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전집1 격정시대 상-31

더좋은래일 | 2023.10.28 16:50:22 댓글: 1 조회: 241 추천: 2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12578


31

밤새도록 달린 렬차가 평양을 지나고 또 안주를 지나서 청천강에 다달았을 때는 이미 날이 활짝 밝았었다. 정주역에서 승객들이 분주히 오르고 내리고 하는데 그 불량스러운 눈만 보아도 어떤족속들인지 대번에 짐작이 가는 사복형사 서넛이 차에 올랐다. 선장이는 몰랐지만 국경을 넘을 렬차는 정해놓고 정주-선천 사이에서 사복형사들의 기찰을 받게 되여있었다. 정주-선천 사이에서 끝이 나지 않으면 신의주까지도 따라갔었다. 일성기적과 동시에 렬차가 움직이기 시작하니 형사들도 곧 차칸차칸을 살모사 같은 노랗게 기름진 눈으로 훑어보기 시작하였다. 그 살모사의 눈초리가 몸을 스칠 때는 마치 무슨 벌레라도 기여다니는것처럼 사람들은 공연히 등줄기가 스멀스멀해나는것이였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선장이가 걸릴가! 교복과 교모-옷차림이 두드러지게눈에 띄워서였을것이다.

<<어딜 가지?>>

선장이의 앉았는 좌석옆에까지 오자 발을 멈추며 곧 형사 하나가 이렇게 물었다.

<<봉천 갑니다.>>

<<어디 차표 좀 볼가.>>

선장이가 차표를 꺼내주니 형사는 한번 보고 곧 돌려준 뒤

<<소지품은?>> 하고 물었다. 선장이가 머리우의 선반을 가리키며

<<저 트렁크 하나뿐입니다.>> 하고 공손히 대답하니 형사는 건방지게

<<내려서 들구... 나를 따라와.>> 하고 명령조로 말하여 선장이는 지은 죄도 없이 공연히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이때 다른 형사 하나가 가까이 오면서 그자를 보고

<<무언가?>> 하고 물으니 그자는 저희들의 곁말로 무어라고 두어마디 웅얼거린 뒤 곧 다시

<<빨리 해.>> 하고 선장이를 재촉하였다. 그동안에 선장이는 트럴크를 내려 들고 맞은편 좌석에 앉았는 상인풍의 세비로 입은 중년남자와 눈인사를 나누었다.

외딴 칸으로 데리고 가더니 선장이 하나를 일본형사 둘이서 검문을 하는데 꼴이 무슨 먹을알이 있을줄로 아는 모양이였다.

<<집은 어디야?>>

<<서울입니다.>>

<<서울 어디?>>

<<견지동.>>

<<집에선 무얼 하지?>>

<<아버지가... 변호삽니다.>>

<<변호사?>> 하고 뇌며 두놈이 서로 얼굴을 한번 마주보고나서 다시 물었다.

<<그런데 재학생이 공부는 안하구 갑자기 외국려행은 무어냐?>>

선장이 입에서 언젠가 얻어들어두었던 말이 제물로 튀여나왔다.

<<상해 동아동문서원으루 보결시험을 치러 가는 길입니다.>>

상해 동아동문서원은 일본제국주의가 중국대륙을 침략하는데 필요한 인재를 육성하는 학교였다.

<<상해를 간다면서 차표는 왜 봉천까지만 끊었지?>>

<<가는 길에 봉천 외삼촌한테 좀 들렸다 가려구 그럽니다.>>

<<외삼촌이 봉천 어디 살기에.>>

<<서탑입니다.>>

이것도 무심히 얻어들어두었던 말이다. 봉천의 서탑은 조선거류민들이 모여사는 구역이란 말을 언젠가 지나가는 말로 들은적이 있었는데 그것이 머리속에서 잠을 자다가 긴장한통에 제물로 튀여나온것이다.

<<서탑에서 무얼 하지?>>

<<무역상입니다.>>

변호사의 아들이요, 무역상의 생질이요, 동아동문서원의 지망자요... 형사들의 의심이 조금이라도풀리면 풀렸지 더하지는 않게 되였다.

<<트렁크를 열어봐.>>

시키는대로 선장이가 쇠를 벗기고 뚜껑을 열어잦히니 그속에서 생각지도 않은 유도복-허연 누비옷-이 불쑥 드러났다. 그 바람에 형사들은 부지중 실소를 금치 못하였다. 외국려행을 가는데 가방속에다 유도복을 넣어가지고 다니는 놈은 처음 보았던것이다.

