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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소리

동녘해 | 2012.01.25 13:52:33 댓글: 9 조회: 844 추천: 7
분류단편 https://life.moyiza.kr/mywriting/1580398

단편소설

 

 

기적소리

 

 

뿡—

기적소리가 은은히 들려왔다. 정우는 약속이라도 한듯이 기적소리와 함께 잰걸음으로 걸상을 찾아 앉았다. 출입구가 보이는 대합실마당앞에 놓인 길다란 걸상이였다. 걸상에 앉으면 출입구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똑똑히 볼수 있었다.

혹시 오늘은 오지 않았을가

정우는 걸상끝에 쪼크리고 앉아서 출입구를 나오는 려행용신을 빼놓지 않고 세였다. 정우의 머리속에서 빈이는 분명 하얀 려행용신을 신고있었던것이다. 어느 순간 머리속의 하얀 려행용신이 뚜벅뚜벅 자기앞으로 걸어와 하니 멈추어 서는 환영을 정우는 보고있었던것이다.

빈이, 놈이 온다해도 과연 나를 알아볼수 있을가?

정우는 그렇게 삼검불같이 엉켜 붙는 사색의 실날을 정리하면서 눈앞으로 지나가는 려행용신을 세고 세였다. 정우가 백스무두컬레째의 려행용신을 세였을 아—아악!” 하는 처절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정우는 소리에 와뜰 놀라면서 걸상에서 벌떡 뛰여일어나 소리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죽여라, 죽여. 버러지 같은 놈을!”

걸상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약국앞에서 거쿨지게 생긴 사나이가 소년을 마구 걷어차면서 고래고래 소리지르고있었다. 사나이의 발밑에서 소년은 튀겨지는 새우처럼 잔뜩 몸을 옹송그리고있었다. 구경군들이 하나둘 그쪽으로 몰려들었다. 소년은 소리도 지르지 않고 죽은듯이 자기의 몸을 사나이의 발길에 맡겨두고있었다.

저러다가 일을 치는게 아닌가?

정우는 벌떡 뛰여일어나 쏜살같이 사람들속을 헤집고 들어가 몸으로 소년을 막았다.

일이요? 이렇게 사람을 때리는거요?”

좀도적이요. 버러지 같은 . 오늘 죽여버리지 않는것을 다행으로 알어. !”

사나이는 연신 침을 뱉으면서 두손을 툭툭 털고는 가쁜숨을 몰아쉬였다.

그래도 이렇게 사람을 때리는 법이 어디 있소?”

그때 누군가 소년을 파출소에 넘기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사나이가 웃으며 너희들이 알기나 하느냐는듯 입을 열었다.

이까짓 좀도적을 끌고 파출소에 가라구? ! 파출소에 가서 자료를 작성하고 손도장을 찍고 처리결과를 기다리는게 쉬운줄 아시우? 차라리 늘씬하게 때려주는게 통쾌하지.”

사나이는 다시한번 소년에게 하고 침을 뱉고는 사람들을 비집고 나가 약국으로 들어갔다.

쯧쯧쯧… 송아지 뿔부터 난다더니, 아직은 애숭이군만 그래.”

저런 놈들은 애초에 뿌리를 뽑아버려야 한다니까.”

어시들은 어쩌구 살길래 애들을 저렇게 마구 나돌게 하는지 원…

구경군들이 한마디 마디 궁시렁 거리다가 흩어져버렸다. 약국앞에는 두손을 사타구니에 찌르고 몸을 잔뜩 옹송그린채 바들바들 떠는 소년과 눈앞의 장면에 어찌할바를 몰라 서성이는 정우만 남게 되였다.

후—

정우는 한숨을 내쉬며 소년의 주위를 부산하게 돌아치다가 걸음을 멈추고 몸을 굽혀 두손으로 연신 소년을 흔들었다.

얘야, 일어나, 일어나보라구.”

소년은 누운채로 살풋이 두눈을 뜨고 머리를 약간 들어 주위를 살피더니 옆에 사람들이 없는것을 확인하고는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바람이 불면 날려버릴것 같은 강마른 몸매의 소년이였다. 육안으로도 확연히 보아낼수 있을만치 와들와들 떨고있 소년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있었다. 끊임 없는 떨림과 함께 소년의 코끝으로 마알간 코물이 길게 흘러내려 한들한들 춤을 추고있었다.

몹시 다치지 않았니? 몸을 움직여봐라.”

정우의 말에 소년은 기계적으로 두팔과 다리를 움직여보였다. 아픔으로 얼굴은 잔뜩 찌프라져있었지만 그래도 팔과 다리를 움직이는데는 지장이 없는것 같았다. 정우는 그제야 약간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낮은 목소리로 소년에게 말했다.

무서워 말어. 끝났다. 가자, 저기 앉아서 한숨 돌려라.”

소년도 그제야 자기의 팔다리가 그대로 성해 있는것에 한시름을 놓았던지 코끝에서 춤을 추는 마알간 코물을 주먹으로 훔치고는 후들후들 걸상쪽으로 걸음을 옮기는것이였다. 정우에게 팔이 이끌려 걸상머리에 도착한 소년은 감히 걸상에 안지를 못하고 흘끔흐름 정우를 훔쳐보았다. 무시로 허공을 도는 눈길은 정우에게 앉아도 되냐고 묻는것 같았다. 정우는 하얗게 질린 소년의 얼굴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눈길에 겁을 먹었는지 소년은 여전히 걸상머리에 붙어선채로 고개를 숙이고있었다. 정우가 앉으라고 말하지 않으면 소년은 언제까지라도 그렇게 서고만 있을것 같았다.

보이지 않던 마알간 코물이 다시 코끝에 나와 한들한들 그네를 타기 시작했다. 소년의 눈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움푹 꺼져 들어간 눈확밑에서 무시로 슴뻑이는 두눈동자는 종잡을수 없는 불안으로 짙게 타고있었다.

