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전집4-태항산록-짓밟힌 정조

더좋은래일 | 2024.04.26 14:58:18 댓글: 0 조회: 106 추천: 4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64269


소설


짓밟힌 정조


1

인식이가 고중 3학년생이 되던 해 여름방학때의 일이다. 시내에서 10여리 떨어진 마을에 사는 고모를 보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소나기를 만났다. 옹이에 마디로 제몸에는 우비가 없고 근처에는 비 그을 곳이 없었다. 두주먹 불끈 쥐고 장달음을 놓는수 밖에 없었다.

<<비가 올 때는 뛰나 안 뛰나 비를 맞기는 매일반이다. 뛰는 놈이 멍텅구리다.>>

누가 하던 말이 언뜻 귀전을 스쳤으나 인식이는 늦추지 않고 그대로 달았다. 창살 같은 비줄기가 억수로 퍼붓는중에

<<여보세요, 여보세요!>>

곱고 애된 녀자의 목소리가 급히 부르는것 같았다. 피뜩 뒤돌아보니 나팔꽃모양의 비닐양산을 쓴 녀학생이다.

<<어서 들어오세요, 어서 이리 들어오세요!>>

몰골이 몹시 보기 딱한 모양이였다. 그러나 인식이는 공연히 주눅이 들어서

<<아니, 일 없습니다.>>

어망중에 이렇게 한마디를 훌 뿌리고 계속 줄달음질을 쳤다. 마치 자기는 이렇게 노박이로 비를 맞으며 뛰는것이 유일한 취미이고 또 최상의 쾌락이라는것을 그 녀학생에게 보여주기라도 하려는것처럼. 그러나 얼마 안되여 그는 자책이 울컥 치밀어올랐다.

(이런 멍청이 같으니!)

그러자 입밖으로 말이 새여나왔다.

<<같이 쓰구 오면 좀 좋아?>>

비는 어느새 그치고 해가 나왔다. 여전히 뜨거운 삼복의 여름해였다. 호졸곤한 옷에서 금시로 김이 나기 시작하였다. 자포자기한 기분이 되여 인식이는 물웅뎅이를 골라 디디지 않고 마구 철벅철벅 건느며 그 친절한 녀학생의 얼굴을 눈앞에 그려보았다. 그러나 고대 본 그 얼굴이 잘 떠올라주지를 않는다.

(이쁘긴 분명히 이쁘던데...)

하지만 그 이쁜 정도가 어느만큼인지... 서시(西施)급이던지 클레어파트라급이던지... 아니면?...

풋내기총각으로서는 무리도 아니였다. 제 가슴팍을 겨눈 총구앞에 서있는자가 그 총의 구경이 6.8밀리인지 7.9밀리인지 알게나 무어랄!

(그 처녀가 얼마나 무안했을가. <아니, 일 없습니다>는 다 뭐야. 체!)

그리하여 그는 속으로 단단히 결심을 다졌다.

(이번에 또 어디서 만나기만 하면... 용감히 나서서 말을 걸어 봐야지.)

그러나 여름이 다 가고 가을이 와도, 그 가을이 또 가고 겨울이 들이닥쳐도 그 녀학생은 다시 눈앞에 나타나주지를 않았다. 해가 바뀌여도 이따금 생각이 나다가 봄에 꽃들이 피기 시작할무렵에 와서는 잊어버리는줄도 모르게 아주 잊어버렸다.

인식이가 대학생이 되였다. 그런데 어찌 알았으리. 같은 교실안에서 그 소나기 퍼붓던 날 우산을 권하던 녀학생의 얼굴을 다시 보게 될줄을! 인식이는 잔뜩 벼르고있다가 하학을 하기가 바쁘게 얼른 그녀한테로 다가갔다.

<<오래간만입니다.>>

<<누구시던가요?>>

녀자는 좀 의아쩍은 눈으로 인식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전혀 기억이 없는 모양이다. 인식이는 게면쩍어서 귀밑이 화끈하였다. 하지만 형편이 그대로 물러서기도 어렵게 되였다.

<<저 지난해 여름... 소나기 쏟아질 때...>>

<<아, 네. 오래간만이예요!>>

비로소 알아보고 반가워하는 그녀의 이름은-나중에 알아보니-조봉숙이라고 하였다.

대학 3학년이 되였을 때 리인식이와 조봉숙이는 일생을 같이 지내기로 둘이서만 조용히 언약하였다.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귀결이였다. 둘이 배우는것은 일어였으니까 졸업을 하면 중학교의 일어교원이 아니면 려행사의 안내원으로 일하게 될것이였다. 그들의 눈앞에서는 황홀한 미래가 연분홍색안개속에서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하고있었다.

늦은봄의 일요일, 화창한 날씨였다. 두 사람은 시내 가까이에 있는 나직막한 산에 올라가 가는 봄을 즐기고 또 아끼기로 하였다. 그러나 슬프게도 두 사람의 춘홍은 무참히 깨여질 운명을 지니고있었다. 망나니 세놈이 슬슬 그들의 뒤를 따르고있었던것이다.


판결서(발취)

수범 XXX(남, 23세)는 공범자 XXX(남,22세), XXX(남,21세)를 데리고 의식적으로 뒤를 따르다가 으슥진 곳에 이르자 피해자 리XX(남,23세)와 조XX녀,22세)를 불러세워놓고 주먹을 내보이며 꼼짝 말라고 위협한 뒤 범행의 목적으로 미리 준비해 갖고 온 바줄로 리XX을 얽어서 나무에 동여매였다. 그런 연후에 그 보는 앞에서 반항하는 조XX을 세놈이 번갈아들며 야수적으로 륜간하였다.


이때부터 리인식, 조봉숙 두 남녀의 세계는 지옥 아닌 지옥으로 변하였다. 그윽한 꽃향기와 꾀꼬리 우는 소리속에 내리쪼이는 봄볕이 항시 따사롭기만 하던 <<무릉도원>>에서 까딱 발을 헛디디여 둘이서만 천길나락속으로 떨어져내려온것이 아닌가싶었다.

<<그런 비겁쟁이가 세상에 또 어디 있겠어!>>

<<누가 아니래.>>

<<세놈이 다 맨주먹이였다잖아?>>

<<그러게 말이지.>>

<<그런 주제에 련애는 다 뭐야!>>

<<흥!>>

<<그래 눈깔 펀히 뜨구 그걸 내려다보구 섰어? 체!>>

<<그런 개코망신을 하구두 낯짝을 들구 돌아다니니... 사람이 참...>>

<<차라리 송편으루 목을 따 죽지.>>

<<정말이야.>>

<<쉬, 온다!>>

<<오면 어때?>>

이런 소리가 귀속으로 흘러들어올적마다 인식이는 쥐구멍을 못 찾아 성화가 났었다. 태덩이처럼 대항 한번 변변히 못해보고 곱게 묶이운 자기를 동창생들이 그렇게 타박하고 비웃는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와는 반대로 봉숙이의 경우는-

동창생들이 무엇을 번화스레 지껄이다가도 자기가 방안에 들어서기만 하면 갑자기-록음테프가 툭 끊어진것처럼-잠잠해지군 하는것이였다. 그럴 때마다

(오, 또 내 말을 하더랬구나!)

