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꺽정 양반편 7

3학년2반 | 2022.01.04 07:39:06 댓글: 0 조회: 479 추천: 0
분류연재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39480
  제 7장 왜변
  1
  김덕순이가 병해대사와 같이 서울서  떠나서 죽산 칠장사로 갈 때에 꺽정이와 
갈라는 것을 섭섭하게 생각하여  “이왕 나선 길이니 칠장까지 같이 가자”하고 
말한즉 꺽정이가 “집에서 나올  때 말을 아니해서 병신 아버지가 기다리라구요
”하고 따라가려고 하지 아니하다가  “자네가 갈 생각만 있으면 지금이라도 집
에 가서 말하고 오게나. 자네 걸음에 반  나절이면 넉넉히 다녀올 것 아닌가”하
고 대사까지 같이 가면 좋을  뜻으로 권하여 꺽정이는 마침내 양주를 갔다 와서 
덕순이와 같이 대사를 따라 칠장사로 놀러 오게 되었다.
  이때 칠장사에 허담이란 중이 있었는데  기운꼴을 쓸 뿐이 아니라 말을 잘 알
고 잘 다루는 까닭에 아무리  사나운 생마라도 허담의 손에 걸리면 길들지 아니
하는 것이  없었다. 허담이 말을 잘  아느니만큼 말을 좋아하여 언제든지  말 한 
필을 먹이는데 허담은  말을 자녀와 같이 사랑하였다. 꺽정이 칠장에  오던 이튿
날 마굿간에 말이 매인 것을  보고 대사에게 들어와서 “마굿간에 매인 말이 절
에서 먹이는 것입니까?”하고 물은즉  대사가 “이 절에 마을 좋아하는 중이 하
나 있어서 말을 먹인다네”하고 대답하고 곧 옆에 있던 상좌를 돌아보며 “허담
을 좀 불러오너라”하고  말하더니 얼마 아니 있다가  그 상좌가 허위대 큼직한 
중 하나를 데리고 왔다. 대사가 말을 일러서  그 중이 덕순에게 문안하고 꺽정이
와 인사한 뒤  대사가 꺽정이를 가리키며 “저  사람이 말타기를 좋아하니 네가 
아는 대로 가르쳐 주어라”하고 말하니 허담이란 중이 “무어 아는 것이 있어얍
지요”하고 겸사하고 꺽정이를 돌아보며 “말을 더러 타보셨소?”하고 물었다.
  “별로 타본 일이 없소”,  “말도 잘 타자면 어렵습니다”, “어려운 줄은 아
오”, “어려운 줄을  아신다니 무던히 타시는구려”, “무던히가  다 무어요. 겨
우 말등에 올라앉을 줄 알지요”, “말등에 올라앉을 줄 아시면 잘 타는 말이오. 
몇 해나 공부 하였소?”,  “공부라니요? 말타기 공부는 해본 적이 없소”, “몇 
해 공부가 없이는 몸이 말등에 척 붙도록  되지 못할거요”, “공부가 없어도 올
라앉으면 고만 아니오”, “말도 말 나름이지요. 강아지 같은 말이면 모르겠소만 
범 같은 길들지 아니한 말은  당초에 등에 사람을 붙이지 아니하니까 한번 올라
앉기도 여간 어렵지  아니합니다”, “그럴까요?”, “그럴까요? 그러면 쉬운 줄 
아시오? 지금 내가 먹이는  말로만 말하더라도 본래가 그다지 사나운 말이 아닌
데다가 두서너 달  동안 내 손때를 먹어서  성질이 좋아진 폭이건만 아직까지도 
이 절에서  나 하나 빼놓고는 타는  사람이 없소. 무슨 일이은  생각하기가 쉽고 
말하기가 쉽지, 하기는 생각과  말같이 쉽지 않습니다”, “말을 한번 좀 타봅시
다”, “그렇게 하시오.  지금 나가십시다”하고 허담이 코웃음을 치고 일어서며 
꺽정이도 웃으며 일어섰다.
  허담이 마굿간에  들어가서 말목을 툭툭  히고 고삐를 끌어냈다.  허담이 말을 
끌고 절 앞  넓은 마당에 나와서 “자  한번 타보시오”하고 고삐를 꺽정이에게 
주었다. 말은 대번에 고삐  쥔 사람이 저의 주인이 아닌 줄을  알고 머리를 설레
설레 흔들더니 고삐를 당겨 쥔즉 갈기를 세우고 머리를 번쩍 치어들고 올라타려
고 한즉 몸을 돌리며  뒤를 번쩍 솟치었다. 허담이 이것을 보고  웃고 섰는데 꺽
정이는 불덩이 같은  화가 속에 치밀었다. 고삐를 놓고 갈기를  잡으며 말머리를 
땅에 끌어박으려고 하였다. 말이 고분고분히 당할  까닭이 없건마는 꺽정이 눈에
서 불이 흐르며  입에서 응 소리가 한번 나자  말의 흥흥거리던 코가 땅에 와서 
닿았다. 꺽정이가 그제야  번개같이 몸을 솟치어 말 등에 올라앉아서  고삐를 잡
아 채치니 한풀 꺽인 말이 식식거리며 빙빙 돌다가 절 아래 산길로 뛰어내려 갔
다. 꺽정이가 말등에  붙어앉아서 말이 뛰는 대로 뛰어다니다가 말이  기운이 시
진하여 온몸에 구슬땀이 흐를 때에 고삐를 채쳐  절로 돌아왔다. 허담이 말을 마
구에 들이매며 “이놈이 거센  체하다가 오늘 혼이 났구나”하고 언치를 말등에 
얹어주고 나와서 꺽정이를 보고 “말을 잘 타자면 힘과 재주 두 가지가 다 넉넉
하여야 하는데 당신은 힘은 너무 넘치는 것 같고 재주는 좀 부족한 것 같소”하
고 말타는 것을 평하였다.
  2
  꺽정이와 허담이 대사 방에 들어왔을 때 덕순이는 대사와 같이 불경을 보다가 
“고만 두었다 봅시다”하고 불경책을  덮어 치우며 꺽정이를 보고 “그래 말을 
타보았느냐?”하고 물었다.  꺽정이가 “아닌게아니라 한번 등에  올라앉기도 어
렵습디다”하고 대답한즉 덕순이는 꺽정이가  말을 타지 못한 줄로 알고 “말에
게 견모만 하고 온 모양이구나”하고 웃는데 허담이 나서 “말도 무던히 타지만 
기운이 참말 장사입디다”하고 말하니 덕순이가 웃으며 “말을 탔어? 허담이 견
마를 잡아준 게지?”하고 꺽정이를 바라보았다.
  “제주서 생외  처음 말을 탈 때도  견마는 잡힌 일이 없었소”,  “처음 타는 
주제에 견마를 잡히지 않았으면 낙마는 면치 못했겠지” 옆에 있던 대사가 빙그
레 웃으면서 “적어도 수십  번 말에서 떨어졌으리다”하고 말하여 덕순이가 “
골탕은 잘 먹었겠다”하고 웃으니 허담이 “골탕은 안 먹어보고는 말을 잘 타지 
못합니다”하고 꺽정이를 대신하여 발명하듯이 말한 뒤에 꺽정이를 돌아보며 “
제주 생마로 공부한 내괴 다릅디다. 내 말은  쌀말로 그만큼 타기가 조만한 일이 
아니지요. 그러나  흠을 잡아 말하자면  법없이 함부로 배운  표가 납디다”하고 
말하였다. 꺽정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할  즈음에 덕순이가 법 있고  없는 것이 
어떻게 다르냐고 물으니 허담이 한번  에헴 하고 기침한 뒤에 아는 것을 자랑하
려는 구기로 말을 꺼내었다.
  “말 타는 데는 일신,  이기, 삼태, 사술이라고 보는 것이 여러 가지 있습니다. 
술은 배울 수가 있고, 태는 지을 수가 있고,  기는 기를 수가 있고,  신은 배우거
나 짓거나 길러서 될 수 없는 만큼 천생이  있지마는 많이 배우고 오래 짓고, 힘
써 기르면 나중에 절로 생긴답니다. 태조대왕께서  화장산에서 사슴 사냥하실 때
에 사람이 발 못  붙일 절벽을 말 타신 채 미끄러져  내려오셨다고 합니다. 태조
대왕 같으신 기가  아니면 말이 아무리 팔준마라도 도저히 되지  못할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신 지경 일이 아닌 것이 그때 대왕 타신 말이 앞으로 꺼꾸러졌다
고 합니다.  신 지정에는 사람의 맘과  말의 힘이 빈틈이 없이  일치하여 나가는 
까닭에 조금이라도 실수가 없답니다. 말 타는 데  신 지경은 말하자면 득도 지경
과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경전을 본다고 저마다 득도할 것은 아니지요만, 경전
을 모르고 도를 닦으면 못쓸  외도 되는 것과 같이 말 타는 것도 법없이 배우면 
못씁니다. 육조 같은 분은 무식한 나무꾼  출신으로 오조에게 의발을 받으셨지만 
이것은 구방고란 사람이  피아말, 상사말도 구별할 줄 모르면서 백락의  뒤를 이
은 것과 같이 천만  인의 한 사람도 드뭅니다.” 허담의 도도한  말이 그칠 줄을 
모르 때 대사가  웃으면서 “인제 고만 지껄여라. 너무 지껄이면  입아귀가 아픈 
법이다.” 하고 허담의  말을 자르고 꺽정이를 바라보며 “허담의 말  설법이 재
미있는가?”하고 물으니 꺽정이가 “재미있구먼요.”하고  대사에게 대답한 뒤에 
곧 허담을 돌아보며 “내가 지금 늦깎이라도 좀 배워봅시다.”하고 말하였다. 그 
뒤에 꺽정이는 매일  허담에게 말 타는 법을  배우느라고 재미를 들여서날 가는 
줄을 모르고 지내는 동안에 거의  달포가 되었는데 이때 난리 났다는 소문이 산
속에까지 굴러들어왔다. 꺽정이가 난리 소문을 듣고  궁금징이 나서 덕순을 보고 
산에서 나가자고 말하니 덕순이는  “나는 대사와 같이 불경이나 보고 과하하기
로 작정하였으니까 아직  더 있어 볼 터이다.”하고 말하며 꺽정이가  혼자 떠나
기로 작정하였는데 떠나려던 전날 저녁 꺽정이는 의외에 반가운 사람 하나를 칠
장사에서 만나게 되었다.
  3
  꺽정이가 허담의 말을  타고 동구 밖에 나가서  주마 놓고 돌아다니다가 해가 
설핏할 때 절로 올라와서 말을 마굿간에 들여매고 말갈기를 쓰다듬어 주며 “내
일은 작별이다” 하고 말한즉 말이 꺽정이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듯이 머리를 건
들거리었다. 꺽정이가 마굿간  앞에서 돌아설 때 말이 구유 너머로  머리를 내밀
어 꺽정이의 머리 동인 수건  끝을 물고 지극지근 잡아당긴 까닭에 꺽정이가 손
을 머리 뒤로 돌리어 수건 끝을 빼앗고 다시 말 앞으로 돌쳐서서 웃으면서 “이 
자식, 버릇없는 자식  같으니, 머릿수건을 잡아당기는 법이  어디 있단 말이냐.” 
하고 한 손을 둘러매니 말은 얼른 머리를  한옆으로 피하였다. “맞을까 보아 무
서운 게구나.” 하고  꺽정이가 둘러매던 손으로 말 목을 뚜덕뚜덕해  주면서 “
작별이 섭섭하냐?” 하고  말을 묻는데 말이 “섭섭합니다.” 하고  대답하는 모
양같이 머리를  꺽정이 앞으로 내밀고  코를 치어들고 흥흥거리었다.  “이 다음 
내가 너를 보러 오마.”  하고 꺽정이가 두 귀 사이의 늘어진  갈기를 만져 주니 
말의 영리한  두 눈 속에는 정다이  여기는 빛이 보이었다. 달포  지내는 동안에 
꺽정이가 말을 사랑할  뿐 아니라 말도 꺽정이에게 정이 들었던  것이다. 꺽정이
가 말과 작별하고 있을 때  상좌 하나가 꺽정이에게 와서 “판도방 앞마루에 손
님 하나가 와 앉아서 양주 임서방이 절에  와 있었느냐고 묻습디다.” 하고 말하
니 꺽정이가 “어떤 손님이?” 하고 마굿간 앞에서  돌아섰다. 마굿간 있는 곳에
서 판도방까지 오는데  동안이 있어서 꺽정이는 상좌와  같이 오면서 말을 물었
다. “손님 모양이  어떠하던가?” “의관한 손님? 무엇을 타고  왔던가?” “걸
어왔습니다.” “얼굴이 어떻게 생겼던가?” “해사한  얼굴에 새까만 수염이 났
스디다.” 꺽정이는  상좌의 말을 듣고  천왕동이가 온 줄로  짐작하여 “아버지 
병환이 더치었나.” 하고 혼잣말하며 황망한 걸음으로  판도방 앞에 와서 마루에 
걸터앉은 사람을  바라보고 대번에 “너 이거  웬일이냐?” 하고 소리를 지르니 
그 사람이 “아이구,  형님이구려.” 하고 맞소리를 지르며 마당으로 뛰어내려왔
다. 꺽정이를  형님이라고 부르는 그  사람이 천왕동이가  아니요, 이봉학이었다. 
