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꺽정 피장편 5

3학년2반 | 2022.01.02 07:37:19 댓글: 0 조회: 541 추천: 0
분류연재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39056
  제 5장 형제
  1
  심정의 아우 심의는 심지의 정직한  것이 그 형의 간교한 것과 다르고 성미의 
소탈한 것이 그 형의 악착한 것과 달라서 그 형과 같이 이끗을 밝히지 아니하므
로 벼슬은 비록 당하 육품에  지나지 못하였으나 숭품 중신인 그 형으로는 비하
여 말할  수가 없도록 인품이 높았었다.  그 형의 처심과 행사가  올곧지 아니한 
것을 볼 때에 눈물을 흘리며 간한 일까지도 없지 않았으나 그 형의 말로는 “오
냐, 너의 말이 옳다.”하고 뉘우치는 빛을 보이면서 그 처심과 행사는 고치지 아
니하여 항상 근심으로 지내더니 그  형이 남곤과 부동하여 조광조 이하 여러 명
사를 모함한  뒤에는 심병이 나서  실성한 사람같이 되었었다.  심정이가 형제간 
우애만은 제법 무던하여 아우의 병을 고치려고 갖은 애를 다 쓴 까닭에 그의 병
이 조금 가라앉았으나 세상에 낙이  없는 사람같이 입을 벌리고 웃는 일이 없었
었다.
  어느 날 심의가  길가에서 우연히 최수성을 만나서  “원정 오래간만일세,언제 
서울 오셨나?”하고 말을  붙이니 최수성이 “나는 누구라고?  사마우 일세그려.
”하고 허허 웃었다.
  사마우는 공자의 제자이니 공자를 죽이려던 환퇴의  아우이다. 심의가 잘못 알
아듣고 “마우라니? 사람이  아니고 마소란 말인가?”“아니, 자네  형이 환퇴만
큼 갸륵하단 말일세.”하고 얼굴을 젖혀들고 한바탕 크게 웃었다. 심의는 무료하
였다. “지금 자네 어디를 가나?”“우리 숙부 되시는  승지영감을 잠깐 보고 그
리고 곧 좋은 친구 하나를  심방할라네.”“좋은 친구라니 누구?”“좋은 친구가 
있지. 자네 같이  가려나?”“가지, 그렇지만 자네 숙부에게는  가기 싫어.”“그
러면 숙부 문안은 제례하지.”하고 최수성이 심의를  데리고 심방한 좋은 친구는 
혜화문 안 갖바치였다.  심의가 갖바치를 안 뒤로는 거의 매일  찾아다니게 되어
서 얼마 아니 지나는 동안에 서로 정분이 생기었다.
  별로 나다니지 아니하던  심의가 날마다 출입하는 것을  그 형이 알고 “요새 
어디를 그렇게 다니니?”하고 물으니 심의는 갖바치에게 다니는 것을 그 형에게 
말하고 싶지 아니하든지  아니하든지 거짓말로 “성균관 근처로  소풍 다닙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소풍  좋지,그렇지만 혼자 다니지 아이놈이라도 데리고 다
니지.”“아니놈 성가시어요.”“좋을 대로 하라.그러면 술이나  한 병씩 차고 다
니지.”“그건 좋겠지요.”
  이리하여 심의는 갖바치와 둘이 마주  앉아 술 한병을 마시는 것으로 낙을 삼
게 되었다.두 사람 사이에 못할 말이 없이 된 뒤에 심의가 낙을 삼게 되었다. 두 
사람 사이에 못할 말이 없이 된 뒤에 심의가 자신의 처신할 도리를 물으니 갖바
치는 종이쪽지에다가 붓장난하듯이  광야우야, 무재무해라는 여덟 글자를  써 보
이었다. 마친 것이냐? 어리석은  것이냐? 재가 없고 해가 없다는 뜻이다. 심의는 
이윽히 들여다보더니 맘에  깨달음이 있는 것 같았다. 그 뒤로는  심의가 웃기를 
시작하였다. 그 웃음이 나날이  늘어서 너무 과하도록 많아졌다. 심정이는 그 아
우의 웃음 많은 긋이 역시 병이라고 생각하여 의약으로 고치려고 하였으나 심의
가 약을 먹지 아니하였다.  심의가 그 형을 보고 성균관 근처에  집을 사서 분거
하게 하여 달라고 말하여 형제 각거하게 되었는데 심정이는 그 아우가 소풍하기 
편한 것을 취하여 동촌을  소원하거니 생각하고 갖바치와 가까이 살며 상종하려
는 것은 조금도 알지 못하였다. 심의가 동촌으로  이사온 뒤에 며칠 지나지 아니
하여 갖바치가 이삼 일 동안  양주땅에 갔다 온다고 하더니 이틀 되던날 저녁때 
찾아와서 “양주 와서 사는 동향 사람의 안해가 난산으로 위경이라고 하기에 가
보려고 했더니 다른 볼일이 생겨서 가지 못했습니다.”
하고 말하니 심의는 “시골 안 갔거든 안 갔다고 기별이나 하지 나는 이틀 동안 
심심해서 선비들 글 짓는  데 차작해 주고 소일했소.” “기별할 틈도 없었어요.
”   이 이틀 동안이 덕순이와  연중이가 갖바치에게 와서 묵던  때다. 갖바치가 
심의의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서울 재미가 없어서  어는 시골로 가려고 맘을 
먹은 지는 오래나 소위 가속이란 것의 모자가 누가 되어 주춤주춤하니까 시원할 
것은 없으나 따라갈까 생각합니다. 동촌으로 이사오시자  시골로 가게 될 모양이
니 미리 섭섭합니다.” 하고 말하니 심의는 “가기는 어디를 간단 말이오. 못 하
오. 못가오.” 하고 펄쩍 뛰다시피 하였다.
  2
  갖바치의 집 세  식구가 이판서의 돌보아 주는  힘으로 호구하는 것은 심의가 
이미 아는 사실이라,  갖바치를 이판서 따라가지 못하게 하자면 첫째  시량을 보
아주어야 하겠고, 남의 시량까지 보아주자면 우선  형에게 분재를 청하여양 하겠
다고 심의는  생각하고 곧 갖바치더러 “나  형님 좀 보고 올라오.”  하고 가장 
급한 일이나 있는 듯이 분주히 형의 집에를 왔더니 그때 마침 그 형이 남곤이와 
같이 술을 먹는  중이라 그대로 돌아서려다가 짓궂이  한번 뜰 아래로 지나가며 
소인들이라고 형을 휩쓸어 욕을  하고 형의 집에서 나오는데 대문간까지 나오도
록 미친 웃음을 그치지 아니하였다. 
  그 이튿날 첫새벽에  심의가 다시 형을 보러  쫓아온즉 큰사랑은 물론 덧문이 
열리지 아니하고  수청방까지 괴괴하였다.  비부쟁이가 마당에서 비질을  하다가 
비를 놓고 “나으리  일찍 행차하셨습니다. 대감께서는 아직 기침 않으셨습니다.
