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베스트 월간 베스트 3개월 베스트 베스트 게시물
연길시 신화서점 조선말 도서

너를 망가뜨릴 시간(72회)

죽으나사나 | 2025.12.15 04:47:02 댓글: 1 조회: 196 추천: 0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692584

너를 망가뜨릴 시간. (72회) 진실.

같은 시각,

통풍이 될 만한 창문 하나 없는 지하 공간에 담배 연기와 더운 공기가 정신을 어지럽게 했다. 여기저기서 환호와  절망의 신음, 세균이 꿈틀대는 플라스틱 칩을 굴리는 소리가 크게 울려댔다.

"와씨, 오늘 무슨 일이지? 이렇게 잘 풀린다고?"


최영태는 일주일째 불법 지하 도박장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내 미란이 아들 최수호와 함께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직도 행방을 찾지 못해 속이 타들어 갔지만, 오늘따라 이상하게 운이 따랐다. 내내 지지리도 안 풀리던 판이었는데, 이번만큼은 손에 쥐는 족족 돈이 들어왔다.


짜증과 분노로 굳어 있던 얼굴에, 오랜만에 희미한 웃음이 스쳤다.

한참 전부터 최영태를 지켜보던 누군가가 조용히 그의 곁에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도박에 깊이 빠진 최영태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나이스!“


다른 도박꾼의 실망 가득한 소리가 들려오며, 이번에도 모든 판돈을 차지한 영태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입술을 크게 비틀었다.

"게임을 꽤 잘하시네요."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불쑥 들려왔다. 남자가 말을 걸었지만, 최영태는 대충 시선만 던진 채 다시 도박판에 집중했다.


"꼬이고 꼬이던 이 지지리도 못난 팔자가 이제야 풀리는 모양입니다."


예전엔 시작됐다 싶으면 순식간에 날려버리기 일쑤였는데, 오늘만큼은 달랐다. 이쯤이면 도박장이 아니라 돈 복사기나 다름없었다.


실종된 늙은 마누라를 애타게 찾느니, 차라리 돈을 모아 젊고 예쁜 여자를 새색시로 맞아들이는 게 더 빠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도 요즘 게임에 재미를 붙였는데, 운이 따르지 않아서 말입니다. 판돈을 불려 드릴 테니, 제 것도 좀 봐주실 수 없겠습니까?"


남자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최영태는 고개를 돌려 그를 제대로 쳐다보았다. 가는 눈으로 남자의 얼굴을 스캔하던 영태는 곧 콧방귀를 뀌었다.


"각자 알아서 하세요. 돈 좀 된다고 별 게 다 들러붙네."


그는 다시 판에 정신을 집중했다.


"1억 어떻습니까?"


영태의 눈빛이 번쩍였다.

"조부님이 돌아가시면서 남긴 재산이 꽤 많았죠. 그런데 사람의 욕심이 끝이 없나 봐요. 판돈은 신경 쓰지 마시고, 불려만 주시면 5대5로 나누는 건 어떠신가요?"

남자의 제안이 꽤 자극적이어서 영태는 마른침을 삼키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다시 한번 남자를 게 눈으로 살펴보니, 그의 몸을 감싼 정장이 눈에 띄었다.
갑자기 고급스러워 보였고 마치 유명 브랜드 제품처럼 보였다.

"도박이란 게 언제나 이길 수 있는 게 아니잖습니까. 지면 그때 가서 울고불고 하지 말고, 혼자 저쪽 가서 해보시죠."

영태는 유혹에 흔들렸지만 결국 거절했다. 운이 언제나 따를 수는 없기 때문에 당연한 반응이었다.

"1억쯤은 그냥 장난감 돈이라고 생각하세요. 마음 편히 즐기시죠."


남자의 말이 공기 중에 흩어졌지만, 영태는 의도적으로 무시했다.


"6대4."

흠칫 했지만 여전히 판에만 신경 쓰는 척했다.

"하아, 장사하실 줄 아네. 그럼 실력을 믿어보겠습니다. 7대3 가시죠."


남자가 한발 물러서며 양보하는 순간, 다른 플레이어가 기권했다. 결국 또 영태의 승리로 돌아갔다.


남자는 영태의 승리를 믿었다는 듯 만족의 고개를 끄덕이었다.


영태는 이번 판에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걸린 돈이 큰 만큼 반드시 이겨야만 했다. 큰돈이 오가는 압박 속에서 마지막 순간 배팅을 더 올릴지 고민하다가, 혹시 모를 위험을 생각하고 멈춰버렸다.

“아! 씨X.”

상대의 패가 자신보다 낮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 후회가 밀려왔다. 승리는 변함없이 영태의 것이었고, 그는 판돈의 두 배를 손에 넣었다.

남자는 약속대로 7천만 원을 건넸다.
“저기,”

영태는 슬슬 도박장을 빠져나가려던 남자를 붙잡았다.