(나는 인제 아주 돌려났구나!)

이런 자격지심이 온몸을 덮싸는것을 봉숙이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리하여 된서리 맞은 한포기와 꽃나무처럼 날로 달로 시들어만 갔다. 누가 위로를 해주는것도 다 귀찮았다. 그저 가만히 내버려두어주기만 바랐다.

(무슨 기적이 일어나서 세상사람이 다 갑자기 기억력을 상실한다면 얼마나 좋으랴.)

인식이와 봉숙이는 피차간 다 한교실에서 공부를 해야 하는것이 고된 운명으로 생각이 들어서 몹시 저주로왔다. 죽기만큼이나 싫었다. 서로 얼굴으 맞대지 않으려고 항시 마음을 써야 하였다. 애를 써야 하였다. 서로 얼굴을 마주칠가봐 겁을 내였다. 어떡허다 눈길이 마주치면 질겁을 하였다. 감전이라도 된것처럼 소스라쳤다.

졸업장을 타는 날까지 1년 하고 또 한달을-10년 맞잡이, 11년 만잡이로-질감스럽게 그들은 보내야 하였다.

인식이는 남자라서 그렇게까지 비장한 각오는 하지 않았으나 봉숙이는 일자리를 분배할 때 자원하여 누구나 다 가기 싫어하는 편벽한 곳을 골라서 중학교 일어교원으로 가게 되였다. 초야에 묻혀 초목과 더불어 썩기를 기하였던것이다. 인식이는 시내에 떨어져서 역시 일어교원이 되였는데 본인이 싫기도 하고 또 좋기도 하였다. 생활이 편리한 시내에 남게 된것은 좋았으나 아는 얼굴이 너무 많은것이 흠이였던것이다.

<<봐라, 저치다.>>

<<오, 그러냐.>>

하는 뒤손가락질이 무서웠던것이다.

열석달 동안의 고통스러운 생활, 늘 얼굴을 마주 대해야 되는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수백리 따로따로 떨어져서 서로 잊고 조용히 살수 있게 된것을 두 사람은 다 다행으로 여겼다. 지지눌리웠떤 어깨가 거뜬해지는것 같아서 안도의 숨이 다 후 나갔다.


2

봉숙이의 첫 부임길은 그리 순조롭지가 못하였다. 홍수에 다리가 끊어져서 뻐스가 직행을 못하고 건늘수 없는 다리 이편과 저편에서 이어달리기를 해야 하였다. 다리는 한창 복구작업을 하는중이였으므로 사람은 무릎을 지나오는 물속을 바지가랭이 둥둥 걷어올리고 건너야만 하였다. 봉숙이가 큰 가방 둘을 량손에 갈라들고 내가에 서서 아직 채 맑아지지 않은 내물을 망설이는 마음으로 가늠하고있을 때 한차에 앉아온 거머무트름한 젊은이 하나가 가까이 와서 무뚝뚝한 말씨로

<<그 가방 하나 이리 주시오.>>

하고 가방 들지 않은쪽 손을 내밀었다. 그가 든 가방은 크기는 해도 하나밖에 없었다.

<<아니, 일 없습니다.>>

<<비쌔지 말구 어서 이리 주시오. 기회라는 동물은 뒤통수에 털이 없다구요. 한번 놓치면 다시 못 붙든다구요. 괜히 후회하지 말구... 자 어서.>>

그 젊은이가 싱글벙글 웃으며 이렇게 말하는데 봉숙이는 겨우 차리려던 체면이 저도 모르게 무장해제를 당하였다.

<<고맙습니다. 그럼 좀 수고해주십시오.>>

<<진작 그럴게지.>>

봉숙이는 할수없이 웃었다. 좀 게면쩍은 웃음이였다. 사나이의 수수한 거동이 사교적례절을 무용지물로 만들고있다는것을 몸으로 느꼈다.

물을 건너서 마중나온 뻐스에 자리잡아앉은 수선이 끝난 뒤에 사나이가 비로소 물었다.

<<어디를 가십니까? 초행이지요?>>

봉숙이가 가는 곳을 말한즉

<<아, 그럼? ...일어선생? ...>>

하고 사나이는 흰자위 많은 눈을 크게 떴다.

<<아니 그걸... 어떻게 아세요?>>

<<들었습니다 교무주임선생님한테서. 나두 그 학교에서 력사를 맡구있는걸요.>>

<<그렇습니까, 그러세요?>>

<<나 문대성이라구 합니다.>>

새삼스럽게 뒤늦게 쑥스럽게 통성명을 하였다.

<<저 조봉숙이예요.>>

뻐스가 떠났다. 차차 속력을 내기 시작하였다. 차창밖에서는 여름풀, 여름곡식들이 아우성을 지르며 자라고있었다.

교무주임의 알선으로 봉숙이가 하숙을 잡은 뒤에 알아보니 력사를 맡고있다는 문대성도 하숙생활을 하고있는 총각선생이였다. 두 하숙집은 상거가 한마장 푼한데 봉숙이의 출근길은 그 총각선생이 들어있는 하숙집옆을 지나게 되여있었다. 어느 일요일날 아침의 일이다. 봉숙이가 일직을 서려고 학교를 나가는데 총각선생이 열려있는 방문으로 내다보고(울타리가 낮아서 지나다니는 사람이 어린아이나 난쟁이만 아니면 다 보였다.)

<<조선생, 조선생!>>

큰소리로 불렀다.

<<무슨 일이세요?>>

봉숙이가 발을 멈추고 울타리너머로 총각선생을 바라보았다.

<<잠간 들어와 이것 좀 도와주십시오.>>

<<무언데요?>>

<<넥타이, 넥타이!>>

봉숙이가 들어가보니 총각선생은 몸에 잘 어울리지 않는 세비로를 입고 거울을 들여다보며 넥타이를 매는데 그것이 제대로 매지지 않아서 매삼치는중이였다.