” 하고 다시 빗자루를 잡으려고  하는데 심의가 공연히 한번 허허 웃고서 “비
를 나 좀 다오. 내가 하번 비질을 해보겠다.” 하고 비를 받아들고 또 한번 허허
허 웃었다. 마당에서 한두 번 비질을 하다가  댓돌로 올라오고 댓돌에서 한두 번 
비질을 하다가 마루로 올라와서 수청방 앞에 서서 한바탕 늘어지게 웃으니 방안
에서 자던 청지기들이 놀라 일어났다. 청지기 한  사람이 문을 열고 나오며 “나
으리 오셨습니다그려.” 하고  자던 눈을 비비니 심의는 갑자기 웃음을  뚝 그치
고 “이놈들, 어젯밤에 노름했구나.  어 죽일 놈들!” “이놈들, 어젯밤에 계집장
에 갔었구나. 어 죽일  놈들.” “이놈들, 어젯밤에 술을 처먹었구나. 어 죽일 놈
들.” 하고 횡설수설한 뒤에 큰사랑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와서 마루에는 고사하
고 덧문에까지 비질을 하니 그 비는 싸리비라 소리가 요란하였다.
  심정이가 늦잠이 들어서 곤히  자다가 놀라 깨어 “어떤 놈이 이러느냐?” 하
고 불호령하는 소리가 밖에 들리었다. 심의가 비를  들고 서서 큰소리로 껄껄 웃
고서 비를 마당으로 내던지니 이때껏  작은댁 나으리의 하는 짓을 보고 있던 비
부쟁이가 비를 주워들고  가만히 혼잣말로 “아무래도 미쳤어.”하고  다시 비질
을 시작하였다.  심정이가 아우의 웃음소리를  듣고 자리에서 일어  앉으며 수청 
자던 상노를 시켜 덧문을 열어놓으니 심의가 신을 벗으며 말며 진동한동 방으로 
들어와서 곧 형의  앞에 옆드려 방성대곡을 하는데  펑펑 쏟아지는 눈물이 거짓 
울음 같지 아니하였다. 심정이는  놀란 위에 더 놀랐다. 앞에 가리었던 누비처네
를 헤치고 나앉아서 아우를  붙들고 “이애, 왜 이러느냐? 이애 이애, 말을 하여
라. 말을 해.  응, 이애.” 심의는 울음  반 말 반으로 “여보 형님.”  하고 엉엉 
울고 “엊그저께 밤 꿈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뵈었어요.”  하고 또 엉엉 우니 심
정이가 “이애, 울지 말고  말을 해라. 그래 아버님과 어머님을 뵈었어? 그래?” 
하고 어린아이 달래듯이 말하여 심의는 소매로 눈물을 씻으며 일어 앉아서 이야
기하였다.
  “아버지 어머니가 오셔서 나를 보시고  너의 형은 땅도 사고 종도 사고 자꾸 
사는데 너는 아무것도 없이 어떻게  산단 말이냐? 양주 고든골 땅 이십 석 자리
와 광주 너더리땅 오십 석  자리와 왕십리 미니리논 열 마지기와 방아다리 배채
밭 사흘가리와 천쇠어미와  상길이 내외는 너의 형더러 달라고 말을  해라. 영절
스럽게 말씀을 하시더니 어젯밤 꿈에 또 두분이 같이 어셔서 형더러 말하라니가 
왜 말을  아니하느냐고 꾸중사힙디다.” 하고  울음을 다시 내놓을  것같이 입을 
비죽거리니 심정이가 “네가 달래도  줄 터인데 구ㅋ에라도 부모가 말씀하신 것
을 주다 뿐이겠느냐. 지금이라도 곧 문서를 써주마.” 하고 심의의 말한 대로 종
이며 땅을 허급한다는  문서를 쓰고 수결을 두어서 아우에게 주었다.  심의가 종 
문서와 땅 문서를 손에 받아들고  일어서서 너푼 절을 하고 “형님 더 주무시지
요.” 하고 방 밖으로 나오며 다시 큰소리로 껄껄 웃었다. 
  십여 일 지난뒤에 심정이가 그  아우의 하는 꼴을 보려고 심의를 대하여 “엊
그제 방 꿈에 아버님 어머님이 오셔서 너더리 땅과 천쇠어미는 봉제사하는 큰아
들 네가 가져야 할  것이요, 너의 아우를 줄 것이 아니니  도루 찾으라고 말씀하
시더라.” 하고 울려는 시늉을 하니 심의는 서슴지  않고 “봄철 허튼 꿈을 믿을 
수가 있습니까?” 하고 껄껄 웃어버리었다.
  3
  이판서 집에서 창녕으로 낙향할  때에 이판서가 갖바치를 보고 “자네는 어찌
하려나? 이번에 같이 가세.” 하고 권하는 뜻을  보이었으나 갖바치는 “나는 오
나가나 매일반이지만 가속들의 내두 처지가 서울 있는 편이 나을 것이라 따라갈 
것이 없습니다.” 하고 서울에  떨어져 있을 뜻을 말하였다. 이판서 부인이 같이 
이사하자고 우긴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을쇠로 행세하는 덕순이가 “나 같은 신
세에 다른 갈 데가 없는  것은 고사하고 주인대감 내외분이 정답게 말씀하는 것
을 거역하지 못하여 창녕을 따라가겠으니 당신도  같이 가십시다. 구차한 목숨이 
살아 있는 동안은 든든히 지나게 가십시다.”  하고 사정을 말하였으나 갖바치는 
“실상 내가 좀 서울 있으면  남의 아들들을 맡아줄 터이니까 남에게 좋은 일이
야.” 하고 모호한 말을 하며 서울 있을 뜻을 변개하지 아니하였다. 
  이판서가 가권을 데리고  떠나는 날 작별 나온  갖바치를 보고 “자네가 이사 
오고만 싶거든 언제든지 기별하게.  초가 한 삼간 장만해 놓고 기다림세.” 하고 
말한즉 갖바치는
 “내가 한번 가오리다.  풍파 많은 환로를 하직하고 백구 좇아  노시는 것을 한
번 뵈오러 가오리다.” 대답하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다니며 면면히 작별한 뒤
에 다시 이판서에게로  와서 “대감께는 치하로 작별하렵니다.  대감께서 이십오
륙 년 간 지나오신 험한 길이 이로써 끝이 나고 앞으로는 태평한 세월을 보내시
게 될  터이니 대감께 이보다 더  치하할 일이 없습니다.” 하고  저으기 웃으니 
이판서는 “그럴까? 참말 그럴까? 오뉴월  화롯불도 쪼이다 나면 섭섭하다는데... 
그렇지만 자네 말이 옳아 치하받네.” 하고 쾌활하게 웃었었다.
