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끝의 카페 프롤로그 01~10

단차 | 2023.12.10 17:16:13 댓글: 0 조회: 167 추천: 1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27619






서문

당신이 세상 끝의 카페에 도착한 이유





세상 끝의 카페에 여러분을 초대할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수백만 가지의 가능성 속에서, 여러분이 곧 발견하게 될 이유 때문에 이 이야기와 여러분은 곧 하나가 될 것입니다. 그 이유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특별한 이유일 거라 믿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아니라면 오늘 여러분이 이 책을 펼쳐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테니까요.

여러분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여러분의 기운과 이 책이 가진 기운이 왜 서로를 부르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이 이야기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이유는 곧 밝혀질 겁니다. 그러고 나면 그 기운이 가져다 준 깨달음에 미소를 짓게 될 겁니다.

지금까지 43개의 언어로 6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여러분이 곧 마주하게 될 영감을 경험했습니다.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가 저에게서 처음 흘러나오기 시작했을 때, 전 단 한 사람만이라도 이 영감을 나눌 수 있다면 보람 있으리라 생각했으니까요. 그리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오늘 그 한 사람이 바로 당신입니다.

수년 동안, 세계 이곳저곳 다양한 문화권의 독자들이 이 카페 이야기가 강력한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고 연락을 주셨습니다. 세상 어디에 살고 있건 우리들은 우리가 처한 상황이나 인생에 대한 고민, 그리고 여러 가지 생각 면에서 생각보다 공통점이 많은 듯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삶의 여정에 있어서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위안을 받습니다. 지구상에 나와 같은 마음으로 생각하며 탐색하는 사람들이 이곳저곳에 흩어져서 살고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큰 위안이 아닐 수 없습니다. 비록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의 작은 부분은 서로 다를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많은 면에서 공통 분모를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펼쳐질 이 책에서는 단순히 존재하는 것 그 이상의 삶을 원하고 추구하는 사람을 만나게 될 겁니다. 모험을 떠난다는 것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모험을 떠나는 사람을요.

저는 이것이 이 이야기로 위로를 받은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공감대라고 믿습니다. 이 지구상에서 좀 더 의미 있고 영감에 찬 하루하루를 살고자 하는 집단적 열망 말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여러분이 ‘세상 끝의 카페’를 찾게 된 이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만나게 될 카페에서 보내는 모든 발견의 순간을 만끽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발견을 인생에 적용하며 정말로 멋진 인생을 살길 기원합니다. 자 그럼 출발해볼까요?

인생이라고 불리는 놀라운 모험을 여러분과 함께하는 여행자로부터.




Prologue


그날 밤 나에게는 그 카페가 필요했다







우리는 때로 전혀 예기치 못한 순간 뜻하지 않은 곳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 인생의 의미를 다시 깨닫게 될 수도 있다. 그런 순간은 의식하고 있지는 못해도 우리 인생에서 가장 필요한 순간 다가온다. 내게도 그런 순간이 찾아왔다. 그날 나는 어두컴컴하고 인적이 드문 도로 위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 돌이켜 생각하니 그 당시 내 상황은 내 인생을 닮은 모습이었다. 그날 길을 헤매던 나는 나의 삶에서도 길을 잃어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했고, 그때 택한 발걸음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내가 왜 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나는 일주일간의 휴가를 내어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일과 관련된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하루 열 시간에서 열두 시간을 네모난 사각형 안에서 일하는 것이 인생의 전부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대학 입시만 바라보며 사느라 정신없었고, 대학 시절에는 어떻게 하면 좋은 직장을 구해 돈을 많이 벌까 하는 생각에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결국 사회에 나와서는 승진만을 고대하며 일에 치여 피곤한 나날을 보냈다.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오기까지 이끌어준 사람들은 결국 그들이 걸었던 길을 그대로 반복하도록 나를 인도한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월급을 받는 대가로 하루하루를 직장에 바쳐가며 사는 일상에 회의를 품기 시작했다. 돈을 대가로 내 시간을 모두 바치다니, 그건 공정한 거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에 빠져 있던 나는 휴가를 떠났다가 길을 잃었고, 한참을 헤매고 나서야 ‘세상 끝의 카페’를 발견하게 되었다.

내가 그곳에서 겪은 이야기를 들려줄 때면 사람들은 ‘신비롭다’ 같은 단어를 쓰며 반응하는데, 사실 나 스스로도 간혹 그 일이 진짜 있었던 일인지 의심스러워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책상 서랍을 뒤져 카페 종업원 케이시가 건네주었던 메뉴판을 다시 읽어본다. 그리고 메뉴를 보는 순간 그때 그 일이 생생한 현실이었음을 다시 한 번 실감한다.

그날 이후 나는 그때 갔던 길을 되짚어 그 카페를 다시 찾아가 보는 수고는 하지 않았다. 그날 겪은 일이 꿈이 아닌 현실이라고 해도 그곳이 환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공간이라고 믿고 싶은 바람이 마음 한구석에 도사리고 있었던 것 같다. 그날 밤 나에게는 그 카페가 필요했고, 그런 이유로 카페가 그곳에 존재했던 것이리라. 나는 그냥 그렇게 믿고 싶었다.

언젠가 그곳에 다시 가보고 싶은 순간이 올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날처럼 밤길을 헤매다 우연히 그곳을 다시 찾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카페 안으로 들어가 케이시와 마이크 그리고 앤에게 그날 그 카페에서의 하룻밤이 내 인생을 어떻게 바꾸어놓았는지 이야기해줄 것이다. 그때 그 질문 덕분에 내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고, 또 상상도 하지 못했던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되었는지 말이다.

