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전집1 격정시대 상-34

더좋은래일 | 2023.10.30 09:13:27 댓글: 1 조회: 313 추천: 3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13018


34

7월에 접어들며 날씨가 어찌나 더운지 날마다 목욕을 하건만 선장이는 목과 앞가슴에 땀띠가 돋았다. 원산이나 서울서는 있어본적 없는 일이였다. 선장이가 새삼스레 벽에 붙어있는 지도를 들여다보니 상해는 조선에서 제일 덥다는 제주도보다도 두어도나 더 위도가 낮았다.

<<내괘.>>

선장이가 감탄 비슷한 탄식을 하고 다시 <<일상회화>>를 들여다보며

<<칭-닌-께-워-나-델(请您给我拿点儿)...>> 하고 복습을 하는중에 열여놓은 방문밖에서 메아리처럼

<<랠라(来啦)!>> 하는 소리가 나기에 뒤를 돌아보니 미색의 하르르한 원피스를 입은 송일엽이 무슨 분갑 같은것을 하나 들고 웃으며 들어왔다. 송일엽의 예명은 프란시스였다.

런닝바람으로 앉았던 선장이가 놀라서 벗어놓았던 반소매샤쯔를 부지런히 주어입으니 송일엽은 손을 내저으며

<<입지 마 입지 마... 땀띠분을 발라주러 왔어요.>> 하고 땀띠분갑의 뚜껑을 열었다. 향내가 몰큰 났다. 서로 알게 된지가 이제 한달도 채 못되였건만 송일엽은 어느새 선장이를 동생취급을 하여-당자의 동의도 얻지 않고 제멋대로-하우와 반말을 섞어작으로 하였다.

<<거기다 놓구 가시지요, 좀 이따 내가 제 손으루 바를테니.>>

선장이가 방색하니 송일엽은

<<잔말 말구 입은 옷을 도루 벗어요. 냉큼! 남이 일껏 발라주러왔는데... 고마운줄두 모르구.>>

말하며 분첩을 꺼내들고 바싹 다가드는것이였다. 선장이는 하릴없이 옷을 벗고 앞가슴을 내대였다. 부끄러워 죽을 지경이였다. 송일엽이 목은 물론이요 땀띠가 돋지 않은 명치끝까지 다 발라주고나서

<<돌아서요.>>

<<뒤에는... 없습니다.>>

<<돌아서라면 돌아설게지. 어서요!>>

멀쩡한 등까지 골고루 다 발라주었다. 그리고 두발자국 귀로 물러서서 마치 조각가가 완성한 작품으라도 감상을 하듯이 기분좋게 바라보다가

<<나이스(훌륭해)!>> 하고 깔깔거리는것이였다.

<<그래 상해재미가 어때요?>>

송일엽이 그만하고 나갈 생각을 아니하고 도리여 걸상에 턱 걸터앉으며 땀띠분갑을 책상우에 놓고 이렇게 물어서 선장이는

<<상해재미가... 좋습니다.>>

입으로 대답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이렇게 눌러붙는건 좀 곤난한데.) 하고 생각하였다.

<<그냥 좋대서야 어떻게 좋은지 알수가 있에요... 구체적으루 말을 해야지요.>>

<<구체적으룬... 글쎄요... 처음 왔을 때 한번은 거리에 나갔다가...>>

<<거리에 나갔다가?...>>

<<선녀같이 생긴 서양아가씨 하나가 검은색안경을 쓰구 지나가는걸 보고 속으로 `야 저렇게 이쁜 아가씨가 장님이라니!` 하구 애석히 여기잖았겠습니까. 그런데 나중에 집에 돌아와 미세스 전께 그 이야기를 했더니... 미세스 전이 `아이고 그건 선글라스예요. 해볕을 가리는 안경이예요.` 하구 허리를 잡지 뭡니까. 난 그때까지 장님만 그런 안경을 쓰는줄 알았었던거든요.>>

미세스 전이란 김혜숙을 지칭하는것이다. 전선생의 부인이라는 뜻이다.

