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전집4-태항산록-(수필)주덕해의 프로필

더좋은래일 | 2024.05.03 16:54:03 댓글: 0 조회: 81 추천: 0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66020


수필


주덕해의 프로필


<<주덕해는 최채, 배극 등과 더불어 연변의 뻬데피구락부-반동문인 김학철의 집-에 모여서 술잔치를 100번 이상 벌리고 반당, 반사회주의의 음모를 꾸몄다.>>

이것은 그 악몽 같던 시절에 연길시내 거리거리에 나붙었던 삐라-활자화된 비방이다. 대단히 낯이 익은 <<주덕해죄상 120조목>>중의 한조목이다.

주, 최, 배는 우리 집에 모여서 장기를 둔 일은 있어도 술잔치를 벌린 일은 없다. 더구나 100번 이상이나!

하긴 설 같은 때는 포도주 한잔씩쯤 나눈 일은 있다. 그들은 다 술에 대해여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였다. 나는 더군다나 술이라면 질색하는 사람이다. 연변의학원 로박사가 별세하였을 때 주덕해동지는 나를 보러 왔다가

<<...해부를 해보니까 글쎄 혈관이 모두 쇠줄처럼 빳빳하더라지 뭐야. 그 량반은 순전히 술에 녹았어.>>

하고 못마땅스레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었다. 이러한 주덕해더러 술잔치를 100번 이상이나 벌렸다니... 인사불성도 류만부동이지!

담배는-나만 빼놓고-세 사람은 다 몹시 피웠다. 셋이 다 골 담배군이였다.

주덕해동지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나는 감옥안에서 신문을 통하여 알았을뿐이였다. 그때로부터 10년이 지난 오늘 난생처음 그에 대하여 붓을 드는데 그동안에 뻬데피구락부 성원이라던 배극동지 또한 불귀의 객이 되였다. 덧없는 인생이랄밖에 없다.

쉬는 날 우리 집에 모여서 장기를 두게 되면 언제나 장기가 1대3으로 어울리는데 1은 주덕해이고 3은 최, 배, 김이였다. <<삼국연의>>에서 류비, 관우, 장비가 3대1로 려포하고 맞붙는 형국이였다. 주덕해의 장기수가 세 사람에 비하여 월등 세기때무이였다. 최채와 나는 멱이나 겨우 알 정도이고 배극은 제법 괜찮게 두는축이였다. 하지만 수가 아무리 세다 하더라도 두눈이 여섯눈을 당해내기는 어려운 일이였다. 최채와 내가 랑옆에 붙어앉아서 배극이를 자꾸 뚱겨주면 주덕해는 다급해나서 두손을 홰홰 내흔들어 장기판을 가리며

<<말할 내기 없어, 말할 내기 없어!>>

하고 우리더러 훈수를 들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다가도 상대편의 말을 따먹을 때는 신이 나서

<<식사!>>

<<에라 또 하나 식사!>>

하고 창(唱)을 지르듯이 하였다. <<식사>>는 원래 내가 발명한 말인데 다들 감염이 되여서 장기판에만 둘러앉으면 네 사람이 그 별로 신통치도 않은 <<식사>>소리를 노상 입에 달고있었다.

주덕해동지는 제1서기에 주장까지 겸하여 때로는 번거로운 일도 적잖은 모양이였다. 그래서 직업작가인 나를 부러워하는투로

<<학철이가 제일 편해! 아무 근심걱정 없지... 투황디(土皇帝)야.>>

하고 최채를 돌아보며 웃는 일까지 있었다.

주덕해동지가 쏘련에서 신강을 거쳐 연안으로 나올 때 동행한 이들중에 간고한 항일전쟁환경에서 승리에 대한 신심을 잃고 적에게 투황한 변절자 하나가 생겼었다. 태항산에서의 일이다. 변절자들이 의례 그러하듯이 그자도 일본군의 앞잡이가 되여가지고 항일부대에다 자꾸 투항을 권유하는 편지를 특무들을 통해 들여 보냈다. 그 사연인즉 대개 아래와 같은것이였다.

