拉普拉斯的魔女 12~13

단차 | 2023.12.01 10:36:47 댓글: 0 조회: 143 추천: 0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23539
 12

     

     

     

     

  차임벨을 누르자 네에, 라는 무뚝뚝한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들려왔다.

  “구청에서 나왔습니다. 야구치 씨, 문 좀 열어주세요.” 나카오카는 애써 환한 목소리로 말했다.

  “구청? 무슨 일이죠? 내가 지금 좀 바쁜데요.”

  “시간은 별로 걸리지 않아요. 금세 끝나니까요, 부탁합니다.”

  혀를 차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문을 열어주기는 할 모양이었다. 나카오카는 계속 입꼬리를 치켜든 채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도어스코프가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자물쇠 풀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스웨트 셔츠와 바지를 입은 마른 남자가 뜨악한 표정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나이는 서른 살 전후일까.

  “무슨 일이죠?” 미간에 주름을 잡은 채 물었다.

  “야구치 나오야 씨?”

  “네, 그런데요.”

  나카오카는 머리를 숙인 뒤 경찰 배지를 꺼내 보였다. “문 열어줘서 고마워.”

  야구치의 얼굴빛이 홱 변했다. “경찰?”

  “응, 경찰서나 구청이나 다 똑같은 공무원이잖아.”

  “나 아무 짓도 안 했어요.” 뺨이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알아, 안다고. 그냥 좀 물어볼 게 있어서 그래. 어때, 잠깐 들어가도 될까?”

  “아니, 그건 좀…….” 야구치는 방 안쪽을 신경 쓰는 듯한 몸짓을 보였다.

  그때 “자기, 뭐 해?”라는 여자의 나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 계속 열어두면 춥단 말이야.”

  “시끄러. 입 다물고 있어.” 야구치가 안쪽을 향해 소리쳤다.

  나카오카는 쓴웃음을 흘렸다. “먼저 온 손님이 있었군. 안에는 못 들어가겠네.”

  “미안해요. 어딘가 다른 곳에서 얘기해도 돼요?”

  “물론 되고말고.”

  그리고 약 15분 뒤, 근처 커피숍에서 나카오카는 야구치와 마주 앉았다.

  “미즈키 치사토라는 여자, 알지? 호스티스 시절에 쓰던 이름은 레이카였어.”

  “예, 알아요.” 야구치의 얼굴에 경계하는 빛이 떠올랐다.

  “당신, 꽤 오래 사귀었다던데? 긴자의 레드 바에서 5년 넘게 함께 일했고 가게 끝난 뒤에는 나란히 술 마시러 나갔다면서?”

  야구치는 당황한 기색으로 손을 내저었다.

 
 “허 참, 그 여자하고는 깊은 관계 같은 거 아니었어요. 둘 다 고향이 니가타라서 얘기가 잘 통했을 뿐이죠. 술 마시러 나갔다고 해봤자 단둘이 간 것도 아니라고요. 레드 바는 종업원이 가게 아가씨에게 손을 댔다가는 즉시 해고였는데요 뭘.”

  “이상하네. 쉬는 날에 만나는 걸 봤다던데?”

  찔끔한 듯 잠시 입을 헤벌리더니 야구치는 몇 번 눈을 깜작거렸다.

  “딱 한 번이에요. 쇼핑하는 데 그냥 함께 따라갔다고요, 손님 선물을 골라야 한다고 해서. 넥타이였어요. 진짜예요.”

  “뭐,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야겠지?”

  “정말이라니까요. 레이카 씨가 나처럼 가난한 보이를 상대나 해줄 것 같아요?” 야구치는 입을 툭 내밀었다.

  “알았어, 믿어줄게. 근데 특별한 관계는 아니었어도 둘이 친하기는 했잖아. 그렇지 않고서야 함께 쇼핑을 다닐 리 없지. 그 여자 결혼한 뒤에도 이따금 만났다면서? 당신이 직접 그렇게 말했다는 거, 작년 연말까지 레드에서 일했던 아가씨한테 다 듣고 왔어.”

 
 “이따금은 아니에요. 게다가 최근에는 아예 본 적도 없어요. 메일조차 주고받은 적이 없다니까요.”

  “마지막으로 만난 게 언제야?”

  “그게 언제였더라.” 야구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1년 전이었나. 지금 이맘때쯤이었어요.”

  “당신이 만나자고 했어?”

  “아뇨, 그 여자 쪽에서 잠깐 보자고 연락이 왔어요. 근데요, 그냥 잠깐 봤어요. 같이 밥도 안 먹었다고요.”

  “아무튼 그때 무슨 얘기를 했어?”

