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꺽정 의형제편 곽오주 1

3학년2반 | 2022.01.05 07:57:01 댓글: 0 조회: 392 추천: 0
분류연재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39773
제 2장 곽오주
1
금교역말은 강음현 땅이니 금교역말서 우봉현 홍의역말로 가려면 반드시 탈미
골을 지나가고 탑거리로 나오면 청석골을 오게 된다. 탈미골도 도적의 소굴이요,
청석골도 도적의 소굴이라 말하자면 금교역말은 도적 소굴 두 틈에 끼여 있는
셈이었다.
금교역말 장날 장꾼들이 탈미골이나 청석골을 지나갈 사람이면 다다 일찍이들
나가는 까닭에 금교역말 장은 어느 때든지 중장만 지나면 다른 장터 파장머리와
같이 흩어져 가는 장꾼이 많았다. 금교역말 장날이다. 벌써 중장이 지나서 장꾼
이 많이 풀렸을 때 우락부락하게 생긴 거무무트름한 총각 하나가 쌀자루를 걸머
지고 탑거리 편에서 장으로 들어와서 바로 시겟전을 찾아왔다. 말감고가 쌀을
보고 "이거 산따다기로군. 액미가 너무 많은걸. " 하고 쌀을 타박하니 그 총각은
대번에 눈방울을 굴리며 "당신이 살 테요? " 하고 말감고에게 대들었다. "액미
많은 것을 많다는데 무슨 잔소리야! " "어떤 놈이 잔소리하우? " "쌀 내러 오지
않구 시비하러 왔나. " "내가 미쳤소? 시비하러 다니게. " "그렇거든 말씨나 좀
곱게 하게. " "사내 말이 고와서 무어 하우. " 이때 마침 상목을 가지고 쌀을 바
꾸어 가려고 온 사람이 있어서 감고는 말 시비를 그치고 쌀금을 놓고 말질을 하
는데 심사로 말질에 농간을 하고 나중에 한 되가 넉넉히 되는 것을 되수리로 치
고 차지하려고 하였다. 그 총각은 뿌루퉁하여 가지고 "고만두우. 쌀을 도루 가지
구 갈 테요. " 하고 쌀을 자루에 쓸어담아서 걸머지고 돌아섰다. 그 총각이 시겟
전에서 얼마 아니 오다가 아는 장꾼 하나를 만났다. "총각 늦게 왔네그려. " "젊
은 주인이 같이 오자구 식전부터 맞추더니 해가 한나절이나 되어서 나더러 혼자
가라겠지. 지금 온 지 얼마 안 되우. " "걸머진 것이 쌀인가? " "내 쌀 팔러 왔
소. " "자네 쌀을 팔러 왔어? " "내 새경 받은 벼를 조금 찧어 봤소. " "그럼 어
서 시겟전에 가서 내구 가게. " "닷 말이 넘는 쌀을 강구 도둑놈이 커 말루 되는
구먼. 그래 안팔구 도루 가지구 가우. " "청석골 지나가는 장꾼들은 벌써 다 나
갔을걸. " "나을 때 벌써들 나갑디다. 당신 지금 집으루 나갈라우? " 그 장꾼이
붉은 산자 흰 산자를 지푸라기로 동여서 한 손에 들었는데 그 손을 내밀어서 총
각을 보이면서 말하였다. "오늘이 우리 아버지 젯날이라 제사 흥정하러 들어왔
네. " "그럼 탑거피까지 동행했소. " "우리게까지는 오밤중에 나가두 관계없지만
청석골은 지나가기가 좀 늦었어. " "청석골도 관계없소. " "늦게 가다간 오가를
만나기 쉬우니까 말이지. " "나두 청석골을 많이 다녔지만 이때껏 오가는 낯빠닥
이두 구경못했소. " "탈미골 강가나 청석골 오가는 만나기만 하면 탈일세. " "내
가 그놈들 만나면 버릇을 가르쳐 놀 테요. " "여보게 횐소리 말게. 봉변한 사람
들이 모두 자네만 못해서 봉변한 줄 아나. " "제기, 다 우스꽝스럽소. " "저러다
가 자네가 언제든지 한번 큰코다치네. " "그럴 때까지 사우. " 탑거리까지 나
와서 그 장꾼이 자기 집으로 들어가며 "조심해 가게. " 하고 당부하니 총각이 "
오가 보거든 안부해 주리까? " 하고 픽 웃고 곧 탑고개 편으로 내려왔다.
이때는 잎을 가을이라 저녁때 바람이 제법 차건마는 아직까지 겹것도 입지 않
고 무명 흩고의적삼을 입은 그 총각이 으스스한 모양도 없이 걸음을 성큼성큼
메놓아서 길에 깔린 낙엽을 버석버석 밟아가며 탑고개를 올라왔다. 그 총각은
고개 마루턱에 서서 무엇을 찾는 것같이 한동안 이편 저편을 휘휘 돌아보다가
등에 진 쌀 자루를 한쭈 번 추썩거리고 고개를 내려가려고 하는데 왼손편 언덕
위에 사람 하나가 쑥 나섰다. 손에 칼 들고 있는 것을 보고 그 사람이 예사 사
람이 아니고 도적인 것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네가 오가냐? " 총각은 도적
을 치어다보고 "걸머진 것이 무엇이냐? “ 도적은 총각을 내려다보았다. "내 말
먼저 대답해라. 네가 오가지? " "그렇다. " "내가 걸머진 것 쌀 닷 말이다. " "닷
말이구 너 말이구 거기 벗어놔라. " "네가 이리 내려오너라. " "내 선성까지 들어
아는 놈이 무슨 잔소리냐! 얼른 벗어놓구 가거라. " "못 벗어놓겠다. " "이놈 봐
라. " 도적이 언덕 위에서 우르르 쫓아내려오며 칼등으로 총각의 골통을 내리쳤
다. 다른 사람 같으면 그만 앞으로 고꾸라질 것인데 총각은 데시근하게도 여기
지 않고 꿋뭇이 서 있었다. 도적이 피묻은 칼을 다시 둘러메려고 할 때 총각이
와락 앞으로 대들어서 바른손으로 칼 쥔 팔을 치켜들었다. 도적이 놀리는 손으
로 총각의 바른 손을 잡아 뿌리치려고 하니 총각이 왼손으로 그 팔마저 붙들었
다. 총각은 도적의 두 팔을 잡아서 위로 치켜들고 머리로 그 가슴을 떠받아서
터진 머리에서 나온 피가 도적의 겹저고리 앞설을 칠감하여 놓았다. 도적이 두
팔을 치어들린 채 한동안 뺑뺑이를 돌다가 나중에는 꼼짝 못하고 뒤로 밀리기
시작하였는데, 뺑뺑이 도는 틈에 총각은 언덕 편으로 서고 도적은 언덕 없는 편
으로 서서 밀려나가기 더욱 좋았다. 한 걸음 밀리고 두 걸음 밀려서 길가 낭떠
러지 가까이 밀려내려왔다. "에라 이놈아, 팔 놓구 밀지 마라. " 총각은 뜸베질하
는 황소처럼 식식거리기만하고 말이 없었다. "쌀두 뺏지 않을 테니 어서 놔라.
