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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xingyu | 2014.05.06 19:23:26 댓글: 32 조회: 3658 추천: 16
분류단편 https://life.moyiza.kr/mywriting/2157987

 이 글을 나의 그대에게 바친다. 스스로 개라고 자처할 만큼 개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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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구이다.

 

그리고 지금은 철망으로 만들어진 우리 안에 갇혀 있다.

밖에서 뭔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긴 하는데 뭔말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 가 없다.

나는 이제 늙고 병이 들었다. 게다가 며칠 전에 생선가게 쓰레기더미에서 생선을 주어먹다 목에

가시가 걸리는 바람에 입만 벌리면 쇡쇡 하고 목구멍으로 바람 새는 소리만 들린다. 너무  괴로

워서 며칠 전부터 죽고만 싶었다. 아니, 그 썩 전부터 죽고 싶었다. 하지만 죽는다는것. 그리 쉬

운 일이 아니라는 것즘은 다들 알고 있을것이다.

 

< 아저씨, 아저씨... 아직 살아있어여? >

 

초복이의 목소리였다.  녀석은 전라도에서 올라왔다는데 작년 초복날에 주인집에서 도망쳐나왔

다고 했다. 녀석은 주인이 왜 초복이란 이름을 지어주었는지 알턱이 없을것이다.  이제 한살도

되지 않았으니... 그나저나 심한 전라도 사투리에 수다스러운 저 주둥이를 닥치게 하려면 나는

살아있는 척이라도 해야 했다. 나는 목구멍을 열고 쇠소리를 냈다. 그래도 녀석은 수다를 멈추

지 않았다.

 

< 살아있으여? 그랑게 내가 띠라했을 때 뗬어야제. 아저씨 땜시

 내까정 보신탕이 될뻔행당게... >

< 그라고 이 인간들이 나를 어찌해부릴랑가 몰겟네. .. >

 

초복이는 불안한듯 우리 안을 돌아다녔다.

하긴 불과 몇 시간 전만해도 우린 자유의 몸이였다. 쓰레기를 뒤져 연명할지언정...

 

어제 역겨운 냄새를 풍기는 보신탕집을 지날 때 그 주인의 음흉한 눈길. 결코 무시할 일이 아니

였는데.. 진작에 멀리 도망갔어야 했다.

오전에 쓰레기더미에서 간신히 곰팡이 핀 빵 몇개를 찾아 배를 채우고 구석진 골목에서 햇볓을

쬐고 있는데 험상궂은 보신탕집 주인이 올가미를 들고 우리 앞에 나타났다.

 

< 아저씨, 띠여.. 빨랑 뛰랑게! >

 

아직 팔팔한 초복이는 앞서서 달렸지만 이제 병들고 늙어버린 나는 얼마 뛰지도 못하고 올가미

에 걸리고 말았다. 나는 체념하고 눈을 감아버렸다. 초복이가 멀찌감치 서서 사납게 짖고 있었

다.

이때였다. 한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나더니 보신탕주인을 에워쌌다.

 

< 저희는 동물보호단체에서 나왔습니다. 개를 놓아주시지요. >

 

동물보호단체 로고가 찍힌 유니폼을 입은 한 사람이 나서며 말했다.

 

< 이 개는 내가 키우던 개요, 내 개를 내가 가져가는 것두 문제가 되우? >

 

보신탕주인은 짐짓 거드름을 피우며 버젓이 거짓말을 해댔다.

 

< 웃기지 마세요. 저는 이 동네 주민인데요.. 이 개들은 떠돌이개 맞아요. >

 

지나가던 열다섯살즘 되보이는 여자아이가 한마디 거들었다.

덕분에 우린 보신탕신세를 겨우 면하고 대신 동물보호단체의 우리 안에 갇히게 되었다.

 

 

< 아저씨가 싸게 뗬어도 잡히지 않았을낀데... >

 

( 저 늠의 주둥아리 좀 다물었으면... 인간들을 불러들일라고 작정했군.)

아니나다를가. 흰 가운을 입은 두 사람이 우리가 있는 방으로 들어왔다. 인간들에게는 초복이의

수다나 푸념이 그저 낑낑거리는 소리로만 들릴게 뻔했다. 그리고... 난 가운을 입은 인간을 싫어

했다.

