의 접근을 막아 일월교가 밀정을 파견해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하였다.
이렇게 삼일동안 바삐 움직이자 모든 것이 예정대로 진행되어 갔다. 그래서 조용히 일월교가 대거 진격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날짜를 계산해 보니 임아행이 조양봉에서 각 파의 사람들을 모이라고 한 날부터 한달이 가까왔다. 그는 자기가 한 말은 틀림없이 실펀을 하는 사람이므로 절대로 기한을 넘기지는 않을 것이다. 며칠동안 충허, 성고 등 사람들은 바빴으나 영호충은 오히려 편안하였다. 날마다 묵묵히 방증이 전해준 내공의 구결을 읽고 구결의 법칙대로 연마를 하면서 모르는 것은 방증에게 가르침을 청하였다.
이날 오후 의화, 의청, 의림, 정악, 진견 등 여제자들은 연검청(練劍廳)에서 검을 연마하고 있었으며 영호충은 옆에서 지적을 하고 시범을 보여주고 있었따. 진견은 나이가 제일 어렸으나 검술의 요지에 대해서 퍽이나 깨우침이 빨랐다. 그래서 칭찬하기를, [진사매는 정말로 총명하구료. 이 일초를 벌써 다 통달했으니 그러나......]

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단전이 매우 아파왔다. 삽시간에 너무 아파서 데굴데굴 땅바닥을 굴렀다.
여러 제자들은 깜짝 놀라 달려와서 부축하며 일제히 물어보았다.

[어찌하여 그러십니까?]

영호충은 자기 몸 안에서 또 진기가 발작하고 있음을 알았다. 고통은 실로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러한 경황 가운데 갑자기 퍼드득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두 마리의 비둘기가 똑바로 대청으로 날아 들어왔다.
여러 제자들은 일제히 외쳤다.

[어머나!]

항산파는 편지를 나르는 비둘기를 많이 키우고 있었다. 그 옛날 정정사태가 복건(福建)에서 적을 만났을 때와 정한, 정일 두 사태가 용천 주검곡(龍泉鑄劍谷)에서 곤욕을 당하고 있을 때도 이 비둘기를 보내어 구급신호를 보냈던 것이다. 지금 대청으로 날아온 비둘기는 산아래서 지키고 있던 본 파의 제자들이 보낸 것이다. 비둘기 등에는 빨간색의 물감이 묻어 있는데 그것을 보자 일월교가 공격해 오고 있음을알았다.
방증대사, 충허도장이 항산에 온 이후로 여러 제자들은 만반의 준비하고 있었으므로 그들은 모두 한시름 놓고 있었다. 그러나 뜻밖에 이렇게 어려운 때에 영호충의 병이 발작하자 모두들 우왕좌왕하였다.
의청이 외치기를, [의진, 의문 빨리 가서 방증대사와 충허도장께 알려라.]
두 사람은 명령을 받고 나갔다.
의청은 또 말했다.

[의화 사저님은 종을 쳐 주시기 바랍니다.]

의화는 고개를 끄덕이며 재빨리 몸을 날려 대청을 나가더니 종루(鐘樓)를 향해서 달려 나갔다. 종루에서는 땡땡땡 땡땡 세번은 길고 두번은 짧게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하였다. 그 종소리는 모든 산에 전해졌고 이어서 통원곡, 현공사, 흑룡구(黑龍口)에 있는 각 암자에서도 일제히 종이 울리기 시작하였다.
방증대사는 사전에 적의 공격 기미가 있으면 세번은 길고 두번은 짧게 종을 울려서 알리도록 미리 분부를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종소리를 낼 때는 반드시 침착하게 쳐서 초조한 내색을 내지 말도록 분부를 했었다. 그러나 의화는 성질이 매우 급하고 또한 때가 때인 만큼 마음이 너무 조급해져 종소리는 매우 급박하고 초조하게 들리고 있었다.
항산파, 무당파, 소림파 삼파의 사람들은 즉시 사전에 안배를 한데로 자기 위치에 가서 적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적을 많이 죽이고 자기편의 사상자를 될 수 있는 한 적게 하기 위해서 산에서 견성봉 정상까지 모든 곳에는 아무 사람도 배치시키지 않았고 아예 문을 크게 열어 적이 봉우리에 올라오면 접전을 할 태세를 갖추었다.

종소리가 멈추자 온 산은 쥐죽은 듯이 조용하였따. 곤륜, 아미, 공동 여러 파 사람들은 모두 다 봉 아래 은밀한 곳에 몸을 숨기고 마교의 교중들이 봉우리에 올라와 명령이 떨이지기만 하면 그들의 퇴로를 막으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충허는 비밀이 새어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산길에 지뢰를 매설했다는 일은 일체 다른파 사람들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마교의 사람들은 발이 넓어서 곤륜파 등 다른 파의 제자들 가운데 그들의 밀정을 숨겨둘 수 있기 때문에 만일 그 일이 알려지면 모든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영호충은 종소리를 듣고는 일월교가 공격해 옴을 알았지만 아랫배가 마치 수천개의 칼로 일제히 난도질을 당하는 것 같이 뱃가죽이 너무도 아팠기 때문에 자기 배를 거머쥐고 땅바닥에서 데굴데굴 굴렀다.
의림과 진견은 그런 모습을 보고 얼굴에 핏기가 싹 가셨으며 어찌할 바를 몰라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의청은 말했다.

[우리는 장문님을 부축해서 무색암(無色庵)에 모셔 놓읍시다. 그리고 방증과 충허도장의 분부레 따르기로 합시다.]

즉시 우수(于嫂)와 또 다른 나이 먹은 비구니가 팔을 내밀어 영호충의 옆구리를 끼고 끌어서 무색암으로 부축해 갔다. 막 암자에 도착하자 봉우리 아래서는 펑펑펑 하고 폭죽소리가 끊이지 않았으며 이어서 호각소리가 쩡쩡 울리고 북소리가 둥둥 울려 왔다. 일월교는 과연 당당한 진열로 대거 공격해 들어오고 있었다. 방증과 충허는 이미 영호충의 병이 발작했음을 알고 헐레벌떡 암자로 뛰쳐들어 왔다.
충허는 말했다.

[영호 형제, 안심하고 이곳에서 몸이나 돌보고 있게, 나는 이미 능허사제(凌虛師弟)에게 부탁을 해서 무당파의 퇴각을 엄호라도록 분부를 하였네. 항산파 일행을 엄호하는 일은 이 빈도가 맡겠네.]
영호충은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의 표시를 하였다.
방증은 말했다.

[영호 장문은 아무래도 먼저 깊은 계곡으로 퇴각을 하는 것이 좋겠소. 모든 일은 준비가 튼튼해야 하는 것이오.]

영호충은 말했다.

[절대로...... 절대로 그럴 수는 없읍니다. 검을...... 검을 가져오너라.]

충허는 몇마디 더 권했으나 영호충은 끝내 말을 듣지 않았다.
갑자기 호각소리가 멈추고 이어서 우뢰와 같은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성교주님은 천추만재하시고 일통강호하십니다.]

소리를 들어보니 못 되어도 사오천명은 되는 것 같았다. 방증, 충허, 영호충 세사람은 서로 쳐다보며 빙그레 웃었다.
진견은 영호충을 부축하여 장검을 건네 주었다. 영호충은 손을 내밀어 잡으려고 했으나 우측 손이 벌벌 떨려 오면서 검을 똑바로 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진견은 검을 그의 허리에다 묶었다.
갑자기 함성소리가 울리더니 음악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그러나 그리 살벌한 소리는 아니었다. 수명이 일제히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월신교의 성교주님께서는 견성봉에 와서 항산파의 영호 장문인을 친히 만나시겠다고 하십니다.]

바로 일월교의 여러 장로들이 말하는 소리였다.
방증은 말하였다.

[일월교가 먼저 예를 갖추고 나중에 공격을 할 모양이니 우리가 너무나 인색할 필요는 없지 않소. 영호 장문은 그들로 하여금 봉우리에 오르도록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영호충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이때 배는 또 한차례 극심하게 아파왔다.
방증은 그의 얼굴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있는 것을 보고 잔잔히 말했다.

[영호 장문, 단전의 고통이 매우 심한 모양이구료. 풍사숙님이 전해준 내공의 심법을 써서 한번 돌려보는게 어떻소.]

영호충의 몸에는 수십개의 진기가 서로 부딪치고 충동을 하고 있었다. 만약 그 진기를 돌린다면 화약을 끌고 불속에 뛰어드는 격이고 고통속에 고통을 더 하는 거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이미 고통이 극점에 도달했으므로 나중의 결과를 생각지도 않고 법칙대로 한번 돌려보았다.
과연 진기가 부딪치는 가운데 아랫배의 통증은 아까보다 더욱 아파왔다. 그러나 몇번이고 진기를 돌리자 수십여개의 진기는 마치 가느다란 지류가 되고 지류는 또한 큰 냇물을 이루어 정삭적으로 운행이 되는 듯하였다. 비록 통증은 똑같았으나 서로 부딪치지 아니했고 마음은 약간 편안함을 느꼈다. 방증대사가 천천히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항산파 장문인 영호충과 무당파 장문 충허도인, 소림파 장문인 방증은 일월교 임교주의 가마를 기다리고 있소.]

