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2. 욕망

chillax | 2024.04.22 12:31:41 댓글: 0 조회: 224 추천: 1
분류교양서적 https://life.moyiza.kr/fiction/4563181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02

인간은 욕망하기 때문에

욕망할 이유를 찾는다

[욕망]




인간은 무수한 욕망의 덩어리다.”

인간은 생존에 필요한 식욕뿐만 아니라 수면욕과 성욕 등 기본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 견딜수 없는 고통을 느낀다. 그리고 이 기본적인 욕망을 넘어 자기실현이라는 고차적인 욕망도 갖고 있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이런 욕망이 신체와 분리될 수 없다고 했다. 눈은 보려고 하고, 귀는 들으려고 하고, 입은 먹으려고 한다. 이렇듯 신체는 인간의 욕망에 대응한다. 또한 다양한 욕망은 위계가 있다. 가장 낮은 단계의 욕망이 성욕이라면 가장 높은 단계의 욕마이 사유다.(사유: 思惟 대상을 두루 생각하는 일. 개념, 구성, 판단, 추리 따위를 행하는 인간의 이성 작용.) 욕망의 덩어리인 인간이 이 양극단의 욕망을 잘 통제하여 균형을 이루는 것이 행복에 이르는 길이다.

인간은 구체적으로 욕망한다

쇼펜하우어는 세계의 본질이 삶에의 의지이며 인간은 신체 내부적으로 그 의지를 알게 된다고 했다. 신체는 인간의 보이지 않는 욕마ㅏㅇ을 가장 객관적으로 드러낸다. 즉 삶의 의지를 신체를 통해 객관적으로 발현되고, 신체 한 부위 한 부위가 욕망의 주체다.

신체의 각 부분을 의지를 발현하는 주된 욕구와 완전히 상응해야 하며, 그런 욕구의 가시적 표현이어야 한다. 즉 치아, 목구멍, 장기는 객관화된 배고픔이고, 생식기는 객관화된 성적 욕망이며, 무건을 집는 손이나 재빠른 발은 그것들이 표현하는 이미 더 간접적인 의지의 노력에 상응(대응)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소화 기관이 먹기 위한 목적을 위해 존재한다고 봤다면 쇼펜하우어는 먹으려는 의지가 소화 기관을 만들었다고 봤다. 눈은 보고자 하는 의지가 발현된 것이므로 대상을 보려는 욕망이 생겨나는 것은 당연하며, 신체의 각 부분도 의지가 나타내는 욕구와 완전히 일치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모든 욕망은 신체의 기능과 같이한다.

이런 이유로 쇼펜하우어는 인간이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라 비이성적인 조재라는 점을 강조했다. 인간의 생각하는 능력은 신체의 일부분인 뇌의 기능에 따른 것이고, 인간의 정신이나 이성도 한낱 욕망의 도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욕망을 완전히 통제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욕망은 아무런 이유 없이 생각과 무관하게 생겨나는 경우가 많다. 욕망의 작용이 지성의 작용보다 먼저 일어나서다. 우리가 배고픔을 느끼는 이유는 맛있는 음식을 봤기 때문이 아니다. 먼저 배고픔을 느끼고 그 상태와 느낌을 충족할 대상을 찾는 것이다. 이렇듯 욕망은 외부 대상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생각과 관계없이 통제할 수 없는 욕망이 끊임없이 생겨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쇼펜하우어는 욕망과 지성의 관계에 대해 그 당시 헤겔 같은 관련론자들이 인간의 본질을 이성, 정신, 의식으로 규정한 것을 오류라며 비판했다. 대신 의식의 내면에는 무의식적 의지, 집요한 생명력, 욕구의 의지가 우세하게 작용한다고 주장했다.

비유하자면 절름발이(이성)’를 어깨에 메고 가는 힘센 장님(의지)’처럼 의지는 욕구할 이유를 찾아서 욕구하는 것이 아니다. 욕구하기 때문에 욕구할 대상을 찾는다. 욕망이 합리적으로 좋고 나쁨을 선택하는 생각에 앞서 있기 때문에 인간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다. 본능이 지성보다 훨씬 우월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욕망이 신체적이라는 점은 죽을 때까지 생존을 위한 욕망을 충족해야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욕망에는

선악이 없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인간의 욕구를 세 가지로 나눴다.


첫 번째
, 자연스럽고 꼭 필요한 욕구.

먹을 것과 입을 것에 대한 욕구다. 충족하기 쉽지만 충족되지 않으며 고통을 야기한다.


두 번째
, 자연스럽기는 하지만 꼭 필요하지는 않은 욕구.

성적 충족의 욕구다. 이 욕구는 첫 번째 욕구보다 충족하기가 좀 더 힘들다.


세 번째
, 자연스럽지도 않고 꼭 필요하지도 않은 욕구.

사치, 호사, 부귀영화에 대한 욕구다. 이 욕구는 끝이 없고 충족하기도 어렵다.

진화론에 따르면 인간의 욕망은 환경에 따라 바뀌없다. 동시에 인간은 구석기 시대부터 살아남기 위한 정보를 몸에 남겨 두었다. 먹고 마시고자하는 인간의 욕망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비만은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은 생각이고, 이와 별개로 지방은 생존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인간이 생존을 위협하는 추위와 배고픔을 극복하는 방법은 지방을 몸에 축적하는 것이었다. 또한 인간의 이성은 환경과 피드백을 하며 만들어졌다. 그래서 많은 기억과 상처가 인간의 DNA에 기록돼 있다. 뇌도 생존하기 위해 환경에 따라 발전했다. 즉 지능은 생존 도구로서 발전해 온 것이다.

이 과정에서 후손을 남기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진화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에 따르면 자신의 DNA를 이 세상에 남기는 행위는 인간의 가장 큰 열망이다.

이런 최근의 이론과 비교할 때 쇼펜하우어의 욕망의 철학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인간의 욕망과 지능은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업데이트해온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죽을 때까지 욕망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는 실제로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살고 있다. 직장에서 돈을 벌고 친구를 만나고 투자를 하는 이유도 기본적인 욕구를 채우기 위함이다. 이 욕망이 충족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고통을 느끼는데, 이것이 바로 인간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한다. 우리는 신체의 각 부분에 맞는 욕망이 적절히 충족됐을 때 만족할 수 있다. 죽음을 통해 신체를 완전히 떠날 때까지 우리는 의욕과 결핍의 고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인간의 욕망은 신체를 통해 삶에 대한 의지로 나타나다. 우리는 신체를 통해 삶에의 의지를 내부적으로 느낀다. 진화론과의 차이점이라면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욕망을 잘 다스려야 행복해진다는 입장이다. 특히 인간의 성욕을 지성으로 잘 제어할 때 맹목적인 삶의 의지에 휘둘리는 일이 없다고 한다. 의지의 외적인 자극에서 자유로워야만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욕망을 자각하지 않으면

고통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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