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전집4-태항산록-태항산록

더좋은래일 | 2024.05.02 14:24:16 댓글: 0 조회: 72 추천: 0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65805


소설


태항산록


1

윤지평이 령솔하는 조선의용군의 독립지대는 이때 석고산(石鼓山)일대에서 맹활약을 하고있었다. 한단성안에서 조선청년 셋을 쟁취한데 기운을 얻어 이번에는 무안(武安)에 둥지를 틀고있는 적의 헌병분견소를 료정낼 계획을 세웠다. 그 행동대의 골간으로는 로련한 테로분자들인 양대봉이와 마춘식이가 선정되였다.

허술한 각탁 둘레에 군복차림을 한 세 사람과 농민본색을 한, 얼굴이 해사하게 생긴 사람 하나가 둘러앉아 쑥덕공론을 하고있는데 군복을 입은 세 사람은 윤지평, 양대봉, 마춘식이고 농민복색을 차린 사람은 리명선이다.

<<어서 이 동무들두 다 듣게 료해한 정황을 한번 이야기해봅시다.

윤지평의 말에

<<녜.>>

대답하고 리명선이는 당지의 농민식으로 머리에 썼던 때묻은 수건을 벗어서 얼굴부터 한번 닦고나서 자기가 가짜량민증을 달고 성안에 들어가 여러날 걸려 수탐해온 정황을 보고하였다.

<<헌병분견소를 들이친다는건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바루 그 맞은편이... 길 하나 건너가... 보병중대의 병사란 말입니다. 보초가 스물네시간 줄곧 지켜서있는 코앞에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한단 말입니까. 그러니 달리 료정을 내는수 밖에 없습니다. 그놈의 분견소는 헌병오장(하사)한놈, 통역 한놈, 서사 한놈... 이렇게 세놈으루 구성됐는데... 통역은 조선놈이구 서사는 중국놈입니다...>>

말하는 중간에 양대봉이가

<<뒤문두 없는가 그놈의 분견소엔?...>>

하고 지형지물을 물어서 리명선이는 머리를 가로 흔들고

<<뒤문? 없어.>>

대꾸하고 다시 중둥무이된 말을 잇대여 하였다.

<<그런데 무안성밖에 며칠거리루 장이 서는데... 그 장마당을 세놈이 가끔 나와 돌아보는 일이 있습니다. 장마다 나오는것 아니지만. 그런데 나올 때는 세놈이 다 변복을 하구 나옵니다. 그러니 해치우려면 장날 대낮에 큰길에서 해치울수 밖에 없을것 같습니다.>>

<<대낮두 좋지 뭐.>>

하고 마춘식이가 어깨를 으쓱거리니

<<그렇다면... 사로잡을수두 있잖겠나?>>

하고 양대봉이 먼저 리명선이를 바라보도 다시 윤지평을 돌아보았다.

<<아니 가만들 좀 있으시오. 내 이 문제를 먼저 우군부대 대대장과 한번 좀 의논해보구나서 우리 다시 토의하기루 합시다.>>

윤지평은 이렇게 말하고

<<어떻습니까?>>

하고 양대봉이와 마춘식이의 의행을 물었다. 두 사람은 좋다고 고개를 끄덕이는것을 보고 윤지평은 다시 리명선이를 향하여

<<수고했습니다. 어서 돌아가 푹 좀 쉬십시오.>>

하고 위로해 말하였다.

다음다음 장날이다. 사복차림을 한 일본헌병오장 사까이가 역시 사복차림을 한 조선인통역 류등호와 중국인서사 왕가를 데리고 장마당을 둘러보러 나왔다. 사까이와 류동호는 겉으로 보이지 않게 허리춤에 권총들을 찼었다. 사람이 워낙 잔약하게 생긴 왕가가 상전을 모시고 장마당을 한바퀴 돌아보고나서 무슨 낌새를 채였는지 공연히 불안해하며 빨리 성안으로 돌아가기를 조이는 눈치라 무사도정신으로 도약된 사까이오장과 호걸풍의 류통역은 서로 돌아보고

<<저 겁쟁이 좀 봐라.>>

<<정말 못날 녀석입니다.>>

비웃고 둘이 같이 껄껄 웃었다. 3등국민인 왕가는 1등국민인 오장과 2등국민인 통역이 뒤에서 자기를 비웃거나말거나 혼자 앞서서 부지런히 걷기만 하였다. 그 고집스레 서두르는 모양이 마치 무엇에 쫓기는 놈과도 같았다.

