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의 냉혹한 조언

해청2023 | 2024.02.12 19:00:44 댓글: 1 조회: 170 추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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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를 너무 너그럽게 대하거나 다정하게만 대해서는 안된다.

인간은 너그럽게 대하면 버릇이 없어지는 모습이 꼭 어린아이와 비슷하다.그렇기에 다른 사람을 너무 너그럽게 대하거나 다정하게만 대해서는 안 된다.일반적으로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을 거절하면 친구를 잃지는 않지만 돈을 빌려주면 친구를 잃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그것과 마찬가지로 다소 거만하고 소홀한 행동을 한다고 해서 쉽게 친구를 잃지는 않는다.그러니 종종 너무 과한 친절과 예의는 상대를 오만하고 참을 수 없는 태도를 가진 사람으로 만들어 결국 파국을 초래한다.사람들은 특히 '자신이 상대에게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그러한 생각은 오만함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동반자이다.결국 그는 오만해지고 주제넘는 행동을 하게 된다.



상대의 말을 믿는 척해야 할 때와 믿지 않는 척해야 할때 누군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의심이 들면,믿는 척하는 편이 좋다.그러면 그는 더욱 대담해지고 거짓말이 점점 심해져 결국에는 들키고 말 것이다.이와 반대로 상대가 숨기고 싶어 하는 진실의 일부를 본인도 모르게 이야기를 했는데 그것을 우리가 알게 되었다면 그것을 믿지 않는 척해야 한다.그러면 나의 반박에 자극을 받은 상대가 모든 진실을 하나하나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그의 잘못을 용서하고 잊는다면 그는 같은 잘못을 또 저지른다.용서하고 잊는다는 것은 자신이 겪은 귀중한 경험을 창밖으로 내던져버리는 것이다.긍정적인 경우에 대해서는 그다지 할 말이 많지 않을 것이다.말을 하는 것이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그렇기에 당신은 경고를 하든지,아니면 그냥 내버려 두든지 해서 그 문제를 그냥 내버려 두어야 한다.반면 부정적인 경우에는 즉시 그 친구와 영원히 헤어져야만 하고 그가 하인이라면 바로 내쫓아야 한다.비록 지금은 그들이 당신에게 다시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진심으로 약속하겠지만,불가피하게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똑같은 행동을 다시 하거나,아니면 거의 비슷한 일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지성의 척도만큼만 다른 사람을 파악하고 이해한다.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을 넘어서 볼 수는 없다.사람은 자신의 지성의 척도에 따라서만 타인을 파악하고 이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그러나 이 지성이 매우 낮은 수준의 것이라면 그 어떠한 정신적 재능,심지어 아무리 위대한 재능일지라도 그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다.그런 이들은 훌륭한 재능의 소유자에게서 그 사람의 가장 낮은 것 즉 그가 지닌 모든 약점,기질과 성격의 결함만을 감지해 그 사람을 결점과 약점을 지닌 사람으로 규정하게 될 것이다.맹인에게 색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에게는 타인이 지닌 좀 더 높은 수준의 정신적인 능력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즉,정신적 능력이라는 것은 그것을 갖지 않은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서로를 견딜 수 있는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라.

어느 추운 겨울날,한 무리의 고슴도치들이 서로의 체온을 이용해 얼어 죽지 않기 위해 서로 가까이 모여 앉아 한 덩어리가 되었다.하지만 그들은 곧 그들의 가시가 서로를 찌르는 것을 느꼈다.그래서 그들은 다시 떨어졌다.하지만 추위를 견딜 수 없어서 다시 한 덩어리가 되었고 그러자 가시가 다시 서로를 찔러 그들은 다시 서로에게서 떨어졌다.이렇게 그들은 두 가지 시련 사이를 오가다가 마침내 상대방의 가시에서 안전한 적당한 거리를 발견한다.