그의 소리는 그리 크지는 않았으나 그 목소리는 멀리까지 보낼 수가 있었다.
영호충은 암암리에 내공의 심법을 운행하자 효과가 있었다. 그래서 아예 무릎을 괴고 앉아서 눈은 코를 바라보고 코는 단전을 향하고 한쪽 손은 가슴을 쓰다듬고 또 한쪽 손으로는 배를 누르고 방증대사가 전수해준 법문을 연마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이심법을 연마한지 불과 며칠이었고 비록 방증이 날마다 자세히 설명해 주었으나 연마한 기간이 너무나 짧았다. 그러나 법칙대로 진기를 인도시키자 십여 개의 진기는 점점 한군데로 모여졌다. 그는 어찌 조금이라도 태만하겠는가. 정신을 집중하여 기를 한군데로 돌리었다. 처음에는 귓가에 무엇인가 터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나중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아니했다.
방증은 영호충이 전심전력하여 공력을 연마하는 것을 보고 얼굴에는 웃음이 번졌다. 귓가에는 음악소리가 크게 일어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월교의 교중들은 외쳤다.

[일월신교의 문무를 겸비하시고 억조창생하신 성교주님의 가마가 항산에 오십니다.]

한참 지나자 음악소리는 점점 크게 들려 왔다. 견성봉을 모르는 산길은 매우 멀었다. 일월교 교중들은 발걸음이 빨라 한참 올라왔으나 음악소리는 아직도 산허리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항산 여러 곳에 매복해 있던 정교 문하의 사람들은 내심 암암리에 욕을 해대었다.

(못된 교주 같으니라고. 죽은 사람도 아닌데 꽹과리를 치고 북을 치고 무엇을 하는 짓거리란 말인가.)

적을 맞이하여 일전을 하려고 준비했던 사람들의 가슴은 마구 뛰었다. 모두는 마교의 교중들이 산에 올라오면 즉시 몸을 내밀어 한바탕 싸움을 하고 교중들을 죽인 후에 많은 적들이 모이면 바로 끈을 타고 깊은 계곡으로 퇴각하려고 계획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뜻밖에 임아행의 거동은 마치 황제가 순시를 나가는 것처럼 웅장하게 북을 치고 꽹과리를 울리며 봉우리를 올라오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먼저 선제 공격을 할 수가 없어서 마음만 단단히 준비하고 있었다.
한참 지나자 영호충은 단전에 있던 진기가 천천히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고통이 점점 가시었으며 정신이 다시 돌아왔다. 그래서 즉시 생각하기를, (임교주가 봉우리에 올라온다고!)

아 하고 신음소리를 내고 몸을 벌떡 일으켜 세웠다.
방증은 웃으면서 말했다.

[좀 나아지셨읍니까?]

영호충은 말했다.

[지금 한바탕 붙었읍니까?]

방증은 말했다.

[그들은 아직 오지 않았소이다.]

영호충은 말했다.

[거참 잘 되었읍니다.]

그리고는 즉시 허리춤에서 칼을 뽑아들었다. 그러나 방증, 충허 등의 손에는 아무런 병기가 들려 있지 않고 의화, 의청 등이 무색암 앞에 넓은 공지에서 여러 겹으로 항산검진으로 서있었으나 장검은 허리에걸려져 있음을 보고는 임아행이 아직 산에 오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서야 비로소 자기의 행동이 너무나 경솔했음을 깨닫고 껄껄껄 웃더니 검을 다시 칼집 속에 집어 넣었다. 함성소리와 북소리가 멈추자 소적 호금과 같은 작은 소리의 음악이 들리기 시작하였다. 내심 생각하기를, (임교주는 정말로 못 봐줄 짓만 하는구나. 음악이 울리는걸 보니 이 노인네 가마가 봉우리를 오르고 있나 보구나.)

그의 괴상하고 변화무쌍한 행동은 볼수록 더욱 비위가 뒤틀렸다.
가느다란 음악이 울리는 가운데 일월교의 교중들은 두 줄로 서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봉우리에 오르고 있었다. 눈앞이 번쩍이더니 교중들은 하나하나의 차림새가 모두가 암산한 검녹색의 비단옷을 입고 있었으며 허리에는 흰 띠를 차고 있어서 그 화려함이 눈이 부실 정도였다.
앞에는 사십명이 앞장서고 있는데 이 사십명의 손에는 모두 쟁반이 들려 있고 쟁반 위에는 비단보자기가 덮혀 있었다. 그 안에는 어떤 물건이 담겨 있는지 그 누구도 몰랐다. 이 사십명은 허리에 무기를 차고 있지 않았다.
사십명의 비단옷을 입은 교중들은 봉우리에 올라오자 멀찌감치 우뚝 섰다.
이어서 한무리의 이백명 정도가 되는 악대가 다라오고 있었다.
모두들 역시 비단옷을 입고 있었으며 은은히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그 뒤에는 호수(號手), 고수(鼓手)와 큰북, 작은북, 꽹과리 등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따르고 있었다.
영호충은 매우 흥비롭게 구경하고 있었다. 내심 생각하기를, (잠시 후에 싸움이 시작되어 북과 꽹과리가 울린다면 마치 무대에서 연극을 하는 것 같겠구나.)

음악소리에 맞춰 일월교의 교중들은 한무리 한무리 봉우리로올라왔다. 그들은 자기가 속한 소속에 따라 옷의 색깔을 달리 했다.
노란 옷, 파란 옷, 남색 옷, 검은 옷, 하얀 옷들은 화려했으며, 무대에 오른 배우들보다도 하려하였다. 단지 모든 사람들은 허리에 각각 하얀 띠를 두르고 있었다. 봉우리에 오르는 자는 적게 잡아도 삼사천 명은 됨직 하였다.
충허는 내심 생각했다.

(그들이 당도하기 전에 단숨에 없애야만 우리들이 우위를 점할 수가 있다. 그런데 이놈들이 무슨 농간을 부리려고 이렇듯 당당하게 올라오고 있는가. 우리들이 먼저 손을 쓴다면 약간지나치다고 할 수 있겠구나.)

영호충은 히히덕거리며 아무 일없다는 표정이었고 방증은 못본척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충허는 또 생각하기를, (영호충과 방증대사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짓고 있는데 내가 이렇듯 긴장을 한다면 체면이 말이 아니다.)

각 교중들은 한무리를 지어 자리에 멈추어 선 후 열 명의 장로가 올라오더니 다섯 사람이 한 조가 되어 각각 우측과 좌측에 섰다.
음악소리가 갑자기 멈추어지고 열 명의 장로는 일제히 말했다.

[일월신교의 문무를 겸비하시고, 억조를 창생하신 성교주님의 가마가 도착하였소.]

한 개의 파란 비단을 두른 큰 가마가 봉우리에 오르고 있었다.
이 가마는 열여섯 명의 가마꾼이 매고 있었는데 움직임이 빠르고 퍽이나 안정되어 보였다. 단지 가마가 마치 경고을 하는 고수처럼 가볍게 봉우리에 오르고 있었다. 그것만 보아도 이 열여섯 명의 가마꾼들은 무공이 모두 강한 자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영호충이 눈을 똑바로 뜨고 쳐다보니 그들 속에 조천추, 황백류, 계무시 등이 끼어 있는 것이 보였다. 노두자는 몸체가 너무 작아서 조천추 등과 가마를 맬 수 없었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그도 틀림없이 가마꾼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였다. 영호충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내심 생각하였다.

(조천추 그들은 모두가 당세의 호걸들인데 임교주는 그들에게 가마를 매는 보잘 것 없는 이릉 시키고 있구나. 이렇득이 천하의 영웅들을 대접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파란 색의 비단을 두른 가마 좌우에는 각각 한 사람이 따라오고 있었는데, 좌측은 상문천이었고, 우측은 한 명의 노인이었다. 이 노인은 얼굴이 매우 익어 영호충은 멈칫하였다. 자세히 보니 낙양성에서 그에게 금타는 방법을 가르쳐 준 녹죽옹(綠竹翁)임을 알 수 있었다. 이 사람은 영영을 나이먹은 노파로 착각을 하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낙양성을 떠난 후로 그와는 한번도 만나지를 못하였는데, 오늘 임아행을 따라 견성봉을 오르고 있었다. 그의 마음은 두근두근 뛰어 내심 말하였다.

(어찌 영영은 보이지 않을까?)