잘못하면 낭에서 떨어진다. " 도적이 고개를 돌이켜서 치어들린 팔 밑으로 뒤를
돌아볼 때 벌써 낭떠러지까지 다 밀려나왔었다. "떨어진다, 이놈아 놔라! " 도적
은 아직까지 말을 뻣뻣이 하고 뒤로 더 나가지 아니하려고
용을 느다가 용이 소용 없으니까 갑자기 고분고분하게 "여게 총각 고만 놓게. 내
가 칼두 내던짐세. " 하고 곧 칼 쥔 손을펴서 칼을 땅에 떨어뜨리었다. 총각이
더 내밀지 아니하고 머리를 들고 두 팔을 뻗치고 서니 도적은 총각이 말을 듣는
줄로 지레짐작하고 "내가 자네 골통을 한번 친 대신에 자네가 내 팔을 치켜들구
학춤을 추인 셈 아닌가. 잔채질을 못해서 부족한가. 늙은 사람을 대접한 셈 잡게
그려. 옴니암니 따질 것이 없이 피장파장해 버리세. 자, 고만 팔을 놓게. " 잠깐
동안 기다리다가 도적은 다시 말을 이어서 "자네가 힘센 줄을 잘 알았네. 힘센
사람이 잔뜩 쥐었으니 낫살 먹은 사람의 팔이 아프지 않겠나. 팔뿐이 아닐세. 어
깨까지 뻐근해 못 견디겠네. 어서 팔을 놓구 이야기하세. " 하고 너스레를 놓는
데 총각은 두 눈만 끄먹끄먹하고 듣고 있다가 잡은 팔을 놓는 결로 도적을 뒤로
벌컥 떠다밀었다. 도적은 입에서 나오는 "쇠새끼. " 소리 한마디를 뒤에 남기고
낭떠러지 밑에 내려가 떨어졌다. 그대로 곱게 떨어지면 엎어지지 않고 자빠질
것이건만 떨어지는 동안에 곤두를 쳤든지 죽은 개구리같이 사지를 펴고 엎어졌
다. 총각이 위에 서서 굽어보다가 퉤하고 침을 한번 뱉고 돌아서서 그제야 머리
터진 자리를 손바닥으로 비비었다. 그 총각은 탑고개서 내려와서 한참 동안 큰
길로 오다가 남쪽으로 뚫린 샛길로 들어갔다. 이날 해 질 때 오가의 집에서는
오가의 마누라가 영감이 늦게까지 아니 온다고 혼자 고시랑거리다가 수양딸 사
위 유복이를 보고 사정하려고 안방에서 아랫방으로 내려왔다. "장내긴지 무어하
러 가서는 이렇게 늦은 적이 전에 없었는데. 이때까지 아니 오니 필연 무슨 연
고가 있는 게야. " "글쎄, 좀 늦구먼요. 그렇지만 무슨 일이야 있겠소. " "생화가
생화인 것만치 조금만 늦어도 집에 있는 사람이 맘이 조여 살 수가 있어야지.
박서방, 어렵지만 좀 가서 찾아보려나? " "그래 보지요. 어디루 가셨을까요? " "
오늘이 금교역말 장날이니까 탑고개 가서 목을 지켰겠지. " "탑고개까지 나가보
구 오리다. " 유복이가 집에서 나서서 탑고개로 나오는데 거의 탑고개를 다 나와
서 십 리에 한 걸음, 오 리에 한 걸음씩 그나마 비슬비슬 걸어 오는 오가를 만
났다. "이거 웬일이오? “ "박서방인가? 사람 죽겠네. ” "어디를 다쳤소? " "말
할 근력두 없어. 날 좀 붙들어주게. “ 유복이가 처음에 오가를 부축하고 오는데
오가가 발을 잘 디디지 못하고 몸을 유복이에게 실리어서 유복이까지 걸음을 걷
기가 거북하여 나중에는 "이럴 것 없이 내게 업히시우. " 하고 엄장 큰 오가
를 들쳐업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가의 얼굴 꼴이 사람 같지 않고 귀신 같았다.
이마에는 큰 혹이 돋히었고 두 눈 자위는 흉악하게 검푸르고 코는 으스러지다시
피 깨어졌고 입술은 도야지 주두리같이 되었고 뺨과 턱은 갈리고 벗겨졌었다.
오가의 마누라가 놀란 마음이 가라앉은 뒤에 물초 되고 게다가 피투성이 된 영
감의 의복을 새로 갈아입히고 영감을 업고 오느라고 옷이 젖고 피 묻은 유복이
에게까지 새 옷을 한 벌 주었다. 오가가 얼굴에 밀타승을 투겁하다시피 바르고
뜨듯한 안방 아랫목에 드러누운 뒤부터 팔이 아프다, 어깨가 쑤신다, 가슴이 결
린다, 또 발목이 시다, 갖은 소리를 다하여 가며 문질러라 주물러라 하고 어린아
이 보채듯 하여 그 마누라와 부리는 계집애는 말할 것 없고 유복이 안해까지 밤
중까지 잠을 자지 못하였다. 그 뒤 며칠 동안 지나서 오가가 일어 앉아 수저를
들게 될 때 안방 식구와 아랫방 식구가 한데 모이거 아침밥을 먹는데, 오가가
총각에게 당한 일을 자세히 이야기하고 "내가 죽을 곡경을 당한 일두 한두 번이
아니지만 이번같이 얼뜨게 죽을 뻔하기는 생외 처음일세. " 하고 숟가락을 내흔
들면서 "처음 떨어져서 기절한 채 깨어나지 못했더면 이것하구 영 작별인데 아
직두 연분이 남아 있어. " 하고 너털거리다가 부은 입술이 아프든지 값자기 손바
닥으로 입을 눌렀다. "그놈의 총각이 어디 산답디까? ” 하고 그 마누라가 영감
을 바라보니 영감이 손바닥을 입에서 떼고 "낸들 아나. 탑고개를 지나서 금교장
보러 다닐 제는 이 근방에 있는 놈이겠지. 그 쇠새끼가 힘이 장사야. 다신 만날
까 보아 지레 겁이 나네. " 하고 마누라 말에 대답하고 "자네 내 원수 좀 갚아줄
라나? " 하고 뉴복이를 바라보았다. 유복이는 희한한 차력약을 두 제나 얻어먹고
대차꾼 소리를 들은 사람이라 힘센 사람을 만나서 힘겨룸 해보고 싶은 생각이
없지 아니한 까닭에 "그래 볼까요? " 하고 반허락하였다.
그 뒤 한 보름 넘어 지나서 오가의 상처 딱정이가 많이 떨어진 때부터 금교역
말 장날은 오가와 유복이가 그 총각을 만나려고 탑고개 가서 목을 지켰는데, 서
너 장째 허행하고 돌아와서 유복이가 오가를 보고 "그 총각이 근방 사람이 아닌
게요. " 하고 더 가지 아니할 의향을 보이니 오가가 "여게 내 말 듣게. 우리 장
인이 계양산 괴수루 유명짜하던 것은 자네두 들어 알지. 그가 심심하면 우리더
러 거미를 배워라, 왕거미 떡거미가 너의 선생이다 말씀하시더니, 거미아 첫째
탐심이 많구 둘째 줄을 잘 늘이구 셋째 흉물스럽두룩 참을성 많은 것이 우리네
배을 것이란 말씀이라네. 자네두 거미를 좀 배우게. 요담 장날 또 같이 가세. "
하고 웃었다.
닷새가 언뜻 지나서 금교역말 장날이 또 왔다. 오가와 유복이가 점심까지 싸
가지고 탑고개를 나와서 언덕 위 구석진. 곳에 몸들을 숨기고 앉아서 장으로 들
버가는 장꾼부터 내다보고 있었다. 육장 청석골 같은 도적 나는 곳을 다녀보아
서 미립이 난 장꾼들은 도적이 뒤에 오는 사람을 꺼리어서 앞서 가는 사람을 치
지 못하고, 또 앞서 간 사람을 꺼리어서 뒤에 오는 사람을 치지 못하도록 작반
하는 사람들이 각각 멀찍멀찍이 떨어져서 지나가고 아직 그런 미립이 나지 못한
장꾼들은 작반하는 대로 한데 몰리어서 공연히 떠들썩하게 지껄이며 지나갔다.
오가와 유복이가 장꾼들의 수를 혜어서 스물이 넘고 그중에 총각도 대여섯 지나
갔건마는 정작 기다리는 총각은 오지 아니하였다. 장꾼 가는 것이 뜸하여졌을
때 "오늘두 또 헛걸음이오. " 하고 유복이가 오가를 돌아보니 "글쎄 . " 하고 오
가도 고개를 끄덕이었다. 유복이가 무슨 다른 말을 하려고 막 입을 벌리다가 멀
리 장꾼 하나가 올라오는 것을 보고 "저기 오는 것두 총각이오. " 하고 손으로
가리켰다. 그 장꾼이 머리를 수건으로 동여서 머리 꽁지 있는 것도 보이지 않고
귀밑머리 땋은 것도 보이지 아니하나 정수리 위에 뾰쪽하게 일어선 것 없는 것
이 총각이 분명하였다. "가만 있게, 허우대하며 걸름걸이가 그 쇠새끼 같아 보이
네. " 하고 오가가 눈이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왔네 왔네. " 하고 유복이를 돌아
보았다. 과연 거무무트름한 총각이 몸에 무명 겹바지 저고리를 입고 등에 무명
댓 필을 걸머지고 오는데 앞뒤에는 장꾼이 끊어졌다. "이 앞에 오거든 먼저 나
서서 말을 붙이시오. " "장에 가는 놈이 돌아오지 않을 리 없으니 이따 장보구
올 때 걷어치우면 어떨까. " "지금 마침 좋소. 이따 여러 장꾼들과 같이 오면 도
리어 성가시지 않소? “ "그것두 그래. " 그 총각이 언덕 아래까지 왔을 때 오가
가 먼저 나서서 "이놈의 쇠새끼야! " 하고 큰소리를 지르니 총각이 우뚝 서서 몸
을 반쯤 틀고 물끄러미 언덕 위를 치어다보다가 코방귀를 한번 뀌고 그대로 지
나가려고 하였다. "무명삠을 게 벗어놔라. ” 총각이 그제는 바로 서서 치어다보
며 "이놈아 내려오너라. 이번에는 아주 모가지를 빼놀 테다. " 하고 눈알을 부라
리었다. 이때 유복이가 뒤에서 썩 나서며 "이놈아, 되지 못하게 거센 체마라. "
하고 꾸짖으니 총각이 "저놈은 또 웬 놈이야. " 하고 아랫입술을 삐죽이 빼물다
가 "너는 탈미골 강가냐? " 하고 물었다. "어째 하필 강가냐. 강가가 무서우냐?
