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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파, "연변축구가 해체 되였을 때 머리속이 하얘졌다"

합마하물결 | 2019.12.13 19:18:02 댓글: 2 조회: 1496 추천: 1
https://life.moyiza.kr/sports/4032407

일전 2019시즌 슈퍼리그가 막을 내렸다.

올 시즌 초에 연변부덕팀에서 광주부력팀으로 이적한 조선족 선수 김파는 리그 후반기부터 스토이코비치 감독의 신임을 받고 선발출전 선수로 활약하며 과감한 돌파, 현란한 드리블 등 기술로 팀의 공격라인에 날카로움을 한층 더해주었다.

최근 부력대학성훈련기지에서 훈련중인 김파 선수가 "축구보"와의 인터뷰에서 부력과의 인연, 연변축구, 그리고 박태하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Q: 광주부력에 가맹한지 한개 시즌이 지났는데 소감은 어떠한가?

김파: 어릴쩍부터 연변에서 생활하였기에 처음 광주에 왔을 때는 모든 것이 낯설었다. 년초부터 광주에서 축구를 하면서 날씨와 음식 등 여러 방면에서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부력팀 동료들이 많은 관심을 주면서 친하게 지냈는데 차츰씩 팀에 융합되고 있는것 같다.

Q: 연변은 기본적으로 한식이 위주인데 이 곳의 음식에 익숙해 졌는가?

김파: 처음 이곳에 왔을 때에는 한식을 먹고 싶어서 여기저기 찾아다녔다. 나중에 동료들이 광주에는 습기가 많기에 국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고 알려주었는데 지금은 평소에 차를 많이 마시며 컨디션을 조절한다. 그래도 가끔씩은 한식을 먹고 싶을 때가 있어 광주 원경로까지 먹으러 간다. 그 곳의 음식이 연변의 음식과 비슷하긴 하지만 우리의 훈련기지와 너무 멀다.

Q: 동북팀에서 광주부력팀에 가맹하기까지, 어떤 변화가 있는가?

김파: 광주부력은 정규적이고 프로적인 구단이다. 다른 구단에 비해 후근보장과 외적인 환경이 훨씬 더 좋다. 이런 것이 우리 운동원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된다. 부력에는 또 여러 나라에서 온 국가팀 선수들이 있는데 그들과 함께 축구를 하면 배울점이 매우 많다.

Q: 올해 초 부력에 가맹하였을 때 어떤 기대를 하였는가?

김파: 줄곧 연변에서 축구를 해왔기에 처음 외지에서 축구를 하는데 대하여 기대가 매우 컷다. 바깥 세상도 구경하면서 자신의 시야를 넓히고 싶었지만 정작 나와보니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한걸음 한걸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다 보니 1년이 지났는데 힘든점도 있었지만 좋은 점도 많았다.

Q: 김파 선수를 조선족 선수들 중에서 표준어를 잘 쓰는 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는가?

김파: 어릴 때부터 청소년 국가팀에서 훈련을 펼쳤고 뽀르뚜갈에 류학도 다녀왔었는데 주위의 동료들이 기본상 다 한족이였다. 때문에 그들과 많은 교류를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련습된 것 같다.

Q: 올 시즌 슈퍼리그 후반기부터 차츰씩 출전기회를 획득하였는데 현재 실력발휘는 몇퍼센트 정도 했다고 생각되는가?

김파: 부력팀에 가맹한 후 상반기에는 적응과 융합에 많은 힘을 기울였다. 올해 리그를 통틀어 60% 정도의 실력만 발휘된 것 같다. 광주는 습도가 높고 무덥기 때문에 나의 특점을 발휘하기에는 상대적으로 어려웠다. 그러나 시즌 후반기에 날씨가 쌀쌀해 지면서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되였는데 노력과 감독의 인정에 힘입어 여러껨의 경기를 뛸 수 있었다. 슈퍼리그는 갑급리그 보다 신체대항이 강하고 더 격렬한데 앞으로 연변팀에 있을 때의 좋은 컨디션을 발휘하고 싶다.

Q: 많은 노력을 거친후 김파 선수의 컨디션이 날로 좋아지고 있는데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는 무엇인가?

김파: 내 목표는 부력에서 자리를 잡은 후 연변축구의 분투정신을 부력에 가져오는 것이고 팀이 더 좋은 성적을 거두기 희망한다.

Q: 연변팀에서 활약할 때 광주부력팀에 꼴을 넣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꼴로 인해 부력에서 김파 선수를 기억한 것이 아닌가?