“오늘 운이 장난 아닌 날인 것 같은데, 한 판 크게 붙어볼 생각 없습니까?”

남자는 말없이 영태를 한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운은 좋은 것 같은데, 큰돈 벌 사람은 아닌 것 같네요. 지루해서 재미가 없어요.”

그가 돌아서려 하자, 영태는 다시 그의 팔을 붙들었다.

“아, 아까는 솔직히 겁이 났습니다. 푼돈만 걸다가 큰돈을 걸려니 주저했던 거죠. 그런데 마침, 오늘 제대로 판을 벌인 사람이 있는데 한 번 붙어보시겠습니까?”

영태는 아까부터 자리도 옮기지 못한 채 자신에게 당하고 있던 도박꾼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흠, 해도 되긴 하는데.”

남자는 흥미가 생긴 듯 혀를 한 번 차더니,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할 수는 있는데?”

“크게 가시죠. 인생은 한방 아닙니까.”

남자의 의미심장한 말에 영태의 눈빛이 번뜩였다.


“아, 씨X,
어떻게 이렇게 질 수가 있어? 인정 못 해! 아니, 절대 인정 안 해!!!”

큰 판을 걸었다가 처참히 패배한 영태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도박장은 그의 난동으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기면 엄청난 돈을 쥘 수 있었겠지만, 패배한 지금 그에게 남은 건 막대한 빚뿐이었다.

“도와주세요. 제발, 제발 도와주세요.”

구석에서 흥미롭다는 듯 조용히 지켜보던 남자를 발견한 영태는 그에게 달려가 애원했다.

하지만 남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잘했어야지.”

가소롭다는 듯 피식 웃음을 흘린 그는 그대로 돌아섰다.

영태가 필사적으로 그의 팔을 붙잡으려는 순간, 이미 상황을 예측했던 검은 무리가 그를 거칠게 끌어당겼다.

***


"방금 아프리카로 향하는 고깃배가 출항했습니다. 그 많은 빚을 일 하면서 갚으려면 한동안 한국에 돌아오긴 어려울 겁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지한과의 통화를 끝낸 유하는 조용히 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방에서 나와 테라스로 발을 디디자, 싸늘한 공기가 피부를 감쌌다. 어둠이 깊숙이 내려앉은 뒤뜰엔 희미한 불빛만이 가물거리고 있었다.

몇 날째 집을 나서지 않았고, 수염을 기른 얼굴은 피폐해 보였다.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도 묻어나지 않은 채, 그는 그저 아래를 응시하고 있었다.

뒤뜰 어딘가에서, 그녀의 실루엣이 어렴풋이 보이는 듯해,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다.


[으~ 아침 햇살, 정말 뜨겁다아~~~!!]


이른 아침, 딸기밭에 빠져든 듯 딸기 무늬로 가득한 운동복을 입고, 큰 목소리로 혼자 떠들며 국민체조를 하던 그녀의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그 기억에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알록아, 달록아. 잘 잤어?]


연못 앞에 쪼그려 앉아 물고기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그녀의 모습도 이제는 아주 오래전 일처럼 느껴졌다.

도와주세요,

자신을 함정에 빠뜨린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이 집으로 찾아왔던 그날도 떠올랐다.


돈을 주고 고용했던 여자가 2억이라는 합의금을 요구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고, 그 덕분에 그녀를 곁에 둘 수 있는 명분이 생겼다.

너는 분명 가족처럼 아끼던 이를 돕기 위해 움직일 것이고, 결국 내 앞에 나타나게 되리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래,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알던 너라면, 그렇게 행동하고도 남을 여자였다.


하지만 나는 나 자신도 믿지 못한 채, 너를 의심했다.

네가 변했을 거라고,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나에게 다른 의도가 있었을 거라고.

조금만 더 깊이 생각했더라면 그게 아니었다는 걸 알았을 텐데.


우리의 첫 시작은 너의 의도가 아니라, 계획에 없던 내가 너한테 다가간 거였다.

우리의 시작은 지극히 단순했었다.


그걸 왜 몰랐을까.

왜 나는 그렇게 어리석었을까.

며칠 전,

오랫동안 찾고 있던 사람이 마침내 스스로 유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죄송합니다, 전무님. 더 빨리 찾아뵙고 싶었지만… 저를 쫓고 있는 자들이 있어서…]

쫓고 있는 자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죽은 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으니, 결국 그의 곁을 지켰던 자를 찾아 마지막 남은 약점을 흔들어보고 싶었겠지.


유하가 몇 개월 동안 찾아 헤매던 이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곁을 지켰던 비서였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그는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다.


그러던 중, 강미정이 체포되고 강교남의 장례식이 마무리될 즈음, 마침내 그 비서가 모습을 드러냈다.

유하 앞에 아버지가 생전에 곁에서 놓지 않던 테이프 레코더가 조용히 놓였다.


