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망가뜨릴 시간 (70회) 희망&절망
쾅, 쾅, 쾅!
"문 열어주세요! 제발요...!"
거친 손아귀에 붙잡혀 폐건물의 작은 방으로 끌려간 채이는 차가운 문을 두드리며 울부짖었다. 그러나 바깥은 숨죽인 듯 조용하기만 했다.
캄캄한 방, 희미한 불빛 아래 채이는 몸을 웅크렸다.
"아아, 괜찮아. 괜찮아질 거야. 아빠가, 아빠가 우릴 찾아올 거니까 괜찮아."
누가, 왜, 자신을 가두었는지 몰랐다. 핸드폰을 뺏겨 연락할 수가 없었고 얼마 동안 갇혀있었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울다가도, 이러면 안 되지.
엄마의 감정을 아이도 똑같이 느낀다는 말을 어렴풋이 들은 적이 있는 거 같아 최대한 심호흡을 했다. 아직 점으로밖에 보이지 않던 아이가 뭘 알겠냐마는 끝없이 배 속의 작은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문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지자, 채이는 본능적으로 다시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너무 많이 울어 기운이 빠졌지만, 누군가 들어주길 바라며 간절한 목소리로 외쳤다.
"여기 사람이 갇혔어요! 도와주세요!"
하지만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채이는 낙심하며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그때였다.
"한채이."
차갑게 들려오는 낮은 목소리.
들려오는 그 음성이 어딘가 익숙했다.
"누, 누구세요?"
"그러니까, 헤어지라고 곱게 말할 때 들었어야지. 이게 뭐냐고, 어?"
채이는 머릿속을 빠르게 굴려봤지만, 상대가 누구인지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왜, 왜 이러시는 거예요? 제발 여기서 꺼내주세요. 제발..."
"왜라니."
남자의 목소리가 한층 더 냉랭하게 내려앉았다.
"유하와 헤어질 거라는 확답을 듣기 전에는 못 나가."
단호하게 못을 박는 그 말에 채이는 아득해졌다.
"유하 오빠와 헤어질 마음이 없어요. 왜냐면, 왜냐면……"
임신했다는 말을 꺼내려다 입을 꾹 다물었다. 이들이 자신을 가둔 채 어떤 짓까지 할지 모르기에,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말하는 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었다.
그래. 아이를 보호해야 해.
채이는 조용히 이를 악물었다.
"그럼 여기서 쭉 갇혀 있어. 언제까지 버티나 보자고."
서늘한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남자는 사라졌다.
주변이 다시 정적에 잠겼다. 채이는 몸을 웅크리고 무릎 위에 얼굴을 묻었다.
"버틸 수 있어. 괜찮아. 엄마는 아빠가 올 때까지 기다릴 거야."
입술을 깨물며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머릿속은 복잡했다.
아저씨가 보낸 사람인 걸까.
유하와 헤어질 생각이 없으니 강제로 떼어놓으려는 걸까.
아니야.
아저씨는 나를 싫어하긴 해도, 이렇게까지 할 사람이 아닐 거야.
괜한 의심 말자, 오빠의 가족 아닌가, 그리고 내 아이의 할아버지기도 하고.
그래, 괜찮아. 다 괜찮아질 꺼야.
언제 이곳을 나갈 수 있는지도 모르는 공포와 불안함을 이기려고 수도 없이 심호흡하던 채이는 어느새 지쳐 잠이 들고 말았다.
낮인지 밤인지도 모를 정도로, 채이는 거기에 갇혀있었다. 낮과 밤의 구분이 사라진 어둠 속에서, 점점 기력이 빠져나가며 정신이 희미해져 갔다.
"......채이야! 한채이!"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그녀를 불렀다.
"오빠…… 유하 오빠……"
힘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손을 간신히 움직여, 문을 두드렸다.
"나 여기 있어…… 오빠……"
철컥.
절대 열리지 않을 것 같던 문이 마침내 열렸다.
희미한 불빛만이 의지처였던 공간에, 따뜻한 햇살이 스며들었다. 그 빛 너머로 유하가 서 있었다. 그 순간, 채이는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여기에 갇힌 3일 내내, 그녀는 물 한 모금도 못 마신 상태였다.
쓰러진 채이를 조심스럽게 차에 태운 유하는 그녀의 안전벨트를 단단히 고정하며 초조하게 말했다. 그녀의 몸은 정말 말도 안 되게 차가웠다.
"채이야, 조금만 참아. 곧 병원에 도착할 거야. 조금만 더 버텨줘."