" "오가 녀석이 혼이 나구 너를 불러왔지. " 총각은 저의 마음대로 유복이를 탈
미골 강가로 잡고 "너희 두놈 한데서 잘만났다. 두 놈다 내려와서 버릇을 배워
라. " 하고 소리를 치고 "강아지 새끼 깨갱깨갱하는 것을 구경 좀 하자. " 하고
가장 재미있는 말을 한 것처럼 콧방울을 벌름거리며 웃었다. 유복이가 오가와
같이 공각의 말하는 꼴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
다가 웃으면서 말하였다. "이놈아, 내 성은 박가다. " "강가가 아니냐? " 총각이
강아지 소리 흉내내던 흥이 빠져서 고개를 흔들며 "그래, 네가 탈미골서 온 놈이
아니냐? " 유복이에게 말을 묻는데 "탈미골서 오기커녕 네 할미골서두 오지 않
았다. " 오가가 유복이 대신 말대답하였다. 총각이 오가의 욕은 탄하지도 아니하
고 유복이더러 "강아지 아니구 박아지라두 좋다. 박아지는 개울물에 엎어놓구 박
장구치지 걱정이냐. " 말하고 다시 흥이 나서 웃었다. 유복이가 오가를 돌아보며
"여기서 구경만 하시오. " 말하고 혼자 내려오니 총각이 "두 놈 다 한꺼번에 내
려와두 좋다. " 하고 횐목을 썼다. 유복이가 언덕 위에서 내려와서 총각과 마주
섰다. "네가 떼밀기를 잘한다지. 나두 떼밀겠느냐? " "너는 별놈이냐? 막이
도둑놈이지. " "아무더러나 함부루 도둑놈이라구, 그래 이놈아. " "도둑놈의 앙갚
음해 주러 온 놈두 도둑놈이겠지. " "도둑놈이건 말건 그건 고만두구 한번 나하
구 떼밀기 내기하자. “ "어떻게 하잔 말이여? " "요전에 두 팔을 치켜들구 떼밀
었다지, 그 시늉을 내보자꾸나. 너차구 나하구 번갈아가며 떼밀어서 많이 밀려가
는 사람이 지기루하자. " "그래 내기는 뭐냐? " 유복이는 다르내재서 도적놈들이
무명을 빼앗으려고 할 때 무명 가지고 내기하던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라서 "너
는 무명을 날 주구. ”말하고 총각이 "너는 무엇을 날 주구? " 묻는데 "나는 줄
것이 없으니 네 무명짐을 장까지 져다주마. “ 하고 말하니 송각이 머리를 흔들
면서 "내가 등창이 났드냐, 너더러 져다 달라게. 그건 싫다. 너두 저기 앉았는 오
가처럼 골탕이나 먹여주마. " ”아무리나 네 맘대루 해. " "대가리루 떠받아두
좋으냐? “ "떼밀기만 하자. " ”내가 먼저 떠밀 테다. " "자, 떼밀어라. " 유복이
가 두 팔을 위로 치어들었다. 총각이 유복이를 우습게 보고 한번만 힘써 떠다밀
면 곧 뒤로 자빠지려니 생각하였던 모양이라 등에 걸머진 무명도 내려놓지 않고
두 손으로 유복이의 팔을 잡으며 곧 왈칵 떠다밀고 얼른 손을 놓았다. 그 자리
에 그대로 서서 있는 유복이를 따라보고는 "제법이다. " 하고 총각이 그제야 무
명짐을 벗어서 길가에 갖다놓고 대어들어서 유복이의 양편 견대팔을 붙잡고 머
리를 숙이고 떠밀기 시작하였다. 떠미는 총각은 눈이 부릅떠지고 떠밀리는 유복
이는 입이 악물리었다. 한동안 지난 뒤에도 처음과 다른 것이 없고 총각은 연해
씨근거리고 또 유복이는 간간이 안간힘을 쓸 뿐이었다. 다시 한동안 지난 뒤에
유복이가 "네까짓 기운으루 떼밀릴 내가 아닌 줄을 알았지? “ "제기 누구는 떼
밀릴 줄 아나? 자, 떼밀어봐. " 하고 총각이 유복이의 팔을 놓고 물러서서 두 팔
을 위로 쭉 뻗치고 가슴을 딱 벌리었다. 유복이가 총각 하던 대로 견대팔을 쥐
고 떠미는데 총각의 팔이 돌덩이 같았다. 총각이 한동안 뻑쓰더니 그 이마에 진
땀이 솟았다. 총각의 몸이 뒤로 젖히어지는 듯하며 발이 뜨기 시작하여 뒤로 몇
걸음 밀려나갔을 때 총각의 입에서 '애개개' 소리가 나왔다. 그 소리가 우스워서
유복이가 머리를 들고 볼 즈음에 총각이 펄썩 주저앉아서 유복이는 앞으로 고꾸
라질 뻔하였다. "이놈아, 왜 주저앉니? 너 졌지? ” "지기는 왜 져. " "이놈, 염체
봐라. 앙탈두 못 하두룩 떠다박질러 줄 테니 어서 일어서라. " "내가 똥이 마려
우니 똥 좀 누구. " 총각이 두 팔을 뒤로 짚고 얼굴을 젖혀들고 두 눈을 찌끗째
끗하며 유복이를 치어다보니 유복이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하였다. "그럼 어서 가
서 누구 오너라. " "가기는 어디루 가. 여기서 누지. " 총각이 그 자리에 쭈그리
고 앉으며 곧 바지를 까뭉겼다. "이놈아, 사람 앞에서 무슨 짓이냐! " "개 앞에서
나 누는 법인가. 여기 개가 있어야지. " "무명 놓은 저 길가에 가서 못 누어? “
"괜히 낭떠러지루 떠다밀게. " "그렇게 겁이 나거든 언덕 밑에 가서 누려무나. "
"저기 앉은 오가가 내려와서 덮치기 좋으라구. " "그 자식 의심은 되우 많네. "
총각이 끙끙 소리를 지르느라고 말대꾸가 없었다. "어 구리다. " 하고 유복이가
뒤로 물러나서니 총각은 예사로 "누는 사람두 있을라구. " 하고 한 자리 옆으로
옮겨앉았다. "쇠새끼 쇠똥 누는 것 구경하구 있지 말구 이리 올라오게. " 하고
오가가 소리쳐서 유복이가 언덕 위로 가려고 할 제 총각이 "나는 내기 고만두구
갈 테다. " 하고 낙엽을 집어 밑을 닦고 일어섰다. 유복이가 돌쳐서며 "이놈아,
어디를 가. 네 맘대루 가? ” 하고 총각의 앞으로 나왔다. "우리 주인이 무명 주
구 소를 바꿔 오랬어. 장 늦기 전에 얼른 가야지. " "저 무명은 내 게다. 네가 못
가지구 간다. " “애개개. ” "애개개가 네 단골 소리로구나. " "내일 내가 사경
받은 베 한 섬을 지구 와서 정말 내기하지. " "어떤 것은 거짓말 내기드냐? " "
주인의 무명을 가지구 어떻게 정말 내기를 해. 거짓말 내기나하지. " "그럼 내기
못하겠다구 진작 말하지. " "내가 이길 줄 알았지. 보기엔 그렇지 않은데 오가버
덤 빡빡하구먼. " "네 성명이 무어냐? " "그건 알아 무어하게. " "그럼 네 주인은
누구냐? " "정 첨지여. " "어디 사는 정첨지냐? " "개래동 정첨지여. " "개래동
정첨지 집을 찾아가서 물어보면 네 성명을 알겠구나. " "공연히 주인을 가르쳐
주었네. " "주인의 것이든지 네 것이든지 그 무명은 못 가지구 간다. " "참말? "
"그럼 너같이 거짓말할까. " "제기, 막 주먹다짐으루 욱여줄까 부다. " "좋지, 어
디 한번 주먹다짐 해보자. " "그럴 것 없이 우리 한번 씨름을 해볼까? " "나는
씨름할 줄 모른다. " "떼밀기는 내가 재미없어 못하겠어. 씨름 같으면 해주지만.
