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크밤

거울나라의 앨리스 제1장

나단비 | 2024.02.24 23:10:48 댓글: 0 조회: 147 추천: 1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49571
거울나라의 앨리스


순수하고 환한 이마와
경이를 꿈꾸는 눈동자를 지닌 이여!
비록 시간이 흐르고, 나와 그대가
인생의 반으로 갈라지더라도,
그대의 사랑스러운 미소는
동화 속의 사랑-선물을 찬미하리라.
 
나는 그대의 빛나는 얼굴도 보지 못했고
그대의 은구슬 같은 웃음도 듣지 못했네.
그대 어린 인생의 미래에
내 자리가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다네.
지금 그대가 내 동화에
귀 기울여 주는 것으로 만족할 뿐.
 
여름의 태양이 뜨겁게 타오르던
지난날, 이 이야기는 시작되었지.
우리의 노젓기에 박자를 맞추던
소박한 종소리.
그 소리가 아직도 기억 속에 쟁쟁하네.

비록 시샘 많은 세월은 ‘잊으라’고 말하지만.
 
그러므로 어서 와서 들으렴.
가혹한 세월에 시달린 두려움의 목소리가
그대를 반갑지 않은 침상으로 부르기 전에.
우울한 아가씨여!
우리는 단지 임종의 시간이 가까운 것을 알고 초조해하는
좀더 나이 든 어린아이들일 뿐.
 
집 밖에는 눈앞을 가리는 눈과 서리,
폭풍의 우울한 광기 -
집 안에는 벽난로 불빛의 빨간 열기와
어린 시절 보금자리의 즐거움.
마법의 말들이 순식간에 그대를 사로잡으리.
그대는 미쳐 날뛰는 돌풍을 알아채지 못하리라.
 
비록 이야기 속에서
한숨의 그림자가 가냘프게 떨릴지 모르지만.
‘행복한 여름날’은 지나갔기에,
여름날의 영광은 사라졌기에-
하지만 고통의 한숨도
우리 이야기의 즐거움을 시들게 하지는 못하리라.




제1장 거울 집



하나는 확실했다. 그 하얀 새끼고양이는 그것과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그것은 순전히 검은 새끼고양이의 잘못이었다. 하얀 새끼고양이는 벌써 20분 전부터 어미고양이가 얼굴을 닦아주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새끼고양이는 꽤 참을성 있게 굴고 있었다.) 따라서 어떤 잘못을 저지를 틈이 없었다.

다이나가 자기 새끼의 얼굴을 닦아주는 방식은 이랬다. 먼저 한쪽 앞발로 가엾은 새끼고양이의 귀를 잡아 누르고, 그런 다음 다른 쪽 앞발로 새끼고양이의 얼굴 전체를 코에서부터 마구 문질렀다. 바로 지금도, 말했듯이 다이나는 새끼고양이를 닦아주는 데 열중하고 있었고, 하얀 새끼고양이는 꼼짝 않고 누워서 목에서 가르랑 소리를 쥐어짜고 있었다. 이것은 하얀 새끼고양이가 착하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그러나 검은 새끼고양이는 오후에 일찌감치 세수를 끝낸 상태였다. 그래서 앨리스가 커다란 팔걸이 의자에 웅크리고 앉아서 혼자 중얼거리다가 또 졸다가 하면서 감고 있던 털실 뭉치를 가지고 심한 장난을 쳤다. 그 녀석은 털실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마침내 완전히 풀어놓고 말았다. 그러고는 털실을 온통 헝클어놓은 난로 깔개 한가운데에서 자기 꼬리를 잡으려고 빙빙 돌고 있었다.

“어머, 넌 정말 못된 장난꾸러기로구나!”

잘못을 깨닫게 하려고, 앨리스는 새끼고양이를 잡아서 살짝 입을 맞추며 나무랐다.

“다이나가 너에게 예의범절을 가르쳤어야 했는데. 얘, 다이나, 정말 네가 잘못한 거야!”