 

< 개가 좀 불안해보이는데... >

< 보신탕이 될뻔했는데 당연하지... 좀 지나면 괜찮겠지. >

< 그럼 이 늙은 허스키는 어떡하지? >

 

긴 머리를 하나로 묶은 여자가 가운 주머니에 손을 집어 넣으며 남자를 쳐다보았다.

 

< 음... 배에 부종이 잡히고 수술하기엔 너무 늙었어. 수술도중에 아마

 죽어버릴걸. >

< 우선 목줄에 있는 번호로 개주인이랑 연락을 해보자. >

 

남자는 우리 문을 열고 내 목덜미에 있는 목줄을 살펴보았다.

 

< 구이? 92...? >

< 녀석 이름 한번 특이하구나. 네 주인도 너만큼 특이하겠네... 네  덩치로

 보아 주인은 힘이 엄청 쎈 남자일것 같구나. 좋아. 어디 한번 이 번호로 네

 주인을 찾아보자. 지금쯤 아마 널 애타게 찾고 있을거야. >

 

남자는 다시 내 머리털을 쓸어주고는 우리를 나갔다. 손 끝에서 지독한 담배냄새가 풍겨나왔다.

 

 

 

                                                ***

 

 

내 이름은 구이다.

알래스카에서 한국으로 이민 온 어느 화교의 집에서 태여났는데 나는 리나라고 불리는 허스키종

인 엄마 뱃속에서 두번째로 태여났다고 한다. 화교인 주인은 나에게 狗二이라는 단순하고도 기억

하기 쉬운 이름을 지어주었다. 나에겐 형제가 많았다고 한다. 우리를 다 키울 수 없었던 주인은

이웃이나 친구들에게 우리를 분양했다. 나는 바로 옆집에 사는 로사에게 보내졌고 얼마후 로사는

멀리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 후로 나는 엄마와 영영 이별을 했다. 이 모든 이야기는 훗날 로사가

나에게 들려준것들이다.

로사는 나에게 이야기 들려주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개들이 인간의 말을 알아들으며 단지 말을 못

한다는 사실을 로사도 알고 있을가 늘 생각해왔다.

 

로사는 중국어발음을 유난히 힘들어했다. 여러 나라 언어중에서 중국어가 제일 힘들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는 자꾸 내 이름을 구얼이라고 불렀다. 그러다 나중엔 아예 구이라고 부르고 때론

동물병원에 갈때 내 이름대신 92라고 적기도 했다.

그녀는 나에게 견이(犬二), 구이라는 한자이름과 다분히 닮아있는 한국이름도 지어주었고 잭이라

는 영어이름도 지어주었다. 그녀가 뭐라 불러도 상관없지만 나는 구이라고 불러줬을 때가 가장 행

복했다. 뭐든 처음이 중요하다. 내가 처음으로 구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졌던 것처럼 말이다. 

 

아주 어렸을 때 나는 그녀의 품속에서 엄마의 젖을 찾곤 했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손가락을

내 입에 물려주었다. 손가락을 물고 나는 아주 기분이 좋아지군 했다. 그녀의 몸에선 늘 살구비

누냄새가 났다. 나는 늘 살구냄새를 맡으며 잠이 들었다.

 

6개월이 지나자 나는 제법 늠름해졌다. 검은 털과 흰 털은 늘 가지런히 빗겨져 있었으며 기운도

엄청 세졌다. 이제 송곳니도 날카로워져서 그녀가 손가락을 넣는 일은 없어졌다.

그리고 좀만 방심하면 나의 날카로운 발톱들이 그녀의 몸에 상처를 입히곤 했다. 점점 물이 싫

어지는 나와 목욕을 시키려는 그녀 사이에서 종종 실갱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나는 다른 애완견처럼 개껌 씹는 것을 싫어했다. 먹이를 먹을 때도 다른 개처럼 허겁지겁 먹지

않았다. 천천히 흘리지 않고 깨끗이 먹었다. 그녀도 나의 이런 특별한 점을 알아차리고 결코 다

른 주인들처럼 먹을 것을 손에 들고 < 앉앗. 일어섯. 악수.. > 이런 지겨운 놀이를 하지 않았다.

