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9

단차 | 2023.12.14 00:30:13 댓글: 0 조회: 183 추천: 0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28999
9

가짜 거북이의 사연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되다니 아주 기쁘구나!"

공작 부인이 다정하게 앨리스의 팔짱을 끼고 걸으며 말했다.

공작 부인의 기분이 좋아 보여 앨리스도 무척 기뻤다. 부엌에서 공작 부인을 만났을 때 거칠게 행동했던 것은 아마 후추 때문이었을 거라 생각하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만약 공작 부인이 된다면(그다지 바라지 않는 듯한 말투로) 절대로 부엌에 후추는 두지 않을 거야. 사람들이 사납게 변하는 건 후추 때문인지도 몰라. 후추를 쓰지 않는다면 수프가 훨씬 좋아질 거야."

앨리스는 마치 새로운 법칙을 발견한 것처럼 기뻐하며 중얼거렸다.

"식초는 사람들을 심술궂게 만들고, 약은 사람들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지. 그리고 사탕은 아이들을 부드럽게 녹이지.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안다면 좋을 텐데. 그러면 사탕 주는 것에 인색하지 않을 텐데 말이야."

앨리스는 이런 생각에 빠져 공작 부인을 까맣게 잊고 있다가 공작 부인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오자 깜짝 놀랐다.

"말하다 말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니? 지금 당장은 마땅한 교훈이 떠오르지 않지만 곧 기억이 날거야."

"교훈이 없을 수도 있어요."

앨리스가 대꾸했다.

"찾으려고만 하면 교훈은 어디든 있는 거란다."

이렇게 말하며 공작 부인이 가깝게 다가오는 게 좋진 않았다.

그 이유는 공작 부인이 너무 못생겼고, 앨리스 어깨에 턱 끝을 얹기에 딱 좋은 키이긴 했지만 턱이 어찌나 뾰족한지 불편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앨리스는 무례하게 굴고 싶지 않아서 꾹 참았다.

"경기가 이제야 제대로 돌아가는 것 같네요."

대화를 더 이어 가려고 앨리스가 말을 건넸다.

"그래, 그것의 교훈은 이거야. '사랑, 사랑이여. 사랑이야말로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힘이로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기도 하지요. 사람들이 각자 자기 일에만 충실해야 세상이 빨리 돌아가는 법이라고요."

앨리스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 그렇지! 내 말이 그 말이란다."

공작 부인이 뾰족한 턱을 앨리스의 어깨에 갖다 대며 말했다.

'모든 일에서 교훈을 찾는 걸 즐기는군.'

앨리스는 속으로 생각했다.

"넌 내가 왜 네 허리에 팔을 두르지 않는지 궁금한 모양이구나."

공작 부인이 잠시 말을 멈추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건 네 홍학의 성깔이 어떤지 몰라서란다. 한번 시험해 볼까?"

"어쩌면 쪼아 댈지도 몰라요."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앨리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래 맞아. 홍학이나 겨자나 매운 건 마찬가지야. 여기에 맞는 교훈은 '끼리끼리 어울린다.' 는 거야."

공작 부인이 말했다.

"하지만 겨자는 새가 아니잖아요."

앨리스가 대꾸했다.

"그래 맞아. 넌 정말 똑똑하구나."

"제 생각에 겨자는 광물 같아요."

앨리스가 말했다.

공작 부인은 이제 앨리스의 말이라면 무조건 맞장구를 칠 기세였다.

"그래, 이 근처에 겨자 광산(mine)이 있단다. 그것의 교훈은 '내 것(mine)이 있단다. 그것의 교훈은 '내 것(mine)이 많아지면 남의 것은 작아진다.' 는 거야."

앨리스는 공작 부인의 교훈은 귀담아듣지도 않은 채 소리쳤다.

"아, 알았어요! 겨자는 식물이에요. 그렇게 보이진 않지만 사실은 식물이에요."

공작 부인이 말했다.

"네 말이 맞아. 그리고 그것의 교훈은 '남들 눈에 보이는 대로 행동하라.'인데, 좀 더 간단하게 말하자면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모습 외에 다른 모습으로 자신을 생각하지 마라.'는 거야."

"당신의 말을 글로 써 본다면 더 잘 이해가 될 텐데 말로만 들어서는 잘 모르겠어요."