앨리스는 어미고양이를 꾸짖듯이 바라보며, 되도록 언짢은 말투로 나무랐다. 그런 다음 앨리스는 새끼고양이와 헝클어진 털실 꾸러미를 안고 팔걸이 의자로 돌아와서 다시 털실을 감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끔은 고양이에게, 또 가끔은 혼잣말을 내내 중얼거렸기 때문에 실을 감는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었다. 고양이는 앨리스의 무릎에 새침하게 앉아서 실이 감기는 것을 구경하는 척하며, 때때로 도와주고 싶다는 듯이 앞발을 내밀어서 털실 뭉치를 슬쩍 건드렸다.

“내일이 무슨 날인지 아니, 키티야? 나와 함께 창 앞에 있었으면 알았을 텐데, 마침 다이나가 너를 닦아주고 있던 때라서 그럴 수가 없었지. 나는 남자 아이들이 모닥불에 나뭇가지들을 던지는 것을 보고 있었어. 모닥불을 피우려면 나뭇가지들이 많이 필요하거든. 하지만 날씨가 너무 추워지고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갔단다. 속상해하지 마, 키티야, 내일 모닥불을 보러 가자꾸나.”

그리고 앨리스는 털실이 어울리는지 보려고 고양이의 목에 털실을 두세 바퀴 감아보았다. 그러다가 털실을 마룻바닥으로 떨어뜨렸고, 털실은 다시 2∼3미터쯤 굴러갔다.

“내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아니, 키티.”

다시 의자에 돌아와서 앉자마자, 앨리스는 계속 중얼거렸다.

“네가 저질러놓은 짓을 보았을 때, 정말이지 창문을 열고 너를 눈 오는 바깥으로 내쫓고 싶었어! 넌 벌을 받아야 해, 요 작은 장난꾸러기야! 혼자 뭐라고 중얼거리니? 입 다물고 들어!”

앨리스는 계속 말하며 손가락 하나를 세웠다.

“네가 저지른 잘못을 모두 말해 줄게, 잘 들어. 첫번째, 오늘 아침에 다이나가 네 얼굴을 닦아주는 동안 너는 두 번이나 낑낑거렸어.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겠지, 키티. 뭐라구! 어쨌다고?”

(키티가 계속 말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다이나 앞발이 네 눈을 찔렀다고? 어머, 그건 네 잘못이지. 눈을 뜨고 있어서 그래. 눈을 꼭 감고 있었으면, 괜찮았을 거야. 이제 변명하지 말고, 잘 들어! 두 번째 잘못. 내가 스노드롭 앞에 우유 접시를 내려놓으니까 스노드롭 꼬리를 물고 잡아당겼지! 뭐라고, 목이 말랐었다고? 그럼 스노드롭은 목이 마르지 않았겠니? 마지막으로 세 번째 잘못. 너는 내가 보지 않을 때마다 털실을 계속 풀어놨지!”

“그게 네가 저지른 세 가지 잘못이야, 키티. 그런데 넌 아직 벌을 하나도 받지 않았어. 다음주 수요일까지 네가 받아야 할 벌을 모두 모아둘 거야. 사람들이 내 잘못에 대한 벌을 모두 모아두면 어떻게 될까?”

이제 앨리스는 새끼고양이가 아니라 자신을 향해 중얼거리고 있었다.

“연말에 무슨 일이 생길까? 난 감옥에 가야 될 거야. 그날이 왔는데, 벌이 잘못 하나마다 저녁을 한 끼 굶는 거라고 생각해봐. 그러면, 그 끔찍한 날이 오면, 나는 한꺼번에 저녁을 50끼나 굶어야 되겠지! 음, 그건 괜찮아! 50끼나 먹어야 되는 것보다 굶는 게 훨씬 더 나으니까 말이야!”

“키티, 눈이 창틀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니? 참 듣기 좋은 소리야! 마치 누가 밖에서 창문 여기저기에 입을 맞추는 것 같아. 눈이 나무와 들판을 사랑해서, 그렇게 부드럽게 입을 맞추는 게 아닐까? 그런 다음 새하얀 누비이불처럼 포근하게 덮어주는 거야. 어쩌면 ‘잘 자라, 얘들아. 여름이 다시 올 때까지.’ 이렇게 말을 하는지도 모르지. 키티, 그러다가 여름이 오면 나무와 들판은 온통 초록빛으로 물들고 바람이 불 때마다 춤을 추는 거야. 아아, 그럼 얼마나 예쁠까!”