꺽정이는 천왕동이가 아닌 까닭으로  일변 안심하고 봉학인 까닭으로 일변 반가
왔다. 꺽정이가  봉학이와 손을 맞잡고  서서 “어찌해서 여기를  왔느냐?”하고 
물으니 봉학이가 “여기가 나는  못 올 데요?”하고 싱끗 웃고 “마루에 올라가 
앉아서 이야기합시다.”하고 말하여  두 사람이 같이 판도방 마루 끝에  와서 걸
터앉았다. “내가 형님을 만나려고 양주를 가지 않았겠소. 형님댁 문간에를 가니
까 형님 아들놈이 팔삭동이와 같이 장난하고  앉았습디다. 연전에 백두산에서 갓 
나왔을 때 보았으니까  저는 나를 알아볼 까닭이 없지요. 내가  너의 아저씨다고 
말했더니 그놈이 나는 당신 같은 아저씨가  없소 하고 들이대듯이 말합디다그려. 
조금만 더 크면  형님을 쥐어지르겠습디다.” 하고 하하 웃고 “누님이  마침 밖
을 내다보다가 나를  보고 교하 이서방 아니냐하고 소리를 지릅디다.  나는 형님
이 선생님 절에 와서 있다는 말을 듣고 그날 곧 그대로 떠나려고 하니까 누님이 
어디 떠나게 해야지요. 그래  형님댁에서 하룻밤을 묵어 왔소. 형님 아버지 병환
은 그저  한모양이라고 합디다.” 하고  봉학이가 꺽정이를 만나  반가운 바람에 
한바탕 수다하게 지껄이고  나서 “선생님은 어디 계시오?” 하고  물었다. “이 
절에 으슥한 뒤채가 있어 거기 계시다.” “그럼 지금 그리 가십시다.” “너 보
고 반가워할 양반이 또 한 분이 거기  계시다.” “누구요?” “김덕순이란 이를 
너 생각하겠느냐?” “생각하고말고.  동소문 안에서 떠난 뒤에 그  양반 만나기
는 처음이오. 어서 그리 가십시다.” 하고 봉학이가 재촉하여 꺽정이는 봉학이를 
데리고 대사의 처소로 들어왔다.
  4
  대사와 덕순이가 방머리에 있는  난간마루에 나앉아서 석양 때 경치가 애닯게 
좋은 것을 이야기들 하는 중에  꺽정이 뒤에 의관한 사람이 따라오는 것을 덕순
이가 먼저 바라다보고  “꺽정이가 갓 쓴 사람 하나를 데리고  오는구려.” 하고 
대사를 돌아보니 대사가  한번 바라보고 곧 “이봉학이구려.”하고 말하였다. “
이봉학이라니? 동소문 안에 있을 때 활장난 잘하던 아이 말씀이오? 어떻게 그렇
게 용하게 알아보시오?”  “아이 적에 보시고 처음이시지. 나는  연전에 찾아와
서 보았소.” “꺽정이하고  동갑인가 자치동갑인가 그러하니까 나이  벌써 서른
네댓 되었겠소.” “둘이 동갑이지요.” “옳소,  꺽정이보다 생일이 아래인가 보
오.” 하고 두 사람이 서로 이야기하다가  꺽정이와 봉학이가 앞마당에 들어서는 
것을 보고 다같이  난간마루에서 앞마루로 내려왔다. 봉학이가  마루에 올라와서 
대사 보고 절하고 그 다음에 덕순에게 향하여 “저를 알아보시겠습니까?” 하고 
말하며 절하니 덕순이는 “아기 한량이 인제  노창해졌네.” 하고 웃으며 허리를 
잠깐 구부슴하였다. 먼저 있던  두 사람과 나중 온 두 사람이  다같이 마루 위에 
자를를 잡고 앉은 뒤에 덕순이가 봉학이를  보고 “자네를 만나기는 의외일세.” 
“자네가 그저 교하서 사는가?”하고 말하니 꺽정이가 “이 애에게는 어째 하게
를 하시오?” 하고  탄하였다. “네게는 해라하고 저 사람에게는  하게한다고 시
비이냐? 너는 조카로 대고 해라하지만 저 사람에게야 해라할 턱이 없지 않느냐?
” “턱은 찾아 무엇하고. 그대로 해라하시오.” 하고 꺽정이가 말하자 봉학이가 
“정작 해라  받을 사람은 제쳐 놓고  형님이 왜 해라를 하시라  마시라 하오.” 
하고 한번 웃고 곧 덕순을 향하여 “저 형님에게는 해라하시고 저에게는 하게하
시는 것이 친분을 보시는  것 아닙니까.”하고 말한즉 덕순이가 “허허, 저 사람
도 또 시비로군. 이편 저편의 시비를 들어가며 애써 헤게할 까닭이 있나.” 하고 
말을 고치어 “네게도  해라할 터이다.”하고 웃으니 봉학이도 “좋습니다.” 하
고 웃었다. 덕순의 해라  말이 낙착되자 꺽정이가 “존대, 하고, 하게, 해라 말이 
모두 몇 가지람. 말이 성가시게 생겨먹었어” 하고  말의 구별 많은 것을 타박하
니 덕순이가 웃으면서 “말의 구별이 성가시다고  하자. 그러하니 너는 어쨌으면 
좋겠단 말이냐?” 하고 물었다. “말을 한가지만 쓰면 좋은 것 아니오.” “어른 
아이 구별없이 말을 한가지만  쓰는 데가 천하에 어디 있단 말이냐?” “두만강 
건너 오랑캐들의 말은  우리말같이 성가시지 않은갑디다. 천왕동이의  말을 들음
면 아비가 자식보고도  해라, 자식이 아비보고도 해라랍디다.” “그러니까 오랑
캐라지.” “오랑캐가 어떻소. 그것들도 조선  양반 마찬가지 사람이라오.” 하고 
꺽정이가 덕순의 말을 다툴 때에  대사가 “우리말에 층하가 너무 많은 것은 사
실이겠지. 그렇지만 어른 아니는 고사하고 양반이니  상사람이니 차별이 있는 바
에야 말이 자연 그렇게  될 것 아닌가.”하고 말참예하고 나섰다. “그런 차별이 
있는 덕에 세상이  이 모양 아닌가요.” “그런  차별은 있어 온 지가 오랠세.” 
“권세를 손에 쥔 사람이 그런 차별을 없애라고 영을 내리면 오랬다고 없어지지 
않을까요.” “벌써 영 내리는  사람과 영 받는 사람에 차별이 있지 아니한가.” 
“봅쓸 차별을 없애려면 내릴 사람이 있어야지요.”  “영을 내린다고 그렇게 쉽
게도 없어질  것이 아니니.” “영을 아니  좇는 놈은 깡그리 죽여버리면  될 것 
아니오.” 대사가 꺽정이의  말을 옳지 않게 여기는 듯이 고개를  흔들고 “쓸데
없는 이야기 고만두고 오래간만에 만난 사람과  서희들이나하세.” 하고 곧 봉학
이를 향하여 “자네 그  동안 자녀간에 무엇을 두었나?” 하고 물으니 봉학이가 
“아무것도 아직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덕순이가 봉학이를 보고 “나는 
네가 외조모를 따라 교하로 내려간 뒤 소식을 통히 모르던 사람이니 그 동안 지
난 이야기를  좀 들어보자.” 하고 말하였다.  봉학이가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할 
때에 판도방에서 외식을 알리는 북소리가 들어어 왔다.
  5
  대사는 노인이라 큰방까지 나다니지  아니하고 자기 방에 앉아서 식사하는 까
닭에 혹시 자리를  찾아오는 손님이 있으면 소석을 자기 방에서  대접하였다. 덕
순이와 꺽정이가 처음에는 다같이  대사 방에서 조석을 먹었으나 꺽정이가 말선
생 허담을 친하게 된 뒤로는  꺽정이만 허담을 따라서 여러 중들과 회식하러 다
니었다. 꺽정이가 북소리를 듣고  “밥 먹으러 가야겠군.” 하고 대사를 보고 “
봉학이도 데리고 가리까?”  하고 물으니 대사가 “자네까지도 갈  것이 없네.” 
하고 곧 상좌를 불러서 겸상 두 상을  차려오라고 일렀다. 저녁상이 들어와서 꺽
정이와 봉학이가 겸상하여 앉았을 때 “공연히 딴 이야기 하느라고 못 물어보았
다. 난리 소식이 어떠하더냐? 난리가 먼 시골에서  난 까닭에 서울은 안연하다니 
참말이더냐?” 하고 꺽정이가 말을 묻고 “안연이란 다  무어요. 서울은 지금 와
글와글 야단이라오.” 하고  봉학이가 대답하는데 대사와 마주  앉았던 덕순이가 
들었던 수저를 다시 놓고  “난리 이야기 좀 들은 대로 해라.”  하고 윗간에 있
는 봉학이를 바라보니  봉학이가 입에 넣은 밥을  급히 씹어 넘기고 “전라도에 
왜변이 나서 해변 일경이 함몰지경이랍니다. 그래서  지금 서울서 방어사가 나고 
순찰사가 나서 전라도로  출진한답디다.” 하고 아랫간을 바라보며  대답한 뒤에 
윗간 아랫간에서 겸상한  사람끼리 수작을 각각 하게  되어 이야기가 두 갈래로 
갈리었다. “우리 아이 적에도 경상도에  왜변이 났었지요?” “삼포왜변 말씀이
오? 지금 사십칠팔  년 가량 되었나보오.” “그때 각진 첨사들이  잡혀 죽고 항
복하고 망측한  일이 많았답디다그려.”  “우리나라의 지질한 무비로는  조그만 
도적에게도 언제든 봉변이지요.” “ 불과 사오십 년  간에 두 번씩 봉변을 당하
고야 그대로 둘 수가 없지 않소. 대마도가  그것들의 소굴이라니 소굴을 한번 무
찔러 버리면 영히  후환이 없을 것 아니오.” “왜의 소굴이  대마도만도 아니지
만 대마도만이라도 무찌르러 가면 제법이게요. 우리가  무찌르러 가기 전에 왜가 
쏟아져나오기가 쉽지요. 상말에  방구가 잦으면 어떻다는 셈으로  지난번 왜변이
나 이번 왜변은  방구 폭밖에 아니 되니까 뒷날이 걱정입니다.”  아랫간에서 이
런 수작들을 할 때에  윗간에는 다른 수작이 있었다.  “내가  이번에 형님 보고 
의논할 일이 있어서  형님을 찾아왔소.” “무슨 일?”  “형님, 난리 치러 나갈 
생각 있소?” “난리를 치러  가? 어떻게?” “서울서 지금 군총을 뽑는 중이니 
군총에 들어가서 전장에 나가 봅시다.” “이애,  시원치 않은 소리 하지 마라.” 
“왜 시원치 않기는?  난리 치는 것보다 더 시원한 일이  어디 있소.” “무명색
한 졸개 노릇이 시원할  것 무엇 있느냐.” “우리가 이번 전장에  나가서 공 한
몫을 세우면 차차 출신하게  될 것 아니오. 우리가 백날 이대로  가만히 있어 보
오. 언제 누가  대장으로 데려가나.” “아니 데려가면 고만이지.  누가 데려가라
고 빈다드냐.” “그러지 말고 한번  같이 나가 봅시다. 형님 칼과 내 활이 남에
게 밑질 리는 만무하오.” “나는 싫다.” “형님,  잘 생각해 보시오. 만호. 첨사
라도 차례에 오면 싫을  것이 무어 있소.” “떡 줄 놈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
부터 마시는 셈이다.  만호.첨사? 말이 쉽다.” “우리가 두드러지게 만호.첨사는 
고사하고 병수사인들 하지  못하란 법이 있소?”“이애, 선 소리  그만두고 익은 
밥이나 치워라. ”아랫간에 있는 덕순이가 윗간의  수작을 끝만 듣고 “병수사를 
누가 하지 못한단 말이냐?”  하고 말하니 봉학이가 “내가 지금 형님더러 군총
에 들어서 전장에  나가 보자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전장에서 공만  세우면 병수
사라도 얻어 할 수 있지 않습니까?” 하고 말하여 갈리었던 이야기 갈래가 한데 
합치게 되었다. 덕순이는  봉학이의 생각이 좋다고 꺽정이를  권하다가 꺽정이의 
고개 외치는 것을 보고  정색하고 꺽정이의 고집을 책망하는데 대사는 웃으면서 
급히 할 것이 없으니 천천히 이야기하자고 말하였다.
  6
  저녁상을 치운 뒤에 덕순이가  다시 꺽정이의 출전을 권하려고 “하늘이 너같
은 천하  장사를 내실 때는 네가  필경 쓸데가 있을 것이다.”  하고 꺽정이보고 
말을 내었다가 “하늘이 사람을 꼭 쓸데 보고 낸다고 하면 나 낼 때는 하느님이 
광증이 났거나  노망이 났던가 보오.”  하고 빈정거리는 꺽정이의  대답을 듣고 
“저 사람은 불패천이야.” 하고 입맛을 다시는데  대사가 봉학이를 가리키며 “
아까 저 사람더로 지난 이야기를 들려 달라지  않았소. 우리 옛 일이나 이야기하
고 하룻밤 웃고 지냅시다.”  하고 말하여 덕순이는 흔연히 “그것 좋소.” 하고 
대답하였다. 방안이 침침하여져서 등잔불을 켜놓을 때가 되었다. 윗간에 있던 두 
사람이 아랫간으로 올라와서 네  사람이 서로 가까이들 둘러앉았을 때 덕순이가 
봉학이의 얼굴을 이윽히 바라보다가 “얼굴을 자세히 보니까 아이 적 모습이 많
이 남아 있구나.  그래 교하 내려가서 어떻게 지냈어? 활장난은  줄곧 여전히 했
을 터이지?” 하고  웃은즉 봉학이가 “활장난은 지금도 합니다.  그러나 교하는 
동무가 없어서 서울  있을 때만큼 재미가 없었습니다.” 하고 덕순의  말을 대답
하는데 꺽정이가 봉학이를 돌아보며  “이렇게 모이니까 더구나 그 자식이 생각
난다.” 하고 결연히  여기는 빛을 얼굴에 나타내니 봉학이도  “유복이 말이오?
