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제3부 11~12

나단비 | 2024.01.30 01:13:51 댓글: 0 조회: 113 추천: 1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44094
제11장



위컴은 그 대화에 불만이 없었기 때문에 그 일로 고민에 빠진다거나 엘리자베스를 자극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엘리자베스는 위컴을 이제 조용히 시킬 수 있다는 데 만족했다.

리디아가 떠나는 날이 곧 닥쳐왔고, 베넷 여사는 가족 모두가 뉴캐슬로 한번 가보자는 의견에 남편이 전혀 동의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최소한 열두 달은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 이별을 해야만 했다.

“오, 리디아, 우리가 언제 다시 만날 수 있는 거니?” 어머니가 울먹였다.

“어머나! 내가 어떻게 알겠어요. 2, 3년 안으론 못 만나겠죠.”

“편지는 자주 하렴.”

“최대한 자주 할게요. 그치만 결혼한 여자는 자주 편지할 시간이 없다는 걸 어머니는 알고 계시잖아요. 언니들이 나한테 자주 편지하면 될 거예요. 다른 할 일이 많진 않으니까.”

위컴의 작별 인사는 그의 아내의 작별 인사보다 더 다정다감하게 이루어졌다. 웃음을 머금고는 당당한 모습으로 여러 가지 좋은 말을 했다.그들이 집에서 나가자마자 베넷 여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저렇게 좋은 남자는 아직껏 보지 못했지. 저렇게 능글맞게 웃어가며 말하는 사람은 없을 거야. 저 사람이 정말 자랑스러워 보이지 않을 수가 없군. 윌리엄 루카스 경은 우리 사윗감한테 비하면 새 발의 피야.”
딸이 가버리자 베넷 여사는 며칠 동안 아주 따분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사람하고 헤어지는 것보다 더 나쁜 일은 없을 거야. 식구 하나가 없어지니 집 안이 얼마나 쓸쓸해 보이니.” 베넷 여사가 말했다.
“딸을 시집보내는 결과가 이런 거라고요. 그치만 아직 결혼 안 한 딸이 넷이나 있으니 안심이잖아요.”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그렇지 않아. 리디아는 결혼했다고 해서 날 떠날 애가 아냐. 남편 부대가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이렇게 된 거라고. 부대가 여기서 가깝기만 했다면 그처럼 빨리 떠날 필요가 없었을 텐데.”
그렇지만 리디아의 결혼이 가져다준 의기소침한 상태는 오래가지 않았으며, 베넷 여사의 마음은 새로 회자되기 시작한 소식 덕분에 희망으로 넘쳐나게 되었다. 네더필드 저택의 하녀가 자기 주인의 도착을 준비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 주인이 몇 주 동안 사냥을 하기 위해서 하루이틀 안에 그리로 온다는 것이었다. 이제 베넷 여사의 마음이 들뜨고 있었다. 그녀는 제인을 바라보고서 웃음을 짓다가는 머리를 흔들기도 했다. 그러고선 필립스 여사가 그 소식을 전해주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해댔다.
“그래, 그래, 동생, 빙리가 내려온단 말이지? 일이 잘 풀려가는군. 그치만 내가 거기에 관심 있는 건 아니지. 이제 그 사람은 우리한테 아무런 존재 가치가 없는 사람이고 그 사람을 다시 만나보고 싶지도 않아. 그치만 그 사람이 네더필드로 온다는데 누가 말릴 사람이 있겠어? 그리고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누가 알아? 하지만 우리하곤 끝났어. 그 사람에 관해서는 입을 열지 말자고 나랑 동생이 오래전에 약속했지? 근데 그 사람이 정말 오기는 오는 거야?”
“믿어도 돼, 언니. 그 집 가정부 니콜스가 어젯밤에 메리튼에 나타났는데 그 여자가 지나가는 걸 보고는 내가 밖으로 나가서 일부러 물어봤거든. 그 여자가 그 말이 진짜라고 그러더라고. 늦어도 목요일에는 오고 빠르면 수요일에 온다는 거야. 그 여자는 수요일에 쓰려고 정육점에 가서 좋은 오리고기를 여섯 마리 샀다고.”
