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꺽정 피장편 4

3학년2반 | 2022.01.02 07:35:19 댓글: 0 조회: 423 추천: 0
분류연재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39055
  제 4장 뒷일
  1
  이중은 김식을 감춘 죄로  부령에 안치되고 오희안은 김식과 통모하였다는 죄
목으로 벽동에 찬배되고 하정은  김식과 무슨 음모를 같이 하였다고 무지무지한 
곤장 사백여 도에 구경 장폐를  당하고 그 외에도 김식의 제자와 문객으로 죄를 
당한 삶이 한둘이  아니었다. 이신은 고발한 공으로 양민이 되어  충청도에 가서 
살다가 강도 와주로 몰리어 그 고을군수 손에  맞아 죽었다. 뒷날 이야기는 고만
두고 이신이가 처음 고발할 때 김덕순과 박연중의  장사인 것을 말하여 남고, 심
정은 특별히  덕순과 연중을 잡으려고 여러  가지로 애를 썼다. 영남  대로는 각 
고을 군교를 풀어 목목이 지키며 행인을 기찰하게 하고 김식의 서울집은 근처에 
포교를 묻어 출입하는 사람을 일일이 살피게  하였다. 숭선부정은 덕순의 장인이
요, 연중의  상전이라 속으로 소식을  통할는지 모른다고 옥에  잡아 가두었다가 
애매하게 형장 개를  때리어서 영해로 귀야을 보내었다. 남곤은 덕순을  잡지 못
한 것이 큰 근심이되어서 밤잠을 편히 자지  못하였다. 자는 처소를 남에게 알리
지 아니하려고 하룻밤에 잠자리를  다서여섯 군데로 옮기는데 잠이 들려말려 할 
때에 덕순이란 세차 보이는 남자가  칼을 들고 눈앞에 나서서 소스라쳐 잠을 깨
는 일이 많았었다.
  덕순이와 연중이는 철원서  떠나서 서울로 오는 길에  문경 새재 근처에 와서 
소로로 들어섰다가  길을 잃고 헤매던  중에 우연히 어느  적굴에를 들어갔었다. 
화적들이 두 사람을  해치려고 하다가 망명 죄인  김식의 아들 김덕순의 노주인 
것을 알고 손님으로 맞아들이어 대접을  융숭히 하고 그중에 수두 되는 자가 덕
순을 대하여 “서방님, 서울 가실 것 없이 우리하고 같이 지냅시다. 지금 임금도 
요전 임금같이 내쫓기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급살을 맞거나 해서 세상이 변하거
든 서방님이 나가셔서  보구니 숭륭대부도 하고 마치뚝딱대장도  하시구려. 지금 
서울 갔다가 소인놈들  손에 조광조처럼 죽으면 무엇하오. 내 말대로  어디 같이 
지내봅시다.” 하고 덕순을 나가지 말라고 만류하니 덕순은 생각하였다. 자기 수
하에 무기를 갖추가진 강병이  수천 명만 있으면 거침없이 서울까지 지쳐올라가
서 남곤, 심정의무리를 잡아다가 천참만륙 하겠으나 끝에  녹이 슨 창 개와 날이 
무딘 환도 개  외에는 모두 박달나무 방망이밖에  가지지 못한 화적당으로 육십 
명은 소용이 없었다.  “서울집 일이걱정이니까 올라가 보아야겠소. 형님이 있지
만, 몸이 약해서 급한 때는 자기 한몸도  주체궂어 할 사람이니까 어머니와 여러 
식구들을 어떻게  하겠소. 내가 올라가 보아야지.”  하고 수두의 말을 거절하였
다.
  그러나 날마다 “내보내 주리다.” 하고 말하면서  좀처럼 내보다 주지 아니하
는 수두에게 붙잡히어 덕순의 노주 두 사람은 그 적굴에서 한 달 가까이 묵었었
다. 길을 나서 보니 한  달 전이 옛날이었다. 길목마다 수직하는 각 고을 군교들
이 행인을  맘대로 통행하지 못하게  하여 인심이 소란할  지경이었다. 덕순이와 
연중이는 낮이면 으슥한 산골이나  궁벽한 촌가에서숨어 지내고 밤이면 길을 걸
었다. 나중에 서울까지 무사히 오게 되었으나  덕순이는 바로 집으로 들어가기가 
위태하여 어디로  갈까 망설이다가 점잖은 갖바치를  생각하고 연중이를 데리고 
혜화문 안을 찾아왔다.
  이때 갖바치는 문 밖에 나섰다가  두 사람이 인사도 하기 전에 “어서 방으로 
들어가십시다.” 하고 앞서 방문을 열어주고 덕순의  노주가 방에 들어앉은 뒤에 
갖바치는 안으로 들어가서 밥 두 상을 갖다 주며 “시장들 할 터이니 어서 밥들
을 잡수시오.” 하고 말하는데 그  밥상이 미리 올 것을 알고 차려둔 것 같았다. 
