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전집1 격정시대 상-28

더좋은래일 | 2023.10.27 09:17:07 댓글: 1 조회: 252 추천: 3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12100


28

선장의 교복의 금장이 <<1>>자와 <<2>>자로 바뀐 뒤 얼마 아니하여 일어난 두가지 큰 사건이 있었으니 그 하나는 서원준사건이요 또 하나는 리재유사건이였다. 각 신문이 서로 다투어가며 대대적으로 보도기사들을 실어서 서울장안이 들썩한중에 선장이도 지대한 흥미를 가지고 사건의 추이를 주시하고 또 극적인 종말을 마음죄며 기다렸다.

서원준은 해외-중국 관내-에서 독립운동에 종사하는 민족주의자로서 군자금을 조달할 목적으로 국내에 잠입하였었다. 이때 서울-장호원 사이를 운행하는 승합자동차도 다른 로선을 달리는 차들과 마찬가지로 우편행낭을 적재하였었다. 그리고 또 이 구간을 운행하는 차는 서울 식산은행본점과 장호원지점 사이의 현금운송도 취급하였었다. 서원준은 이에 착목을 하고 일할 장소를 고르는데 자동차가 바라오르려면 힘이 몹시 들어하는 가파른 고개하나를 택하였다. 백주에 그 고개마루에서 서원준은 권총을 내대고 장호원을 떠나 서울로 향하는 자동차를 멈춰세워놓고 운전사이하 칠팔명의 승객이 눈들을 멀뚱멀뚱 뜨고 바라보는 가운데 엄청난 액수의 현금을 어렵지 않게 탈취하였다. 그리고 도주하기전에 운전사와 승객들에게 목자를 부리리며

<<한시간안으로 경찰에 신고만 했다봐라, 다 죽여치우겠다!>>

으름장을 놓고 유유히 자취를 감줘버렸는데 운전사와 승객들은 오금이 저려 한시간이 좋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경찰에 신고할 엄두들을 내였었다. 일명 장호원사건이라고도 불리는 이 활극 같은 사건을 각 신문들이 일제히 보도하자 세상의 이목은 모두 그 사건으로 쏠리는듯싶었다. 제모의 에나멜가죽끈을 턱에다 내려걸고 또 가뜬가뜬하게 각반을 치고 그리고 장총들을 멘 경찰기동대가 떼를 지어 성북동으로 넘어가는 고개길을 올라가는것을 교정에 서서 바라보다가 선장이가 념려스러운 얼굴로

<<그 사람이 무사히 탈출을 할가?>> 하고 옆에 섰는 곽복덕이를 돌아보니 곽복덕이는

<<독립군들은 난다긴다하는 재주를 가졌다니까... 어떻게 되겠지.>>하고 걱정 없는 대답을 하였다.

<<나두 권총이나 있으면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 얼마나 멋지냐, `꼼짝 말구 손들엇.`>>

<<권총만 있으면 되니, 쏠줄도 모르면서.>>

<<권총쯤 쏘는게 무에 그리 어려울라고.>>

<<자식, 세상일 다 그렇게 식은 죽 먹긴줄 아니?>>

<<그래두 다 사람이 하는노릇이겠지. 배워서 안될 일이 어디 있어.>>

<<말루야 못할 일이 없지.>>

선장이가 일부러 먼산바라기를 하며 비양조로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오를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하고 시조 한수를 읊으니 곽복덕이는 가소로운듯

<<논다 놀아.>>하고 토방귀를 뀌였다. 오월봉이가 팔자걸음으로 걸어오며

<<너희들 거기서 뭐 하니?>> 하고 싱글거려서 곽복덕이가

<<남이야 무얼 하든간에 쓸데없는 참견 말구 어서 너먹을 담배나 먹어라.>>하고 엇조로 응수하는데 선장이도 가만있지 않고

<<느그 색시는 너처럼 그렇게 팔자걸음 안 걷지? 오리처럼 요렇게 안쪽발걸음 걷지?>> 하고 놀려주었더니 오월봉이도 지지 않고

<<함경도가 상놈의 본향이라더니 과연 그렇구나. 너희 놈들이 바루 그 좋은 본보기다.>>하고 익살스럽게 고개를 끄덕끄덕하였다.