  야구치는 일순 눈빛이 허우적거리더니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그런 걸 어떻게 다 기억합니까.”

  “그럼 레이카 씨가 별 볼일도 없는데 당신을 불러냈다는 거야? 그러고는 식사도 안 하고 헤어졌다고?” 고개를 떨구고 입을 꾹 다물어버린 상대를 쏘아보며 나카오카는 말을 이었다. “이봐, 야구치 씨. 형사가 이렇게 찾아온 건 어느 정도 증거를 잡았다는 뜻이야. 내가 말했잖아, 당신한테서 그런 얘기를 들었다는 아가씨가 있다고. 그러니까 그 아가씨한테 했던 말을 나한테도 그대로 해주면 돼.”

 
 야구치가 고개를 들었다. “나한테 몇 가지 물어보고 금세 갔어요.”

  “글쎄 그 질문 내용이 뭔지 얘기해달라니까. 시간은 넉넉하니까 찬찬히 생각을 더듬어봐. 커피 좀 마시지? 다 식겠다.” 나카오카는 자신의 커피 잔을 들며 말했다.

  야구치는 커피에 슬쩍 입을 대더니 머뭇머뭇 말문을 열었다.

  “언더 쪽 주소를 알려달라고 했어요.”

  “언더, 라는 게 뭔데?”

  “언더그라운드 사이트.”

  “불법 사이트 말이로군.”

  야구치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등으로 입가를 닦았다.

  “예전에 그런 얘기가 나왔을 때 내가 말했었어요. 거의 다 웃기는 사이트들이지만 딱 한 군데 믿을 만한 데를 알고 있다고. 그 여자, 그걸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에요.”

 
 “왜 그런 사이트를 알아보는지, 그 여자가 얘기했어?”

  “남편이 부탁했다고 하던데요.”

  “남편이?”

  “그 여자 남편이 영화 관련 일을 하는데, 불법 사이트를 소재로 작품을 제작할 예정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실태를 파악해야 하는데 그쪽으로 뭔가 아는 거 없냐고 레이카 씨한테 물어본 모양이에요.”

  “그래서 그 여자한테 알려줬어?”

  예, 라고 야구치는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이트 주소, 지금 알 수 있어?”

  야구치는 호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더니 몇 번 터치한 뒤에 나카오카 쪽으로 화면을 보여주었다. 표시된 주소를 나카오카는 수첩에 메모했다.

  “그 여자 얘기를 그대로 믿었어? 남편이 물어봤다는 그 얘기.”

  “뭔가 좀 거짓말 같기는 했죠. 근데 괜히 한데 엮이는 게 귀찮아서 더 묻지도 않았어요.”

 
 “진짜 목적은 뭐라고 생각했는데?”

  나카오카의 질문에 야구치는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는 몸짓을 보였다.

  “그 사이트, 주로 뭔가 의뢰하고 청부하는 데지?”

  글쎄요, 라고 여기서도 애매하게 얼버무리려고 했다.

  나카오카는 커피 잔을 잡으려고 내민 야구치의 손을 움켜잡았다. 그대로 손가락을 비틀자 야구치의 얼굴이 뒤틀렸다. “아야얏, 아프다고요!”

  “계속 시치미 뗄 거야? 당신, 그 사이트에 대해 빠삭하게 다 알잖아. 믿을 만한 데라고 방금 자기 입으로 말했으면서.” 그러고는 손을 놓아주었다.

  야구치는 손을 슬슬 문지르면서 말했다. “그래요, 범죄 사이트예요. 돈만 주면 뭐든지 해준다는 자들이 모여드는 사이트.”

  “살인도?”

  야구치는 망설이는 듯 입술을 한 차례 핥더니 “분명하게 적어놓지는 않았지만 그런 일인 것 같은 의뢰도 가끔씩 있죠”라고 말했다.

 
 “흠, 그래.” 나카오카는 커피를 후루룩 마셨다. “그 여자 남편 미즈키 요시로 씨가 사망한 건 알고 있어?”

  야구치는 턱을 내밀며 위아래로 끄덕였다. “건너 건너 들었어요. 온천지에서 죽었다고.”

  “그 얘기 듣고 무슨 생각이 들었지?”

  “무슨 생각이냐니…….”

  “솔직히 대답해봐. 우리 말고는 듣는 사람도 없잖아. 걱정 마. 그런 얘기를 내가 레이카에게 전할 리도 없으니까.”

  “그렇다면…….” 야구치는 손끝으로 머리를 쓸어 올렸다. “잘 해냈구나, 라고 생각했어요.”

  “잘 해내다니, 무슨 뜻이야?”