갑자기 무엇인가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눈앞의 일월교의 교중들은 모두 허리에 흰띠를 두르고 있는데 그것은 마치 상복과 같았다. 설마 하니 영영이 아버지가 교중들을 이끌고 항산에 가자, 결국 자살을 했단 말인가.
영호충의 마음에는 뜨거운 피가 치밀어 올랐다. 단전에 몇번인가 통증이 느껴졌다. 즉시 달려가서 상문천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임아행이 가마 속에 있었으므로 꾹 참고 견디었다.
견성봉에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운집하고 있었으나 모두들 꿀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아 정적만 흐르고 있었다. 그 큰 가마가 멈추자 모든 사람들은 가마의 휘장을 쳐다보면서 임아행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무색암에서 떠드는 소리가 들려 왔다.

[빨리 비켜라! 내가 그 자리에 앉겠다.]

또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모두들 떠들지 마라. 크든 작든 모두가 이 자리에 앉을 수 있으니 차례로 앉자.]

바로 도지선과 도화선의 목소리였다.
방증, 충허, 영호충 등은 모두 안색이 변했다. 그 누구도 모르는 사이에 도곡육선이 무색암에 뛰어들어 아홉마리의 용이 수놓아진 의자에 서로 먼저 앉으려고 다투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의자에 앉아 기계가 작동되면 어찌한단 말인가?
충허는 급히 암자로 달려들어 갓다.
그가 일갈하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빨리 일어나시오. 이 자리는 일월교 교주의 자리입니다. 당신들은 앉을 수 없소.]

도곡육선의 목소리가 암자에서 흘러나왔다.

[어째서 우리가 앉을 수 없단 말이오. 우리들은 꼭 앉아야겠소.]
[빨리 일어나거라. 내가 앉아야겠다.]
[이 의자는 정말 편안하고 부드럽구나. 마치 뚱뚱한 자의 엉덩이에 앉은 거와 같구나.]
[너는 뚱뚱한 자의 엉덩이에 앉아 본 적이 있느냐?]

영호충은 도곡육선들이 다투어 의자에 앉으며 의자 속에 장치 되어 있는 기계가 압력을 받을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무색암에 숨겨져 있는 수만근의 폭약이 폭발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견성봉의 일월교와 소림, 무당, 항산파의 무리들 모두가 가루가 될 판이었다. 그는 처음에 암자에 들어가 말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마음속으로는 그 폭약이 폭발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어차피 영영이 이미 죽었으니 자기도 더이상 살 생각이 없었다. 모두들 한순간에 동시에 죽는다면 그 어찌 깨끗하지 않겠는가. 언뜻 의림의 두 눈이 자기를 응시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자기와 눈빛이 마주치자 즉시 피하였다. 그래서 내심 생각하기를, (의림 소사매 같은 나리가 어린사람이 폭약이 터져 죽는다면 어찌 아깝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 세상에 어찌 죽지 않는 사람이 있단 말인가? 설사 오늘 아무 일 없다고 해도 백년이 지나면 견성봉의 모든 사람들은 그 누가 백골로 변하지 않겠는가?)

도곡육선들이 계속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은 이미 두번이나 앉았는데 나는 아직 한번도 앉지 못했읍니다.]
[나는 지금 막 앉았다. 그런데 금방 나오라고하니 안 될 말이다.]
[나에게 방법이 하나 있읍니다. 우리 여섯형제가 일제히 의자에 앉읍시다. 자 우리가 앉을 수 있는지 없는지 봅시다.]
[좋은 방법이다. 찬 좋은 방법이야. 모두들 함께 앉아보자.] [당신 먼저 앉으시오.]
[당신 먼저 앉으시오.]
[큰 사람은 위에 앉고 나이가 어린 사람은 아래에 앉아라.] [아닙니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먼저 앉고 나이가 적은 사람일 수록 제일 높은 곳에 앉아야 합니다.]

방증대사는 위기가 눈 앞에 닥쳐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렇다고 큰 소리로 말하여비밀을 누설시킬 수가 없었다. 즉시 빠른 걸음으로 안쪽으로 들어가 큰 소리로 말했다.

[귀빈이 밖에 계시는데 절대로 싸우지 말고 떠들지 마시오.]
그는 이 떠들지 말라는 소리를 지르면서 소림파 최고의 내공인 금강선사자후(金剛禪獅子吼)의 공력을 썼다. 한 줄기의 세찬 내공을 도곡육선들을 향해서 뿜어댔다.
충허도장은 현기증이 나 하마터면 쓰러질 뻔하였다. 도곡육선들은 이미 동시에 정신을 잃고 깨어나지 못했다. 충허는 크게 기뻐 손의 동작을 질풍처럼 내밀어 먼저 의자에 앉아 있는 두사람을 끌어당기고 바로 여섯 사람의 혈도를 찍었다. 모두들 끌어다가 관음보살을 모셔 놓은 탁자 밑에 쑤셔박고 머리를 숙여 의자밑에 소리를 들어봤다. 다행히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단지 두 손이 떨려 왔으며 이마네는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방증이 조금이라도 늦게 들어왔다면 장치가 작동을 했을 것이고 모두가 한줌의 재로 변했을 것이다.

충허와 방증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나오면서 말했다.

[임교주께서는 암자로 들어와 차를 드시오!]

그러나 가마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고 가마속에도 별다른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충허는 크게 노해서 내심 생각하기를, (마교 고주인 주제에 몹시 건방지구나. 나와 방증대사, 영호장문 세 사람이 지금 무림에서 얼마나 숭앙을 받고 있는 어떤 위치인데 이곳에 서서 기다리게 해놓고 제까짓게 아는 척도 하지 않고 들은 체도 하지 않는구나.)

만약 의자의 함정이 없었다면 그는 즉시 장검을 뽑아들고 가마의 휘장을 젖혔을 것이다. 그리고는 즉시 임아행과 한 판의 승부를 겨루었을 것이다. 그는 떠 한번 말을 하였다. 그러나 가마 속에서는 여전히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상문천은 허리를 숙이고 가마 옆에 다가각 귀를 대더니 가마속의 지시를 듣고 있었다. 상문천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더니 몸을 똑바로 세워 말을 했다.

[임교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소림사 방증대사님과 무당산 충허 도장 두분의 무림 선배님을 기다리게 한 것은 극히 무례하여 앞으로 친히 소림, 무당에 가서 사과를 하시겠다고 말씀을 하셨읍니다.]

상문천은 또 말했다.

[임교주께서는 오늘 항산에 온 것은 전적으로 영호장문인을 만나러 오신 것이라 하였읍니다. 그래서영호 장문인 한 사람과 암자에서 만나보시겠다고 합니다.]

말을 하면서 손으로 신호를 보내자 열여섯 명의 가마꾼들은 가마를 들쳐메고 암자의 관음당에 내려놓았다. 상문천과 녹죽옹은 따라 들어갔다. 그러나 곧 가마꾼들과 물러나왔다. 암자에는 한 개의 가마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충허가 내심 생각하기를, (틀림없이 흉계가 있을 것이다. 가마에는 어떤 장치가 숨겨져 있을 거이다.)

방증과 영호충을 쳐다보았다. 방증은 임기웅변에 약했으므로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고 있었으며, 얼굴에는 초조한 기색이 역력하였다.
영호충은 말했다.

[임교주께서 저와 만나보시겠다고 하시니 두분께서는 이곳에서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충허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

[조심하시게.]

영호충은 고개를 끄덕이며 큰 걸음으로 암자로 들어갔다.
무색암은 단지 작은 한 개의 기와로 만들어져 있었으므로 관음당에서 큰 소리로 말한다면 밖에서도 분명하게 들으 수 있었다. 영호충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후배 영호충은 임교주님께 인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임아행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들리지않았다. 이어서 영호충이 악 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충허는 깜짝 놀랐다. 영호충이 임아행의 마수에 걸려들지 않았나 하고 염려가 되었다. 단숨에 들어가 도와주려고 하였다. 그러나 내심 생각하기를, (영호 형제의 검술은 정묘하여 이 세상에는 대적할 자가 없다.
그가 암자에 들어갔을 때 장검을 휴대하고 있으니 절대로 임아행에게 걸려들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불행하게도 마수에 걸려들었다면 내가 달려들어가 손을 쓴다 해도 때는 이미 늦을 것이다. 임교주가 영호충을 죽이지 않았다면 그것은 당연한 이치이겠지만 만약 영호충이 이미 마수에 걸려들었다 해도 마교의 두목은 혼자서 관음당에 남아 있다가 틀림없이 의자에 가서 앉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들려들어 간다면 오히려 큰 일을 망칠 수가 있다.)

일시에 마음이 두근두근 안정을 하지 못하고 깊이 생각했다.

