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천도룡기 3-5

3학년2반 | 2022.03.03 07:19:05 댓글: 0 조회: 373 추천: 0
분류무협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52487


의천도룡기(倚天屠龍記) 제 3 권


제 5 장 아미파의 결의(決議)


장무기와 촌녀가 동북방을 바라보니, 어스름하게 여명이 밝아오
는 가운데 녹색 옷을 입은 사람 모습이 눈덮힌 벌판을 가로질러
바람처럼 질주해 오는 것이 보였다. 쌍방의 간격이 좁혀지자 녹
색 경장 차림의 여인임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우선 정민군과 몇 마디 나누며 장무기와 천녀를 힐끗 쳐
다보더니 곧 가까이 다가왔다. 보복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옷자
락을 표표히 날리며 접근해 오는 신법이 여간 날렵한 것이 아니
었다.

장무기는 비로소 그녀의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나이는
어림잡아 열 일곱, 청아하면서도 빼어난 미모의 소유자였다. 장
무기는 다소 의아해 했다. 앞서 그녀가 전개한 신법과 웅후한 진
력이 깃들인 장소(長嘯)로 미루어 필시 정민군보다 나이가 많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 추측이 빗나간 것이다.

그녀는 정민군에게 얘기를 들어 장무기에게 적의를 품고 있을
텐데도 불구하고, 허리에 찬 검을 뽑아 들지 않은 체 빈손으로
다가왔다.

"주 사매, 조심해. 이 귀신 같은 계집은 사악한 무공을 쓴다."

정민군이경고를 한 마디 던지자 그녀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
덕이더니, 걸음을 멈추고 온화한 음성으로 물었다.

"두 분의 존함이 어찌 되시는지요? 무슨 일로 저희 정 사저에게
부상을 입혀 하셨습니까?"

그녀가 다가올 때부터 장무기는 줄곧 낯이 익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는데, 지금 목소리를 듣자 이내 짚이는 사람이 있었다.

'그렇구나! 바로 그 여자야. 육칠 년 전 한수(漢水)에서 몽고군
에게 쫓기던 상우춘 형님과 같이 배에 타고 있었던 뱃사공의 딸
이 주지약이 틀림없다. 태사부님께서 무당산으로 데려가셨을 텐
데, 어째서 아미파 제자가 되었을까?'

그 때 일을 생각하니 가슴 뭉클한 감회가 일었다. 아울러 태사
부 장삼봉의 안부도 궁금해졌다. 그러나 장무기는 이내 생각을
돌렸다.

'장무기는 이미 죽고 없는 몸, 지금의 나는 한낱 촌부에 불과하
다. 여기서 그리움이나 감상에 빠져 신분이 노출되는 날이면 결
국 풍파가 꼬리를 물고 밀어닥칠 것이고, 큰아버지인 금모사왕에
게도 해가 미칠 것이다. 그러면 억울한 죽음을 당하신 부모님의
뜻이 헛되고 말리라.'

촌녀는 주지약을 쏘아보면서 차갑게 웃었다.

"당신의 사저는 쌍장으로 내등을 공격하다가 제풀에 손목이 부
러졌는데, 나더러 책임지라는 말인가요? 직접 물어 보세요. 내가
손을 쓴 적이 있느냐?"

이 말을 듣고 주지약은 정민군을 돌아 보았다. 그게 사실인지
묻는 눈치였다. 정민군은 당황을 감추기 위해서 화를 발칵 냈다.

"너는 저 두 연놈을 잡아다가 사부님의 처분에 맡기기만 하면
돼!"

"제 생각에는 두 분이 언니께 의도적으로 실례를 범한 게 아니
라면, 그냥 웃어넘기는 것이 좋겠군요."

"아니 뭐라고? 넌 지금 적을 돕겠단 말이냐?"

정민군은 버럭 소리를 지르며 얼굴에 서리가 맺혔다. 장무기는
언젠가 호접곡 부근 숲 속에서 오늘과 똑같이 표독스러운 정민군
을 본 적이 있었다. 팽화상을 공격할 때, 기효부가 팽화상의 역
성을 들다가 정민군과 언쟁 끝에 대판 싸움을 벌였었다. 장무기
는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사저랍시고 정민군이 다시 사나운 심
통을 부린다면, 기효부보다 어린 주지약은 도리없이 당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주지약은 기효부와는 달리 그녀에게 순순히 복종
했다.

"그럼 분부에 따르겠습니다."

"좋다. 우선 저 못 생기고 더러운 계집부터 무릎을 꿇리고 손목
을 끊어 버려라!"

"알겠습니다. 언니도 저를 도와 주세요."

주지약은 촌녀에게로 돌아왔다.

"그럼 실례를 범하겠어요. 그대의 고명한 솜씨를 좀 배울까 하
는데....."

"웬 잔소리가 그리도 그리도 많으냐? 어디 덤벼 봐라!"

촌녀는 냉소를 터뜨리며 몸을 솟구치더니 번개처럼 연거푸 삼
장을 후려쳤다. 그러자 주지약은 몸을 비스듬히 해서 그 장력안
으로 파고들었다. 왼손으로 금나수법을 써서 상대방의 팔을 움켜
잡았다. 이는 수비를 위한 공격 수법이었다.

장무기의 내공력은 막강하나 무술의 초식은 아직 터득치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주지약과 천녀는 서로 신속한 타법을 구사했다.
주지약의 아미면장은 경쾌하고 신속한 반면에, 촌녀의 장법은 전
혀 짐작도 못할 정도로 기괴망측하였다. 장무기는 내심 감탄했
다. 아울러 어느 쪽도 다치거나 이기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이십여 초를 주고 받는 동안에 두 여자는 저마다 몇 차례씩 위
기에 처했지만 절묘한 신법으로 역습을 가해 상대방의 공격을 무
마시켰다.

"받아랏!"

갑자기 촌녀는 고함을 지르면서 왼손으로 주지약의 어깨를 후려
쳤다. 순간 찌익 하는 소리와 함께 주지약은 손을 되돌려서 접근
해 곧 촌녀의 옷자락을 찢어 버렸다.

두 여인은 약속한 듯이 몸을 튕기며 뒤로 물러섰다. 모두 얼굴
이 불그스레 상기되었다.

'아, 대단한 금나수법이군!'

촌녀는 감탄을 하면서 다시 덮여들려는데 주지약이 갑자기 양미
간을 잔뜩 찌푸리면서 자신의 가슴을 움켜쥔 채 쓰러질 듯 휘청
거렸다.

"주..... 주 소저.....!"

장무기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쳤다. 얼굴에는 걱정스런 빛이
감돌았다. 주지약은 그 긴 수염에 장발을 늘어뜨린 남자가 자기
를 몹시 걱정해 주는 것을 이상히 여겼다.

"사매, 어찌 된 거냐?"

정민군이 곁으로 다가가자 주지약은 왼손을 그녀의 어깨에 걸치
면서 고개를 저었다. 정민군도 촌녀에게 혼줄이 난 터라 그녀의
예리함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주지약을 윽박질러서 싸움을
걸게 한 것은 순전히 그녀의 질투심 때문이었다. 스승인 멸절사
태는 항상 이 어린 사매를 칭찬했다. 남다르게 깨우침이 빨라 장
차 아미파의 명성을 빛낼 사람도 그녀라고 자신있게 공언하곤 했
다. 그러기 때문에 스스로를 사문의 계승자라 믿고 있던 정민군
은 항상 불만에 가득 차 있었다.

과연 주지약의 무공은 자기보다 훨씬 월등했다. 자기는 단 일
초도 제대로 공격하지 못하고 손목이 꺽였는데, 그녀는 이십 초
나 겨루고서야 패색을 보인 것이다. 정민군은 수치심과 질투심이
불길처럼 솟구쳐 전신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러나 자기 어깨에
걸쳐 있는 주지약의 팔에는 전혀 기력이 없었다. 그제서야 그녀
가 중상을 입은 것을 알아챘다. 정민군은 다시 그 촌녀가 덤벼들
까 봐 급히 발길을 재촉하면서 말했다.

"우선 이곳을 떠나자!"

정민군은 주지약을 부축하면서 동북방쪽으로 떠났다. 그 촌녀는
장무기의 얼굴 표정을 살펴보더니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흥! 그 몰골을 해 가지고 아리따운 아가씨를 보더니 혼비백산
하였군!"

장무기는 주지약과 한수에서 만났던 이야기를 하려다 입을 다물
었다. 지난 얘기를 들려 주어 보았자 이해할 리도 없으니 차라리
정체를 밝히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저 여자가 밉든 예쁘든 나와 무슨 관계가 있소? 난 저 아가씨
가 혹시 다치지나 않았나 해서....."

"그게 정말인가요?"

"내가 그대를 속여 뭣하겠소? 그런데 아미파 제자 중에 저토록
젊은 낭자가 일류 고수에 못지 않는 무공을 지녔다니 정말 놀라
운 일이오."

"사실이예요. 정말 대단했어요."

장무기의 눈길은 주지약의 됫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 올
때는 날렵하던 걸음걸이가, 이제는 비틀거리며 질질 끌려가고 있
었다. 한수 나룻배 안에서 투정을 부리는 자기에게 밥과 반찬을
떠 먹이던 깜찍한 소녀, 작별을 하면서 눈물을 닦아 주고 손수건
을 주던 그 소녀가 바로 저 처녀였다. 제발 상처가 깊지 않기를
그는 진심으로 바랬다.

"걱정할 것 없어요. 그녀는 조금도 부상을 입지 않았어요. 내가
대단하다고 말한 건 그녀의 무공이 아니라, 저토록 어린 나이에
마음 씀씀이가 깊고 넓다는 것이예요."

"그녀가 다치지 않았다고?"

"틀림없어요. 내 일 장이 그녀의 어깨를 후려치는 찰라, 그녀의
어깨에서 내공력이 솟아나와 내 손을 튕겨 버렸어요. 그녀는 이
미구양공을 수련했기 때문에 오히려 반탄지력에 의해 충격을 받
은 것뿐이예요."

장무기의 암울하던 얼굴이 단번에 활짝 펴졌다.

'주 소저가 멸절사태의 눈에 들어서 아미파의 진파비학(鎭派秘
學)인 아미구양공을 전수받았구나!'

이때 촌녀가 갑자기 손등을 뒤집더니 난데없이 그의 뺨을 철썩
후려쳤다. 너머나 갑작스런 일이라, 장무기는 전혀 무방비 상태
에서 얼굴 한쪽이 단번에 벌겋게 부어올랐다.

"이게 무슨 짓이오?"

"그 처녀의 미색에 넋이 다 빠져, 그녀가 부상일 입지 않았다니
까 그렇게도 좋은가요?"

촌녀는 몹시 화를 내며 말했다. 장무기도 오기가 뻗쳤다.

"내가 좋아했다고 해서 안 될 건 또 뭐요?"

그러자 촌녀는 다시 일 장을 후려쳤다. 이번에는 장무기가 고개
를 살짝 속여서 피해 버렸다. 촌녀는 화를 벌컥 내며 소리를 질
렀다.

"내게 아내가 되어 달라고 했잖아요! 그 말을 한 지 반나절도
안 됐는데 벌써 딴 마음을 품고 남의 낭자를 넘볼 수가 있는 건
가요?"

"그건 어거지요! 아까는 내가 그대의 짝이 될 수 없다고 했지
않았소? 게다가 그대는 이미 마음 속으로 정해놓은 남자가 있다
며 나한테 시집올 수 없다고 했잖소?"

"그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당신아 나에게 약속을 한 것도 사실
이잖아요! 평생 동안 날 사랑하고 돌보아 주겠다고 말이에요!"

"내가 한 약속은 물론 절대로 지킬 것이오!"

"그렇다면, 당신은 어째서 그녀의 미모에 넋을 빼앗겨 날 약을
올리는 거죠?"

"난 넋이 빠진 적이 없소!"

"난 절대로 당신이 그녀를 좋아하도록허락할 수가 없어요. 그
리고 생각하는 것도 절대로 안 돼요!"

"내 언제 그녀를 좋아한다고 했소? 그런데 어찌 당신은 그녀를
꺼리고 마음에 두는지 알 수가 없소. 그리고 그대는 오매불망 그
남자만 생각하고 있는데 그렇게도 잊어 버리지 못하겠소?"

"난 그 사람을 먼저 알았어요. 만약에 당신을 먼저 알았다면 일
생을 두고 당신을 섬겼을 거에요. 절대로 다른 남자를 염두에 두
지 않아요. 이걸 종일이종(從一二終) 즉, 일부종사라 하지요. 만
약에 두 마음을 품는다면 하늘도 용납하지 않을 거에요!"

장무기는 촌녀의 푸념을 듣자 마음이 착잡했다. "내가 주 소저
를 안 것은 당신보다 훨씬 먼저였소."라고 생각을 했지만, 그 말
은 안 나오고 엉뚱한 말이 나왔다.

"만약에 그대가 나 한 사람만 좋아한다면, 나 역시 당신만을 사
랑하겠소. 그러나 당신이 마음속에 다른 사람을 생각하면 나도
다른 여자를 생각할 수 밖에 없소!"

그러자 촌녀는 한참 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다. 몇 차례 입을 열
려고 망설이더니 갑자기 눈에 눈물이 핑그르 돌며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리고는 장무기가 안 보는 틈을 타서 소매자락으로 눈
물을 닦았다. 장무기가안스러운 생각이 들어 살며시 그녀의 손
을 잡으며 말했다.

"우리 이제 공연한 말다툼을 그만 하는 게 어떻소? 며칠만 더
지나면 내 다리가 완쾌될 것이오. 그 때 함께 천하 명산 대천을
두루 유람이나 다니는 게 어떠하겠소?"

그러자 촌녀는 고개를 바로 돌렸다. 얼굴에는 여전히 수심이 가
득한 채 입을 열었다.

"저.....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듣고 화내지 말아요."

"무슨 일이오? 내 힘 닿는 데까지 도와드리겠소."

그래도 촌녀는 한동안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입으로는 화를 내지 않는다고 했지만, 속으로는 화를 낼지도
모르잖아요?"

"알겠소. 마음 속으로도 화를 내지 않겠소!"

장무기에게 거듭 다짐을 받고서 이번에는 반대로 촌녀가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

"사실..... 내가 중원에서 머나먼 이곳 서역까지 만리 길을 달
려온 것을 그분을 찾기 위해서였어요. 얼마 전에는 그분의 종적
을 들었었는데, 여기와서는 그분의 소식을 다시는 듣지 못했어
요. 당신의 다리가 완쾌되면 날 도와서 그분을 찾아 주세요. 그
분을 만나보고 나서 당신하고 같이 유람을 다니겠어요. 어때요?"

"흥!"

장무기는 불쾌한 기분을 억제하지 못하고 콧방귀를 터뜨렸다.

"방금 화내지 않기로 약속했는데, 이건 화를 내는 게 아닌가
요?"

그러자 장무기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좋소. 내 그 사람을 찾도록 도와 주겠소."

"당신은 정말 좋은 사람이예요."

촌녀는 몹시 기뻐했다.멀리 지평선에 눈길을 던진 채 흥분을 감
추지 못하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우리가 그 사람을 찾고 나면 이토록 오매불망 찾아다녔다고 말
해 줘야지. 그래야만 날 미워하지 않을 거야..... 그 분이 뭐라
고 말하든 그대로 따를 거고, 그분을 위하는 일이라면 무슨 짓이
라도 할 거야....."

"도대체 당신의 그 사람은 어디가 좋아서 그토록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이오?"