앉아.”

정우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소년은 먹은 담처럼 걸상에 무너져 내렸다.

자식.”

정우는 말하면서 오른손으로 소년의 어깨를 쳤다. 그바람에 소년은 용수철마냥 튕겨 일어났다.

앉으라니까.”

정우는 오른손에 약간 힘을 주면서 소년의 어깨를 내리 눌렀다. 소년은 주먹으로 코물을 문지르며 정우를 바라보다가 맥없이 걸상에 주저 앉았다.

훔쳤다구?”

정우가 담담한 목소리로 짤막하게 물었다. 소년은 정우의 얼굴을 올려다보면서 퉁퉁 부어오르기 시작하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는가싶더니 드디여 낮은 목소리로 외마디 대답을 했다.

.”

훔쳤는데.”

정우의 목소리가 높지 않았지만 소년은 와뜰 놀라면서 튕겨 일어났다. 지나친 공포로부터 오는 본능적인 반사반응인것 같았다.

그저 물어보는거다. 놀랄것 없다.”

.”

소년은 신음소리처럼 외마디 대답을 하고는 머리를 떨어뜨렸다. 정우는 그러는 소년을 놀래우고싶지 않았던지 소년의 옆으로 한발 다가가 걸상에 엉뎅이를 붙이고 앉았다. 역전마당의 혼잡한 사람들의 흐름속에서도 쌔액—쌕 하는 소년의 숨소리가 정우의 고막을 간지르고있었다. 평소 같으면 신경이 쓰일것 없는 소리였지만 순간만은 소리가 예리한 칼날이 되여 정우의 가슴을 허비고있었다.

흐흑흑!

갑자기 소년이 어깨를 들먹이면서 울음을 삼켰다.

빈이야, 너도 지금 이렇게 울고있는게 아니냐?

정우는 가슴속밑자락으로부터 진한 아픔이 머리를 쳐드는것을 느꼈다. 울고싶었다. 코끝이 먹먹해 나고 목구멍이 막혀왔다. 정우는 괜히 혀끝으로 입안 곳곳을 누비며 쏟아져내리는 눈물을 달래려고 했지만 마음과는 달리 눈물은 두볼을 타고 뚤렁뚤렁 굴러떨어졌다. 그러자 괜히 코방울이 벌렁벌렁 해나더니 끙— 끄끙 하고 신음소리마저 새여나왔다. 소리에 놀란 소년이 정우에게 눈길을 돌렸다. 소년의 눈동자가 크게 번져가고있었다. 소년은 떨리는 어깨를 움찔하더니 오른손으로 왼쪽 손등을 몇번 뿌비다가 여전히 먹은 목소리로 떠듬거렸다.

아저씨, 우…우…울어요?”

그바람에 정우는 와뜰 놀라면서 주먹으로 눈확을 눌렀다. 못된 짓을 하다가 어른들에게 들킨 악동처럼 당황한 기색으로 소년을 흘끔 훔쳐본 정우는 짐짓 으흠— 하고 건가래를 떼고는 애써 목소리를 진정하면서 입을 열었다.

자식, 울기는. 아까 맞았다고 했지?”

소년은 숙였던 머리를 천천히 들어 정우를 한번 훔쳐보고는 다시 고개를 숙이면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약방에서 야…약을 훔쳤어요.”

저런, 하필이면 약이냐? 돈도 아니구.”

정우는 모르것다는듯 소년에게 한마디 쏘아붙였다. 좀도적이 돈도 아니고 약을 훔쳤다는 사실이 어딘가 석연치가 않게 느껴졌던것이다. 소년은 두려움이 가득 눈길로 정우를 흘끔흘끔 훔쳐보더니 기여들어가는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할머니가 쓰러졌어요.”

정우는 자기가 혹시 소년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는가싶어 되물었다.

방금 뭐라구 했니? 할머니가…

. 며칠이나 혈압이 내려가지 않아요..”

소년이 정우에게 머리를 끄덕여보였다. 사실일가? 정우는 스스로가 오리무중에 빠져들어가는듯싶었다. 소년의 말이 사실이라면 소년은 고혈압으로 앓고있는 할머니를 위해 약을 훔쳤다는것으로 되는것이다. 어쩌면… 어쩌면 이런 일이 있을수 있단 말인가? 정우는 마치도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듯한 느낌이였다. 그럴수야, 그럴수 없을거야. 정우가 소리쳤다.

자식, 거짓말까지. 선수구나.”

? 아…아무 서…선수도 아닌…데요.”

소년이 얼떠름한 기색으로 더듬거렸다. 정우가 피식 웃으면서 쏘아붙였다.

자식 뻔뻔하기까지. 좀도적… 선수라구.”

정말이예요, 아저씨 처음이예요.. 할머니가 너무 힘들어하길래…

소년이 말끝을 맺지 못하고 흐느꼈다.

그만해라, 자식아. 정말 그런 상황이라면 어른들과 말해서 돈을 가지고 약국에 가서 약을 사야지.”

정우는 당연한것이 아니냐는듯 소년을 바라보면서 핀잔조로 말했다.

그러게요. 휴—

소년이 길게 한숨을 그었다. 모습은 나이에 맞지 않게 곰삭아있었다. 곰삭은 모습만치나 정우를 바라보는 소년의 눈길도 이름할수 없이 막연하게 안겨들었다. 정우는 갈피를 잡을수 없어 절레절레 머리를 저었다. 그리고 오른주먹을 왼손바닥에 치면서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게요라니 그런 말이 어디 있어?”

그저 이렇게 밖에 살아요.”

!”

아저씨, 고맙습니다. 내가 만약 오늘 맞아죽었더라면 할머니를 어떻게 했을가요?”

소년이 다시 쿨쩍거리기 시작했다. 순간 정우는 가슴속으로부터 소년에 대한 련민이 피여오르며 가슴이 터지는것 같았다.