밥상을 치운 뒤에 덕순의 아버지가 지리산 속에서 자결한 것과 덕순의 어머니가 
옥에 갇히었다가 얼마 전에  놓이어 운구하러 내려간것과 덕수가 어디로 도망한 
것과 덕순과 연중을 잡으려고  경향이 소란한 것을 갖바치가 대강대강 이야기하
여 들리었다.  덕순이는 천지가아득하였다. 처음에는  넋잃은 사람같이 앉았다가 
한동안 뒤에 갑자기 자리에  엎드러지며 소리없이 우는데 흘러나오는 눈물이 흥
건하게 자리에 고이고  흑흑 느낄 때마다 허리 위가 꿈틀꿈틀  하였다. 연중이가 
일변 눈물을 뿌리며 흔들어 말리나 좀하여  그치지 아니하였다. 덕순이가 또다시 
갑자기 머리를 들고 이를 가는데 그 얼굴이 귀신을 밟고 섰는 금강과 같이 무서
웠다. 덕순이가 “남곤이란 놈을.” 하고 주먹을 쥐고 일어서려고 하니 갖바치가 
“정신없는 소리 마시오.  주먹으로는 원수를 못 갚소.” 하고  붙들어 앉히었다. 
덕순이가 다시 얼빠진 사람같이  우두머리 앉았다가 갖바치를 보고 “집에나 좀 
가보고 오리다.” 하고 말하니 갖바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것은 그리 하시오. 
그렇지만 포교들의 눈이 무서우니 조심하시오.” 하고  가는 것을 말리지 아니하
였다.
  2
  덕순이가 집 문간에를 와서 보니 밤도 늦지 아니하였는데 대문은 벌써 닫히었
다. 들창에 불빛이  보이는 행랑방이 없지 아니하나 문 열라고  소리치기가 어려
운 까닭에 사랑  뒷담께로 돌아가서 담을 넘어  들어왔다. 사랑방, 수청방 할 것 
없이 불이 켜  있는 방이 하나도 없다.  사방이 캄캄하였다. 덕순이는 사람 없는 
사랑마당에 주주물러 앉아서  대성통곡을 하고 싶었으나, 억지로  참고 안중문간
에 와서 중문을  밀어보니 역시 빗장이 걸리었다. ‘어머니도 아니  계시고 젊은 
동서끼리 집을 지키고 있으니까 밤 저녁이면 집안이 휘휘해서 일찍 문을 닫히는 
게다.’ 하고 생각하며 덕순이는 발씨 익은 대로  다시 사랑 뒤로 돌아와서 안으
로 통한 일각문 담을 뛰어 넘어왔다. 아무리  뛰업질 잘하는 덕순이가 사뿐 뛰었
다고 하더라도 땅에 떨어질 때 소리가 나지 않을리 없다. 
  앞마당에서 개가 야단스럽게 짖었다. 그러나 ‘이 개.’ 하고 문 열어 보는 사
람이 없는 양이었다.  개가 물 밑 종부담 뚫어진 곳으로  기어나와서 뛰어들어온 
사람에게로 와락 덤비려고  하다가 젊은 주인의 냄새를  맡고 펄펄 뛰며 반기는 
뜻을 표하였다. 덕순이는 경황없는 중에도 개의  뜻을 저버리지 못하여 대가리를 
쓰다듬어 주고 개는 답례하듯이 젊은 주인의  손등을 핥아주었다. 덕순이가 안방 
뒤를 돌아서 지쳐놓은  부엌문을 열고 앞마당으로 나왔다. 집 안을  둘러보니 안
방과 건넌방은 문이  첩첩히 닫히었고 아랫방만 덧문 한쪽이 열리어  있다. 방마
다 희미한 불빛이 있는 것이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련만 내다보는 사람은 하나
도 없었다. 덕순이가 ‘안해도 잠이 들었나?’ 하고  생각하며 아랫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철 아닌 병풍이 앞으로  둘러치었는데 붉은 깃발 같은 것이 그 병풍
에 걸치어 있다.  병풍 앞에 누워 있는  사람이 문 여는 데  놀라서 “누구야?” 
