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꺽정 피장편 8

3학년2반 | 2022.01.03 09:37:21 댓글: 0 조회: 436 추천: 0
분류연재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39237
  제 8장 출가
  1
  갖바치와 김륜이는 평산서 떠난 뒤에 도중에 일이 없이 강서 구룡산에 도달하
여 선생을 찾아  만났는데, 삼십 년 만에  다시 만나는 터이라 선생,제쟈의 서로 
반가워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어느 날 조용한 때, 선생,제자 세 사람이 마주 앉아서 이야기하는 중에 김륜이
가 “선생님이 세상에서 숨으시기 전에 한림 벼슬을 다니신 일이 있습니까?”하
고 물은즉, 선생은 눈을 스르르 감고 그렇다 그렇지 않다 말이 없었다. 김륜이가 
무료하여 갖바치를 돌아보며 “형님도 아시지만 신판사가 적어놓은 책에 정한림
이란 이의 사주가  선생님 사주와 똑같읍디다.” 하고 말 붙이는  것을 갖바치도 
빙그레 웃고 대꾸를 하지 아니하니 김륜이가 더욱이 무료하여 얼마 동안 잠자코 
앉았다가 “갑갑하니 바람이나  쏘이러 나갑시다.” 하고 갖바치를  이끌고 나가
려고 하였으나  갖바치는 “나는 나가고  싶은 생각이 없네.”  하고 따라나가지 
아니하였따. 김륜이가 밖으로 나간  뒤에 갖바치가 “선생님, 두 권 책을 이번에 
도로 가지고 왔습니다.”  하고 허리에 찼던 전대를 끄르고 그  속에서 부주비전
과 망단기결  두 권을 내어서 선생  앞에 갖다놓았다. “책을 남에게  보인 일은 
없겠지?” “주야로 만나던  사람도 책이 있는 줄까지 모릅니다.”  “너는 모르
는 것 없이  다 알겠지?” “대강 다  압니다. 아는 것이 도리어  걱정되는 때가 
많습니다. 세상에 어려운 일이  한두 가지 아니겠습지요만, 아는 것을 모르는 체
하기보다 더 어려운 일이 없을 것 같습디다.”
  선생이 갖바치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너같이 조심하는 사람이 아
니면 전치 못할 책이다. 함부루 뒤에 남길 책이  못 되니 내 눈앞에서 불사라 버
려라.” 하고 곧 뒤를  이어서 “륜이가 돌아오기 전에 앞뜰에 나가서 태워라.” 
하고 일러서 갖바치가  책을 태우고 재를 치우기 전 김륜이가  들어왔다. “무엇
을 태우셨소?”  “선생님이 휴지책을  태우라고 하셔서.” “무슨  책입디까?” 
“부주비전이란 책인데.”
김륜이가 “여보, 그 책을  왜 아깝게.”하고 반동강 말을 하면서 시비하려는 사
람같이 바짝 갖바치 앞으로 대어들었다. “아깝지만  선생님이 태우시라는 걸 어
떻게 한단 말인가?”하고  갖바치가 나무라는 눈치로 치어다보니 김륜이는 “형
님, 고지식도 하오. 한번 보기라도 하고  태우지요.”하고 다 탄 재를 들여다보며 
곧 울 것같이 상을 찡그리었다. “방안으로 들어가세.” “녜.”
  김륜이가 갖바치의 뒤를 따라  들어와서 한구석에 앉은 뒤에 “삼원명경 백여 
권이 지금 네게  몇 권 남아 있느냐?”하고 선생이  노기 있이 말하니 김륜이가 
앞으로 나와 꿇어  앉았다. “친한 사람들이 보고 가져오겠다는 것을  인정에 차
마 못한다기 어려워서 빌려주었더니 구경 돌려보내지 아니하여 낙길이 되었습니
다.” “내가  남에게 빌리라는 말한 일이  없지야?” “잘못되었습니다. 이번에 
나가면 저지히 찾아다 두겠습니다.” “찾아? 지금 없어진  것이 벌써 십여 권이
고 네가  찾지 못할 만큼 깊이  들어간 것이 대개 이십여  권이다. 삼원명경쯤을 
잘 보존 못하는 네가 그 이상의 책을  바라는 것은 분수에 넘치는 일이다.”하고 
선생이 준절히 말하여  김륜이는 부끄러운 생각에 한참  동안 고개를 바로 들지 
못하였다.
  선생은 조는 듯이 눈을 내리감고  앉았다가 홀저에 눈을 들어 두 제자를 바라
보며 “이리 가까이들  와 앉아라.”하고 이르고 난 다음에 “명일  오시에는 내
가 이 세상을 떠날 터이다. 신후사는 부탁할  것이 없으나 화장에 소도바도 성가
신 일이니 배토장으로 관 쓰지  말고 묻고, 봉분도 만들지 말고 평토를 쳐라. 고
인총상 금인경이라니 가랫밥 보탬도 좋지그려.”하고 허허 웃었다. 아무 병도 없
는 선생이 그 이튿날 오시에 과연 자는  사람과 같이 운명하니, 갖바치는 김륜을 
데리고 일을 주장하여 선생의 이른  말대로 초종을 지내고 며칠 지난 뒤에 구룡
산을 떠나는데 김륜은 광주 가서 볼일이 있다고 서울길로 올라가고 갖바치는 “
기위 이곳까지 왔으니 묘향을 한번 둘러보고 가겠네.”하고 영변길로 내려갔다.
  2
  갖바치가 묘향에 들어가서  머리 깎고 중이 되었다. 갖바치가 서울서  떠날 때
에 금동이 내외를 양주로 보내고 혜화문 안 집을 김덕순에게 주고 손 털고 나선 
것이 중이 될  맘을 속으로 작정하였던 것이다. 전에 갖바치가  선생의 심부름을 
다니는 중에 면분이 두터웠던 수월당  노장중은 그 동안에 벌써 죽었고 그때 상
좌가 수월당  주장중이 되었었다. 그  주장중이 갖바치의 이야기를  듣고서 아이 
적에 보던 사람인 것을 깨닫고 남달리 대접하여 갖바치는 수월당에서 중이 되었
다.
  갖바치가 묘향산에 간 소식은 김륜이가 광주 가는 길에 덕순을 찾아보고 말하
여 양주서도 곧  알았으나, 그 뒤에는 소식이 막히어서 섭섭이와  꺽정이가 궁금
히 생각할 때가 많았다. 이듬해 늦은봄에 묘향산  보현사 중 하나가 금강산을 가
는 길에 덕순을 찾아 들어와서 편지 한 장을  전하고 갔다. 그 편지 겉봉에 “한
양 혜화문내  이석사전치 임꺽정개견”이라고  쓰인 것이 갖바치의  필적이었다. 
덕순이가 중간에서 편지를 뜯어보니 안부 이외에 별 말이라고는 묘향산 구경 오
라는 말뿐이고 연월일 아래에는 병해라고 쓰이어  있었다. 덕순이가 꺽정이를 불
러올리어 편지 사연을 말하여  들리었더니 꺽정이는 “선생님이 오라는데  묘향
산 구경이나 가야겠군.”하고 불일간 길을 떠날 것같이 서둘렀다. “언제쯤 가려
느나?” “곧  가지 무어.” “너의 집에  말도 아니하고?” “말하고 가지요.” 
“그러면 집에 가서 말하고 오너라. 나하고 동행하자.”
  꺽정이가 집으로 내려와서 묘향산  갈 일을 말하니 꺽정이 아버지가 첫마디에 
“안된다.”하고 막았다.  “왜요?” “그런 일이  있어. 가려거든 두어  달 후에 
가거라.” “그런 일이 무슨 일이오?” “지금 너의  혼인말이 작정되어 가니 어
른이 된 뒤에 구경을 나가거라.”  “어른이오? 나는 싫소. 갓도 못 쓰는 어른보
다 총각이 좋아요.” “이 자식, 그러면 총각으로 늙을 테냐?” “총각으로 늙어
도 좋지요.” “망한 자식  같으니.” “남이 들기 싫다는 장가를 억지로 들이려
고 하면 내가 묘향산에 가서  다시 아니 올 터이오.” “중이 될 테냐? 이 자식.
” “중이 되든지 무엇이 되든지.” 꺽정이는  부자간에 말다툼하고 이튿날 서울
로 올라왔다. 
  혜화문안 덕순에게를 와서 보니 덕순도 없고 덕순의  아우 덕무도 없다. 집 지
키는 할머니를 불러서 물어보니 그 할머니  말이 “큰댁에들 가셨소.”하고 가르
쳐서 덕수의 집에를  찾아왔다. 안에 있는 덕순을 불러내어길 떠날  일을 말하니 
덕순이는 “지금 우리 어머니가  갑자기 병환이 나셔서 어젯밤도 새우다시피 하
였다. 구경이  다 무어냐.”하고 동행 못할  사정을 말하였다. “그러면  나 혼자 
가겠소.” “그래라. 내가 동행하려다 못한  이야기나 하여라.” 꺽정이가 작별하
고 돌아서 나갈 때에 덕순이가 꺽정이를 다시 불러가지고 묘향산에 가서 갖바치
를 찾을 때, 수월당 병해다사로 찾으라고 일러 주었다.
  꺽정이가 평산부터는  초행길이라 길을 묻느라고 자연  조금씩 지체가 되어서 
서울서 떠난 지 나흘 되던 날 아침에  묘향산에를 들어왔다. 보현사 큰절에 와서 
수월당을 물으니 머리 깎은  갖바치 선생이 어느 방에서 나오며 “너 오느냐?”
하고 꺽정이를 반갑게 맞아들이었다. 꺽정이가 양주  집안 이야기와 서울 덕순의 
집 이야기를 대강 말하고 난  뒤에 대사가 “너 올 때 심선생을 못 뵈었니?”하
고 물으니 꺽정이는 “안 뵈었소.  안녕하시겠지요.”하고 말하였다. “너더러 오
라기는 다름 아니다. 내가 백두산에를 들어가 볼 생각이 있으니, 너 나하고 같이 
가지 아니하려늬?” “아무데라도 같이 가십시다.  그러나 백두산은 함경도 땅에
서 들어가지 아니하나요?”  “이곳에서 함경도 땅을 지나서 백두산에를 들어갈 
수도 있겠지.” “아무렇게  든지 가십시다.”하고 꺽정이는 별말 아니하고 선생
과 같이 백두산 구경을 가기로 작정하였다.
  3
  늙은 중과 건장한 총각이  작반하여 길을 나섰다. 희천, 강계를 지나 후창으로 
나와서 강물을 끼고  올라오며 갈파진, 혜산진을 거치어서 영변서 떠난  뒤 달포 
지난 때에 백두산 지경을 접어들었다. 그 동안에도  인가 없는 곳을 누차 지나왔
지만, 앞으로는 산 상봉까지 이백 리 길이  내처 무인지경이라 총각은 질머진 바
랑 속에 감자를 말이  넘게 얻어 넣었다.  범이 내닫거나 곰이 덤비거나 또는 무
지한 되놈이 달려들거나  총각은 조금도 겁낼 사람이 아니로되, 생후에  처음 보
는 크나큰 수림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도끼 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나무가 
배게 들어서서 하늘이  잘 보이지 아니하였다. 하늘을 찌를듯이 꼿꼿이  선 것도 
나무요, 다리 놓이듯이 썩어 자빠진  것도 나무라, 가고 가고 쉬지 않고 가도 전
후좌우에 보이느니 나무뿐이었다.  말하자면 나무바다를 헤엄쳐나가는 셈이었다. 
방향을 잃고 헤매게 된다면 십  년 이십 년에도 벗어져 나갈 수가 없을 것 같았
다. 총각이 중의 뒤에  따라오며 “이놈이 숲이 끝이 없네요.”하고 말하니 “참
말 굉장한 수림이다.”하고 앞선 중이 대답하였다. “어디가 북쪽인지 어디가 남
쪽인지 아주  대중할 수가 없어요.” “염려마라.  방향은 잃지 않을  게니. 이것 
보아라, 여기 사람 다닌  자취가 있다.”하고 이끼 위에 박힌 발자국을 가리키며 
중은 총각을 돌아보았다.  중과 총각이 수림 속으로 얼마를 걸었던지  나무 없는 
넓은 터전에 나오게 되었다.  그 터전 중간에 당집이 있다. “그만해도 시원하구
먼요. 저기 무슨 당집이 있네요.” “당집이다. 거기 가서 쉬어 가자.”
  두 사람이 당집 앞으로 가까이 와서 보니 여편네 한 사람이 당집 안에 꿇어앉
아 있다. 두 손바닥을 맞대고 손 위에  앞이마를 얹고 입속으로 중얼중얼하는 것
이 무슨 축원을  드리는 모양이다. 총각의 큰기침에 여편네가 깜짝  놀라 돌아다
보며 “아구머니나.”하고 소리를  지르더니 “놀라지 마십시오.”하고 부드럽게 
말하는 늙은 중을  이윽히 바라보다가 일어나서 당집 밖으로 나왔다.  그 여편네
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나이 오십  넘어 보이는 사람인데,  쪼그라지고 바스라진 
그 얼굴에도 전날 곱던 전형이 보이었다. 여편네가  다시 한번 중의 모양을 훑어
보고 또 그 다음에 총각의 얼굴을 치어다보았다.  머리에 굴갓을 쓰고 목에 염주
를 걸고 몸에 먹장삼을 입고  두 손으로 지팡이를 짚고 섰는 늙은 중은 안에 품
은 도덕이 외모에 나타나고, 사람도 낳을 만한  큰 바랑을 잚어지고 굵직한 몽둥
이를 들고 섰는 총각의 얼굴은 사남게 생겨 보이나 흉한 사람 같지 아니하였다.