<<갑자기 웬 일이세요?>>

<<양복을 얻어입구 둘러리를 서러 가야겠는데... 글쎄 이놈의 넥타이가 생전 어디 말을 들어줘야 말이지요. 사람 애먹습니다. 조선생 좀 도와주십시오.>>

<<면도두 안하시구요?>>

<<오 참 그렇지, 이놈의 넥타이때문에 가장 중요한걸 잊었군. 넨장!>>

총각선생 문대성이 꾸밈없는 소박한 사람이라는것을 몇번 접촉해보는 동안에 봉숙이는 잘 알았다. 그러나 그저 그뿐이였다. 일생을 독신으로 살 각오를 한 봉숙이에게는 다 꿈에 본 돈이였다. 아무 소용 없는 일이였다. 봉숙이는 모든 잡념 다 떨어버리고 후대들 육성에 있는 정열을 다 기울이리라 마음 먹었다. 그리하여 첫 한 학기가 다 끝나기전에 벌써 좋은 평판이 조선생을 따라다녔다. 봉숙이는 사는 보람을 느꼈다. 번뇌를 날려버리니 마음도 편해졌다.

그러나 수백리 떨어진 곳에 있는 인식이는 그렇게 쉽사리 번뇌를 날려버리지 못하였다. 마음도 따라서 편할리 없었다. 인식이가 보내는 나날은 반성의 나날이고 자책의 나날이였다. 도덕적책임을 지지 않는 빚쟁이의 나날이였다..

인식이의 외삼촌은 명망있는 교육가였다.

<<그때 목숨을 걸구라두 보호를 했어야 할건데... 그렇게 못했거든. 기왕 그리된바에는 그 후과에 대해서나 철저히 책임을 져야 할것인데... 그것두 또 기피를 해? 그럼 그게 대관절 도덕적으루 어떻게 되니? 한번 잘 생각해봐라.>>

외삼촌이 이렇게 문제를 엄숙히 제기하는데 인식이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나무에 묶이워 서서 보아야 하였던, 바로 눈앞에서 벌어졌던 그 끔직스러운 광경이 자꾸 머리속에 생생히 떠올라서 인식이는 그 생각만 하면 진저리가 났다.

(그런 녀자를 내 안해로 맞아? 오오 안될 말!)

정말 도저히 안될 말이였다!

<<그건 부정이 아니거든. 행실이 부정한게 아니거든. 불가항력적인거거든. 어째, 그래두 맘이 돌아서잖니?>>

<<그렇지만 아저씨...>>

<<알만하다, 네 그 옹졸한 결백. 자사자리한 결백.>>

<<아저씨!>>

<<내 하나 이야기할게... 참고루 들어봐.>>


1936년, 영국 런던 버킹엄궁전에서는 국왕 에드워드8세를 둘러싸고 온 세상이 들썩들썩하는 대사건이 벌어졌다. 에드워드8세는 42살 먹은 총각국왕이였다. 왕후를 책봉하는 일이 나라의 대사로 되여있는 마당에 장가를 들어야 할 당자인 국왕이 딴전을 부린것이다. 리혼을 두번씩이나 한 과부-미국녀자 심프슨부인을 왕후로 맞겠다는것이다. 모후(母后)가 크게 놀라 아들-국왕을 불러들여 따지였다.

<<너두 우리 황실의 전례(典礼)를 모르지는 않을테지? 대영제국의 지존인 영국국왕이 왕후를 간택하는데 리혼을 두세번씩이나 한 평민의 과부를 골라? 더구나 리혼한 전남편들이 눈이 시퍼렇게 살구있어! 선박업자 심프슨, 그 심프슨이 살기 싫다구 내버린 녀자를 이 나라의 국왕인 네가 얼른 주어가져? 그래 영국국민이 그걸 받아들일줄 아느냐? 련합왕국의 존엄한 국회가 그런 모욕을 잠자쿠 받아들일줄 아느냐? 총리대신과 내각의 각료들은 다 입이 없는줄 아느냐? 이 큰 나라 수천만 인구의 숙덕이 어질구 자색이 아름다운 규수는 얼마든지 있을텐데 홰 하필이면 그런 부덕 없는 과부를 고른단 말이야? 리혼을 두번씩 세번씩 식은 죽 먹기루 하는... 네가 지금 정신이 온전하냐? 어디 말 좀 해봐라!>>

<<그렇지만 어머님, 저는 그 녀자가 꼭 맘에 드니 어떡헙니까? 숙덕이구 자색이구 지체구 문벌이구... 저는 다 귀찮습니다. 제 맘에 드는 녀자하구 같이 살겠다는데... 국법은 다 무어구 전례는 다 무업니까. 한 나라의 국왕이 고만한 자유두 없다면 그게 어디 말이 됩니까?>>

<<국왕의 체통두 돌보잖구... 네가 지금 열두살 먹은 아이냐? 되지두 않을 소리!>>

<<그래두 저는... 어머님 말씀을... 이것만은 순종할수가 없습니다!>>

어머니 왕태후와 아들 국왕 사이에 한창 설전이 불꽃을 튕기고있을 때 시종관이 황망히 들어와 아뢴다.

<<상원의장, 하원의장, 내각총리대신 그리구 대법원장이 알현을 청하오이다.>>

사태는 더없이 엄중해졌다. 원로대신들이 련합하여 결판을 내러 들어온것이다

두 의장, 한 원장에 수상, 왕태후까지 합세를 해놓으니 국왕 에드워드8세는 5대1의 렬세로 악전고투를 하지 않을수 없게 되였다.

<<여러분이 무어라구 해두 난 꼭 그 녀자를 왕후로 책봉할거니까 그리들 아시오.>>

<<부덕이 땅을 쓴 평민의 과부를 우리더러 국모(国母)루 모시란 말씀이오니까 전하? 황차 전남편이 두셋씩이나 살아있는데!>>

<<아니될 말씀이외다 전하! 존엄한 영국왕실에는 그런 전례가 력대전으루 없었소이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아니될 말씀이외다 전하!>>

<<국왕의 존엄을 돌보시와 그런 도리에 어긋난 타산은 얼른 도루 거두소서 전하!>>

<<련합왕국의 5천만 신민은 그런 목욕을 절대루 받아들일리 만무하온즉 전하께옵서 통찰하소서.>>

담벼락하고 맞서는거나 마찬가지였다. 당초에 어림도 없었다. 보수성이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의 하나인 영국이였다. 닭알로 돌을 치라지! 헌 과부를 주어다가 국모의 성스러운 자리에 올려앉히겟다구?

(저 국왕이 잠이 덜 깨서 잠꼬대를 하잖나?)

코웃음을 칠노릇이였다. 차라리 국왕을 정신병원에 갖다 가두면 가두었지 헌 과부를 국모로 모시지는 죽어두 않을 영국국회, 영국내각, 영국국민이였다.

로총각국왕 에드워드8세는 마침내

<<영국이냐, 심프슨이냐?>>

바꾸어말하면

<<국왕이냐? 과부냐?>>

하는 량자택일의 갈림길목에 서게 되였다.