  “그러니까 그게, 유산이 엄청나겠다고 짐작했단 거예요. 원래부터 재산을 노리고 결혼했으니까……. 아니, 아니에요, 이건 다들 하는 얘기를 옮긴 거고 실제로는 어떤지 나도 잘 몰라요.”

  흥, 하고 코웃음을 치고 나카오카는 커피 잔을 비웠다.

 
 “요즘 그 여자와 연락을 주고받지 않는다는 거, 진짜지?”

  “진짜예요.”

  “앞으로 연락을 취할 예정은?”

  “없어요, 없을 겁니다.”

  “음, 좋아.” 나카오카는 고개를 끄덕이고 테이블의 계산서를 집어 들었다. 자리에서 일어서기 전에 야구치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거기는 믿을 만하다고 단언했지?”

  “예?”

  “그 불법 사이트 말이야. 거의 다 웃기는 사이트인데 그중에 거기만은 믿을 만하다면서? 그걸 어떻게 알았어? 누구한테 건너 들은 얘기라는 식으로 속이 뻔히 보이는 거짓말은 하지 마. 그랬다가는 일이 더 귀찮아져. 솔직하게 대답하라고.”

  야구치의 관자놀이가 실룩실룩 움직였다.

  “이용한 적이 있었구나?”

  나카오카의 물음에 야구치가 머뭇머뭇 대답했다. “딱 한 번.”

 
 “일을 의뢰한 거? 아니면 일을 청부한 거?”

  “일을 청부한 거요.”

  “언제쯤 얘기야?”

  “2년 전쯤요. 갑작스럽게 돈이 필요해서…….”

  “뭘 했는데? 살인?”

  “에이, 설마요.” 야구치가 눈을 허옇게 떴다. “짐을 운반해줬어요. 가사이 쪽에서 받아 온 짐을 차로 나고야까지 옮겨줬어요. 나고야에서 또 다른 사람이 기다리고 있어서 돈 받고 짐 내주고, 그걸로 끝이에요.”

  “어떤 짐이었지?”

  “박스 두 개.”

  “내용물은?”

  “못 봤어요. 절대로 보면 안 된다고 해서.”

  “크기는? 무게는 얼마나 됐어?”

  “크기는 이 정도쯤인가.” 야구치는 두 손을 1미터쯤 벌렸다. “무게는 꽤 나갔어요. 박스 하나가 20킬로는 넘었을 거 같은데.”

 
 “그러고 얼마 받았어?”

  “10만 엔.”

  “흠.”

  상자의 내용물은 절단된 사체였는지도 모른다고 나카오카는 생각했다. 게다가 아마도 타살체일 터였다. 불법 사이트를 통해 고용한 다수의 사람들에게 사체 유기를 떠맡기면 설령 사체가 발견될 경우에라도 경찰이 유기 경로를 추적해 범인을 알아내기가 힘들어진다.

  “도쿄와 나고야 왕복만으로 10만 엔? 나쁘지 않네. 근데 그거,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위반이야.”

  “죄송합니다.” 야구치가 몸을 움츠렸다.

  “뭐, 됐어. 오늘 나하고 만났던 일은 싸악 잊어버려. 그러면 나도 그 건은 잊어줄 테니까.” 나카오카는 자리에서 일어나 야구치의 어깨를 툭툭 쳤다. “어때, 괜찮지?”

  “네, 물론이죠. 고맙습니다.”

  움츠리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야구치를 남겨두고 나카오카는 계산대로 향했다.

 
 커피숍을 나와 걸음을 옮기면서 방금 나눈 대화를 되새겼다. 야구치의 위법 행위의 이면에는 살인 사건이 숨어 있을 수도 있지만, 벌써 2년 전 일이라면 그 박스의 행방을 추적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어차피 다른 경찰서 관할이라서 나카오카가 관여할 수도 없다.

  문제는 미즈키 치사토다. 무슨 목적으로 불법 사이트의 주소를 알아내려고 했는가.

  그런 생각을 더듬고 있는데 안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이 부르르 진동했다. 착신 표시를 확인하고 입가를 일그러뜨린 다음에야 전화를 받았다. “네에.”

  “이봐, 지금 어디서 땡땡이치고 있어?” 계장 나리타가 툴툴거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카쿠마 온천 건으로 증거를 찾고 다니는 중이에요.”

  미즈키 치사토에 대해 내밀하게 수사를 진행한다는 건 나리타 계장에게 이미 허가를 얻은 사안이다.

  “그걸 아직도 붙잡고 있어?”

  “아직도가 아니죠, 이제 막 시작한 참인데.”

 
 “대학 교수가 타살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면서? 이제 어지간히 해둬.”

  “다른 업무도 착실히 하고 있는데요.”