  여편네가 놀란 맘이  가라앉는 듯이 늙은 중과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이곳
을 어째 왔소?” “백두산을 올라가는 길이외다.” “대사님, 어느 절에서 왔소? 
천봉산 자복사요?”
“아니올시다. 묘향산에서 왔소이다.” “묘향산이 어디인가요?” “평안도 영변
이올시다.” “평안도요? 아이구  멀고 먼 하관에서 오셨습니다.”하고 여편네가 
잠깐 무엇을 생각하는 모양이더니 “우리 집이 여기서 가까우니 가서 쉬어 가시
지요.”하고 말하였다. 뒤에 섰던 총각이 앞으로 나서며 “대체 여기가 어디인가
요?”하고 물으니 “허항령이어. 사십리 허항령 고개를 말도 못 듣고 왔는가. 이 
당집은 천왕님을 위하는 천왕당이고.”하고 여편네가 대답하였다.
  중과 총각이 여편네의 뒤를 따라서 천왕당 옆으로 수림 속을 뚫고 5리길을 넘
어 나와 보니  통나무로 지은 삼간집이 보이었다. 여편네가 들어오라는  대로 집
안에를 들어서서  한번 둘러보니 나무벽을 털가죽으로  도배한 것같이 산짐승의 
털가죽이 사방 벽에 매어 달렸다. 호랑이 가죽, 곰 가죽, 사슴 가죽, 가지각색 짐
승의 가죽이었다. 산짐승에게서  나는 노린내가 코를 거슬리었다. 손들이 주인의 
뒤를 좇아 안방에 들어앉은 뒤에 총각이 산짐승의 털가죽을 가리키며 말을 묻기 
시작하였다.   “이것들을 어떻게 잡으셨소?” “아이들이  잡아온 것이지, 내가 
어떻게 잡아.” “아이들이라니요?” “딸 하나, 아들  하나 남매가 있어.” “지
금은 어디들 갔나요?” “남매  같이 사냥 간다고 나갔으니까 해질 때에나 돌아
올 터이지.”  “어째 이런 사람 살지  않는 곳에 와서  사시나요?”하고 물은즉 
“이야기하자면 사연이  길어.”하고 여편네는  한숨을 쉬고 “대강  이야기하리
까?”하고 늙은 중을 돌아보았다.
  4
  그 여편네는  갑산 관비로서 관노 한  사람과 정이 들어 죽자살자  할 지경에, 
그때 새로 도임한 갑산부사가  여편네의 인물을 탐내어서 억지로 수청을 들이려
고 하는 까닭에  두 남녀가 공론하고 모야무지에  도망하여 운총내 근처 산골에 
와서 초막을 짓고 살려다가 관가에 염문이  들어가서 잡히게 되었었더니, 다행히 
선통하여 주는 사람이 있어서  또다시 도망하여 무인지경 이곳으로 들어와서 두 
내외가 근 삼십 년 같이  살다가 사나이는 사 년 전에 죽고 지금 홀어머니가 아
들딸 남매만 데리고 지내는 중인데 천왕당에 발원하고 낳은 아들 천왕동이는 나
이가 열여섯이고,  그 누이 운총이는 나이가  스물 셋이었다. 처음에는 여편네가 
호젓하고 무서울 뿐이 아니라 갖은  고생에 못 살것 같아서 사나이가 사냥 나가
고 집에 없을 때면 어린아이같이 목을 놓고  울기까지 하였더니, 삼십 년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에 고생에도 익어서  구태여 인간처로 나갈 맘이 없지마는 아들딸
을 성취시키자면 막부득이 나가야 하겠고, 나가자니  남편의 무덤을 내버리고 가
기도 어려워서 맘에 주저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들은  아직 성취가 급할 것이 없
으나 스물  넘은 딸이 목전에  걱정이었다. 여편네가 내력과  신세를 이야기하는 
끝에 “딸이라고  해야 사나이자식처럼 놓아 길러서  인간처에 가더라도 데려갈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하고  중에게 말을 하며 간간이  총각의 얼굴을 
유심히 보는 것 같았다.
  “상좌는 어째서 머리를 깎지 않았습니까?”  “상좌가 아니외다. 노승이 속인
으로 있을 때 가르치던 제자올시다.” “총각은 그러면 중이 아니군.”하고 여편
네의 말 묻는 눈치가  중이 아닌 것을 다행하게 아는 것  같은데, 총각은 눈치를 
아는지 모르는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었다. 여편네가 총각의  일을 캐어묻기 
시작하였다. “총각은 고향이 어디여?” “경기도 양주요.” “성은 무어고 이름
은 무어여?” “성은 임가고 이름은 꺽정이오.”  “나이는 몇 살이오?” “갓스
물이오.” “우리 운총이보다 세  살 아래일세.” 키가 사천왕 같고 얼굴이 숯검
정 같고 손이 북두갈고리  같은 과년한 계집아이가 말승냥이같이 뛰어다니는 모
양이 꺽정이의 눈엎에  떠올랐다. 꺽정이가 싱긋싱긋 웃으면서  “나를 사위삼으
실라오?”하고 장난조로 물었더니 운총 어머니는 진정의 말로 “총각 같은 사위
를 얻으면  한이 없지”하고 대답하여  꺽정이는 말을 달리  돌리었다. “산짐생 
고기만 먹고 사시오?” “지금은  집 뒤에 화전을 일어서 감자도 묻고 강낭이도 
심그고할 뿐 아니라  짐생 가죽으로 곡식 바꾸어 오기도 하지.”  “옷감은 어떻
게 하오?” “옷감도 바꾸어 오지.” “어디  가서 바꾸어 오나요?” “혜산진으
로도 가고  갑산읍으로도 가고 대중이  없어. 우리 천왕동이는  걸음이 사슴같이 
빨라서 회령읍도 삼사 일이면  다녀오니까 물건 바꾸어 오기가 전같이 히힘들지 
아니해.”하고 운총 어머니가 “손님들이 시장할 터인데 이댜기에 팔려서.”하고 
웃고 일어서서 정지 앞으로  가더니 감자와 강냉이를 쪄서 솔소반에 담아가지고 
와서 손님들을 권하였다.  “선생님, 얼른 점심 요기하고  몇십 리 더 가다 잡시
다.” “글쎄.” “가다니? 오늘은 우레게서 묵어야지.  그리고 산에 올라가는 길
을 천왕동이가 잘  아니 길도 배워 가지고 가는  것이 좋지 않아?” “주인께는 
폐가 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 선생의 말에 "아무리나 하십시다.“ 대
답하는 꺽정이는 천왕동이  남매가 어떻게들 생겼나 한번  보고 갈 생각이 없지 
아니하였다. 주인 손 세 사람이 감자를 벗기고 강냉이를 긁는 중에 ”엄마야, 우
리 온다.“ 하고 말소리가  들리니 그 어머니가 ”저것들이 오늘은 일찍 오네.“ 
하고 밖을 내다보다가 ”아이쿠, 큰사냥 했구나.“ 하고 말하였다.
  밖에서 쿵 소리, 덜컥소리가  나더니 두 아이가 우르르 뛰어들어왔다. 한 아이
는 “낯모를  인간들이 어디서 왔나?” 하고  손님들의 얼굴을 면괴스럽게 보고 
섰다. 한 아이는  “배가 고프다.” 하고 손님들  앞에 있는 감자와 강냉이를 두 
손으로 움키어 갔다. 섰던 아이가 이것을 보고 “나 좀 다구.” 하고 빼앗으려고 
하니 움키어 들고 있는 아이는 “저기 또 있다.” 하고 주지 아니하려고 하는데, 
그 어머니가 “손님이  있으니 조용히들 앉아라.” 하고 두 아이를  붙잡아 앉히
다시피 하였다.
  5
  두 아이는 복색이 같고 얼굴이 비슷하여 어느  아이가 운총인지, 또 어느 아이
가 천왕동인지 처음  보는 사람은 얼른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한 아이가 눈찌와 입매에  계집아이의 티가 보이었다. 이 아이가 운총이었다. 꺽
정이가 보기 전에  사천왕 같고 숯검정 같고  또 북두갈고리 같으리라고 생각한 
것은 하나 맞지 않고 모조리 틀리었다. 천왕동이가  숙성하여 열팔구 세 된 아이
와 같이 보이나, 이십여  세 된 운총이의 키가 천왕동이보다 조금  살아 보일 뿐
이고 남매가 모두  외탁하여 얼굴 전형이 동글납작하게  이쁘장스럽고, 얼굴빛은 
볕에 그을어서 희지  못할 뿐이지 검지 아니하고, 손은 마디가  굵어서 험하기는 
하나 보기에 밉지 아니하였다. 속이 맑은 눈에는  생기가 뚝뚝 떴고 납족한 입은 
닫힌 것이 야무져 보이었다.
  꺽정이가 “감자주랴?” 하고 몇 개를 집어서 운총에게 던져주니 “누가 저더
러 달라든가.” 하고 운총이는  고개를 돌리고 감자를 집지 아니하였다. 옆에 퍼
더버리고 앉았던 천왕동이가 “싫거든 나나 먹자.”  하고 감자들을 집어다 다리 
샅에 넣고 껍질도  변변히 벗기지 않고 아귀아귀 먹는데, 운총이가  욕심이 나는 
모양으로 동생이 먹는 것을 보고 있다가 “엄마, 나 배고파.” 하고 어린아이 응
석하듯이 말하니 그  어머니가 “오냐 감자 쪄주마.” 하고 일어서며  대사를 돌
아보고 “이십여 세나 된것이 저 모양이니 누가 데려가겠습니까?” 하고 웃어서 
대사가 “남매가  꼭 형제 같습니다.” 하고  말하니 천왕동이는 “형제 같다네, 
우리가 형제 아닌가.” 하고  말하고 운총이는 “몰르고 말하는 거다.” 하고 말
하며 서로 킬킬거리었다.
  천왕동이는 고사하고 운총이도 곧 꺽정이와 사귀어서  서로 말을 하게 되었다. 
“너희들 오늘 무엇 잡았니?” “큰 검둥이를 잡았다. 동생이 쫓고 내가 찔렀다.
” “검둥이가 무어냐?” “나가  볼래?” 하고 천왕동이가 꺽정이의 손을 잡고 
일어서니 운총이가 “나도.”  하고 따라 일어섰다. 꺽정이가 끌리어나와서 대가
리 찔러 잡은 시커먼 곰을  보고 대가리에 피묻은 곳을 가리키며 “무엇으로 찔
러 잡았니?” 하고 물으니 운총이가 “이것으로 찔렀다.”  하고 옆에 세웠던 창
을 들어 보이었다. “너도 짐생을 잡아보았니?” 하고  운총이가 묻는 말에 꺽정
이가 “잡아보지 못했다.” 하고 대답하였더니 “사나이  인간이 짐생도 못 잡아
보았나.” “사나이라고 다 짐생 잡을 줄 아나.” 하고 누이 동생이 비웃어 말하
므로 꺽정이가  “한번 나하고 같이 사냥을  가보려냐?” 하고 말하니 운총이는 
“짐생을 잡을 줄  모른다며 가서 무어하나.” 하고 여전히 비웃어  말하고 천왕
동이는 “잡나 못 잡나 가보아야지. 오늘밤 자고 같이 가자.” 하고 꺽정이의 등
을 치며 웃었다.
  이때 운총  어머니가 방에서 “운총아, 감자  먹어라.” 하고 불러서 운총이는 
한달음에 뛰어들어가고 꺽정이가 천왕동이와 같이 뒤에 떨어져 들어오며 “곰을 
검둥이라면 호랑이는 무어라고 하고 사슴은 무어라고 하니?” 하고 물은즉 천왕
동이가 “호랑이는 얼룩이도 있고 바둑이도 있고 뿔 있는 사슴은 뿌다귀라고 불
른다. 우리 죽은 아비가 지은  이름이다.” 하고 곧 뒤를 이어 “우리 같이 가거
든 얼룩이나  하나 잡자.” 하고 웃으니  꺽정이는 “얼룩이라니 범 말이구나.” 
하고 천왕동이와 같이 웃었다. 꺽정이가 천왕동이의  옆에 붙어앉으며 “너의 집
에 칼 있니?” 하고 물으니  감자를 먹던 운총이가 “이것 말이냐?‘ 하고 묻는 
듯이 옆에 있던 조그만 참칼을 들어보이는데,  꺽정이가 아니라고 고개를 외친즉 
천왕동이가 ”무슨 칼?“  하고 되물었다. ”긴 칼, 환도 말이다.“  ”아비 가졌
든 긴 칼이  있어.“ ”내가 찾을까?“ 하고 천왕동이가 일어서려는  것을 그 어
머니가 ”수선떨지 말아.“ 하고 나무라서 주저앉혔다.
  6
  천왕동이가 백두산상봉까지 데리고 가서 구경시켜 줄 터이니 하루는 사냥하고 
놀다가 가라고 붙들어서,  대사는 운총 어머니와 같이 집에 있고  꺽정이는 천왕
동이 남매와  같이 사냥을 나가게 되었다.  아침 요기들을 단단히 한  뒤에 셋이 
동무지어 나가는데 천왕동이는 창을 들고 앞장을 서고 꺽정이는 환도를 차고 중
간에 들고 운총이는 창을 엇메고 뒤를 따랐다.  얼마동안 숲속을 뚫고 나와서 칠
성늪을 지나 산골로 들어섰다. 짐승의 발자국을  살피며 등성이로 골짜기로 올라
갔다 내려갔다 하는 중에 바람 지나가는 결에 천왕동이가 코를 들여마시며 냄새
를 맡더니  “얼룩이가 가까이 있다.” 하고  바람 오던 편으로 얼마  아니 가서 
우뚝 서며 뒤를  돌아보고 손짓하여 뒤에 오던  꺽정이와 운총이가 함께 앞으로 
나섰다. 