전세계의 이목이 버킹엄궁전에 집중되는 가운데 국왕 에드워드8세가 마침내 마이크앞에 다가섰다. 다음 순간, 손에 땀을 쥐고 군침을 삼키며 기다리던 수천만 사람들의 귀청을 때린것은-

<<...퇴위를 선언한다...>>

미증유의 초특급해일이 섬나라 영국을 들이덮치기라도 한것처럼 도처에서 일대 소동이 일어났다...

왕위를 아우(현재의 영국녀왕 엘리자베스2세의 아버지)에게 물려주고 퇴위한 에드워드8세-원저공(公)은 그날 밤으로 영국을 떠나 프랑스로 건너갔다. 그는 심프슨부인과 결혼한 뒤 36년동안 영국땅을 밟지 않다가 1972년에 병이 중해지자 영국에 돌아와서 죽었다. 원저부인(즉 말썽거리의 심프슨부인)은 그 조카딸이 되는 엘리자베스2세가 버킹엄궁전에 데려가서 지금 거기서 조용히 여생을 보내고있다.


<<어떠냐 인식아, 나는 너더러 사랑을 위해서 나라르 버리라구 이런 이야기를 해들리는건 아니다. 알았니? 제국주의나라 국왕의 본을 따라구 이런 이야기를 해들리는게 아니란 말이다. <사랑이여/ 그대를 위해서라면/ 내 이 목숨마저 바치리/ 하지만 사랑이여/ 자유를 위해서라면/ 내 그대마저 바치리>... 웽그리아의 애국시인 뻬되피의 이 시... 너두 알구있겠지? 내 본의는 다만 녀자의 정조라는걸 어떻게 보겠는가, 어떻게 대하겠는가... 참고루 삼구... 한번 심사숙고해보란 뜻... 그것뿐이다. 알겠니?>>


3

교무실에서 선생들이 제각기 제 볼일을 보고있을 때 력사선생 문대성이 보던 책을 펼친채로 들고 일어나더니 어간에 늘어앉은 선생들을 서넛 지나서 일어선생 조봉숙에게로 다가왔다.

<<조선생, 오해하지 마십시오. 이건 조선생의 실력을 떠보는게 아니구 정말 몰라서 가르침을 받자는거니까... 그리 알구 좀 가르쳐주십시오.>>

이렇게 큰소리로 머리말부터 앞세우니 동료선생들이 듣고 모두 킥킥 웃었다.

<<이제 보니 문선생두 모르는게 있구먼!>>

<<그럼 나를 과학원 원장으루 알았어?>>

웃으며 한마디 만수받이한 뒤 문대성은 봉숙이 눈앞에다 들고온 책을 펼친채로 내려놓았다.

<<도무지 알수가 있어야지. 요거 말이요. 요거...>>

<<제가 뭘 알아야지요.>>

<<겸사는 생략하시구... 자.>>

봉숙이가 책뚜껑을 한번 번드쳐보니 그것은 미국학자가 지은 력사사전을 한문으로 번역출판한것이였다.

<<대관절 이 <애다파고호(埃多巴库呼)>란게 무슨 뜻입니까? 애급말인지 페르샤말인지... 나중엔 별눔의 글이 다 많지!>>

봉숙이가 문맥을 더듬어보니 그것은 일어를 영어로 음역한것을 다시 한어로 음역한것이였다.

<<이건 일본말을 한문자루 음역한거예요. <에도바꾸후(江户幕府)>란 말이예요. <에도>는 지금의 도꾜, <바꾸후>는 군정부.>>

<<야, 문선생이 월사금을 바칠 일이 났군!>>

<<아닌게아니라 월사금을 바쳐야겠는걸.>>

이렇게 지껄이며 문대성은 한손으로는 책을 집어들고 또 한손으로는 뒤통수를 긁직거리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럭저럭 날자가 지나서 첫눈이 내렸는데 희한하게도 첫눈이 라는게 무릎까지 빠지리만큼 무더기로 내렸었다. 꿩들이 먹이를 찾아서 분분히 인가근처로 날아내려왔다. 초겨울 눈란리속에 봉숙이 마음의 상처에도 딱지가 앉았다. 문대성은 노루가 눈에 빠져서 헤여나지 못한다고 굵직굵직한 학생아이 네댓과 함께 설피들을 차려신고 노루사냥을 떠났다. 눈우를 따라다니느데는 스키가 더 좋기는 좋겠지만 그럴 계제가 못되므로 손쉬운 설피로 만족들 한것이다. 전교 선생들중에 력사선생-문선생이 학생들에게 제일 인기가 있다는것은 자타가 다 인정하는바였다. 사람이 워낙 소탈하여 누구나 사귀기가 좋아서 아이들이 잘 따르는데다가 수업시간에 구수한 력사이야기를 재미나게 잘하는 까닭에 력사시간에는 하학종이 나도 아이들이 선생을 놓아주지 않고

<<조끔만 더, 조끔만 더.>>

시간을 끌기가 일쑤였다.

문대성은 아이들을 동독하여 데리고 떠나면서 적어도 서너마리는 꼭 잡아온다고 속으로 뼈물었다. 그러나 다 저녁때 사제 다섯 사람이 기진맥진하여 돌아온것을 보니 그리 크지도 못한 노루가 단 한마디도 못되고 겨우 한마리의 3분의 2정도였다. 저녁때 돌아오면 노루추렴을 하자고 미리 일러둔 까닭에 봉숙이도 문선생네 하숙집에 와서 에프론을 두르고 주인집을 도와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있었다.

<<아니 이게 웬 일이세요! 노루가 겨우?...>>

봉숙이가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문대성을 바라보니 노루 쫓기에 너무 지쳐서 떠날 때보다 열살이나 겉늙어보이는 문대성은 크게 바라고 정식으로 에프론까지 두른 녀선생을 대할 면목이 없는 모양으로

<<생각밖에 그놈의 노루들이... 거참...>>

구렝이 담 넘어가는 소리를 얼버무렸다. 옆에 섰던 제일 어려보이는, 그러나 제일 똑똑해보이는 학생아이가 한발자국 앞으로 나서서 말곁을 달아 선생을 거들어주었다.

<<노루는 한마리두 못 잡았어요. 그놈들이 어찌나 빠른지... 저건 승냥이가 뜯어먹는걸 빼앗아온거예요. 승냥이를 쫓아버리구...>>

이 말을 듣고 아이들이 모두 킥킥 웃으니 문선생도 할수없이 허허 따라웃었다. 봉숙이는 그 불행한 사고가 있은지 1년 반만에 이날 처음으로

<<오호호호!...>>

속에서 우려나오는 명랑한 웃음을 웃어보았다.

