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전집4-태항산록-전란속의 녀인들

더좋은래일 | 2024.05.03 11:25:02 댓글: 0 조회: 91 추천: 0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65943


소설


전란속의 녀인들


하북성 찬황(赞皇)경내의 야초만(野草湾은 태항산록에서 불과 10여리 떨어진 장거리인데 일본군은 거기다 태항산항일근거지를 겨냥하는 전초기지-거점을 구축해놓고 시시로 <<토벌대>>를 출동하여 근방의 촌락들을 교란하군 하였다. 팔로군에는 이때 항공기는 물론이요 례사 산포, 야포도 없는터이라 적의 가시철조망으로 둘린 포대를 공격하여 뿌리를 뽑아버리자면 엄청난 희생이 날것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래서 조선의용군의 참모장 진일평과 새로 편성된 제1지대를 령솔하는 김영신은 태항산중의 장거리 정욕(丁峪)에서 우군부대의 지휘원들과 함께 작전회의를 가지고 구체적인 안을 짰다. 그 결과를 참모장은 제1지대 전원을 마을밖 와지에 모아놓고 둔덕우에는 보초를 세워놓고 조선말로 설명하였다. 이러한 조치를 취하는것은 작전계획이 혹시 밖으로 새여나가지나 않을가 념려해서였다. 적군의 점령구에서 가까운 장거리에 사는 주민들을 다 믿을수는 없었기때무이다. 적군과 내통하는 간세배는 백미에 섞인 뉘 같은 존재였다.

<<...그러니까 우리는 전원 일률적으루 일본군복, 일본무기루 몸차림을 해야겠습니다. 우군의 군수부문에서 로획품 일본장비를 우리의 요구대루 공급해주겠다는 확약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우린 잠시 일본황군이 좀 돼보잔 말이지요...>>

진참모장이 이렇게 말하자 대원들속에서는 유쾌한 웃음통이 터졌다. 둔덕우의 보초는 그 웃는 까닭을 몰라서 잠시 멍하니 와지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구 행동은 물론... 야습입니다. 야초만거점과 찬황본대 사이의 군용전화선을 절단하는것으루 작전이 시작되는데... 전화선이 끊기면 량쪽이 다... 야초만과 찬황이 다... 이변이 생긴걸 알게 될게 아닙니까. 그렇게 되면 야초만의 적들은 곧 전투태세를 갖출게구 또 찬황본대에선 즉시 증원대를 파견할게 아닙니까. 적의 증원병력은 우군의 한개 대대가 중도에서 저지하기루 이미 약정이 됐습니다. 그러니까 우린 전력을 다 야초만을 습격하는데다만 기울이면 됩니다. 말하자면 도급을 맡은 셈이지요...>>

대원들속에서 또 유쾌한 웃음보가 터졌다.

<<...그러니까 우린 찬황본대에서 달려온 증원대루 가장하구... 정정당당하게 펼쳐놓고 놈들의 포대루 들어가잔 말이지요...>>

이 말에 대원들은 술렁거리며 서로 돌아보며 혹 팔도 뽐내고 혹 어깨도 으쓱으쓱하였다. 구체적인 포치는 김지대장이 하는데 그도 역시 유쾌한 기분이 옮아서

<<증원대장 일본군중위의 역은...>>

하고 대원들을 둘러보다가 리지강이에게 눈을 멈추고

<<리지강동무가 맡두룩...>>

말하고 다시 례사 말소리로

<<장교차림을 얼없이 잘하십시오. 밤중이라구 대수 차렸다간 들통이 나기 쉽습니다. 놈들두 바지저고리가 아니니까 반드시 탐조등으루 비춰보구 확인을 하구서야 받아들일거니까.>>

하고 덧붙였다.

며칠이 지나서다. 전투모, 철갑모를 쓰고 일본군복을 입고 그리고 38식을 들고 메고 한 제1지대 대원들은 서로 마주보고 앙천대소하느라고 볼일을 못 보았다. 군조차림을 한 장난군 엽홍겅이 차렷자세를 하고 리지강이에게

<<나까무라(中村)쥬우이도노(중위님)!>>

하고 경례를 붙이니 중위로 가장한 리지강이가

<<아 다나까(田中)군소오까(중사냐).>>

하고 거만스레 고개를 한번 끄덕여서 또다시 유쾌한 웃음판이 벌어졌다.