  천왕동이가 말이 없이 건너편  등성이 끝을 가리키니 운총이는 대번에 알아보
고 “바둑이다.” 하고 말하는데 꺽정이는 선뜻  보이지 아니하여 천왕동이의 손
가락 가던 곳을 대중삼아  자세히 바라본 뒤에야 조그만큼씩한 떡갈나무 무더기 
밑에 얼룩덜룩한 물건이 있는 것을 보았다. 표범이다. 이 편에서 세사람이 목 잡
을 공론들을 하는 중에 저편의 표범이 사람들을 보았던지 누웠다 일어서서 몸을 
훌훌 털고 앞뒷발을 버티고  허리를 잘록하게 들어가도록 기지개를 켜고 그리하
고 어슬렁어슬렁 등성이를 타고 내려간다. 천왕동이  남매가 이것을 보고 풍우같
이 등성이  아랫길로 뛰어내려가니 꺽정이도 뒤를  쫓아가려다가 어찌 생각하고 
표범 누웠던 등성이 끝으로 뛰어왔다. 천왕동이  남매가 어느틈에 표범 내려가는 
길을 막질러 가지고 좌우로 갈라서서 올라온다.  표범은 내려가던 걸음을 멈추고 
서서 으르렁 소리를 내더니 사람이 차차 가까이들 오는 것을 보고 성이 나서 색
색거리고 곧 사람에게 덮칠  것같이 앞몸을 솟치더니 번쩍거리는 창날에 덮쳐서 
이롭지 못할 줄로 알았던지 휙 돌쳐서며 등성이  위로 올라 닥쳤다. 꺽정이가 칼
날을 뽑아들고 내려다보고 섰다가  바람같이 올라오는 범의 앞을 막으며 번개같
이 칼로 내리쳤다. 표범은 목덜미를 맞고 그 자리에 거꾸러졌다. 표범의 뒤를 쫓
아오던 남매가 이것을 보고  우뚝우뚝 서더니 천왕동이는 거꾸러진 표범 앞으로 
나가서 몸뚱이와 떨어질 뻔한  대가리를 창끝으로 건드리며 “단번 칼질에 무섭
다.” 하고 혀를 내두르고 운총이는 “저 털가죽은 좁쌀 한 말밖에 못 바꾸겠다.
” 하고 가죽이 많이 상한 것을 말하였다.  꺽정이가 빙그레 웃으며 칼날을 집에 
꼽았다. 
  표범 한마리를 잡은  뒤에는 다시 짐승을 만나지 못하였다. 해가  점심때가 겨
운 뒤에 요기거리로 가지고 왔던  찐감자를 나눠 먹고 차차 내려오는 길에 칠성
늪에를 와서 늪가에서  물 먹고 섰는 사슴 한마리를 만났다.  운총이가 꺽정이를 
돌아보며 “뿌다귀는 앞이  무섭다. 갈데없이 몰리어 사람에게  대드는 뿌다귀는 
얼룩이보다 더 무서운 거다. 우습게 보고 앞으로 가지 말아.” 하고 정답게 일러 
주었다. 천왕동이  남매와 꺽정이가 멀리  돌아서 사슴이 도망갈  길을 삼면으로 
막고 들어오며 악  소리를 지르니 놀란 사슴이 도망하려고 돌쳐섰다.  이편을 보
아도 사람이고 저편을 보아도  사람이라 사람의 틈으로 도망하려고 내닫다가 서
슬있는 창날이 앞을 막는 바람에 다시 늪가로 뛰어갔다.
  사람들이 차차로  동안을 좁히어 들어온다.  사슴은 위험이 가까운  것을 알고 
살려달라는 듯이 ‘매’ 소리를 질렀다. 동안이  어지간히 가까워진 뒤에 중간줄
에 섰던 꺽정이가 별안간에  나는 새같이 사슴에게 뛰어들어가니 사슴은 겁결에 
뒤로 돌쳐서며 궁둥이를 솟치어 모두발질하였다. 사슴의  앞은 늪이라 사슴이 다
시 돌쳐섰다.  뿔로 뜨려고 대가리를 숙이었다.  꺽정이가 대어들며 발길로 한번 
아래서부터 거두니 사슴은  턱을 차이고 대가리를 치어들었다.  꺽정이가 날쌔게 
두손으로 두 뿔의  대 밑동을 움켜쥐었다. 사슴은 뒷다리를 버티고  앞으로 내밀
려고도 하고 대가리를 내흔들려고도 하였다. 그러나 꼼짝 못하였다. 꺽정이의 두 
팔뚝에 힘줄이 불끈 솟았다. 사슴은 앞발로 늪가의 모래를 파제칠 뿐이었다.
  꺽정이가 뛰어갈때 이편에 섰던 운총이는 깜짝  놀랐었다. 사슴의 무서운 것을 
일껏 일러주기까지 하였는데 철모르고 뛰어가는 줄로  알았었다. 창을 들고 한달
음에 쫓아왔다. 저편에  섰던 천왕동이도 달음질하여 들어왔다. 꺽정이가 사슴의 
뿔을 움켜쥔  뒤라 남매가 다같이  어이없어하며 보고 섰었다.  나중에 꺽정이가 
사슴을 끌고 뒷걸음을 치기 시작하였다. 사슴은  앞발을 놀리던 기운까지 없어진 
모양이었다. 눈을 끔적끔적하며 끌려나왔다. 꺽정이가 천왕동이를 돌아보며 사족
을 묶으라고 말하고 사슴을  가로 쓰러뜨리니 천왕동이가 가지고 다니는 숙마바
로 사슴의  앞뒤 다리를 친친 동이었다.  사슴이 움직이지 못하게 된  것을 보고 
꺽정이가 뿔을 놓았다.  운총이는 자기 옷소매로 꺽정이 이마의 땀을  씻어 주었
다. 대가리가 흔들거리는  표범은 앞뒤 다리를 묶고 장대를 꼬이어  천왕동이 남
매가 앞뒤에서 메고 이따금  발버둥이치는 사슴은 꺽정이가 뒷발을 잡아 거꾸로 
둘러메고 다 저녁때 돌아들 왔다.
  7
  운총이가 그날 사냥갔다 돌아오며부터  꺽정이의 곁을 잠시 떠나려고 하지 아
니하였다. 저녁은 운총 어머니가 손님 대접한다고 귀한 조밥을 지었는데, 운총이
가 큰 밥그릇을 골라서 꺽정이  앞에 놓아주고 희한한 귀물 깨를 갖다가 꺽정이 
소금에 섞어 주었다. 꺽정이는 운총의 부니는 것이  맘에 싫지 아니하나 뜻이 있
는 듯이 웃는 운총 어머니도  보기 부끄럽고 본체 만체하는 선생도 보기 부끄러
워서 직수굿하고 앉았는데, 운총이는 남이 부끄러워하는  것도 모르고 부닐고 싶
은대로 부닐었다. 천왕동이는  운총이와 같이 부닐지만 아니할  뿐이지 꺽정이를 
따르는 맘은 운총에게 지지 아니하였다.
  저녁밥이 끝난 뒤에 천왕동이가 그  어머니를 보고 정지 건너편 방에 가서 꺽
정이와 같이 자겠다고 말하여 그  어머니는 미처 대답도 하기 전에 운총이가 “
나도 가서 꺽정이하고 잘 테다.” 하고 나서는  것을 어머니가 “너희 둘이 가면 
좁아 못 잔다.”  하고 말리니 천왕동이는 “그래, 좁지 않게  나만 잘테다.” 하
고 운총이는 “너는 엄마하고 같이  자, 내가 갈테니.” 하고 내가 가랴 네가 가
랴 남매 서로  다투기 시작하였다. “사내는 사내하고 자고 여인은  여인하고 자
야한다.” “같이  자면 자는게지, 사내는  무어 말라비틀어진  거냐.” “그래도 
끼리끼리가 있지 없어.”  “사내고 여인이고 가를라면 사내하고  여인하고 같이 
자야한다. 여기서 엄마가  아비하고 같이 잘때 저기서는 너하고 나하고  같이 잤
지.” “너희들은 갖은 새소리를 다 지저귄다.” 하고 어머니가 나무라니 천왕동
이가 한참 잠자코  있다가 “그러면 이렇게 하자. 대사를 엄마하고  같이 자라고 
하고 너하고 나하고 둘이 같이 가자.” 하고 말하여 운총이가 “그거 좋다.” 하
고 손뼉을  치는데 어머니가 “종없이  지껄이지 마라. 손님들만  가서 주무시게 
해야 한다.” 하고 걱정할  뿐 아니라 꺽정이가 자기 선생 이외  다른 사람과 자
지 않겠다고 말하여 남매가 모두  수그러져서 전날 밤과 같이 손님 두사람만 정
지 건너편 방에 가서 자게 되었다.
  꺽정이가 자리에 누운 뒤에  남매의 요절한 말다툼을 돌쳐 생각하고 낄낄거리
니 대사는 “아무 사심없이  자란 것이 귀하다.” 하고 도리어 칭찬하였다. “저
대로 두면 저것들  남매간에 자식이 생기지 않을까요?” “그럴지도  모르지. 천
지개벽한 뒤 사람이  처음 생겼을 때는 남녀만 알았지. 모자니  남매니 구별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제 두사람은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곧 잠이 들었는데, 삼모
자 방에서 밤이 들도록 말소리가 그치지  아니하였다. 운총이와 천왕동이가 번갈
아가며 사냥할 때 광경을 이야기하고 꺽정이를 칭찬한 뒤에는 그 어머니가 “노
인대사는 하루종일  뫼시고 말씀해보니 참말  도승이더라. 내가 젊었을  때 우리 
고을 천봉산 자복사에도 가서  보았지만, 손님대사 같은 도승은 못 보았다. 그래
서 너의 아버지 젯날 경을 읽어 줍시사고  청해서 허락까지 맡았다. 도승의 인도
를 받는 것이 죽은 사람에게는 큰 복이다.  꺽정이가 도승의 제자니 그렇지 범연
하겠니?” 하고 연해대사를 도승이라고 칭찬하였다.
  도승이라는 말을 모르는  운총이는 “도승이 무엇인가?” 하고 물어서 어머니
가 “도승이란 것은  장차 부처님이 될 중이다.” “무처님은?”  “부처님은 천
왕당의 천왕성제와 같은  영검한 거야.” 하고 대담하고 아비 젯날을  모르는 천
왕동이는 “젯날이 언제인가?”  하고 물어서 어머니가 “열흘 남았다.  아홉 밤
만 자면 된다.”  “오늘 밤까지?” “아니, 오늘밤 말고 말이다.”  하고 대답히
였다. 그 뒤에는 천왕동이가 백두산 길 가르쳐  줄 이야기가 나서 “늙은 대사하
고 같이 갔다 올라면 두 밤은 자야 할라.”
하고 운총이가  말하니 천왕동이가 “가다가  갑갑하거든 나 혼자  오지 무어.” 
하고 말하는 것을 어머니가  “아서라. 잘 뫼시고 갔다 오너라.” 하고 당부하여 
말하였다. 이튿날 식전에  대사와 꺽정이가 천왕동이로 길라잡이를  삼고 등산길
을 떠나는데, 운총이가 꺽정이의 홑중의 적삼을 보고 “상봉은 겨울같이 치웁다.
” 하고 깨우쳐서 꺽정이가 걸머진 양식 바랑 위에는 세 사람이 나눠쓸 만큼 털
가죽 여닐곱 장을 묶어 얹었었다.
  8
  천왕동이는 산짐승이나 다름없이 자라난  까닭에 다리힘이 좋을 뿐 아니라 천
생으로 걸음이 재어서  겨울 해에도 하루에 사백여리 길까지 다니는  터이고, 병
해대사는 근력이 아무리 젊은 사람고 같아도 환갑 넘은 노인이라 자연히 걸음이 
느린 터이니 걸음이 왕청되게 틀리어서 동행하기  어려웠다. 꺽정이는 대사와 동
행하기에 미립이 나다시피 되었건만, 그래도 갑갑할  때가 없지 아니하거든 길들
지 아니한 생마  같은 천왕동이가 갑갑증을 참느라면  조만히 애를 삭이리 것은 
보지 않아도 알 일이다.  천왕동이는 곱길을 걸었다. 뒤에 오려니 하고 앞서가다
가 뒤에서 오지  아니하면 돌쳐와서 만나고 다시 앞서 걸어갔다.  칠성늪 가까이 
와서 천왕동이가 애를  삭이다 못하여 “늪만 구경하고 도루 가자.”  하고 대사
와 꺽정이를 돌아보니 대사는 말이 없고 꺽정이가  웃으면서 “쮜, 앞서 가지 말
고 나하고 같이 찬찬히 선생님의 뒤를 따라가자꾸나.” 하고 말하였다.