이틀후에 서원준이 체포되였다는 보도기사를 읽고 또 거기 곁들인 사진을 보고 선장이는 크게 락심하여 입맛이 다 쓸 지경이였다. 밤에 선장이가 관훈동에를 갔더니 김영하선생도 여간 애석해하지 않았다.

<<그런 일을 혼자서 하는건 워낙 좀 무리였어. 일본놈들의 수사망이 얼마나 째였다구.>>

<<징역살이를 해두 여러해 하게 될터니 저걸 어쩌지요.>>

<<글쎄 어쩌겠니. 독립운동을 하자면 그런것쯤은 미리 각오를 해야지.>>

<<독립은 꼭 될가요?>>

<<꼭 되지. 되다뿐이야. 꼭 되잖구.>>

김영하선생이 잘라 말하는것을 듣고 선장이는 앞이 환히 트이는것 같았다. 속이 한결 후련하였다. 선장이 마음에 선생님은 무어나 무소부지로 다 아는것만 같았다. 그것은 곧 존경하는 스승에 대한 믿음 즉 신앙이였다.

이날 선장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종로 네거리와 안국동종점 사이를 운행하는 전차를 갈아타도 오는중에 차창으로 내다보니 중앙일보사 게시판앞에 사람들이 모여서 신문을 들여다보고 또 무어라고 서로 지껄이는것이 눈에 띄였다. 선장이가 또 무슨 서원준사건이 터지지나 않았나 하는 의심이 들어 좌석에서 얼른 뛰여일어나 승강구로 나왔다. 달리는 전차에서 말광대같이 몸가볍게 <<도비오리>> 즉 <<뛰여내리기>>를 하였다. 이때 전차는 승강구에 문이 없는 대신에 잡고 오르내리라는 긴 손잡이 막대기가 량쪽에 하나씩 달려있었으므로 이러한 뛰여내리기가 가능하였다. 물론 달리는 전차에서 뛰여내려서는 안된다는 규칙은 있었다. 그러나 어느때, 어느곳을 막론하고 규칙이란 간간이 위반을 당하게 마련이다. 선장이가 오금에서 바람이 나게 쫓아가보니 이번 사건의 주인공은 선장이와 동성인 서씨가 아니고 인연이 퍽 먼 어디사는 리씨였다. 사건도 이른바 <<권총강도>>가 아니고 그냥 무슨 <<비합법운동>>이였다. 그리고 이번 사람은 해외에서 잠입한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국내에서 지하활동을 하다가 현재 지명수배를 피하여 숨어다니는중이며 또 민족주위자가 아니고 공산주위자였다. 요약해 말하면 공산당의 지도자격인 인물이 경찰의 엄밀한 수사망을 벗어나 온데간데가 없어졌다는것이다. 그 이름은 실을 재자 넉넉 유자 리재유였다. 선장이가 신문을 들여다보는체하며 옆에서 씩둑꺽둑 지껄이는 소리에 귀를 도사렸다.