(마교의 교주는 아마 지금쯤 의자에 앉았을 것이다. 잠시 후면 즉시 작동될 것이다. 이 견성봉은 아마 반정도는 날아가버리겟지.
그렇다고 지금 내가 이 자리를 피한다면 내 자신이 너무나 비겁하게 될 뿐 아니라 상문천이 알아차려 즉시 소리를 질러 경고한다면 성고할 수가 없다. 그러나 폭약이 폴발을 하면 아무리 빠른 사람이라 해도 피할 수가 없다. 어떻게 해야 좋단 말이냐?)

그는 애당초 일월교가 공격을 하면 어떻게 접전을 하고 어떻게 물러날 것인가를 미리 계산하고 있었고, 또한 임아행이 의자를 앉았을 때는 소림, 무당, 항산 세파는 미리 계곡으로 퇴각을 하고 있어야 한다고 예측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일월교가 뜻밖에 이렇듯 공격해오면서 즉시 손을 쓰지 않고 꿍꿍이 수작을 벌여 임아행이 영호충을 단독으로 암자에서 만나자 모든것이 예측불가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계략이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지금에 이르러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방증대사도 국면이 매우 다급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알고 심히 영호충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는 수양이 깊고 통달을 한 사람이므로 그에게 있어 생과 사, 영예와 치욕, 복과 화근, 성패는 실로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었고, 모든 것은 사람이 계획을 하지만 일이 성사되고 안 되고는 하늘에 달려 있으며 모든 것은 인과응보인 것이지, 구해서 되는 것은 아니라고 느끼고 이었다. 그래서 그의 마름은 약간 불안했지만 초연할 수가 있었다. 정말 폭약이 터져 가루가 된다 하더라도 인간의 껍데기가 결국은 가야할 길인데 어지 두려움에 떨겠는가.
용이 수놓아진 의자에 설치되어 있는 폭약에 관한 일은 지극히 기밀이었다. 방증, 충허, 영호충을 제외하고, 직접 설치한 청허, 성고 등은 지금 산봉우리 정상에서 폭약이 터져 즉시 지뢰를 터뜨리라는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견성봉의 나머지 사람들 가운데 이 내막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소림, 무당, 항산 세파의 사람들은 임아행과 영호충이 무색암에서 이야기를 하다가 결렬되면 즉시 검을 들어 일월교의 교중들과 상대를 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충허는 한참 기다리다가 암자에서 아무런 움직임이 없고 소리가 나지 않자 즉시 내공을 운행시켜 귀를 기울여 안의 동정을 살피었다. 은은하게 영호충이 낮은 소리로 무엇인가 물어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내심 안심이 되어 생각했다.

(영호 형제는 아무런 일 없이 무사하구나.)

이런 생각을 하자 내공이 흩어져 일시에 아무것도 들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조금 전에 자기가들은 목소리가 영호충의 목소리가 아니라면 어떻게 하난 하고 걱정을 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어째서 그의 말소리가 밖에서는 들리지 않겠는가?
또 한참 지나니 영호충이 외치는 소리가 들려 왔다.

[상형님, 형님께서는 임교주님의 가마를 암자 밖으로 모셔가시오.]

상문천은 대답을 했다.

[녜.]

녹죽옹과 함게 열여섯명의 가마꾼들을 이끌고 무색암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 파란색 비단을 입힌 가마를 밖으로 들고 나왔다. 암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일월교의 교중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말을 했다.

[성교주님의 가마가 도착하셨다.]

그 가마를 맨처음 머물던 곳에 내려놓았다.

상문천은 말했다.

[성교주님께서 소림사 방장에게 드리는 선물을 올려라.]
두명의 비단옷을 입은 교중이 쟁반을 받쳐들고 방증의 면전으로 걸어오더니 고개를 숙이고 쟁반을 올렸다.
방증은 쟁반 위에 놓여져 있는 매우 낡은 향기가 나는 염주가 담겨져 있는 것을 보았다. 또 다른 한개의 쟁반에는 손으로 적은 경이 놓여져 있었는데, 껍데기에는 법문이 써져 있었다. 그것은 바로 금강경(金剛經)임을 알 수가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기쁨이 솟구쳐 올라싼. 그는 불법을 연구하고 있었으므로 금강경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단지 자기가 읽은 것은 동진(東晋)때의 고승인 구마라즙(鳩摩羅汁)이 중국어로 번역한 금강경을 읽었으로 그 중에 난해한 곳이 있어서 평생동안 법문의 원경을 읽고 그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중원(中原) 천지에는 원문의 금강경을 찾을 수가 없었다. 지금에 이르러 금강경을 눈 앞에 대하고 보니 정말로 솟구쳐 오는 감격을 누를 수가 없었다. 즉시 합장을 하며 말했다.

[아미타불, 노승이 이 금강경을 보게 되니 정말 그 감동이야말로 형용할 길이 없소이다.]

공손히 두 손을 내밀어 법문으로 된 금강경을 받쳐들고 그리고 나서 염주를 집어들면서 말했다.

[임교주님의 선물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실로 무엇을 보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구료.]

상문천은 말했다.

[교주께서는 우리 교가 지금까지 천하의 영웅들에게 무례하게 대해 깊이 죄송함을 느끼고 있고 방장대사님께서 책망을 하지 않으신다면 실로 감격하게 생각하신다고 말씀하셨읍니다.]

또 다시 고개를 약간 돌려 말을 했다.

[임교주님께서 무당파 장문인인 충허도장 어른께 드리는 선물을 올려라.]

두명의 비단옷을 입은 교중은 대답을 하고 앞으로 나왔다.
충허도장 앞으로 걸어가더니 공손하게 쟁반을 받쳐들었다. 구 사람이 가가이 다가오기 전에 쟁반 위에 가로 놓여진 것이 한 자루의 장검인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두 사람이 가까이 다가왔을 때 자세히 보니 장검의 칼집에는 구리색과 녹색이 어울려 있었는데 가느다란 구리로 진무(眞武)라는 두 개의 전문(篆文)이 상감되어 있었다. 충허는 악 하고 외마디 비명소리를 질렀다. 무당파의 창시자인 장삼봉선사(張三 先師)가 썼던 패검의 이름이 진무검(眞武劍)이었다. 이 진무검은 무다파의 진산지보(鎭山之寶)였다.
팔십여 년 전 일월교의 몇명의 고수들이 밤중에 무당산을 습격해 와 그 보검과 장삼봉이 친필로 쓴 태극권경(太極拳經)을 훔쳐갔던 것이다. 그때 당시 한바탕 싸움이 일어나 무당파에서는 세명의 고수가 죽었으며 비록 일월교의네명의 장로를 죽였지만 검과 경은 빼앗아 올 수 없었다. 그것은 무당파의 크나큰 치욕이었으며 그래서 팔십여 년 동안 매대의 장문인마다 임종을 할 때 유언을 하며 반드시 이 검과 경을 찾아오라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흑목애는 깍아지른 절벽에다 경비가 삼엄하여 무당파는 여러차례 빼앗으러 했으나 공을 세우지 못하고 돌아왔고, 오히려 갈 때마다 흑목애에서 아까운 생명만 잃었던 거싱다. 그런데 생각도 못하게 이 검이 견성봉에 다시 나타났던 것이다.
그는 또 살며시 다른 한 개의 쟁반을 보았는데 쟁반에는 한 개의 손으로 쓴 책자가 놓여 있었느며 종이는 너무 오래되어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고, 표지에는 태극권경 네 글자가 씌어 있엇다. 충허도인은 무당산에서 장삼봉이 친필로 쓴 글씨들을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보자마자 그것이 태극권경의 진본임을 알 수가 있었다.
그는 두 손이 떨려왔으며 장검을 받쳐들고 우측손으로 검자루를 거머쥐고 천천히 반 정도 꺼내자 차가운 한기가 번쩍거렸다. 그는 삼봉조사(三 祖師)가 만년에 이르러서는 검술이 신의 경지에 이르러 어지간해서는 김을 사용하지 않고 설사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사람과 겨룰 때는 단지 평상적인 철검(鐵劍), 목검(木劍)을 사용했으며 이 진무검은 그가 중년 때 사용해던 별기로 사악한 무리들을 소탕하고 강호에 위명을 떨칠 때 사용했던 날카로운 병기임을 알고 있었다. 그는 속지난 않을까 염려되어 다시 그 태극권경을 살펴보았다. 그 태극권경을 살펴보자 틀림없이 삼봉조사가 쓴 책자였다.
그는 그 경서를 다시 쟁반 위에 올려놓고 땅에 엎드려 검과 경을 향해 연속 여덟번을 절하고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말했다.

[임교주의 아량은 하해와 같아 무당 조사야의 유물을 다시 진무관에 되돌려 주시니 충허는 몸이 가루가 되어도 그 은혜를 갚지 못할 것입니다.]

경과 검을 받아들고 마음 속이 격동되어 두 손은 계속 떨려왔다.
상문천은 말했다.

[교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저의 교가 옛날에 무당파에 몹씁 짓을 많이 하였고, 그래서 송구한 마음이 끝이 없으며, 오늘 원벽귀조(原璧歸趙)를 하시어 무당파 모든 분들께 용서를 빈다고 말씀을 하셨읍니다.]

