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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사친의 고백 - 10

yina1004 | 2021.07.07 17:04:50 댓글: 2 조회: 655 추천: 5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275456
10화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것 같은 말을 뱉을 때, 우리는 스스로에게도 상처를 남긴다. 그런 말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 없으면 가장 좋겠지만, 상처되는 말을 들으면 그보다 더 아픈 말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려고 한다. 일명 나를 지킨다는 명분 하에.

원장님에게 무례하게 하고 싶은 말을 다 쏟아냈지만 무거운 기분은 쉽게 환기가 되지 않았다.

엘리자베스쌤과 죠이쌤이랑 간단하게 마무리 인사를 하고 다음에 꼭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애써 짓던 웃음도 지우고 나만 아는 표정으로 돌아왔다.

오늘 하루 참 길게 느껴졌다. 학원 앞 대로에서 길을 건너고 있는데 맞은편 편의점 쪽에서 익숙한 인영이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광이다. 광이 얼굴을 보는 순간, 왠지 모를 안도감이 나를 감쌌다. 나는 빠르게 뛰어가 광이 품에 폭! 안겼다. 그의 허리를 꼭 안고 한동안 그의 체온을 느꼈다. 갑작스러운 나의 행동에 놀라는 듯 움찔 하더니 광이도 마주 꼭 안아주었다.

토닥토닥~

“고생했어~”

광이는 내 머리에 가볍게 입 맞추고 어깨를 잡아 얼굴 표정을 살폈다.

“잘 하고 왔어?”

“응”

“가자! 집에 데려다 줄게.”

내 손을 잡아 끌며 집쪽으로 몸을 돌렸다.

“오늘은 그 집에 ... 안 가고 싶어.”

방금 원장님을 그렇고 그런 사람으로 말했는데 그 집에 아무렇지 않게 들어가 잘 수가 없었다. 이미 계약관계도 끝난 마당에 더 이상 신세지고 싶지도 않고, 하루 빨리 학원과 관련있는 모든 일들은 정리를 하고 싶었다.

내 표정에서 무언가 읽으려고 무던히도 애쓰는 눈빛이다.

“그럼... 부모님 집에 데려다 줄 가?”

이런 얼굴로 부모님을 만나면 또 걱정을 하시겠지, 그러지않아도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 학원을 옮긴다고 하여 걱정이 많으신 분들이다. 더 보태고는 싶지 않았다.

“거기도 싫으면 우리 집에 갈래?”

나도 어떻게 할지 딱히 대책을 세우고 그런 말을 한 것은 아니다. 그냥 그 집에 들어가기 싫었을 뿐이다. 광이집보다는 단이가 새로 잡은 원룸이 편하지 않을 가?

“집이 없는 서러움이란게 뭔지 알 것 같은 이 기분은 뭘 가?”

“내가 집 사줄게!”

“진짜? 그렇게 말하니까 가방 쇼핑하듯 쉽게 살 수 있는 물건 같다.”

“집 있는 남자가 소원이야?”

“그렇다고 하면 사줄것 같은 이 말투는 뭘 가?”

“당장은 아니더라도 동기만 확실하면 못 할 것도 없지.”

“내가 내적동기가 되는거야?”

“네가 원한다면!”

“진담처럼 들려.”

“진담이야!”

얘는 가끔 이렇게 진담인지 농담인지 경계선이 모호한 이야기를 한다. 믿어야 되나?

“가자! 집에~”

광이 손에 이끌려 난 광이 집으로 향했다.

*** *** ***

“뭐하고 있어?”

광이가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털며 화장실에서 나왔다.

“어, 무슨 책 있나 보고 있었어.”

나는 광이 책장 속 책을 유심히 보며 대답했다.

“누군가의 책장을 보는 건 누군가의 머리 속을 보는거랑 똑같다고 하던데, 너무 자세히는 보지 마.”

어느 새 광이가 옆으로 다가왔다. 금방 씻고 나와서인지 그한테서는 그윽한 비누향이 기분 좋게 났다.

“이 책은 어떻게 구한거야?”

