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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안 유람기

금빛봄 | 2020.08.25 19:18:02 댓글: 0 조회: 167 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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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안유람기 김광춘 8월 4일,비행기에 앉아 서안으로 가던 도중 굽이굽이 에돌아 흐르는 어머니 강, 황하의 모습을 굽어보며 솟구치는 감탄을 금할수 없었다. 서안시는 대륙의 내륙 황하유역 중부의 관중분지에 자리하고 있고,면적은 9,983km이다.서안의 지세는 남이 높고 북이 낮으며 진령 산맥이 서안 남부를 가로 지르고 산백의 높이는 해발 2,000 – 2,800m로서 북방과 남방의 중요한 분계선 역할을 한다. 서안의 기후는 온난대 기후로서 따뜻한 봄인 3 - 5월이나 천고마비의 계절인 9 – 11월 중 서안을 여행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이다. 섬서성의 성소재지인 서안은 중국 서부지역의 주요 공업발전 기지이기도 하다.인구는 7백만이 넘고 주요산업으로 기계,전자,전기공학,항공우주,경공업산업이 발달했으며 500여 개소의 과학기술연구기구,40여 개소의 대학이 설립되어 있다.서안은 한마디로 발달된 경제,아름다운 환경,문명화된 단정하고 깨끗한 국제화 도시이다. 서안은 중국 고대사회의 “천연역사박물관”이라 할 수 있고 중국의 유명한 관광도시로서 세계에서 가장 완벽하게 보존되고 규모가 가장 큰 고대성벽,총면적108km의 주(周).진(秦).한(漢).당(唐)의 유적,웅장하고 거대한 세계8대 기적중의 하나인 병마용,남으로 여산을 끼고 북으로는 위수가 흐르는 유람의 명승지인 화청지,전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비석 박물관인 비림 박물관,서안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건축물인 대안탑 등이 있다.서안은 각종 문물 12만여 개를 수장하고 있으며 많은 문물은 세계에서 보기드문 진귀한 보물들이다. 서안에 이른 나는 여행사의 유람은 래일부터이기에 먼저 혼자서 대명궁국가유적공원을 찾았다. 대명궁국가유적공원은 세계문화유산이고 전국 중점문물 저호 단위이다.이 공원은 당제국의 가장 웅위롭고 장려한 궁전건축물로서 면적이 3.2평방키로메터로 건축당시 세계적으로 면적이 제일 큰 궁전건축물이였으며 당조의 국가상징으로 되였다. 여기에서 제일 인상 깊은 곳은 바로 대명궁국가유적 박물관이였다. 대명궁유적박물관은 반지하 건축물로서 면적이 만여평방메타에 달하며 독특한 형식으로 고대 문물 정품과 신형의 전시수단을 완전히 결부시켜 세인에게 대명궁의 웅대한 규모와 정교한 궁전건축 예술을 남김 없이 보여준다. 이날 저녁에 나는 전국적으로 이름난 서안의 밤경치를 보려고 서안 불야성을 찾았다. 이튿날 나는 여행사의 일정에 따라 먼저 화산유람을 하게 되였다. 화산은 높지 않지만 '귀가 닿는 절벽'에 나 있는 좁은 길을 보면 도저히 믿기지 않을 것이다. 이 산은 2,200미터지만 가파른 지세 때문에 '중국의 5 악'의 하나로 꼽는다. 