  “그건 좋지만 지금 업무가 불어났어. 롯폰기 노래방에서 싸움이 났단 말이야. 얻어맞은 쪽은 중태, 때린 쪽은 토껴버렸네. 손이 비는 인원이 거의 없는 상황이야. 그쪽으로 지원 좀 나가줘.”

  “알겠습니다.”

  자세한 위치를 확인하고 전화를 끊었을 때 마침 택시가 달려왔다. 나카오카는 손을 번쩍 들었다.

  하지만 현장으로 향하는 도중에도 나카오카의 의식은 아카쿠마 온천 사건으로 내달렸다. 조사하면 할수록 단순 사고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사망한 미즈키 요시로의 친가는 치바 지역의 명문가로 부친이 몇 가지 사업을 펼쳐왔다. 그중 하나가 광고업이고, 미즈키는 대학 졸업 후 그 회사에 들어갔다. 거기서 착수했던 것이 CM 제작이라서 그 이후에 본격적인 영화 제작에 관여한 모양이었다. 서른 살 때 독립해 수많은 영화의 프로듀싱을 맡았다. 그중에는 흥행 수입이 역대 랭킹 상위에 들어가는 작품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또한 미즈키 자신이 직접 기획 고안한 스토리며 캐릭터도 많아서 관련 상품이며 서적의 저작권에서도 엄청난 수입이 있었다. 상세한 액수까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리 적게 잡아도 자산이 5억 엔을 넘을 터였다.

  어머니인 미요시 씨가 편지에서 밝혔던 것처럼 그는 두 번 결혼했고 두 번 다 아내와 1년도 안 되는 사이에 이혼했다. 아이는 없고, 2년 전 세 번째 결혼을 할 때까지 널찍한 호화 저택에서 혼자 살았다.

  행복한 가정은 만들지 못했지만 영화인으로서의 지위는 높은 모양이었다.

  진짜를 알아보는 눈이 있다, 반면 사업적인 이익을 중시하는 면도 있었다, 라는 것이 미즈키 요시로를 아는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재능이 있다고 판단되면 무명의 젊은 감독이라도 적극적으로 기용했다. 거꾸로 아무리 이름이 널리 알려지고 실적이 높은 감독이라도 신선미가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용서 없이 잘랐다. 그 탓에 사이가 틀어진 사람도 적지 않았지만 미즈키는 전혀 신경 쓰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작품 소재에 대해서도 일절 타협하지 않는 성격이어서 유행을 쫓는 작품이라면 질색을 했다. 재탕 같은 경우는 아예 말할 가치도 없어서 그런 기획을 내놓으면 격노했다고 한다.

  그런 성격이 탈이 되었는지 최근 10여 년 동안 이렇다 할 일거리가 없었다. 그런데 나카오카는 몇몇 영화 관계자로부터 마음에 걸리는 이야기를 들었다.

  최근 들어 미즈키가 세상이 깜짝 놀랄 만한 영화를 제작하겠다는 말을 하고 다녔다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이는 없었지만, 어느 감독에 의하면 “그 사람은 허세나 과장으로 그런 소리를 할 사람이 아니다. 일단 입 밖에 냈다면 분명 뭔가 특별한 기획이 있었을 것이다”라는 얘기였다.

  그런 미즈키 요시로가 치사토에게만은 깊이 빠져들었다. 어떻게든 내 것으로 만들겠노라고 주위에 호언장담을 하더니 실제로 손에 넣었다. 단 그녀의 사랑을 얻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는지 “그 여자는 내 재산에 홀렸고 나는 돈으로 치사토를 사들인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자신들의 결혼을 평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는 어머니 미즈키 미요시의 편지에 적혀 있었던 내용과도 합치한다.

 
 문제의 미즈키 치사토는 니가타 현 출신으로, 고등학교 졸업 후 도쿄에 올라왔다. 롯폰기의 클럽에서 일하기 시작했지만 곧바로 긴자로 옮겼다. ‘레드’는 긴자에서 두 번째로 일하게 된 바였다. 호스티스로서의 이름은 계속 ‘레이카’를 사용했다.

  긴자로 옮긴 이유에 대해 치사토는 친한 호스티스에게 “돈 많은 노인네를 사귀고 싶어서”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롯폰기에도 부자가 많지만 대부분 나이가 젊어서 안 된다는 것이다.

  “아직 젊은 축이면 그 남자가 늙었을 때는 나도 노인이 돼. 노인이 노인을 돌본다는 건 너무 힘들어. 어차피 노인을 모셔야 한다면 그나마 내가 젊을 때가 낫겠지. 남자가 사망했을 때, 나는 아직 충분히 인생을 즐길 수 있는 나이잖아. 게다가 상속한 유산으로 풍족하게 지낼 수 있어. 어때, 최고잖아?”