<<지나인(支那人)이란 할수 없군.>>

오장의 말에

<<누가 아니랍니까.>>

류통역은 맞장구를 쳐서 비위를 맞추며 두 사람은 례사로이 느럭느럭 걸었다. 왕가못난이에게 본을 보여주려고 일부러 더 천천히 걸었다. 대낮의 큰길이건만 장이 아직 파할 때가 멀어서인지 행인이 드물다느니보다 거의 없었다. 오장과 통역이 산책기분으로 얼마를 왔을즈음 불시에 잔등패기에 뭣인가가 딱딱하거시 쿡 와닿는것 같더니

<<우고꾸나(꼼작 말아)!>>

하고 무시무시한 경고가 귀전을 때렸다. 두 사람이 깜짝 놀라 엉겹결에 고개를 돌이켜보니 두억시니같은 허상궂게 생긴, 머리에 수건을 쓴 두놈이 등뒤에 바싹 붙어서서 목자를 부라리는데 잔등패기에 들이댄것은 권총부리가 틀림이 없었다. 무사도정신으로 도야된 사까이오장이 대번에

<<으악!>>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내닫는데 불 채인 중놈 달아나듯하였다. 그러자 두억시니중의 형님벌이 되여보이는 놈이 제잡담하고 권총 한방을 내갈기니 뒤통수에 명중탄을 얻어맞은 사까이오장은 두팔을 쩍 벌리며 앞으로 푹 고꾸라져서 그만 끝장이 나버렸다. 앞서가던 왕가는 이 무서운 광경을 한눈 돌아보자 곧 저 혼자 걸음아 날 살려라 뺑소니를 쳐버렸다. 류등호는 얼혼이 빠져서 동생벌이 되여보이는 두억시니가 달려들어 저의 허리춤에 지른 권총을 잡아채는데도 남의 일같이 그저 덤덤히 서있기만 하였다.

<<걸아라!>>

놀랍게도 그 두억시니가 이번에는 또렷한 조선말로 명령을 하였다. 류등호의 머리속에는 바로 며칠전에 사까이가 하던 말이 피뜩 떠올랐다.

<<불령선인(不逞鲜人)들이 요새 빠루(팔로)하구 부동해서 별지랄을 다하는데... 우리두 정신을 바싹 차려야겠다니.>>

(아불싸, 내가 그 악당놈들에게 걸렸구나! 인제 나두 볼장 다 봤다.)

류동호는 갑자기 다리맥이 풀려서 걸음걸이가 허청허청해졌다. 두 두억시니는 죽을상이 된 류등호를 재촉하여 앞세우고 사까이가 엎어져 뻐드러진데까지 오더니 형님벌이 되여보이는 두억시니가 송장의 허리춤에서 권총을 뒤져내고 또 잊지 않고 그 손목에서 시계까지 벗겨내였다. 익숙한 솜씨였다. 늘 해본 놈 같았다. 류등호는 사까이의 대갈통에서 흘러나와 길바닥에 고인 선지피를 보자 소름이 오싹 끼쳤다. 그러고 또 어떡허다 정신을 수습하고 다시 보니 저를 랍치해가는 두억시니가 원래의 둘에서 어느새 곱절-넷으로 늘어났다.

이날 밤 윤지평은 호젓한 초불밑에서 한놈을 사살하고 한놈을 생포해온 양대봉이와 마춘식이와 다른 두 대원과 리명선이의 공적을 지휘부에 보고하려고 부지런히 펜을 달리였다.


2

그러나 전쟁에도-세상만사가 다 그러하듯이-성공이 있으면 실패가 있고 기쁨이 있으면 또 슬픔이 있는 법이였다. 백주대낮에 무안성밖 대로상에서 사로잡은 헌병대통역 류등호를 태항산중의 지휘부로 압송하는 일행이 동욕(桐峪)에 채 와닿기도전에 비보 하나가 꼬리에 달리다싶이 하여 뒤따라왔다. 한단성안에 아지트를 건립해놓고 삐라공작을 하는 한편 조선청년들을 포섭하고있던 송은산이가 희생된것이다.

한단성안에 조선인개업의가 경영하는 <<평안의원>>이라는 병원이 있었다. 그 병원에 약제사로 일하는 오가성 가진 조선청년이 있었다. 그 청년에게 맡겨두었던 삐라묶음을 찾아가지고 아지트로 돌아오다가 송은산이는 그날 길거리에서 우연히 황협군 순찰대에게 검문을 당하였었다. 그는 그동안 일이 계속 순리로왔던 까닭에 저도 모르는 사이에 경각심이 풀려서 좀 느슨해졌던것이다. 몸수색을 당하게 되자 송은산이는 칼 물고 뜀뛰기를 아니할수 없게 되였다.

(몸을 뒤지면 삐라묶음이 나오구 또 권총이 나올것 아닌가!)