그러자 촌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분이 어떻게 좋은지 그걸 어떻게 말로 설명해요? 우리가 과
연 그분을 찾아낼 수 있을까요? 그분이 날 만나면 또 때리고 욕
을 할까요?"

장무기는 그녀의 멍청스런 표정을 보자,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달래 주었다.

"그러지는 않을 것이오. 그는 절대로 당신을 때리거나 욕을 하
지 않을 것이오."

그러자 촌녀는 앵두같은 입술을 깨물면서 곧 쏟아질 듯한 눈물
을 억지로 참았다.

"그래요. 그분은 날 사랑하고 아껴 주었어요. 다신 날 때리거나
욕을 하지 않을 거예요."

장무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만약에 이 세상 어디엔가 이 낭자처럼 내게 마음을 주고 애틋
하게 연모를 바치는 여인이 있다면, 이제껏 겪은 것보다 더 무서
운 고통과 난관이 닥쳐오더라도 행복할 것 같다.'

그는 눈 덮힌 들판에 찍힌 주지약과 정민군의 발자국을 따라보
면서 다시 생각에 잠겼다.

'만약에 정민군의 발자국이 내 것이라면, 지금쯤 나는 주소저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고 있겠지.....'

갑자기 촌녀가 큰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장무기는 무지개빛 환
상 속에서 깨어났다.

"무슨 일이오?"

"그 아미파 소녀는 나하고 사생 결단을 내기 싫어서 부상을 가
장하고 돌아갔지만, 그 정민군은 말끝마다 우리를 잡아다 그녀의
사부에게 데려간다고 한 걸 보면 멸절사태는 필시 부근 어디엔가
있어요. 그 늙은 비구니는 호승심(好勝心)이 강해 정민군의 얘기
를 듣고 안 올리가 있겠어요?"

장무기는 기효부를 일장에 쳐죽인 그 잔혹스러운 광경을 생각하
자 가슴이 철렁했다.

"그 늙은 비구니의 무공이 워낙 뛰어나서 우리는 도저히 그의
상대도 안 돼요."

"당신은 그녀를 본 적이 있어요?"

"아미파의 장문인인데 절세 무공을 지닌 게 당연하지 않겠소.
난 걸을 수가 없으니 당신이나 달아나시오."

"흥, 내 어찌 당신을 버리고 혼자 달아나서 살 수 있겠어요? 내
양심이 그렇게 나쁜 줄 알았나요?"

그 촌녀는 화를 내면서 그에게 한바탕 면박을 주더니 이맛살을
약간 찌푸리고 잠시 궁리를 했다. 그런 다음 장작더미에서 굵직
한 장작을 골라 내고는 다시 부드러운 나뭇 가지를 모아서 껍질
을 벗겨 밧줄로 꼬은 다음에 그것으로 썰매를 만들었다. 썰매의
이음새를 단단히 묶어 놓더니 장무기를 덥석 안아서 썰매 위에
눕히고 다리를 뻗게 한 다음, 썰매를 끌고 서북방 쪽으로 달려갔
다.

장무기는 그녀의 뒷모습이 마치 새벽 바람에 흔들리는 연꽃처럼
아름다웠다. 그녀는 썰매를 끌고 바람처럼 눈 덮힌 들판을 가로
질려 갔다.

그녀는 쉬지 않고 삼, 사십리를 치달렸다. 장무기는 미안한 마
음이 들어서 입을 열었다.

"이봐요, 좀 쉬었다 갑시다!"

그러자 촌녀는 눈을 흘기며 말했다.

"이봐요가 뭐예요? 난 이름도 없나요?"

"당신이 말을 안 해주니 내가 알 도리가 있소? 추주량이라고 가
르쳐 줬지만 난 그대가 아름다운 것 같소."

그 촌녀는 픽하고 웃음을 터뜨리더니 치닫던 걸음을 멈춰 버렸
다. 그녀는 흐트러진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좋아요. 당신한테 말해 주지 못할 것도 없죠. 내 이름은 주아
요."

"주아, 주아..... 진주 보배의 주(珠)자겠군?"

"진주의 주 자가 아니라 독거미의 주(蛛)예요."

장무기는 깜짝 놀랐다.

"세상에, 어디 그 주자를 이름에다 쓰는 사람이 있겠소?"

"내 이름이 바로 그 주(蛛)자이니 당신이 부르기에 꺼림직하면
부르지 않아도 좋아요."

"당신 아버님께서 지어 주신 거요."

"흥! 만약에 아버님이 지어 주셨다면 나는 사용하지도 않을 거
예요. 엄마는 나한테 천주만독수(千蛛萬毒手)를 수련하게 해주었
거든요. 그래서 이 이름을 쓰라고 했던 거죠."

장무기는 <천주만독수>란 다섯 글자를 듣자 저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주야가 다시 말했다.

"난 어릴때부터 수련을 했지만 아직도 높은 수준에 이르지 못했
어요. 만약에 내가 천주만독수만 터득하면 멸절사태, 그 늙은 비
구니도 겁날 것 없어요. 거미를 한번 볼래요."

주아는 품속에서 금빛이 찬란한 금합(金盒)을 한 개 꺼내 뚜껑
을 열자 엄지손가락만한 거미 두 마리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거
미의 등판에는 얼룩 무늬가 선명하게 찍혀 번들번들 빛이 났다.

'거미의 몸뚱이에 얼룩무늬가 선명하면 극독(劇毒)을 지니고 있
다. 사람이 물리기만 하면 치료하기가 극히 어렵다.'

"당신은 내 이 보물덩어리 거미가 얼마나 좋은지 모르죠? 잠깐
만 기다려요."

주아는 말을 마치자 마자 몸을 날려 커다란 나무 위로 올라가
사방을 둘러 본 다음 다시 땅으로 내려와 말했다.

"우린 갈 길이 바쁘니 거미 얘기는 나중에 천천히 하죠."

썰매를 끌고 다시 칠, 팔 리쯤 달려가자 산 아래 계곡으로 접어
들었다. 주아는 장무기를 썰매에서 안아 내리더니, 썰매에 바윗
돌 몇 개를 얹어서 다시 끌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절벽 끝
까지 달려가더니 갑자기 발을 멈추고 바윗돌이 담긴 썰매를 절벽
아래로 밀었다. 우르르, 꽝! 하며 소리는 한참 동안 끊이지 않았
다. 장무기가 왔던 길을 뒤돌아보니, 눈 덮힌 지면에는 두 줄기
썰매 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었다. 그제서야 그녀의 의도를 깨달
았다. 만약에 멸절사태가 따라 온다면 틀림없이 썰매자국만 따라
올 것이다. 여기까지 와서는 굴러 떨어진 썰매를 발견할 것이다.
그리고 썰매와 함께 우리도 떨어졌다고 생각할 것이다. 과연 주
아는 세심한 여자였다.

주아가 쪼그리고 앉아서 말했다.

"내 등에 업혀요."

"날 업고 가려면 너무 힘들 텐데....."

"힘이 드는지 안 드는지 내가 모르는 줄 알아요?"

주아는 눈을 흘겼다. 장무기는 더 이상 말을 못 붙이고 그녀의
등에 업혔다. 그리고 살며시 그녀의 목덜미를 끌어안았다.

"내가 숨막혀 죽을까 봐 그래요? 그렇게 살며시 끌어안으니 간
지러워 죽겠어요."

그러자 장무기는 조금 더 세게 힘주어 그녀의 목덜미를 감싸안
았다. 돌연 주아는 몸을 솟구쳐 그를 업은 채 나무 위로 올라갔
다. 그 나무 숲은 곧바로 서쪽 방향으로 펼쳐져 있었다. 주아는
껑충껑충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뛰어 올라갔다. 그녀는 체격이
큰 장무기를 업고서도 날렵한 보법(步法)으로 칠, 팔십 그루를
건너뛰어도 전혀 힘든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숲 가까이 보이는
산기슭 아래 이르러 비로소 뛰어내리더니 그를 살며시 땅에다 내
려놓았다.

"여기에다 외양간을 하나 만들면 어떨까요?"

"외양간.....? 외양간을 지어 뭘 하려고?"

주아는 어리둥절한 장무기를 바라보면서 깔깔 웃었다.

"송아지 집을 만드는 거죠. 당신의 이름이 아우(阿牛), 즉 송아
지란 뜻이 아닌가요?"

"그럴 필요는 없는 것 같소. 사, 오 일만 지나면 부러진 뼈도
완전히 굳어질 거요. 사실 지금 억지로 걷자면 걸어갈 수도 있
소."

"흥! 억지로 걷는다구요? 이미 추팔괴가 되었는데, 다시 절름발
이 송아지가 되면 참 볼 만하겠군요!"

주야는 말을 하면서 나뭇 가지를 하나 꺾어서 바위 옆에 쌓인
눈을 쓸어 버렸다. 그런 다음 그녀는 커다란 바위 틈에 지붕을
엮어 얹었다. 이윽고 바위 틈에는 하늘이 가려지고 방이 한 칸
마련되었다. 주아는 다시 눈을 큼직한 덩어리로 몇 개 만들어서
출입구만 남겨 두고 모두 막아 버렸다. 그제서야 그녀는 손수건
을 꺼내 얼굴에 땀을 닦았다.

"여기서 기다리세요. 난 먹을 걸 찾아 올 테니."

"난 별로 시장하지 않소. 당신 너무 힘들지 않소? 좀 쉬었다가
가시구료."

"내 걱정을 해 주시면 진심으로 하세요! 공연히 입에 발린 말로
만 하지 말고....."

주아는 잽싼 걸음으로 숲 속으로 들어갔다.

장무기는 바위 벽에 기대앉아서 주아의 가냘픈 몸매며 부드럽고
도 교태어린 음성을 생각하지 한결같이 절세미녀의 품범(風範)이
었다. 한가지 흠이라면 추하게 생긴 그 얼굴 하나뿐이었다. 그는
임종할 무렵의 어머니 말씀이 떠올랐다.

"예쁜 여자일수록 더욱 잘 속이니, 넌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주아는 얼굴이 아름답지는 않으나 얼마나 날 위해 주는가? 일
생을 함께 지내고 싶다. 그렇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다른 남자
가 차지하고 있으니, 나는 그 틈에 도저히 끼어들 수 없다.'

그가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주아는 어느새 설계(雪
鷄) 두 마를 들고 돌아왔다. 그녀는 불을 지피고 그것을 구웠다.
장무기는 설계 한 마리를 게걸스럽게 먹어 치웠다. 주아는 그가
입맛을 다시는 모습이 우스운지, 입가에 빙긋 웃음이 감돌더니
제 몫으로 남긴 닭다리 두 개를 그에게 건네주었다. 장무기는 미
안하여 사양했다. 그러자 주아는 발칵 화를 냈다.

"먹든지 말든지 맘대로 해요. 공연히 위하는 척 위선을 떠는 사
람은 내 단칼에 새 구멍을 뚫어 버리고 말 거예요!"

그 말에 장무기는 잠자코 닭다리를 먹어 치웠다. 그는 기름 투
성이가 된 입술을 쓱쓱 문질렀다. 주아가 고개를 돌려서 한참 동
안 장무기의 얼굴을 쳐다보자, 장무기는 여간 멋적지가 않았다.

"내 얼굴에 뭐가 묻었소?"

"당신 몇 살이나 됐죠?"

"스물 하나."

"아하! 나보다 겨우 세 살 위네요? 그런데 웬 수염을 그렇게 길
게 길렀죠?"

"몇 년 동안 깊은 산 속에서 혼자 살았소. 만날 사람도 없는데
수염을 깎을 필요가 있었겠소?"

주아는 허리띠에 찬 비수를 꺼내서 그의 얼굴을 누르며 천천히
수염을 깎아 주었다. 칼날이 예리해서 장무기는 전혀 아픔을 느
끼지 않았다. 그녀의 매끈하고 따사로운 손끝이 양쪽 뺨을 더듬
어가자 그의 심장은 마구 뛰었다. 그 비수가 그의목덜미까지 내
려오자 주아는 웃으면서 엄포를 놓았다.

"내가 조금만 힘을 주면 어떻게 될까요? 무섭지 않아요?"

그러자 장무기도 웃으며 말했다.

"낭자의 옥 같은 손에 죽는다면, 귀신이 되어도 즐거울 것이
오."

"그럼 즐거운 귀신이 되어 봐요!"

주아는 칼날을 뒤집더니 칼등으로 그의 목덜미를 쓰윽 그었다.
장무기는 깜짝 놀랬다. 피할 틈도 없이 칼등이 목을 스치고 지나
가자, 체내에 잠재한 구양신공(九陽神功)이 반탄력을 발했다. 순
간, 주아의 손에서 비수가 튕겨 날았다. 그제야 장무기는 그녀가
칼등으로 장난을 했음을 깨달았다. 주아는 손목이 시큰해져서 자
기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더니 금새 활짝 웃었다.

"즐거운가요!"

장무기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아는 말끔하게 다듬어진
그의 얼굴을 한참 동안 넋을 잃고 바라보더니, 갑자기 장탄식을
했다.

"웬 한숨이오?"

주아는 대답도 하지 않고 그의 머리칼을 다듬기 시작했다. 머리
를 ㄼ게 다듬어서 위로 틀어올린 다음 나뭇 가지를 깎아서 비녀
대신 꽂아 주었다. 비록 옷은 더럽기 짝이 없고 또 너무나 작았
지만 타고난 모습은 변함이 없이 훌륭했다. 추팔괴가 다시 준수
한 청년으로 둔갑한 것이다. 주아는 다시금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의 본래 모습이 이럴 줄 정말 몰랐어요."

장무기는 그녀의 마음을 꿰뚫어 보았다. 자신의 추악한 용모를
한탄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본바탕은 외모에 나타나는 게 아니오. 세상에 있는 아
름다운 사물 중에 독을 품은 것이 얼마나 많소. 깃털이 화려한
공작새도 그 쓸개에는 맹독이 들어있고, 선학(仙鶴)의 붉은 벼슬
에도 무서운 맹독을 품었소. 뱀이나 전갈 따위의 곤충도 색깔이
화려할수록 그 독성도 강렬할 것이오. 당신이 품고 다니는 독거
미는 얼마나 아름답소? 사람도 마찬가지요. 아무리 천하일색인
미녀라도 심성이 선량치 못하다면 무엇에다 쓰겠소?"

"그럼 심성이 착한 사람은 어디다 쓰는지 말해 줄래요?"

주아는 웃으며 되물었다. 장무기는 말문이 막혀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잠시 생각하더니 그제서야 말했다.

"마음이 선량하면 남을 해치지 않소!"

"남을 해치지 않는 것은 또 뭐가 좋은 거죠?"

"당신이 남을 해치지 않으면 자신의 마음이 편안해지고 하는 일
마다 떳떳할 거고."

"난 남을 해치지 않으면 속이 시원치 않는걸요. 곁에 있는 사람
의 말도 못하게 참혹한 꼴을 당하면 내 마음도 편안해지고, 하는
일마다 잘 풀리더군요."

그러자 장무기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 말은 억지소리요."

"내가 남을 해치지 않겠다면, 이 천주만독수를 수련해서 무엇에
쓰겠어요? 내 자신이 받는 고통은 세상에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걸요. 그런데 장난삼아 겪는 줄 아세요?"

주아는 말을 끝내자 다리를 틀고 앉아서 체내의 내공을 일주천
(一周天) 시키더니, 품에서 금합(金盒)을 꺼내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양손의 손가락을 두 개씩 펴서 합 안에 집어넣었다.