제인은 빙리가 온다는 소식에 얼굴색이 달라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가 엘리자베스에게 빙리에 대해서 언급한 지는 이미 여러 달이 지나 있었다. 이제 두 사람이 단둘이 있게 되자 그녀가 이렇게 말했다.
“이모가 오늘 소식을 전해줄 때 내가 어떻게 나오는지를 보려고 네가 날 바라보는 걸 알았어. 내가 당황했던 건 사실이야. 그치만 내가 어리석어서 그랬다고는 생각지 말아줘. 내가 다른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는 생각에 일시적으로 얼굴빛이 달라진 거야. 그 소식을 들었다고 해서 내가 기쁘다거나 기분이 나쁘다거나 하진 않아. 다만 그 사람이 혼자 온다니 반가운 일이야. 왜냐면 그 사람을 우리가 볼 일이 줄어들 테니까. 난 내 자신에 대해선 두렵지 않지만 사람들이 이런저런 말을 할까 봐 두려워.”
엘리자베스는 그 사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몰랐다. 만약 더비셔에서 그녀가 빙리를 보지 않았더라면 그가 본래의 목적인 사냥을 하기 위해서 오는 거라 고 간주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녀는 빙리가 아직도 제인에게 애정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래서 그가 자기 친구의 동의하에 네더필드에 오는지, 아니면 친구의 허락도 없이 오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근데 그 사람이 그 집을 합법적으로 임대하고 있기는 한데 온갖 억측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 난 거기 상관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녀는 혼자 속으로 생각했다.
빙리가 오는 것에 대한 제인의 언급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것이 언니의 틀림없는 감정이라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엘리자베스는 제인이 흔들리는 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제인은 평소보다 더 혼란스러워 보였던 게다.
이제 열두 달 전에 부모 사이에서 오갔던 주제가 다시 들먹여지고 있었다.
“빙리가 오는 대로 당신은 거기로 가봐야죠?” 베넷 여사가 말했다.
“아니, 그렇게 하지 않을 거요. 당신은 작년에 내가 거기 방문하도록 강요했고, 만약에 그렇게 하기만 하면 그 사람이 우리 딸들 중에서 하나하고 결혼할 것이란 말을 했잖소. 근데 그 일은 이뤄지지 않았소. 이제 난 그런 바보 같은 짓은 다시 하지 않을 거요.”
그의 아내는 빙리가 네더필드로 오면 근처의 신사들이 그를 방문하는 게 당연히 필요한 일이 아니겠느냐는 말을 해댔다.
“난 그런 에티켓은 싫어하는 사람이오. 그 사람이 우리하고 가까이 지내기를 바란다면 그 사람보고 알아서 하라고 그래요. 그 사람은 우리가 어디 사는지 알고 있잖소. 난 이웃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갈 때나 올 때마다 쫓아다니면서 내 소중한 시간을 낭비해버리고 싶진 않소.”
“당신이 그 사람을 방문하지 않는 건 잘못이라고요. 그나저나 난 그 사람이 우리하고 함께 식사하는 걸 추진해야겠어요. 롱 여사하고 굴딩스네가 오면 우리 식구까지 해서 열세 명인데 그 사람 자리가 하나 남을 거예요.”
이렇게 결심을 하고 나니 자기 남편의 현명치 못한 처사에 더 잘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 만약 다른 사람들이 자기네들보다 먼저 빙리를 만나버린다면 분한 마음이 들 것이다. 빙리가 도착하는 날이 가까워지자 제인이 엘리자베스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난 그 사람이 오는 자체가 싫어지기 시작해. 아무 가치도 없는 일이 될 거야. 그 사람을 만나도 아무런 감정이 없을 거라고. 근데 그 사람에 대해서 끊임없이 이런 말 저런 말을 하는 게 견딜 수가 없어. 어머니 의도는 나쁜 게 아니지. 그치만 어머니가 그 사람 말을 해대면 내가 얼마나 고통을 받는지 어머니뿐 아니라 다른 누구도 모를 거야. 그 사람이 네더필드에서 완전히 떠나는 날이 내가 행복해지는 날이 될 거야.”
