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남편자랑

l판도라l | 2023.02.02 18:40:43 댓글: 4 조회: 1377 추천: 4
분류타향수기 https://life.moyiza.kr/mywriting/4438915
우리 엄마는 자랑을 별로 안하시는 분이다.

세간에서는 보통 여자들이 젊어서는 자기 자랑, 시집 가서는 남편 자랑, 나이 들어서는 자식 자랑 삼매경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어쩌면 어릴땐 남자 형제들에게 소외당하고 결혼해서는 출산 육아에 시달리고 나이 들어서도 자식들의 뒷바라지에 정력을 소진하는 우리 민족 많은 여성들의 팍팍하고 고단한 인생에 그것이 삶의 윤활제가 되고 행복의 기준치가 되는 경우도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젊었을 때 주위 처녀들이 자기 자랑으로 수다를 떨 때 에는 수걱수걱 일만 하셨으며 결혼 후 친구들이 자식자랑에 열을 올릴때에는 그냥 담담히 웃기만 하셨다고 한다.

그런 엄마가 유일하게 침묵을 깨는 때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우리가 원래 살던 동네를 떠나 다른 고장에 이사를 간 후 아줌마들이 밭고랑에 앉아서 서로 남편 자랑을 하는 타이밍을 빌어서였다. 누구 남편은 아침에 재를 다 퍼서 버려주고 누구 남편은 꿍꿍 일을 잘해서 공수를 많이 번다는 자랑이 한바퀴 돌 쯤, 엄마가 유유히 입을 여신다.

“우리 남편은 글을 써요.”
“글자를? 붓글씨? 아니면 펜으로?”

아줌마들이 막연한 표정으로 물으면 엄마는 얼굴에 자랑스러운 미소를 띄우신다.

“글자 아니고 글. 수필이나 소설을 써요. 작가란 말이에요.”
“수필이 뭐꼬?”
“워메~대단하네. 작가 남편을 다 두고.”
“자기는 좋겠다. 남편이랑 다툴 일도 없제?”

경상도와 전라도가 섞여사는 순박한 그 마을에서 엄마는 그렇게 자신의 행복을 영위하는 방법을 터득했던 것 같았다.

내가 들은바에 의하면 애초에 혼사말을 떼러 간 아버지는 집이 째지게 가난하여 외할머니의 환심을 사지 못했다고 한다. 엄마네 집은 꽤 유족한 살림이었고 엄마는 맏딸이었다. 락담하고 집으로 돌아오려고 하다가 어렵사리 용기를 낸 아버지는 엄마와 독대를 신청했다. 그리고 엄마는 그번 독대에서 같은 문학지망생인 아버지의 “감언리설”에 넘어가 혼사를 아퀴 짓고 말았다.

내 기억속의 엄마는 고향에서부터 남편공대를 잘하기로 소문난 분이셨다. 당시 자유기고인이자 중학교 조선어문 교원인 아버지는 퇴근때면 문학을 지향하는 동네 지인들을 십수명 인솔해서 우리 집으로 향했다. 집에서 숙제를 하고있던 나는 아버지가 적어주는 쪽지를 가지고 논밭에서 일하는 엄마를 찾아갔고, 엄마는 쪽지를 확인하기 바쁘게 허둥지둥 달려와 푸짐한 술상을 차린 후 다시 밭으로 달려가군 했다. 고향에 있는 동안 우리 집은 항상 아버지의 문인 친구들로 시끌벅적했고 그런 와중에도 나는 엄마가 짜증내는 것을 단 한번도 보지 못했다.

시간이 꽤 흐른 후 내가 이 일을 상기해내고 아버지를 규탄한 적 있었는데 그때도 엄마는 아버지를 두둔해나섰다.

“그때는 그래도 그게 재미였어.”

그건 그래도 괜찮았다. 쪽지심부름외에도 숙제를 마치고 설겆이를 도와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있긴 했지만 푸짐한 술상에서 남은 반찬들이 어린 우리들의 허기를 달래주기엔 충분한 것이어서 그나마 참을수 있었다. 제일 불편한 것은 그런 술자리가 밤늦게 이어지고 심지어 새벽까지 치닫을 때, 주방 한구석에서 끄덕끄덕 졸던 우리의 불만도 극에 달하군 했다.