<<우리 가장무도회나 한번 해볼가?>>

<<녀자두 없이?...>>

<<총각, 홀애비 무도회!>>

<<아니, 쪽발이무도회...>>

<<와하하! ...>>

<<자, 춰라!>>

<<쿵차차 쿵차차...>>

<<하하하하! ...>>

<<쿵차차 쿵차차...>>

다들 신명이 난것이다. 혁명적락관주의는 언제나 조선의용군과 더불어 있었기때문이다.

조선의용군에서는 조직부 성원이건 선전부 성원이건 할것없이 다 전투에는 일반대원들과 같이 참가하기로 되여있었다. 뿐만아니라 돌격으로 넘어갈 때는 반드시 지도원이 전투서렬앞에 나서서

<<공산당원은 두발자국 앞으루!>>

명령하여 공산당원들을 앞장세우는것이 관례로 되여있었다. 공산당원들은 그것을 단연한 일로 알고있었다. 솔선하여 적진에 뛰여들지 않는 공상당원은 두었다 무엇할것인가! 그런것은 공산당원의 자격이 없는것으로 그들은 알고있었다.

한개 지대의 조선의용군과 한개 대대의 팔로군의 협동작전이 시작되였다. 쪼각달이 헌 이불솜 같은 쪼각더미구름(片积云)속을 들어갔다나왔다하며 숨박곡질을 하는 초가을밤, 찌륵찌륵 풀벌레 우는 소리가 마냥 구슬펐다. 팔로군부대는 찬황에서 륙칠마장 떨어진 다리목좌우에 매복하고 어김없이 쏟아져나올 증원대를 요격하려고 만단의 준비를 갖추었다. 조선의용군은 야초만에서 네댓마장 떨어진 곳에서 전화선을 절단해놓고 한시간 가량 기다렸다가 찬황본대에서 증원을 온것처럼 속여서 포대의 문을 열게 하자는 꾀였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생겼다. 전화선을 끊어놓고 때를 기다리는중에 희미한 달빛아래 큰길을 따라 한마리의 개가 야초만쪽에서 쏜쌀로 달려오는것이 눈에 띄운것이다.

<<저기 군용견 아니야?>>

<<옳다.>>

<<쏴라!>>

칠팔명 사람이 그 군용견을 향하여 란사를 하였으나 개는 맞지 않고 납작 엎드려서 살살 기다가 별안간 다시 뛰기 시작하는데 이번에는 큰길을 벗어나서 들판으로 내달았다. 눈 깜박할 사이에 군용견은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고거 참 훈련이 제대루 됐는걸.>>

<<놓쳐버렸으니... 이걸 어쩌지?>>

<<찬황본부루 쪽지를 전하러 간거 틀림없는데.>>

여럿이 지껄이는중에 동쪽-찬황쪽에서 불시에 총성이 크게 일어났다. 보나마나 우군의 대대가 찬황에서 쏟아져나오는 적의 증원병을 족쳐부시는 소리일것이다. 콩볶듯하던 총성이 뜨음해지기를 기다려서 리지강이를 선두를 한 의용군의 대오는 야초만포대를 향하여 급행군하는 시늉을 하였다. 불안에 싸여서 증원대가 와주기만을 고대하던 포대의 보초장이 큰길에서 차츰 가까와오는-일부러 들으라고 내는-뭇사람의 발자국소리를 듣고 탐조등을 켜서 비추어보며

<<다레까(누구냐)?>>

하고 날카롭게 수하를 하였다. 탐조등의 광망에 눈이 부신 리지강이가 손채양으로 눈을 가리며 일본장교의 위엄스러운 목소리를 꾸며서

<<이상 없느냐?>>

하고 빈틈없는 일본말로 꾸짖듯이 되물으니 포대우의 보초장은 반가운 목소리로

<<녜 이상 없습니다. 상관님!>>

여공불급하게 대답하고 잇달아서

<<잠간만 좀 기다려주십시오. 곧 소대장님께 보고하겠습니다.>>

하고 분주히 서두르는 눈치였다. 탐조등불빛에 제 눈으로 확인한 일본군복, 일본총칼과 제 귀로 분명히 들은 장교의 거만스럽고 위엄스러운 일본말에 보초장은 이것저것 더 생각해볼 필요를 느끼지 않았던것이다. 고마운 증원대로 믿어 의심하지 않았던것이다.