뭐라고 해야 할가? 정우는 최소한 소년이 거짓말은 하는것 같지 않다고 판단했다. 소년의 모습으로부터 진정 소년의 아픔이 물씬 풍겨나오고있었던것이다.

어떻게 해야 아파하는 소년의 마음을 보듬어줄수 있을가?

정우는 오른팔을 들어 소년의 어깨를 감아 안아주면서 말했다.

좋아질거다. 좋아지구 말구. 이렇게 여기에 있잖니?”

꿈만 같아요. 다시 할머니를 볼수 있게 돼서요..”

? 자꾸 그런 생각을 하니?”

아까는 그저 이대로 맞아 죽는구나 생각했어요. 아저씨가 아니였으면 난…

세상이 그렇게 험악한게 아니다. 그런데 집에 어른들은 없니?”

없어요.”

소년이 초점 없는 눈길로 허공을 바라보며 머리를 저었다.

아버지는? 엄마는?”

정우는 자기의 물음이 너무도 부질없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저도 모르게 그렇게 어이없는 물음을 던져버렸다. 소년은 다시한번 후—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몰라요.”라고 한마디 하고는 또다시 무겁게 머리를 흔들었다. 놀랍게도 소년의 얼굴은 차츰 담담해지고있었다. 방금전에 할머니를 어떻게 해요?” 하고 근심 비끼던 우수에 담긴 모습도 찾아볼수 없었다. 정수는 만화경 같은 소년의 얼굴을 뚫어져라 지켜보다가 끝내 묻고말았다.

부모들은 어떻게 된거냐?”

정말 몰라요. 제가 3 , 어머니가 아버지와 가짜 리혼을 하고 한국으로 먼저 갔대요. 1년간 전화가 오더니 그후로는 전화조차 없었대요.”

진짜 리혼이 된거로군, 그런 일이 많거든.”

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돈이 없어 안간까지 잃었다며 할머니와 주정을 부렸대요. 내가 7살쯤에 아버지는 로씨야로 간다고 떠났대요.. 보름쯤 지나 로씨야에 도착했다는 전화가 한번 오고는 소식이 끊어졌대요.”

저런, 후에는?”

벌써 10년이 지났어요. 기억에는 빚군들이 달려들어 우리 기물을 마스던 장면밖에 없어요. 할머니는 땅을 치며 울고 나는 무서워서 웃방에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고… 한번은 어떤 아저씨의 발길에 채여 쓰러졌는데 너무도 아파서 이틀이나 걷지를 못했어요.”

후에는 어떻게 살았니?”

후에는 빚군들도 우리 집에 이상 가져갈것도 마슬것도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더는 그렇게 행패를 부리지 않았어요. 한참 있다가 한번씩 와서 아들이 소식이 없슴둥?’ 하고 물을뿐이였어요. 나와 할머니는 경제래원이 끊기게 되였어요. 할머니는 시장으로 다니면서 남들이 버린 남새랑 주어다가 겨우 입에 풀칠이나 했어요. 우리 사정이 너무 딱해서 그랬던지 가두에서 나와 할머니에게 최저생활비라는것을 신청해서 지금은 그것으로 겨우 살아가요. 학교에서도 나에게서는 일절 돈을 거두지 않아요.”

정우는 다시한번 가슴이 막히는 감을 느끼면서 심장이 터지는듯 아파났다.

혼미해서 쓰러져있는 할머니를 차마 그저 두고볼수 없었어요. 하지만 집에는 돈이 일전도 없어요. 달초에 생활비로 나온 돈으로 같은 먹고 살것들을 사고나면 얼마 남지 않거든요. 이번 들어 할머니가 혈압이 자꾸 올라서 혈압약을 한번 사고 전기세랑 물고나니 정말 동전 한잎 남지 않았어요. 그래서 약을 훔치기로 마음 먹은거에요. 전에 내가 할머니의 혈압약을 사러 다녀서 어떤 약인지 알아요. 병에 42원씩 하는 약이에요. 차마 동네에 있는 약국에서는 손을 쓰지 못하고 집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이곳 역전으로 온거예요. 여기는 지나다니는 사람이 많잖아요. 그래서 기회를 보다가 주인이 점심을 먹는 새에 손을 썼는데 그만 재수 없게 후—

소년은 또다시 꺽꺽 울음을 삼키더니 와— 하고 소리를 터치고말았다. 정우는 일시 소년에게 무엇이라고 말해주었으면 좋을지 막막하기만 했다. 아무런 방비도 없이 세상앞에 떠밀려온 소년을 마주 보면서 정우는 과연 어떻게 해야 소년에게 위로가 될지를 알수 없었다. 소년의 말이 사실이라면 소년을 도와줄수 있는 구세주는 과연 어디에 있는것일가? 구세주가 내밀어 구해주어야 미아는 과연 소년 사람뿐일가?

얘야, 괜찮아. 훔치려고 했을뿐이지 진짜 훔친것은 아니지 않니. 혈압약 내가 사주마. 그것을 가지고 가서 할머니에게 대접하구 이후부터는 훔칠 생각을 말고 착하게 살아라. 그러느라면 생활이 좋아질거다.”

그렇게 될수 있을가요? 아저씨?”

될수 있구 말구.”

아저씨는 좋은분이세요.. 아저씨 같은 아버지를 애들은 얼마나 행복할가요?"

?”

정우는 소년의 말에 깜짝 놀라며 !” 하고 입을 벌리고말았다.

아저씨 같은 아버지를 애들은 얼마나 행복할가요?

소년의 목소리가 또랑또랑 귀가에 울리는듯싶었다.

정녕 너는 아들이여서 행복했었니? 빈아!

정우는 속으로 같은 이름을 애절하게 불러보았다.

 

 

그랬다.

