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베스트 월간 베스트 3개월 베스트 베스트 게시물
꽃배달 한국, 중국 전지역배송

너를 망가뜨릴 시간 (67회)

죽으나사나 | 2025.11.20 05:31:42 댓글: 0 조회: 198 추천: 0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688751

너를 망가뜨릴 시간 (67회) 그때랑 똑같잖아

강미정이 23년 전 친조카를 죽이도록 사주했다는 기사가 빠르게 언론에 퍼져나갔다. 그로 인해 모든 민감한 이슈들은 뒤로 밀려났고, 사람들의 관심은 오직 태산 그룹과 강유하 집안에 집중되었다.

사주 혐의뿐만 아니라, 검찰이 조용히 추적하던 비자금 경로도 드디어 드러나면서 사실상 강미정은 경찰서에서 무사히 나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졌다.

"상무님, 지금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상무..."


전무실 밖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지더니, 문이 거칠게 열렸다.


"강 전무!"


강교남이 허둥지둥 빠른 걸음으로 들어서고, 당황한 비서가 그를 막지 못한 채 뒤에서 딸려 들어왔다. 유하는 비서에게 눈짓을 보내며 내보냈다.


유하는 방금까지 뉴스를 확인하던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강교남의 얼굴엔 굵은 땀이 정신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것이 더위로 인한 땀인지, 긴장한 탓에 흘린 식은땀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침부터 무슨 일이죠?"


유하는 불쾌한 기색 없이, 표정을 고요하게 유지한 채 의자에 앉아서 물었다.

"유하야. 미정이 잡혀들어갔다는데 넌 미리 알고 있었던 거야?"


유하가 눈썹 끝을 꿈틀거리며 아무 말을 안 하자 교남은 소매로 땀을 닦으며 다시 입을 떼었다.

"강 전무는, 강 전무는 당연히 알고 있었던 거지?"

묻는 건지 떠보는 것인지 구별이 덜 되는 질문을 던진 교남은 유하의 반응을 살피기에 바빴다.


"알고 있었으면 뭐가 달라집니까?"

고저없이 평온했지만. 대답하는 목소리가 차가웠다.

"아니, 23년 전 일인데 어디서 증거가 나왔을까... 싶어서..."

교남은 여전히 유하의 눈치를 살피며 말끝을 흐렸다.

오늘 아침도 남들보다 여유롭게 회사로 향하는 길이었다. 그때, 오래전부터 가끔 도움을 주고받았던 언론사 편집장에게서 전화가 왔고, 무슨 일인가 싶어 전화를 받았다. 그제야 알게 되었다. 강미정이 23년 전의 일 때문에 체포되었다는 사실을.

고작 몇 년 전도 아니고, 23년이나 된 일인데 어떻게 지금에서야 그 증거가 나올 수 있다는 말인가. 아니면 강유하가 증거가 있음에도 적당한 타이밍을 기다려 퍼뜨린 걸까?


불안한 기분이 점차 확산하였다.


만약 지금처럼 중요한 시점에 그 증거를 이용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면, 그 생각이 너무나도 무섭게 느껴졌다.


강진욱이라면 이런 방식으로 독하게 나갈 리 없다고 생각했는데 유하는 다를 거란 생각이 들자, 이제까지 자신이 품어왔던 허무한 믿음들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진 것들이었는지 깨달았다.

"강 전무, 참 대단해. 어떻게 23년 전 일을 들출 생각을 다 했어. 미정이 저거, 이제 오랫동안 콩밥 먹게 생겼네. 아휴~ 독한 것. 내가 미정이 고거 이렇게 될 줄 알았다니까."

아무 말이나 던지며 소파에 몸을 기댔다. 떨리는 속내를 들키지 않기 위해 일부러 가볍게 행동했고 상대가 눈치채지 않길 바랐다.

"이로써 태산의 주인공은 강 전무네. 강 전무. 내가 이렇게 될 것도 미리 알았지."

혼자 고개를 끄덕이며 스스로를 안심시키는 듯했다. 하지만 문득, 유하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 슬쩍 그의 얼굴을 살폈다.


숨길 것이 많은 사람은 작은 시선에도 숨이 턱 막히는 법. 유하는 조용히, 하지만 깊숙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큰아버지."

"어, 어?"

등받이에 기대어 있던 교남은 움찔하며 등을 곧게 세웠다. 어느새 자세도 공손해졌다.


"한채이, 아시죠?"


유하의 기습적인 질문에 교남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 허를 찔린 듯한 표정이 스치더니, 이내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 그게... 한채이? 아, 한채이... 그 한채이 말이야? 아, 알지. 당연히 알지. 내가 왜 모르겠어."


머릿속에서 기억을 더듬는 듯 눈을 이리저리 굴리더니, 허공을 바라보며 어색하게 말을 늘어놓았다. 온몸에 소름이 돋는 느낌이었다.