<<아이 선생님두 참!... 오호호호!...>>

승냥이아가리에 든 밥을 빼앗은것이기는 해도 이날 밤 노루추렴은 여간 유쾌하지가 않았다.

<<그놈의 승냥이 약이 올랐을거야.>>

<<아쉬워서 자꾸 뒤를 돌아보잖던.>>

<<발이 차마 안 떨어졌을게야.>>

<<이를 갈았을게다 분해서...>>

이런 웃음의 소리속에 강권에 못이겨 봉숙이도 포도주 두잔을 받아마시고 멀굴이 온통 발개졌다.

밤늦게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워서 봉숙이는 혼자 미소를 머금었다.

(문선생이 영웅인물은 아니야. 그렇지만 질박한 넋을 지닌 사람... 정직한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어.)

문대성이 현교육과에 볼일이 있어 올라갔다가 교육국내에서 내려온 옛친구-동창생 하나를 만나서 둘이 함께 식당에 가 점심을 먹었다.

<<너네 학교에 녀선생 하나가 갔지?>>

<<어느? ...>>

<<일어선생 말이야.>>

<<아, 왔어.>>

<<조... 뭐라더라?>>

<<봉숙... 조봉숙.>>

<<응 그래 조봉숙. 그 녀자 래력 너 아니?>>

(무슨 래력인데?)

하는 눈치로 문대성은 그 친구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너 정말 모르니?>>

문대성이 정말 모른다는 뜻으로 고개를 가로 흔들었다.

<<네가 아직두 총각위원회 성원이니까 내 말해주는거다. 어디가 말 내지 말아 괜히. -너 혼자 참고루만 삼으란 말이야.>>

이와 같이 허두를 떼여놓고 그 친구는 귀속말로 소곤소곤 조봉숙의 그 사건을 죄다 이야기해 들려주었다.

문대성은 씁씁한 얼굴로 친구의 이야기를 끝까지 다 들었다. 그러나 아무러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러한 의사표시도 하지 않았다. 검다 희다 말이 없었다. 친구는 주먹으로 봄바람을 친것 같아서 좀 맥살이 나는 모양이였다. 기대가 어그러진것이다. 그는 문대성이 의례 눈을 번득이며

<<응 그래? 그런 일이 있었니?...>>

하고 대단히 흥미를 가질줄 알았던것이다.

<<말귀때기에다 대구 념불을 하잖았니 내가?>>

하고 그는 문대성의 어깨를 한번 탁 치고 웃으며 일어났다.

<<언제 떠나니?>>

문대성도 따라 일어났다.

<<래일새벽... 첫차루.>>

<<꽤 바쁜 모양이구나?>>

<<그럼 안 바빠? 인제 과장나리신데!>>

<<이 자식!>>

두 친구는 서로 웃고 손을 나누었다.

이무렵 리인식이는 외삼촌과 단둘이 마주앉아 끝나지 않은 사연을 잇고있었다.

<<어떠냐. 그동안 좀 생각해봤니?>>

<<글쎄요.>>

<<아직두 해탈을 못한 모양이구나? 낡은 관념에서...>>

인식이는 말없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좋다 그럼. 내 또 하나 책에서 본 이야기를 할게 들어봐라. 소귀에 경읽기가 되겠는지는 모르겠다만.>>

인식이는 얼굴을 들고 외삼촌의 입을 바라보았다.


1702년, 로씨야군대와 스웨리예군대가 네바강을 사이에 두고 일대 격전을 벌린 끝에 사상자를 숱하게 내기는 하였으나 결국 로씨야군대가 승리하였다. 당시의 짜리는 저 유명한 뾰뜨르대제였고 그리고 전역을 지휘한것은 년로한 대원수 히리미티예브였다. 그 전역에서 사로잡은 숱한 스웨리예포로들가운데는 그냥 백성도 있고 또 적잖은 수의 녀자도 있었다. 그중의 한 젊은 녀자를 룡기병 소대장 디밍소위가 점유하였다. 디밍은 치중마차밑에다 짚부스레기를 깔고 그 녀자를 앉혀놓았다. 그리고 제 어지러운 외투를 벗어서 그 오돌오돌 떨고있는 녀자에게 덮씨워주었다. 그러나 결국 그 녀자는 어수선한 전장을 순시하던 히리미티예브대원수의 눈에 띄운다. 가련한 녀자의 아름다운 용모에 늙은 마음이 크게 뒤흔들린 대원수는 오매불망 그 녀자포로를 잊을수 없어서... 렴치를 무릅쓰고 부관을 불렀다.

<<가 데려오게... 룡기병 소대장 디밍이라던가. 그자한테 가서... 데려오게. 치중마차밑에다 숨겨놓은 그 계집을... 데려오란 말일세. 그 무지막지한 녀석들 손에서 연약한 계집이 죽기라두 하면 가엾잖은가. 옜네, 이 한루블... 내가 보내더라구 가 말하게. 알겠나?>>

<<틀림없이 명령을 집행하겠습니다 대원수각하!>>

부관은 득돌같이 달려나가 명령을 집행하였다. 불과 반시간후에 그 불쌍한 녀자는 부관을 따라 히리미티예브대원수의 거실에 들어와 꿇어앉아서 머리를 조아렸다. 녀자의 헝클어진 머리에는 지푸래기가 달라붙어있었다. 부관은 한번 싱긋 웃고 슬그머니 물러났다. 히리미트예브는 황홀한 눈으로 그 어여쁘기짝이 없는 녀자를 이모저모로 뜯어보다가 독일말로 물었다.

<<네 이름은?>>

녀자는 가볍게 한숨을 한번 짓고나서 은방울 같은 목소리로 대답을 올렸다.

<<에리나 까또리나라구 해요. 사령관님.>>

<<까또리나, 음 그 이름 참 좋구나. 그래 너의 아버지는?>>

<<저는 고아예요. 부모가 없에요. 목사님댁에서 안잠자기를 했에요. 식모살이를 했에요.>>

<<안잠자기? 거 마침 잘됐다. 그래 너 빨래랑 다릴줄 아니?>>

<<그러면이요. 집안살림은 무어나 다 막히는게 없에요. 애기두 볼줄 아는걸요.>>

<<오. 그래? 내가 마침 그런 안잠지기를 하나 구하는중이다 지금. 그런데 너 아직... 결혼은 안했겠지?>>

까또리나는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고 고개를 더욱더 깊이 수그렸다.