누가 알겠는가? 지난날 나처럼 길을 헤매다 우연히 ‘세상 끝의 카페’에 들른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며 하룻밤을 다시 지새우게 될지……. 혹은 그날 겪었던 일을 책으로 펴내 그 카페의 존재 이유를 알리는 데 나 나름의 기여를 하게 될지…….


당신은 왜 여기 있습니까?

죽음이 두렵습니까?

충만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01

고속도로 정체







내 차는 고속도로 위를 기어가고 있었다. 차가 움직이는 속도가 얼마나 느리고 답답한지 차라리 차를 버리고 걷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걸어가는 게 자동차 레이스처럼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그렇게 한 시간쯤 기어가다 보니 도로는 완전히 주차장이 되어버렸고 나는 옴짝달싹 못 하고 차 안에 갇힌 꼴이 되고 말았다. 답답한 마음에 라디오 버튼을 눌러대며 방송이라도 들어볼까 했지만, 들을 만한 프로가 없어 라디오마저 꺼버렸다.

그렇게 한 20분쯤 흘렀을까? 꿈쩍도 하지 않고 정체되어 있는 차 안에 하염없이 앉아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차 문을 열고 나오기 시작했다. 밖으로 나온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었지만 일단 나와서 불만을 토로하다 보니 다들 기분이 조금씩 풀리는 눈치였다. 이런 경우를 두고 동병상련이라고 하는 걸까. 바로 내 앞에서 미니밴을 운전하던 사람은 6시까지 호텔에 도착하지 못하면 예약이 자동 취소될 거라며 어쩔 줄 몰라 했고, 내 옆에서 오픈카를 몰고 가던 여성은 도로 시스템이 엉망이라고 푸념하고 있었다. 내 차 뒤를 따라오던 버스에 한가득 타고 있던 리틀 야구팀 선수단 아이들은 보호자로 따라온 학부모를 들들 볶아대고 있었다. 부모들의 얼굴에서 앞으로 두 번 다시 봉사랍시고 이런 일에 따라나서지 않겠다는 다짐을 읽을 수 있었다. 도로를 따라 늘어서 있는 차량 행렬만큼이나 긴 불만의 물결 속에서 나는 미세한 점 하나에 불과했다.

그런 상태로 또다시 25분 정도 흘렀을까. 중앙 분리대 역할을 하라고 심어놓은 잔디를 가로질러 경찰차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경찰은 차에 탄 채로 몇 미터씩 주기적으로 차를 세우며 주차장이 되어버린 도로 위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뭐라고 소리를 치고 있었다.

드디어 우리 쪽에서도 경찰의 목소리가 들릴 만큼 경찰차가 가까이 다가왔다. 경찰은 10킬로미터쯤 앞쪽에 독성물질을 싣고 가던 트럭이 전복되어 도로가 봉쇄되었다고 알려주었다. 이 도로 정체의 주범은 전복된 트럭이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다른 길로 가든가(대체 다른 길이 어디 있는데?) 아니면 청소 작업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친절한 안내까지 덧붙였다. 참고로 청소 작업은 한 시간 정도 걸릴 거라고 했다.

나는 경찰이 내 뒤로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운전자들에게도 같은 이야기를 전하러 가는 모습을 우두커니 지켜보았다. 그리고 미니밴 운전자가 6시까지 호텔에 도착하지 못할 거 같다며 걱정하는 소리를 듣는 순간, 내 인내심은 한계에 도달하고 말았다.

“기분 전환 한번 하려면 항상 이 모양이더라……. 도대체 이게 뭐야.”

나는 차를 몰고 가다 우연히 만난 새 친구들에게 더 이상 참을 수 없으니 다른 길로 가겠다고 선언했다. 그러자 마지막까지 6시 호텔 예약을 들먹이던 미니밴 운전자가 길을 비켜주었다. 그 덕분에 나는 중앙 분리대를 넘어 반대 방향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02


낯선 지명의 이정표







일단 정체에서 벗어난 나는 휴대폰을 열어 지도를 검색하기 시작했지만 ‘검색 불가’ 메시지만 화면에 떴다. 가고픈 방향은 북쪽인데 나는 남쪽으로 차를 몰고 가고 있었다. 별다른 뾰족한 대안이 없는 상황에 짜증만 깊어져 갔다. 빠져나갈 도로 입구 하나 보이지 않는 길이 10, 20, 30킬로미터 계속 이어졌다.

그런 상태로 한 50킬로미터쯤 달렸을 때 마침내 작은 표지판이 나타났다. “하지만 이제 표지판이 소용없겠네. 어디쯤 왔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나도 모르니.” 이렇게 중얼거리는 동안 좌절감만 더해갔다. 그 앞에서 차를 세우고 나는 생각에 잠겼다.

‘세상에…… 주유소도 없고, 패스트푸드점도 하나 없는 고속도로에 혼자 덩그러니, 내가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

왼쪽을 봐도 오른쪽을 둘러봐도 아무것도 없이, 황량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제기랄, 이래선 어느 쪽으로 가든 큰 차이 없을 것 같은데…….”

우선 우회전을 했다. 다음 표지판에서 다시 우회전을 하면 적어도 북쪽으로 갈 수 있을 거라는 계산에서였다. 도로는 달랑 2차선이었다. 이쪽으로 가면 오던 길에서 멀어지고, 저쪽으로 가면 오던 길 쪽으로 갈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계산이 맞는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지나가는 차량도 없었고, 인가나 문명의 흔적 같은 것은 더더욱 찾아보기 힘들었다. 아까는 집이나 농장이라도 드문드문 눈에 띄었는데 이제는 나무와 목초지 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한 시간쯤 뒤 나는 완전히 길을 잃고 말았다. 그동안 지나쳐온 교차로는 길이 좁은 데다 내가 이상한 곳에 와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듯한 낯선 지명의 이정표들뿐이었다. 그리고 내가 지금 달리는 도로는 ‘구舊 65번 도로’였다. 내 앞길은 어둠만이 깔려 있었고, 아무리 달려도 사람 머리털 하나 구경할 수 없었다. 다음 교차로도 내가 지나쳐온 교차로와 크게 다르지 않아 절망적인 마음으로 또 다시 우회전을 했다. 내가 지금 어디 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으로는 가고 있었다. 하지만 절망적이게도 도로 표지판은 여전히 ‘구’로 시작하고 있었다.