정우도 정녕 아들 빈이가 진정으로 행복을 느끼게 하고싶었다. 행복을 느끼게 하기 위하여 어김없이 달마다 생활비를 푼푼하게 보내주었고 빈이가 요구하는것이면 무엇이나 만족을 주려고 노력했었다. 그만치 빈이의 욕심은 빠진 항아리마냥 넓어만 같고 성격 또한 송아지마냥 거칠어만 졌다.

안되겠네, 얘가 점점 거칠어진다니까. 늙은 힘으로는 아무래도 얘를 잡쥐지 못하겠으니 애비가 들어와 애를 사람으로 만드세.”

빈이가 열두살을 넘기면서부터 어머니는 전화에서 그렇게 빈이를 두고 신심이 없어하셨다. 하지만 리자돈으로 7만원이라는 거액을 내고 한국에 나와 불법체류자로 숨어 사는 몸이기에 훌쩍 귀국을 하여 빈이를 사람으로 만들수도 없는 이였다. 정우는 일본에 있는 안해에게 빈이의 사정을 말하면서 그래도 엄마가 귀국하여 애를 돌보는것이 낫지 않느냐고 물은적이 있었다. 그러자 빈이의 엄마라는 정우의 안해라는 녀인은 세상에 되지도 않을 소리를 한다면서 전화 저쪽에서 펄쩍 뛰며 소리소리 질러댔다.

미쳤어요? 그것도 말이라고 해요? 모두들 일본에 나오지를 못해 헤매고있는데 나온지 얼마나 됐다고 내가 벌써 들어가요? 십년은 벌다 들어가야 빈이를 류학 보내고 장가 보내고  사주고 할게 아니예요? 그래도 일본에서 버는게 훨씬 쉬우니까 당신이 한국인지 하내빈지 집어치우고 귀국하세요.”

정우는 련주포를 쏘는듯한 안해의 말을 들으면서 안해가 일본에서 날로 거칠어져간다고 생각했다. 하긴 일이 힘들고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그럴수도 있겠지. 정우는 그렇게 안해를 리해하려고 애썼다. 하다면 빈이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우가 빈이를 두고 한국에 나올 빈이는 아홉살, 소학교 1학년 후학기를 보내고있었다. 이듬해, 안해도 어떻게 일본사증을 손에 쥐고 비행기에 올랐던것이다.

그새 정우는 빈이가 전화에서 돈을 달라는 말만 꺼내면 두말없이 돈을 보내주었다. 안해도 빈이에게 돈만은 그립지 않게 쓰게 하련다면서 빈이의 전화를 받기 무섭게 뛰여가 빈이의 카드로 돈을 입금해주었다고 했다.

무서운줄 모른다니그랴. 주먹치만한 애가 100원을 들고나가 한시간이면 쓰고 들어온다니까. 애를 뭐로 만들려구 그라이? 세상 무서운줄 알아야제.”

어머니가 전화 저쪽에서 안타깝게 넉두리를 때마다 정우는 가슴 한끝이 은근히 켕겨나면서도 짐짓 아무것도 아니라는듯이 어머니를 위안해드렸다.

시름 놓으십소, 어머니. 지금은 옛날하구 다릅니다. 집집마다 어시들이 외국 나와 돈을 버는게 누구네 앤들 그렇게 돈을 쓰지 않겠습니까. 모두들 흔자만자 쓰는 판에 우리 빈이만 축에 빠져보십소. 애가 얼마나 죽겠습니까?”

몰라이, 늙은이는 모른다니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죽은 늙은이가 알게 무언고. 아무튼 나를 믿지 말구 돌아와 새끼를 돌보라니께.”

어머니는 번마다 한참씩이나 넉두리를 하다가는 그렇게 기분 나쁘게 전화를 끊어버렸다. 어머니와 그런 전화를 하고 후이면 정우는 장밤 내내 잠을 이루지 못했다.

사실 리자돈을 가지고 한국으로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정우의 꿈이라면 나올 리자돈을 갚고 돈을 좀더 벌어그럴듯한 아빠트나 한채 장만하는것이였다. 하지만 살아보니 그게 아니였다. 이듬해에 안해가 일본으로 간다는 소식을 듣게 되자 정우는 아빠트 한채가 아니라 안해의 마음을 돌려 귀국시킬수 있을 만한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였던것이다. 정우가 한달에 3천원씩 보내주는 생활비에 매워 조용히 집에서 빈이를 키우고 시어머니를 모실 안해가 아니라는것을 정우는 너무나도 알고있었던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정우도 차츰 한국을 알게 되였고 한국에서의 생활에 습관되였던것이다.

어머니가 계시고 아들 빈이가 있는 고향, 잠을 이루지 못할 때면 밤하늘에 둥실 둥근달을 보면서 달도 고향을 비추고있겠지 하고 스스로도 유치하다고 느껴지는 생각을 하면서 눈굽을 촉촉히 적셨지만 일에 거칠어진 주먹으로 눈굽을 꾹꾹 누루고나면 또다시 고향으로 돌아갈수 없다는 결론을 얻게 되였던것이다. 하기야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뾰족한 수가 나지는것도 아니였다. 한국에서 그새 벌어 모은 얼마 안되는 돈을 달랑 들고 고향에 돌아간들 무슨 뽀족한 수가 있단 말인가? 안정된 직업이라도 있으면 풍족하지는 못해도 근근히 생활을 영위해가면서 직장인으로서의 긍지감이라도 느껴보겠지만 고향땅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정수는 다시 백수로 돌아가야 하는 신세이기에 참으로 선뜻 밟을수도 없는 고향땅이였던것이다.

그래도 여기서 버는게 훨씬 능률적이지.

빈이야, 아빠를 욕해다구. 이제 너를 류학 보낼수 있고 너를 못지 않게 장가를 들게 할수 있고 너에게 엘레베이트가 달린 아빠트를 사줄수 있을 만치 돈을 후에 고향 가서 그새 주지 못한 사랑까지 듬뿍 보상해줄게.