“언니를 위해서 무슨 말을 해줄 수가 있으면 좋을 텐데, 내 능력으로는 그게 안 돼. 언니도 그걸 알 수 있을 거야. 보통 사람들은 고통받는 사람에게 인내하라고 충고하겠지만, 나로선 그게 안 돼. 언니는 항상 그런 고통을 당해왔으니까.” 엘리자베스가 말해주었다.
빙리가 도착했다. 베넷 여사는 하인으로 하여금 알아보게 해서 그 소식을 가장 먼저 듣고자 했지만 그 때문에 걱정과 초조함의 시간만 늘어나게 되었다. 그녀는 이제 어느 때 초대장을 보내야 하는지를 계산하고 있었던 게다. 그 전에 그를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하트포드셔에 도착한 지 사흘째 되는 날 오전에 베넷 여사는 옷장이 있는 방에서 내다보다가 빙리가 방목장을 거쳐서 자기 집을 향해 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즉시 딸들을 불러서 즐거움을 함께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제인은 자기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어머니가 요청하는 대로 창문 옆으로 가서 밖을 내다보았는데, 다씨가 빙리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언니 옆에 앉아버렸다.
“어머니, 저 사람 옆에 또 한 사람이 있어요. 누굴까요?” 키티가 말했다.
“빙리가 아는 사람이겠지. 나로선 누군지 알 수가 없구나.”
“아! 빙리하고 같이 다니던 사람으로 보여요. 저 사람 이름이 뭐더라? 키 크고 거만한 사람 말이에요.” 키티가 말했다.
“오, 이런! 다씨로군! 틀림없어. 빙리 친구라면 누구나 환영인데, 그것만 아니라면 저 사람은 꼴도 보기 싫어.”
제인은 놀라움과 근심이 어린 표정으로 엘리자베스를 바라보았다. 제인은 더비셔에서 있었던 두 당사자 간의 만남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했기 때문에, 다씨가 자기를 변명하는 편지를 전해준 뒤에 처음으로 두 사람이 만났을 때 엘리자베스가 당황스러워질 상황에 대해서만 생각했던 것이다. 두 자매 모두 불안한 상태였다. 두 사람 모두 상대방을 염려해주었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물론 생각하고 있었다. 베넷 여사는 자기가 다씨를 싫어하지만 그 사람이 빙리의 친구이기 때문에 공손히 대해주겠다는 말을 해댔는데, 제인과 엘리자베스의 귀에는 그런 말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엘리자베스에게는 제인이 알 수 없는 불안함이 있었다. 가드너 여사의 편지 내용을 제인에게 말해줄 용기도 아직 없는 데다 다씨를 향한 자기 마음이 변한 점에 대해서도 말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제인에게 다씨는 자기 동생이 청혼을 거부하고 깎아내린 사람으로만 보일 것이다. 그렇지만 광범위한 정보를 갖고 있는 엘리자베스에게 다씨는 가족 모두가 거대한 빚을 지고 있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이제는 비록 옛적에 제인이 빙리에게 느끼는 애정만큼은 못하지만 관심을 갖고서 보게 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가 네더필드에 온 점, 그리고 자발적으로 다시 그녀를 보기 위해서 롱본에 온 점이 의외의 일이었고, 그녀가 더비셔에서 그의 변화된 태도를 처음으로 목격했던 때만큼이나 놀라운 일이었다.
그녀의 얼굴에서 사라졌던 광채가 강도를 더하며 30초 동안 다시 되돌아왔고, 그 사람의 애정과 소망이 아직도 흔들리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그동안에 들었기 때문에 기쁨의 빛이 그녀의 얼굴에 서려 있었다.
‘먼저 그 사람이 어떻게 나오는지를 봐야겠어. 그런 다음에 예상해도 충분할 거야.’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녀는 침착하려고 노력하면서 손에 든 일감에만 열중한 채 언니의 얼굴을 바라볼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하인이 문으로 다가갈 때에야 비로소 호기심으로 언니의 얼굴 표정을 보게 되었다. 제인의 얼굴색은 평소보다 더 창백해 보였지만 엘리자베스가 우려한 것보다는 침착한 모습이었다. 두 신사가 나타나자 제인의 얼굴색은 더 창백해졌지만 비교적 편안하게 그들을 맞이했으며, 노여움의 표정도 없이, 그리고 쓸데없는 상냥함도 보이지 않고서 맞이했다.