하고 소리를 지르며  일어났다. 머리가 헙수룩하고 얼굴이  흉상스러워서 사람인
지 귀신인지 분별할  수가 없을 지경이다. 더구나 누구인 것을  언뜻 알아내기가 
어려웠다. 덕순이가 눈을  씻고 들여다 보다가 “연중 어멈인가?”  하고 물은즉 
“애구 서방님이오?” 하고  곧 엉엉 울기 시작하였다. 덕순이가  방안으로 들어
와서 자세히 살펴보니 그 붉은 깃발이 며정이다. 분으로 쓴 글씨가 있다. 첫머리
는 병풍 너머로  넘어갔으니 전주이씨지구 여섯 자가 덕순의 눈에  보이었다. 덕
순이는 가장 정신을 잘 차리는 듯이 '전주이씨라니? 전주이씨가 누구일까?‘  하
고 의심하며 "연중 어멈, 아씨 어디  갔나?" 하고 물으니 연중 어멈은 대답이 없
이 눈물을 이리  씻고 저리 씻고 하다가  "연중이는 어디 있어요?" 하고  도리어 
물었다. 덕순이는 맑은 정신이 돌았는지 "아씨가 죽었나? 언제 죽었나?" 하고 물
어서 연중 어멈이 목메인 말소리로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아씨는 서방님이 떠
나신 뒤로  진지 한 끼를 잘  잡숫지 아니했세요. 이 댁  마님이 잡혀가신다본댁 
영감이 잡혀가신다한뒤 맑은  물 한 모금도 변변히 잡숫지 아니했세요.  밤낮 서
방님 일이 걱정이 되셔서 놀아가실 때까지  서방님 말씀이었세요. 누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되신 뒤에는  밤저녁에 개만 짖어도 서방님 오시나 내다보라고 
하시겠지요. 한번은 어멈이 ‘서방님이 오시기는 어디를 오셔요?' 하고 말씀하니
까 '그래 어멈 말이 옳아' 한숨을 쉬시더니 '어멈 나는 죽지 않을 테야. 한번  만
나 보입고 죽지 그냥  죽을 수가 있나?' 하고까지 말씀하던 양반이... 서방님! 조
금 일찍 오시지요 원이나 풀고 돌아가시게! 운명하시던 날  본댁 마님이 조카 양
반을 데리고 오셨는데  아씨가 외사촌을 보시고 '언제 오셧세요? 고생이나  과히 
안하셨세요?' 하고  말씀하시기에 처음에는  몰랐더니 나중에 '아버님은  어디로 
가시게 하였느냐?  선산 음식이 고약하지 아니하더냐?'  모든 말씀이 그  양반을 
서방님으로 알고 하시는 말씀입디다. 본댁 마님은  어머니로 알아 보시든지 어머
니! 불러 가지고  '나는 인제 죽어도 한이  없어요. 한번 만나보기가 원이었더니 
인제 원을 풀었어요' 하고 불과 얼마 아니 되어서 자는 것같이 운명하셨세요. 서
방님 진외가댁에서와 아씨 외가댁에서들 오셔서 초종을 치르시는 중인데 오늘은 
지관을 데리고 산에들 가셨세요. 모레쯤 장사를 지내신답디다." 덕순이는  눈물도 
나오지 아니하고 답답한  가슴이 메어질 것 같을 뿐이었다. 생각도  없이 댕풍을 
제치고 관머리에 가서 앉아서 두 손으로 관을 만지며 "일어나오.  고만 일어나오. 
내가 여기 왔소." 하는 말이, 관 속에 든 사람을 잠든 사람으로 아는 것 같았다.
  3
  안방에는 귀먹쟁이 늙은 할미와  계집아이들만 자는 까닭으로 개 짖는 소리가 
나고 신발 소리가  나는 것을 도무지 몰랐지만, 건넌방에서 자는  덕수의 안해와 
상직꾼은 알고도 무서운  생각이 나서 밖을 내다보지 못하였다. 아랫방에  문 여
는 소리가 나고 연중 어멈의 이야기 소리가 나는 것을 들은 뒤에야 덕수의 안해
가 상직꾼을 내보내 보았다. 무서움을 타는 상직꾼이  나가고 싶지 않은 것을 억
지로 나가더니 무엇을 보고 놀란 사람같이  방으고 뛰어들어왔나. 덕수의 안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치어다보고  앉으니까 상직꾼이 수상스럽게 바짝 가까이 오
며 "서방님이오." 하고 바깥을 가리키니 덕수의 안해는 남편이 왔다는 줄로 듣고 
"서방님이 오셨어? 왜  아랫방으고 먼저 가셨을까?“ 하고 허중지둥 이부자리를 
치우는데, 상직꾼이 우두커니 보다가 한참 만에야 깨우친 듯이 가만히 "작은서방
님이 오겼어요. " 하고 말하니 덕수의 안해는 "그러면 진작 작은서방님이라고 그
러지." 하고 조금  알상스럽게 말하고 치우던 이부자리를  그만두고 벗어 놓았던 
치마만 다시  입은 뒤에 아랫방으로  내려왔다. 관머리를 잡고  멍멍하게 앉았는 
시동생을 보고 인사 대신에 울음을 내놓으니 엉엉 울기밖에 아니하던 연중 어멈
은 덩달아서 곡성을  내었다. 상직꾼이 쫓아내려와서 "아씨, 바깥 행랑에  포교가 
와 있어요. 수상하게  알리다. 울음을 그치시오. ” 하고 말리어  곡성이 막 그치
자, 중문을 박차는 소리가  들리었다. 상직꾼이 겁이 나서 벌벌 떨며 "저것 보아
요. 포교 아니라구요."  하고, 말하며 덕순의 형수가 "서방님 어서  피하시오." 하
고, 연중 어멈이 흉내내듯이 "서방님 어서 피하시오. "  하고 말하며 눈만 두리번
거리던 덕순이가 땅이 꺼시게 한숨을  쉬고 벌떡 일어서서 간나 온다 말이 없이 
밖으로 나갔다.  상직꾼은 "나는 죽어도 못  나가겠어요." 하고 나가지  아니하고 
연중 어멈이 칠팔십 먹은 할미나 다름없이 꼬부랑거리고 나가서 중문 빗장을 따
놓았다. 들어온 사람은 포교가 아니요, 덕순의  진외당숙이다. 마침 산에 갔다 돌
아와서 안에서 곡성이 나는 것을  듣고 다른 연고가 있는가 하여 들어온 것이었
다.
