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꺽정 의형제편 박유복이 4

3학년2반 | 2022.01.05 07:54:30 댓글: 0 조회: 361 추천: 0
분류연재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39772
4
덕적산은 딴 이름이 덕물산이니 진달래꽃으로 이름 높은 진봉산 남쪽에 있다.
그 흔찬 진달래꽃조차 진봉산같이 많지 못한 산이라 아무것도 보잘것이 없건마
는 이름은 경향에 높이 났었다. 이것은 다름이 아니고 오직 산 위에 최영 장군
의 사당이 있는 까닭이었다. 최장군이 고려 말년의 영웅으로 당세에 큰 공로가
있었다고 유식한 사람들이 그 사당을 위하는가 하면 그런 것도 아니고, 또 최장
군이 무덤에 풀이 나지 않도록 원통하게 죽었다고 유심한 사람들이 그 사당에
많이 오는가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그 사당을 누가 세웠는지 세운 사람은 혹
시 장군의 죽음을 불쌍히 여기고 또는 장군의 공로를 못 잊어 하였는지 모르나,
그 사당은 장군당이라고 일컫는 무당들의 밥그릇이 되고 최영 장군은 최일 장군
으로 이름까지 변하여 무당들의 고주귀신이 되었다. 장군당에 와서 치성을 드리
면 병 있는 사람은 병이 낫고 아들 없는 사람은 아들을 낳았다. 그 대신에 여러
사람의 재물은 무당의 손으로 들어갔다. 대체 귀신을 있다고 잡고 말하더라도
최영 장군 같은 인물이 죽어서 귀신이 되었다면 총명하고 정직한 귀신이 되었으
련만, 요사스러운 무당 입에 놀아나서 장춘의 귀신은 귀신으로 희한하게 잡탕스
러워서 죽은 귀신이 산 사람같이 마누라가 있었다. 그 마누라는 근처 동네에서
숫색시를 뽑아다가 장군당 옆에 붙은 별채에 두고 밤이면 귀신이 와서 동침한다
는 것이었다. 그 마누라가 나이 늙거나 죽을 병이 들면 일변 내보내며 일변 곧
대신을 뽑아오는 까닭에 장군당 별채 침실이란 곳제 계집이 떠날 날이 없었다.
여러 번 그 마누라가 바뀌어 내려오는 중에 한번 마누라로 뽑힌 색시의 부모가
딸 내놓기가 싫어서 도망하듯이 타관으로 이사 나간 일이 있었는데, 장군의 벌
역이 내려서 그 집은 그 집대로 염병에 전가가 폭 망하고 산밑 동네에서 그 해
가 미쳐서 그해 연사가 흉년이 들 고 못된 병이 돌아서 사람이 많이 사망하였다
는 것이 산밑 여러 동네에서 아이들까지 다 아는 이야기다. 장군의 귀신이 영검
스럽기 짝이 없는 까닭으로 근동 동민들은 이 이야기를 믿고 의심치 아니하여
누구든지 저의 딸이나 누이가 장군의 마누라로 뽑히기만 하면 으레 바칠 것으로
생각할 뿐 아니라 한동네 사람은 고사하고 근방 타동 사람까지 들싼들을 대더서
아니 바칠래야 아니 바칠 수가 없었다. 그 마누라를 뽑는 것은 무당이니 무당은
장군의 신을 빙자하는 것이요, 그 마누라를 바치도록 주선하는 것은 각동 동임
들이니 동임들은 장군도 위하고 동네도 위한다는 것이요, 그 마누라를 바치는
것은 그 부형이니 부형은 다시 말할 것 없이 장군의 벌역을 두려워하는 것이었
다. 이해는 전에 있던 장군의 마누라가 병이 들어 일지 못하게 되어서 새 마누
라를 뽑게 되었는데 날을 받아 각동 동임들이 한자리에 모여앉고 무당이 장군의
귀신을 청배하였다. 무당이 몸에 신이 실려서 위엄 있는 사내 목소리로 "나의 새
마누라는 산상골 최서방의 맏딸이다. " 하고 말끝을 길게 빼어 포함을 주었다.
최서방의 맏딸은 근동세서 얼굴이 이쁘기로 이름난 처녀니 나이 열여덟 살이고
보방골 박첨지의 막내아들 열네 살 먹은 아이와 정혼하고 금년은 쌍년이니 고만
두고 내년에 성취시키자고 두 집 부모가 서로 의논하여 작정하고 있는 터이었
다. 박첨지가 보방골 존위로 그 자리에 와서 있다가 이 말을 듣고 가슴이 내려
앉았으나 의뭉스러운 늙은이라 선뜻 무당 앞에 나와 꿇어앉아서 "최가의 딸이
여러 가지루 다 합당하오나 장군님과 동성이라 어떠하올지. " 하고 슬며시 말썽
을 일으켜보았다. 이것도 전에 없던 일이라 다른 사람들은 혹시 장군의 노염이
내릴까 겁이 나서 눈이 둥그래졌다. 아니나다를까 신 내린 무당이 기를 길길이
펴면서 "이놈, 무슨 잔소리니 ! 나는 마누라가 동성동본이라도 좋지마는 더구나
본이 다르다. 그 색시는 너의 며느리감이 아니다. " 하고 통통이 호령하여 다른
사람들이 일제히 꿇어앉아서 "옳소이다. 옳소이다. " 하고 말하는 중에 박첨지는
"미련한 인간이 무엇을 아오리까. 장군님 분부가 지당합소이다. " 하고 빌고 다
시 두말 못하였다. 최장군의 새 마누랏감이 이와같이 작정되어서 다시 생기 복
덕 좋은 날을 받아 장군당 침실로 맞아오게 되었다.
최장군이 새 마누라를 맞자면 굿이 여러 번 있지마는 색시를 침실로 맞아오는
날, 사람으로 이를테면 초례 겸 신부례 날은 큰 굿이 있는 법이었다. 사흘 전기
하여 각동 소임들이 장군당에 모여 와서 마당 앞에서 당집까지 황토 스무 무더
기를 간격 맞춰 펴놓고 그날은 첫새벽부터 각동 존위 이하 동임들이 모두 와서
무당들과 같이 큰굿 준비를 차리었다. 당집 안 일정한 자리에 작고 큰 전물상들
을 벌여놓는데 삼색 실과와 백설기에 소찬 소탕을 곁들여 놓은 것은 불사상이
요, 무더기 쌀과 타래실과 고깔 꽃은 두부를 놓은 것은 제석상이요, 약주와 안주
외에 장군에 드리는 삼색 예단을 놓은 것은 대안주상이요, 떡시루 탁주동이 외
에 도야지를 통새미로 잡아놓은 것은 대감상이요, 그 외에 군웅상과 상산상과
조상상은 큰 상들이요, 지신상, 호구상, 영신상, 선왕상, 걸립상은 작은 상들이다.
경사굿이라 상문상이 없고 안굿이 아니라 성주상과 터줏상이 없고, 풀물상이 없
는 굿이라 무당 차지의 대신반이 없었다. 최서방의 딸은 벌써 머리를 얹히어 당
집 안 특별한 자리에 앉히고 그 부모가 딸의 양옆에 갈라앉고, 당집 추녀 아래
에는 각동 존위 이하 동임들이 문길만 틔워놓고 늘어앉고, 추녀 밖 멍석을 연이
어 깐 굿자리에는 기대와 잡이와 전악들이 각기 제구를 가지고 자리잡아 앉고,
마당가에는 각쏭에서 모여 온 구경꾼들이 남녀노소 섞이어 빈틈없이 들어섰다,
구경꾼들이 굿 시작을 고대고대한 뒤 원무당이 비로소 굿자리에 나와 앉고 소위
주당물림이라고 추녀 안에 있던 사람을 모두 추녀 밖으로 내세우고 나서 기대가
장구를 울리고 잡이가 제금을 치고 전악들이 저를 불고 피리를 불고 해금을 켰
다. 주당을 물리고 나섰던 사람이 작각 저의 자리에 가서 앉은 뒤에 기대가 다
시 장구를 땅 치니 이로써 큰굿 열두거리의 첫거리 부정풀이가 시작된 것이다.
기대가 장구를 치면서 영정 가망이 놀아나느니 부정 가망이 놀아나느니 한동안
지껄이고 나서 처음에 진부정을 푼다고 잿물 한 바가지를 들고 당집 안팎을 돌
아다니고 또 마른부정을 푼다고 냉수 한 바가지를 들고 먼저과 같이 돌아다니고
그 다음에 부정 소지를 올린다고 백지 한장을 태웠다. 부정풀이가 끝난 뒤에 진
작이라고 장군과 상산신령에게 술잔 올리는 절차가 있고 잠깐 동안 쉬었다가 둘
쨋거리가망 청배가 시작되었다.
가망청배는 신을 청하여 내리는 절차다. 기대가 전악들의 풍류를 맞추어 장구
를 치면서 가망 노랫가락을 부르고 난 뒤테 원무당이 장옷을 입고 좌우 손에 백
지를 쥐고 밖에서 동남서북으로 돌아가며 사방에 절하고 당집 안에 들어가서 장
군 신상 앞에 절하였다. 그리하고 다시 굿자리에 나와서 백지들은 접어두고 왼
손에 방울, 바른손에 부채를 쥐고 한바탕 풍류 맞춰 춤을 추다가 잇 소리를 한
번 길게 빼며 풍류는 뚝 그치고 공수를 주는데 공수는 받는 나람이 있는 법이
라, 보방골 박첨지가 각동 존위 중에 나이 제일 많고 입담이 제일 좋은 까닭으
로 여러 사람의 몸을 받아 공수를 받게 되었다. "내가 누구신지 아느냐? 위엄 있
구 공덕 많구 영검하신 최장군 아니시냐. 너희가 아느냐 모르느냐. 예 바르고 돔
바른 내 아니시냐. " "옳소이다. " "내가 새 마누라 맞아오는 오늘 같은 경삿날에
이것이 무엇이냐. 원숭이 입내냐 따짜구리 부적이냐. 욕심 많구 탐 많은 내 아니
시냐. 이놈들 잦혀놓구 배가르구 엎어놓구 목딸 놈들 같으니. 너의 죄상을 아느
냐 모르느냐! "
하고 무당은 부채를 확확 펴는데 "미련한 인간이 무엇을 아오리까. 쇠술로 밥을
먹어 인간이옵지 개도야지나 다름이 없사외다. 저희들은 이만 정성을 드리느라
고 낮이면 진둥걸음을 걷사옵고 밤이면 시위잠을 잤소이다. 용서하여 주옵시고
소례를 대례로 받읍소사. 입은 덕도 많습지만 새로 새 덕을 입혀 주옵소사. " 하
고 박첨지는 두 손으로 싹싹 빌었다. 원무당이 공수 주다 말고 다시 풍류 맞춰
춤을 추고 춤추다 말고 또 잇 소리를 지르고 공수를 주는데 나중에는 나는 무어
다, 나는 무어다 하보 오방제신을 다 끌어내었다. 공수 끝에 원무당과 기대 사이
에 한차례 만수받이가 있고 가망청배가 끝이 났다.
