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가요?"
나는 신경이 별안간 딴곳으로 쏠렸다.
"있다뿐이라요? 문딩이 쫓아낼 때보다는 덜했겠지만 *매립인강 먼강 한답시고 *밀가리만 잔뜩 *띠이 처먹고 그저 눈가림으로 해 놓은 *둘을 섬사람들이 우 대들어서 막 파헤쳐 버리고, 본래대로 물길을 티놨다 카드만요. 글 안 했으문....."
키다리는 혼자서 신을 내 가며 떠들었다.
"쓸데없는 소리 말게, 팬히 혼날라꼬"
곁에 있던 약삭빠른 얼굴의 사내가 이렇게 불쑥 *쏘아붙이듯 하더니, 마침 저만큼 떠내려오는 널빤지를 향해 잽싸게 접낫을 던졌다 . 그러나 걸리진 않았다.그렇게 허탕을 친 게 마치 이쪽의 잘못이나 되는 듯,
"조마이섬에 누가 있소?"
내뱉듯한 소리가 짐짓 퉁명스러 웠다.
"건우란 학생이 있어서....."
나는 일부러 학생의 이름까지 대보았다. 약삭빠른 눈초리가 다시 *물굽이만 쏘아보고 말이 없으니까, 또 키다리가,
"그 아이 아배가 누군교?"
하고 나를 새삼 쳐다보았다.
"아버진 없고, 즈 할아버지 별명이 갈밭새 영감이라더군요."
나는 건우 할아버지의 이름이 얼른 생각나지 않았다.
"아,그렁기요? 좋은 노인임더."
키다리는 접낫대를 세워 들더니.
"조마이섬의 인물 아잉기요. *어지 아침 이곳을 지내갔는데, 그 뒤 대강 알아봤거든....가고 난 뒤 얼마 안 돼서 그 일이 났단 말이여."
말머리가 어느덧 자기들끼리로 돌아갔다. 나는 굳이 파고 묻지 않았다.
그때 마침 판잣집 *용마루 비슷한 기다란 나무가 잠겼다 떴다 하며 떠내려가자, 조금 떨어진 신신바위 짬에서 별안간 쬐깐 *쪽배 하나가 쏜살같이 나타나더니, 기어코 그놈에게 달라붙어서 한참 파도와 싸우며 흐르다가 마침내 저 아래쪽 기슭에 용케 밀어다 붙였다 . 박수를 치기보다는 모두 숨을 죽이고 바라보기만 했다. 용감하다기보다 차라리 처참한 광경이었다. 나는 거기서 누구에게도 보장을 받아 오지 못한 절박한 생활을 읽었다. 한 표의 값어치로서가 아니라, 다만다 살기 위해서 스스로 죽을 모험을 무릅쓰는 그러한 행위는, 부질없이 그것을 경계하거나 방해하는 힘을 물리침으로써만 오히려 목숨 그 자체를 이어갈수 있다는 산 증거 같기도 했다.
'갈밭새 영감이나 송아지 빨갱이도 그냥 있지는 않았으리라!'
나는 조마이섬의 일이 불현듯 더 궁금해져서 이내 구포 가는 버스를 잡아탔다.다리만 건너면 조마이섬 가까이까지 갈수 있으리라 믿었다.구포 *다릿목에서 차를 내렸으나 물은 이미 위험 수위를 훨씬 돌파해서, 다리는 통금이 돼 있었다 . 비상경계의 붉은 깃발이 찢어질 듯 폭풍우에 펄럭이고, 다릿목을 건너지른 *인줄 곁에는 한국인 순경과 미군이 버티고 있었다. 무거워 보이는 고무 비옷에 철모를 푹 눌러쓰고 방망이를 해든 폼이 여간 엄중해 뵈지 않았다.
그런데도 무슨 핑계들을 꾸며 대고 용케 건너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더러는 다리 위에서 유유히 물 구경을 하는 사람들도 나도 간신히 그들 틈에 끼었다. 우르르르 하는 강울림은 다리 위에서 듣기가 한결 *우람스러웠다.
