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전집1 격정시대 상-27

더좋은래일 | 2023.10.26 16:01:20 댓글: 1 조회: 246 추천: 3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11925


27

정실이가 터밭에 나가 배추를 솎아주고있는데 홀지에 어머니가 치마바람이 나게 쫓아오더니 손벽을 딱 치고

<<이 애 정실아!>>

부르고

<<어서어서!>>

밑도 끝도 없이 재촉을 하였다. 정실이가 영문을 몰라 일손을 멈추고 뻔히 쳐다보니 어머니는 가쁜숨을 돌려가며

<<왔다, 왔어!>>

말하고 또 손벽을 딱 쳤다.

<<오다니... 뭐가 왔단 말이예요? 엄마두 참!>>

<<최서사... 한진사댁 최서사가 왔어! 함진아비까지 아주 데리구 왔어. 어서어서!>>

정실이가 긎야 어머니의 뒤설레치는 까닭을 알고 부지런히 일어나 손에 묻은 흙을 털고 또 치마섶을 내리쓸며 터밭에서 나왔다. 최서사의 래방은 곧 한진사댁에서 외부에 알리지 않은백일동안의 내란의 종식이 되였음을 의미하는것이였다.

간밤에 한지사댁에서는 한진사가 갑자기 풍을 일으켜 온 집안이 밤을 발칵 새우다싶이 하였는데 샐녘에 반도병원 의사가 돌아가며 한정희와 그 어머니에게

<<돌아가 눈 좀 붙이구... 다시 오겠습니다. 그렇지만 아마 좀 어려울거 같습니다. 원체 년만하신데 병환이 병환인만큼. 그러니 미리미리 후사를 준비하시는것두 랑패는 없을것 같습니다.>>

귀띔해주고 최서사의 배웅을 받으며 일단 돌아갔다. 한정희모자는 서로 돌아보고 한동안 말을 못하다가 붙었던 입들이 겨우 떨어져서

<<어쨌든 들어가 신색을 뵙구나서 다시 의논하자.>>

<<그렇게 하시지요.>>

말을 주고받고 곧 방으로 들어왔다. 한진사가 며느리와 손자가 들어오는것을 보고 얼버무리는 말소리로

<<게들 좀 앉거라.>>

말하고 잠간동안 숨을 돌려가지고 다시

<<내가 죽기전에 손자며느리를 보구 죽어야겠다. 얼른 가 데리구 오너라. 모든게 다 팔자소관이지, 억지루 한다는수야 있니.>> 하고 탄식한 뒤 피발이 선 눈으로 며느리와 손자의 얼굴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다홍색겹저고리에 초록색치마를 입은 정실이가 최서사를 따라 한진사댁 안사랑에를 들어오니 마님-한정희의 어머니가 마루끝에 나와서 밤샘하여 피로한 얼굴로 지난날의 심부름하는 계집아이-오늘의 며느리감을 맞아들였다. 정실이가 한정희의 비켜주는 자리에 와 마님이 시키는대로 장래 시할아버님께 큰절로 뵈이니 한진사는 한동안 말없이 무색옷 입은 손자며느리감을 쳐다보다가 눈으로 며느리를 찾았다. 며느님이 앞으로 나와 살며시 쪼크리고 앉았다.

<<에미 말 듣거라.>>

<<녜 아버님.>>

<<저것들의 초례는 내 칠칠일만 지나면... 곧 서둘러 치르두룩해라. 알았느냐?>>

<<녜 아버님. 분부를 명심하겠습니다.>>

<<손녀사위하고 작은손자며느리는... 볼 복이 내게는 아마 없나보다.>>

<<아버님.>>

며느님의 목소리는 여직 울려는 사람 같았다.

<<다 하늘이 하는노릇인데 사람의 힘으루 어쩌겠니.>>

<<아버님.>>

<<선희 편지 왔느냐.>>

<<녜 아버님.>>

<<잘 있다더냐?>>

<<아무 탈 없이 잘 있답니다 아버님.>>

<<은희를 불러라.>>

<<녜 아버님.>>

한정희가 살그머니 미닫이를 여닫으며 동생을 부르러 나갔다.