” 하고 역시  갑자기 서운하여 하였다. “유복이는 배천 가  살지? 언제들 만났
는가?” 하고 덕순이가  둘을 보고 물으니 “아이 적에들  서로 갈린 뒤에 이내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하고 봉학이가 대답하였다. “어째서 그랬느냐? 
그 동안 통히 왕래가 없었더냐?” “배천을 이 형님도 한 번 가고 저도 두어 번 
갔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못 만났느냐?” “제가 서울서  내려간 뒤 삼 년
인가 사 년 되던  해에 이 형님이 제게를 다녀서 배천까지  갔었습니다. 그때 저
의 외조모가 못 가게해서 같이 가지도 못했습니다만 갔던 형님도 유복이를 보지 
못하고 왔었습니다. 유복이가  배천으로 내려가던 이듬해에 유복  어머니는 장감 
앓다가 돌아가고 유복이 혼자 그 친척 되는  자의 집에 붙어 있게 되었더랍니다. 
그런데 그 친척 되는 자가 동네에서 불미한 일이 있어서 모야무지에 도망하듯이 
식구를 끌고 난데로 갔답니다. 유복이 그 못생긴  것이 양주 형님에게나 교하 제
게로 올  생각을 못하고 그 잘난  친척을 따라가서 이때껏 종적을  잘 모릅니다. 
종적이나 알까 하고 제가 두번째  매천 갔을 때 유복이 고향인 강령까지 갔다왔
습니다. 강령 사람들은 유복이를 아는 사람도 없습디다.” 하고 봉학이가 유복이
의 이야기를 그치자, 이때껏 말없이 앉았던 꺽정이가  “그 자식이 정녕 죽은 게
야. 살아 있으면 우리를  찾아오지 않을리 없지.” 하고 봉학이를 보고 말하는데 
대사가 “죽기는 왜  죽겠나. 옛동무 세 동무가  한데 모일 날이 있을 것일세.” 
하고 꺽정이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덕순이가 봉학이를  보고 “유복이 이야기 까
닭에 네 이야기가 어디로 들어갔다. 인제 고만 제 이야기를 듣자꾸나.” 하고 말
하니 봉학이가 “무슨 별  이야기가 있습니까? 외조모의 덕을 입고 자라나서 외
삼촌의 힘을 받고 살아갑니다.”  하고 간단히 말하였다. “자세히 이야기 좀 하
려무나.” “자세히 이야기할 것이 있어야 합지요.” “그래 서울서 교하로 내려
간 뒤에  글방에를 다녔느냐?” “글방에  좀 다녔습니다.” “활장난에  공부는 
성실치 못했겠지?” 이와 같이 덕순이는 봉학이의 지난 이야기를 자아내었다.
  7
  봉학이는 외조모를 따라서 교하 낙하원  근처로 낙향한 뒤에 이삼 년 동안 이
웃 동리 글방에를 다니었으나  부지런한 활장난에 글공부가 뒷전 가서 책한권을 
배우자면 예사로 일 년이 걸리었다. 나중에 그  외조모가 외손의 공부가 다른 아
이들만 못한데 애성이 나서 쓸데없이 강미만 없애지 말고 집에서 상일이나 배우
라고 글방에를 보내지 아니하여 봉학이는 한동안 등에 지게도 져보고 손에 호미
도 쥐어보았다. 그러나 상일은 글공부만큼도 성실치 못하였다. 그 외조모가 일시 
애성으로 상일을 시키었지  원래 시키고 싶어 한  것이 아닌 까닭으로 봉학이의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시키지 아니하였다. 그  외조모는 남의 전장이나마 농권을 
가진 까닭에 울력농사로 농사를  지어서 양식하고 남는 것으로 연년이 밭뙈기를 
장만하게 되어 사는  것이 태평이었다. 봉학이 나이 이십이 가까워지며  그 외조
모가 봉학의 흔처를 이리저리 구하던  중에 마침 근처 가난한 토반의 집에 과년
한 색시가 있는 것을 알고 통혼하여 근본이 이러니저러니 처음에는 말썽이 있다
가 마침내 의논이 맞아서 혼인을 하게 되었다.  봉학이가 장가든 뒤에 그 외조모
는 자기 집  옆에 초가 오륙 간을 새로  세우고 딴살림을 차려 주었는데 명색만 
딴살림이지 일동일정을 돌보아 주지 않는 것이  없었다. 봉학이의 외조모가 환진
갑을 다 지내고 노병으로 죽을 때에 양자한 아들 내외와 외손 내외를 앞에 모아
놓고 유언하는데 특별히 봉학이의 손을  잡고 “돌 전에 부모를 여윈 너를 길러
서 성취까지 시키고 죽으니 저생에  가서 네 어미에게 원망 받을 것은 없다마는 
네가 선달 출신이라도  하는 것을 못 보고 죽는  것이 이생에 남기고 가는 한이
다. 이 다음에 벼슬하거든 외할미 무덤에 소분 올 것을 잊지 마라.” 하고 그 다
음에 그 아들을 돌아보며 “아무리 의로 모였다 하더라도 외숙이고 생질인데 너
의 생질이 농사에 이력나지 못한 사람이니 나 죽은 뒤에는 네가 그 뒤를 돌보아 
주어라.” 하고 역시 봉학이의  일을 부탁하였다. 봉학이의 외숙 되는 사람이 사
람이 진실한 까닭에 그 양모의 임종 부탁을 저버리지 아니하여 봉학이는 이때껏 
살림 걱정을  모르고 지내는 터이었다.  봉학이가 그 외조모의  유언을 이야기할 
때 눈에 눈물까지 글썽글썽아니 덕순이가 “이번 전장에 나가서 성공만 하고 오
면 돌아간 너의 외조모의 한풀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고 말하였다. “전장
에 나갈 생각도 그래서  났습니다.” “그렇겠다.” “전장에  나가는데 저 형님
과 같이 가면 저도 든든하거니와  저 형님도 해롭지 않겠기에 일껀 와서 말하니
까 싫다고 머리를  흔듭니다그려.” “그것은 공연한 고집이야.” 하고 덕순이가 
꺽정이를 바라보며 “봉학이와  같이 나가도록 해보지.” 하고  권하고 꺽정이가 
덕순의 권하는 말은 들은 체 아니하고 봉학이에게 “너는 외조모의 원풀인지 한
풀인지 하러  가지마는 나야 무어하러 가겠느냐?”  하고 말하는 것을 덕순이가 
다시 “신명풀이로 가려무나.” 하고 말한즉 꺽정이는  “신명이 나지 않는데 풀
이가 어디 있겠고.” 하고  한마디 대답하였다. 대사가 꺽정이를 보고 “자네 칼 
이름이 무엇이든가?” 하고 동에  닿지 않는 말을 물어서 꺽정이가 대답히기 전
에 덕순이가 “칼  이름은 갑자기 왜 묻소?” 하고  물으니 대사는 덕순의 묻는 
말을 빙그레 웃는  것으로 대답하고 꺽정이보고 말하였다. “그 칼  이름이 있지 
않은가?” “장광도랍디다.” “자네의 검술 선생이  삼포왜변에 얻은 칼이라지?
” “그렇답디다.” “자네가 그 칼을 얻은 뒤에  한번이라도 맘껏 써본 일이 있
는가?” “맘껏 쓸 데가 어디  있었나요?” “왜도로 왜의 목을 베는 것 그것도 
역시 한 재미려니.”  하고 대사가 말하는데 꺽정이는 장광도를 한번  써볼 생각
이 나서 “제기  한번....” 하고 말 뒤가 없으나  들리는 눈썹에 맘 동하는 것이 
보이었다.
  8
  허담이 꺽정이의 떠나고  안 떠나는 것을 알려고 대사 방으로  찾아왔다. 허담
이 대사와 덕순에게  저녁 인사를 말하고, 그 다음에 봉학이를  향하여 합장하고 
꺽정이 옆에 가까이 앉으며 “ 내일 아침에 떠날 터인가?” 하고 물으니 꺽정이
가 “떠날까 하지요.”  하고 대답하며 봉학이를 돌아보았다. “형님,  내일 떠날 
터이오? 잘 되었소. 나하고 같이 떠납시다.” 하고 봉학이가 꺽정이를 보고 말하
는데 덕순이가 봉학이에게 “아무리 꺽정이를 찾아왔다기러서니 오늘 왔다 내일 
가는 수야 있느냐?”  하고 말하였다. “일이 급합니다.  이 형님 보고 의논하고 
같이 가든 혼자 가든  곧 가려고 작정하고 왔습니다. 양주 갔다  여기 왔다 하는
데 날짜가 의외에  천추되어서 인제는 한만히 지체할  수가 없습니다.”“아무리 
급하더라도 하루쯤은  더 묵어갈 수  있겠지.” “군총을 뽑는  기한이 있으니까 
하루라도 일찍이 서울  가 있어야 낭패가 없겠습니다.” 하고 봉학이가  급히 갈 
사정을 말하는데, 꺽정이가 아래위를 툭자른 듯한 말소리로 “아따, 내일 가자꾸
나.” 하고 곧 허담을 가리키며 “이 대사와 인사나 해라.” 하고 봉학이에게 인
사를 붙이었다. 허담은 앉기  전 입장할 때 봉학이가 머리 한번  굽신한 것을 인
사로 치고  “인사는 아까 다 마치었는데  또 무슨 인사를 하란  말이야.” 하고 
말하니 꺽정이가  머리를 굽신하여 보이며 “초면에  이런 인사가 어디 있소?” 
하고 허담의 말을 대답하고 나서 곧 봉학이를 돌아보며 “이 대사는 말 타는 법
을 가르쳐 주신 내 선생님이다.” 하고 일러 주었다. 봉학이가 공손한 말씨로 허
담과 인사를 마친  뒤에 꺽정이를 보고 “형님은 선생님도 많소.”  하고 웃으니 
“선생님이 많아도  못쓸 선생님은 하나도 없다.”  하고 꺽정이도 역시 웃었다. 
덕순이가 “너의 검술 선생은  아직 그저 운달산에 있다더냐?” 하고 물으니 꺽
정이가 “벌서 돌아가셨소.”  하고 대답하며 손가락을 꼽아보더니  “돌아간 지
가 올해 벌써 칠 년이나 되었소. 소상 지나간  뒤에 내가 기별을 듣고 평산을 갔
다 왔지요.”하고 말하였다. “그럼  그때 연중이를 만났겠구나?” “만났지요.” 
“그런 말을 이때껏 나보고 아니하는 사람이 있단 말이냐?” “언제 말이 날 계
제가 있었을새 말이지요.” “너의 선생님들은 못쓸  사람이 없는가 보다마는 정
작 너는 못쓸  사람이다.” 하고 독순이가 한번  허허 웃고 나서 다시 말하였다. 
“연중이가 나보다도 두 살이 손위니까 많이 늙었겠다.”  “육 년 전에 볼깨 사
십 안팎 사람 같습디다. 걱정이 없으니까 그렇게 쉬이 늙지 않을 것이오.” “걱
정이 없다니?  연중이 신세에 걱정이 없어?”  “무슨 걱정이 있어요? 평산부사 
따위로는 연중이만큼 호강  못할걸요 보기에는 신세만 막상  좋습디다.” “종없
는 소리 작작해라. 그 호강이란 것이 오죽한  호강이냐?” “그러면 댁에서 유모
의 아들로 천대를 받는 것이 호강이란 말씀이오?” “너하고는 말을 할 수가 없
다.” 하고 덕순이가 말을 그치었다. 얼마 뒤에 봉학이가 대사를 보고 “제가 전
장에 나가면 성공하겠습니까?” 하고 물으니 대사는 “내가 성공 못한다고 말하
면 안 나갈 터인가?”  하고 웃고 꺽정이는 “한번 나가기로 작정했으면 그대로 
나갈 것이지, 성공  여부를 인제 물어 무엇하느냐.” 하고  책망하였다. “형님만 
같이 나간다면 맘이  든든하겠소.” 하고 봉학이가 말하는 것을 허담이  듣고 “
그건 참 좋겠군. 한번 전장에  나가서 천하 장사의 솜씨를 보여 보지.” 하고 역
시 꺽정이를  권하여 “전장에 나가시기로  작정되면 내가 말을  드리지.” 하고 
사랑하는 말을 주겠다고까지 말하였다.
  9
  이튿날 꺽정이는 허담의 주는  말을 받아가지고 봉학이와 같이 칠장사를 떠나
서 서울로 올라왔다. 꺽정이나 봉학이가 다같이  서울에 일가친척이 없는 터이라 
객주를 잡고 들게  되었는데, 객주에 들며 곧 봉학이가 주인  늙은이를 불러가지
고 “군총 뽑는다는 것이  어떻게 되었소?” 하고 물은즉 늙은 주인이 “뽑기는 
뽑는답디다만 전장에 나가기를 자원할 사람이 어디  있나요. 억지러 조발할 터이
랍디다.” 하고 대답하고  “그래서 아들 있는 사람은 아들을 피접  보내고 아우 
있는 사람은 아우를 피접 보내느라고 집집마다  야단들이오. 나도 아들놈을 시골 
저의 외가로 보내 버렸소.”  하고 묻지도 않는 말을 수다스럽게 지껄이었다. “
난리는 어떻게 되어 간답디까?  ”요새 거의 날마다 접전이 있는 모양인데 우리 
나라 군사가  형편이 없는갑디다.“ ”서울서  출진하기가 급했구려.“ “방어사 
하나는 일전에 동소 군사를 거느리고 선발로 떠났소” 동소가 어디요?” “오위
도총부 전위를 동소라고들 말합니다” “방어사가 둘이 났다지요?” “방어사가 
나면 좌어방어사  둘이 나는 법입니다.  방어사 하나는 일간  마저 떠난답디다” 
“도순찰사는” “도순찰사도 물론 출진할  터이지만 여러 가지 미비한 것이 있
는지 아직 떠난다는 말이 없습디다” “군기가 미비한가요?” “개를 보고 올무 
맺는 셈이니까 미비한  것이 군기뿐이 아니겠지요만, 군기시에서도  요새는 야로
소, 조갑소 할것 없이 일을 밤 도와  하는 모양이랍디다” “미리미리 준비를 못 
해 두고. 제기, 나랏일도” “미리 준비해  둔 것을 없애지만 않아도 무던하지요. 