<<유도부원이야?>>

형사 한 녀석이 웃음기 띤 얼굴로 물어서 선장이가

<<녜 그렇습니다.>>

대답하니 그자가 다시

<<검도두 하나?>> 하고 물어서 선장이는

<<검도는 안합니다. 학교에 검도부가 없습니다.>> 하고 고개를 가로 흔들었다. 형사가 트렁크속을 뒤적뒤적해보았으나 색다른것이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으니까

<<몸에 지닌건?>> 하고 바로 몸뒤짐을 시작하였다. 200원에서 부리가 헐린 현금과 손목시계와 만년필... 그리고 손수건과 소톱깎개와 영어단어장... 책을 자힐 소지품은 하나도 없었다. 권총, 폭탄, 비밀문서, 암호장 따위는 그림자도 찾아볼수가 없었다. 기대가 어그러져 맥살이 난 두 녀석이 서로 눈짓을 하더니 그중의 한 녀석이 선장이를 보고 가장 선심이라도 쓰듯이

<<됐어, 이젠 고만 돌아가.>>

말한 뒤 권연 한가치를 꺼내 물고 호주머니속의 성녕을 더듬었다.

선장이가 트러으를 챙겨들고 제자리로 돌아오니 맞은편 좌석에 앉았는 세비로 입은 남자가 반색을 하였다.

<<무사해서 다행이요. 난 조만히 근심했소.>>

<<고맙습니다.>>

<<만주는 초행이요?>>

<<녜.>>

<<국경지대라서 이 근방은 언제나 이렇게 까다롭지요.>>

정주역에서 올랐던 형사들이 선천역에서 모두 하차하는데 큼직한 려행가방을 든 30세 안짝의 얼굴이 창백한 청년 하나를 련행하여서 차안의 사람들이 모두 의아스런 눈으로 내다보았다. 세비로 입은 사람이 부지런히 차창을 들어열고 역매도시락 둘을 사더니 하나를 선장이에게 건네며

<<자 우리 아침이나 먹읍시다.>> 하고 말하여 선장이는 할수없이 한번 사양하고 그대로 받았다. 갈창지같이 얇은 박판으로 짠 도시락 둘을 포개서 한벌인데 그 하나에는 깨를 뿌린 백반이 그리고 또 하나에는 일본식반찬이 들었었다. 차물은 철도마크를 돋을새김한 토기주전자에 담아 주전자채로 파는데 값은 7전이였다.

렬차가 압록강철교를 건늘 때


남아립지출향관(男儿立志出乡关)...
인간도처유청산(人间到处有青山)...


이런 글귀가 불현듯 머리에 떠올라 선장이의 마음은 갑자기 무거워지고 또 긴장해졌다. 안동역에 렬차가 미끄러져들어가는데 보니 홈에 걸린 전기시계의 바늘들이 모두 뒤로 한시간씩 뒤걸음질을 쳤었다. 세비로 입은 사람이 선장이를 보고

<<자 이젠 국경을 넘었으니 우리두 이 나라 시간에다 시계를 맞춰야지.>> 하고 웃어서 선장이도 손목시계의 수자들이 조선서처럼 1에서 12가지만이 아니고 가외로 13에서 24까지가 더 있어서 수자가 갑절이나 되는것이였다. 선장이는 속으로

(세상이 넓구나... 내가 이거 우물안 개구리였구나.) 하고 탄식을 하였다. 그러자 지나간 일 한가지가 피뜩 머리속에 떠올라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전에 원산 선장이네 동네에 술을 몹시 좋아하는 늙은이 하나가 있어서 늘 동네의 웃음거리로 되였었다. 한번은 이 늙은이가 이웃 잔치집에 가 술을 억병을 마시고나서 가장 점잖게 주인을 보고 묻기를

<<이젠 열세시쯤 됐겠지?>> 하고 물어서 또 한바탕 웃음을 자아냈었다. 그 늙은이는 원래 시계를 볼줄 모르는 늙은이였다. 그때 선장이가 그 늙은이의 별명을 <<열세시>>라고 지어놓아서 <<열세시>>는 마침내 그 늙은이의 대명사로 되열버렸다. 그래서 후에 그가 졸사하였을 때도 동네사람들은

<<아니 열세시가 간밤에 풍으루 죽었다며?>>

이렇게 말들 하였었다. 이 세상에 열세시-스물네시라는게 있다는것을 알게 된 이 마당에 선장이는 모르는 주제에 아는 사람의 흉을 본것 같아 이미 세상뜬<<열세시>>에 대하여 미안한 생각도 들고 또 부끄러운 생각도 들었다.