이튿날아침 최서사가 조선종이에 먹으로 단정하게 <<기중(忌中)>> 두 글자를 써서 대문에 내다붙이고 또 큰사랑 제청모신 방문앞에 조객록을 펴놓고 앉으니 이날부터 며칠동안 원근의 조객들이 밀려들어 한진사댁 안팎은 밤낮없이 사람들로 벅적벅적하였다. 정실이는 마님이 시키는대로 상복을 갈아입고 또 머리에 흰댕기를 드리고 그리고 안채에서 사랑채로, 사랑채에서 부엌으로, 부엌에서 광으로... 하루에도 몇백고팽이씩 드나들었다. 드렇게 분주하게 초상을 치르고나니 대가 갈리여 장손인 한정희가 큰 지정을 물려받아 집안의 새 주인으로 되였다. 그리고 두어달 지난뒤에는 집 안팎의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도련님을 서방님으로 고쳐부르게들 되였다. 죽을 지경으로 난처하것은 정실이였다. 정실이라고 부르던 사람들이 모두 말씨를 고쳐서 새아씨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동맹휴학의 거세찬 바람이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평양, 광주, 신의주, 해주, 목포, 대구, 전주, 함흥, 동래, 정주, 개성, 부산, 진주, 청주 등지를 휩쓰는 동안 서울의 주요한 전국성적신문들인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그리고 <<중앙일보>>에는 거의 날마다 같이 <<채광창>>들이 나타났었다. 즉 검열에 걸려서 경찰의 명령으로 이미 찍은 가시를 공백단들이 빠끔빠끔 뚫렸던것이다. 그래도 이때의 일본경찰은 그만하면 중국국민당의 신문검열기관에 비하면 부처가운데 토막소리를 들을만하였다. 선장이가 후일 친히 겪어보아 알게 된 일이지만 중국국민당의 신문검열기관에서는 기사를 깎아버리되 공백단을 남겨놓아서는 안되였었다. <<채광창>>이 빠끔빠끔 뚫린 신문을 보면 독자들이 깎아버린것을 곧 알게 되기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도리여 역효과를 가져오기가 쉽기때문이다. 그래서 국민당의 검열기관에서는 중간토막이 빠져버린 웃글과 아래글을 막 한데 갖다붙여가지고 다시 찍게 하였다. 그러므로 속내 모르는 독자들은 그런 기사를 읽어보고는 개개 다 고개를 비틀며

(이건 어느 미친놈이 잠꼬대를 하잖았나?)

의심을 하게들 되였었다.

동맹휴학이 지속되는 동안 선장이는 낮에는 학교간다고 핑게하고 도서관에 가 들어박혀 소설책들을 누에 뽕잎먹듯 닥치는대로 읽어제끼고 그리고 밤저녁에는 거의 사흘거리로 김영하선생을 찾아다녔다. 이날 선장이가 미닫이를 열고 들어서자 첫밗에 김영하선생이 수색이 가득한 얼굴로

<<한선희씨두 검거됐단다.>>

말하여 선장이는 의외의 소식에 입을 딱 벌리고 눈만 끔벅끔벅하였다. 선장이는 이날 한때까지 한선희를 매미처럼 한가로이 노래나 부르고 사는 부자집아가씨로만 알아왔다. 한참만에 비로소

<<어디 갇혔답니까?>> 하고 물으니 김영하선생은

<<서대문경찰서에.>>

간단히 대답하고 춥지도 않은데 팔짱을 지르더니 고개를 젖히여 벽에 기대로 천정을 쳐다보았다. 사제가 덤덤히 마주앉았는데 탁상시계의 시간을 저미는 째깍째깍 소리가 차차 또랑또랑해지는것 같았다. 김영하선생이 아무리 근심하고 걱정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한낱 학교도서관의 직원으로서 류치장에 갇힌 사람을 빼내올 재간이 있을리 만무하였다. 이제 겨우 중학교 1학년생인 선장이쯤은 공연히 조바심을 하는외에는 더군다나 속수무책이였다. 이윽고 김영하선생이 고개를 벌떡 일으켜 선장이를 쳐다보며