충허는 말했다.

[임교주님은 정말 겸손한 분이십니다.]

상문천은 또 말했다.

[성교주님께서 항산파 영호 장문께 드리는 선물을 올려라.]
방증과 충허는 모두 생각을 하였다.

(그가 영호 장문인에게 무엇을 주는지 모르겠구나. 아마 그것은 고귀한 선물이겠지.)

이번에는 모두 이십여 명의 비단옷을 입은 교중들이 손에 쟁반을 받쳐들고 영호충의 몸 가까이 다가왔다. 쟁반 속에 담겨져 있는 것은 옷, 모자, 신발, 술주전자, 술잔, 찻잔 등의 일상용구였다. 비록 모두가 정교하고 명품이었으나 그리 희귀한 물건은 아니었다.
우직 쟁반 하나에는 옥소(玉蕭)가 하나 놓여져 있었고 또 다른 쟁반에는 고금(古琴)이 놓여져 있어서 그것들은 비교적 진귀했으나 방증, 충허에게 준 선물과 비교를 할 때 그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거와 다름이 없었다.
영호충은 공수를 하며 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항산파의 우수 등에게 명하여 받도록 하였다.
상문천은 말했다.

[저희 교주께서는 이번에 항산에 와서 많은 분들께 송구스런 짓을 하여 심히 죄송해 한다고 말씀하셨읍니다. 그래서 항산파의 모든 출가한 사태에게는 새옷과 장검 한 자루를 드리고 줄가하지 않은 속가의 사저 사매들에게 각각 비단옷 한 벌과 장검 한 자루를 드리는 것이니 받아 주시기 바란다고 말씀을 하셨읍니다. 저의 교에서는 또 항산 밑에 있는 좋은 논밭 삼천묘를 사서 무색암에 드려 자산으로 삼으시라고 하셨읍니다. 자 그만 우리들은 여기에서 물러나겠읍니다.]

말을 하면서 방증, 충허, 영호충에게 깊이 예를 올리고 몸을 돌려 걸어갔다.
충허는 외쳤다.

[상 선생님!]

상문천은 몸을 돌려 웃으면서 물어보았다.

[도장께서는 무슨 분부가 계십니까?]

충허는 말했다.

[교주께서 우리들에게 이런 귀중한 물건을 주셨짐나 우리들은 받을 이유가 없읍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불안하기 짝이 없읍니다.
어떤...... 어떤......]

그는 몇번이고 말을 더듬거리며 잇지를 못하였다. 그는 그런 물건을 준 것은 어떤 이유에서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 말은 입밖에 나오지 않았다.
상문천은 웃더니 포권을 하며 말했다.

[물건이 주인에게 돌아가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닙니까? 도장께서는 어찌하여 불안하다고 하시는지요?]

몸을 돌려 일갈을 했다.

[교주님의 가마를 모셔라!]

음악소리가 나더니 열 명의 장로가 길을 인도하고 열여섯명의 가마군들이 비단을 두른 가마를 매고는 봉우리 아래로 내려갔다. 그 뒤에는 악대가 따랐으며, 각각의 교중들은 모두 봉우리 아래로 내려갔다.
충허와 방증은 일제히 영호충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두 생각하기를, (임교주가 어찌해서 마음을 바꾸었는가, 그 원인은 오로지 당신만이 알 수 있을 것이오.)

영호충의 얼구에서는 조금도 이 사실을 엿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마치 기쁨이 서려 있는 것 같기도 했고, 마치 우수가 젖어 있는 것 같기도 하였다. 일월교중들이 간 지 한참이 되자 음악소리는 멈추었으며, 무슨 천추만재 일통강호라는 외침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올 때는 위풍당당하게 왔으나 잘때는 조용하게 간 꼴이었다.
충허는 참을 수 없어서 물어보았다.

[영호 형제, 임교주가 갑자기 마음을 바꾸어 우리들에게 이런 귀중한 물건을 준 것은 틀림없이 영호 형제의 체면 대문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는 영호충에게 임교주와 무슨 말을 했느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 까닭은 영호충이 말하고 싶으면 할 것이고, 말하고 싶지 않으면 물어보는 것이 실례라는 생각이 들어 말을 더 계속하지 않고 입을 막았던 것이다.
영호충은 말했다.

[두 분의 선배님은 용서해 주십시오. 조금 전 저는 임교주에게 이야기를 나눈 내용을 말하지 않기로 약속을 하였읍니다. 그래서 잠시 말씀드릴 수가 없읍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나눈 말에 무슨 숨길 수 없는 비밀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두분께서는 나중에 자연히 아시게 될 것입니다.]

방증은 껄껄껄 웃더니 말했다.

[오늘 피비릿내나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은 것만 해도 실로 무림의 복입니다. 임교주가 오늘 행동을 멈추고 정교의 각파 사람들에게 적의가 없음을 표시한 것을 보니 그것은 실로 축하할 만한 일입니다.]

충허는 그들이 나눈 이야기를 알고 싶어서 마음속으로 근질근질하였으나 방증이 이렇게 말하는 소리를 듣자 끄덕이면서 말했다.

[저도 그리 걱정만 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단지 일월교는 간사하고 꾀가 많은 자들이라 우리들은 아무래도 신중을 기울여야만 옳을 것입니다. 어쩌면 임교주는 우리가 튼튼하게방비를 하고 폭약을 쓸까봐 염려되어 그래서 우리들에게 환심을 사고 우리의 방비가 풀어질 때 다시 복수를 하려고 그러는지도 모릅니다. 두분의 견해는 그렇지 않습니까?]

방증은 말했다.

[이건...... 사람의 마음이란 예측할 수가 없는 법입니다. 그래서 방비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요.]

영호충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틀림없이 다시 오지는 않을 것입니다.]

충허는 말했다.

[영호 장문인께서 오지 않는다고 단정하시니 다시는 오지 말았으면 좋겠읍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퍽이나 의구심을 떨쳐 수가 없었다.
한참을 지나자 산 아래에서 일월교 일행이 이미 산허리에서 물러갔으며 길목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연락을 받지 못해서 공격을 하지 아니했고, 또 지뢰를 터뜨리지 않았다고 보고가 들어왔다. 충허는 사람을 보내어 청허, 성고에게 통지를 하여 의자와 여러 길목에 뭍어 두었던 지뢰의 신관을 모두 제거하도록 명령을 전했다.

영호충은 방증, 충허 두 사람믈 모시고 무색암에 돌아와 과음당에서 휴식토록 했다. 방증은 법문으로씌어진 금강경을 읽고 있었고 충허는 진무검을 휘두르고 또 태극권경을 몇줄 읽고는 너무나 기쁜지 좀전까지 품고 있던 의심이 말끔히 가시었다.
갑자기 관음 보살상을 모셔두고 있던 탁자 아래에서 사람이 말했다.

[악, 바로 당신이!]

또 다른 사람이 말했다.

[충 오라버니, 당신...... 당신......]

바로 도곡육선들의 목소리였다.
영호충은 악 하고 놀란 소리를 지르더니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탁자 아래에서는 부단히 말소리가 들려왔다.

[충 오라버니 나, 나의 아버지는...... 나의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읍니다.]
[어지 돌아가셨읍니까?]
[그날 화산 조양봉에서 당신이 봉우리를 내려간 지 얼마 후에 나의 아버지는 갑자기 선인장에서 떨어졌읍니다. 상 좌사와 제가 그의 몸을 붙들고 잠시 지나자 즉시 숨을 거두셨읍니다.] [그럼...... 그럼...... 어떤 사람이 그 어르신을 죽인 것입니까?]
[아닙니다. 상 좌사가 말씀하시기를, 그 어르신은 이미 나이를 많이 먹고 또한 서호의 밑바닥에서 십여 년 동안 고초를 당하셨을 뿐 아니라, 요즘 들어 내공을 연마하여 억지로 몸 안의 진기를 제거하려고 하셔서 진기가 너무 소모되었다고 하셨읍니다. 또한 이번에 오악검파를 소멸시키기 위해서 신경을 쓰셨읍니다. 그 어르신은 이미 천수를 다하신 것입니다.]
[정말 뜻밖이구료.]
[그날 조양봉에서 상 좌사와 열명의 장로가 상의한 결과 만장일치로 저를 일월신교의 교주로 추대를 하였읍니다.]
[알고 보니 임교주가 임소저였구료.]