인간의 공허함과 무료함에서 생겨나는 인간 사회에 대한 욕구는 인간을 한 덩어리가 되게 한다.하지만 그들은 또 불쾌한 일과 참을 수 없는 결점으로 인해 서로 멀어진다.그러기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그들은 서로를 견딜 수 있는 적당한 간격을 발견한다.그것이 바로 존중과 예의다.그리하여 그것을 지키지 않는 이에게 '거리를 지켜라'라고 말하는 것이다.그 결과 서로 따뜻해지려는 교류의 욕망은 충족하면서도 가시에 찔리는 상황은 피할 수 있다.하지만 내적인 따뜻함이 많은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고통과 괴로움을 받지 않기 위해 사회에서 거리를 두고 멀리 떨어져 있기를 좋아한다.



고독에는 많은 장점 외에도 단점이 있지만 아주 적은 부분이다.

호라티우스는 "모든 면에서 행복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말했다.인도 속담에는 "줄기 없는 연꽃은 없다"라는 말이 있다.마찬가지로 고독에 많은 장점 외에도 작은 단점과 어려움이 있지만 아주 적은 부분에 불과하다.다른 사람들과 어울려지내는 것과 비교해 보면 그들 없이 지내는 편이 더 쉬운 일이나는 점을 알게 될 것이다.덧붙이자면,그런 단점 중 하나는 다른 단점에 비해 쉽게 의식되지 않는다는 것이다.즉 집에 오래 머물러 있다 보면 우리 몸이 외부의 영향에 너무 민감해져서 조금만 차가운 바람을 맞아도 쉽게 병이 드는 것처럼 지속적인 은둔과 고독 때문에 우리의 마음도 예민해져 별것 아닌 사건이나 말,심지어는 단순한 표정에도 불안하거나 불쾌감을 느끼거나 마음이 상하게 되는 것이다.그러나 늘 북적이는 곳에 사는 사람은 그런 일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



각각의 사람을 대하는 절차를 기록하고 기억하라.

가능한 한 그 누구에게도 적의를 품지 않는 것이 좋다.하지만 '사람의 성격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사람들의 특성을 잘 기억해야 한다.사람의 나쁜 특성을 잊는 것은 힘들게 번 돈을 버리는 것과 같은 일이다.적어도 우리와 관련해 사람들의 가치를 결정하고 그에 따라 그들에 대한 우리의 행동과 그러한 행동을 정하기 위해 각각의 사람을 대하는 절차를 기록하고 그것을 기억해야 한다.이런 식으로 절차를 만들어 놓으면 어리석은 친밀감과 어리석은 우정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사랑하지 않는 것과 미워하지 않는 것에는 세상 모든 지혜의 절반이 담겨 있다.또한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아무것도 믿지 말라는 것에 그 나머지 절반의 지혜가 포함되어 있다.물론 이와 같은 규칙과 그에 따르는 규칙을 필요로 하는 세상에는 등을 돌리고 싶을 것이다.

