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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인지주술(제1회)

l판도라l | 2023.02.28 12:54:43 댓글: 1 조회: 965 추천: 1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446310
1.
저녁 일곱시, 거실 메트에 아이 장난감들을 준비해두고 나는 평소보다 늦은 식사준비에 서둘렀다. 퇴근해서 들어오는 남편의 실루엣이 현관에 언뜰한다. 나는 고개를 돌리다가 단념하고 말았다. 비록 명절이긴 하지만 선물 같은 것을 기대하기엔 우리는 이미 너무 서로에게 익숙해져있었다. 밥이나 하자.

“여보, 애가 넘어졌어.”

주방에서 한참 돌아치던 나는 등뒤에서 들려오는 말에 잠시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말했다.

“응, 좀 일으켜 세워줘.”

잠시후 등뒤에서 다시 말소리가 울렸다.

“계속 울어.”

나는 국을 휘젓던 국자를 멈추었다.

“애가 좋아하는 장난감으로 좀 달래봐.”
“어떤 게 애가 좋아하는 장난감이지?”
“거기 노란 기린인형 있어. 그걸로 달래주면 돼.”

부시럭 거리면서 멀어져가던 소리가 다시 가까워진다.

“기린인형이 어디 있지?”

나는 또 한번 심호흡을 길게 한후 느리게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는 가스불을 끄고 국자를 내려놓았다. 김치찌개는 잘 우려야 하고 간을 수시로 봐야 하는데 오늘은 그냥 맛을 단념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씽하니 바람을 일구면서 장난감 수납함으로 다가간 후 노란 기린인형을 찾아 우는 아들애의 품에 안겨주었다. 기적처럼 울음이 그쳤다. 남편의 물음이 내 뒤를 따라붙는다.

“저녁은 뭐 먹지?”
“김치찌개 끓이고 있어.”
“또 김치찌개야? 뭐 좀 맛있는 거 먹고 싶은데. 아, 맞다. 고기는 없어?”

어제도 고기를 먹었어라는 말이 혀끝까지 나오는 걸 간신히 참고 나는 묵묵히 그를 한번 본후 주방으로 향했다. 문을 닫는 순간 나는 후회를 했다. 아니나 다를까, 주방문이 벌컥 열리더니 그의 추궁이 시작된다.

“뭐야, 방금전 그 눈빛은?”
“…”
“밖에서 힘들게 일하다 들어온 사람한테 당신 그게 지금 무슨 태도야?”
“…”
“당신이란 여자는 참 부덕이 없어. 이러니까 내가…”
“그래. 오늘은 무슨 약속이 있는데? 나갈 거면 지금 나가. 반찬타령 하지 말고.”

그가 아까부터 자꾸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폼이 누군가의 약속이 있는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으면 이리 생뚱맞게 이런 태클을 걸리 없으니까. 그의 얼굴이 살짝 경직되었다.

“약속은 무슨…안나간다고 했어.”
“나가지 왜.”
“나갔다 들어와서 또 당신 눈치 몇일 보라고?”
“내가 언제?”
“어이구, 됐네요. 당신 어디 나가 한번 물어봐. 나같이 하는 남자 몇이나 있냐고. 잘해줬더니 점점 더하네.”

나는 밥주걱으로 다 된 밥을 저었다. 아까부터 왠지 입술이 떨리는 감이 들었다. 부덕? 잘해줘? 당신이?

“그럼 당신은 왜 나가서 물어보지 못해? 요즘 나같이 하는 여자 몇이나 있냐고.”
“당신같은 여자? 허 참, 세상 여자들 다 그러고 살아. 왜 당신 혼자 고생한 척 억울한 척 해?”
“내가 억울한 척 한다고?”

이번에는 밥주걱을 쥔 손이 떨리기 시작한다. 차츰 분노로 눈앞이 희미해 지면서 나는 내가 밥주걱을 휘둘러 그를 후려치는 장면을 머리속으로 수없이 상상해보았다. 그러지 않으면 오늘 인내의 한계를 넘어 그동안의 분노를 폭발해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가 계속해서 궁시렁거렸다.

