地球上唯一的韓亞 12~13

단차 | 2023.11.14 07:59:45 댓글: 2 조회: 166 추천: 2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17450
12


유리와 경민은 대형 서점에 들렀다. 이미 커피를 사러 나왔다고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흘러버려서 적당한 핑계 대기는 포기해버린 유리였다. 

  그래도 한아가 하고 있는 작업에 엄청 몰두중인 게 안심이라면 안심이었다. 두 시간쯤은 아무 생각 없이 일할 것이다. 

  웬 부츠 마니아가 못 신게 된 수십 개의 부츠를 가지고 와서 다른 걸 만들어달라고 했고, 한아는 과감하게도 대형 깔개를 만들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가죽과 고무, 온갖 소재의 부츠들을 해체해서 가닥가닥 꼬기 시작한 한아는, 머릿속의 구상을 손가락이 느리게 따라가는 걸 못 견디는 것처럼 보였다. 거의 추상 작품 같은 게 나올 듯했고, 불행히도 가게에선 발냄새가 났다.

  “정말 할 거란 말이죠?”

  유리가 재차 확인했다.

  “할래요.”

  경민이 짧게 대답했다.

  “확률은 반반이에요. 한아는 남들 사는 대로 사는 애가 아니니까 아예 코웃음 치며 거절할 수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부모님이 은근히 금슬이 좋으시니까, 의외로 결혼에 우호적일지도 몰라요. 어쨌든 지금 상황에서 경민씨가 잃을 건 별로 없지.”

  “한아를 설득해야 해요. 제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강력한 표현을 하고 싶어요.”

  “역효과나 안 나면 다행이겠지만.”

  유리는 이미 한번 경험한 자의 여유 있는 태도로, 경민을 잡지 코너에 데리고 갔다. 경민은 유리가 가리키는 웨딩 잡지들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는데, 유리가 아주 단호한 손가락으로 한 권씩 모두 집어 떡하니 안겨주었다.

  경민이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몇 장 넘겨 보았다.

  “아, 드레스를 선물해야 할까요?”

  유리는 경악했다.

  “뭐라고요? 무슨 멍청한 소리야? 그러니까 안 되는 거구만. 당연히 반지죠.”

  “반지군요!”

  “드레스는 그다음에 생각하자고. 아마 한아라면 빈티지나, 친환경 소재 드레스를 입고 싶어할 테니까 그런 건 우리한테 맡겨두고.”

  “반지라면…… 어유, 종류가 꽤 많네요.”

  너무 많은 정보를 한꺼번에 처리하느라 얼굴이 빨개진 경민이 말했다.

  “꼼꼼히 보고 디자인을 익혀요. 모아놓은 돈은 별로 없죠? 합리적인 가격의, 한아와 어울릴 만한 반지를 잘 골라보세요. 무엇보다 원산지를 잘 확인해야 해요. 블러드 다이아몬드 같은 거 사오면 큰일날 거야. 어쨌든 반지 자체가 사실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반지가 상징하는 게 문제지.”

  “한아하고 함께 있고 싶다는 마음, 상징하는 거 맞죠?”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죽음 후에도요. 한아가 아니면 지구에 있을 의미가 없어요.”

  유리는 텀블러의 커피를 조심스레 마시며 대답했다.

  “그러니까, 그런 말은 얼른 한아한테 하세요. 날 붙잡고 해봤자 아무 의미 없어.”

  유리로서는 경민의 프러포즈가 통쾌하게 실패한다 해도 별 상관 없었다. 한아가 화를 내거나 유리가 도와준 걸 원망하기라도 하면 아무것도 안 했다고 잡아뗄 예정이었다.

   

  유리와 헤어지고 돌아가는 길에 경민은 동네 문방구에 들러 연필 다섯 다스를 샀다. 돌아오자마자 책상에 앉은 경민이 공구로 연필심을 모조리 꺼내서 잘게 부수었다.

  그러고는 놀랍게도, 한주먹에 입안으로 털어넣었다. 우걱우걱 연필심을 어금니로 부수며 경민은 창문에 블라인드를 꼼꼼히 쳤고, 한껏 노력했음에도 경민의 방이 엄청난 녹색으로 빛날 때 빛의 일부가 쏟아져나갔다. 

  경민은 블라인드 틈으로 밖을 내다보았으나, 특별히 목격한 사람은 없어 보였다.

  다시 경민이 입을 열자, 입에서 다이아몬드 원석들이 쏟아져나왔다.

  “탄소 비율 99.95퍼센트라. 인간들도 재밌다니까. 클래식한 걸 좋아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뭔가 좀 독창적인 걸 만들고 싶은데.”

  경민이 원석을 하나하나 집어 스탠드에 비춰보았다. 결함이 없는 걸 골라내는 게 관건이었다.

