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12 [ 내가 만든 기다림을 기다려야 하는 목마름................]

음유시인23 | 2025.02.11 11:30:15 댓글: 0 조회: 189 추천: 1
분류단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637335

NO-12

[ 내가 만든 기다림을 기다려야 하는 목마름................]

吟遊詩人 金 佐煥

80~90년 전에 연락이 끊어진 사람의 경로를 뒤쫓아 드디어 그 사람의 흔적과라도 만나진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 같으다.

() () (김익”)등의 인물들이 혹시 언양김씨 효자공파의 항렬자를 따라 지어진 이름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컬러 펜으로 표시해 놓은 인물들을 확인하기 위하여 여관으로 출근 하신 맹고군(孟高君)선생(先生)께 부탁하였다.

확인을 마친 맹()선생(先生)의 대답은 (경주김씨)이거나 (안동김씨) 이거나 또 뭐라 하는 김씨들이라며 (언양김씨)라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귀담아 듣지 않고 이내 털어버렸다.

이제 내일이면 돌아가야 한다.

아무런 단서도 붙잡지 못하고 황망하게 돌아가야 한다는 현실에 마음이 급해졌다.

[맹 선생님.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우리 더 좋은 방안을 구상해 봅시다.]

(....................)

조선인의 첫 정착 과정과 밀산의 이러 저러함 들을 파악한 나는 사업적 난관에서 묘수 찾기에 골몰하듯 묘안을 만들어 내려 골몰하였다.

(김 선생이.......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았으니 어떤 묘안이 있겠는지 먼저 말해 보시라요.)

()선생(先生)도 답답해 하였다.

[.......................]

(원래 이런 일은 금방 해결되지 않습니다. 시간을 두고 해야 합니다. 그러다 덜커덩하고 뭔가가 걸려 들 수도 있단 말입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요.]

(...................................)

묘안 찾기의 맹숭함을 정리하고 조선족 마을을 돌아보았으면 좋겠다며 맹() 선생에게 부탁하였다.

() 선생과 함께 자동차를 타고 해방촌으로 향하며 촌민사무실에 모여 있을 사람들에게 줄 사과 2박스와 귤 2박스를 샀다.

시내에 있는 조선족 여관에서 해방촌까지는 그다지 멀지 않았다.

얼마지 않아 조선족 마을 해방촌으로 들어서자 한글이 보이기 시작했다.

얼핏 보면 전시용으로 만든 북조선 마을 같은 풍경일 수도 있지만 130여 년 전 조선 사람들은 각자의 사정을 안고 이곳으로 들어와 ()(곡괭이)만으로 황량한 벌판을 파 뒤집어 지금의 옥토를 만들고 마을을 만들어 지금에 이르렀음을 생각하며 나는 조용히 되뇌었다.

[이제라도 부자로 살게 되었으니 천만 다행입니다.]

(.....................................)

[네 동포들.........고생 참 많았습니다.]

(...........................)

[두순 할아버지...여기가 아니라면 당신은 만주국 어느 곳에 정착하여 어떤 생각과 어떤 각오로 여기에 남으려 하셨나여?]

(...............................)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 선생은 멍한 나에게 최초 조선인들의 삶을 부연하여 설명하였다.

(그저...거지 였습니다. 식량꺼리나 싸 짊어지고 동냥밥도 얻어먹으며 밤이면 나뭇가지 몇 도막 엇갈려 세워 밤 이슬이나 피하여 잠자며 걸어서 걸어서 옮겨왔습니다.)

[....................]

(그렇게 정착한 후 한 20년 정도 지나서야 집도 제대로 짓고 마을 꼴이 된 것입니다.)

[..................]

자동차를 타고 가는 동안 맹() 선생은 그렇게 설명하였다.

100여년 전에 굼벵이처럼 땅바닥에 자신의 몸을 대이고 사방으로 휘었다 폈다를 반복하여 땅바닥을 긁어가며 여기까지 왔을 조선인들..............

그래도 우리 민족이었기에 살아남았을 것이다.

자동차는 해방촌 마을 중앙에 지어진 큰 건물 앞에 멈추었다.

한국적으로 말하자면 마을회관 일터이지만 규모가 상당히 컸다.

게이트 장은 물론 노인정과 마을 전체의 회의를 할 수 있는 공회당까지 겸해진 용도로 지어진 건물이었다.

