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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후에, 답해도 될 가요? - 7

yina1004 | 2021.04.02 17:31:38 댓글: 1 조회: 300 추천: 2
분류일반 https://life.moyiza.kr/mywriting/4244002
 7화
 
건물을 빠져나오니 후덥지근한 공기가 몸을 감싼다. 한 낮에 뜨거웠던 열기가 밤이 되어도 식지 않은 듯 여전히 뜨겁다.
 
나는 조과장님이랑 만나기로 한 사거리 스타벅스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Rrrrrrr
 
모르는 번호.
이 시간에 전화할 사람은 몇 안 된다. 그리고 모르는 사람이 전화할 일은 더더욱 없다. 나는 속으로 전화한 사람을 짐작하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나에요.”
 
예상을 했던 사람이다. 내 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는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것 같다.
 
“네에.”
 
“앞쪽으로 좀 걸어와요. 깜빡이 켠 하얀 색 차.”
 
나는 부근의 커피숍에서 잠깐 보는 줄 알았는데 차로 이동할 건가 보다. 차문을 여니 시원한 바람과 함께 그한테서 나던 은은한 허브향이 코끝을 스쳤다. 피죤냄새는 아닌 것 같고, 향수냄새인가?
 
“번호 저장해요.” 
 
그는 말없이 차에 올라타는 나를 보며 말했다.
 
“어디로 가는 거에요?”
 
“집주소 찍어봐요.”
 
수업을 하자고 하지 않았나? 나를 집에다 데려다 주겠다는 건가?
 
“저희 집으로 가나요?”
 
내가 머뭇거리고 있자 전방만 주시하던 그가 나를 힐끗 쳐다본다.
 
“집 부근의 커피숍 같은 곳에서 보는 게 편하지 않을 가요?”
 
나쁠 것 없을 것 같다. 끝나면 바로 집에 가면 되니까 어떻게 집에 갈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단지 집주소를 공유한다는 것이 왠지 모르게 망설여졌다.
 
나는 천천히 집주소를 입력했다.
 
그는 네이게이션을 한 번 보더니 말없이 운전만 했다.
 
차 안에서는 90년대 발라드가 잔잔하게 흘러나왔다. 요사이 뉴트로 감성이 유행이라더니 이 분도 같은 세대인가? 아직 정확한 나이를 모르니 추측만 할 뿐이다.
 
나는 운전하는 그의 옆모습을 힐끗 쳐다봤다. 표정 없는 얼굴은 차갑게 느껴졌다. 운전에만 집중해서인지 눈빛이 살짝 날카로워 보이기도 하고, 늦은 시간 운전까지 해가며 중국어를 꼭 배워야 하는 간절한 이유는 없는 것 같은데, 짐작만 할 뿐이다. 말이 없으니까 괜히 긴장이 된다. 이렇게 밀페된 공간에서, 들리는 건 잔잔한 음악소리뿐, 숨 쉬는 것조차 조심스러워 진다.
 
그러고 보니 낮에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했다. 인사는 제대로 해야지 않을가?
 
신지언니가 사색이 되어 올라와서 어디 다친 곳은 없냐고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묻던 얼굴이 떠오른다. 과장님이 말했는지 신지 언니는 그 일에 대하여 알고 있었다. 본인이 해야 할 일을 나한테 맡겨서 그런 사달이 났다며 미안해 했다. 바쁘면 서로 도우는 것이 당연한데, 단지 내가 창고용 카트를 모르고 사용해서 일어난 사고였을 뿐이다. 언니는 앞으로는 매장에서 판매만 하라고 한다.
 
“낮에는 고마웠어요. 인사가 늦었네요.”
 
그는 알았다는 듯 고개만 끄덕일 뿐 별 말이 없었다.
 
 
주변이 너무 조용하다.
여기는 어디지? 조용한 차 안.
내가 잠들었나 보다.
상쾌한 공기, 잔잔한 음악, 안정적인 차의 움직임에 긴장이 풀려 잠들었나 보다. 어제 저녁에 제대로 못 자기도 했고, 낮에 많이 놀라 에너지를 평소보다 과소비한 탓인 것 같다.
 
머리를 돌려보니 조과장님은 운전대에 머리를 기대고 나를 조용히 보고만 있었다.
눈이 마주쳤는데도 움직이지 않고 바라만 봤다.
가끔 매장에서도 눈이 마주칠 때가 있는데, 이렇게 생각많은 얼굴로 미동도 없이 보고 있지는 않았다. 나는 조금 민망하여 목을 흠흠 가다듬으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언제 도착했어요?”
 