   




13



 지는 해가 공간 깊이 들어왔다. 한아는 혼자 남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이 기분 나쁜 내용물처럼 안쪽에서 이리저리 흔들렸다. 아슬아슬한 마음을 주체 못해 재단을 하다가 실수를 하기까지 했다. 겹쳐 있는 아랫부분까지 자르는 초보 같은 실수였다. 

  불과 얼마 전까지 완벽해 보였던 소박하고 즐거운 삶이 어디에서부터 금가기 시작한 걸까? 모든 것이 좋은 방향으로 변했다고 생각했었는데.

  갑자기 앞머리가 무척 거슬렸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한아는 작은 가위를 하나 골라 거울 앞에 서서 시야를 가리는 부분을 다듬었지만 곧 후회했다. 전문가에게 맡길 것을, 더 거슬리게 되어버렸다. 

  술이 당기는 날이었다. 아직 아무데도 열 시간이 아니라서 가게에 혼자 남은 것이었는데, 유리가 함께 마시자고 한 걸 괜히 거절했나 싶었다.

  “나 오늘 완전 늦게 들어가도 되는데? 안 들어가도 되는데?”

  “괜찮아, 게임에서 만나기로 한 사람들 있다며.”

  “그야 그렇지만……”

  “그건 중요한 약속이지.”

 
 사실은 술을 마시면 유리에게 다 털어놓게 될까봐 걱정이었다.

  “경민씨는? 경민씨라도 부르지.”

  “걔가 안주다, 야.”

  “경민씨 일이라면 너무 걱정 마. 두 사람 잘해왔잖아. 내가 다 지겨울 정도로 끈덕지면서 왜 그래?”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가 그렇게 얘기하면 정말 걱정된다. 원래 앙숙이었잖아? 갑자기 왜 경민이랑 그렇게 잘 지내?”

  “에이, 같이 나이들어가면 밉던 사람도 예쁘고 다 그런 거지. 그래, 정 혼자 마시고 싶으면 난 간다. 너무 많이 마시지 말고, 들어가서 문자 꼭 하고. 다 큰 어른은 술 먹어도 집에 혼자 잘 가야 안 흉하다. 알지?”

  유리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퇴근하고 난 후, 한아는 모든 천을 다 꺼내 다시 색깔과 소재별로 정리를 시작했다. 포장마차가 열기까지는 아직도 한참 남은 시간이었다.

   
 한아가 단골 포장마차에서 선호하는 소주와 배추전골을 주문하고 있을 시각, 경민은 정장을 입고 한아의 부모 앞에 앉아 있었다.

  “한아가 오늘 늦게 들어온다고 했다고요?”

  “응, 기다리지 말라던데……”

  “왜 그렇게 정장을 입고? 상가에라도 가야 하는 거야?”

  경민은 망설이다가 준비해온 케이스를 열고 반지를 보여주었다.

  “한아에게 프러포즈하려고 왔습니다.”

  “어…… 얘가 어디 갔담?”

  당황스럽기도 하고 뭐라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서 한아의 부모는 일단 반지를 구경했다. 작은 돔 가운데 큰 다이아몬드가 떠 있고, 작은 다이아몬드가 그 주위를 달처럼 돌고 있었다. 듣도 보도 못한 반지였다.

  “요새는 이런 것도 있네. 특이하다. 어떻게 움직이는 거야?”

  “제가 개발한 겁니다. 소규모 중력 필드를 이용해서 끝없이 돌게 하는 겁니다.”

 
 “신기하네.”

  경민에 대해서 내내 탐탁지 못하게 생각했던 두 사람이었지만 정장의 박력과 커다랗고 기이한 보석에 약간 흔들리고 말았다.

  “근데 자네, 최근에 직장을 잃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요새는 결혼을 꼭 해야 하는 시대도 아니고 우리 한아가 괜히 고생하는 건 좀 그래……”

  “소규모 중력 필드는, 아직 인류 역사상 존재하지 않는 기술입니다. 특허 출원을 신청할 거예요. 경제적인 문제는 전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뭐, 11년을 연애했으니…… 두 사람이 알아서 하겠지.”

  “한아 오면 한아랑 이야기해서 잘 결정하게. 우리는 뭐 별로 의견이 없어.”

  “감사합니다. 곧 장인어른, 장모님으로 부를 수 있다면 좋겠네요.”

  “너무 앞서가진 말고.”

  한아의 부모는 어색하게 경민과 마주앉은 채로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나 고민했다. 테이블 아래로 한아에게 계속 문자를 보냈지만 딸은 답장이 없었다.

   

  정체가 의심스러운 남자친구가 부모님과 함께 있는지도 모르고, 만취한 한아는 노래를 부르면서 불안정한 걸음으로 귀가중이었다. 포장마차에서 대각선 테이블에 앉았던 남자 둘이 계속 따라오고 있는 것도 알지 못했다.