앨리스는 저도 모르게 박수를 치면서 털실 뭉치를 떨어뜨렸다.

“진짜 그런 거라면 좋겠다! 나뭇잎들이 갈색으로 변하는 가을엔 숲이 꾸벅꾸벅 조는 게 틀림없어.”

“키티야, 우리 체스 둘까? 웃지 마, 나는 진지하게 묻는 거야. 우리가 체스를 두고 있으면, 마치 다 아는 것처럼 지켜봤잖니. 그리고 내가 ‘장군!’을 부르면 넌 목을 가르랑거렸잖아! 음, 그건 멋진 장군이었어, 키티. 정말로 이길 수도 있었는데. 그 비열한 기사가 내 말들 사이에서 몰래 기어나오지만 않았어도 말이야. 키티, 우리 상상해보자.”

그런데 내가 앨리스가 즐겨 쓰는 “상상해보자”라는 말 다음에 계속 이어가곤 하는 이야기들을 절반이나마 옮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제 앨리스는 언니와 상당히 긴 말다툼을 했다. 앨리스가 “우리가 왕과 여왕들이라고 상상해보자”라고 말한 것이 원인이었다. 정확한 것을 좋아하는 언니는 둘밖에 없는데 그렇게 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고, 앨리스는 결국 “그럼 언니가 왕이든 여왕이든 하고, 내가 나머지 모두의 역할을 할게”라고 물러섰다. 앨리스는 나이 든 유모의 귀에 대고 갑자기 “유모! 내가 배고픈 하이에나이고, 유모가 뼈다귀라고 상상해봐요”라고 소리를 질러서 유모를 기겁하게 만든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젠 앨리스가 고양이에게 하는 이야기에 다시 귀를 기울여보자.

“네가 붉은 말의 여왕이라고 상상하는 거야, 키티! 허리를 펴고 앉아서 팔짱을 끼면 꼭 그렇게 보일 거야. 자, 이제 해봐, 이렇게!”

그리고 앨리스는 탁자 위에서 붉은 말의 여왕을 집어서 흉내내기 쉽도록 키티 앞에 놓아주었다. 그렇지만 앨리스는 성공하지 못했다. 우선 고양이가 팔짱을 끼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벌을 주려고, 앨리스는 거울 앞으로 고양이를 들어올려서 자신이 얼마나 화가 났는지 보도록 했다.

“똑바로 하지 않으면, 너를 거울 속의 집에 집어넣을 거야. 그러면 좋겠니?”

“자, 얌전히 잠자코 있으면, 내가 거울 속의 집에 대해서 상상한 것들을 모두 말해줄게. 저긴 물건들이 반대로 있는 것만 빼면 우리 집 거실하고 아주 똑같단다. 의자 위에 올라서면 저 안을 볼 수가 있어. 벽난로 뒤만 빼고 말이야. 아아! 벽난로 뒤를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겨울에 저 난로에 진짜로 불을 피우는지 어떤지 너무 궁금해. 하지만 우리 벽난로에 불을 피우지 않는 한, 도무지 알 수가 있어야지. 우리 난로에 불을 피우면 저 방의 난로에서도 연기가 피어오르지만, 그건 불을 피운 것처럼 보이려는 속임수인지 모르잖아. 그리고 말이야, 저 책들은 글자가 반대로 쓰여 있는 것만 빼면 우리 책들과 비슷하단다. 내가 책을 한 권 들고 거울 앞에 서면, 저 방에서도 책을 들고 서기 때문에 그걸 알 수가 있어.”
 
“거울 속의 집에서 살면 어떨 것 같아, 키티? 저기에서도 너에게 우유를 줄까? 어쩌면 거울 속의 우유는 먹을 수 없는 것인지도 몰라. 하지만, 어머, 키티! 복도가 보인다. 우리 거실 문을 활짝 열어두면 거울 속 집의 복도가 살짝 보인단다. 우리 복도랑 무척 비슷하지. 하지만 저 너머는 완전히 다를 수도 있어. 아, 키티야, 우리가 거울 속 집으로 들어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니! 분명히 저 안에는 무척 아름다운 것들이 있을 거야! 그래, 키티, 저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다고 상상해보자. 유리가 아주 얇은 천처럼 부드러워서 우리가 통과할 수 있다고 상상을 하는 거야. 어머나, 거울이 안개 같은 것처럼 변하잖아! 쉽게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아.”