세관의 검사가 시작되였다. 중국인관리라는것을 선장이는 이날 생후 처음 보았다. 까다롭게 굴지 않고 트렁크뚜껑에다 분필로 체크를 해주고 바쁜 걸음으로 다음 좌석으로 가는 그 동작이 민첩한 세관 관리에게 선장이는 호감을 가졌다.

세비로 입은 사람이 선장이-학생복차림의 혈혈한 려행자-에게 흥미를 가지고 또 호감을 느끼는듯 웃음기 어린 얼굴로 내처 이모저모로 살펴보더니 한낮이 기운 뒤에 식당차로 안 가겠느냐고 선장이의 팔죽지를 잡아끌었다. 선장이가 따라일어나니 그 사람은 옆좌석에 앉은 중년남자에게 선반우의 행구들을 좀 보아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한낮이 기운 뒤라 식당차칸은 파장머리처럼 한산하여 공식이 대부분이였다. 앞을 서서 들어가던 세비로 입은 사람이 하얀 세탁보를 편 식탁들이 두줄로 늘어선 차칸을 한번 바라보고

<<가물에 콩나듯했구먼, 손님들이.>>

우스개말 한마디를 하고 곧 구석진 자리 하나를 골라 앉으며 선장이더러 어서 앞에 와 앉으라고 손짓하였다.

<<우리 무얼 할가?>>

<<글쎄요, 아무거나 하시지요.>>

<<양식... 정식이 어떨가?>>

<<좋겠습지요>>>

10여개가 한벌로 된 크고작은 포크와 나이프와 스푼들이 아래가 트인 입 구자형으로 앞에 늘어놓일 때 선장이는 불현듯 숙자아주머니 생각이 났다. 언젠가 진고개 양식점에 가 이렇게 단둘이 마주앉아 양식을 먹은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선장이가 숱한 포크와 나이프와 스푼이 제앞에 가로세로 늘어놓은것을 보고 놀라 눈이 휘둥그래지며

<<아이 이 숱한걸다 무엇에 쓰나요?>> 하고 숙자아주머니를 쳐다보니 숙자아주머니는

<<그저 나 하는대로만 해.>> 하고 웃었었다. 까다로운 양식 먹는 법을 그때 그렇게 배워두었던 까닭에 이날 선장이는 촌스럽게 당황하지 않아도 되였다. 식사를 하면서 세비로 입은 사람이 흥미를 가지고 물었다.

<<봉천에 누구 아는 사람이 있소?>>

<<없습니다.>>

<<그럼?...>>

<<상해로 가는 길입니다.>>

<<오 상해... 먼데루 가는구먼... 그래 상해엔... 누가 있소?>>

<<아무도 없습니다.>>

<<아무도 없어? 그럼?...>>

선장이는 앞에 앉아있는 사람이 정직하고 선량하고 믿음직한 사람이라는것을 직감하였다. 티없이 맑은 넋은 왕왕 다이얄이 맞는 사람의 넋을 엑스광선처럼 꿰뚫어보는 법이였다. 그래서 바른대로 말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거짓말을 하기가 죄스러워서였다. 사위를 본능적으로 한번 둘러본 뒤 나직한 목소리고

<<실은 림시정부를 찾아가는 길입니다.>>하고 속삭이듯 말하니 그 사람은 잘못 알아들었는지 혹은 제 귀를 의심하는지 덩달아 음성을 낮추면서

<<어디를 찾아가?>> 하고 재쳐 물었다. 선장이의

<<상해... 림시정부.>>하는 분명한 대답이 그 귀에는 우뢰같이 울리는지 그 사람은 새삼스레 전후좌우를 한번 둘러보고나서 선장이의 얼굴을 다시 유심히 살펴보는것이였다. 한참만에 겨우 붙었던 입이 떨어져가지고

<<거기... 누가 있소?>> 하고 무서운 일 물어보듯하는데 선장이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뜻으로 고개를 가로 흔들었다.