  “아가씨.”

  한아는 그게 자기를 부르는 소리인 줄 몰랐다. 남자 둘은 딱 보기에도 질이 나빠 보였다. 안 좋은 업계에 오래 종사한 흔적이 인상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었다. 한쪽이 더 조바심 내며 다시 한아를 불렀다.

  “거, 아가씨.”

  그제야 한아가 돌아보았으나, 둘 중의 누구도 아는 얼굴이 아니었다.

  “네?”

  “우리랑 한잔 더 하자고.”

  “아…… 그건 좀 곤란한데요.”

 

  “에이, 아까부터 우리 눈 좀 마주쳤잖아. 같이 마시자고 신호한 거 아니었어?”

  한아 입장에서는 뜬금없었다. 혼자 앉아 있다보면 아무래도 두리번거리게 되는데, 그걸 가지고 저런 말도 안 되는 착각을 한단 말인가.

  “아뇨, 전 충분히 마셔서 그만 마시려고요.”

  “이거 왜 이래, 이런 한적한 데까지 아가씨 따라 걸어온 거잖아. 아, 진짜 짜증나게 구네.”

  “야, 싫다잖아. 내가 쟤보다 예쁜 애들 잔뜩 나오는 데 알아. 그리로 가자.”

  그러나 알 수 없는 이유로 화가 난 쪽은 만류를 거부했다.

  “뭐 좀 있네, 저렇게 잘난 척하며 무시하는 년들이 제일 싫어. 네가 뭔데 날 무시해? 꼬리 쳤으면 책임을 져야지!”

  한아는 술을 한동안 안 마셨던 게 취객들이 싫어서였구나, 취한 상태에서도 깨달으며 메고 있던 크로스백을 어깨에서 내려 잡았다. 취객 한 사람이 한아에게 손을 뻗었고, 한아는 크로스백을 휘둘러 방어했는데 몇 번 휘두르지 못하고 잡혔다. 가방을 포기하고 뛰어야 하나? 뛰다가 잡히는 건 아닐까? 판단이 잘 되지 않았다. 크로스백 끈이 팽팽했다.

  한아를 기다리는 걸 포기하고 한아의 집에서 나오던 경민이 그들을 발견한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어두웠고, 오십 미터는 떨어진 거리였지만 경민은 곧바로 달리기 시작했다. 새로 맞춘 옷의 어딘가가 부욱, 찢어지는 소리가 났지만 상관없었다.

  취객의 흉하고 두꺼운 손가락이 한아의 머리카락에 닿을 참이었다. 경민이 한아를 안아 뒤로 빼면서 그를 밀쳤다. 경민의 건조한 손바닥이 한아의 얼굴 윗부분을 가렸다.

  “뭐야? 놔!”

  한아는 경민의 개입도 취객들의 행패만큼이나 불쾌해 몸부림쳤지만, 곧 경민의 눈과 입에서 엄청나게 강렬한 녹색 빛이 뿜어져나왔다.

  그건 앞서의 경우와는 전혀 다른 수준의 것으로, 서울 한가운데 거대한 녹색 빛기둥이 잠깐 생겼다 사라졌다. 취객들이 눈을 감싸쥐고 신음했다. 사람들이 창문을 내다보고, 직접 집 밖으로 나오며 웅성거렸다.

  “너…… 너, 뭐야?”

 
 한아는 어떤 정보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경민을 마주보았다. 경민은 비틀거리는 한아를 조심스럽게 부축했다.

  “지금은 말고, 나중에 얘기하자.”

  한아는 경민의 부축을 다부지게 밀쳐냈다.

  “너, 뭐냐고?”

  “한아야…… 내일 나랑 잠깐 어디 안 갈래? 같이 가서 보여줄 게 있어. 그럼 너도 다 알게 될 거야.”

  “나 더이상 아무것도 모르겠어.”

  하루종일 한아의 안에서 휘돌며 차오르던 것, 의심과 절망과 혼란이 한아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경민은 당장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입을 열었다, 닫았다,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했다. 고장난 장난감 같은 표정이었다.

  “내일 하루만 나한테 시간을 줘. 그러고도 안 된다면, 내가 물러설게. 깨끗하게 놓아줄 테니까.”

  경민의 마지막 제안이 타당하게 느껴졌으므로, 한아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추천 (2) 선물 (0명)
IP: ♡.252.♡.103
로즈박 (♡.43.♡.108) - 2023/11/14 21:51:24

드디여 왜 그런건지 고백하는건가요?
아폴로의 실종도 경민이때문??

단차 (♡.252.♡.103) - 2023/11/14 22:11:02

연관이 있어보이죠? 저도 두근두근하면서 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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