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머리 앤 4권 3~4

나단비 | 2024.04.02 18:37:10 댓글: 0 조회: 57 추천: 0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58306
3





2시가 되자 제임스 그랜드 씨가 찾아왔다. 그랜드 씨는 서머사이드 중등학교 이사회 이사장인데, 월요일에 있을 킹스포트 교육위원회에 참석하기 전에 미리 앤과 몇 가지 중요한 사안을 의논하고 싶다고 했다. 앤은 저녁에 ‘윈디 포플러’로 방문해줄 수 없느냐고 물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랜드 씨는 나름대로 좋은 사람이었지만 좀 조심스럽게 대해야 한다는 것을 앤은 오래전부터 알았다. 게다가 새로 학교에 들여오려고 하는 교육 도구 일로 반드시 그랜드 씨를 자기편으로 만들고 싶었다. 앤은 쌍둥이에게로 갔다.
“너희는 착한 아이들이니 내가 그랜드 씨와 잠깐 이야기할 동안 뒤뜰에서 조용히 놀아주겠니?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이야기를 마치면 연못 둑으로 가서 차를 마시자. 그리고 빨간 물을 들인 비눗방울 부는 법도 가르쳐줄게. 얼마나 예쁘다고!”
“우리가 얌전하게 놀면 25센트씩을 줄래요?”
제럴드가 물었다.
“안 돼, 제럴드. 난 너희에게 뇌물을 쓸 생각은 없어. 내가 부탁을 했으니까 난 너희가 얌전하게 행동해줄것으로 믿어. 신사란 그래야 하거든.”

앤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래요, 얌전히 행동할게요, 셜리 선생님.”
제럴드가 엄숙하게 약속했다.
“무지하게 얌전히요.”
제럴딘도 똑같이 진지하게 말했다.
앤이 그랜드 씨하고 응접실로 들어가자마자 아이비 트랜트가 오지만 않았다면 두 아이는 그 약속을 지켰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이비가 왔고 레이몬드 쌍둥이는 아이비 트랜트를 좋아하지 않았다. 이 아이는 너무나 완벽해서 잘못된 행동이라면 어떤 일도 하지 않았고 언제나 단정한 모습이었다.
바로 그날 아이비 트렌트는 예쁜 새 갈색 부츠를 신고, 새 장식 띠를 두르고, 어깨에도 머리에도 주홍색 나비 리본을 단 자기의 예쁜 모습을 자랑하러 온 것이 틀림없었다. 레이몬드 부인은 다른 면에서는 부족한 점이 있는지 몰라도 아이들 옷 입히는 일에서만은 상당히 분별력이 있었다. 이를 두고 너그러운 이웃들은 레이몬드 부인이 자기한테 돈을 쓰느라 쌍둥이에게까지 쓸 돈은 없어서 그렇다고들 했지만. 어쨌든 제럴딘은 아이비 트렌트처럼 멋지게 옷을 차려 입고 거리를 뽐내며 돌아다녀 보질 못했다. 아이비는 일주일 내내 매일 다른 옷을 갈아입어도 될 만큼 옷이 많았다. 트렌트 부인은 아이비를 늘 얼룩 하나 없이 깨끗하게 차려 입혀 내보냈다. 적어도 아이비가 집을 나설 때는 그랬지만, 집을 나설 때처럼 집으로 돌아올 때도 얼룩 하나 없이 돌아오지는 못했다. 물론 그 이유는 이웃에 널린 질투 많은 아이들 때문이었다. 사실 제럴딘도 샘이 아주 많이 났다. 주홍색 머리띠며 나비모양 어깨장식이며 하얀 자수 드레스를 자기도 입고 싶었다. 나한테는 왜 저런 단추달린 갈색 부츠가 없는가?
“내 새 장식 띠와 어깨에 단 나비 리본 어때?”
아이비가 아주 자랑스럽게 물었다.
“내 새 장식 띠와 어깨에 단 나비 리본 어때?”
그 말을 제럴딘이 흉내 내며 비웃어주었다.
“넌 이런 어깨 장식이 없잖아?”
아이비가 거만을 떨며 말했다.
“넌 이런 어깨 장식이 없잖아?”
제럴딘이 다시 아이비의 말을 따라 했다.
아이비는 아주 혼란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있어. 너희들 눈에는 안 보여?”
“나는 있어. 너희들 눈에는 안 보여?”