간신히 정신을 차린 채이는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흐릿한 시야 너머로, 온 얼굴이 땀범벅이 된 채 신경을 곤두세우고 운전하는 유하의 모습이 보였다.
"……오빠……"
그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채이야, 괜찮아?"
툭 건드리면 바로 울 것만 같은 그의 표정을 보며, 채이는 오히려 안심되었다.
갇혀 있던 동안, 온갖 생각이 스쳐 지나갔었다.
오빠도 결국 날 찾지 않아. 그러니 난 이곳에서 사라지겠지. 우리한테 아이가 있다는 말도 못한 채로……
하지만, 상상과는 달리 그가 이렇게까지 자신을 찾아 헤맸다는 걸 알게 되니, 이상하게도 웃음이 났다.
"나…… 괜찮아……읏,“
말라붙은 입술을 움직이며 힘겹게 웃자, 입술이 갈라지며 따끔한 통증이 밀려왔다.
"한채이, 아파? 많이 아파?"
얼굴을 살짝 찡그렸을 뿐인데 큰일이라도 난 듯 조급하게 묻는 유하를 보며 채이가 다시 옅게 웃었다.
"응, 나 괜찮..."
채이는 답을 끝까지 못 했다.
순식간이었다.
유하가 운전 중 잠시 고개를 돌린 순간, 트럭이 빠른 속도로 교차로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는 것을.
쾅!
엄청난 충격과 함께 차량이 크게 흔들렸고, 유리창이 산산이 부서졌다.
이명 소리가 귓속을 가득 채웠고, 전신이 마비가 된 듯 굳어버렸다.
의식이 점차 흐릿해졌고, 그 와중에 마지막까지 보인 것은, 안전벨트를 매지 않아 운전석 창밖으로 튕겨 나간 유하의 모습이었다.
"오....빠...."
손을 뻗었지만,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멀어져 가는 그를 시야에 겨우 담으며 안타까운 신음만 터져 나왔다. 그리고 끝없는 암흑 속에 빨려 들어갔다.
...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병원이었다. 사고 당시 발목이 부러져 수술을 마친 상태였다.
채이는 간호사가 모습을 드러나기가 무섭게 다급히 물었다.
뱃속의 아이는 괜찮을까? 괜찮아야 할 텐데.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차가웠다.
“아이는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 순간, 온 세상이 무너지는 듯했다. 눈앞이 노래지고, 천장이 빙글빙글 돌았다. 모든 게 희미해졌다.
고작 4주. 짧디짧은 시간 속에서 소중하게 품었던 존재가 거품처럼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거짓말이야... 거짓말....!"
채이는 흐느끼며 오열했다. 목에서 나오는 소리가 울음인지, 절규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서글프게 우는 채이를 모두가 측은하게 여겼지만 달리 도와줄 방법이 없어 조용히 자리를 피해주었다. 남겨진 것은 지독한 슬픔뿐이었다.
채이는 조심스럽게 배 위에 손을 올렸다. 아직도 그 안에 작은 온기가 남아 있는 것만 같았다.
얼마 전까지 존재했던 그 아이, 한 번도 보지 못했고, 손끝으로 느껴보지도 못했지만, 분명히 함께했던 작은 생명.
너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태어났다면 얼마나 사랑스러운 얼굴을 했을까 싶어 눈물이 났다.
어린 나는 엄마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제 나도 엄마가 된다는 설렘 속에서 기대감이 커져만 갔다.
잘하고 싶었다.
소중하게 품고, 어떻게든 지켜내고 싶었다. 그 사람과 나, 우리가 함께 만든 아이였으니까.
몇 날 며칠을 갇혀 지내면서도, 오직 아이만을 생각하며 버텨냈다.
내 안에 그 아이가 함께 있다는 사실이, 적어도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이, 커다란 두려움마저 잊게 해 주는 것만 같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깊은 어둠 속에서 허우적거리던 채이는 간신히 정신을 붙잡으려 애썼다. 자신보다 더 크게 다쳤을 그 사람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어떻게 되었을지, 제발 괜찮아야 할 텐데.
채이는 간절한 마음으로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하나같이 같았다.
"모르겠습니다."
처음부터 구급차에 실려 온 건 그녀 혼자였다고 했다.
"그럴 리가 없어요. 다시 한번 확인해 주세요."
애타게 부탁했지만, 답은 달라지지 않았다.
"혼자였습니다. 강유하라는 이름을 가진
환자는 없어요."
어디에도 유하는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채이는 얼마 안 가 병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소식이 닿지 않는 유하를 찾으러 다녔다.
크게 다쳤을 텐데...
나보다 훨씬 크게 다쳤을 텐데...