  늪가에 와서 한 차례 쉰  다음에 길라잡이 천왕동이도 꺽정이와 같이 뒤로 서
고 대사가 앞을  섰다. 얼마 아니 가서 천왕동이는 군소리하기  시작하고 한동안 
뒤에는 사풍난 것같이 요두전목의 갖은 짓을  다하였다. 꺽정이가 보기에 우습기
도 하고 가엾기도 하여 “선생님, 천왕동이 미치겠습니다.” 하고 말하니 대사는 
돌아보며 웃었다. “너는 도루 집으루 가거라.” “같이 도루 갈 테야?” “우리
는 상봉까지 갔다 갈 테다.” “싫어,  그러면 나도 갈 테야.”대사와 천왕동이의 
문답을 듣고 있던  꺽정이가 “혼자 도루 가지 않는 것만은  무던하다.”하고 천
왕동이를 추어 주고  “이애 네가 선생님을 업고 가자.” 하고  말하여 천왕동이
는 “그래 볼까.” 하고  대사 앞에 와서 등을 돌려대니 대사는  싫단 말 아니하
고 업히었다.  천왕동이가 처음에는 상봉까지  단참에 갈 것같이  내닫더니 불과 
얼마 가지 못하여서 낑낑거리기 시작하고 나중에는 “아이구, 못 가겠다.” 하고 
대사를 내려놓았다. 꺽정이가 이것을 보고 웃으면서  “그러면 내가 선생님을 업
을 터이니 너는 짐을 져라.” 하고 말하여  천왕동이는 감자 바랑과 가죽을 지고 
앞을 서고  꺽정이는 대사를 업고 뒤를  따랐다. 꺽정이가 뒤떨어지기는 하지만, 
천왕동이를 곱길 걸리게까지  떨어지지 아니하였다. 길이 훨씬 빨라졌다. “얼른 
이렇게 했더면 길을 많이 갔겠다.” 하고 천왕동이는 좋아하였다. 
  이래저래 많이 되었건만,  그래도 백리 길을 넘어 걸어서 무룩하게  생긴 무투
리봉에까지 와서 밤을  지내고, 이튿날 아침에 나무 없는 돌바닥을  지나서 백두
산 상봉에를 올라왔다. 바람은 지동치듯 불고 운무는 바다 같았다. 세 사람은 짐
승의 털가죽을 두르고 서로 의지하고 앉았다가 운무가 터진 뒤에 오색이 찬란하
게 비치는 천왕못가에까지  내려가서 보고 회정하게 되었다. 그날 해진  뒤에 일
행이 돌아왔다. 운총 어머니가 “어디까지  갔다오셨습니까?” 하고 대사에게 물
으니 대사는  “상봉에까지 갔다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우리 천왕동이는 
하루 해에도 다니기를  예사로 합니다만, 노인의 걸음으로 어찌 이렇게  속히 다
녀오셨습니까? 아무리 속히 오신다 하여도 길에서 두서너 밤은 지나시려니 생각
하였습니다.” 천왕동이가 그  어머니 말끝에 “두서너 밤이 무어야?  대사 걸음 
같으면 네 밤은 자야 갔다왔을 거야.” 하고  내달으니 그 어머니가 “그러면 모
투리봉쯤 갔다온 게구나.”  하고 자기의 짐작대로 “무투리봉이  상봉이 아닙니
다.”하고 다시 대사를 돌아보았다. “천왕못  물에 손까지 넣어보았습니다.” 거
짓말할 리  없는 대사의 말을 의심하는  듯이 운총이가 “상봉에 참말  간 기냐, 
안 간 기냐?”하고  물으니 천왕동이가 “그럼, 갔지 안 갔어?”  하고 꺽정이를 
가리키며 “이가 대사를 업고 갔다왔어.” 하고  말하여 운총이의 모녀가 일행이 
속히 다녀온 까닭을 알고 운총  어머니는 “험한 산길에 어떻게 노인을 업고 갔
다왔나?” 하고  꺽정이의 얼굴을 다시  치어다보고 운총이는 “너니까.”  하고 
꺽정이를 보고 상글상글하였다.
  9
  운총 어머니는 죽은 남편을 묻던  날부터 매일 한번씩 천왕당 근처에 있는 무
덤에 갔다가 그 길로 천황당에 가서 당집  안팎을 정하게 쓸어넣고 왔었다. 운총 
어머니가 처음에는 자기의 훗길  닦을 생각으로 시작한 것이 생각이 자녀에게까
지 번져나가서 당집을 쓸어놓고는 천왕성제  앞에 나아가서 세 번 절하고 절 한 
번에 축원 한 가지씩  올리게 되었으니, 첫째 절은 죽어 저생에  가서 남편을 다
시 만나게 하여 달라는 것이요, 둘째 절은  천왕동이 수명 장수하게 하여 달라는 
것이요, 또 셋째 절은 사위를 잘 보게 하여 달라는 것이었다. 사 년 동안에 병이 
나서 며칠 빠진 외에는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하루를 거르지 아니하였었다. 운
총이와 천왕동이도 천와당에 가는 것만 알지  무슨 축원하느지를 모르는 터인테, 
의외에 손님 대사가  알아서 운총 어머니를 놀라게 하였었다. 대사가  오던 이튿
날, 운총이 남매가 꺽정이와 같이 사냥을 나간  뒤에 운총 어머니가 대사를 보고 
사위 얻을 것을 걱정하고 또 꺽정이의 인물을 칭찬하였더니 대사가 “정성이 한
데 가겠습니까.” 하고  말하는 것을 못 알아듣는 체하고  “정성이라니요?” 하
고 말한즉 “천왕당에 가서 축원하시는  것이 정성이 아닙니까” 하고  알고 말
하는 데는  기일 수가 없었다. 이리하여  운총 어머니는  대사를  도승으로 알고 
“꺽정이를 사위삼게 되겠습니까?” 하고 물어보았더니 대사는 웃으면서 “천왕
이 지시하셨다면 어련하리까.” 하고 대답하였었다. 그 뒤에 운총 어머니는 천황
당에 가서 천황화상 앞에 절할  때 “꺽정이 같은 사윗감을 지시하여 주셔서 감
축합니다.”하고 지레 사례까지 한 일이 있었다.
  운총 아버지  젯날, 대사가 경 읽어  주기로 한 까닭에 대사와  꺽정이는 칠팔 
일 동안 더 묵게 되었는데 그 묵게 된 것을 운총의 남매가 좋아할 뿐 아니라 꺽
정이 역시 해롭지 않게 생각하였다. 꺽정이는  운총이와 단둘이 놀러다니고 싶은 
생각까지 있었지만,  그림자같이 붙어다니는  천황동이가 있는 까닭으로  둘이만 
만나게 되지 못하다가 천왕동이가  짐승의 털가죽을 가지고 겟날 소용될 물품을 
바꾸러 가게  되어 비로소 틈을 얻게  되었다. 그날 천왕동이가 길을  떠난 뒤에 
운총 어머니가 운총이를 데리고 천왕당에를 나가는데,  꺽정이가 그 뒤를 좇아나
갔다. 운총 어머니가 할 일을 마치고 돌아갈  때 운총이가 “엄마, 먼저 가. 우리
는 놀다  갈께.” 하고 말하니 그  어머니는 “오냐, 조금만  놀다 오너라.”하고 
혼자 숲속으로 들어갔다. 
  꺽정이와 운총이가 천왕당  뜰 위에 와서 나란히 어깨를 겯고  앉았다. 꺽정이
는 무슨 말을 먼저 물어 볼까 생각하였다. “운총아.” 하고 불러놓고 한참 말이 
없으니 운총이는 말을 재촉하는 듯이 꺽정이의  얼굴을 치어다보았다. “너 나하
고 같이 가서 살려냐?”“엄마하고 천황동이는 어떻게  하구?” “다 같이 가지.
” “엄마더러 물어보자.”  “장가들고 시집가는 것 너 아니?”하고  묻고 꺽정
이는 운총의 대답을 기다리다가 대답이 없는 것을  보고 한번 웃었다. “모르지? 
사내가 여인 얻는 것을 장가든다고  하고 여인이 사내 얻어 가는 시집간다고 한
다. 너 내게로  시집오려냐?” “시집가면 무엇하니?”하고 묻는 것이 땅파기다. 
꺽정이은 또 웃었다. “아들도 낳고 딸도 낳지. 너의 엄마가 너의 아비에게 시집
을 온 까닭에 너를 낳고 천왕동이도 난  것이다.”“천왕동이 같은 아들 하나 나
볼까. 그래  내가 시집갈 테다.” 하고  운총이는 어서 시집가게  하라고 졸랐다. 
꺽정이가 운총이를 안아 무릅 위에 올려앉히고 젖가슴에 손을 얹어 보니 어린아
이같이 철이 나지  아니한 운총이지만, 나이가 있어서 젖가슴이 생길  뿐이 아니
라 꼭지까지 제법  생겼었다. “이것이 시집가는 게냐?” 꺽정이는  또다시 한번 
웃었다. “엄마가 천왕동이를 날  때 아비하고 천왕당에 와서 축원했다. 내가 보
았다. 거짓말 아니다. 우리도 천왕당에  들어가서 축원하자.”하고 졸라서 꺽정이
가 졸리다 못하여 당집 안으로 끌리어  들어왔다. 운총이가 꿇어앉으며 꺽정이까
지 꿇어앉히었다. 운총이는  “오늘 꺽정이에게 시집갔으니 천왕동이  같은 아들
을 낳아지이다.”하고 말한  뒤에 입속으로 중얼중얼하는 꺽정이를  돌아보며 목
소리를 크게 하라고 말하였다. 꺽정이가 당집 안에  들어올 때 반은 장난으로 생
각하여 되는 대로 중얼거리다가  홀저에 엄숙한 생각이 나서 “꺽정이는 운총이
를 안해로 정합니다.” 하고  고개를 숙이었다. 운총이는 아들을 말하라고 또 한
번 졸라서 “아들도  일찍 낳기를 바랍니다.” 하고 꺽정이는 조금도  웃지 않고 
아들까지 축원하였다.
  10
  꺽정이가 운총이와 함께 천왕당에서  나와서 운총의 손을 잡고 새삼스럽게 운
총의 얼굴을 들여다보니 맑은 눈 속에 박혀 있는 이쁘장스러운 눈동자에 천왕의 
모양이 비치어 보이는  것 같았다. 이와 같이 사랑스럽고도 거룩한  눈동자는 온
세상을 다 뒤져야 또다시 보기 어려우리라고  꺽정이는 생각하였다. “무어를 들
여다보니?” “아니다.” “아니가  무어야, 들여다보면서.” “안해가 이뻐서.” 
“내가 안해야? 너는 무어냐?” “너는 내 안해고  나는 네 남편이지.” “남편? 
그럼 남편도 이쁘다.”  하고 운총이는 하하 웃었다. “아가야.”  하고 꺽정이가 
웃으면서 운총이를 번쩍 안고 숲속으로 들어갔다.  운총이가 꺽정이와 같이 집으
로 돌아오니 그 어머니는 대사와 마주앉아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운총이는 어머니 옆에 붙어앉고 꺽정이는 선생에게  가까이 앉았다. 운총 어머
니가 “조금 놀다 오랬더니  왜 그렇게 오래 되었니?” 하고 운총이를 돌아보니 
운총이가 서슴지도 않고 대번에 “엄마 나는 시집갔다.” 하고 대답하였다. “시
집을 가다니?”“저애한테로.” 하고 꺽정이를 가리키니, 꺽정이가 말 말라는 뜻
으로 고개를 흔들어  보이었으나, 운총이닌 상글상글 웃으면서 말하였다. “우리
들이 천왕당에  들어가서 아들 낳게  해달라고 축원했다.” 운총  어머니는 비록 
맘으로 바라던 일이지만 하도 어이없어 말이 없고 대사는 귀엽게 여기는 눈으로 
운총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고 꺽정이는 얼굴이 뜨거웠다. “엄마, 그러고 숲속에 
와서.” 하고 운총이의 말이 떨어지자, 꺽정이의 뜨겁던 얼굴은 일시에 모닥불을 
들어붓는 것같이 화끈하는 모양이었다. 그대로 자리에  앉아 있지 못하고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운총  어머니가 “내가 할 말이  있으니 거기 좀 앉아 있어.” 
하고 말하여 꺽정이는 디사 주주물러 앉아서  고개를 숙이었다. 운총이는 여전히 
상글상글하면서 “숲속에 와서  나무에 올라가기 내기했다. 꺽정이도  곧잘 올라
가겠지.”하고 말하여 꺽정이는 비로소 안심이 되는  모양으로 운총이를 보고 눈
을 흘리었다. 운총 어머니가 “이애의 종없는 말로는  알 수가 없으니 자세히 이
야기 좀 해.” 하고 꺽정이를 바라보니 꺽정이는  한참 동안 말이 없이 방바닥만 
내려다보고 앉았다가  고개를 들고 말하였다.  “운총이를 안해로 정했습니다.” 
“정하기만 하면 어떻게 하나?” “어떻게  하다니요?”“대사를 지내야지. 대사
는 어떻게 할 테야?” “대사는 다시 지낼  것 없지요. 천왕 앞에서 굳게 약속했
으니까요” “그래도.” 하고  다시 무슨 말을 하려는 운총 어머니를  대사가 “
여보시오.” 하고  불러가지고 “초례는 훌륭하게  지낸 셈입니다그려. 지금부터 
꺽정이를 사위라고만  하시면 고만입니다.”하고  웃으니 운총 어머니도  따라서 
웃고 말았다.
  운총 어머니가 “우리 새사위가 시장하겠군.” 하고  정지에 가서 쪄놓았던 감
자를 가지고 오니  운총이가 “나도 좀 주어.” 하고 말하는데  “남의 총각하고 
같이 먹던 아이가 남편하고는 같이 못 먹나?  같이 가 먹어라.” 하고 운총 어머
니가 웃어서 꺽정이도  웃으면서 “이리 와.” 하고 운총이를 가까이  오라고 불
렀다. “이번에 운총이는 어떻게 할 터인가?  데리고 갈 터인가?” "이번에는 데
리고 갈 수 없지요.“ 하고 꺽정이가 대사를  돌아보니 대사는 ”이번에는 갈 수 
없습니다.“ 하고 운총 어머니를 바라보며 잘라 말하였다. ”그러면 어떻게 합니
까?“ ”뒤에 보내십시오그려.“  ”천리 타관에 어떻게 보냅니까?“  ”길이 좀 
멀더라도 보내시기에 걱정될  것은 없습니다. 양주 임꺽정이를  찾아가라고 보내
시면 고만 아닙니까? 또 천왕동이  걸음 같으면 천 리라야 이틀 길밖에 더 되지 
아니하니 서로 소식 전하기도 걱정 없지 않습니까?“ ”글쎄요“ 운총 어머니가 
대사와 말하는 동안에 운총이는 꺽정이와 같이 
감자를 먹으면서  꺽정이의 옆구리를 찌르기도 하고  꺽정이의 턱을 치받치기도 
하였다. 정이가 말라고  눈짓하니 운총이는 꺽정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말하였
다. “우리 아까 다 말했지? 엄마하고 다같이 간다고.”
