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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비

l판도라l | 2023.01.30 06:49:42 댓글: 2 조회: 514 추천: 2
분류수필·산문 https://life.moyiza.kr/mywriting/4437700
집밑 화단옆 벤취에는 언제나 고즈넉하게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는 길고양이가 있다. 이사를 온 지 5년째, 첫아이가 태어날때부터 가끔 보는 길고양이었으니 저그만치 다섯살이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 노란 털이 온몸을 덮고 얼굴쪽은 흰 길고양이었다. 우리가 지나갈 때마다 고개를 들고 눈인사를 보내는 그 고양이가 하도 마음에 들어 두 아이는 내게 제발 고양이를 키우게 해달라고 졸라대군 한다.

“엄마도 어릴때 고양이를 길렀다고 했잖아요!”

딸애의 부르튼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희미하게 웃었다. 어찌 어릴때 뿐이랴. 불과 6년전만 해도 나는 한꺼번에 12마리의 고양이를 기른 적 있는 광적인 애묘인이었다. 그런 내가 고양이를 기르는 일을 잠정 중단한 것은 담비라는 이름을 가진 한 길고양이때문이었다.

담비는 내가 혼자 무역일을 벌려서 제일 바삐 돌아칠 때 우리 집으로 왔다. 온 것이 아니라 내게 납치를 당했다고 하는 편이 더 적중했다. 외근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후줄근하게 비를 맞고 있는 노란 고양이를 본 나는 도저히 걸음을 옮길 수 없었다. 마침 그 고양이도 내 연민의 눈빛을 알아챘는지 조심조심 내 뒤를 따라왔다. 아파트단지에 들어서고 집밑까지 따라왔을 때, 나는 몸을 돌려 고양이를 품안에 껴안았다. 그렇게 그 고양이는 나를 따라 집으로 왔고 그날로 담비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그 이름은 전에 가출해버린 어느 어린 고양이의 이름이었고 담비는 마침 그 고양이와 같은 색상의 노란 털을 가진걸로 기억된다.

하지만 담비는 가출한 그 고양이와는 다르게 온순한 성격이었다. 내가 목욕물을 받아 목욕을 시켜도 순순히 몸을 맡겼고 대소변은 꼭 화장실에서 보라는 내 어눌한 제스처를 금세 알아들은 듯 했다. 서둘러 사료와 고양이 모래를 장만하는 등 일련의 인터넷쇼핑이 이어졌고 그날 밤 나는 드디어 처음으로 혼자 밤을 새며 드라마를 보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던 담비가 앓기 시작한 것은 정확히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처음에는 콧물만 흘리던 것이 반나절이 지나자 기운을 차리지 못하고 누워있기만 했다. 서둘러 근처 동물병원으로 이동했고 수의사는 장염이니 링겔을 맞아야 한다고 했다. 링겔을 꽂는 동안에도 담비는 거부하지 않았고 수의사도 이렇게 온순한 고양이는 처음 본다고 혀를 찼다.

하지만 그날 밤부터 담비는 노란 물을 토하기 시작했다. 한밤중에 담비는 비칠거리며 일어나 화장실로 갔고 볼일을 보고 나오는 순간 뒷다리가 힘이 풀리는 지 배변위에 주저앉았다. 나는 또 한번 담비에게 반신욕을 시키고 토사물들을 정리했다. 그날 일이고 드라마고 다 뒷전으로 하고 나는 담비의 일거수 일투족에 모든 신경을 도사렸다.

담비는 갔다. 이튿날 아침 동물병원에 한번 더 가봐야지 하면서 새벽녘에 어렴풋이 쪽잠이 들었을 때였다. 귓전에 야웅 하는 절절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고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이미 담비의 몸이 차츰 식어가고 있을 때였다. 작은 경련을 몇번 일으키다가 담비는 꽛꽛하게 굳어져갔고 나는 그것을 지켜보면서 눈물만 줄줄 흘렸다. 동트는 새벽녘, 어스름한 원룸안에서 나는 사람을 믿고 사는 한 연약한 생명이 그렇게 빠르게, 그렇게 참담하게 스러지는 것을 고스란히 목격하고 말았다. 눈물을 펑펑 쏟으며 무릎을 꿇고 앉아 담비의 배에 귀를 대어봐도, 소리내어 울음을 터뜨리며 담비의 목 언저리에 손을 대어봐도 담비는 가쁜 숨만 한두번 몰아쉰 후 천천히 차거운 주검으로 굳어졌다. 죽음이라는 것이 그렇게 생동하게, 무자비하게 내눈앞에서 벌어져버렸다.