조금 전에 도곡육선들은 서로 다투어 의자에 앉으려고 하자 방증은 사자후(獅子吼)라는 불문의 최고의 내공을 써서 정신을 잃게 했던 것이다. 충허는 비밀이 누설될까봐 염려되어 도곡육선의 혈도를 찍어 탁자 아래로 쑤셔 넣었던 것인데 뜻밖에 여섯 사람의 내공은 상당하여 얼마 안 있어 정신이 깨어 영호충과 임교주가 하는 말을 모두 들었던 것이다. 이대 그들은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흉내를 내고 있었다. 방증과 충허는 이미 임아행이 죽고 영영이 교주의 자리를 이어 받았다는 소리를 듣고 그 나머지 모든 일들을 자연 깨달았다. 그래서 마음속으로는 놀래고 기뻤다. 영영이 두 사람에게 귀중한 선물을 주고 영호충에게 일상용구를 준 것은 두 사람이 예물을교환한 것이었다.
도곡육선들이 아직도 주고받는 말이 계속됐다.

[충 오라버니, 오늘 제가 항산에 당신을 보러 왔는데 만약 정교의 사람들이 안다면 그 사람들은 틀림없이 웃을 것이다.] [그게 무슨 상관이 있겠읍니까? 당신은 너무나 부끄러움을 잘 타는구료.]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알면 안 됩니다.]
[좋소. 내가 당신의 요구에 승낙을 하겠소.]
[나는 교중들에게 큰 소리로 그 무슨 문무를 겸비하시고 억종창생하신 성교주, 또는 무슨 천추만재 일통강호 라는 말을 큰 소리로 외치라고 하였읍니다. 그래야만이 다른 사람들이 알 수가 없을 테니까요. 내가 그렇게 한 것은 절대로 당신의 항산파와 방증방장, 충허도장에게 무례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건 염려할 필요가 없소. 대사와 도장께서는 그것을 모를 것이오.]
[더우기 일월교와 항산파, 소림파, 무당파가 적의 관계에서 친구가 된 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의 생각임을 알리고 싶지 않습니다.
강호의 호걸들은 틀림없이 제가...... 제가 당신과의 연고 대문에 그랬다고들 입방아를 찧을 테니까요.]
[히히, 나는 그것이 두렵지 않소.]
[당신은 얼굴 가죽이 두거우니까 아마 염려가 되지 않겠지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은 일월교중들에게는 모두 비밀에 붙였읍니다. 바깥 사람들은 나의 아버지가 항산에 오셔서 당신과 이야기를 하여 양쪽의 관계가 원만해졌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나의 아버님에 대한 명성도 좋아질 것입니다. 내가 흑목애에 돌아가면 그때가서 아버님의 장례를 치르겠읍니다.]
[알았소. 나도 사위나 마찬가지이니 장례식 때 조문을 해야겠군요.]
[당신이 오실 수만 있다면 좋겠지요. 그날 화산 조양봉에서 아버님은 본래 친히 우리의 혼례를 허락하시려고 하셨읍니다. 그러나...... 그러나 우리의 혼사는 잘례식이 끝난 다음으로......]
영호충은 그 여섯사람이 점점 그와 영영과의 혼인 이야기를 한 것을 흉내내자, 즉시 일갈을 했다.

[도곡육선, 당신들이 나오지 않고 그 속에서 계속해서 떠든다면 나는 당신들의 가죽을 벗겨놓고 당신들의 살을 도려내 버리겠소.]
그러나 도간선은 은은하게 탄식을 하면서 영영의 말투를 흉내내며 말을 하였다.

[저는 당신의 몸이 염려가 됩니다. 아버지께서는 당신에게 그 진기를 화해시키는 법문을 전수해 주지 못했읍니다. 사실은 전수해 주었다해도 아무런 쓸모가 없읍니다. 아버지는 스스로......]
도간선은 목청을 내려깔고 매우 슬픈 듯이 말을 했다.
방증, 충허, 영호충 세 사람은 그의 흉내내는 말을 듣고는 모두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임아행과 같은 일대괴걸(一代怪傑)이 살아 있는 동안 수많은 악행을 저질렀지만 그러나 이렇게 끝맺음을 하자 모든 사람들은 탄식을 하고 측은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영호충은 임아행에게 대한 마음이 더욱 유별났다. 비록 그가 위세를 부리고 독불장군처럼 행세한 것을 미워하고 있었지만 마음속으로는 그의 문무가 겸비된 재능과 특히 무서움을 모르고 타협할 줄 모르는 그런 성격을 마음속으로부터 탄복을 하고 있었다. 그는 임아행의 성격과 자기와는 퍽이나 유사한 점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단지 자기는 일통강호의 야심이 없을 뿐이었다.
일시에 세 사람의 마음속에는 동시에 한가지 생각이 불현듯 일어났다.

(자고로 황제나 장군이나, 성현이나, 호걸이나, 간웅대도(奸雄大盜)라 할지라도 그 누구 죽지 않는 자가 있단 말이냐?)
도실선은 목청을 더욱 돋구더니 말을 했다.

[충 오라버니, 나는......]

충허는 그들이 계속해서 말을 한다면 영호충의 체면이 손상될까봐 웃으면서 말했다.

[여섯분의 도형에게 조금 전에는 실례를 하였읍니다. 그러나 당신들은 이미 말씀을 하고 싶은 대로 했지 않았읍니까? 그만큼 했으면 되지 않습니까? 만약 계속해서 말을 하여 영호 장문인이 화가 나면 당신들에게 종신아혈(終身啞穴)을 찍으실 겁니다. 그렇게 된다면 당신들은 어떻게 되는지 아시겠죠.]

도곡육선들은 깜짝 놀라 일제히 물어 보았다.

[종신아혈이 무엇입니까?]

충허는 말했다.

[그 종신아혈이 찍히면 평생 벙어리가 되어 말을 할 수가 없읍니다. 그러나 밥을 먹고 술을 마시는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읍니다.]
도곡육선들이 일제히 떠들었다.

[말하는 것이 첫째이고 밥먹고 술 마시는 일은 그 다음이다.]
충허는 말했다.

[당신들이 조금 전에 했던 말은 한마디도 다시 해서는 안 됩니다. 영호 장문이 당신은 방증대사와 빈도의 체면을 봐서 그들의 종시아혈을 찍지 마십시오. 방장대사와 이 빈도가 그들 여섯형제가 탁자 아래서 당신과 임소저가 말하는 말을 훔쳐 들었는데 절대로 한글자도 누설하지 않을 것을 보장합니다.]

도화선은 말했다.

[억울합니다. 억울합니다. 우리는 훔쳐들은 것은 아닙니다. 목소리가 귀속으로 들어오니 무슨 방법이 있었겠읍니까?]

충허는 말했다.

[당신이 들었다 해도 탓할 사람은 그 누구도 없읍니다. 그러나 듣고 나서 함부로 말한다면 그것은 절대로 안 됩니다.]
도곡육선들은 일제히 말했다.

[좋습니다. 좋습니다. 우리들은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말하지 않겠읍니다.]

도근선은 말했다.

[그러나 일월교 성교주의 그 여덟글자를 바꾸었는데 그것도 말을 할 수가 없읍니까?]

영호충은 크게 일갈을 하였다.

[말할 수 없소. 그 말은 더욱 말할 수 없소.]

도지선은 중얼중얼 대었다.

[말할 수 없다면 말하지 않겠읍니가. 당신과 임소저는 말할 수가 있고 우리는 말할 수가 없읍니다.]

충허는 내심 답답하였다.

(일월교의 그 여덟글자가 이미 바뀌었다니 그 여덟글자는 틀림없이 천추만재 일통강호일텐데 임소저가 교주가 된 후 일통강호를 하지 않겠다면 무슨 글자로 고쳤단 말인가?)

삼년 후 어느날 항주 서호에 고산매장에는 초롱불과 오색실이 매달려 있었고 울긋불긋 장식이 되어 있었다. 그날은 바로 영호충과 영영이 결혼하는 좋은 날이었던 것이다.
이때 영호충은 이미 항산파 장문인의 자리를 의청에게 물려 주었다. 의청은 강력하게 의림에게 자리를 양보하려고 하였다. 의림이 항산의 복수를 갚고 사부님의 원한을 갚았으니 당연히 장문인의 자리는 의림이 맡아야 한다고 극구 사양했었다. 그러나 의림은 아무리 뭐라해도 대답을 하지 않았고 너무 당황해서 울어 버렸던 것이다. 그리하여 영호충의 의도에 따라서 의청이 장문인의 자리에 앉고 항산문호를 관리하였다. 영영 또한 일월교의 교주 자리를 사양하고 상문천에게 물려주었다. 상문천은 비록 호탕하고 야심에 찬 인물이었으나 여러파를 병합시키는 그런 야심은 없었다. 수년동안 강호에서는 태평하고 아무 큰일이 없었다.
이날 축하를 하려고 온 강호의 호걸들은 매장에 꽉 들어 차 있었다. 예식이 끝나고 주안이 거의 끝나가려고 할 때 군웅들은 신랑과 신부에게 검무를 추어보라고 요구하였다.
영호충의 검법이 절묘하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었으나 축하하러 온 사람들 가운데 그의 검법을 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했다.