<<원산집에다 전보를 쳐줘야지.>>

혼자 말하고 곧 팔짱 지른 팔을 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장이도 안국동네거리에 있는 우편국까지 따라가 전보치는것을 보았다. 우편국을 나와 전차종점까리 갈라질 때

<<자주 들려.>>

<<녜.>>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는 선장이의 마음은 납덩이같이 무겁기만 하였다.

집에는 숙자아주머니의 옛 동창생 하나가 놀러 왔었다. 이 녀자의 남편은 <<중앙일보>>사의 편집차장인데 그들 내외 사이에는 얼굴 생김생김이 팔팔결 서로 다른 쌍둥이오누이가 있었다. 그 오누이가 하나는 휘문고보에 다니고 또 하나는 숙명녀고에 재학중인데 모두 선장이또래 1학년학생들이였다. 전에는 몇번 놀러 와서 본적 있는 녀자였으므로 선장이는 그저 인사성으로

<<아주머니 오셨습니까.>>

한마디 하고 제 방으로 둘러가려 한즉

<<게 좀 앉았어.>>

숙자아주머니가 나가지 못하게 붙들어앉혔다. 숙자아주머니를 물좋은 붉돔에 비한다면 이 차장 부인은 영낙없는 북어-말린 명태였다. 초근목피로 연명을 하대도 이렇게까지 파리하지 않으리라 생각이 들 지경이였다. 그래도 말만은 청사류수라서 종일 함께 있어도 심심하지가 않을것 같았다.

<<글쎄 류치장이라구 복도구 취조실이구 학생들이 꼴딱꼴딱 들어차 오수부동이라지 뭐니, 신문사 기자들이 이걸 탐지해가지구 `초만원 이룬 류치장`, `짐짝처럼 포개진 학새들`... 이런 표제를 달아 톱기사루 실었더니 통과가 될게 뭐, 어림두 없지! 송두리채 삭제벼락을 맞아 1면의 한절반 공백으로 나갔지 뭐냐. 동대문이구 종로구 성대문이구... 경찰서마다 병난 학생들이 여간 많잖대.>>

<<병이 난거야 놓아주든지 입원을 시키든지 하겠지 그대루 붙들어두겠니.>>

<<글쎄 모르지. 심사가 틀려서 죽을 때까지 붙들어둘는지 누가 아니.>>

<<설마 그렇게까지야.>>

<<설마 사람 죽이지.>>

<<이게 대체 웬 야단들이냐, 난 정말 모르겠다.>>

<<모르긴 무얼 몰라. 일본녀석들이 우리 녀학생을 모욕했는데 그럼 가만있어? 네 딸이 그런 일을 당했다면 넌 가만있겠니? 난 내 딸이 그런 일을 당했다면 사생결단을 하지 가만 안 있겠다.>>

<<그래두 이렇게까지 하는건 좀 과해.>>

<<과하긴 뭐가 과해? 당연하지!>>

<<그래 너의 아이들이 학교두 못 나가구 집에 들어앉았는게 좋으냐?>>

<<안 좋아두 할수 없지. 민족적멸시를 당하는것보다 저우 낫지.>>

<<넌 학교 다닐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구나, 무슨 일에나 열을 올리는 성질이.>>