<<바루 요 한주일전에... 시집을 갔에요.>>

<<응! 누구한테?>>

<<죤 라이비라는-스웨리예의 장갑기병한테요.>>

<<그 죤 라이비가... 지금 어디 있니?>>

<<도망쳤네요. 라도가호를 헤염쳐 건너가는걸... 제 이 눈으로 봤에요. 사령관님.>>

<<일 없다, 까또리나. 너 아직 새파랗게 젊은데... 또 하나 얻으면되지. 그래 너 배는 고피지 않으냐?>>

<<왜 안 고프겠에요. 사령관님. 배가 고파 곧 죽을 지경인걸요.>>

<<오 그럼, 우선 요기부터 해야기. -게 누구 없느냐?>>

이리하여 스웨리예 장갑기병 죤 라이비의 갓 혼인한 안해 에리나 까또리나는 일단 로씨야 룡기병 소대장 디밍의 소유물로 되였다가 거기서 다시 높직이 뛰여올라 히리미티예브대원수의 하녀겸 애첩으로 되였다. 그러나 거기가 근의 종점은 아니였다. 주책없는 늙은이-대원수가 너무 좋은김에 멘쉬꼬브를 보고 자랑을 한데서 일이 잘못된것이다. 멘쉬꼬브는 뾰뜨르의 가장 신임하는 시종으로서 군함은 소장에 불과하였으나 세력이 충전하여 아무도 감히 맞서지를 못하는 형편이였다.

<<한루블을 주구 룡기병한테서 사왔는데... 기가 딱 막히다니까... 인제 만루블에 누가 팔래두 난 안 팔아, 안 팔잖구! 활발하구 유쾌하구... 글쎄 곧 불덩이라니까, 불덩이! 그런 기집은 천명 가운데서 하나를 고르재두 아마 좀 어려울걸!>>

늙은이의 자랑바람에 구미가 크게 동한 멘쉬꼬브가 이튿날 히리미티예브 그 저택으로 찾아갔다. 술들이 거나해진 뒤에 멘쉬꼬브가 청하였다.

<<어디 한번 좀 구경이나 합시다.>>

<<지금 집에 없어. 어디 볼일 보러 나가구... 집에 없다니까.>>

<<정말 이러기요? 괜히 그러지 말구... 썩 불러내우! 아 좀 보기만 하잖데두 그러우? 그 령감 거참!>>

주책없이 자랑을 한 죄로 늙은이는 아무도 보이고싶지 않은 사랑하는 까또리나를 불러내오지 않을수 없게 되였다. 멘쉬꼬브는 히리미티예브보다 나이가 근 30살이나 아래다. 앞으로 나와서 한무릎 꿇어 절하고 술을 따라올리는 까또리나를 젊은 멘쉬꼬브는 넋놓고 바라보다가 옛날의 례법이라고 하면서-녀자의 입을 한번 쪽 맞추었다. 히리미티예브는 골이 잔뜩 나서 도끼눈을 하고 멘쉬꼬브를 노려보았으나 어찌하랴!

<<령감, 저 녀자를 내게 양도하시오. 우리 집을 송두리채 달라셔두 내 다 내주리다. 내 마지막 속옷까지두 벗어내라면 내 다 벗어주리오리다. 령감이 저런 녀자를 어떻게 거느린다구 그러시우? 그 년세에... 되지두 않을 소리! 더구나 령감은 처자가 있지 않으시우. 처자식 보기가 미안한 일을 구태여 하실건 뭐요. 그러구 만약 이 소문이 페하께 청문이라두 되는 날이면... 불벼락이 떨어질걸 왜 모르신단 말씀이요.>>

이러한 얼렁수를 써서 멘쉬꼬브는 종내 그 녀자를 빼앗아가고야말았다. 히리미티예브가 눈물코물을 흘리며 비탄에 잠긴것은 더말할것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멘쉬꼬브의 화려한 저택도 종착역은 아니였다. 에리나 까도리나를 또 하나의 운명이 기다리고있는것이다. 종착역까지는 한 정거장을 더 가야 하였던것이다. 빼앗아온 녀자에게 홀딱 반한 나머지에 멘쉬꼬브가 아차실수로 히리미티예브의 복철을 밟은것이다. 짜리 뾰뜨르가 듣는데서 새로 얻은 종첩-까또리나의 자랑을 늘어놓았던것이다.

어느 눈보라가 기승을 부리는 밤에 짜리 뾰뜨르의 로부(卤簿)가 멘쉬꼬브네 집에 들아닥쳤다. 뾰뜨르는 객실에서 멘쉬꼬브와 마주앉아 술을 마시고 또 담배를 피우다가 문득 생각난것처럼 입을 열었다.

<<네 그 까도리나를 좀 불러라. 어디 보자... 어떤가?>>

<<부끄럼을 너무 타서... 나오지를 못합니다 페하. 귀밑머리 풀어준 남편처럼 저를 섬기는걸요. 내외가 뭐 여간 심하지 않답니다.>>

<<그럴것 같으면 어째 정식으로 결혼할 생각을 안하느냐?>>

<<하지만... 그게 어디 될 일입니까 페하?>>

<<어째서?>>

<<포로해온 계집종하구 어떻게 그럴수가 있습니까? 그런걸 정실루 들여앉혔다간... 제 꼴이 뭐가 되겠습니까. 그런 개코망신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제야 의당 왕족이나 귀족하구 혼인을 해얍지요, 버젓하게... 그래야 제 미천한 근본두 좀 가리워지지 않겠습니까.>>

멘쉬꼬브는 본래 만두를 목판에 담아메고 온 거리를 팔러 다니던 아이였다. 그런것을 어린 놈이 소명하다고 뾰뜨르가 주어다 길러내였었다.

<<응 그래. 그래서 정식으루 혼인을 할수 없단 말이구나.>>

<<그러면입쇼.>>

창밖에서는 눈보라가 점점 더 기승을 부리는듯 집이 다 울리였다. 멘쉬꼬브가 어두운 창밖을 한번 가 내다보고 제자리에 돌아와 앉으며 혼자말로 지껄였다.

<<눈보라가 심하긴 해두... 페하께서 환궁하시는데는 별 지장이 없을겁니다.>>

<<환궁? 누가 돌아간다더냐? 잔말 말구 냉큼 가서 데려오기나 해... 까또리나. 말은 네가 먼저 냈어, 내가 낸게 아니야!>>

멘쉬꼬브의 얼굴은 백지장같이 해쓱해졌다.

(사랑하는 까도리나!)

그러나 짜리의 어명이 일단 떨어진 이상 아니 데려오지는 못하였다. 이윽고 멘쉬꼬브를 따라들어온 까또리나의 큰절을 받은 뾰뜨르는 한동안 유심히 그 아래우를 훑어보다가

<<거기 앉거라, 까또리나.>>

우악(优渥)하게 자리를 주었다. 이어 뾰뜨르는 이것저것 말을 둘어보았다. 까또리나가 서투른 로씨야말로 대답하는것을 듣다가 뾰뜨르는 기분이 좋아서 오래간만에-실로 오래간만에-통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뾰뜨르는 어떤 녀자와의 문제가 뜻 같지 못하여 심히 불통쾌한 나날을 보내고있던중이였다.