앨리스가 아주 공손하게 말했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공작 부인이 기분 좋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힘드실 텐데 이제 더 말씀 안 하셔도 돼요."

앨리스가 말했다.

"힘들다니! 내가 지금껏 했던 모든 얘기를 네게 선물로 주마."

앨리스는 생각했다.

'별 희한한 선물도 다 있군! 생일 선물로 주지 않는 게 천만다행이지 뭐야!'

앨리스는 속으로 생각하고 입 밖으로 말하지는 않았다.

"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니?"

공작 부인이 뾰족한 턱을 앨리스의 다른 쪽 어깨에 갖다대며 물었다.

"저도 생각할 권리가 있다고요."

앨리스는 귀찮다는 듯이 톡 쏘아 말했다.

"그래, 돼지도 날 권리가 있지. 그리고 그것의 교......."

그때 이상하게도 공작 부인의 목소리가, 가장 즐겨 말하는 '교훈' 대목에서 갑자기 줄어들더니 앨리스의 팔에 끼고 있던 팔까지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앨리스가 고개를 들어 보니 여왕이 눈앞에 있었다. 팔짱을 끼고 폭풍이 치는 하늘처럼 잔뜩 찌푸린 얼굴로 두 사람 앞에 서 있었다.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여왕 폐하!"

공작 부인이 기어들어 가는 낮은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여왕이 발을 쿵쿵 구르며 소리쳤다.

"경고하는데 당장 사라지지 않으면 네 목을 칠 것이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공작 부인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이제 경기를 계속해야지."

여왕이 앨리스에게 말했다.

앨리스는 겁에 질려 한마디도 하지 못한 채 여왕의 뒤를 따라 경기장으로 갔다.

다른 선수들은 여왕이 없는 틈을 타 그늘에서 쉬고 있었다. 하지만 여왕이 나타나자 다시 서둘러 경기를 시작했고, 여왕은 1분, 1초라도 지체하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경기 내내 여왕은 선수들과 쉴 새 없이 싸우면서 "이놈의 목을 쳐라!" "저놈의 목을 쳐라!" 하며 소리를 질러 댔다. 병사들은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들을 가두어야 했기 때문에 골대 노릇을 할 수가 없었다. 결국 30분쯤 지나자 골대는 하나도 남지 않았고 왕과 여왕, 앨리스를 제외한 모든 선수들이 사형 선고를 받아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

그제야 여왕이 경기를 멈추고 숨을 헐떡이며 앨리스에게 물었다.

"가짜 거북이를 본 적이 있느냐?"

"아니요. 전 가짜 거북이가 뭔지도 모르는데요."

앨리스가 대답했다.

"그것은 '가짜 거북이 수프'를 만드는 재료란다."

여왕이 말했다.

"저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어요."

앨리스가 말했다.

"그렇다면 이리 따라오너라. 가짜 거북이가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줄 거야."

여왕이 말했다.

앨리스는 여왕과 함께 떠나면서 왕이 사람들에게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다.

"너희 모두를 사면하노라."

여왕이 사형 손고를 내린 것에 마음이 아팠던 앨리스는 혼자 중얼거렸다.

"어머, 정말 다행이다!"

얼마 후 여왕과 앨리스는 햇볕 아래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그리핀을 만났다.

"일너나라, 이 게으름뱅이야! 이 아가씨를 가짜 거북이에게 데려다 주거라. 그리고 가짜 거북이에게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해라. 난 돌아가서 사형 집행을 보아야겠다."

여왕은 앨리스를 그리핀에게 남겨 두고 급히 가 버렸다. 앨리스는 그리핀의 생김새가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무서운 여왕을 쫓아가느니 그리핀과 함께 있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핀이 일어나 앉아 눈을 비비며 여왕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다가 킬킬거리며 웃었다. 그리고 혼잣말인지 앨리스에게 하는 말인지 모를 말을 중얼거렸다.

"정말 웃겨!"

앨리스가 물었다.

"뭐가 그렇게 웃겨요?"

"여왕 말이야. 그게 다 여왕의 상상이거든. 사실은 아무도 사형 당하지 않아. 이리 와!"

앨리스는 그리핀을 천천히 따라가며 생각했다.