  그 이야기에 그것도 그렇겠다고 묘하게 납득해버렸다, 라고 나카오카가 만난 호스티스는 말했다.

  치사토가 왜 그런 극단적인 인생 계획을 세웠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실제로 그녀는 자산가이면서 혼자 사는 노인 손님을 만나면 상당히 적극적으로 접근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노골적으로 색기를 드러내는 게 아니라 그리 표 나지 않게 배려해주면서도 상대에게 마음이 분명하게 전달되도록 어필하는 것이 그녀의 방법이었다.

  그렇게 몇 번의 시도 끝에 만난 사람이 미즈키 요시로였다. 미즈키는 가게를 찾은 그날로 치사토를 마음에 들어 해서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치사토 역시 그의 자산 상황을 파악하고 이상적인 상대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러고는 몇 달 만에 두 사람은 결혼했다. 역시나 주위 사람들 모두가 놀랐다. 하지만 치사토의 일관된 자세에는 레드의 종업원 대부분이 오로지 감탄했을 뿐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런 건 딱히 드문 일도 아니다. 젊은 여자가 경제력을 기대하며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남자와 결혼한다는 건 자주 듣는 얘기다. 고령의 남편이 아내보다 먼저 죽을 가능성은 높다. 설령 돈에 눈이 어두워 결혼했다고 쳐도 젊은 아내로서는 그때까지 꾹 참고 기다리면 되는 것뿐이라서 굳이 살인까지 범하는 건 리스크가 지나치게 높다.

  다만 미즈키 치사토의 경우에는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 있었다. 어머니인 미요시 씨가 말했던 대로 사건 일어나기 석 달 전쯤에 미즈키 요시로가 여러 개의 생명보험에 가입했던 것이다. 어느 보험회사 담당자는 “미즈키 씨는 그다지 내키지 않는 기색이었지만 자신에게 혹시 무슨 일이 생겨서 젊은 아내가 고생하게 되면 가엾다는 생각에 계약할 마음이 난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보험금 총액은 3억 엔이 넘는다. 상당한 고액이지만 어떤 보험회사도 현재로서는 사고에 대해 전혀 의심하지 않고 있다.

  조사하면 할수록 수상쩍었지만 한편으로 그런 노골적인 짓을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예 대놓고 의심해달라고 말하는 듯한 일이 아닌가.

  나카오카는 아카쿠마 온천에도 가보았다. 지역 경찰은 이미 사고라고 결론을 내려놓고 있었다. 현청 환경보전과의 이소베라는 공무원도 사고 재발 방지 문제만으로도 머릿속이 복잡한 눈치였다.

  하지만 미즈키 부부가 묵은 여관에서는 여주인에게서 귀가 솔깃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번 온천 여행은 아내 치사토가 제안한 것이고 미즈키 요시로는 아카쿠마 온천 자체를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카오카는 살인 가능성을 열심히 찾아보았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 화산가스 농도가 높아지는지 예측할 수 없다는 점만은 아마추어인 그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황화수소를 의도적으로 발생시키는 방법이었다. 다이호 대학의 아오에 교수는 딱 잘라 불가능하다고 말했지만 그래도 나카오카는 아직 포기할 수 없었다.

  조후 시의 노인 요양 시설에서 미즈키 치사토와 덜컥 마주쳤던 일을 잊을 수 없었다.

  속 시원하실 때까지 마음껏 수사해주세요—.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자신만만한 웃음을 지으면서.

  그건 죄가 없는 인간의 얼굴이 아니다. 나카오카는 그렇게 확신했다.

 

  13

     

     

     

     

  똑똑똑, 하고 누군가 문을 세 번 두드린 것은 아오에가 대학원생의 리포트를 살펴보고 있을 때였다. 들어오세요, 라고 대답하자 문이 열리고 오쿠니시 데쓰코가 들어왔다. 손에 대형 봉투를 들고 있었다.

  “바쁘신가요?”

  “아니, 그렇지도 않아. 이거 읽고 있었어.” 리포트를 가리켰다.

  “아, 그 사람의?” 오쿠니시 데쓰코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어떠셨어요?”

 
 “깜짝 놀랐어.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문장이다 싶어서 곰곰 생각해봤더니 얼마 전에 내가 전문지에 써낸 걸 그대로 베껴 썼더라고. 자네도 눈치챘을 거 같은데?”

  “물론 알았죠. 하지만 교수님이 직접 주의를 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아오에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왜 이런 짓을 하는지 모르겠네. 베껴 쓴 논문을 원저자에게 제출하고도 들키지 않을 줄 알았나?”