03


세상 끝으로 가는 길







그렇게 한 시간이 더 지났다. 태양은 이미 지평선 너머로 기울었고, 하루해가 저무는 만큼 내 좌절감은 점점 더 깊어져 갔다.

“고속도로에서 조금만 더 참고 그냥 기다렸어야 했는데…….”

나는 누구에게라고 할 것도 없이 혼자 투덜거렸다.

“한 시간만 참고 기다릴걸. 그걸 못 참아 두 시간을 허비한 데다 지금은 여기가 어딘지 알 길도 없으니…….”

나는 애꿎은 자동차 지붕을 주먹으로 때렸다. 그리고 다시 20킬로미터 정도를 더 달렸지만 여전히 길가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 연료도 반 이상 써버렸고 차를 돌릴 수도 없었다. 남은 연료로는 내가 출발한 곳까지 되돌아갈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왔던 길을 다시 제대로 찾아갈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지나온 길가에는 주유소도 하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이대로 주욱 가다가 기름을 넣고, 배도 채울 수 있는 곳을 찾는 것뿐이었다. 연료 눈금이 계속 내려가는 것과 반비례하여 가슴속 분노는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사실 애초에 휴가를 내려고 한 이유가 지금 같은 분노와 좌절감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것이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직장 일과 밀려드는 고지서, 그리고 성공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나는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나는 소진된 인생의 배터리를 여행으로 충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여행길 초입부터 상황은 내가 원하는 것의 정반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정말 이해가 안 가는군.”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다 소모하고, 충전하고, 또 다 소모하고 재충전하고. 그래서 결국 내가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단 말인가.”

20분이 더 지났을 때 이제 태양은 완전히 나무들 아래로 내려앉았고,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다. 구름 속에 남아 있는 불그스름한 오렌지색 자취만이 낮에 떠 있던 태양의 여운을 간직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늘은 장관이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처한 한심한 상황에 사로잡혀 아름다운 석양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여전히 인가는 눈에 띄지 않았으며, 연료 눈금은 달랑달랑 위험한 하강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이제 4분의 1도 채 남지 않았군.”

대학 때 방학이 되어 집까지 차를 몰고 갔던 그 시절 이후 나는 차에서 밤이슬을 피해본 적이 없었다. 차에서 자는 건 결코 유쾌한 일이 못 되었다. 하지만 잠잘 곳을 찾지 못하면 다른 도리가 없었다.

‘눈 좀 붙여야 해. 그래야 연료가 떨어지기라도 하면 걸어가서라도 구조를 요청할 수 있잖아.’



04


세상 끝의 카페







연료 계기판 바늘이 E로 시작되는 빨간 선 밑으로 미끄러져 내려갔을 때 멀리서 불빛이 보였다. 짜증이 난 상태로 교차로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돌리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물론 좌회전을 한다고 상황이 나아질 거라는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어쨌든 왼쪽으로 돌았는데 적어도 그 도로는 도로명이 ‘구’로 시작되지 않았다는 점이 당시 나의 선택을 정당화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였다.

“그래도 왼쪽으로 돈 보람이 있었네.”

나는 불빛을 보자 기뻐 크게 소리쳤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 불빛은 거리의 가로등이었다. 정말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 위에 하얀 가로등 불빛 하나만 환히 빛나고 있었다.

“제발 뭐든 좀 나와다오.”

나는 불빛 쪽으로 차를 몰며 간절한 마음으로 주문을 걸듯 중얼거렸다. 내 바람에 화답이라도 하듯 그곳에는 분명 뭔가가 있었다. 나는 불빛을 쫓아 도로에서 벗어나 흙과 자갈이 깔린 주차장 안으로 들어섰다. 주차장 건너편에는 작은 건물이 한 채 서 있었고 하얗고 네모진 건물 지붕 위에는 ‘세상 끝의 카페’라고 적힌 파란색 네온 간판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런 곳에 카페가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놀라웠는데 주차장에는 차가 세 대나 서 있었다. ‘저 차들은 대체 어디에서 온 걸까? 내가 왔던 방향에서 온 건 아니겠지 설마?’ 그 카페에 도착할 때까지 운전해 오는 동안 마주친 차는 한 대도 없던 터였다. ‘잘됐네. 카페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이 황량한 곳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보이겠지.’

차에서 내린 나는 일단 기지개를 켜며 뻣뻣하게 굳은 몸을 풀어준 후 카페 입구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주위는 벌써 깜깜했고 하늘에는 초승달과 셀 수 없이 많은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카페 문을 열자 문 안쪽에 붙어 있던 작은 종이 딸랑거리며 기분 좋은 소리를 냈다. 그리고 뜻밖에도 아주 맛있는 음식 냄새가 내 코를 자극했다. 순간 갑자기 허기가 강렬하게 느껴졌다. 그런 냄새를 풍기는 음식이 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그게 무엇이든 3인분쯤은 너끈히 먹어 치울 수 있을 것 같았다.

05


여긴 안전한 곳이에요







카페는 오래된 식당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폭이 좁고 긴 흰색 카운터가 먼저 눈에 띄었고 그 아래 의자 바닥에 붉은색 쿠션을 댄 등받이 없는 의자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었다. 또 붉은색 칸막이로 나뉜 자리가 몇 개 있었고 칸막이 안에는 탁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탁자 위에는 설탕 그릇, 커피용 우유 그릇으로 짐작되는 조그만 은색 그릇들과 소금통 그리고 후추통이 놓여 있었다. 문 쪽 가까운 스탠드에는 낡은 현금 계산기가 있었고 그 옆에는 목제 옷걸이가 걸려 있었다.