<<리재유라면 공산당의 책임비선가 뭔가가 아닌가?>>

<<아마 그렇다는갑디다.>>

<<그런 귀신 찜쪄먹을 친구가 그렇게 어리무던하게 붙잡힐라구.>>

<<지금 눈들을 까뒤집구 가을중 쏘대듯하는데... 무사할가?>>

<<아직두 서울시내에 잠복해있는것만은 틀림이 없는갑디다. 멀리 튀지는 못한갑디다.>>

<<십만장안 억만가구에 사람 하나를 찾는다? 잔디밭에 가 바늘을 찾으라지.>>

<<제발 잡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개새끼들 헛물켜는 꼴 좀 보게.>>

<<자네 나하구 내기하지 않으려나?>>

<<무슨 내기?>>

<<리재유가 잡히면 내가 한턱 내구... 리재유가 안 집히며 자네가 한턱 내구...>>

<<공산당은 잘사는 놈이구 못사는 놈이구 다 똑같이 먹구 살걸 주장한다며?>>

<<그렇다면 좀 좋아. 우리 같은거야 밑질것 하나 없지, 물에 빠져두 주머니밖에 뜰게 없는데.>>

<<박홍식이가 그런 소릴 들었으면 아마 임자를 선자리에서 뜯어먹으려구 할게요.>>

<<박홍식이가 화신백화점 사장이 아니요?>>

<<고만들 지껄여, 괜히 그따위 소리 하다가 놈들 귀에 들어가면 또 졸경들 칠라구.>>

선장이가 상상력을 만가동하여 리재유의 행방에 대하여 가지가지 추측을 하며 연갑수법률사무소 현관에 들어서니 문 여닫는 소리를 들은 모양으로 연변호사가 사무실에서 내다보지는 않고

<<게 들어온게 누구냐?>> 하고 소리쳐 물어서 선장이는

<<녜 접니다. 선장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이리 좀 들어오너라.>>

<<녜.>>

연갑수가 량소매책상앞에 앉아 무슨 서류를 뒤적거리다가 들어와 선 선장이를 한번 쳐다보고 또 탁상일력을 한번 보더니

<<너 래일 심부름 좀 갔다오나. 일찌감치 일어나서... 일요일이니까... 당일치기루 하면 괜찮겠지.>> 하고 말을 일러서 선장이는

<<녜, 어디를요?>> 하고 행선지를 물어보았다. 당일치기란 말이 시내 어디 좀 갔다오는따위의 심부름은 아닌상싶어서였다.

<<리천을 좀 갔다오나, 빚추심하러.>>

<<리천엘요? 리천이면... 장호원으로 가는 길목이 아닙니까?>>

선장이의 상상력 왕성한 머리속에서 대번에 승합자동차와 현금, 가파른 고개길과 권총을 내든 서원준의 모습이 뿔 넷 달린 바람개비가 되여서 돌아갔다.

<<왜, 가기 싫으냐?>>

<<아니, 가겠씁니다.>>

<<서원준이 생각이 나서 그러니? 서원준인 감옥에 갇혀서 나오지를 못할테니까... 어서 맘놓구 갔다오나. 괜찮다.>> 하고 연변호사가 웃음의 소리를 하며 웃어서 선장이는 좀 열적게 따라 웃었다. 속을 빤히 들여다보인것 같아서였다.

선장이가 이튿날아침 일찌기, 연변호사의 몸을 받은 사무소의 서기가 안날 오후에 예약해준 왕복차표를 가지고 리천길을 떠났다. 막상 떠나보니 번거로운 되회지를 벗어나 늦은봄의 푸른 전야가 펼쳐지는 시골길을 호사스레 자동차-문명의 리기-에 앉아 달려보는것도 과히 해롭지가 않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선장이의 그런 호사스러운 광경은 그리 길지가 못하였다. 매화도 한철, 국화도 한철이였다. 얼마 오래지 않아 곧 재난적인 우연지사가 발생한것이다. 승합자동차-꺼먼 풀을 친 9인승포드-가 꽃향기 싱그럽고 풀냄새 싱그러운 봄바람을 헤가르며 상쾌하게 달리는중에 앞길에서 노랑저고리에 다홍치마를 입은 색주가모양의 젊은 녀자 하나가 자동차 오는 소리를 듣고 발을 멈추며 곧 한옆으로 비켜서더니 손을 쳐들었다. 더 말할것없이 차를 세우라는 신호다. 머리를 양털처럼 곱슬곱슬 지지고 얼굴에 하얗게 분칠을 하고 그리고 입술에다 렴매품루즈를 빨갛게 바른 그 녀자를 보자, 멋을 부리느라고 빨간 넥타이를 매고 신바람 나게 차를 몰아오던 운전사가 무조건 브레키를 밟아 차를 멈춰세웠다. 이때의 기풍으로 보아 이런 승합자동차의 운전사들은 대개 다 연도의 읍촌이나 주막거리에서 술장사하는 녀자들과 옅고깊은 인연들을 맺고있었다. 그러니 이 운잔사량반이 차를 어찌 아니 세우랴, 치마자락을 나붓기며 웃는 얼굴로 편승을 요청하는 잘 아는 녀자앞에서 운전사가 불가항력적으로 굴복을 하는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딱한것은 운전사가까지 모두 해서 아홉 사람밖에 못 타는 자동차가 정원이 꼴딱 차 한 사람은 고사하고 단 반 사람도 더는 태우지를 못할 형편인것이였다. 일이 난처하게 된 운전사가 뒤좌석을 돌아보고 사정하듯 승객들에게 의논을 거니 승객들도 인정으로