<<난 무슨 일에나 시르죽은이 같은건 질색이야.>>

<<그러니까 억년 가두 저렇게 살이 못 오르지.>>

<<가난한 신문쟁이 녀편네가 무슨 수루 살이 올라.>>

<<너희가... 그러냐?>>

<<그럼 월급쟁이네 살림이 너희처럼 이렇게 호화판일줄 알았니? 아이들 학교두 겨우 보내는데.>>

<<난 우리 선장인 날마다 학교에 내보낸다, 무단결석을 안 시키려구.>>

<<무단결석?... >> 하고 말라꽹이차장 부인이 선장이의 얼굴을 똑바로 보는데 그 눈에는 경멸의 빛이 뚝뚝 떨어지는것 같았다. 선장이는 그 눈길을 피하느라고 얼른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딴데로 보았다. 속에서 억울한 수치감이 왈칵 치밀어올랐다. 선장이는 동맹휴학의 비겁한 기피자도 아니고 또 가중한 파괴자도 아니였다!

선장이가 그 자리에 앉아배기기가 어려워 슬그머니 일어나 제 방으로 물러나왔다. 맨방바닥에 두손을 깍지껴 베고 번듯이 나가누워 천정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외양이 숙자아주머니만 퍽못한 말라꽹이차장 부인이 속에는 갸륵한 애국애족의 뜻을 품고있음을 알고 적이 놀라왔던것이다. 어멈이 빨아 손질한 선장이의 속옷들을 차곡차곡 포개서 가슴에 안고 들어왔다.

<<감기 들면 어쩌려구 그리셔.>>

선장이가 대꾸 않고 가만히 누워있기만 하니까 어멈은 안고 들어온 속옷들을 책상우에 내려놓고 곧 옆에 와 앉아 선장이의 얼굴을 가까이 들여다보며

<<어디가 편찮으세요?>>

념려스레 물었다.

<<아니, 아무렇지두 않아.>>

<<그럼 왜... 무슨 언짢은 일이 있으세요?>>

<<아무렇지두 않다니까. 그 레시바나 이리 집어줘요.>>

선장이가 일어앉아 어멈이 집어주는 광석라지오의 레시바를 받았다. 귀에 걸다가 그만두고 그 한짝을 떼여 어멈에게 건네며

<<우리 한짝씩 같이 들어.>> 하고 웃으니 어멈도 상글거리며 레시바 한짝을 받아서 귀에 갖다대였다. 둘이 머리르 맞대고 레시바에서 흘러나오는 수심가를 듣는중에 큰방에서 숙자아주머니의

<<어멈.>>하고 부르는 소리가 나서 어멈은

<<예.>>

대답하고 레시바를 얼른 선장이에게 돌려주며

<<손님 가시려나베.>>

혼자말하고 지체없이 일어나갔다.

밤에 자다가 선장이는 말라꽹이차장 부인이 저를 보고도 본체안하여 대단히 실망하는 꿈을 꾸고 잠이 깨여서도 계속 마음 한구석이 빈것 같아 서운하였다.

약 2주일간 지속된 동맹휴학이 일단 끝이 나서 선장이가 학교에를 나가보니 축대우 게시판에 나붙은것은-공무집행을 방해하고 또 폭행을 가했다는 죄로 <<곰보>>와 <<백발귀>>를 각각 2주일씩 정학처분하고 또 기물손괴죄로 두 권투선수를 각각 1주일씩 정학처분하고 그리고 동맹휴학을 조직, 선동하였다는 죄로 김봉구를 출학처분한다는-학교당국의 공시였다. 선장이는 공시를 보고 가슴이 무너앉는것 같았다. 가장 흠모하는 인물-김봉구를 영원히 다시 못 보게 된다는 아수함과 안타까움이 심장을 마구 죄였다.

(김봉구도 없는 이따위 학교를 다녀 무엇하나.) 하는 미친 생각까지 났다. 게시판앞에 모여선 상급생들이 씩둑꺽둑 지껄이는 소리가 화살처럼 하나하나 귀속에 들어와 박혔다.