“여자들 다 그렇게 살아. 애가 둘이나 셋 되는 여자들도 혼자 육아에 살림에 아무 군소리 없이 남편 아침밥까지 차려준다더라. 왜 넌 종일 마뜩잖은 얼굴로 세상 모든 불행 혼자 독차지 한듯 지내는 거니? 내가 언제 아침밥 차려달랬냐, 와이셔츠 다려달랬냐? 어디 나가서 물어봐봐. 나같이 다 참고 사는 남자 어디 있다고.”
“나가.”
“뭐?”
“나가! 당장 나가라고!!!”

밥주걱을 바닥에 집어던졌다. 그가 눈이 휘둥그래서 나를 한참 본다.

“당신, 미쳤어?”
“그래. 더 미치는 꼴 보기전에 썩 나가.”
“뭐?”
“평소엔 잘만 나가더니 왜 오늘은 안나가고 사람 속을 긁어? 꼴도 보기 싫으니까 당장 나가!”
“너 지금 제정신이야? 그게 누구보고 하는 소리야?”
“그래…내가 가만히 있으니 가마니로 보여? 누구보고 하는 소리냐고? 바로 당신보고 하는 소리야. 내 눈앞에서 당장 사라져! 짐싸서 나가도 되고 그대로 나간다면 내가 정리해서 택배로 보내줄테니까.”
“무슨 소리야? 이혼하자는 거야?”
“못할 것도 없지.”

주방에서 나와서 아이를 번쩍 안아들었다. 아까부터 우리 눈치를 보던 아들애가 울먹거리며 두팔로 내 목을 감았다. 나는 아이에게 외출복을 갈아입히고 가방과 핸드폰을 챙겼다. 문손잡이를 잡는데 남편의 손이 내 팔을 잡았다.

“어디 가려고?”
“호텔 가있을 테니까 생각 정리되면 불러.”
“생각? 무슨 생각?”
“이혼에 관해서.”

말을 마친 나는 그의 팔을 뿌리친 후 거칠게 문을 열고 집밖으로 나섰다. 탕 소리와 함께 등뒤에서 문이 닫혔고 내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

“2월14일 밤 11시경에 진행되는 개기월식에는 운석이 달의 표면을 스치면서 지구에서 관측 가능한 폭발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되며...”

나는 자그마한 국수집에 앉아 티비에서 뉴스를 전하는 아나운서의 얼굴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들애가 배고프다고 칭얼대는 바람에 발가는대로 들어온 작은 음식가게였다.

“다음 소식입니다. 올해 발렌타인데이에 각 대형 쇼핑몰과 백화점에서는…”

나는 티비에서 시선을 거두고 옆좌석에 나란히 앉아 국수를 먹고있는 한 커플을 바라보았다. 여자의 품에는 크다란 장미꽃 묶음이 안겨있었고 남자는 저가락으로 조심스레 면발을 감아올려 여자의 입가로 가져가고 있었다. 나는 못볼 것을 보기라도 한 듯 시선을 돌렸다.

결혼한지 6년, 아들애가 태어난지는 4년 되는 발렌타인데이다. 그전에 연애한 시간까지 합치면 저그만치 10년이란 시간을 함께 한 남자였다. 하지만 나는 그 남자에게서 명절이나 생일날 장미꽃커녕 변변한 선물 하나도 제대로 받아보지 못했었다. 발렌타인데이나 결혼기념일은 더 말할 것 없었다.

“여자들은 참 이상해. 대체 먹지도 못하는 꽃을 가지고 뭐하려고 그러지? 허영에 잔뜩 물들어서는.”

그렇다고 먹을수 있는 스테이크나 생일케익을 사준 적은 더욱더 없었다.

“아니, 왜 비싼 돈 팔아가면서 그런 허세를 부리지? 차라리 그런 시간에 맛집 찾아서 맛있는 걸 먹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대체 그런 맛집은 어디에 존재하며 언제 가서 먹을수나 있을지 한번쯤은 물어보고 싶었지만 나는 용케 참았다.