미리 연락을 받은 마을 촌장과 총무가 기다리고 있었다.

촌장은 자신의 원래 고향은 북조선이라며 자신도 김씨이기는 김씨인데 경주 김씨라고 소개를 하며 어제 맹() 선생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267호 세대 중 김씨를 파악 해 보니 경주. 안동. 전주. 김해 김씨일 뿐 언양김씨(彦陽金氏)는 나타나지 않았다며 나의 눈치를 살폈다.

잠깐의 침묵이 있은 뒤 총무라는 사람은 자신은 김해 김씨인데 언양김씨(彦陽金氏)는 처음 들어본다는 것이었다.

밀산 인근의 조선족 마을 중 제일 큰 해방촌의 사정이 이러하니 마음은 더 답답했다.

잠시간 멈추었던 대화를 이어가며 인식한 것은 고맙게도 래도 맹() 선생이 사발통문을 돌리고 있다는 확인 이었다.

나는 갑자기 궁금한 점이 떠올랐다.

중국은 인구 억제 정책으로 1세대는 1명의 자녀만을 낳을 수 있으며 소수민족에 한하여 2명까지 출산을 허용하는 정책을 시행하였음을 생각한 나는 두순 할아버지가 이곳에서 가정을 이루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동안성으로 오시기 전 해주 오씨라는 여인과 결혼은 하였으나 동행을 한 것도 아니었고 그 여인과 어쩌고 저쩌고 하여 손()을 남긴 흔적도 없는 30대 말이나 40대 초반의 나이가 된 늙다리 남자가 만주 동안성으로 들어와 1945년 해방 당시에 47세 정도가 되었을 테니 고물이나 다름없는 남자가 제대로 가정을 이루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촌장과 주변으로 모여든 나이 많은 노인들을 향해 하나하나 물었다.

[우리 할아버지가 30대 말이나 40대 초에 짝 없는 남자로 이곳으로 오셨을 텐데 여자를 만나 제대로 가정은 꾸렸을까요?]

(일 없습니다. 그 정도 남자였으면 한창 왕성할 때인데 100% 가정 꾸렸습니다,)

[그렇다면 그때 중국 정부의 정책은 소수민족만 1세대에 2명만 낳도록 하였는데 만약 딸만 2명을 낳게 되면 후손(後孫)은 끊어지다는 결론인데 우리 할아버지가 그런 경우였다면 후손을 찾을 길이 없겠지요?]

(아닙니다..아닙니다. 그때 눈 밝은 남자는 마누라 3명도 데리고 살았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이렇게 설명하였다.

자신의 할아버지 세대에서는 (도피)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도피)란 일종의 산적과 같은 무리들로 오늘날로 치면 (조직폭력배단체)가 있었는데 그놈들이 남자들을 많이 죽였다.

이를테면 쌀을 빼앗아 가려는데 맞선다든가 하면 그대로 죽여 버리는 형국이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남편을 잃은 조선족 여자들이 많아 눈 밝은 남자들은 마누라 셋도 데리고 살던 시대로 소수민족 2명 정책은 엉망이 되어 어느 집은 7명의 자녀가 있는 집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의 설명을 들으며 나는 이율배반적인 생각을 떠올렸다.

= 차라리 우리 두순 할아버지는 마누라 넷을 데리고 사는 남자였기를 바라는 마음인 것이다.=

그러한 이야기들을 취합(聚合)하고 자리를 정리하여 일어섰다.

얻은 것이 없어서 인지 몸을 더더욱 나른하게 하였다.

더 이상 다른 곳을 돌아볼 필요도 없었다.

() 선생이 언양김씨(彦陽金氏)를 찾는 소문을 여기저기 늘려가고 있으니 말이다.

해방촌을 떠나 조선족 여관으로 돌아오다 맹() 선생은 시내에 있는 밀산시 조선인 연합회 사무실에 들려 회장에게 부탁하여 그 단체도 (언양김씨)를 찾는 일에 합류하게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우리는 바로 여관으로 돌아오지 않고 조선인 연합회 사무실로 향하였다.

얼어붙은 밀산의 시내로 들어서 중심가인 듯 한 한 곳에 차가 멈추었다.

낡고 오래된 건물의 2층으로 올라갔다.