<<학교에서두 이런 처분을 하구싶어 하는게 아니야, 경찰의 압력에 못이겨 하는거지.>>

<<물론 그럴테지.>>

<<김봉구가 없으면 재미가 없어서 난 또 딴 학교루 전학이라두 할란다.>>

<<이습회두 잘못하면 머리 없는 룡이 되잖겠는지 모르겠다.>>

<<김봉구의 사촌형이 보성전문에 다니는데 사람이 터지게 났다더라.>>

<<그 집안이 원체 래력이 있는 집이야.>>

<<어드런 래력?..>>

<<그 할아버지가 한일함방후에 의병운동을 일으켰던 유명한 의병장이래.>>

<<그러찮구, 까짓 두어주일쯤.>>

<<둘이 다 영웅이다.>>

<<난 그치들이 경찰놈들을 멨다꽂을 때 어찌나 속이 시원하던지 3년 묵은 체중이 다 떨어졌다.>>

<<유도선생이 코가 우뚝하게 됐군, 제 제자들이 경찰학교 졸업생들을 넙치를 만들어놨으니까.>>

<<그 자식들이 펀치 먹인 창문들을 어느새 다 고쳐놓았네.>>

<<뼁끼칠이 약간 다른게 알린다.>>

<<아무튼 걸작들이야.>>

<<한주일 정학쯤은 데시근하게두 안 여길걸.>>

<<`곰보`나 `백발귀`쯤은 경찰에 때여가기만 했더라면 어디가 부러져두 부러져나오는걸 옹케들 피했지.>>

<<`곰보`, `백발귀`가 왜 시라노니냐, 잡히게.>>

<<경찰놈들이 김봉구를 종당은 아마 가만 안 둘게다.>>

<<가만 안 두면 그럼 또 한번 뒤집어지는게지.>>

<<그러찮구, 서울장안이 벌꺽 뒤집히게 한번 또 들었다놓자꾸나.>>

<<잡아갇혔던 학생들은 인제 얼추 다 풀려나온 모양이더라.>>

<<제따위 놈들이 안 내놓구 배기니, 세상여론이 죽끓듯하는 판인데.>>

<<경찰놈들두 이번엔 혼쌀을 한번 든든히 먹었어.>>

<<누가 아니래요.>>

<<5학년것들은 사람이 아니다.>>

<<더러운것들!>>

<<그런것들은 민족의 이름으로 규탄을 한번 단단히 해야 하는데.>>

수업시간이 되여 고실에를 들어가 앉아보니 교단에 올라선 선생과 걸상에 앉아있는 학생들의 사이가 별나게 서먹서먹한데 무슨 놀라운 변고라도 치르고난 뒤끝 같았다. 체질관계로 <<쌍화탕>>을 달여먹는 까닭에 <<쌍화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한문선생이 두보의 <<춘망>>을 가르치다가 <<국파산하재(国破山河在), 성춘초목심(城春草木深)>>의 뜻을 누가 한번 새겨보라고 하였다. 선장이가 선등 손을 들고 일어나 글귀를 새길 대신에

<<선생님, 김봉구는 왜 출학처분을 했습니까?>>

엉뚱한 질문을 하여 교실안의 사람들이 다 의외롭게 여가는중에 <<쌍화탕>>선생은 잠시 당황해하다가 이내 다시 평정한 상태로 돌아가가지고

<<지금은 수업시간이니까... 교과서하구 관련 없는 질문은 두었다 나중에 하라구.>> 하고 슬쩍 넘겨버렸다. 선장이가 앙앙불락하여 시간을 겨우 마치고 운동장으로 나오니 급장 오월봉이가 히죽히죽 웃으며 뒤따라니와 선장이의 어깨를 툭 쳤다.

<<임마, `쌍화탕`은 교무회의에서 김봉구를 두둔했다구 경찰에서 점을 찍어놓은 사람이야. 그런데 거기다 대고 또 그따위 질문을 해? 자식, 눈치가 안는 암탉 잡아먹겠다!>>

선장이가 입을 딱 벌리고 한참만에

<<누가 그런걸 알았어야지.>> 하고 뒤통수를 긁적거리니 오월봉이는

<<모르면 아가리나 닥쳐야지.>>하고 선장이의 어깨를 또 한번 툭 쳤다.