  이판서가 창녕으로 낙향한 뒤 서너  달 밖에 아니 된 때에 갖바치가 내려와서 
달포를 넘어  묵었다. 달포 동안에  갖바치는 덕순이와 동무하여  남천에서 붕어 
낚시질도 하고 이판서의 뒤를 따라서 화왕산에서  매 사냥질도 하였다. 화왕산에 
갔을 때는 옥천사라는 보잘것없는 절에 흘각 겸 구경을 들어갔다가 신돈의 아야
기가 났었다. “신돈의  어미가 이 절 종년이었다네그려.” “신돈이도 처음에는 
이 절에서 중노릇을 했겠지요.” “중놈 하나가  오백년 종사를 망하였단 기막힌 
일이야.” “나라가 망하려니까  그런 중놈이 나겠지요.” “우와 창이가 공민왕
의 혈속이 아니고 신돈의  아들과 손자라고 신우이니 신창이니 부르지만 이것은 
미덥지 않은 말이야.” “고려 말년 사적은  정도전이 같은 개국공신이 손삽손실
을 하여 고치어 놓은 것이니 그대로 믿을 수가 있나요.” “그래, 그렇지만 우가 
죽을 때 겨드랑 아래 있는 용비늘을 보이어 왕씨 표적을 내었다는 것도 당치 않
은 소리야.” “그렇겠지요. 왕씨가 용녀의 자손이란 것부터 당치 않은 소리니까
요.” “아조로  말하면 신돈이 같은 중놈이  국정을 탁란할리는 없지.” “글쎄
요, 이삼십 년 후에  곤댓짓하는 중놈이 없으란 법도 없지요.” 이판서는 갖바치
가 대중없이 허튼말을  하지 아니하리라고 생가하여 “자네  말이 맞나 두고 보
세.” 말하고 “이삼십 년 후면 우리가 칠팔십  노인이 될 모양이니 볼는지도 모
르겠네.” 하고 한번 웃고 말았다.
  갖바치가 창녕서 떠날 때에  이왕 나선 길이니 경사도 산천이나구경한다고 남
으로 떠내려가서 진주를 구경하고 동래.울산.경주로 돌아서 서울을 올라오느라고 
길에서 두어 달소수를  보내었다. 갖바치가 삼가 땅에 갔을 때  이황이라는 젊은 
선비가 독실히 공부한다는 말을 득고 일부러 찾아가서 학문을 논난한 일이 있었
다. 그때 그 선비가 주역을 읽던 중이라 주역으로 말을 묻게 되었다. “삼역이라
니 무엇 무엇이 삼역이오?” “연산.귀장.주역이 삼역이지요.” “연산.귀장도 역
인가요?” “역은 아니지만  주역 가닭에 통틀어 역이라고 하는  갑디다.” “읽
으시는 주역이  주자의 정보인가요?” “잘  모르나 주자의 정본은  아닙니다.” 
“그렇소. 영락황제 때 정자와  주자의 것을 찢어 모아서 만들어 놓은 것이요.” 
그 선비는 거사 복색한 성명 모를 사람의 학식을 놀래오 ‘이 사람이 혹시 정허
암이가.’ 생각하고 허암의  말을 물었다. “정허암을 아시오?” “네, 알지요.” 
“허암이 왜 세상에 아니  나오실까요?” “종상 못한 것이 불효이고 군명을 도
망한 것이 불충이라고 세상에 나서지 않는답디다.”  갖바치는 그 선비가 허암으
로 아는 것을 속으로 웃으면서 “나는 가오.”  하고 붙잡는 것을 뿌리치고 나섰
었다.
  4
  갖바치는 서울 올라오던 이튿날  심의를 찾아간즉 상길이가 나와서 하는 말이 
“댁 나으리께서 엊그저께  송도를 가셨소.” 하여 “어느 날쯤  오실까요?” 하
고 갖바치가 물으니  상길이는 “모르지요. 삼사 일 후에나  오실까요?” 도리어 
묻듯이 말하고 “당신이 시골 가서  하도 오래 아니 오니까 댁 나으리께서는 화
를 더럭더럭 내십디다.” 하고  그 상전의 고대하던 양을 말하였다. 사실로 심의
는 이웃 친구가  일찍 돌아오기를 믿고 기다리다가  서너 달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으니까 홧김에  송도 친구 서경덕을  찾아간 것이다. 심의가  송도에 도착하던 
길로 벼우물골에 있는 서처사의 집을 찾아갔다.  처사의 아우 형덕이와 숭덕이가 
문밖에 나와 맞아들이는데, 형덕이가 그 형이 화담에  가서 있고 집에 있지 아니
한 것을 말하니, 심의는  “찾아온 사람이 화담에 있는 바에 화담으로 가야지.” 
하고 들어가지 아니하고  돌쳐섰다. 숭덕이가 등 뒤에서  손가락질하며 “큰형님
이 아니 계시기로 잠깐 들어앉지 못할 것이  무엇인고. 우리는 눈에 사람으로 보
이지도 않는 모양인가.” 하고 아니꼬운 생각에 침을 뱉었다.
  심의가 화담에 왔을 때는  해가 거의 석양이 다 되었다. 여울  소리가 해진 뒤
에 높아질 것을 미리 준비하는지 의외로 낮게 들리고 작은 물고기가 물 위로 뛰
어올랐다. 심의가 차츰차츰  걸어서 서처사 초당에 가까이 오며 들으니  초당 안
에서 흘러나오는 거문고 소리가 초당 밖의 물소리와 서로 맞아서 물소리와 거문
고 소리가 구별할 수  없이 섞일 때가 있었다. 심의가 열어놓은  창문 앞에 와서 
방안을 들여다보니 한 여자가  바깥편을 등지고 앉아서 거문고를 타는데 처사는 
눈을 감고 거문고 소리를 듣는 중이었다. 심의가  갑자기 “여보게, 가구!” 하고 
부르니 자를 부르는 소리에 처사가 눈을  뜨고 내다보며 “의지, 이거 웬일인가?
” 하고 일어 맞았다.  “산중 풍류가 적막치 아니하구려.” 하고 심의가 방으로 
들어오니 그 여자는 거문고를 치우고 비켜 앉았다.
  심의가 처사오 느런히 앉으며 그 여자를 바라보니 얼굴에는 분을 바르지 아니
하고 머리에는  기름을 바르지 아니하고 의복은  검소하게 차리었으나 천연하게 
아리땁고 요사치 않게 어여쁜 것이 진세 사람  같지 아니하였다. 그 여자가 처사
를 보고 “선생님, 제가 여기 있어도  좋겠습니까?” 하고 묻는데 그 목소리까지 
세상에서 들어보지 못한  선악 같이 들리었다. 심의가 처사의 대답이  나오기 전
에 “좋다뿐이야.” 하고 대답하니 처사도 저으기  웃으며 “손님이 좋다시니 주
인이 좋지 않달 길이 없지.” 하고 “이  손님이 대관부와 소관부를 지으신 심좌
랑이시다.” 하고 일러주었다. 그  여자가 심의를 향하여 잠깐 머리를 숙이고 “
저는 송도 진이 올시다.  나으리의 대관부. 소관부는 선생님이 가르쳐 주셔서 읽
었습니다.” 하고 별같이 밝은 눈 속에 봄기운  같은 웃음을 띠니 심의은 “소철
이가 한기를 보고  천하의 대관을 다하였다고 했다더니, 심의는 진랑을  보고 천
하의 대관을 다한 셈이다.”  하고 허허 웃었다. “가구! 자네는 전생에  무슨 복
을 닦아서  좋은 산수의 주인이 되고  요대 선녀의 선생이 되단  말인가.” 하고 
처사에게 말하면서도 그 눈은 진이의 몸을 떠나지 아니하여 처사가 웃으며 “자
네가 나를  보러 온 것이 아니라  진랑을 보러 온 것일세그려.”  하고 조롱까지 
하였으나 심의는 여전히  진이를 바라보며 “눈이 저절로  가는 것을 내가 금치 
못할 뿐이야.”  하고 또다시 허허 웃으니  진이는 “비아야라 모야로다.” 하고 
깔깔 웃었다.