정우는 그렇게 자신을 달래면서 장장 12년을 한국에서 보냈던것이다.

떠나올 1학년 후학기를 다니던 아들 빈이가 대학교에 들어가야 나이가 되였다. 비록 점수가 너무 낮아서 정규적인 대학에는 입학할수 없었지만 딱히 시험점수를 따지지 않고 받아들이는 여러가지 명목의 민영대학들도 많은 지라 정우는 1 학비로 2 4천원을 내고 해변도시의 어느 대학 디자인전업에 빈이를 입학시켰던것이다. 대학에 입한한후, 빈이의 소비는 점점 심해갔다. 전업학습에 필요한 재료값이요. 생활비요 하는 명목으로 한달에 5, 6천원은 보통이였고 많을 때면 만원을 치달아오를 때도 있었다.

정우는 빈이의 생활소비를 두고 안해에게 물은적이 있었다. 빈이는 여러가지 명목으로 안해에게서도 그렇게 돈을 얻어쓰고있었던것이다. 더는 근심만 일이 아니라고 생각되였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들놈이 비정상적인 생활에 물젖어 간다는 생각이 막연하게 머리속을 치고들어왔던것이다.

빈이야, 소비가 너무 심한것이 아니냐? 통제 할줄 알아야지. 너희들은 아직 돈을 벌지 못하는 소비자들이라는것을 알아야 한다.”

처음으로 말을 꺼내던 빈이는 전화 저쪽에서 억울하다고 소리소리 질러댔다.

그래요. 내가 소비자라는것을 알아요. 하지만 이게 누구때문인데요. 인젠 이렇게 살아 습관해놔서 돈이 없으면 살게예요.”

쓰지 말라는게 아니구, 적당히 통제를 하라는게 아니냐?”

통제를 해요? 내가 쓰는게 아까우세요? 나를 위해 돈을 번다면서요? 지금 쓰나 후에 쓰나 내가 돈을 버는게 아니예요?”

한다는 소리가… 내가 여기서 버는게 쉬운줄 아니?”

정우는 전화라는것도 잊고 격하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온몸에 전률을 느끼게 하는 랭소가 들렸다.

ㅎㅎㅎ… 그래요. 알겠어요. 인젠 돈을 대주기도 아깝다 이거죠. 그런데 어쩌죠? 돈이 없으면 죽을거예요. 알아요? 여기서 돈을 쓰지 않으면 친구들속에 끼이지도 못해요. 아버지가 붙여주는 눈꼽만한 돈도 여기서 돈인줄 아세요? 50만원짜리 자가용을 굴리는 애들이 많아요. 그런애들에 비하면 나는 거지나 다름없어요.”

너…너, 점점 한다는 소리가.”

정우는 빈이의 당돌한 말에 너무도 분해 송수화기를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하지만 빈이는 정우의 그런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날이선 말만 골라 뱉었다.

왜요? 내가 틀린 말을 했어요? 아버지하구 엄마하구 나하구 선택한 삶이 이런게 아니예요? 아버지, 엄마는 외국에서 자유롭게 마음대로 돈을 벌구 나는 돈을 펑펑 쓰면서 외롭게 크구… 그럼 됐잖아요. 비오구 번개치구 우뢰 우는 밤에 내가 침실에서 무서워 부들부들 아버지랑 엄마랑 어디서 무슨 재미를 보았는지 알게 뭐에요? 울음소리가 들렸어요? 인제 울어요. 그까짓걸… 인제 밖에 몰라요. 부쳐주지 않으면 죽어버릴게예요.”

그번 전화가 있은후 빈이는 정우에게 전화를 하는 태도마저 변해버렸었다. 전에는 그래도 돈소리 먼저 아프지는 않는가고 인사라도 한마디 했지만 후에는 정우가 전화를 받기 무섭게 자료비 5천원, 래일까지 입금하쇼.” 하면 그만이였다.

그런 전화를 받은후에도 정우는 어김없이 은행으로 달려가 빈이의 카드로 돈을 입금시켜주었다. 하지만 한면으로는 날로 망가져가는 아들을 방불히 보는것만 같았던것이다.

애가 도대체 제대로 학교생활을 하기나 하는것일가?

돈을 그렇게 쓰더라도 학교생활만은 차실없이 해주었으면 하는것이 정우의 마지막 바램이였다. 그렇게 해서라도 대학을 졸업하기만 한다면 한국에 불러다가 마땅한 학교에 류학을 시키든지 아니면 적당한 일자리라도 마련해주든지 하고싶었던것이다. 하지만 그것 역시 아름다운 꿈에 지나지 않았다.

지난달초, 어머니가 정우에게 전화를 걸어왔던것이다.

이보게 사람아, 일을 어쩌면 좋아 그랴?”

어머니는 목이 잠겨 겨우 소리를 뽑아내고있었다. 정우는 분명 가슴에서 널장 같은것이 하고 떨어져내리는 소리를 듣고있었다. 끝내 올것이 왔구나. 정우는 뛰는 가슴을 애써 진정하면서 목소리를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어머니, 무슨 일로 그러십니까?”

사람아, 빈이가 글쎄 일을 저질렀다아이가.”

일이라니요?”

글쎄 이…이 애가 도…도박을 놀다가 잡히게 되자 도…도망을 치다가 경찰을 카…칼로 찍었다고 하네 그랴.”

?”

정우는 심장이 폭발하는 진동을 느끼며 미친듯이 소리질렀다.

사람아.”

어떻게 소식을 들었어요?”

학교에서 늙은이에게 전화가 왔지 그랴. 늙은것이 너무 오래 살았나 보이.”

어머니는 전화에서 꺼이꺼이 울고 계셨다. 정우는 어떻게 무슨 정신으로 전화를 끊었는지 알수 없었다. 그가 다시 정신을 추스렸을 핸드폰은 닫지도 않은채 그채로 발밑에 떨어져있었고 눈물은 두볼을 타고 둘둘 굴러내리고있었다.