아주 아늑한 느낌을 풍기는 곳이었다. 편하게 앉아서 친구와 오랫동안 이야기라도 나누고 싶은 분위기였다. 이런 곳에서 같이 시간을 보낼 친구 하나 없다는 게 안타까울 지경이었다. 내가 들어서자 구석에서 손님 두 명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웨이트리스가 나를 쳐다보며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어서 오세요. 맘에 드는 자리 아무 데나 앉으세요.”

나는 지난 네 시간 동안 꾹꾹 눌러온 짜증을 가까스로 참고 미소로 답하려 기를 쓰며 입구 쪽에 자리를 잡았다. 앉으면서 보니 붉은색 비닐 의자는 아주 새것이었다. 주변을 천천히 살펴보니 의자뿐 아니라 다른 집기도 모두 새것이었다.

‘이 근처에 대규모 신도시라도 개발되는 걸까? 세상에 이런 허허벌판에 새 카페를 짓다니.’

이 지역 부동산 시세는 어떨까? 이 지역에 주택이 개발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을 막 하고 있을 때 귀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까 그 웨이트리스였다.

“안녕하세요. 케이시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케이시. 존이라고 합니다. 운전하고 오다 길을 잃었습니다.”

“그렇군요, 존.”

케이시가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내 이름이 존이라는 것을 알아들었다는 얘긴지, 내가 길을 잃어서 안됐다는 것인지 모호한 대답이었다.

“어쩌다 저희 카페까지 오시게 된 거죠?”

“휴가 중인데 목적지에 닿기도 전부터 길이 막혀서 방향을 틀어 달리다 보니 결국 여기까지 왔네요. 중간에 길을 잃고 헤맨 거죠. 그 와중에 차에 기름도 떨어지고 배도 고파서 지금은 거의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에요.”

내가 하소연을 마치자 케이시는 또 아까처럼 장난스러운 미소를 띠었다.

“배고픈 건 저희가 어떻게 해결해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머지 문제는…… 글쎄요, 한번 두고 보시죠.”

케이시는 메뉴판을 들고 와 건네주었다. 불빛 때문인지 아니면 오랜 운전으로 눈이 피곤해서인지 케이시가 메뉴판을 건넬 때 표지에 있던 글자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정말 피곤하긴 한가 봐.’

이렇게 생각하며 메뉴판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케이시는 주머니에서 조그마한 주문접수 용지를 꺼내며 물었다. “메뉴를 보시는 동안 마실 것 먼저 준비해드릴까요?”

내가 레몬을 띄운 물을 주문하자 케이시는 바로 주방으로 향했다. 오늘은 정말 뜻밖의 일들만 계속 벌어지는군. 고속도로에서 길을 잃고 몇 시간 동안 헤매질 않나, 카페가 홍두깨처럼 나타나고, 거기다 장난기 어린 미소를 띤 웨이트리스까지……. 나는 메뉴판을 들고 표지부터 읽기 시작했다.

“‘세상 끝의 카페’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메뉴판 위쪽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고 그 밑에는 검은색으로 작게 쓴 글이 적혀 있었다.

“주문 전에 먼저 저희 직원에게 여기에서 보내는 시간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상담해보시기 바랍니다.”

“여기에서 보내는 시간 동안 뭔가 먹을 수 있다는 뜻이었으면 좋겠는데…….”

나는 혼잣말을 하며 첫 장을 넘겼다. 첫 장에는 카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메뉴들이 죽 나열되어 있었다. 아침 식사 메뉴가 왼쪽 위에, 그 밑에는 샌드위치, 오른쪽 위에는 전채 요리와 샐러드, 그 아래는 후식. 그리고 거기서 한 장을 더 넘긴 순간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거기엔 ‘기다리는 동안 생각해볼 것’이라는 제목 아래 다음과 같은 세 질문이 적혀 있었다.


당신은 왜 여기 있습니까?

죽음이 두렵습니까?

충만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어라. 스포츠 신문 훑어보는 거랑은 아주 다른데……. 뭔가 색다르군.’

다시 그 질문을 읽어보려는 순간 케이시가 물을 들고 다가왔다.

“주문하시겠어요?”

나는 메뉴판을 앞으로 돌려 카페의 이름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게 무슨 뜻이죠?”

“오, 오시는 분마다 자기만의 해석을 하더라고요.” 그녀는 알쏭달쏭 알 수 없는 대답을 했다. “그럼 이제 주문하시겠어요?”

나는 아직 주문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주문은커녕 재킷을 집어 들고 당장 이 카페에서 나가야 하는 것은 아닌가 고민스러웠다. 이런 곳에서 음식을 주문해도 괜찮을까? 뭔가 색다른 구석이 있는 카페인 것만은 분명한데 좋은 의미에서 그런 것인지 확신이 서질 않았다.

“케이시, 미안해요. 조금 이따가 주문할게요.”

“미안하긴요. 천천히 생각하세요. 조금 이따가 다시 올게요.” 이렇게 말하고 나서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한마디 덧붙였다. “그리고 걱정 마세요. 여긴 안전한 곳이에요.”




06 

  

  당신은 왜 여기 있습니까?

  

  

  

  

  

  

  나는 케이시가 저쪽 구석에 앉아 있는 손님들 쪽으로 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손님들에게 다가가 스스럼없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셋 다 미소를 짓고, 또 웃기까지 하는 걸로 봐서 뭔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듯했다.

