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 11~12장

단차 | 2023.12.07 17:23:04 댓글: 0 조회: 161 추천: 1
분류교양서적 https://life.moyiza.kr/fiction/4526546
11 장

‘유’는 사람에게 이익을 주고, ‘무’는 쓰임새가 있게 한다




三十輻共一轂.


當其無, 有車之用.

埏埴以爲器.


當其無, 有器之用.


鑿戶牖以爲室.


當其無, 有室之用.


故有之以爲利, 無之以爲用.



서른 개의 바퀴살이 모여 하나의 수레살통을 이룬다.

수레살통에 빈 공간無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수레의 쓰임새가 있게 된다.

진흙을 빚어서 그릇이 만들어진다.

그릇에 빈 공간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그릇의 쓰임새가 있게 된다.

문과 창문을 뚫어 방이 만들어진다.

문과 창문 안에 빈 공간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방으로서의 쓰임새가 있게 된다.

그러므로 ‘유有’는 사람에게 이익을 주고, ‘무無’는 쓰임새가 있게 한다.

― 한자 풀이


轂 곡 ‘수레살통’을 뜻한다.

埏 연 “흙을 빚다.”로 해석한다.

埴 식 ‘진흙’을 가리킨다.



― 깊이 보기


도道란 유有와 무無의 통일체이다


사람들은 단지 눈에 보이는 실재의 사물에만 주목할 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사물에는 관심이 없다. 이 글은 ‘실재하는’ ‘유有’와 ‘보이지 않는 공허空虛’한 ‘무無’ 간의 관계를 분석하고 있다. 노자는 여기에서 세 가지 사례를 비유하여 ‘유’와 ‘무’가 사실은 상호 의존하며 상호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무’란 단지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을 뿐, 그 역할은 무궁무진하다. ‘유’가 그 쓰임이 있는 것은 바로 ‘무’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는 ‘유’보다 더 근본에 가깝다.

노자의 사상을 추상적이며 애매모호하다고 비판하는 경향도 있다. 그런데 노자는 이 글에서도 보듯이 바퀴살, 수레살통, 진흙, 그릇, 문, 방 등의 가장 구체적인 사물을 들어 추상적인 개념이나 이치를 쉽게 설명했다. 노자가 말하는 도道란 유有와 무無의 통일체이다. 수레살통의 무無, 빈 공간이 있으므로 비로소 수레의 쓰임새가 있게[有] 되고, 그릇의 무無, 빈 곳이 있기에 비로소 그릇이라는 기능이 생기게 된다. 즉, 유有와 무無의 변증법적 통일이 이뤄지는 것이다.


12 장

다섯 가지 색깔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한다




五色, 令人目盲.


五音, 令人耳聾.

五味, 令人口爽.


馳騁田獵令人心發狂, 難得之貨令人行妨.

是以聖人爲腹不爲目.


故去彼取此.



다섯 가지 색깔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한다.

다섯 가지 소리는 사람의 귀를 들리지 않게 한다.

다섯 가지 맛은 사람의 입맛을 상하게 한다.

왕과 제후가 말을 타고 사냥을 하는 것은 백성들의 마음을 미치게 만들고, 손에 넣기 어려운 재물은 사람들의 욕심을 불러일으켜 궤도를 벗어나게 만든다.

그러한 까닭에 성인은 소박한 삶을 영위할 뿐 외면적인 사치와 욕심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치와 물욕을 버리고 안빈낙도11의 삶을 취한다.


고거비취차


다섯 가지 색깔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한다.

다섯 가지 소리는 사람의 귀를 들리지 않게 한다.

다섯 가지 맛은 사람의 입맛을 상하게 한다.

왕과 제후가 말을 타고 사냥을 하는 것은 백성들의 마음을 미치게 만들고, 손에 넣기 어려운 재물은 사람들의 욕심을 불러일으켜 궤도를 벗어나게 만든다.

그러한 까닭에 성인은 소박한 삶을 영위할 뿐 외면적인 사치와 욕심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치와 물욕을 버리고 안빈낙도11의 삶을 취한다.


11안빈낙도安貧樂道: 가난한 생활을 하면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도를 즐겨 지키다.



― 한자 풀이


馳騁田獵 치빙전렵 ‘말을 타고 사냥하는 것’을 말한다. 당시 이러한 행위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왕과 제후밖에 없었다.

聖人爲腹不爲目 성인위복불위목 ‘복腹’은 ‘소박한 의식주를 해결할 정도의 생활’을 상징하고, ‘목目’은 ‘눈으로 보이는 외면적 사치와 욕심을 추구하는 생활’을 상징한다.



― 깊이 보기


정신문명의 핵심으로서의 도道

여기에서 오색五色이란 금은보화를 비롯하여 화려한 의복 그리고 대궐 같은 집 등 욕망을 상징하는 표현이다. 그리하여 이 글은 모름지기 그러한 욕망의 오색에 꿰어 수동적으로 끌려 다니는 삶을 영위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편 노자가 자연과 무위의 측면만을 과도하게 강조하면서 일체의 문화를 부정한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러나 노자가 수미일관 비판했던 것은 위정자들의 부패와 사치 그리고 외형적 자기과시와 위선으로 치닫는 학자들의 자세였다. 당시 통치자들의 부패와 사치는 극심했고, 학자들은 그것을 지적하고 그것의 개선을 위하여 노력하기는커녕 오히려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아부하고 그들의 수족이 되고자 수단방법을 서슴지 않았다. 그리하여 백성들의 고통은 갈수록 더욱 심화되었다. 노자는 이러한 과도한 사치와 인위적 행위들을 비판한 것이지 결코 문화 전체를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물질문명의 일방주의가 아닌 정신문명의 진정한 발전을 강조했고, 그 정신문명의 핵심이 바로 도道라는 사실을 알리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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