" "그럼 어디 네 소원대루 씨름을 한번 해보자. " 유복이는 아이 적에 초군 아이
들과 장난 씨름을 더러 해보았지만, 정작 씨름판은 구경도 못한 사쌈이라 힘만
믿고 해보자고 한 것이다. 유복이와 총각이 고갯길 편편한 곳을 골라와서 네굽
씨름을 하게 되었는데 언덕 위에 있던 오가도 아래로 내려왔다. 총각이 오가를
바라보며 "씨름하는 동안에 무명 가지구 내뺄라구. " 하고 무명을 가지러 가려고
하니 "염려 마라. " 하고 유복이는 총각을 붙들고 "무명이 욕심나면 이때까지 가
만 있어. 그 자식이 정말 쇠새낄세. " 하고 오가는 길가 한옆에 와서 앉았다. 유
복이와 총각이 마주 구부리고 앉았다가 일어서서 한편 손은 서로 허리 뒤를 잡
고 또 한편 손은 각각 놀리면서 어르는 중에, 총각은 유복이의 몸이 저만큼 굵
지 못한 것을 넘보아서 대번에 안지기로 안고 넘기려고 하니 유복이도 그렇게
만만히 넘어 박힐 사람이 아니라 총각을 찍어눌러서 허리를 펴지 못하게 하였
다. 안지기가 안된 뒤에 총각은 처음에 덧걸이를 감으려다가 유복이가 총각을
끌고 뒤로 물러서서 덧걸이를 잘 감지 못하고 다시 속걸이를 넣으려고 하다가
유복이가 총각을 떠밀고 앞으로 나가서 속걸이도 잘 넣지 못하였다. 총각은 연
해 칠 방법을 궁리하고 유복이는 오직 막을 생각밖에 못하는데 총각이 유복이를
한참 어르다가 유복이가 잠간 마음을 놓는 틈에 눈결에 몸을 옆으로 돌리며 슬
쩍 모듬걸이를 써서 유복이는 쿵 하고 넘어졌다. 유복이가 미처 일어나기도 전
에 오가가 나오면서 "나하구 한번 하자. " 하고 곧 총각에게 대어드니 총각이 "
늙은 놈이 씨름은 다 뭐야!
" 하고 코방귀를 뀌다가 일어나는 유복이를 보고 말하였다. "얼른 저리 가. 이놈
을 한번 단단히 메꼬질 테야. " 유복이는 한옆에 비켜서고 오가와 총각이 씨름을
시작하였다. 오가는 상씨름꾼으로 씨름판에 많이 나가본 사람이라 총각이 대번
에 박살을 뜨려고 덤비는 것을 총각의 상꼭뒤를 짚으려고 하고 총각이 다리걸이
를 하려는 것을 뒤쪽으로 팔걸이를 하려고 하였다. 총각이 "이놈은 씨름 좀 해보
았군. " 하고 어르다가 얼른 허리를 펴고 일어서서 씨름 수단과 배의 힘 반반으
로 반들임을 하여 오가를 자빠뜨리었다. 오가가 일어 앉아서 “거 총각마구리
새앙장사 노릇 많이 해보았구나. " 하고 말하니 총각이 오가의 말은 대꾸 아니하
고 "인제는 무명 가지고 가겠다. " 하고 무명 있는 데로 우르르 갔다. 오가가 유
복이를 돌아보며 "저놈 놔보내지 말게. " 하고 말하는데 유복이는 "내버려 둡시
다. " 하고 총각이 무명짐 지고 가는 것을 서서 보고 있었다. 그 총각이 간 뒤에
오가가 우두머니 섰는 유복이를 보고 "이 사람아, 그래 그 자식을 일건 만나가
지구 그렇게 싱겁게 보낸단 말인가. 내 분풀이해 준다는 것이 헛말 된 건 고사
하구 자네까지 봉변한 셈 아닌가. 자네가 힘으로 못 당할 것 같으면 표창으루
행실낼 수 있지 않은가. 재주를 두었다 무엇에 쓰나. " 하고 길게 사설하니 유복
이가 발명같이 "힘으루 당치 못할 듯하면 벌써 표창을 끝냈지요. " 하고 말하였
다. "그러기 말이지. 그런 재주두 부릴 것까지 없는데 왜 그대루 놔 보냈나? "
오가가 말끝을 잡아가지고 다시 사컬하니 유복이는 한동안 말이 없이 잠자코 있
다가 "그 총각이 밉지가 않구먼요. " 하고 총각의 똥 무더기를 바라보며 새삼스
럽게 웃었다. "인제 어떻게 할라나. 들어갈라나? " "글쎄, 어떻게 하실라우? " "
나는 이왕 나온 길이니 벌이나 하구 갈라네. " 유복이는 본래 오가의 분풀이보다
총각과 힘겨룸해 볼 생각이 많았던 터에 총각의 힘이 아무리 동뜨다고 하여도
자기보다 못한 것을 짐작하였고, 또 총각의 말하는 것과 짓하는 것이 밉지 않아
서 총각을 그대로 곱게 보냈는데 오가에게 사설을 듣고 보니 자기가 오가를 속
인 것도 같아 속으로 미안한 마음이 없지 아니하였다. 미안한 마음에 벌이를 도
와줄 생각이 나서 "나두 같이 있어 보지요. " 하고 유복이가 말하니 오가는 좋아
하며 "그럼 언덕 위루 올라가세. "
하고 말하여 오가와 유복이가 먼저 은신하였던 곳에 와서 붙어 앉았다. 총각이
온 뒤에는 장에 들어가는 장꾼도 이내 끊어지고 다른 행인도 별로 없었다. 그럭
저럭 해가 한낮이 지난 뒤에 오가와 유복이가 싸가지고 온 찬밥으로 점심을 먹
는 중에 고갯길에서 말 워낭 소리가 들리었다. "이크, 좋은 뜨내기가 생기는가베.