  나중에는 심의가 진이의  옆으로 자리를 옮겨 앉아서  두 손으로 진이의 손을 
받들어 들고 정신없이 들여다보니  진이가 방긋이 웃으며 “무엇을 그렇게 들여
다보시나요?” 하고  물으니 심의는 “아름답고 어여쁜  것이 땅에서 샘솟듯 살 
속에서 솟아나오는군.” 하고  싱글벙글하며 처사를 돌아보는데 처사는  말이 없
이 빙그레 웃고 있을 뿐이었다.
  5
  서처사의 초당은 방이 둘뿐이었다. 한 방에는 처사가   손님과 같이 자고 다른 
한 방에는 진이가 혼자  자게 되었다. 진이가 화담 초당에 와서  자는 것은 이날
이 처음이 아니었다. 처음에 진이가 영롱한  수단으로 당대 도승이던 지족선사의 
도를 깨뜨리고 같은  수단으로 서처사를 놀리려고 어느  가을 밤에 초당에 와서 
잠을 자는데 무섭다고 꾀를 피고 처사의 방에서 나가지 아니하고 춥다고 핑계하
고 처사의 이불 속으로 들어가고  잠을 험히 자는 체하고 처사의 몸에 팔다리를 
드놓기까지 하였으나 처사의  마음은 반석 같아서 마침내  움직이지 아니하였다. 
그 뒤에도 진이가 처사와 한 방에서 잔 때가 없지 아니하였으나 항상 처사는 처
사대로 자고  진이는 진이대로 잘 뿐이었다.  이날 밤에 진이가 혼자  자게 되어 
다른 방으로 가더니 다시 처사의 방에를 와서  “나는 혼자 자기 싫어요. 손님이
나 선생님이나 두 분 중에 한 분이  혼자 주무시지요.”하고 방그레 웃으니 처사
가 대번에  “손님더러 혼자 자랄 수야  있나. 내가 혼자  자지.”하고 말하였다. 
심의는 진이와 한 방에서 자는 것이 맘이 싫지 아니하나 조금 수줍은 생각이 나
서 “이 방에서 셋이  자지 못할까?”하고 처사를 돌아보니 처사는 “그래도 좋
겠지.”하고 손의 말을 거스르지 아니하나 진이는 도리어  “넓은 방 좁게 쓸 것 
없지요.”하고 자기의 주장을  보이었다. 그리하여 심의가 진이에게 시험을 받느
라고 하룻밤을  곡경으로 지내었다. 진이가  다리를 배에 얹어도  심의는 가만히 
있었고, 진이가 팔을 목에 감아도 심의는 가만히 있었다. 가만히 있기 어려운 때
에 가만히 있자니 곡경이었다. 진이는 ‘화담의 친구 값이 있구나.’하고 생각하
고, 심의는 ‘기녀란 할 수 없구나.’하고 생각하였다.
  이튿날 식전에  처사가 심의를 보고 “밤에  잘 잤나?”하고 인사하니 심의는 
고개를 가로 흔들어 잘 못 잤다는 뜻을 보이고 “겉으로 보기는 선녀 같으나 속
은 종시 기녀이데.”하고  낙심하는 모양이 선녀가 기녀 된 것을  몹시 섭섭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진이가 저의 맘대로 장난을  치는 것이 눈에 세상이 비어 
보이는 까닭이야. 불가의 말로 유희삼매라고나 할지,‘마등가’같은 음녀가 아니
야. 당돌한 여자이지. 자네도 망석중이 되지  않은 것이 무던해.”하고 처사가 말
을 그칠 때에 밖에  나갔던 진이가 들어왔다. 진이의 말은 이로써  끝이 나고 심
의가 “나는 그 동안 좋은 친구를  얻었어. 실상은 친구라느니보다도 스승이라고 
하는 것이 마땅한  사람이야.”하고 갖바치의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사람이 총
명하고도 경선치 아니하고, 고상하고도 거만치 아니하고, 있고도 없는 것같이 하
고, 차고도 빈  것같이 하는 것이 나는  처음 보는 인물이야.” 서사시는 심의의 
칭찬이 곧이 들리지 아니하는 모양으로 “그런 사람이 다 있어? 그 사람의 성명
이 무엇인가?”하고 물으니 심의는  “성명은 몰라. 갖바치야.”하고 대답하였다. 
“성명을 모르는 갖바치?” “그 사람의 성명은 당초에  아는 사람이 없어. 전부
터 안다는  최원정도 모르든걸. 그 사람이  정암과도 친하게 지냈던 모양이야.” 
“정암과 친하게 지냈다면 사람이 무던할 것일세.”  “나하고 친하게 지내는 것
으로는 무던하다고  생각하지 못하겠나? 사람이 무던뿐이  아니야.”“이 다음에 
한번 작반하여 놀러오게.” “올는지 모르지? 자네가 한번  서울 와서 만나면 어
떻겠나?”“내가 가도 좋지만 나는 서울 가기가 싫어.”  옆에서 수작을 듣고 앉
았던 진이는 갖바치에  인물이 있는 것을 희한하게  생각하여 곧 한번 만나보고 
싶어서 “선생님은 아니 가신다니 이번에 저와  같이 가십시다.”하고 나서니 심
의는 고개를 외치며 “그  사람이 지금은 경상도 가고 서울 없어.  이 다음에 한
번 박연  구경 가자고 데리고 오지.”하고  말하였다. 심의는 서처사에게서 이삼 
일 더 묵다가 서울로 올라왔다.
  6
  심의가 서울  오던 날 저녁때이었지만,  갖바치가 시골서 왔단  말을 상길에게 
듣고 곧 찾아가서 만나려고 불불이 가는데 성균관 어귀 큰길에를 나서자 혜화문 
안으로부터 내려오는 갖바치를 길가에서 만나게  되었다. “어디를 가는 길이오?
”“댁에를.”“어떻게 내가 온지를 알고?”“혹시 오셨을까 하고요.”“나도 찾
아가려고 나선 길이오. 여기서는 우리 집이 가까우니 가까운 데로 갑시다.”하고 
말하여 심의가 갖바치를 데리고 들어왔다. 갖바치는  영남의 산천 인물을 이야기
하는 중에  이황의 공부 독실하던  것까지 말하였고, 심의는  서경덕에게서 진이 
만난 것을 이야기한 뒤에 박연폭포가 구경할 만하다는 것까지 말하였다.