우리를 괴롭히는 사소한 일만 생각하게 되는 이유는 시냇물은 장애물을 만나지 않는 한 소용돌이를 일으키지 않는다.바로 그것처럼 인간의 본성과 동물의 본성은 우리의 의지에 따라 모든 일이 진행되면 스스로 그것을 알아채거나 깨닫지 못하게 한다.우리는 의지에 따라 진행되었을 때가 아니라 어떠한 장애물을 만났을 때 그러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반면 우리의 의지에 반하는 것,그 의지를 방해하고 저항하는 모든 것,즉 불쾌하고 고통스러운 모든 것들을 우리는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매우 명확하게 느낀다.우리는 온몸이 건강한 상태는 느끼지 못하면서 신발이 작아서 꼭 끼는 것 같은 작은 부위의 고통은 쉽게 느낀다.그것처럼 우리는 완벽하게 잘 진행되고 있는 것은 생각하지 않으면서 우리를 괴롭히는 하찮고 사소한 일만 생각한다.그것은 내가 자주 지적하듯이 고통은 적극적인 성격을 가지지만 행복과 평안함은 소극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에 이자를 빚지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사람은 언제나 시간의 영향과 사물의 변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하며,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의 반대 상황을 즉각적으로 상상해 봐야 한다.행복에는 불행을,우정에는 적개심을,좋은 날씨에는 나쁜 날씨를,사랑에는 증오를,신뢰하고 마음을 터놓는 상대에게는 배신과 후회를 생생하게 그려보고,그 반대의 경우에도 그렇게 해보는 것이 좋다.이렇게 하면 우리는 언제나 침착하게 행동할 수 있고 쉽게 속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인생을 살아가는데 진정한 지혜의 원천을 지속적으로 제공하게 될 것이다.보통의 경우 우리는 시간의 영향을 예상해야만 했다.하지만 어쩌면 사물의 무상함과 변화를 올바로 평가하기 위해서 경험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사실 모든 조건은 그것이 유지되는 시간동안에는 필연적인 것이다.그렇기에 매년,매월,매일매일 영원히 그러한 권리를 유지할 것처럼 보인다.그러나 그 어떠한 것도 영원히 그러한 권리를 지키지 못하며 영원한 것은 오직 '변화한다'는 사실뿐이다.현명한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 완벽해 보이는 그러한 안정성에 속지 않고,변화가 일어날 방향을 예견한다.



건강이 있어야만 그 뒤에 다른 모든 것들이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 행복의 90퍼센트는 건강에 좌우된다.건강은 모든 것을 즐기는 원천이며,건강이 없으면 그 어떠한 종류의 외적인 자산도 즐길 수 없게 된다.심지어 다른 주관적,정신적 자산과 감정과 기질 같은 것조차 질병으로 약해지고 위축되고 만다.그렇기에 그 무엇보다 사람들이 서로의 건강 상태를 묻고 건강하기를 바라는 것은 의미 없는 행동이 아니다.실질적으로 건강이 인간의 행복에서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이러한 사실로 미루어볼 때 가장 어리석은 짓은 일이나 출세,학업,명예 혹은 그 무엇인가를 위해 자신의 건강을 희생하는 것이다.육체적 쾌락이나 순간적인 기쁨을 위해서라면 더더욱 그러하다.건강이 있어야만 그 뒤에 다른 모든 것들이 있다.



그가 행복한지 알고 싶다면 그가 밝은 사람인지를 보면 된다.

행복한 사람은 늘 거기에 맞는 이유가 있다.말하자면,그 이유는 바로 그 자신인 것이다.이러한 특징은 다른 모든 자산을 대신할 만한 것일 뿐 아니라 그 어떤 다른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젊고,아름답고,부유하고,사회적 명성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을 때 그가 행복한지 알고 싶다면 그가 밝은 사람인지를 보면 된다.만약 밝고 쾌활하다면,그가 젊거나 혹은 부자이거나에 전혀 상관 없이 그는 행복하다.예전 젊은 시절에 나는 오래된 책에서 이런 글귀를 본 적이 있다."많이 웃는 사람은 행복하고,많이 우는 사람은 불행하다."너무나 단순한 말이지만 나는 그 단순한 진리 때문에 그 문구를 잊을 수 없었다.비록 너무나 상투적이라 해도 말이다.그래서 우리는 밝음이 들어올 때면 언제나 대문을 활짝 열어젖혀야만 하는 것이다.밝음은 결코 때를 잘못 맞추는 법이 없다.우리는 모든 면에서 만족할 이유가 있는 지를 먼저 알려하기 때문에 혹은 우리의 진지한 고민과 무거운 걱정에 방해가 될까 봐 두려워하기 때문에 명랑함을 받아들이는 것을 자주 주저한다.그러나 고민과 걱정을 통해 상황을 나이지게 하는 것은 매우 불확실하지만 밝음은 직접적인 도움이 된다.밝음만이 행복의 진짜 동전이다.다른 모든 것들은 그저 어음에 불과할 뿐이다.밝음만이 현재의 행복에 직접적인 것이고 그렇기에 두 개로 나뉜 무한한 시간 사이에서 불가분의 현재라는 형태를 가진 이들에게는 가장 최고의 자산인 것이다.따라서 우리는 그 어떠한 재산을 가지려 하기보다는 이러한 자산을 얻는 것을 가장 최우선으로 노력해야 한다.