중국 중부에 있는 섬서 성의 수도인 서안에서 동쪽으로 12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화산 산은 평원에서 똑바로 수직으로 솟아 구름 속으로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산 아래에서 정상까지 가파른 절벽과 산줄기를 따라 아주 오래전부터 만들어져 있던 12킬로미터의 좁은 길을 따라 걸으면 심장이 멎을 것 같지만 주변 풍경을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화산'이라는 이름은 정상의 다섯 봉우리에서 유래했는데, 이는 '다섯 꽃송이'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곳에는 길을 따라 절과 도교의 사원들이 세워져 있으며 폐허가 된 궁궐도 있다. 화산의 다양한 볼거리에는 귀가 닿는 절벽, 천 길 낭떠러지, 하늘 사다리, 해와 달 절벽, 해 봉우리, 도끼가 깨지는 바위, 운명의 절벽 등이 있다. 좁고 가파른 길을 올라갈 생각에 무릎이 후들거린다면 정상까지 설치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갈 수도 있다. 서안에 와서 눈에 크게 띄우는것은 길다랗게 늘어진 높은 담장, 말하자면 서안성벽이였다. 서안성벽은 섬서성 서안시에 있는 방어용 성벽으로 보존 상태가 우수하다. 명나라 때인 1378년에 수,당 시대의 황성(皇城)을 토대로 시안성벽을 세웠다. 이후 여러 차례 중수 공사를 거쳐 성벽을 강화하였는데, 청나라 때는 12차례의 보수작업을 실행하였다. 성벽 둘레는 13.74㎞, 성내 면적은 12㎢, 높이는 12m, 폭은 15m이며, 동서로 길쭉한 모양이다. 주요 성문으로는 동문 장락문(长乐门), 남문 영녕문(永宁门), 서문 안정문(安定门), 북문 안원문(安远门)이 있다. 성벽 위에는 호성하(护城河), 적교(吊桥), 갑루(闸楼), 전루(箭楼), 성루(城楼), 각루(角楼), 적루(敌楼), 여인장(女儿墙), 타구(垛口)등 군사 방어 시설들이 있다.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이며 2018년에 중국 국가 5A급 관광지로 선정되었다. 밤잠이 적은 나는 일찌감치 호텔을 나왔다. 우선 가장 가까운 시안 성벽을 올라 가보기로 했다. 남문 쪽에서 본 남대가, 멀리 종루가 보인다. 남대가에서 남문성벽에 가는 방법은 지하도로 가는 방법도 있지만, 지상으로도 갈 수 있는 횡단보도가 있다. 남문 바로 앞 매표소에서 성벽에 올라가는 표를 살 수 있는데 코로나 비상시기여서 성벽에 올라가는것이 일체 정지되여 있었다.아쉬운대로 별수 없었다. 여태껏 보던 성벽과는 스케일 자체가 다르다. 만리장성에서도 이런 위압감은 못느껴 본 듯하다. 오랫동안 드넓은 중국 땅의 수도역할을 하면서 성을 지켜내던 위용이 그대로 살아있다. 어떤 적군도 이런 성벽 앞에 서면 사기가 뚝 떨어졌겠다. 서안 성벽은 다른 명칭으로 명대성벽이라고 불리는데, 중국의 성벽 중에서 가장 보존 상태가 좋은 고성으로, 1370년부터 1378년에 걸쳐 축조되었다고 한다. 700년 가까운 세월에 흐트러짐 없는 모습을 보니 초장부터 조금 질린다는게 내 솔직한 마음이다. 거창하고 방대한 서안 성벽을 바라보노라니 세월의 흐름속에 력사는 그대로 남아있지만 사람들은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서안에 대한 나의 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다.사람들이 묻는것을 성의껏 잘 대답해 주지 않는다거나 더구나 문패가 씌여있지 않아(날마다 만 5천보이상 걸어다니면서 문패가 씌여있는곳은 서너개 밖에 보지 못했음) 택시운전수까지 지정된 곳을 찾는데 무리를 준다거나 로숙자들이 거리 이곳저곳에서 누워 자는것이든가 유람 뻐스가 시간약속을 지키지 않는것이라든가 하는것들은 정말 리해가 잘 안 되였다. 