하아얀 얼굴에 옴폭 보조개를 패면서 달게 웃음을 짓군 하던 빈이의 얼굴이 미치도록 그리워났다. 12 동안 정우는 어느 한순간도 가슴에서 빈이를 내려 놓은적이 없었지만 순간처럼 미친듯이 보고싶기는 처음이였다.

아니다. 정말 이것은 아니다. 돈이 무엇이기에 식구들이 이렇게 산지사방으로 돈을 찾아 헤매야 한단 말인가? 돈은 얼마간 벌었다지만 구경 우리 가정에 남은것이 무엇인가?

정우는 고통스럽게 머리를 저었다. 핸드폰을 꺼내 일본에 있는 안해의 번호를 눌렀다. 손가락이 떨려 몇번만에야 번호를 정확히 누룰수 있었다. 뚜— 신호가 넘어가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하지만 전화 저쪽에서는 예상치 못한 답변이 날아왔다. 그럴수가 없는데… 분명히 번호로 안해랑 전화를 했었는데. 정우는 다시 한번 번호를 눌렀다. 하지만 대방에서는 여전히 같은 말만 반복했다.

지금 거신 전화번호는 사용되지 않는 번호입니다.”

정우는 다리에서 맥이 풀려 도무지 그대로 몸을 지탱할수가 없었다. 정우는 겨우 벽을 짚고 침대가로 다가가 먹은 솜처럼 주저 앉아버렸다. 가슴은 여전히 북치듯 쿵쿵 거렸고 심장은 또다시 쑤시는듯 아파났다. 정우는 오른손바닥을 펴서 지긋이 심장을 눌렀다. 아픔은 온몸으로 퍼지고있었다.

후—

정우는 고통스럽게 숨을 몰아쉬였다. 기억의 저편으로 부터 안해와 마지막 통화를 하던 순간이 영화처럼 펼쳐지고있었다.

그것은 벌써 일곱달전이였다. 그날도 빈이는 전화에서 돈을 부치라는 통첩을 해왔던것이다. 정우는 빈이가 구경 한달에 얼마나 되는 돈을 쓰는가를 알고싶어 안해에게 전화를 했던것이다. 전화가 통해서 한참이나 지나서야 안해의 목소리가 들렸다.

일이세요?”

일이라니? 무슨 전화를 그렇게 받는거요?”

기다림에 급했던지 정우의 목소리가 괜히 높아졌다.

아니예요. 뜻밖이라서.”

전화라도 했다는거요? 남편의 전화가 뜻밖이라니?”

그러자 안해의 가시 돋친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날아왔다.

무슨 남자가 이래요? 전화에서까지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면서. 화장실에서 뒤를 보고있었어요. 일에 정신을 팔다보니 벨소리에 놀란거죠. 됐어요?”

!”

정우는 안해의 신경질적인 소리에 너무도 억이 막혀 입만 쩝쩝 다셨다. 어느때부터인가 안해가 망가지고있다고는 생각했었지만 이렇게 상스럽게 막나갈줄은 생각지도 못했던것이다. 12, 과연 12년을 보지 못하면 애를 낳고 맺어진 부부도 이렇게 낯설고 생소해질수 있는것인가? 정우는 빈이가 돈을 부치라고 전화가 왔더라면서 그쪽에서는 한달에 얼마씩 소비돈을 주는가고 차분하게 물었다. 하지만 안해는 몹시 흥분해 했다.

왜요? 내가 생활비를 떼먹는줄 아세요? 애비라는 사람이 그까짓 생활비를 대주기로서니 이렇게까지 생색을 내는거예요? 시끄러우니 다시는 이런 전화를 말아요. 내가 알아서 내쪽에서 그애 소비돈을 보내고있으니 그쪽에서도 먹지 말구 꼬박꼬박 생활비를 보내줘요. 얼마나 힘들게 자란 애인데. 그깟 돈도 보내줘요? 이런 말을 할거면 다시는 전화를 하지 말아요.”

안해쪽에서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던것이다. 그로부터 정우는 정말 안해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던것이다. 그렇게 벌써 일곱달이 흐른것이다. 먹통이 안해의 전화를 멍하니 바라보면서 정우는 자기가 끝없이 천길나락으로 떨어져들어가는듯한 환영을 느겼다.

정우는 그로부터 사흘후 출입국사무소에 불법체류를 자진신고 하고 부랴부랴 귀국하게 되였다.

학교에서는 이미 빈이의 학적이 취소된 상태였다. 빈이가 잡혔다는 파출소를 찾아가보았지만 아직 사건이 끝나지 않아서 빈이가 간수소에 송치되여있기에 면회도 할수 없다고 했다. 너무도 상심해 하는 정우를 보고 담당경찰이 말했다.

고향에 돌아가 소식을 기다리시오. 판결이 나면 우리가 소식을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연길로 돌아온지도 벌써 20일이 지나고있었다. 그새 정우는 하루도 빠짐없이 역전에 나와 광장을 돌아다니다가 기적소리만 울리면 출구가 보이는 대합실마당앞 걸상에 앉아서 돌아오지도 않는 빈이를 기다리고있었던것이다…

아저씨 같은 아버지를 애들은 얼마나 행복할가요?"

정우는 소년의 말을 다시한번 떠올리면서 흐흐흐 어설픈 웃음을 빼여물었다.

 

 

뿡—

멀리서 기적소리가 들려왔다.

정우는 본능적으로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시간으로 보아 장춘에서 들어서는 기차 같았다. 아무 곳에서 오는 기차도 정우에게는 다은 의미가 있을수 없는것이만 정우는 그래도 기적소리가 그렇게 가다려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정우는 손님들이 출입구를 빠져나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가 반사적으로 하얀 려행용신을 세기 시작했다. 백하나, 백둘, 백셋, 백넷… 손님들이 빠져나올 때까지 하염없이 출구를 바라보다가 마지막 사람까지 나오고 종업원이 출입구의 철문을 닫아서야 정우는 후— 하고 짧은 한숨을 내쉬였다. 소리없이 정우의 거동을 살펴보던 소년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저씨, 손님을 기다리는거죠?”