  11
  젯날이 되었다. 아침 뒤에 운총 어머니가 방안을  정하게 치우고 벽 밑으로 신
위를 앉히고 과일 접시 늘어놓은 솔소반을 신위  앞에 놓고 향로, 향합 대신으로 
불 담은 놋탕기와 향 담은  나무 종지를 소반 아래에 놓고 그 앞에는 대사의 경 
읽을 자리를  만들어놓았다. 대사가 자리에  나앉아서 향을 피우고  불경을 외기 
시작하니 운총 어머니는 천왕동이를  데리고 앞에 꿇어 엎드리고 꺽정이와 운총
이는 그 뒤에 꿇어 엎드렸다. 대사가 불경에는  익지 못한 터이라 처음에는 정법
계진언 육자대명왕주 준제진언  같은 것을 외고, 그 다음에 행중에  가지고 왔던 
금강반야바라경을 펴놓고 내리  읽었다. 젯날 증재에는 얼토당토  아니한 경이지
만, 점잖은 대사가 정성스럽게 읽는 까닭으로 모르는  운총 어머니 생각에 경 읽
는 소리가 곧 지하에까지 들릴  것 같고 또 승재공덕으로 운총 아버지가 보살의 
지시를 받아서 곧  인도환생하게 될 것 같았다. 운총 어머니의  눈물을 자아내는 
대사의 경소리가 천왕동이의 갑갑증을 쑤셔냈다. 조금  읽고 말았으면 좋겠는 것
을 자꾸 읽으며, 빨리 읽어치웠으면 좋겠는 것을  느리게 읽으니 갑갑증이 난 것
이다. 천왕동이 생각에는 대사의  경소리가 그의 걸음보다 더 갑갑한 것 같았다. 
대사 앞에 펴놓은 금강경 책장이 한 장 두 장 넘어가는 동안에 천왕동이는 갑갑
증이 쇠어서  속이 상하였다. 뒤에  꿇어앉은 꺽정이와 운총이는  처음에는 서로 
흘깃흘깃 돌아보며 소리없이 웃다가  나중에는 꺽정이가 눈 한짝을 찡긋하면 운
총이는 입술을 비쭉 내밀고, 또 꺽정이가  흉상스럽게 코를 들이마시면 운총이는 
혀를 홰홰 내둘렀다. 이와 같이 둘이 번갈아가며  눈짓, 콧짓, 입짓 갖은 짓을 다 
하노라니 웃음을 잘  집는 꺽정이도 웃음이 터질 뻔하였는데, 운총의  입에서 낄
낄 소리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속상하는  천왕동이가 뒤에서 나오는 낄낄 소리
를 듣고  속이 일층 더 상하여  메어붙이는 막소리로 “웃지 말아.  무엇이 웃으
냐?” 하고 나무라니 그  어머니가 머리를 뒤로 돌이키고 눈을 흘기면서 “이십 
넘은 것이 천왕동이 지각만도 못하단 말이냐!” 하고 운총이를 꾸짖었다. 동생의 
나무람과 어머니의 꾸지람을 함께 받은 운총이가  애성이 나서 눈물을 흘리는데, 
꺽정이가 두 손의 손가락으로 눈  아래를 내리 훑어 보이니 운총이는 입술을 물
고 외면하였다. 대사가 경 읽던 것을 한동안  쉬게 되어 꿇어 엎드렸던 사람들이 
모두 일어 앉았다. 대사가 경을 다시 시작하기  전에 운총 어머니를 보고 “저애
들은 맘대로 나가  놀라고 하시지요.” 하고 권하여 운총이 남매와  꺽정이가 나
중 경 읽을 때는 꿇어 엎드리는 것을 면하였다.  젯날 낮에는 종일 경을 읽고 밤
에는 메 한 그릇과  채소 몇 가지로 제을 지내는데, 꺽저이는  운총의 남매와 같
이 꾸벅꾸벅 절하고 운총 어머니는 일장을 섧게  울었다. 젯날 새벽 운총 어머니
의 꿈에 운총  아버지가 와서 경 읽어 준  것을 치사하고 새사위가 참사한 것을 
기뻐하여 이튿날 식전에 운총 어머니는 꿈 이야기를 하면서 좋아하였다.
  젯날이 지난 뒤에도 대사와 꺽정이는 이삼 일  더 묵었다. 꺽정이는 떠날 생각
이 적은 것을 대사가 “인제 고만 떠나  보자.” 하고 재초갛여 내일이면 떠나기
로 작정이 되었는데,  운총이는 같이 가게 아니한다고 꺽정이에게 골이  나서 변
변히 말을 하지  아니하였다. 꺽정이가 달랠 뿐이 아니라 그  어머니까지 달래도 
운총이는 골이 풀리지 아니하여 “나는 이 다음에 아니 갈테야. 맘대로 해.” 하
고 꺽정이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튿날 식전에  운총 어머니와 천왕동이는 천왕당
까지 전송하는데 운총이는  방안에서 내다보지도 아니하였다. 꺽정이는  맘에 섭
섭하였다. 천왕당에 와서 가는 사람과 보내는 사람이  마주 서서 인사들 하는 중
에 꺽정이가 숲속 길을 돌아보다가 사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을 보고 한달
음에 쫓아왔다.  운총이다. 운총이가 꺽정이의 쫓아오는  것을 보고 와락 덤비어 
목에 매달리며 “나하고  같이 가.” 하고 눈물을 흘리니 꺽정이가  “나중에 엄
마하고 천왕동이하고 같이 오너라. 내가 곧 고향으로  갈 것 같으면 데리고 가지
만 선생님과 같이 여기저기 들러갈  터이니까 여럿이 같이 갈 수야 있니? 이 다
음에 반갑게 만나자.”  운총이가 머리를 꺽정이의 가슴에 대고 말을  듣고 있다
가 “잘 가.” 하고 목에 감겼던 손을  놓으며 돌아서더니 별안간 뛰어가는데 몇
번 꼬꾸라질 뻔하는 것이 꺽정이의 눈에 보이었다.
  12
  병해대사와 꺽정이가 허항령에서  혜산진으로 나와서 갑산, 북청을  지나 함흥
에 와서 오륙 일 우류하고 다시 영흥을 지나 덕원에 와서 회양으로 작로하지 아
니하고 동해변으로 내려오며 통천 총석정과 고성 삼일포를 구경하고 금강산에를 
들어왔다. 금강은 명산이라  곳곳이 경개 절승하여 처음 오는 사람의  눈을 놀래
었다. 대사는 나이  이십 시절에 내와금강을 한번 다 돌아본  까닭으로 큰절이나 
암자에서 노독을 쉬고 꺽정이가 혼자서 구경다닐 때가 많았다. 은선대, 칠보대를 
구경하고 안무재를  넘어서 마하암에 와서  묵을 때, 꺽정이가  혼자서 구경다닐 
때가 많았다.  은선대, 칠보대를 구경하고 안무재를  넘어서 마하암에 와서 묵을 
때, 꺽정이가 비로봉에를  올라 가려고 대사에게 말하니 대사는 전에  올라가 본 
곳이라 “비로봉 절정에 올라가 보면  금강 일만 이천봉이 모두 눈 아래 굽어보
이고 망망한 동해가 눈앞에 내다보이느니라. 한번 시원하지. 그러나 나는 고만두
겠다. 나는 수미암으로 갈 터이니 그리 오너라.” 하고 말하였다. 
  꺽정이가 지로승도 없이 혼자 길을 찾아  나서서 돌서더릿길을 접어들었을 때, 
앞서 가는 중  하나를 보았다. 꺽정이가 말동무가 없어 심심하던  터이라 걸음을 
조금 재게 걸어서 앞선 중을 쫓아왔다. “대사, 어느 절에 있소?” 하고 말을 붙
이니 그 중은 꺽정이의 모양을 위아래로 훑어보고  나서 “먼 곳에서 왔네.” 하
고 대답이  장히 완만스러웠다. “먼 곳은  이름도 없소?” “이름이  없을 리가 
았나. 내가 미처 말을  못했지. 전라도 임피서 왔어.” “참말 멀리 왔구려.” “
멀리 오지 않고야 먼 곳에서 왔달 리가  없지. 총각은 어디서 왔나?” “나는 마
하연서 왔소.” “마하연이 고향은 아니겠지?” “고향은 경기도 양주요.” “총
각도 반천리길이나 왔네그려.” “반천리? 평안도  묘향산에 갔다가 함경도 백두
산을 들어가 보고 지금 나오는 길이니까 삼천  리도 넘어 왔을 것이오.” 꺽정이
의 말에 그  중은 놀라는 듯이 “무어하러 그렇게 멀리  다니나?” 하고 물었다. 
“우리 선생님과 산천  구경 다니오.” “선생님이란 이는 어디  계신가?” “지
금 마하연에 계시오.”  이와 같이 서로 말을 주고받고 하며  십리길이나 올라왔
다. 비로봉 등성마루에  올라섰다. 이편은 비스듬하나 저편은 천장만장의 절벽이
다. 등성마루를 타고 얼마  동안 더 나가서 수삼십 명이 앉을  만한 평평한 곳에 
왔다. 이곳이 비로봉의 절정이다. 하늘에서 내리지르는 바람을 쏘이면서 두 사람
이 같이 전후좌우를 돌아보다가  꺽정이가 선생의 말을 생각하고 “한번 시원하
구나.” 하고 소리 높여 말하니 그 중은  바다 내다보던 눈을 돌이켜서 천봉만학
을 내려다보며 “높은 데 서서 내려다보는 맛이라니! 내가  이왕 중이 된 바에는 
한번 천하 중을 눈아래로 내려다보아야 할 터인데.” 하고 어깨를 으쓱거리었다. 
“대사가 양이 적구려. 이왕 사람으로 난 바에  한번 천하 사람을 눈아래로 내려
다본다고 말 못하고 만만한 중만?” 하고 꺽정이가 소리내어 웃은즉 “천상천하 
유아독존인가.” 하고 그 중도 역시 소리내어 웃었다. 그 중은 허우대가 크고 허
울이 끼끗하고 또 언변이  좋았다. 그 중의 말이 시골 작은  절구석에 엎드려 있
기가 갑갑하여 뛰어나온  길이라 장차 경산 절에  가서 있어볼 작정이라고 하여 
꺽정이는 “서울  삼각산에도 좋은 절이  많지마는 우리 양주에  회암사, 봉선사 
같은 큰절이 있으니 양주로 오구려.” 하고  말하니 “회암사는 서천 아란타사와 
같은 유명한 대찰이고  봉선사는 세조대왕 광릉의 재사이지.  세조대왕은 불교를 
숭봉하던 갸륵한  임금이야.” 하고 그 중은  수다를 부리었다. 꺽정이가 웃음의 
말고 “우리 선생님도 대사와 같은 중이니 대사가 내려다볼 만한가 가보지 아니
하려오?” 하고 물었더니 그 중이  “내려다보든지 치어다보든지 같이 가세나.” 
하고 꺽정이와  동행하여 수미암으로 왔다.  대사는 꺽정이와 수어를  말하고 그 
중의 합장배례하는 것을 본체만체하고  앉았으니 겸손한 대사의 전에 없는 일이
라 꺽정이는 그 중을  데리고 온 까닭으로 맘에 민망하여 “선생님,  먼 곳에 사
는 중이 선생님을 보이러 왔습니다.” 하고 깨우쳐  말하니 대사가 눈을 들어 그 
중을 한번 바라보고 “오, 너냐?” 하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었다.
  13
  “소승은 임피 용천사 우올시다. 안변 석왕사에  와서 있사옵다가 금강산에 들
어온 지 두어 달소수  되었소이다.” 병해대사는 말이 없었다. “스님 말씀을 총
각에게서 듣고 일부러 보이려고 왔소이다.” 병해대사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보
우라는 중이 못 당할 소조를  당하는 듯이 귀밑까지 붉히고 앉았더니 한참 만에 
다시 입을 열었다. “묻자올 말씀이 있소이다. 부처님에 전생에 상불경보살로 재
세하셨을 때, 경멸하는  사람이나 모욕하는 사람들을 한결같이  공경하셨다 하옵
는데 여래로 출세하셔서 인천대중의 찬양을 받으실 때 그 경멸하고 모욕하던 사
람들은 어떻게 되었을 것이옵니까? 아귀도,  축생도에들 빠져서 세존을 우러러뵈
옵지도 못하였을  것이 아니옵니까?” 말은 공손하나  말하는 어취는 지금 나를 
경멸하고 모욕하면 나중에  네가 아귀나 축생이 되리라 하는 말로  들이었다. 대
사가 별안간에 큰소리로 “보우야!” 하고 이름을 부르더니  “네가 법화경 삼천 
번도 읽지 못한 것이  머리를 땅에 대지 못하느냐? 수악청산설월권이란 되지 못
한 글 한 짝이 법화경 대신이냐!” 하고 방할하듯이 말하였다. 보우의 놀라는 모
양이 옆에 사람의 눈에  보이었다. 보우가 놀랄 것이 그 글짝이  자기가 고향 절
에서 뛰어나올 때 방석에 써놓고 온 글짝이었다.  보우는 풀기가 죽은 말로 “스
님께서 임피를 가보신 일이  있습니까?” 하고 묻다가 “보고야만 알까?” 하는 
대사의 말 한마디에  다시 말을 묻지 못하였다. 수미암 중은  고사하고 꺽정이까
지도 처음에는 대사가 심하거니  생각하였다가 대사의 꾸지람에 풀기 죽은 모양
을 보고서는 무슨 숨은 죄악이나 있는 중으로 알고 보우의 얼굴을 한번 다시 보
게 되었었다.