이튿날 우리는 서안 화청궁을 찾아 서안병마용에 대한 리해를 깊이 하기 위해 대형이동오페라《부활된 군단》을 관람하였다. 이 오페라는 2000년전 진시황의 군대가 처음으로 중국대지를 통일한 사실을 보여준것인데 관중들과 무대가 수시로 이동함으로서 새로운 감을 주었다. 이어서 이번 코스의 중심이라고 할수 있는 진시황병마용갱에 대한 관람이 진행되였다. 진시황릉의 동쪽에서 1.5km 떨어지고 있는 병마용갱은 이미 발견된 많은 종장갱중에서 규모가 제일 크고 사람을 가장 감동시킬수 있는 것이다.대군이 집결하고 명령만 기다리고있는 거대한 장면을 형상적으로 부각해 옛날 진나라의 백만대군의 축소판이라 할수 있다.이는 진나라가 <갑옷을 입고있는 병사가 백여만,전차가 천여대,말이 만여마리가 있다>는 바와 같은 강대한 군사력을 활발하고 진실하게 재현하였을 뿐만 아니라 병마용의 편성과 조합이 일체화된 군사진형도와 같고 중국 고대 병종의 배치 및 병기 장비,전략과 전술 사상을 잘 리해하고 검토하기 위해 믿을만한 객관적인 자료를 제공해 주었다고 할수 있다. 1호갱 세개의 병마용갱정에서 규모가 가장 큰 1호갱은 길이가 230메터,넓이가 62메터,총면적아 14260평방메터 되는데 동서방향의 장방형을 이루고있다.1호갱에 배치된 약 6천여점의 도용과 도마 및 40여점의 전차가 공동적으로 장방형의 진형을 이루고있다. 1호갱의 맨 앞에서 세열로 늘어서 있는 보병용은 한열에 68점 있고 총 204점으로 되여있다.이 보병용들은 갑옷도 입지 않고 투구도 쓰지 않고 머리를 땋고 다리를 묶어 매고 손에는 커다란 활을 들고있눈데 일혈횡대로 군 진형의 선봉이 되고있다. 이 선봉대 뒤에 흙으로 만들어진 격리벽이 1호갱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11개의 통로로 나뉘여 그중에 전차와 보병이 사이사이 배치되고있는 38열의 종대가 있다. 이 대부분 도용들은 몸에 갑옷을 입고 다리를 묶어매고 손에 창과 칼,미늘창 등 긴 무기 및 소량의 화살을 들고 기갑무사로 전차와 같아 유기적으로 군 진형의 주력을 이루고있는데 그야말로 기세가 웅장하고 무너뜨릴수 없는 힘을 보여주고닜다. 1호갱의 남북 양쪽에서 각각 한 열씩 북과 남으로 머주 향하고있는 무사용들은 군 진형의 좌우 양익으로 측면 경계를 맡고있다.군 진형의 맨 뒤에서 서쪽,다시말해서 대군 주력과 서로 반대 방향으로 향하고있는 무사용 한열은 군진형의 후위대로 후방에서의 적의 공격을 방어할수 있고 대군 주력이 공격할 때의 뒤걱정을 해제하고 적을 이기는데 필요한 후위보장을 제공할수도 있다. 이 모든것들은 끝이 예리해야 하고 주력이 다 해야 한다는 그 옛날의 군사원칙에 잘 부합된다고 할수 있다.이로서 행동이 질서 있고 진퇴가 의거 있고 조직이 면밀하고 견고한 군 진형을 이루게 하였다. 2호갱 2호갱은 1호갱의 북동쪽에서 약 20메터가량 떨어지고있는데 평면이 곡자형을 이루고 동서의 길이 124메터,남북의 넓이 98메터, 면적이 약 6000평방메터 된 ㅇ다.현재까지 고고발굴이 아직 진행중에 있는데 탐사와 발굴의 자료에 의해 추산해보면 2호갱 속에 각종 무사용이 90여점 있고 전차용 말이 350마리,기병용 말이 116마리,나무 전차가 90승이 있을것이다. 이 진형은 4개의 작은 진형으로 구성되여 있다. 첫째는 곡자형의 맨 앞에 있는데 궁로수 330여명으로 구성된 궁로수 진영이다.그 중에서 160명의 무릎을 꿇고앉아 활을 쏘는 도용들은 몸에 두꺼운 갑옷을 입고 8열 종대로 진형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고 다른 170명의 서서 활을 쏘는 도용들은 전복을 입고 진형의 바깥 둘레에 자리잡고있다.