김파: 그 꼴은 나의 슈퍼리그 데뷔꼴이 였다. 나는 부력과 인연이 있다고 생각한다. 슈퍼리그에 제일 처음 출전한 경기가 부력팀과의 대결이였고 데뷔꼴도 부력팀과의 경기에서 터뜨렸다. 2016년 연변팀이 리그 잔류를 위해 힘쓸 때 컨디션이 좋아서 몇번의 중요한 경기에서 모두 꼴을 넣었었다.

Q: 중국축구는 원래 "북연변, 남매현"으로 불리웠는데 그런 도시에서 축구를 하면서 어떤 뜻깊은 일이 있었는가?

김파: 연변의 축구는 력사가 길고 많은 선배들이 연변축구에 공들였다. 비록 지금은 자금투자과 환경면에서 남방의 팀과 비교가 않되지만 조선족 축구인들은 분투정신과 축구를 열애하는 마음으로 많은 어려움을 극복해 나간다. 연변축구가 좋은 시절도 있었지만 곤난도 많았다.

Q: 연변팀이 김파 선수의 프로축구 출발점인데 축구학업은 어떻게 시작하였는가?

김파: 연변축구에는 훌륭한 선배들이 많이 있는데 례를 들면 고종훈, 김광주, 리홍군 등 각 시대별 국가팀 선수들이 연변축구의 대표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나로 놓고 말하면 어릴때부터 이런 농후한 축구 분위기에 빠져서 친구들과 축구를 하게 되였고 후에 축구 감독의 눈에 들어 체육학교에서 전문적으로 축구를 배우게 되였다.

Q: 김파 선수의 스피드가 매우 빠른데 100메터 속도를 테스트 해본적이 있는가?

김파: 100메터는 테스트 해본적이 없다. 그러나 30-40메터 내에서의 폭발력과 가동속도가 비교적 빠른 편이다.

Q: 가동속도는 축구경기에서 매우 중요한데 김파 선수의 이 특점은 타고난 것인가 아니면 훈련으로 다져진 것인가?

김파: 어릴쩍에 스피드 스케이팅을 했기 때문에 허벅지 힘이 다른 선수들 보다 좀 발달되였다. 그리고 스피드 스케이팅은 다리 움직임의 빈도가 요구되는데 이것이 축구를 하는데 도움이 되는것 같다.

Q: 연변부덕팀이 해체되면서 연변을 떠났는데 연변부덕이 배양해낸 선수로서 당시 심정이 어땠는가?

김파: 연변팀에서 제일 좋았던 경험과 힘들었던 순간을 모두 겪었다. 제일 어려운시기에 팀이 강등되였지만 우리는 기죽지 않았다. 그후 운이 좋아서 갑급리그에 복귀하였고 슈퍼리그에도 진출하였지만 최종 팀이 해체되였다. 연변은 저를 키워준 곳이고 제 축구인생에 큰 도움을 주었던 곳이다.

Q: 연변축구가 빚을 감당하지 못하고 축구계에서 퇴출했을 때 김파 선수의 심정은 어땠는가?

김파: 당시 이 소식을 접했을 때 머리가 하얘졌고 매우 괴로웠다. 얼마전 구단이 정식으로 파산된 소식을 들었을 때 마음이 아팠다. 필경 친정팀이지 않는가.

Q: 연변축구가 어떻게 해야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김파: 우선 연변축구가 이 현실을 직면해야 한다고 본다. 지난 몇년간 연변팀 뿐만 아니라 료녕팀, 장춘아태팀도 경제적 곤난을 겪었던 적이 있다. 연변축구의 곤난도 림시적일 것이고 하루빨리 프로축구 무대에 복귀하길 바란다.

연변 사람들에게 축구는 없어서는 안될 존재이다. 비록 연길의 인구가 40만 명에 불과하지만 매개 홈경기마다 3만여 명이 경기장을 찾는다. 이는 10명중에 1명이 축구를 관람하러 경기장에 온다는 뜻인데 축구에 대한 열정이 어떤지 알수 있다. 때문에 연변축구가 빨리 돌아와서 자신만의 프로무대가 있었으면 좋겠다. 연변에서 축구를 하는 아이들이 많은데 그들도 자신을 보여줄 수 있는 프로무대가 필요하다. 현재 나의 동료들이 연변북국팀에서 축구를 하고 있는데 이 또한 연변축구의 맥을 잇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Q: 프로생애에서 어떤 감독이 당신의 성장에 관건적인 역할을 하였는가?

김파: 한국적 감독 박태하인데 그가 나의 잠재력을 발굴해 주었다. 그리고 내가 제일 어려울 때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는데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많이 격려해 주고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는지 설명해 주었다. 사실 지금까지의 프로생애에서 많은 감독들이 나에게 도움을 주었지만 프로팀에 와서 박태하 감독을 알게 된 것은 행운이였다. 박태하 감독은 나의 프로생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에게 감사하다.

Q: 박태하 감독이 김파 선수에게 준 인상은 어떠한가?