합 안에 있는 얼룩거미 두 마리가 슬슬 기어오더니 그녀의 손가
락을 하나씩 물고 있었다. 그녀는 심호흡을 한 모금 들여마시고
양팔을 살며시 떨면서 내력으로 거미의 독과 대항했다. 얼룩거미
는 그녀의 손가락에서 피를 빨았다. 그녀 역시 혈맥(血脈)을 운
전(運轉)하여 얼룩거미의 독액을 피에 섞어서 끌어냈다.

주아의 얼굴에는 엄숙한 기색이 감돌았다. 동시에 이마 한 가운
데의 양쪽 태양혈 위에 은은하게 검은 기운이 둘러싸는 순간, 이
를 악물고 혼신의 힘을 다 쏟아 고통을 참았다. 얼마쯤 지나자
그녀의 콧잔등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했다. 그녀가 이
무공을 반시간쯤 수련하자, 거미 두 마리는 배가 불룩해져서 마
치 둥근 공처럼 되더니, 그제야 합 안에 들어가 갚은 잠에 빠져
들었다.

주아는 다시 운공을 했다. 얼마 후 얼굴의 흑기(黑氣)가 점점
흐려지면서 혈색이 다시 감돌기 시작하자, 숨을 한 모금 토해냈
다. 그 냄새를 맡은 장무기는 달콤한 향기를 느끼면서 즉시 현기
증이 일어났다. 그녀가 뱉어낸 숨결 속에도 맹독이 섞여 있는 것
같았다. 주아는 눈을 뜨면서 살짝 미소를 지었다.

"얼마나 수련해야 극치에 도달하는 거요?"

"그 얼룩거미의 몸뚱이가 얼룩빛에서 검정으로, 다시 검정에서
흰색으로 변해야만 독이 없어지고 죽는 거예요. 그 때 가서는 거
의 몸에 있던 독액이 모두 다 손가락으로 온 것이예요. 최소한
백 마리는 거쳐야 기본이 완성되죠. 진짜 고수가 되려면 일, 이
천마리도 많은 건 아니예요."

장무기는 그녀의 말을 듣자 머리칼이 곤두섰다.

"그 많은 얼룩거미를 어디서 구하오?"

"본인들이 직접 기르면 이놈들이 새끼를 치거든요. 그래도 모자
라면 산지로 가서 잡기도 하지요."

"천하에 무공이 얼마나 많소? 그런데 하필이면 이 독공(毒功)을
수련하는 것이오? 이 거미독은 극렬하기 때문에 체내에 흡수되면
아무래도 좋지 못할 것 같소."

"천하의 무공이 많기는 하지만 어느 무공이 이 천주만독수보다
월등하겠어요? 당신도 내공이 대단하다고 거만 떨지 말아요. 내
가 이 무공만 연성(鍊成)되면 아마 내 손가락 하나도 당해내지
못할 거예요."

주아는 말을 하면서 내공을 손가락에 응집시키고는, 곁에 있는
나무 한 그루를 찍어 보았다. 그러나 그녀의 공력은 아직 미숙하
여 겨우 반 치 남짓밖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자 장무기가 또 물었다.

"당신의 어머니는 무엇 때문에 당신에게 이 무공을 수련하라고
했소? 그분은 연성했나요?"

갑자기 주아의 눈이 사납고 독살스럽게 번쩍이더니 원한에 사무
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 천주만독수는 얼룩거미 이 십마리 이상 수련하면 체내에 쌓
인 독질이 얼굴 모습을 변하게 만들고, 천 마리를 수련한 경지에
이르면 더욱 흉악스럽게 변해요. 우리 엄마는 하필이면 일백 마
리까지 수련하던 도중에 아버지를 만나게 되자, 자기의 얼굴이
추악하게 되면 아빠가 싫어할까 봐 일생 동안 수련한 공력을 모
조리허물어 버렸어요. 결국은 닭 잡을 힘도 없는 평범한 여자가
되고 말았어요. 엄마는 비록 아름다움을 되찾았지만, 둘째 엄마
와 나의 두 오빠들에게 모진 학대와 멸시를 당했어요. 그러나 이
미 공력을 잃은 상태라서 당하기만 하다가 끝내 목숨마저 잃은
거예요. 흥! 얼굴만 예쁘면 무슨 소용이 있어요? 우리 엄마는 아
주 곱고 아름다운 미녀였지만, 나이가 많고 아들이 없어서 아버
지는 다시 첩을 얻게 되었고....."

장무기는 그녀의 얼굴을 다시 훑어보더니 낮은 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보니, 당신도 그 무공을 익히느라고....."

"그래요, 나는 무공을 연마하기 위해서 얼굴이 이 모양이 된 거
예요. 흥! 그 매정한 사람이 날 쳐다보지도 않는다면 내가 천주
만독수를 연성한 후에 그를 찾아 갈 거예요. 만약에 그 남자 곁
에 딴 여자가 있다면....."

"당신은 그 남자하고 혼인한 사이도 아니고, 백년해로하기로 약
속도 하지 않았을 텐데, 그런데도....."

"솔직하게 말하세요. 당신 생각은 나 혼자 짝사랑하는 게 아니
냐 이거죠? 짝사랑하면 어때요?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
데, 그 사람이 날 박정하게 대한다면, 내 이 <천주만독수>의 맛
을 보여 주고 말 거예요."

장무기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더 이상 그녀하고 변설(辨說)하
지 않았다.

주아의 성격은 매우 괴팍했다. 좋기 시작하면 한없이 좋다가도,
흉포하기 시작하면 막무가네였다. 장무기는 문득 태사부와 태사
백, 둘째 사백들이 늘 말하던 것이 생각났다. 그것은 무림에 있
는 정(正)과 사(邪)의 분별이었다. 그 말씀대로 보자면, 그녀가
수련하는 <천주만독수>는 극히 악독한 사파(邪派)의 무공이다.
그녀의 어머니도 역시 요사(妖邪)의 제일일 것이다. 생각이 여기
까지 미치자 은근히 그녀에 대해 경계심과 두려움이 우러났다.

주아는 그의 생각을 눈치채지 못하고 방 안을 들락날락하면서
온통 들꽃으로 장식했다. 장무기는 그녀가 하는 짓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문득 애처로운 생각이 들었다.

"주아, 내 다리가 다 나으면 좋은 약초를 캐어다가 당신 얼굴의
독종(毒腫)을 치료해 주겠소."

주아는 그 말을 듣더니 대뜸 안색이 변하면서 두려운 빛을 띠었
다.

"안 돼요. 절대로 안 돼요! 내가 얼마나 고통을 겪고 겨우 오늘
의 수준에 이르렀는데, 당신은 나의 천주만독공을 흐트려 놓으려
하는 거예요?"
"우리 둘이서 연구하면 공력도 흐트려 지지 않고 당신 얼굴의
독종만 치료할 수 있을 것이오."

"그건 불가능해요. 그런 방법이 있었다면 우리 엄마가 왜 몰랐
겠어요. 천하의 접곡의선 호청우 한 사람만이 그런 놀라운 재주
를 갖고 있을 거예요. 그렇지만 그는..... 그는 벌써 여러 해 전
에 죽었어요."

"당신도 호청우를 알고 있소?"

"뭐라고요?! 무엇이 이상하다는 거죠? 접곡의선의 이름은 강호
에 널리 퍼져 있어서 어느 누구나 다 알고 있어요."

주아는 장무기에게 눈을 한 번 흘기고 나서 다시 한숨을 내쉬었
다.

"설사 아직 살아 있다 해도 그 사람은 죽는 것을 보아도 구하지
않는다고 하니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그러자 장무기는 속으로 생각했다.

'주아는 접곡의선이 그의 의술을 모두 내게 전수해 준 것을 모
르고 있다. 훗날 내가 치료법을 알아내서 그녀 얼굴의 독종을 치
료해 준 후에 그녀를 한 번 놀라게 해줄 것이다.'

어느덧 밤이 되었다. 두 사람은 석벽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 한
밤중이 되자 장무기는 꿈결에 갑자기 훌쩍거리는 소리를 듣고 잠
에서 깨어났다. 정신을 가다듬고 보니 주아가 울고 있었다. 그는
그녀 옆으로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토닥거려 주면서 달랬다.

"주아, 상심할 것 없소."

그 위로의 말에 감동되었는지, 주아는 그의 어깨에 엎드려서 목
을 놓아 통곡했다.

"주아, 무슨 일이오? 어머니 생각이 나서 그러오?"

"엄마는 죽었어요! 내가 외톨이가 되니깐 아무도 날 반겨 주지
않고 어느 누구도 나와 같이 어울려 주지 않아요!"

장무기는 옷자락을 끌어올려서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면서 다정
하게 말했다.

"난 당신을 좋아해요. 난 당신을 잘 대해 줄 수 있소."

"당신은 필요없어요. 내 마음 속에는 오직 한 사람만 있을 뿐이
예요. 그 사람은 날 거들떠보지도 않고, 때리고 욕설을 하고, 게
다가 물기까지 했어요."

"그런 무정한 남자는 잊어 버려요. 내가 당신을 아내로 맞아 평
생 동안 잘 대해 주겠소."

장무기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자, 주아는 큰 소리로 외쳤다.

"안 돼요, 안 돼! 난 그 사람을 잊을 수 없어요. 또다시 내게
그 사람을 잊어 버리라고 하면 난 영원히 당신을 거들떠보지도
않겠어요!"

장무기는 수치심으로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다행히 어둠 속
이라서 주아가 그의 시뻘건 얼굴과 난감한 모습을 보지 못했다.

한참 동안 두 사람은 말을 하지 않았다.

"아우 오빠! 나 때문에 화가 났지요?"

"아니오, 나 혼자 화가 났을 뿐이오. 당신에게 하지 말아야 하
는 말을 한 것 같소."

"아니예요! 아내로 맞이하겠다는 그 말이 얼마나 듣기 좋은지
몰라요. 한 번만 더 해주겠어요?"

"당신이 그 남자를 잊지 못하고 있는데 내 어찌 다시 말하겠
소!"

장무기는 화를 내며 말했다. 그러자 주아는 손을 내밀어서 그의
손을 꼭 잡고는 부드럽게 달랬다.

"아우 오빠, 화내지 말아요. 내가 잘못했어요. 당신이 정말로
날 아내로 맞아들인다면, 난 당신 눈을 찔러 장님으로 만들어 죽
이고 말 거예요."

"당신 뭐라 했소?"

"당신이 장님이 되어야 내 흉칙한 모양을 볼 수 없고, 또 아미
파의 주 낭자를 찾아갈 수 없지 않겠어요? 만약에 그래도 그녀를
잊지 못한다면 난 당신을 죽이고, 또 아미파의 주 낭자도 죽인
다음에 자결하겠어요."

그녀는 이처럼 괴상한 말을 하면서도 음성은 뜻밖에 자연스러웠
다.

장무기는 그녀의 악독한 말을 듣자 심장이 덜컥 멎어 버리는 듯
했다. 바로 이때, 갑자기 멀리서 늙은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
다.

"아미파의 주 낭자가 너희들을 어떻게 했다는 거냐?"

주아는 펄쩍 뛸 듯이 놀라며 소리를 낮추어서 말했다.

"멸절사태예요."

"틀림없다! 바로 멸절사태다!"

그녀는 소근거리며 말했는데도 밖에 있는 그 사람은 분명하게
들은 모양이었다. 첫 번째 음성은 먼 거리에서 들렸지만 두 번째
소리는 이미 오두막 가까이에서 들려왔다. 주아는 일이 심상치
않다는 걸 알아차리자 이미 장무기를 안고 달아나지는 늦었다고
생각하고, 그저 숨을 죽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오너라! 평생 그 속에서 숨어 있을 작정이냐?"

바깥에서 냉랭한 외침이 들리자, 주아는 장무기의 손을 잡고 밖
으로 걸어나갔다. 이때 오두막집에서 이 장 거리 밖에는 백발이
성성한 늙은 비구니가 서 있었다. 바로 아미파의 장문인 멸절사
태였다. 그녀 뒤에는 수십 명이 세 줄로 나뉘어 이쪽으로 달려오
고 있었다. 그 안에는 태반이 비구니고 나머지는 남자와 여자였
다.

정민군과 주지약도 그 안에 있었다. 남자들은 제일 뒤쪽에서 있
었다. 멸절사태는 남제자들을 좋아하지 않아서 아미파의 상승무
공(上乘無功)은 전수받을 수 없었고, 지위도 여제자보다 낮았다.
멸절사태는 싸늘하게 주아를 아래 위로 살피더니 한동안 말을 하
지 않았다.

장무기도 가슴을 조이며 주아의 등 뒤에 숨어 있었다. 그는 마
음속으로 단단히 결심하고 있었다. 만약 그가 주아를 조금이라도
공격하려는 기미가 있으면, 자기는 분명 상대의 적수가 되지 못
한다 하더라도 전력을 다해 상대와 맞싸울 것이라고.

멸절사태는 흥하고 콧소리를 내면서 뒤돌아 정민군에게 물었다.

"바로 이 계집아이냐?"

"네!"

정민군은 공손히 대답했다.

순간 갑자기 우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주아는 탁 하는 소리를
내면서 몸이 이미 삼장 밖으로 날아가 떨어졌다. 두 손목의 뼈가
모두 부러져 눈밭에 쓰러져 기절해 버린 것이다. 장무기는 회색
그림자가 번뜩인 것만 봤을 뿐인데, 멸절사태는 이미 주아의 앞
에 와서 손목을 부러뜨리고 팽개친 것이었다.

그는 실로 번개와 같이 공격하고 제자리에 돌아간 것이다. 우뚝
서 있는 자세는 한 그루의 큰 고목과도 같았다.

장무기는 그의 출수를 하나하나 모두 자세히 보았지만, 실로 불
가사의하게 동작이 빨랐다. 그는 그 무서운 수법에 놀라 자기가
하려고 한 행동에 대해 용기를 잃고 말았다.

멸절사태는 가슴을 싸늘하게 하는 눈초리로 장무기를 노려 보고
있었다.

"이리 나오지 못하겠느냐?"

주지약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사부님, 이 사람은 두 다리가 부러져 걷지를 못합니다."

"그렇다면, 썰매를 두 개 만들어 모두 끌고 가자!"

제자들은 일제히 대답했다. 십여 명의 남자 제자들이 부산을 떨
고 나더니 썰매 두 개를 만들어 냈다. 두 여제자가 주아를 끌어
안고 두 남자 제자는 장무기를 부축하여 각기 썰매에 눕혔다. 그
들은 썰매를 끌고 멸절사태의 뒤를 따랐다.

장무기는 정신을 차리고 주아의 동정을 살폈다. 그녀의 상처가
어느 정도인지알 수가 없었다. 몇 리 길을 달려오자 그제서야
주아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장무기는 큰 소리로 물었다.

"주아, 상처가 어느 정도요? 내상은 입지 않았소?"

"두 손목뼈가 부러졌어요. 가슴과 배는 다치지 않은 것 같아
요."

"내장을 안 다쳤다니 다행이요. 왼손 팔꿈치로 오른쪽 어깨 밑
에 삼촌오분(三寸五分) 밑을 쳐요. 그리고 나서 다시 오른손 팔
꿈치로 왼쪽 어깨 밑의 삼촌오분 되는 부위를 치시요. 그럼 고통
이 좀 덜할 겁니다."

주아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멸절사태가 그들의 말을 듣고
고개를 돌려 장무기를 노려보았기 때문이다.

"이 녀석은 그래도 의술에 대해 꽤 정통한데 네 이름이 뭐냐?"

"소인의 성은 증(曾)가고 이름은 아우(兒牛)입니다."

"사부가 누구냐?"