그렇게 10년이 지났고 나 또한 이런 무드없는 생활에 길들어져갔다. 이제는 명절이 와도 무덤덤하고 발렌타인데이가 되어도 무심해졌다. 남편은 그동안 쭉 직장생활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성격 탓인지 아직 과장이라는 작은 직급에 머물러 있었다. 애초에 남편과 같은 회사 동료로 입사해서 근무했던 나는 임신후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살림과 육아에만 전념해 왔었다.

대체 언제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을까. 아마도 그번 출장 사건 이후부터라고 기억된다. 만일 그때 남편과 허심탄회한 대화라도 한번 나눴더라면…

하지만 그렇다고, 집에 와서는 육아를 돕지 않고 핸드폰만 들여다보기 일쑤고, 주말이 되면 친구와의 약속을 만들어 자리를 피해버리는 남편의 잘못이 결코 가벼워 지는 것은 아니다. 아들애가 네살이 되도록 남편은 아이가 어떤 장난감을 좋아한다는 것도 잘 모르고 있지 않은가!

“뭐? 다들 그렇게 살아? 외려 자기가 참고 살았다고?”

나는 저가락을 탕 하고 내려놓았다. 그바람에 아들애가 움찔 놀란다. 다른 개구쟁이 아이들에 비해 아들애의 성격은 소심하고 내성적이며 아빠를 잘 따르지 않았다.

“자기야, 그거 알어? 오늘같은 명절에 개기월식, 게다가 하필 운석이 달의 표면을 스친대. 이럴때 소원을 빌면 꼭 이루어진댔어.”

옆테이블 여자가 남자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는 피씩 웃으며 여자에게 퉁을 주었다.

“뭘 그런 걸 다 믿고 그래?”
“왜 안믿어? 별찌가 사라지면 보통 유성이라고 하잖아. 그 유성을 보고도 사람들은 소원을 빌었어. 저 달의 표면에 부딪치는 운석도 분명 하나의 별찌일거야.”
“그렇다고 치자. 그래도 곧 스러지는 별찌가 무슨 능력으로 소원을 들어줘?”
“아니 참…왜 자꾸 찬물 끼얹는 거야? 남자들은 왜 이래? 조금도 로맨틱하지 않아.”
“남자들? 대체 얼마나 많이 만났었기에 남자들이래? 난 대체 너한테 몇번째야?”
“뭐? 갑자기 왜 그 얘기가 나와?”

방금전까지도 다정한 얼굴로 면발을 나눠먹던 커플이 급기야 다투기 시작한다. 세상일은 참 요지경이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국수값을 지불하고 아들애의 겉옷을 여며주었다. 아들애가 내 귀에 대고 가만히 물었다.

“엄마, 소원이라는 건 뭐야?”
“소원? 글쎄…마음속으로 간절히 원하고 바라는 거.”
“그럼 엄마 소원은 뭐야?”
“엄마 소원은 우리 준이가 씩씩해지는거.”
“나 말고, 엄마가 하고싶은 건 없어?”

네 아빠 얼굴을 향해 펀치를 한대 날려주는 거…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고 나는 아들애의 손을 잡고 가게문을 나섰다. 차거운 바람이 옷속으로 새어들어왔다.

“엄마가 하고싶은 건, 아빠가 엄마처럼 한번 살아보는 거야.”

정말 그렇다면 나는 그 흔한 사우나라도 한번 가보고, 남들이 질린다는 일박이일 여행이라도 한번 다녀오고 싶었다. 지난 10년간 나는 대체 어떤 삶을 살았던 걸까.

가게밖에서 아무리 생각해봐도 별로 갈곳도 없었다. 친구들이라 해봤자 대학 동창 몇 외에 전에 다니던 직장 동료들이 다였는데 거의 다 가정을 이루고 있거나 평소에 그리 가까이 지내던 사이가 아니었다. 머뭇거리던 내 발길은 저도 모르게 집으로 향했다. 남편이 아까 자꾸 핸드폰을 들어다 보는 것으로 보아 분명 외출했을 것이니 일단 오늘밤은 집에 가서 하루 자고 필요한 짐들도 다시 꼼꼼히 챙기기로 나는 마음먹었다.