엘리자베스는 예의에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말을 아꼈으며, 자기 자리에 다시 앉아서 예전에 보이지 않던 부지런함으로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다씨를 힐끗 한번 바라다보았다. 그는 평소대로 심각한 표정이었다. 그녀가 펨벌리에서 본 표정보다는 하트포드셔에서 본 표정에 가깝다고 생각되었다. 그렇지만 엘리자베스의 어머니가 앞에 있기 때문에 전에 엘리자베스의 외숙이나 외숙모에게 보여줬던 표정을 짓지 않았을 것이다. 엘리자베스로서는 그런 추측을 할 수밖엔 없었다.
그녀는 다씨와 마찬가지로 빙리도 잠깐 동안 바라보았는데, 빙리는 아주 즐거우면서도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는 베넷 여사로부터 아주 반가운 대접을 받고 있었는데, 그래서 두 딸들은 부끄러워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특히 베넷 여사가 다씨에게는 냉랭하고 격식만 겨우 차리는 대접을 하는 것과 비교해보았을 때 더욱 그런 마음이 들었다.
엘리자베스는 다씨가 자신의 어머니가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딸을 회복하기 어려운 해악에 빠지는 것으로부터 구해주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처럼 어머니가 두 사람을 차별하는 점에 극도로 마음이 아프고 속이 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참 후에 다씨가 엘리자베스에게 가드너 부부의 안부를 물어보자 엘리자베스는 당황하면서 대답하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그 후로는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 곁에 앉아 있지 않았다. 그것이 그가 침묵을 지킨 이유일 수 있었다. 그렇지만 더비셔에서는 그렇지 않았었다. 거기서 그 사람은 엘리자베스와 말하지 않을 때는 엘리자베스의 일행에게라도 얘기를 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몇 분이 지나도 그의 말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서 어쩌다 한 번씩 바라보면 그 사람은 엘리자베스 자신이나 제인을 가끔씩 보다가는 그냥 방바닥만 보고 있는 때가 많았다. 지난번에 만났을 때보다 더 생각에 잠겨 있었고 남하고 즐겁게 어울릴 생각이 덜한 것이 명백해 보였다.
‘내가 상황이 변하기를 기대하고 있었다니! 근데 그렇다면 저 사람이 왜 여기 온 거지?’ 그녀는 혼자 생각했다.
엘리자베스는 다씨가 아닌 다른 사람하고는 대화를 나눌 기분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와 얘기를 나눌 용기가 나지 않는 것이었다. 다씨의 여동생에 대한 안부를 묻고 나서는 더 이상의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선생님이 가버린 뒤로 정말 시간이 많이 흘렀네요.” 베넷 여사가 말했다.
빙리는 그 말에 기꺼이 호응해주었다.
“난 선생님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봐 걱정했어요. 성 미카엘 축일 때 네더필드 저택을 영영 떠나버릴 거라는 말을 들었거든요. 난 그 말이 사실이 아니길 바라요. 선생님이 떠난 뒤로 여기서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어요. 샬럿 루카스가 결혼해서 자리를 잡았어요. 그리고 내 딸 중에서 하나도 결혼했고요. 그 소식을 들었을 거예요. 신문에서 보셨을 테니까요. 타임스와 쿠리어 신문에 나왔거든요. 알아야 할 게 다 나오지 않았지만요. 그냥 이렇게만 써놓았어요. ‘최근에 조지 위컴이 리디아 베넷과 결혼하다’라고요. 리디아 아버지나 리디아가 어디 사는지 등에 대해선 한 구절도 없었고요. 내 동생 가드너가 작성한 글인데, 어떻게 그처럼 일을 처리했는지 모르겠어요. 선생님은 그 신문을 보셨나요?”