<<암 태워야지... 보통이두 작지 않은데... 걸어가랄수 있소.>>

<<어떻게 해서든지 태워가지구 가야지... 삼사십리 길을 약한녀자더러 걸어가라다니... 어디 될 말이요.>>

<<그럼 어떻게 할가.>>

<<글쎄 어떻걸가.>>

제각기 한마디씩 지껄였다. 보통이 인 녀자는 차옆으로 다가섰고 또 발동을 끄지 않은 자동차는 계속 털털거리는중에 갈길이 바쁜 승객들이 공론한 끝에 중간좌석에 앉은 중년의 탑삭부리가 뒤좌석 왼쪽 구석에 앉았는 선장이를 가리키며

<<저 학생하구 좀 같이 앉아가게 하지.>> 하고 발론을 하여 다른 사람들도

<<참 그게 좋겠소.>>

<<여게 총각, 사정 좀 보아드리게... 한 반시간밖에 더 안 걸릴테니까.>>

<<어린 학생인데 괜찮지... 어서 그렇게 하라구.>>

중구난방으로 권고를 하였다. 일이 안될 때라 마침 승객중에 아이는 선장이 하나뿐이고 그 나머지는 다 어른들이였다. 운전사가 한손에 핸들을 잡은채 웃몸을 뒤틀고 선장이를

<<미안하지만 그렇게 좀 합시다 학생.>> 하고 다리아래소리를 하는데 젊은 색주가모양의 녀자는 당자의 말도 들어보지 않고 대뜸 머리에 이였던 보퉁이를 내려안으며 앞으로 대들더니 선장이 앉은 좌석의 차문을 밖으로 열었다. 그리고 발판을 디디고 올라타면서

<<학생 좀 이어나우.>>

발하고 손에 든 보퉁이부터 중간에 앉은 로인의 발밑에 내려놓았다.

<<자 이젠 내 무릎에 앉아요.>> 하고 그 녀자는 엉거주춤 서있는 선장이의 허리를 뒤에서 ㄱ러안아 제 무릎우에 주저앉혔다. ㄱ리고 혼자말로

<<우리 집에두 이만한 동생이 둘이나 있는데.>>하고 지껄였다.

한 사람 더 태우는 수선이 끝나자 자동차는 다시 달리기 시작하였다. 로면이 울퉁불퉁한 시골길을 달리는 자동차는 맨 뒤좌석에 제일 몹시 들추기 마련이다. 알지도 못하는 젊은 녀자의 무릎에 앉아가는것만도 기가 막히다는데 철딱서니 없는 차가 사정없이 들추어서 엉뎅이가 자꾸 녀자의 허벅다리에 부딪는 바람에 선장이는 살고싶은 마음이 다 없어질 지경으로 열적고 난처하고 야속하였다. 선장이가 좀 덜 부딪게 하려고 엉뎅이를 엉거주춤 들었더니 녀자는

<<왜 편히 앉지 이러우?>> 하고 선장이를 콱 끌어당겨안았다. 선장이는 두눈을 꼭 내려감고

(될대로 돼라! 모르겠다...)

운명을 하늘에 맡겨버렸다.