"제 사부님은 어느 작은 촌마을에 이름없는 의사입니다. 말씀드
려도 모를 겁니다."

멸절사태도 흥! 하고 콧방귀를 날리고는 더 이상 그를 거들떠보
지도 않았다.

그들은 날이 밝아서야 걸음을 멈추고는 쉬면서 간단히 요기를
채웠다.

주지약은 차디찬 빵 몇개를 갖고 주아와 장무기에게도 나누어
주었다. 그녀는 빵을 장무기에게 건네주면서 그에게 눈짓을 보내
고 고개를 돌렸다. 장무기는 고마운 마음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

"한수주중(漢水舟中)에서 저에게 밥을 먹여 준 은덕, 정말 잊지
못할 겁니다."

그 말에 주지약은 깜짝 놀랐다. 다시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
았다. 한참을 쳐다본 그녀는 갑자기 아! 하고 소리치더니, 놀라
고도 반가운 기색을 하며 말했다.

"당신은.....! 당신은.....!"

장무기는 그녀가 드디어 자기를 알아 보았구나 하고 생각하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주지약이 낮은 음성으로 물었다.

"몸 속의 한독은이제 다 나았습니까?"

장무기도 역시 낮은 소리로 말했다.

"이미 다 고쳤습니다."

주지약의 얼굴에 홍조가 떠오르며 일행 쪽으로 걸어갔다.

"지금 저 여자와 무슨 말을 했죠?"

주아가 갑자기 물어 왔다. 주아는 장무기의 뒤편에 누워 있으면
서 주지약의 표정을 모두 보고 있었던 것이다.

장무기는 얼굴이 빨개지며 말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소."

주아는 노기띤 음성으로 말했다.

"앞에 두고 거짓말을 하다니!"

그들은 세 시간 남짓 쉬고 나서 다시 길을 재촉했다. 그들은 서
쪽을 향해 급하게 삼 일을 또 달려갔다. 필시 무슨 급한 일이 있
는 것이 분명했다.

그들은 쉴 때나 걸을 때나 필요없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
다. 모두 벙어리처럼 묵묵히 길만 재촉하였다.

장무기도 이때 다리가 다 나아 언제든지 자기가 걷고 싶으면 걸
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내색을 하지 않았다. 어느
땐 일부러 신음소리까지 냈다. 멸절사태나 그 제자들이 자기에
대한 경계심을 풀게 하려고 한 것이다. 기회만 오며 주아를 데리
고 도망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들이 달리고 있는 곳은 망
망한 평야라 도망쳐 봤자 멀리가지 못하고 즉시 그들에게 붙잡힐
것이 뻔했기 때문에 섣불리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
다.

장무기가 주아의 손목뼈를 접골해 주자, 멸절사태는 차가운 눈
으로 그를 노려 보았으나 다른 간섭을 하지 않았다.

낮에 쉬거나 밤에 잠을 잘 때나 장무기는 항상 주지약을 쳐다보
곤 했다. 그러나 그녀는 한 번도 자기의 근처에 오지를 않았다.

다시 이틀이 지났다. 이날 그들은 오후가 되자 큰 사막에까지
이르렀다. 눈은 이미 다 녹아 그들의 썰매는 모래 위를 달리고
있었다. 한참을 달리자 갑자기 서쪽에서 말굽소리가 들려왔다.

멸절사태가 손짓을 하자 제자들은 즉시 엎드려 몸을 숨겼다.

두 사람이 검으로 장무기와 주아의 등을 노리고 있었다. 그것은
아미파에서 적을 습격하려고 할 때, 장무기가 소리쳐 적에게 알
리기라도 하면 즉시 목숨을 앗아 버리려는 것이 분명하다.

말발굽소리는 급하게 들려왔으나 한참을 지나서야 가까이 접근
해 왔다. 말에 탄 사람이 갑자기 모래 위의 발자국을 보자 말을
세우고 자세히 살펴 보았다.

이때 기다렸던 아미파는 정현이 신호를 하자 수십 명의 제자들
이 뛰쳐나와 그들을 포위했다. 네 필의 말안장에 앉은 자들은 모
두 백포를 입고 있었고, 그들의 가슴엔 붉은 불꽃이 새겨져 있었
다.

"마교의 무리구나! 한 놈도 놓치지 마라!"

정현이 소리를 쳤다.

네 사람은 갑작스레 포위를 당하자 병기를 뽑아들고 함성을 지
르면서 동북쪽으로 뚫고 나가려 했다. 아미파는 그들보다 훨씬
많았지만 이다제승(而多制勝)의 비겁한 짓은 하지 않았다. 정현
의 손짓에 네 명의 남녀 제자가 그들을 막고 나섰다.

그 네 명의 마교인은 칼등이 굽어진 관도(寬刀)를 휘두르며 사
납게 포위망을 뚫고 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장문인을 따라 멀리
서역까지 온 제자들은 모두 멸절사태가 고르고 고른 정예들이 아
닌가! 단 삼 회합(三會合)도 지나지 않아 세 명의 마교인은 칼에
찔려 모래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머지 한 명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대단한 도법을 구사하고 있
었다. 그는 자기와 상대하는 아미파 남제자의 어깨를 찔러 쓰러
뜨리고, 구멍이 뚫리자 쏜살같이 달아나는 것이었다. 그는 이미
십여장을 달아났으나, 아미파에서 서열로 세째가는 정허사태의
보법은 정말 날렵했다. 그는 어느새 그 자의 뒤까지 쫓아가 불진
을 뻗어 그 자의 왼쪽다리를 잡으며 외쳤다.

"내려오지 못하겠느냐!"

그 자가 고개를 돌려 방어 자세를 취하자, 갑자기 불진의 방향
이 바뀌면서 싹! 하는 소리와 동시에 그 자의 뒤통수를 후려쳤
다.

그는 일 초에 급소를 맞은 것이다. 불진수엔 웅후한 내력이 들
어 있었다. 그는 즉시 말에서 떨어졌다. 그러나 그 자는 무척 억
셌다. 중상을 입고도 적과 같이 죽을 각오를 하고 두 팔을 벌려
잽싸게 정허를 덮쳤다. 정허는 가볍게 몸을 피하며 불진으로 다
시 그 자의 가슴을 명중시켰다.

바로 이때, 그 자의 말안장 앞에 걸려 있던 세장에서 세 마리의
흰 비둘기가 날개를 펼치며 날았다.

"무슨 수작이냐?"

하고 정현이 소리치며 옷소매를 털자 세 개의 철연자(철蓮子)가
각기 세 마리의 비둘기를 향해 날아가자 두 마리의 비둘기가 즉
시 떨어졌다. 그러나 한 개는 백포교인이 던진 암기를 맞아 방향
을 잃었다. 나머지 흰 비둘기 한 마리는 구름을 향해 날아가는
것이었다. 아미 제자들은 서로 다투어 암기를 발사했으나 맞추지
못하고 흰 비둘기는 동북쪽 하늘로 날아가고 말았다. 정현이 손
짓을 하자 남자 제자들이 네 명의 백포객(白袍客)을 그녀의 앞에
끌어와 세웠다.

멸절사태는 그저 당당한 자세로 시종 구경만 하고 있었다.

장무기는 내심 생각했다.

'멸절사태가 직접 주아에게 공격을 한 것을 보면, 주아를 무척
높이 본 것이다. 아마 정민군의 팔이 부러진 탓도 있겠지. 그러
나 이 늙은 여승이 저 흰 비둘기를 맞추는 것은 조금도 힘들지
않을 텐데. 어째서 꼼짝도 하지 않고 제자들이 처리하는 것을 보
고만 있을까? 마교의 네 명을 상대하는 것에 멸절사태 자신이 다
시 나서는 것은 체면이 허락하지 않은 모양이지?'

여제자 한 명이 땅에 떨어진 비둘기 두 마리를 부위 비둘기다
리에 매달린 죽통(竹筒)에서 도르르 말린 쪽지를 꺼내어 정현에
게 바쳤다.

정현이 종이를 풀어 보며 말했다.

"사부님, 마교에서 이미 우리가 광명정을 위공한다는 것을 알고
천응교에 연락을 하는 쪽지입니다."

그녀는 또 하나의 쪽지를 보며 다시 말했다.

"똑같은 겁니다. 그런데 안타깝게 한 마리를 놓쳤군요."

멸절사태가 냉랭한 음성으로 말했다.

"아니다. 군마들이 모두 모였으니 일격에 섬멸하는 것이 더욱
통쾌할 거야. 우리가 귀찮게 사방으로 찾아다닐 필요가 없을 테
니."

"네, 그렇습니다."

장무기는 천응교에 연락을 하는 것이라는 말에 내심 놀랐다.

'천응교주는 바로 내 외할아버지인데, 그분도 오실지 모르겠군.
흥, 이 늙은 여승아. 그렇게 자신만만해 하지만 내 외할아버지의
적수가 되지는 못할 걸!'

그는 기회를 노려 주아를 데리고 도망칠 생각이었지만, 좋은 구
경거리가 있을 것 같아 달아날 생각을 고쳐 먹었다.

정현이 네 명의 백포인을 항해 외쳤다.

"또 어떤 사람들을 불러들였느냐? 어떻게 육대파가 공격한다는
소식을 알았지?"

백포인들은 앙천참소(仰天慘笑)를 하더니 갑자기 일시에 땅에
쓰러지며꼼짝도 하지 않았다. 모두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
다. 두 남제자가 살펴보니, 그들의 얼굴엔 괴이한 웃음이 지어져
있고 숨은 이미 끊어져 있었다.

"앗! 네 명 모두 죽었습니다!"

정현이 노기 띤 음성을 말했다.

"이 요인들이 독을 삼키고 자진했구나. 무슨 독약인데 이렇게
빨리 발작을 했지?"

정허가 입을 열었다.

"몸 수색을 해봐라!"

"옛!"

네 명의 제자가 각기 시체의 주머니를 뒤졌다.

주지약이 갑자기 외쳤다.

"여러 사형들, 조심 하세요! 어쩌면 주머니에 독이 숨겨져 있을
지도 몰라요!"

네 명은깜짝 놀라 병기를 꺼내 시체의 옷주머니를 찢었다. 과
연 주머니가 꿈틀거리더니 시체마다 주머니에 작은 독사 두 마리
씩이 숨겨져 있었다. 주머니를 뒤졌다간 즉시 독사에 물렸을 것
이다. 그들은 깜짝 놀라 마교 교도들의 악독함에 치를 떨었다.

멸절사태가 냉랭하게 말했다.

"우린 중토에서 서쪽으로 떠난 날부터 오늘 처음 마교도들과 부
딪쳤는데, 이 네 명은 무명 소졸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이렇게
악랄한데 그들의 주인들은 어떠 하겠느냐? 정허야, 네 나이도 이
젠 젊지 않은데, 일처리를 하는 게 어찌 그 모양이냐? 지약보다
도 섬세하지 못하고!"

정현은 얼굴이 빨개지며 허리 굽혀 그의 꾸지람을 들었다.

장무기도 정현의 육대문파라는 말을 되새기면서 무당파도 안에
끼었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이경이 되자 갑자기 땡그랑땡그랑 하는 낙타소리가 들려오더니,
낙타 한 마리가 멀리서 달려오고 있었다. 잠이 들어 있었으나 그
소리에 모두 깨어났다. 그런데, 땡그랑소리는 서남쪽에서 들려왔
는데, 갑자기 남쪽에서 북쪽으로 다시 동북쪽에서 들려와 귀신에
홀린 듯했다. 아무리 빠른 낙타라 할지라도 갑자기 동쪽, 서쪽
북쪽,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절대로 사
방에 낙타가 있어 차례로 방울을 울리는 소리처럼 들리지는 않았
다. 방울소리가 점점 멀어지면서 점점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러
자 갑자기 동쪽에서 방울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꼭 그 낙타가 새
와 같이 날아간 듯했다. 아미파 사람들은 한 번도 사막에 온 적
이 없어 괴이한 방울소리에 모두 겁에 질려 있었다.

멸절사태가 큰 소리로 말했다.

"어느 곳의 고인(高人)이신지 몸을 나타내지 않고 이렇게 귀신
같은 행동을 하다니, 체통이 서지 않는군요!"

그의 말소리는 멀리까지 퍼져 나갔다. 그러자 낙타의 방울소리
는 다시 울리지 않았다. 멸절사태가 두려워 감히 그런것을 더 이
상 할 용기가 없는 듯했다. 이튿 날까지도 아무 일이 생기지 않
았다. 그런데 밤이 되자 방울소리는 다시 울렸다. 여전히 동쪽이
나 서쪽 멀리인 듯 했지만, 멸절사태가 다시 질책을 해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가볍고도 힘차게 울렸다. 어느 땐 낙타가 갑자
기 성을 내고 달려 온 듯하다가는 갑자기 또 조용히 사라지고,
또 얼마나 시끄럽게 하는지 모두 머리가 띵할 정도였다.

장무기는 주아와 서로 마주 보며 웃음을 나누었다. 낙타의 방울
소리가 어떻게 이렇게 울리는지 알 수는 없었으나 마교의 고수인
것만은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아미파에서 속수무책 정신
을 못 차리게 되다니 웃음이 나왔다.

멸절사태가 손을 휘두르자 제자들은 모두 잠을 청하고, 더 이상
종소리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종소리는 별짓을 다하며 울리더
니, 아미파 제자들이 거들떠 보지도 않자 그들도 이내 조용해지
고 말았다. 멸절사태의 처변불경(處變不驚)의 방법이 효력을 본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 모두 옷과 담요를 정리하고 나서 길을 떠나려고
하자, 갑자기 두 남제자가 약속이나 한듯이 놀라 소리를 치는 것
이었다. 바로 옆에 한 사람이 누워 드르릉거리며 코를 골고 잠을
자고 있는 것이 아닌가! 머리에서 발끝까지 지저분한 담요 한 장
을 감싸고 있었다. 몸은 조금도 보이지 않고 엉덩이를 높이 쳐들
고 코를 요란스럽게 골고 있는 것이었다.

아미파의 다른 제자들도 모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젯밤
차례로 보초를 서 왔는데, 언제 사람이 들어왔단 말인가! 멸절사
태의 신공은 또 어떠한가! 풀잎 움직이는 소리마저도 그의 귀를
빠져나갈 수 없지 않은가! 그런데 갑자기 한 사람이 늘어난 것을
이제서야 알다니, 모두들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두 제자가 검을
들고 그 자의 옆으로 가 외쳤다.

"넌 누구냐! 무슨 잔재주를 부리는 거냐?"

그 자는 여전히 코를 골며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 중 한 명이
검으로 담요를 재쳐 보자, 안에는 청색 줄무늬에 백색장포를 입
은 남자가 모래에 엎드려 잠을 자고 있는 것이었다.

정허는 이 자가 감히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것은 분명 상당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고 앞으로 다가가 말했다.

"당신은 뉘시요? 무슨 일로 여기에 오셨소?"

그 자는 벼락을 치는 듯이 코를 더 심하게 골면서 여전히 잠을
자고 있었다.

정허는 이 자의 무례함에 울화가 치밀어 불진을 휘둘러 높이 치
켜들고는, 그 자의 엉덩이를 향해 내리쳤다. 그러자 갑자기 획!
하는 소리와 동시에 어느새 정허의 불진이 꼿꼿이 하늘로 향해
날으는 것이었다. 십여 장 높이로 날았다. 모두들 자기도 모르게
하늘을 향해 고개를 치켜들고 있었다.

멸절사태가 큰 소리로 외쳤다.