이번에도 군자감에 저축한 군수물품이  물목과 많이 틀리는 것을 발각하고 군자
감의 정첨정 이하 봉사,  참봉까지 잡아가고 옭아가고 야단이 났습디다. ” 꺽정
이는 말참예 아니하고 바깥을  내다보고 앉았다가 남산위에서 검은 연기가 솟는 
것을 바라보고   “이애, 남산에 연기가  난다”  하거 말하여  봉학이가 머리를 
돌리려 할때  주인이  “봉화둑에서 올리는  연기구려. 연기 번수 수를  좀 헤어 
보시오. 다섯 번 아닌가. 요지막은 늘 다섯  번 아닌가. 요지막은 늘 다섯 번씩이
오. ”   하고 말하였다. “다섯번이면 어떻단  말이오?” 하고 봉학이가 물으니 
“봉화 드는 법이 평시에 한 번 들고, 도적이 현형할 때 두번 들고, 도적이 근경
에 들어올 때 세 번 들고, 도적이 지경에 침범할 때 네번 들고, 다섯 번 들면 접
전하는 것입니다.” 하고 아는 체하며 대담하였다. 이때 서울에는 남산 봉화둑의 
다섯째 봉화가 밤낮 그치지 아니하여 밤이면 봉화가 번쩍번쩍 빛나고 낮이면 낭
연이 물씬물씬 올라왔었다. 남산 다섯째 봉화는  양천 개화산으로 들어오는 것이
니 이것이 곧 충청,전라에서 오는 해로봉화 이었다. 꺽정이와 봉학이가 군총으로 
뽑이러 갔을  때 군총 뽑는 일을 맡아보던 병조 무비사 관원들이 전장에 나가기 
자원하는 것을 기특히 생각하여 두 사람을  즉시로 불러들이게 되었다. 봉학이가 
먼저 불리게 되었는데 관원이 봉학이에게 말 몇마디 물어보고는 곧 거주 성명을 
군적에 올리고 어느 날 어디로  와서 군기를 타가라고 말을 일러서 내보내고 다
음 차례에 꺽정이가  불리었다. 대상에 앉았던 관원들이 대하에 와서  섰는 꺽정
이의 신수를 내려다보고 서로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 관원이 입을 열어 
말을 물었다. “너  어디 사느냐 ?” “양주읍내 삽니다”   “나이 몇살이냐?” 
“서른 다섯 살입니다” “부모와 처자가 있느냐?” “아버지가 있고 처자도 있
습니다”  “네  집에서는 농사하느냐?”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니  하고 놉니다
“ ”아무것도 아니하고 놀아 ? 네아버지는 무얼하는 사람이냐?” “소백정입니
다” “소백정” 하고 그 관원이 말 묻는 것을 그치고 옆에 앉았는 관원과 서로 
돌아보며 되느니 안  되느니 하고 몇 마디 말을  지껄이고 나서 다른 말이 없이  
“고만 물러나가거라” 하고  분부하였다. 봉학이가 먼저 나와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꺽정이의 나오는 것을 보고  그 앞으로 와서 싱글벙글 웃으면서  “형님
은 나보다 더  쉽게 끝냈구려. 아이구 시원하오” 하고 꺽정이의  얼굴을 치어다 
보니 아랫입술이  윗입술을 치밀어서 윗수엽이 콧구멍을  막고 눈동자가 아래로 
내려와서 검은자위 위로 흰자위가 보이었다. 걱정이가  심사가 틀리거나 골이 날
때에 눈동자를 아래로  처뜨리는 것은 아이 적부터 있던 버릇이라,  봉학이가 그
것을 잘  아는 까닭으로 얼른 웃음을  거두고 말을 물었다. “형님  무엇에 화가 
났소?” “객주로 가자”  하고 꺽정이가 다른 말이 없이 앞서 걸어나가니 봉학
이는 뒤를 따라어며 고개를 갸우뚱거리었다. 얼마를  오다가 꺽정이가 뒤를 돌아
보며 “나는 오늘 집으로  내려가겠다”하고 말하니 봉학이가 “대체 어찌된 일
이오? 사람이 갑갑치 않게 말이나 좀 자세히 해주시오” 하고 
꺽정이의 옆으로  나섰다. “나는 틀렸다”  “틀리다니? 형님이 뽑히지  못했단 
말이오? 대상에 앉았던 놈들이 눈깔이 멀었던 게구려” “내가 백정의 아들이라
고 그것들이 되느니 안  되는니 하고 수군거리더니 그대로 나가라는구나” “백
정의 아들은 군사 노릇도 못 한단 말이오? 별 망한 놈의 일을 다 보겠소” 하고 
봉학이가 분이 올라서 얼굴이 새 빨개졌다.  꺽정이와 봉학이가 객주에 돌아왔을 
때, 꺽정이는 먼저 방으로  들어가고, 봉학이는 물을 얻어먹기가 급해서 밖에 남
아 있다가 주인 늙은이가 떠다 주는 냉수 한 그릇을 한숨에 들이켜고 나서 손바
닥으로 입을 씻고 “여보, 노인께 물어볼 말씀이  있소” 하고 말하니 늙은 주인
이 손에 빈 그릇을 받아들고 서서 “무슨 말씀이오?” 하고 봉학이의 얼굴을 들
여다보았다. “군총을  뽑는데 보는것이 무엇무엇이오?” “무과를  보이는 것이 
아니니까 보는 것이  무어 있겠소. 병신이 아니면 다 뽑겠지”  “문벌이나 지체
를 보아서 뽑나요?”  “별소리를 다하시오. 막이군사로 뽑는데 문벌이란  다 무
어고 지체란 다 무어요” “그러면 백정의 아들도 뽑겠구려?” “백정의 아들이
라고 뽑지  말란 법은 없겠지요. 그렇지만  군사들이 백정이 섞여 있는  줄 알면 
같은 군사들이 좋아  안할 터이니까 백정은 백정대로  따로 봅으면 모를까 섰어 
뽑지는 않을는지 모르지요”  “좋아 안할 건 무어요?” “아무리 진중에서라도 
백정 같은 천인과 같이 뒹굴기를 누가 좋아하겠소”  “제기, 망한 놈의 세상 다 
보겠다” 하거 봉학이가  혼잣밀하며 돌아서서 방으로 들어왔다.  꺽정이가 무엇
을 생각하는 모양으로  머리를 숙이고 앉았는데, 봉학이가 그 옆에  나가 앉으며 
“형님, 오늘 나하고  같이 떠납시다” 하고 풀기 없이 말하니  꺽정이가 “너느 
왜?” 하고 머리를 치어들었다. “이런 놈의 세상에  난리는 치러 나가 무어하겠
소. 시골 구석에  가서 농사나 지어먹고 엎드려 있을라오” “너의  외조모의 한
풀이는 어떻게 할라느냐?”  “한을 풀어준다고 죽은 이가 알  터이오. 고만두겠
소” “내가 지금 생각한 일이 있다. 너는  너대로 전장에를 나가거라” “나 싫
소” “군총에 뽑히는  것은 나의 본래 소원도  아니니깐 뽑히지 못해서 낭패될 
것이 없다. 내가 어째 맘이 쏠렸는지 한번 나가기로  작정 한 것을 지금 와서 아
니 나간다기가 싫으니까 나는  나대로 전장에를 나갈 터이다” “어떻게 나간단 
말이오?” “혼자 나가면 못쓰느냐?”  “그러면 나도 형님과 같이 갑시다” “
너는 그렇게 할 것이  없다. 네가 날 따라가서는 외조모의 한을  풀어 줄 도리가 
없으니까 너는 잔말말고 군총에를 들어가거라” 하고 꺽정이가 봉학이에게 말을 
일렀다. 꺽정이는  봉학이의 성공을 도와줄  겸 왜전을 한번  구경하려고 출전할 
맘을 먹게 된  터이라, 전장에서 전공을 세우더라도 공이 세상에  드러나기를 바
라지 아니하므로 항오에 끼여서  군율에 얽매이느니보다 필마 단기로 맘대로 진
상에서 출몰하는  것이 수단을 다하기에  도리어 낫다고 생각하였다.  “내가 내 
풀로 따로 가는 것이 군사로  각 떼에 매이어 가는 것보다 조금도 못할 것이 없
다. 내가 너의 뒤를 밟아 내려가면 중로에서든지  진상에서든지 서로 만나 볼 수
도 있을 것이다” 하고  꺽정이가 봉학이에게 말하는데, 봉학이가 “형님, 꼭 뒤
에 오실 테요?”  하고 뒤를 다지다가 “ 내 말을  믿지 않는 것이 네가 사람이
냐?” 하고 꺽정이가 꾸짖으니 봉학이는 다시 두말하지  못하였다. 그 뒤에 봉학
이는 도순찰사 휘하의 아병이 되어 도순찰사  행진에 따라가게 되었는데, 꺽정이
는 그 동안에 양주 집에 내려가서 병신 아버지의 시중을 잘 들라고 집안 식구에
게 당부하고 너무 상없이 장난치지  말라고 백손에게 말을 이르고 집을 떠나 다
시 서울로 올라와서 며칠동안 두류하며 행장을  차리었다. 도순찰사의 진이 떠난 
뒤에 꺽정이는 전립 한 닢과  군복 한 벌을 장광도와 같이 보에 싸서 안장 뒤에 
붙이고 칠장마를 채질하여 행진 뒤를 따라갔다. 칠  장마는 허담의 준 말이니 꺽
정이가 그 말을 받아 가지고  칠장사에서 떠닐 때에 덕순이가 좋은 말은 이름이 
있는 법이라고 절 이름을 떼어서  이름지어 준 것인데 꺽정이는 칠장이 절 이름
보다도 말이름으로 더 좋다고 좋아하였었다.  이때 왜변은 어떠하였던가? 처음에 
와선 육십여 척이 도적질 하러 들어올 때,  장흥부사 한온이 수하 군병을 거느리
고 강진 가리포로  왜를 막으러 나가다가 길에서 전라도 병사  원적을 만났었다. 