그는 번개같이 권총을 빼여 막 옷자락에 손을 대는 놈의 배때기를 한방 갈겼다.

<<악!>>

소리를 지르며 두손으로 배때기를 부둥키고 두무릎을 꿇으며 엎으러졌다. 송은산이는 날쌔게 몸을 빼치여 칼 박고 삼간뛰기로 도망칠을 쳤다. 등뒤에서

<<저놈 잡아라!>>

소리와 호르래기소리, 총성이 뒤섞여 일어났다. 죽어라 하고 뛰는중에 갑자기 앞길에 전투모를 쓰고 총을 든 일본병들이 나타났다. 송은산이는 그놈들을 피하여 얼른 옆골목으로 빠졌다. 그러나 얼마 아니 가서 또 골목이 메게 마주 달려들어오는 한무리의 적병과 맞닥뜨렸다. 궁지에 빠진 송은산이는 어느길가집에서 지붕을 고치느라고 벽에다 사다리를 기대여놓은것을 보고 얼른 쫓아가 그 사다리를 타고 지붕으로 바라올랐다. 지붕우에서 얼쩡거리던 기와쟁이와 그 조력군이 권총을 손에 든 놈이 지붕으로 쫓아 올라오는것을 보고 초풍하여 대번에 무릎들을 끓고 부들부들 떨었다. 송은산이는 손을 내저으며

<<부요파(不要怕), 부요파!>>

안심을 시키고 곧 지붕에서 지붕으로 뛰기 시작하였다. 한참 뛰다가 지붕이 다하여 아래를 굽어보니 거리와 골목이 일본군, 황협군, 경찰, 구경군으로 바글바글 끓고있는데 입입이 웨치는 소리가 다 자기를 잡으라는 소리였다. 옴치고 뛸데라고는 없었다. 지붕우에서 발깍 뒤집힌 한단거리를 내려다보며 송은산이는 자기의 운이 다한것을 깨달았다.

(에라 이럴바엔 혁명적산다운 최후를 마치자!)

결심을 내리자 그의 눈앞에는 고향에 계신 어머니-사랑하는 어머니의 인자한 얼굴이 크로즈업되여서 나타났다. 그는 아직 미 장가전의 로총각이였다. 그는 강원도 녕월사람으로 <<강원도메나리>>를 썩 잘 불렀었다. 그는 락천가였다. 혁명적랑만주의자였다. 단짝인 리명선이에게 수삼차나 자기의 단순한 실련담-어떤 처녀에게 말을 걸었다가 코빵 맞은 이야기를 하고는 매번 다

<<고년의 가시내.>>

하고 쓴웃음을 하였었다.

송은산이는 몸에 지녔던 삐라묶음을 꺼내여 잽싸게 노끈을 끌렀다. 그리고 길바닥에서 모두 고개를 뒤로 젖히고 쳐다보며 술렁 거리는 사람들을 향하여 그 삐라를 냅다 뿌렸다. 삐라가 확 퍼져서 분분히 흩날리는것을 보고 송은산이는 손에 쥔 권총을 피줄이 펄떡펄떡 뛰는 저의 관자노리에 갖다대였다. 이어 한방의 총성이 모든것을 앗아가버렸다.

적들은 한단거리에 <<적비(赤壁)>>라고 적은 패말을 세우고 그 밑에다 송은산의 시체를 사흘동안 전시경중(展示警众)하였다.


3

형대(邢台)성안 일본헌병분견소와 일본군려단사령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다까야마라는 창씨성(본 성은 고)을 가진 조선사람형제가 경영하는 아사히(朝日)라는 간판을 내건 리발소가 생겼는데 영업이 어지간히 잘되였다. 고객은 주로 조선거류민, 일본관헌, 일본거류민들인데 어느 고장의 리발소도 다 그러하듯이 이 아사히리발소도 곧 할일없이 심심한 사람들이 모여서 한담설화하는 장소로 되였다.

이때 형대에 사령부를 설치한 일본군려단의 려단장은 조선인 홍사익소장이였으므로 형대에 거류하는 조선사람들은 공연히 코가 우뚝하였었다. 아닌게아니라 형대의 일본관헌이나 일본거류민들도 다른데서처럼 조선사람을 반도인이라고 함부로 다루지는 못하였다. 홍사익각하의 간접적인 덕택임이 분명하였다. 아사히라는 간판이 일본인과 친일파들에게 친절한 느낌을 주어서 그런지 얼마 오래지 않아 곧 부대와 헌병대의 조선인통역들이 일본사람들과 함께 단골손님으로 려단사령부의 내막을 밥 끓고 죽 끓는것을 눈으로 보듯이 알고 지내였다. 려단사령부에 하야시라는 창씨성(본 성은 림)으로 불리는 스물네살 먹은 조선인통역 하나가 있었는데 다같은 신의주사람이라고 해서 특히 리발사형제와 가깝게 지내였다. 어느 일 없는 밤저녁에 리발소로 놀러 왔던 하야시가 마침 리발소가 조용한것을 보고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하던끝에 웃으면서