<<가서 잘못했다구 빌가.>>

<<가서 비는건 다 뭐야 새빠지게, 그 자식이 정말 숙맥일세.>>

교직원들가운데도 김봉구를 동정하고 지짛는 사람이 있다는것을 알게 되자 선장이는 찌뿌드드하던 기분이 한결 거뜬해졌다. 그래서 롱지거리가 입에서 절로 튀여나왔다.

<<너의 색시 사진 보여주겠다던거 어떻게 됐니? 어디 좀 보자.>>

<<느그 작은엄마 사진 말이야?>>

<<이름이 뭐야? 명월이? 추월이? 소월향? 옥부용?...>>

<<고놈이 새깽이 버르잠머리 없어 못쓰겠다. 꼭뒤에 피두 안 마른 녀석이 어디서 기생이름은 그렇게 숱하게 주어들었냐.>>

이날 밤 뜻밖에 연갑수법률사무소로 서선장이를 찾아온 녀학생 하나가 있었는데 그는 곧 팔소매에 검은 헝겊으로 상장을 단 한선희였다. 한 열흘 초만원 류치장에서 시달리여 수척해진 얼굴로 큰방에서 박숙자와 마주앉아 이야기를 하고있던 선희는 선장이가 장지를 열고 들어서는것을 보고

<<사돈총각 오래간만일세...>>

우스개소리를 하고 박숙자와 서로 돌아보며 깔깔 웃었다. 선장이가 무슨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는것을 보고 선희가

<<이젠 너의 누나가 내 올케란 말이야. 알겠니?>>

말하는데 숙자아주머니가

<<정실이가 선희네 오빠한테 시집을 간단다.>> 하고 말곁을 달았다. 선장이는 집에서 알리지 않은 까닭에 도시 처음 듣는 소리였다.

<<우리 누나가?...>>

<<왜 곧이들리지 않냐?>>

선장이가 눈만 끔벅끔벅하는것을 보고 두 녀자는 또 한바탕 소리내여 웃었다.

<<어서 가 옷이나 가라입구 와. 나하구 김영하선생한테 좀 같이 가자. 가서 인사를 치러야겠다.>>

<<재야 어디나 간다면 후딱하지.>>

선희가 선장이를 앞세우고 관훈동으로 오는데 어둠컴컴한 사이길을 빠져나오니 단 5분도 채 아니 거렸다. 김영하선생은 의외의 진객이 들이닥치는 바람에 거두지 않아 어질더분한 좁은 방에다 방석을 고쳐 까느라고 분주하였다. 선장이는 속으로 웃었다.

(아마 선녀가 하강을 한줄로 아는 모양이지?)

선희가 먼저 고개를 수그리고

<<선생님께서 념려해주신 덕분에 무사히 풀려났습니다. 감사합니다.>>

인사하니 김영하선생은 마주 고개를 숙이며

<<아니 천만에. 그동안 선희씨 고생이 많았습니다. 장하십니다.>> 하고 인사를 맞았다.

<<경찰이 무도하다는걸 이번에 겪어보구 밝히 알았습니다.>>

<<아주 귀중한 체험을 하셨습니다. 정말 화가 복으루 된다는 속담이 맞습니다. 그런데 몽상을 입으셨으니 웬 일입니까?>>

<<저의 조부님 거상을 입었습니다.>>

<<아니 한진사어른 거상이란 말씀입니까. 언제 돌아가셨습니까?>>

<<이제 겨우 한달이 지났습니다.>>

<<상제님을 그대루 보여서 쓰겠습니까. 새루 궂긴 인사하구 보입겠습니다.>>

말하고 김영하선생은 곧 꿇어앉아

<<상사말씀은 무슨 말씀을 하오리까.>> 하고 새삼스레 조상인사를 하였다. 선희가 잠시 당황하여 얼굴을 붉히는것을 보고 선장이는 속으로 상중에 류치장출입까지 하고 팔자가 어지간히 험한 녀자로구나 생각하였다. 기실 선장이도 이때까지 한진사가 작고한것을 모르고있었다.