그래서 임전할 때 두가지 궁노수들은 교대로 활을 쏘아서 비가 내리는것처럼 적을 가까이 다가설수 없도록 한다. 둘째는 곡자형 진형의 오른쪽에 위치하고 전차마다 무사 세명과 어수 한명,그리고 갑사 두명이 있는데 전차 앞뒤에 소속 보병이 없는 순수한 전차진이다. 셋째는 곡자형 진형의 중심에 위치하고 전차와 보병, 기병으로 구성된 연합진이다.이 연합진은 전차 19대를 중심으로 하고 보병 260여명을 보조로 하고 기병 8명이 먄 뒤에서 보호하고 활성화된 진형이다. 마지막은 곡자형 진형의 왼쪽에 위치하고있는 기병진이다.기병 108명을 중심으로 하고 전차 여섯대를 보조로 하고있는 이 진형은 싸움터에서 기습임무를 맡고 기습적으로 적을 공격할수 있는 특별한 역할을 할수 있다. 이런 군 진형을 갖추고있는 부대는 전투에 돌입하면 꼭 변화가 아주 빠른 병세에 따라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할수 있다. 3호갱 3호갱은 1호갱의 북서쪽에서 25메터,2호갱 동쪽에서 120메터 떨어져있는데평면 형상이 한자 凹와 비슷하고 면적이 500평방메터가 조금 안 된다.출토된것은 도용 66점과 사마고차 한대를 포함하고 있다. 그 구조가 좀 특이하다고 할수 있는데 동쪽 입구에 비탈통로가 있어 들어가면 전차가 재치되고있는 차마방이 있고 차마방 좌우 량쪽에 각각 난북방향으로 된 회랑이 있고 회랑의 끝은 각각 곁채와 연결되려 맀다. 이런 것들은 3호갱이 보통 진형이 아니고 옛날의 군막,말하자면 오늘의 사령부라는 곳인데 1호갱과 2호갱보다 더 중요하다고 할수 있다. 1호갱과 2호갱,3호갱의 서로 다른 내포와 내재적인 관계를 종합적으로 보면 병마용갱의 전체적인 설계구상이 어떻게 진나라 부대의 진실한 풍격과 면모를 나타내는가를 이해할수 있다.그 중에는경비가 삼엄한 전술 전략을 세운 사령 중추도 있고 차마가 대단하고 이길수 없는 강력한 대군도 있다.이 대단한 장면과 기세를 볼때 우리는 저도모르게 예날 진시황이 위세를 천하에 떨치고 중국통일의 위업을 실현했던것을 연상하지 않을수 없고 또 진시황의 백만대군을 떠올리지 않을수 없다. 오늘 진시황 병마용를 마주보고 살아있는것처럼 생동한 조각과 웅장한 군 진형에 감동될 때마다 인간 문화재에 책임감이 매우 강한 고고학자와 문물 복원자들에게 깊은 간사를 드리게 되고 진부한것을 신비하게 만들어내는 그들의 능력과 조예에 진심으로 탄복하지 않을수 없다. 1호갱과 2호갱,3호갱을 포함하는 진시황병마용갱은 총면적이 2만여 평방메터에 달하는데 1974년 발견이후 고고발굴과 정리 복원이 계속되고있지만 오늘날까지 산분지일의 부문만 완공되였다. 근년에 들어 진시황병마용박물관은 발굴과 복원 동시에 참관을 개방하는 방식에 따라 병마용갱으로 하여금 내용이 풍부한 중국고대 군사박물관일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력사 문물 학자와 고고학자들이 많이 관심하고있는 고고 발굴 현장과 문물 복원 장소로 되고 있다. 저녁에 우리는 대형오페라 《낙타방울의 전기》(驼铃传奇)를 관람하였다.천오백명의 관람석이 수시로 돌고 커다란 무대가 움직이는 대형오페라는 관람권이 498원(나는 장애인증을 소유하고 있어 우대관람권 298원에 볼수 있었음)이나 되였지만 조금도 비싸다는 감이 들지 않을 정도로 참으로 거창하고 훌륭한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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