  이튿날 심의가  그 형을 보러 왔다.  사랑에는 남곤이가 와 앉아서  무슨 일을 
의론하는 모양이라 바로 안으로 들어왔더니 안에는 경빈박씨의 심부름으로 무수
리가 나와 있었다. 심의는 상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 아니 있다가 심
정이가 분주히 안으로  들어와서 무수리에게 말을 일러  보낸 뒤에 심의를 보고 
“잠깐만 안에 있거라. 사랑  손님도 곧 가실 터이다.”하고 도로 나가려고 하는 
것을 심의가 소매를 붙잡고 “잠깐만 계시오. 남정승  대감보다 내가 먼저 갈 터
이오.”하고 안마루 구석에 있는  쥐구멍을 가리키며 “형님, 저 구멍으로 좀 나
가 보시오.  이 담날은 나가려고 찾아도  찾기가 어려우리다.”하고 히히 웃으니 
심정이는 “이애가.”하고 뒷말이 없이 슬그머니 소매를  뿌리치고 옆에 있던 계
집하인들은 입을 막고 돌아섰다. 
  심의는 형의 일을 속으로  근심하며 돌아와서 갖바치를 보고 이야기하니 갖바
치가 “백씨 대감이 지금 와서는 당신의 가는 길이 끝이 좋지 못할 줄을 짐작하
신대로 돌쳐서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지만 남정승과 구수밀의가  잦으시면 
잦으니만큼 해를 많이 세상에 끼칠것이 걱정이지요.”하고 말하였다.
  그 뒤에 심정이가 남곤이와 밀의한  결과로 과연 또 큰 옥사를 만들어서 애매
히 여러 사람을 살육한 일이 있었다. 삭탈관직을  당한 안당의 집이 옥사의 중심
이 되었다. 안당의 서모가 감정이라는 가봉녀  하나가 있어서 이름이 작은쇠라는 
송가에게로 시집을 가서 사련이라는  아들을  낳았었는데, 사련이가 어미의 반연
으로 안당의  집에 드나들며 안당의  아들들과 교유하게 되었었다.  안당의 아들 
삼형제가 모두 출중한 중에 그 큰아들이 성질이 강직하여 동네의 친한 친구들과 
모여 앉으면 곤이, 정이가 국사를 그르친다고 통탄할 때가 많았었다. 
  안망의 부인이  작고하여 삼년상이 막  지난 뒤의 일이었다.  안당의 큰아들이 
동네 친구들을 청하여 술을 대접하는데 술이 거나하게 취한 김에 팔을 걷어치며 
곤이, 정이 같은 놈을  없이 하여야 국가를 붙들고 사림을 보전할  수 있다고 통
론하니 그때 옆에 있던  사련이가 “잘 드는 칼 하나만 저를 주십시오. 제가 곤, 
정이의 대가리를 외꼭지 도리듯 해놓으리다.”하고 실없은  말을 하며 해해 웃기
까지 하였었다. 이 사련이가  남곤, 심정에게로 붙어서 안당의 아들이 대신을 살
해할 음모를  꾸민다고 고변하였는데, 사람의  성명을 적은 서기란  것은 안당의 
부인 초종 때  조객록과 그 발인 때  역군의 명부이었다. 남곤. 심정이가 이것을 
가지고 옥사를 만들어  안당의 부자 이하 여러 사람을 죽이었는데,  죽인 사람들 
중에는 제주에 안치되었던 김정이도  들었고 온성에 안치되었던 기준이도들었다. 
사화에 귀향 갔던  여덟사람의 결말을 보면 조광조는 먼저 사약을  받고, 김식은 
망명 중에 자결하고,  김정과 기준은 이 옥사에  같이 사약 받고, 윤자임은 북청 
배소에서 분통이 터지어 죽고,  박세희는 강계 백소에서 병이 나서 죽고, 김구과 
박훈 두사람은 나중에  놓이기까지 하였으나 놓여 온 뒤  두 사람이 다 얼마 더 
살지 못하였다. 다른  이야기는 고만두고 이 안당의 아들 옥사에  홍문관 하인으
로 조광조를 구하려던 이학년이도 죽었고, 썩은  배 위태하다고 김식을 깨우치던 
최수성이도 죽었다. 죽인  사람들 외에 연좌 입힌 사람이 많았고,  양인, 천인 할 
것 없이  휩쓸어 귀양 보낸 사람이  더욱이 많았다. 사련은 여러  사람을 죽이고 
귀양 보내게 한 공로로 절충장 직함을 받고 일생 녹을 타서 먹게 되었으나 사람 
같은 대접은 받지 못하였다.
  7
  남곤, 심정이가 전에  여러 명현을 모함한 것은 판국을 뒤집어  권세를 잡으려
고 꾀한 것이요, 후에  여러 사람을 살해한 것은 신변의 위험을  없이 하려고 꾀
한 것이었었다. 후에는 권세 잡은 대신과  중신이 고변을 받아가지고 역적모의로 
몰아서 조치한 것이나까  꾀가 용이하였지만, 전에는 조정의  판국을 뒤집느니만
큼 용이한 꾀로 될 것이 아니었었다. 만일에  궁중 세력이 유리하게 돌지 못하였
다면 남곤, 심정의  백 가지 천 가지  꾀가 모두 소용이 없었을  것이었다. 남곤, 
심정이가 이것을 잘 알았던 까닭에  심정이가 척분을 연줄 삼아서 경빈을 끌 뿐
이 아니라 홍경주같이 어리석은 위인과 손을 맞잡아서 희빈을 끌었던 것이다.