  “아마 원저자가 교수님인 줄 몰랐을 거예요. 우선 다른 누군가가 교수님의 논문을 훔쳐서 자신의 논문이라고 발표했을 거고, 그걸 이번에 우리 대학원생이 다시 훔쳤겠지요.”

  “그건 또 무슨 소리래?” 아오에는 입이 헤벌어졌다. 하지만 잠시 생각해보니 사정이 이해가 되었다. “흠, 그렇게 된 거였군. 도용한 논문을 재차 도용한 거네.”

  “교수님이 직접 주의를 주시겠어요?”

  “아니, 사양하겠어.” 아오에는 손을 내저었다. “시간 낭비야. 그 친구에게는 한 마디만 해줘. 들켰다, 라고.”

 
 “알겠습니다.”

  아오에는 리포트를 옆의 쓰레기통에 휙 던졌다. “그래서 자네는 무슨 용건이지?”

  “속달이 왔어요.”

  “속달? 어디서?”

  오쿠니시 데쓰코는 대형 봉투를 내밀었다. “호쿠리쿠 마이초 신문사에서 보낸 거예요.”

  아하, 하고 아오에는 고개를 끄덕이며 봉투를 받아 들었다. 생각했던 대로, 보낸 사람은 호쿠리쿠 마이초 신문사의 우치카와였다. 당장 그 자리에서 봉투를 북 뜯었다.

  “기사가 실린 신문을 보내준 모양이네. 착실하기도 하지.”

  “조사에 협력해줬는데 그야 당연한 일이죠.”

  “그런가.”

  아오에는 봉투의 내용물을 꺼냈다. 짐작대로 기사가 실린 신문이었다. 편지지가 첨부되어 있었다. ‘덕분에 기사가 완성되었습니다. 우송해드립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손으로 써 내려간 편지였다.

  기사가 실린 똑같은 신문 두 부가 들어 있었다. 한 부를 오쿠니시 데쓰코 앞에 놓았다. “괜찮으면 자네도 읽어봐.”

  꼭 읽어보겠다면서 그녀는 신문을 집어 들었다.

  신문에는 노란 포스트잇이 붙은 면이 있었다. 그곳을 펼쳐보니 ‘뉴스 되짚기’라는 코너에서 새삼 도마테 온천에서 일어난 사고를 소개하고 있었다. 개요를 설명한 뒤에 전문가의 의견으로서 아오에의 말이 실렸다.

     

  온천지 부근에서는 어떤 흙에서나 황화수소와 이산화탄소가 발생할 우려가 있습니다. 이번에 사고 현장이 된 산책로의 상부에도 그런 장소가 있었던 게 아닐까요. 눈 밑에 갇혀 있던 가스가 어떤 원인으로든 단숨에 분출한 것으로 보입니다. 황화수소는 공기보다 무거워 무풍 상태에서는, 특히 지면이 차갑게 식어 있는 겨울철에는 상승기류도 없기 때문에 아래로 아래로 흘러 내려가 저지대나 웅덩이에 고입니다. 사고 현장은 그런 악조건이 겹쳐지는 장소였겠지요. 황화수소는 흔히 말하는 대로 달걀 썩은 듯한 냄새가 나지만 자극적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어서 호흡을 하다 보면 점점 냄새에 익숙해집니다.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치사량을 들이쉬고 운동신경이 망가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신문을 덮고 “어떻게 생각해?”라고 조교에게 물었다.

  “딱히 문제는 없는 거 같은데요? 타당한 견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거야. 타당하다고 하면 듣기야 좋지만 한마디로 두루뭉술 무난한 얘기라는 뜻이야. 일부러 현지까지 갔는데 이 정도 코멘트밖에 못 했다는 건 전문가로서 실격이라고 해야겠지.”

  “그렇게까지 자책하실 건 없죠. 기껏해야 신문인데.”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한심해. 자네니까 솔직히 말하지만, 사실은 불가사의한 점이 너무 많아서 원인이 뭔지 도통 알 수가 없더라고.”

  “그래요?” 오쿠니시 데쓰코는 희미하게 미간을 좁혔다. “불가사의하다니, 이를테면 어떤 점이?”

 
 “황화수소 냄새. 이 기사에도 나왔지만, 그 달걀 썩은 듯한 냄새, 이번 현장 부근에서는 여태까지 그런 냄새가 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거야.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인 것이 애초에 그런 험한 장소에 산책로 같은 걸 만들 리가 없지. 그 지역 사람들에게 물어봤는데, 산책로 주변은 어디든 초목이 무성하게 잘 자랐고 야생동물의 사체가 자주 발견되었다든가 하는 일도 없었대. 만일 거기에 황화수소가 분출되는 곳이 있었다면 식물의 생육이 나빠지고 동물도 더러 죽어 있었을 텐데 말이야. 어때, 뭔가 좀 이상하지?”