  수미암의 높은 곳에 있는 작은 암자라 방은 큰방 작은방 둘뿐이고, 중은 노장, 
상좌 둘뿐이었다. 그날  밤에 대사는 노장중과 둘이 같이 자고  꺽정이는 상좌와 
보우와 셋이 함께 자게 되었다. 밤이 들어서  모두 곤히 잠들이 들었는데 보우만 
혼자서 잠이 들지  못하였다. 늙은 중에게 물풍스럽게 당하던 광경을  돌이켜 생
각하고 분하게 여기었다. 생각을  이리저리 굴릴수록 분한 생각이 앞을 섰다. 분
이 돋친 끝에 무슨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다.  보우는 그 생각을 버릴고 ‘그까짓 
늙은 놈을 셈에 칠 것도 없지.’ 하고 생각을  돌리다가 ‘셈에 칠 것도 없는 놈
에게 욕을 본  것이 더 분하다.’ 하고  입술을 악물게 되었다. 보우가 소리없이 
일어나서 가만히 밖으로 나왔다.
  이때 스무살께 반달이 서편으로 기울었는데 달빛이 겨울맛이 있어서 쌀쌀하게 
밝았다. 보우가  식칼을 찾아 손에 들고  늙은 중들의 자는 방문을  바시시 열고 
들여다보니 마침 그 방에는 서창이 있어서  달비치 우렷하게 들여비치었다. 살그
머니 방안으로 들어와서 방구석에  붙어서서 내려다보니 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
던 것이 환히 보이게 되었다. 아랫목에서 코를  고는 것은 주인 노장이고 윗목에
서 숨소리도 없이  자는 것이 늙은 객승이어싸ㄷ. 보우는 살금살금  걸어 객승의 
머리맡으로 가서 이곳이  멱줄이거니 생각되는 곳을 식칼로 푹 찔렀다.  늙은 중
은 소리도 지르지 아니하고 또 몸을  꿈질거리지도 아니하였다. ‘이렇게 허무하
게 죽나.’ 하고 보우가 생각할 사이도 없이 옆에서 “이놈!” 하고 일어서는 중
이 있었다. 이것이  병해대사이었다. 대사가 보우를 향하여 한번 손가락질하는데 
보우는 두 손을  치어들고 사시나무 떨듯이 떨었다. 대사가 식칼이  꽂힌 목침을 
집어들고 “나를 따라나오너라.” 하고 앞서서 밖으로  나가니 보우는 목매인 송
아지가 끌리어가듯이 뒤를 따라나왔다. “목침을 사람으로  보는 것이 사람 해칠 
뜻을 먹다니. 어리석은 것이다. 날이 밝기  전에 어디로든지 가거라. 목침은 너를 
주는 것이니 가지고 가되  내가 이 다음에 찾을 날이 있을  터이다.” 하고 대사
는 꽂힌 식칼을 뽑아 버리고 목침을 들고  서서 “꿇어앉아 받아라.” 보우는 꿇
어앉을 생각동 없이 꿇어앉고,  받을 맘도 없이 목침을 받았다. “뒤도 돌아보지 
말고 나가거라.” 하고  대사가 다시 한번 손가락질하니 보우는 무엇에  쫓긴 사
람 같이 허둥지둥  달음질하여 나갔다. 보우가 간 뒤에도 대사는  한참동안 혼자 
서서 서편에 걸린 외로운 달을 치어다보며 무엇을 생각하고 입맛을 다시었다.
  14
  병해대사가 금강산에서  한겨울을 지내게 되어 꺽정이도  대사를 따라 묵었었
다. 눈이 깊이 쌓인  뒤에는 이 암자에서 저 암자에 통래하는  데도 설마를 타고 
다니는데, 위험한 곳에  잘 타고 다니기는 유년 타는 중보다도  꺽정이가 나았었
다. 2년에 걸치어 반년을 넘게 넘어 묵고, 이듬해 늦은 봄에 대사와 꺽정이가 금
강을 떠나 나와서  금성, 김화, 영평을 지나 양주로 돌아왔다.  대사가 양주서 십
여 일 묵은  뒤에서 서울로 올라와서 김덕순과 심의를 찾아보았다.  심의는 갖바
치 친구를 잃은 뒤로 별로 출입이 없이 들어앉았던 터에 대사를 보고 “죽기 전
에 다시 만나네그려. 묘향산에 가서 중 되었단  소식을 듣고 내 근력이 웬만하면 
쫓아가서 만나기라도 했을 터이지만, 그럴 근력이 있어야지. 송도서 작별한 것을 
천고영결로 생각했었네. 백수산에를  올라갔었다니 환진갑 다 지난  늙은이가 어
찌하면 근력이 그렇게 좋은가? 나는 쇠증이 날마다 새로 생기니까 작년이 곧 옛
날이야. 불구인생이 정근이  남아 있어서 죽기 전에 한번 다시  만나기를 은근히 
바랐었네.” 하고 반가워하는데, 대사와 서로 못 만난 지 이삼 년 동안에 근력이 
많이 쇠패하여 보이었다. "인제 어떻게 할 터인가? 다시 서울 있어 볼라는가?" "
중은 절로 가야지요." "절 다 고만두고 내게서  여년을 같이 지내세그려." 대사가 
고개 외치는  것을 보고 “절로 가더라도  묘향산 같은 먼 곳으로는  가지 말게. 
간간이 만나기라도 하게.” “보아  가며 할 터이지만, 묘향에는 다시 가지 아니
할 생각이오.” “그렇게나 해야지  인정이지.” “중이 될 때 인정은 벌써 끊어
버렸소.” “인정은 끊었다니 다시 말할 것이 없고  절은 어느 문밖 절로 정하려
는가?” “남방에를 갔다  온 뒤에 어디로든지 가지요.” “남방이라니  또 어디
를 가?” “북으로 백두를 보았으니까 인제는 남으로  한라를 보러 갈 생각이오.
” “늙은이가 근력만 믿을  것은 아니야. 칠십지년에 천리 원행이 당한 일인가. 
그것도 한 번  말이지, 두 번씩 너무 과하지 아니한가?”  “길에서 객사하는 것
이나 집에서  고종명하는 것이나 죽음은  매일반이지요. 다리에 힘이  있는 동안 
돌아다니는 것도 좋지요. 국내 산천을 두루  밟아보려는 것이 소시적부터 소원이
었는데, 공연히  수십 년 동안 서울  먼지를 먹고 인제 늙바탕에야  소원을 풀게 
되었소.” “인정은  끊어도 소원은 끊지  못하든가.”하고 신의가  허허 웃으니, 
대사가 “끊을 것도 없는 것이 오죽한 소원이오.”하고 역시 웃었다.
  대사가 십여 일 동안 서울서  묵은 뒤에 대단히 섭섭한 모양으로 심의를 작별
하고 또 이   다음 만날 것을  김덕순에게 말하고 다시 양주로 내려왔다. 대사가 
한라산 간다는 말을 듣고  돌이도 말리고 섭섭이도 말리고 금동이까지도 말리었
으나, 대사는 말을  듣지 아니하였다. 꺽정이가 “이번에도 나하고  같이 갑시다.
”하고 동행하기를 청하니 대사는 두말 없이  좋다고 말하는데, 꺽정이의 아버지
가 대사를 보고 “전번에  도깨비에게 장가를 들었다더니 이번에는 또 무엇하러 
따라간다고 주척대노?”하고  꺽정이의 혼인을  타박하여 말하였다.  “혼인이야 
잘했느니, 자네가 며느리를 상면하지 못해서 저런 말을 하지.” “산속에서 노루
나 사슴같이 자란  계집아이가 잘나면 얼마나 잘나겠소. 여기 좋은  혼처가 있는
데 싫다고 나가던 자식이 그런데  가서 아비의 말도 없이 장가드는 것이 폐일언
하고 망할 자식이지요.”  “내가 이번에는 창녕 이판서에게를 다녀올라네.” “
꺽정이도 그 누이는 한번 가보는 것이 좋겠지요.”
  며칠 뒤에 대사와  꺽정이가 또다시 먼 길을 떠나게 되었는데,  꺽정이가 “먼
저 창녕을 다녀서  제주를 가시려오?”하고 물으니 “아니다. 먼저  전라도로 내
려가자. 그러면 제주 가는 좋은 동행을 만날 수가 있다. 제주를 들어갔다 나오는 
길에 지리산을 구경하고 그리고 창녕을 들르자.”하고  노정을 말하여 대사의 정
한 대로 호남대로를 좇아 전라도로 내려갔다.
  15
  양주서 떠난 지 한 보름  가까이 된 때에 대사와 꺽정이는 강진으로 내려가는 
역로에 영암읍을  들르게 되었다. 영암은 장흥,  강진, 해남을 느런히  앞에 놓고 
나주를 등으로 가리고 있는 남방의 요해처라 산천 형세를 살펴볼 만도 하려니와 
그 중의 월출산은 국내의 유수한  명산이라 바쁜 길이 아닌 바에는 한번 걸음을 
아끼지 아니할 곳이다. 대사와 꺽정이가 도갑사  동구에서 선돌도 둘러보고 구정
봉 아래에서 동석도  흔들어보고, 또 바위 구멍으로 빠져서 구정봉  절정에도 올
라보았다.
  대사와 꺽정이가 월출산을 돌아보고 다시 남으로 내려오는 중에 동행 한 사람
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 신수는  점잖아 보이나 몸에 입은 의복이 추레하고 머리
에 갓 대신 퉁노구를 썼었다. 그 사람도  강진으로 가는 모양이라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얼마 동안 동행하던 끝에 꺽정이가  “여보, 머리에 쓴 것이 무어
요?”하고 물으니 그  사람이 “쇠갓이다.”하고 대답은 하면서 묻는  사람을 거
들떠보지도 아니하였다. “쇠갓?  좀 구경합시다.” “구경할 것  없다.” “없긴 
무에 없어?”하고 꺽정이가  날쌔게 대어들어 쇠갓을 벗기니 “총각놈이 버릇이 
없구나.”하고 그 사람이 짚었던 지팡이를 들어  장난조로 꺽정이의 볼기를 후려
쳤다. 꺽정이가 껑청 뛰어  피하며 “나 좀 써봅시다.”하고 퉁노구를 머리에 얹
고 거들거들  앞서 가니 그 사람은  맨상투 바람으로 따라오지 않을  수 없었다. 
“저 총각이 대사의  동행인가?” “그렇소이다.” “대사의 동행이 내  갓을 벗
겨갔으니까 대사의  굴갓을 상투 가림으로  잠깐 빌려 쓰겠네.”하고  그 사람이 
대사의 굴갓을 빼앗아  쓰니 구경은 대사가 중대가리 바람이 되고  말았다. 장난 
같은 일이 인사 대신이 되어  대사와 꺽정이는 그 사람과 서로 이야기하며 동행
하게 되었다.  그 사람도 제주를 구경가는  사람인데, 제주길이 두번째라 제주의 
산천경개와 인품 풍속을 소상히 이야기하였다. 꺽정이가 "제주를 그렇게 잘 아시
면 또 무어하러 가시나요?"하고  물으니 "잘 아는 곳은 다시 가지 않는  법이냐? 
너는 이웃 동리에도 두번  가지 아니하겠구나." "제주와 이웃 동리가 같은가요?" 
"서해 건너편에 중원이 있고 동해 속에  왜국이 있고, 또 오랑캐 땅이 북편에 있
는 것을 생각해 보아라.  제주가 이웃 동리 폭이나 되겠나."하고 그 사람이 꺽정
이의 소견을 웃어서 다시 말하지 못하였다. 
  날이 점심때가 된 때에 그 사람이 어느 냇가에 와 앉아서 머리에 썼던 퉁노구
를 벗어 돌로  괴어 놓고 허리에 찼던 양식  전대에서 쌀을 꺼내어 밥을 안치었
다. 그 사람이 밥을  두 번 지어 대사와 꺽정이까지 요기시킨  뒤에 퉁노구의 안
팎을 닦아 다시  머리에 쓰니 훌륭한 쇠갓이라, 꺽정이가 “세상에  편리한 갓도 
다 많소.”하고 빈정거리듯이 말하니  “이놈!”하고 그 사람은 꺽정이를 돌아보
며 웃었다.  그 사람이 제주 왕래에  동행할 것을 허락하여 대사와  꺽정이는 그 
사람을 따라가기로 작정되었다.
  세 사람이  강진에 와서 배를 잡아타고  완도를 나왔다. 제주 다니는  어선 한 
척을 얻은 뒤에 그 사람이 큰 두룽박 네 개를 얻어다가 배 네 귀에 매어달고 제
주를 향하여 배를  띄웠다. 제주 수로가 멀기도 하거니와 풍랑이  험하여서 복선
되기 쉽건마는, 세  사람의 탄 배는 두룽박  까닭으로 복선될 염려가 없었다. 배 
속에서 몇 밤을 지내고  어느 날 아침에 조천관 포구에 배를  대게 되었다. 대사
와 꺽정이가 제주에 내린  뒤에도 그 사람이 하자는 대로 따라  하였다. 그 사람
이 대정을 간다면 따라가고 그 사람이 한라산에  오른다면 따라 올랐다. 제주 와
서 달포 묵는 동안에 꺽정이의 맘에 드는 구경거리는 한라산 백록담보다도 생마 
잡는 것이었다. 꺽정이가 말 타는 법을 지성스럽게  물어 배우고 또 계제만 있으
면 말을 얻어 타고 달리어 보았다.