원적은 친히 왜를 막으려고 병영 군마와 영암  군졸을 통솔하고 나온 길인데, 장
흥 군병의 정예한 것을 보고 한온을 자기 좌우에 붙들어 둘 맘이 나서 가리포로 
가지 말고 자기를 따라서 영암  달량영 작은 성으로 함께 몰려들어가는 것이 득
책이 아닌 줄까지 알았으니 병사의 말을 거역할 길이 없어서 영암군수 이덕견과 
같이 병사의  뒤를 따라 왔었다. 왜가  달량성을 에워쌌을 때 원적은  성 북문을 
지키고 한온은  성 남문을 지키었는데, 원적이  왜의 강한 것을 보고  겁이 나서 
남문으로 와서 “왜적이  북문으로 많이 덤비어 내가  북문을 지탱할 수 없으니 
어찌하면 좋은가?” 하고 한옴에게  말하니 한온이 성을 내며 “주장의 맘이 한
번 흔들리면 군심이 와해될 것 아닙니까. 내가  죽기를 다하여 북문을 지킬 것이
니 지금부터 나문을 지키십시오” 하고 남북문을  바꾸어 지키게 되었다. 원적이 
남문에 있어 본즉 왜적이 북문에는  가지 않고 모두 남문으로 모여드는 것 같아
서 끝끝내 지킬 용기가 없어서 자기 머리에 썼던 전립을 벗고 자기 몸에 입었던 
군복을 벗어서 성 아래로 내려뜨리어 항복 비는  뜻을 보이었다. 왜는 이것을 보
고 남문을 지키는 장수가 하잘것이  없는 위인인 줄을 알고 힘을 다하여 남문을 
들이쳤다. 왜의 아우성  소리 속에 남문이 마침내 깨어지니 원적은  머리를 싸안
고 벌벌  떨다가 왜의 칼에 맞아  죽고, 이덕견은 목숨을 빌어  보전하여 왜에게 
사로 잡히었다. 북문을 지키던 한온이 남문이 깨어진  것을 알고 손에 잡았던 활
을 땅에 동댕이치며 “인제는  죽었다” 하고 소리를 지르고 곧 장흥사수들에게 
“너희들은 할 수 있는대로 각기  도망해 나가거라” 하고 눈물 섞어 말을 일렀
다. 그러나 장흥 사람들이 거지반 다 도망하지  아니하고 그 부사와 같이 목숨을 
버린 까닭으로 달량에서  죽은 군사 중에 장흥 사람이 제일  많않었다. 달량성이 
함락된 뒤에 해남  어란포 수군영과 강진 마도 수군영, 장흥읍내  장녕성과 강진 
병영과 강진 가리포 수군영이 모두 왜에게  함락되었는데, 강진현감 홍언성은 가
뭇없이 고을에서 빠져나가고,  전도군수 최린은 슬그머니 몸을 피하고, 전라우도 
수사 김빈은 변변히 싸워보지도 아니하고 달아나고,  전라좌도 수사 조안국은 구
원 오는 체하고  중로에서 지체하고, 광주목사 이희효는 광주를 떠날  수 없다고 
핑계하고 장흥 청병을 거절하고 해남  현감 변협은 장흥 구원 왔다가 볼꼴 사납
게 패군하고 목숨을 도망하여 해남으로 돌아갔다. 이리하여  왜는 이 고을 저 고
을을 무인지경같이  돌아다니는데 지나는  곳마다 빼앗느니 재물이요,  죽이느니 
사람이었다. 전라감사 김주가  약간 군병을 거느리고 영암으로 달려왔는데, 오기
만 왔지 어찌할  방략을 몰라서 다만 뻔질나게 장계질만 하고  앉았었다. 전라감
영 비장 하나가 김주를 보고 말하기를 왜적이 장흥을 깨친 뒤에 기세가 더욱 강
성하여 북으로 영암을 범할 일이 눈앞에 있는데,  영암이 만일 위태하면 나주 이
상이 모두 동요되어  원수군의 대군이 서울서 내려오더라도  주둔 할 곳이 없을 
것인즉 영암은 반드시  지켜야 할 터이나 그러나  감사는 일도의 주장이나 뒤로 
퇴진하는 것이 좋고,  전주부윤 이윤경이 지략이 있어 대사를 감당할  만하니 영
암을 와서 지키게 하는 것이  좋다는 뜻으로 말하여 김주는 나주로 퇴진하고 이
윤경을 불러서 가수성장으로 정하여 영암을 지키게  하였다. 이때 조정에서는 호
반의 김경석, 남치금 두 사람을 좌우방어사로  뽑고 호조판서 이준경을 도순찰사
로 정하여 선후로 출진하게 하였는데, 도순찰사  이준경은 곧 가수성장 이윤경의 
아우이었다. 이준경이  나주에 와서 주둔할  때 영암은 벌써  왜에게 에워싸이어 
있었으므로 공사에 맘이 다같이 급하여 곧 두 방어사에게 영암으로 진군할 것을 
명하였다. 방어사 남치근이 나주에서 떠날 때에  도순찰사 압에 나와서 “왜적과 
접전하는 데는 사수가 제일 요긴하온데 소인 수하에 사수가 극히 부족하오니 사
오십 명쯤만 휘하에서 뽑아 주시기를 바랍니다”하고 품하여 이준경이 허락하고 
즉시 중군을 불러 명하였다. 중군이 밖으로 나와  별장을 불러 세우고 “사수 사
십명만 뽑아서 대령해라” 하고  명령하여 순찰사 휘하 군병 중에서 남치근에게
로 갈 사수를 뽑게 되었다. 군중 물계를  짐작하는 사수들은 남치근의 위인이 혹
독하여 군사의 목슴을 초개같이 여기는 줄 알고서 각각 모피하려고 오장에게 청
하고 또  단장에게 청하는데, 왜와  접전하게 되기를 고대하던  봉학이는 도리어 
지원하고 나섰다.  봉학이가 뽑히기를 자원할때  물계 아는 사수는  “저 자식은 
천둥벌거숭이로군” 하고 손가락질을  하며 웃었다. 영암군은 소읍이 아니요, 또 
요해처이므로 성이 토성이 아니고 당당한 석축이다.  장흥부의 장녕성은 주가 천 
척안에 드는 작은  성이니 말할 것도 없거니와  전라도 병마 절도사가 좌정하고 
있는 곳인 병영성이 삼천  척이 못 되고, 광 나주 목사라고  광주와 어울러 치는 
목사 치하의 나주성이 삼천 척에 얼마 넘지  못하는데, 영암성은 주가 고가 십오
척이다. 영암성은 이와 같이  상당히 크고 동뜨게 높을 뿐 아니라  성 안의 물도 
장녕성과 같은 못이 없고 나주성과 같은 시내가 없을망정 대한불갈의 샘들이
 있어서 아무리 바깥통로가 막히더라도 조만하여서는  물걱정을 할 곳이 아니다. 
이윤경이 처음 성을 지키러 왔을  때 왜의 선성에 경겁한 백성과 군사들이 밤이
면 왜가 왔다고 헛놀라서 동요될  때가 많았는데 이런 때에 이윤경은 넓은 대청
에 촛불을 밝히고 앉아서 한가한  태도로 책을 보고 동요된 것이 가라앉기를 기
다려 조용히 전령  군졸 몇 사람을 보내서 순성하는 군사들을  신칙하였다. 이윤
경은 군사들보다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서 군사들이 먹는 음식으로 조석을 먹고 
아침부터 밤까지 군무에  분주하였다. 군량 준비와 군기 수선을 모두  게을리 아
니하고 군사를 단속하는 일면에 그 기운 돋우기를 아울러 힘쓰고 자리에 앉았을 
사이가 적도록 친히 성을 순시하고, 군사 중에  병나는 자가 있으면 몸소 의약을 
보살펴 주고 틈틈이 백성들을  효유하여 인심 진정하기에 수고를 아끼지 아니하
였다. 비단 군무가 다단할  뿐 아니라 군무 이외에도 여러 가지  일이 날로 생기
어서 이윤경은 눈코 뜰 사이가 없건만는, 일을  처리할 때에 민첩할 대로 민첩하
고서도 안상한 구석이  있어서 일의 선후 도착되는 것이 없었다.  불과 얼마동안 
지나지 아니하여 군사,백성 할 것 없이 모두  맘들이 일변하여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함께 죽기를 기약하니 인심이 성이되어 옛성 안에 새 성이 나타나며부터 
영암성은 굳은 품이 금성탕시로도 견주어 말하기  어려웠다. 처음에는 오지도 아
니한 왜에게 헛놀라던 사람들이 성 아래에 나타난 왜를 보고도 놀라지 아니하였
다. 그러나 왜들이 사람의  목을 칼끝 창끝에 꿰어들고 가로 뛰고  세로 뛰는 것
을 성 위에서 내려다볼 때  군사들도 얼굴에 황황한 빛이 없지 않았는데 이윤경
이 격려함을 마지  아니하여 나중에 군사는 고사하고  예사 백성들까지 성 밖에 
왜를 향하여 아이들  장난하듯이 손가락으로 욕질하였다. 영암성을  사방으로 둘
러싸서 물 부어 샐 틈이 없도록 하자면 만  명 사람도 부족할 것인데, 많게 보아
서 천 명이 넘을까말까한  왜에게 성을 에워쌀 힘이 있을 까닭이  없다. 왜가 한
떼로 몰리어 성의 한편을 깨쳐  보려고도 하고 여러 떼로 나뉘어 성의 이 문 저 
문을 함께 들이치려고도  하였다. 이윤경은 장졸을 신칙하여 왜가 멀리  있을 때
는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가 가까이  들어온 뒤에 활로 쏘아서 화살을 많이 허비
하지 아니하고, 왜가  성에 사다리를 놓고 올라오려고 할 때에는  불끄럼지를 내
어 던지거나 끊는 물을  내려부었다. 왜가 할 수 없으면 성  위를 바라보고 주먹
질하며 뒤로 물러갔다.  왜가 하루도 몇 번씩 밀물같이 들어왔다  썰물같이 나가
는데 성 안에서는 이것을 소일거리 쇠임직이 알게 되어서 조금도 겁내지 아니하
였다. 왜가 어두운 밤을 타서 성을 치기도 한두 번이 아니지마는, 이윤경이 낮번 
군사보다도 밤번 군사를  일층 더 신칙하는 까닭에 번번이 낭패  보고 물러갔다. 
왜가 성을 침범한  뒤로 이윤경은 성문을 굳이  닫고 나가지 아니하여 장졸들이 
한번 나가 접전하기를  청하니 이윤경이 “가만히들 있거라. ” 하고  눌러 두었
다가 어느 날 저녁때 왜들이  맘이 해이하여 대오가 산란하여진 것을 성 위에서 
바라보고, 성문을 열고 군사를 풍우같이 몰고 나가서  왜의 목 삼십여 개를 베어 
가지고 들어왔다.  며칠 뒤에 왜의 대오가  전날보다도 더 산란한 것을  성 위의 
장졸들이 바라보고 또 한번  나가기를 청하니 이윤경이 “이것은 우리를 꾀이려
는 것이다. ” 하고 허락하지 아니하였더니 저녁때가  다 되어 왜가 물러갈 때에 
양편 길 옆에서  난데없는 왜들이 꾸역꾸역 나오는  것을 보고 성위의 장졸들은 
이윤경을 귀신같이 여기었다.  이윤경이 자기의 가진 병력이  영암성을 지키기에
는 넉넉하나,  멀리 쫓아 버리기에는  부족한 까닭으로 초조하게  생각하고 있을 
때에 원수가 나주에 유진하고  방어사가 영암으로 출진하는 기별을 듣고 날마다 
기다리는데 어느 날 저녁때 성 밖에 왔던 왜가 창황히 뒤로 물러나가며 왜의 앞
에 멀리 진토가 일어나는 것을 바라보았다.
  14
  이윤경은 왜가 꾀어내려고 꾀쓰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여 군관 이삼 인과 같이 
성 위에 서서 진토 일어나는 곳을 멀리 바라보고 있는 중에 석양 햇빛에 기치가 
어렴풋이 보이었다. 군관 중에 눈 밝은 사람  하나가 이윤경의 옆으로 가까이 와
서 “방어사진의 선봉대가 분명합니다. ” 하고 아뢰자  다른 군관이 곧 그 뒤를 
이어 “우리가 지금 왜적의  뒤를 엄습하면 성공할 것이 아니오이까? 곧 출전하
도록 지휘합시지요. ”  하고 품하니 이윤경이 고개를 가로 흔들며  “왜적이 물
러갈 때 뒤에 매복을  남겼기가 쉬우니 아직 동정을 보지. ”  하고 군관의 말을 
좇지 아니하였다. “적병이  창황히 물러가는 것을 보면 그런 생각을  못했을 것 
같습니다. ” “교활하기 짝이 없는 왜적이 우리가  뒤에 있는 것을 알면서 그만 
생각을 못할 리가 없어. 아직 가만히들 있게. ” 하고 이윤경이 말하여 군관들은 
다시 다른 말을 하지  못하였다. 이때 왜는 그 앞에 나타난  진을 향하여 한숨에 
덮칠 것 같은  기세를 보이더니 득리하지 못한 모양인지 분분히  뒤로 물러났다. 
왜가 성을 칠 때 진 쳤던 곳에는 길  옆에 작은 수림이 있었다. 왜가 되쳐들어와
서 수림을 의지하고 진을 치며  앞에 있던 진이 왜의 뒤를 쫓아들어와서 기호와 
복색이 성 위에서 보이는데 그 진이 다른 진이 아니라 곧 방
어사 남치근의  진이었다. 선봉대에는 사수들  외에 돌팔매질꾼 한  패가 있어서 
빗발같이 쏟아지는 화살과  돌팔매에 왜가 앞으로 덮치지  못하고 뒤로 밀린 것 
같았다. 이윤경의 옆에  있는 군관들이 나가 싸우고 싶은 맘이  탱중하여 주먹을 
문지르고 손바닥을 비비면서  이윤경의 눈치를 살피는데, 이윤경이  이것은 본체
만체하고 성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군관 중  한사람이 참다 못하여 “왜적이 먼
저 복병을 했었더라도 지금쯤은  다 거두었을 것 아닙니까?” 하고 물으니 이윤
경은 말이  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  이었다. “인제 앞뒤로 치면  좋지 않겠읍니
까?” “가만히 있어. ” “가만히 있다가  때를 놓치면 어찌합니까?” “우리의 
나서는 것을 방어사가 공 다툼하는 줄로 알아서는 못쓰니까 형편 보아서 우리는 
방어사가 첫진에 공  세우는 것을 구경이나 하세.” 군관들이 이윤경의  말을 듣
고 모두 얼굴에 낙심하는 빛이 보이니 이윤경이 적이 웃으며 군관들을 돌아보고 
“오늘 싸움에 왜적을 함몰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라 정작 대공을 세울 날이 앞에 
있을 터인즉 공 못  세울까 보아 걱정들 할 것이 없네.”  하고 말하여 군관들의 
얼굴빛이 곧 풀리었다.  이때 남치근이 왜진을 향하여 진을 벌리고  선봉장 소달
을 시켜서 싸움을 돋우게 하였다. 소달은 갑옷  투구로 몸을 단단히 단속하고 절
따마를 타고 진전에 나서서 큰칼을 휘두르며  “나는 방어사 장하의 소별장이다. 
내 칼을 대적할 놈이 있거든  앞으로 나서거라!” 하고 큰소리로 외치었다. 왜들
이 그 외치는 소리는  알아듣지 못하나, 싸움 돋우는 것인 줄을  알고 갑옷 투구
를 갖추고 말을 탄 장수 한 사람이 진전으로 나서서 무어라고 알아듣지 못할 소
리를 지르더니  곧 말을 몰아 소달에게  대들었다. 소달이 맞아 싸워  수합이 못 
되어서 왜장의 투구를 칼로 쳐서  깨치니 왜진에서 다른 장수가 급히 말을 재쳐 
내달아서 투구 깨어진 사람을 구하여  진으로 돌려 보내고 대신 소달과 칼을 어
우르려고 할 때, 남치근이  소달을 잠시 쉬게 하려고 천총 한  사람을 보내어 소
달과 바꾸게 하였다. 소달이 본진에 돌아와서 말에서  내리기 전에 왜장이 그 천
총의 목을 베어 칼 끝에  꿰어들고 진전에서 횡행하니 소달이 이것을 보고 분기
를 참지 못하여 말을 몰아  다시 진전으로 나가서 왜장과 어우러져 싸우게 되었
다. 소달은 남치근의  수하에 제일로 치는 군관이니만큼 원력이 장사이고  칼 쓰
는 법이 능란하건마는 왜장을 당치  못하여 오는 칼을 막아내기에 죽을 힘을 다
하였다. 소달이 심겁이  나서 급히 말머리를 돌리어 본진으로 도망하려고  할 즈
음에 왜장의 날랜 칼이 소달의 머리 뒤를 범하였다.