멘쉬꼬브가 앞으로 나와서 술 석잔을 따랐다. 한잔을 뾰뜨르앞에 또 한잔을 까또리나앞에 놓았다. 그리고 서번째 잔을 제가 들었다. 세 사람은 일시에 잔들을 말리였다.

이윽고 뾰뜨르가 기지개를 한번 켜고나서 까또리나에게 분부하였다.

<<아이 고단하다. 까또리나, 네가 촉대를 들구 안내해라. 침실이 어디냐?>>

이리하여 포로되여온 녀종 에리나 까또리나는 마침내 짜리 뾰뜨르의 건즐(巾栉)을 받들게 되였다.

후에 뾰뜨르는 까또리나를 정식으로 황후로 삼았다. 뾰뜨르가 붕어한 뒤에 에리나 까또리나는 로씨야 력사상 파천황 처음으로 녀황이 되였다. 예까쩨리나1세가 곧 그녀인데 등극하는 해 그녀의 나이 마흔한살이였다.


<<이상으루 내 이야기는 끝났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건 너더러 남의 녀자를 빼앗으라구 하는게 아니다. 그런 비도덕적행위는 우리 사회주의사회에서는 절대루 용인되지 않는다. 내가 말하려는것은 녀자의 정조란걸 어떻게 리해하느냐 하는거다. 사회주의시대에 사는 우리가 봉건제왕보다두 더옹졸한 정조관을 갖구 있다면... 이게 그래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구 무어냐. 부정한 행실이란 배우자가 있는 녀자가 배신적으루 딴짓을 하는걸 말하는게야. 알았니? 잘 생각해봐. 넌 지금 도덕적으루 빚을 지구있어.>>

인식이는 팔짱을 지르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나 간다.>>

한마디를 던지고 외삼촌이 일어나 나가는데도 인식이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괴괴한방안에서는 탁상시계 가는 소리만 유난히 높아가는것 같았다.


4

교무주임이 워낙 남의 일에 발벗고 나서기를 좋아하는 호호인이라 또 일거리 하나를 만들어가지고-과거보러 가다가 홍합을 꺼내본 선비처럼-혼자 싱글벙글하였다. 총각선생과 처녀선생을 짝을 지어주려고 자진하여 중매군노릇을 담당해나섰는데

<<두고보지 내 솜씨가 어떠만한가.>>

자신이 있었던것이다.

<<중매는 잘하면 술이 석잔이구 못하면 뺨이 세개라는데... 당신은 그저 밤낮!>>

안해의 잔소리하는 입을 그는

<<여보, 암탉이 울어서 잘되는 집안... 당신 언제 보았소? 하필이면 강청이를 본받을게 무어요!>>

엉너리를 쳐서 틀어막고 력사선생 문대성의 그 하숙집으로 찾아갔다.

<<여보 문선생, 언제까지나 이렇게 홑껍데기루 살 작정이요?>>

<<무슨 좋은 수라두 있습니까?>>

<<암 있다마다! 내가 그래 아무 구멍수두 없이 이렇게 말을 건넬 사람인가.>>

<<그거 참 듣던중 반가운 소립니다.>>

<<이봐요 문선생.>>

하고 교무주임은-아무도 엿듣는 사람이 없는데도-입을 총각선생의 귀에 가까이 갖다대고

<<새로 온 녀선생... 조선생... 어때?>>

귀속말로 소곤거리고 의미있게 눈을 슴벅였다. 문대성은 별반 갑작스럽다는 기색도 없이 고개를 비틀고 한동안 생각해보더니 교무주임을 쳐다보지 않고 혼자말처럼 지껄이는것이였다.

<<글세요, 저쪽에서 어떨는지요. 이쪽에선 별다른 의견이 없지만서두...>>

(일이 이렇게 수월스러울수가 있나!)

아주 거저 먹기 흥정이였다.

<<념려 말아, 념려 말아. 그걸랑 조금두 념려 말라니까.>>

교무주임은 일이 예상외로 순리로운데 사기가 올라서 제 가슴을 탁탁 쳐보였다. 마치 그 가슴속에 제갈량의 <<금낭묘계>>가 들어있기라도 한것처럼.

녀선생은 남녀학생 네댓을 데리고 좁은 방에 비좁게 둘러앉아 록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일본말에 귀들을 기울이느라고 방문밖에서 교무주임이 일부러 내는 기침소리도 듣지를 못하였다.

<<...창밖에서 봄비가 소리없이 내립니다. 길건너 빌딩앞에는 승용차들이 숱하게 멎어서있습니다. ...>>

<<아하 과외수업이 한창이구먼. 조선생. 그럼 내 좀 있다 다시 오지.>>

<<아니, 비좁지만 선생님... 어서 이리 들어오세요.>>

<<그럼 선생님, 우리 이만 돌아가보겠습니다.>>

<<그래그래...>>

<<선생님, 안녕히 주무십시오.>>

<<안녕히 주무십시오.>>

<<잘들 가요.>>

학생들이 부지런히 일어나 나간 뒤에 녀선생이 록음기를 끄고 자기앞에 와 모꺾어 앉기를 기다려서 교무주임은 가치담배 한대를 붙여물고 천천히 말을 꺼내였다.

<<...내가 두구 지내봐서 잘 알지만... 전도가 유망한 청년이지. 소탈하구 듬직하구... 미더운 사람이라니까. 어떻소, 조선생? 저편에선-내 벌써 타진을 하구 왔는데-yes요 yes. -설마한들 처녀선생이 이 추운 밤에 나를 헛걸음시키진 않겠지?>>

고개 푹 수그린 처녀선생의 얼굴에 피가 올리밀리는것을 관찰력이 좀 무딘편인 교무주임은 례사롭게 보았다.

(안 저러면 도리여 괴변이지... 처녀가!)

20세기의 <<정조대>>를 차고있는 봉숙이는 속내 모르는 교무주임선생의 호의가 거북하고 민망하고 속절없었다. 11세기말에 십자군 기사들은 아시아로 원정할 때, 그 안해가 남편이 없는 동안 정조를 단단히 지키라고, 쇠로 만든 정조대를 그 음부에 채워주고 그리고 열쇠는 자기가 갖고 떠나갔었다. 그러나 봉숙이가 차고있는것은 무형의 정조대, 관념적인 정조대, 전통적편건의 정조대였다. 하지만 결과로 보아서는 900년전의 그 쇠로 만든 정조대나 별반 다를것이 없는 정조재였다. 숱한 십자군 기사들은 전장에서 열쇠를 품에 지닌채 죽어갔다.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뒤에 남은 안해들은 죽을 때까지 그 쇠로 만든, 열쇠 없어진 정조대를 차고 살아야 하였다. 봉숙이도 지금 그 꼴이였다.