"정허야, 조심해라!"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 자는 이미 수장 밖을 달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두 팔엔 정허가 안겨 있는 것이었다. 정현
과 또 한 명의 장여제자(長女弟子) 소몽청(笑夢淸)이 병기를 들
고 진기를 모아 뒤를 쫓았다. 그러나 그 남자의 신법이 얼마나
빠른지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러자 멸절사태가 휘파람소
리를 내며 의천보검을 들고 뒤를 쫓았다.

아미파 제자들은 정허가 그 자에게 잡힌 것을 보고 죽은 듯이
움직이지도 못하고 서 있었다. 아미 장문의 신수(身手)는 과연
보통 사람과는 달랐다. 그는 순식간에 정현과 소몽청을 제치고
청광이 번뜩이는 검을 뽑아 그 자의 등을 찔렀다. 그러나 그 자
의 빠른 신법에 그를 찌르지 못했다. 그 남자는 정허를 안고 있
었으나 그의 속도는 조금도 멸절사태에게 뒤떨어지지 않았다. 그
는 자기의 무공을 자랑하려고 하는지 멀리 도망가지 않고 여럿의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멸절사태도 계속 그 자를 찔렀으나, 한
번도 그를 명중시키지는 못했다. 이때 팍! 소리와 동시에 정허의
불진이 땅에 떨어졌다. 뒤쫓아간 정현과 소몽청은 발걸음을 멈추
고 숨을 몰아쉬며 수십 장 거리나 되는 곳에서 두 고수의 추격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사막이었으나 두 사람이 달려도 조금도 먼지가 날리지 않았다.
아미파 제자들은 정허가 그 자에게 잡힌 것에 놀라 꼼짝하지도
않고 있었지만, 그 자를 앞에서 막고 싶었으나 사부의 위명(威
名)을 생각해서 누구도 감히 돕지는 못했다. 여럿이 한 명을 상
대했다는 소문이 퍼지면, 그것은 큰 웃음거리가 아닌가! 그들은
마음을 졸이며 누구도 감히 나서지 못했다. 그저 사부님이 한 발
만 더 빨리 가서 그 자의 등을 찌르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잠깐 사이에 그들은 벌써 세 바퀴나 돌았다. 그러나 멸절사태가
한 발만 더 앞서면 그 자를 찌를 수 있는데, 시종 그 한 발짝이
차이가 났다. 그 자가 물론 먼저 뛰었다. 하지만 그 자는 한 사
람을 안고 있어 무개가 백여 근이나 도 무겁지 않은가! 두 사람
의 경공이 막상막하라 할지라도 누가 뭐라고 해도 멸절사태는 그
자에게 이미 한 수 지고 있었다. 네 바퀴 째 돌려고 했을 때, 그
자는 갑자기 몸을 돌려 정허를 멸절사태를 향해 내팽개쳤다. 멸
절사태는 광풍이 자기 앞으로 몰아치는 느낌이 들었다. 그 자의
힘은 정말 당당했다. 멸절사태는 어쩔 수 없이 두 다리에 힘을
주고 멈춰서 가볍게 정허를 받았다.

"하하하! 육대문파에서 광명정을 위공한다지만, 아마 그렇게 쉽
지 않을걸!"

그러면서 북쪽으로 쏜살같이 달려가는 것이었다. 처음에 멸절사
태와 대결을 벌일 땐 먼지가 날리지 않았지만, 지금은 황사가 사
방으로 휘날리며 바람을 타고 북쪽으로 날렸다. 그 위맹한 성세
는 꼭 수십 장 길이나 되는 큰 황용과도 같아, 즉시 그의 그림자
를 막아 버리는 것이었다.

이미 제자들이 사부 옆으로 달려가 보니, 멸절사태의 얼굴은 잿
빛이 되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허의 얼굴은 누런 초와 같았고, 그의 목에는 두 개의 이빨자
국이 나 있었으며, 피로 물든 채 숨이 끊겨 있었다. 바로 그 자
에게 물려 죽은 것이었다. 여제자들은 모두 울음을 터뜨리고 말
았다.

멸절사태가 크게 외쳤다.

"뭘 우느냐! 매장하지 않고!"

모두는 울음을 그치고 바로 그 자리에 구덩이를 파자 정현이 조
심스럽게 물었다.

"사부님, 이 요인은 도대체 누굽니까? 꼭 기억했다가 원수를 갚
게 해주십시오!"

멸절사태는 냉랭한 음성으로 말한다.

"사람의 피를 빨아 먹는 잔인한 행동으로 봐 마교 사왕(四王)
중 나인 청익복왕(靑翌福王)이 틀림없어. 그의 경공이 천하무쌍
이라는 소문은 익히 들어왔지만, 과연 명불허전(名不虛傳)이군.
나보다도 훨씬 뛰어나."

장무기는 멸절사태에게 통한스러운 마음을 품고 있었지만, 지금
그녀가 큰 변을 당하고 나서도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고 여전히
침착하게 적을 칭찬하자, 역시 일파의 장문다운 풍범이라고 생각
하며 내심 그에게 탄복했다.

정민군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그 자가 사부님과 맞상대하지 못하고 그저 도망만 쳤는데, 어
찌 영웅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짝! 갑자기 멸절사태는 정민군의 뺨을 때리며 노기띤 음성으로
말했다.

"이 사부가 그를 따라잡지 못하고 정허를 구해 내지 못한 것이
바로 그 자에게 진 것이다! 승부란 척 보면 아는 것이야. 그래,
영웅이란 칭호는 자기가 자기에게 부르는 것인 줄 아느냐?"

정민군은 한쪽 얼굴이 금방 붉게 부어오르며 허리 굽혀 대답했
다.

"제자가 잘못했습니다. 사부님의 교훈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내심 투덜거렸다.

'상대를 제압하지 못하고 공연히 나한테 분풀이를 하다니! 재수
가 없군.'

"사부님, 청익복왕이라는 자는 도대체 누굽니까?"

멸절사태는 손을 저으며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혼자 앞으로
걸어갔다. 제자들은 대사저가 무안을 당한 것을 보고 감히 누구
도 더 이상 묻지를 못했다. 일행은 아무 말도 없이 밤이 될 때까
지 걸어와 불을 피우고 모래 언덕에서 잠을 청했다.

멸절사태는 불꽃을 바라보며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자
세도 꼭 석상(石像)과 같았다. 제자들은 사부님이 잠을 자지 않
자 누구도 잠에 들지 못했다. 그렇게 멍하니 한 시간 정도 앉아
있던 멸절사태는 갑자기 쌍장을 뻗었다. 순간 맹렬한 경풍이 덮
치며 활활 타오르던 불이 모두 꺼지고 말았다. 차가운 달빛이 머
리에 비치고 있었다.

장무기도 마음 속으로 연민의 정이 우러났다.

'위세가 당당한 아미파가 과연 서역에까지 와서 일패도지(一敗
塗地)를 당하고 모두 섬멸당할 것이란 말인가! 주 낭자는 내가
꼭 구해 내야해. 그렇지만 마교 인물들이 이렇게 무서운 인물들
인데, 내가 무슨 재주로 그녀를 구출하지?'

갑자기 멸절사태의 외침이 들려왔다.

"요화(妖火)를 끌고 이 마화(魔火)를 멸망시키리라!"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다시 제자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마교에서는 불을 성(聖)으로 알고 불을 신을 섬기듯 모시고 있
지. 그런데 마교의 삼십 삼대(三十三代) 교주 양정천(陽頂天)이
죽은 후론 교주가 없는데, 좌우(左右) 광명사자(光明使者) 사대
호교법왕 오산인(五散人), 그리고 금, 목, 화, 수, 토 오기장기
사 모두 교주의 자를 탐내고 자기네들끼리 살상을 했다. 그 때부
터 마교는 쇠퇴해지기 시작한 거야. 그리고 육대문파가 흥하기
시작했지. 그건 바로 요사수(妖邪守)가 멸망할 때가 온 징조야.
그러나 마교 안에서 내분이 일지 않는한 그 요사한 무리들을 멸
망시키긴 사실 쉬운 일이 아니야."

장무기는 어려서부터 마교란 이름을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자기의 부모들은 마교와 무슨 연관이 있는지 그가 물어 볼 때마
다 부모님들은 좋아하지 않았었다. 의부님께 물어봐도 멍청히 입
다물고 있지 않으면 갑자기 화를 내곤 했다. 그래서 그는 마교가
도대체 뭔지 알지를 못했다. 태사부 장삼봉과 같이 살면서도 태
사부께서도 마교를 매우 미워하며 절대로 마교와 인연을 맺어서
는 안 된다고 누누이 훈계를 했었다. 그러나 나중에 장무기가 만
난 호청우, 왕난고, 상우춘, 서달, 주원장은 모두 호기있는 대장
부들이었고, 그들은 모두 마교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의를 지
키며 악해를 저지르지도 않았다. 다만 그들의 행동이 괴상한 것
이 다른 사람들과 약간 다른 것뿐이었다.

지금 멸절사태가 마교에 대해서 얘기를 하자 그는 신경을 곤두
세우고 듣고 있었다.

"마교의 역대 교주들은 모두 성화령을 대를 물려 신물(信物)로
삼았지. 그런데 삼십 일 대 교주의 수중에 들어오자 하늘이 노하
여서인지 성화령을 그만 잃어 버린 거야. 그러니 삼십 이대 , 삼
십 삼 대 교주들은 권력은 있지만 성화령이 없으니 교주 노릇을
하기가 얼마나 힘들었겠느냐? 양정천이 갑자기 죽은 것도 사실
독살당한 것인지 누구에게 암살을 당한 것인지 모르지만, 후계자
를 정하지 못한 거야. 그런데, 마교에는 교주 자리에 오를 자격
이 있는 쟁쟁한 실력자들이 많았지. 그들은 서로 암투를 벌여 그
만 내분이 터진 거야. 그 때까지도 교주를 추대하지 못한 거지.
우리가 오늘 만난자도 바로 교주 자리를 노리던 자이지. 바로 사
대호교법왕 중의 하나인 청익복왕 위일소(偉一笑)란 자야."

아미파 제자들은 누구도 청익복왕 위일소란 이름을 들어 보지
못했으나, 누구도 묻지를 않았다.

멸절사태는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이 사람은 절대로 중원에 발을 들여 놓지 않거니와 그의 행동
은 또 귀신과 같아, 그 자의 무공은 매우 고강하지만 중원에선
조금도 이름을 날리지 못한 거야. 그러나 백미응왕(白眉應王) 은
천정이나 금모사왕 사손은 너희들이 모를 리가 없을 거다."

장무기는 내심 뜨끔했으나 주아는 가볍게 놀라고 있었다.

"백미응왕, 자삼용왕, 금모사왕 청익복왕 등 네 사람이 바로 마
교 사왕이지. 청익복왕의 서열이 맨 나중이지만 그의 실력은 오
늘 너희들이 직접 봤으니 알 거야. 그러니 그 자삼, 백미, 금모
그 자들은 보지 못했어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금모사왕은 크
게 상심하고 그만 미치광이가 되어 이십여 년 전 갑자기 나타나
무고한 인명을 마구 살상하더니 끝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지금은 그것이 무림의 일대 수수께끼가 되어 버렸다. 은
천정은 교주에 오르지 못하자 그만 울화가 치밀어 따로 천응교를
창건하여 교주의 자리에 오른 거야. 그러나 내가 알기론 은천정
이 마교를 배반하고 광명정과 갈라섰지만, 광명정이 위험에 닥칠
때면 여전히 천응교에 도움을 청했지."

잠시 후 다시 멸절사태가 말했다.

"우리 육대문파에서 이번에 광명정을 공격하는 일은 꼭 성공을
거두어야 해. 요사들이 모두 합심을 한다 해도 절대로 두려울 것
이 없어. 그러나 쌍방이 부딪치면 많은 사상자가 생길 것이니,
모두 미리 죽을 각오를 하고 요행을 바라거나 겁을 먹지 말아라.
절대로 아미파의 위명을 시추시켜서는 안된다."

제자들이 모두 일어나 허리를 굽혀 대답했다.

"그리고 무공의 강약은 천부적인 자질과 기회로 인하여 얻어지
는 법! 절대로 억지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정허는 비록 조금
도 힘써 보지도 못하고 기습에 말려 흡혈귀에게 당했지만, 누구
도 그를 비웃진 않을 것이야. 우리가 평소 무공을 익혀온 것이
무엇 때문이냐? 바로 약자를 돕고 요사를 소멸시키려고 한것이
아니더냐? 오늘 제일 먼저 정허가 죽었지만 두 번째는 어쩌면 이
사부가 될지도 몰라. 소림, 무당, 아미, 곤륜, 공동, 화산 육대
파에서, 이번 마교를 소멸하는 일에 있어서 우리 아미파에선 길
흉화복(吉凶禍福) 그 따위는 잊어버린 지 벌써 오래다."

다시 멸절사태가 말했다.

"속담에 문 밖으로 천 개의 광이 나간 집안은 꼭 흥할 것이란
말이 있다. 그리고 아버지가 자식보다 먼저 죽는 법이요. 손자가
생기면 할아버지는 죽는 것이 이치가 아니냐? 자손들만 남아 있
으면 그 집에 천 명, 백 명이 죽는다 해도 여전히 흥할 수 있을
것이며, 제일 두려운 것은 너희들이 모두 죽고 늙은 중인 나 혼
자만 외롭게 살아 남는 것이야."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된다 해도 애석할 것은 없다. 백 년 전만 해도
이 세상에 아미파란 것이 있었느냐? 그러니 우리 모두 훌륭하게
전사하여 아미파가 전부 멸망한다 해도 무슨 애석함이 있겠느
냐?"

아미파 제자들은 모두 가슴에 뜨거운 피가 용솟음치는 듯 했다.
그들은 병기를 뽑아 들고 큰소리로 외쳤다.

"제자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요마사도와 싸울 것입니다."

멸절사태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훌륭하구나! 이제 그만 쉬어라."

장무기는 내심 느끼는 것이 있었다.

'아미파 제자들 대부분이 연약한 여자들인데도 목숨을 내 던지
고 영풍호기(英風豪氣)를 나타내며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으니,
아미파가 육대문파에 속할 수 있는 것은 우연으로 얻어진 것이
아니다. 무공으로 이길 수 있는 것뿐이 아니라, 지금 이들의 모
습을 보니 옛날 정가가 진나라를 치러 가던 기개와도 같구나!'

멸절사태는 다시 말했다.

"청익복왕이 왔다면 백미응왕과 금모사왕도 필시 올 것이고, 자
심용왕과 오산인, 그리고 오기장기사도 물론 올 것이다. 우리는
원래 육대파의 힘을 모아 먼저 광명정의 좌사 양소를 물리치고
나서 나머지 요사들을 소탕하려고 한 것인데, 화산파의 신기선생
(神璣先生) 선우(鮮于) 장문께서 이번 일을 잘못 예상하고 완전
히 판단 착오를 일으킬 줄이야!"

정현이 물었다.

"그 자심용왕은 또 어떤 악독한 마두입니까?"

멸절사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자심용왕의 악적(惡跡)은 벌로 없어서 나도 그저 그의 이름을
소문에 들은 것뿐이야. 듣자 하니 그 사람은 교주가 되지 못하자
마교와 내왕을 끊고 해외로 떠났다는 것 같더군. 이번에 그가 참
전하지 못한다면 정말 천만다행이야.마교 사왕 중에서 그 자가
우두머리 격이지. 두말할 필요없이 상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뻔하
지 않느냐? 마교엔 광명사자 양소 외에 또 한 명이 있지. 역대
마교가 전해 오면서 필시 좌우 광명사자가 있을 것이야. 그들의
지위는 사대법왕보다 위에 있지. 그러나 무림에서 아무도 그 자
를 몰라. 소림 공지대사와 무당의 송원교, 송대협 같은분들도
대단한 박문광견(博聞廣見) 지사들이지만 그 두 분도 모르고 있
지. 우리가 양소와 전면으로 맞서 싸우는 것이야. 무공으로 승부
가 판가름날 것이니 벌것 아니지만, 그러나 만약 그 광명우사가
숨어서 암기를 쓴다면 정말 큰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지."