셋째거리는 산마누라다. 산마누라는 곧 상산 신령이니 농사에 도움주는 귀신
이라고 상까지도 여러 전물상 중간에 놓이었다. 원무당의 모양을 보아라, 붉은
빛 갓에 호수를 꽃아 쓰고 남철릭에 도홍띠를 눌러 띠고 굿자리에 일어섰다. 처
음에는 철릭 소매를 잡고 늦은장단의 풍류를 맞춰서 늘어지게 춤을 추다가 나중
에는 칼
도 쥐고 삼지창도 쥐고 잦은장단에 신이 나게 뛰놀았다, 춤을 그치면 공수를 주
고 공수를 그치면 춤을 추어서 춤과 공수를 번가르다가 공수며 춤이며 모두 그
치고 칼을 세워서 칼사슬 보고 창을 세워서 창사슬 보았다. 사슬은 점이니 점마
다 좋아서 장군님 새 마누라 잘 들어오셨다고 박첨지 외에 다른 동임들은 얼굴
에 희색이 떠돌았다. 산마누라가 끝이 났다.
넷째거리는 대감놀이다. 원무당이 전립을 쓰고 쾌자를 입고 부채를 들고 대감
들을 청배하는데 대감이란 것이 명색이 많았다. 밤이면 순력 도는 순력대감이며,
낮이면 어사 도는 어사대감리며, 이 담 저 담 넘어다니는 걸립대감이며 이외에
부군대감이니 목신 대감이니 열두 대감을 낱낱이 들추었다. 춤추고 공수 주고
하다가 나중에 무당이 부채를 내흔들며 사망을 주는데 일 보는 동임들이 손 벌
리는 것은 말할 것 없고 무당과 안면이 두터운 구경하는 여편네들까지 치맛자락
을 벌리고 앞으로 나와서 재수 사망을 바득히 받았다. 무당의 사설을 들으면 높
은 산에 눈 날리듯, 얕은 산에 재 날리듯, 억수 장마에 비 퍼붓듯이, 대천 바다
에 물밀듯이 재수 사망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사망을 다 준 뒤예 에라 만수대신
이야 소리가 연해 나오고 대감타령으로 대감놀이를 끝마쳤다. 이때 해는 벌써
점심때가 다 되어 점심 요기들 하느라고 한동안 늘어지뻬 쉬었다. 굿거리는 굿
을 따라 변동이 있어서 몇째 몇째가 일정한 것이 없지마는 큰굿에 열두거리 수
를 빼는 것은 없는 법이라 점심 뒤에 굿이 다시 시작되어 거리 수를 채워나갔
다.
다섯째거리는 제석풀이다. 무당이 머리에 고깔을 쓰고 몸에 백포 장삼을 입고
목에 염주를 걸고 흰 부채를 손에 쥐고 나서서 삼불 제석을 청배하여 단바탕 춤
도 추고 공수도 주고 그 다음에 잠깐 쉬었다가 곧 여섯째거리 전왕놀이로 뒤를
대었다. 무당이 제석풀이 때와 같은 복색으로 춤추고 공수 준 뒤에 바라타령을
시작하 여 "바라를 사오. 바라를 사오. 이 바라를 사옵시면 없는 애기 점지하고
있는 애기 수명 장수" 이와 같은 덕담 노래를 장단 맞추어 노래하면서 바라 시
주를 거구러 다니고 굿자리에 돌아와서 바라를 치며 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찾
아 염불하고 나서 곧 삼불 제석 송덕하는 제석 노랫가락을 가지고 선 무당과 앉
은 기대가 서로 "얼씨구 좋다, 절씨구 좋다" 하며 하나는 먹이고 하나는 받았다.
전왕놀이는 이로써 끝이 났다. 일곱째는 군웅놀이니 군웅은 조상대감이란다. 무
당이 빗갓 쓰고 철식 입고 놀고 여덟째는 별상놀이니 별상은 마마란다. 무당이
전립 쓰고 군복 입고 놀고 아흉째는 호구놀이니 호구는 아기씨란다. 무당이 다
홍치마 입고 면사포 들고 놀았다. 무당이 복색을 연해 변하는 중에 열째 창부놀
이에는 초립을 쓰고 색동옷을 입었다. 창부놀이는 말인즉 무당들의 선생 귀신을
청배하는 것이라 대감놀이와 같이 사망도 주거니와 나중에 단골이라고 갖은 덕
담이 다 있었다. 열한째 말명놀이할 때 최장군 이하 여러 신과 최서방의 조상들
이 차례로 돌아간다고 무당이 주워섬기니 굿 끝이 가까워온 것이다. 구경꾼이
풀리기 시작하여 사람이 많이 갔을 때 마지막 거리 열두째 뒷전놀이가 시작되었
다. 뒷전에는 원무당이 나오지 않고 차른 무당이 나와 노는데 서울 혼인에 깍정
이 오듯이 갖은 귀신이 다 걸립을 들어왔고 지신청배, 선왕청배, 영산청배 잠깐
잠깐 지나가고 풍류 없이 춤추고 나서 귀신들이 치사하고 하직하는 말이라고 무
당은 한동안 주워 지껄였다. 큰굿 열두거리가 인제 끝이 났다.
무당들이 전물을 내다가 세 번 고수레한 뒤에 저희의 차지를 제사하여 놓고
구경꾼에게 계면떡을 나눠주었다. 이때 벌써 땅거미가 지났었다.
구경꾼들은 다 돌아가고 각동 동임들은 당집 안을 치우고 무당들은 최서방 내
외와 같이 새 마누라를 침실로 인도하였다. 사내는 침실 안에 들어오지 못하는
법이라 최서방의 안해만 무당의 뒤를 따라서 들어왔다가 솟아나오는 눈물을 억
제하느라고 총총히 돌아서 나가고 원무당은 전물을 나눌 때 유렴하였던 실과와
떡과 다른 음식을 상에 차려서 방구석에 놓으며 새 마누라보고 "밤에 장군님과
같이 자시오. " 하고 옛 격식대로 인사하고 같이 왔던 무당을 다 데리고 나갔다.
장군당은 워낙 인가와 동떨어진 곳이라 인가라고 가장 가까운 것이 산 밑에
있는 무당의 집이고 그 집에 있는 무당은 장군 마누라에게 시중드는 소임이 있
지마는, 그 무당도 해가 뜨면 올라오고 해가 지면 내려가는 법이었다. 밤에는 신
도가 타인을 기한다고 무당까지도 맘대로 침실에서 자지 못하였다. 장군 마누라
가 병이 나든지 혹 특별한 일이 있든지 하여 밤에 자는 것이 좋을 때는 그 무당
이 미리 장군신상 앞에 나가서 분향하고 점을 쳤다. 그 점은 식기 안에 대추나
잣을 넣고 뚜에를 다 덮지 않고 흔들어서 튀어 나온 수가 짝이 맞고 안 맞는 것
을 보는 법이니, 짝이 맞으면 장군의 허락이 내린 것이라 밤에 자게 되지마는
만일 짝이 틀리면 아무리 잘 일이 있더라도 그대로 내려가는 수밖에 없었다, 사
내는 밤에 당 근처에만 올라와도 장군의 벌역이 내려서 당장 급살을 맞는다고
당초에 올라오지 못하고, 여편네는 밤에라도 침실 밖에까지 왔다 갈 수가 있지
마는 무슨 연고 없으면 올라오지 아니하고, 장군 마누라는 밤이고 낮이고 장군
당 테 밖을 나가지 못하는 까닭에 장군 마누라가 밤에는 으레 흔자 있었다. 인
가가 초원한 산속에 여편네 흔자 있건만 호환도 당한 일이 없고 적변도 당한 일
이 없는 것은 장군의 귀신이 영검한 까닭이라고 하였다. 장군의 마누라가 새로
들어을 때는 무엇이 다르냐 하면 사흘 동안 음식이 특별히 좋을 뿐이지 밤에 혼
자 있는 것은 다름이 없었다. 이 까닭에 어느 장군 마누라가 죽을 때 처음 사흘
밤만 같이 잘 사람이 있었다면 자기가 더 살았을는지 모른다고 말한 일까지 있
었다. 큰굿이 끝나면 무당들이 벌써 "신방이 너무 늦어서 장군님 노염 나시겠다.
어서들 내려가야지. " 하고 재촉하는 것도 한 전례라, 이날 무당들이 전례 좇아
서 내려 가기를 재촉하여 각동 동임들이 앞서 내려가고 뒤에 무당들이 내려가는
데 최서방의 안해는 딸을 산속에 두고 차마 발길이 돌아서지 아니하여 뒤에 처
지마 머뭇거리다아 원무당에게 책망을 듣고 무당들의 뒤를 따라 내려갔다. 종일
시끄럽던 끝에 갑자기 조용하여지니 장군당 당집까지 어디로 떠나고 빈 터만 남
은 것 같았다. 새마누라인 처녀가 사람의 말소리가 들릴 때까지는 오히려 사람
의 얼굴빛이 남아 있더니 인제는 얼굴에 핏기 하나 없고 옹송그리고 앉아서 발
발 떨었다. 나이 열여덟에 거구나 숙성하여 다 큰 처녀지마는 처녀야 어디 가랴.
낯선 사내와 같이 자게 되더라도 송구한 마음이 없지 못하려든 말만 들어도 섬
뜩한 귀신과 잠자리를 같이 하게 된다 하니 겁이라도 여간 겁이 날 것이랴. 울
지 않는 것만도 오히려 나이값으로 볼 것이다. 얼마 뒤에 처녀가 간신히 떠는
것을 진정하고 몸을 도사리고 앉았는데 작은 바람소리만 나도 몸을 오므라뜨리
고 괴상한 새소리만 들려도 몸을 소슬뜨리었다. 방안에 바람이 돌면서 촛불이
흔들리어서 처녀는 일어나서 촛대를 집어다가 옆에 놓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밤은 지리하고 초는 속히 달아서 초 심지가 쓰러졌다. 아무리 돌아보아도 대
신 부칠 초도 없고 등잔거리는 있지마는 기름접시도 없어서 처녀는 흘러내린 촛
농을 모아서 심지 위에 얹어가며 꺼져 가는 불을 애를 써서 살리었다. 처녀가
불을 살리기에 골독하여 밖에서 나는 소리를 듣지 못하였던 끝에 방문이 부스스
열리니 처녀는 겁결에 촛농을 내던지고 벽에 와 붙어섰다. 불이 꺼지며 갑자기
캄캄하던 방이 다행히 남창에 비치는 달빛이 있어서 차차로 희미하게 밝아졌다.
처녀가 장신을 가다듬고 앞을 바라보니 장군이 방문 안에 들어섰는데 모양이 만
들어 앉힌 신상과는 딴판 달랐다. 장군이 방안을 둘러보는 모양이더니 방구석에
놓인 상 앞으로 걸어가서 무당이 처녀더러 같이 먹으라던 떡이며 실과며 다른
음식을 혼자서 다 먹어버리는 모양이었다. 처녀가 정신은 말짱하나 오금이 붙어
서 앉지도 못하고 선 채로 서 있는데, 장군이 상 앞을 떠나서 바짝 가까이 와서
얼굴을 들여다보니 처녀는 눈을 감고 뜨지 못하였다. 처음에 "네가 귀신이냐 사
람이냐? “ 하고 당치 않은 말을 묻더니 손목을 쥐었다. 다음에 "허허 허허. "
하고 너털웃음을 웃더니 몸을 끌어안았다. 처녀는 죽이거나 살리거나 마음대로
하라고 눈을 판뜩 감고 가만히 있었다. 펴놓은 이부자리 위에 안아다가 뉘어 주
고 옷까지 차례로 벗기어 주었다. 처녀는 장군 품안에 누워서 장군이 산 사람과
다름이 없는 귀신이라고 생각하였다.