<<아, 눈언저리에 잔주름살이 가기 시작한 로처녀가 부끄럼을 탈건 뭐야, 햇내기처럼. yes면 yes구 no면 no구... 통쾌하게 태도표시를 할게지!>>

재촉을 받고 로처녀가 겨우 얼굴을 들기는 들었으나 교무주임을 바로 보지는 못하고 겨우 알아들을만한 목소리로 대답을 올렸다.

<<선생님께서 근념해주시는건 감사합니다만... 전 아직 그럴 생각이 없에요.>>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처녀루 늙겠단 말인가? 당찮은 소리!>>

<<후대를 육성하는 사업에 좀더 전심하구싶어서요.>>

<<별소릴 다하는군. 결혼을 하면 남편이 일하는걸 방해할가봐? 내가 보증하지, 문선생은 그런 사람이 아니야. 절대루!>>

<<아니 그런게 아니라...>>

<<그럼? 혹시 어디 정해놓은 자리라두? ...>>

<<아니예요 아니예요, 그런건 없에요.>>

로처녀가 황망히 부정하는것을 모고 교무주임은 다시 마음을 놓았다.

<<조선생, 인제 밤두 늦었는데... 우리 말씨름 좀 고만합시다. 즉석에서 결정짓기가 무엇하거든... 시간적여유를 둡시다그려. 며칠후에 우리 한번 조용히 다시 만납시다. 좋겠소?>>

<<아니예요 선생님, 죄송합니다. 다시 더 생각해볼 여지가 없에요. 저 이야기는... 이걸루 고만... 끝을 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허, 이런 량반 좀 봐!>>

<<죄송합니다 선생님.>>

뒤통수를 치고 돌아서는 교무주임은 쓴입을 다셨다. 이런 봉패를 하리라고는 미처 생각을 못하였던것이다. 소한테 물린 느낌이였다.

이튿날 퇴근시간에 복도에서 옆을 스치며 문대성이 조봉숙에게 넌지시 한마디를 속삭였다.

<<석후에 문화관 맞은짝에서 기다릴테니까.>>

조봉숙이 가타부타 말을 할 사이도 없이 문대성은 회오리바람같이 현관으로 사라져버렸다. 봉숙이는 대단히 난처하였다. 가자니 그렇고 안 가지니 또 그렇고.

<<많이 기다리셨지요?>>

<<아니 나두 고대 오는 길입니다. 저쪽으루 좀 걸으실가요.>>

불 밝은 문화관에서는

<<쿵자차, 쿵자차! ...>>

과히 서투르지 않은 쥐대기악대가 솜씨를 보이고있었다.

<<교무선생한테 이야긴 들었는데...>>

봉숙이는 예료한바였으므로 그저 잠자코 발걸음만 옮겼다. 눈우를 불어오는 바람이 꽤 맵짰다.

<<언약한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게 아니예요.>>

<<그럼?>>

<<결혼할 생각이 없어서요. 그뿐이예요.>>

<<어째서? 무슨 까닭이 있겠지요?>>

침묵. 발에 밟히는 눈이 뽀드득뽀드득 기분 좋은 소리를 내였다.

<<내가 그 까닭을 말하리까?>>

녀자가 흠칠 놀라서 멈칫 서버리니 남자도 걸음을 멈추고 녀자를 향하여 돌아섰다. 봉숙이의 가슴은 두방망이질을 하였다. 둥글어가는 달을 가리였던 구름이 바람에 벗겨져서 눈앞에 아름다운 은세계가 펼쳐졌다. 네 눈이 가까이에서 잠시동안 마주보다가 문대성이 킥 웃고 롱담 비슷이 말을 내였다.

<<교무선생은 맘씨만 무던했지 손자병법은 ABC두 모르는분이지요. <지기지피(知己知彼)면 백전불태(百战不殆)>라는 말두 모른단 말입니다. 그러나 나는 알거든요. 잘 안단 말입니다. 그래 봉숙선생은 여태 내가 아무것두 모르구 맹탕 달려든줄 아시오? 천만에! 난 다 알구있어요. 다 알구, 심사숙고해보구, 결심을 채택하구... 그러구 달려든거예요. 아시겠소? 난 케케묵은 관념에서 해탈을 한 새 타이프의 남자라구... 스스루 믿구있습니다. 자랑스럽게 믿구있습니다. 아시겠소 봉숙선생? 봉숙선생이 만약 일생을 독신으로 지낸다면 그건 우리 남자들의 수치라구 나는 생각합니다. 수치가 아니구요! 난 그런 옹생원이 아니란걸 세상에 보여줄 작정입니다. 나는 봉숙선생의 고된 운명에 외면을 할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봉숙선생두 잘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이렇게 말하고 문대성은 또 한번 킥 웃고 한마디를 덧붙이는것이였다.

<<내 생김생김이 거머무트름해서 보기가 싫다면 그건 물론 또 딴 문제구.>>

극도로 긴장한 봉숙이였건만 항거할수 없는 사나이의 야릇한 마력에 끌려들어 무가내하로 한번 따라웃었다. 갈라질 때 문대성은

<<며칠두 좋구 몇달두 좋구 기다릴테니... 면대해 말하기가 거북하거든 쪽지를 적어보내시오. 그럼 난 갑니다.>>

이런 말을 남기고 눈 깜박할 사이에 사라져버렸다.

갈피 잡기 어렵게 뒤섞여 복잡한 마음을 안고 봉숙이가 거처에를 돌아와보니 방안에 꺼져있어야 할 불이 환히 켜져있었다. 의아쩍게 생각하고 방문을 열어보니 주인 없는 방안에 사람 하나가 앉아있다.

두 사람은 전등불밑에 한동안 덤덤히 마주보기만 하였다. 뒤늦게야 깨닫고 뉘우친 인식이는 바늘방석에 앉은것 같아서 휴일을 기다리지 못하고 학교에다 핑게로 청가하고 부랴사랴 수백리길을 달려왔었다.

<<용서하오 봉숙이, 다 내 잘못이요. 이제라두 늦지 않았으니... 우리 새 가정을 이루어봅시다. 한번 좀 잘살아봅시다.>>

격동안 인식이는 이렇게 말하며 앞으로 달려들어 봉수기의 찬 손을 두손으로 덤썩 잡았다. 그러나 봉숙이는 그 손을 마주잡으려 하지 않았다. 슬그머니 가볍게 잡히운 손을 빼내였다. 그리고 나직한 말소리로 똑똑히 말하였다.

<<늦었에요. 나는 이미 마음속에 정한 사람이 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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