<<내 지난번 장군묘에 토벌을 나갔다가... 희한한걸 하나 얻어 보잖았겠소.>>

하고 말하며 큰다까야마가

<<무슨 희한한거... 어떤?>>

하고 흥미를 가지며 물으니 하야시는 유리창으로 내비치는 불빛에 히읍스름한 거리를 한번 내다보고나서 장화목에 손을 디밀더니 착착 접은 종이 한장을 꺼내였다.

<<이런거요.>>

<<그게 뭔데요?>>

불갈구리고 난로를 쑤시던 작은다까야마도 불갈구리를 손에 든채 다가와서 목을 늘이고 들여다보았다.

<<아니 그게 무슨... 삐라가 아닌가요?>>

하고 큰다까야마가 놀라니 하야시는 얼굴에 뽐내는 기색을 띠우며 주인형제를 반반씩 갈라보았다.

<<대체 무슨 삐란데요?>>

<<글쎄 태항산속에.>>

하고 하야시는 목소리를 푹 낮추어가지고

<<우리 사람들이 있다는게 정말이란 말이요.>>

하고 소곤소곤 말하였다.

<<우리 사람들이라니요? ...>>

<<조선사람... 조선의용군이란... 항일부대가 있단 말이요.>>

주인형제가 다같이 놀라며

<<아니 그게 웬 말이요? ...>>

하고 서로 돌아보기만 하고 더 말을 잇지 못하니 하야시는

<<쉬, 걔들이 알았다간... 내 이 모가지두 아마...>>

하고 삐라를 보라고 큰다가야마에게 건네주었다.

글머리에 서로 어기찬 태극기 한쌍이 눈에 번쩍 띄우는 그 삐라에는 또렷한 한글로 <<조선동포에게 고함>>이라고 찍혔는데 아닌게아니라 글의 끄트머리에는 조선의용군 다섯자가 분명하지 않은가! 다까야마형제가 덤덤히 서서 마주보기만 하는데 하야시는 큰 다까야마의 손에서 삐라를 잡아채듯이 하여 얼른 접은 금대로 도로 접어서 장화목에 밀어넣었다. 그리고 탄식조로

<<우리 민족은 죽지 않았소. 죽지 않구 아직두 살아있단 말이요. 삐라에 찍힌 태극기를 보는 순간 난 제 나라를 도루 찾은것 같아서... 속이 다 찡합디다. 그런데 제길할 난 여기서,>>

하고 하야시는 주먹으로 제 가슴을 한번 콱 박고

<<왜놈의 통역노롯을 하구있단 말이야!>>

하고 통탄을 하는것이였다. 사람이란 울적한 감정을 자기를 알아줄만한 사람에게 다 털어놓아야만 속이 후련한 법이였다.

나중에 돌아갈 때 하야시통역은

<<말씀 안해두 다들 아시겠지만... 이런 일은 두 형제분만 알구 계시우. 입 한번 잘못 뻥긋했다간 큰일나는 세상이니.>>

당부를 하고 갔다. 통역이 돌아간 뒤에 다까야마형제는 한동안 멀거니 마주 바라보고 섰다가

<<저거 우리 속을 떠보느라구 저러는건 아니겠지?>>

<<설마...>>

하고 서로 지껄이였다.

<<그럼 어떡헌다?>>

<<어떡허다니?>>

<<한번 시험적으루 포섭을 해볼가 말이야.>>

<<해보자구 까짓거. 사람은 미더워. 통역이라구 뼈속까지 다 민족반역자란 법이 없겠지.>>

<<아까 그 한탄을 하는게... 바이 거짓스럽진 않지?>>

<<진정이야, 내 보기엔... 진정이야. 고민속에서 방황하구있다는게 환히 알리던데 뭐.>>

사람들이 보는데서는 형님동생하던 두 사람의 말씨가 어느새 너나들이로 변하였다.

<<그럼 한번 해보자구.>>

<<좋겠지.>>

아사히리발소가 조선의용군의 아지트인것을 아는 사람은 형대성안에 몇이 없었다. 그 몇 사람도 큰다까야마의 본성명이 우자강이고 작은다까야마의 본성명이 림상수인것은 모르고들 있었다. 두 사람은 본시 리발사출신이였다. 그래서 이러한 변장이 가능하였고 또 이러한 착상을 할수 있었던것이다. 그들은 아사히리발소를 차려놓고 뒤구멍으로 애국적인 조선청년들을 포섭하고 삐라공작을 하고 그리고 정보수집을 하고있었다.