<<아까 아침에... 형사들에겐 무어라구 말했소?>>

<<형사들한테는 동아동문서원으루 보결시험을 치러 간다구 했습니다.>>

보이가 비프스테이크를 들고 와서 다 먹은 수프그릇을 바꿔가는통에 이야기는 잠시 동이 끊겼다.

<<고향이 어디요?>>

<<원산입니다.>>

<<량친이 다 기시우?>>

<<녜.>>

<<아들을 서울까지 올려보내 공부를 시킬제는... 살림이 포실한가보구먼.>>

선장이의 교복과 교모를 알아본것이다

<<웬걸요. 아버지가 배를 타시는걸요.>>

<<배를 타다니?>>

<<배군이란 말이예요, 고기잡이 하는 살림이 통 마련이 없는걸요.>>

<<그렇다면 학비를 어떻게 대실가?>>

<<서울 아저씨댁에서 뒤를 대준신답니다.>>
<<음 그래... 외삼촌인가?>>

<<외삼촌은!>> 하고 선장이는 고개를 외치고

<<외칠촌아주머니의 남편... 자식이 없에요.>>하고 말하였다.

<<그 아저씨는 무얼 하시는데?>>

<<변호사예요. 서울서는 뜨르르하답니다.>>

세비로 입은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고

<<아무튼 오늘밤은 봉천에서 묵을테지?>> 하고 물어서 선장이는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그럼 오늘밤은 우리 집에서 묵도록 하오. 자세한 이야기는 이따 나중에 들읍시다.>>

식사가 끝났을 때 선장이는 그 친절한 사람의 성명이 안몽룡이라는것과 개업의라는것과 그리고 처자가 있다는것까지 다 알았다. 선장이는 생소한 이역에서 이런 귀인을 만나게 된것을 못내 다행히 여겼다.

규모가 서울역보다 더 굉장하고 사람들이 더 벅적벅적하는 봉쳔역에서 차를 내려 밖으로 나오자 안의사는 곧 인력거 두채를 불렀다. 인력거군에게

<<시타.>> 하고 중국말로 행선지를 고하는것을 듣고 선장이는 중국말은 모르지만 가는 곳이 서탑임을 대강 짐작했다. 그리고

(형사놈들에게 외삼촌이 서탑에서 무역상을 한다고 거짓말한것이 비슷이 들어맞잖아.) 생각하고 속으로 웃었다. 선장이가 사람이 끄는 수레-인력거를 생후 처음 타보는지라 마음이 대단히 송구하였다. 등받이에 번듯이 나가누워 가는것은 끄는 사람을 더욱 모멸하는것 같아 웃몸을 꼿꼿이 세우고 앉아가는중에 인력거군이 홀지에 발을 멈추더니 뒤를 돌아보며 무어라고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질렀다. 선장이가 말은 못 알아들어도 눈치로 그 뜻을 짐작하고 얼른 등받이에 등을 기대니 일력거군은 만족하여 앞선 인력거를 따라잡으려고 다시 부지런히 닫기 시작하였다. 안의사가 돌아다보고 웃고 또 길가던 사람들이 쳐다보고 웃는통에 선장이는 열적어 얼굴을 붉혔다. 탄 사람이 등받이에 기대야 채가 거뜬히 들려 끌기가 헐하고 그렇지 않으면 채가 지지눌리여 도리여 끌리기 히든것이 인력거의 원리인것을 햇내기 선장이가 몰랐던것이다. 이윽고 두채이 인력거가 <<인천의원>>이란 간판이 붙어있는 자그마한 병원앞에 멎어섰다. 안의사는 인천사람이였다. 안의사의 젊은 안해가 돌쟁이아들을 안고 나와 맞고 또 근시안경을 쓴 약제사-안의사의 처남이 나와 친절하게 선장이의 트렁크까지 달래서 들고들어갔다.

선장이는 따뜻한 가족적인 대접을 받으며 안의사내외와 안의사 처남 남매가 다 교양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였다. 밤에 환자 없는 진찰실에서 안의사와 선장이 사이에 이런 대화가 있었다.