무료해지지 않는 범위 내에서 여러 관계를 최대한 단순화하라

모든 범위의 제한은 행복을 만든다.우리의 시야와 활동 반경과 접촉 범위가 좁을 수록 우리는 더 행복해지고,그 범위가 넓을 수록 더욱 괴로움을 느끼고 두려움이 커진다.그와 함께 슬픔과 욕망과 공포도 더욱 증가한다.그렇기에 실제로 눈이 먼 사람들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불행하지 않은 것이다.그들의 모습은 대부분 고요하고 차분하고 밝으며 편안한 것으로도 알 수 있다.인생의 후반기가 전반기보다 슬퍼지는 것도 부분적으로 이러한 법칙 때문이다.인생이 진행될수록 우리의 목적과 관계의 영역이 점점 확장되기 때문이다.어린 시절에는 가까이에 있는 아주 좁은 환경으로 관계가 제한되지만,청소년기에는 상당히 넓어진다.성인이 되며 그 벙위가 우리 인생의 전 과정을 포함하고 종종 가장 먼 관계,국가나 민족까지 확장된다.노년기에는 자손까지 포함해야 한다.하지만 모든 제약,심지어 정신적인 것까지도 한정 짓는 것이 우리의 행복에 도움이 된다.의지와 자극이 적을 수록 고통도 적어진다.그리고 우리는 고통이 적극적인 것이고 행복이 소극적인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활동 범위가 제한되면 의지를 자극하는 외부의 유발 동기가 줄어들고,정신을 제한하며 내적으로도 유발 동기가 줄어든다.다만 정신을 제한하는 후자의 방식은 무료함의 문을 열어 간접적으로 무수한 고통의 근원이 된다는 단점이 있다.이러한 무료함을 내쫓기 위해 인간은 오락이나 사교,사치,게임,술 등 모든 것에 손을 대는 것이다.그러나 그것은 결국 온갖 종류의 손실과 파멸,불행을 가져온다.따라서 권태감을 일으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여러 관계를 최대한 단순화하고 심지어 삶의 방식도 극히 단조롭게 해야 행복을 가져올 것이다.삶 그 자체와 그에 따른 삶의 본질적인 부담감이 가장 적게 느껴지기 때문이다.그런 인생은 파도와 소용돌이 없이 시냇물처럼 흐른다.



타인의 견해 그 자체는 행복에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원체 본성이 너무나도 약해서 다른 사람들이 우리 존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너무 많이 신경 쓰는 경향이 있다.그런데도 아주 조금만 생각해 보면 타인의 견해 그 자체가 우리의 행복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그렇기에 다른 사람들이 우호적인 평가를 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나름의 허영심이 어느 정도 채워지는 것을 내심 기뻐하는 것을 나는 이해하기 어렵다.고양이를 쓰다듬으면 고양이가 자동적으로 몸을 비비는 것처럼,사람은 칭찬을 받으면 게다가 그것이 자신이 자랑스러워하는 것에 대해서라면 그들은 그 칭찬이 가식적인 거짓말이라 해도 자동적으로 얼굴에 기쁨이 떠오른다.그들은 실제로 불행하거나,행복의 원천이 아주 보잘것 없다 하더라도 다른 이들의 칭찬으로 종종 위로를 받는다.그와는 정반대로 어떤 의미이거나 어느 정도의 비율과 상관없이 경멸과 무시를 당하면 스스로 가진 자부심에 상처를 입고 모욕감을 느끼며 깊은 고통을 느끼는 것은 정말 놀랍다.명예라는 감정이 인간의 이러한 특징에 달려 있는 한 이것은 도덕성을 대신해 많은 사람들의 훌륭한 행동에 있어서 좋은 결과를 이끌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하지만 인간 자신의 행복,무엇보다 그 행복에 필수적인 마음의 평화와 독립에는 유리한 역할을 하기보다는 그것을 방해하고 더 해로운 역할을 한다.그렇기에 우리의 관점에서 이러한 특성에 한계를 설정하고 소유한 물건의 가치를 적절하고 올바르게 평가해 다른 이들의 치켜세우는 말이나 상처를 주는 의견에 지나치게 예민하게 대응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이 두 가지는 실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더구나 다른 사람들의 의견과 생각의 노예로 남게 되기 때문이다.