김파: 박태하 감독은 훈련이나 경기, 일상생활에서도 매우 엄격하기에 인상이 아주 깊다. 또한 나에게 제일 큰 도움을 준 감독이기도 한데 나의 백락(伯乐)이라고 할 수 있다.

Q: 박태하 감독이 연변팀에 있을 때 어떤 요구가 제일 인상깊은가?

김파: 절대 지각해서는 안되고 반드시 훈련장에 일찍 도착해야 한다. 현재 부력팀에서도 나는 1시간 전에 훈련장에 도착하는데 이런 생활방식이 이젠 익숙해졌다.

Q: 연변팀에 있을 때 공격수로서 항상 관건적인 꼴을 넣었는데 가장 잊지 못할 꼴은 어느것인가?

김파: 어릴쩍에는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당시 팀에 공격수가 부족하여 테스트와 선발을 거쳐 뽑히게 되였고 몇차례의 경기를 치르다 보니 득점수가 꽤 많았다. 그리하여 감독은 나를 계속 공격수로 기용하였고 현재까지도 공격라인에서 활약한다.

가장 잊지 못할 꼴은 2017년 장춘아태와의 경기이다. 우리팀이 상대팀을 이겨본적이 많지 않기에 압력이 컸다. 그러나 꼴을 넣은 후 압력이 방출 되였는데 관건적인 순간에 팀을 도울 수 있게 되여 매우 기쁘다.

Q: 뽀르뚜갈에서 류학할 당시 어떤것을 배웠는가?

김파: 어릴 적부터 호날두와 메시의 경기에 관심이 많았고 프리메라리가에도 관심이 많았다. 허나 막상 외국에서 축구를 하다보니 국내와의 차이점이 크다는 것을 느꼈다. 축구 분위기와 군중기초를 놓고 말해도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뽀르뚜갈에는 골목마다 아이들이 축구를 하는것을 볼 수 있고 그들의 기술 또한 매우 좋다. 이는 뽀르뚜갈 사람들이 축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우리 중국처럼 "북연변, 남매현" 이런것이 아니라 온 국민이 축구를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Q: 현재 부력팀의 공격라인에 자하비, 사바, 초지, 엽초귀 등 훌륭한 선수들이 많지만 그중에서 자하비 선수에 대한 인상은 어떠한가?

김파: 자하비 선수는 훈련이든 경기든 매우 프로적이다. 훈련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100프로 몰두하고 승리에 대한 갈망이 매우 강하다. 올 시즌 리그에서 넣은 화려한 꼴도 평소 훈련에서 여러번 넣었다. 이런 훌륭한 동료가 있어 행운스럽고 그 한테서 많이 배우라고 제 자신에게 주문하고 있다. 나와 엽초귀 선수가 동기인데 평소에도 자주 교류하고 함께 진보하기를 희망한다.

Q: 현재 많은 연변적 선수들이 슈퍼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데 례를 들면 지충국, 김경도, 박성 등 선수들과 교류가 많은가? 그들이 자신의 경험을 김파 선수와 나누고 있는가?

김파: 그들이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내가 연변을 떠나 먼곳에서 축구를 하는것이 처음이기에 어떻게 환경에 적응하고 동료들과 어떻게 지내며 팀에 어떻게 융합되는지 등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홈장 경기거나 원정경기가 끝난후에 함께 밥을 먹으면서 이런 경험들을 많이 알려준다. 일전, 국가팀이 광주에서 훈련을 펼칠 때 지충국을 보러갔었는데 그때도 함께 밥을 먹으면서 경험담을 들었다.

Q: 연변 선수들은 풍격이 완강하고 분투정신이 강한 인상을 주고 있는데 조선족 선수들 중에 한명으로서 이러한 특점들이 어떻게 형성되였다고 생각하는가?

김파: 제 생각에는 연변 조선족 문화와 일정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례를 들면 연변지역은 날씨가 비교적 추우므로 반드시 적극적으로 뛰여다니고 과감하게 싸워야만 출로가 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정신이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 같다. 경기는 질 수 있지만 정신은 절대로 질 수 없기 때문이다. 2017년 당시 우리팀이 강팀들과 경기를 치를 때 지더라도 대등한 경기력을 보여줬다. 이는 단체정신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Q: 광주에 대한 인상은 어떠한가?

김파: 광주가 매우 좋은 것 같다. 습도가 잘 적응되지 않는 것 외에는 다 괜찮다. 음식도 차츰씩 적응되고 있다.


출처: 축구보

편역: 리성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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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뷰티 (♡.3.♡.241) - 2020/01/09 12:20:16

잘보구 감니다

합마하물결 (♡.206.♡.92) - 2020/01/09 13:42:48

반갑 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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