빙리는 자기가 그 신문을 보았다면서 두 사람의 결혼을 축하한다는 말을 해주었다.
엘리자베스는 눈을 들 수도 없었다. 그래서 다씨가 어떤 표정이었는지 그녀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베넷 여사가 말을 이었다. “딸을 좋은 데로 시집보내는 건 즐거운 일이에요. 그치만 빙리 선생님, 딸을 먼 곳으로 보내니 속이 쓰리네요. 걔들이 북쪽에 있는 뉴캐슬로 가버렸는데, 얼마나 거기서 오래 머물지는 모르겠어요. 사위 부대가 거기 있어요. 그 전에 있던 부대에서 나와서 정규군으로 들어간 걸 알고 계실지 모르겠어요. 친구들이 좀 있어서 도와줘서 다행이에요. 그 사람 됨됨이로 봐선 친구가 그보다는 많아야겠죠.”
다씨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엘리자베스는 창피스러운 마음이 들어서 자리에 가만 앉아 있을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어떤 말이라도 해야만 했다. 그래서 빙리에게 시골에서 얼마나 머물 예정인지 물어보았다. 그는 몇 주일이 될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거기서 새 사냥을 다 하신 다음에는 여기로 오셔서 우리 구역에서 얼마든지 사냥하세요. 내 남편도 아주 기꺼이 동의할 테고 선생님을 위해서 가장 좋은 사냥감을 남겨줄 거예요.” 베넷 여사가 말했다.
어머니가 그러한 불필요한 관심을 보여주는 점이 엘리자베스로서는 점점 더 속이 상했다. 1년 전과 같은 기대감이 지금 다시 되살아난다고 하더라도 다시금 안 좋은 결말로 치달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설령 앞으로 몇 년 동안 행복한 나날이 이어진다고 하더라도 제인과 자신이 지금 견디고 있는 혼란스러움을 보상해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녀는 이렇게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지금 바라는 건 이분들 중의 어느 사람과도 같이 있지 않는 거야. 이 사람들하고 함께 있어봐야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 거라고. 제발 이 사람들을 다시는 보지 말았으면 좋겠어!’
그렇지만 몇 해의 행복한 세월로도 보상될 것 같지 않던 그녀의 비참한 마음은, 제인의 아름다움에 빙리가 다시 경탄하는 것을 봄으로써 어떤 구원을 받았다. 처음에 집 안으로 들어왔을 때는 빙리가 제인에게 거의 말을 하지 않았지만 조금씩 시간이 흐르면서 관심이 더해지는 것으로 보였다. 빙리는 제인을 작년과 동일하게 느꼈다. 그리고 그녀가 그 전보다 말을 많이 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성격이 좋고 꾸밈없는 마음인 점을 알게 되었다. 한편 제인은 자신이 그 전과 달라진 면이 없어 보이도록 애썼고 될 수 있으면 말을 많이 하려고도 노력했다. 그렇지만 마음속에 여러 가지 생각이 가득 차 있어서 자기가 언제 입을 열지 않고 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신사들이 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베넷 여사는 공손히 대접해야겠다는 생각을 잊지 않고 두 사람에게 며칠 내로 롱본에서 식사를 같이하자고 초대했다.
“빙리 선생님, 우리한테 방문을 한 번 빚지고 계세요. 지난겨울에 런던으로 떠날 때, 돌아오시는 대로 우리하고 식사를 같이하기로 약속하셨지요? 근데 돌아오시지도 않고 식사 약속도 지키지 않아서 내가 얼마나 실망했는지 몰라요.” 베넷 여사가 말했다.
빙리는 그러한 말에 약간 당황한 기색이었지만 어떤 일이 생겨서 그렇게 된 점에 대해서 사과한다는 말을 했다. 그런 다음에 그들은 떠났다.
베넷 여사는 그날 그들이 거기서 식사를 하고 갔으면 하고 내심 바라긴 했다. 그런데 그 식구들이 매일 좋은 식사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단 두 가지 코스로는 장래 사윗감으로 생각하는 사람의 마음을 채울 수 없는 데다 연 수입이 만 파운드나 되는 다씨에게도 어울리지 않을 것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제12장