하지만 집에 들어서자 현관문에 가지런히 놓인 남편의 구두에 나는 적잖이 실망하고 말았다. 인기척을 들었을 텐데도 남편은 방에 들이박혀 꼼짝도 하지 않는다. 하긴 매번 부부싸움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이튿날 날이 밝으면 일상적인 대화 두어마디 주고받는 걸로 대충 화해를 했고 그렇다고 근본적인 문제는 전혀 해결이 되지 않고있었다. 아들애가 연신 하품을 하기에 나는 얼른 아이를 씻기고 침대에 눕혔다. 아이를 다독거려 준다는 것이 아이 옆에서 그만 깜빡 잠이 들었다. 발렌타인데이라 해봤자 내게는 평범하기 이를데 없는 30대 주부의 하루 일상이었다.


2.
햇살이 창문살 사이로 환하게 비쳐 들어왔다. 시간이 어떻게 되었을까? 벌떡 일어나 시계를 보니 벌써 아홉시가 거의 되었다.

옆을 더듬거려 보았지만 텅 빈 자리가 만져졌다. 아이를 재운 후 씻는다는 게 그만 내 방에 와서 잠든 모양이다. 나는 간신히 침대에서 일어나서 아이 방으로 건너갔다.

몸이 찌뿌둥하고 무거운 것이 몸살이라도 온 것 같았다. 그런대로 아이에게 옷을 찾아 입히고 얼굴을 건드려 깨웠다. 아이가 눈을 가늘게 뜨더니 나를 보고 웃었다.

“아빠?”

아들애가 어제 피곤하게 자더니 아직 꿈이 덜 깬 모양이다. 유치원에서 아침밥을 먹는 시간에 맞추려면 빨리 움직여야 했다. 나는 급히 아이를 세수시키고 양치를 시킨후 헐렁한 츄리닝을 꿰고 현관에 놓인 슬리퍼를 신은 채 아이와 함께 집문을 나섰다. 아이는 얌전하게 내 손을 잡고 걷기만 했다. 평소 소심하기는 하나 나와는 조잘조잘 얘기도 잘하던 아이가 오늘따라 과묵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우리 애 잘 부탁드려요.”

어린이집에 도착한 후 마중나온 원장에게 말했다. 원장이 나를 보더니 환하게 미소를 짓는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준이아빠.”
“아빠?”

원장도 잠에서 덜 깼나? 고개를 기웃했더니 원장이 말했다.

“준이아빠 맞으시죠? 전에 준이엄마 모멘트 사진에서 뵜었는데…”
“그게 무슨…”

나는 말을 중단했다. 순간 내 목소리가 이상하다는 게 느껴졌다. 평소의 내 목소리가 아닌 웅글진 중저음이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제야 어린이집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텁수룩한 머리, 몸에 딱 붙어서 보기 흉한 츄리닝, 그리고 피곤에 찌들어 잔뜩 구겨진 얼굴과 퀭한 눈빛…

“아!!!”

원장과 아들애가 동시에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내 얼굴을 움켜잡았던 두손을 내리고 그들에게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들어가세요.”

둘의 모습이 어린이집 현관안으로 사라지자 나는 홱 몸을 돌려 집으로 줄달음쳤다. 단언컨데 살면서 그리 빨리 뛰어본적이 없었다. 집안에 들어서자바람으로 나는 헉헉 숨을 몰아쉬며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는…

“아악!!!”

이번에는 결코 나 혼자의 비명소리가 아니었다. 화장실 안에서 내가 내지른 것과 비슷한 비명소리가 들렸고 그것은 놀랍게도 바로 내 본연의 목소리였다.

나는 비틀거리며 화장실 쪽으로 다가섰다. 때마침 화장실 문이 벌컥 열렸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나”의 겁질린 모습을 보았다. 거울인가?

“대체 어떻게 된거야? 이거 꿈 맞지?”

나와 마주한 “내”가 거칠게 물었다. 화장실 세면대위에 달려있는 거울이 정확히 내 얼굴을 비췄다. 거기에는 오래동안 마주하고 살아서 그토록 익숙한 한 남자의 얼굴이 있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내 얼굴을 어루만졌다.

“꿈…아니야.”