선장이가 리천나들이에서 일수 사납게 서원준이가 아닌 웬 뚱딴지같은 색주가를 만나 톡톡히 땀을 빼였다. 저녁에 돌아와 추심한 돈을 연변호사에게 전하고 심부름 잘했다고 상급으로 1원 한장을 탔다. 석후에 어멈이 새앙차를 달여가지고 들어와 웃으면서

<<로독을 푸는데 새앙차가 제일이라니까요.>> 하고 어서 마사라고 권한 뒤에 다시

<<리천읍이 좋아요?>> 하고 물었다. 선장이가 리천이야기를 접어놓고 길에서 겪은 색주가란리를 이야기하였더니 어멈은 듣고 허리를 잡고 웃다가 나중에는 대굴대굴 굴기까지 하였다. 번화스럽게 웃는 소리를 듣고 숙자아주머니가 큰방에서 건너와 방안을 들여다보며

<<무에 우스워서 그 야단들이야?>> 하고 물었다. 선장이가

<<괜히 나 오늘 리천 갔다 온 이야기를 했더니 저렇게 웃구 야단이지 뭡니까.>> 하고 웃는 까닭을 말하는데 어멈은 일어앉아 한손으로 배를 부둥키고 또 한손으로는 눈물을 닦으면서

<<아니 도련님이 글쎄... 사람을 웃기지 뭐예요. 아씨 글쎄... 아니구 배야.>> 하고 말을 한끈에 잇달지 못하였다. 숙자아주머니가 선장이를 보고

<<무슨 우스운 이야기... 나두 좀 듣구 웃어보자.>>하고 말하여 선장이가 하는수없이 색주가 무릎에 앉아가던 이야기를 다시한번 하였더니 처음 듣는 숙자아주머니가 허리를 잡을뿐아니라 되풀이로 들은 어멈까지 또 허리가 끊어지게 웃었다.

어느날 선장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현관에 들어서니 사무실문을 빠끔히 열고 서기가 지꾸를 발라 단정하게 갈라빗은 머리를 내밀었다.

<<인제 오니. 이리 좀 들어오나.>>

서기가 심심파적으로 선장이를 사무실에 불러들인다는것은 곧 연변호사가 외출중임을 의미한다. 연변호사의 조수이고 또 심복인 이 서기의 성은 보통성이 아니고 복성이였다. 그래서 선장이는 처음 왔을 때 연변호사가 그를 부르는데

<<선우군.>> 하는것을 듣고 속으로

(옳지, 저 사람의 이름이 선우인가보다.)

생각하고 나중에 숙자아주머니더러

<<저 사무실에 있는 서기가 성이 뭡니까?>> 하고 물었더니 숙자아주머니가 적이 괴이쩍어하며

<<성이 선우지 뭐야?>> 하고 말하여 선장이는 비로소 깨도가 되여

<<아 녜 선우가 성입니까? 난 또 선우가 이름이라구요.>> 하고 웃어서 숙자아주머니도 따라 웃은적이 있었다. 연갑수법률사무소의 서기 선우군은 스물예닐곱살 먹은 로총각으로서 연변호사를 절대적으로 숭배하여 그 우결점을 분석함이 없이 통채로 따라배우고 또 받아들이는 사람이였다. 여기서 말하는 우점이란 물론 그의 변호사로서의 비상한 수완인것이고 그리고 결점이란 그 흘레개 같은 방탕한 행실을 말하는것이다. 선우군이 권연을 꼬나물고 선장이에게 빈 의자를 가리켰다. 그리고 앉기를 기다려서

<<한대 피워보련?>> 하고 권연갑을 내밀었다. 선장이가

<<난 싫소.>>하고 고개를 외치니 선우군은 들이빤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고나서

<<그래가지구 언제 사내구실을 하겠니? 촌놈!>> 하고 비웃은 뒤 싱글거리며

<<네 오늘저녁 나를 따라오면 희하한 구경을 할수 있다. 네따위야 생전 어디 가서 그런 구경을 하겠니. 가겠니 안 가겠니?>> 하고 물어서 선장이는 대번에

<<가겠소.>>

대답하고 곧 다시

<<간다는데가 어디요?>> 하고 물으니 선우군은 여전히 싱글거리며

<<가보면 알게 아니야.>>하고 나중에 재미를 보려는지 가는 곳을 미리 대주지 않았다.