여자가 눈을 감은 채 죽은 듯이 누워 있는 중에 잠이 소르르 들었다. 꿈에 눈
을 뜨고 살펴보니 자기 옆에 누워 있는 것이 귀신도 아니요, 사람도 아니요, 산
더미 같은 큰 호랑이였다. 맘에 놀라우나 그래도 피할 생각은 나지 않아서 같이
누워 있는데, 호랑이가 앞다리로 목을 끼어안아서 숨이 막힐 것같이 갑갑하였다,
잠이 깨서 보니 무거운 팔 하나가 자기 목에 얹히어 있어서 그 팔을 고이 들어
내려놓았다. 팔 임자는 잠이 든 모양이라 여자가 마음을 놓고 참말 눈을 뜨고
살펴보리 방투 있는 사내가 옆에서 누워 자는데 수염난 것만 보더라도 나이는
들어 보이나 얼굴은 밉지 않은 것 같았다. 이것이 장군의 귀신인가, 귀신이 숨이
덥고 살이 덥단 말을 듣지 못하였고 꿈에 호랑이로 보이었으니 산신령인가. 덕
적산 산신령은 장군의 하인이라는데 하인이 상전의 신방을 가로챌 것 같지 않고
그러하니 예사 사람진가 하면 예사 사람, 게다가 사내가 장군당 침실에 들어올
리 만무한 일이라 여자는 생각을 질정하지 못하였다. 여자가 살그머니 일어나는
데 자연 그 몸을 건드리게 되어서 사내가 잠이 깬 모양이었다. 한번 기지개를
켜고 "한숨 잘 잤다. " 하고 혼자 말하더니 "어째 일어나 앉았나? 이리 와 누워
서 이야기나 좀 하세. " 하고 손을 잡아당기어서 여자는 다시 그 옆에 누웠다. "
대체 이 산중에 혼자 와 있는 것이 무슨 까닭인가? “ 하고 대답을 기다리는 것
같이 한동안 있다가 "이 옆에 있는 것이 당집 같으니 당집 지키는 무당인가? ”
하고 또다시 한동안 잠자코 얼굴만 들여다보더니 "왜 대답이 없어, 벙어린가? “
하고 손가락으로 턱을 걷었다. 모든 것이 점점 예사 사람 같아서 여자는 대담스
럽게 마음을 먹고 말문을 열어서 "장군님 아니신... " 하고 말끝이 모호하게 말을
물으니 "무어 장군님? 내가 장군이냐 말이야? 이 다음에는 장군이 될는지 모르
나 아직은 장군이 아닌걸. " 하고 웃고 "그래 귀신이 아니시오? ” 하고 이번에
는 말끝까지 분명하게 다지어 물으니 "무어 귀신? 죽어야 귀신이 되지, 아직은
산 사람이야. " 하고 더욱 웃었다. 여자가 옆에 누운 것이 사람인 줄 안 뒤에는
일변 든든한 마음이 있으면서도 일변 공연히 몸이 떨리어서 한동안 떨다가 “왜
이렇게 떨어? ” 하고 묻는 그 사람의 말을 듣고 이를 악물고 간신히 진정하였
다. 무서운 마음이 가라앉으며 홀저에 부끄러운 생각이 나서 돌아누우려고 몸을
트니 그 사람이 "이대로 누워서 이야기 좀 다세그려. " 하고 돌아눕지 못하게 하
였다. 그 사람이 자기는 평안도 사는 박가인데 무슨 일이 있어서 이곳을 지나다
가 길을 잃고 밤중에 산속에서 헤매던 중에 불빛을 보고 찾아왔다고 말하고 다
시 여편네 혼자 산속에 있는 까닭을 물어서, 여자가 장군 내력과 자기의 신세
를 대강 이야기한 뒤 장군의 벌역이 내려서 지금 두 사람의 목숨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말하니 "산 장군이 온대두 겁날 것이 없는데 그까지 죽은 장군이 오면
우리를 어찌할 텐가. 조금두 근심 말게. " 하고 그 사람은 씩씩하게 말하였다. "
사내가 밤에 장군당에 오기만 해도 급살맞는 법이라는데 지금 그저 온 것과도
다르고 벌을 안 받을 수 있을라구요. " "그것 보지. 장군당에 오기만 해도 급살
맞는다는데 나는 와서 잠만 한숨 잘 잤으니 장군두 사람 보아가며 벌을 내리는
게지. " 그 사람의 말이 유리하여 여자의 마음에도 그런 것 같으나 그렇다고 마
음이 아주 놓이지 아니하였다. 두 사람이 누워서 이야기를 하는데 여자는 부끄
러워서 묻는 말을 겨우 한 마디 두 마디 대답하였다. 지새는 달빛이 없어지며
곧 동이 텄다. 여자는 뜬둔으로 밤을 새우고 무당이 올라와서 사내 있는 것을
보면 어찌하나 걱정이 되어서 "해만 뜨면 무당이 올라올 터인데 어떻게 하나요?
“ 하고 남자에게 의논하니 남자는 "무당이 와서 보면 소문이 날 테지. 그건 안
되었는데. " 하고 한참 생각하다가 "내가 낮에는 산속에 가서 돌아다니다가 밤에
다시 오지. " 하고 일어서서 벗어놓았던 갓을 집어 쓰고 갓과 같이 머리맡에 놓
아두었던 환도를 다시 몸에 지니는데 여자는 은근히 남자가 다시 오기를 바라는
맘이 있어서 "무당이 해만 지면 저의 집으로 내려간대요. " 하고 말하였다. 그
남자가 일어서면서 "시장할 것이 탈인데 무어 먹을 것이 없을까? " 하고 방구석
에 가서 음식상을 들여다보았다. 입에 마닐마닐한 것은 밤에 다 억고 남은 것으
로 요기될 만한 것이 피밤 여남은 개와 흰무리 부스러기뿐이었다. "이나마 가
지고 갈까. " 하고 그 남자는 수건을 꺼내서 싸가지고 "해진 뒤에는 와두 좋겠
지? ” 하고 한번 다시 여자를 돌아보고 밖으로 나갔다. 한동안 있다가 여자는
일어나서 이부자리를 개어얹고 방안을 치우고 빈 상을 들고 부엌으로 내려가서
상을 닦아 엎어놓고 그릇들을 부시어 모아 놓고 부엌에서 마당비를 찾아들고 나
가서 넓은 마당을 정하게 쓸었다. 이때는 해뜬 지가 벌써 오래라 무당이 올라오
다가 쓰레질하는 것을 보고 가까이 와서 "벌써 일어나셔서 일하시네, 사흘이나
지나거든 일을 하시지. 새 마누라님이 부지런하셔서 장군님 좋아하시겠군. " 조
롱도 아니요, 칭찬로 아닌 말을 하고 값자기 소리를 낮추어 간릉스럽게 "밤에 장
군님 오셨습디까? “ 하고 물었다. 여자가 대답을 아니하니 "오셨지요? " 하고
알고 묻듯이 말하고 여자가 빙그레 웃으니 "그렇지, 오셨겠지. 새 마누라님을 첫
날밤에 혼자 주무시게 하시겠소? ” 하고 능글능글하게 웃고 "식전 일을 많이
하셔서 시장하시겠군. 얼른 아침을 지어야치. " 하고 무당이 부엌으로 들어가는
데 여자도 따라들어갔다. "방에 있던 상도 치우셨네. 음식은 다 어찌하셨소? 떡
이나 과실은 집어두셔도 좋지만 다른 음식은 두면 상할 터인데. " "식전에 시장
해서 먹었소. " “녜. 잡수셨으면 좋지요. " 하고 무당은 입으로 말하면서도 속으
로는 여자가 걸구같이 먹었다고 비웃었다. 무당이 불을 피우고 나서 여자를 돌
아보며 "소세하셨지요? ” 하고 물어서 여자가 “녜. ”하고 대답하니 "그러면
손만 다시 씻으시오. 분향하러 가십시다. " 하고 말하였다. 장군당에 조석 분향하
는 절차가 있는데 그것은 장군 마누라의 소임이었다. "분향은 어떻게 하나요? “
"내가 같이 가서 가르쳐 드리지요. " "혼자 가서 하시구려. " "그것이 마누라님
일평생 하실 소임이오. 아침 저녁으로 하루 두 번씩. " "이 다음에 내가 할께 오
늘은 혼자 가서 하시오. " "천만 도섭스러운 말씀 다하시오. 마누라님이 성하신
때는 대신 못하는 법이오. " 무당은 불을 부등가리에 떠서 들고 앞을 서고 여자
는 그 뒤를 따라서 당집으로 향하는데, 당집 지붕에서 참새들이 짹짹거리어서
지붕을 치어다보니 큰 구렁이가 꿈틀거리고 기어갔다. "애구, 저 구렁이 좀 보오.
" "당집 지킴이오. 일 년에 몇 번씩 나오지요. " 하고 무당은 예사롭게 말하나
여자는 보기 징그럽고 마음이 송구하였다. 무당이 당집 문을 열고 들어가서 향
로에 불을 담아놓고 분향하는 법을 가르쳐 주어서 여자가 향상 앞에 꿇어앉아서
향을 피우는데 속이 떨리어서 장군의 신상은 쳐다보지도 못하였바. 분향하는 동
안이 불과 얼마 안 되건만 여자에게는 대단 오랜 것같이 생각되어서 향을 불에
꽃고 일어서며 곧 무당을 돌아보고 "인제 고만 나갑시다. " 하고 말하니 무당이
”당집 안을 쓸어놓고 나가야지요. " 하고 구석에 걸리어 있는 장목비를 떼어내
렸다. "나는 머리가 아파서 밖에를 좀 나서겠으니 쓰레질만은 대신 좀 해주시오.
" 하오 여자가 빌듯이 말하니 무당은 "아무리나 그리하시오. " 하고 큰 인심 쓰
듯이 허락하였다.