" 오가가 숟갈을 던지고 일어서니 유복이도 밥그릇들을 치워놓고 일어섰다. 어떤
양반 하나가 부담말을 타고 탑거리 쪽에서 오는데 앞에 선 견마잡이는 수저집이
겉에 달린 찬합과 병 하나를 함께 동여 걸머졌고, 뒤에 따르는 하인 하나는 큼
직한 궤 위에 요강망태를 매어달아 걸머졌다. "이놈들, 게 섰거라! " 오가의 큰소
리가 언덕 위에서 내려가니 견마잡이는 대번에 아이구머니 하고 고삐 쥔 채 주
저앉고, 양반은 무엇아 무엇아 하고 하인의 이름을 부르면서 뒤를 돌아보고 그
하인은 언덕 위를 치어다보며 일변 양반에게 녜녜 대답하였다. "이놈들, 부담 내
려놓구 짐들 벗어놓구 가거라! " 오가가 다시 고성을 지르며 몇 걸음 아래로 내
려가니 그 하인이 견마잡이에게 가서 귀를 끄들어 일으켜세우며 "이 사람 정신
차려! 앞서 뫼시구 가게. 뒤는 다 내가 담당할게. “ 큰소리로 말하고 등에 진
궤를 길 옆에 벗어놓고 꽁무니에서 자그만 쇠몽치를 꺼내어 손에 들고 나서서 "
이놈들, 내려오너라! " 하고 고함을 쳤다. 오가가 하인의 기세에 기운이 눌리든
지 걸음을 멈추고 유복이를 돌아보기 유복이가 댓가지로 만든 표창 네댓 개를
주머니에서 꺼내들고 내치기 시작하였다. 첫번에 하인의 몽치든 손을 맞히고 바
로 뒤미처 하인의 미간을 맞히어서 하인은 몽치를 떨어뜨리며 곧 뒤로 벌렁 자
빠지고, 그 다음의 한 개는 걸어가는 견마잡이 관자놀이에 들어가 맞아서 견마
잡이가 또다시 주저앉
았다. 오가가 유복이에세 손짓하여 같이 내려와서 하인은 유복이게 맡기고 오가
는 말탄 양반에게로 갔다. 오가가 우선 견마잡이 짐을 벗기고 나서 발길로 내질
러 고꾸라뜨리고 그 다음에 양반을 말께서 잡아내리니 양반이 떨리어 나오는 목
소리로 "물건은 다 드리겠으니 목숨만 살려주시오. " 하고 비는 것을 역시 발길
로 차서 고꾸라뜨린 뒤에 북두끈믈 끄르고 부담을 떼어내렸다. 오가가 유복이를
불러가지고 다련과 부담상자와 짐들을 같이 들어 날라서 언덕 위에 갖다 놓고
나중에 다시 살펴보는 중에 양반이 몸에 좋은 옷 입은 것을 보고 오가가 대들어
옷까지 벗기어서 알몸을 만들었는데, 유복이가 소매 달린 옷은 소용 없는 것이
니 주어두라고 권하여 웃옷 한 가지로 그 알몸을 가리게 하였다. "이놈들, 인제
가거라! " 오가의 호령 한번에 일행이 송도길로 내려가는데 웃옷으로 몸을 휩싼
양반이 맨 앞에 서고 손바닥으로 미간을 비비는 하인이 양반
뒤를 따르고 견마잡이는 한 손으로 관자놀이를 누르고 또 한 손으로 말고삐를
쥐고 하인 뒤에 따라가며 뒤를 돌아보느라고 고개를 비틀어서 흡사 목비뚤이 병
신 같았다. 오가와 유복이는 양반 입었던 옷가지와 하인 가졌던 쇠몽치와 말의
북두끈과 짐의 걸빵들을 모두 거두어가지고 언덕 위로 올라왔다. "오늘은 벌이가
좋았네. “ "부담에 무엇이 들었을까요? " "궁금하거든 끌러보세그려. " 오가와
유복이가 부담 상자의 농삼장을 같이 끌렀다. 한 상자를 열고 보니 옷가지와 피
륙이 차곡차곡 땀겨 있고, 또 한 상자를 열고 보니 민어, 광어, 상어, 전복, 홍합
등속 마른 어물이 가득히 담겨 있었다. 다련에는 누비이불이 들었고 궤에는 육
초가 들었었다. 병은 마개 빼고 맡아 보니 술인데 반 병이 착실하고 찬합은 층
층히 들어 보니 장산적 천리찬 북어무침 고추장볶이가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수저는 광친쇠요, 요강은 맞춤 물건이었다. "어느 골에 가서 얻어가지구 오는 것
일세. " "어물 보면 해변 골인가 보오. " "전복 한 개 썰어 먹세. " "전복은 단단
하니 집에 가서 불려 먹구 홍합이나 먹읍시다. " "홍합 좋지. " 하고 오가가 껄
껄 웃으니 "왜 웃소? " 하고 유복이가 물었다. "자네 홍합 가지구 과거 보러 간
이야기 못 들었나? " "못 들었소. 이야기 좀 하오. " "옛날 어느 시골에 한 선비
가 있었는데 그 선비가 안해를 못 잊어서 과거를 못 보러 가니까 그 안해가 꾀
를 내서 몸에서 한 가지를 떼어줄께 가지구 갔다 도루 가지구 오라구 말하구 홍
합 한 개를 주었더라네. 그 선비가 그것을 받아 주머니에 넣구 과거길을 떠났는
데 서울 오구 과거 보구 하는 동안, 틈틈이 남몰래 주머니에서 꺼내 보구 싱글
벙글 웃는 것을 다른 선비가 한번 눈결에 보구 수상히 여겨서 그 선비 자는 틈
에 주머니 세간을 뒤지다가 홍합이 한 개 나오니까 냉큼 먹어버렸더라네. 이튿
날 방이 나서 그 선비는 급제가 되었는데 새 급제가 주머니를 샅샅이 뒤지더니
급제는 했어두 아내는 병신을 만들었다구 낙심하더라네. 이야기는 고만일세. 그
것 좀 끄내놓게, 같이 먹세. " 하고 오가는 쀼복이와 같이 웃었다. 오가와 유복이
가 찬합 반찬으로 먹다 둔 밥을 마저 먹고 물 대신 병의 술을 조금씩 따라 마시
고 짐을 묶는데, 부담 상자는 유복이가 지려고 둘을 포개서 함께 묶고 그 나머
지 물건은 오가가 지려고 모두 모아서 함께 묶었다. 짐들을 묶어놓고 돌아오는
장꾼을 내다보는 중에 총각이 암소 한 마리를 앞세우고 고래로 내려왔다. "여게
총각, 인제 가나? ” 유복이가 나서서 말을 붙이니 "이때까지 날 기다리구 있었
어? 소 가지구두 내기 못해. " 총각이 걸어가며 대답하였다. "여게 자네 술 먹을
줄 아나? " "사내자식이 술 못 먹을까. " "그럼 한잔 먹으려나? " "주면 먹지. "
총각은 쇠고삐를 쥐고 걸음을 멈추고 유복이는 술병과 홍합을 손에 들고 내려왔
다. 총각이 남은 울을 병으로 들이켜고 홍합 서너 개를 한꺼번에 입에 넣고 꺼
귀꺼귀 먹었다. 유복이는 총각이 무식하게 먹는 것을 서서 보다가 흘저에 오가
의 이야기가 생각나서 혼자 웃었다. "왜 웃소? " "그까지 웃는 곡절은 말할 것
없구 인사나 하세. 나는 박서방이란 사람일세. " "나는 곽도령이란 사람이오. " "
이름은 무엇인가? " "당신의 이름은 무엇이오? “ ”내 이름은 유복일세. " "
내 이름은 오주요. " "고향이 어딘가? " "황해도 강령 이오. " "나두 고향이 강령
일세. " "거짓말 마우. 말이 틀리우. " "나는 유복자루 타향에서 나서 자랐지만
우리 부모는 강령 사람이l야. " 이때 뒤에 오는 장꾼이 보이었다. "내일 점심때
이리 올라나? " "왜? " "한고향 사람이 만나 이야기나 좀 하세그려. " "그럽시다.
" "그럼 내일 점심때 만나세. " 유복이는 총총히 총각과 작별하고 언덕 위로 올
라갔다.
이튿날 유복이가 곽오주를 만나서 같이 먹으려고 탁주 한 병과 마른 어물 몇
쪽을 가지고 탑고개를 나왔다. 이때 해가 한낮이 못 되어서 오주는 아직 오지
아니하였는데 난데없는 금도군관 하나가 군사 칠팔 명을 거느리고 고갯길에 나
타났다. '어제 양반자가 송도 들거가서 말한 것이구나. 이런 일이 있을 줄은 생
각 못하고 오주를 이리 만나자고 했으니 지금 어떻게 하면 좋을까. ' 유복이가
생각하는 중에 앞잡이 군사가 벌써 언덕 아래까지 왔다. 일이 다급하여 유복이
가 곧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서니 언덕 위를 살펴보던 군사가 이것을 보고 "너
웬놈이냐! 이리 내려오너라. " 하고 호령하였다. 유복이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산으로 도망하니 그 군사가 "도둑놈 여기 있다! " 하고 외친 뒤에 언덕 위로 올
라와서 유복이의 뒤를 쫓았다. 그 군관이 “너희들은 이리 가서 뒤를 쫓아라. "
"너희들은 저리 가서 앞을 질러라. " 하고 손가락질하며 지휘하여 군사들이 이리
저리 갈리어 뒤쫓고 앞질렀다. 유복이가 뒤에서 나는 아우성에 쫓기어서 뛸 수
있는 대로 뛰는데 술병이 주체궂어서 내버릴까 하는 중에 앞을 지른 군사 하나
가 "이놈아, 어딜 가! " 하고 몽치를 두르며 달려들었다. 유복이는 딱 서서 그 군
사가 대어들기를 기다리다가 그 군사의 면상을 노리고 술병을 내쳤다. 술병이
깨어지며 군사는 탁주를 뒤집어쓰고 뒤로 나가자빠졌다. 유복이가 군사의 나자
빠지는 것을 보고 얼른 주머니에서 댓가지들을 꺼내서 손에 들었다. 이 동안에
뒤에 쫓는 아우성이 차차 가까이 들리는데 유복이는 몇 걸음을 앞으로 나가다가
곧 돌쳐서서 뛰어 온 길을 천천히 도로 걸어왔다. 뒤쫓던 군사들이 이것을 바라
보고 서로 돌아보며 수군거리다가 사오 명 군사 중에 한 군사가 앞으로 나서며