선장이가 호기심에 끌리여 무조건 선우군을 따라 밤거리에 나섰다. 선우군은 선장이를 데리고 조선은행앞에서 전차를 내리자 곧 진고개 번화가로 향하였다.

<<간다는데가 고작 진고개요?>>

<<잔말 말구 따라와.>>

좁은 거리에 소풍객과 물건 사러 나온 사람들이 붐비여 왜나막신 끄는 소리에 귀가 따가운 진고개를 1정목에서 2정목, 2정목에서 3정목, 3정목에서 다시 4정목... 번화한 밤거리와 등불이 차차로 설핏해가는데도 선우군은 걸음을 멈출 생각이 없는듯 계속 시적시적 앞을 향하고 걸어갔다. 선장이가 속으로

(저치가 무슨 귀신한테 홀리잖았니? 밤중에 날 장충단으루 끌구 갈 작정인가?)

의심을 하며 청처짐하게 뒤를 따라가는중에 홀지에 <<류암화명우일촌(柳暗花明又一春)>>으로 색다른 거리 하나가 눈앞에 나타났다. 선장이가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다시 보니 좁은 거리 랑편에는 아담스러운 조선식가옥들이 즐비한데 문들은 활짝활짝 열렸는데 정갈한 마당과 마루와 방들이 환히 들여다보였다. 그리고 매집 문등밑에는 화려하면서도 야해보이는 몸치장을 한 젊은 녀자들이 죽 나서서 좁은 길을 누비는 왈자, 건달, 난봉군, 오입쟁이들을 끌어들이느라고 왁자그르하였다. 선장이는 나생처음 보는 희한하고 놀랍고 또 부끄러운 광경에 넋없이 걸음을 멈추니 앞을 선 선우군이 돌아보며

<<바싹 따라서지 못하구 무얼 해? 입을 헤벌리구!>>

핀잔 주듯 말하였다. 선장이가 얼른 정신을 수습하고 길을 잃을가 겁을 내듯이 부지런히 따라서는데 불시에 짙은 화장을 한 갈보 하나가 홍등밑에서 내달아오더니 선우군의 팔죽지를 꼭 붙잡았다.

<<과문부입하실 작정이에세요?>>

<<이거 놔라.>>

<<잠간 들어가십시다, 조용히 할 말이 있으니...>>

<<글쎄 놔라 이거.>>

<<이 량반이... 한번 붙잡으면 고만이지 놓는건 다 뭐야... 그렇게 문문히?>>

<<글쎄 오늘은 안되여.>>

<<안되긴 뭐가 안되여.>>

갈보가 눈 깜박할 사이에 선우군의 중절모를 툭 벗기더니 등뒤에 감추고 들고 상글상글 웃으면서

<<앙탈 말구 냉큼 들어가요.>> 하고 제가 이겼다는 구기로 말하였다.

<<이 애 제발 오늘만은 용서해라... 동행이 있어서 그런다. 봐라 저런 점잖은 동행이 있는데 어떻게 들어가니. 어서 모자 이리다우.>>

서우군이 이렇게 사정을 하며 옆에 섰는 선장이를 가리켜보이니 갈보는 업신여기는 눈초리로 선장이를 한번 훑어보고는 골이나서

<<저따위 호박덩이는 뭣 하러 끌구 다닌담!>> 하고 뇌까렸다. 이말을 귀결에 듣고 지나가던 오입쟁이 하나가 웃으면서

<<조무래기오입쟁인 오입쟁이가 아니냐? 그년 참!>>하고 빈정거렸다. 선장이가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몸둘바를 몰라하는데 갈보 손에서 중절모를 겨우 도로 빼앗은 선우군이 와서

<<가자.>>하고 팔죽지를 잡아끌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거기가 바로 소문난 서울의 화류가 즉 유곽거리-신마찌였다.