'이곳에서는 다들 '이리 와!' 라고 말하는군. 내 평생 이렇게 많은 명령을 받아 보기는 처음이야.'

얼마 가지 않아 저 멀리 있는 가짜 거북이가 눈에 들어왔다. 가짜 거북이는 작은 바위 위에 혼자 않자 외롭고 슬픈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앨리스와 그리핀이 좀 더 가까이 다가가자 가슴이 찢어질 듯한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앨리스는 가짜 거북이가 너무 가여워 그리핀에게 물었다.

"왜 저렇게 슬퍼하는 거예요?"

그리핀은 조금 전과 똑같은 말을 했다.

"그건 다 자기 상상일 뿐이야. 그러니까 슬픈 일 따위는 없어. 이리 와!"

그들은 가짜 거북이에게 다가갔다. 가짜 거북이는 커다란 눈에 눈물을 글썽이기만 할 뿐 아무런 말이 없었다.

"이 아가씨가 너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해, 정말로."

가짜 거북이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여기 앉아, 그리고 내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마."

그리핀과 앨리스가 자리에 앉았고 한동안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앨리스는 생각했다.

'시작도 하지 않은 이야기가 언제 끝이 난다는 거야?'

하지만 앨리스는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마침내 가짜 거북이가 긴 한숨을 내쉬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때 나도 진짜 거북이었단다."

그리고 다시 얼마간 침묵이 이어졌다. 간간이 내뱉는 그리핀의 "흐르르르!" 하는 탄성과 가짜 거북이의 흐느끼는 울음소리만이 정적을 깰 뿐이었다. 앨리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재미있는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라고 인사하고 싶었지만 분명히 남은 이야기가 더 있을 것 같아서 조용히 기다렸다.

"내가 어렸을 때 바다에 있는 학교에 다녔단다. 선생님은 늙은 거북이였는데, 우리는 그분을 땅거북 선생이라고 불렀어."

드디어 가짜 거북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여전히 훌쩍이기는 했지만 훨씬 차분해진 목소리였다.

"땅에 사는 것도 아닌데, 왜 땅거북 선생이라고 불렀어요?"

앨리스가 물었다.

"당연히 우리를 가르쳤으니까 그렇게 불렀지. 넌 정말 멍청하구나!"

가짜 거북이가 화를 내며 말했다.

"그런 것도 질문이라고 하는 거니?"

그리핀도 거들었다. 그러고는 그리핀과 가짜 거북이는 아무런 말없이 가엾은 앨리스를 쳐다보았다. 앨리스는 순간 땅속으로 꺼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마침내 그리핀이 가짜 거북이에게 말했다.

"친구! 이야기를 계속하지. 온종일 그러고 있을 텐가?"

"그래, 우리는 바다 학교에 다녔어. 네가 믿을지는 모르겠지만......."

가짜 거북이가 말했다.

"안 믿는다고 말한 적은 없어요!"

앨리스가 끼어들었다.

"말했어."

가짜 거북이가 말했다.

"입 다물어!"

앨리스가 무슨 말을 하기 전에 그리핀이 말을 막았다.

가짜 거북이가 말을 이었다.

"우리는 최고의 교육을 받았단다. 매일 학교에 다녔지."

"저도 학교는 다녀요. 그렇게 으스댈 일이 아닌 것 같은데요."

앨리스가 말했다.

"특별 수업도 받았니?"

가짜 거북이가 긴장하며 물었다.

"물론이에요. 프랑스 어와 음악을 배웠어요."

앨리스가 대답했다.

"그럼, 세탁하는 법은?"

가짜 거북이가 물었다.

"그런 건 당연히 배우지 않죠!"

앨리스가 화를 내며 말했다.

"아! 그렇다면 진짜 좋은 학교는 아니구나."

가짜 거북이가 안심하며 말했다.

"우리 학교는 등록금 청구서 끝에 '프랑스 어, 음악, 세탁은 선택 과목'이라고 쓰여 있거든."

"바다에 사니까 세탁할 일이 없을 텐데요."

앨리스가 말했다.

"난 그리 사정이 좋지 않아서 정규 수업 과목만 배웠어."

가짜 거북이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규 수업 과목은 뭐였어요?"

앨리스가 물었다.