"이놈, 항거할 생각 말구 곱게 줄 받아라! " 하고 소리를 질렀다. 유복이가 잠간
발을 멈추고 "날 잡으려면 너희들 백 명 이백 명이 와두 소용없다. 애초 잡을 생
각 말구 곱게들 가거라. 만일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면 너희들을 낱낱이 병신 맨
들어 보낼 테다! " 하고 통통이 호령하고 여전히 앞으로 걸어나왔다. "이놈, 큰소
리 마라! " "본보기를 내야 너희들이 내 말을 믿을 게다. 너희들 다 보아라. 지금
소리지르는 놈 바른편 눈을 멀려 줄 테다. " 유복이의 손에서 댓가지 하나가 날
아나가더니 그 댓가지가 위로 올라가지도 않고 아래로 처지지도 않고 꼭 소리지
르던 군사의 바른편 눈에 들어가 박히었다. "아이구! " 그 군사가 눈을 부등켜
쥐려다가 댓가지가 손에 가로 거치니 입을 악물고 댓가지를 뽑아버렸자. 다른
군사들이 이것을 보고는 당황한 기색으로 서로 얼굴을 바라보다가 "이놈들, 모주
리 병신이 되구야 갈 테냐! " 유복이 호령 한마디에 모두 돌아서 뛰어가는데 애
꾸 된 군사는 아픈 눈을 손으로 누르며 여러 군사 뒤에 뛰어갔다. 유복이가 앞
으로 걸어오는 중에 뒤에서 발짝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얼른 돌쳐섰다. 군사
이삼 명이 알금살금 뒤를 밟아오다기 유복이가 돌아서는 것을 보고 일시에 악
소리를 지르며 뛰어들어 왔다. 유복이가 앞서 들어오는 군사 하나를 발길로 차
서 자빠뜨리고 그 몽치를 빼앗아 들고 이놈 치고 저놈 치고 하였다. 이통에 우
복이도 머리를 몽치에 맞아서 머리가 터지고 허리를 발길에 차여서 허리가 아팠
다. 유복이가 머리를 만지고 허리를 주무르고 주머니 속에서 쇠끝 두어 개 꺼내
서 댓가지들과 함께 손에 쥔 뒤 어제 은신하였던 자리에 와서 아래를 내려다보
니 길 중간에 군관이 서 있고 그 앞에 군사들이 늘어서서 무엇들을 한참 지껄이
는 중이었다. "이놈들, 그저 안 갔구나. 이 산 위에 쓰러진 놈들이 있으니 너희들
이 가서 끌구 가거라. " 군관이 군사를 헤치고 앞으로 나서서 칼을 빼어들고 언
덕 위로 올라오려고 하니 "네놈은 칼을 믿구 올라오느냐? 칼을 쓰지 못할 테니
자 보아라! ” 유복이가 쇠표창 한 개로 군관의 칼 든 손을 맞히어서 군관은 손
에서 칼을 떨어뜨리고 발을 멈추었다. "너희들 인제는 내 재주를 알았겠지. 쇠끝
한 개루 목숨 하나를 끊을 수 있다. 너희들을 구태어 죽이기까지 할 것이 없기
데 지금 내 재주만 보인 것이니 이 담에 너희가 혹시 날 만나드라두 아예 덤빌
생각 마라. 그러면 나두 너희를 건드리지 않을 테다. " 유복이는 재주를 자랑하
고 "큰소리하는 네 아가리를 찢어놓을 날이 있을 테니 두구 봐라. " 군관은 이를
갈았다. 그 군관이 쫓겨내려온 군사들을 세워놓고 도적놈 하나에게 여럿이 쫓겨
왔다고 개 꾸짖듯 하던 끝이라 도적을 눈앞에 보면서 잡지 못하고 가기는 우선
군사들 보기에도 꼴이 사납고, 도적이 재주를 가져서 섣불리 잡으려다가는 도적
의 말과 같이 목숨까지도 위태할 모양이라 잡으러 올라가지는 못하고 면무료하
느라고 손등에서 뽑은 쇠끝을 들고 군사를 돌아보며 "별놈의 재
주가 다 많다. " 하고 쇠끝 박히었던 손을 폈나 쥐었다 하였다. 영리한 군사 하
나가 군관 가까이 와서 "칼 쓰시기가 거북하시겠습니다. " 나직이 말하고 나서
동무 군사들을 돌아보며 "저 도둑놈을 잡자면 좋은 수가 있겠네. 우리가 부중에
들어가서 갑옷 입구 투구 쓰구 나오면 염려 없지 않겠나. " 하고 말하였다. 군관
이 "미친 놈 미친 소리 말구 저 칼이나 이리 집어 다우. " 하고 말하여 드 군사
가 언덕 위를 치어다보며 앞으로 나와서 땅에 떨어진 칼을 군관에게 집어다 바
치면서 넌지시 "삼십육계를 생각해 봅시오. " 하고 달아나자고까지 말하는덴 군
관은 검다 쓰단 말이 없었다. 이 때 술병 맞고 자빠졌던 군사와 몽치 맞고 쓰러
졌던 군사들이 서로 붙들고 산에서 고개 밑으로 내려왔다. 군사 하나가 이것을
바라보고 "저것들 저기 내려오네. " 하고 말하니 “저런 병신의 자식들. 그 자식
들의 꼬락서니가 어떤가 우리 가서 보자. " 하고 고개 밑을 향하고 서다가 다시
몸을 돌이켜서 언덕 위에 섰는 유복이를 치어다보며 "네놈의 목숨이 얼마나 오
래 가나 어디 두고 보자. " 악증풀이하듯 말하고 곧 군사들을 데리고 고개 밑으
로 내려갔다. 유복이가 그제야 앉아서 두 다리를 뻗고 머리를 젖히어 들고 해를
치어다보니 벌써 한낮이 훨씬 기울었다. "오주가 올 때가 지났는데 혹시 오다가
군사들 섰는 것을 멀리서 바라보구 의심이 나서 도루 갔나. 허허실수루 조금만
더 기다려 볼까. " 유복이는 혼자 말하고 조금조금 기다리는 중에 곽오주가 터덜
거리고 고개 위로 올라왔다. "자네 인제 오나? " 유복이가 언덕 위에 일어서니 "
많이 기다렸소? " 오주가 언덕 아래서 치어다보았다. "어서 이리 올라오게. " 유
복이는 오주가 올라오기를 기다려서 같이 나란히 앉았다. "자네 오다가 포도군사
들을 만났나? " ”군산지 깨묵인지 복색 다른 것들이 많이 갑디다. 그놈들 어떤
놈한테 가서 경을 흠씬 치구 가는 거야. 그렇기에 골통이 터진 놈두 있구 얼굴
바닥이 깨진 놈두 있구 한짝 눈이 깨물어긴 놈까지 있지. " "그놈들이 자네보구
실랑이 않든가? " "어디 사느냐구 묻구 어디 가느냐구 묻습디다. " "그래 어딜
간다구 대답했나? " "묻는 것이 수상하기에 금교 뒷장 보러 간다구 했소. " "자
네두 거짓말할 줄 아네그려. " "나를 거짓말두 못하는 밥병신으로 알았소. " "자
네 같은 사람은 거짓말 아니하려니 생각했네. “ "거짓말할 줄 아는 사람이 어디
따루 있소. " "그래 뒷장 보러 간다니까 다른 말 없이 놔보내든가? " ”댓가지
가진 도둑놈이 있다구 가지 말랍디다. 나는 도둑놈이 무섭지 않다구 그대루 와
버렸소. " "그놈들 말하는 도둑놈이 날세. " 하고 유복이가 군사들과 싸우던 것
을 일장 다 이야기하니 오주가 듣고 나서 "그런 줄 몰랐더니 흉악한 대적놈이구
려. " 하고 껄껄 웃었다. 유복이가 오주의 말을 듣고 역시 웃으면서 "좀도둑도
채 되기 전에 벌써 흉악한 대적이 된 모양일세. 내가 오늘날 이렇게 된 일생 경
력을 이야기할께 들어보려나? " 하고 오주의 말을 기다리니 "사내자식이 도둑질
한다면 대적놈이 되지 좀도둑놈이 되어서 쓰겠소. " 오주가 먼저 도둑에 대한 소
견부터 말하고 그 다음에 "왜 도둑놈이 되었나 이야기 좀 하우. 들읍시다. " 유
복이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였다. "자초지종 이야기를 하자면 이야기가 길어. "
"듣다가 듣기 싫으면 고만두라고 말하리다. " 유복이가 오주의 솔직한 말을 듣고
한번 웃은 뒤에 자기 아버지가 남의 모함에 죽은 일부터 이야기하기 시작하여
자기가 서울 행랑에서 나서 자라던 일과 맹산 두메서 병으로 고생하던 일과 강
령 큰골서 원수 갚던 일을 모두 이야기하고, 또 덕물산 장군당에서 장군 마누라
를 가로 차지하고 맹산으로 가는 길에 우연히 오가의 집에 들어가서 같이 있게
된 곡절까지 속임없이 다 이야기하였다. 유복이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에 오주는
줄곧 유복이의 입을 바라 보고 있었는데, 부모의 원수를 못 갚고 앉을뱅이로 고
생하는 토막에는 닭의 똥 같은 눈물을 떨어뜨리고 원수의 목을 잘라가지고 부
모 무덤에 오는 토막에는 곤댓짓을 하며 싱글거리고 또 귀신의 마누라를 가로채
는 토막에는 너털웃음을 내놓았다. "군사 녀석들 때문에 막걸리 한 사발을 못 먹
게 되어서 분하구려. " "배가 고픈가? 안주루 아지구 온 것은 여기 있으니 먹으
려나? " 유복이가 품에서 어물쪽을 내놓으니 "속시원한 이야기를 들은 끝에 술
한 사발을 들이키었으면 좋겠단 말이오. " 오주는 그 어물쪽을 돌아다도 보지 아
니하였다. "인제 자네 이야기 좀 듣세. " “나는 이야기할 것 없소. 그럭저럭 나
이만 스물네 살 먹었소. " ”자네 나이 한 삼십 된 줄 았았더니 겨우 스물뎃밖에
안 되었어? " “박서방은 몇 살 먹었소? ” “서른넷일세. " ”서른넷이면 내게
십 년 맏아니오? " "그렇지. " “우리 둘째 형하구 한 나이구려. " 이 말저 말묻
는중에 유복이는오주의 신세 이야기를 대강 듣게 되었다.