“잘 자네요. 자존심 상하게. ”
 
“어제 저녁에 잠을 설쳤더니 피곤했나 봐요.”
 
“날 너무 믿는 거 아니에요? 그래도 뭐 방해 받지 않고 볼 수 있어서 좋았네.”
 
이건 또 무슨 말일가? 내가 그의 표정에서 이해에 도움이 될만한 단서를 찾으려고 뚫어져라 쳐다보니 빠르게 다음 말을 이었다.
 
“오늘 수업 못했으니까 화요일에 밥 사요.”
 
“화요일에 강의 있어요.”
 
“강의 없다고 하지 않았어요?”
 
“화, 목 아침 개인과외가 있어요. 일하는데 영향이 없을 것 같아서 이 수업만 계속 하고 있어요.”
 
그래서 매 주 화요일 휴무구나, 그는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강의가 몇 시에요?”
 
“아침 7:30~8:30분.”
 
“그럼 강의 끝나고 보면 되겠네.”
 
그렇게 나는 또 그와 다음 약속을 잡았다.
 
******
 
영화관 안은 이른 시간이라 사람이 별로 없었다.

아침 수업을 마치고 나오니 조과장님이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1층 빵집에서 보자고 했는데 로비에 떡하니 서있었다. 오늘은 하늘 색 반팔셔츠에 베이지색 슬랙스를 입고 있었다. 슈트만 입던 모습을 보다가 캐주얼한 옷차림을 하니 다른 사람 같다. 반듯하게 올리던 머리도 오늘은 아래로 내려 조금 더 앳된 느낌이 난다. 그는 나를 보더니 별 말없이 옆으로 다가왔다. 이 부근에 성형외과가 이 건물에 밖에 없었으니 여긴 줄 알았나 보다. 내가 성형외과 원장님 수업이라고 말했던 것 같다. 간단하게 오렌테이션이라도 진행을 하고 교재를 정해서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어떨지 물어보니 그는 오늘 시간이 많다며 우선 영화나 한 편 보자고 한다. 그렇게 우리는 영화관으로 갔다.
 
“오늘은 선생님 같은 분위기네요.”
그는 의자 팔걸이 홀더에 콜라를 놓으며 말했다.
 
평소에는 캐주얼한 차림으로 주로 다니지만 강의가 있을 때는 그래도 격식을 차려 원피스나 세미정장을 입는다. 오늘은 허리 라인을 강조한 아이보리색 원피스를 입었다. 그와의 만남을 염두에 두고 이렇게 입은 건 절대로 아니다.
 
그는 콜라를 마시며 몸을 의자 팔걸이에 비스듬히 기울이고 나를 보고 있었다. 왜 저렇게 보고 있지? 지난 번부터 말없이 자꾸 쳐다만 봐서 왠지 불편했다. 내 얼굴에 뭐 묻었나? 그의 시선이 너무 오래 머무르는 것 같아서 나도 그쪽으로 봤다. 뭐 할 말 있냐는 시선으로.
 
그는 콜라잔을 홀더에 놓더니 자세를 고쳐 앉으며 감정 없이 말했다.
 
“유니폼 수선하지 마요.”
 
이건 또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지? 설마 그때 다영이가 유니폼 수선하라는 말을 들은 건가? 유니폼을 수선할 만큼 그 일에 애착이 없어서요, 괜한 걱정을 하시네요. 난 어이가 없어서 실소를 했다.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스릴러물이었다. 그러나 영화가 눈에 잘 들어오지는 않았다. 오래간만에 남자와 단 둘이 영화관에 온 것도 그렇고, 왠지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이 많이 신경이 쓰이다 보니 집중이 잘 되지는 않았다. 보는 둥 마는 둥 하다가 갑자기 화면에 잔인한 장면이 나와서 나는 저도 모르게 의자 팔걸이를 꼭 잡았다. 놀라거나 무서울 때 뭘 잡는 버릇이 있다. 근데 팔걸이를 잡은 줄 알았는데 따뜻한 촉감이 느껴졌다. 나는 시선을 내렸다. 내 손은 의자 팔걸이에 놓여 있는 그의 손등에 예쁘게 포개져 있었다. 화들짝 놀라 손을 거두려고 하는데 그가 나보다 더 빠르게 손바닥을 위로 뒤집더니 손가락 사이사이를 파고 들었다.
 
내가 상황파악이 안되는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자 몸을 또 가까이 기울여 속삭인다.
 