  15
  소달이 안장 위에 엎드려서 겨우 왜장의 칼을 피하고 황망히 본진으로 달려오
는데, 왜장이 큰소리를 지르며 뒤를 쫓았다. 남치근이 이것을 보고 급히 사수 십
여 명을 보내어  사수들이 진전에 벌려서서 왜장을  쏘았으나 그 왜장이 머리에 
투구, 목에 호황, 몸에 갑옷을  갖춘 외에 낯에 면갑까지 써서 화살을 겁내지 아
니하였다. 왜장이 소달을 버리고 사수들에게로 달려오는데, 기세가 십여 명을 한
칼에 무찌를 것  같으니 사수들이 도리어 겁이나서 제각기 뒷걸음을  쳤다. 진문 
안에서 내다보고 있던 사수 한 사람이 분연히 앞으로 나서서 곧 활을 그어 대더
니 첫번에 날아가는 살이  왜장 탄 말의 한편 눈을 꿰어뚫었다.  그 말이 갑자기 
들뛰어서 왜장이 억제하려고 할 즈음에  둘쨋번 살이 말의 성한 눈을 마저 꿰어 
소경말이 발광치며 왜장은 마침내 말께서 떨어졌다.  남치근이 이것을 보고 왜장
을 잡으라고 호령하며 패전에 분이  난 소달이 다시 말을 타고 진전으로 내달았
다. 말을 버리고  도망하는데 소달이 말을 재쳐 쫓아가서 큰칼로  한번 내려치니 
왜장의 투구에서 불이  번쩍 나며 왜장이 앞으로 꼬꾸라졌다. 소달이  말께서 뛰
어내려서 왜장의 머리를 버히려고 할  때에 왜진이 풀리며 여러 왜들이 함께 몰
려나왔다. 왜들이 일변으로 그 왜장을 구하고 일변으로 소달을 에워쌌다. 남치근
이 이것을 바라보고 급급히  장졸을 휘둥하여 풍우같이 쫓아나가서 왜들과 싸움
이 어우러질 판에  요란한 북소리가 성 안에서 울려나왔다. 왜의  괴수가 뒤에서 
나는 북소리를 듣고 성 안 군사가 나오는 줄 알고 황황히 군사를 거두려고 하였
다. 그러나 앞에 있는 남치근이 왜의 거동을  보고 더욱이 싸움을 동독하여 왜는 
다신 진을 뭉칠 사이가 없이 패진하게 되었다.  왜가 흩어져 도망할 때에 가까운 
곳에서는 칼과 창에 찔리고 먼 곳에서는 화살과 돌팔매에 맞아서 꺼꾸러진 것이 
적지 아니하였다.
  성 위에서 바라보던 이윤경이  접전이 시작되려는 것을 보고 군관들에게 말을 
일러서 군사를 시켜 북만 울리게 하고 여전히  성 위에서 구경하고 있었는데, 말
탄 군관 하나가 큰칼을 휘두르며 왜들을 짓치고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손가락으
로 카리키며 “저기 저 군관이 범같이 날뛰는군.”  하고 옆에 있는 군관을 돌아
보니 “그 군관이 아까 적장에게 쫓기던 사람입니다.” 하고 군관이 대답하였다. 
“그 사람일까? 글쎄 그 사람 같군. 아까는  어째서 쫓겼는지 모르나 범 같은 무
서운 사람일세. 왜적이 그 칼앞에 얼씬 못하는 것을 보게.” “아까 패한 분풀이
로 죽을 힘을 다 내는가 보오이다.” “글쎄.” “왜적이 다시 진을 뭉치려는 것 
같습니다.” “저판에 진이 뭉치어지나. 저거 보게, 도망질치기 시작하네.” “저
기 먼저 도망하는  것이 괴수인가 봅니다.” “괴수 명색이 설마  먼저 도망하겠
나.” 이윤경은 왜가 다  도망질 친 뒤에 방어사가 군사 거두는  것을 보고 비로
서 성 위에서 내려와서 성문을 열고 방어사의 진을 맞아들이었다.
  남치근이 이날 접전에 왜의 머리 칠십여 급을  얻었는데, 그 중에 이십여 급은 
소달이 혼자서 베어온 것이었다. 남치근이 소달을  불러서 “먼저 적장에게 패한 
것은 죄주어 마땅하되 뒤에 역전한 공이 있어  용서하니 그리 알아라.” 하고 이
르니 말 눈을 쏘아 맞힌  사수를 불러들이라 하여 한 사람이 대령하니 남치근이 
친히 말을 물었다. “너의 성명이 무엇이니?” “이봉학이올시다.” “네가 전소
에서 왔느냐?” “아니올시다. 이번에 새로 군총에 뽑히여 왔소이다.” “그러면 
도순찰사 휘하에 있다가 왔느나?” “그렇소이다.” “너 같은 사수는 희한하다.
” 하고 칭찬한 뒤에 곧 옆에 있는 중군을 돌아보며 “저 이봉학이란 아이를 단
장을 시키라고.” 하고 분부하는데 중군이 “먼저  오장을 시키지 않아도 좋소이
까?” 하고  품하니 남치근이 화를 내며  “단장은 고사하고 대번에 초관이라도 
좋고 파총이라도 좋아.” 하고  호령하여 중군은 다시 두말 못하고 물러갔다. 남
치근이 이봉학의 공을 기록에 올리게 한 뒤에 곧 뒤걸음치던 사수 십여 명은 모
두 쇠도리깨로 때려 죽이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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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치근이 입성한 뒤에 이삼 일  지나서 방어사 김경석의 진이 접전이 없이 입
성하였다. 좌우방어사가 한데 모이고 보니 군사도  많고 장수도 많아서 영암성은 
방비가 더욱 든든하여  아무리 강한 도적이라도 감히 넘보지 못할  만하였다. 그
러나 이것은 외양뿐이고 내평은 실상  이윤경이 혼자 지킬 때만 같지 못한 것이 
남치근과 김경석과 이윤경이 주장이  각각 달라서 군사들까지도 합심이 잘 되지 
못하였다. 그중에 남치근이  성정이 불 같아서 군사고 백성이고 죄가  있으면 용
서없이 벌을 주되, 회술레와 매질은 말할 것도  없고 박살과 효수도 대수롭지 않
게 여기니 이윤경이 보다가 못하여  남치근과 한 자리에 모이어 앉았을 때 “이
런 때 군민의  죄를 이심하게 밝히시면 인심이 도리어 동요되기  쉽습니다.” 하
고 충곡으로 말하였더니 남치근은 “방어사가 수성장에게 절제받는 사람이 아니
오.” 하고 거드름으로 대답하여 재미없게 자리를 파한 일까지 있었다. 이윤경의 
말과 같이 남치근이 너무 혹독한  탓으로 인심이 적이 동요되던 중에 나주에 있
는 도순찰사에게서 “방어사가  이미 입성한 바에 가수성장은  본부로 돌아가라.
” 하고 전령이  내려와서 소문이 밖으로 퍼지며  인심이 그시로 발끈 뒤집히었
다. 성안 백성들은  “수성장이 떠나는 날이면 이 성은 고만이니  우리도 수성장 
뒤를 따라 떠나감세.” “집이고 재물이고 첫째 목숨이  살아야 하지 않나? 두말 
말고 그리 합세.” 하고  수선수선하였다. 그때 도순찰사 이준경이 전령 외에 형
제간의 사찰로   “형님은 이미 소임을 다하였으니 인제 속히  왜적을 피하시라.
” 하고 그  형을 권하였는데, 이윤경이 역시 사찰로 “왜적의  진퇴가 무상하여 
성 지키는 소임을 아직 다하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평소에 항상 나라를 위하여 
죽기를 원하던 나로서 지금 이 성을 버리고 갈 수는 없노라.” 하고 거절하였다. 
그 뒤에 나주에서 또 사람이 왔었는데, 이윤경이  문 지키는 군사를 신칙하여 성
안에 들이지 아니하고 온 사람이  잘 돌아서지 아니하는 것을 활로 쏘아 쫓아버
리게 하였다. 나주서 온  사람을 활로 쏘아 쫓았단 말이 성안에  퍼진 뒤에야 수
선수선하던 것이 비로서 가라앉아서 돌로 쌓은 성안에 인심으로 쌓았던 성이 다
행히 무너지지 않게 되었다.
  이윤경과 이준경은 당시에 난형난제라고 일컫던 형제라 인품이 서로 비등하나 
형만한 아우가 없다는  말대로 아우가 형만 못한 것이 많았다.  그중에도 지모방
략은 아우가 형을 따를 가망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야기로 형제의 지략이 현격
한 것을 볼 수 있으니 그 이야기는 이러하다.  그의 조부 되는 이세좌와 그의 부
친 되는 이수정이 연산조 때 사화에 죽은  까닭에 이윤경, 이준경이 육칠 세밖에 
아니 된  어린아이로 멀리 귀양가게  되었었는데, 형제 같이  귀양살이하는 중에 
옷이 이주머니가 되어서 어느날 준경이 온몸을 끄적거리며 울고 앉았는 것을 보
고 “너 새 옷이 입고  싶으냐?” 하고 웃으며 물으니 준경이 눈물을 가로 씻고 
세로 씻으며 “새 옷이 어디서  나오?” 하고 물었다. “가만히 있거라. 내가 새 
옷을 입게 하마.” 하고  꾀를 내어 점고받는 전날 저녁에 형제가  같이 입은 옷
을 벗어서  군불 아궁에 넣어서  태워버리었다. 이튿날 보수인이  두 벌거숭이가 
앉았는 것을 보고 관가에 아뢰어서 원이 급히  새옷들을 지어 주게 하였다. 그때 
윤경이 나이가 조금 많아서 꾀가 나았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윤경, 준경의 
형제가 자치동갑인 까닭에 꾀가 더 나고 덜 날 것이 없었고 윤경이 특히 천생이 
지모가 많았던 것이다. 이준경이 그 형이 영암을  떠나지 아니할 줄을 안 뒤에는 
좌우방어사에게 영을 내리어 수성 일절에는 방어사라도 수성장의 의견을 좇으라 
하여 남치근과 김경석은 “원수가 공에도 사를 본다." 하고 불쾌한 맘이 없지 않
았으나, 원수의 영을  거역할 길이 없어서 매사를 이윤경과 의논하게  된 까닭으
로 영암성의 방비가  다시 안전하게 되었다. 왜가 다시 나타나기  전에 좌우방어
사의 부하들은 별로 일이 없었다. 어느 날  식전에 남치근이 군관 한둘을 데리고 
부하 군사들의 숙소를  돌아보는데, 한 곳에 이르니 군사들의 손뼉치고  웃는 소
리가 밖에까지  들리었다. 남치근이 미간을  찌푸리고 안에를 들어선즉  군사 한 
떼가 죽 둘러서서 무엇을  들여다보다가 쉿소리에들 놀라서 일시에 좌우로 갈라
섰다. 군사들이 둘러섰던 곳에 유엽전이 쥐눈을  꿰어뚫고 나가서 땅바닥에 들이
박히었었다. 방어사를 따라온  군관 한 사람이 그 쥐를 들여다보고  가까이 섰던 
군가에게 “누가 이것을 쏘았느냐?” 하고 물은즉 그 군사가 말이 없이 손을 들
어 한 사람을 가리키는데, 그  사람이 곧 왜장의 말눈을 쏘던 사람이었다. 그 군
관은 “몹시도  활을 쏘고 싶든가  보다”하고 혀를 차고  돌아섰다. 남치근ㅇ이 
미간의 주름을 펴고 그 사람을 바라보며 “네가 이봉학이라지?”하고 물어서 이
봉학이가 “네”하고 대답한 뒤에 살 맞은 쥐를 가리키며 “저것이 무슨 장난이
니? 재주 자랑이냐?” 하고  가볍게 꾸짖으니 봉학이가 “아니올시다” 하고 허
리를 굽신하였다. 군사에게  말 묻던 군관이 봉학이 옆에 와서  가만히 “쥐고기
가 먹고  싶던가?” 하고 조롱하여 봉학이가  “내가 감질난 어린아이요?”하고 
말대꾸를 하는데 부지중에 목소리가 좀 커서 그 군관이 나직한 목소리로 “존전
에서 방자스럽게 무슨 큰소리야!”하고  꾸짖었다. 남치근이 다시 미간을 찌푸리
고 “왜 쥐를 쏘았느냐?”하고  봉학이가 물으니 “쥐가 참새와 싸우는 것을 여
럿이 구경하옵다가 소인더러 쥐와  참새의 눈을 쏘아보라고 말들 하옵기에 장난
삼아서 쏘았습니다.  쥐고기를 먹으려고 한  것이 아니 올시다”  하고 봉학이가 
하지 아니하여 좋을 발명까지 하였다. 남치근이  봉학이의 발명을 듣고 찌푸렷던 
눈살을 펴고 “그래, 쥐만 잡았지 참새는  놓쳤구나”하고 말하여 봉학이는 싱글
싱글 웃고 있는데 오장 하나가  눈께 살을 맞아 대가리가 바숴진 참새를 방어사 
앞에 잦다 놓으며 “참새는  날아가다가 살을 맞고 떨어졌소이다”하고 말을 아
뢰니 남치근이 빙그레  웃으며 한번 유심히 봉학이를 바라보는데, 그  눈치가 신
통히 여기는  모양이었다. 남치근이 군사의  숙소를 돌아 들어간  뒤에 봉학이를 
대에서 뽑아올려서 자기 신변에 두게 되었는데,  봉학이의 위인이 영리하여 뜻을 
잘 받드는 까닭으로 불과 며칠 안 지난 뒤부터 남치근이 봉학이를 다시 없이 신
임하게 되었다. 어느 날 이윤경이 좌우방어사를  동헌으로 청하여 점심을 대접하
는 자리에 남치근이  봉학이를 불러오게 하였다. 점심이 끝난 뒤에  수정장이 좌
우방어사와 같이 앉아서  봉학이의 활재누를 구경하게 되었는데,  김경석이 자랑
하는 남치근을 무안  보이려고 아부쪼록 쏘지 못할  것을 생각하고 있다가 마침 
동헌 앞마당에 있는 느티나무에 까치 한 마리가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네가 참
새 눈을 쏘았다니 저기 느티나무에 앉은 까치의 왼쪽 눈을 쏘아보아라”하고 봉
학이에게 분부하였다. 보학이가  고개를 비틀고 “왼쪽 눈만  맞추기는 어렵소이
다” 하고 대답하니 김경석이 다시 말하기 전에 남치근이 “참새 눈을 쏘는 
놈이 까치 눈을 못 쏜단 말이냐?”하고 화증을  내었다. 김경석은 남치근의 얼굴
을 보며 빙글 웃고  이윤경은 “왼쪽 눈 할 것 없이  그대로 까치를 쏘아보아라. 