<<그래 림시정부를 찾아가선 어떻걸 작정이요?>>

<<나두 윤봉길이 걸은 길을 걸을랍니다.>>

안의사가 아름이 차서 한참 입을 다물고있다가

<<뜻은 장하지만...>>하고 말하는 중간에 선장이가

<<남아이십미평국(男儿二十未平国), 후세수칭대장부(后世谁称大丈夫)가 아닙니까. 온몸에 피가 끓어 도저히... 안일하게 공부를 하구있을수가 없단 말입니다.>> 하고 결심의 빛을 얼굴에 나타내니 안의사는 나이 자기보다 여라문살이나 아래인 선정이를 공경하는 마음을 숨기지 않고

<<우리 같은 사람은 이렇게 처자에게 얽매여 그날그날을 보내는데...>>하고 깉이 탄식을 하는것이였다.

뻐꾸기시계가 아홉번을 운 뒤에 안의사의 처남이 들어와 진찰용침대에다 선장이의 자리를 펴주어서 선장이는 외국에서의 첫날밤을 진찰실에서 지내게 되였다. 자기전에 카르테선반이 놓인 책상에서 편지 세통을 썼다. 정실이에게 쓰는 편지에다는 아버지, 어머니의 문안을 한외에 쌍년이와 매부 한정희에게 자기의 행위를 배은망덕으로 생각지 말아달라고 량해를 빌고 또 아저씨와 엄멈에게 안부를 전해달라고 썼다. 그리고한선희에게는 김영하선생이 하루속이 출옥하기를 기원한다고 썼다.

이튿날 선장이가 관내로 떠나는데 안의사 처남 남매는 정거장까지 배웅을 나와 선장이가 로자가 넉넉하다고 밀막는데도 억지로 천진까지 가는 차료를 사주었다. 이때는 이미 만주국이라는게 생겨난 까닭에 철도도 관할이 달라져서 렬차는 봉천-북평 사이만을 운행하였다. 그러므로 상해를 가자면 천진에서 일단 하차하여 다시 차표를 사가지고 중국기차 즉 중화민국에서 관할하는 기차를 타야 하였다. 역구내에 들어오는 기관차들이 례배당에서처럼 뎅그렁뎅그렁 종을 울리는것이 선장이 눈에는 매우 신기해보였다. 안의사가 눈치를 알고 웃으며

<<저건 양떼들이 철길에 들어서는걸 몰아내기 위한거요, 중국은 맨 평원지대니까.>>하고 설명을 해주어서 딴은 그렇겠다고 선장이는 고개를 여러번 끄덕였다. 엄청난 중국대륙이라는 생소한 개념이 산이 많고 평야가 적은 반도에서 자라난 선장이의 머리속에 차차 스며들기 시작하였다.

하루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고 선장이는 안의사 처남 남매에게 애틋한 석별의 정을 느끼며 남행렬차에 몸을 실었다. 자리에 앉아보니 전후좌우가 다 복색이 다르고 또 말이 통하지 않는 이방인들이였다. 선장이는 고독감에 싸여서 차창밖을 회전하는 낯선 전야를 묵묵히 바라보았다. 황막에서 소생을 한듯한 초여름의 풍경이였다.

몇시간후에 저녁때 산해관에서 운수불길하게 선장이는 또 걸렸다. 편복을 한 얼굴이 좁다랗고 몸이 호리호리한 서른나문살 가량의 남자가 선장이를 숱한 려객들틈에서 돌피뽑듯 쪽 뽑아내여 역에 주재하는 일본헌병에게 넘긴것이다. 색다른 학생복차림이 쉽게 눈에 뜨이는 모양이였다. 정주에서는 검문을 받아도 차칸에서 받은 까닭에 려행하는 지장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주 끌려내려갔다. 저 하나만 떨궈놓고 아무 일도 없은듯이 기적을 울리며 떠나가는 기차를 바라보는 선장이의 마음은 허전하고 또 복잡하였다

역구내에 있는 일본헌병분견소의 썰렁한 걸상에 혼자 앉아 한 반시간 좋이 기다려서야 헌병 하나가 들어오는데 나이는 젊고 얼굴은 곱살하였다. 이미 땅거미가 기여드는 때라 들어오는 길로 전등부터 켜놓고 선장이를 한번 보더니

<<너야?>>

묻고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곧

<<이리 와 앉아.>> 하고 자신이 앉은 책상앞에 놓인 걸상을 가리켰다.