없을 거라는 걸 알았지만 그가 살던 집으로 갔다.
단단히 닫힌 철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래도 아침 일찍 가고 밤늦게 돌아오며 매일 찾아갔다. 비가 쏟아져도 깁스를 한 채 떠나지 못하는 채이가 가여웠는지 고용인 한 명이 몰래 나와 돌아가라고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저택에서 나오는 그의 아버지인 강 회장의 차량과 마주쳤고 그 앞을 가로막아 섰다.
"오빠는... 어떻게 된 거죠?"
채이는 겨우 버티고 있는 그의 아버지의 수척한 모습을 보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아이처럼, 그도 설마...
순간,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너 때문이다. 네가 없었으면 우리 유하가 그런 끔찍한 일을 겪을 이유가 없었어. 네가 없었다면!"
날카롭게 쏘아붙인 그의 말이 채이를 얼어붙게 했다.
그도, 아이와 함께 사라졌구나. 그 생각만이 채이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 후, 채이는 정신을 잃은 듯한 날들을 보냈다. 아저씨의 말처럼, 만약 자신이 없었더라면 유하는 그런 사고를 겪지 않았을 텐데, 자신을 탓하며 미워했다.
그러던 어느 날, 채이는 경찰서를 찾아갔다. 그녀를 가두었던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폐건물의 문밖에서 조롱처럼 들리던 그 목소리의 주인이 강교남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채이는 바로 경찰서로 향했다. 하지만 경찰은 믿지 않았다. 그곳에 사람이 갇힌 적이 없다고 하며 채이를 이상한 사람 취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번이고 경찰서를 찾아갔고, 어느 날, 아저씨가 채이 앞에 나타났다.
돈봉투를 건네며, 그냥 조용히 살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때 그렇게 갇히지만 않았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거예요. 죄를 지은 사람은 벌을 받아야..."
"유하는 살아있어."
몇 개월을 의식이 없는 채로 누워있기만 하던 유하가 최근에 깨어났단다. 정말 드문 케이스라 기적이라 불렸다고 했다. 그리고, 사고의 충격으로 기억을 잃은 유하가 채이의 이름을 들어도 알지 못한다고, 머리를 가로젓던 동영상을 보여줬다.
"너의 고집 때문에 유하를 이렇게 만든 거잖니. 보상은 할 테니 그냥 조용히 살아."
강 회장은 혈육인 강교남의 잘못된 행동을 감추려 했다.
"감사합니다.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채이는 돈봉투를 거절했다.
그가 살아있다는 사실, 죽은 줄만 알았던 그가 다시 살아 있다는 사실이 기쁨 그 자체였다. 하지만, 자신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한참을 슬퍼했다.
괜찮아지겠지.
그를 보내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마음속으로 계속 주문을 외워보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에 대한 그리움은 점점 더 깊어졌고, 그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생각에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다시 만개한 벚꽃 나무 아래를 걷고 있으면서, 그 사람을 떠올렸다. 그와 함께 걸었던 거리와 가게를 찾아가며, 그와의 추억을 되새기고 그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느꼈다.
허공에 손을 뻗어 닿을 리 없는 그 사람의 촉감을 느껴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끝에는 허무함만 남아 있었다.
그를 만나기 전처럼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결론은 하나였다.
엄마와 동생을 만나 맛있는 음식을 함께 하며, 아무 일 없는 듯 웃었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크게 걱정했을 가족에게 웃어주며, 마지막 순간을 함께 했다.
그리고, 혹시나 다시 달라붙을까봐 돈봉투를 내밀던 아저씨에게,
"차라리 건물 하나 주시죠."
결국, 남들이 우려했던 것처럼, 나는 돈 때문에 당신 곁에 있었던 것처럼 행동했다.
그래야 아주 나중에 혹시라도 나를 다시 기억해냈을 때, 당신은 없어진 나를 더이상 그리워하지는 않을 테니.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 아저씨를 보며, 나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동생 명의로 올리기를 원했고, 아직 미성년자라 관리할 수 없으니 성인이 될 때까지 대신 관리해줄 것을 부탁했다. 그렇게 가족은 그 건물에 대해 잠시 모른 채 살아가게 되기를 바랐다.
모든 게 끝난 듯했다.
조용한 동네를 돌아보며, 그와 함께 걸었던 계단, 해빛을 피해 잠시 멈췄던 큰 나무 아래에서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모든 게 그와의 행복한 추억뿐이었다. 그의 취향이 담긴 자취방에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그리고 욕실로 향했다. 그가 없으면 더 이상 살아갈 이유를 찾을 수 없었기에, 나는 차라리 죽음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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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휴..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