“위로는 이렇게~”
 
나는 예상하지 못한 자극에 몸을 움츠렸다. 귀속말 하는 것이 습관인가? 놀리는 것 같기도 하고. 참~ 내가 지금 위로가 필요했나? 나는 익숙하지 않은 친절에 손을 빼려고 했다. 그러자 그가 조금 더 힘을 주어 손을 빈틈없이 맞잡았다. 내가 손을 빼지 못하도록.
 
친구사이에 놀라거나 위로가 필요할 때 우리는 손을 잡아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손깍지를 끼지는 않는다. 연인들 사이에서나 하는 이런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이 분을 나는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가? 상사와 직원 사이도, 선생님과 제자 사이에도 해당되는 행동은 아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남여사이라고 하기에도 관계의 정의를 명확하게 내리지도 않은 상황이다. 애매모호한 상황에서의 이런 스킨십은 내가 원했다면 다음 단계로 발전할 수 있는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고, 내가 원하지 않는다면 성추행의 범주에 들어간다. 조과장님처럼 잘난 남자라면 여자들이 관계의 정의고 뭐고 마냥 좋아할 것 같다. 여자들한테 지금까지 이렇게 스킨십을 스스럼 없이 해왔나? 나도 단지 그 중의 한 명인가? 나는 이런 스킨십이 불편했다.
 
나는 우선 그가 한 말 그대로 일종의 특별한 위로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영화가 끝나고 나는 화장실에 가야 한다는 핑계로 손을 풀었다. 그리고 그도 다시 그렇게 손을 잡아오지는 않았다. 정말 내가 위로가 필요해서 잠깐 손을 잡아 주었던 것처럼.
 
영화관을 나와 우리는 주변에 있는 일본 가정식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는 영화관에서 나 온 이후 그와 시선을 잘 맞추려고 하지 않았다. 정확하게 콕 집어서 말하기 어려운 불편함.
메뉴를 정하고 나는 어색하게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가게 안은 나무로 전체적인 인테리어를 해서 따뜻한 느낌을 주었다. 점심을 먹기에는 이른 시간이라 손님들이 별로 없었다.
 
Rrrrrrr
 
내 전화기가 갑자기 울렸다.
모르는 번호이다.
 
맞은 편에 앉은 조과장님을 한 번 힐끗 보고 나는 전화를 받았다.
그는 아직 메뉴판을 보고 있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선생님, 안녕하세요~”
 
밝은 남자 목소리.
목소리가 커서 전화기 밖으로 소리가 울려 퍼진다.
조과장님은 남자 목소리를 들었는지 메뉴판을 훝던 눈길을 잠깐 멈추고 오른 쪽 눈썹을 살짝 위로 올렸다.
 
“안녕하세요~”
나는 이 목소리의 주인이 떠오르지 않아 인사를 한 번 더 했다.
 
“선생님, 저 푸드빌에 이진영이에요.”
이름을 들으니 생각이 났다. 매 수업마다 20분정도 일찍 와서 열심히 하던 분.
 
“아~ 기억이 나요. 이번 차수도 강의 듣나요?”
 
“네에, 전 선생님이 계속 하는 줄 알았는데 안 하셔서 아쉬웠어요.”
 
“제가 사정이 좀 생겨서요, 9월에 시작하는 강의는 별문제 없으면 할 것 같네요.”
 
“저 이번에 BCT3급 넘었어요. 선생님이 외우라고 했던 내용 위주로 외웠더니 운 좋게 3급을 넘었네요.”
남자는 아주 신나서 이야기를 했다.
 
“콜라 마실래요?”
 
통화중에 갑자기 말을 거는 조과장님.
 
나는 조금 당황하여 안 마시겠다고 손을 흔들었다.
 
“너무 잘됐네요, 그럼 올 해는 승진이 가능하겠네요, 지난 번에 외국에 성적도 승진에 반영한다고 말했잖아요.”
 
“네에, 운 좋으면 가능할...”
 
“아니면 생맥주 마실래요?”
 
또 갑자기 말을 거는 조과장님.
나는 다시 당황한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통화 중에 말을 걸만큼 매너가 없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았는데, 왜 이러시는 걸가?
 
이진영씨도 조과장님 목소리를 들었는지 하던 말을 끊었다.
 
“선생님, 지금 식사중이에요?”
 
“아, 네에~ 지금 밥 먹으로 나왔어요.”
나는 당황한 내색을 감추려고 최대한 차분하게 말을 했다.
 
“그럼 나중에 통화해요. 식사 맛있게 하세요~”
 
전화를 끊고 나는 그를 노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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