우린 산책을 자주 다녔다. 물론 넓은 잔디밭에서 공을 던져주고 <워리워리  공 물어와! >따위의

유치한 놀이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수시로 나에게 사랑한다고 속삭여주었다.  달콤한 그녀의 입

김에 나는 행복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내 몸에서 이상한 변화가 일어나는것을 눈치챘다. 한달에 한번씩 그녀의

몸에서 피비린내가 나면 나는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그녀의 뒤를 줄줄 쫓아다녔다. 처음 몇번

은 대놓고 그녀의 사타구니에 코를 박았었지만 그녀가 민망해하는 것을 눈치채고 나서는 두번

다시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손가락을 빠는 대신 그녀의 손등이나 발등을 핥았으

며 그녀의 침대 곁에서 어두운 밤을 지켜주었다.

어느날 나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나와 그녀가 사랑을 나누는 꿈이였다. 그녀가 개가 되었던건

지 내가 사람이 되었던건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분명 황홀하고 아름다운 꿈이였다. 꿈에서 깨어

난 나는 가슴이 벅차서 침대로 뛰쳐올라갔다.

그녀는 단잠에 빠져 있었다. 입꼬리가 올라가는걸 보아 좋은 꿈을 꾸는것 같았다. 그녀도 꿈에서

나를 보았을가... 나는 그녀의 곁에 웅크리고 누워서 다시 인간이 되는 꿈을 꾸려 끙끙거렸다.

 

어느 여름날, 비 오는 날 밤. 그녀와 영원히 단둘이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게 될거라는 환상은 산

산히 깨지고 말았다. 인간의 말그대로 난 개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였다.

그날 나는 어둑한 방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그녀의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았다는 낡은 괘종시계가 열한번하고 한번 더 울렸을 때 키버튼 누르

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재빨리 문 앞으로 달려갔다.

문이 열리며 비릿한 생선냄새와 술냄새가 코를 찔렀다. 어둠속에서 그녀가 웬 남자와 부둥켜안고

걸어들어왔다. 두 사람은 바로 침대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둘은 엉켜붙은채 키스를 퍼부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내 입에서 끙~ 하는 신음소리가 저도몰래 흘러나왔다.

 

< 준, 잠깐만. >

< 구이야, 미안한데 오늘은 나가서 잘래? >

 

방에서 쫓겨난 나는 문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방안에서 두 사람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내 마음이 갈기갈기 찢겨지는 소리를 들었다. 나도 이젠 방 안에서 뭔 일이 벌어지는 것쯤

은 알 수 있는 나이기에...

나는 기운없이 창가로 걸어갔다. 쏟아지는 빗줄기가 모든 소음을 잠재우길 바라면서...... 

이제 장마가 막 시작되었다.

 

며칠동안 나는 실의에 잠겨버렸다. 인간이 될 수 없는 현실에 난 큰 좌절감에 빠졌다. 그녀는 단

지 한마리의 개를 사랑했을 뿐. 또한 그것이 인간이 개한테 가질 수 있는 수위의 순수한  감정이

라는 것을 나도 알았다. 하지만 나는 괴로웠다. 하루하루 나는 점점 야위여갔다. 그녀는 여러가지

입맛을 돋우는 영양제를 사다 주었다.

 

남자는 며칠에 한 번씩 그녀를 찾아왔다.

세 번째 되던 날 나는 그 남자의 몸에서 나쁜 냄새를 맡았다. 분명 어디서 맡아 본 냄새였는데

기억이 나질 않았다.

네 번재 오던 날 남자의 들뜬 얼굴을 보고서야 나는 그 냄새가 뭔지 알아챘다. 마리화나였다. 전

에 공원에서 산책하다 해리라는 리트리버종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 공항에서 마약탐지견으로 일

했었다고 했다. 해리는 길을 지나던 한 사람을 가리키며 마리화나중독자라고 했다. 이들은 엄청

위험한 인간이라고 그는 알려주었다.