<<...그 험한 산골에서 초근목피로 겨우겨우 연명하며 무엇을 더 바라느냐? 어서어서 용단을 내려서 살기 좋은데로 나오너라. 나오기만 하면 광명한 전도가 기다리고있다. 운운...>>

그런데 얄궂게도 얼마 아니하여 일본군이 무조건항복을 하는 바람에 그자는 끈 떨어진 뒤웅박꼴이 되였다. 죽지가 부러진 그자를 태항산에서 나오다가 장가구에서 만났을 때 주덕해동지는 승리의 기쁨에 도취되여

<<요놈을 붙잡기만 하면 곧 각을 뜯어 죽이겠다!>>

이렇게 이를 갈며 다진 맹세를 다 잊어버리고 그자를 그냥 용서해주었다. 후에 그자가 연변으로 찾아와서 살길을 좀 열어달라고 빌붙는 바람에 주덕해는 할수없이 그를 대학에 교원으로 배치 해주었었다.

<<그갓 녀석 죽거나 살거나 내버려두잖구!>>

하고 내가 못마땅해하였더니

<<잘못을 뉘우치구 돌아오는자에겐 살길을 열어주는게 우리 공산주의자들의 인도주의야. 당의 정책에두 부합되구. 그자가 대학에서 선생노릇할 자격은 충분하거든. 인재지. 그런 멀쩡한 녀석이 그따위짓을 했으니 더 기가 막히지. 저두 후회막급일게야.>>

이렇게 말하고난 주덕해동지는 한마디를 덧붙이는것이였다.

<<정치를 하자면 아량으로 너그럽게 받아들일줄두 알아야 해. 그저 두들겨패는것만이 장땡은 아니거든.>>

그가 이런 관후한 성품의 소유자가 아니였던들 연변인민들속에서 그와 같이 높은 신망을 이룩하지는 못하였을것이다. 타고난 천성인지 수양의 힘인지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는 장자의 풍도가 있는 정치가였다.

내가 농촌에 생활체험을 나갔을 때의 일이다. 어느 농민의 집에서 무슨 제사를 지내는데 온 마을 사람들이 다 일은 안하고 그집에 모여서 북적북적하는중에 당지부서기란 사람까지 한몫하는것을 보고 나는 속으로 대단히 못마땅하게 여겼다.

(들일이 바쁜 때 저게 뭐람!)

이튿날 나는 전위해 돌아와서 주덕해동지에게 이 사실을 반영하였다.

<<일들은 안하구... 대낮에... 그게 뭡니까? 더구나 군중의 선봉에 서야 할 당지부서기란게!>>

나의 말을 듣고난 주덕해동지는 빙그레 웃고 타이르듯 말하는것이였다.

<<지금 농민들은 다 배에 기름기가 부족하단 말이요. 무어 먹는게 있어야지! 그러니 잔치나 제사 같은 때 겸사겸사 한번 모여서들 먹는거지... 먹이진 않구 자꾸 일만 하랄수는 없거든.>>

나도 머리가 아주 깡통은 아니니까 그 말의 뜻을 근량대로 다 받아들였다. 그래 인제 잘 알았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끄덕하였더니 그는 진일보 나를 일깨워주는것이였다.

<<지금 농촌에서 사사로이 술을 빚어먹는건 법으루 금하지만... 그것두 너무 융통성없이 금할수는 없단 말이요. 농촌 늙은이들이 막걸리동이나 담가놓구 컬컬할 때 한 복주깨 떠내다가 부저가락으루 화로불을 헤집구 데워 먹는걸 어떻게 말리우? 일반백성은... 배를 곯리면... 애국두 없거든. 그러니 그들의 어려운 형편을 잘 사펴보구나서 글을 쓰두룩.>>

당시 이렇게 나를 타일러주던 주덕해의 형상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 내 마음눈앞에서 커져만 간다. 그는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서도 좀처럼 드놀지 않는 무게있는 볼쉐비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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