“엄마, 이젠 들어가서 이불도 펴고 그래요. 우리 내일 아침 학교 가야 한단 말이에요.”

엄마는 그런 우리를 엄한 눈길로 한번 돌아볼뿐 여전히 안방의 식은 채를 덥혀주고 술을 더 가져다주는 뒤치닥거리로 하얗게 밤을 지새웠다. 마을 사람들은 그런 엄마를 내조의 여왕으로 추켜세웠고 그에 대한 엄마의 신조는 우리가 그 고장을 떠나 도시에 자리를 잡을 때까지 전혀 흔들림 없이 확고했다.

세월은 살같이 흘러 우리가 대도시생활에 적응한지도 어느새 20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학업을 마치고 지금의 남편을 만났으며 결혼생활 10년차에 두 아이를 가진 엄마가 되었다.

딸은 엄마의 팔자를 따르고 아버지를 닮은 이상형을 만난다는 속설이 무의미하게 남편은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타입이었다. 남편은 친구가 많았지만 가급적 집으로 데려오지 않았고 만일 부득이하게 데려오게 된다면 나를 친정으로 보내고 직접 요리를 해서 친구들을 접대했다. 평소에 가사는 남편이 하는 경우가 많았고 일과 육아는 같이 분담했다. 엄마는 처음에는 태연자약하게 말했다.

“젊었을 때는 다 그런 거야. 네 아버지도 너네 셋 키울때 밥도 다 하고 그랬어...”

평소 길을 가거나 산책을 할 때 몇걸음씩 떨어져 걷는 부모들과는 달리 남편은 항상 나를 길 안쪽으로 걷게 하고 전동차나 오토바이가 지나갈 때 경호원처럼 에스코트를 해주군 했다. 그리고 집에서 갈비찜이거나 전복장 같은 색다른 음식을 할 때 남편은 먼저 많이 먹었다고 하면서 내게 양보하기가 일쑤였는데 그때에도 엄마는 덤덤하게 말했다.

“원래 남자들은 그래야 하는 거야. 네 아버지도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항상 날 기다리지…”

아버지에 대한 엄마의 자랑끝에는 사위에겐 찾아볼수 없는 우점까지 덧붙여졌다.

“같이 쇼핑을 가도 내가 서너번씩 옷을 바꿔입고 고를 때까지 꼭 기다려줘. 그리고 내가 뭘 결정하면 설사 틀린 결정이라 해도 말없이 따라주기도 하지.”

이렇게 세월이 흐르고 비교대상이 생겨도 드팀없었던 엄마의 남편자랑이 한동안 중단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엄마가 몇년전 민박을 운영할 때의 일이었다.

그때 아버지는 이미 네번째 작품집을 내셨다. 민박에 오신 손님들에게 아버지의 수필집을 한권씩 선물하시며 엄마는 으레 그래왔던 것처럼 얼굴에 둥근 미소를 한가득 띄우시고 남편자랑을 했다.

하지만 민박 손님들이 간 다음 엄마는 텅 빈 방안에서 나뒹굴고 있는 그 책을 발견했다. 아버지는 쓸데없는 사람들에게까지 아까운 책을 선물했다고 화를 내셨고 조용히 듣고만 있던 엄마가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언성을 높이셨다.

“그럼 어떡해요? 책이 팔리지도 않는데 이렇게라도 나눠줘야 하지 않겠나요? 집 이사할때마다 저 많은 책들을 싣고 다니기가 질리지도 않습디까!”
“아니, 그럼 지금껏 내 자랑을 하려고 책을 나눠준 것이 아니고 저 책들 재고 처리하려고 나눠줬단 말이요?”
“당신 자랑? 당신 자랑을 할 게 뭐가 있어요? 사비로 책 네권 출판하느라 들이부은 돈을 자랑하랍니까? 아니면 요즘 세상에 누구도 관심 가지지 않는 당신 직업을 자랑하랍니까?”
“당신이 그렇게 속물일줄은 몰랐소! 그럼 애초에 돈 잘 버는 남편을 찾지 왜 나를 만났소!”