행복이나 불행에 대한 모든 것에는 상상력을 억제해야만 한다.

그렇기에 무엇보다 공중누각을 지어서는 안 된다.쌓아 올리자마자 한숨을 쉬며 다시 무너뜨리면 그 대가가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그러니 우리는 나중에 일어날 수 있는 재난을 미리 떠올리며 마음을 괴롭히지 않도록 더욱 조심해야 한다.즉 말하자면 이것들이 완전히 일어날 가능성이 없거나 아니면 터무니 없는 것이라면,우리는 그런 꿈에서 깨어나 모든 것이 속임수에 불과했다는 점을 즉시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그리고 더 나은 현실에 대해 더욱더 행복을 느낄 것이고 어찌 되었든 아주 먼 미래에 있을지도 모르는 재난에 대비하라는 경고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우리의 상상력은 그런 재난을 가지고 단순하게 놀지 않는다.우리의 상상력은 기껏해야 즐겁게 공중누각을 쌓아 올리는 것이다.상상력의 어두운 꿈의 재료가 되는 것은 멀리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는 현실적으로 위협이 되는 재난이다.우리의 상상력은 이러한 재난을 확대하고,그것의 가능성을 실제보다 훨씬 더 크고 가깝게 가져와 가장 끔찍한 방식으로 그려낸다.그래서 꿈에서 꺠어나더라도 다른 즐거웠던 꿈처럼 즉시 떨쳐버릴 수가 없다.즐거운 꿈은 현실에 의해 부정당하고,기껏해야 가능성이라는 꿈속에서 희미한 희망만 남기기 때문이다.하지만 우리가 어두운 환상에 휩쓸리게 되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이미지가 우리에게 다가온다.그렇게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일반적으로 확실한 것이 되고,우리는 그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언제나 제대로 평가할 순 없기 때문이다.그렇게 재난의 가능성이 개연성으로 쉽게 연결되어 우리는 불안의 포로가 되어버린다.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행복과 불행에 관련된 것들을 이성과 판단력의 눈으로만 보아야 한다.있는 그대로 냉정하게 숙고하고,상상력에서는 벗어나야만 한다.왜냐하면 상상력은 판단할 수가 없는 데다가 쓸데없이 종종 매우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단순한 그림을 눈앞에 보여주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행하고 만들고 배우면 끔찍한 무료함에 빠지지 않는다

"생명의 본질은 운동에 있다"라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은 옳다.마찬가지로 우리 내면의 정신적인 삶도 행동이나 생각을 통해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을 본질로 하고 있으며 그것에 대한 것에 종사하기를,행위와 생각을 통해 끊임없이 그것에 대해 일하기를 요구한다.게으르고 생각없이 멍하니 있는 사람들이 손이나 도구로 어딘가를 두드리는 동작을 하는 것이 그 증거라 할 수 있다.우리의 존재는 본질적으로 쉬는 것이 없는 연속적인 것이다.그렇기에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으면 끔찍한 무료함에 빠져 견딜 수 없는 상황에 빠진다.이러한 충동을 체계적으로 더 잘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충동을 조절해야 한다.그래서 활동하는 것,즉 가능하면 무언가를 행하고 또 가능하면 무언가를 만들고 최소한 무언가를 배우는 것은 인간의 행복에 필수적이다.