이때 중국의 묵은 동전을 수매해다가 일본군수산업부문에 납입하는 바람이 불어서 돈벌이에 눈이 뒤집힌 어중이떠중이들이 린근의 장거리와 마을들을 가을중 쏘대듯하였는데 그중의 한 사람이 형대성안의 아사히리발소와 서황촌부근에 주류하는 윤지평지대와의 사이를 련결하는 줄일줄을 성문을 지키는 일본병들이 어찌 알았으랴. 자전거짐받이에 동전마대를 싣고 형대성문을 무상출입하다싶이 하는 그 반도인 시라가와(본성은 백)는 우자강과 림상수가 아시히리발소를 차려놓고 포섭에 성공한 천번째 대상자였었다.


4

한구를 떠난 북평행 렬차가 어느 불빛 밝은 역구내에 들어서며 서서히 멎어섰다.

<<예가 어딘가요?>>

<<형대야.>>

<<형대... 형대에두 우리 사람이 많이 있다지요?>>

<<그래여.>>

<<이러다간 석문은... 한방중에나 지나겠네요.>>

<<열한시 몇분이라지 아마.>>

이런 말을 주고받는것은 상인풍의 중년남자와 까만색오바코트를 입은 그 안해였다.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살스러운 가운데 일본인 렬차장이 부랴부랴 달려오더니 출입문 바로옆의 좌석에 앉았는 승객들을 딴데로 옮기게 하여 자리를 비워놓자 군도 차고 권총 메고 누른색소가죽장화를 신은 일본헌병 셋이 저벅저벅 걸어들어오는데 수갑 채운 청년 둘을 중간에 세웠었다. 머리들이 헝클어진 두 청년을 차창밑에 하나씩 갈라앉히고 바로 그옆에 헌병 둘이 각각 붙어앉고 그리고 인솔자로 보이는 하사관은 통로 건너 넓은 좌석에 혼자 따로 편히 앉았다. 상인풍의 중년남자와 그 안해는 다른 승객들과 마찬가지로 어마한 분위기에 눌려서 숨들도 크게 쉬지 못하였다. 그들 내외의 앉았는 좌석하고는 비슥맞은쪽인데 어떡허다 압송되는 두 청년과 눈길이 마주칠 때면 그 안해-서른살안팎의 젊은 녀인은 이름 못할 동정과 숭모로 가슴이 마구 죄여드는 모양이였다.

(얼마나 씩씩한 모습들인가.)

(얼마나 철학적인 깊이를 가진 얼굴들인가.)

(얼마나 태연한 몸가짐들인가.)

<<여보, 우리 사람이 틀림없지요? 그렇지요?>>

안해가 남편의 귀가에 대고 속삭이니

<<응.>>

하고 남편은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그리고 조심스레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

<<우리 대봉이또래들인데... 독립군인가보지요?>>

남편은 놀라서 다시한번 앞뒤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핀잔스레

<<공연한 소리 지껄이지 말어.>>

하고 안해의 말문을 막았다. 안해는 한동안 입을 다물고있다가 한숨을 한번 호 쉬고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개가 집을 나간지두 인젠 10년이 다돼가는데... 어디서 어떡하구 사는지... 어쩌면 편지 한장이 없담. 매정한 녀석.>>

<<양대봉한테서 무슨 소식이 있거든 즉시 주재소에 신고하라구 순사부장이 와 이러든거 잊었어? 걔 말은 아예 입밖에두 내지 말어.>>

남편은 도적놈 개 꾸짖듯 입속말로 웅얼거렸다.

렬차가 쉬지 않고 달리여 관장 못미쳐까지 왔을즈음이다. 기관차가 느닷없이 기적을 울리며 앞으로 나아가지도 않고 뒤로 물러서지도 않고 그저 선자리에서 자꾸 허우적거리기만 하였다. 객차안의 사람들이 모두 영문을 몰라서 의아쩍어하는중에 별안간 객차의 출입문을 와락 밀어붙이며 총을 든 사람들이 달려들었다. 선두에 선 얼굴이 거머무트름한, 권총을 든 팔로군과 통로 건너좌석에 따로 앉았던 헌병하사관이 눈 깜박하는 일순간에 서로 대고 맞총질을 하였다. 하사관은 배를 그러안고 푹 고꾸라지고 팔로군이 왼편 팔목에서는 선지피가 주르르 흘렀다. 까만색오바코트를 입은 녀인은 그 얼굴이 거머무트름한 팔로군을 한눈 보자 소스라쳐 일어나며 소리를 지르지 않으려고 손수건 쥔 주먹으로 입을 막았다.