돌아오는 길에 진고개 번화가에 위치한 아까다마라는 카페에 들려 커피를 주문한즉 호랑나비 같은 화복-일본옷-을 입은 녀급이 커피 두잔을 차반에 받쳐들고 나오더니 두 사람을 반반씩 갈라보며 방글방글 웃었다. 일본녀자가 옆에 와 붙어앉는 바람에 선장이가 몹시 열적어하는것을 보고 선우군이 턱을 한번 추썩하니 녀자는 곧 일어나 고개를 한번 까댁하여 인사하고 저리로 가버렸다. 선장이는 숨이 후 나갔다. 테블우에 놓인 유리단지에 담긴 각사탕은 니켈도금을 한 집게로 제각기 집어넣게 되여있었다. 선장이가 공거라고 한잔 커피에 각사탕 일곱개를 집어넣었더니 커피가 잔우로 돔(dome)모양 두두룩해졌다. 선우군이 각사탕 두개를 넣은 저의 차잔을 차숟가락으로 휘저으며

<<개미가 환생을 하잖았니? 단걸 그렇게 좋아하게!>>

비웃고 다시 음성을 낮추어가지고

<<너 집에 가 오늘 나하구 어디 갔다왔단 말은 하지 말아 괜히.>>

당부하고 싱글싱글 웃었다. 선장이가 알았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하니 선우군은

<<다 네 견문을 넓혀주느라고 한노릇이다. 고마운줄이나 알아라.>> 하고 공치사하였다. 선장이가 궁금증을 못이기여

<<아까 그 녀자들하구는 늘 만나우?>> 하고 물어보니 선우군은

<<다 단골들이다.>> 하고 코가 우뚝해졌다. 선장이가

<<그러다가 괜히 606호 맞을 병이나 얻어걸리면 어떻걸라우?>> 하고 미타해하니 선우군은

<<체. 범 무서워 산에 못 가랴?>>하고 흰목을 썼다. 급기야 일어설 때 보니 한잔에 15전-쌀 한되 값이 더되였다.

<<되우 비싸군.>>하고 선장이가 고개를 가로 흔드니 선우군은

<<그게 무에 비싸냐? 더 비싼게 얼마든지 있는데!>> 하고 의미있는듯한 웃음을 능글능글하게 웃었다.

선장이가 집에 돌아와 잘 차비를 하면서 아무리 생각해봐야 신마찌 갈보의 뇌까리던 말이 속에 걸려 내려가주지를 않았다.

(내가 호박덩리라구? 고런 망할 개새끼년 같으니... 날더러 호박덩이라구?)

선장이가 내복바람으로 벌떡 일어나 벽에 걸린 거울을 떼여내려 얼굴을 비쳐보았다. 살빛이 희고 이모구비가 단정하여 아무리 심보가 글러먹은 놈이라도 <<고 총각 해사하게 생겼다.>> 는 말을 아니할수가 없을 얼굴모습이였다. 이때 어멈이 풀을 먹여 다린 하얀 베개잇을 들고 들어왔다.

<<아니 밤중에 거울은 왜 들구 야단이셔?>>

<<어멈 바른대루 말해줘... 내가 호박덩이같이 생겼어?>>

<<호박덩이?>> 하고 어멈이 베개잇을 든채 손벽을 딱 치며

<<누가 그럽디까?>>

되묻고 제물에 주저앉기부터 하면서 웃ㄴ라고 볼일을 못 보았다.

<<웃기는!>>

선장이가 못마땅해하니 어멈은 겨우 웃음을 그치기는 하였으나 웃음기가 채 가시지 않은 얼굴을 들고

<<글쎄 누가 그럽디까?>> 하고 잼쳐 물었다.