그들이 떠나자마자 엘리자베스는 기분 전환을 하려고 밖으로 산책을 나갔다. 사실 자기 마음을 아프게 만드는 문제에 대해서 다른 사람의 간섭을 받지 않고서 생각하기 위함이었다. 다씨의 행동은 그녀를 놀라게 하기도 하고 화나게 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처럼 말도 안 하고 무뚝뚝한 표정을 지으면서 무관심하게 보이려면 왜 여기 온 거야?’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렇지만 어떤 속 시원한 대답도 얻을 수 없었다.

“런던에 있을 땐 외숙하고 외숙모한테 상냥하게 대해줬다는데, 왜 나한테는 그런 거야? 만약 나를 두려워한다면 왜 이리 온 거냐고? 그리고 날 더 이상 좋아하지 않는다면 왜 입을 다물고 있는 거지? 하여간 이상한 사람이야. 앞으로 그 사람 생각은 하지 말아야겠어.”

그녀의 결심은 제인이 다가오는 통에 잠시 동안 중단되었다. 언니의 얼굴빛이 밝은 것으로 보아서 언니가 엘리자베스보다 그 사람들의 방문에 대해서 더 만족해하는 것 같았다.

“첫 번째 만남이 끝나고 나니 내 마음이 더 편해졌어. 이제 그 사람이 와도 당황하지 않을 자신감이 생겼어. 화요일 날 그 사람이 여기 와서 식사하기로 했는데, 잘된 일이야. 우린 그때 서로에게 관심이 없는 평범한 사이로 만날 수 있겠지.” 제인이 말했다.

“그래, 아주 무관심한 사이로 만나야겠지?”라고 엘리자베스가 웃으면서 말해주었고 얼마 있다가 다시 이런 말을 했다.

“아, 언니, 조심하라고.”

“리지, 내가 지금 위험에 빠져 있을 정도로 약해 보인다고 생각진 않겠지?”

“내 생각에는 언니가 전처럼 그 사람을 다시 언니한테 빠지게 만들 위험이 아주 높아 보여.”

그들은 화요일이 되기까지는 그 신사들을 다시 만나지 않았다. 베넷 여사는 앞서 30분간 이루어진 방문 중에 유쾌한 기분의 빙리를 보고 이제 옛날에 꿈꾸던 그 행복한 설계를 다시 머릿속으로 그려보고 있었다.

화요일에 롱본에는 다시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그리고 베넷 집안의 식구들이 기다리던 두 신사는 사냥꾼으로서의 시간 엄수를 위해서 제때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들이 식당으로 들어섰을 때 엘리자베스는 빙리가 예전처럼 제인의 옆자리에 앉는지를 지켜보았다. 베넷 여사 역시 엘리자베스와 같은 생각을 했으므로 빙리를 자기 옆자리에 앉히려는 실수를 범하지 않기로 작정하고 있었다. 식당에 들어서자 빙리는 잠시 동안 망설였다. 그런데 제인이 우연히 자기 주위를 둘러보면서 미소를 짓는 모습을 보고 빙리는 제인의 옆자리에 앉았다.