물음에 정우는 와뜰 놀라면서 !” 하고 외마디 대답을 했다.

기약 없는 사람을 기다리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너무 알아요.”

너도 누구를 애타게 기다려 봤니?”

정우가 소년을 건너다보며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

소년이 입을 실룩거리며 대답했다. 소년은 워낙 정우를 향해 웃음을 지어보이려고 하는것 같았다. 하지만 아까 사나이의 발에 채여 입술이 터지는 바람에 퉁퉁 부어서 그저 실룩거리는 흉내만 내는것이였다. 정우는 안쓰럽게 소년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누구를 그리 애타게 기다렸었니?”

몰라요, 가능하게 엄마일거예요. 아니, 아빠일수도 있어요. 그때는 이렇게 역전에 나오면 엄마나 아빠가 문뜩 출구에서 걸어나오며 나에게 손을 저을것만 같은 생각이 자꾸 들었어요.”

그랬구나.”

하지만 후에는 역전을 싫어하게 되였어요.”

말을 마친 소년이 호—하고 한숨을 내쉬였다. 정우는 소년의 옆으로 한뽐 다가 앉으며 다잡아 물었다.

그건 왜서이지?”

그날도 저는 가는대로 역전에 나왔댔어요. 딱히 일도 없는지라 광장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저도 몰래 대합실에 발을 들여놓은거예요. 북경으로 가는 기차가 한창 검표를 하고있었어요.”

날마다 있는 일이지 .”

하지만 그날 나는 잊지 못하게 아픈 장면을 보게 되였어요. 다섯살쯤 되는 아니 그보다는 좀더 클거예요. 그런 녀자애가 죽기내기로 발버둥을 치는거예요. 려행가방을 녀자가 눈물을 훔치며 검표구를 넘어서서 손을 젓는거예요.”

딸을 떼놓고 어디로 멀리 떠나는 모양이였네.”

정우는 담담한 어조로 소년의 말에 동을 달아주었다.

그런 같았어요. 녀자애가 발버둥질을 치며 소리쳤어요. ‘엄마, 가지마. 고운 옷도 사달란 말을 하구 맛있는것두 사달라고 떼질을 쓸게, 엄마 가지마. 엄마 한국 가면 영영 온댔어. 철이가 그랬어, 엄마 가지마.’ 하고말이죠. 녀자애의 울부짖음을 들으면서 나는 나의 엄마를 떠올렸고 나의 아버지를 떠올린거예요. 그때로부터 역전이란 떠난 사람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곳만이 아니라 함께 있는 사람을 갈라지게도 하는 곳이라는것을 알게 된거지요.”

말을 마친 소년이 잠간 두눈을 지긋이 감았다. 샘물 같은 눈동자를 감싼 눈까풀이 수시로 팔딱팔딱 뛰고있었다. 정우는 힘들게 뛰고있는 소년의 심장을 보는것 같았다.

뭐라고 위로해주면 좋을가? 뭐라고 위로를 하면 소년의 마음이 잠시라도 편할수가 있을가? 정우는 다시 소년곁으로 한뽐 다가 앉아 소년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

, 힘들었구나. 지금 무엇을 제일 하고싶니?”

할머니에게 약을 구해드리고싶어요.”

소년이 기다렸다는듯 대답했다.

알았다. 근심하지 말어. 아저씨가 할머니의 약을 사드린다고 했잖니? 여기서 잠간만, 잠간만 앉아서 네가 마음을 진정한후 우리 약방으로 가서 할머니의 약을 사자꾸나.”

정말 미안하지만 아저씨, 그렇게 해주실래요? 그렇게 해주신다면 은혜를 영원히 잊지 않을게요.”

괜찮아, 내가 그러고싶어서 그러는거니까. , 그리구 생각해봐.  무엇을 하고싶은가고.”

정말 생각해도 돼요?”

자식, 속고만 살았나?”

정우가 소년을 향해 곱게 눈을 흘겼다. 퉁퉁 부은 소년의 입술이 벙글서 치켜졌다.

아저씨, 공원에 가서 놀이감비행기랑 마음껏 타보고싶어요. 어릴 친구들이 부모랑 공원 가서 그런것들을 타는것이 그렇게 부러웠었는데. 아직 한번도 타본적이 없어요. 아저씨, 웃기죠? 이렇게 놈이 유치하죠?”

소년의 목소리는 전에 없이 맑아있었지만 정우는 또다시 목이 메여 오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정우는 소년의 어깨를 당겨다가 품에 껴안았다. 소년이 아니라 빈이를 안고있는듯한 환각이 머리속을 맴돌고있었던것이다.

빈이, 아들은 과연 놀이감비행기랑 타보았을가?

정우도 사실 아들을 데리고 공원에 가서 그런 놀음을 놀아본 기억이 없었다. 함께 있을 때엔 호주머니 사정이 딱하다보니 문표를 사기가 버거워 감히 그런 생각을 내지 못했고 그렇게 갈라져서 어언 12 세월이 흘러버린것이다. 물론 동안 빈이에게 소비돈을 달라는대로 보내주었으니 애가 마음만 먹었다면 타보지 못했을수 없을테지만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그런 놀음을 해보지 못했다는것을 생각하니 역시 가슴이 켕겨 들었던것이다.

우리 할머니에게 약을 사다드리고 길로 공원에 갈가? 가서 아저씨하구 그런 놈들을 몽땅 타볼가?”

아저씨가 저하고요?”

소년이 믿지 못하겠다는듯 정우를 빤히 건너다보며 눈동자를 키웠다.

그럼, 싫어?”