  16
  대사와 꺽정이가 쇠갓 동행과 함께 제주를  떠나서 강진으로 돌아왔다. 대사와 
꺽정이는 장흥으로 작로하려는데,  그 동행은 해남 한덤을 간다고 하여  달포 동
행이 동서로 갈리게 되었다. 동행하는 동안에 성명을  말한 일이 없던 그 사람이 
서로 작별할 때에 “나는 이지함이란 사람이다.”하고 성명을 알리어 주었다. “
이씨가 이상한 사람이에요.” “그 사람이 예사 선비가 아니다. 지모방략이 삼군
의 대장이 될 만한 사람이다. 그러나 일평생 크게 쓰이지는 못할 것이다.” “그 
사람이 양반인 모양인데  어째서 쓰이지 못할까요?” “양반이라고 저마다 쓰이
게 되나, 때를 못 만나면 할 수 없지.” “때를 못 만나다니요? 양반이면 쥐새끼
만 못한 것도 잘 쓰이는 때에  때를 잘 못 만나면 다시 만날 때가 어디 있소?” 
“ 그 사람의 팔자도 있지.” “팔자가 아니라  아마 양반이라도 사람이 쓸 만하
면 세상에서 써주지 않는 게지요.” “너의 말을  둘러 들으면 세상에 쓰이는 양
반은 대개가 못쓸 사람이겠구나.” “대개뿐 아니라  일개로 못쓸 것들이라고 해
도 좋지요.” “무엇을 가지고 쓸 사람, 못쓸 사람을 구별하는지 네 말은 모르겠
다만, 이씨 같은 인재가 쓰이지 못하고 그대로 늙는 것은 아깝다고 하겠지.” “
이씨는 양반이니까 일평생 천대만 받고 늙는  인재와는 다르지요.” 선생 제자가 
이와 같은 문답을 하며 길을 걸었다. 대사와  꺽정이가 장흥을 지나고 보성을 지
나고 순천 송광사를  들르고 구례 화엄사를 들른 뒤에 지리산에를  들어왔다. 지
리산은 두류산이니 영남, 호남 어름에 있는 큰 산이라, 서편 반야봉에서 동편 천
왕봉까지 상거가 백여 리요, 산속에 있는 평전이 동서로 육십 리, 남북으로 육십 
리요, 쌍계사,  의신사, 신흥사와 같은 높고  낮은 암자가 이곳저곳에  있어서 그 
수를 이루 다 헤일 수가 없다.
  대사와 꺽정이가 지리산을 대강 둘러보고 섬진강  줄기를 따라서 화개, 악양의 
좋은 경치를 구경하고  하동으로 나와서 다시 진주, 의령을 지나  창녕에 도착하
였다. 이판서는 근  칠십한 노인이나 근력이 엄엄하고 이판서 부인은  나이 오십
이 넘었으나 기부가 좋아서 늙은 티가 많이  않고, 함동이가 삼십여 세의 어른이 
되어서 집안  살림을 총찰하였다. 이판서는  특별히 대사를 보고  반기고 이판서 
부인은 더욱이 꺽정이를  보고 눈물을 지었다. “너의 아버지와 같이  자라던 것
이 어제 같은데  네가 나서 벌써 헌헌장부가 되었구나.” “너의  아버지는 한번 
와보지도 아니하니 야속한  사람이다.” “너의 누이는 잘 있니?  이름이 무어든
가?” “김덕순이를 만나 보았니?” 이판서 부인이  수다한 사람이 아니건만, 한
번 보고자 하던  꺽정이를 대하여서는 자연히 말이 많았다. 꺽정이의  면목이 너
글너글한 것을 “아버지보다도  더 잘생겼다.”하고 칭찬도 하고  꺽정이의 말씨
가 거슬거슬한 것을  “아버지를 닮았구나.”하고 웃기도 하였다. 이판서 부인이 
다정하고 이판서가 양반 티를 부리지 아니하여 내외는 다 꺽정이의 비위에 맞았
으나, 그 아들 이서방은 꺽정이에게 형님 소리  듣는 것을 창피하게 여기는 모양
이라 꺽정이가 화가 나서 주먹다짐으로 버릇 가르치고 싶은 맘까지 있었으나 이
판서 내외의 면목을 보아서 참았다. 이서방 외에  꺽정이의 화증 나는 사람이 또 
하나 있었으니. 그 사람은  양반도 아닌 것이 양반 이상으로 주제넘었다. 꺽정이
에게 또렷하게 해라 할 뿐 아니라 대사에게도  말공대가 별로 없었다. 그 사람이 
꺽정이를 보고 “내가 너의 외조부의 친구다.”  “너의 외조부가 이름은 선이지
만 작대기란  별명으로 행세하였었다.” “너의  아버지 장가들 때  내가 중매를 
들었다.” “너의 어머니 이름이 애기었었다.  얼굴이 이뻤었지.”하고 묻지도 않
은 말을  지껄이는데 꺽정이가 듣기 싫어서  “그러니 어떻단 말이오?”하고 그 
사람의 말을 막았다. 꺽정이는 그 사람도 한번 쥐어질러 주고 싶었으나, 병이 들
어 운신도 잘 못하는 늙은  것이 앉아서 입만 나불나불하는 것을 손대기가 어려
워서 역시 참았다.  김삭불이가 늙게 의지가지가 없이 되어 이판서  집에 있어서 
이서방이 민주고주를 대는 중이었다. 꺽정이가 이판서  집에서 한동안 묵을 것이
지만, 이서방과 김노인의 꼴이 보기 싫어서 대사에게 떠나자고 재촉하였다.
  17
  꺽정이가 떠나려고 하는 것을 이판서 부인이 지성으로 만류할 뿐 아니라 대사
까지도 “모처럼 온 길이니 더 묵어  가자꾸나.”하고 말하여 꺽정이는 주저앉아 
다시 며칠 동안  지내게 되었었다. 그때가 처서 전이라 참외가  끝물일망정 아직 
먹을 만하였다.
  어느 날 해가  설핏할 때에 꺽정이가 이판서집  사람들과 같이 참외를 먹으러 
나섰는데, 맛좋은  참외를 취하여  곰보외막이라 일컫는 참외막을  찾아오느라고 
이판서집에서 오리길을  넘어 나왔다. 외막  주인은 얼굴이 얽었고  참외는 맛이 
좋았다. 막  위에들 올라앉아 참외를 먹는  중에 참외막 건너편 현풍  가는 길로 
행차 하나가 지나가는데, 맞잡이 보교 한 채가  앞을 서고 초립동이를 태운 방울
나귀가 뒤를 따랐다. 보교는  내행이 탄 것 같고 초립동이는 배행인 모양이었다. 
하인은 보교의 교군꾼과 나귀의 견마잡이까지 모두 합쳐서 오륙 명밖에 더 되지 
아니하였다. 행차 가는  맞은편에서 키대 큰 중놈 하나가 길  복판으로 걸어오다
가 보교와 마주치더니 길을 비키라거니  아니 비키거니 하여 말썽이 되는 것 같
았다. 하인들이 중놈을 떠다박지르는 모양이나 중놈은  까댁 아니하고 선 자리에 
서 있었다. 골이 난  중놈이 앞채 교군꾼의 등을 쳤는지 보교를  메고 섰던 교군
꾼이 채를  낀 채로 주저앉으며 보교  속에 앉은 사람이 앞으로  쏟아져 나왔다. 
고꾸라지는 소복한 부인이  주저앉은 교군꾼의 등에 업히려는  것같이 보이었다. 
곰보 주인이 참외 멍구럭을 엇메고  참외막 위로 올라오며 “어느 집 내행이 창
피한 꼴을 당하네.”하고  혼자 말하는 것을 듣고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이판서
집 사람들이 “중놈이 괘씸하군.” “어느  절 중놈인고?”하고 서로 돌아보는데 
곰보 주인이  “연화사 중망나닌가 보오.”하고  말하는 것이 그  중놈의 본색을 
짐작하는 것 같았다. “중망나니라니?” “수십 일 전에  중놈 하나가 외막에 와
서 외를 따서 달라는데 목자가  불량하여 보이기에 공먹고 갈까 의심이 나서 외 
바꿀 곡식을 가지고 왔거든  먼저 내놓으라고 말했더니 곡식? 하고 뇌면서 대어
들기에 막아보려고 떠밀었소그려.  바윗덩이를 떠미는 것 같습디다. ‘다 떠밀었
니?’하고 중놈이 내 두  다리를 움켜쥐고 꺼꾸로 치어드는데 오장이 다 쏟아질 
것 같읍디다. 전정이 급해서  외를 따서 바치마고 항복했지요. 그랬더니 진작 그
럴 것이지 하고 놓아줍디다. 나중에 들으니까 몇  달 전부터 비슬산 연화사에 와
서 있는  중놈인데, 천하에 망나니라 절에서도  두통을 앓는답디다. 중놈이 그날 
외맛을 보고 가더니  그 뒤로는 이십리길에 사흘돌이로  와서 외를 공먹고 가지
요. 먹고 갈  뿐인가요? 상좌놈 준다고 가지고  가기까지 하지요. 심정이 사나워 
죽을 지경이지만 참지 않고 어떻게 할 수가  있어야지요. 오늘도 외 먹으러 오던 
길인가 보오.” “그렇게 행패하는 중놈을  버릇을 못 가르쳐?”“버릇을 가르치
려다가 누가 혼날라구요. 힘이 천하  장사요. 나를 꺼꾸로 들 때 새꽤기 하나 들 
듯합디다. 충청도 어느 절에  샘물이 있어서 그 샘물을 먹으면 힘이 난다는구려. 
그래서 그 절에는 약
한 중이 없다는데 망나니놈이 어릴  때부터 상좌 노릇하면서 그 샘물을 먹고 자
란 까닭에 그 절에서도 장사로 유명했답디다.”  이판서집 사람들이 곰보 주인의 
이야기를 듣고서  “그 샘물이나 먹으러 갈까?”  “힘난 뒤에 참외를 공먹으로 
오려나?” “곰보는 참외를 공먹히다 말겠네.” 하고 서로  웃는 중에 한 사람이 
“저것 보게.”  하고 말하여 여러 사람이  일시에 건너편을 바라보았다. 중놈이 
보교 뒤채를 꼲아들도  길에서 수십 간 떨어져 있는 나무  숲속으로 들어가는데, 
초립동이는 나귀 등에 엎드려 있고  하인은 모두 도망질을 친 모양인지 한 사람
도 눈에 보이질 아니하였다.  “보교 속에 부인을 담아가지고 가는 것일세.” “
저 죽일 놈이  백주 노상에서 부녀를 겁탈하네그려.” “저놈을 어떻게  하면 좋
단 말인가.?” 하고 여러 사람이 지껄이기만 하는데, 이때껏 말참견 아니하던 꺽
정이가 “어떻게 하는 것은 다 무어요. 중놈 버릇을 가르쳐야지.” 하고 벌떡 일
어선즉, 곰보 주인이 깜짝 놀라면서 “총각  가지 말게, 목숨이 위태하니.” 하고 
붙드는 것을 꺽정이가 손으로 뿌리치고 참외막 위에서 껑청 뛰어내려갔다.
  그 중놈이  소복한 부인을 보교에 담아기지고  숲속으로 들어가서 몸부림하는 
부인을 갓난아이 드다루듯 하였다. 치마·속곳 할  것없이 부인의 아래옷을 갈가
리 찢엇서 빨간 몸을  만들어놓았다. 찢은 옷으로 줄을 삼아 부인의  두 팔을 벌
리어 나무에 동여매고 발버둥치는 것을 막으려고 두 다리까지 각각 좌우 나무에 
동여맸다. 부인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리고 입귀에는 피가 흐르고 눈을  감고 뜨
지 못하였다. 꺽정이가  뛰어오는 길로 초립동이에게 와서 보니 중놈이  양편 동
자를 휘어붙여서 초립동이는 두발을 빼지 못하게  되었었다. 꺽정이가 그 동자를 
펴놓은 뒤에 초립동이를 안아 내리었다. 초립동이를  주주물러 앉아서 “우리 어
머니를 중놈이...” 하고 숲을  가르키며 눈물을 흘리는데, 꺽정이가 “어서 일어
서 같이 가.”  하고 치켜들려고 하니 초립동이는 어진혼이 나가서  몸을 가누지 
못하는데다가 발에 힘이 없어서 디디고 서지  못하였다. “이 따위로 지체하다가
는 대부인이 봉욕하겠소.  뒤에 오. 나 먼저 갈 것이니.”  하고 꺽정이가 한달음
에 뛰어와서 숲속에 들어서니 눈앞에 나타나는 광경이 해참스러워 볼 수가 없었
다. 꺽정이는  우뚝 발을 멈추고 나서  “중놈아!.” 하고 소리를 지른즉  중놈은 
저리 가라는 뜻으로 손을  내저었다. “개 같은 놈, 이리 나오너라!”  “망한 놈
의 자식이!” 하고  중놈이 눈을 부라리더니 골풀이할 사이 없어서  골을참는 모
양으로 “총각놈  수 생기게 해줄 께니  이따 오너라.” 하고 농치고  나서 다시 
괴춤에 손을 대었다. 꺽정이가 뛰어들어가서 중놈의  적삼 뒷고대를 쥐고 잡아당
기니 중놈은 윗도리가  뒤로 젖혀지려다 말고 적삼 등판이 미어져  나갔다. 짐승 
같은 중놈은 욕심 불길이 타올라서  눈알이 뒤집힌 중에 훼방을 만나서 눈에 보
이는 것이 없이 분이 났다. 응 소리를 지르며 돌쳐섰다. 뒤로 물러선 훼방꾼에게
로 몇 걸음 쫓아나와서 단 한번에 박살내려고 무쇠같은 주먹으로 사정없이 후려
쳤다. 꺽정이가 슬쩍 손을 내밀어 팔목을 받아 지니 그 주먹이 소용없이 되었다. 