엄마의 부탁대로 손님방 정수기의 물을 바꿔오려던 아버지가 급기야 물통을 와락 바닥에 내동댕이치며 화를 냈다.

“내게 이런 허드레 심부름을 시킬 때부터 알아봤소! 당신은 나를 전혀 존중하지 않는다는 걸!”
“그건 무슨 자격지심입니까? 어찌 물 한번 바꾸는 게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걸로 되는지 당췌 이해할수 없군요!”

엄마가 그리 조목조목 반박하실지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게 크게 싸우신 후 두분은 사흘이나 서로 말을 섞지 않았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고 그후에 어쩌구려 화해는 되었지만 엄마의 남편자랑이 중단된 것은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그후 엄마의 민박이 호황을 누리면서 엄마는 점점 더 바빠졌고 아버지에 대한 공대도 더이상 예전같지 못했던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아버지는 차츰 불만이 커졌고 간간히 나를 붙잡고 하소연도 하셨다.

“자고로 여자란 내조를 잘하고 남편을 공대해야 한다. 어디 지금 네 엄마처럼…”
“아유, 아버지. 명색이 지성인인 아버지도 그런 고리타분한 관념을 갖고 계시다니요? 지금이 어느 시대라고 그런 말씀 하세요?”
“그래도 이건 아니지…어디 여자가…”
“당신, 이 술상 이미 한시간 끈 거 아시죠?”

엄마의 일갈에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술잔을 내려놓고 슬며시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을수 없었다. 고향에 계실때만 해도 아버지는 얼마나 위풍당당했던가. 하지만 지금은 온건한 직업과 작가라는 명분보다는 남자들의 사회적 능력이 한층 더 중요시되는 시대인지라 가정에서의 권위도 엄마에게 밀려난 아버지의 위축된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한편 마음 한구석으로는 이것은 어쩌면 엄마를 고생시킨 옛일에 대한 처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후 엄마가 설겆이를 하는 틈을 타 아버지는 가만히 거실로 나와 한마디를 던졌다.

“자고로 여자와 소인은 멀리하라고 했거늘…”
“주방에서 다 들릴 걸요.”
“아, 그래?”

아버지는 다시 황급히 방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절레절레 머리를 흔들었다. 어릴때 품었던 아버지에 대한 경외감과 괴리감이 일순간 와해되는 느낌마저 들었다. 엄마는 왜 이런 아버지를 그리 깍듯하게 공대해왔을까. 매사 남여평등을 주장하는 우리 세대로서는 리해할래야 할수 없는 엄마의 행동들이었다. 다행이 엄마가 지금이라도 아버지에 대한 콩깍지를 버리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후 아버지에 대한 엄마의 불만은 더 구체적으로 불거졌다. 인터넷으로 레시피를 찾아 고난도 요리솜씨를 선보이는 사위에 비해 아버지의 요리실력은 형편없다는 엄마의 지적이 이어졌고, 집에 무슨 일이 생기면 두팔 걷고 나서는 사위에 비해 집안 대소사 모든 일을 엄마에게 일임하는 아버지가 무책임하다는 엄마의 질책이 뒤따랐다. 아버지는 처음엔 당황했고 후에는 분노했으며 나중에는 체념과 자포자기에 이르렀다. 한동안 엄마와 아버지 사이에는 랭랭한 기운이 돌았고 나는 심지어 내가 흘리는 정보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때문에 아버지가 상처를 입을까봐 아버지한테 루가 될수 있는 말과 행동을 삼가하기도 했다.

“여자들은 너무 오냐오냐 해선 안되네.”

오죽하면 어느 명절날 아버지가 사위와 대작을 하면서 이런 조언아닌 조언까지 넌지시 건넸겠는가.