<<어 컨트리 제이크(시골뜨기)!>> 하고 송일엽은 선장이의 어깨를 한번 탁 쳤다. 그리고 배를 그러안고 웃는것이였다. 한바탕 웃고나서 겨우 웃음을 거두며

<<또요.>> 하고 다음이야기를 재촉하여 선장이는

<<이젠 없습니다.>> 하고 머리를 가로 흔들었다.

<<그러지 말구 어서 마저 해요, 얼마든지 더 있는걸 내가 다 알고있는데.>>

선장이가 권에 못이겨 한마디 더 하였다.

<<한번은 뻐스를 타려는데... 차장이 나를 보더니만 빨리 올라타라구 `어서어서!` 재촉을 하지 뭡니까. 난 속으루 저자가 나를 어떻게 조선사람으루 알구 조선말을 하는가 생각하구 아무리 제몸을 살펴보아야 어디 유표한데가 있어야지요. 괴이한 일이다 생각하구 돌아와 미세스 전께 그 이야기를 하구 `내가 이렇게 차리구 나섰는데두 어디 조선사람 같은데가 있어보입니까?` 하구 물었더니 미세스 전이 `그게 조선말이 아니라 상해말이예요. 상해말루 어서엇를 오소오소라구 해요.` 하구 또 허리를 잡지 뭡니까.>>

송일엽이 또 한바탕 깔깔거리고나서 일어나갈 때

<<그 땀띠분 두고 쓰세요. 목욕을 하고는 꼭 발라야 해요.>> 하고 말을 일렀다.

조선에서 청년 하나가 왔다는 소식이 조선교포들사이에 속살속살 퍼져나간 모양으로 이따금씩 낯모를 사람들이 선장이를 찾아오군 하였다. 와서는 이런 말 저런 말을 하기도 하고 또 묻기도 하는데 그것이 대개는 드레질을 하거나 자기를 떠보는것 같이 선장이에게는 느껴졌다. 그런 사람들이 왔다간 뒤에는 김혜숙이 의례히 인물소개를 하는것이였다.

<<이제 왔던 그분은 전문적으로 일본자본가들을 떨어서... 그 돈으루 단체의 기관지를 낸답니다.>>

<<혜, 그렇게 색시같이 안존한이가요?>> 하고 선장이가 놀라면 김혜숙은

<<표범넋을 지닌 사슴이지요.>> 하고 웃는것이였다. 그리고 또

<<이제 그분은 중국조병창에 교섭을 해 윤봉길이 사용한 보온병형폭탄을 만들어냈지요.>> 하고 말해줄 때 선장이가

<<그렇습니까. 그런줄 알았다면 좀더 말씀을 들어보는걸!>> 하고 아수해하면 김혜숙은

<<앞으루 또 만날 기회가 얼마든지 있을텐데 뭘 그러세요.>> 하고 위로해주었었다. 그리고 또

<<아까 오셧던 그분은 열여덟살 때 조선총독을 암살하려다가 사전에 탄로가 나... 폭탄을 압수당하구... 7년 동안 징역을 살구 나왔답니다.>> 하고 말해줄 때 선장이가

<<그렇게 약하디약한이가요?>> 하고 눈이 동그래지면 김혜숙은

<<겉보기엔 그래두 속은 언제나 활화산이랍니다.>> 하고 자랑스레 웃는것이였다. 그리고 매번 다

<<우리 남편 생시의 가까운 친구였지요. 훌륭한 애국자예요.>>

이렇게 끝을 맺는것이였다.

불청객들의 방문을 받은 뒤부터 애인리 42호 서선장앞으로 신문, 잡지들이 부쳐오기 시작하였다. <<앞길>>, <<독립신문>>, <<남화통신>> 등등... 모두가 조선문간행물이였다. 윤봉길이 태극기밑에서 량손에 폭탄을 갈라쥐고 선서하는 사진을 보고 선장이는 지대한 감명을 받았다. 그리고 그 간행물들에서 처음으로 <<일본강도>> 운운이라는 표현을 보고

(일본은 사람이 아니구 한개 나란데 어떻게 강도라구 할가?) 하고 고개를 비틀고 또 <<미제국주의>>라는 표현을 보고는

(미국은 공화국인데 왜 제국주의라구 할가?)