여자가 당집 문밖에 나와서 무당을 기다려 같이 오려다가 지붕에 있던 구렁이
생각이 문득 나며 곧 그것이 근처에 서리고 있는 것 같아서 뒤도 안 돌아보고
침실로 달려왔다. 무당이 와서 아침 밥을 지을 때 여자가 같이 나서 하려고 하
니 무당이 "고만두시오. 더구나 머리가 아프시다며 방에 들어가 누워 기시오. "
하고 일을 못하게 말리어서 못이기는 체하고 방으로 들어와서 무당이 아침상을
들여을 때까지 편하게 누워 있었다. 무당이 상머리에 앉아서 이것저것을 먹어보
라고 권하였지만, 여자는 입맛이 없어서 한두 술 물에 말아 시답지 않게 건지다
가 숟가락을 놓았다. 여자가 점심은 아침보다 좀 낫게 먹었지만 역시 얼마 먹지
아니한
까닭에 저녁때는 시장기가 들었으나 분향하러 가기가 싫어서 꾀 피우느라고 저
녁 짓기 전에 미리 무당더러 “나는 골머리가 아파서 저녁을 먹지 않을 테요. "
하고 말하였다. 저녁 분향은 마침내 무당에게 떠맡기게 되었으나 그 대신에 저
녁밥은 숟가락도 들어보지 못하였다. 무당이 저녁밥을 지어놓고 와서 체면치레
로 "종일 아무것도 잡순 것이 없어 어떻게 하나, 아침처럼 물에 놓아서 한술 잡
수어 보시지요. " 하고 말하다가 여자가 싫다고 고개를 흔드니 다시 두말 않고
저 혼자 가서 밥을 먹어치웠다. 해가 지자, 무당이 방문 앞에 와서 "나는 내려갑
니다. 내가 있어 보아 드리느니보다 장군님이 오셔서 한번 만져 드리면 머리 아
픈 것쯤 거뜬 나실 게요. " 하고 수다를 부리고 내려갔다. 여자가 자기도 시장하
려니와 종일 굶은 사내가 오면 먹이려고 생각하고 부엌에 내려가서 둘러보니 찬
밥 한술도 남겨둔 것이 없어서 새로 밥을 짓는 중에 그 남자가 부엌에 들어섰
다. "인제 저녁을 짓는 중인가? ” 하고 남자가 말을 묻는데 여자는 속으로 기다
리던 사람이 와서 은근히 반갑고 든든하나 말이 없이 남자를 흘끗 돌아보고 곧
고개를 숙이고 아궁이에 불을 넣어서 밥을 잦히었다. "무당이 시중을 든다더니
조석두 지어주지 않아? “ "왜 안 지어요. " "그럼 저녁은 벌써 먹구 나 줄라구
따루 짓나? " 하고 남자는 벙글벙글 웃었다. 여자가 갑자기 부끄러워서 한참 동
안 입을 다출고 있다가 특별히 남자만 주려고 새로 짓는 것이 아니란 뜻을 보이
려고 ”무당만 먹고 갔세요. " 하고 말하니 남자가 일부러 자기 앞으로 당기어
듣는지 "나하구 같이 먹을라구 무당만 먼저 먹여보냈어? “ 하고 말하여 여자는
더욱 부끄러워서 다시 입을 떼지 않고 새촘하고 있다가 나중에 남자가 우두머니
섰는 것이 보기 딱하여 "먼저 방으로 들어가시지요. " 하고 남자를 보지 않고 말
하였다. 남자가 방으로 들어간 뒤 여자는 부지런히 밥을 퍼서 사발 위에 사발을
덧놓은 것만큼 수북히 담은 밥을 외상으로 차려다가 방문 안에 들여놓았다. "왜
외상이야? 밥이 이뿐인가? ” "또 있어요. " "그럼 가지구 와서 같이 먹지. 어서
가지구 와. " "먼저 잡수세요. " "같이 먹구 얼른 치워버리지. 거서 이리 가지구
와서 같이 먹어. 안 가지구 오면 나두 안 먹구 앉았을 테야. " 여자가 남자의 억
지를 못이겨서 부끄럼을 참고 누룽지 섞어 떠붙인 밥사발을 숟가락 한 매와 함
께 들고 들어왔다. 상 옆에까지 와서도 방바닥에 따로 놓고 먹으려고 하는 것을
남자가 또 억지를 써서 겸상하여 같이 먹는데 남자가 "부끄러을 것이 무어 있
어? 맘놓구 먹게. " 하고 이르고 "숟갈 좀 자주 놀리게. " 하고 재촉까지 하였건
만 남자가 그 많은 밥을 다 먹도록 여자는 몇 술 뜨지 아니하여 나중에 남자는
빈 사발 위에 숟가락을 가로 얹어놓았다. "숟가락 지우시지요. " 여자가 말하여
남자가 숟가락을 지운 뒤에 여자는 상을 돌려놓고 잠깐 동안에 다 먹었다. 여자
가 상 가지고 부엌에 나가서 설겆이하여 무당이 해놓고 간 대로 그릇들을 엎어
놓고 솥까지 말끔 부시어 놓고 불씨를 가지고 들어와서 촛불을 당겨놓고 등잔접
시에 기름까지 따라놓았다. 여자가 일을 다한 뒤 앉지 않고 주저주저하고 섰는
것을 남자가 손을 잡아 끌어다가 촛불 아래 앉히고 마주 앉아서 한동안 말이 없
이 얼굴을 바라보니 여자는 눈을 아래초 내리깔고 치마끈을 만지작거리고 있었
다.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이 올에 몇인가? “ 하고 나이를 묻다가 여자
가 대답을 아니하니 "스물이 아직 못 되었지? 내가 일찍 장가만 들었었더면 자
네만한 딸두 두었을걸. ” 하고 웃고 "내 나이는 올에 서른넷이야. 장가두 한번
못 들어보구 좋은 때를 다 지냈네.“ 하고 손가락으로 머리 위를 가리띠며 "이
상투는 노총각 노릇 하기가 싫어서 외자루 끌어올린 것일세. ” 하고 말하는데
여자는 말이 없이 들을 만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 하고 남자는 말머리
를 고치었다. "내가 살인하구 도망해서 숨어다니는 사람일세. " "사람을 죽였어
요? ” 하고 여자는 말소리가 떨리어 나오는데 “그래, 바루 아흐레 전에 내가
사람 하나를 죽였어. " 하고 남자는 말하는 것이 예사로웠다. 여자가 남자의 얼
굴을 보지 아니하려고 한동안 외면하고 앉았다가 "내가 사람을 죽이게 된 내력
을 이야기할 것이니 들어보게. " 하고 남자의 말하는 것을 듣고 비로소 고개를
돌리어서 남자의 입을 바라보았다. "나는 박유복이 란 사람인데... " 하고 이야기
를 시작하여 자기 아버지가 노가의 모함에 죽은 것을 이야기하고 자기 어머니가
남편 원수를 못 갚아서 한을 품고 죽은 것을 이야기하고, 또 자기가 앉을뱅이로
세월을 허송한 까닭에 부모의 원수를 일찍 갚지 못한 것을 이야기하는 동안에
아이 적에 서울서 지낸 일도 이야기하고, 또 그 외에
병 고친 이야기와 표창질 이야기도 다하여 이야기 갈래가 많아서 초 한 자루가
다 닳았다. 초 심지가 타느라고 부지지 소리가 날 때 여자가 일어나서 벽에 걸
린 등잔에 불을 당겨놓고 앉았던 자리에 다시 와서 앉았다. 유복이가 이야기를
다시 계속하여 강령서 원수 갚고 배천 와서 성묘하고 벽란나루를 건너와서 양주
로 가다가 못 가고 덕적산으로 들어온 곡절을 일일이 이야기하였다. 여자는 정
신 놓고 이야기를 듣다가 이야기가 그치며 곧 "부모의 원수 갚은 것도 죄가 되
나요? ” 하고 물으니 유복이는 "글쎄 모르지. 더구나 다른 사람을 상해 놓아서
잡히면 무사할 수 얼을걸. " 하고 대답한 뒤 "지금 내 사정이 이러하니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 하고 돌이켜 물었다. "무어를 어떻게 해요? " "첫째 우리들이
나이가 너무 틀리구, 둘째 내가 한몸을 주체 못하는 처지니 어떻게 했으면 좋겠
느냐 말이야. 내가 오늘 낮에 곰곰 생각해 보아야 별수가 없데. 그래서 오늘 밤
에 오두 않구 그대루 가버리려다가 다시 오마구 말두 했거니와 한번 사정을 이
야기하구 사과나 할까 하구 왔네. " "남의 몸을 망쳐놓고. ” "그러기에 사과하
러 왔지. " "사과는 무슨 사과요? “ "그러니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 말이야. "
"나를 죽이고 가셔요. " "무슨 원수가 있다고 자네를 죽인단 말인가. " "어떻게
할 수 없으면 죽여라도 주셔야지요. " "내가 자네 같은 안해를 얻으면 더 바랄
것이 없지만 신세가 하두 망칙하니까 잘못되었다구 사과할 외에는 다른 말을 할
나위가 없네. " 하고 유복이는 말을 그치고 앉아서 여자가 앞니로 치마끈을 물어
뜯는 것을 바라보다가 "내차어디 가서 숨어 있다가한 일 년 후에 바람이 자거든
다시 찾아올 것이니 그때까지 기다리려나? ” 하고 다시 말하였다. "여기 하루도
더 있을 수가 없어요. " "그러면 나 따라서 도망하려나? 무슨 고생을 하든지 원
망이 없겠나? “ "원망은 무슨 원망? 모두가 팔자지요. " ”내 팔자가 남의 칠자
만두 못하니까 자네 팔자까지 망치기가 첩경 쉬워. " 하고 유복이는 한숨을 길게
쉬었다.
유복이가 우연히 관계된 여자를 버리기도 아깝고 달고 가기도 어려워서 질정
한 마음이 없던 끝에 여자의 말에 끌리어서 같이 도망하기로 작정하고 곧 갈 곳
을 의논하였다. "가서 의지할 성으루는 양주 임꺽정이가 맹산 이종버덤 도리어
든든하나 파묻혀 있을 자리루는 맹산이 양주버덤 훨씬 나은 편인데 나 혼자 같
으면 형편을 보아가며 이리저리 옮아다니기가 어려을 것이 없지만 우리 둘이 합
께 다니기는 어려우니까 아주 가 서 있을 곳을 정해야겠네. " "양주는 좋지 않아
요. " "왜? “ "우리 동네서 왕래가 있어요. 내 동무 하나가 양주로 시집까지 갔
어요. " "맹산 두메 속에 가서 조밥 먹구 살겠나? ” "조밥은 누가 못 먹는다고
해요. " "이따금이 아니구 끼니마다 조다짐이야. " "맹산이 얼마나 먼가요? 이삼
백 리 되나요? “ "이삼백 리면 멀 것이 없게. 칠팔백 리나 되니까 갈 것두 걱정
일세. " "여러 날 가겠어요. " "열흘을 갈는지 한 달을 갈는지 가보아야 알지. "
"걸음을 못 걸어보아서 가다가 발병이 나면 어떻게 하나요? " "내가 업구 가지.
" "남부끄럽게. " "남이 볼 때는 내려놓지. " "설마 기어라도 가겠지요. " "양주를
제쳐놓으면 맹산밖에 갈 데가 없으니까 걸어가든 기어가든 가보세그려. " 갈 곳
을 맹산으로 작정한 뒤 다음에 갈 준비를 의논하게 되었다. ”길양식할 쌀은 있
겠지? “ "양식이 많이 들까요? " "양식 말은 가져야 할걸. " "말쌀이 야 있겠지
요. " "길양식만 있으면 되었네. " "무명은 소용 없을까요? " "왜 소용이 없어.
웬 무명이 다 있나? " "어머니가 나아서 나 준 것이 있어요. " "몇 필이나 있나?
잣수 차는 것이겠지. " "잣수가 차다니요? " "서른댓 자 잣수가 차는 것이냐 말
이야. 집에서 나은 것이면 두 자짜리 상목은 아니겠지. " "두자짜리 상목이 아니
에요. 옷 해입으라고 어머니가 나아주신 것인데. " "그래 몇 필이야? " "아마 서
너 필 되지요. " "그럼 그것두 가지구 가세. 길에서 쓰지 않더라두 가서는 못 쓰
겠나. " "의복은 입은 대로 가도 좋을까요? " "글쎄, 머리를 땋아내리구 남복을
했으면 길에서 편할 터이지만. " "그렇게 하지요. " "고의적삼 한 벌은 있어야지.