이렇게 말하면서 앨리스는 어떻게 기어 올라갔는지도 모르게 어느새 굴뚝 선반 위로 올라갔다. 확실히 거울이 흐물흐물 녹고 있었다. 이제 거울은 마치 반짝반짝 빛나는 은빛 안개처럼 보였다.

다음 순간 앨리스는 거울을 통과해서 거울 속의 방 안으로 사뿐 뛰어내렸다. 제일 먼저 앨리스는 벽난로의 불을 살폈다. 그리고 거울 속의 벽난로가 뒤에 두고 온 벽난로만큼이나 이글이글 환하게 타오르는 진짜 불임을 확인하고는 무척 기뻐했다.

“그럼 여기에서도 따듯하게 있을 수가 있어.”

앨리스는 생각했다.

“사실, 여기가 더 따듯해. 불 가까이 가지 말라고 야단치는 사람이 없어서 말이야. 어머, 정말 재미있겠다. 사람들이 내가 거울 속에 있는 걸 보면 말이야. 그래도 나를 잡지는 못하겠지!”

그런 다음 앨리스는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원래 방에서 거울을 통해 보였던 것들은 평범하지만, 보이지 않던 나머지 것들은 무척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를 들어서, 벽난로 옆쪽의 벽에 걸려 있는 그림들은 모두 살아 있는 것처럼 보였고, 굴뚝 선반 위의 시계에는(물론 원래 방에서 거울로 볼 때에는 시계의 뒷부분만 보였다) 작은 노인의 얼굴이 있었다. 노인이 앨리스를 보고 히죽 웃었다.

“저쪽 방하고 다르게 이 방은 정돈을 하지 않았네.”

여러 개의 체스 말들이 난로 재 속에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앨리스는 생각했다. 그러나 곧 앨리스는 깜짝 놀라며 “어머!” 하고 작게 소리쳤다. 그리고 앨리스는 바닥에 엎드려서 체스 말들을 바라보았다. 체스 말들이 둘씩 짝을 지어서 걷고 있었다.

“붉은 말의 왕과 붉은 말의 여왕이야.”

앨리스는 (그들이 놀랄까봐, 속삭이듯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얀 말의 왕과 하얀 말의 여왕은 삽 가장자리에 앉아 있고…… 두 개의 성장은 서로 팔짱을 낀 채 걷고 있잖아……. 그런데 내 말이 들리지 않나봐.”
 
머리를 좀더 아래로 수그리면서, 앨리스는 계속 중얼거렸다.

“그리고 나를 보지도 못하는 것 같아. 마치 내가 투명 인간이 된 기분이야.”

이때 앨리스 뒤쪽의 탁자 위에서 무언가가 낑낑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홱 고개를 돌린 앨리스는 하얀 말의 졸이 뒹굴면서 발버둥치는 모습을 보았다. 호기심을 느낀 앨리스는 다음에 벌어질 일을 기대하며 졸을 지켜보았다.

“이건 내 아기 울음소리야!”

하얀 말의 여왕이 울부짖으면서 급하게 왕을 지나쳐서 달려갔다. 그 바람에 왕은 재 속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내 소중한 아기, 릴리! 내 황실 새끼고양이!”

여왕은 벽난로의 불똥막이 쇠창살의 한쪽을 급히 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내 황실 바이올린 활!”

넘어질 때 다친 코를 문지르면서 왕이 말했다. 여왕 때문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재를 뒤집어썼으므로 왕이 화를 내는 것은 당연했다.

앨리스는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리고 가엾은 작은 릴리가 거의 발작하듯이 울었기 때문에 급히 여왕을 집어서 시끄럽게 울어대는 작은딸 옆에 내려놓았다.