사실 담비는 내가 기른 고양이중에서 제일 큰 고양이었다. 나는 전에 쩍하면 새끼 길냥이를 주어다 튼튼하게 길러 분양을 줬었고, 분만을 앞둔 어미 고양이를 집에 데리고 와서 고양이의 해산을 돕고 산파 노릇을 한 적도 있었다. 고양이에 대해 잘 안다고 자부하고, 고양이는 그리 취약한 동물이 아니라고 확신했던 게 문제였다. 담비처럼 바깥 생활을 오래 한 큰고양이는 갑자기 거주환경이 바뀌고 생활패턴이 바뀌면 스트레스로 인한 장염이 재발하며 그것이 치명적이기도 하다고 수의사가 주의를 줬건만 나는 귀등으로 들었다. 방 한구석에 포장을 뜯지 않은 사료와 고양이 모래가 덩그러니 놓어있었고 그날부터 옹근 보름동안 장마에 폭우가 이어졌다. 어쩌면 하늘도 나의 경망한 행동에 분노를 표시하는 듯 했다.

시간이 오래 흘렀지만 그날 새벽을 떠올리면 나는 저도 모르게 다시 눈물을 쏟군 한다. 담비는 왜 하필 날 따라왔을까. 어쩌면 생의 마지막 날들에, 사람의 곁에서 한가닥 온기를 느끼고 싶어서였을까? 힘이 없어 비틀거리면서도 내가 시키는 대로 화장실에 가서 배변을 보던 그 착한 고양이에게 나는 대체 무슨 짓을 저질렀단 말인가. 사람을 믿고 따라온 약한 동물에게 내 무지와 오만은 얼마나 치명적인 독이 되었던 걸까.

그후 나는 다시는 고양이를 기르지 않았다. 끝까지 책임을 지지 못하면 그 또한 애완동물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전에 햄스터를 기르다가 이사를 할때 허름한 종이박스에 넣어 가다가 기차역에서 놓친 일이며, 내가 분양을 주었던 고양이가 어느 식당 주인에게 목줄을 채워 음식점 마당에 앉아있는 것을 보면서도 식당이니 잘 먹고 잘 살고 있을 거라고 자기합리화를 했던 일이 날카로운 칼의 단면처럼 내 기억을 스치며 나를 아프게 했다. 어쩌면 우리가 사람이라는 우세로, 강자라는 이유로 애완동물들의 생활에 개입하고 선택을 강요하는 건 동물사랑을 빙자한 건방지고 거만한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애완동물을 기르는 일을 한결 신중하게, 한결 조심스럽게 결정해보려고 한다. 담비라는 이름은 그렇게 내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둔 아픔과 비밀의 대명사가 되었다. 내 젊은 날의 혹독한 신고식이기도 했다.

“그럼 언제 고양이를 기를 수 있어요?”

딸애는 집에 들어서서도 포기하지 않고 졸라댄다. 나는 두 아이를 품에 안고 그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중에, 너희가 어른이 된 다음에.”
“언제면 어른이 되나요?”

글쎄다. 몸이 자라고 사고가 성숙되면 어른이 되는 걸까, 아니면 삶의 성장통을 겪어야 비로소 범사를 신중하게 바라보는 법을 터득하게 되는 걸까. 나는 두 아이를 방안으로 손짓해 불렀다.

“전에 담비라는 이름을 가진 고양이가 있었는데 말이다...”
추천 (2) 선물 (0명)
IP: ♡.109.♡.184
로즈박 (♡.175.♡.27) - 2023/01/31 00:12:24

좋은 주인을 만나서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데 너무 마음이 아프네요..전 털이 날리는게 싫어서 애완동물을 기르는건 너무 싫어하는데 우리 아들넘도 맨날 고양이 기르고싶대요..

l판도라l (♡.109.♡.184) - 2023/01/31 10:01:06

우리애들도 매일 고양이 타령입니다^^ 저도 고양이 매니아인데 담비 이후론 못기르고 있어요. 나중에 늙어서 시간이 남아돌 때, 내가 제일 좋은 보살핌을 줄수 있을 때 다시 생각해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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