地球上唯一的韓亞 7

단차 | 2023.11.13 08:00:30 댓글: 4 조회: 199 추천: 1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17154
7



 “돌아가신 할머니 코트인데…… 제 몸에 맞게 고치고 싶어요.”

  한아가 맡는 일의 많은 경우가, 사랑하던 고인의 옷을 고쳐 입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주문이었다. 옷을 가져오는 사람들은 망설임으로 옷을 내려놓기 힘들어했다. 

 한아는 그런 다정한 주문일수록 더 믿고 맡길 수 있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 할아버지의 스리피스 슈트를 손보려는 손주라든지, 어머니가 1980년대에 입던 물방울 원피스를 늘일 데 늘이고 줄일 데 줄이려는 딸, 가장 마음이 안 좋은 경우지만 친구나 형제자매의 유품을 들고 오는 사람들도 드문드문 있었다.

  “아, 곱게 아껴 입으셨나봐요. 보풀도 없고. 디자인은 크게 손보시지 않을 거죠?”

  평소에는 거의 해체했다 다시 잇다시피 혁신적인 변화를 주기도 하는 한아지만, 애도하는 손님들이 찾아오면 최대한 원형을 보존하려고 노력한다. 아주 살짝만 새로움을 더한다. 그 새로움이 슬픔을 조금 지울 수 있을 정도로만.

  “네, 그런데 이 칼라 부분만 차이나 칼라로 고칠까 생각 중이에요.”

  “문제 없을 거 같아요. 그리고 여기 이 부분에 살짝 다트를 잡으면 어떨까 하는데요.”

  “그것도 좋겠네요. 잘 부탁드릴게요. 저한텐 의미 있는 옷이라 아무데나 맡길 수는 없었는데, 여기 얘기를 들어서요.”

  “걱정 마세요. 손님의 자녀분도 탐내게 만들어드릴게요.”

 
  손님이 가고 한아가 코트를 손바닥으로 쓸어보면서 즐거워했다. 

 한아는 자신의 일이 단순히 오래된 옷들의 생명을 연장하며 환경을 보호하는 차원을 넘어서고 있음을 알고 있다. 

 개인의 기억과 공동체의 문화에 닿아 있는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자부심이 더해졌다. 본격적인 작업의 어려움을 맞닥뜨리기 전에 처음 만난 옷을 오래오래 바라보는 것도 좋아했다. 누군가가 긴 시간 아껴온 옷의 부드러운 결을 감상하는 것이다. 

 처음에 얼마짜리 옷이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빛과 습기와 오염으로부터 소중하게 보호받은 옷이라면, 귀한 옷이다. 여왕의 옷자락을 드는 시동처럼 두근거리며 나무 옷걸이에 옮겨 걸었다. 상하지 않도록 한 솔기 한 솔기 치밀하게 뜯어내는 건 다음의 일이었다.

  “기분이 좋아 보이네.”

  유리가 뭉친 등근육을 풀며 말을 걸었다. 팔꿈치를 오래 들고 있어야 하는 게 문제인지, 유리의 상체 근육은 돌아가며 말썽이었다.

  “응, 여기를 이렇게 잡으면 본래 분위기가 그대로 나면서 피트감은 아주 다를 거야. 할머니를 아주 많이 사랑했나봐. 아까 어쩐지 안아주고 싶더라. 부적절할 것 같아서 관뒀지만. 포옹이 자연스러운 문화권이라면 안아줬을 텐데.”

  “정말 그 코트 때문에 기분이 좋은 거야? 더 큰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더 큰 이유?”

  “내 관찰이 틀렸을 수도 있지만 요즘 경민씨가 좀 달라진 거 같더라고. 그래서 네가 전반적으로 예전보다 기분이 좋아 보이는 게 아닌가 싶어서.”

  유리가 주섬주섬 늘어놓자, 한아가 환하게 웃었다.

  “너도 느낀 거야? 나만 느끼는 줄 알았네.”

  “드디어 사람이 되었던데.”

  유리가 낄낄거렸다.

  “그치? 언제까지고 어린애일 줄 알았는데, 갑자기 아주 다른 얼굴로, 나를 똑바로 봐주는 거야. 매 순간 나한테 집중하는 거 있지? 처음 사귈 때도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산만하기 짝이 없었는데, 아예 다른 사람처럼…… 희한하네, 희한해.”

 

  “오늘은 와인 먹으러 오라더라. 예전에는 집에 잘 초대 안 했었거든. 굉장히 지저분한데다가 늘 친구들이 와글와글해서. 경민이 친구들, 아주 원시 공동체 사회잖아. 아무도 제대로 자리잡지 않고 매일 포커판에 배달 음식 시켜 먹기 바빴지. 그런데 싹 집에 보내고 대청소도 하고 있나봐.”

  “뭐라도 씐 거 아냐? 사람이 안 하던 짓 하면 죽는다던데.”

  한아가 손을 멈췄다.

  “뭔가, 변화가 너무 급격해서 불안해지네?”

  “변하게 된 계기가 뭐야?”

  “아무래도 그 캐나다 여행인가? 시기적으로 그런 거 같아. 그때 그렇게 무서웠나……”

   

  저녁, 한아는 과일을 사서 경민의 집으로 향했다. 

 해방촌에 있는 경민의 집은 전에 살던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집주인의 허락을 받고 대대적으로 개조한 것으로, 여름에 유난히 더운 것만 빼면 가격 대비 꽤 괜찮은 집이었다. 

 지중해풍 회벽 가운데 예쁜 타일 조각이나 거울 같은 게 박혀 있어서 따로 꾸미지 않아도 좋았다.