나이 많은 남자 3명이 테이블에 둘러 앉아 마작을 하고 있던 것을 정리 시키고

우리는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내가 찾으려는 김두순(金斗淳) 할아버지를 설명하며 이 분의 후손을 찾을 수 있도록 많은 사람이 도와 줄 것을 신신당부하였다.

회장은 족보에서 두순 할아버지의 옆에 쓰인 해방당시 만주 동안성 조섭 행방불명(解放當時 滿洲 東安省 遭燮 行方不明)”이라는 글은 누가 썼는가를 집중적으로 물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과거에 족보를 정리하던 분이 쓰지 않았겠습니까?)

[ “조섭(遭燮)”이란 단어를 함부로 쓴 듯합니다.]

(.................)

{ “조섭(遭燮)”이란 글자를 한국에서는 (조섭) 또는 (조변)이라고 읽을 것입니다.}

(.................)

[ 조섭(遭燮)”이란 글자의 뜻은 갑자기 무슨 일을 당하다”, 예를 들어 길을 가다가 강도에게 당하다 하는 표현으로 사용하는 한문인데 참 이상하게 적어 놨습니다. ]

(...................)

( 해방당시 만주 동안성 조섭 행방불명(解放當時 滿洲 東安省 遭燮 行方不明)을 해방당시 만주 동안성 행방불명(解放當時 滿洲 東安省 行方不明)으로 써야지...왜 행방불명된 사람이 조섭(遭燮) ”당한 걸로 써 놓았는지 이해가 안 갑니다.)

회장의 눈은 예리하였으나 혹시 누군가에 의하여 살해된 분의 후손을 왜 찾으려 하느냐 하는 쪽으로 분위기가 흐르는 것 같아 나는 내 주장과 같은 추가적인 설명을 이어 붙였다.

[저의 두순 할아버지는 과거에 이곳에 혼자 오셨습니다. 해방으로 인하여 중국은 문이 닫히고 북한은 드나들 수 없는 지역이 되었으니 이 곳에 왔던 조선인들은 모두 갇혀버린 겁니다.]

(...............)

[1992년 중국과 한국은 수교하였고 그때서야 이곳 조선족은 한국을 오갈 수 있었습니다.]

(................)

[두순 할아버지는 이곳에 혼자 오셨고 1945년 해방 전 까지는 한국으로 연락을 해왔습니다. 만약에 두순 할아버지가 조섭(遭燮)” 당하였다면 누군가의 칼에 맞아 돌아가신 후에 나 칼 맞아 죽임을 당했다고 죽은 사람이 스스로 연락하여야 하는 모순이 생깁니다.]

(..................)

[그렇지 않다면 두순 할아버지의 주변인 누군가가 한국으로 연락을 해주었을까요? 80년 전에 그런 연락을 대신 하여 줄 사람이 있었을까요. 족보를 기록한 누군가의 오류라고 생각됩니다.]

내 설명은 다 듣고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런 회장에게 어떤 방법이든 김 두순의 후손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부탁하였다.

회장은 나에게 이런 제안을 하였다.

자신이 彦陽金氏(언양김씨)인 사람은 누구든 연락하여 달라는 공문을 만들어 헤이룽강 성내의 전체 지부에 돌려 보겠다는 것이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되었다.

() 선생은 조선족 집단 단체를 들쑤시고 조선족 연합회 밀산시 지회장은 흑룡강성 내의 지역별 연합회장과 연대하여 언양김씨(彦陽金氏)는 손들고 나타나라는 방을 붙여 가는 방법의 2중화.........

그런 방법을 강구하고 기다려야 하는 것이었다.

내가 만든 기다림을 내 스스로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나는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하며 가방을 챙겼다.

두순() 할아버지의 후손을 찾기 위한 45일의 중국행은 두순 할아버지의 후손이 아닌 언양김씨(彦陽金氏) 누군가를 잡기 위한 덫을 놓고 돌아가야 하니 많이 쓸쓸하다.

쾌속 열차를 타면 목단강 공항까지 가는 시간을 2시간이나 단축 할 수 있을 것 같아 열차를 탈 수 있는 계서역 까지 나를 옮겨줄 택시를 예약 해두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5시에 도착할 택시를 타야 한다.

한국에 돌아가 기다려야 하는 어느 날 희소식이 날아와 한 걸음으로 이 밀산에 다시 올 수 있기를

바라며 이번은 쓸쓸히 돌아가야 한다.

내가 만든 기다림을 기다려야 하는 목마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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