지체없이 소대장의 지휘로 포대의 육중한 문이 안으로 열리며 곧 병사들이 나와서 가시철조망의 통로를 가로막았던 장애물을 들어옮겼다. 증원대가 들어올 길을 틔워놓는것이다.

<<이거 밤중에 수고가 많으십니다.>>

말하며 반가이 앞으로 나와서 맞아들이려는 소대장을 리지강이는 제잡담하고 권총으로 쏘아눕혔다. 그것이 돌연적습격의 신호로 되였다.

불의의 습격을 받고 경황망조하면서도 완강히 저항하는 적병과의 육박전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지휘관이 선등으로 거꾸러진 까닭에 그들은 대가리 없는 룡이 되여버렸던것이다.

접선이 끝난 뒤에 보니 생포된것은 중상자 하나와 경상자 둘뿐이고 그 나머지는 다 장렬한 개죽음들을 하였었다. 주관적으로는 장렬하였지만 객관적으로는 너절하였으니까.

가짜일본군-의용군대원들은 얼굴에 피가 튀고 군복이 피에 젖고 또 날창에 피칠들을 하여 서로 보기에도 무시무시하였다. 리지강이는 죽어넘어진 적병들의 소지품을 뒤지다가 한놈의 잡낭속에서 수진본 책 한권을 얻어보았다. 무조건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 태항산에서는 책이 여간만 귀하지가 않았기때문이다.

적군의 증원대를 물리쳐서 작전임무를 완수한 우군부대도 다 큰 손실 입지 않고 무사히 돌아왔다. 이렇게 깔끔한 승리는 극히 드문 일이였다. 실전에서도 주도세밀하게 짠 작전계획도 뒤죽박죽이 되는 경우가 왕왕 있었기때문이다. 두 분대가 함께 달려들어 포대를 철저히 파괴한 연후에 불까지 콱 질렀다. 주운룡이는 두어 사람을 데리고 거리안을 온데 돌아다니며 대적군삐라를 붙이느라고 분주하였다. 철퇴할 때 팔로군의 한개 소대는 포대에서 초간히 떨어진 부속건물에서 위안부 너덧을 붙들어가지고 갔다. 그것들도 침략자로 간주하는 모양이였다. 로획한 무기, 탄약 및 기타 장비가 몇무더기 잘되는것을 적아 량군의 부상병들과 함께-일본군이 발급한 이른바 량민증을 앞가슴에 단 야초만의 백성들을 운력을 시켜가지고-들것, 멜대 따위로 다 실어날랐다.

밝은 날 코가 비뚤어지게 실컷 자고 눈들을 떠보니 다저녁때다. 리지강이가 생각이 나서 호주머니를 뒤져보니 로획품 수진본이 나오는데 놀랍게도 표지에 찍힌것은 일본글이 아니고 한글이다. 김동인의 단편집이였다. 표지를 뒤져보니 안표지에 네모난 도장 하나가 찍혀있는데 한문자로 넉자 김전학성(金田学成). 리지강이는 기가 막혀서 머리가 떨떨해졌다.

(그럼 그게 조선사람이였나? -학도병이였구나!)

(아무리 모르구 한 일이라두... 이역만리에서... 동포를 죽이다니!)

리지강이는 야릇한 비애에 잠겼다.

이튿날 그 단편집중에서 <<발가락이 닮았다>>라는 매우 기발한 제목의 단편 하나를 우선 읽어보았다. 리지강이는 읽으면서도 또 읽고나서도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성병으로 생식능력을 상실한 한 남자가 행실이 부정한 그 안해의 낳아놓은 아들을 자기 아이로 믿으려고 애를 쓰는데 닮은데가 하나도 없어서 무진 고민을 한 끝에 마침내 아이의 발가락이 저를 닮았다고 내 아들이 틀림없다고 좋아하는 내용이였다. 리지강이는 망국의 비운을 아랑곳없이 너절한 소설을 써서 민중의 의지를 마비시키는 부르죠아문인들의 소행이 가증스러웠다.