오주는 강령 향나뭇골 농민의 아들인데 오형제 중 막내아들로 부모의 귀염을
받아서 어렸을 때는 별로 고생을 몰랐고, 여섯 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아홉 살에
아버지를 마저 여읜 뒤로 맏형수에게 눈칫밥을 얻어먹게 되어 고생맛을 알기 시
작하였었다. 맏형수가 위인이 좋지 못하여 없는 말 있는 말을 맏형에게 지껄이
면 안해 말을 잘 듣는 맏형이 오주를 못살게 굴었었다. 오주는 맏형도 밉거니와
맏형수가 더욱 괘씸하여 버룻을 가르치고 싶은 생각이 있는 터에, 어느 날 형수
가 부엌에서 불을 때면서 나무 아니 해온다고 잔소리하는 것을 오주가 뺨을 치
고 머리채를 끄들르고, 그날 저녁때 맏형 내외에게 죽도록 얻어맞고 따로 살림
나서 사는 둘째 형에게로 갔더니 간 지 며칠 못 되어서 벌써 둘째 형수도 눈치
가 좋지 못하여 그래서 아버지 죽던 이듬해부터 남의집살이하는 것이 오늘날까
지인데, 열다섯 살에 해주로 나와서 한 집에서 한 삼 년 살고 그 뒤에 연안으로
나와서 이 집 저 집 옮아다니며 대여섯 해 살고 연안 있을 때 자라을 사람 하나
를 친하여 그 연분으로 자라 서울에 들어와서 일 년 지내고 개래동 정첨지 집에
와서 머슴살이한지는 일 년이 채 못 되었었다. 오주의 맏형 일주는 향나뭇골에
눌러앉아서 농사짓오 둘째형 이주는 등산곶으로 이사 가서 어부 노릇하고 셋째
형 삼주와 넷째형 사주는 장가도 들지 못하고 죽었었다. 맏형, 둘째형이 살아 있
지만, 서로 연신을 끊고 지내는 까닭에 지금 오주에게는 형제가 없느니나 진배
없는 터이었다.
유복이와 오주가 서로 사귄 뒤에 유복이가 오주를 사랑할 뿐 아니라 오주도
유복이를 좋아하쳐 한 장도막에 한두 번씩 자리를 맞추고 만나게 되었다, 처음
만난 뒤로부터 두어 장 지난 때다. 유복이가 오주를 만나서 "나는 아우 없는 사
람이구 자네는 형들이 있지만 실상 없느니나 다름없다니 우리 둘이 의형제를 모
으구 지내보려나? " 하고 오주의 의향을 물으니 오주는 대번에 일어서서 "형님,
절 받으시우. " 하고 너푼 절을 하였다. "우리가 인제부터는 각성바지 형제다. "
"각성바지 할 것 없소. 내 성을 박가루 고치든지 형님 성을 곽가루 고치든지 맘
대루 고치구서 참말 형제루 합시다그려. " "성이야 고칠 수 있나. 지내기만 우애
있는 참말 형제같이 지내세. “ "아무리나 형님 말대루 합시다. 그렇지만 그까지
성은 아주 떼버려두 아깝지 않은데 다른 성으루 고치지 못할 거 무어 있소. " "
성이 뗀다구 떨어지구 고친다구 고쳐지나, 또 우리 부모가 각각 다른 바에 한
성을 가진다구 피차간 피가 같아지나. " "피가 다른 거야 누가 모른다우? 성이나
같이 하잔 말이지. " "피가 달라서 성이 다른 것을 억지루 어떻게 하나. " ”성
이 피에 붙은 것이오? " "붙은 셈이지. " "그럼 우리가 아버지 어머니 피를 다
받았으니까 성을 둘씩 가져야 하지 않소. 하필 아버지 성만 가질 것 무어 있소.
" "아버지 성 갖는 것은 옛날부터 내려오는 법이야. " "도둑질은 하라는 법 어디
있소? 하라는 법이 없어두 하면 되는 것 아니오. 아따 이렇구 저렇구 그까지 성
은 박가 곽가루 내버려둡시다. "
유복이와 오주는 형제의를 맺은 뒤 오주가 새로 생긴 형수인 유복이의 안해를
같이 가서 상면하겠다고 말하여 유복이는 오주를 데리고 산속에 있는 오가 집으
로 들어오게 되었다. 유복이가 오주를 대문 밖에 세우고 먼저 집에 들어와서 오
가 내외와 자기 안해를 보고 오주 데리고 온 사연을 말하니 오가는 "자네가 처
음부터 그 총각을 사랑하더니 그예 아우를 만들었네그려. 이왕 데리구까지 왔으
니 불러들이게. " 하고 선선히 말하나 오가의 마누라는 자기 남편을 골탕먹인 것
이 종시 마음에 맺혀서 "쇠새끼 같다는 위인을 만나러 다니는 것도 부질없는 일
인데 형제의를 맺은 것은 생각 덜한 짓일세. " 미타하게 말하고 유복이 안해는
자기가 도망꾼이라 외인을 만나는 것이 마음에 좋지 아니하여 "요전에 내 말 했
다는 것도 시원치 못한 일인데 같이 오잔다고 쭈르르 끌고 온단 말이오? 다음날
로 미루고 집에 와서 공론한 뒤에 데리고 오든지 말든지 하지. " 사리로 나무
랐다. 오가가 "그 총각이 하두 우악스럽구 무식스러워서 내가 쇠새끼라구 별명까
지 지었지만 위인이 취할 점이 많아. 우리 사위가 일을 어디 지망지망히 하는
사람인가. 어련히 생각하구 형제의를 맺었을까. " 하고 그 마누라를 누르고 "네
말은 유리한 말이다. 그렇지만 활발한 사내 생각과 좀스러운 여자 생각이 어디
같은가. 여자들은 사내 하는 일을 소흘한 것처럼 말하지만 여자같이 좀스럽다구
조밀한 것이 아니야. 여자들은 소견이 빽빽해서 일을 분간할 줄 모르거든. 우선
여자들이 장기루 생각하는 조밀한 것 하나만 가지구 말하더라두 조밀한 것이 일
하기 전에 소용 있지, 일한 뒤에는 소용 없는 것인데 여자들은 흔히 성복 후 약
방문으로 잔소리를 퍼부어서 사내를 골치만 뗑하게 만들지그려. 네가 지금 문밖
에 온 사람을 두구 공론한 뒤에 데리구 오지 않았다구 사살하니 그것두 역시 쓸
데없는 잔소리 아니냐. 너는 여자루 소견이 제법이건만 종시 여자라 할 수 없구
나. " 하고 그 수양딸의 말문을 막았다. 오가가 이와같이 만판 너스레로 유복이
를 거드는 중에 대문 밖에서 "형님, 나 들어갈라우. " 하고 무뚝뚝한 말소리가
들리며 곧 오주가 안마당으로 들어왔다. 유복이가 마루 앞에 서 있다가 들어오
는 오주에게로 마주 나가서 "저기 있는 내 방으루 가자. " 하고 아랫방으로 데리
고 왔다. 오가가 먼저 안방에서 내려와서 "뜻밖의 손님일세. 잘 왔네. " 인사하고
방안에 들어앉은 뒤에 유복이가 안해를 내려오라고 부르는데 오가의 마누라가
총각을 가까이 구경하려고 수앙딸과 같이 내려왔다. 유복이의 안해가 방안에 들
어서니 오주가 "아주머니 보입시다. " 하고 절하고 인사하고 끝으로 방문 밖에
섰는 오가의 마누라를 유복이가 "들어오시지요. " 말하여 방안으로 들어온 뒤 오
주더러 인사하라는 눈치로 "저 어른이 우리 장모다. " 하고 가르쳐 주었건만 오
주는 한번 머리를 끄덕거리고 씁쓸하니
앉아 있었다. 오가의 마누라는 겸연쩍어서 얼굴이 붉어지고 유복이의 안해는
미안스러워서 역시 얼굴이 붉어지는데 오주는 태연스러웠다. 오가가 네 사람의
눈치를 보다가 한번 허허 웃고 "여게 총각? " 하고 오주를 불렀다. "왜 그러우?