  그러나 희빈과  경빈의 힘만으로는 임금까지 끌기가  용이치 못하였을 것인데 
젊은 왕비 윤씨가 조광조 등을 미워하여 희빈과  경빈을 곁들어 준 까닦에 남곤, 
심정이가 마침내 임금을  끌게 된 것이었다. 조광조에게 사약을 내릴  때로 말하
더라도 어제같이 죽일 죄가 없다고  잘라 말씀한 임금이 곤전에서 한 밤을 지내
고 오늘같이 갑자기 사약을 내리게 되었으니 왕비 윤씨의 임금을 움직이는 힘이 
절대하던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윤씨는 파산부원군 지임의 딸이니  중종대왕의 셋째왕비이다. 중종대왕이 정국
공신의 억지를 못 당하여 첫째왕비 신씨를 폐출하고 숙의 윤씨를 왕비로 책봉하
였는데, 이 윤씨는 파원부원군 여필의 딸이니  효혜공주와 인종대왕을 탄생한 장
경왕후이다. 왕후가 장래의  인종을 탄생하고 산후더침으로 승하한  까닭에 삼년 
후에 파산의 딸이  간택에 뽑히어 셋째왕비가 되었었다. 파산의 딸  윤씨는 신씨
와 같이 유순하지도 못하고 장경왕후와 같이 유덕하지도 못하나 한미한 집 딸로
서 뒷줄이 없이  간택에 뽑히니 만큼 인물이 잘났었다. 임금에게  고임을 받는다
느니보다 임금을 손아귀에  넣으려고 하던 인물이었다. 자색과  총명이 겸비한데
다가 임금보다 십사오 년 아래  되는 연치가 있어서 임금의 맘을 용이하게 수중
에 모았었다. 임금이  정사를 마치고 내전에 들어와서 왕비 가까이  앉았다가 궁
인들이 보지 않는 틈에 손이라도 만지려고 하면 손을 감추면서 “궁인들에게 견
모되십니다.”하고 나직히 말씀을 아뢰어서  임금의 손이 무료하게 들어가도록하
고 궁인들이 모두 물러가고 왕비 혼자 임금을 뫼시게 되면 분결 같은 손이 임금
의 무릎 위에 걸치어 임금의 손이 만지기를  능대하고 있었다. 임금을 성나게 하
고 임금을 웃게 하는  것이 왕비의 손에 있었다. 임금은 왕비가  웃기는 대로 웃
고 성나게 하는 대로 성내는  것이 일종의 재미가 되어서 내전에서 재미보는 시
각을 방해하는 의외의  일이 있을 때는 미간의 주름이 저절로  잡히었었다. 조광
조의 축이 조정에 있을 때는  경연이다 복합이다 면대다 구계다 임금이 성이 가
시더니, 남곤, 심정의 축이 조정에 들어선  뒤에는 경연은 시늉에 지나지 못하고, 
복합은 절종이 되고,  면대나 구계가 있다 하여도 시각을 끌지  아니하여 임금이 
내전 재미를 맘대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임금이 항상 곤전을  떠나게 되지 아니
하므로 경빈,  희빈 같은 빈들은 곤전  옆에 뫼시고 있어 시중이나  들었지 따로 
대전을 뫼실 때가 드물었다.
  그러나 경빈은 상주 미인으로 이름이 있던 사람이라 나이 들고 자녀를 생산하
여 자색이 쇠하였다  하여도 전날 아리땁던 자취가  미목간에 남아 있어 임금의 
어여삐 여김을 받을  만하고, 임금의 자녀 중에 연치로 맏아들인  복성군과 연치
로 맏딸인 혜순옹주와 옹주 중에 가장 총명한 혜정옹주의 소생모인 까닭으로 임
금의 대접이 자연히 다른 빈과 달리 후하였다.  왕비가 겉으로는 경빈 대접을 임
금보다도 더 후히 하나 속으로 은근히 미워하였다.  왕비가 한 달에 한동안 임금
을 가까이 뫼시지  못하게 될 때에는 희빈을 시켜  뫼시게 하고 희빈 역시 일이 
있거나 또는 희빈이 괘씸스러울  때는 사람이 요사스럽지 아니한 창빈안씨 같은 
궁인을 불러 뫼시게 하였다.  그 덕택에 경빈에게 미치는 것은 일  년 일차가 드
물었다. 사실로 안씨같이  순직한 후궁은 임금 뫼시게 되는 것을  오로지 왕비의 
덕택으로만 알았었고, 이 덕택이  임금께는 곧 투기 없는 표가 되어 보이었었다. 
왕비가 이와 갈이  임금의 맘을 한손에 쥐다시피  하였지만 세자에 향한 임금의 
맘은 어찌하지 못하였다.  세자가 하루도 몇 차례씩 대전께 문안을  드리러 오건
만, 동궁에 찬림하여 세자의 기거 범절을 하순하는  때가 적지 아니하고 문안 때
가 조금만 늦으면 세자가 병이나 없지 아니한가 하여 내시를 보내 보되 그 내시
의 회주가 빠르지 못하면 연거푸 다른 내시를  보내는 때가 없지 아니하고, 세자
가 혹시 미령하면 쾌복되기까지 심려를 마지 아니하여 조석 수라가 현저히 평시
에서 감하였다. 왕비는  임금의 귀 너머로 지극한 자애를 흉보듯  변도듯 말하는 
때가 없지 아니하였으나 임금의 앞에서는 감히 생심코 발설하지 못하였다.
  8
  왕비가 처음 입궁한  때에는 원자가 세 살 먹은  어린 아기라 그 귀여운 양이 
자기의 소생이 아니라고 미워할 수가 없었으나,  원자의 범절이 놀랍게 숙성하여 
궁중 상하가 칭송 아니할이 없을  때 왕비는 은근히 미워하는 맘이 생기기 시작
하였고, 원자가 여섯  살에 왕세자로 책봉되며부터 다음 날 소생  아들은 대군밖
에 못 되려니 하는 생각에 왕비가 눈에  가시로 보기 시작하였다. 효혜는 공주일 
뿐 아니라 일찍이 김안로의 아들  희에게로 하가하여 그다지 고울 것이 없는 대
신 그다지 미울 것도 없었지만, 세자는 하루도  몇 번씩 눈앞에 보이는데 왕비의
미워하는맘이 점점 더 심하였다. 세자의 체질이  약하건만 왕비의 눈에는 튼튼하
게 보이어서  도리어 걱정이었다. 왕비가  이런 맘을 내색하지  아니하려고 애를 
썼으므로 임금은 까맣게  몰랐지만, 궁녀 중에 눈치 빠른 사람들은  속으로 짐작
하여 왕비 앞에서는 세자를 칭송하지 아니하였다.  세자는 성인의 자품이 천생으
로 탁월하여 어린 나이에 하는 일을 어른의 일로 보아도 흠잡아 말할수 없던 것
이 별로 없었던 까닭에 왕비는 밑도끝도없이“아이구 깜찍스러워”하고 말할 때
가 종종 있었는데  이것이 세자를 두고 하는 말인  것은 눈치 빠른 궁녀 외에는 
알 사람이 없었다. 세자가  여덟 살에 관례하고 열 살에 열한  살인 세자빈과 가
례를 행하였는데 가례가 순성하던  날 임금이 내전에서 궁동으로 물러가는 세자
를 가리키며 “장래에  요순 같은 성군이 될 것이니 동방의  복이다.”하고 칭찬
하며 기꺼하였더니 입술을  물고서 듣고만 있던 왕비가  그 뒤로는 세자의 말을 
요순이라고하고 비꼬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세자가 열세 살 되던 해 봄 탄식날 식전에 어느 궁인 하나가 동궁에서 이곳저
곳 수군거리게 되었다.  그것은 불로 태워 죽인  쥐 한마리였다. 태워 죽인 쥐가 
방자라고 하여도 그것만이면 궁인들끼리 서로 시기하여 한 짓으로도 볼 수 있지
만, 쥐 옆에  올해생건명이라고 쓰인 나뭇조각이 매어달렸은즉  궁중에서 올해생 
사나이는 세자 한  분뿐이라 세자를 두고 방자한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이것이 누가 한  짓일까? 누가 시켜 한 짓일까?  경빈 박씨게 있는 궁인이 전날 
밤에 그 근방에 있던  것을 본 사람이 있었다. 본 사람은  곤전에 있는 궁인이었
다. 임금이 이것을 알고 세자의 탄신날 저녁때  내전에 형장 기구를 차리고 지목
받은 경빈의 궁인을  잡아내어 중장으로 신문하였으나, 사실이  명백히 드러나지 
못하였다.