" "무명 한 필 조기지요. " "새루 짓는단 말이지? 아무리나 하게. 그러구 길에서
는 부자간이라구 할까. " "부자간이라니요? " "자네를 내 아들이라구 하랴 말이
야. " "싫어요. " "그럼 무어라구 할까? " "남남끼리라지요. " "남남끼리는 재미없
어, 형제라구 하지. 나이가 엄청나게 틀리는 형제두 있으니까. " "아무리나 해요.
" "그러면 고의적삼 다 되는 날 밤에 떠나기루 작정하구 한 털 다 짓자면 며칠
걸리겠나? " "박지 말구 중중 호아 짓지요. 입은 모양만 고의적삼이면 되지 않아
요. " "그렇지. " "그럼 오늘 밤에 말라서 짓다가 내일 낮에 무당 몰래 틈틈이 지
으면 내일 밤에 떠날 수 있지요. " "그럼 내일 밤중에 떠나기루 작정하세. " 길
준비와 떠날 날이 함께 다 작정된 뒤 여자는 곧 일어나서 궤 속에서 무명 한 필
을 꺼내 들고 바뜨질 제구 든 동고리를 가지고 와서 앉았다. 여자가 자질하고
가위질하고 또 바느질하는 동안 유복이는 앉았다 누웠다 하다가 나중에 "밤을
새려나? " 하고 물으니 여자가 바느질하면서 "졸리면 자지요. " 하고 대답하였
다. "고만 자구 새벽 일어나 하게. " "조금 더 하다 잘 터이에요. " "새벽에 못
일어나면 낭패 아닌가. " "걱정 말구 먼저 주무세요. " "인심이 혼자 잘 수 있나.
같이 자세. " 하고 유복이가 우겨서 여자는 바느질 동고리를 한옆에 치우고 자리
를 보게 하였다.
유복이는 최서방의 딸을 안해로 치고 최서방의 딸은 유복이를 남편으로 믿고
서 하룻밤을 같이 지내고 이튿날 새벽에 내외 두 사람이 일찍 함께 일어났다,
유복이가 전날과 같이 소세도 아니하고 곧 산속으로 가려고 "이따 해 진 뒤에나
또 만나세. " 하고 일어서는데 그 젊은 안해가 "잠깐만 기세요. 어젯밤에 밥을
나우 지어서 떠둔 것이 한 그룻 있으니 가지고 가세요. " 하고 붙들었다. 유복이
는 그 어머니를 여읜 지가 이십 년에 알뜰 살뜰히 위하여 주는 사람을 보지 못
하다가 이 말 한마디를 들을 때 곧 머릿속에 '어머니 살았을 때 이런 말을 들어
보잤거니. ' 하고 생각하며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 안해가 무명 꺼내던 궤짝
에서 바가지 한 짝과 베보자기 하나를 꺼내가지고 부엌에 내려 가서 찬밥 한 바
가지를 보자기에 싸다가 줄 때까지 유복이는 우두머니 서 있다가 안해가 한 손
으로 주는 것을 두 손으로 덥석 받았다. 유복이가 나오다가 부엌 안을 들여다보
니 뒤에 따라나온 안해는 자기 맘을 미루어서 밥 지은 자취를 살피는 줄로 짐작
하고 "무당이 해놓고 간 대로 다시 다 해놓았으니 염려 마세요. " 하고 말하는데
유복이는 "아니야, 짚이 혹시 있나 하구 살펴보았어. " 하고 말하였다. "짚은 무
어 하실라오? “ "신을 삼을라구. " "그러면 부엌 이편 구석에 짚 묶음이 있습디
다. " 하고 안해가 들어가서 집어 가지고 나오는 짚 묶음을 유복이가 보고 "마침
짚이 있으니 그만하면 신 서너 켤레 넉넉히 삼겠네. " 하고 말하면서 한 손으로
받았다. "발 좀 보세. " "대중해서 삼으시구려. " "길 가는 데는 첫째 신이 잘 맞
아야 하네. " "발 크지요? " 하고 안해가 앞으로 내어미는 발을 유복이가 굽어보
다가 허리를 구부리고 발을 들고 뼘어보려고 하니 안해는 실없은 장난으로 알고
발을 다시 끌어들였다. "왜 그래. 뼘어보는 것이 눈대중버덤 확실하지 않아. " 하
고 유복이가 허리를 구부린 채 안해의 얼굴을 치어다보니 "뼘어까지 볼 것이 무
어 있세요, 장난이지. " 하고 안해는 방그레 웃었다. "어린 안해를 다리고 실없이
장난할 리가 있나. " "점 잖은... ” 하고 안해가 말을 하다가 중동무이하고 혼자
웃으니 "버릇없이 굴지 마라. " 하고 유복이는 나무라면서도 역시 빙그레 웃었
다. "지금 신은 신이 발에 잘 맞으니 뼘어볼라거든 신이나 뼘어보시지요. " 하고
안해가 신 한 짝을 벗어 내놓았다. 유복이가 신을 뼘어보고 밖으로 나간 뒤에
그 안해는 다시 방에 들어와서 바느질을 하다가 한동안 지나서 무당의 발소리가
들릴 때 바느질 동고리를 보이지 않게 치워버렸다. 그날 낮에 무당이 부엌일할
때 유복이의 젊은 안해는 방문을 닫고 앉아서 바느질 동고리를 내놓고 일하다가
"벌써 무슨 일을 하시오? " 하고 들여다보는 무당에게 들키었다. "아니. " 하고
한마디 외에 다른 말을 못하고 얼굴이 붉어지니 무당이 수상하게 여기어서 "무
슨 일인가요? " 하고 캐어물으며 방으로 들어왔다. "아니야. " "아비라니요. 어디
바느질 좀 봅시다. " "볼 것 없어. " "어디 좀 보아요. " 하고 무당이 동고리에
담긴 일하던 것을 들고 보더니 깜짝 놀라며 "이것이 남정네 고의 아닌가요? "
하고 물었다. 촌색시일망정 슬금한 여자라 거짓말을 꾸밀 생각이 나서 잠깐 동
안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알고 싶소? 궁금하오? " 하고 고개를 다시 치어들었
다. "대체 사내 고의는 무엇에 쓰실라오? " "밤에 입고 잘 터이오. " “밤에 왜
사내 고의를 입으신단 말씀이오. " "내가 잠이 들면 오시고 내가 잠이 깨면 가시
니까 한번 사내 고의를 입고 아래위를 꼭꼭 동여매고 자볼 테요. " "장군님이 노
염 많으신 양반이니 아예 조심하시오. 노염 내시면 큰일이오. " "내가 알아 할
테니 염려 마오. " 그럴싸한 말에 무당이 속아서 다시 더 말을 묻지 아니하여 여
자는 몰래 하던 일을 도리어 펼쳐놓고 하게 되었다. 하루 해가 다 가서 저녁 분
향할 때가 되었다. 여자가 분향하러 가기가 죽기보다도 더 싫지만, 싫든 좋든 이
번 한번이 마지막이거니 생각하며 부등가리에 마들가리불을 떠서 들고 당집 안
에 가서 분향을 건등반등하고 왔다. 무당이 저녁 밥상을 갖다 줄 때 "나는 고의
를 다 지어놓구 먹을 테니 먼저 먹구 내려가오. " 말하고 저녁을 먹지 아니하였
다가 무당은 내려가고 남편이 온 뒤 밥을 더 지어서 내외 겸상하여 먹었다. 밥
을 같이 먹는 동안에 "밥 먹구 나서 상은 당신이 치우세요. " "왜? " "글쎄. " "
같이 하지. " "싫어요. 나는 따로 할 일이 있세요. " "바느질을 다 못한 것일세그
려. " "무슨 일이든지 있다 보면 아시지요. " 하고 내외가 수작하였다. 밥이 끝나
서 유복이가 부엌으로 설겆이 하러 내려갈 때 그 안해는 "그러고 내가 들어오시
라고 말하기 전에는 방으로 들어오지 마세요. " 하고 당부하여 유복이가 별일이
다 하고 생각하면서도 "그리 함세.
" 하고 대답하였다. 유복이가 밥그룻들을 씻어서 등상에 엎어놓고 들어오라기를
기다리다가 나중에는 갑갑하여 "고만 들어갈까? ” 하고 소리를 지르니 안해는
"잠간만 더 참으세요. " 하고 대답한 뒤 다시 얼마 동안 있다가 "인제 들어오세
요. " 하고 불렀다. 유복이가 방문을 여니 방안에 섰는 것이 여편네가 아니요, 의
젓한 머슴아이다. 그 동안에 얹은머리를 땋아내리고 사내 고의적삼을 갈아 입은
것이었다.
그날 밤중이 지나서 달이 뜬 뒤데 유복이는 길양식과 안해의 옷가지와 무명
온필을 한 짐에 묶고 자투리 무명으로 걸빵을 만들어 짊어지고 남복한 안해를
데리고 길을 떠났다. 산에서 내려와서 무당의 집 앞을 살그머니 지난 뒤에 송도
부중 들어가는 길을 따라서 오다가 부중이 멀지 않거니 생각 들 때부터 샛길로
들어서서 방향만 대고 휘돌아서 부중을 비키고 지나왔다. 곧장 오면 이십 리 남
짓한 길을 샛길로 돌아온 까닭에 삼십 리를 좋이 걸었다.
이때 벌써 유복이의 안해는 발을 질질 끌기 시작하여 유복이가 이것을 보고 "
발이 아픈가? " 하고 물으니 안해는 “녜. ” 하고 풀기 없이 대답하였다. "칠팔
백 리 길을 갈 사람이 겨우 이삼십 리쯤 와서 벌써 발병이 나면 앞길을 장차 어
떻게 간단 말인가? " "글세요, 며칠 걸어나면 좀 나을까요. " "발이 정히 아프면
좀 업구 가볼까? “ "내가 업히겠다고 해도 걱정이겠소. 짐은 어떻게 하실라오?
" "짐은 자네가 지고 자네는 내가 업으면 되지 않겠나. " "나는 업히기도 싫고
짐 지기도 싫어요. " "어디 가서 지게 하나만 얻으면 되겠네. " "어떻게? " "지게
위에 짐을 놓구 짐 위에 자네를 앉히구 그 지게를 내가 짊어지면 묄 것 아닌가.
" "그 꼴이 보기 좋겠네. " "꼴이야 좋든 말든 편하게 가기만 하면 고만이지. " "
나중에는 어찌하든지 지금 좀 붙들어나 주시구려. " "그리하게. 이리 오게. " 유
복이가 안해의 손을 붙들고 길을 걸었다.