엄마의 남편자랑이 다시 이어진 것은 정확히 작년부터였다. 아마 그 어떤 계기로 그동안 버렸던 콩깍지가 다시 되돌아왔는 모양이다. 아버지가 병원에 가서 약방을 찾지 못하면 엄마는 아버지가 길치인만큼 다른 일에 집중할줄 안다고 칭찬하셨고, 아버지가 길을 건널 때 엄마를 기다리지 않고 혼자 건느면 엄마는 아버지가 행동이 신속하다고 놀라워하셨으며, 심지어 아버지가 엄마를 자전거에 태우고 가다가 사고가 나서 엄마를 다치게 해도 엄마는 아버지가 기지를 발휘해 자전거를 넘어뜨렸기에 더 많은 사람들이 다치지 않았다고 감탄하셨다. 나는 오리무중에 빠졌다. 도대체 무엇이, 아버지의 어떤 매력이 엄마로 하여금 정확한 판단력을 잃고 또다시 남편자랑이라는 블랙홀에 빠지게 했는지에 대해 나는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그렇다고 이 몇년간 아버지에게 전혀 변화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 엄마가 아침잠을 더 주무실수 있도록 아버지는 이른 새벽에 일어나 밥을 하는 횟수가 많아졌고 엄마가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올때엔 꼭 뻐스정류소로 마중을 나가신다. 간간히 글을 써서 발표하고 원고료를 받는 날에는 엄마에게 옷을 사입으라고 위챗으로 돈을 넘겨주셨고 만일 같이 쇼핑하러 가면 한두시간씩 매장문밖에서 엄마가 마음에 드는 옷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주군 했다.

“자고로 집안에선 남자가 여자를 이기려 들지 말아야 하는 법이네…”

언젠가 보니 사위에 대한 아버지의 조언도 어느새 이런 식으로 바뀌어있었다.

엄마의 태도변화에 대한 내 궁금증은 몇일전에야 풀렸다. 집안 살림을 두루 얘기하다가 엄마는 작년에 사기를 당해 노후 적금을 몽땅 날린데다가 그후엔 수입이 적어져서 어떤 달은 적자를 면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하지만 그 소식을 우리에게 알리지 말라는 아버지의 제안으로 이 일은 극비에 부쳐졌고, 다행이 몇일전에는 드디어 적자 청산을 하고 일정금액 저축까지 했다고 엄마가 홀가분한 기색으로 말했다. 나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되물었다.

“사기 당한 거 아버진 뭐래요?”
“월급도 있고 보험에 원고료도 있으니 노후 걱정말라고 큰소리 치더구나. 내게 고작 그런 일때문에 앓아눕지 말라고 잔소리 왕창 했고…그리고 또 그동안 원고료 비상금 모은 걸 몽땅 내주더구나. 큰 액수는 아니지만…”
“…”
“그전에 내가 네 아버지 많이 자랑해줬으니, 이젠 솔직히 그에 걸맞는 자랑거리가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여러가지로 애쓰더라.”
“그럼 엄마는 지금 아버지가 자랑스러우세요?”
“너하고만 하는 얘기인데…”

엄마가 신비스럽게 웃으며 목소리를 낮췄다.

“난 사실 줄곧 네 아버지가 자랑스러웠어.”
“정말요?”
“그럼. 나도 글쓰길 좋아했지. 살림만 중하게 여기는 외할머니 반대때문에 공부를 더 하지 못하고 일터에 나갔지만.”
“…”
“살면서 나도 다른 집 아버지들이 장사를 해서 돈을 벌고 외국에 나가 돈을 벌어들이는 게 부러울 때도 많았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인생이잖냐. 그리고 한 사람의 가치에 대한 기준이 단순히 그 사람이 창조하는 금전적인 가치는 아니잖니.”
“…”
“나는 내가 잘할수 있는 일을 하고, 네 아버지는 본인이 잘하는 일을 하면 되는 거다. 다만 시간이 갈수록 내가 네 아버지를 잘못 습관들인다는 생각이 들어서…그래서 쬐금 자극이 필요했던 거지.”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엄마가 수십여년을 유지해왔던 남편에 대한 맹목적인 공대를 더이상 이어가지 않기로 결정한 때부터, 아버지는 현실정시라는 냉정한 수업을 통해 오래동안 몸에 배였던 삶의 자세를 되돌아보는 자아성찰의 시간을 가졌을 지도 모른다. 뒤이어 나는 뭔가 먹먹한 느낌이 들었다. 입으로는 천만번 사랑한다 말하면서 서로 한치의 실수와 허점도 용납하지 않는 각박한 우리 세대와는 달리, 푸근한 마음으로 상대방의 잘못을 감싸주고 단점까지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부모님 세대의 그 드넓은 관용이 나로 하여금 절로 머리가 숙여지게 했다.