토요일날 오후에 선장이가 넌지시 어멈을 보고

<<어멈, 고추장볶이 아직 얼마나 있수?>> 하고 물으니 어멈은 괴이쩍어하는 눈치로

<<갑자기 그건 알아 무어 하시게, 도련님 잡술게 없을가봐?>> 하고 되물었다.

<<아니야, 내 따루 좀 쓸데가 있어서 그래.>>

<<아니 고추장볶이를 어디다 쓰세요. 도련님이?>>

선장이가 어멈의 귀에 입을 갖다대고

<<우리 선생님 좀 갖다드릴가 해서 그래, 하숙생활을 하시는데... 그런 맛있는 고추장볶일 어디 얻어잡술수 있어?>>하고 소곤소곤 말하니 어멈도 따라서 가는 목소리로

<<오 그래요... 그렇다면야... 념려 마세요. 내 이따 몰래 알단지에다 한단지 꼴딱 담아놓을테니... 어둡거든 갖다드리세요.>>

선선히 응하고 상글상글 웃었다. 선장이하구 한통속이 되여 주인 모르게 좋은 일 하는게 재미가 있어서다.

김영하선생이 고추장볶이 담긴 알단지를 받아놓고 영문을 몰라

<<이게 웬거냐?>> 하고 물어서 선장이는 그럴사하게 꾸며대였다.

<<지가 우리 아주머니께 말씀하구 좀 달래왔어요, 선생님 갖다드리겠다구.>>

<<응 그러구보니 너의 아주머니가 인심이 무던하구나.>>

<<그러면이요.>>

<<언제 만나면 인사를 톡톡히 좀 해야겠는걸.>>

<<요만 일에 인사는 무슨 인사예요. 남 게면쩍으라구.>>

<<그래두 어디 그러냐.>>

<<고만두세요, 필요 없에요.>>

<<먹긴 잘 먹겠다만.>>

이때 밖에서 발자국소리들이 나더니 이어 선장이도 어디서 들은적이 있는것 같은 목소리가

<<김선생.>> 하고 불러서

<<아 어서들 오시우.>> 하고 김영하선생은 곧 일어나 가 미닫이를 열었다. 방안에서 내비치는 전등불빛에 마루에 올라서는 두 사람을 내다보고 선장이는 흠칫 놀랐다. 앞선 사람은 지난번에 탑골공원앞에서 양코배기의 카메라를 빼앗아 동댕이치던 사각모를 쓴 학생이니까 별로 놀랍게 없었지만 두번째 사람은-천만뜻밖에도 선장이가 가장 흠모하는 인물-키케로 김봉구였기때문이다. 앞을 선 사각모가 방안에 들어서며 웃목에 일어서있는 선장이를 보고

<<우리 구면이지.>>하고 웃으며 인사하는데 뒤를 따라 들어온 김봉구도 선장이를 보고

<<우리두 구면이지.>>하고 웃었다. 주객 세 사람이 아래목 따뜻한 자리를 서로 사양하다가 마침내 손님 둘을 아래목에 앉히고 김영하선생은 선장이를 데리고 사각모앞에 모꺽어 방문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사각모가 좌정하며 곧 김영하, 김봉구 두 사람을 인사시키는데 먼저 김봉구를 가리키며 김영하선생에게

<<이 사람은 내 사촌동생... 김봉구라고 합니다.>>

소개하고 다시 김영하선생으르 가리키며 김봉구에게 이분은 누구시라고 소개를 하였다. 두 사람 인사시키는 말을 옆에 앉아 듣던 선장이가 속으로

(아하, 게시판앞에서 상급생들이 칭찬하던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였구나, 사람이 터지게 났다는... 의병장의 손자.)