동전을 수매하러 다니는 시라가와가 짐받이에 마대를 실은 자전거를 타고 부랴부랴 서황촌근처의 지대본부를 찾아왔던것은 두 주일전의 일이다. 그의 가져온 소식은 온 지대를 뒤흔들어놓았다. 형대성안의 아지트-아사히리발소가 적들에게 불의의 수색을 당하는통에 다까야마형제로 가장하였던 우자강과 림상수가 꼼짝 못하고 체포되였다는것이다.

<<이 일을 어쩌지?>>

<<이걸 어떡한다?>>

얼굴빛들이 노래져가지고 아무리 궁리를 해보았자 헌병대에 갇힌 사람을 빼내온다는 재간은 없었다. 한개 려단이나 쏟아져들어간다면 또 모를가 그외에는 구출할 방법이 없었다. 속수무책으로 속들을 지글지글 끓이는중에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고 닷새가 지나고 또 한주일이 지났다. 두주일째 되는날 늦은 아침때 련락원 시라가와가 또 자전거를 타고 진동한동 쫓아와서 보초장을 앞세우고 지대장실에 들어서는데 숨이 턱에 닿았다.

<<오늘 밤차루 떠난답니다.>>

시라가와가 밑도 끝도 없이 웨치는 말을 미처 해득 못한 윤지대장이

<<밤차를 떠나? 무엇이?>>

하고 재쳐 물으니 시라가와는 가쁜숨을 돌린 뒤에 비로소

<<다까야마형제 말입니다.>>

하고 주사를 말하였다.

<<오, 어디루?>>

윤지대장과 보초장이 다같이 놀랐다.

<<석가장으로 간답니다. 석문헌병대에서 벌써 압송할 헌병들이 내려왔답니다. 하야시통역이... 하야시통역 아십지요? 하야시통역이... 새벽같이 쫓아와 일러주면서 빨리 가 알리라구 당부하잖겠습니까. 그렇지만 성문이 열려줘야 나옵지요. 그러구 또 너무 일찍 서두르면... 의심을 받기 쉽겠구... 그래서 이렇게 늦어졌습니다.>>

<<수고했습니다 백동무.>>

윤지대장은 너무 고마워서 시라가와의 손을 덥석 잡고 흔들고 또 흔들고 하였다.

(동전수매를 하는 애국자! 이 얼마나 대견한가!)

시라가와는 우러러보는 윤지대장이 자기를 너무나 뜨겁게 동지적으로 대해주는데 감격하고 또 황송하여 잠시 몸둘바를 몰라하였다.

윤지대장은 곧 비상소집을 해가지고 구출할 대책을 강구하는데 격앙한 동지들이

<<렬차를 습격합시다.>>

<<무조건 습격해야 합니다.>>

<<시각을 천추해선 안됩니다.>>

<<총출동합시다.>>

<<간나새끼들, 본때를 보여줍시다.>>

<<시간이 촉박한데 서둘러야 합니다.>>

<<현장까지 가재두 여러시간이 걸리잖겠습니까?>>

입입이 습격하자고 주장하여 의제는 책장 한장을 뒤지듯이 간단하게 구체적인 작전계획을 세우는데로 넘어갔다.

<<렬차를 멈춰세울 방도부터 토의해봅시다.>>

하는 윤지대장의 말에 여러 사람이

<<물론 궤도를 폭파해야지요.>>

<<아니 레루 한개를 들어내는게 더 좋습니다. 요란스럽잖구.>>

<<그렇게 되면 기차가 탈선을 할텐데? ...>>

<<위험합니다, 그 방법은.>>

<<탈선은 재미 적습니다. 우리 사람까지 상할 념려가 있습니다.>>

중구난방으로 나서는것을 양대봉이가

<<내 말부터 좀 듣구나서... 내 말부터 좀 듣구나서...>>

하고 손을 내저어 누르고 자기의 생각한바를 이렇게 피로하였다.

<<렬차를 멈춰세우는데... 폭파를 한다든가 레루를 들어낸다든가 하는건 다 하지하책입니다. 우리 사람을 구해내는게 이번 행동의 목적인 이상 더더구나 쓸수 없는 방법입니다. 내가 전에 조선에서 원산총파업때 철도로동자들에게서 배운게 있습니다. 그때 외지에서 모집해오는 파업깨기군들을 저지하려구 기차를 중도에서 멈춰세우는데 원산철도로동자들은 우둔한 방법을 써서 경찰놈들에게 구실을 주지 않으려구 교묘한 방법을 썼습니다. 구배가 심한 지점을 골라서 레루에다 몇십메터 잘되게 모빌유를 잔뜩 발라놨습니다. 그랬더니 미끄러워서 그놈의 차바퀴가 자꾸 공전을 하잖겠습니까. 생전 기관차가 앞으루 나갈 재간이 있어야 말이지요. 다급해난 기관사놈이 모래통의 모래를... 언덕을 올라갈 때 쓰는 모래를... 드립다쏟습니다. 결국은 올라가긴 가까스루 올라갔지만 동안이 착실히 걸리더란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두 이번에...>>

양대봉이가 말을 다 마치기도전에

<<그거 참 된수요.>>

<<옳소!>>

<<절대 찬성!>>

열렬한 분위기속에 만장일치로 가결이 되였다.