까치만 쏘아 맞혀도 날 쏘는  활이다” 하고 말한즉 봉학이가 싱끗 웃으며 “외
눈 하나만 쏘아 맞히려면 까치가  죽지 않고 날아갈 듯하여 쏘기가 어렵다고 말
씀을 아뢰었습니다. 만일  왼눈에서 오른눈까지 꿰어뚫어도 좋다시면  한번 쏘아
보겠습니다”하고 말을 아뢰는데,  남치근이 “잔소리 말고 어서  쏘아라” 하고 
호령기 있는  말로 분부하였다. 봉학이가  만일 실수하여 까치눈을  쏘아 맞히지 
못하면 자기의 주장인 남방어사가 무색을 볼 뿐 아니라 남방어사 솜씨에 자기의 
목숨까지 위태할는지 모르는 까닭으로 까치  눈을 쏘기 좋은 자리로 골라 가 서
서 일심정력을 다 들이어 활을 잡아당기었다. 봉학이가  깍지 손을 떼고 활을 내
리기 전에  까치가 깍 하며 펄쩍  뛰었다. 남치근이 자리에 들어서서  뜰 아래에 
섰는 군사들을 내려다보며 “까치가 떨어졌지야?”하고 묻고 곧 “어서 나가 집
어오너라”하고 분부하였다. 군사 한 사람이 쫓아나가서  살 맞아 떨어진 까치를 
살째 집어들고 들어오는데, 다른 군사들을 보이느라고  걸음이 재지 못하니 남치
근이 조급하게 “빨리 이리 가져오지 못하느냐!”하고 호령하였다. 마루 위에 섰
던 군관이 군사들에게 까치를 받은 뒤에  이윤경이 “그래, 왼편 눈이 맞았는가?
”하고 물으니 군관이  “네” 하고 대답하며 화살이  두 눈에 가로질린 까치를 
내어 들어 보이었다.  남치근이 이것을 보고 한번 허허 웃고  김경석을 돌아보며 
“영감, 자 어떻소? 내 말이 거짓말이오?”하고  오금박듯이 말하니 김경석이 “
내가 언제 영감 말씀을  거짓 말씀이라고 합디까?”하고 조금 기를 내어 말하였
다. “영감은 아까 내말을 곧이듣지 않으시는  것 같습디다그려” “나는 영감의 
하시는 말씀을 그저 듣고  있었을 뿐이오”하고 남치근과 김경석이 서로 재미없
이 말할 때에 이윤경이 웃으면서  “저 아이의 귀신 같은 활재주를 눈으로 보지 
않고 이야기만 듣는다면 누구나 다 곧이듣지 않을 것입니다” 하고 남치근과 김
경석의 얼굴을 한번  차례로 돌아보고 “세상에서 이 사람이 명궁이다,  저 사람
이 명궁이다 하지만들 저  아이 같은 명궁이야 희한하지 않습니까? 한량을 많이 
겪어 보신 두 분 영감은 혹시 달리 보셨는지 모르지만, 나는 처음 봅니다. 백 보 
밖에서 버들잎을 쏘아 뚫는  것이 저 아이 같아서는 지이차이한 일이겠습니다” 
하고 입에 침이 없이 봉학이의 활재주를 칭찬하고 “영감께서 잘 북돋우셔서 국
가의 동량 재목을 만드십시오”하고  남치근에게 부탁하였다. “계씨대감 휘하에 
있던 아이이지요” “영감께로 잘 왔습니다. 순찰사  진중에 있었던들 두각이 잘 
드러나지 못했을 터이지요” “그럴는지 모르지요. 내가  아무쪼록 장발해 줄 생
각이오” “생각 잘하신 일입니다” 하고 이윤경이 남치근과 수작하기를 그치고 
잠자코 앉았는 김경석을 돌아보며 “인재가 원래 쉽지 않은 것인데 인재가 있어
도 세상이 알아주어야 인재가 되지 않습니까? 영감이나 내가 아까까지도 금새의 
양유기가 한 성안에  있는 줄을 모르지 않았습니까” 하고 말을  붙이었다. 김경
석은 남치근이 무하 사람을 놓고 높아하는 것이 비위에 마땅치 아니하여 강잉히 
말하는 태도로 “금세의 양유기일는지는 모르나 하여간 잘 쏘는 활이구만요”하
고 말하다가 “양유기가 옛사람인  까닭에 영감이 돋히어 보시는 말씀이지 실상
은 양유기의  활재주가 이봉학이만 했겠습니까?”하고  이윤경이 호되게 봉학을 
편들어 말하는 바람에 “글쎄요”하고 다시 입을  다물었다. 김경석이 자기 처소
로 돌아왔을 때 기상이 좋지  못한 것을 중군이 보고 괴이쩍게 생각하여 슬그머
니 따라갔던 군관을  불러가지고 “오늘 점심에 무슨일이 있었나?”하고 물어서 
그 군관이 이봉학이의 활 쏜  것을 이야기하고 “그 사람의 귀신 접한 활솜씨는 
누구든지 칭찬 아니할 쑤 없습디다. 그렇지만  남방어사가 우리 방어사 영감께다 
자기 부하를 자랑할 때 우리가  무색하기라니” 하고 말끝을 내기도 전에 그 중
군이 “잘 알았네. 영감께서 남방어사의 자랑에  비위가 상하셨네그려” 하고 곧 
군관을 내보내고 김경석의  거처하는 방으로 들어갔다. “남방어사  영감 부하에 
훌륭한 사수가 있더랍지요?”  “그래 어째?”“우리 투석대에 있는 배돌석이의 
팔매 재주도 그 사수의 활재주만 못지 않을  것입니다” “배돌석이?” “네. 그 
배가가 소인의 고향 아이라 소인이 잘 압니다”“ㄱ향이 어디야?”“김해올시다
”“김해 아이면 돌팔매질을  잘하겠지” “예사로 잘하는 것이  아니올시다. 김
해서눈 저무후무라고 치는  유명한 팔매질꾼입니다. 한번 불러  들이셔서 재주를 
봅시지요?” “어디 한번 불러볼까?” 하고 김경석은 곧 돌팔매꾼 배
돌석이를 불러오게 하였다. 배돌석이는 키가 작달막한, 가슴은 바라질 대로 바라
지고 얼굴은 가무잡잡한데 이목구비가  오종종하게 박히었었다. 김경석이 자기가 
씻은 백채줄기같이  깨끗하게 생기니 만큼,  돌석이 인물이 눈에  들지 아니하여 
현신을 받은 뒤에 가찰하는 말이 없었다. 중군이  보다가 민망하여 “지금 곧 팔
매질을 시켜 보오리까?” 하고  의향을 물으니 김경석이 말이 없이 고개를 끄덕
이었다. 중군이 방  밖으로 나와서 팔매질 준비를 지휘할때 돌석이를  보고 “이
애, 혹시 실수할라. 정신차려라”하고 넌지시 당부하니 돌석이가 “염려맙시오”
하고 선선히 대답하였다. 큰 바가지 하나를 얻어다가  한편 담 구석에 엎어 매어
달고 그 바가지  위에 그 바가지 위에 먹으로 동그라미를  그려놓았다. 돌석이가 
육칠 간 밖에 가서  바가지 달린 곳을 향하고 서서 돌주머니의  끈을 끌렀다. 돌
석이는 글방 아이들이 필낭을 차듯이 돌주머니를 저고리 저고리 고름에 차고 그 
속에 동그스름한  모 없는 돌을  십여개씩 넣어가지고 다니던  것이다. 돌석이가 
돌을 내어 들고 섰다가 중군이 치라는 분부를 내린뒤에 바가지를 노려보면서 팔
매를 쳤다. 돌석이 손에서 나온 돌이 쏜살  건너와서 바가지 위에 구멍을 뚫었는
데, 그 구멍이 동그라미  안에 들었다. 다른 사람보다도 중군이 먼저 “신통하게 
맞혔다”허고 칭찬하였다. 돌석이가  첫번 던진 것까지 도합 돌 여섯  개를 연거
푸 던졌는데, 뒤에 다섯 개가 모두 첫번 뚫린 구멍으로 쏙쏙 빠져나갔다. 김경석
이 이것을 보고 비로소 “용하다”하고 칭찬하였다.  돌석이가 돌을 거두어 주머
니에 넣을 때에 김경석이 앞으로  불러서 “저 지붕위에 앉은 참새를 돌로 잡겠
느냐?”하고 물으니 돌석이가 “네”하고 대답하고 나서서 돌 하나를 남겨 손에 
들고 옆에 있던 군사를  돌아보며 “참새 대가리를 박살내어 놓을까?” 하고 말
한 뒤에 힘도 아니  들이고 슬쩍 팔매를 쳐서 참새를 잡았는데,  그 참새는 말과 
같이 대가리가 바숴졌었다.  김경석이 그 참새를 가져오라 하여 친히  손에 들고 
보기까지 하고  “팔매질이 활같이 번때는  없지만 하여튼지 재주  놀랍다. 군복 
한 벌을 상급으로 주어라”하고 좌우를 돌아보는데 중군이 싱글벙글하면서 “돌
석이가 만일 한량의 짐에  태어나서 활을 배웠던들 활재주가 이봉학인가 그자만 
못했을 리  없습지요. 돌석이는 아비가 김해  남역의 역졸이었습니다. 그 아비가 
역시 팔매를 잘 치던 손인데 소인도 아이  적에 많이 보았습니다. 아비의 팔매가 
자식에 대면  어림이 없습지요만, 그래도  석전군으로 일시 유명했습니다."  하고 
말을 길게 늘어놓다가 "돌석이 같은 특별한 재주를 어째 진작 내게다 말하지  않
았는가?" 하고 김경석이 책망하여 "황송합니다." 하고  입을 다물게 되었다. 며칠 
뒤에 김경석이 남치근과 같이  이윤경에게 모여 앉았을때 돌석이의 팔매 재주를 
자랑하니 남치근이 대번에  "팔매가 활만 하오?" 하고 말하였다. "팔매질도 귀신 
같으니까 업신여기지  못하겠습니다. 배돌석이의  팔매가 아마 이봉학이의  활만 
못지않으리다." "이봉학이  활을 눈으로 보시고도  그런 말씀을 하시오" "눈으로 
보았기에 말씀이오." "그래  참말로 봉학이의 활만 하단  말씀이오?" "나면 낫지, 
못하지 않으리다." "그러면 한번 재주 겨룸을  시켜놓고 봅시다." "좋지요." "화살
에 인정이  없으니까 영감의  자랑거리가 화살 아래  꺼꾸러지면 낭패가 아니겠
소?" "돌에  인정이 없으니까 영감의 자랑거리가  돌 아래에 꺼꾸러질는지  누가 
아오?" "어디  봅시다." "그리합시다." 하고 김경석과  남치근이 서로 말다툼하는 
것을 보고 이윤경이 허허  웃으면서  "내일 한번 각떼 군사를 한데 모아  훈련하
고 그 끝에  두 아이의 재주 겨룸을  시켜 봅시다." 하고 말하여   "좋소." "좋지
요." 하고 남치근과 김경석이 각각  대답한 뒤에 이윤경이 다시 "두 아이의 재주 
겨룸은 두  분 영감이 다 나에게  맡기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방어사가  온다는 
말이 들릴 때에 이윤경은 벌써 장졸 호궤할 것을 생각하고 그 준비로 소를 여러 
필 구해 두게 하고 술을 여러 독 빚어놓게  하였었다. 그 술이 괴기 시작하여 이
윤경이 호군할 것을 일간 일간 하던 차라 갑자기 서두르는 일과 달라서 모든 준
비가 선선하게 되었다. 있는  소를 잡고 괸 술을 걸러서 음식을  준비하고 성 동
편 넓은 빈 터전에 한  곳에 부계매고 여러 곳에 차일 쳐서 자리를 준비하고 호
군 끝에  놀리려고 재인 광대까지  뽑아서 등대시키었다. 재인  광대는 이윤경이 
군중에 쓰려고 전주서 영암으로 올 때에 수백 명 복색을 갖추어 데리고 왔던 것
이다. 이윤경은 이와 같이 호군을 주장삼았으나, 남치근과 김경석은 이윤경의 뜻
을 모르고 다만 이봉학이와 배돌석이 재주 겨룸 시키는 것을 주장일로 생각하였
다. “팔맷돌은 구하기가 쉽고도 어려워서 환도를 대신 주니 그리
 알아라” 하고 말을  일렀다. 이윤경이 전령 군사를 지휘하여  좌우방어사의 부
하에서 이단 군사 오십 명씩 불러다가 봉학이와 돌석이를 각각 옹위하고 물러가
게 한 뒤에 안침으로 들어와서  자리를 잡고 앉으며 “오늘 재주 겨룸이 잘되었
지요?” 하고 말하니  김경석은 “글쎄요”하고 고개를 비틀고 남치근은 뾰루퉁
하고 말이 없었다. “둘이  다 유용한 인물인데 서로 헤치지 않은  것이 첫째 잘
된 일이고, 스ㅇ부가 없어서 이편저편 낯이 깎이지  않은 것이 둘째 잘된 일입니
다. 두분 영감이  잘된지 않았다고 하시면 내가 시비를 하겠습니다”  하고 이윤
경이 허허 웃으니 김경석은  대번에 고개를 끄덕이고 남치근은 한참 생각하다가 
“영감의 말씀이  옳소” 하고 대답하였다.  “술과 고기를 준비한  것이 있으니 
장졸을 호궤합시다” “좋소” “좋지요” “오늘 하루를 즐겁게 보내려고 재인 
광대들을 지휘해 두었는데  두 분 영감의 의향이 어떠하실는지요?”남치근은 맘
에 싫을 것이 없어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지만, 광대 소리를 들을  줄 아는 김