[오늘 칼을 쓰고 검을 쓴다면 너무나 살풍경하지 않습니까? 제가 신부와 함께 한곡을 연주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군웅들은 일제히 소리를 지르며 갈채를 보냈다. 즉시 영호충은 요금 옥소(搖琴玉蕭)를 꺼내더니 옥소를 영영에게 건네주었다. 영영은 면사포를 걷어올리지 않고 섬섬옥수를 내밀더니 옥소를 받아들고 영호충과 함께 합주를 하기 시작하였다.
두 사람이 연주하는 곳은 바로 소오강호(笑傲江湖)의 곡이었다.
삼년 동안 영호충은 영영의 가르침을 받아 금타는 이치를 더욱 터득하게 되어 신운(神韻)의 경지에 이르렀다.
영호충은 그날 형산성 밖 황량한 들판에서 처음으로 형산파의 유정풍과 일월교의 장로인 곡양(曲洋)이 곡을 합주한 때를 생각하였다.
두 사람은 서로 막연한 사이였으나 교파가 서로 다르다는 이유 때문에 서로 친구로 합해지지 못하고 결국은 둘다 목숨을 잃었던 것이다. 오늘 자기는 영영과 결혼을 하게 되었으며 교파는 다르지만 그들처럼 불행하게 되지는 않았다. 이 곡을 지은 사람과 비교해 볼 때 퍽이나 행운이었다. 또, 유정풍, 곡양 두 사람이 합심하여 이 곡을 지은 원인은 바로 두파가 화목하게 지내고 그동안 맺혔던 원한을 풀 수 있기를 어느 정도 바라는 마음에서였는데 지금 부부가 합심해서 연주를 하니 결국은 유정풍, 곡양 두 사람의 소원을 풀었다고 생각했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두 사람의 연주는 더욱 화기애애하였다. 군웅들은 모두가 음악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황홀하게 듣고 있었다. 이 곡을 마치자 군웅들은 너도나도 갈채를 보내고 신방을 물러나왔다.
영호충은 일일이 그들과 인사를 하고 방문을 걸어 잠궜다. 그런데 갑자기 담밖에서 은은하게 몇차례의 호금(胡琴) 소리가 들려왔다.
영호충은 기뻐서 말을 했다.

[막대사백께서......]

영영은 낮은 소리로 말했다.

[아무말도 하지 마세요.]

호금의 소리는 간드러지고 퍽이나 멋졌다. 그것은 봉구황(鳳求凰)이라는 곡이었다. 그러나 곡속에는 처량하고 애수가 담뿍 들어 있었다.
영호충은 내심 무안하게 기뻤다.

(막대사백께서는 돌아가시지 않았구나. 그가 오늘 이곳에 와서 곡을 연주하는 것은 영영과 나의 결혼을 축하하러 오신 것이다.)
금소리는 점점 멀어졌다가 나중에는 곡이 끊나면서 금소리는 더이상 들리지 않았다.
영호충은 가볍게 몸을 돌려 영영의 얼굴에 쳐있던 면사포를 걷었다.영영이 살짝 웃으니 새빨간 촛불 아래서 정말로 아름답기가 옥과 같았다. 갑자기 일갈을 하였다.

[나오시오.]

영호충은 멈칫하여 내심 생각하였다.

(누굴 보고 나오라고 하는 것인가?)

영영은 웃으면서 일갈을 했다.

[계속 안 나오시면 나는 물을 처 부어버릴 거예요.]

침대밑에는 여섯명의 모습이 나타났다. 바로 도곡육선들이었다.
여섯사람은 침대밑에 숨어서 신랑과 신부의 말소리를 엿듣고 그리고 나서 대청에 나가 군웅들에게 으스대려고 하였다.
영호충은 피로하고 술에 취해 있었기 때문에 주의를 하지 못했다. 영영은 세심한 사람이라 그 여섯사람의 호흡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영호충은 껄껄껄 크게 웃더니 말했다.

[여섯 도형 하마터면 당신들의 함정에 걸려들 뻔했소.]
도곡육선들은 신방을 걸어나와서 목소리를 크게 하고 외쳤다.

[천추만재 영원히 부부가 되기를 빕니다. 천년만년 동안 영원히 부부가 되시오.]

충허는 마침 대청에서 방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도곡육선들이 외치는 소리를 듣고 빙긋 웃었다. 삼년 동안 마음속에 묻혔졌던 수수께끼가 비로소 풀리었다. 알고 보니 그날 영호충과 영영이 관음당에서 천년만년 동안 영원히 부부가 되기를 맹세하였는데 도곡육선들은 그것을 일월신교의 새로운 구호로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사 개월 뒤 바로 꽃들이 만발한 봄의 계절이었다. 영호충과 영영은 신혼의 재미를 만끽하고 함께 손을 잡고 화산에 갔다.
영호충은 아내를 데리고 가서 태사숙 풍청양을 만나뵙고 그가 검을 전수해준 은혜에 감사를 드리려고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화산의 오봉삼령(五峯三嶺)을 다 뒤졌지만 결국 풍청양의 행정을 찾을 수가 없었다.
영호충은 실망한 빛이 역력했다.
영영이 말했다.

[태사숙은 정말로 도인이십니다. 그의 행적은 누구도 알지 못할 것입니다. 아마 구름을 타고 어디론가 가셨겠지요.]

영호충은 탄식을 하며 말했다.

[태사숙께서 검술이 신통할 뿐 아니라 그 어른의 내공의 수양은 참으로 이 세상에서 둘도 없을 겁니다. 삼년 동안 나는 그 어르신께서 전해주신 내공을 연마하여 몸속에 들어있던 다른 진기를 거의 없앨 수 있었읍니다.]

영영은 말했다.

[그건 소림사의 방증대사에게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풍 태사숙을 뵙지 못할 바에는 내일 소림사에 가서 방증대사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방증대사께서 신공을 대신해 전수해 주셨고 또한 많은 가르침을 주었기 때문에 그 역시 사부님이라고는 할 수 있지요. 응당히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영영은 입을 삐죽거리며 웃으면서 말했다.

[충 오라버니 당신은 오늘까지도 모르고 있군요. 당신이 배운 것은 바로 소림파의 역근경(易筋經)의 내공입니다.]

영호충은 아 하고 소리를 지르며 몸을 벌떡 일으켜세우더니 말했다.

[이건...... 내가 배운 것이 역근경이란 말입니까? 당신이 그걸 어찌 아시오?]

영영은 웃으면서 말했다.

[그날 나는 당신에게서 이 내공이 바로 풍태사숙께서 도곡육선들로 하여금 구결을 가지고 방증대사에게 알려서 전수 받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마음속에 의심이 일었지요. 이 내공은 정묘라고 오묘한 것이라 연마를 할 때 약간이라도 비뚤어지게 나가면 마치 기름을 가지고 불속을 뛰어드는 것과 같고 곧바로 생명에 지장이 있는데 어찌 도곡육선들은 입만 살고 정신들이 맑지 못한 사람들인데 어찌 그것을 분명하게 말할 수가 있겠읍니까? 방증대사는 비록 풍태사숙이 그들로 하여금 강제로 외우게 했다고 말씀은 하셨지만 그것은 너무나 위험한 처사였읍니다. 그래서 내가 나중에 그 여섯 형제에게 물어보았죠 그들은 틀림없이 사실이라고 딱 잡아떼었읍니다. 그러나 내가 그들에게 몇마디 외워 보라고 하자 한명은 벌써 깨끗하게 잊어버렸다고 하고 한명은 방증대사에게만 말할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는 말할 수 없다고 하였읍니다. 여섯 사람은 계속해서 말하자 앞뒤가 맞지 않았고 무엇인가 헛점이 나왔읍니다. 나중에는 그들은 자기 꾐에 빠져 잡아뗄 수가 없었읍니다. 비로소 방증대사께서 당신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그랬다고 말을 해주었지요.
그런 사실을 당신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 풍태사숙을 빌렸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당신에게 비밀로 하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영호충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도 않고 한참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영영은 또 말했다.

[그러나 풍태사숙께서 그들로 하여금 소식을 전하라고 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읍니다. 풍태사숙께서는 그들 여섯형제로 하여금 일월교가 항산을 공격하려고 하니 소림, 무당 두파가 도와주라는 말을 전하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당신도 정말 나쁜 사람이군요. 벌써 그런 일을 알았다면 어째서 나에게 말을 해주지 않고 오늘에서야 말을 합니까?]

영영은 웃으면서 말했다.