  ‘그리 이상한 곳은 아닌 거 같은데. 그냥 아무거나 시켜볼까?’ 이런 생각을 하며 나는 다시 메뉴판을 집어 들었다. ‘대안도 없잖아. 기름도 바닥났고, 반경 300킬로미터 내에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데라곤 하나도 없는 것 같고……. 좀 이상하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별일 없었으니 괜찮겠지.’

  이렇게 생각하니 좀 안심이 되었다. 케이시가 주방으로 가더니 딸기파이 두 조각을 들고나왔다. 그러고는 나를 지나쳐 다시 손님들 쪽으로 걸어갔다. 그 모습을 보자 모든 걱정이 눈 녹듯 사라졌다.

  “딸기파이예요.” 케이시가 접시 위를 향한 내 시선을 알아채고 이렇게 말했다. “여기서 제일 맛있어요. 주문해보세요.”

  “오호!” 나는 놀라움에 이렇게 답했다. 딸기파이는 단연 내가 어렸을 때 가장 좋아한 음식이었다.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며, 나도 최근 몇 년간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다. ‘잠시 여기에 머물러야 한다는 계시 같군.’ 나는 생각했다.

 
 이상한 질문만 빼면 메뉴판에 실린 식사 메뉴는 괜찮았다. 나는 아침 식사 세트를 주문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침 식사 시간이 한참 전에 지나기는 했지만. 저쪽을 바라보니 웨이트리스는 아직도 그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마음을 정하고 메뉴판을 다시 읽어보았다.

  

  당신은 왜 여기 있습니까?

  

  음식점에 찾아온 손님에게 묻기 적당한 질문은 아닌 듯했다. 식당에 앉아서 음식을 먹는 사람이 자기가 식당에 왜 왔는지 모를 수도 있나? 그렇다고 식당 주인에게 할 질문도 아니었다. 식당 주인이면서, 사람들이 식당을 찾아오는 이유를 모를까? 당최 이해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당신은 왜 여기 있습니까?

 
 케이시의 목소리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던 나를 깨워주었다.

  “이제 주문하시겠어요?” 케이시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막 대답하려는데 주문하기 전에 직원과 상의하라던 글귀가 떠올랐다.

  “네, 주문하려고 하는데요.”

  나는 그 글귀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 전에 뭘 상의해야 하는 거죠?”

  “아, 그거요.”

  케이시는 이렇게 말하며 예의 그 장난기 어린 미소를 띠었다. 나는 점점 더 그 미소에 끌리고 있었다.

 
 “몇 년 동안 쭉 지켜보니, 이곳을 거쳐간 분들이 모두 제각각 다른 느낌을 받고 돌아간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이제는 이 카페에서 좀 마음 편하게 새로운 경험을 하시라는 의미로 써놓은 글이랍니다. 손님이 준비가 안 돼 있을 수도 있으니 사전에 도움을 좀 드리려고요.”

  나는 이제 케이시가 음식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카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그도 저도 아닌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조차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괜찮으시면 주문하실 요리를 요리사에게 알려주고 요리사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은데, 어떠세요?”

  “좋아요.”

  나는 다시 처음처럼 혼란스러워하며 말했다.

  “좋고말고요. 아침 식사 세트를 주문하고 싶은데요. 이 시간에 아침 식사 세트를 주문해도 괜찮을까요?”

  “아침 식사 세트가 드시고 싶으세요?” 그녀가 물었다.

  “예.”

 
 “가능할 거예요. 벌써 오늘 점심시간보다는 내일 아침시간에 더 가까워진걸요.”

  얼핏 시계를 보니 저녁 10시 반이었다.

  “재미있는 말이네요.”

  내가 이렇게 말하자 케이시가 가볍게 웃으며 응수했다.

  “때론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도 재미있답니다.”

 
  07 

  

  눈앞의 세상이 바뀌는 질문

  

  

  

  

  

  

  케이시가 주문 접수를 받는 창문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녀의 발걸음을 눈으로 쫓다 보니 주방 안에 있는 사람이 시야에 들어왔다. 한 손에 나무 주걱을 들고 있는 그 남자는 한눈에도 주방장처럼 보였다. 케이시가 주문 접수 창문 쪽으로 다가가 그에게 말을 건넸다. 케이시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리던 주방장은 자기를 쳐다보고 있던 나와 눈이 마주치자, 이내 미소를 지으며 내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나는 멋쩍어하며 답례로 같이 손을 흔들었다. 주방장에게 인사를 하다니, 그런 행동은 평소의 나하고 어울리지 않았다. 케이시는 그와 잠시 이야기를 주고받은 후, 둥그렇게 생긴 주문서 꽂이에 내 주문서를 꽂아놓고 다시 내게로 다가왔다. 주방장은 주문서 꽂이를 한 바퀴 돌려 주문서를 집어 들고 잠시 내용을 훑어보고는 주방 안으로 가지고 들어갔다.

  나는 다시 메뉴판을 쳐다보았다. 막 첫 번째 질문을 다시 읽고 있는데 케이시가 돌아왔다. 그러고는 탁자 맞은편에 앉았다.

  “저기 주방에 있는 사람이 이 식당 주인이자 주방장이에요. 마이크라고 하죠. 짬을 내서 잠깐 손님을 만나보겠다고 하더군요. 주문하신 걸 알려주었더니 양이 좀 많기는 하지만 드실 수 있을 거 같다 했고요.”

  어떻게 반응할지 몰라 그냥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특별 서비스를 받는 기분인데요.” 그녀는 미소를 보이며 “저흰 최선을 다한답니다”라고 답했다. 그러고는 내가 보고 있던 메뉴판을 표지가 보이게 덮었다.

  “맞아요. 아까 말씀하신 내용으로 돌아가자면 여기 메뉴판 표지에 직원과 상담하라고 한 글귀는 손님이 계속 읽고 계신 그 질문과 관련이 있답니다.” 그녀는 다시 메뉴판을 넘겨 그 질문이 나를 향하도록 두었다.