화가 난 임금이 경빈의 부리는 궁인을 모조리 잡아내어 매질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세자가 입시하여 “신이 불초하온 탓으로 이런 일이 났사온즉 신은 말씀
을 아뢰기도 황송하오나 의심스러운  죄는 가볍게 다스림이 옛 성인의 뜻이오니 
형장을 과히 쓰지 마옵소서.” 하고 부왕께  아뢰는데 부드러운 목소리가 임금의 
화를 눅이어서 임금은 곧  형장 기구를 거두게 하였다. 이 일이  명백히 되고 아
니 되고간에 궁중에서 조처되고 말 것이 파원부원군 윤여필의 귀에 들어가서 파
원이 심정을 찾아보고 궁중 소문을  전한 뒤에 “이런 변이 어디 있소? 이리 하
다가 세자의 장래가 위태하실 모양이니  대감 같으신 이가 밖에 있어 세자를 극
진히 보호하여 드리면 작히나 좋겠소” 하고 눈물을 흘리며 부탁 비슷하게 말하
였더니 심정이는 경빈과 연통이  있으니만큼 경빈의 치의 받는 것이 자기에게까
지 미치지 아니하라 속히 발뺌을 하는 것이 장사라고 생각하고 그날로 예궐하여 
임금을 보입고 “윤여필의 말을 듣사온즉 그간 동궁에 저주의 변이 있다 하오니 
이것은 국가의 대변이라 궁중에  덮어두지 마시고 조정에 내어맡기사 죄범의 정
절을 명백히 함이  마땅하올 줄로 신은 생각하옵니다”  하고 아뢴 것이 발단이 
되어 일이 궁중에서 조정으로 옮기어 저주옥사가 일어났다. 
  이 옥사에 경빈의 궁인과  혜정옹주궁 하인이 혹독히 국문을 당하였는데 나뭇
조각의 글씨가 옹주의 부마인 당천위 홍려의 필적같은 점이 있어서 옹주궁 하인
이 국문을 당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옥사는 경빈이 자기의  소생인 복성군으
로 대통을 잇게 할  욕심이 있어서 혜순, 혜정 두 옹주와  의론하고 세자를 방자
한 것이라고 결정되어 경빈과 복성군은  사약을 받고 두 옹주는 서인이 되고 혜
순옹주의 부마  광천위 김인경은 원찬을  당하고 당천위는 장하에  맞아 죽었다. 
경빈의 죽은 것을 왕비와 왕비에게 가까운 궁인들 외에는 모두 원통히 여기었으
나, 불쌍하다는 말 한마디를 감히 입 밖에 내지를 못하였다.
  9  
  심정은 경빈이 죽은 뒤에 궁중 소식을 염탐할 연줄이 없어져서 허우룩한 생각
이 없지 아니하였으나, 경빈의  연루 입지 아니한 것을 다행으로 여기었다. 저주 
옥사가 끝난뒤에 어느날  심정이가 남곤을 와서 보고  조정 이야기도 하고 궁중 
이야기도 하다가 부원군 윤여필이 세자 보호를 부탁하더라고 이야기하고 “우리
가 섣불리 동궁을 보호한다고 나서다가는 동궁의 덕을 보기 전에 중전의 미움을 
받을 것이 탈이니까 겉으로는 동궁을 떠받들며  윤원로, 윤원형 형제에게 인정을 
사두는 것이 상책이오. 지금 윤씨 형제가 중전의  동기로 조정의 박대를 받아 불
평불만이 있는 중이니 이런 때에 덕보이기는  지이차이할 것이오.” 하고 자기의 
꾀많은 것을 자랑하듯이 웃으면서  남곤의 얼굴을 쳐다보니 전 같으면 눈웃음을 
치며 “글쎄, 그래” 하고 바싹 앞으로 나앉을  남곤이가 얼굴의 힘줄 하나를 까
땍 아니하고 비슷이 앉아서 “아이구  성가신 소리 하지 마오” 하고 하품을 하
였다. 심정이가 괴상히 생각하여  “대감, 오늘 심기가 불편하신가요?” 하고 물
은즉 남곤이는 “아니오” 하고  고개를 흔들더니 “얼마 살 세상이라고 이것저
것 맘을 썩힌단 말이오. 나는 만사가 귀찮소.” 하고 또다시 하품을 하였다.
  심정이가 재미없이 돌아간 뒤에 남곤이는 자기 사랑에 와서 있는 일가 사람을 
불러올려서 “자네 내일 적성 좀 갔다 오게” 하고 이르니 그 일가 사람이 “왜 
적성은이오?” 하고 묻다가 갑자기  생각이 난듯이 “큰댁 영감께 갔다 오란 말
씀입니까?” 하고 다시 고쳐 물었다. 남곤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우리 형
님은 나를 아우로 여기지  않을뿐 아니라 당초에 사람으로 여기지 않으시니까” 
하고 입맛을 다시다가 “여보게, 자네 생각에 이  다음 후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겠나? 아무래도 소인이라겠지?” 하고  풀기없이 말하는데 그 일가 사람이 완
곡하게 말한다는 것이 “그렇지  않기가 어려울 것이오” 하고 대답한즉 남곤이
는 또다시 입맛을 다시고 한동안  말이 없이 앉았다가 머리맡 손그릇 위에 놓인 
자기의 시문 초한 것을 집어들고 장장이 찢기  시작하였다. 그 일가 사람은 어이
없이 여기어 보고만  있다가 “웬일이십니까?” 하고 물으니 남곤이는 “욕거리
를 남겨둘 것 없지” 하고  곧 “이리 오너라” 하고 청지기를 불러서 찢어놓은 
휴지를 가져다가 불에 넣으라고 일렀다.
  남곤의 일가 사람이  남곤의 편지를 가지고 적성  감파동에 사는 남곤의 형을 
찾아갔더니 남곤의 형은 멀쩡한  눈을 가지고 거짓 청맹과니 행세하는 사람이라 
“자네가 가지고 온 편지를 좀  읽어주게” 하고 말하여 그 사람이 편지를 읽어 
들리었다. 그 편지 사연은 형제의 천륜이 막히다시피  된 것은 저의 죄라 용서하
기를 바란다고  하고, 저의 지은 죄가  머리털을 뽑아 헤아리기 어려울  것을 잘 
안다고 중언부언한 것이었다. 남곤의  형이 다 듣고 나더니, “쉬 죽으려는 게군
” 하고 다른 말이  없이 눈물을 좌르를 흘릴 뿐이었다. 그  사람이 서울로 돌아
온 뒤 얼마되지 아니하여 남곤이가 병이 났다.  병이 나며부터 정신을 잃고 헛소
리를 하였다. “덕순이가 날 죽이러 왔다” “아이구, 칼이 무서워. 칼이 무서워.