"우선 비틀거리기와 몸부림치기가 있지. 그리고 자잘한 수학 과목이 있는데 야망, 산만, 추화, 조롱 같은 것들이지."

가짜 거북이가 대답했다.

"'추화'는 들어 본 적이 없는데, 그건 뭐예요?"

앨리스가 용기를 내어 물었다.

"뭐, 들어 본 적이 없다고? 그럼, '미화'란 말은 아니?"

그리핀이 깜짝 놀라 양발을 치켜들며 소리쳤다.

앨리스는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더 예뻐진다는 것을 말하는 거잖아요."

"그래, 그런데도 추화를 모른다면 네가 정말 바보라는 거야!"

그리핀이 말했다.

앨리스는 더 이상 묻고 싶지 않아 가짜 거북이에게 말했다.

"또 어떤 걸 배웠어요?"

"또 추리를 배웠는데 추리 과목에는 고대와 현대, 해양 지리가 있고, 그다음에는 점잖게 말하는 과목을 배웠지. 선생님은 늙은 붕장어였는데 일주일에 한 번 오셨지. 우리한테 점잖게 말하기, 몸믈 쭉 펴기, 똘똘 감고 기절하기를 가르쳐 주셨어."

가짜 거북이가 지느러미로 수를 세며 대답했다.

"그건 어떻게 하는 건데요?"

앨리스가 물었다.

"이제 몸이 많이 굳어서 보여 줄 수가 없구나. 그리고 그리핀은 배우지 않았고 말이야."

"난 시간이 없어서 배우지 못한 거야. 그래도 고전 수업은 들었어. 고전 선생님은 나이 많은 게 선생님이었지."

그리핀이 말했다.

"난 게 선생님 수업은 한 번도 듣지 못했어. 그 선생님은 웃음과 큰 슬픔을 가르쳤다고 들었어."

가짜 거북이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맞아, 그랬어."

그리핀도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러고는 둘 다 앞발에 얼굴을 묻었다.

"하루에 수업은 몇 시간이나 들으신 거예요?"

앨리스가 화제를 바꾸기 위해 황급히 물었다.

"첫날에는 열 시간, 다음 날에는 아홉 시간, 그런 식이었어."

가짜 거북이가 대답했다.

"시간표가 좀 이상하네요!"

앨리스가 소리쳤다.

"그래서 우리가 수업이라고 부르는 거야. 날마다 줄일 수 있기 때문이지."

그리핀이 대꾸했다.

앨리스는 전혀 생각해 보지 못한 일이라 잠시 고민에 빠져 있다 이렇게 말했다.

"그럼, 열한 번째 날은 수업이 없었겠네요?"

"물론이지."

가짜 거북이가 대답했다.

"그러면 열두 번째 날은 어떻게 되는 거죠?"

앨리스가 진지하게 물었다.

"수업에 대한 이야기는 이 정도면 됐고, 이제 이 아가씨한테 경기 이야기를 해 주게."

그리핀이 아주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추천 (0) 선물 (0명)
IP: ♡.252.♡.103
23,513 개의 글이 있습니다.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조회
나단비
2024-01-29
1
108
나단비
2024-01-29
1
99
나단비
2024-01-29
0
94
나단비
2024-01-28
0
123
나단비
2024-01-28
0
116
나단비
2024-01-28
0
131
나단비
2024-01-28
0
136
나단비
2024-01-28
0
108
나단비
2024-01-27
0
145
나단비
2024-01-27
0
82
나단비
2024-01-27
0
97
나단비
2024-01-27
0
104
나단비
2024-01-27
0
103
나단비
2024-01-26
0
114
나단비
2024-01-26
0
101
나단비
2024-01-26
0
111
나단비
2024-01-26
0
99
나단비
2024-01-26
0
117
나단비
2024-01-25
0
140
나단비
2024-01-25
0
116
나단비
2024-01-25
0
138
나단비
2024-01-25
0
83
나단비
2024-01-25
0
87
나단비
2024-01-24
1
138
나단비
2024-01-24
1
121
나단비
2024-01-24
1
131
나단비
2024-01-24
1
144
나단비
2024-01-24
1
184
단밤이
2024-01-23
0
109
단밤이
2024-01-20
0
162
모이자 모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