시간이 촉박하므로 지체없이 행동으로 넘어가는데 윤지대장의 포치로 더러는 차단호를 넘을 발판을 마련하고 또 더러는 기름을 구하러 나갔다. 윤지대장은 양대봉이와 리명선을 데리고 뒤에 남아서 시라가와에게 그가 이번 행동에서 맡아할 역할을 대하여 자세히 이야기해들렸다. 시라가와를 납득시켜서 돌려보내고나니 해가 벌써 한낮때다. 또 한동안이 지나서다 장만한 발판은 그런대로 쓸만하였으나 기름은 모빌유가 없어서 대용품으로 유채기름과 돼지기름을 듬뿍 구해들였다.

렬차를 습격하려고 떠나 대오는 해질녘에 관장에서 오륙마장 떨어진 촌락에 들어가 저녁을 지어먹고 한동안 휴식한 뒤 야음을 타서 행동을 개시하였다. 민촌의 개짖는 소리를 들으며 유령의 행렬처럼 기척없이, 사전에 미리 정찰하여 선정한 지점에 접근하였다. 10여명 사람이 번갈아 목도질해온, 한쪽끝에 긴 삼바줄이 달린 널판대기를 도개교(跳开桥)처럼 차단호가장자리에 60도각으로 세웠다가 천천히 줄을 주어서 발판을 놓았다. 인제 렬차가 통과할 시각-9시 20분까지는 반시간이 채 못 남았다. 대원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발판을 건느며 곧 철뚝 량옆에 매복하였다. 여기는 구배선-철길이 어지간히 경사진 지점이다. 양대봉의 지휘하에 칠팔명 사람이 두패로 나뉘여 준비해온 유채기름과 돼지기름을 레루의 안쪽 절반에다만 몇십메터 잘되게 마구 발라나갔다. 두가지 성질이 다른 기름으로 레루를 아주 범벅을 만들어놓았다.

먼 형대역에서 기차 떠나는 기적소리가 들려오자 윤지대장은 허리를 구푸리고 각 분대의 분대장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다시한번 주의를 주었다.

<<저항만 하면 가차없이 해치우시오. 기관사두 마찬가지요. 순종하면 살려주구... 안하면 해치우시오. 일반려객을 상하지 않두룩...>>

이윽고 앞등으로 철길을 눈부시게 비추며 렬차가 달려왔다. 매복한 사람들은 제각기 총을 배밑에 깔고 납작납작 엎드려서 얼굴을 땅에다 파묻었다. 이런것을 모르고 기세 좋고 달려오는 기관차는 기름을 덕지덕지 발라놓은 구배선에 서슴없이 들어섰다. 그러나 얼마 못 올라가서 곧 차바퀴가 헛돌이를 시작하였다. 육중한 기관차가 선자리에서 허우적거리는양은 마치 무슨 마귀의 술법에라도 걸린것 같이 신기스러웠다. 웬 영문을 모르는 기관사와 화부가 눈들이 휘둥그래져서 얼굴을 마주보는 순간 꿈에 보일가 무섭던 팔로군들이 기관사실로 뛰여올랐다. 그리고 다짜고짜로 총부리를 들이대며

<<세워라!>>

호통을 치는것이 아닌가. 혼비백산한 화부는 손에 든 부삽을 얼른 놓고 들라고도 하지 않는 두손을-영화에서 본대로-번쩍 들었다. 기관사는 부들부들 떨면서 저를 겨눈 총구멍에다 눈을 박은채 거의 본능적인 동작으로 제동기를 더듬었다.