정주에서 형사들이 하던것과 대동소이한 신문이 되풀이되고 또 몸수색, 짐수색이 되풀이되였다. 그러나 이번에도 또 캐냄직한 꼬투리는 쥐뿔도 없었다. 우연히 트렁크속에 넣어가지고 온 유도복이 생각지 않은 보람을 나타내였다. 일본이들은 유도복에 대해여-저의 나라 고유의것이라고 해서 그런지-일종의 친근감을 느끼는 모양이였다. 그것은 현저히 완충작용을 하였다. 헌병이 유도복을 보자 얼굴에 웃음기를 띠며 수색을 건성으로 하는것이 환히 알렸다. 젊은 헌병은 헛물을 켠것이 싱겁던지 권연갑을 꺼내여

<<너 담배 피우니?>>

묻고는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선장이에게 권연 한가치를 뽑아주었다. 선장이는 받지 않고 고개를 외치니

<<얌전하구나.>>

비웃듯이 말하고 그 권연을 도로 갖다가 제 입에 물고는 성냥을 찾는것이였다. 그리고 담배연기를 내뿜고 싱글싱글 웃으면서

<<하루쯤 늦어두 뭐 랑패될건 없을테니 래일 낮차루 떠나지... 이왕 내린김에 산해관구경을 한번 하는것두 해롭진 않을걸.>>

위로조로 말하고 다시

<<내 너 잘데를 지시해주라고 하마.>>

말하고 곧 사람을 불렀다. 아까 그 얼굴이 좁고 몸이 호리호리한 헌병보조원이 들어와 허리를 굽실하니 헌병은 손을 한번 내젓고

<<려관에 데려다주도록.>>

간단히 한마디 분부를 하였다. 그리고 저도 인젠 일이 다 끝났다는듯이 곧 걸상에서 일어났다.

인력거 두채를 불러다 갈라타고 어두운 밤거리를 려관으로 향하는데 헌병보조원이 그제야 비로소 모국어-조선말로 선장이에게 사과체것을 하였다.

<<이보 학생, 어찌 알지 마오. 낸들 이런짓을 하구싶어 하오? 직업이 그러니 할수없이 하는거지. 나두 집에 학생또래의 동생이 있소.>>

특무놈의 입에서 이런 회심의 목소리가 흘러나올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하였던터라 정직하고 순진한 선장이는 크게 감동이 되여 마음속으로 그자의 지은 죄를 선선히 다 용서를 해주었다.

헌병보조원이 소개를 한것은 한 조선거류민이 경영하는 려관 명색으로서 중국식구들-<<캉>>을 놓고 한방에서 여러 사람이 함께자고 머물게 되여있는 봉노방이였다.

밤중부터 복통이 나기 시작하여 선장이는 배를 그러안고 쩔쩔매는데 배창자가 뒤틀려서 금세 끊어질것처럼 아팠다. 아침도 먹는 시늉만 하고 물러앉아 식혜 먹는 고양이상을 하고있으려니까 나이 30안팎의 얼굴이 두리넙적한 손님 하나가 앞에 와 물었다.

<<학생 왜 그러우?>>

<<배가 자꾸 아파서요.>>

<<몹시 아프우?>>

<<녜.>>

<<언제부터 그렇소?>>

<<지난 밤중부터요.>>

<<물을 갈아먹어 그런가.>>

선장이가 잠자코 있으니까 그 사람은

<<그럼 이걸 좀 해보시지.>> 하고 주먹쥔 손의 엄지가락과 새끼가락을 뿔처럼 뻗쳐들고 어지가락을 제 입에 갖다대보였아. 선장이가 무슨 뜻인지 몰라서 배를 부둥킨채 어리둥절해 쳐다보니까 그 사람은

<<아주 햇내기로구먼... 약담배두 몰라? 만병통치약.>> 하고 싱글싱글 웃었다. 선장이가 큰일나는줄 알고 머리를 절레절레 흔드니 방안에서 보고있던 사람들이 모두 웃음보를 터뜨렸다.

복통이 좀 너누룩해지기를 기다려서 선장이가 정거장으로 나오는데 그 약담배를 피워보라고 권하던사람도 들가방 하나를 들고 따라나섰다. 볼일이 있어 진황도란데를 간다는것이였다. 홈에서 엊저녁의 그 헌병이 선장이를 보더니 제법 상냥하게 알은체를 하였다.