납득이 잘 아니 가기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선장이도 잘 아는 손님 한분이 찾아왔다. 리춘근이였다.

<<어서 오십시오.>>

<<오래간만입니다. 무고하셨습니까?>>

<<녜 덕분에...>>

<<벌써 한번 찾아와뵌다는게 그럭저럭 이렇게 늦어졌습니다.>>

<<어서 앉으십시오.>>

<<아 고맙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중국말이 많이 늘었다면서요, 이제 막 아래층에서 미세스 전한테 들었습니다. 칭찬이 대단하시더군요.>>

<<뭐를요.>>

리춘근은 풍채와 태도만이 신사다운것이 아니라 목소리까지 부드러워서 접촉하는 사람에게 푸근한 느낌을 주었다. 그에게는 봄날의 화창한 기운이 감촉되였다. 살벌한 기운 같은건 꼬물도 찾아볼수가 없었다.

(이렇게 젊은 량반이 그런 엄청난짓을 하다니.)

생각하니 선장이는 웃음이 입가에 절로 떠올랐다.

<<무슨 우스운 일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미스터 서, 오늘은내가 볼일이 좀 있어서 이 근처엘 왔다가... 어떻게 지내시나 궁금해서 잠간 들려본겁니다. 그럼 우리 이담에 조용히 한번 만나 이야길 해봅시다.>> 하고 리춘근은 곧 걸상에서 일어났다.

선장이가 따라내려가 김혜숙과 같이 대문밖까지 배웅하고 돌아들어올 때 김혜숙이 자기 방으로 선장이를 끌어들였다. 그리고

<<이제 그분은 평안북도 강계가 고향인데...>> 하고 선장이가 안락의자에 앉기를 기다려가지고 리춘근의 지나온 소경력을 이야기해들리였다.

<<군청에서 서기노릇을 하는데 림시정부를 찾아올 생각이 긴해... 은근히 기회만 노렸다나요. 그런데 추수가 다 끝이 나구 압록강의 물이 얼무렵에 하루밤은 숙직을 서게 됐는데... 마침 그때 금고에는 세금을 받아들여서 미처 은행에 갖다넣지 못한 현금이 몇천원 있었더랍니다. 이 량반이 옳다, 됐다 하구 곧 맡았던 열쇠루 금고를 열구는 그속의 돈을 몽땅 꺼내 들가방에 채우는 즉시 자동차부에 전화를 걸어 전세차 한대를 불렀더랍니다. 그리구 차를 몰고 온 운전사를 보구는 `만포에 급한 공무가 있어 가니 차를 전속력으로 좀 몰아주시오. 자 이건 술값이요.` 하구 10원 한장을 쥐여주었더니 운전사가 기분이 나서 `녜 념려 맙시오` 하구 차를 냅다 몰아 100여리 길을 잠시동안에 달려 만포에 득달을 했더라지 뭡니까. 그 밤으루 즉시 등빙을 해 압록강을 건느니 거기가 곧 중국땅이라... 아침에 발각이 돼가지고 강계군청이 발끈 뒤집혔지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사람을 찾을수가 없는데야. 불과 며칠후에 리씨는 아무 탈 없이 벌써 상해에 와닿았다지 뭡니까.>>

선장이는 안락의자에 앉아 김혜숙의 이야기를 듣는것이 아니라 자신이 몸소 그 활극영화 같은 모험에 참여라도 하는것처럼 정신이 황홀하였다.