내가 쓴 글이 두 편 실린 **잡지.
예전부터 궁금했다. 이 책을 어떻게 광이가 갖고 있는지.

“아~ 그 책.”

광이는 냉장고쪽으로 몸을 돌리며 뜸을 들였다.

“말 못할 사연이 있어? 왜 대답을 피해?”

“그런 건 아니고.”

광이는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꺼내며 마실건지 눈짓으로 묻는다. 나는 손을 뻗어 마시겠다고 머리를 끄덕였다.

“궁금해, 말해 줘~”

맥주캔을 따서 나한테 건네주며 광이는 말을 이었다.

“너 그때 싸이월드에 이 책을 찍어서 선물이라며 올려서 뭔지 궁금했어. 그래서 방학 때 중국 들어가는 후배한테 부탁하여 구했지.”

“그때부터 나한테 관심 있었던 거야?”

“관심이 였을 가? 그때는 그게 무슨 감정인지 몰랐어. 그냥 너 귀국하고 사는게 재미가 없더라. 같이 알바할 때가 즐거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리고 넌 중국에서 졸업하여 취직도 했으니 더 이상 접점이 없을거라는 생각도 들었고, 그래도 너에 관한 것들이 궁금하여 책을 부탁하지 않았나 싶어. 근데 읽고 후회했지. 읽지 말았을 걸 하고.”

과거 감정의 흔적들.
글은 상상을 더하여 그 감정의 깊이가 더 생생하게 느껴질텐데, 굳이 알 필요가 없는 내 과거를 알게 한 것 같아서 미안했다. 지금은 어렸을 때 한 때의 감정이었다고 웃으며 말할 수 있는 일이 되어버렸는데, 라면이라는 단어를 들어도 더 이상 특정인물이 떠오르지 않고 너의 고백만 그 자리를 가득 채우고 있는데, 그한테 나의 이런 마음을 전한 것 같지가 않았다.

나는 손에 들려있는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맥주캔을 식탁 위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 광이한테 다가가 광이 허리를 잡고 천천히 발꿈치를 들어 그의 입술에 입술을 포갰다. 금방 마신 맥주 냄새가 알싸하게 코를 자극했다.

“너 오늘 달라 보여.”

예전에는 광이가 리드하는 대로 따라 갔으니 이렇게 적극적인 내 모습이 낯선가 보다. 나는 광이 목에 팔을 두르고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중얼거렸다.

“그래서 싫어?”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너 오늘 학원에서 힘들었을텐데 내가 그 약한 틈을 비집고 뭘 하려하는 새끼로 생각할가봐 걱정이 되어서.”

내 기분을 주의깊게 신경쓰는 사람이 있다는 건 참 기분좋은 일인 것 같다. 그런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 또한 감사한 일이었다. 이렇게 세심하게 누군가를 배려를 하는 사람인 줄 몰랐는데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그가 더 괜찮은 사람인 것 같아서 좋았다.

나는 또 다시 발꿈치를 들어 키스하려고 머리를 드는데 이번에는 광이가 먼저 고개를 숙여 다가왔다. 한 팔로 허리와 등을 받치고 한 손은 허리를 잡고 고개를 틀어 깊숙히 들어왔다. 광이는 허리를 잡은 손을 위로 더듬어 올라가다가 가슴 바로 밑 갈비뼈를 잡고 멈추었다. 차마 더 이상 위로 영역을 넓히지 못하고 아슬아슬하게 멈추어 갈비뼈를 으스러지게 잡았다.

나를 지켜주고 있는 거니? 나에 대한 존중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이렇게 자극을 하면 여자도 욕구가 생긴다는 걸 모르는 걸 가? 오늘 하루 힘들었을 나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이딴 배려 안 해줘도 되는데, 그만큼 내가 너한테 소중한 존재라고 생각을 바꿔 볼게.

그런데 밀착하여 있는 그의 몸이 서서히 딱딱해 짐을 느꼈다. 너 참을 수 있겠니? 나도 널 원한다고 유혹이라도 해야 하나? 아니면 여자는 지고지순 할거라는, 너의 여자에 대한 순수한 환상을 지켜줘야 할 가? 나도 혼란스럽구나.