  내가 그 질문을 읽고 있는 걸 그녀가 어떻게 알아챘는지 의아했다. 하지만 어떻게 알았느냐고 묻지는 않았다.

  “그 질문을 대수롭지 않게 그냥 한번 보고 마는 것과, 질문을 조금 다르게 바꿔보는 건 별개의 문제랍니다.”

  “그게 무슨 말이죠?”

  “그 질문은 단순 명료해요. 그렇죠, 아주 빤한 질문으로 들리죠. 하지만 몇 글자만 바꿔보면 많은 게 변한답니다.”

  “바꾼다고요? 뭘요? 그럼 여기에서는 식사를 못 하게 된다든가 뭐 다른 걸 주문해야 한다든가 그런 말인가요?”

  “아뇨.”

  그녀는 갑자기 사뭇 심각해진 어조로 이렇게 대답했다.

  “그런 것보다 더 큰 걸 바꾸는 거예요!”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종잡을 수가 없었지만, 큰 변화라는 말에 팔에 소름이 쫙 돋았다. 무슨 말인지 정확히 이해할 순 없었지만, 농담이 아니란 것만은 분명했다.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

  케이시는 다시 메뉴판을 가리켰다.

  “그 질문을 다른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으로 한번 바꾸어보세요. 그러면 스스로가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답니다.”

  어안이 벙벙했다. 스스로가 달라진다고?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인가? 여긴 또 뭐 하는 데고? 갑자기 낭떠러지 끝에라도 서 있는 기분이었다. 여기서 한 발 내디디면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걸까, 아니면 영원한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녀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비슷해요, 하지만 그렇게 극단적인 건 아니에요.”

  세상에, 어떻게 내 생각까지 읽고 있는 거지! 어떻게 내 마음을 읽었냐고 묻기도 전에 그녀가 말을 이어갔다.

  “지금 그 낭떠러지에서 단 한 발짝 움직이지 않고도 답을 찾을 수 있답니다. 메뉴판에 나와 있는 첫 번째 질문을 읽어보세요.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길을 지나다 간판을 읽는 것처럼요.”

 
 나는 메뉴판을 내려다보았다. 그랬더니 이제 더 이상 그 질문은 ‘당신은 왜 여기 있습니까?’가 아니라 ‘나는 왜 여기 있는가?’로 보였다. 그런데 바로 다음 순간 그 질문은 다시 원래의 질문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어떻게 된 거죠? 메뉴판 글자가 저절로 바뀐 건가요? 어떻게 된 건지…….”

  “존, 아직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들을 준비가 안 된 것 같은데요?”

  “무슨 뜻이죠? 그리고 글자를 어떻게 바꾼 거죠?”

  이제 완전히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고, 머릿속이 뒤죽박죽 엉켜버린 것 같았다. 계속 식당에 앉아 있어도 되는지 당장 일어서서 나가야 하는지도 판단이 서질 않았다. 그때 케이시가 질문을 던졌다.

  “존, 메뉴판의 글자가 바뀐 걸 봤나요?”

  “그럼요, 바뀌었다가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갔는데요. 어떻게 된 거죠?”

  케이시는 메뉴판을 앞면으로 다시 넘겨서 ‘주문을 하시기 전에……’라는 메시지가 적힌 부분을 가리키더니 말을 이었다.

  “말씀드릴게요. 지금 보신 질문, 그러니까 변했다고 하신 그 질문은…….”

  “‘나는 왜 여기 있는가?’라는 그 질문 말이죠?”

  내가 끼어들었다.

  “네, 그거요. 그 질문은 가볍게 흘리고 지나갈 부분이 아니에요. 질문을 흘끗 보는 것으로 끝내면 곤란해요. 그 질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를 보셔야 해요. 그리고 스스로에게 그 질문을 던져보면 세상이 변하는 걸 느낄 수 있을 거예요. 굉장하죠? 그래서 이런 메시지를 맨 앞에 적어둔 거랍니다.”

 
   08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느낌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문이 막혀버리고 말았다. 한밤중에 세상 어디쯤 있는지도 모르는 카페에 앉아서, 이곳에 방문한 손님들로 하여금 세상이 변하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메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이건 보통의 휴가와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었다. 하지만 난 여전히 앞으로 전개될 일들에 대해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케이시는 말을 이어갔다.

  “아시겠어요? 일단 그 질문이 떠오르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존재 이유가 되어버린답니다. 매일 아침 자리에서 일어날 때는 물론이고 하루 종일 그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게 되는 거죠. 심지어는 잠을 자는 동안에도 계속 그 생각을 하게 된답니다. 스스로 깨닫지는 못하지만요. 일단 뚜껑을 열면 계속 따라다녀요. 한번 열면 닫기가 매우 어렵거든요.”

  이제 메뉴판에서 보았던 ‘당신은 왜 여기 있습니까?’라는 질문이 맨 처음 보았을 때보다 훨씬 더 심오한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케이시의 말투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그건 단지 왜 이 카페에 왔냐고 묻는 것은 아닌 듯했다. 한참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케이시가 내 생각을 비집고 들었다.

  “맞아요. 그 질문은 이 카페에 들어온 이유를 묻는 것이 아니에요. 존재에 대한 질문이지요.”

  나는 기가 막혀서 의자 뒤로 깊숙이 눌러앉았다.

  “도대체 여긴 뭐 하는 데죠?”

  나는 케이시를 쳐다보고 당황스러운 마음을 수습하려 노력하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지금 이야기하는 이 모든 것이 다 고맙긴 한데, 난 그냥 배를 채우려고 여기 왔습니다. 헌데 당신이 하는 말은 왠지 불길하게 들리거든요. 일단 그 질문을 하기 시작하면 매일 그 질문에 대한 생각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다니, 그게 사실이라면 그런 질문을 할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게다가 지금까지 그런 질문에 매달리지 않고도 잘 살아왔는데요.”