이날 낮이 좀 기울어서 소나기 한줄금이 통쾌하게 쏟아지더니 온 상해가 갑자기 가을이 되기라도 한것처럼 선들선들해졌다. 선장이가 한증탕에서 땀을 빼다가 시원한 바람이 부는 한데로 나오기라도 한것 같아 후유 긴숨이 다 나갔다. <<일상회화>>에 달라붙어 한창 시벌시벌하는중에 열어놓은 방문으로 누군가가 기척없이 들어와 선장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돌아보니 송일엽이다. 얼굴에는 여느때와 달리 알릴듯말듯 엷은 화장을 하고 그리고 옷도 눈에 뜨이지 않은 수수한 연회색투피스를 입었었다.

<<어서 일어나 옷 갈아입어요, 나하구 바람이나 쏘이러 나갑시다.>>

선장이가 주니가 나 꾸물꾸물하니까 송일엽은 대번에

<<레디(숙녀)가 일껏 와 청하는데... 이런 실례가 또 어디 있어요!>>하고 선장이를 잡아일으켰다. 선장이가 마지못해 따라나가 바람을 쏘이기로 하였다.

<<그럼 미안하지만 잠간 나가주십시오, 나 옷 좀 갈아입어야겠습니다.>>

<<나가긴! 나 이대루 돌아서서 안 보면 되잖아요. 자 됐지요?>>

할수없이 선장이가 문쪽을 향하고 돌아선 송일엽의 뒤모습을 흘끔흘끔 곁눈질해보며 옷을 갈아입었다. 송일엽이 갑자기 돌아설것만 같아 서투른 도둑놈처럼 마음이 조마조마하였다.

거리고 나왔다. 번잡한 큰 거리를 벗어나 한적한 고급주택거리로 꺾어들었다. 정원수와 가로수 그리고 포도와 아스팔트길이 모두 비에 씻겨 산뜻한데다가 시원한 바람까지 불어 길가는이의 마음이 곧 날것만 같았다. 송일엽이 한발자국 좋이 간격을 두고 따라오는 선장이를 돌아보며 팔꿈치를 내밀며

<<어서 와 이 팔 끼세요.>>하고 말하여 선장이가 대번에 뒤걸음질을 치려 드니 송일엽은

<<어 푸울(바보), 허리업(빨리)!>> 하고 한발을 통 굴렀다.

선장이가 죽지 못해 녀자의 팔을 끼고 걷기는 걸어면서도 혹시 누가 아는 사람이 보지나 않나 해 전후좌우를 두리번거리니 송일엽은

<<졸장부, 뭐가 무서워 그러죠?>> 하고 타박을 주었다. 선장이가 체메에 들었다. 사내대장부의 체모를 세우기 위하여 녀자의 팔을 끼고 짐짓 태연한체 걸었다. 속으로는 죽을 지경이였다. 가슴이 자꾸 두근두근하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또 아주 싫은것은 아니였다. 당길마음도 어느 구석엔가 조금은 있었다. 모순된 선장이의 마음이였다. 하느님께서나 아실노릇이였다.

길 왼편에 푸른 잔디로 뒤덮인 정원을 격하여 백색의 2층건물 한동이 나서는데 베란다를 떠받친 이오니아식원주가 매우 단아해 보였다. 송일엽이 그 저택앞에서 홀지에 걸음을 멈추더니 선장이를 돌아보고

<<저 집 한번 자세히 좀 보세요.>> 하고 말하여 선장이가 무엇이 어떻게 되였나 해 유심히 바라보니

<<똑똑히 봤어요?>>

<<녜.>>

<<그럼 가요.>> 하고 다시 걸으면서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해들리는것이였다.

<<리애리스를 아시지요?>>

<<모릅니다.>>

<<아니 리애리스를 몰라요?>>

<<녜 모릅니다.>>

<<조선의 유명한 녀가수 리애리스를 몰라요?>>

<<아 녜 그 리애리스... 보지는 못했지만... 노래는 더러 들어봤습니다.>>

<<그가 내 친구였에요. 메트로폴리스의 동료에요... 선배격이긴했지만서두.>>

<<그렇습니까 그러세요. 그가 상해를 건너온줄은 몰랐습니다.>>

<<작년가을 죽을 때의 나이가...>>

<<죽었습니까?! 아니 아직 젊었을텐데...>>

<<젊어두... 총을 맞으면 죽는거지요. 총을 맞아 죽었에요.>>

<<아니 그게 웬 일입니까?>>

<<내 이야기할게 들어보세요.>>

선장이가 의외의 소식에 놀란 끝에 갑자기 그 본적 없는 녀인의 죽음에 관심을 가지게 되였다.