“씻어!”

광이가 힘겹게 입술을 떼며 말했다. 눈에 욕망을 가득 담은 혼탁한 눈빛! 참을거면 눈빛도 들키지 말지 그래?

혹시 여자한테 혼전순결을 요구하는 남자는 아니겠지?


*** *** ***

“유쌤, 오늘 진아수업 쌤이 들어가요.”

“네에, 지난 수업 어디까지 했어요?”

“오늘 3과 단어 들어가면 돼요. 1:1 수업은 천천히 해요. 그래야 수업 계속 연장하지.”

너무 장사꾼의 속셈을 감추지 않고 말한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했다.

“지금까지 실장님이 하던 수업인데 갑자기 선생님이 바뀌어도 괜찮을가요?”

“괜찮아요. 진아는 내 말이면 잘 들어요.”

이 학원에서 강의를 한 지도 이제 3주가 지났다. 어느 정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하여 모든 것이 더 이상 새롭지 않은 상황이다.

금방 수업을 부탁한 사람은 김실장님이다. 이 학원의 선생님들을 관리하고 강의도 병행하고 있는 분이다. 한국사람과 결혼을 하여 귀화했다고 들었다. 딸이 중학생이라고 했었으니 나이는 사십대 중후반쯤 되었을 것 같다.

진아는 중어중문학과를 진학하려고 중국어 공부를 하는 고등학생이란다. 나름 즐겁게 강의를 마치고 사무실로 들어갔는데 실장님이 카운터에서 부르는 것이었다.

“유쌤, 오늘 어디까지 강의했어요? 개인과외는 학생 수준에 맞게 좀 더 빨리빨리 진도를 나가줘야 돼요. 수강료도 비싼데 이렇게 진도를 안 나가면 어떻게 해요? 다음부터는 좀 더 신경 써 주세요.”

나는 벙찐 얼굴로 김실장님을 쳐다보았다. 진아는 분위기가 살벌하여서인지 머리를 숙이고 시선을 피했다. 무슨 이런!

내가 너무 김실장님 뜻에 따라 천천히 강의를 했나? 다른 때보다 처음 맡은 학생이라 문법을 하나하나 풀어주긴 했지, 물어도 대답을 잘 못하니 모르는 줄 알고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는데 그게 문제였나? 아니면 말도 없이 선생님이 바뀌어서 불만이었을 가?

김실장님은 자신이 한 말을 어떻게 저렇게 홀랑 뒤집을 수가 있을 가? 실장이라는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황에 따라 입장을 수시로 바꾸어도 되는 건가? 변덕스러운 사람인 걸 알고는 있었지만 당황스러웠다. 나는 말없이 실장님을 쳐다보았다.

“진아야, 다음 수업 때는 이런 일 없을거야, 걱정하지 말고 얼능 가 봐. 다음 수업 때 보자~”

살갑게 진아 어깨를 다독이며 김실장님은 출입문쪽으로 걸어갔다. 그 뒷모습이 너무 낯설어서 나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있었다.

또라이 불변의 법칙이 존재한다고 하더니 혹시 내가 다음 또라이를 만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입니다.


신영복 저, 처음처럼, 돌베개, 2016


높이 있는 사람보다 깊이 있는 사람이

똑똑한 사람보다 배려하는 사람이

말 잘하는 사람보다 잘 들어 주는 사람이

풍요로운 사람보다 풍성한 사람이

성격을 드려내는 사람보다
인격이 배어 나오는 사람이

엄격하지만 관대한 그런 사람이

좋아요

월리엄폴영저, 오두막, 세계사, 2017
추천 (5) 선물 (0명)
IP: ♡.140.♡.85
바이러스3 (♡.160.♡.2) - 2021/07/13 17:06:51

내가 좋와하는 주인공이네요 ...간만에 올라와서 글 남겨요~~
좋와서 제일 밑에 글 캡쳐해갔어요 ~~

Kada (♡.246.♡.141) - 2021/07/28 09:27:36

좋은인연 만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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