숨길 것 없이 안다고 말했지만, 유하는 여전히 침묵한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은 마치
다음 차례는 너다. 하고 못 박는 것만 같았다.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에 교남은 마른침을 몇 번이고 삼켰다. 결국,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조용히 유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제 체면이나 위계 따위를 논할 때가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유하는 5년 전의 일을 알고 있으면서 자신을 베트남에서 불러냈다는 것. 그건 곧, 교남을 작은 벌레처럼 잘근잘근 짓밟아 끝장내겠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내, 내가 잘못했어. 난 그저 강 회장의 뜻을 따랐을 뿐이야. 정말이야. 강 회장이 허락하지 않았더라면 난 감히 그런 짓을 하지도 못했을 거야. 유하야."


교남은 가능한 한 비참하고 애처로운 얼굴로, 차갑기만 한 조카를 올려다보았다.


"그 후로 내가 얼마나 후회했는지 넌 모를 거야. 하나밖에 없는 내 조카가 죽을 뻔했지. 더군다나... 더군다나..."


입 밖에 내기조차 힘든지 이리저리 눈치를 보던 교남은 결국 말을 내뱉고 말았다.


"그 아이가 임신 중이었다는 걸 알았다면, 절대로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았을 거야."


제발, 제발 살려달라는 듯 교남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무릎 위에 올렸다.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유하의 떨리는 목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웠다. 죄인처럼 고개를 떨구고 있던 교남은 천천히 머리를 들었다. 그리고 혼이 나간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 유하의 눈과 마주쳤다.

"그게... 그 아이가... 임신을...."


교남은 유하의 서늘한 시선을 온몸으로 맞으며 말을 끝맺지 못했다.


"그 사고 때문에... 유산...."


유하는 미동도 없이 교남을 바라봤다.


한채이가 사고 당시 임신 중이었다는 사실을 몰랐던 걸까.


순간 교남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입 밖으로 나온 말을 주워 담을 수 없었다. 후회가 밀려들었고, 이를 악물었다.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멈춘 듯, 유하는 한동안 굳어진 채 서 있었다.

***

임시 주주총회가 급히 소집되었다. 최근 여러 논란을 일으킨 강미정을 부사장직에서 해임하고, 새로운 총수를 결정하기 위해서였다.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만 해도 유하보다 강미정을 지지하는 주주들이 더 많았지만, 오늘은 모두가 한마음으로 유하의 편에 섰다. 강미정을 그대로 두었다가는 태산 그룹 전체가 위태로워질 것이라 판단한 듯, 유하에게 태산의 미래를 맡기려는 분위기였다.

모두가 유하가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 확신했다. 그러나 유하는 예상과 달리 다른 인물을 그 자리에 앉혔다. 전통적인 세습 경영을 따르지 않고, 외부 전문가에게 회사를 맡기기로 한 것이다. 유하는 헤드헌팅 전문 업체를 통해 적임자를 물색했고, 마침내 만족할 만한 인재를 찾아냈다. 그리고 오늘, 그 인물을 회의 석상에 불러들였다.

유하가 추천한 인물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풍부한 경영 경험을 쌓아온 자로써, 그는 국내외를 넘나들며 다양한 경험을 축적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실력을 인정받았다. 유하는 그의 전략적 비전과 글로벌 네트워크가 기업에 새로운 혁신을 가져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모두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지만, 유하가 데려온 인물이 워낙 유명한 인사였기에 누구도 쉽게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그렇게 급히 열린 회의는 마무리되었다.

회의를 마친 후, 전무실로 돌아온 그는 피로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사무용 의자에 푹 몸을 기댔다. 얼굴이 뜨겁게 달아오른 듯, 천천히 손으로 눈두덩이를 문지르며 생각에 잠겼다.


이 일은 그가 오래전부터 고민해 온 문제였다. 해외에서는 이곳과 다르게 반드시 대대로 경영을 이어가야 한다는 규칙이 없었다. 많은 기업이 외부에서 전문 경영인을 영입해 회사의 성장을 극대화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여전히 세습 경영을 고수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로 인해 얻는 이점보다 부작용이 더 많았다. 그래서 유하는 꾸준히 적합한 인재를 찾기 위해 노력했고, 여러 업체의 협력 끝에 마침내 적합한 인물을 찾아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신은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이 딱딱한 책상 앞에서 일생을 외롭게 지키며, 혈연으로부터 자리를 빼앗길까 두려워할 일이 없도록, 그저 조금은 더 편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하는 감고 있던 눈을 천천히 떴다.


[그 아이가 임신 중이었다는 걸 알았다면, 절대로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았을 거야.]


그보다 더 큰 충격은 없었다.


임신, 채이의 임신이라니...


자신이 아무것도 몰랐다는 사실에 할 말을 잃었고, 사건의 시작은 강교남에게 있다는 사실은 물론,
그 일을 허락한 사람이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직접 들었을 때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


채이는 자신이 우리의 아이를 가졌다는 걸 알고 있었을까,

어리기만 하던 네가 몰랐어도 당연했고, 만약 그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그날의 너는 얼마나 절망했을까.


[넌 내가 허락하지 않는 한, 이 집에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어. 네 동생이 무사하지 않은 모습을 보고 싶다면 나가도 괜찮지만.]