리지강이가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고있을즈음 불시에 밖에서 왁자지껄하는 소리가 났다. 무슨 일인가 하고 일어나 나가보니 우군부대에서 야초만습격때 붙들어온 위안부 넷을 조선의용군에 떠맡기러 왔었다. 몸에 야한 색갈의 화복-일본옷을 입고 머리는 쑥바구니가 된 녀자 넷이 어줍은 몸가짐으로 마당가에 서있었다. 일본녀자인줄 알고 붙들어갔는데 알고보니 조선녀자들이란것이다. 그러니 너희가 맡으라는것이였다. 뜻밖의 선물에 김지대장이 어이가 없어서 한동안 쓴웃음만 웃고 섰다가 할수없이 인수하는데 마지못해 인수증까지 써주었다. 대방이 그것을 요구해서였다.

<<싱거운 자식들, 부질없이 저런건 무엇하러 붙들어오누!>>

<<글쎄나 말이지. 저희가 붙들어왔으면... 구워먹든 삶아먹든... 저희가 할게지...>>

<<저 주체궂은것들을 데려다간 어떡하지? ...>>

<<낸들 아나? 대장이 어떻게 처리할테지.>>

<<야야야, 인물이 어쩌면... 저 지경들 못 났니?>>

<<메주야 호박이야... 절구통이야?>>

리지강이가 다시보니 아닌게아니라 개개 다 추녀였다. 추녀도 이만저만한 추녀가 아니였다. 박색중의 상박색들이였다. 옆에 섰던 주운룡이가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다. 리지강이와 마주보고 쓴웃음을 웃었다.

<<적의 포대를 치러 나왔다가... 이런 덤을 받을줄을 누가 알았어?>>

<<세상이란 다,>>

하고 리지강이는 생활의 철리를 깨닫기라도 한것 같은 대꾸를 하였다.

<<맺구끊은듯이 가쯘하겐 되잖는 모양이지?>>

주체궂은 네 녀자는 곧 동욕(桐峪)지휘부로 호송되였다.

제1지대는 달포가량 찬황일경을 전전하다가 길가 풀덤불에 무서리가 하얗게 내려앉을무렵 일단 동욕지휘부에 귀환하였다. 동욕에 당도해보니 석고산(石鼓山)에 나가있던 독립지대도 사나흘 먼저 들어와있었다. 그동안에 네 녀자는 의용군의 녀대원들인 리란영과 김상엽이 주로 맡아 교양하였었다. 네 녀자의 이름은 무슨 옥이 무슨 옥이 ... 거의다 비슷비슷하여 까딱하면 섞갈렸다. 그 이름이 서로 비슷비슷한 녀자들에 대하여 리란영과 김상엽은-리지강이와 주운룡이에게-이렇게 이야기하였다.

<<아주 불쌍한 녀자들이예요. 두메산골에서 자라서 소학교두 못 다녀봤다지 뭐예요. 인물이 미우니까 후방에선 팔리지 않구... 그래 전방으루 전방으루 밀려나온거래요. 전방에선 기갈이 들어서 인물을 가리구 사리구 할 계제들이 못된다나요. 그 무지스러운 녀석들을 하루에 이삼십명씩 삼사십명씩 치르구나면 허리를 통 쓸수가 없다잖아요. 밥 먹을 틈두 없어서 누운채 주먹밥으루 끼니를 에우는 때가 종종 있다지 뭐예요. 이게 그래 인간생지옥이 아니구 뭐겠어요. 지내보니까 어찌나들 순박한지... 곧 산속에 자란 도라지 더덕이예요. 그렇게들 꾸밈없구 천연스럽단 말이예요...>>

리란영의 이야기에 김상엽이 말을 달았다.

<<그러구 일들을 어찌나 잘하는지... 산에 나무를 가면... 어느 상머슴군이 따라오겠어요. 우리따위는 애당초에 두름으루 엮어두 안된다니까요.>>

<<일본강도놈들에게 무참히 짓밟힌 희생물이 아니겠어요? 그런 녀자들을 인물이 좀 밉다구 해서... 천하구 배운게 없다구 해서... 우리가 없신여겨서 차별대우를 한다면... 그건 수치스러운 일이예요. 안 그렇게들 생각하세요?>>

<<나두 절대루 그 녀자들 편이예요. 모두들 성병이 있어서 하루 걸러루 병원에를 다녀야 하니... 얼마나 가엾어요... 정말이지.>>

리지강이와 주운룡이는 인간수업에서 한 과를 더 배운것 같아서 숙연들 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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