나는 이 위험한 인간에게 당장 나가라고 으르렁거렸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그녀는 몹시 당황해

했지만 녀석은 시물시물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내 경고를 알아차리지 못한 그녀는 장마철이 끝나고 가을이 지나 겨울에 접어들어서야 그 놈과

헤여졌다. 약에 취한 놈이 끝내 그녀의 몸에 손찌검을 했던 것이다. 내가 달려들어서 놈의 팔을

물어뜯지 않았으면 그녀는 아마 피투성이가 됬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내게 말했다.

 

< 이번 일은 고마운데 그렇다고 아무때나 사람을 함부로 물거나 다치게 하면 안돼. >

 

 

                                              ***

 

 

그 못된 인간과 헤여진 후 그녀는 오랫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녀는 나와 지내는 시간

이 점점 많아졌다.

그러다 그녀는 리라는 의사랑 사귀기 시작했다. 그자는 인간을 고치는 의사였다. 그녀가 뭔 생각

으로 그자와 사귀었는지 모르겠지만 첫만남부터 우린 삐걱거렸다.

처음 그녀와 함께 하는 식사에서 그자의 밥그릇에 개털 하나가 발견되었던 것이다. 그자는 개를

싫어했고 나를 더욱 싫어했다. 내 몸에서 나는 냄새도 싫어했고 집안에 날리는 내 털도 싫어했으

며 특히 내 배설물을 보게 되면 아주 기겁을 했다.

그는 로사에게 실내에서 개를 키워서는 안되는 수백가지 이유를 줄줄이 늘어 놓았다. 로사는 물

론 듣고 있던 내게도 전혀 씨도 안 먹힐 괴변일 뿐이였다. 그러나 그자의 딱 한 마디가 마음에 걸

렸다.

 

< 저 더러운 배설물을 평생 치우고 다닐거야? >

 

그랬다. 인간이 되는 꿈만 꿨지 난 아직도 인간의 아기처럼 뒷처리를 스스로 못한다는 사실을 망

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알아챘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였다. 화장실 문을 열고

인간들 변기에 앉아 일을 볼 수도, 출입문을 박차고 뛰쳐나가 어느 구석진 곳에서 해결하고 올 수

도 없는 노릇이고... 여튼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것은 볼일을 참았

다 한꺼번에 보는 것이였다. 이것이야말로 그녀의 수고를 덜어주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결국 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변비에 걸린 나는 병원에 가서 그녀에게 더 추한 꼴을 보이고

말았다.

나의 이러한 행동은 그자에게 생각지도 못한 공포를 가져다 주었으니 오히려 역효과가 난셈이였

다.

 

< 로사, 내가 정신이 나간건지 모르겠지만 이 개는 우리 말을 알아듣는 것 같아.>

<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마. 우연히 변비에 걸렸을 뿐이야... >

< 그러지 말고 이 개 입양보내면 안돼? >

< 안돼. 구이는 내 가족이야. >

 

며칠 후. 웬일인지 그자는 나에게 먹이를 주는 친절까지 베풀었다. 의구심이 들었지만 냄새를 맡

아보아 아무 이상이 없기에 나는 그냥 먹어 주었다. 이런 녀석과 나의 행동은 로사를 기쁘게  만

들었다. 로사를 기쁘게 하는 일이라면야... 나는 내키지 않았지만 그자가 주는 먹이를 꾸역꾸역

먹어 주었다.

한 달후. 나는 온 몸이 쑤시듯 아파왔으며 머리가 흐릿해졌다. 그러다 정신을 잃었는데 깨어나보

니 병원이였다. 그녀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눈물을 흘렸다.

 

< 미안해 구이, 정말 미안해... 그런 몹쓸 인간일줄이야... >

 

퇴원하고 집으로 돌아온 날 그자가 찾아왔지만 로사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 미안해, 정말 미안해. 다신 안 그럴게... 다 내가 잘못했어. >

<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으로 알아! 이 몹쓸 놈아... >

< 의사라는 사람이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어? 다신 보고 싶지 않으니 썩 꺼져! >

< 그래 그래. 알았어... 어디 미친 개랑 평생 살다 늙어죽어! >

 

 

                                            ***

 

 

이 일로 로사와 난 많이 지쳐 있었다.