여왕은 숨을 멈추고, 털썩 주저앉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허공을 이동한 것에 너무 놀라서 숨쉬는 것까지 잊어버린 듯했다. 여왕은 몇 분 동안 말없이 작은 릴리를 꼭 끌어안고만 있었다. 조금 진정이 되자마자, 여왕은 재 속에 부루퉁하게 앉아 있는 왕에게 소리쳤다.

“화산 폭발을 조심해요!”

“무슨 화산?”

왕은 반문하며, 그나마 화산과 가장 비슷하다고 생각했는지, 난로를 조심스럽게 올려다보았다.

“나를, 나를…… 날려버렸어요.”

아직도 놀란 숨을 헐떡거리면서 여왕이 말했다.

“올라오세요, 정상적인 방법으로요……. 날아오지 말고요!”

앨리스는 하얀 왕이 느릿느릿 힘들게 쇠창살을 기어올라가는 것을 지켜보다가 참지 못하고 말했다.
 
“아유, 그렇게 가다가는 몇 시간이 지나도 모자라겠어요. 내가 당신을 도와주는 게 훨씬 낫겠어요, 안 그래요?”

그러나 왕은 앨리스의 제안을 못 들은 것 같았다. 왕이 앨리스의 말을 듣지도, 앨리스의 모습을 보지도 못하는 것이 확실했다.

그래서 앨리스는 왕을 부드럽게 집어서, 왕이 놀라지 않도록, 여왕을 올릴 때보다 조금 천천히 위로 올렸다. 그러나 왕을 탁자에 내려놓기 전에, 앨리스는 재를 뒤집어쓴 왕을 조금 털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앨리스는 보이지 않는 손이 공중에서 왕을 들어올렸을 때, 그리고 재를 털어주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왕이 지은 표정은 평생 처음 보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왕은 너무나 놀라서 소리조차 지르지 못했다. 단지 두 눈과 입만 점점 더 동그랗게 커졌다. 그 얼굴을 보고 웃느라고 하마터면 앨리스는 왕을 마룻바닥에 떨어뜨릴 뻔했다.

“어머나! 제발 그런 표정 좀 짓지 말아요!”

앨리스는 왕이 듣지 못한다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큰 소리로 말했다.

“당신 때문에 웃겨서 당신을 잡고 있기가 힘들잖아요! 입 좀 다물어요! 재가 전부 입 속으로 들어가겠어요. 자, 이제 깨끗해진 것 같네요!”

왕의 머리칼을 매만져주며 이렇게 말하고, 앨리스는 왕을 여왕 옆에 내려놓았다.

그런데 손에서 놓자마자, 왕은 벌렁 쓰러져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앨리스는 자신 때문에 벌어진 일이 걱정스러워서, 물이라도 끼얹어주려고 물을 찾아서 방을 빙빙 돌았다. 그렇지만 잉크 한 병밖에는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었다. 잉크병을 갖고 돌아온 앨리스는 왕이 정신을 차려서 왕비와 함께 겁에 질린 목소리로 속삭이고 있는 것을 보았다. 너무 작은 소리라서 앨리스는 그들이 하는 말을 간신히 알아들을 수가 있었다.

왕이 속삭였다.

“여보, 난 너무 놀라서 수염끝까지 얼어붙어버렸다오!”

그러자 여왕이 대꾸했다.

“당신은 수염이라곤 없잖아요.”

“그 순간의 공포란.”

왕은 말을 이었다.

“죽어도, 죽어도 잊을 수가 없을 거요!”

“그래도 당신은 잊을 걸요, 기록을 해두지 않으면 말이에요.”

여왕이 말했다.

앨리스는 왕이 호주머니에서 커다란 기록장을 꺼내서 글을 쓰기 시작하는 것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았다. 불쑥 장난을 치고 싶어진 앨리스는 연필 끝을 잡고 왕 대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불쌍한 왕은 어리둥절하고 불쌍한 표정으로, 얼마 동안 아무 말 없이 연필을 잡고 끙끙 애를 썼다. 그러나 앨리스의 힘이 너무 강했다. 마침내 왕은 숨을 헐떡거리며 말했다.

“여보! 좀 가는 연필이 있어야만 되겠소. 이 연필은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구려. 이게 내가 의도하지 않은 것들을 쓰고 있지 뭐요.”