처음 얼마 동안은 서관대로로 오다가 동이 트고 날이 밝아서 사람이 드문드문
눈에 뜨이니 유복이 내외는 대로를 버리고 소로로 잡차들어서 북쪽을 향하고 올
라왔다. 유복이 내외가소로로들어선 뒤 오리 길을채 못와서 안해가 발을 끌기커
녕 다리를 절기 시작하였다. 그 소로가 그다지 험한 길이 아니건만 발이 아픈
사람에게는 편편한 대로를 걷기보다 더 힘이 들어서 "다시 큰길로 나갑시다. "
하고 안해가 조르니 "우리 처지가 어디 펼쳐놓구 큰길루 갈 수 있나. " 하고 유
복이는 말 막았다. "큰길만 못해서 발이 더 아픈 걸 어떻게 해요. " "피나무 안
반을 찾는 셈인가. " "인정도 없소. " "여기 앉아 좀 쉬어나 가세. " 하고 유복이
가 먼저 안해를 길가 정한 자리에 앉히고 그 다음에 짐을 벗어놓고 안해 옆에
앉았다. "나 때문에 고생일세. " "누가 할 말이오. 나 때문에 고생이지. " "그렇게
말하면 둘이 다 고생일세. " "고생 뒤떼 낙이 있겠지요. " "글쎄, 갈수록 수미산
이나 아닐는지 누가 아나. " "나 좀 다리를 뻗고 누웁시다. " "내 무르팍을 비구
눕게. " 하고 유복이가 무릎을 내밀어서 안해의 머리를 베어주고 그 머리를 손으
로 쓰다듬었다. "자네 이름을 하나 지어야겠네. " "나는 왜 이름이 없나요? “ "
무어야? " "그건 물어 무어 하세요? ” "가르쳐 주게. 어디 보세. " "내 손위에
형님이 타나 있었던 까닭에 내 이름이 작은년이에요. " "내 아우라구 하구 작은
년이라구야 부를 수 있나. 내 이름이 유복이니 자네를 작은복이라구 부르면 어
떻겠나? " "아무렇게나 부르시구려. 작은복이도 좋지요. " "그러면 이름은 작은
복이라구 하구 또 남 보는 데서는 해라할터일세. " "형님 행세하자면 해라해야겠
지요. " "그럴 것 없이 지금부터는 남이 보거나 말거나 해라하세. " "그건 왜 그
래요? " "해라했다 하게했다 하자면 혹시 실수가 있을는지 모르니까 아주 해라
를 입에 익혀 두잔 말이야. " "맹산 간 뒤에는 해라 못합니다. " "어린 안해더러
해라 못할 것 무어 있나? " "내가 나이 어리니까 해라를 받기가 더 싫어요. " "
맹산 간 뒤는 어쨌든지 지금부터 해라하네. 작은복아! " 하고 유복이가 출러보았
다. "대답을 해야지. “녜. ” 하고 안해가 대답하며 입을 막고 웃었다. "고만 일
어나거라. " "조금만 더 누웠다 일어나겠습니다. " 하고 둘이 같이 웃으며 머리
를 숙이고 내려다보고 하나는 고개를 젖히고 치어다보다가 "웃는 눈매가 이쁘기
두 하다. " "형님이 아우더러 그 따위 소리를 하나. " "이쁜 것을 이쁘다구야 못
할 것 무어 있어. " 하고 유복삐는 참말로 눈이 가늘어지고 "그런 소리 할라거든
아우 형님 다 고만둡시다, 예 여보. " 하고 안해는 거짓으로 입이 뽀족하여졌다.
한동안 늘어지게 쉰 뒤에 유복이 내외는 다시 길을 걸어서 미륵당까지 나오는데
보리밥 몇 솥 짓기가 걸리었다. 그곳에서 큰길을 건너서서 소로로 올라오다가
논골이라는 작은 동네 농가에 들어가서 라침 겸 점심 한 끼를 쌀을 주고 부치어
지어먹었다. 가짜 아우가 시장한 끝에 밥을 먹고 기운이 없어 늘어지는 까닭에
가짜 형도 하릴없이 지체하였다. 가짜 형인 유복이가 그 집 사내주인과 수작하
는 중에 걸방 짐
이 거북하다고 핑계하고 주인의 지게를 쌀되 주고 바꾸었다. 짐을 지게 위에 꿇
어놓고 유복이가 봉당 한구석에 누워 있는 가짜 아우를 향하여 "작은복아, 고만
가자. 청석골은 해 있어 지나가자. " 하고 재촉하였다. 이제는 촌보를 잘 떼어놓
지 못하는 안해를 유복이가 손을 잡아 끌다시피 하고 간신히 동네 밖에 나와서
"이애, 짐 위에 올라앉아라. " 하고 지게를 벗어놓으니 안해가 얼마 사양하다가
나중에는 고개를 직수굿하고 있었다. 짐을 편편하게 만글고 안해를 올려앉힌 뒤
에 유복이는 선뜻 지게를 지고 일어섰다. "이게 무슨 꼴이야. 무겁지나 않아요?
“ 하고 안해는 두 손으로 지게뿔을 붙잡고 ”염려 마라. 맹산은 고만두구 의주
압록강까지라두 잘 가게 되었다. " 하고 유복이는 성큼성큼 걸음을 떼어놓았다.
유복이가 발병난 안해를 끌고 올 때보다 길이 잘 불었다. 삼거리로 나가는 원
길을 비키느라고 자욱길도 변변치 않은 초로로 한동안 이리저리 헤매었으나, 곧
독골이란 등네 앞을 지나고 청석골 개울물을 건너서 청석골 원길에 나왔다.
청석골은 서편 탑고개까지 나가기에 시오 리가 넘는 긴 산골이다. 성거산이
내려와서 천마산이 되고 천마산이 내려와서 송악이 되니 송악은 송도의 진산이
요, 송악 한 줄기가 서편으로 달려와서 청석골이 생기었다. 천마산 줄기에서 솟
아난 만경대와 부아봉과 나월봉은 삼거리 동북편에 곁겯이 둘러 있고 매봉만은
남으로 떨어져 삼거리 정동편에 와서 있고 탑고개 북쪽에는 두석산이 있고 남쪽
에는 봉명산이 있고 서남쪽에는 빙고산이 있다. 처녑같은 산속에 골짜기를 따라
큰길이 놓여 있으니 이 길이 비록 송도부중에서 이삼십 리밖에 아니 되는 서관
대로이나, 도적이 대낮에도 잘 나는 곳이라 왕래하는 행인들이 간을 졸이고 다
니었다. 이때 유복이는 도적을 만날까 겁이 나느니보다 도적 잡는 군사 부스러
기를 만날까 주니가 나서 큰길을 좇아 탑고개로 나가지 않고 큰길을 가로건너
산길로 들어섰다. 처음에는 초군들의 발자취가 있던 것이 얼마 아니 가서 그나
마 없어지고 길도 없는 첩첩한 속으로 들어왔다. 유복이가 서쪽으로 기울어진
해를 바라보며 방향을 잡아서 산마루를 타기도 하고 잘록이를 넘기도 하는데,
거뜬한 혼잣몸만 같으면 넉넉히 뛰기도 하고 기기도 할 곳에서 뛰지 않고 기지
않고 걸어갈 곳을 달리 찾느라고 자연히 곱길을 걷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해는
얼마 남지 않고 산은 아직도 끝이 없고 게다가 괴상한 산짐승 소리까지 들리었
다. 유복이의 젊은 안해는 마음이 황황하여졌다. "여보, 자꾸 산속으로 들어만 가
니 웬일이오? 산에서 좀 나갑시다. " "지금 나가는 길이야. " "갈수록 산인데 어
디로 나간단 말이오? " "시오 리가 넘는 청석골을 산으루 지나오는 길이니까 얼
마 더 가야 까람 다니는 길이 나설 것이야. " 이런 수작이 있는 뒤에도 얼마를
더 왔건만 길은 나서지 않고 고개만 나섰다. 한 고개를 넘고 두 고개를 넘고 고
개고개를 넘는 중에 해가 너울너을 서산으로 넘어갔다. 유복이도 마음이 조금
조급하여졌다. "잘못하다가는 산속에서 밤을 지내게 될 모양이다. " "아이구 무
서워라. " "어둡기 전에 드러눕기 좋은 자리나 하나 보아 둘까. " "어둡도록 가봅
시다. " "아무리나 그래 보지. " 이렇게 수작하며 한 고개에 올라서니 고개 아래
편편한 땅이 있고 편편한 땅에 과히 작지 않은 집이 한 채 있었다. "이 산속에
사람의 집이 있다. " "글쎄 말이오. " "저 집에 가서 하룻밤 자구 갈밖에. " "수
상한 집이나 아닐까요? “ "수상한 집이라니, 도둑놈의 집 같단 말이지? " "그런
집지면 갔다가 어떻게 해요? " "외딴집에 도둑놈이 있기루 백 명이 있을까 천
명이 있을까. 염려 말구 가보자. "
고개 밑에 내려와서 유복이는 안해를 지게에서 내려놓았다. 여기까지 오는 동
안에 유복이의 안해는 여러 번 졸라 한 번씩 내려서 조금조금 걸었으나, 유복이
가 길이 늦는다고 잘 내려주지 아니하여 오랫동안 내리지 못하던 끝이라 오금이
붙꺼서 걸음을 잘 걷지 못하여 유복이가 한동안 주물러 준 뒤에 손을 잡고 끌면
서 그 집을 찾아왔다. 돌담 치고 대문 단 품이 제법 모양 내고 사는 집 같았다.
유복이가 대문간에 와서 주인을 찾으니 나이 오십이 넘어 보이는 뼈대 굵은 중
늙은이 하나가 대답도 없이 나와서 불량스러운 눈으로 유복이 내외의 행색을 한
번 칼펴보고 난 뒤 비로소 온 뜻을 물었다. 유복이가 형제 동행하여 평안도 가
는 길에 길을 잘 못 들어 산속에서 헤매다가 집을 보고 하룻밤 자고 가려고 찾
아왔노라 말하니, 늙은이가 두말 않고 선뜻 허락하고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여
아랫방을 치워주었다. 유복이 내외가 신발을 끄르고 방에 들어앉은 뒤에 따라들
어온 그 사람과 서노 인사하였다. 그 사람이 그 집 주인인데 성은 오가요, 자녀
는 없고 식구는 마누라 외에 부리는 계집아이가 하나 있을 뿐이었다. 유복이가
인사 끝에 주인에게 산속에서 사는 곡절을 물은즉 세상이 귀치 않아서 숨어 산
다고 간단히 대답하고, 또 산속에서 하는 업을 물은즉 그럭저럭 굻지
않고 산다고 모호하게 대답하였다.