삶의 무수한 사건들은 만화경의 그림과 비슷하다

인간의 삶은 어떠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하더라도 언제나 같은 요소를 가지고 있다.그렇기에 오두막에서든,궁궐이든,수도원에서든 군대에서든 그 삶은 본질적으로 같은 삶이다.삶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나 모험,행운이나 불행 또한 아무리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어도 본질적으로는 같은 것이다.과자 역시 형태와 색깔이 다양하고 다른 모양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모두 하나의 반죽으로 만들어진다.어떤 한 사람에게 일어난 일은 다른 사람에게 우연히 일어난 일과 아주 비슷하다.그렇게 보면 우리 인생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어쩌면 만화경의 그림과 비슷하다.만화경에서 우리는 매번 다른 그림을 보고 있지만 실제로 눈앞에 있는 그림은 사실 항상 같은 것이다.



사리 분별 있게 행동하는 것이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쉬워진다

외로움은 뛰어난 정신을 지닌 영혼들의 운명이다.그들도 가끔은 고독에 대해 한숨 지을 것이다.하지만 그들은 두 가지 재앙 중 덜한 것인 고독을 선택할 것이다.하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리 분별있게 행동하라!"가 점점 더 쉬워지고 자연스러워지며 60세가 되면 혼자 있고 싶은 것이 자연스럽고 본능적으로 된다.그때가 되면 모든 것이 하나로 뭉쳐져 그러한 충동을 촉발시킨다.사교에 대한 강력한 본능인 이성에 대한 사랑과 성적 충동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노년기가 되면 성적인 활동도 어느 정도 자족의 토대를 마련해 점점 사교에 대한 본능을 흡수한다.그렇게 되면 수천의 속임수와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갑작스러운 기쁨이나 슬픔에도 담담하게 대하며 자신을 찾자

아무리 갑작스러운 일이 일어나더라도 너무 크게 기뻐하거나 또 너무 크게 슬퍼해서도 안 된다.모든 일에는 변화의 가능성이 있어서 언제든 사건이 변할 수 있기 마련이고,또 그렇기에 무엇이 우리에게 좋은 일이고 나쁜 일인지 잘못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러므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마도 한번쯤은 크게 슬퍼했던 일이 나중에 자신에게 최고의 일이 되었던 경우나 아니면 크게 기뻐했던 일이 사실은 너무나 큰 고통의 원인이 되었던 경우가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이러한 일에 대한 대비를 권장하는 방법을 셰익스피어는 아름다운 글로 표현했다.'갑작스러운 기쁨이나 슬픔을 숱하게 맛보았으니 이젠 그런 일을 당한다 해도 처음부터 담담하게 대한다.중' 그러니 이것은 일반적으로 어떠한 고통이나 시련을 겪더라도 침착함과 의연함을 유지하는 사람은 인생에서 일어날 수 있는 재난이 얼마나 거대하고 엄청나게 많은 것인지 알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그렇기에 그는 지금 일어난 이 시련이 사실은 앞으로 일어날 일의 아주 작은 부분이라고 간주한다.이것은 스토아적인 태도이다.이러한 스토아적인 태도에 따르면 우리는 인간이 처한 상황을 절대 망각해서는 안된다.인간 존재 그 자체가 얼마나 슬프고 비참한 운명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를 항상 기억하고 있어야 하며,또한 일반적으로 인간이 얼마나 많은 고통과 시련에 노출되어 있는지도 늘 명심해야 한다.이러한 통찰력을 되살리려면 자신의 주위를 둘러보기만 하면 된다.자신이 그 어디에 있든 이 가엾고 비참하며 아무런 결실도 맺지 못하는 존재가 생존을 위해 노력하고 몸부림치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금방 볼 수 있을 것이다.이러한 모습을 보면 자신의 주장을 내려놓고 모든 사물과 상황의 불안전함에 순응함으로써 자신을 찾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그래서 늘 인생의 고통과 시련에 주의를 게을리하지 않고 그것을 피하거나 참고 견디려고 할 것이다.사건,사고들은 그것이 크든 작든 우리 인생의 한 요소이기때문에 이러한 것을 늘 반드시 명심해야만 한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한탄하며 얼굴을 찌푸리기만 하거나,작은 벼룩에 물렸다고 신의 도움을 청해서는 안된다.분별력이 있는 인간으로서 사람에게서나 사물로부터 일어날지도 모르는 재난을 사전에 피하고 그것을 예방하는 데 신중함을 기해야 한다.마치 동화에 나오는 영리한 여우처럼 크거나 작은 불행(이러한 것은 대부분 그저 미숙한 것을 숨기려는 것에 불과하다)을 말끔히 피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심사숙고를 기울여야만 한다.



