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 8

단차 | 2023.11.20 11:54:32 댓글: 2 조회: 232 추천: 1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19276
08

  얼마 되지 않아 나는 그 꽃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다. 어린 왕자의 별에는 그곳에서 계속 자라온 꽃들이 있었다. 홑겹 꽃잎을 두른 단순하기 그지없는 꽃들로, 자리를 차지하지 않아 걸리적거리지 않았으며 아침이면 풀숲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가 저녁이면 사그라들었다. 그에 비해 어린 왕자의 꽃은 어딘지 모를 곳에서 날아든 씨가 움터 자린 것으로, 이제까지의 싹들과 닮지 않은 그 여린 싹을 어린 왕자는 아주 가까이서 살폈다. 새로운 종류의 바오밥나무이지 싶었다. 그런데 그 떨기나무는 이내 자라기를 멈추더니 꽃피울 준비에 돌입했다 탐스러운 꽃봉오리가 자리잡는 것을 지켜본 어린 왕자는 그곳에서 기적 같은 무언가가 등장하리란 걸 감지했다. 하지만 꽃은 초록 방안에 숨어 계속해 단장만 했다. 정성껏 색을 고르고 느긋이 꾸미고 꽃잎 하나하나를 손보았다. 양귀비꽃이 펼쳐질 때처럼 구깃구깃 나오기는 싫었던 거다. 멋 부리기를 엄청나게 좋아하는 꽃이었다. 맞다. 신비스러운 단장은 그렇게 며칠이고 계속되었고, 그러던 어느 아침, 해가 떠오르던 바로 그 순간, 마침내 꽃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도 공들여 단장을 마쳤으면서도, 꽃은 하품하며 이렇게 말했다.
"아! 미안해요. 이제 막 잠을 깨서... 몰골이 엉망이네요..."
  어린 왕자는 꽃의 아름다움에 감탄을 멎을 수가 없었다.
"와, 너무 아름다워요!"
"그렇죠?" 꽃이 나지막이 대답했다. "나는 해랑 같은 순간에 태어났답니다."



  그리 겸손한 꽃이 아님을 어린 왕자는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마음을 너무나 매료시키는 꽃이었다. 꽃은 곧 덧붙였다.
"아침 먹을 시간 같은데. 저를 좀 챙겨주실 수 있겠지요?"
  어리둥절해진 어린 왕자는 시원한 물이 든 물뿌리개를 찾아와 꽃에 부어 주었다.






  조금은 변덕스런 꽃의 허영심은 이런 식으로 어린 왕자를 금세 지치게 했다. 어떤 날에는 자신이 지닌 4개의 가시 얘기를 들려주며 어린 왕자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호랑이가 내게 덤벼들 수도 있다고요!"
"이 별에는 호랑이가 없답니다. 더군다나 호랑이는 풀 같은 건 먹지도 않고요." 어린 왕자가 반박했다.
"난 풀이 아니잖아요." 꽃이 나지막이 대답했다.
"아, 미안해요..."
"호랑이는 하나도 안 무서운데 바람은 질색이에요. 바람막이는 없으려나요?"
'바람이 질색이라고... 식물인데 참 안됐네. 꽤나 까다로운 꽃이야.'
  어린 왕자는 알아차렸다.
"저녁에는 내게 유리 덮개를 씌워 주세요. 당신 별은 매우 춥네요. 살기 별로예요. 전에 내가 있던 곳은 말이죠..."





  꽃은 하려던 말을 멈추었다. 씨의 모습으로 이곳에 온 꽃이 아니었던가. 다른 세상에 대해 알 리가 없었다. 그토록 어설픈 거짓말을 하려던 자신이 부끄러워진 꽃은 어린 왕자에게 탓을 돌리고자 기침을 두세 번 내뱉었다.
"바람막이는 어떻게 됐죠?"
"막 가지러 가던 참이었는데 말을 거시길래..."
그러자 꽃은 어떻게든 어린 왕자가 자책을 느끼도록 억지기침을 더 심하게 해댔다.





  이런 식이다 보니 어린 왕자는 꽃을 아끼는 선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오래지 않아 꽃을 의심하게 되고 말았다. 별거 아닌 말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면서 그는 몹시 불행해졌다.
"꽃의 말을 듣지 말아야 했어."
어느 날 어린 왕자는 내게 털어놓았다.
"꽃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는 게 아니야. 그저 바라보고 향기를 맡으면 되는 거야. 내 꽃은 내 별을 향기롭게 만들어 주었는데 나는 그걸 누릴 줄 몰랐어. 내 속을 달달 볶던 발톱 이야기도 안쓰럽게 여겼어야 했는데..."
  그는 계속해서 털어놓았다.
"그때 나는 아무것도 이해할 줄 몰랐어.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보고 판단했어야 했는데. 내게 향기를 주고 환한 마음을 만들어준 꽃이었건만... 아, 도망쳐 나오지 말았어야 했어. 어설픈 꾀뒤로 숨겨 둔 내 꽃의 상냥한 마음을 눈치챘어야 했어. 꽃이란 그렇게 모순덩어리인데! 난 너무 어려서 내 꽃을 사랑하는 법을 몰랐던 거야."






추천 (1) 선물 (0명)
IP: ♡.234.♡.144
눈부신해님 (♡.104.♡.13) - 2023/11/20 12:09:59

단자님덕분에 한글버전 읽을수 있게 되네요
집에 중국버전만 있어요

단차 (♡.234.♡.144) - 2023/11/20 12:13:00

네 눈부신해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드려요 ㅋㅋ

23,662 개의 글이 있습니다.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조회
단차
2023-11-28
1
318
단차
2023-11-28
0
280
뉘썬2뉘썬2
2023-11-28
1
311
뉘썬2뉘썬2
2023-11-28
1
271
단차
2023-11-25
0
255
단차
2023-11-25
1
330
단차
2023-11-24
1
313
단차
2023-11-24
3
769
단차
2023-11-23
2
414
단차
2023-11-23
2
314
단차
2023-11-23
1
269
단차
2023-11-23
2
297
뉘썬2뉘썬2
2023-11-23
0
216
뉘썬2뉘썬2
2023-11-23
0
250
뉘썬2뉘썬2
2023-11-23
1
278
단차
2023-11-22
1
313
단차
2023-11-22
1
172
단차
2023-11-22
1
276
단차
2023-11-22
1
191
단차
2023-11-22
0
198
단차
2023-11-21
1
170
단차
2023-11-20
1
273
단차
2023-11-20
1
232
단차
2023-11-20
2
299
단차
2023-11-20
1
233
단차
2023-11-20
2
360
단차
2023-11-19
1
274
단차
2023-11-19
2
245
단차
2023-11-18
0
336
단차
2023-11-18
1
249
모이자 모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