아미파 제자들은 모골이 송연해져 자기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곤
했다. 갑자기 광명우사나 자심용왕이 몰래 뒤에 와서 기습을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차가운 달빛에 비친 그들의 얼굴은 모두
창백해져 있었다.

멸절사태가 다시 말했다.

"양소가 너희 고홍자(孤鴻子) 사백을 죽였고, 다시 기효부를 죽
였고, 위일소는 정허를 죽였으니, 아미파와 마교의 이 원한은 어
느 한 쪽이 쓰러지지 않고서는 풀지를 못할 것이다. 본파는 곽조
사(郭祖師)께서 창파하신 이후로 장문직은 여자가 맡는 것은 관
례로 해왔었다. 남자에게만 그런 자격이 없을 뿐아니라 시집갔던
여자도 절대로 장문직을 맡을 자격이 없다. 그러나 오늘 분파에
이런 존망(存亡)의 위기가 닥쳐 왔는데, 어떻게 그런 관례만 지
켜 가겠느냐! 이번 싸움에서 누구든 큰 공을 세우는 자라면 그가
남자든 결혼한 여자든 모두 그럴 자격이 있을 것이다."

제자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사부께서 뒷일을 걱정하시고 문파
를 이어나갈 후계자까지 말씀하자, 이번 싸움에서 중원으로 살아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모두들 불길한 예감마저 가
졌다.

하! 하! 하!.....!

멸절사태의 긴 웃음 소리가 멀리 퍼져 나가자, 제자들은 모두
서로 마주 보고 놀라며 마음속으로 섬 쓺하는 느낌이 들었다.

멸절사태는 옷소매를 흔들며 외쳤다.

"이제 모두 자거라!"

정현은 평소와 같이 제자들을 골라 보초를 서게 했다.

멸절사태가 말했다.

"보초를 세울 필요없다!"

정현은 어리둥절했으나, 이내 뜻을 알아차렸다. 만약 청익복왕
같은 고수가 기습해 온다면, 제자들이 어떻게 발각하겠는가. 보
초를 세워 봤자 헛수고가 아닌가!

그날 밤 아미파의 방비는 겉으로는 허술한 것 같았으나 속으로
는 긴밀해, 뜻밖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 제 3 권 5 장 끝 -----



의천도룡기(倚天屠龍記) 제 3 권


제 6 장 육대문파와 마교(魔敎)의 혈전(血戰)


이튿날도 행군은 계속되었다. 서쪽으로 백 리를 벗어나자 어느
덧 정오가 되었다. 엄동설한인데도 해가 중천에서 내리쬐자 후덥
지근한 느낌을 주었다. 이때 서북방에서 병기가 부딪치는 금속성
이 어렴풋이 들려왔다. 간간이 고함소리와 기합소리도 섞여 있었
다. 정현사태가 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제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속력을 내어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질주해 갔다.

얼마 후, 한창 어우려져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몇몇 사람
의 모습이 시야에 잡혔다. 흰 도포를 입은 도인 셋이 무기를 휘
두르며 한 중년 사나이를 협공하고 있었다. 세 도인의 소매자락
에 모두 붉은 불길이 수놓아져 있는 것으로 미루어 마교의 인물
임이 분명했다. 중년 사나이는 민첩한 신법을 바탕으로 하여 눈
부신 검광을 뿌리며 제법 여유있게 세 도인의 협공을 막아내고
있었다.

장무기는 다리의 상처가 이미 완쾌되었지만, 여전히 걷지를 못
하는 척하고 썰매에 앉아 있었다. 그것은 아미파에서 자기한테
신경쓰지 않는 틈을 노려 주아를 데리고 도망치려고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 앞에 아미파의 제자 한 명이 앞으로 가로막고 있어, 장무
기는 몸을 옆으로 비스듬히 돌려 한창 벌어지고 있는 혈투를 보
고 있었다. 중년 남자의 칼놀림은 점점 더 날카로워졌다. 중년
남자가 갑자기 잽싸게 몸을 돌리며 소리를 외치자 동시에 팍! 하
는 소리와 그의 검은 이미 마교인의 흉부를 관통시킨 것이다. 너
무나 순식간의 일이었다. 아미파 제자들은 모두 갈채를 보냈다.
장무기는 자신도 모르게 앗! 하고 경악의 소리가 튀어나왔다. 이
순수추주(順手推舟)의 초식은 무당검법의 절수가 아니던가! 이
중년 남자는 무당육협 은이정이었던 것이다.

아미파 제자들은 모두 멀리서 관전만 하면서 그 누구도 그들과
대적하려고 나서지를 않았다. 두 마교도는 동료 중 한 명이 이미
쓰러지고 거기다 상대에게는 후원자까지 오게 되자 내심 겁을 먹
고 휙! 하고 휘파람소리를 내더니 각기 남북 방향으로 갈라져 도
망치는 것이었다. 은이정은 날으는 듯 남쪽으로 달아나는 놈을
쫓았다. 그는 어느새 마교도의 뒤를 바짝 달라붙게 됐다. 그의
신법은 정말 번개와 같았다. 달아나던 마교도는 그가 바싹 달라
붙자, 몸을 돌려 미친듯이 칼을 휘둘렀다. 죽을 각오를 무릅쓰고
덤벼드는 듯 싶었다.

아미파 제자들은 은이정이 달아난 두 마교인을 모두 처치하진
못하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반대 방향으로 달아난 마교인의 무
공도 무시 못하거니와 도망치는 그 자의 신법도 점점 빨라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은이정이 앞의 적을 해치우고 나서 다시
그 자를 쫓아갈 수 있으리라고는 누구도 믿지 않았다. 아미파와
마교는 서로 앙숙지간이었지만 아미제자들은 정현사태가 명령을
내리기 전에 감히 누구도 달아나는 마교인을 쫓아가려고 하지 않
았다.

아미파의 여제자들은 모두 기효부와는 절친한 사이들이었다. 그
들은 모두 마교의 양소가 애당초 기효부에게 간악한 짓을 저지르
지 않았더라면, 이 무당육협은 이미 아미파의 사위가 되었을 것
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은이정을 돕고 싶은
마음을 품고 있었다. 사실 정현사태도 그를 도와 달아나는 놈을
잡고 싶었으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무당육협하면
무림에서 누구나 다 존경하고 있는 분이 아닌가! 그가 무림에서
차지하고 있는 지위를 보아 그의 허락도 없이 돕는다는 것은 그
에게 무례를 저지르는 것일지도 몰랐다. 정현사태는 내심 저 마
교인을 달아나게 하더라도 무당육협에게 무례를 저지르는 일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아무 명령도 하지 않았다.

바로 이때 갑자기 눈앞에 청광이 번뜩이더니, 달아나던 마교인
이 갑자기 몸을 비틀거리며 앞으로 몇 발짝 더 달아나지 못하고
쓰러지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그 자의 십여 장 앞에 은이정의
장검이 모래에 꽂히는 것이었다. 은이정은 자기앞의 마교인과 싸
우면서 어느새 반대쪽으로 달아나는 마교인을 향해 검을 날렸던
것이다. 그런데 그걸 보던 아미파 제자들이 다시 은이정을 쳐다
봤을 때는 나머지 마교인마저 쓰러져 있었다. 누구도 그가 무슨
수법으로 그 자를 해치웠는지 보지를 못했다. 아미파 제자들은
모두 박수를 치며 갈채를 보냈다. 멸절사태마저도 고개를 끄덕이
며 탄식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의 탄식은 아마 무당파엔 저렇게
훌륭한 제자가 있는데, 아미파엔 그럴 만한 자 하나 없다는 탄식
인 것 같았다. 또한 효부(曉芙) 그녀가 너무 박복하다고 느끼는
것일까? 저런 훌륭한 사람과 인연을 맺지 못하고 마교의 음도들
에게 당하다니, 애석함에 탄식하는지도 몰랐다. 멸절사태는 기효
부가 절대로 자신이 자살한 것이 아니라 양소에게 당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장무기는 입에서 육사숙이라는 외침이 튀어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고 있었다. 사백, 사숙 중에서도 육사숙은 자기 부친과 제일
친하게 지내지 않았던가! 육사숙과 떨어진 지 구 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그 동안 육사숙의 얼굴도 많이 창로해 보였다. 기효부
의 일로 많은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장무기는 육사숙을 불러 인
사를 드리려고 했으나 이내 거두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기
의 신분을 노출시켰다가 뒤에 무슨 후환이 생길지도 모를 일이었
다. 주지약만큼은 자기의 신분을 알고 있었으나, 아직 누구한테
도 말을 한 것 같진 않았다.

은이정은 멸절사태를 향해 허리를 굽혀 공손히 절을 하며 말을
했다.

"저희 대사형님께서 사제들, 그리고 제 삼 대 제자들까지 해서
모두 설흔 두 명을 인솔하시고 일선협(一線協)으로 떠나셨습니
다. 후배는 대사형님의 명령을 받고 귀파를 영접하러 여기까지
오게 된 겁니다."

멸절사태가 다시 말했다.

"고맙습니다. 무당파가 먼저 도착했군요. 그런데 그 요인들과
무슨 접전이라도 있지 않았습니까?"

"마교의 목, 화(木,火) 양기와 세 번이나 부딪쳐 그놈들 몇몇을
죽이긴 했으나, 저의 칠사제 막성곡이 그만 조금 다쳤습니다."

멸절사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무당오협들의 실력으로 마
교의 장기사를 죽이지 못하고 오히려 칠협 막성곡이 다쳤다면,
과연 그 싸움이 얼마나 치열하고 잔혹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
다.

"귀파에선 광명정에 있는 적의 확실한 세력을 알고 있습니까?"

"소문에 의하면 천응교와 모든 지파가 광명정으로 갔다고 합니
다. 그리고 자삼용왕, 청익복왕도 거기에 왔다는 소문은 들었습
니다."

멸절사태는 그 말에 크게 놀라는 듯했다.

"자삼용왕까지도?"

두 사람은 무슨 이야긴가를 나누면서 앞으로 걸어갔으나, 뒤에
따라가던 제자들은 누구도 감히 앞으로 가 들으려고 하지 못했
다.

한참 후, 은이정이 손을 들어 화산파와 연락을 취하기 위해 떠
나려고 인사를 하자 정현사태가 말을 건넸다.

"은육협님, 정신없이 뛰어다니시느라 배도 고프실 텐데, 우리와
음식을 좀 드시고 떠나시지요?"

"그러시다면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아미파 제자들은 모두 행낭에서 먹을것을 꺼내고 모래 위에다
솥을 거는 등 부산을 떨었다. 아미파 제자들은 사실 식사나 모든
면에서 매우 검소했다. 그러나 기효부를 생각해서인지 은이정을
대접하는 것에 매우 친절했다.

아무 말 없이 구경만 하고 있던 주아가 갑자기 말했다.

"은육협님, 어느 한 사람의 소식을 좀 알려고 하는데, 물어 봐
도 괜찮겠습니까?"

은이정은 국그릇을 안은 채 고개를 돌려 대답했다.

"무엇을 알려고 하는지는 몰라도, 내가 아는 것이라면 알려드리
겠소."

무척 자상하고도 겸손한 태도였다.

"저는 사실 아미파 제자가 아니고 이들에게 붙들려 온 사람이예
요."

사실 은이정은 그녀를 아미파 제자로 알고 있었는데, 그 말을
듣자 당황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즉시 매우 솔직한 아가씨라
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마교에 속하는 아가씨입니까?"

"아닙니다. 그 반대쪽입니다."

은이정은 아미파를 존중하는 뜻에서 그녀에게 자세히 묻지 않고
정현사태에게 눈짓을 했다.

"은육협에게 무엇을 알려고 하는 거지?"

"저는 그저 은육협님의 사형이신 장취산 장오협께서도 일선협에
가셨는지 알려고 하는 겁니다."

그 물음에 은이정과 장무기 모두는 크게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
다.

은이정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가씨께선 무슨 이유로 우리 사형의 소식을 알려고 합니까?"

주아는 얼굴에 약간 홍조를 띠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저는 사실 그분의 자제분이신 장무기 공자님께서도 거기에 가
셨는지 알려고 하는 것입니다."

장무기는 정말 크게 놀랐다. 주아가 이미 자기의 신분을 알고
지금 그것을 폭로하려고 하는 줄만 알았다.

은이정은 다그쳤다.

"아가씨, 그게 무슨 말이오? 장취산 사형님께서는 이미 십여 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아가씨께선 그것도 모르고 있었소?"

그 말에 주아는 몸을 일으키며 탄식을 했다.

"그럼 그 자제분은 이미 고아가 된 지 오래 됐겠군요?"

"아가씨, 내 조카 장무기를 잘 아시오?"

"오 년 전 접곡의선(蝶谷醫仙) 호청우(胡靑牛)의 집에서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통 소식을 알 수가 없군요."

"나도 가사(家師)님의 분부를 받고 접곡에 수색을 간 적이 있는
데, 그 땐 이미 의선 호청우 부부가 살해된 뒤라 무기가 어떻게
됐는지 알 수가 없었지요. 아무리 수소문해도 알 수가 없었습니
다."

그러면서 그는 에잇! 하고 탄식을 하며 말했다.

"그렇게 될 줄이야!"

그 말에 주아는 궁금해 급하게 물었다.

"왜 그러세요? 무슨 나쁜 소식이라도 있나요?"

"낭자께선 어째서 내 조카에게 그렇게 관심이 많습니까? 무기와
는 은인 관계요, 아니면 원수지간이요?"

주아는 한참 동안 먼곳만 바라보더니,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저는 사실 그와 영사도(靈蛇島)로 가려고 했어요."

은이정이 그녀의 말을 가로막고 다시 물었다.

"영사도? 그렇다면 금화파파(金花婆婆)와 은엽선생(銀葉先生)은
아가씨와 무슨 사이요?"

주아는 그 말에 대답은 하지 않고 자기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
다.

"같이 가는 것은 고사하고 나를 때리고 욕하고, 그것도 모자라
내 손마저 깨물어 피가 줄줄 흐르게까지 했어요."

그녀는 자기의 손을 어루만지며 다시 중얼거렸다.

"그렇지만, 난 아직 그를 잊지 못하고 있어요. 나는 오로지 그
를 영사도로 데리고 가서 파파께 그가 당한 현명신장(玄冥神掌)
의 음독을 제거해 주게 하려고 한 것인데, 내 호의를 모르고 자
기를 해치려는 줄 알고 오해를 하다니.....!"

장무기의 심정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이 착잡했다. 이제서야 장무
기는 접곡에서 자기를 붙잡았던 아리 아가씨가 바로 눈앞의 주아
였었던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주아가 매일 잊지 못하던 그 정인
이 바로 자기였다니!

장무기는 고개를 비스듬히 해서 그녀를 쳐다보았다. 얼굴이 부
어서 옛날 그 아름다운 모습은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러
나 그의 얼굴형, 그리고 그녀의 눈동자만큼은 옛날의 그 모습과
여전했다.

옆에 있던 멸절사태가 냉랭한 소리로 입을 열었다.