외부로부터의 끊임없는 자극으로 공허를 이기면 불행해진다

내적인 본질적 가치와 그 풍부함을 지닌 사람들은 만족감을 누리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교재하기 위해 불필요한 큰 희생을 치르지 않는다.그런 이들은 하물며 자신을 부정하며 교제 관계를 맺을 일은 더더욱 없다.이와는 반대로 평범한 사람들은 너무 사교적이고 순웅적이어서 자기 자신보다 다른 사람들을 더 쉽게 참게 된다.말하자면 세상에서 가치 있는 것들을 중요하게 여기지지 않는 것이고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은 그다지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가치 있고 뛰어난 이들이 모두 사람들과 교제하지 않는 것이 그러한 것을 입증하는 것이며 또 그렇기 때문에 뛰어난 것이기도 하다.이 모든 것을 바탕으로 미뤄볼 때 자기 자신에 대한 권리를 지닌 사람이라면 필요한 경우 자신의 자유를 보존하거나 확대하기 위해 자신의 욕구를 제한하는 것이,그리고 세상 사람들과 어쩔 수 없이 교제를 해야 하므로 가능 한 한 짧게 세상과 타협하는 것이 진정한 삶의 지혜가 되는 것이다.반면 사람들을 사교적으로 만드는 것은 고독과 고독한 자신을 견딜 능력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뿐 아니라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게 하는 것도 내면의 공허와 무료함 때문이다.그런 사람들의 정신에는 자신을 움직이게 하는 원천의 힘이 부족하기 때문에 술을 통해 그것을 높이려다 결국 취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바로 이런 이유로 그들은 외부로부터의 끊임없는 자극이 필요하며 자신과 동질한 종류인 술에 의한 가장 강한 자극이 필요하다.이러한 자극이 없으면 그들읜 정신은 그 자체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결국 억압적인 무기력에 빠지고 만다.


ㅡㅡㅡㅡㅡㅡㅡ


쇼펜하우어에게는 늘 염세주의자라는 부정적인 평가가 따라다니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 인생을 사랑했고 치열하게 인생의 본질을 찾고자 했던 철학자다.단지 그는 현실주의자로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이를 냉철하게 가감없이 이야기 했을 뿐이다.그는 이 세상이 고통과 불행으로 가득하며 인간의 행복은 그 고통과 불행을 최소화하는데 달려있고 행복으로 가득한 천국은 현실이 아닌 상상속에서 가능할 뿐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즉,행복은 꿈일 뿐이지만 고통은 현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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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djaosxlah (♡.224.♡.209) - 2024/02/18 10:50:18

쇼펜하우어 이 사람은 깨우는게 엄청 많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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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단비
2024-02-12
1
79
나단비
2024-02-12
0
58
해청2023
2024-02-12
3
170
나단비
2024-02-12
1
86
나단비
2024-02-11
1
114
나단비
2024-02-11
0
65
나단비
2024-02-10
0
75
나단비
2024-02-09
0
91
나단비
2024-02-08
0
108
나단비
2024-02-07
1
111
애심씨
2024-02-07
4
140
나단비
2024-02-06
2
118
나단비
2024-02-05
1
102
나단비
2024-02-04
2
75
나단비
2024-02-03
1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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