<<그가 메트로폴리스에서... 아마 재작년일거예요... 루드비히라는 독일청년 하나를 친했어요. 어느 독일회사의 사원인데 아주 순직한 청년이였지요. 나는 몇번 같이 춤을 춰봤어요. 애리스가 그 루드비히하구 서루 정분이 깊어져가지고 동거를 하던중에... 루드비히가 심심풀이삼아 샀던 항공장권이 1등을 맞았단 말이예요...>>

<<항공장권이란게 뭡니까?>>

<<거리에서 가게마다 집게루 집어서 줄을 매달아놓구 파는 표쪼각을 못 보셨어요?>>

<<아 그건 봤습니다.>>

<<그게 항공장권이란거예요. 국민정부에서 항공사업에 쓸 돈을 거두기 위해 만들어놓은 패표예요. 한달에 한번씩 추첨을 해 맞은 사람에게 돈을 태워주는데 그 1등이 25만원이란 말이예요. 10원어치 한줄을 샀으면 25만... 1원어치 한장을 샀으면 2만 5천원... 대단한 금액이지요.>>

<<딴은 대단하군요.>>

<<벼락부자가 된 루드비히가 애리스를 보구 이젠 우리 둘이 한평생 먹구 살건 걱정이 없으니까 너 그 댄서 그만두구 나하구 정식으루 결혼을 하자구 하잖았겠어요. 그런데 애리스가 고개를 가로 흔들었단 말이예요, 싫다구.>>

<<그건 왜요?>>

<<맘이 변했어요. 역시 메트로폴리스에 드나드는 클라크라는 영국청년에게 사랑을 옮겼단 말이예요. 이것을 알게 된 루드비히가 최후의 담판을 하려구 이제 그 하얀 2층집으로 애리스를 찾아오잖았겠어요. 그 집이 클라크의 삼촌의 집이든지 그렇지요 아마. 루드비히가 곧장 2층으루 뛰여올라가 클라크의 방문을 열어젖뜨리구 들어서보니 아니나다를가 둘이 같이 침대에 누워있지 뭐예요. 하지만 루드비히는 워낙 순진한 사람이라 부드러운 목소리루 `애리스, 어서 일어나오나. 나하구 같이 집으루 돌아가자. 우리 둘이 영원히 이 상해를 떠나 어느 먼 나라에 가 살자.` 하구 애원을 했더래요. 그러니까 애리스가 뭐랬는지 아세요? `노!` 하구 침대에 일어앉아 루드비히를 빤히 보기만 하더래요. 루드비히가 두번, 세번 간청을 해두 애리스는 번번이 고개만 가로 흔들뿐 침대에서 내려올념두 안하더란 말이예요. 나중에 참다 못한 루드비히가 속에다 차구 온 권총을 빼들구 나하구 같이 가 살겠느냐 아니면 이 자리에서 죽겠느냐 량자택일을 하라구 으르니까... 이게 글쎄 `노!` 하구 고개를 외치더라지 뭐예요. 그 입에서 `노!` 소리가 나오는것과 동시에 총소리가 나는데 연거퍼 세방... 애리스는 피투성이가 돼 침대우에 쓰러졌지요. 그게 마지막이였어요. 돈 호세이 칼에 맞아 쓰러진... 까르멘의 최후를 방불케 하는 죽음이였지요.>>

<<그래 그 남자는... 그 루드비히는 어떻게 됐습니까?>>

<<그길루 권총을 들구 공부국(경찰서)을 찾아가 자수를 했지요. 지금 공공조계 외국인감옥에서 복역을 하는중이예요.>>

이야기를 끝내고 송일엽은 끼였던 파을 빼며

<<우리 공동묘지루 가요.>> 하고 곧 지나가는 인력거 두채를 불러세웠다.