또 한동안의 공백기가 흐른 뒤 로사는 신중에 또 신중을 기해 건축설계사라는 직업의 남자를 만났

다. 적어도 이 남자는 개를 아주 좋아했다. 남자는 핸드폰으로 자신이 기르는 개를 나와 로사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작고 귀여운 말티즈였다. 덩치가 큰 남자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하긴 덩치

가 큰 나도 로사와 어울려 보이지 않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말이다.

우리는 셋이서 공원을 함께 산책하기도 하고 주말이면 캠핑을 가기도 했다. 나는 이 남자가 나쁘진

않았다. 적어도 로사가 여태껏 만나 왔던 남자들 중에 제일 괜찮은 것 같았다. 이 남자라면 로사를

행복하게 해줄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두 사람이 거실 쏘파에 앉아 키스를 할 때면 나는 고개를  살

짝 돌려주는 센스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이 행복도 오래가지 못했다.

어느날 저녁을 먹던 중 남자는 전화 한 통을 받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 로사 먼저 먹구 있어. 나 전화 좀 하구... >

 

식탁에서 일어서는 남자의 심박동소리가 여느때와 달리 빠르게 뛰였다. 나는 슬그머니 그 남자의

뒤를 쫓아 방으로 들어갔다.

 

< 응. 자기.. 나도 보고 싶지. >

< 나도 알아. 미안해.. 요즘 정신이 없어 전화 할 새도 받을 새도 없어.

 이번 공사만 끝나면 들어갈게. 약속할게..>

< 애들은 잘 있어? 학교 적응 잘하고? 이제 영어 실력 제법 늘었겠는걸..>

< 알았어. 나 지금 중요한 약속 있어. 나중에 통화하자.. 응, 응. 나도 사랑해. >

 

전화를 끊고 뒤돌아서던 남자는 나를 보고 흠칫 하더니 다가와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 가자, 구이. 밥 먹자... >

 

그 때였다.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녀석의 목덜미를 물었다.

 

< 왜 그래! 구이... >

 

그 더러운 입으로 내 이름 부르지마! 나는 으르렁거리며 더 힘껏 물었다. 녀석의 목덜미에서 피가

흘렀다. 이것은 경고였다. 만약 내가 작정하고 물었더라면 녀석은 진작에 목뼈가 부러졌을 것이다.

피를 보자 녀석은 겁을 먹고 소리 질렀다.

 

< 로사! 로사! >

 

로사가 급히 달려왔다.

 

< 세상에, 구이! >

 

그녀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 놀라움은 이내 분노로 바뀌었다.

 

< 못된 녀석! 그만 놔주지 못해? 사람을 물어죽일 참이냐! >

 

나는 그녀가 나에게 그렇게 화내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얼떨결에 나는 녀석을 풀어 주었다.

 

< 세상에 피 좀 봐... 괜찮아? 캐빈.. >

< 응, 괜찮아.>

< 병원에 가봐야 되는거 아냐? >

< 아니. 피가 조금 났을 뿐이야... >

 

녀석은 가증스럽게도 별일도 아닌듯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이어 녀석은 다시 걱정스

러운듯 나를 내려다 보았다.

 

< 전부터 생각했던건데 구이가 지내기엔 집이 좀 작아... 구이한테도 이건 스트레스야.

 자기 시골에 이모가 산다며? 이 참에 시골에 보내는건 어떨가... 맑은 공기를 마시면

 구이도 기분이 좋아질거야. >

 

로사는 머뭇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

 

 

로사는 나를 시골에 데려다 주었다.

 

< 미안해, 구이. 내가 너를 너무 집 안에만 가둬둔 것 같아... 시골엔 공기도 맑고 신나는

 일들이 더 많을거야. 자주 보러 올게. >

 

로사는 내 머리를 쓸어주었다.

 

< 난 하루종일 집 안에만 있어도 괜찮아, 너와 함께라면 말이야... >

< 아니... 아니야, 난 어찌되도 괜찮은데 제발 그 녀석이랑 헤여져야 되. 정말정말 나쁜

 놈이란 말이야. >

.

나는 횡설수설하면서 하소연했지만 그것은 한낮 개소리에 불과했다. 그녀에겐 컹컹 짖는 소리로

만 들릴테니. 그녀는 그저 측은한 눈길로 나를 바라만 보았다.