중놈이 팔을 뿌리치려다 잘 되지  않는 것을 보고 발길로 불두덩을 내지르나 꺽
정이가 쥐었던 팔목을  놓으며 나오는 발목을 거두어 잡아 번쩍  위로 치어들자, 
중놈이 벌렁  뒤로 자빠졌다. 이것이 말하자니  길지 순식간에 일이었다. 중놈이 
땅 위에 자빠져서 꺽정이를 치어다보고 “총각, 장사일세.” 칭찬하고 그 다음에 
“총각, 그러면 내가 숲  밖에 나가 있다가 나중에 들어오세.” 말하고 흉상스럽
게 웃는 것을 꺽정이가 발로  직신거리며 “어서 일어서라!” 하고 꾸짖었다. 꺽
정이가 중놈을 앞세우고 숲 밖에를 나오니 초립동이가 발을 질질 끌고 걸어오는 
중이었다. “어서 들어가서 대부인을 풀어놓우.” 하고 꺽정이는 중놈의 등을 밀
어 가지고 길가에  나와서 주저앉힌 뒤에 “여보, 여보” 하고  큰소리로 하인들
을 불렀다. 하인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고 참외막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이편으로 
건너왔다. 중놈이 침먹은 지네같이 꿈쩍 못하고 앉았는  것을 보고 외막 주인 곰
보는 꺽정이를 도술하는  사람으로 생각했는지 “장사도 도술  앞에는 소용없네.
” 하고 이  사람 저 사람을 돌아보았다. 꺽정이가 하인들을  숲속으로 보내더니 
얼마 동안 아니 지나서 보교  뒤에 웃옷을 벗은 초립동이가 하인에게 부축을 받
고 따라왔다. 초립동이의 웃옷은 그 어머니의 빨간 몸을 가리게 한 모양이다. 교
보꾼이 보교를 내려놓고 바람에 열리지 않게 앞문을 단단히 동여매는 중에 “이
애, 은인의  성함을 여쭈어 보아라.” 하는  가는 목소리가 보교  속에서 나오며, 
초립동이가 꺽정이 앞에와서  양수거지를 하고 서서 “성함이 누구십니까?” 하
고 물었다. “성함 없소.”  하고 꺽정이가 껄껄 웃으니 “그러시지 말고 가르쳐 
주십시오.” “성함은 없으니 총각 백정으로나 알고 가시오.” 하고 꺽정이가 그 
하인들을 향하여 바삐 떠나게 하라고 재촉하였다.  하인들이 놀란 정신을 수습하
고 길 갈 차림을 차리는  중에 꺽정이가 중놈을 내려다보며 “조그만 힘을 믿고 
행패하고 다니다니우스운 놈이다. 처음에는  네가 세상에서 천대받는 중놈이기에 
천대받는 것으로 보아 용서하려 하였더니 하는  짓이 용서하지 못하겠다. 계집이 
생각나면 어디가서 하나 업어가지, 백주 노상에서 겁탈이 무어야. 개 같은 놈 같
으니!” 하고 꾸짖고 중놈의 팔회목을 두 손에 갈라쥐고  한번 힘을 쓰니 중놈이 
상을 흉악하게 찡그리며 뼈 부서지는 소리가 자끈  하고 났다. “너의 목숨 붙여 
주는 것만 다행으로 알고 어서 빨리 가거라!” 하고  꺽정이가 중놈을 쫓은 뒤에 
이판서집 사람들을 보고  돌아갈 것을 말하니 옆에  섰던 곰보가 무서운 총각을 
대접할 생각이 나서 말까지 공대하여  “아직 늦지 아니하니 외나 몇 개더 잡숫
고 가십시요.” 하고 다시 움막으로 가자고 청하는 것을 “
다음날 다시 오지요.” 하고 꺽정이가 머리를 가로 흔들었다.
  이판서집 사람 하나가 내행 따라온  하인 한 사람과 무슨 이야기를 것을 꺽정
이가 보고 “무슨  이야기요, 고만 갑시다.” 하고 재촉하였다.  꺽정이와 이판서
집 사람들이 얼마 아니  와서 그 내행에게 길을 비켜 주게  되었다. 그 초립동이
가 홀로 된 어머니를 뫼시고  창녕 외가에를 왔다가 현풍 자기 집으로 돌아가던 
길인데, 외가가 가까운 까닭에  모자간에 의론하고 길을 돌치게 된 것이다. 초립
동이가 꺽정이를 보고 나귀에서 내려 걸어오는 것을 꺽정이가 “어서 타고 가시
오.” 하고 번쩍 안아서 나귀 등에 올려앉히니 초립동이가 “미안합니다. 그러면 
앞서 가겠습니다.” 하고  인사하는데 꺽정이는 인사 대답으로  고개를 끄덕이었
다. “헐이야.” “난간이다.” “바닥이  험허고.” “오냐.” 앞채잡이는 주워섬
기고 뒤채잡이는 대답하며 보교가 거침없이 나가니 따라가는 나귀가 초싹초싹하
며 바삐 걸어갔다. 그날  밤에 이판서가 대사와 같이 이야기하고 앉았는데, 부리
는 아이가 방으로  들어와서 “성참판댁 서방님이 오셨습니다.”  하고 연통하니 
이판서가 “그 사람이  밤저녁에 무슨 일일꼬?” 하고 혼잣말하였다.  성씨의 집
은 이판서 집에서  그다지 멀지 아니하나 세시  인사와 애경상문 이외에는 별로 
상종이 없는 터이다.  이판서는 연로한 재상이라고 어른으로 대접하지마는, 이판
서의 아들은 절름발이 양반이라고  친구로 사귀지 아니하는 까닭에 이판서의 아
글과 노소 연기나 되는 성씨는 고사하고 성씨 일문 중에 나이 젊은 사람들도 대
개는 서로 서어하게  지내는 것이었다. 이판서가 성씨가 밤에 찾아온  것을 괴상
히 생각하며  “들어오시라고 해라.” 하고 아이에게  말을 일렀다. 아이가 나간 
뒤 조금 있다가 나이 사십여  세 된 사람이 들어와서 이판서에게 절하고 꿇어앉
았다. “무슨 일이  있어 밤에 찾았나?” “밤에 와서 보입는  것이 황송하온 일
이나 시생의 자친이 밤에라도  가라고 말씀하셔서 황송한 것을 무릅쓰고 왔습니
다.” “자당이 가라시어? 대체 무슨 일인가?” “다른 일이 아니올시다. 시생의 
매부가 현풍 사람이올시다. 매부는 연전에 작고하고 생질 하나가 있습니다.” “
그래서” “향일 자친  수신에 누이와 생질 모자가  와서 묵다가 오늘 회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길에서  흉한 중놈 하나를 만나서...” 하고 성씨가 
한번 대사를 바라보고  말을 이었다. “큰 봉욕을 하였는데 대감댁에  있는 사람
이 구하여 주었답니다.” 이판서가 꺽정이의 한 일을  들어 알고 있는 터이라 속
으로 ‘꺽정이를 찾아왔구나’ 하고  생각하며 “자네 매씨가 그런 일을 당하셨
더란 말인가? 내 집에 있는 사람인 것은 어떻게 알았나?” “하인이 물어보았더
랍니다.” “나는  몰랐었네.” “그래서 시생의 자친이  곧 대감께 가서 보입고 
말씀이라도 여쭙고 오라고  하셔서 밤에 왔습니다.” “내 집에 잠깐  다니러 온 
총각아이가 기운꼴이나 쓰는 모양일세. 그  총각아이를 불러줄까?” “총각이 백
정이랍지요?” “쇠백정의 아들이야.”  “불러볼 것은 없습니다. 대감께서 말을 
이르셔서 한번 시생의 집에 보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말은 일러봄세만 기특
하단 칭찬 받으러  가려고 할는지 모르겠네.” “아무쪼록 보내주십시오. 시생의 
자친이 친히 불러보시기까지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내일 하인을 보내겠습니다.
” 하고 다른  말을 수어하다가 성씨가 돌아갔다. 이판서가 대사를  바라보고 한
번 웃고 꺽정이를 부르라고 하여  꺽정이가 윗간에 와서 앉은 뒤에 말을 완곡하
게 “너의 구원한 부인이 성씨집  딸인데 그 집에서 너를 고맙게 생각하여 한번 
청하러 온다더라.”  하고 말하니 꺽정이가  “청해다 무엇하게요? 하정배  받고 
싶어서요?” 하고 입을 실쭉하고 앉았었다.
  꺽정이가 이판서 집에서 묵는  동안에 성씨 집안에서 꺽정이에게 버선을 보내
고 벌 맞는 옷을 보내고 또 음식까지 보내서 이판서 부인이 먼저 받아놓고 꺽정
이에게 말한즉, 꺽정이는 “아주머니  그건 왜 받으시오?” 하고 사설하였다. “
주는 것은 받아도 좋지 아니하냐?  굳이 안 받을 것이 무엇이냐?” 하고 이판서 
부인이 말하다가 나중에는  “주는 것을 굳이 안 받으면 그것도  욕거리다.” 하
고 타일렀다. 꺽정이의 한  일을 한 사람 두 사람이 차차로  알게 되어서 “백정
놈 장사가  이판서집에 와서 있다.” “장사  백정놈이 이판서 부인의 결찌다.” 
“정경부인이 나고 천하 장사가  나니 이판서의 처가는 백정놈이 집이라고 우습
게 볼 것이 아니다.” “백정놈의 집이라도 묏장이나  얻어 쓰면 사람이 나는 것
이다.” 이판서  부인까지 들추어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러한 말이 이판서의 
아들의 귀에 들어와서 그는 창피한 생각으로 어머니를 보고 “공연히 꺽정이 때
문에 어머니 말까지  남의 입에 오르내리는구려.” 하고 불쾌한 빛을  얼굴에 나
타내니 그  어머니가 “그러면 어떻단 말이냐?”  하고 나무라눈 기색을 보이었
다. “백정이라고  놈이니 년이니하고 말하는  것이 무엇이 좋아요?”  “백정을 
백정이라는 것은 할 수 없지만  놈이니 년이니 하는 것은 입버릇들이 사나워 그
러하지.” “사람이 창피해 못살겠소.” 옆에 있던 꺽정이가 “잘하나 못하나 욕
만 먹는 사람을 생각해  보시오. 백정도 사람이지요.” 하며 탄하고 나서니 몇십 
년 동안에 속이 썩고 썩은 이판서 부인이 “창피하다고 말할 것도 없고 탄할 것
도 없다.” 하고 가늘게  한숨을 지었다. 이판서가 대사와 꺽정이를 생량한 뒤에 
가라고 붙들어서 대사는  그렇게 할 뜻을 보이었으나, 꺽정이는 그  전에 떠나가
겠다고 고집하여 꺽정이는 먼저 가고 대사는 추후하여 가기로 작정되었다.
  꺽정이가 떠나간  뒤에 대사는 다시  달포를 넘어 묵다가  떠나는데, 이판서가 
“우리가 다시 만나기를 기필할  수 있나. 저승에 가서나 만나보세.” 하고 늙은 
눈을 씻고 다시 한번 바라보니 대사는 “저생에 가서 만날 것인들 기필할 수 있
습니까.” 하고 호젓하게 웃었다. 대사가 새재를 넘어서 연풍·괴산을 지나 무기
에 왔을 때, 중 동행  하나를 만났다. “스님, 어느 절에 계시오?.” “죽산 칠장
사에 있소.” “칠장사요?  제가 칠장에 있는 중인데요.”  하고 그 중이 괴상히 
생각하니 대사는 점잖은  태도로 “칠장에 가 있어 보려고 생각하오.”  하고 빙
그레 웃었다. “지금 칠장으로 가시는 길인가요?”  “글쎄, 그럴까 보오.” 하고 
대사는 남의 일에  말하듯이 대답하였다. 대사가 그 중과 동행하여  죽산 칠장사
에 찾아왔다.  대사가 곧 법당에 올라앉아서  그 절에 있는 중들을  보고 “내가 
이 절에 있으러 왔으니 넓고 깨끗한 방을  하나 치워라.” 하고 자기 상좌들에게 
말하듯 하니 중들이  “미친 사람이로군.” “내쫓아 버립시다.” 하고 수군수군
하며 서로 돌아보는 중에 대사가  벌떡 일어서며 “너희들 모두 뜰 아래로 내려
가거라!” 하고 손가락질 한번에 여러 중들은 누가 내모는  것같이 정신 잃고 뜰 
아래로 몰려내려왔다. “거기들  꿇어앉아라.” 여러 중들의 무릎이 절로 꿇리어
졌다. “내가 이 절에 있으러 왔다면 그만이지,  두말이 무엇이냐!” 여러 중들의 
고개가 또 절로  수그러졌다. 얼마 동안 지난 뒤에 “처음이라  용서하는 것이니 
다시 올라들 오너라.” 여러 중들이 일어설 때  법당 마루에 나선 대사의 모양을 
치어다 보니 머리에는 금광이 둘려 있고, 몸매는  서기가 어리어 있는 것같이 보
이었다. “생불이 강림하신 것을  눈이 없어 몰랐습니다.” 하고 여러 중들이 나
란히 합장 배례를 드리었다. 이리하여 병해대사는  칠장사에서 생불 대접을 받고 
지내게 되었다. (3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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