"금화파파 그 사람은 마교와 앙숙지간인 것은 틀림없지만, 그러
나 금화파파도 사실 정파 인물이라고는 할 수 없지. 그러나 지금
우리의 사정으로는 더 이상 원수를 만들어서는 안돼. 그러니 이
애를 잠시 붙잡아 두기만 하자."

은이정이 입을 열었다.

"음 그랬었군요. 아가씨가 무기에게 그런 고마운 마음씨를 지니
고 있었군요. 무기는 너무 복이 없는 녀석이야. 며칠 전 연환장
(蓮環莊)의 장수 무열을 만났었는데, 무기가 이미 오년 전에 만
장(萬丈)이나 되는 깊은 계곡 위에서 그만 실족을 하고 떨어져
죽었다는 거야. 시체를 찾아 내지도 못했다더군. 나와 무기의 부
친은 친형제나 다름없이 지냈었는데..... 하늘도 무심하지, 그의
하나뿐인 핏줄마저도 남겨 주지않다니."

주아는 그 말에 그만 기절하고 쓰러져 버렸다. 주지약이 잽싸게
그녀를 부축하여 가슴을 주물러 주자 주아는 천천히 깨어났다.

은이정, 주아 모두가 자기때문에 이렇게 슬퍼하는 모습을 본 장
무기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그러면서 주지약을 쳐
다보니, 주지약이 자기를 주시하고 있는 것이었다. 주지약은 주
아가 왜 장무기를 알아보지 못하는지 이상하다는 눈빛이었다. 장
무기는 몇 년 동안 얼굴이나 체구 등 변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자기가 먼저 한수(漢水)의 배 안에서의 일을 얘기하지 않았다면,
주지약도 사실 그를 알아 보지 못했었을 것이다.

주아는 분개하여 이를 갈며 물었다.

"은육협님, 장무기를 죽인 자가 도대체 어떤 자입니까?"

"무열에 의하면 누가 살해한 것이 아니라, 무기 자신이 실수하
여 계곡 밑으로 떨어졌다더군. 무열 자신이 직접 목격했다는데,
무열의 의형제 주장령도 그 때 같이 떨어져 죽었다네."

그 말을 들은 주아는 긴 탄식을 하며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
다.

"그런 아가씨의 성함은 어떻게 됩니까?"

주아는 그 말에 대답을 하지 않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갑
자기 모래 위에 엎어져 눈물을 쏟으며 방성대곡을 하는 것이었
다.

은이정은 그녀를 위로해 주었다.

"아가씨, 너무 슬퍼하지 말아요. 무기가 계곡에 떨어져 죽지 않
았다 해도 이미 온몸에 독이 퍼져 살아 있지는 못했을거요. 오히
려 오랫 동안 고통을 받지 않고 죽은 것이 더 다행이 아니요?"

멸절사태는 갑자기 말했다.

"장무기, 그런 잡놈은 일찍 죽은 것이 오히려 다행이야. 그렇지
않고 살았다면 분명 세상에 해를 끼칠 화근이 됐을 것이야."

그 말에 주아는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었다.

"이 늙은 중대가리가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아미 제자들은 주아가 감히 사존을 모욕하는데, 참을 수가 없었
다. 몇 명은 벌써 병기를 그녀의 가슴과 등에 갖다대고 있었다.
주아는 조금도 겁은 내는 기색도 없이 욕설을 마구 퍼부었다.

"이 늙은 여자 중대가리야. 장무기의 부친은 이 은육협님의 사
형이시다. 그 분의 혈기는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인데, 그런 말을
하다니!"

멸절사태는 그저 냉소를 지으며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정현사태가 입을 열었다.

"말 조심하지 못하겠느냐! 장무기의 부친께선 물론 명문정파의
제자이시지만, 그의 어머니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아느냐? 마교의
요녀가 난 자식이 잡놈이 아니구 뭣이냐?"

"그의 어머니가 누군데 마교의 요녀라니?"

그 물음에 아미파 제자들은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주지약만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은이정은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장무기는 얼굴이 빨개지며 눈물이 글썽글썽해졌다. 그는 자기의
신분을 꼭 감추려고 하지 않았다면, 그는 벌써 벌떡 일어나 어머
님을 위해 변명을 했었을 것이다.

아미파 제자들 중 정현사태는 매우 중후한 인품의 소유자였다.
그는 주아를 보며 입을 열었다.

"장오협의 부인이며 장무기의 어머니는 바로 천응교 교주 은천
정의 딸이야. 이름은 은소소라고 하지."

"아!"

하고 주아는 탄식을 하며 안색이 크게 변하였다.

"장오협께서 바로 그 요녀와 결혼했기 때문에 패가망신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가 무당산에서 자살을 하게 된 거지. 이 일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인데 아가씨는 어째서 그걸 모
르고 있었지?"

"저는 멀리 영사도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중원 무림의 일을 전
혀 모릅니다."

"우리 사부님께 무례를 저질렀으니, 어서사죄해라!"

정현이 큰 소리로 말했다.

주아는 대꾸도 하지 않고 다시 물었다.

"그럼 은소소 그분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그 때 장오협과 같이 자살을 했네."

정허가 대답해 주었다.

그 말에 주아는 몸을 부르르 떨며 혼자 중얼거렸다.

"그의 어머니마저도 자살을 했습니까?"

그 물음에 정현이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왜 은소소와 아는 사이냐?"

바로 그 때, 동쪽 하늘에 파란 불꽃이 높이 치솟았다.

"앗! 내 조카 청서(靑書)가 포위당했군."

은이정은 멸절사태에게 인사를 하고 나서 아미파 제자들에게 읍
을 하고 불꽃이 보이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정현이 그의 뒤를
따라가며 팔을 흔들자 아미파 제자들도 모두 뒤따라 갔다. 그들
이 가까이 달려가 보니 또 세 사람이 한 사람을 협공하고 있는
것이었다. 세 사람은 모두 밀짚모자를 쓰고 있었으며 차림새는
모두 하인 같았다. 그들은 단칼을 들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하
인 차림새였지만 그 악랄한 수법만큼은 절대 일류 고수 못지않은
듯 싶었다. 은이정에게 당한 세 도인보다는 무공이 훨씬 앞질러
있었다. 세 사람은 한 청년서생(靑年書生)을 포위하고 그의 주위
를 맴돌며 공격을 하고 있었다. 그 서생은 이미 열세에 처해 있
었지만, 그의 장검은 여전히 예리한 공격을 막으며 조금도 빈틈
을 주지 않고 있었다. 싸우고 있는 그들 뒤에는 황포(黃袍)를 입
은 남자 여섯명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의 황포에는 모두 빨간
불꽃이 수놓아 있었다. 물론 그들은 마교의 인물들이었다. 그들
은 멀리 서서 구경하며 싸움에 끼어들지 않고 있었다.

은이정과 아미파 제자들이 달려오자 여섯 명 중에서 키가 제일
작고 몸집이 뚱뚱한 자가 큰 소리로 외쳤다.

"은가 형제들, 이제 다 틀렸어. 빨리 줄행랑이나 치게. 우리가
뒤를 막아 줄 테니!"

"후토기(厚土旗), 너희들이 더 느리지 않느냐? 안가야, 너나 먼
저 도망가거라!"

밀짚모자를 쓴 한 명이 대꾸를 했다.

정현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했다.

"이놈들, 죽음이 바로 앞에 닥쳐온 것도 모르고 자기네들끼리
말싸움을 하다니!"

"사저님, 이 자들은 누굽니까?"

하고 주지약이 물었다.

"밀짚모자를 쓴 자들은 바로 은천정의 하인들이야. 바로 은무복
(殷無複), 은무록(殷無綠), 은무수(殷無壽)라고 하는 세 사람이
야."

"하인들의 무공이 이렇게 놀랍다니!"

주지약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자들은 원래 흑도(黑道)에서 유명했던 대도(大盜)들이라 보
통 사람들이 이니었지. 그리고 황포를 입은 자들은 바로 후토기
밑의 요인들이야. 저 키가 제일 작고 몸집이 작은 자가 아마 장
기사 안원(顔垣)인 모양이군. 사부님의 말씀에 의하면, 마교 오
기장기사(五旗掌旗使)와 천응교 교주는 마교의 교주 자리를 탐내
느라 불목을 하고 있다 하셨는데....."

어느새 서생은 이미 위험에 처해 있었다. 찍! 하는 소리와 함께
서생의 옷 소매자락이 은무수의 칼에 찢겨져 나갔다.

은이정은 잽싸게 장검을 뽑아 은무록을 공격했다. 쨍그랑! 하고
두 사람의 병기가 부딪쳤다. 그러나 은이정의 내공은 얼마나 심
후한가! 쨍그랑소리와 동시에 은무록의 칼이 활처럼 휘어져 버린
것이다. 깜짝 놀란 은무록이 잽싸게 뒤로 세 발짝이나 물러났다.
바로 그 때 주아가 뛰쳐나가 오른손 중지(中指)로 은무록의 목덜
미를 찌르고 잽싸게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은무록의 무공도 실은 보통이 아니었다. 그러나 은이정과 서로
내공을 부딪치고 나서 그 충격에 뒤로 물러나 휘청거리고 있는
이때, 갑자기 주아의 일지공(一指功)을 받자 그만 심한 고통을
못이겨 신음소리를 내며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은무복, 은
무수 두 사람은 크게 당황해하며 청년을 더 이상 공격하지 못하
고 잽싸게 은무록에게 달려가 그를 부축했다. 그러나 은무록은
여전히 몸을 어찌할 바를 모르고 비틀거리며 입에서 거품을 토했
다.심한 중상을 입은 것이 분명했다.

두 사람은 주아를 노려보더니 갑자기 경악의 눈빛을 보였다.

"아니, 세째 아가씨였군."

"흥! 아직도 나를 기억하고 있구나!"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아미파 제자들은 두 사람이 주아를 절
대 그냥 놔두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싸움은 커녕 은무록
을 팔에 안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달아나는 것이었다. 이 뜻
밖의 장면에 모두는 입을 딱 벌리고 그저 의아해 할 뿐이었다.

이때 황포를 입은 그 땅딸보가 갑자기 손을 쳐들자, 그의 손엔
큰 황색 깃발이 펄럭였다. 그러자 나머지 다섯 명도 일제히 황색
깃발을 꺼내 휘둘렀다. 여섯 명이긴 하지만 그들이 휘두르는 깃
발에서 펄럭이는 바람소리와 그들의 위세는 당당했다. 그들은 천
천히 복쪽 방향으로 퇴각을 했다.

아미파 일행은 그들의 이상한 기진(旗陣)에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자 남자 제자 두 명이 용기를 내어 그들을 뒤쫓기 시작했다.
은이정이 재빨리 움직여 어느새 두 사람의 앞을 가로 막았다. 그
들은 갑자기 은이정의 가로막음에 밀려 뒤로 물러서며 얼굴을 붉
힌 채 정현사태를 쳐다보았다.

"두 사제는 즉시 돌아오거라! 은육협께서 호의로 그러시는 것이
야. 후토기를 쫓아선 안 돼."

은이정은 미안해 하며 사정을 설명했다.

"며칠 전, 저와 막칠제(莫七弟)가 열화기를 뒤쫓다 크게 당했습
니다. 막칠제는 눈썹과 머리카락을 반이나 태웠답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의 옷소매를 걷어 올려 보였다. 그의 팔뚝은
온통 시뻘겋게 데어 있었다. 두 남자 제자들은 그것을 보자 질겁
을 했다.

이때 멸절사태는 싸늘한 눈초리로 주아를 노려보며 물었다.

"네가 조금 전에 은무록을 암습한 지공이 바로 천주만독수(天蛛
萬毒手)렸다!"

"아직 완전히 연마하지는 못했는걸요."

"그래, 완전히 연마했었다면 큰일 날 뻔했겠구나. 그런데 왜 그
자를 해치려고 했지?"

"흥, 오히려 당장에 죽이지 못한 게 유감이에요."

"어째서?"

"그건 어디까지나 나의 사사로운 일이예요. 상관하지 마세요."

주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멸절사태의 몸이 꿈틀한 듯 싶더
니 어느새 정현의 검을 빼앗아 휘둘렀다. 주아는 잽싸게 뒤로 피
하긴 했지만 그녀의 얼굴은 백지장과 같았다. 멸절사태는 주아의
오른손 중지를 자른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눈살을 찌푸리지 않
을 수가 없었다. 주아는 부러진 손목이 다 낫지 않았고, 거기다
천주만독수를 아직 다 익히지 못해 은무록을 공격할 때 손가락에
강철로 만든 골무를 끼었던 것이다. 멸절사태가 의천검을 휘두른
것이 아니고 보통 무쇠검이었기 때문에 주아의 손가락이 잘려나
갈 리가 없었던 것이다.

멸절사태는 검을 정현에게 던져 주며 코웃음을 쳤다.

"흥, 이번에 너무 운이 좋았다. 다음에 또 이런 사악한 무공을
쓸 땐 네 손은 남아 있지 않을 거야."

그런 악독하고 잔인한 무공은 무가의 금기인 터라 은이정도 천
주만독수라는 말에 이맛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녀가 자기를 도
우려고 한 것인 것 같았고, 또한 죽은 자기 조카에 대한 연모의
정이 있어 멸절사태가 다시 그녀에게 출수(出手)를 할까 봐 걱정
이 되었다.

"멸절 사숙님, 이 어린 것이 무공을 잘못 배운 것 같습니다. 나
중에 좋은 스승을 만나 정통 무공을 배우도록 하게 하면 어떻습
니까? 음! 혹시 아마파에서....."

은이정은 아미파에서 제자로 거둬들인다면 그것보다 좋은 방법
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인데, 조금 전에 이 철없는 주아가 멸절사
태를 향해, 늙은 중대가리라고 욕설을 했기 때문에, 은이정은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한 것이다.

그는 다시 서생을 부르더니 말을 이었다.

"청서야, 어서 사태님과 여러 사백, 사숙에게 인사드려라."

서생은 성큼 다가와 멸절사태에게 무릎을 꿇고 절을 올렸다. 그
리고 나서 정현에게 절을 하자 모두는 사양을 하며 같은 예로 답
례했다.

장삼봉의 나이가 이미 백 세가 넘지 않았는가. 나이로 따지면
장삼봉은 멸절사태보다 몇 대 위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은이정이
멸절사태의 제자 기효부와 약혼을 한 적이 있어 멸절사태보다 항
렬이 낮아진 것이다. 그러나 장삼봉과 아미파 조사 곽양과 같은
항렬이라고 할 땐, 오히려 은이정이 멸절사태의 사숙뻘이 될 수
있었다. 다행히 무당과 아마파는 서로 문호가 달라 배분을 따지
지 않고 나에 따라 적당히 칭호해 온 것이다. 그러니, 정현과 여
러 제자들이 서생의 칭호에 사양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미파 제자들은 조금 전에 서생이 세 사람에게 협공당하는 것
을 보았다. 열세에 몰렸으면서도 초식이 정기하고 법도가 어긋남
이 없으며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는 것을 보고 정말 명문 정파의
자재다운 풍범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가까이서 대하고
보니 인물 또한 준수하고 영준한 소년이었다. 어딘가 모르게 대
장부다운 풍모가 풍기고 누구라도 그에게 제압당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이 애는 저의 대사형님의 외아들입니다. 이름은 청서(靑書)라
고 합니다."

소개를 하고 나자 정현이 감탄을 하듯이 말했다.

"근래에 옥면맹상(玉面孟嘗)의 협명이 강호에 자자하더니, 오늘
이렇게 뵙게 되니 정말 큰 행운입니다."