엘리자베스는 태연한 표정으로 다씨를 바라보았는데 다씨 역시 무관심한 표정으로 엘리자베스의 눈길을 견뎌내고 있었다. 만약 빙리가 미소는 짓고 있지만 약간은 경계하는 표정으로 다씨를 바라보는 모습을 엘리자베스가 보지 못했다면, 빙리는 다씨가 자기에게 눈치를 주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라고 엘리자베스는 생각했다.

오찬 시간 동안에 빙리가 제인에게 보여준 관심은, 전보다는 더 조심스럽기는 했지만, 엘리자베스로 하여금 만약 빙리 혼자에게 맡겨둔다면 제인과 빙리의 행복은 신속하게 진행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엘리자베스가 그런 결과를 믿지는 않았지만, 빙리의 행동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어떤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엘리자베스 자신은 좋은 기분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모습을 보는 것이 즐거움이었던 게다. 다씨는 엘리자베스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앉아 있었다. 그는 베넷 여사의 한쪽 옆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상태가 다씨나 베넷 여사에게 별로 즐거움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엘리자베스는 알고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그 두 사람이 말하는 것을 들을 수는 없었지만, 두 사람이 서로 거의 말이 없으며 말을 하더라도 형식적인 몇 마디를 냉랭하게 주고받는다는 사실을 감지할 수 있었다. 어머니가 그처럼 불친절하게 보였기 때문에, 엘리자베스는 자기 가족이 다씨에게 신세 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안타까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자비로움에 대해서 자기 가족들이 알거나 느낄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지 감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엘리자베스는 이제 오후에는 자신과 다씨가 함께 있을 시간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보았다. 그냥 형식적인 인사만 하고서 아무런 의미 있는 대화도 이루어지지 않은 채 방문이 끝나버리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처럼 마음이 초조했기 때문에, 신사들이 나타나기 전에 그녀가 거실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고 따분하기만 했다. 그녀가 그날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은 그때뿐이라고 생각하고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이번에도 내 곁으로 오지 않는다면 이제 저 사람을 영영 포기해버릴 거야.’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신사들이 거실로 들어왔고, 이제 그녀는 다씨가 자신의 예상대로 행동할 의도를 가진 게 아닌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제인이 차를 따르고 엘리자베스가 커피를 따르는 테이블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기 때문에 엘리자베스의 주변에는 의자 하나 놓을 공간도 없었다. 그리고 신사들이 다가왔을 때 여자들 중의 하나가 엘리자베스에게로 더 가까이 다가와서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저 남자들이 우릴 갈라놓지 못하게 하자. 우린 남자들이 필요치 않잖아?”

다씨는 이제 거실의 다른 한쪽으로 가버렸다. 그녀는 그가 가는 쪽을 바라보았고, 그가 말을 거는 사람마다 부러워했으며, 신경질이 났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커피를 따라주는 것도 싫어졌다. 자기가 그처럼 어리석은 생각을 했다는 사실에 짜증이 났다.

‘내가 한 번 거절해버린 사람인데! 저 사람의 사랑을 다시 바란다는 게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이야! 같은 여자에게 두 번씩이나 청혼하는 그런 어리석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고. 그처럼 자존심 상하게 만들어버렸는데.’ 이렇게 속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다씨가 자기 커피잔을 갖고 다가오는 모습을 보고서 다소 힘을 얻었고 그 기회를 잡아서 이렇게 물어보았다.

“동생 분이 아직 펨벌리에 계세요?”

“예, 거기서 크리스마스 때까지 있을 거예요.” 다씨가 대답했다.

“혼자서요? 아는 사람들은 모두 떠났나요?”

“에임슬리 여사가 동생하고 함께 있어요. 다른 사람들은 스카보로로 떠난 지 3주 됐어요.”