  갖바치가 연중이와 같이 앉아 이야기하는 중에 덕순이가 풀기 없이 고개를 숙
이고 들어왔다. 갖바치가 자리를 비켜 주고 나서  “전에 나를 보이시던 사주 생
각하시오? 붉은 깃발이니 무어니  하던 것 말씀이오?” 사주에 아들이 없단다고 
걱정스러워하던 이씨의  모양이 덕순의 눈앞에 어른거리며  눈물이 좌르르 흘렀
다. 갖바치가 “내가 공연한 말을 했나 보오그려. 그렇지만 가슴이 답답한 때 한
번 실컷 우는 것이  좋지요." 하고 말하자, 덕순이는 입술을 내밀고 코글 들여마
시며 울기  시작하여 흑흑 흐느끼기까지  하였다. 갖바치는 참말로  실컷 울라고 
내버려 두는지 말이 없고 연중이가 ”서방님 웬일이오?" “서방님 댁에 또 무슨 
연고가 있습디까?" "고만 진정하고 말씀 좀 하시오." 하고 말하며 말리었으나 덕
순은 말을 듣는지 마는지 하고 느껴  가며  울었다. 밥 두서너 솥 지을 동안이나 
착실히 지난 뒤에 덕순의 울음이 그만저만 그치게 되니 갓바치는 
"이제 다 우셨소? 속이 좀 시원하오?" 하고 묻고 연중은 “댁에 갔다  오며 그렇
게 정신없이 우시는  것이 대체 무슨 까닭이오?”하고 물었다.  덕순이는 가슴이 
답답한 줄은  모르겠으나 모든 것이 꿈속  같았다. 초상난 집이라고 빈  집 같은 
것도 꿈속 같고  연중 어멈의 꼴이 귀신 같은  것도 꿈속 같고 관머리에 앉았을 
때 형수가 울던 것도  꿈속 같았다. 그뿐 아니라 꿈속에 보는  것과 다름이 없었
다. "내가 못된 꿈을 꾸는 게지." 하고  덕순이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다시 한농
안 지난 뒤에  갓바치가 덕순을 보고 "지금  서울서 오래 묵으시는 것이 위태한 
일이오." 하고 연중이를 가리키며 "저 사람과 같이 다니시는 것도 위태한 일이니
까 각가 어느 시골로  가서 피신하는 것이 좋을 터인데 그럴  만한 데가 있겠소, 
없겠소?“ 하고 물어서 피신들 할 곳을  공론하게 되었는데, 덕순이는 충주 가서 
그 아버지 산소에 다니고 그 뒤에 신명인을 찾아가서 피신할 것을 의논하겠다고 
말하고 연중이는 평산 사는 생가 외사촌이 사람이 진실하여 의지할 만하다고 말
하여 갖바치는 한 참 생각하다가 둘 다 좋겠다고 말하였다.
  4
  덕순이는 그 안해 장사의 발인하는 것을 먼빛으로라도 보고 떠날 생각이 있고 
연중이는 그 어머니를 한 번 만나고 갈 맘이 있어서 두 사람이 모두 이삼 일 동
안만 서울서 묵게 하여 달라고  말하니 갖바치는 이것을 다 아는 듯이 “인정과 
도리를 막으려고는 하지  아니하오. 두 분이 일동일정을 나 하라는  대로 한다면 
이삼일쯤 묵어도 좋지만  그렇지 아니하면 묵으라고 허락하기가  어렵소.” 하고 
말하여 덕순이와 연중이는묵을  욕심에 무엇이든지 하라는대로 하겠다고 말하였
다. 그러나 이튿날 갖바치가 잠깐 어디 간  사이에 덕순이와 연중이는 갖바치 몰
래 무슨 공론을 하여 두었다. 그날 밤에  연중이가 갖바치를 보고 “어제 서방님
이 갔다오듯이 잠깐  가서 어머니를 보고 오겠습니다.” 하고 갖바치  허락 나기
를 기다리는데 갖바치는 말이 없이 무엇을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덕순이가 옆에
서 “잠깐 갔다오겠다니 가라고 합시다." 하고 허락하기를 권하니 갖바치가 빙그
레 웃고 "어제는 꿈속같이 다니어 오셨으니까 오늘 밤에 연중이와 같이 가서  부
인의 관 위에 눈물 줄기나 흘리고 오실 맘이 있지요?" 하고 물으며 덕순의 얼굴
을 들여다보는데 덕순이는 무슨  음사나 들킨 것같이 가슴이 섬뜩하였으나 아닌
보살하고 천연하게 ”맘이 있다뿐이겠소? 그러지  않아도 말씀하고 싶던 차요.“ 
하고 말하였다. "쓸데없는  일이라고 말리고 싶지만 정히  가고 싶거든 가시오그
려.” 하는 갖바치의  허락을 들은 뒤에 밤이 들기를 기다리어  덕순과 연중이는 
몸을 가뜬하게 차리고  신끈까지 단단히 매고 갖바치의 집을 나섰다.  두 사람의 
가는 곳은 덕순의  집이 아니요, 남곤의 집이었다.  두 사람이 남곤의 집 근처에 
왔을 때는 밤이  삼경이 지난 뒤라 골목 안이  적적하고 남곤의 집 솟을 대문이 
굳게 닫히었었다. 두 사람이 줄행랑을  끼고 돌아 담이 있는 곳에 왔다. 담은 뛰
어넘기라도 하겠으나 담 안의 지형을 몰라서 뛰지를 못하고 덕순이는 아래서 망
을 보고 연중이가 몸을 솟치어 담에 손을 걸치고 다시 한 번 몸을 솟치어 담 너
머를 넘어다보니 그곳이  사랑 앞 화초밭머리이었다. 연중이가 담 위에  올라 걸
어 앉으며 아래에 있는 덕순에게 솟짓하여 덕순이도  담 위로 올라왔다. 두 사람
이 사뿐사뿐 뛰어내려서 화초밭 뒤에 선 큰 배나무 밑에 몸들을 숨기고 집안 동
정을 살펴보니 큰사랑, 아랫사랑, 수청방에 모두 불이 키었고 큰사랑만은 아래윗
간 덧문이 다  닫히었는데 사람틀은 잠이 들었던지 여러 방이  모두 괴괴하였다. 