아저씨, 아들을 기다리고있죠?”

소년이 갑자기 당돌하게 물어왔다. “!” 정우는 외마디 대답을 하고는 뭐라고 말을 이을수 없어 입을 벌린채 소년을 바라보았다. 소년이 애써 밝게 웃으려고 퉁퉁 부은 입술을 움씰거렸다. 정우가 머리를 끄덕였다.

소년이 벙긋 웃으며 손벽을 쳐댔다.

그렇구나, 아저씨 아들을 기다리고있구나. 내가 맞췄죠? 와늘 귀신이죠?”

그래, 와늘 귀신이다. 자식.”

정우가 소년의 어깨를 치며 웃음을 지어보였다.

몇시 차에 온대요? 아들은 하세요?”

글쎄다.”

?”

몇시 차에 온다는 소식이 없네. 자식…그…그 자식, 대학에 다닌다…

정우의 얼굴이 붉어지고있었다. “아들은 뭐하세요?” 하고 기대에 차서 묻는 소년에게 그놈 지금 간수소에 있다고 차마 말할수 없었던것이다. 정우는 소년이 복잡한 자기의 심사를 보아낼것 같아서 인차 머리를 숙였다. 소년은 과연 정우의 마음을 읽지 못한것 같았다.

야— 아저씨, 좋으시겠어요. 아들을 대학까지 보내구.”

그래, 그렇지. 그래야지. 가자. 할머니 사러 가자.”

정우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아저씨!”

소년도 가볍게 몸을 일으켰다.

할머니도 아저씨를 고맙게 생각하실거예요. 고맙습니다. 아저씨. 잊지 않을게요. 우리 3선을 타고 가요. 3 종점에 우리 집이 있어요. 우리 집옆에 약방이 있어요.”

말을 마친 소년이 정우의 앞에서 발걸음을 옮겨놓았다.

그래, 가자.”

정우도 소년의 뒤를 부지런히 따랐다.

 

뿡—

기적소리가 은은히 들려오고있었다.

들어오는 차일가? 아니면 떠나가는 차일가?

정우는 본능적으로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찰칵찰칵…

초침은 시름없이 시간을 조여가고있었다.

 

 

 

 

추천 (7) 선물 (0명)
IP: ♡.136.♡.34
해피투데이 (♡.70.♡.3) - 2012/01/26 17:14:08

자작글에서 간만에 좋은 글을 읽는것 같습니다.
대합실에서 아들을 기다리는 정우와, 부모를 기다렸다던 소년.
두 주인공의 이야기를 함께 서술함으로서,
외국바람이 낳은 불행한 현실생활을 잘 보았습니다...
자녀를 키우며 있어서 돈이면 전부인줄 아는 부모님과,
언제부턴가 부모님은 돈 버는 기계인줄로 아는 자녀들...
연변에 잠재해있는 이 사회모순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글을 읽고 잠깐 생각해보다 갑니다.
편한 저녁 시간 되세요~

ging (♡.91.♡.165) - 2012/01/29 10:54:27

선생님글이 올라오신걸보구 클릭했슴다
이게 실화라면 너무 가슴아픔다
역전이란 떠난 사람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곳만이 아니라
함께 있는 사람을 갈라지게도 하는 곳이라는 그애의 말을
몇번읽어봤슴다..
저도 해피투데이님처럼 글을 읽고 생각에잠기다 감다..
글을 읽고 생각은 많고 할말도 많은데
어떻게 적어야할지모르겠슴다
잘보고감다...

동녘해 (♡.136.♡.213) - 2012/01/29 15:42:04

해피님, ging님, 여기서 보니 더 반갑네요.
음력설련휴라 시간이 있더라니 손 가는대로 한편 써보았습니다. "모이자"자작글 코너에 독자들이 많은것 같아 먼저 여기에 올렸습니다. 사랑이야기들은 클릭수가 높은데 저의 글은 수수하네요. 인터넷에서는 순수문학보다 통속문학이 더 각광을 받는가 봅니다.
저의 글을 읽어주셨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어떤 문학을 하든 조선족사회의 가슴 아픈 현실을 있는 그대로 독자들에게 그려보이는게 우리의 임무가 아닐가요?
두분, 여기서도 활약하시구요 순수문학쪽에서도 열정을 다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새해 더 좋은 글을 기대합니다.

낙화류수 (♡.60.♡.34) - 2012/01/31 12:51:26

자작글에서 오랜만에 글 다운 글을 봅니다..........

추천 해드립니다.

동녘해 (♡.50.♡.133) - 2012/01/31 17:51:48

낙화류수님, 저의 글을 읽으셨다니 감사드립니다,
님의 댓글에 괜히 힘이 생기네요.

심령술사 (♡.245.♡.11) - 2012/02/02 00:42:03

글솜씨가 대단하군요.탄복했습니다

o첫사랑o (♡.245.♡.225) - 2012/02/02 13:38:39

낙화류수님의 글평론을 보고 들어왔습니다 ^^
우선 .. 이글 보면서 . .눈물을 많이 흘린사람입니다 ...
잘보고 ... 생각많이 하다 갑니다^^ 좋은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낭랑새 (♡.118.♡.207) - 2012/02/02 20:36:19

잘 보고 갑니다.. 저번에 읽고 댓글을 남길려고 했는데 , 애가 컴퓨터를 차지하는 바람에.... 다음 글 또 기대합니다.

연518 (♡.226.♡.89) - 2012/02/07 14:21:38

너무 좋은 글 보고 갑니다.
모이자의 자작글이 너무나 사랑얘기 그러니 남녀 사랑얘기만으로만 차다 보니,..오랜만에 이렇게 순수하고 현실적인 부모자식,그리고 현사회현상을 보는것 같습니다.
글을 보면서 참말로 마음이 아프고, 그리고 자신의 성장한 나날들을 되새겨 보게 됩니다.
좋은 글 앞으로도 많이 올려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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