저녁 주비가 지난 뒤라 유복이가 딴 저녁 시킬 것을 걱정하고 길양식이 있으
니 쌀을 갖다가 저녁 아침 두 끼를 지어달라고 청하여 주인이 그릇을 가지고 와
서 쌀을 받아들고 나간 뒤에 유복이 내외는 느런히 누워서 귓속말로 속살거리었
다. "주인의 눈이 곱지 못하지요. " "목자가 좀 불량하군. " "어째 수상해요. " "
수상한들 상관 있느냐. 걱정 말구 나만 믿어라. " "믿기야 믿지요만, 그래도 걱정
이 되는구먼요. " 지껄이던 끝에 유복이는 눈을 감고 있다가 슬그머니 잠이 들었
다. "밥 가져온대요. " 하고 안해가 흔드는 바람에 눈을 뜨고 보니 벌써 방안은
깜깜하였다. 주인이 와서 기름등잔에 불을 켜주고 계집아이가 저녁상을 가져왔
는데, 그 밥상이 양반들이 받아먹는 다리 높은 칠소반니라 유복이는 주인이 외
람스러운 짓 하는 사람인 줄을 짐작하였다. 키가 작달막하고 얼굴이 얄쌍스러운
정갈한 여편네가 방문 앞에 와서 들여다보는데 유복이가 안주인인 줄을 알고 인
사할 생각으로 "들어오시지요. " 하고 가짜 아우와 같이 일어섰다. 바깥주인이 "
왜 일어나오? 어서 밥들 자시지. " 하고 손들에게 말하고 나서 "자네든 왜 내려
왔어? 올라가게. " 하고 마누라를 올려 쫓으려고 하니 마누라는 "사람도 하도 못
보고 사니 사람 구경 좀 합시다. " 하고 그 영감 말을 방색하고 곧 손들을 향하
여 "손님들 어서 앉아 자시오. 찬은 없으나마 많이들 자시오. " 하고 다정하게
말하였다. 그 마누라가 한동안 방문 밖에 서서 손들 밥먹는 것을 보는 중에 작
은복이 행세하는 유복이 안해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며 "그 도령 잘도 났네. 이
쁜 색시 같애. " 하고 칭찬하여, 가짜 머슴아이는 얼굴이 붉어졌다. 안주인이 안
으로 올라간 뒤에 바깥주인이 유복이를 보고 "재작년에 다 큰 딸자식을 죽이구
나서 마누라가 일시 상성이
되었었소. 지금은 다 나은 모양인데 종시 전과 달라서 무슨 말을 일러두 잘 듣
지 않오그려. " 하고 그 마누라에게 말을 이르다 그만둔 것을 발명하였다. 밥상
이 끝난 뒤에도 바깥주인은 한동안 앉아서 한담하다가 "곤한데 그만 주무시오. "
"도령 잘 자게. " 인사하고 안방으로 올라갔다. 유복이가 안해를 아랫목 편에 눕
히고 그 옆에 누워서 한동안 소곤소곤 이야기하다가 잠이 막 들려고 할때 "어느
새 주무시오? " 하고 안해가 몸을 건드렸다. "공연히 염려 말구 어서 자. " "나
좀 바래 주실라오? " "어디 가게? " "뒷간에 좀 갔다 왔으면 좋겠어요. " "진작
갔다오지. " "바래 주기 싫소? " "왜 싫기는. 어린애처럼 안구 가서 누여라도 주
지. " 유복이가 안해를 데리고 부엌 뒤에 떨어져 있는 뒷간에 왔을 때 안방에서
나직나직한 말소리가 나더니 말소리가 차차 커지며 말다툼 소리로 련하여 똑똑
히 들리었다. "물건이나 빼앗으면 고만이지 사람을 왜 죽인단 말이오? " "죽이지
않으면 물건을 빼앗을 수 있나. " "저러니까 자식을 못 길러요. " "그렇지 않으면
당장 먹구 살 수가 있어야지. " "뚝심 믿고 저러다가 혼나리다. 그 형이란 사람
이 호락호락해 보이지 않습디다. " "염려 마라, 칼까지 가지구 맨손 든 놈을 못
당할까. " "여보, 그 동생차이까지 죽일 작정이오? " "그럼, 남겨두면 후환이야. "
"제발 마오. 불쌍하지도 않소? " "죽은 뒤에 극락으루 가라지. " "여보, 내가 가
서 그 무명을 달래보리다. " "이 사람 정신없는 소리 작작 하게. " 유복이의 안
해는 뒷간에 주주물러 앉아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것을 유복이가 붙잡고 방으로
들어와서 "우리두 죽지 않구 무명도 빼앗기지 않을 테니 걱정 말구 가만
히 누워 있어. " 하고 벌벌 떠는 안해를 억지로 눕힌 뒤에 보따리 속에서 표창
두어 개를 꺼내서 손에 쥐고 안해 옆에 누웠다. 유복이의 안해가 겁나는 마음을
조금 가라앉힌 뒤에 "어떻게 해요? “ 하고 얼굴을 남편의 가슴에 대니 유복이
는 "쪼끔두 걱정 마라. " 하고 안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뚝심이 있다는
데. " "그까진 놈키 뚝심이 있으면 얼마나 있을라구. " "환도나 손에 가지고 기세
요. " "환도버덤 표창이 나으니 아무 소리 말고 가만히 있어. " "이 집에 올 때부
터 맘이 뜨아했어요. " "잘하면 우리가 맹산까지 갈 것두 없이 여기서 살게 된
다. " "어째서? " "도둑놈을 요정내면 이 집이 우리 집 되지. " "사람 죽이지 말
라고 말리던 마누라쟁이까지 죽이구요? " "놈팽이 원수를 갚으러 대어들면 마저
요정내지 별수 있나. " 이때 마당에서 신발 소리가 났다. "인제 오는군. 가만히
누워서 보구만 있어. " 하고 안해에게 당부하고 유복이는 방문 맞은편에 가 누워
서 방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발 소리가 닫힌 방문 앞에 와서 그치더니 "손님
주무시오? " 하고 말 묻는 것이 안주인의 목소리다. 유복이가 일어 앉으며 "안
잡니다. " 하고 대답하니 안주인이 방문도 열어보지 않고 "동생 깨워가지고 얼른
도망하시오. 대문 빗장을 따놓았소. 탑고개로 나가려거든 서남방을 향하고 가시
오. 어서 동생을 깨우시오. 조금 지체하다간 큰일나리다. " 하고 급히 말하고 곧
돌아서 가는 신발 소리가 났다. "마누라쟁이가 아까두 여러 가지루 놈팽이를 말
리더니 일부러 우리에게 와서 귀띔까지 해주네그려. " 유복이의 안해도 일어나서
쪼그리고 앉았다. "도망합시다. " "캄캄한데 도망이 다 무어야? " "산에 가서 숨
읍시다. " "짐생이 나오면 어떻게 할 테야? " "그러니 어떻게 해요. " "어떻게 하
긴 무얼 어떻게 해. 가만히 있지. 그렇지만 맹산 안 가기는 틀렸는걸. " "또 어째
서? " "마누라쟁이 사정 보아서 놈팽이를 아주 요정댈 수가 없으니까 말이지. "
"여기서 무사히 나가서 맹산만 가게 되면 고만 더 바랄 것이 없지요. ” 유복이
내외가 한동안 앉아 있었으나 아무 기척이 없어서 나중에 유복이가 "이렇게 앉
았을 것 없이 드러눕지. " 하고 말한 뒤 먼저 안해를 눕히고 다음에 자기도 누웠
다. 유복이가 곧 누우며 눈을 감으니 안해가 "자지 마세요. " 하고 옆구리를 쑤
시었다. 등잔의 기름이 다 달아서 심지에서 빠지지 소리가 날 때 방문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유복이의 안해는 사지를 오그리고 누워 있고 유복이는 아주 일
어 앉아서 방문을 바라보고 있는데, 방문이 버썩 열리며 칼빛이 번쩍하였다. 유
복이가 손에 들고 있던 표창을 얼른 내쳤다. 칼이 쨍그랑하고 떨어졌다. 유복이
가 일어서는 결또 발길을 날리어서 그자의 가슴을 내지르고 쿵하고 마당에 나가
자빠지는 것을 뒤쫓아 뛰어나가 한 발로 가슴을 밟고 서서 "이놈, 네가 죽고 싶
어 성화냐! " 하고 호령하니 그자는 셈평 좋게 활개를 벌리고 누워서 "에라 발
치어라. 가슴이 답답하다. " 하고 핀등핀등 말하여서 유복이는 도리어 어이가 없
어졌다. 이때 안방에서 주인마누라가 뛰어내려오고 아랫방에서 유복이 안해가
쫓아나왔다. 희미한 별빛 아래 주인마누라가 한번 살펴보고 영감의 가슴을 밟고
섰는 유복이에게로 가까이 오더니 대번에 꿇어 앉아서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
다. 유복이의 안해가 남편 옆에 와서 가만히 손을 잡아당기니 유복이는 그자를
내려다보며 "네 마누라의 인정이 갸륵하이에 십분 참구 용서한다. " 하고 발을
내려놓으니 그 마누라가 황망히 영감자를 붙들어 일으켰다. 유복이가 그자의 바
른손에 박힌 표창을 뽑아낼 때 그자는 "그게 무엇이냐? 꽤 아프다. " 하고 왼손
바닥으로 피 나오는 것을 눌렀다. 그자가 "일수 불길해서 봉변이로군. " 하고 두
덜거리며 그 마누라의 부축을 받고 안방으로 을라간 뒤 유복치는 아랫방 방문턱
에 떨어진 칼을 집어서 담 너머로 팽개치고 안해와 같이 방안으로 들어왔다. 유
복이가 표창을 씻어넣고 바로 드러눕는데 안해는 뒤가 염려되어서 "여보, 앉아
샙시다. 그리고 내일 아침 새벽 떠납시다. " 하고 잡아 일으키려고 하였다. 남편
은 안해더러 누우라거니 안해는 남편더러 일어나라거니 내외가 실랑이마는 중에
안방 지겟문을 여닫는 소리가 나고 찍찍 끄는 신발 소리가 아래로 내려왔다. "손
님 누우셨소? “ 하고 주인마누라가 방문 밖에 와서 말을 물었다. 유복이가 누
워서 ”녜. “ 하고 대답하니 "좀 일어나시오. " 하고 마누라쟁이가 방문을 열었
다. "안방으로 좀 올라가십시다. 영감자가 화해술을 드린답니다. " 유복이가 말대
답하기 전에 안해는 가만히 옷을 잡아당기어 가지 말란 뜻을 보이었다. "술을 먹
구 싶지 않소이다. " "형제분 다 잠간만 올라가십시다. 도령 자실 떡도 있습니다.
" "동생은 속탈이 나서 밤뒤까지 보았
는데요. " "그러지 말고 잠간만 올라갑시다. 수상한 음식이 아닙니다. 그런 음식
이면 내가 올라가시자지 않습니다. " 하고 마누라쟁이가 간절히 청할 때 영감자
까지 마저 쫓아내려와서 유복이를 보고 "사내자식이 싸우면 적수요, 사귀면 친구
지 잔말 말구 올라갑시다. "
하고 너스레를 놓고 방안으로 들어오더니 "술을 이리 가져오랄까. 이왕이면 널찍
한 안방으루 올라갑시다그려. “ 하고 곧 유복이의 가짜 아우에게로 가까이 와
서 "도령부터 일어서게. " 하고 동여맨 바른손을 아끼느라고 왼손으로 등을 툭툭
두들겼다. 유복이 내외가 졸리다 못하여 주인 내외를 따라 안방에 올라와서 자
리잡고 앉은 뒤에 주인마누라가 계집아이를 데리고 크고 작은 상 둘을 차려다
놓는데, 큰 상에는 탁배기 한 방구리와 육포 대여 섯 쪽이 놓이고 작은 상에는
백설기 그릇과 꿀종지가 놓이었었다. "도둑놈의 술이라구 의심내지 마시우. 내차
먼저 맛보리다. " 하고 주인이 너털웃음을 웃고 탁주를 한 사발 떠서 들이키고
육포
쪽을 뜯으면서 "떡두 자네가 먼저 맛보구 도령을 권하게. " 하고 그 마누라에게
말을 일렀다. 유복이는 주인과 술사발을 주고 받고 하고 유복이 안해는 주인마
누라의 권에 못 이겨서 떡을 입에 넣는 중에 주인이 신세타령을 내놓았다. 오가
는 본래 강음 사람으로 서을 가서 노름꾼으로 떠돌다가 부평 계양산으로 불려가
서 화적 괴수의 사위가 되고, 장인이 죽은 뒤에 안해와 딸을 데리고 고향으로
내려와서 가진 재물로 전지를 장만하고 농사짓고 살려던 것이 전지를 토호에게
먹히고 분김에 남은 재물을 거두어가지고 이 산속에 들어와서 자리를 잡은 지가
십 년이 넘었는데, 낫살이 많아지니 자연 신산한 생각도 나려니와 슬하의 일점
혈육인 딸자식이 죽은 뒤에 상성한 마누라가 적악한 탓이라고 사설하는 것이 듣
기 싫어서 몇몇번 벌잇길을 고치려고까지 생각하였으나 입에 맞는 떡은 얻기가
어렵고 배운 도적질은 하기가 쉬워서 이내 길을 못 고치고 지내는 터이었다. 주
인의 신세타령을 듣고 나서 유복이도 자기의 신세를 이야기하는데 자기가 유복
자로 난 것부터 부모의 원수 갚은 것까지 속임없이 이야기하였더니 주인은 다만
"효자요. 하늘이 아는 사람이오. " 하고 칭찬할 뿐이고 주인마누라는 고개를 살
래살래 흔들면서 "유복자라면 이 도령이 누구요? " 하고 물었다. 유복이가 대답
을 못하고 한동안 우물거리사가 마침내 "실상은 내 안해인데 여자 복색이 먼길
가는데 비편해서 남복을 시켜서 동생이라구. 했소이다. " 하고 토설하니 주인이
듣고 대번에 "남의 처자를 빼가지구 도망하는구려. " 하고 말하여 유복이는 고개
숙이고 앉았는 안해를 돌아보며 덕적산 장군당에서 내외 만난 일판을 죄다 이야
기하였다. 유복이 내외가 닭 울녘에 아랫방으로 내려왔다. 안해가 "당신은 술 취
하면 수다스럽구려. 우리의 본색을 왜 토설한단 말이오? " 하고 나무라니 유복이
는 "낯간지럽게 거짓말할 수가 있어야지. " 하고 발명하였다. "거짓말하기 싫거
든 잠자코나 있지요. " "잠자코 있게 되지 못했으니까 말을 했지. " "아무래도 본
정신이 아니에요. " "술 몇 사발에 설마 본정신을 잃을라구. " "그러면 남의 생각
도 좀 해주어야지요. 내 꼴이 무엇이오. 당신이 본색을 토설한 뒤에 나는 내처
얼굴을 못 들었소. " "잘못되었네. 이 앞으루 다시는 본색을 드러내지 아니함세.