"더 일찍 전해드렸어야 했는데… 이제야 드리네요."


그것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 직접 녹음한 것이었다.

...

아들아, 보고 싶다… 아들아.


이 몸뚱이가 버틸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지, 요즘 따라 우리 아들이 너무도 그립구나. 하지만 바쁜 너에게 오라고 할 수도 없고…


손수 편지를 써서 너에게 남기고 싶었는데, 이제는 손에 힘조차 들어가지 않는다.

아빠는 요즘 후회가 많다. 하루하루가 후회로 가득 차 가슴이 아프구나.


짧다면 짧은 인생인데, 왜 이렇게 후회뿐인지… 난 정말 잘못 살아온 것 같다. 이제 곧 네 엄마를 만나게 된다면, 아마 크게 꾸지람을 들을 것만 같구나.


첫 번째 후회는, 네 엄마를 그렇게 쉽게 놓아서는 안 됐다는 것이다. 그랬다면 우리 유하가 엄마 없이 쓸쓸한 유년기를 보낼 일도 없었을 텐데…

아니지, 너를 지킨다고 멀리 보내버린 건 내 선택이었으니, 결국 너는 엄마뿐만 아니라 아빠 없이도 자라야 했구나. 정말 후회가 많다, 유하야. 그때 왜 그랬을까…


수많은 후회 속에서도 가장 가슴에 사무치는 건, 바로
그 아이다. 네가 죽고 못 사는 그 아이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것이 가장 한스럽구나.


미안하다, 아들아.

아빠는 엄마를 잃고 더더욱 겁쟁이가 되어버렸던 것 같다. 혹시라도 너까지 엄마처럼 허무하게 떠나버릴까 봐, 너를 올가미처럼 꽉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러지 않아도 넌 스스로 알아서 잘했을 텐데…

네 엄마를 떠나보낸 후, 아빠는 결심했었다. 네가 강해지길 바랐고, 너에게 도움이 될 만한 여자를 만나길 원했다. 하지만… 그 아이에게서 네 엄마의 모습이 겹쳐 보일 때마다, 나는 더 괴로웠다.


마치 너의 운명이 정해져 있는 것만 같아서, 그게 너무도 두려웠다. 그래서 나름 너희 둘을 보호한다는 생각으로… 그런 짓을 했다.


미안했다, 아들아.


죽어라 너희를 떼어놓았는데, 혹시라도 내가 떠난 뒤 너희가 다시 만나기라도 할까 봐… 거짓말로 얼룩진 편지까지 남겨 두었구나. 나는 정말 크나큰 잘못을 저질렀다. 이런 짓을 벌인 아빠를 용서하지 마라.


오늘, 그 아이를 찾아가 보았다.

한때 나만 보면 두려움에 사로잡혔던 아이… 그런데 오늘은 아니었다. 그 아이는 더 이상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게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그 아이를 그렇게 만든 게 결국 나라는 사실이 너무도 아팠다.

그 아이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고, 나는 미안하다는 말조차 하지 못한 채 돌아섰다. 그 평온을 내가 깨트리면 안 될 것 같아서, 겁쟁이인 아빠는 오늘도 그저 뒤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너는 그러지 마라, 유하야.

그 아이를 찾아가라.


그리고… 이 편지는 태워버리마. 아빠는… 아빠는… 으윽… 으……

...

아버지는 그대로 쓰러졌다. 손에 꼭 틀어쥔 편지는 끝내 태우지 못한 채로.

추천 (0) 선물 (0명)
IP: ♡.214.♡.18
해외에사는남자 (♡.101.♡.150) - 2025/12/22 13:13:03

Ffgfgf

23,063 개의 글이 있습니다.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조회
보라
2006-08-09
3
66141
흘러갈오늘
2025-12-26
1
301
죽으나사나
2025-12-26
1
166
죽으나사나
2025-12-15
0
196
죽으나사나
2025-12-15
0
131
죽으나사나
2025-12-14
0
147
죽으나사나
2025-12-08
0
171
마도라
2025-12-01
5
659
마도라
2025-12-01
6
559
죽으나사나
2025-11-27
1
212
죽으나사나
2025-11-20
0
243
죽으나사나
2025-11-20
0
122
죽으나사나
2025-11-19
0
123
죽으나사나
2025-11-19
1
200
보나르
2025-11-19
2
558
yina1004
2025-11-06
2
635
워킹맘1004
2025-11-04
0
399
죽으나사나
2025-11-03
1
243
죽으나사나
2025-11-03
1
218
마도라
2025-11-03
6
790
죽으나사나
2025-11-01
0
156
죽으나사나
2025-10-24
0
189
죽으나사나
2025-10-21
1
178
죽으나사나
2025-10-21
1
198
죽으나사나
2025-09-10
4
557
죽으나사나
2025-09-08
1
382
죽으나사나
2025-08-28
1
457
죽으나사나
2025-08-27
1
372
모이자 모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