<<이제 가나?>>

국경을 넘어선 까닭인지 렬차가 산해관역을 떠나자 곧 검표가 시작되였다. 선장이는 태평으로 차표를 내보이는데 한손에 펀치를 든 일본인차장이 차표를 받아서 한번 번드쳐보고는 곧

<<차를 잘못 탔습니다. 당신의 승차권은 중국철도의 승차권입니다. 이 렬차는 남만철도소속입니다. 그러니 다음역에서 일단 하자했다가 저녁차를 타도록 하십시오.>> 하고 차표를 그냥 돌려주었다. 맞은편 좌석에 앉았던 동행-약담배를 권하던 얼굴이 두리넙적한 사람-이 들었다보았다하고

<<잘됏소, 나하구 같이 내립시다. 다음 정거장이 바루 진황도요. 처음 와보지?>>하고 싱글벙글하였다.

역에서 내리는 길로 곧 인력거를 불러타고 한 10분 달리니 벌써 그 사람이 단골로 다닌다는 려관이 와닿았다. 규모가 상당히 큰 려관인데 방들은 모두 비둘기장같이 간살이 작았다. 역시 조선거류민이 경영을 한다는것이였다.

같이 온 사람은 볼일 보러 나가고 선장이는 밤에 못 잔 벌충을 하려고 혼자 드러누워 잠을 자는데 분이 바스스 열리더니 무색옷을 매무시 곱게 입은 젊은 녀자 하나가 소리없이 들어와 선장이의 자는 모습을 살펴보았다. 선장이가 눈을 한번 떠보고 속으로 적잖이 놀라며 곧 벽쪽으로 돌아누우니 그 녀자는 한동안 서있다가 킥 웃고 살그머니 도로 나가버렸다. 선장이는

(이거 내가 여우한테 홀린거나 아닌가?) 하고 의심이 들어서 슬그머니 무섬증이 났다.

보리저녁때 동행이 돌아와서 이른 저녁상이 겸상으로 나오는데 전이 없는 큰상을 맞들고 들어오는 두 젊은 녀자가운데의 하나를 선장이는 대번에 알아보았다. 낮에 누워잘때 들어왔던 녀자였다. 두 녀자가 나가지 않고 그대로 상머리에 붙어앉아 시중을 드는데 선장이의 동행과 무랍없이 갖은 잡소리를 다하며 시시덕거렸다. 남자측의 만수받이하는품도 더할나위없이 능란하여 마치 물을 만난 고기와도 같이 자유롭고 또 자재로왔다. 선장이는 웃을수도 없고 안 웃을수도 없고... 열적고 쑥스럽고 어색하고 게면쩍어 몸가짐이 몹시 어줍었다. 상을 물릴 때 낮에 들어왔던 쌍년이 또래의 얼굴이 동글납작한 녀자가 선장이를 보고

<<왜 저 학생은 새색시처럼 말 한마디가 없으셔?... 오늘밤 묵어서 래일 떠나셔도 되지요?>> 하고 상글상글 웃었다. 선장이가 대번에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푹 숙이니까 옆에 앉은 동행이 얼른 가로채여가지고

<<옳지, 네가 맘이 있어서 그러나보다만 썩 틀렸다. 이 총각은 소문난 도덕군자야, 네따위는 백이 와두 소용이없어... 일찌감치 맘놓구 쳐다보지두 말아라.>>하고 익살을 부렸다. 나중에 선장이가 조용히 이제 그 녀자들은 무엇하는 녀자들이냐고 물어보았더니 그 사람이

<<무언 무어야, 다 갈보들이지. 이 집이 려관 겸 갈보집이야. 이제 그런것들이 우글우글해. 이 방이 다 그런데 쓰는 방이야.>>하고 례사롭게 대답해주어서 선장이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선장이가 진황도에 모두 10시간을 머물렀다. 그러나 인생의 학문을 배우기는 10년어치를 배웠다.

추천 (2) 선물 (0명)
IP: ♡.136.♡.87
로즈박 (♡.39.♡.172) - 2023/10/29 19:49:23

중국말도 잘 모르는데 혼자서 중국을 가다니..
그래도 운이 좋아서 좋은 사람 만나서 다행이네요..
상해까지 무사히 가야할텐데 웬지 걱정이 살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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