" "내가 자네에게 골탕을 먹은 뒤에 자네를 쇠새끼라구 별명 지었네. " "낭에서
떨어질 때 쇠새끼라구 하는 소리 나두 들었소. " "지금 인사할 줄 모르는 것만
보더라두 자네가 그 별명을 들어
싸지. “ ”무슨 인사를 할 줄 모른단 말이오? " "딸에게는 절하구 어머니에게는
절 않는 것이 인사할 줄 모르는 것 아닌가. 수양 어머니두 어머니는 어머니거든.
" "딸은 내게 아주머니니까 절하지만 어머니야 내게 무엇 되우? “ ”절하게. "
"형수의 어머니가 사돈 어른 아니겠나, 사돈 어른보구 어째 절을 아니하나. " "
절을 해야 하우? " “해야 하구말구. " "그럼, 사돈어른 절 받으시우. " 하고 오
주가 일어나서 오가의 마누라에게 절하고 다시 앉으려고 할 때 오자가 점잔을
떨면서 "사돈 어른으루 말하면 밭사돈어른이 더 소중한 법이야. 늦었지만 내게까
지 절하구 앉게. " 말하고 웃으니 오주는 "나를 꾀여서 절 받을라구. " 하고 유
복이의 눈치를 보았다. "이왕 하는 길이니 한번 더 하려무나. " "형님두 나를 절
시키구 웃을라구 그러지. " 오가가 유복이 대신 "아우를 웃을 리가 있나. 해야
하는 것이지. " 하고 말하니 오주는 "해야 하더라두 이담버텀 하구 이번은 고만
둡시다. " 하고 펄썩 주저앉았다. "그리하게, 이번은 고만두게. 그렇지만 단단히
잊지 말게. 절 한 번 맡았느니. " "절을 맡아두면 이담 할 때 한꺼번에 두 번 하
란 말이오? " "그렇지. " "성가시어 안 맡겠소. 자, 받아가우. " 하고 오주가 또다
시 일어나서 오가에게 절을 하니 방안 사람이 모두 웃고 오주는 열쩍어서 ”제
기. “ 하고 자리에 주주물러앉았다. 오가가 "우리 사위는 아우 얻은 턱이 있구
우리 딸은 시동생 얻은 턱이 있구 또 우리는 사돈 총각에게 억지 절 받은 턱이
있으니 술 한상 잘 차려내게. " 하고 마누라를 돌아보리 그 마누라가 웃으면서 "
술상을 잘 차려낼께 이 다음에는 사돈어른을 낭떠러지에 떠다박질르지나 마오. "
오주보고 말하고 수양딸과 같이 안방으로 올라갔다.
아랫방에 세 사람이 남아 앉아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하며 한동안 지난
뒤에 유복이의 안해가 내려와서 술상이 다 되었다고 내려올까 물으니 오가가 "
술을 많이 먹을 터인데 이루 날라오기 귀찮으니 우리들이 안방으루 올라가세. "
하고 유복이를 돌아보았다. 유복이는 "아무시나 합시다. " 오가더러 말하고 오주
는 "형님 방에서 먹읍시다. " 유복이더러 말하는데 오가가 오주더러 "사돈어른클
기신 방이 넓으니 그리루 올라가세. " 말하고 곧 뒤를 이어 "절에 간 색시는 중
하자는 대루 하는 것이야. " 말하며 웃었다.
오가의 집 안방에 술판이 벌어졌다. 오가와 유복이도 술을 잘 먹지만 오주는
사발이 돌아오기 무섭레 한숨에 죽죽 들이키었다. 처음 한 동이 술이 다 끝나고
새 동이가 들어왔을 때 오주가 한 사발을 떠서 오가 마누라에게로 불쑥 내밀면
서 "사돈어른, 한 사발 잡수시우. " 하고 별미쩍게 권하니 오가의 마누라는 웃고
받아서 지우고 마시고, 또 오주가 새로 한 사발을 떠서 들고 "아주머니두 좀 잡
수시우. " 하고 유복이 안해에게 내어미니 "나는 술 먹을 줄 몰라요. " 하고 유
복이의 안해는 사발을 받지 아니하였다. 오주가 앞으로 나앉아서 "새루 생긴 시
동생이 드리니 받으시우. " 하고 사발을 턱밑까지 들이밀어서 유복이의 안해는
옆으로 비켜 앉으며 "먹을 줄 모르는 걸 어떻게 먹어요. " 하고 눈살을 찌푸리다
가 "너무 사양 말구 장모처럼 지우구 먹게그려. " 하고 유복이가 말쓸 이른 뒤에
오주의 주는 사발을 받아서 "당신이나 내 대신 잡수시우. "
하고 유복이를 주었다. 안해의 술 대신 먹는 유복이를 오주가 바라보며 "아주머
니가 기생 같소. " 하고 어둔 밤의 홍두깨 같은 말을 내놓아서 다른 사람은 고사
하고 유복이까지 대답할 말을 몰라서 잠자코 있으니 오주가 다시 "내가 기생 구
경 못한 줄 아우. 전에 해주 있을 때 감사가 영해루에서 잔치할 때 기생들이 영
해루루 가는 것을 길가에서 가까이 본 일이 있소. 아주머니 얼굴이 그때 보던
기생들버덤 더 고웁소. " 하고 전에 본 기생과 비교하여 의형수의 자색을 칭찬하
였다. 다른 사람들은 그저 웃을 따름이요, 유복이의 안해는 술 한 사발 먹은이나
진배없이 얼굴이 붉어졌다. "여보 형님, 이번 최장군 마누라는 내가 가서 삣어올
까? " 오주의 하는 말이 점점 더 듣기 괴란하여 유복이의 안해가 자리에서 일어
나려고 몸을 움직일 때 오가가 일부러 지어 하는 말 같지 않게 얼없이 술상에
놓인 마른 어물쪽을 가리키며 "나는 이가 아파 이대로 못 먹겠으니 따루 몇 쪽
만 머루마치루 팡꽝 뚜들겨서 갖다 다우. " 하고 말하여 “녜. ” 대답하고 밖으
로 나갔다. 오가가 술상에서 홍합을 집어서 오주를 주며 "총각, 흥합 좋아하나?
“ 하고 의미 있게 웃어서 오주가 "왜 웃소? ” 하고 웃는 까닭을 물으니 오가
는 웃음을 거두고 시침 떼고 앉아서 "총각 장가들고 싶은가? 장가는 마구 들 것
아닐세, 하루 화근은 식전 취한 술이요, 일 년 화근은 발에 끼는 갖신이요, 일생
화근은 성품 고약한 안해란 말이 있지 않은가. 장군당에 갈 공론 고만두구 술이
나 먹세. " 하고 술사발을 돌리었다. 어느덧 한 동이가 다 들나서 또 새 동이를
가져오게 되었을 때 오가의 마누라가 "총각 같은 손님이 날마다 오면 하루 술
한 독씩 들나겠네. " 하고 면박주듯 말하는데 오주는 "난생 처음으루 오늘 술을
잘 먹소. " 하고 치사하듯 대답하였다. 나중 들어온 한 동이는 오가와 유복이가
번갈아가며 오주와 대작하여 오주는 오가와 유복이보다 몇 사발을 더 먹고 해질
물에 돌아가려고 일어섰다. 유복이가 오주를 큰길까지 데려다 주려고 오주와 같
이 나오면서 길 없는 산속에 목표들을 모두 가르쳐 주고 "틈이 있거든 자주 놀
러오너라. " 하고 이르니 "형님이 보구 싶어두 오구 술이 먹구 싶어두 올 테
니 염려 마우. " 하고 오주는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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