그렇게 너를 억지로 붙잡는 게 정말 맞았던 걸까?


[네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넌 내 곁에 있어야 해. 내가 웃으라면 웃고, 내가 울라면 울면서, 그저 내 옆에서 감정 없는 인형처럼 살아가.]


나는 정말 너에게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걸까?


가슴 속에서 무엇인가 날카롭게 도려내는 듯한 아픔이 밀려왔다. 유하는 아픈 가슴을 무겁게 두드리며 다시 두 눈을 감았다.

***

어느덧 뒤뜰에도 가을이 찾아왔다. 풍성하던 나뭇잎들이 하나씩 떨어지기 시작했고, 한때 더웠던 날씨는 이제 제법 차가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채이는 다시 별채 끝방에 자신을 가두었다. 끼니를 거르고 하루 종일 멍한 표정으로 뒤뜰을 바라보았다. 머릿속엔 뭔가가 떠도는 것 같았지만,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무엇을 어디서부터 생각해야 할지 몰라 그냥 마음을 비워보기로 했다.


[왜 이러는지 알고 싶다고 했지.]


그러나,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럼 기억해 내. 한채이, 네가 왜 나를 버리고 떠났는지, 그걸 먼저 기억해 내라고.]


기억해 내라고...


뭘? 나에게 무엇을 기억하라는 건지...


[죽어가는 나를 두고 떠난 너를, 난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


싸늘해진 얼굴로 장난을 칠 사람이 아니란 걸 알기에, 채이의 마음은 더욱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떠오르는 게 없었다. 답답했다.


누구라도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누구라도...


갑자기 채이는 침대에서 일어나 바쁘게 움직였다. 여기서 이렇게 있을 게 아니라 소은을 찾아가서라도 물어보겠다고 마음먹었다. 소은은 분명 강유하를 잘 알고 있는 거 같았으니까.

방전되어 켜지지도 않은 핸드폰을 챙기고 급히 별채를 나섰다.

집 안에서 상상했던 것과는 달리, 밖의 공기는 훨씬 더 차가웠다. 반팔 티셔츠에 얇은 카디건만 걸쳤더니, 찬 바람이 옷을 파고들어 피부에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오늘은 해도 구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아, 기분까지 살짝 우울해지는 날이었다.

덜컥,


커다란 철문을 닫고 밖으로 나섰을 때였다.


"어? 어, 어, 한채이!"


낯선 목소리가 채이를 부르자, 채이는 급하게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찾았다.


그는 비싼 슈트를 입은 나이가 꽤 있어보이는 남자였고, 걸음걸이는 약간 비틀거렸으며 채이는 직감적으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정말 여기에 살고 있었구나? 와..."


그의 말투는 걸음걸이처럼 가벼웠고, 가까이 다가오자, 알코올 냄새가 강하게 풍겼다. 채이의 눈에 그는 대낮부터 술에 취한 취객처럼 보였다.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채이는 그를 피해 몸을 돌리려 했다.


"어어? 어디 가? 나 할 말 있어."


강교남은 당황한 표정으로 급하게 채이의 팔을 붙잡았다.


"왜, 왜 이래요!"


채이는 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두려움에 가득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러자 교남은 그녀의 반응이 재밌다는 듯이 껄껄 웃었다.


"그때랑 똑같잖아. 어쩜 이렇게 변한 게 없냐, 한채이."


그제야 채이는 이 사람이 계속 자신을 부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 좀 도와줘, 그때 사고는 나랑 관계없다고 강 전무에게 잘 말 좀 해줄 수 있을까?"


갑자기 나타나 이상한 부탁을 하는 어른을 채이는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았다.


어떤 기억이 떠오를 듯, 말 듯 머리가 어지럽고 기분이 묘하게 무거워졌다.

추천 (0) 선물 (0명)
IP: ♡.214.♡.18
23,062 개의 글이 있습니다.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조회
보라
2006-08-09
3
65948
죽으나사나
2025-12-15
0
43
죽으나사나
2025-12-15
0
35
죽으나사나
2025-12-14
0
55
죽으나사나
2025-12-08
0
120
마도라
2025-12-01
5
458
마도라
2025-12-01
5
379
죽으나사나
2025-11-27
1
173
죽으나사나
2025-11-20
0
198
죽으나사나
2025-11-20
0
106
죽으나사나
2025-11-19
0
109
죽으나사나
2025-11-19
0
152
보나르
2025-11-19
2
389
yina1004
2025-11-06
2
519
워킹맘1004
2025-11-04
0
349
죽으나사나
2025-11-03
1
207
죽으나사나
2025-11-03
1
186
마도라
2025-11-03
6
656
죽으나사나
2025-11-01
0
142
죽으나사나
2025-10-24
0
177
죽으나사나
2025-10-21
1
153
죽으나사나
2025-10-21
1
179
죽으나사나
2025-09-10
4
539
죽으나사나
2025-09-08
1
363
죽으나사나
2025-08-28
1
439
죽으나사나
2025-08-27
1
344
죽으나사나
2025-08-21
2
351
LMATF
2025-08-21
0
433
모이자 모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