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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때 친구들~

galaxy2 | 2020.08.25 15:11:58 댓글: 2 조회: 700 추천: 3
분류실화 https://life.moyiza.kr/mywriting/4160613
이번엔 우리마을에서 유치원부터 초중까지 함께 다녔던 현재 연락 있는 친구들을 몇명 적어보겠습니다.

철수는 유치원부터 소학교까지는 함께 잘 놀았다.
나의 인상속에 집 가정형편은 별로였지만 돈 씀씀이가 헤프고 쟝이치 하는 친구였다.
그리고 머리가 좋아서 초중 2학년까지 우리와 같이 수학 써클에도 참가했던 기억이 난다.
함께 수학경연에도 참가했고 한때는 고중에 가겠다고 열심히 공부했던것 같다.
철수와 기억이 제일 많이 남는 일은 우리 시골에 공장이 있었는데 공장에서 쓰다남은 페철을 노천 창고에 두는곳이 있다.
그때는 양뤄촬이 금방 나왔을때인데 한촬에 25전씩했다.
하루는 하학해서 철수는 자기가 폐철을 모아두는곳을 알고 있으니 거기 가서 폐철을 도적질해다가 수구소에 가져다 팔아서
양뤄촬 먹지 않겟는가 햇다.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철수 의견에 동의하고 폐철 창고에 가서 가방에 쇠덩어리(한덩어리 5근) 네개씩
넣고 페철 수구소로 가져다가 팔았다. 지금도 똑똑히 기억나는데 폐철 한근에 10전씩 했음. 네개 팔면 2원.
우리는 한사람이 2원씩 받아서 양뤄촬 굽는 곳으로 달려가서 한사람이 양뤄촬 8개씩 먹었다.
양뤄촬 먹기 싶어서 이튿날에 또 폐철 도적질해서 수구소로 갔는데 웃학년에 다니는 깡패가 수구소 앞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도적질해온 폐철을 자기가 다 받아내서 수구소에 팔고 우리에게 50전씩만 나눠줬다...(黑吃黑)
후에 이 깡패는 형사안건에 걸려서 팔년 판결받고 감옥에 갔다고 들었다.
(이 깡패가 철국이네 아래집에 사는 기철이 친형인데 이집은 아들 셋이였는데 셋 모두 우리 시골의 유명한 깡패였다.)
나는 그날 팔이 빠지는거 같이 아팠다. 이후부터는 다시는 폐철 팔러 다니지 않았다.

우리가 고중에 갔을때 철수는 흑룡강 계동?계서? 있는 일어 학원에 일어 배우러 갔다.
후에 회사생활하면서 계동 일어학원 졸업한 분들이 일본회사 다니면서 잘나가는것을 많이 봤다.
대학 입학시험 보고 외대에 붙어 졸업한 학생 못지않게 일어를 잘하고 회사에서 잘나가는 친구들이 수두룩했다.
철수도 일어공부 열심히 했더라면 또 다른 인생이 생겼겠는데...
철수는 학원에서 열심히 공부는 하지 않았고 싸움은 한것 같지 않다.
2년정도 일어 배우고 고향에 돌아왔지만 잘 배우지 못해서 연수생으로 한국으로 갔다.


한국에 가서 비자 팽게치고 이십년 정도 한국에서 노가다 뛰다가 몇년전에 고향으로 돌아왔단다.

작년 설에 연길가서 만철이에게 연락을했는데 철수와도 연락이 되여 우리셋 그리고 영춘이 같이 밥먹었다.
철수는 한국에 가서 별의별 고생을 다한것 같았다.
자본주의 사장님의 압박 착취하에 저도 모르는 노련함과 침착성이 얼굴에 그대로 깃들어 있었다.
그리고 사회를 보는 시각과 인간의 본질에 대한 이해 정도는 나와 만철이와 비슷했다.
자기는 배운게 없어서 한국에서 노가다 뛰면서 돈을 벌지만 일하면 일한 만큼의 보수가 나오고 그사회의 룰에 습관되여서
비록 땀을 흘리면서 돈을 벌지만 이런 체력노동은 머리를 쓰지 않고 복잡한 동료관계 상사관계 같은것들이
크게 중요하지 않아서
스트레스를 적게 받아서 좋단다.


이십년 정도 한국에서 노가다 뛰면서 살아왔건만 헤픈 돈씀씀이 때문에 돈은 얼마 저축은 못한것 같았고 아직 결혼은 하지 않았고
사귀는 여친이 있었다. 하루빨리 결혼해서 돈도 헤프게 쓰지말고 행복한 가족을 이루기 바란다.
지난 6월말에 철수는 또다시 한국으로 일하러 들가서 나에게 메세지 보내왔다.
한국에 들어오면 꼭 연락해라... 나는 이제는 한국 생활에 적응되여서 연변에서 살수없구나...


설에 철수랑 같이 만났을때 영춘이도 함께 만났다.
영춘이는 철수랑 계동에서 일어학원 다녔을때 우리 고향 공장에서 운영하는 기공학교를 다니다가.
다른 동창들이 모두 외지에 나가서 학교다니는데 자기는 시골에 남아서 기공학교 다니는게 싫어서 연길에 자동차 운전학교에 다녔다.
지금은 그 학교가 있는지 모르겠는데 그때까지 汽校라고 했다. 그학교 졸업하고 면허증 따고 고향 공장에 돌아와서 운전기사 하였다.
운전기사 하다가 모두들 한국에 나가서 돈버는 붐에 공장 운전기사 직업을 버리고 한국에 가서 십년넘게 일을해서 번돈으로
연길에 와서 집도 사고 결혼도 하고 현재는 연길에서 살고있었다.