중저음의 남자 목소리로 내가 말했다. “나“, 아니 나와 마주한 그녀의 얼굴은 백지장 같이 하얗게 질렸다. 그녀가 못믿겠다는 듯 물었다.

“설마 체인지…몸이, 아니 영혼이…암튼 우리가 서로 체인지 된거야?”
“뭐 그런 말도 안되는…”

나는 말끝을 흐렸다. 황당하기는 했지만 나 또한 그녀의 말이 정확하다는 것을 잘 알고있었다. 나는 비칠비칠 몇걸음 물러나서 소파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그럼 이젠 어떡해?”
“대체 내게 무슨 짓을 한거야?”

그녀의 말에 나는 잠시 천정을 올려다 보았다.

“누가 할 소릴!”
“이혼하자고 집 나간 건 당신이야.”
“그런데는?”
“그런데 당신이 어제밤 갑자기 되돌아왔어. 그리고는 밤새 무슨 주술을 부렸는지 이런 상황이 됐어. 당장 되돌려놔.”
“당신이야말로 집에서 무슨 꿍꿍이를 꾸몄는지…”

나는 두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웅얼거렸다.

“몸은 왜 이리 찌뿌둥하고 무겁고, 어제 나가지도 않고 집에서 뭐하고 있었어? 그리고 어제 난 분명 준이 옆에서 잤어. 그런데 오늘아침 보니 내가 우리 방에 와있었어. 이건 어떻게 설명할 거야?”
“그건…내가 준이 불편하게 잘가봐 당신 안아온 거야. 원래는 상관 안해야 맞는 건데 어제 하필 술을 마셨어.”
“이게 술과 무슨 상관인데.”
“준이 옆에 쭈크리고 자는 걸 보니 불쌍하더라구.”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원래는 나의 남편이지만 지금은 내 모습을 하고있는 그 사람의 모습을 이윽토록 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우리 어떡하면 좋아?”

…….

“당신 출근 안해?”

아홉시가 훨씬 넘은 시계를 보며 내가 물었다. 그, 아니 그녀는 화가 잔뜩 난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매일 거울을 들여다봐야 확인할수 있었던 내자신의 얼굴을 막상 마주해 있느라니 왠지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나면서 나인 듯 나 아닌 나.

“이상황에 어떻게 회사 가? 문자 보내서 못간다고 해놨어.”
“그럼 내일은 어떻게 할 거야?”
“몸이 바뀌길 기다려야지.”
“안바뀌면?”
“그럴리 없어! 뭔가 연결고리를 찾아야 해. 왜 이런 상황이 되었는지 일단 그 이유를 찾아보자고.”

그, 아니 그녀(이제부터는 그녀라고 하겠다)는 벌떡 일어나더니 거실로 나가 노트북을 켰다. 나도 핸드폰을 꺼내들고 검색엔진을 작동시켰다. 하지만 둘이 아무리 웹서핑을 해봐도 시크릿 가든 같은 관련 드라마나 영화, 소설들만 잔뜩 나왔을 뿐이다. 한참 그러고 앉아있다가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자 나는 그녀를 쳐다보았다.

“배고픈데?”
“그러니까.”

그녀가 나를 쳐다보고 나도 그녀를 쳐다보았다. 우리는 서로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 그러다가 그녀가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였다.

“밥 안해?”
“내가?”

내가 손가락으로 내 코끝을 가리키자 그녀가 한껏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 내가 해?”
“금방 검색을 해봤는데 말이야. 몸의 기능은 체인지 안된대.”
“무슨 뜻이지?”
“예를 들어 우리가 평소에 익히고있는 기능은 몸의 기억을 따라간다는 뜻. 믿지 않으면 어디 한번 봐봐.”

나는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갔다. 냄비를 꺼내다가 국그릇들을 다쳤고 물을 담다가 수저통을 떨구었으며 라면봉지를 터뜨려 안의 소스봉지를 그채로 물안에 집어넣자 드디어 그녀가 손을 홱 내저었다.

“그만해. 그냥 시켜먹지.”
“그럴까.”