두 사람이 화초밭에거 나와서 큰사랑 뒤를 한번 돌아보고 다시 앞으로 돌아와서 
사랑마루로 올라왔다.  덕순이가 윗간 덧문을  지그시 잡아당겨 보니  걸린 건이 
아니라 스르르 열리었다. '인제 남곤이는 섬에 든 쥐다.‘ 하고  생각하며 연중을 
돌아보고 한번 씽긋 웃은 뒤에 연중의 앞을  서서 방안으로 들어왔다. 방에는 장
지 밖에 한 사람이 누워 자고 장지 안  아랫목에 빈 자리가 깔리었다. 누워 자는 
사람은 머리 꽁지가  있는 것이 상노아이 모양이다. 자는 아이를  덕순이가 발끝
으로 건드리어 깜짝  놀라 일어나는 것을 보고  “이놈, 꼼짝 마라.” 하고 먼저 
여기를 지르고 “너의 주인이 어디 갔느냐?” 하고  말을 물었다. 상노아이는 사
시나뭇잎 같이 떨고 앉았다가 간신히 “마마님댁.”  한마디를 내고는 말문이 막
히어 말을 못한다. 덕순이와 연중이가 잠깐  서로 바라보다가 덕순이가 눈짓하며 
연중이가 상노아이에게 대어들어 땋은  머리를 앞으로 돌려 제물 재갈을 물리고 
방구석에 걸린 수건을  내려 두 팔을 뒤젖혀 동이었다. 연중이가  아이를 동이는 
동안에 덕순이는 골방문까지 열어보았다. 연중이가 동인  아이를 번쩍 안아서 골
방 안에 집어다 넣고  문을 닫고 고리를 걸었다. 아랫목 머리맡에  걸려 있는 환
도가 덕순의 눈에 뜨이며 어떤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덕순이는 곧 벽에 걸
린 옷을 내려서  베개에 입혀 놓고 환포를 내려서  날을 빼어 높이 들고 두서너 
걸음 뒤로 물러섰다가  눈을 부릅뜨고 앞으로 나서며 번개같이 내리쳤다.  옷 입
힌 베개에 칼자죽이 깊이 났다. 보고 섰던 연중이는 씽긋 웃었다. 덕순이가 환도
날을 꽂아서 걸렸던 자리에 다시  걸어 놓고 연중이와 같이 돌아서 나오려고 할 
때, 수청방에 문 여는  소리가 나더니 성큼성큼 걸어오는 발소리가 들리었다. 두 
사람은 불을 불어 끄고 윗간 문 옆에  붙어섰다. 청지기인지 무엇인시 한 사람이 
문 앞에 와서 "왜 덧문을 열어놓고 자노?" 말하며 미닫이를  여는데 연중이가 별
안간에 앞으로 나서서 발길을  날리어 등가슴을 내질렀다. '아이쿠’소리와 함께 
쿵 하며 마당에 나가떨어졌다.  수청방 문이 열리고 아랫방 문이 열리었다. 설렁
소리가 야단스럽게 났다.  덕순이와 연중이는 화초밭 사이로 뛰어 와서  훌훌 담
을 뛰어넘었다.
  5
  덕순이가 연중이와 같이 공론한  일은 하룻밤에 남곤과 심정을 죽이자는 것이
었는데, 남곤에게서 낭패 보고는 다시 의논을 더  하기로 하여 심정의 집엔 가도 
아니하였다. 덕순이가 연중이와 함깨 남곤의 집에서  나오던 길로 손쌀같이 자기
의 집  사랑 뒷담께로 왔다. 전날에  뛰엄질을 내기하듯이 슬쩍슬쩍 뛰어넘었다. 
사랑 앞마당에 불빛이 환한 것이 어젯밤과는 딴판이라 두 사람이 같이 발자취를 
감추고 가만가만히 수청방 옆으로 나와서 기웃이 동정을 살펴보니 마당 한 옆에 
초초한 상여를 꾸며놓고 상여 앞 멍석 위에 상두꾼 몇 사람이 투전장을 뽑고 있
다. 연중이가 덕순의  소매를 지긋거리어 뒷마당 으슥한 곳으로 와서  “여보 서
방님, 내일 발인인가 보오.  오늘 밤엔 안팎에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니 부질없이 
나서지 말고 그대로 갑시다.” 하고 권하여 두  사람이 다시 담을 뛰어넘어 혜화
문 안으로 돌아왔다. 갖바치가 그때껏 자지 않고  있다가 두 사람을 맞아들여 앉
은 뒤에 “두 분이 나를 속이고 부질없는 일을 하여 내일부터는 서울 안이 소란
할 모양이오.” 하고  말하는데 덕순이가 “무슨 일을 속이고  했단 말씀이오?” 