[그 옛날 소림사에서 당진의 고집이 너무나 세었읍니다. 방증대사께서 당신보고 소림사에 들어오라고 하고 그래야만이 당신에게 역근경을 전수해 주겠다고 하시지 않았읍니까? 그러나 당신은 그 누가 뭐라해도 승낙하지 않고 소림사를 박차고 나오지 않았읍니까? 방증대사가 다시 역근경을 전수해주겠다는 말을 다시 거론하면 당신의 고집이 발작하여 차라리 생명을 버릴망정 배우지 않을 것이라는걸 방증대사께서 아셨지요. 그렇게 된다면 어찌 큰일이 아닙니까? 그래서 방증대사는 어쩔 수 없이 풍태사숙의 이름을 빌려 당신으로 하여금 화산파의 내공인 줄로 여기게 하고 역근경을 배우도록 하였읍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음, 맞소이다. 당신이 줄곧 나에게 말해주지 않을 것은 내 고집이 발작하여 배우지 않을까봐 염려되어서 그랬겠지요. 지금 내 몸 안에 있는 진기가 모두 없어져 버렸으니 오늘에서야 비로소 그 사실을 털어놓는군요.]

영영은 또 입을 삐죽거리며 웃더니 말했다.

[당신의 그 고집은 누구도 꺽을 수가 없읍니다.]

영호충은 한숨을 길게 쉬고 그녀의 손을 꽉 잡으며 말했다.

[영영, 그때 당신이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소림사에 간 것은 방증대사에게 나에게 역근경의 내공을 전수해 달라고 부탁하러 간 것이 아니오. 당신은 비록 죽지 않았지만 방증대사께서는 당신과의 약속을 이행하지 못했다고 여기셨겠지요. 그분은 무림에서 약속을 제일 중히 여기시는 분이어서 결국 이렇게 그분은 나에게 심공을 전수해 주신 겁니다. 이것은 당신의 생명과 바꿔 얻은 공력인데 내가 아무리 죽음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이라 해도 어찌 당신의 정성을 저버릴 수 있겠읍니까? 그 어찌 내가 당신의 정성을 저버리고 연마하지 않겠소?]

영영은 낮은 소리로 말했다.

[나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읍니다. 단지 마음속으로 염려가 되었지요.]

영호충은 말했다.

[우리 산을 내려가 소림사로 갑시다. 역근경을 배웠으니 별수 없이 소림사로 출가를 하여 중이 되어야 하겠군요.]

영영은 그가 우스개소리로 하는 것을 알고 말했다.

[당신 같은 땡중은 어떤 절에서도 받아 주지 않을 것입니다. 소림사는 계율이 엄하고 깨끗한 곳이라 아마 한나절도 못 가서 당신과 같은 땡중은 쫓겨나올 것입니다.]

두 사람은 정답게 손을 잡으면서 길을 재촉하였다.
영호충은 영영이 계속해서 두리번 거리며 마치 무엇을 찾는것 같은 모습을 보자 물어보았다.

[당신은 무엇을 찾고 있읍니까?]

영영은 말했다.

[잠시 당신에게는 말을 하지 않겠읍니다. 찾게 되면 자연히 알게 될 것입니다. 이번에화산에 와서 풍태사숙을 만나 뵙지 못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을 만나보지 못한다면 그 또한 아까운 일이지요.]

영호충은 이상해서 물어보았다.

[우리가 또 한분을 만나뵈야 합니까? 그분은 누구입니까?]
영영은 웃기만 할 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있다가 말을 했다.

[당신이 임평지를 매장의 지하 감옥속에다 가둬두신 일은 매우 잘한 일입니다. 당신 소사매가 임평지의 일생을 보살펴 달라고 했을 때 당신은 승낙을 하지 않았읍니까? 그는 컴컴한 감옥 속에 있지만 먹을 것도 있고 입을 것도 있고 그 누구도 그를 해치는 자가 없으니 확실히 그의 평생을 보살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또 다른 당신의 친구에게 아주 특별히 보살피는 방법을 생각해 내었지요.]

영호충은 더욱 이상하였다. 내심 생각하기를

(나의 또 다른 친구라니 그 친구가 누구란 말인가?)

그는 자기 아내가 엉뚱한 짓을 잘 하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가 말을 하려 하지 않자 더이상 물어봐도 쓸데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날 두 사람은 영호충이 옛날에 묵던 방에서 달을 벗삼아 술을 마셨다. 영호충은 비록 어여뿐 아내를 앞에 두고 있지만 옛날 일이 떠오르자 퍽이나 슬픈 감정이 되었으며 열몇 잔의 술을 마시자 비로소 취기가 올라왔다.
영영은 갑자기 기쁜 표정을 짓더니 술잔을 내려놓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

[아마 그가 온 것 같습니다. 우리 가서 구경이나 해봐요.]
영호충은 맞은편 산에서 몇마리의 원숭이들이 울부짓는 소리를 들었다. 영영은 누가 왔다고 했는데 그는 누가 왔는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그녀를 따라 방 밖으로 나갔다.
영영은 원숭이 울음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맞은편 언덕에 올라갔다. 영호충이 그녀의 뒤를 따라가 보니 달빛 아래서 일곱 여덟 마리의 원숭이가 함께 있었다. 화산에는 원숭이가 많이 있었으므로 별다르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원숭이 무리 중에서 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노덕약이었다. 그는 기쁨과 노여움이 교차되어 몸을 돌려 집에 있는 검을 가지러 가려고 하였다.
영영은 그의 발목을 잡더니 낮은 소리로 말했다.

[우리 조금만 더 다가 가서 그들의 행동을 자세히 관찰합시다.]
두 사람이 다시 십여장 가까이 다가가니 노덕약은 두마리의 크나큰 원숭이 사이에 끼어 있는 것이 보였다. 두 마리의 원숭이는 그를 질질 끌고 있었으며 노덕약은 자유자재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는 무공이 높아 두 마리의 원숭이를 상대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으나 항거할 힘이 없어 보였다.
영호충은 깜짝 놀라 물어 보았다.

[저것은 무슨 연고이오.?]

영영은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은 쳐다보기만 하세요. 천천히 말씀드리겠읍니다.]
원숭이들은 성격이 난폭하여 이리저리 뛰며 조금도 쉬지를 않았다. 노덕약은 두마리의 원숭이에 잡혀서 이리저리 끌려가고 있었다. 어쩌다가 신음소리라도 나면 두마리의 원숭이는 그의 얼굴을 할퀴었다.
영호충은 이때서야 분명하게 볼 수가 있었다. 알고 보니 노덕약의 우측손은 우측 원숭이의 팔목, 좌측손은 좌측 원숭이의 팔뚝과 연결되어 있었다. 연결되어 있는 것은 쇠사슬 따위인 것 같았다.
그는 무엇인가 깨닫더니 물어보았다.

[이것은 당신이 만들어낸 걸작품이오.]

영영은 말했다.

[어떻습니까?]

영호충은 말했다.

[당신이 노덕약의 무공을 없애 버렸읍니까?]

영영은 말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자기 스스로 그렇게 했을 뿐입니다.]
원숭이 무리들은 사람소리가 들리자 꽥꽥 몇번이고 소리를 지르더니 노덕약을 데리고 재를 넘어 사라져 버렸다.
영호충은 본래 노덕약을 죽여 육후아의 복수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가 고통을 당하고 있는 걸 보니 목에다 칼을 꽂는 것보다 효과가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죽이지 않기로 작정을 하였다. 내심 생각하기를, (네놈은 간계하기 짝이 없는 놈이다. 그 악독함이야말로 임사제를 능가하는 놈이다. 응당히 네놈에게 더 많은 고통을 줘야한다.)
그래서 말하기를, [알고 보니 며치 동안 당신은 줄곧 나에게 이자의 꼴을 보여주려 했군요.]

영영은 말했다.

[그날 나의 아버님이 조양봉에 계셨을 때 이자가 올라와서 벽사검법의 검보를 아버지에게 드리겠다고 아양을 떨었읍니다. 아버지는 그에게 무슨 마음으로 벽사검보를 주려느냐고 하자 그는 일월교에 장로가 되고 싶다고 하였읍니다. 아버지는 그와 말할 시간이 없어서 다른 사람보고 그를 지키라고 하였지요. 나중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모두들 한참 바빠서 그 누구도 그를 살펴보지도 못했읍니다. 그래서 그를 데리고 흑목애를 갔었지요. 얼마나 지나자 나는 그때 일이 생각나서 그를 데려다 물어보았지요. 알고 보니 그는 스스로 그 검법을 연마 했는데 익히는 요령을 몰라 자기 스스로가 자기의 무공을 없애버린 결과가 되었지요. 이 사람은 바로 당신 육사제를 살해한 원흉입니다. 당신 육사제는 원숭이를 좋아했으므로 나는 사람들 보고 두마리의 원숭이를 데려와 그와 함게 묵도록 하였고 화산에 풀어놓아 주었읍니다.]

말을 하면서 손을 내밀어 영호충의 손목을 거머 쥐더니 탄식을 하며 말했다.

[뜻밖에 나 임영영도 한마리의 크나큰 원숭이에게 목덕리를 잡혀서 더이상 헤어질 수가 없게 되었읍니다.]

말을 하면서 피식 웃는 영영의 귀엽고 아름다운 모습이란 뭐라 형용할 길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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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오강호 제 8 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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