 

로사는 떠나갔다.

나는 무거운 목줄에 묶인채 하루하루를 보냈다. 낮에는 날아다니는 나비를 멍하니 바라보기도 하

고 내가 살고 있던 집보다 훨씬 작은, 내 커다란 덩치가 겨우 비집고 들어갈 만한 개 집 주변에 커

다란 구뎅이를 파놓기도 했다. 그 구뎅이에 엎드려 풀숲에서 들려오는 온갖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도 했다. 가끔은 땅에 귀를 붙이고 있다가 지나가는 승용차 엔진소리에 벌떡 일어나기도 했다.

처음에 그녀는 일주일에 한 번씩 나를 보러 왔다. 그러다 2주에 한 번, 3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

그렇게 그녀는 발길이 점점 뜸해졌다. 가지런히 정돈되 있던 내 털들은 뒤엉켜 덩어리가 졌으며

입에서는 내가 맡기에도 역겨운 냄새가 풍겨 나왔다. 그녀의 이모는 내 먹이를 주기도 바빴다.

 

한 여름 소나기를 피해 분주히 오가는 개미들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그녀의 기억에서 내가 잊

혀지듯 나도 그녀를 잊을 때가 됬다고. 그녀의 하나같이 멍청한 남자들을  보지 않는 것이 오히려

속 편한 일이라고 나는 자신을 위로했다. 인간남자들은 하나같이 멍청하고 믿을 것이 못되였다.

아니면 어쩌다보니 그녀가 운이 지지리도 없어 그런 놈들만 차례졌는지도 모르지만. 여튼 나는 모

든 것을 잊기로 했다.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가고 1년이 가고 2년이 갔다.

나는 내 머리 속에 생각이나 몸짓들이 풀잎에 매달린 달팽이마냥 느려지는 것을 느꼈다. 꼬리를

흔들거나 낯선 사람을 보면 짖는 일도 그만둔지 오래였다. 땅바닥에 축 늘어져 깊은 잠에 빠지는

날이 점차 많아졌다.

 

어느날. 잠든 날 깨우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구이, 구이야 내가 왔단다. 사랑하는 구이야... >

 

사랑? 나는 아득히 먼 곳에서 들려오는 메아리같은 이 말의 의미를 애써 생각해보았다. 분명 로사

의 목소리였다. 나는 눈곱이 잔뜩 붙어버린 눈을 간신히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많이 야

위여 나만큼이나 형편없어 보였다.

 

< 얘야, 개가 이젠 많이 늙었어. 먹는 것도 줄고 짖지도 않고 잠만 자는구나.

 그래도 데려갈테냐... >

 

그녀의 이모가 앞치마에 묻은 먼지를 털며 다가왔다.

 

< 네. 이모.. 제가 얼마나 한심하고 멍청한지 알아요? 전 사기꾼한테 속아

 2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했어요. 구이랑 2년이나 떨어져 살았구요.>

< 전 이제 남자라면 지긋지긋해요. 구이랑 평생 살다 죽을거얘요... >

 

나는 순간 로사가 정말로 멍청한건 아닐가 생각했다. 나의 평생이래봐야 그녀 일생의 십분의 일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걸 그녀는 아마 까맣게 잊고 있었나보다. 게다가 나는 곧 열살이 되가고

있었다.

 

나는 다시 그녀의, 아니 우리들의 집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목욕도 하고 엉켜있던 털도 가지

런히 빗어넘겼다. 그녀가 특별히 준비한 소고기스프를 먹고 우리는 함께 저녁 산책을 나갔다.

산뜻한 바람이 내 털들을 멋지게 날려주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나를 보고 모두 감탄사를 보내

왔다. 주인의 목줄에 딸려나온 개들도 선망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의 주인인 로사에게

흠모의 눈길이 모아졌다.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왔던가... 온 몸에 다시 기운이 솟아올랐다.

 

나는 갑자기 바람을 가르며 달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녀의 목줄을 잡은 손이 느긋해진 틈을

타 나는 힘껏 달리기 시작했다. 알래스카 숲을 달리면 이런 기분일가... 쌩쌩 귓가로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 구이! 구이, 멈춰! >

 

목줄을 놓쳐버린 그녀가 뒤에서 애타게 불렀다.