  케이시는 메뉴판을 탁자 위에 놓았다.

  “그래요? 진짜 잘 살아오셨어요?”

  ‘잘 살아오셨어요?’라는 물음엔 호의적인 조소의 빛이 어려 있어 그녀의 말은 마치, 잘 살아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한번 정의라도 해보라는 소리처럼 들렸다.

 
 “많은 사람이 잘 살아가죠.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냥 잘 사는 것 이상의 무엇을 찾는답니다. 뭔가 좀 더 의미 있는 것을요.”

  “그게 그 사람들이 이 ‘세상 끝의 카페’에 찾아오는 이유라고요?” 나는 비꼬듯 물었다.

  “네, 몇몇분은 그렇답니다. 손님도 그래서 여기 이 카페에 찾아오신 거 아닌가요?”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차분했다.

  나는 말문이 막혔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이곳이 어떤 곳인지도 미궁이었다.

  솔직히 말해 나는 최근 몇 년 동안, 인생에는 내가 알고 있는 것 이상의 어떤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오던 터였다. 그렇다고 내 인생이 형편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때로 좌절하는 순간도 있었지만, 훌륭한 직장에 다니고 있었고 좋은 친구들도 있었다. 평탄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꽤 괜찮은, 좋은 인생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마음 깊숙한 곳 어디엔가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느낌이 도사리고 있었다.

  “바로 그 느낌 때문에 사람들이 이 질문을 던지게 되는 거랍니다.”

  케이시는 또 내 마음을 읽고 있었다.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사람과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당황하고 있었지만, 케이시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욱 등골이 서늘해졌다. 나는 천천히 숨을 고르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케이시가 하는 말에 좀 더 귀를 기울여보기로 했다.

  “케이시, 그 질문에 대해 더 이야기해줄 수 있겠어요?”

 


  09 

  

  보물찾기의 시작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그 질문은 커다란 문 하나를 열어젖히는 것과 같답니다. 마음속에 또는 영혼 속에 일단 그 질문이 떠오르면 모두 그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게 된답니다. 답을 찾을 때까지 이 질문이 한 사람의 존재에 가장 중요한 부분, 맨 앞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거예요.”

  “그럼 일단 ‘나는 왜 여기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 그 질문을 무시하지 못하게 된다는 말인가요?”

  “아니요. 그 질문을 흘끗 보고 그냥 잊어버리는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스스로에게 그 질문을 해본 적이 있고, 또 어느 정도 그 답을 찾고자 했던 사람들은 무시하기 어려워지는 거죠.”

  “그 질문을 하고, 그에 대한 답을 찾으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럼 정말 좋은 소식을 듣게 되지요.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그녀는 이렇게 답하며 미소를 지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그 질문을 던지고 나면 해답을 찾고 싶은 욕심이 커져요. 그리고 그 답을 찾으면 아주 강력한 힘을 느끼게 되죠. 자기가 이곳에 있는 이유,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 그리고 사는 이유를 깨달으면 깨달은 대로 살고 싶어져요. 그건 마치 보물 지도에 X 표시된 보물이 숨겨진 곳을 찾아 나서는 것과 같아요. 그 표시를 보면 무시하기 힘들죠. 마찬가지로 존재의 이유를 깨달으면 깨달은 대로 살지 않고 그냥 살아가기가 더 힘들어진답니다.”

  나는 케이시가 하는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의자 깊숙이 궁둥이를 붙이고 앉았다.

  “그러면 상황이 더 나빠질 수도 있지 않나요? 아까 말한 대로 그런 질문을 던지지 않고 더 잘 살 수도 있는데요. 그냥 살아왔던 대로 사는 거죠. 지니는 램프 속에 계속 가두어두고요.”

  “그쪽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각자에게 달려 있는 거니까.”

  이제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심지어 무슨 생각을 해야 하는지까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정말 상대하기 곤란한 문제군요.”

 
 “상대한다기보다 직시한다고 표현하는 쪽이 더 낫겠네요. 아까 말씀하셨던 그 기분 아시죠? 그건 다른 사람이 가르친다고 느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렇게 느끼라고 누가 강요한다고 느낄 수 있는 게 아니죠. 하지만 어느 순간이라도 그 기분에서 도망치고 싶으면, 선택하기에 따라 그냥 버리고 떠날 수 있는 그런 거예요.”

  거기까지 말을 마치고 케이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버린다는 말이 나온 김에 특별히 주문하신 아침 식사 준비가 잘되고 있는지 가서 확인하고 올게요.”

  나는 주문한 음식에 대해서는 이미 까맣게 잊고 있었다. 케이시가 주문한 음식을 들먹이자 새삼스럽게 내가 아직 카페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러자 허기가 밀려왔다.





   10 

  

  허기진 줄도 모르는 사람들

  

  

  

  

  

  

  얼떨떨한 기분으로 다시 메뉴판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첫 번째 질문을 한 번 더 읽어보았다.

  

  당신은 왜 여기 있습니까?

  

  다시 읽어보니 처음 이 자리에 앉아서 읽었던 때와는 전혀 다른 의미의 질문처럼 느껴졌다. 아까 케이시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건 바로 우리가 왜 존재하는지, 존재의 이유에 대한 질문이에요.”

  내 안의 무엇인가가 아까 케이시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메뉴판 위에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졌던 질문을 소환시켰다.

  

  나는 왜 여기 있는가?

  

  진심으로 이 질문을 하게 되면 변화가 일어난다고 말한 사실도 또렷이 떠올랐다.

  “정말 미치겠군.”