하고 시침을 때려 하였더니  갖바치가 허허 웃고 나직이 “벼개가 무슨 죄요?” 
하고 말하여 덕순이와  연중이는 일시에 깜짝 놀랐다. “남곤이가 시임대신이오. 
대신을 모해하려던 사람이  서울 안에 앉아 배기겠소. 내일 아침  전으로 서울을 
떠나야만 무사하겠는데 평산길을 태평하나 충주길이 위태하니 연중이는 새벽 일
찍이 떠나게 하고  피신할 곳을 다시 의논합시다.” 귀신같이 알고  있는 갖바치
의 하는 말을 덕순이나 연중이가 거역할 생각을  못하였다. 두 사람은 작별할 것
이 섭섭하여 지난 이야기, 앞이야기 하는 중에 날이 새기 시작하였다. 누웠던 갖
바치가 일어 앉으며  곧 연중에게 떠날 준비를  차리라고 말하고 갖바치가 일어 
앉으며 곧 연중에게 떠날 준비를 차리라고 말하고 벽장문을 열고 미리 준비하였
던 양식 전대를 내주었다. 연중이가 “서방님,  그러면 나는 떠나겠소. 죽지 않고 
살면 다시 만나  보입지요.” 하고 일어나서 절을 하니 덕순이도  일어서서 “오
냐, 아무쪼록 살아서  다시 만나보자.” 하고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하였다. 연중
이가 갖바치에게 작별  인사를 하기 전에 “한마디 여쭈어 볼  말씀이 있습니ㄷ. 
우리 어머니를  뒷날 만나보게 되겠습니까?” 하고  물어서 “만나보다뿐이겠나. 
염려 말고 잘 가게.”  하는 말을 듣고는 “인제는 안심하고 가겠습니다.” 하고 
갖바치에게 절을 하려 하니  갖바치가 “절을 무슨 절.” 하고 붙들었다. 연중이
를 떠나보낸 뒤에 갖바치가 덕순을 보고 “피신할 만한 곳이 한 군데 있기는 하
나 그곳에를 가 있자면 조금 욕스러운 일을 참아야 하겠으니 참을 수 있겠소?” 
하고 물으니 덕순이는 두 번 생각도 아니하고  “참으라면 참지요. 대체 무슨 욕
스러운 일인가요?” 하고  말하였다. “홍인문 밖 이판서가 사람도  무던하고 선
영감과 교분도 없는 터이라 그를 보고 말하면  꺼리지 않고 잠시 숨겨줄 것이오. 
또 그 집에서 창녕으로 낙향한다니 거기까지 따라가면 몇 해 동안이라도 안전하
게 피신할 수 있을 것이오.” “이판서 어른은 우리의 은인이오. 내가 은인을 원
수로 잘못 할고 벼르기까지 한 일이 있었소.  그건 어쨌든지 그런 어른에게 가서 
의탁하는 것이 욕스러울 까닭이 무엇이오?” “그저 의탁이야 욕스러울 것이 없
지요만 욕스러운 일을 잡아야 의탁하기가 편할  것이오. 이판서가 삭직당한 뒤에 
오는 손은 별로 없지마는 그래도  상하 이목이 번다한 집이니까 그 이목을 피하
여야 할 것이 아니겠소?  그런데 이판서의 장인 장모가함흥서 단내외 살다가 가
을에 그 장인 먼저 하세하고 두어 달 뒤에 그 장모까지 작고하여 이판서 부인이 
지금 겹상중인데, 그 부인이 부모의 후사를 위하여  양자 말을 하던 터이라 욕스
럽지만 부인의 아우 양도령 노릇을 하고 가서 있으면 일없이 이목을 속일 수 있
을것이오.” “그것을 이판서장 내외만은 알아야  하지 않겠소?” “알아야 하고
말고요. 내가 어제  이판서에게 가서 미리 의논해 두었으니까 남들  듣기엔 말이 
귀날 리 없지요.”  덕순이는 갖바치의 말을 좇아서 이판서 부인의  아우 노릇을 
하기로 하여 갖바치와 같이 공론하고 성명을 양을쇠라고 변명하였다.
  6
  덕순이가 상투를 풀어 귓머리를 땋은 뒤에 머리꽁지에 흰 오라기 당기를 들이
고 흰 무명 고의적삼만 입고서  웃옷을 입지 아니하고 망건 자죽을 가리려고 머
리를 수건으로 동이고  짚신을 신고 나서니 훌륭한 총각 상제라,  아무리 눈밝은 
포교라도 이 총각이  김사성댁 둘째 자제로는 알아낼 수 없게  되었다. 덕순이가 
을쇠로 변하여 가지고  갖바치와 같이 흥인문 밖에를 나왔다. 이판서가  두 사람
이 왔다는 말을 듣고 곧 방으로 들어오라 하여 갖바치는 장지 밖에 앉고 덕순이
는 갖바치 옆에 섰는데, 덕순의 옷깃이 눈물에  젖을 뿐 아니라 이판서의 눈에도 
눈물이 돌았다.