 한아도 디자이너지만, 디자이너들은 결국 남 좋은 일이 될 걸 알면서도 디테일 하나에까지 성실하다는 점에서 사랑스럽고 안쓰러운 존재들이었다. 어디 가서 부자되셨길…… 한아는 누구에게 기원하는지도 모르면서 두 손을 모았다. 

 경민은 그 아름다운 집을 꾸준히 망치면서 계약을 두 번 갱신했고, 솔직히 경민에게 아까운 집이라고 한아는 생각했었다. 

 오랜만에 방문하려니 어색한 감도 없지 않아서, 한아는 잠깐 길 바깥에서 건물 꼭대기를 올려다보았다.

  그때, 공동 현관에서 경민이 나왔다. 대청소가 끝나지 않았는지 분리수거 쓰레기를 양손에 든 채였다. 

 한아는 경민을 부를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는데, 경민이 평소에 분리수거를 제대로 안 해서 몇 번 화낸 적이 있던 한아가 경민이 꼼꼼히 쓰레기를 버리는 모습에 다소 감동했기 때문이었다. 

 착하잖아, 내가 안 볼 때도 하고 있었구나. 전에는 어차피 지구는 미국 사람들이 다 망칠 거라고 소용없는 일이라고 잔소리하지 말라더니…… 역시 보이는 것보다 괜찮은 녀석이야. 

 한아는 경민이 분리수거를 마치면 놀래켜줘야지 싶어 더 전봇대 뒤로 몸을 숨겼다.

  “이건 플라스틱이야, 페트야?”

  웅크리고 있던 경민이 혼잣말을 하며 망설였다. 그러더니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는, 대충 숨은 한아를 발견 못한 채, 입을 벌렸다.

  경민의 입에서 태어나 한 번도 본 적 없는 강렬한 빛줄기가 뿜어져나왔다. 그 빛은 경민의 손에 들린 일회용 음료수병을 핥았다. 순간이었지만 레이저처럼 강렬했다.

  “음, 페트구나.”

  놀란 한아가 과일 봉지를 떨어뜨렸다. 사과 한 알이 내리막길을 따라 굴러갔다. 빈혈인가? 빈혈이라서 눈앞이 번쩍인 걸까? 어지러워. 지금 대체 뭘 본 거지?

  “어, 한아야, 언제 왔어?”

  얼굴 가득 웃으며 경민이 한아를 반겼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었다.

   

  여전히 눈꺼풀에 어려 있는 빛의 잔상에 눈을 비비며, 경민을 따라 집으로 올라갔다. 계단 하나하나를 밟을 때마다 긴장이 쌓여갔다.

 

  집은 깨끗했다. 집의 인상이 아예 달라 보일 정도였다. 경민은 와인의 코르크를 신중하게 땄다. 레스토랑에서 일한 적이 있어서 눈감고도 딸 수 있을 텐데, 유난히 동작에 신경을 쓰는 것처럼 보였다.

  “어때, 입에 잘 맞아? 너무 드라이하지 않은 걸 좋아할 듯해서.”

  한아는 와인이 무슨 맛인지도 모르겠는 상태로 연이어 삼켰다.

  “응. 맛있네.”

  “화이트 쪽이 나았던 거지? 레드 와인보다 이쪽 좋아하는 거 맞지? 과일 좀 씻어올까?”

  “아니, 내가……”

  둘은 경쟁적으로 함께 싱크대로 갔지만, 먼저 팔을 걷은 경민이 과일을 씻기 시작했다. 잘 그을린 팔이었다. 지구의 위선과 경선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며 태양을 받은 팔.

  그 그을음을 가늠하던 한아가, 돌연 경민의 팔을 꽉 잡았다.

 

  “너 여기 큰 흉터 있었잖아. 사이클 타다가 넘어져서. 그거 어디 갔어? 재작년에 생긴 거.”

  “……흉터?”

  “흉터가 이따만 했잖아!”

  한아는 얼른 다른 쪽 팔도 잡아서 확인했지만 흉터 따위는 없었다. 보호 장비도 없이 사이클을 타다가 경사면에 제대로 갈아서 꽤 심한 흉터가 남았었다. 

 몇 달 전에도 본 기억이 있었다. 그러나 경민의 팔은 균일한 모래색, 짙어진 곳도 옅어진 곳도 없었다.

  “아아, 그거. 최근에 피부과에 있는 사촌 형이 새로 들어온 기계 시험해보자고 공짜로 시술해줬어. 흉터 없애는 연고도 좋은 게 있다고 줬는데, 진짜로 없어지더라고. 그게 범위는 넓어도 얕은 흉터였잖아. 말끔하지?”

  한아는 머릿속에서 점점 커져가는 의심이 착란의 결과인지, 술기운 때문에 든 엉뚱한 생각인지, 아니면 정말로 합리적인 추론인 건지 알 수 없어서 싱크대에서 물러섰다. 

 원래는 길게 머물 생각이었지만, 경민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만큼만 머물다 경민의 집을 나서고 말았다.

 

 
추천 (1) 선물 (0명)
IP: ♡.252.♡.103
산동신사 (♡.173.♡.19) - 2023/11/13 10:11:48

카나다에서 무슨일이 있었는지는 한참 걸려야 내막이 드러날것 같은데요.우주인이라도 만났을가?

단차 (♡.252.♡.103) - 2023/11/13 10:17:08

금방 올려드릴게요.ㅋㅋ

로즈박 (♡.43.♡.108) - 2023/11/13 11:37:18

오우야..드라마에서처럼 벼락 맞아서 누구랑 몸이 바뀌운건 아닐가요?ㅋㅋ
본건 잇어가지고 추리를 좀 해봣네요

단차 (♡.234.♡.82) - 2023/11/13 12:53:59

소설은 보면서 추리하는 재미도 쏠쏠하죠.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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