아이비의 말을 흉내 내며 놀려주는 게 너무 재미있다는 듯 제럴딘이 다시 아이비의 말을따라 했다.
“그건 아직 돈을 내지 않은 거야.”
제럴드가 말했다.
아이비 트렌트는 성질도 있었다. 화가 난 표정이 역력해지면서 얼굴이 어깨에 단 나비 리본만큼이나 붉어졌다.
“돈 낸 거야. 우리 엄마는 반드시 돈을 내고 물건을 산다구!”
“돈 낸 거야. 우리 엄마는 반드시 돈을 내고 물건을산다구!”
제럴딘은 노래를 부르듯 그 말을따라 했다.
아이비는 무척이나 마음이 불편했다. 대체 저 아이들을 어찌해야 이겨볼 수 있단 말인가. 아이비는 제럴드 쪽으로 돌아섰다. 이 동네에서 가장 잘생긴남자아이다. 아이비는 제럴드를 요리해보기로 마음을 정했다.
“나는 너를 내 남자친구로 삼아주겠다고 말하러 온 거야.”
아이비는 그 갈색 눈에 깊은 뜻을 담아 제럴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직 일곱 살이라고는 하지만 그 눈이 자기가 아는 모든남자아이들에게 치명적인 효과를 미친다는 것을 아이비는 알고 있다.
제럴드의 얼굴은 당장 선홍빛으로 물들어버렸다.
“난 네 남자친구가 되지 않을 거야.”
제럴드가 말했다.
“아니, 넌 내 남자친구가 되어야 해.”
아이비가 여유 있게 말했다.
“아니, 넌 내 남자친구가 되어야 해.”
제럴딘이 제 머리를 제럴드를 향해 흔들어대면서 말했다.
“난 되지 않을 거야. 다시 한 번만 그 말을 하면 가만두지 않을 거다, 아이비 트렌트.”
제럴드가 화가 잔뜩 나서 소리쳤다.
“넌 되어야만 해.”
아이비가 고집스럽게 말했다.
“넌 되어야만 해.”
제럴딘이 따라 했다.
아이비가 제럴딘을 노려보았다.
“너 입 닥쳐, 제럴딘 레이몬드!”
“우리 집 마당인데 내가 왜 말도 못 해?”
제럴딘이 말했다.
“그래, 너는 말을 해도 되지. 그렇지만 너 아이비 트렌트, 당장 입 닥치지 않으면 내가 너희 집으로 쳐들어가서 네 인형 눈깔을 다 파놓을 거야.”
“그런 짓을 하면 우리 엄마가 네 엉덩이를 두들겨 패줄 거야.”
아이비가 외쳤다.
“오, 그럴까, 과연 그러실까? 그렇다면 우리 엄마가 너희 엄마 궁둥이를 패 줄걸. 너희 엄마 코에서 코피가 쏟아지게 해줄걸.”
“어쨌거나, 넌 내 남자친구가 되어야 해.”
아이비가 다시 핵심문제로 돌아와 차분하게 말했다.
“내가, 내가 네 머리를 저 빗물 통에다 박아 버릴 거야. 네 얼굴을 개미집에다 문질러 줄 거야.”
화가 날 대로 화가 난 제럴드가 소리를 질렀다.“내가, 내가 그 리본이랑 장식 띠를 떼서 다 찢어버릴 거야.”
의기양양하게 그 마지막 말까지 외쳤다. 적어도 이 마지막 말은 가능성이있는 듯 보였다.
“그래 버리자.”
제럴딘이 외쳤다.
둘은 난폭하게 아이비를 덮쳤다. 불쌍하게 된 아이비는 발로 차고 비명을 지르고 물어뜯으려 했지만 둘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둘은 힘을 합쳐 아이비를 끌고 뒤뜰을 가로질러 장작 헛간으로 들어갔다. 거기라면 아이비가 소리를 질러대도 남에게 들릴 염려도 없었다.
“서둘러, 셜리 선생님이 나오기 전에.”
제럴딘이 말했다.
시간을 허비할 수 없었다. 제럴드는 아이비의 다리를 붙들고 제럴딘은 팔을 붙들고 머리에서 나비 머리띠를 벗기고 어깨 리본도 장식 띠도 모두 벗겨 냈다.
“아이비 다리에다 페인트를 칠해주자. 내가 잡고 있을 테니까 네가 칠해.”