  갖바치가 말을 하기 시작하여 이판서와  이런 말 저란 말 하는 중에 이판서의 
맏아들 함동이가 들어왔다. 함동이가 갖바치를 보고 친숙하게 인사 하였다. 이판
서가 덕순을 가리키며 “너,  저 사람에게 절해라.” 하고 일러서 함동이가 절하
려고 할 때, 갖바치가 “새로 생긴 외삼촌이야.”하고 함동이에게 말하며 덕순의 
얼굴을 치어다보았다. 절하고  난 함동이가 두 손을 맞잡고 그  아버지를 향하여 
“진지 여쭈러  나왔습니다.” 하고 나온  까닭을 말하니 이판서는  먹는다 아니 
먹는다 말이 없이  “너의 어머니에게 말하고 안 뒤 별당채를  치우라고 해라.” 
하고 일렀다. 함동이가 안으로 들어간 뒤에  이판서가 갖바치를 보고 “아침밥을 
같이 먹세.” 하고  말하는데 갖바치가 “아닌게 아니라 우리도 아침을  먹지 않
았습니다. 새벽부터  수선을 부리다가 그대로  왔습니다.”하고 말한즉 이판서는 
“그러기에같이 먹자고  말하지 않나.” 하고 적이  웃었다. 별당에 들어와 앉은 
뒤에 이판서가 갖바치를 돌아보며 “아침밥 먹기  전에 남매간 만나보게 하지.”
하고 빙그레 웃으니 갖바치는 말이 없이 고개를 끄덕이었다. 
  이판서가 부인을 별당으로 오라 하여 그 부인이 아이종 하나만 데리고 별당에 
들어와서 마루에 올라서는데,  갖바치가 눈짓으로 가리켜서 덕순이는  잠깐 주저
주저하다가 마루로  나가서 부인을 향하여  공손히 절하였다. 부인은  맞지 않고 
받기가 미안하든지 유표하지 않게 슬그머니 몸을 비키었다.
  이리하여 덕순이가 유명한  함흥 봉단이를 누님으로 상면하였다.  나이 삼십오
륙 세 된 소복 입은  부인이 얼굴에 복기가 많을 뿐 아니라 태도에 점잖은 것이 
드러났다. 부인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내다보는 이판서는 ‘여편네는 까닭
없는 눈물도 잘  흘린다.’ 생각하고 뜰 아래에 섰는 아이종은  ‘양자로 들어온 
동생을 보시고  부모 생각을 하시는  게다.’ 생각하였지만 부인은  참말 저러한 
동생이나 하나 있었더면 본집이 없어지다시피 되지 아니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하
고 눈물을 흘린 것이엇다.  부인이 이면 수습으로 덕순에게 말을 붙이는데, 차마 
또렷하게 ‘해라’를 하지  못하고 말 뒤가 없이 말하였다. 아침  뒤에 갖바치는 
덕순을 뒤에 남겨두고  돌아갔다. 덕순이가 양을쇠가 되어  이판서집 별당채에서 
거처하게 되었는데,  이판서 말은 대감이라  하고 이판서 부인  말은 누님이라고 
하고, 이판서집 하인들에게는  도령 칭호를 받고 이판서의  아들딸에게는 아저씨 
소리를 들었다. 이판서는 열네 살 먹은 함동이, 아래로 여덟 살 먹은 딸과 네 살 
먹은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이들이 “외삼촌 아저씨.” “외삼촌 아저씨.” 하고 
덕순을 따랐다.
  덕순이가 태평으로 지내며 성안 소문을 들어보니 며칠 동안 포교들이 벌떼 헤
어지듯이 사방에 흩어져서 길거리에  다니는 사람도 죄없이 잡아갈 것같이 무시
무시하고 서울 안을 가가호호 적간하는데 묻는 것은 김덕순이와 박연중이 두 사
람이었다고 하였다.  어느 날은 동부도사가  이판서를 와서 보고  “김식의 아들 
김덕순이를 보신 일이있습니까?” 하고 물으니 이판서는 서슴지 않고 “본 일이 
있지.” 하고 대답하였다. “아, 언제  보셨세요.” “연전까지 보았자. 작년 설에
도 아마 내게 세배를  왔었지.” “네, 작년 겨울 이후에는 보시지 못하셨습니다
그려.” “볼 수가 있나? 말을 들으니까 덕순이가  나를 원수로 알아서 남정승보
다 나를 먼저  처치하겠다고 벼르더라는걸.” “대감을 원수로  알다니 지각없는 
자올시다.” “저의 아버지를 잡아 가두고 귀양 보내고  할 대 내가 금부에서 있
었으니까 내 맘을 알아주지 못하고 원수로  벼르기도 용혹무괴이지.” 도사는 다
시 수어하다가 돌아갔다.  저녁때 사람 없는 틈에 이판서가 덕순을  보고 도사와 
수작하던 말을 옮기고 가만히 “네가 내가 와서  있는 것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
” 하고 빙그레 웃었다.