“네 아버진 무심한 것 같지만 마음이 비단이지. 평소엔 애 태우다가도 저렇게 가끔 속도 깊고.”

엄마의 남편자랑이 또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물질의 풍요와 경제의 발전이 인간관계를 뒤흔들고 한 사람의 사회적 능력이 현시대의 가정지위에 일정한 영향을 끼친다 해도, 엄마처럼 투철하게 삶의 지혜를 가지고 가치변화에 현혹되지 않으며 가족에 대한 존중과 애정이 의연하다면 또 무엇이 두렵겠는가. 어쩌면 지칠줄 모르고 반세기를 이어온 엄마의 남편자랑에는, 기성세대 여성들의 가족에 대한 변함없는 희생과 이해, 그리고 오랜 세월을 함께 겪어내며 성장해온 이 세상 모든 노부부들의 웅숭깊은 사랑이 들어있다고 감히 반추하고 싶은 마음이다.




2019년 제1회 설봉컵 생활수기 은상 수상


창작후기:

신은 모든 곳에 있을수 없어 엄마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엄마는 신처럼 떠받들리는 존재가 아니었다. 엄마라는 이유로 모든 고생이 당연해졌다. 그런 엄마를 한번쯤, 단 한번쯤은 내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부각시키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된 엄마에 대한 이야기는 한번이 아닌 세번으로 이어졌다. 어쩌면 앞으로 더 많이 이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엄마에 대해 쓰면서 내가 엄마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과거, 엄마의 유감, 엄마의 희망을 받아적느라니 어렴풋이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 다시 알아가는 계기가 되었다. 희생과 이해로 점철된 엄마의 생이 엄마에게는 행복이며 소신이며 보람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는 어떤 엄마가 될 것인가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엄마의 남편자랑”은, 반세기를 이어온 엄마의 남편에 대한 무한한 공경과 사랑을 통해, 오랜 시간 가족을 위해 헌신해온 이 세상 모든 사랑스러운 여성들을 기리는데 그 의미를 두고 싶다. 이 글이 지난한 세월의 풍상을 겪어온 엄마에게 작은 위로가 될수 있기를 두손모아 기원해본다.
로즈박님이 100포인트 선물하셨습니다.
추천 (4) 선물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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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상하게하소서 (♡.116.♡.252) - 2023/02/02 20:25:55

너무 생동하게 쓰셔서 재밋게 잘 봤습니다~

l판도라l (♡.115.♡.27) - 2023/02/04 14:43:03

재미있다고 하시니 다행입니다^^ 읽어봐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로즈박 (♡.193.♡.139) - 2023/02/03 00:49:23

나도 문학지망생이엿는데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하고 하마트면 연애를 할뻔햇는데 엄마가 결사반대하는 바람에 ㅋㅋ그게 잘된 일이엿을지..거기로 시집갓더라면 지금과는 다른 완전 또 다른 삶을 살앗을지도..ㅎㅎ
참 어머님이 너무 현명하시고 야무진분이시라는 말밖에는 안 나오네요..여자대장부시고요..건강하게 오래오래 행복하셧으면 좋겟어요...

l판도라l (♡.115.♡.27) - 2023/02/04 14:43:56

잘된 일이죠. 둘다 글을 쓰면 소는 누가 키우죠? ㅋㅋㅋ농담이고요. 사실은 흥취라는건 언제라도 늦지 않습니다. 저도 늦깍이글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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