그리고. 공원을 가로지르는 큰 길 한 가운데서 나는 멈춰섰다. 멀리서 콘테이너트럭 한대가 날카

로운 경적소리를 울리며 달려왔다.

 

< 구이, 뛰여! 달려! 빨리! >

 

로사가 다시 웨쳤다.

내가 그 자리에 멈춰야 할지 뛰어야 할지 갈팡질팡하던 사이 그녀가 큰 길로 뛰어들어왔다. 나는

길가로 밀쳐지고 그녀는 트럭에 받혀 공중에 붕 떠있다 그대로 땅으로 떨어졌다.

나는 쏜살같이 그녀에게로 달려갔다. 그녀는 나를 보고 웃었다. 입을 실룩거리며 뭔가를 말하려

는 듯하다 피를 몇 모금 토해냈다. 나는 그녀의 심장소리가 점점 멀어져가는 것을 느꼈다.  끙끙

거리며 그녀의 얼굴을 핥았지만 죽음이 그녀의 눈동자에서 생기를 거둬가는 것을 지켜볼 수 밖

에 없었다. 눈물이 두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 저것 봐! 개가 울고 있어. 죽은 여자가 개 주인인가봐... >

 

몰려든 사람들 가운데서 누군가 큰 소리로 떠들어댔다.

 

< 설마. 하품하다 눈물이 나온거겠지. >

< 멍청하긴. 쯧쯧. 주인이 죽었는데 하품하는 개가 어디  있어? >

< 그건 모를 일이지. 저 늙은 개가 멍청해져서 주인이 죽은 줄도 모르고

 하품하는지 알게뭐야... >

 

나는 울분을 참지 못하고 목을 뒤로 젖히고 어우~ 하고 길게 울부짖었다. 그러자 늑대가 나타

났다고 사람들이 한바탕 소동을 일으켰다. 얼마후 경찰들이 와서 그녀의 시신을 수습하고 혼란

스러운 거리를 정돈했다.

로사의 장례식이 끝나자 나는 그녀의 이모네 집 마당에 다시 묶이게 되었다. 그녀와의 모든 추억

이 깃든 곳은 나를 못 견디게 괴롭혔다.

한 달 후 나는 사슬을 끊고 집을 나와 떠돌이개가 되었다.

 

 

                                            ***

 

 

우리 문이 열리고 가운을 입은 두 사람이 들어왔다.

 

< 구이야, 네 주인에게 연락해봤지만 없는 전화번호라고 하더구나... >

< 넌 병에 걸렸어. 수술하기도 힘들고... 그리고 매일매일 들어오는

 애들도 많고...... 우린 너를 안락사시키기로 결정했단다. >

 

가운 입은 여자가 눈물을 글썽이며 내 머리를 어루만졌다.

 

< 잉? 안락사가 멋이여? 아저씨 말 쫌 해보랑게... >

 

초복이가 불안한 듯 내 주위를 맴돌았다. 남자가 주머니에서 자그마한 주사기를 꺼내자 그제야

뭔가를 눈치챈 초복이가 깽깽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 안돼! 아저씨 살아있당게로... 이러믄 안되지라, 인간이... >

 

담배냄새 나는 손이 내 목덜미에 바늘을 깊숙히 집어넣었다. 살짝 따금거렸지만 아프지는 않았

다. ( 잘 있어. 초복아... ) 나는 속으로 초복이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곧 깊은 잠으로  빠져들

어갔다.

꿈 속에서 난 털을 벗고 인간이 되었다. 그녀가 나를 마주보며 웃엇다. 나는 그녀의 살구향이

감도는 입술에 뜨거운 키스를 해 주었다.

 

아주 오래도록......

추천 (16) 선물 (0명)
나는 죽을 때까지 흔들리는 어른아이다......
IP: ♡.159.♡.18
물짱구 (♡.67.♡.68) - 2014/05/06 20:24:42

쓸쓸한 내용이지만 의미있는 글입니다. 글쓰기 내공이 엿보입니다. 잘보구 갑니다. 추천~

xingyu (♡.159.♡.18) - 2014/05/07 21:31:33

추천 감사합니다. ㅎㅎ

길문맘 (♡.30.♡.7) - 2014/05/06 21:04:12

잘보고갑니다 추천요

xingyu (♡.159.♡.18) - 2014/05/07 21:32:02

네 고맙습니다...