우리 소학교 다닐때 영춘이 집에 록상기(비디오)가 있었는데 우리는 영춘이 집에 가서 홍콩 무협영화랑 한국 깡패 영화를 많이 봤다.
<<시라소니>>,<<장군의 아들>>등...

하루는 학교에서 일찍 하학고 집가는길에 영춘이가 우리 보고 자기집에 록상 보러 가자고 했다.
집에 들어서자 영춘이는 문을 닫아걸고 카텐을 빈틈없이 치는것이였다.
그리고 궤짝 썩 안에서 록상테프를 하나 꺼내들고 록상기안에 넣었다.
갑자기 화면에서 영혼을 빼앗아가는 음악이 흘러나오더니 요염한 여자가 시원한 옷차림을 하고 나와서 다리를 꼬고 앉아서
와인을 마이면서
맞은켠의 남자를 꼬시는 장면이 나왔다... 그때에야 우리는 영춘이가 왜서 문을 걸고 카텐을 치는지 알았다...
그때부터 영춘이 집의 록상기는 우리 시골 청소년의 첫번째 성교육 계몽선생님이 되였다.

영춘이는 한국에서 돌아와서 식당도 해보고 안마방도 해보고 송이장사도 해보고 이번 코로나 시기에는 마스크 장사도 해보고 있었다.
다시 한국에 들가서 몸으로 떼우는 일은 하지 않고 장사를 해서 살아보려는 노력이 보인다.
자식이 커가는것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살겠다는 노력이 엿보였다...


영호는 초중까지 다니고 기공학교 다니다가 연길에 나와서 일을 하였다.
일이란게 복무원 일이다. 하루는 청년호텔 옆을 지나가다가 우연하게 영호를 만나서 술사줘서 잘 마이였다.
후에 영호는 호텔에서 복무원하지 않고 노래방에 가서 복무원했는데 철국이와 같이 영호네 노래방가서 술먹은 기억이 난다.
물론 영호가 거기서 복무원하니 술은 영호가 칭커해서 얻어먹고 걔네 노래방 아가씨들 우리 어린 학생들과 열정스레 놀아줬다.
어려서부터 초중 졸업할때까지 영호네 집은 항상 우리 친구들이 모이는 장소였다.
영호 부모님이 모두 착한 분이시여서 우리 애들이 모여서 아무리 장난쳐도
욕하지도 않고 얼굴 한번 붉혀본적이 없었다.
친구들이 한번은 강가에 나가서 오리 한마리 훔쳐다가 영호네 집에 가서 끓여서 먹은 기억이 난다.

영호는 연길에서 서비스업 하다가 북조선 금강산이 개방 되면서 조선족 연수생을 모집해서 한국 관광객에게 서비스하는데 뽑히여
북조선 금강산에 가서 연수생을 몇년 했다.

금강산에서 돌아와서 현재는 장가계에 가서 가이드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미 결혼도 하고 아들딸 낳고 한가족이 장가계 선경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영택이란 친구도 철수와 같이 일어학원 다닌 친구이다.
어려서부터 우리 아랫집에 살고 있어서 우리는 특별한 아래웃집 우정이 존재한다.
평소에 안먹는 귀한 음식이랑 하면 서로 들고가서 먹어보라고 하던 그런 시골의 아래웃집 관계이다.
내가 학교를 그만두고 상해로 갈때 연길에서 상해로 직통하는 기차가 없어서 꼭 북경을 걸쳐서 가야 했다.
나는 그때 영택이와 미리 연결하고 북경에서 영택인데 가서 하루밤 자고 상해로 가기로 했다.
북경역에 도착하니 영택이는 이미 역전에 마중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영택이는 일어학원 졸업하고 북경에서 일본 한국 관광객 대상으로 하는 약방 가이드 하고 있었다.
일어학원에서 일어를 잘 배워서 일본 손님에게 약을 팔수 있는 수준이 된것 같았다.
영택이의 만류로 나는 이튿날에 상해로 떠나지 않고 영택이 숙소에서 이틀 자면서 두날동안 북경돌이하고 상해로 떠났다.
떠날때 영택이가 상해로 가는 기차표를 떼준것으로 기억난다.
그리고 大前门 담배 두보루에 먹을것들을 가득 사서 나의 손에 쥐여준 기억이 난다.
2006년도에 고향으로 가서 만나보고 지금까지 한번도 못만나보고 있다.

아직도 연락이 끊긴 기타 고향 친구들은 모두 잘살고 있겠지....
추천 (3) 선물 (0명)
IP: ♡.250.♡.61
선글라스1 (♡.208.♡.12) - 2020/08/27 01:50:25

아무리 고향친구, 동창들이라 해도 저자 또래 분들은 유별나게 서로 쟝이치하고 직근한거 같습니다. 그러한 친구들속에서 저자님 역시 엄청 행복하게 순탄하게 인생을 지내오신거 같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친인 가족빼고 소중한 인연이 다양한분야에서 서로 도울수있는 친구들이 필요한것입니다.

galaxy2 (♡.98.♡.82) - 2020/08/27 09:32:04

어려서부터 함께 자랐던 친구들이나 후에 만난 친구들 제가 힘들때 많이 도와줬습니다.
제가 가장 힘들었던 시절 대학다니다 자퇴하고 나와서 6년동안 안정적으로 생활하기전까지 광동과 상해사이를 두번씩 갔다왔다하였는데 모두 친구들을 믿고 친구집에 얹혀살면서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좋은 친구들때문에 현재의 내가 만들어진것 같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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