통행금지의 팻말이 서 있어도, 수해 *시찰을 나온 듯한 새까만 관용차만은 사뭇 물을 튀기며 지나갔다. 바람이 휘몰아칠 때는 거기에 날리기나 하듯이 더욱 빨리 지나갔다. 요컨대 일종의 모험이기도 했으리라. 안에 타고 있는 얼굴들은 알 길이 없었지만 어련히 심각한 표정들을 했으랴 싶었다.내려다봄으로 해서 한결 사나운 물굽이가 숫제 강을 주름잡듯 둘둘 말려 오다간, 거의 같은 지점에서 쏴아 하고 부서졌다. 그럴 때마다 구슬, 아니 퉁방울 같은 물거품이 강 위를 휘덮고 때로는 바람결을 따라서 다리 위까지 사뭇 튀었다.그러한 강 한가운데를 잇달아 줄을 지어 떠내려오는 수박이랑 두엄 더미들이, 하단서 볼 때보다 훨씬 많았다. 말하자면 일종의 장관에 가까웠다.
"아까 그 송아지는 정말 아깝던데...."
이런 *뚱딴지 같은 소리도 퍼뜩 귓가를 스쳐갔다.
조마이섬이 있는 먼 명지면 짬은 완전히 물바다로 보였다 . 구름을 이고 한가하던 원두막들은 다시 찾아볼 길이 없고, 길찬 포플러나무들도 겨우 대공이만은 남은듯, 바람에 누웠다 일어났다 했다.
지루하게 긴 다리를 지루하게 건너 , 물 구경 나온 인파를 헤치고 강둑길을 얼마 못 갔을 때었다. 뜻밖에 거기서 윤춘삼 씨와 마주쳤다.헐레벌떡 빗속을 뛰어오던 송아지 빨갱이, 아니 윤춘삼 씨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온동 물에서 막 건져올린 사람처럼 젖어 있었다. 하긴 내 꼴도 그랬을 테지만.
"우짠 일인기요?"
하고 덥석 내 손을 *검잡는 윤춘삼 씨는, 그저 반갑다기보다 숫제 고마위하는 기색까지 보였다.
"조마이섬은 어찌 됐소?"
수인사란 게 이랬더니,
"말 마이소. 자, 저리 가서 이야기나 합시더....."
그는 나를 도로 다릿목 쪽으로 끌었다.
"아니, 섬 쪽으로 가 보려 했는데요?"
"가야 아무것도 없소. 모두 피난소로 옮기고 , 남은 건 물바다뿐임더. 우짤라꼬 이놈의 하늘까지.....!"
별안간 또 한 줄기 쏟아지는 비도 피할 겸 윤춘삼 씨는 나를 다릿목 어떤 가겟집으로 안내했다. 언젠가 하단서 같이 들렀던 집과 거의 비슷한 차림의 주막집이었다.둘 사이에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너무나 다급하고 또 수다한 말들이 두 사람의 입을 한꺼번에 봉해 버렸다 할까!
"건우네 가족도 무사히 피난했겠지요?"
먼저 내 입에서 아까부터 미뤄 오던 말이 나왔다.
"야......"
해놓고도 어쩐지 말끝이 석연치 않았다.
"집들은 물론 *결딴이 났겠지만, 사람은 더러 상하진 않았던가요?"
나는 이런 질문을 해 놓고, 이내 후회했다. 으레 하는 빈걱정 같아서.
"집이고 농사고 머 있능기요. 다행히 목숨들만은 건졌지만, 그 바람에 갈밭새 영감이 또 안 끌려갔능기요."
윤춘삼 씨는 가슴이 내려앉는 듯한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건우 할아버지가?"
나는 하단서 그 접낫패에게 얼핏 들은 얘기를 상기했다.
"그래서 내가 지금 경찰서꺼정 갔다 오는 길인데, 마침 잘 만냈심더. 글 안해도...."
기진맥진한 탓인지, 그는 내가 권하는 술잔도 들지 않고 하던 이야기만 계속했다.
바로 어제 있은 일이었다 . 하단서 들은 대로 소위 배짱들이 만들어 둔 엉터리 둑을 허물어 버린 얘기였다.
--비는 연사흘 억수로 쏟아지지, 실하지도 않은 둑을 그대로 두었다가 물이 더 불었을 때 갑자기 터진다면 영락없이 온 섬이 떼죽음을 했을 텐데, 마침 배에서 돌아온 갈밭새 영감이 *설두를 해서 미리 무너뜨렸기 때문에 다행히 인명에는 피해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와 건우 할아버진 끌고 갔느냐고요?"