그녀는 다른 어떤 할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다씨가 그녀에게 무슨 말이라도 해보기를 원했더라면 성공할 수 있었을 게다. 그런데 다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서 몇 분 동안 그녀 옆에 서 있다가는 어떤 여자가 엘리자베스에게 다시 말을 걸자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차 마시는 시간이 끝나고 카드 테이블이 차려지자 숙녀들은 모두 일어섰고 이제 엘리자베스는 다씨와 함께 어울리는 것을 기대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휘스트놀이에 사람 수가 부족하다는 베넷 여사의 말에 다씨가 그쪽으로 앉아버리자 그런 희망은 물거품이 돼버렸다. 이제 그녀는 즐거움에 대한 기대를 모두 잃어버렸다. 두 사람은 각각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었고, 엘리자베스는 다만 다씨가 가끔씩 자기가 있는 테이블로 눈길을 주는 통에 그도 엘리자베스 자신만큼이나 재미없는 시간을 보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 말고는 다른 것을 기대할 수 없었다.
베넷 여사는 네더필드의 신사들을 저녁 식사 때까지 붙잡아둘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들의 마차가 다른 손님들의 마차보다 먼저 와버렸기 때문에 그들을 묶어둘 방도가 없었다.

자기 가족들끼리만 남게 되었을 때 베넷 여사가 이렇게 말했다. “얘들아, 오늘 어땠지? 나로선 아주 잘 보낸 거 같은데 말야. 식사가 어느 때보다도 성공적이었어. 사슴고기도 요리가 잘됐고. 허릿살이 그처럼 풍부한 건 처음이라고 모두가 말하더라고. 수프도 우리가 지난주에 루카스네 집에서 먹은 것보다 훨씬 맛있었고, 메추라기는 다씨도 요리가 잘됐다고 칭찬을 하더군. 다씨네 집에선 프랑스 요리사가 두세 명은 될 텐데 말야. 그리고 제인, 넌 오늘처럼 예뻐 보인 때가 없었어. 내가 롱 아주머니한테 물어보니까 그 아줌마도 그렇게 말하더라. 그리고 또 무슨 말을 했는지 알아? ‘오, 베넷 여사! 이젠 네더필드 저택에서 제인을 볼 수 있겠군요.’ 이러더라고. 롱 아줌마는 정말 좋은 사람이야. 그리고 그 아줌마 조카들도 얼굴은 별로지만 성격은 그지없이 좋아.”
간단히 말해서 베넷 여사는 아주 기분이 좋았다. 빙리가 제인에게 어떻게 대하는지를 충분히 보았고, 이제 빙리를 사위로 맞을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된 것이다. 기분에 들뜬 나머지 자기 가족에 유리한 쪽으로 기대하는 것이 지나쳐서, 그 이튿날로 빙리가 다시 와서 청혼하지 않은 데 대해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제인은 엘리자베스에게 이런 말을 했다. “상당히 보람 있는 날이었어. 초대하는 손님들도 잘 선택했고 모두가 잘 어울렸어. 그런 모임이 자주 있었으면 좋겠는데.”

엘리자베스가 미소 지었다.

“리지, 넌 그러면 못써. 날 의심하면 안 된다고. 네가 그런 식으로 날 바라보면 기분이 나빠져. 난 이제 그 사람을 그냥 센스 있는 좋은 사람으로, 대화를 즐길 수 있는 사람으로 여길 뿐 그 이상의 바람은 없어. 그 사람이 내 애정을 얻을 의도는 없다는 게 난 만족스러워. 그 사람은 단지 다른 사람들보다 말을 상냥하고 유쾌하게 하는 데 소질이 있을 뿐이야.”

“언니는 너무 잔인해. 내가 웃지는 못하게 하면서도 시시때때로 웃지 않을 수 없게 만드니 말야.”

“남들을 믿게 하기가 이처럼 힘든 경우도 있나?”

“그게 아예 불가능한 경우도 있지.”

“넌 왜 내가 인정하는 이상의 감정을 갖게 하려고 날 설득하는 거니?”

“그건 내가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야. 우린 우리가 알아야 할 가치가 없는 것만 가르칠 수 있으면서도 모두가 상대방에게 무언가 가르쳐주기를 바란다고. 날 이해해줘. 그리고 언니가 빙리 씨에 대해서 무관심만 강조할 거라면 날 더 이상 언니 속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으로 생각지 말아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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