<<아니 갑자기 공동묘지는 왜 갑니까? 기분이 상하게.>>

<<아무 소리 말구 어서 그냥 따라와요. 기분이 상할지 않을진 가보면 알테니까.>>

송일엽이 먼저 인력거에 올라타서 선장이도 하릴없이 다음 인력거에 올라앉았다.

선장이가 처음 상해가도를 펼쳐놓고 연구하다가 시내 거의 한복판에-정안사거리와 복후거리 어간에-대면적의 외국인묘지라는것이 끼여있는것을 보고 적이 괴이히 여긴적이 있었다. 선장이의 상식으로는 묘지란 의례가 인가근처에서 멀리 떨어진 산비탈에나 있어야 할것이였다. 그런데 급기야 정안사거리 중단에 있는 외국인묘지의 정문에를 와보니 상상과는 전연 달랐다. 꺼먼 철격자문이 달린 콩크리트문주에 영어로 외국인묘지라고 쓴 커다란 쇠패찰이 걸려있는데 아름드리나무들이 우중충한 묘지는 사통오달한 통로가 모두 아스팔트로 포장이 되였고 또 봉분을 제외한 땅거죽은 전판 잔디로 뒤덮여 파란 양탄자를 펼쳐놓은것 같았다. 봉분이라는 개념도 완전히 달라 궁륭형의 흙더미는 전연 볼수가 없고 모두가 화강성, 대리석, 한백옥 따위의 석재를 사용하였는데 대개는 평평한 장방형으로서 석곽이라고나 해야 마땅할것이였다. 개중에는 동화에 나오는 왕자나 공주가 삶직한 석조건물을 아담하게 지어놓고 그속에다 아라덴의 등롱불 같은 자명등을 켜놓은 호화판도 있었다. 벽이 담쟁이덩굴로 뒤덮인 교회당은 영원한 침묵속에 잠겨있는듯 괴괴하고 각양각색의 조각들로 꾸며진 석곽들은 인생의 희로애락을 가슴속깊이 간직하고 고요히 안식하는듯하였다. 시내 한복판에 이렇게 한겻지고 숙연한, 후미지고 장엄한 별유천지가 있을줄을 선장이는 미처 몰랐었다. 조풍화원을 세속적이라고 한다면 이 외국인묘지는 철학적이라고 해야 마땅할것이다. 선장이의 황홀해하는 모습을 보고 송일엽이 적이 웃으며

<<어때요 미스터 서, 이래두 기분이 상해요?>> 하고 물어서 선장이는 대답을 못하고 그저 고개만 가로 흔들었다.

돌을 깎아 만든 계절들에는 대개 이 역시 돌로 깍은 꽃병들이 고정되여있는데 찾아오는 사람이 없는지 꽃병들이 많이는 비였었고 어떤데는 갓 꽂아놓은 생화묶음이, 또 어떤데는 거의 시들어가는 생화묶음이 꽂혀있기도 하였다. 특히 선장이의 이목을 끈것은 무덤앞에 기둥처럼 우뚝 서있는 원통형의 검은 대리석이 흡사 도끼로 마구 찍어버리기라도 한듯이 웃부분이 뭉청 끊겨져나간것이였다. 그런것이 한둘이 아니였다. 선장이가 그 뜻을 해득하지 못하여 당혹해하는것을 눈치채고 송일엽이 상글상글 웃으며

<<왜 그런 얼굴을 하구 섰지요?>> 하고 선장이의 팔죽지를 잡아 당겼다.

<<저건 왜 저러게 중둥이 뭉청 나갔습니까?>>

<<오 그거요. 그걸 몰라 그렇게 심각한 얼굴을 하구있었군요.>>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습니다.>>

<<젊은 나이에 요절한걸 애통이 여겨 세운거예요.>>

(오, 그런거였구나!)

선장이가 받은 감명은 충격적이였다.