윤춘삼 씨는 그제야 소주를 한 잔 혹 들이켜고 다음을 계속했다. 섬사람들이 한창 둑을 파헤치고 있을 무렵이었다 한다. 좀 더 똑똑히 말한다면, 조마이섬 서쪽 강둑길에 검정 지프차가 한 대 와 닿은 뒤라 한다. 웬 깡패같이 생긴 청년 두명이 불쑥 현장에 나타나더니, 둑을 허물어뜨리는 광경을 보자, 이내 *노발대발 방해를 하기 시작하더라고, 엉터리 둑을 막아 놓고 섬을 통째로 집어삼키려던 소위 유력자의 앞잡인지 뭔지는 모르되, 아무리 타일러도
"여보, 당신들도 보다시피 물이 안팎으로 이렇게 불어나는데 섬사람들은 어떻게 하란 말이오?"
해 봐도, 들어주긴커녕 그중 힘깨나 있어 보이는, 눈이 약간 *치째진 친구가 되레 갈밭새 영감의 괭이를 와락 뺏더니 물속으로핑 집어던졌다는 거다.
그리곤 누굴 믿고 하는 수작일 테지만 *후욕패설을 함부로 뇌까리자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을 갈밭새 영감도,
"이개 같은 놈아, 사람의 목숨이 중하냐, 네놈들의 욕심이 중하냐?"
말도 채 끝내기 전에 덜렁 그자를 들어 물속에 *태질을 해 버렸다는 것이다. 상대방은 '아이고' 소리도 못해 보고 *탁류에 휘말려 가고, 지레 달아난 녀석의 고자질에 의해선지 이내 경찰이 둘이나 달려왔더라고.
"내가 그랬소!"
갈밭새 영감은 서슴지 않고 두 손을 내밀었다는 거다 . 다행히도 벌써 그때는 둑이 완전히 뭉개지고, 섬을 치덮던 탁류도 빙 에워돌며 뭉그적뭉그적 빠져나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정말 우리 조마이섬을 지키다시피 해온 영감인데.... 살인죄라니 우짜문 좋겠능기요?"
게까지 말하고 나를 쳐다보는 윤춘삼 씨의 벌건 눈에서는 어느덧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법과 유력자의 배짱과 선량한 다수의 목숨......나는 이방인처럼 윤춘삼 씨의 *컁컁한 얼굴을 건너다보았다.
폭풍우는 끝났다. 육십 년래 처음이니 뭐니 하고 수다를 떨던 라디오와 신문들도 이젠 거기에 대해선 감쪽같이 말이 없었다 . 그저 몇몇 일간 신문 의 수해 구제 *의연란에 다소의 금액과 옷가지들이 늘어 갈 뿐이었다.
섬사람들의 애절한 하소연에도 불구하고 육십이 넘는 갈밭새 영감은 결국 기약 없는 감옥살이로 넘어갔다.
그리고 9월 새 학기가 되어도 건우 군은 학교에 나타나지 않았다.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일기장에는 어떠한 글이 적힐는지. 황폐한 모래톱 ---조마이섬을 군대가 *정지를 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렸다.
<문학>(1966) 김정환(1908~1996)
매립: 낮은 땅이나 하천, 바다 등을 돌이나 흙 따위로 채움. 밀가리: 말가루. 띠이: 떼어. 둘: 둑. 쏘아붙이다: 날카로운 말투로 상대를 몰아붙이듯이 공격하다. 물굽이: 강물이나 바닷물이 굽이지어 흐르는 곳. 어지: 어제. 용마루: 지붕 가운데 부분에 있는 가장 높은 수평 마루.쪽배: 통나무를 쪼개어 속을 파서 만든 작은 배.
다릿목: 다리가 놓여 있는 길목. 인줄: 금줄. 사람의 침범이나 접근을 막기 위하여 치는 새끼줄. 우람스럽다: 옹글고 우령차거나 요란스러운 데가 있다. 시찰:두루 돌아다니며 실지의 사정을 살핌.뚱딴지: 행동이나 사고방식 따위가 너무 엉뚱한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
검집다:'거머잡다'의 준말.손으로 휘감아 잡다.결딴:어떤 일이나 물건 따위가 아주 망가져서 도무지 손을 쓸 수 없게 된 상태.설두:앞장서서 입을 주선함. 노발대발: 몹시 노하여 펄펄 뛰며 성을 냄. 치패지다: 아래로부터 위로 향하여 째지다.후욕 패설:꾸짖어 욕하고 사리에 어긋나게 말함.태질:세게 메어치거나 내던지는 짓.탁류:흘러가는 흐린 물. 또는 그런 흐름.
컁컁하다:얼굴이 몹시 여위어 날카롭게 보이다.의연:사회적 공익이나 자선을 위하여 돈이나 물품을 냄.정지:땅을 반반하고 고르게 만듦.또는 그런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