화룡아저씨 (♡.246.♡.162) - 2014/05/07 08:57:26

추천요...

xingyu (♡.159.♡.18) - 2014/05/07 21:44:08

오래만입니다 ㅎㅎ

화룡아저씨 (♡.246.♡.162) - 2014/05/08 09:37:10

절 아세여?

xingyu (♡.36.♡.113) - 2014/05/08 17:42:35

모릅니다 ㅎ 언젠가 댓글 남겨주신 기억이 나서...

천사LQve (♡.91.♡.39) - 2014/05/07 10:19:16

잘 읽었습니다. 감동~

xingyu (♡.159.♡.18) - 2014/05/07 21:45:15

ㅎㅎ 감사~

북위60도 (♡.60.♡.229) - 2014/05/07 12:25:25

개는 말을 못해도 다 알아듣는다는건 정말인것 같기도 한데요...울 개도 넘 많이 알아들어요..
그래서 개랑 의사소통한다는 그런분이랑 대화하고 싶어요...역시 뭔가가 다른 차원인님글...

xingyu (♡.159.♡.18) - 2014/05/07 21:47:50

개는 흔히 사람의 제스처를 보고 행동합니다 ㅎㅎ 바디렝귀지~

쓰빠라꾸 (♡.218.♡.12) - 2014/05/07 13:58:45

赞!

xingyu (♡.159.♡.18) - 2014/05/07 21:48:40

好!

꽃길을함께 (♡.188.♡.142) - 2014/05/07 20:29:43

잘 읽었습니다.

xingyu (♡.159.♡.18) - 2014/05/07 21:51:54

감사합니다.. 저도 가끔 다른 사람의 글을 읽지만 귀차니즘 땜에 웬만하면 댓글 안답니다 ㅎㅎ 그래서 더 고맙고 또 답글도 일일이 달아드릴려고 노력중입니다..

소연나라 (♡.240.♡.230) - 2014/05/08 17:49:17

92!!!

xingyu (♡.159.♡.18) - 2014/05/09 21:44:40

狗二!!

바스트인터 (♡.207.♡.98) - 2014/05/09 10:24:17

모이자에서 이런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건승하십시요.

xingyu (♡.159.♡.18) - 2014/05/09 21:50:41

您過奖了, 真感到无地自容;

힘내긔 (♡.210.♡.99) - 2014/05/09 12:45:42

잘읽었습니다...울번햇네요;

xingyu (♡.159.♡.18) - 2014/05/09 21:51:43

悲,, !

아키코 (♡.114.♡.133) - 2014/05/11 18:42:31

참으로 감동적으로 글을 잘 썼슴다.

xingyu (♡.159.♡.18) - 2014/05/13 12:52:03

감사합니다 ㅎㅎ

땡감 (♡.145.♡.157) - 2014/05/24 11:18:47

오랫만에 이렇게 글잘쓰는 분을 보는군요 ^^

xingyu (♡.159.♡.18) - 2014/05/24 21:36:24

谢谢.. ^^

희망의향기 (♡.36.♡.189) - 2014/05/25 01:09:47

시간이 가는줄도 모르고 단숨에 다 읽었어요. 긴글을면 멀리쩍피하는데 이야기에 빠져
넘 잼있게 읽었어요. 추천드려요~!

xingyu (♡.159.♡.18) - 2014/07/01 17:32:46

고맙습니다~ ㅎ

풍운해지 (♡.111.♡.120) - 2014/06/03 15:27:39

누구지? 꼭 알듯한 사람인데.

xingyu (♡.159.♡.18) - 2014/07/01 17:33:29

궁금하면 오백냥~ ㅋㅋ

빛바랜 (♡.36.♡.101) - 2014/06/23 19:51:17

오랜 만에 모이자 접속했는데
행운이군요
이토록 참신한 시도를한 글을 읽을수 있다는게
멋지십니다

xingyu (♡.159.♡.18) - 2014/07/01 17:34:44

고맙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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