" 남편이 납고하여 안해의 말썽이 끝난 뒤에 내외는 누워서 눈을 붙이는 체 만
체하였다. 이튿날 식전에 유복이 내외가 길을 떠나려고 하다가 주인 내외가 다
진심으로 묵어가라고 붙드는데, 더욱이 주인마누라가 지성스럽게 붙들어서 못
떠나고 묵게 되었다. 아침밥을 먹은 뒤에 유복이의 안해는 주인마누라를 따라서
안방으로 올라가고 유복이는 아랫방에서 주인과 같이 한담하는데, 이야기는 주
인의 벌잇길로부터 시작되었다. "아무리 배운 재주라두 험한 벌이라 의외의 고생
이 많으시겠소. " "고생뿐이겠소? “ 죽을 곡경을 당할 때가 많지. 그렇지만 우
리 상사람으로서 양반에게 먹히지 않구 아전에게 발리지 않는 벌이가 달리 또
어디 있소? " "벌이는 여일히 어디서 나오? " "담을 넘구 지붕에 오르는 것은
이왕 배운 재주니까 전에는 송도부중까지 들어가서 집뒤짐을 다녔지만 지금은
낫살두 먹구 마누라가 하두 성화를 재서 집뒤짐은 고만두구 장내기나 뜨내기를
가지구 지내가우. " "장내기는 무어구 뜨내기는 무어요? " "장내기는 장꾼을 치
는 것이구 뜨내기는 예사 행인을 떠는 것이구 또 집뒤짐이란 것은 남의 집에 가
서 재물을 뒤지는 것인데, 주인 시켜 뒤져내는 것이 원뒤짐이구 주인 몰래 뒤져
오는 것이 까막뒤짐이오. " 변풀이 끝에 재주 자랑이 나오고 재주 자랑이 표창질
이야기를 자아내어서 .유복이는 주인의 청으로 표창을 꺼내서 구경까지 시키었
다. 이때 안방에서는 주인마누라가 유복이 안해를 데리고 이 말 저 말 묻다가
맹산 갈 것 없이 여기서 자기들과 같이 살자고 달래기 시작하였다. "단지 피신하
기로 말하면 여기 있는 것이 맹산 가는 것보담 더
든든하고 맹산들 간다고 해야 별로 시원할 것이 없는 모양이니 여기서 우리와
같이 지냅시다. 우리도 고적한 사람이니 같이 지내면 서로 다 좋지 않소. 여기서
는 산상골이 가까우니 부모도 쉬이 만나볼 수 있지 않소. " 다른 말도 유리하려
니와 부모를 쉬이 만나볼 수 있단 말에 유복이의 안해는 마음이 솔깃하여졌다. "
내가 수양딸 노릇이나 하고 지낼까요? “ ”그러면 작히 좋겠소. 내 딸이 살았
으면 당신 연갑세요. 말이 난
길에 우리 아주 작정합시다. " "영감님께 말씀을 하셔야지 나도 말을 해보아야겠
세요. " "아랫방에서들 올라오래서 한자리에서 이야기합시다. " 주인마누라가 소
리를 쳐서 아랫방에서들 이야기를 그치고 안방으로 올라온 뒤 주인마누라가 둘
이 지금 공론한 것을 살하고 의향들을 물으니 주인은 손뼉을 치며 "그것 참 좋
은 공론이 났네. " 하고 싱글벙글 좋아하고 유복이는 한동안 말이 없이 앉았다가
"글쎄요. " 하고 두동싸게 말하였다. 주인 내외가 번갈아가며 쾌히 허락하라고
졸라서 나중에 유복이가 "수양딸 노룻할 당자가 좋다면 고만이지요. " 하고 말하
여 수양딸 공론이 작정이 되었다. 주인 내외가 수양딸인 유복이 안해의 절을 받
고 나이를 따져보니 그 마누라보다 두 살 아래 마흔여덟인 주인 오가가 유복이
에게 십사 년 장이라 주인이 "우리 내외가 나이 장인 장모 노룻하기 넉넉하군. "
하고 유복이를 보고 웃었다.
유복이는 도적놈의 사위 명색 노릇 하기를 탐탐히 생각하지 아니하나, 걸음
못 걷는 안해를 데리고 맹산 갈 것이 한걱정이던 차에 먼길 아니 가고 안돈하게
되어서 다행히 여기는 맘도 없지 아니하였다. 유복이 안해는 곧 여복으로 갈아
입고 하루 이틀 지난 뒤부터 주인마누라의 살림살이를 거들어 주고 유복이는 흔
히 사냥질하러 다니고 간간이 오가의 벌이하는 것을 구경 따라다니고 틈틈이 쇠
끝을 가지고 자작으로 쇠 표창도 만들고, 또 그전 나무 꼬챙이 던지던 것을 생
각하고 왕대를 쪼개서 댓가지 표창을 여러 죽을 깎아 만들었다. 노인이 준 표창
스무 개는 보물로 여기는 까닭에 잃어버려도 좋을 마구 쓸 것을 만든 것이었다.
밤저녁 같은 때 유복이 내외가 단둘이 아랫방에 들어앉으면 안해가 하루바삐 부
모에게 통기하여 달라고 남편을 졸랐다. 유복이가 처금에는 차차 기별하자고 미
루다가 나중에 졸리다 못하여 오가를 보고 의논하니 오가 말이 "나두 펼쳐놓고
나다니기가 재미없지마는 자네버덤은 외려 나은 형편이니 내가 한번 산상골을
갔다옴세. " 하고 유복이 처가에 소식 통할 것을 오가가 담당하였다. 며칠 뒤에
오가가 이른 새벽에 떠나서 산상골을 갔다가 그날로 돌아오는데 소식만 전하고
올 뿐 아니라 최서방 내외를 데리고 왔었다. 최서방은 딸을 보고 눈자위만 붉었
지만, 최서방의 안해는 딸을 얼싸안고 방성통곡하여 옆에 사람도 말리려니와 그
딸까지 비오듯 하는 눈물을 억지로 거두고 "어머니 고만두시오. 고만 그치시고
인사들이나 하시오. " 하고 말리었다. 최서방은 나이 갓마흔이고 그 안해는 남편
보다 삼년 위인 마흔셋이라, 유복이가 사위라도 나이 많아서 사위로 대접하기가
뻑뻑하고 게다가 더욱이 초면이라 내외가 다 말이 서름서름한데 주인 내외는 그
동안 벌써 정숙하여져서 여보게 저보게 하고 말하여 유복이에게는 가짜 장인 장
모가 도리어 정말 장인 장모인 것 같았다. 최서방 내외가 그날 밤에 아랫방에처
딸 내외와 같이 자며 장군당에서 도망한 전후 곡절을 자세히 물은 뒤에 도망한
뒤 장군당 일을 들리어 주었다. 장군 마누라에게 시중드는 무당이 장군 마누라
없어진 것을 급히 선생 무당에게 알리어서 먼저 무당들끼리 공론하고 다음에 각
동 동임들에게 기별하여 곧 장군당에서 작은 굿을 차리고 장군 마누라 없어진
사정을 장군에게 취품하게 되었는데 장군의 신이 무당에게 내리어서 무당이 펄
펄 뛰며 "고년이 맨망스러운 년이다. 고년의 얼굴이 맘에 들기에 데려왔더니 고
년이 조석 분향하기도 죽기보다 싫어하고 더욱이 내 말이 없이 남복을 지어 입
었더라. 내가 노염이 나서 고년을 하인놈 내주었다. 산상골 최가는 딸의 죄로 벌
역을 받음직하지싸는 아무라도 자식을 겉낳지 속낳는 것이 아니니까 특별히 생
각해서 용서하여 줄 터이다. 내가 마누라 없이는 하루를 지나기가 어려우니 저
기 앉은 마월동 일좌의 셋째딸을 하루바삐 새 마누라로 들여세워라, 너희들 다
알았느냐. " 하고 공수를 주었었다. 최서방의 안해는 그때 자기 귀로 들은 무당
의 공수 주던 말을 흥내까지 내어 말에게 들려주고 "그래 우리는 네가 호환에
간 줄로만 알았지, 이 세상에 살아 있는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었다. " 하고 다
시 눈물을 흘리었다. 최서방 내외가 죽은 줄 알았던 딸을 찾아서 마음에 공생스
러웠으나 그래도 혹시 뒤에 최장군의 벌역이 있을까 겁이 나서 내외가 다같이
염려하는 것을 유복이가 "염려들 마시오. 벌역이 있으뎐 벌써 내렸지 이때까지
있겠소. " 하고 말할 뿐 아니라 그 딸까지 "염려 마세요. 장군도 사람 보아 가며
벌역을 내리시는가 보아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살아 있겠세요. " 하고 말하여
적이 안심들 하였다. 최서방 내외가 하루 묵고 떠날 때에 딸이 차차 보아가며
집에도 다니러 갈 수 있겠느냐고 물으니 그 아버지 최서방이 "천만의 말이나. 너
희 내외 다 을 생각 마라. 장군의 벌역이 없더라두 동네 사람이 알면 큰일이다.
우리가 너를 보구 싶으면 남 몰래 슬그머니 와서 다녀가마. " 하고 말하였다. 이
까닭에 유복이 내외가 청석골에 살면서 사십리 남짓한 산상골에는 끝끝내 발을
들여놓지 아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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