제자들은 서로 소근거리며 그를 칭찬하는 얘기를 나누고 있었
다. 주아는 곁에 있는 장무기에게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

"저 사람은 오빠보다 더잘 생겼는데요.....!"

"물론. 그걸 말이라고 하오?"

"질투가 나세요?"

"내가 무슨 질투를 한단 말이요?"

"저 사람이 아무래도 오빠가 좋아하는 주 소저를 마음에 둔 모
양인데, 질투나지 않으세요?"

장무기가 송청서를 슬쩍 쳐다보니, 과연 그는 주아 말대로 주지
약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장무기는 관심이 없는 듯이 다시
눈길을 돌렸다. 장무기는 접곡에서 자기를 완력으로 영사도로 끌
고가려고 한 아리가 바로 주아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부터 지금
까지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주아는 완력으로
자기를 끌고가려고 해 끝내 그녀의 손을 물어 뜯었지만, 그녀는
아직까지도 자기를 가슴 속에 새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을
알게 된 장무기는 크게 감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청서야, 우린 이제 그만 떠나자."

"네, 사숙님. 그런데 공동파가 오늘 정오까지 이 부근에 오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는데,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으니 혹 무슨 변고
라도 생긴 게 아닐까요?"

"무척 걱정이 되는구나."

"사숙님, 차라리 아미파와 같이 서쪽으로 가는 게 어떻겠습니
까?"

"그것도 괜찮지."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멸절사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몇 년 전부터 장삼봉 진인은 이미 속무에서 손을 떼고 실은 송
원교가 장문직을 맡아오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데, 아마 제 삼
대 장문은 이 송소협이 이을 것이 분명해. 그래서 은이정이 사숙
이면서도 조카의 말에 순순히 응하는군. 정말 훌륭한 집안이야.'

일행이 서쪽으로 약 십 사오 리 길을 가자 눈앞에 모래언덕이
보였다. 정현사태는 송청서가 빠른 걸음으로 모래언덕으로 뛰어
올라가자 얼른 제자 두 명을 송청서의 뒤를 따르게 했다. 만약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아미파가 무당파에 뒤떨어져서는 안 된다
는 생각에서였다.

모래언덕 위로 올라간 세 사람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그것은
언덕 아래 서쪽에 칠, 팔 구의 시체가 널려 있었던 것이다. 일행
이 세 사람의 외침을 듣고 달려올라가 보니, 시체들의 몰골이 처
참하기 짝이 없었다. 한결같이 골이 깨져 터져 나오지 않으면 갈
비뼈가 으스러져 가슴이 움푹 패여 있었다. 검이나 칼에 당한 것
이 아니라 육중한 목곤(木棍)에 당한 것이 한눈에도 분명했다.
견문이 넓은 은이정이 그들의 차림새를 보곤 신분을 알아냈다.

"강서성(江西省)의 파양방(播陽幇)이 전멸했군요. 시체를 보니,
마교의 거목기에 당한 것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멸절사태는 기분이 언짢은 듯 눈살을 찌푸렸다.

"파양방도 여기에 오다니, 귀파에서 초청한 겁니까?"

"아닙니다. 파양방의 유방주는 공동파의 기명제자(汽名弟子)입
니다. 그래서 육대문파에서 광명정을 토벌하러 나선다는 말을 듣
고 사문을 위해 자진해서 온 것일 겁니다."

무림의 명문정파에서는 사실 다른 방회(幇會)에 대해서 별로 달
갑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멸절사태는 그들과 어울리기 싫어서
였다.

아미파 일행은 파양방 시체들을 묻고 모래무덤을 만들어 주었
다. 그리고 일행이 막 길을 떠나려고 하는데, 갑자기 서쪽 맨 끝
에 있는 무덤에서 팍! 하는 소리가 나더니 가운데가 갈라지며 무
덤 속에서 사람이 튀어나오며 남자 제자 한 명을 낚아채고 쏜살
같이 달아나는 것이었다. 이 광경에 아미파 제자들은 모두 혼비
백산하였고 여제자들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틈엔
가 멸절사태, 은이정, 송청서, 정현사태 네 사람은 모래를 박차
고 그의 뒤를 쫓아나섰다. 아미파 제자들은 한참 뒤에서야 그 자
가 바로 청익복왕 위일소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청익복왕 위일소
는 파양방의 옷을 입고 시체 속에 섞여 호흡을 멈추고 있다가,
아미파 제자들이 시체를 모두 매장하고 잠깐 방심을 하는 사이에
모래 무덤을 박차고 나온 것이었다.

장무기, 은이정, 송청서, 정현 네 사람은 처음엔 똑같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달렸으나 점점 경공의 강과 약이 나타나 반 바퀴를
돌아올 땐 두 패로 갈라지게 됐다. 몰론 멸절사태와 은이정이 앞
장서게 됐고, 송청서와 정현사태가 뒤를 따라가게 됐다.

청익복왕의 경공술을 과히 천하무쌍이라 할 수 있었다. 그는 무
거운 남자의 몸뚱아리를 안고 뛰었지만 멸절사태 일행은 그를 도
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다. 위일소는 멀리 달아나지 않고 원을 그
리며 뛰고 있었다. 두 번째 원을 그리고 아미파 제자들에게 가까
이 접근했을 때, 송청서가 갑자기 추적에서 이탈하고 멈춰서며
외쳤다.

"조영주(趙靈珠) 사숙은 패금의(貝錦儀) 사숙과 같이 팔괘(八
卦) 중의 이위 방향에 가 서시요! 그리고 정민군 사숙과 이명하
사숙 두 분께선 진위를 차단하십시오!"

송청서가 소리를 외치자 삽시간에 아미파 제자 삼십여 명은 팔
괘진을 쳤다. 아미파 제자들은 잠시 지휘자를 잃고 있다가 송청
서의 위엄 있는 명령을 듣자 자신도 모르게 귀신에 홀린 듯이 그
의 명령에 순순히 응했던 것이다.

이렇게 되자 위일소느 더 이상 원을 그리며 달릴 수 없었다. 그
는 갑자기 날카로운 웃음을 웃어 젖히더니 안고 있던 남자를 공
중으로 내팽기치고 쏜살같이 달아났다. 멸절사태가 잽사게 공중
에서 떨어지는 제자를 받자, 멀리서 청익복왕 위일소의 웃음소리
가 들려왔다.

"하하하! 아미파에 그런 인재가 있다니, 멸절사태도 알아줘야겠
군."

그의 감탄은 몰론 송청서를 두고 한 것이다.

멸절사태는 안고 있던 제자를 본 순간, 그만 얼굴이 험해졌다.
아직도 목덜미에서는 선혈이 뿜어졌고 이빨자국 두 개가 또렷이
나 있었다. 숨은 이미 끊겨 있었다. 무도는 그를 둘러싸며 침울
한 표정들을 지었다.

잠시 침묵이 흐르자 은이정이 입을 열었다.

"소문에 청익복왕은 한 번 무공을 시전하고 난 후엔 꼭 산 사람
의 뜨거운 피를 빨아 먹어야 한다고 들었는데, 과연 소문대로군.
이 사제께서 희생당하다니 정말 애석하군."

멸절사태는 부끄러움과 분통을 느꼈다. 자신이 장문직을 이어받
은 후 이렇게 큰 좌절을 당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연거푸
두 제자가 피를 빨리며 죽어 갔는데도 아직 상대의 얼굴조차 자
세히 보지를 못했다니! 그는 한참 동안 멍청하게 허공을 바라보
더니, 갑자기 고개를 돌려 송청서에게 물었다.

"송소협은 어떻게 내 제자들의 이름을 다 알고 있소?"

"조금 전에 정현사숙께서 소개해 주셨습니다."

"아! 한 번만 듣고서도 모두 기억하고 있다니, 우리 아미파엔
언제 이런 인재가 나타날까!"

그날 밤 그들은 모두 야영을 했다. 송청사가 갑자기 멸절사태에
게 걸어가 공손하게 인사를 올렸다.

"선배님,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후배가 한 가
지 청할 일이 있습니다."

"법도에 어긋난 것이라면 아예 부탁하지 말게나."

"네, 죄송합니다."

송청서는 다시 공손히 인사드리고 조용히 은이정 옆으로 돌아왔
다. 아미파 제자들은 송청서가 사부님에게 청을 드렸다가 단 한
마디에 거절당하자 모두들 무슨 부탁을 드렸었는지 몹시 궁금했
다.

정민군이 참지 못하고 궁금중을 풀기 위해 송청서의 곁으로 갔
다.

"송소형, 우리 사부님께 무슨 부탁을 드렸었습니까?"

"저의 부친께서 검법을 전수하시면서 하시던 말씀이 있습니다.
당대의 검법에 있어서 일신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은 분문의 사조
(師祖)님이고, 그 다음이 바로 아미파의 멸절사태님이시라고 하
셨습니다. 그러나 무당과 아미 양파의 검법에는 서로 장단점이
있는데, 예를 들어 본문의 수휘오현(手揮五弦) 초식은 검끝에 경
력이 너무 들어가 아미파의 경라소선(經羅小扇)보다는 자유자재
로 구사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후배는 사태님에게 이
번 기회에 한 번 보여 주셨으면....."

그러면서 그는 장검을 뽑아 자기가 아는 대로 경라소선의 초식
을 흉내냈다.

"그렇게 하는 게 아닙니다."

정민군은 송청서의 흉내가 우습다는듯이 그의 손에서 장검을 받
아들고 한바탕 시연해 보였다.

그러자 송청서는 탄복했다.

"저의 부친께서 항상 자신은 운이 없어 귀파 존사(尊師)님의 검
술을 볼 기회가 없었던 것을 무척 애석해 하셨는데, 오늘 밤 후
배는 정사숙의 경라소선을 보고 안목을 넓혔으니 정말 큰 영광입
니다. 조금 전에 후배가 품고 있던 검술의 의혹을 풀기 위해 멸
절사태님께 몇 수 가르침을 받을까 하고 청을 드렸었던 것인데,
생각해 보니 후배는 귀파의 제자가 아닌데 처음부터 그런 부탁을
드리려고 한 제가 잘못이었던 것 같습니다."

멸절사태는 멀찌감치 앉아 있었지만 그의 말을 모두 듣고 있었
다. 멸절사태는 무당파의 대제자이자 앞으로 장문인에 오를 송원
교가 자기를 검술에 있어서 제 이 인(第二人)자라고 칭찬한 말에
매우 기분이 좋았다. 장삼봉 하면 당대 무술의 태산북두(泰山北
斗)이며 모든 무림의 존경을 받는 자라, 멸절사태는 감히 고금에
보기 드문 무학의 대종사를 능가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런
데 무당의 대제자가 검술에 있어서 장삼봉 외엔 자기를 꼽다니,
그녀는 정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조금 전에 정민군이 시연한 경라소선은 경력이 삼사성
(三四成)의 경지밖에 이르지 못해 속으로 중얼거렸다.

'천하에 명성을 떨치는 아미 검법이 고작 그 정도더냐?'

그는 몸을 일으켜 세우고 정민군 앞으로 걸어가 아무 말 없이
정민군의 장검을 빼앗아 들고는, 자세를 가다듬고 서서히 검을
뻗으며 휘둘렀다. 좌에서 우로, 다시 우에서 좌로 그는 연거푸
아홉 번을 휘둘려 댔다. 그의 동작은 기이할 만큼 빨랐지만, 그
러나 한 동작 한 동작을 모두 또렸하게 볼 수 있었다.

"정말 훌륭하고 오묘한 검법이로구나!"

은이정이 탄성을 질렀다.

송청서는 숨을 죽이고 정신을 집중시켜 멸절사태의 검법을 유심
히 살펴보며 내심 정말 뜻밖이라고 생각했다. 자기가 멸절사태에
게 잘 보일 셈으로 슬쩍 아미파의 검법을 치켜세운 것인데, 멸절
사태가 직접 시전(施展)해 보인 것이 천만 뜻밖이었다.

송청서는 진정 그의 가르침을 바랬다. 그녀는 송청서가 묻는 대
로 서슴치 않고 자세히 설명해 주며 초식을 직접 시전해 보였다.
자신의 문하제자들에게 가르칠 때보다도 더 열성적이었다. 송청
서의 무학이 높고 총명한 터라 그가 묻는 질문은 모두 신법이나
검법에 있어서 모두 요점뿐이었다. 아미파 제자들은 양쪽으로 나
눠 둘러앉아, 사부님이 펼치는 하나같이 정교하고 오묘한 검법을
구경하고 있었다. 사실 어떤 제자는 십여 년 간을 따라다녔지만
스승의 신기(神技)를 보긴 이번이 처음이었다.

장무기와 주아는 아미파 제자들이 둘러앉은 울타리 밖에 떨어져
앉아 있었다. 그들은 아미파의 검법을 훔쳐 보고 싶지 않았다.
주아는 갑자기 장무기에게 엉뚱한 말을 건넸다.

"오빠, 내가 만약 청익복왕과 같은 무공을 익힌다면 죽어도 여
한이 없겠어요."

"그 따위 사악한 무공을 배워서 뭐 할려구? 은육협의 말을 못
들었소? 청익복왕은 무공을 한 차례 쓰고 날 때마다 산 사람의
피를 빨아 먹어야 한다고 하는데 그게 어디 사람이오? 귀신이
지."

"그의 무공이 높아 아미파 제자들을 마음대로 죽일 수 있는 거
예요. 만약 그의 무공이 보잘것 없었다면 벌써 저 늙은 여승에게
잡혀 죽었을 거예요. 다만 피를 빨려 죽지 않을 뿐이지 죽기는
마찬가지죠. 그러니까 명문정파나 사파(邪派)나 사람 죽이긴 마
찬가지지 다른 게 뭐가 있어요?"

장무기는 잠시 대꾸할 말을 잊었다. 순간 갑자기 아미파 제자들
울타리 속에서 청광(靑光)이 번뜩이며 장검 한 자루가 어둠에 싸
인 공중으로 치솟아 올랐다. 그것은 송청서와 멸절사태가 서로
대련을 하면서 송청서의 검이 멸절사태의 흑소영호(黑沼靈狐)의
초식에 걸려 공중으로 튕겨져나간 것이었다.

흑소영호 초식은 아미파 조사(祖師), 곽양(郭養)이 왕년에 신조
대협 양과와 같이 흑소에 가서 영호를 잡던 때를 기념하기 위해
창안해 낸 검법이었다. 모두들 공중으로 튕겨져나간 검을 바라보
고 있던 그 순간, 갑자기 동북방 십여 리 떨어진 곳에서 황색 불
꽃이 치솟아 오르는 것이었다.

"아, 공동파에 위험이 닥쳤군! 빨리 도우러 갑시다!"

은이정이 외쳤다.

이것은 육대문파에서 이번 서역까지 와 마교를 섬멸하는 행동을
은폐하기 위해 여섯 갈래의 방향으로 나뉘어 오면서, 서로의 연
락 방법을 취하기 위하여 각파에 따라 여섯 가지 불꽃을 정했던
것이다. 그 중 황색 불꽃은 공동파의 신호였다. 모두 불꽃의 방
향으로 달려갔다. 가까이 접근할수록 비명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
왔다. 가까이 접근한 모두는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차마 눈뜨고
볼수없었다. 그것은 싸움이 아니라 차라리 도살장이라고 할 수밖
에 없었다. 칼날이 번뜩이며 모두 죽기 아니면 살기로 악전 고투
를 벌이고 있었다.


----- 제 3 권 6 장 끝 -----


의천도룡기(倚天屠龍記) 제 3 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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