” 하고 소리를 지르고 진땀을 흘리고 난 뒤에는 손을 가지고 무엇을 만지는 시
늉을 하였다.  그 헛소리가 하루하루 더  심하여졌다. 내의는 고사하고 어의까지 
나와서 여러 가지로 약을 썼으나 효험이 없었다. 
  심정이가 그때 마침 감기 기운이 있어 출입을 못하다가 남곤의 병이 위중하다
는 말을 듣고야 비로소 문병을 왔었다. 남곤이는  물끄러미 옆에 앉은 심정을 바
라보나 알아보는지 몰라보는지 알 수가 없었다.  “대감, 대감, 심정이 아시겠소? 
정지요, 정지” 하고 자기의 이름과 자를  불러가며 알아보느냐고 물어야 남곤이
는 대답이 없더니 홀저에 “저놈 보아라. 저놈 보아라.” 하고 고개를 베개 밑으
로 넣으려고 애를 쓰며 “저놈이  정지를 죽이고 날 마저 죽이러 왔구나” 하고 
전신을 벌벌 떨더니 “아이구 골이야” 하고 소리를 지르며 입으로 피를 토하였
다. 심정은 등골에 찬물을 붓는것 같았는데 감기 기운만이 아니었다.
  10
  영의정 남곤이 죽은 뒤에 남곤에게 몰려났던  정광필이 다시 영의정이 되었고, 
심정이도 대배하여 우의정이 되었다가  나중에 좌의정에까지 승차되었다. 남곤이
가 살아있을때에  연성위 김희의 부친  김안로가 이조판서로 있어  남곤, 심정과 
세력을 겨루려다가 세력이  밀리어서 원찬을 당하였었는데, 김안로는 남곤, 심정
이만 못지 아니한  간신이라 동궁 보호를 구실삼고  일부 조신과 기맥을 통하여 
다시 조정에 들어서게  되었으니 이것이 남곤이 죽은지 사오년 후  일이다. 김안
로가 조정의 채를 잡은  뒤에 저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은  벼슬을 돋아주고, 저와 
사혐이 있는 사람은  어느 모로든지 몰아서 귀양 보내거나 죽이거나  하였다. 김
안로와 함께 삼흉이라는  허항, 채무택 같이 안로에게 사자 어금니  노릇하던 자
는 말할 것도 없고, 안로에게 붙어서 고관대작을  지낸 자가 수가 없이 많았는데 
도야지로 조명이 난 장순손이도 안로의 집과 이웃하여 살면서 안로의 비위를 맞
춘 까닭으로 일인지하요 만인지상이라는 영의정까지 되었다.
  정광필은 사복 도제조로 있을때 안로가 목장 한곳을 자기가 쓰게 달라는 것을 
국가의 땅을 베어 줄 수 없다고 거절한 일이 있을뿐 아니라 안로의 귀양 풀어주
려는 의론을 수차  막은 일이 있어서 안로는  함혐하고 백계로 모함하여 김해로 
귀양 보내었다. 정광필과  같이 망중한 노인 대신도 안로에게 소소한  혐의가 있
어 원찬을 당하였으니  안로를 조정에서 몰아낸 한  사람인 심정이가 성할 리가 
없다.
  김안로는 심정이를 경빈의 저주  옥사에 관련이 있었다고 몰아서 강서로 귀양
을 보내고도 맘에 흡족치 못하여  가죄할 기틀을 엿보고 있던 중에 조정을 훼방
한 방서 한  장이 종로 종각에 붙은 일이  있어서 이것을 심정의 아들 심사순의 
소위라고 몰아붙이어 사순과 및 심정의 집 사람은 고사하고 심정의 집과 상종이 
없던 사람까지 엄혹한 형장으로  때려죽이게 하고 심정에게는 사약을 내리게 하
였다. 심정이가 후명을  받을 때에 남향 재배하고 나서 약그릇을  들고 “김안로
의 원수, 원수의 김안로” 하고 말하며 이를 갈았다. 심정이는 백번 천번 죽어도 
마땅한 위인이지만 원통한 죄명으로  죽은 까닭에 세상 사람들이 대개 “천도가 
무심치 않다” 고 말하는 중에  “불쌍하게 죽었다” 고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아
니하였다. 
  심의는 심정의 아우인 까닭으로 의금부에 잡혀 갇히었다가 어전에서 곤장까지 
맞았는데 국문에 대답이  장관이었다. “심정이는 벌써 죽었습니다. 내가 죽였는
데요.” “신이 형을 죽인 죄인이올시다. 죽어 마땅하외다” 하고 애고애고 통곡
도 하다가 “심정이에게  내 땅을 찾을 것이 있으니 이번에  찾아주십쇼.” “신
의 집에  문권이 있소이다”하고 허허  웃기도 하였다. 임금이  좌우를 돌아보며 
“심의가 실성하였딴 말을  들었더니 참말이고나. 내랬다 신이랬다  종이 없고나
”하고 말씀하시니 좌우에  있던 신하가 “실성한지가 오래옵니다.  평소에도 흔
히 횡설수설한다 하옵니다.”  “저의 형이 남곤이와 같이 앉았는 것을  보고 두 
소인놈이라고 호령한 일도  있었다고 하옵니다.” 말들을 아뢰었다. 임금이 저의 
형을 소인이라고  호령하였다는 것이 우스워서 저으기  웃음을 머금고 “실성한 
것이 아니면 천치고나. 정의 아우된 것이 죄라면  모르되 다른 죄는 짓지 아니하
였을 것이다” “형장을 그만두고  끌어 내보내라” 하고 말씀하여 심의는 곤장
을 몇 개 맞지도 아니하고 죄를 면하였다. 
  심의가 어전에서 곤장 맞고 나오는  길로 형의 집에를 와서 보니 사람이 떠나
지 아니하던 사랑방들은 모두 빈방이 되었고 안에를 들어온즉 형수와 질부가 한 
방에 모여서 눈물로 서로 보고 앉았었다. 심의는  인사 한마디 아니하고 대청 구
석에 있는 쥐구멍으로  와서 펄썩 주주물러 앉아  “쥐구멍은 여기 있는데 우리 
형은 어디를 갔나” 하고 방성대곡을 하기 시작하였다.  나중에는 갓 쓴 채로 머
리를 쥐구멍에다가 비비면서  “애고 형님, 애고 형님” 하고 한동안  형님을 부
르다가 기절한 사람같이 아무 소리가 없이 엎드렸었다.  그 형수와 그 질부가 방
에서 나와서 옆에 서 있는데 심의는 고개를 들고 물끄러미 형수를 치어다보더니 
“우리 형님 찾아내오.  안 찾아내면 경치리다” 하고 한참 만에  “안해도 소용
없고, 아우도  소용 없소. 형님만 불쌍하오.”  하고 다시 울음을  울려다가 말고 
“죽은 사람이 불쌍할  것 있나? 산 사람이 불쌍하지.” 하고  일어서서 말 웃음 
웃듯이 입을 하늘로 치어들고 히히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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