  나는 혼잣말을 하며 눈을 비볐다.

  “지금 나한테 필요한 건 식사와 자동차 연료, 그리고 몇 시간 눈 좀 붙일 수 있는 곳이야. 그런데 난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물을 반쯤 마시고 컵을 내려놓다 보니 바로 내 자리 앞에 마이크가 물병을 들고 서 있었다.

  “물 한 잔 더 드릴까요? 목이 마르시나 본데.”

  내가 좋다고 하자, 그가 큰 컵 가득 물을 채워주었다.

  “전 마이크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존이라고 합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마이크와 악수를 나누었다.

  “괜찮으십니까? 이쪽으로 오면서 보니까 뭔가 아주 골똘하게 생각을 하고 계신 거 같던데요.”

  “네. 생각을 좀 했습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하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케이시한테서 메뉴판 맨 앞에 적혀 있는 질문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헌데 여전히 아직도 분명하지 않은 부분이 있어서 그 생각에 몰두해 있었습니다.”

  그 말을 하면서 문득, 이 마이크란 사나이는 나와 케이시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모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식당 주인은 그이지만 메뉴판에 실린 질문이나 문장은 케이시 작품일 수도 있으니까. 그럼 지금 내가 하는 얘기가 무슨 소린가 싶을 텐데……. 하지만 그가 한 말은 이러한 내 우려를 불식시켜주고도 남았다.

  “정말 어려운 질문이긴 합니다. 사람들이 그런 의문을 품게 되는 순간은 모두 제각각입니다. 어떤 사람은 어린 시절에, 또 어떤 사람은 조금 더 커서 그런 의문을 품게 되죠. 죽을 때까지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요. 우습지요.”

  마이크는 침착하게 말했다. 그는 다른 세상에서 인생의 중요한 지혜를 깨닫고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난 사람처럼 보였다. 그를 막 만난 상태에서 이렇게 느끼는 건 이상한 일이었지만, 곧 이 카페 전체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나는 이 대화를 어떻게 이어 나가야 할지 몰라 잠시 망설였는데, 그 순간 마이크가 손을 뻗어 다시 메뉴판을 넘겼다. 그가 미소 지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셨나요?”

  “네, 그렇긴 한데요.” 나는 천천히 대답했다.

  “그런데 아직 분명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요?” 그가 물었다.

  나는 말을 멈추고 잠시 생각했다. ‘그냥 직접 물어보는 게 낫겠어.’

  “마이크, 아까 케이시가 말하길 이런 질문을 자신에 대한 물음으로 돌려서 생각하면 질문 자체가 달라진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는 메뉴판을 가리켰다.

 
 “그런데 그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마이크가 메뉴판을 쳐다보며 물었다.

  “스스로 묻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알아냈다면, 그다음엔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인가요?”

  그의 질문을 곱씹으며 나는 잠시 침묵했다.

  “둘 다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 그리고 답을 찾고 나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요. 사실 케이시와는 대화를 많이 나누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그 문제를 깨닫고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에 대해서는 살짝 언급하긴 했지만…….”

  “흠…… 답을 찾는 방법에 대해서 모든 사람에게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정답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제각각 자기 방식대로 인생에 접근하거든요. 하지만 지금까지 답을 찾는 데 성공한 사람들이 사용했던 기술 정도는 몇 가지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그의 말을 자르고 끼어들려고 하다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다. 해답을 찾는 방법을 알게 되면 질문을 하지 않고 사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어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맞습니다. 케이시가 아마 설명해드렸을 그 이론하고 똑같은 것이지요.”

  마이크도 내 생각을 읽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나는 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어떻게 찾았는지 그 방법을 아는 것이 정말 나에게 좋은 일일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내가 정말 그런 질문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인지조차 아직 알 수 없었기에.

  “마이크, 그럼 먼저 이것부터 말씀해주세요. 누군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면, 그 다음엔 어떻게 하죠?”

  마이크는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이렇게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먼저 주문하신 음식이 다 되었는지 보고 와서 궁금증을 풀어드리죠. 뭐든 제 시간에 해야 할 일이 있거든요.” 나는 혼란스러운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주문하신 음식이 조금이라도 설익거나 과하게 익어서 나오면 곤란하니까요.”

  나는 그의 말을 다 이해하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주방으로 돌아간 후 나는 아주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잠시 동안의 정적이 마음을 좀 진정시켜주었다.

  얼마 후 그는 쟁반 한가득 음식을 담아 내 자리로 돌아왔다.

  “그게 다 제 겁니까?”

  나는 메뉴판의 음식 이름 옆에 붙어 있던 두 단락 정도 되는 문장에 도대체 뭐라고 써 있었는지 의아해하며 물었다. 아까 주문할 때 거기까지는 미처 다 읽어보질 못했던 것이다.

  “그럼요. 아침 식사 세트 맞습니다. 오믈렛과 토스트, 햄, 베이컨, 신선한 과일, 해시브라운, 비스킷 그리고 팬케이크.”

  나는 혹시 같이 나눠 먹을 사람이 없을까 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토스트에 들어갈 젤리와 팬케이크 시럽, 비스킷에 곁들일 꿀, 오믈렛용 특별 토마토 살사소스까지 있습니다. 배가 고프시다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이걸 다 먹을 수 있을까요? 정말 엄청나게 많네요.”

  “때로 우리는 자기가 얼마나 허기진 상태인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경우도 있답니다.”

  마이크는 음식을 식탁에 내려놓았다.

  “저쪽 손님들과 이야기 좀 하고 왔으면 하는데……. 괜찮으시면 우리가 하던 이야기는 조금 뒤에 계속할까요?”

 
 “괜찮고말고요.”

  나는 눈앞에 차려진 진수성찬을 보며 대답했다.

  “얼마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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