  7
  남곤이가 자객이 왔다  갔다는 기별을 들었을 때  얼마 동안은 얼굴이 사색이 
되고 숨도 크게  쉬지 못하였었다. 밖에 나서기가 무서워서 다른  곳으로 옮기지 
못하고 첩의 집에 숨어 엎드려서 밤을 지내는데,  밖에서 바스락 소리만 나도 깜
짝 놀라니까 그  첩이 보다 딱하여 “여보시오 대감, 아녀자가  부끄럽지 않으시
오? 그렇게 질겁을  하시다간 간이 졸아붙으시겠세요.” 하고 비웃어  말을 하니 
남곤이가 그래도 첩에게 취조하게  된것은 비위에 거슬리어 “방자하게 되지 못
한 소리 지껄이지  마라.” 하고 뇌까리고 “어찌하다가 내 신세가  이렇게 되었
단 말이.”  하고 자탄하며 해가 높이  뜬 뒤에도 남곤이는 겁이  남았던지 자기 
집 하인과 의정부 하인들을 불러다가 전후를 옹위케 하고 큰집에를 돌아왔었다. 
  늙은 청지기에게 전후  사실을 대강 들은 뒤에  골방에 갇히었던 상노를 불러 
친히 자객의  말을 물어보니 상노는 곤히  자다가 놀라 일어나 잠결,  겁결에 본 
일이라서 대답이 똑똑치 못하였다.  “첫째, 사람이 몇이더냐?” “둘인 것 같았
습니다.” “두 놈이 다  칼을 가졌더냐?” “아마 칼들은 가지 않았었습니다.” 
“아마가 무어냐? 똑똑치  못한 놈 같으니, 그래 그 도적놈들이  나이 젊더냐?” 
아마라고 말하다가  꾸지람을 받은 상노가  생으로 거짓말을 하였다.  “한 놈은 
몸집이 뚱뚱한데 한 사십 넘어 보이고 또 한 놈은 하늘 파충하게 키가 큰 데 한 
삼십쯤 되어 보입디다.” 옆에  섰던 청지기가 “이놈, 어젯밤에 내가 물을 때는 
그것도 잘 모르겠다고 하더니.” 하고 책을 잡으니  그 상노가 “지금 가만히 생
각해 보니까 그런 듯해요.”  하고 고개를 숙이었다. 남곤이가 어이가 없어 “에
이놈, 저리 가거라.”하고 상노를 물리치고 마당에 떨어졌던 수청 청지기를 부르
려고 하다가 그  청지기가 뒷골이 쪼개져서 집에  나가 누웠다고 하므로 그러면 
물을 것 없이 그만두라고 하였었다. 자객이 도망하는  것을 본 사람은 한둘이 아
니었으나 어둔 밤에 본  것이라 그 말이 다 각각이엇다. ‘흰옷  입은 것이 화초
밭으로 뛰어갔다.’, ‘검은 그림자가 후원으로 들어갔다.’,그중에 심한 말은 관 
쓴 것이 번쩍하더니 없어지더라 하고 그것이 도깨비 짓이 아닌지 모르겠다고 하
였었다. 남곤의 집은 북악  밑으로 후원에 폭포도 있고 바위도 있었다. 자객들이 
처음에 북악산 기슭으로 들어와서 바위 뒤 같은 데 숨어 있다가 나중에 다시 산
기슭으로 도망한 것이라고 생각들 하였었다. 남곤이가  칼 맞은 베개를 가져오라 
하여 베개를 입힌 자리옷이 허리가 잘린 것을  보고 몸에 소름이 끼쳤다. 한동안 
말이 없이 앉았다가 옆에 있던  일가 사람을 돌아보며 어둔 밤에 홍두깨로 “여
보게, 내가 소인인가?” 하고 물어서 그 일가 사람이 당황하여 하다가 “글쎄요.
” 하고 대답한즉 남곤은  “소인, 소인.” 하고 입으로 중얼거리다가 손으로 방
바닥을 치며 일어섰었다. 
  그날 낮에 남곤이가 심정이를 찾아왔었다. 어젯밤  자객의 변을 말하고 김식의 
아들 김덕순이와 그 하인 박가가 모두 장사라니까 분명 그놈들의 짓으로 생각한
다고 말한즉, 심정이도 역시 그러할듯하다고 하고  “들으니까 김식의 장사를 충
주서 지냈다고 하니  김식의 무덤 근처를 엄밀히  기찰하게 하면 덕순의 종적을 
알게 될 것 같소이다.” 하고 말하여 일변으로  서울 안에서 가가호호 적간을 하
게 하고 또  일변으로 충주를 내왕하는 사람을 기찰하게 하기로  작정하였다. 심
정이가 주안 한 상을 내오라고 하여 주객이 두서너  잔 술을 마시었을 때, 한 사
람이 뜰 앞으로  지나가며 큰소리로 “두 소인이 마주 앉았구나.”하고  껄껄 웃
으니 남곤이가 발끈 화를 내며 “여보 대감, 저게 누구요?”하고 물었다. 심정이
가 “그것이 소인의 아우올시다. 실성한 사람이에요.  가릴 것이 못 됩니다. 소인
의 낯을 보아  용서하십시오.”하고 빌다시피 말하니 남곤이가  “실성한 사람이 
군자, 소인을 어찌 구별하겠소?”하고 화가 풀리지 아니하였다. “구별을 못하기
에 대감을 소인이라고 하고 또 저의  형을 소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구별없
이 하는  말 같지는 않은데.”하고 남곤이는  쓴입맛을 다시었다. 대개 남곤이가 
자기로도 소인이거니 생각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남이 소인이라고 지목하는 
것을 들을 때는  화가 가는 것을 걷잡지 못하였었다. 구렁이를  보고 구렁이라고 
하면 싫어한다는 격이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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