생각하고 다시 살펴보니 아닌게 아니라 두 사촌형제의 기걸스러운 얼굴모습이 비슷하였다. 사각모가 사촌아우의 출학당한 경위를 요령있게 설명하고나서

<<이 사람의 전도가 이젠 아주 막혀버리다싶이 됐으니 나갈 길을 뚫어야겠는데... 국내에선 질서가 너무 째여놔서 어떻게 해볼도리가 없단 말입니다. 그래서 이럴바엔 차라리 하구 착안을 한것이...>>

말하고 사촌아우를 돌아보며

<<그거 좀 보여드려.>> 하고 잠시 말을 그쳤다. 김봉구가 사촌형이 시키는대로 돌돌 말아 손에 쥐고 온 잡지 한권을 얼른 뒤집어 말아서 꽉꽉 쥐여 대충 펴가지고 김영하선생앞에 밀어놓았다. 46배판으로 된 그 잡지의 표지에는 아침 조자 빛 광자 <<조광>>이라는 두 글자가 뚜렷이 찍혀있었다.

<< 거기 글 한편이 실렸는데... `황포군관학교의 조선학생들`이란 제목으루 사진까지 곁들였습니다.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그 군관학교에 조선학생들이 있어두 이만저만 있는데 아니라... 아주 많이 있단 말입니다. 참으루 놀라운 일입니다. 그 학교는 말하자면 중국의 웨스트포인트(미국의 유명한 륙군사관학교)가 아니겠습니까. 그동안 우리의 시야가 얼마나 좁았습니까. 류학이라면 의례 일본으루만 알았단 말입니다. 김선생 한번 좀 읽어보십시오.>>

선장기는 난생처음 듣는 말에 귀가 번쩍 뜨이였다. 이때는 서점에서의 맑스의 <<자본론>>을 버젓이 펼쳐놓고 팔던 시절이다. 그렇건만 선장이는 보고들은것이 많지를 못하였다. 횅하게 아는것이라면 동해바다(서해 말고)에서 나는 물고기들의 이름과 그 습성이라고나 할가. 김영하선생이

<<아 그 문장은 나두 읽어봤습니다. 도서관에 있으니까 자연...>> 하고 말하니 김봉구의 사촌형은

<<아 그렇습니까. 그럼 더 잘됐습니다. 그래 소감이 어떻습니까 읽으신?>> 하고 다그쳐물었다.

<<대단히 경탄했습니다, 전에는 상상두 못하던 일이라서.>>

<<그렇습지요. 솔직히 말해 우리가... 우리 같은 정직한 조선사람들이 말입니다... 지금 일본사관학교를 다닐수 있습니까?>>

<<아마 어렵겠지.>>

<<아마 어렵겠지가 아니라... 도저히 불가능하지요.>>

김봉구가 옆에서

<<철저한 친일주구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안되지요.>>하고 말깃을 다니 김영하선생이 깨도가 되는듯 대번에 무릎을 치며

<<아하. 그러니까 중국에 건너가 황포군관학교를 다녀볼 의향이시구려?>> 하고 웨치다싶이 말하였다. 김봉구가 맞았다는 뜻으로 고개 끄덕이는것을 보고 선장이는

(의병장의 손자가 다르긴 하다.) 하고 흠모하는 한편 또 몹시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창문밖 골목길에서 고학생이

<<칼톱만쥬, 칼톱만쥬!>>

웨치는 소리가 들렸다. 동대문밖 고학당의 학생들은 겨울만 되면 밤마다 시내에 들어와 따끈따끈한 찐방-달달한 팥소 넣은 찐빵-을 팔러 다니는데 그 웨치는 소리는 겨울의 밤서울의 처량한 풍물시로 되였었다. 비록 <<칼톱만쥬>>라는 말이 무슨 뜻이지는 아무도 몰랐지만서도.

추천 (3) 선물 (0명)
IP: ♡.245.♡.80
로즈박 (♡.39.♡.172) - 2023/10/27 15:01:32

어마나..드디여 정실이가 승인을 받앗군요..축하축하~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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