(이 얼마나 형상적이구 또 철학적이냐!)

<<이제 고만 저리루 좀 거닐어보실가요 도련님?>>

송일엽이 웃음의 소리를 하는데 선장이는 <<도련님>>소리에 찔리여 불현듯 어멈생각이 났다. 실눈에 빈대코에 얼굴은 보잘것이 없어도 마음씨만은 곱고 무던하고 그리고 아름답고 살뜰한 어멈이였다.

(불쌍한 어멈! 지금쯤은 어떻거구있을가?)

외국인묘지에서 애인리까지 직선거리가 불과 몇백메터밖에 안되였다. 옆문으로 돌아나간대도 한 500메터밖에 더 안되였다. 이렇게 좋은데를 여태 모르고있었다니! 선장이는 이제부터 날마다 이 묘지 나무그늘에 놓인 벤취에 와 앉아 공부를 하리라 마음먹었다.

<<이렇게 나하구 같이 다녀보니까 기분이 어떠세요?>>

<<좋습니다.>>

<<어떻게 좋으시죠?>>

<<그저 좋습니다.>>

<<말씀이 너무 좀 모호하시군.>>

선장이가 대답할 말이 없어 잠자코 있으려니까 송일엽은 다시 자기 말에 주를 달았다.

<<구체성이 희박하단 말이예요.>>

선장이가 그래도 가만있으니까 송일엽은 제 무안에 눙쳐서 상글거리며

<<미스 전하구 나하구 누가 더 이쁘지요?>> 하고 물었다. 미스전이란 전보경을 말하는것이다.

<<둘 다 이쁩니다.>>

<<아주 공평하시군!>>

송일엽이 코웃음을 히고 잠시 새초롬해 서있다가 곧 다시 싹싹하게 마음을 돌려가지고

<<사교춤 출줄 아세요?>> 하고 물어서 선장이가 큰일 날 소리를 다한다는듯이

<<모릅니다 그런거.>> 하고 도리머리를 흔드니 송일엽은 적이 웃으며

<<현대인의 례의를 몰라서 쓰나요. 최소한으루 사교춤은 출줄 알아야지요. 내 가르쳐드릴가요?>> 하고 살살 달래였다.

<<싫습니다.>>

<<왜 싫지요? 싫은 까닭을 말해보세요.>>

<<그저 싫습니다.>>

송일엽이 깔보는 어투로

<<에이 고리삭은 샌님!>> 하고 선장이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한번 콕 찔렀다.

해가 서쪽에 많이 기울어서 땅우에 비낀 그림자들이 길어질무렵 둘이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데 대문밖에를 나서니 근처에서 어정거리던 백인거지 하나가 부지런히 앞으로 나와서

<<쇼제(小姐).>> 하고 송일엽에게 손을 내밀었다. 송일엽이 핸드빽에서 돈 한잎을 꺼내주니 그자는 좋아서

<<샤샤눙(谢谢侬), 샤샤눙!>>

상해말로 연송 치사를 하였다.

<<백계로인.>>

송일엽이 가는 목소리로 선장이에게 귀띔해주었다.

묘지가 당모퉁이를 돌아서니 이번에는 어디서 헐벗은 거지아이 하나가 파초선을 들고 쫓아와가지고

<<싱싱하오(行行好), 싱싱하오.>> 하고 두 사람의 등뒤에다 대고 부채질을 하며 따라왔다. 송일엽이 또 돈 한잎 집어주어 거지아이를 떼쳐버린 뒤 선장이를 돌아보고

<<오늘은 거지복이 터졌나베.>> 하고 웃고 잇달아서

<<젖비린내 나는 인간하구 같이 다니니까 재수가 없어 그렇다니까.>> 하고 거짓으로 입이 뾰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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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박 (♡.39.♡.172) - 2023/10/30 21:04:43

저 가수의 일을 어느 글에선가 보앗던 생각이 갑자기 나네요..
오래전의 일이라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암튼 꼬박꼬박 힘드신데 올려주셔서 잘 보고갑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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