나는 익숙하게 배달전화를 눌렀다. 짜장면 한그릇씩 만포식한후 조금은 여유로운 표정이 된 그녀를 향해 내가 차분하게 말했다.

“우리, 이제 어떻게 할지 생각해봤어?”
“…일단 지금 상황을 적응해나가는 게 어때?”
“뭐?”

나는 눈을 흡떴다가 금세 시선을 내렸다. 피하지 못하면 즐기라는 말이 있긴 하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내게 그리 불리한 경험만은 아닌 듯 했다. 방금전만 해도 그렇다. 평소 같으면 지친 몸을 끌고서라도 내가 밥을 해야 하지 않았을까.

“회사는? 회사는 어떡할 거야?”
“내일 당신이 나 대신 출근해. 나는 아이 유치원에서 데려오고 숙제만 해줄 거야. 먹이고 재우는 기타 캐어는 당신이 그냥 하고.”
“…”
“언제 당신이 그런말 한 적 있어. 내가 출장 다녀와서였나? 당신이 나대신 나가봤으면 좋겠다고.”
“…”
“나도 생각해본 적 있거든. 하루만, 딱 하루만 서로 체인지 경험을 해보면 좋겠다고. 내가 애를 보고 집안살림을 하고. 그러면 당신 은행 업무도 한번 보고, 시장이라도 한번 시름 놓고 다녀올수 있지 않을까 하고.”
“…”
“어쩌면 이건 하늘이 주는 기회라고 생각해. 서로의 생활을 한번 체험해볼수 있도록. 이런 시간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몰라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단 능등적으로 이 상황 이용해보는 건 어때?”

말을 마친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담배 한가치를 꺼내물며 현관문으로 나갔다. 그러더니 고개를 돌리고 한마디 던졌다.

“잘 생각해봐. 선택은 당신 몫이야.”
“선택할 여지나 있어?”
“회사 장기휴가를 신청하는 선택도 있지. 하지만 난 당신이 할수 있을 거라 믿어. 회사 일 못해봤던 것도 아니잖아. 회사일 모르는 게 있으면 수시로 문자 해. 핸드폰은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알았어.”
“잘 지내보자, 우리. 이 상황이 끝날 때까지만.”

어제 이혼소리는 둘다 집어넣기로 마음먹은 모양이다. 그녀가 몸을 돌리더니 현관문을 나섰다. 나는 물먹은 솜마냥 소파에 쓰러졌다. 애써 지탱하느라 했지만 마음이 힘들어서인지 몸도 한없이 무거운 감이 들었다.

잠시후 문소리가 들리더니 그녀가 다시 집안으로 들어섰다. 나는 미간을 구기며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무슨 여자가 담배를 다 펴?”
“???”

나는 그녀의 아래위를 턱짓했다.

“자기 신분이 그리 된 이상, 이웃이 보고 이상하게 여길수도 있으니 자제 좀 해주라고.”
“내 제안 받아들인 건가?”
“받아들이든 말든 우리 서로의 몸을 좀 소중히 다뤄주자. 나도 당신 몸으로 술 적게 마실테니 당신도 담배 적게 피워줘. 지금 너무 찌뿌둥한 게 말이 아니야.”
“나라고 지금 편한 줄 알어? 손목 아프지 허리 쑤시지 배는 왜 이리 당기는 거야? 어제 당신 뭘 잘못 먹었어?”
“어제? 국수밖에 먹은 게 없는데.”

나는 뭔가 생각하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저도 몰래 손으로 입을 막았다. 참느라 했지만 왠지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나왔다.

“아…생각났다. 나 그날이야, 곧.”

……

다음회에 계속
추천 (1) 선물 (0명)
IP: ♡.36.♡.68
로즈박 (♡.243.♡.22) - 2023/03/01 02:30:33

하하..새로운 스토리네요..정말로 이런 체인지가 잇다면 서로 며칠씩 바꾸어가면서 살아보는것도 꽤 괜찮은 방법같애요..자기만 힘들엇다고 징징대지 말고 다른 사람으로 한번 살아봐야 아..다 힘들구나하는걸 알거 같애요..근데 마음으로는 알거 같은데 그게 어디 생각대로 되나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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