<<웬 지나가는 녀편네가 지껄이는 소릴 귀결에 들었어.>>

<<아무 까닭두 없이요?>>

<<그년의 녀편네가 눈이 삐든지 정신이 온전찮든지... 량단간 하나구먼요!>>

<<내가... 안 그렇지요?>>

<<안 그렇다뿐이세요? 아씨가 아셨으면 그년의 녀편네 한번 혼구멍을 내주는걸.>>

선장이가 흐뭇해하는것을 보며 어멈은 베개잇을 갈아씌웠다. 갈아낸 베개잇을 들고 나가다가 뒤돌아보고

<<좋은 꿈을 꾸시려거든 왼손을 가슴에 얹구 주무세요.>>하고 웃음의 소리를 하였다.

이틀날오후 경성그라운드 즉 서울운동장에서 다른 학교와 축구대항전이 있어서 응원들을 가는데 선장이도 끼여가다가 종로 5종목 전차정류장께서 <<동아일보>>의 호외를 받아보게 되였다.

<<리재유 드디여 피검
놀랍게도 은신처는 성대 미야께교수의 사택>>

이러한 표제가 눈속으로 뛰여들자 놀라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기사의 내용을 읽어본즉 리재유는 그동안 내내 경성제국대학 일본인교수 미야께씨의 사택 마루밑 움속에 숨어있었으며 그 모든 바라지는 교수부부가 친히 해주었다는것이다.

<<아니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세판이냐?>>

<<정말 모를 일이다.>>

<<일본인교수가 조선사람을 숨겨줘?>>

<<더구나 경찰에 쫓기는 공산당을...>>

<<부부가 친히 바라지를 했다잖아.>>

<<다른 사람이 알면 소문이 날가봐 그랬겠지.>>

<<그야 물론이지.>>

<<그렇다면 그 교수부부는 다 무사하진 못할걸.>>

<<경찰에서 가만둘리 없겠지.>>

<<리재유하고 미야께가 원래 한패였던가?>>

<<어떻게 한패가 될수 있니 조선사람하구 일본사람하구? 더구나 미야께는 제국대학 교순데.>>

<<그러게 말이지.>>

<<아니 너희들 잘 모른다. 내 뉘게서 들으니까 공산당은 어느나라 공산당이구 다 한패라더라. 무슨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라던가. 본부는 모스코(모스크바)에 있는데... 그 본부에두 일본사람이 있다더라.>>

<<맞다, 나두 어느 책에서 읽어본 기억이 난다. 가다야마 셍이란 사람이다. 원래는 미국류학생이였는데 나중에 공산주의자가 돼서 현재는 모스코에 가있다고 했더라.>>

<<가다야마 셍... 한문으루 어떻게 쓰니?>>

<<쪼각 편자 뫼 산자 그리고 셍은... 잠수함이란 잠자.>>

<<잠길 잠자.>>

<<아무러면 어때? 알아들으면 됐지!>>

<<그럼 미야께교수두 공산당이던가?>>

<<그런지두 모르지.>>

<<난 도무지 무슨 갈래판을 모르겠다.>>

<<상관있니 너야. 학교 졸업하구 너의 아버지 설렁탕집이나 물려받으면 고만일텐데.>>

<<얘들아, 이따 돌아오는 길에 저 자식네 집에 들려 설렁탕추렴이나 한번 하자.>>

<<좋겠지.>>

<<찬성, 찬성!>>

선장이는 운동장 관람석에 앉아 응원대장의 지휘를 따라

<<빅토리 빅토리 빅토리! 브리 아이 씨 오우 알 오이!>>를 절주있게 웨치면서도 머리속에는 온통 리재유-미야께투성이였다

(대관절 어찌된노릇이냐?)

감수성이 예민하고 감격성이 많은 선장이 머리속에 불현듯 또 하나의 감격적인 장면이 떠올랐다. 원산총파업때 일본선원들이 배고동을 울려서 원산부두로동자들의 투쟁을 성원하던 그 가슴뛰노는 장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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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박 (♡.39.♡.172) - 2023/10/27 22:56:15

저 잡힌 분들은 어떻게 되는건지?안타깝네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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