  오쿠니시 데쓰코는 안경을 손끝으로 밀어 올렸다.

  “그렇다면 분명 이상하군요. 하지만 자연환경은 급격히 변하는 일도 많아요. 인근 화산활동의 영향 때문일 수도 있고요.”

  “그건 나도 생각해봤어. 근데 이건 아무래도 단순 사고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든단 말이야.”

  오쿠니시 데쓰코는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우뚱했다. “사고가 아니라면 뭔데요?”

  “그러니까 그게…….” 인위적인 것, 이라고 말하려다가 아오에는 말을 꿀꺽 삼켰다. 아직 입 밖에 낼 단계가 아니다. “단순 사고가 아니라 좀 더 복잡한 요인이 얽힌 사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는 거야.”

  “네,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교수님, 이 건에 대해서는 우선 맡은 일을 다 하셨으니까 이제 원래의 업무로 돌아오시는 게 어떨까요. 교수님이 회장을 맡으신 연구회의 원고, 이제 제발 좀 보내달라고 사무국 쪽에서 재촉이 들어왔어요.” 안경 안쪽의 눈이 번쩍 빛났다.

  “아, 그거? 응, 알고 있어. 얼른 써야지.”

  “내일까지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말하고 오쿠니시 데쓰코는 책상 옆으로 다가와 조금 전에 아오에가 쓰레기통에 던져버린 리포트를 다시 꺼냈다. “그럼 저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발을 돌려 문 쪽으로 향했다.

  “잠깐.” 아오에는 그녀를 불러 세웠다. “자네, 나스노 고로라는 배우, 알아?”

  오쿠니시 데쓰코는 안경을 밀어 올렸다. “나스노?”

  “응, 나스노 고로. 도마테 온천에서 사망한 피해자인데 배우였대.”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는데요. 들어본 적도 없어요.”


 “그래? 역시 그렇군. 알았어, 이제 됐어.”

  “그분이 왜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아는가 싶어서 그냥 물어봤어. 어서 가서 일 봐요.”

  그녀는 미심쩍다는 기색으로 실례합니다, 라고 말하고 나갔다.

  닫힌 문을 멀거니 쳐다보다가 아오에는 후우 한숨을 토해내고 다리를 꼬면서 등받이에 몸을 내맡겼다. 오쿠니시 데쓰코가 재촉한 연구회 원고를 쓸 마음은 전혀 나지 않았다. 이런저런 일들이 너무나 많이 머릿속에 걸려 있었다.

  아카쿠마 온천과 도마테 온천, 두 온천지에서 일어난 일을 정말 단순 중독 사고로 처리해버려도 될까. 양쪽 모두 전문가로서의 의견을 밝혔지만, 어쩌면 엄청난 실수를 범한 게 아닌가 하는 불안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몇 가지가 있었다. 조교 오쿠니시에게 이야기한 것도 그중 하나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이유는 우하라 마도카의 존재였다. 그 젊은 아이와의 만남에 의해 모든 풍경이 일시에 변해버린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그녀는 대체 누구인가. 그녀가 찾고 있는 청년은 어떤 사람인가. 왜 중독 사고가 일어난 곳에 와서 그 청년을 찾고 있는가. 두 사람은 사고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 만일 뭔가 관계가 있다면 역시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는 얘기가 된다.

  두 온천지에서 일어난 중독 사고의 공통점은 양쪽 다 영화 관계자가 피해를 당했다는 점이다. 아카쿠마 온천에서는 영화 프로듀서, 도마테 온천에서는 배우였다. 단순한 우연일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우하라 마도카의 등장으로 그것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아오에는 책상 위의 노트북을 열어 인터넷에 접속했다. 우선은 ‘나스노 고로’를 검색해보았다. 곧바로 몇몇 정보가 떴지만 지난번에 스마트폰으로 알아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역시 별다른 내용은 없었다. 몇 년 전까지는 두 시간짜리 드라마의 단역 등으로 간간이 텔레비전에 나온 모양인데 그 뒤로는 어떻게 됐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영화에 출연한 적도 있지만 거의 10년 전 일이다. 「폐허의 종鐘」이라는 제목의 영화인데 아오에는 그런 영화가 있었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어서 그 영화에 대해 검색해보았다. 혹시 아카쿠마 온천에서 사고를 당한 영화 프로듀서가 관련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름이 분명 미즈키 요시로였지—.