“뭘 썼는데요?”

여왕은 기록장을 살폈다. (거기에 앨리스는 “하얀 말의 기사가 부지깽이를 타고 내려온다. 그는 심하게 균형을 못 잡는다”라고 썼다.)

“이건 당신의 느낌을 적은 게 아니잖아요!”

탁자 위 앨리스 쪽으로 책이 한 권 놓여 있었다. 앨리스는 앉아서 하얀 왕을 지켜보는 한편 자신이 읽을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 찾으려고 책장을 넘겼다.

“온통 내가 모르는 언어네.”

앨리스는 혼자 중얼거렸다.

책에는 이런 식의 글이 쓰여 있었다.







얼마 동안 어리둥절했지만, 마침내 앨리스는 재치 있는 생각을 해냈다.

“그래, 이건 거울책이잖아! 거울에 비추어보면, 글자들이 제자리로 갈 거야.”

그렇게 해서 앨리스가 읽은 것은 한 편의 시였다.
 
재버워키
 
지글녁, 유끈한 토브들이
사이넘길 한쪽을 발로 빙돌고 윙뚫고 있었네.  
로고브들은 너무나 밈지했네.
몸 레스들은 꽥꽥 울불었네.
 
“재버워크를 조심해라, 나의 아들아!
물어뜯는 턱과 움켜쥐는 발톱을!
주브주브 새를 조심해라. 그리고 씩성난
벤더스내치를 피하거라.”
 
그는 손에 그의 보팔 칼을 집어들었네.
오랫동안 그는 맨솜 적과 싸웠네.

마침내 툼툼 나무 옆에서 휴식을 취했지.
그리고 한동안 생각에 잠겨 서 있었네.
 
그가 뚱탁한 생각 속에 잠겨 서 있을 때,
재버워크가 이글이글 불타는 눈으로
털지 나무 사이를 휙휙 다가왔네.
그리고 점점 더 뿡빵해졌지.
 
하나, 둘! 하나, 둘! 그리고 보팔 칼날이
날쌔게 찌르고 또 찔렀네.
그는 죽은 재버워크를 버려둔 채, 그 머리를 가지고
우쭐겅중 돌아왔네.
 
“네가 재버워키를 죽였단 말이냐?
이리 오너라, 나의 빛나는 아들아!”
오, 기쁘고 기쁜 날! 칼루! 칼레이!
그는 기쁨에 넘쳐 키득키득 웃었네.

지글녁, 유끈한 토브들이
사이넘길 한쪽을 발로 빙돌고 윙뚫고 있었네.
보로고브들은 너무나 밈지했네.
몸 레스들은 꽥꽥 울불었네.
 


“정말 멋진 시 같아.”

앨리스는 시를 다 읽고 나서 말했다.

“단지 이해하기는 좀 어렵지만!”

(듣는 사람 없이 혼자 중얼거리는 말이지만, 앨리스는 시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고 고백하기가 싫었던 것이다.)

“어쨌든 여러 가지 생각들이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데, 그것들이 뭔지는 딱 모르겠단 말이야! 그렇지만 어떤 사람이 뭔가를 죽였어. 그건 분명해, 하여튼…….”

“어머나!”

갑자기 앨리스는 벌떡 일어섰다.

“서두르지 않으면, 이 집의 나머지 부분들을 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야 할지 몰라! 먼저 정원부터 구경해야지!”

앨리스는 즉시 그 방을 나와서 계단을 달려 내려갔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달린 것이 아니라, 앨리스가 혼자 중얼거렸듯이 빠르고 쉽게 계단을 내려가는 새로운 방식이었다. 앨리스는 단지 손가락들 끝을 계단 난간에 살짝 대고서, 계단을 밟지도 않은 채 가볍게 둥둥 떠서 아래로 내려갔다. 그런 다음 복도를 둥둥 가로질러서 문기둥에 걸리지만 않았다면 똑같은 방식으로 곧장 문으로 가려고 했다. 앨리스는 너무 많이 허공에 떠 있었기 때문에 조금 현기증을 느꼈고, 그래서 다시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걷게 되자 무척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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