렬차가 멎어서느라고 덜거덩거릴 때 끝으로 서번째 객차의 승강구의 문이 안으로 덜컥 열렸다. 근처에서 대가하고있던. 양대봉이를 선두로 한, 손에 손에 총을 든 습격대원들이 우르르 차에 뛰여오르니 문을 열어준 사람-시라가와가 얼른 한옆으로 비켜서며 맞은편 차칸의 출입문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양대봉이가 알아차리고 서너걸음에 쫓아가 문을 와락 밀어붙이며 차칸으로 뛰여들었다. 오른편 좌석에 따로앉았던 헌병하사곤이 재빨리 권총을 빼들었다. 일순간 맞불질. 헌병하사관은 배때기를 맞고 푹 고꾸라지고 양대봉이는 왼편 팔목에 총알을 맞았다. 뒤따라들어온 리명선이와 마춘식이는 다른 대원들과 함께 와락 대들어서 깜박할 사이에 두 헌병놈의 무장을 해제시켰다. 그리고 눈들을 부라리며

<<열쇠!>>

<<냉큼 열지 못할가?>>

으르딱딱거리니 두놈중의 한놈이 꼼짝없이 열쇠를 꺼내여 우자강, 림상수 두 사람이 차고있는 수갑을 잘칵잘칵 열어주었다. 그러자 우자강이와 림상수는 벗겨준 수갑을 재치있게 두 헌병놈의 손목에다 되잡아 채워주었다. 그리고 한놈의 손에 쥐인 수갑열쇠를 홱 잡아채였다. 정치투쟁, 무장투쟁이란 원레 이렇게 전변이 급작스러운 법이다. 이때 양대봉이는 바로 눈앞에 까만색오바코트를 입은 젊은 녀자 하나가 서있는것을 피뜩 보았다. 그 녀자와 양대봉이의 네 눈이 마주쳤다. 번개같이 알아보았다.

<<누나!>>

소리치며 양대봉이가 한발을 앞으로 내디디는 찰나에 등뒤에서 총소리 한방이 났다. 날아온 총알은 양대봉이의 잔등어리를 뚫고 들어와 면바로 심장에 박혔다. 양대봉이는 누나의 발밑에 머리를 처박듯이 하며 고꾸라졌다. 소리 한번 지를 겨를도 없었다. 양대봉이를 쓰러뜨린 흉탄은 고대 그의 총알에 배때기를 맞고 거꾸러졌던 헌병하관이 몸을 겨우 일으키고 최후발악으로 쏜것이였다. 분이 치민 리명선이가 헌병하사관놈의 등판에다 거꾸로 잡은 총창을 콱 내리박으니 그놈은 돼지 멱따는 소리를 지르고 곧 사지를 폈다.

양대봉이의 누나가 무너앉으며 동생의 주검앞에 두무릎을 꿇었다. 덧없고 애달픈 10년만의 해후상봉이였다.


5

몇해후, 무안성밖에서 백주대낮에 양대봉들에게 생포된 헌병대통역 루등호는 화선입당을 하였다. 그의 술회를 한번 들어보기로 하자.

<<...저는 정말이지 일본제국주의의 압잡이노릇을 하는게 부끄러운 일이란걸 몰랐습니다. 뿐만아니라 일본헌병대의 통역노릇을 하는것을 영광으루 생각하구 자랑으루 생각했었습니다. 그러게 처음 붙들려왔을 때는 반감과 증오심으루 가슴이 막 터질것 같았습니다. 금시 죽을것만 같았습니다. 팔로군의 군복을 보나 미투리를 보나 또 무기를 보나... 깔보이기만 했습니다. 속으루 비웃었습니다. <저 꼴을 해가지구두 또 전쟁을 하겠다구?> 다 온전한 사람으루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정말 무슨 비적떼 같아만 보였습니다...>>

(이때 조선의용군의 군복과 무기도 팔로군의 그것과 똑같았었다. 그러나 기발만은 태극기를 들었었다.)

<<그러던 어느날이였습니다. 시사보고란걸 한다구 저더러두 같이 앉아 들으라구 해서... 머리를 수긋하구 한옆에 가 앉아 들었습니다. 무슨 개나발을 부나 어디 한번 좀 들어보자 하는 속셈이였지요. 그런데 놀랍게두 그렇게 하찮아보이던 사람이 입에서 다다넬해협이 어떻구 비씨정권이 어떻구 하는 소리가 뛰여나오는게 아니겠습니까. 분석이 명확하구두 세밀하지 뭡니까. 론리가 정연하지 뭡니까. 저는 정말이지 너무나 의외로와서... 혀를 홰홰 내둘렀습니다. <저런게 다 여기 있었는가!> 하구 말입니다.>>

<<저는 그때부터 고패를 빼기 시작했습니다. 차차 그들을 존경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랜 시간의 교양을 거쳐서 자기의 전비를 뉘우치게 됐습니다. 아는것이 힘이였습니다. 혁명대오는 정말루 못쓸것으루 녹여서 쓸것으루 만드는 도가니였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자기의 수치스러운 과거를 씻어버리려구 항일전쟁에 용감히 뛰여들었습니다. 물불을 헤아리지 않구 전투서렬에 섰습니다. 그리하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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