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사내메신저가 깜빡인다.
홍매: 오늘 저녁 약속 있어?
나: 약속은 없는데 밀린 드라마 보려고...
홍매: 내일 주말인데 주말에 보고, 저녁에 술 한잔?
나: 남친은?
홍매: 싸웠어!
나: 그럼 만나서 풀어~
홍매: 만나서 풀려고 해도 출장 가셨어요. 맨날 지만 바빠!
집에 가서 늘어지게 쉬고 싶지만, 오늘은 친구와의 돈독한 우정을 좀 더 쌓을 예정이다.
나: 어디 갈 가?
홍매: 콜인거지!
금요일의 퇴근시간은 조금 부산한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이 눈치껏 눈치게임 하듯이 사라진다.
나도 예외는 아니지만.
***** *****
홍매: 내가 다 맞춰주는 느낌이야, 지난 번에도 밤 늦게 전화 와서 만나자고, 출장 갔다 오는 길에 잠깐 들리겠다고 하는거야, 난 잘 준비 다 하고 화장도 지우고 있었는데... 매 번마다 지 맘대로야.
나: 보고 싶었나 보지, 너희 여행도 같이 다녀왔잖아. 서로 생얼 괜찮지 않아?
홍매: 그래도 ... 생얼은 보여주기가 아직도 좀 그렇단 말이야.
취기어린 홍매의 목소리가 투정처럼 들렸다. 여전히 예쁜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 마음, 출장으로 피곤했을텐데 한 걸음에 달려오는 남친이 좋다는 말로밖에 안 들렸다.
누군가를 저렇게 좋아할 수 있다는 것이 보기 좋았다.
홍매: 요사이 집에서는 조용해?
나: 여전하지 뭐. 언제 결혼하는지, 남친은 언제 만들건지, 그러다가 좋은 시절 다 놓친다고 늘 같은 이야기지 뭐.
홍매: 자만추라고만 하지 말고 주변에서 소개해 주는 사람 다 만나봐.
나: 그럴 가?
홍매: 말로만 맨날 열린 척 하지, 내가 오빠 친구 소개해 준다고 했을 때도 이 핑계 저 핑계 미루기만 하더니...
나: 나이가 들어서인가, 쉽지가 않네.
오늘은 나이 핑계로 이 화제를 전환해 보려고 했다.
홍매는 남친 전화 받는 다고 밖으로 나가고,
난 가게 안의 독특한 인테리어를 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마주친 눈 빛,
눈에 익숙한 듯 낯 선 남자와의 눈마춤.
대부분 모르는 사람이랑 눈이 마주치면 피하기 마련인데
그 남자는 피할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당황한 쪽은 나였다.
난 출입문 쪽으로 눈길을 돌리며 괜히 옷 매무새를 다듬었다.
통화가 길어지는지 한 참이 지나도 홍매가 들어오지 않는다.
나는 화장도 고칠 겸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정말 가관이 아니었다.
술기운으로 빨갛게 상기된 얼굴,
취기가 올라 혼탁해 보이는 눈동자,
매운 음식을 먹어서 살짝 부어오른 입술,
몰골이 가관이라 아까 그 사람이 그렇게 쳐다봤나 보다.
자조적인 웃음이 나왔다.
보이는 취기를 감추려 팩트로 연신 얼굴을 팡팡 두드렸다.
RRRR...RRRR...RRRR.
이 와중에 전화라니...
"여보세요?"
엄마의 전화다.
"화장실이야?"
한 마디밖에 안 했는데 내가 어디 있는지 알다니, 가끔은 정말 놀라울 지경이다.
"응, 어떻게 알았어요?"
"소리가 좀 울려서, 누구랑 있어?"
우리 엄마는 왜 이렇게 눈치가 빠른지, 아빠가 잡혀사는 이유를 알 것 같은 순간이다.
"홍매랑, 늦지 않게 들어갈게."
나는 엄마가 하려는 말을 미리 꺼내며 빨리 전화 끊기를 바랬다.
"그것 때문에 전화 한 건 아니고, 해숙이 이모 아들 이번에 잠깐 집에 왔다는데 너 한 번 만나보라고. 일요일 점심으로 약속 잡았어."
엄마의 일방적인 통보.
너무 싫지만, 아직은 우리 집 서열 1위인 엄마에게 반항할 명분이 없다.
엄마의 말,
때되면 연애하고,
때되면 결혼하고,
때되면 아이 낳고,
이렇게 평범하게 사는 네 모습을 보고 싶다고,
엄마의 "때"에 맞추고 싶지 않은 나는 자주 돌리는 긍정회로가 있다.
로또 당첨이 되어 집에서 독립하여 숲세권에 집을 사
내가 원하는 인테리어로 집을 꾸미고,
시간 맞춰 출근하고 상사 눈치 보며 일하지 않는
프리랜서로 자택근무를 하는 삶을.
남친이 없다고 여기저기 갖다 붙이고 엮는 것도 싫고,
남친이 없다고 무매력으로 바라보는 눈길도 싫고,
남친이 있다고 꼭 매력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듯.
결혼이 꼭 과제인듯 안달나 있는 엄마도 싫고,
결혼적령기라는 말은 누가 만들었는지,
지금은 비혼주의도 많다는데,
이 참에 비혼주의를 외쳐 봐,
일요일 엄마의 비위에 맞춰 옷을 갖춰 입고,
괜찮은 사람인 척 가식을 장착하고 해숙이모 아들이랑 밥 먹을 생각을 하니
머리가 찌끈거린다.
미리 그 분한테 사과라도 드려야 하나.
나는 아직 결혼할 생각이 없고, 내 이상형은 당신이 아닐 확율이 아주 높은데
이렇게 시간을 뺏어서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고.
거울 보며 관객없는 마음 속 원맨쇼를 끝내고 자리로 돌아갔다.
뭐지?
왜 우리가 앉아 있던 테이블에 아까 그 눈이 마주쳤던 남자가 앉아 있지?
둘이 앉아 있던 자리에 세 사람이 있다.
홍매는 왜 저렇게 반가움과 즐거움이 가득한 표정이지?
남친이랑 화해를 해서 즐거운 건가? 아니면 저 낯선 남자들과의 합석이 즐거운 걸 가?
낯가람이 심한 나로서는 자리로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심히 고민이 되었다.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느릿느릿 걸어가는데 또 그 남자랑 눈이 마주쳤다.
이번에는 살짝 입꼬리를 올리면서 웃고 있네.
나는 이 혼란스러움을 해결해줄 홍매에게 눈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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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매끄럽게 흘러가는군요
잘 읽었어요 코믹적인 부분도 있어
재미 있고 공감 또한 잘 정리된것 같아서
잘 읽고 갑니다 근데 소설 제목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