경석은 반색하다시피 좋아하며 “좋다뿐이오.  지금이라도 곧 소리판을 차리시구
려” 하고 재촉하듯이  말하였다. 이윤경이 수하 군관 두서너 사람을  불러서 한
두 마디 말을 분부하더니 심부름꾼 남녀들이 술동이와 고기 안주 목판을 지게로 
짊어 나르고 머리로 이어 날라서  부계 위와 여러 차일 속은 말할 것 없고 풀밭 
위에까지 여기저기 술자리가 벌어졌다. 술기운들이 돌  만한 때에 재인 광대들이 
떼로 몰리어와서 부계 아래에서 문안을 드리고 군관의 지휘를 따라서 이리 저리 
흩어졌다. 얼마 아니  지나서 이곳에 단가 저곳에 잡가 노랫소리가  곳곳이 일어
나고, 여기 줄타기 저기  땅재주 구경판이 군데군데 벌어졌다. 각진 장졸이 서로 
왕래하기 시작하여 차일 앞과 풀밭 위에 사람의 그람자가 어지럽게 왔다갔다 하
였다. “한 사발  받으시오” “안주 집으시오” 하고 술고기를 권하는  사람 “
재주를 잘 넘는데, 참말로 눈깜짝하면 못 보겠군”  “토끼 화상을 잘 그리는 구
려” 하고 재인  광대를 평하는 사람들, 서로서로 웃고 지껄이는  중에 “수성장
은 당대 인물이오” “같은 형제간이라도 수성장은 속이 차돌 같은 분이지만 도
순찰사는 겉위풍뿐이신갑디다” “수성장은 지모가 비상한 양반이오” “수성장
은 부하  사랑이 거룩하신갑디다. 명색   는 군사라도 부상한 것을  보면 손목을 
잡고 눈물까지 흘리신답디다” 하고  수성장 이윤경을 칭찬하는 소리가 가장 많
았다. 이때 부계위에서는  소리판이 벌어져서 광대가 어려운 목을 쓸  때마다 김
경석이 고수보다도  먼저 “좋지 잘한다”  하고 얼러 주는  중이었는데, 어떠한 
군관 한 사람이 말을 타고 달려와서 말께서 뛰어내리며 한달음에 부계위로 올라
왔다. 그 군관이 이윤경의 앞에 와서 가쁜 숨을  참아 가며 “지금 남문 밖에 왜
적이 새까맣게 몰려들어옵니다” 하고 말하였다. 이윤경이  별로 놀라는 빛이 없
어 그 군관을 보고 구개를  끄덕이고 곧 고개를 돌리어 남치근과 김경석을 바라
보며 “자리를 마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고 말하니 남치근은 “자리가 다 
무어요, 얼른 취군시키십시다”  하고 벌떡 일어서고 김경석은  “영감이 취군령
을 놓으시오” 하고 이윤경을  바라본 뒤에 “파흥이다” 하고 한옆에 물러섰는 
광대들을 돌아보았다. 이윤경이 남문에서 온 군관을  먼저 보내고 부산히 취군을 
시키는 중에 동문에서 군관이 와서 왜가 성  밖에 나타났다고 고하고, 또 서문과 
북문에서 군관들이  와서 역시 왜의  나타난 것을 고하였다.  이윤경이 남치근과 
김경석을 보고 성문 갈라 지킬 것을 상의 하니 김경석이 먼저 “영감이 갈라 보
시오” 하고 이윤경에게 일임하는  뜻을 말하여 이윤경이 “내가 갈라 보오리까 
?” 하고 남치근의 얼굴을  바라본즉 남치근이 “남문은 내가 맡은 터이니까 남
문만 빼놓고 갈라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남문도 좋지요만 제일  어려운 곳
을 영감이 맡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일 어려운 곳이 어다요?” “북문입
니다” “북문이 어째서 제일  어렵소?” “북문은 문이 약하고 성이 튼튼치 못
할 뿐 아니라 지형이 밖에서 공격하기  편하니만큼 안에서 지키기가 어렵습니다. 
왜가 이것을 잘 아는 까닭에 다른 문을 버리고 북문만을 친 때가 한두번이 아닙
니다. 우선 영감이 오시던 때도 북문 밖에서  접전 한바탕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남문은 고만두고 북문을  내가 맡으리다” 하고 남치근이 북문을 맡은 
뒤에 김경석은 서문 하나를 맡고 이윤경은 동남  두문을 얼러 맡게 되었다. 남치
근이 제일 어려운 곳을 맡은  것을 좋아하여 즉시 부하 장졸들을 거느리고 북문
으로 달려와서 군사들을 자리잡아 벌려세우고 군관 몇 사람과 같이 문루에 올라
서 성밖을 내려다보니, 성  밖에 있는 왜가 불과 백여 명인데  그나마 두패에 갈
리
어서 한 패는 성에서 멀찍이 있는 나무숲 아래에 퍼더리고 앉아서 한 패는 성에
서 가까운 둔전 위에  뭉치어 서 있었다. 둔정 위의 왜들이  문루위에 기치가 날
리고 군관이 왔다갔다 하는 것을 바라보더니 일제히 팔을 뽐내며 문루위를 가리
키고 성 아래를 가리키고 하는 것이 문루 위의 사람더러 성 밖으로 나오라는 뜻
이었다. 남치근이 문루  근처에 있는 사수들에게 활을 쏘라고 명하여  화살이 빗
발같이 날아나가니  왜들이 일시 둔전 아래로  뛰어내려갔다가 화살이 뜸하여진 
뒤에 다시 둔전  위로 올라와서 문루를 향하여 욕지하는데, 젊은  왜들은 볼기짝
을 문루 편으로  치어들고 두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남치근이 욕질하는  것을 보
고 분이 나서 곧 부하 장졸에게 출전할  준비를 명하였다. 고각이 소리나고 기치
가 움직이며 성문이 열리니 둔전 위의 왜들이 숲아래의 왜들과 합세하여 접전할 
준비를 차리는데, 남치근이 왜의 수 적은것을  업신여기어 단번에 도륙내려고 군
사를 풍우같이 몰고  내달았다. 처음 형세로는 왜들이 아무리 죽을  힘을 다하여
도 불과 얼마 동안에 하나 남지 않고 다 도륙을 당하고 말 것 같더니 다른 문의 
왜들이 차차로 모여와서  나중에는 북문 밖은 왜의  천지가 되며 형세가 처음과 
달라졌다. 남치근이 급히 부하를 거두어 진을 치다가  선봉장 소달이 간 곳이 없
는 것을 보고 군사를 놓아 찾던 차에 왜장이 소달의 머리를 칼끝에 꿰어들고 진
전에서 횡행하니 다른 장졸은 고사하고 남치근부터 이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소달은 자기의 용매을 믿고 깊이  적진에 들어가서 필마단검으로 좌충우
돌하고 다니다가 말이 앞다리에 칼을 맞아 고꾸라지며 사람도 역시 칼머리에 주
검 됨을 면치 못한  것이다. 진중 장졸이 소달의 머리를 보고  모두 기운이 죽어
서 군심이 황황할  때에 이봉학이 남치근 앞에  와서 “소인이 나가서 소위장의 
원수를 갚겠습니다” 하고 품하여 남치근이 고개를 끄덕이니 봉학이 곧 활을 들
고 진으로 나아갔다.  이봉학이가 진전에 나설 때에 왜장은 소달의  머리를 들고 
왜진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봉학이가 급히 앞으로  쫓아나가며 한번 활을 잡아
당기니 날아나가는  살이 왜장의 뒤통수를 꿰뚫어서  그자리에 고꾸라지게 하였
다. 봉학이가  소달의 머리를 빼앗아  오려고 고꾸라진 왜장에게로  쫓아갈 때에 
여러 왜들이 일시에 쏟아져 나오니  남치근이 이것을 보고 급히 진을 풀어 가지
고 쫓아나가서 접전이  나게 되었다. 화살이 날고  창,칼이 번쩍거리고 북소리,아
우성 소리가 대단하였다. 남치근이 뒷걸음치는 군사  두서넛의 목을 베고 자기의 
말을 몰아서 군사들보다  앞서 나가며 “나를 따라라!”  하고 큰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싸움이 달게 어울리기 전에 왜들이  일제히 아우성치고 앞으로 달려들며 
군사들이 와하고 도망질 하는데, 형세가 막은 물  터지는 것 같아서 장령으로 겉
잡을 수  없었다. 남치근의 신변에는 이봉학  외에 오륙십 명 장졸이  남아 있을 
뿐인데, 왜가 남치근이 대장인 줄 알고 겹겹히 둘러쌌다. 장졸 오륙십 명에 사수
가 반이 넘어서 사수들이 남치근을 중간에 두고 전후좌우로 둘러선 까닭에 왜가 
화살이 두려워 바로는  덮치지 못하였다. 그러나 살은 점점 줄어들고  왜는 차차 
욱여들어왔다. 남치근이 도저히 벗어날 가망이 없는  줄을 알고 말께서 뛰어내려 
땅위에 주저앉아서 장졸들을 돌아보며 “내가 죽거든 너희 중에 누구든지 내 목
을 베어 가지고 도망해라.  죽은 뒤 목이나마 도적의 손에 넣지  마라” 하고 환
도로 목을 찌르려고 하였다. 그옆에 가까이 섰던  군관 하나가 남치근의 환도 든
손을 붙잡고 “조금  참아 보십시오. 설마 성 안에서 구원이  나오겠습지요” 하
고 우는 소리로 말하였다. 이때 이윤경이 북문  소식을 듣고 왔다가 남치근의 패
진하는 것을 보고  놀라 급히 김경석과 같이  군마를 거느리고 나오기는 나왔으
나, 왜에게 앞이 막히어 더  나가지 못하고 북문 밖에서 둔전을 끼고 진을 쳤다. 
구원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거의 낙심이 되었을  때,왜들의 에워싼 것이 한구석이 
갑자기 헐리기  시작하였다. 오륙십 명  사람이 일시에 헐리는  구석을 바라보니 
그곳에 이수성장 김방어사의 군마는  나타나지 아니하고 몸에 갑주를 갖추지 아
니한 말탐 군관 한사람이 왜진을 짓쳐들어오는데, 그  군관 수중에 있는 칼이 번
개같이 놀아서 왜들이 그 앞에 수가 없이  거꾸러졌다. 그 군관이 마침내 에워싸
인 사람들에게 가까이 왔을  때, 괴상히 여기는 오륙십 명 주에  오직 한 사람이 
반갑게 내달으며, “형님이오?” 하고  소리를 지르는데, 그 소리 지르는 사람은 
곧 유명한 사수 이봉학이었다. 그 군관이 말 위에서 내리지도 않고 “오냐, 내다
” 하고 대답하고 “어서들 내  뒤를 따라나오게 해라” 하고 말하며 곧 말머리
를 돌이켰다. 남치근 이하 오륙십 명이 그 군관의 뒤를 따라서 왜진을 뚫고
 나오는데 그 군관의 칼 앞을 막는 사람이  없었다. 그 군관이 길래 앞장서서 북
문 밖 둔전  근처까지 왔었는데, 이윤경과 김경석이 마주 나와서  남치근이 부득
이 수어 수작하고 다시 살펴보니 그 군관이  벌써 눈에 보이지 아니하였다. “봉
학아, 너의 형이란  사람이 어디로 갔느냐?”하고 남치근이 묻는데  “소인도 어
디 가는 것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하고 봉학이가  대답한즉 남치근이 응 하고 
혀를 차며 찌푸린  미간을 더욱이 찌푸렸다. 이윤경이 “누가 어디  갔단 말씀이
오” 하고 물으니 남치근이 패진한  분과 부끄러움이 속에 가득 차서 입이 무거
위진 까닭에 “네,  누구 말씀이오?” 하고 이윤경이 다시 물은  뒤에야 겨우 입
을 열어 “우리  앞서 오던 군관 말이오” 하고 대답하였다.  “그것이 소위장이 
아니든가요?” 남치근은  말이 없이 고개를  가로 흔들었다. “우리는  소위장인 
줄만 알고 유심히 보지 않았구려” 하고 김경석이 말한 뒤에 “그러면 소위장은 
어디 갔나요?”하고 이윤경이  물으니 “전망했소”하고 남치근은 더 말하기 싫
어하는 기색을 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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