  영화에 관한 정보는 금세 나왔다. 하지만 캐스트는 물론이고 스태프 중에도 그런 이름은 없었다. 그 참에 영화 스토리를 읽어보았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잃은 여자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동네를 찾아가는 이야기인 모양이다. 인간의 존엄이란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라는 과장된 홍보 문구가 붙어 있지만 전혀 보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 영화였다.

  다음은 ‘미즈키 요시로’로 검색해보았다. 그러자 정보가 줄줄이 떴다. 위키 백과사전에도 실려 있었다. 우선 편리해서 그쪽을 읽어보기로 했다.

  그것에 의하면, 미즈키는 나스노 고로와는 달리 그 경력이 실로 화려했다.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뿐만 아니라 연극 무대와 라이브 공연, 나아가 유원지 어트랙션의 프로듀서도 한 모양이었다. 관련된 배우나 아티스트들도 모두 유명한 사람들이었다. 단 왕성하게 활동한 것은 10년 전까지고 바로 최근의 정보가 부족한 것은 나스노 고로와 공통된 점이었다.

  이런 걸 검색해봤자 별 의미도 없는가—. 그렇게 생각하며 윈도우를 닫으려는 순간, 아오에는 손을 멈췄다. 미즈키 요시로가 관여한 영화 목록에 「얼어붙은 입술」이라는 제목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영화는 아오에도 본 적이 있다. 20년 전쯤이다. 해외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며 상당히 화제가 되었다. 유복한 명문가에서 태어난 소년이 사소한 일로 아름다운 창부를 알게 된 것을 계기로 겉으로는 모범생인 척하면서 서서히 섹스와 마약에 빠져든다는 이야기였다. 스토리는 과격하지만 시사성이 풍부하고 영상의 아름다움이 압도적이어서 아마추어인 아오에도 굉장한 영화라고 느꼈었다.

  그 영화에 대해 연달아 위키 백과사전으로 알아보았다. 그러자 분명 프로듀서 칸에 미즈키 요시로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 영화의 프로듀싱도 맡았었는가—.

 
 아오에는 갑작스레 그가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그 영화라면 자신이 지금껏 본 영화 중에서 분명 베스트 3위에 든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캐스트 칸을 확인했다. 어쩌면 나스노 고로가 단역으로 나왔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곳에 적힌 목록 속에 나스노는 없었다.

  다시 한 번 무심코 스태프 칸으로 시선을 옮겼다. 감독과 각본은 아마카스 사이세이라는 인물이었다. 이름은 들은 적이 있다. 영화에 대해 문외한인 나도 그 이름을 기억할 정도니까 분명 유명한 감독일 것이다.

  그 이름을 보고 있으려니 묘하게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게다가 방금 전이다.

  혹시나 해서 영화 「폐허의 종」의 정보가 적힌 페이지로 다시 돌아갔다. 그랬더니 역시 짐작했던 대로였다. 이 영화도 아마카스 사이세이가 감독을 맡은 작품이었다.

  아오에는 두 손으로 뒷목을 감싸고 노트북 화면을 응시했다.

 
 이건 어떻게 된 것인가. 단순한 우연일까. 나스노 고로와 미즈키 요시로의 접점은 찾아지지 않았지만, 이 아마카스 사이세이라는 인물을 매개로 두 사람 사이에 연결점이 생긴 셈이다.

  그래서 이 인물에 대해 좀 더 알아보기로 했다. 이번에도 위키 백과사전에 이름을 입력하고 엔터키를 눌렀다. 곧바로 아마카스 사이세이에 관한 내용이 떴다. 그 또한 미즈키 요시로 못지않게 경력이 화려했다. 30세에 비디오 영화로 감독 데뷔, 그 1년 뒤에는 극장용 장편영화로 진출했는데 그것이 갑작스럽게 해외 영화제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 뒤에도 히트작, 화제작을 차례차례 만들어내고, 36세 때에 「얼어붙은 입술」로 수많은 상을 수상했다. 대중성과 문학성을 겸비한 작품이 많아 일본 영화계의 미래를 짊어질 인물로 기대를 한 몸에 받았었다, 라고 실려 있었다.

  거기까지 읽은 참에 아오에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기대를 받았었다, 라는 과거형으로 되어 있는 걸 보면 그 기대가 어그러진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작품 목록을 보니 최근 10여 년 동안은 영화를 찍지 않은 모양이었다. 마지막으로 찍은 영화가 「폐허의 종」인 것이다.

 
 그런 생각을 더듬으며 아래쪽을 읽어 내려가다가 흠칫 놀랐다.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었다.

     

  47세 때, 자택에서 일어난 황화수소 사고로 인해 가족을 잃었다. 이 일의 충격으로 더 이상 영화에 대해서는 생각할 수 없게 된 듯하다(블로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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