지난주에 일꾼들이 남겨두고 간 페인트 통 두어 개가 뒹구는 것을 보고 제럴드가 소리쳤다.
아이비는 필사적으로 소리를 질렀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양말은 벗겨졌고 순식간에 아이비의 다리는 빨간색과 초록색깔 널따란 줄무늬로 장식되었다. 다리에 페인트칠을 하면서 아이비의 자수 드레스와 새 구두에도 온통 페인트가 튀어 꼴이 말이 아니었다. 마지막 손질로 둘은 아이비의 곱슬곱슬한 머리에 철판 자른 조각들을붙여놓았다.
겨우 풀려나왔을 때 아이비는 눈 뜨고 볼 수 없는 꼴로 변해버렸다. 쌍둥이는 그 모습에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오랫동안 잘난 척하며 거만이나 떨던 아이비에게 드디어 복수를 해준 것이다.
“자, 그만 돌아가! 이제 아무나 붙잡고 네 남자친구가 되어야 한다느니 어쩌니 하는 못된 버릇은 고치라고.”
제럴드가 말했다.
“내가 우리 엄마한테 다 이르겠어. 집으로 곧장 가서 우리 엄마한테 다 말할 거라고. 이 못된, 못된, 밉고 못생긴 놈!”
아이비가 울먹이며 말했다.
“너 우리 오빠한테 감히 못생겼다는 건방진 말을 해. 네 어깨 장식 여기 있어. 자, 가져가. 우리는 네 물건으로 우리 장작 헛간이 어질러지는 건 싫으니까.”
제럴딘이 소리쳤다.
뒤에서 제럴딘이 나비 리본을 던지며 쫓자 아이비는 울면서 길로 뛰어나갔다.
“빨리! 셜리 선생님에게 들키기 전에 몰래 뒤 사다리를 타고 욕실로 가서 깨끗이 씻자.”
제럴딘이 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4





그랜드 씨는 할 말을 마치자 인사를 하고 사라졌다. 문가에 서서 앤은 잠시 내가 돌봐야 할 아이들이 어디 있지 하는 불안한 마음을 느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어떤 부인이 성이 잔뜩 난 채 대문으로 들어서는 게 아닌가. 볼썽사나운 꼴로 아직도 울어대는 한 아이를 끌고서.
“미스 셜리, 레이몬드 부인은 어디 있죠?”
트렌트 부인이 물었다.
“레이몬드 부인은…….”
“난 레이몬드 부인을 만나야겠어요. 레이몬드 부인이 직접 이 아이 꼴을 보아야 해요. 자기 아이들이 이 힘없고 순진한 아이를 어떻게 만들어놓았는지 봐야 한다고요. 이 아이를 봐요, 미스 셜리, 보라고요!”
“오, 트렌트 부인……. 정, 정말 죄송해요. 모든 것이 다 제 잘못입니다. 레이몬드 부인은 집에 없어요. 아이들은 제가 돌봐주기로 약속했어요. 하지만 그랜드 씨가 오는 바람에…….”
“아니에요. 이건 미스 셜리의 잘못이 아니에요. 난 미스 셜리를 탓하는 게 아니에요. 저런 악마 같은 아이들은 아무도 당해내지 못해요. 이 거리 사람들은 저 아이들이 어떤 아이들인지 다 알아요. 레이몬드 부인이 여기 없다면 내가 여기 더 이상 있을 필요도 없군요. 내 가여운 아이를 집으로 데려가겠어요. 하지만 레이몬드 부인은 이 일을 반드시 알아야 해요. 내 말을 명심하세요, 미스 셜리. 그런데 저것들이 서로의 사지를 찢어버리려고 저러나요?”
서로 비명과 고함을 지르고 으르렁거리는 ‘저것들’ 소리가 층계 쪽에서 들려왔다. 앤은 2층으로 뛰어올라갔다. 아이들은 복도 마루에서 한 덩어리가 되어 서로 몸부림치고 물어뜯고 잡아 뜯고 할퀴고 있었다. 앤은 날뛰는 쌍둥이를 겨우 잡아떼어 몸부림치는 어깨를 내리누른 채 무슨 일이냐고 다그쳤다.
“내가 아이비 트렌트의 남자친구가 되어야 한다잖아요.”
제럴드가 외쳤다.
“쟤는 그래야 해요.”
제럴딘도 소리쳤다.
“난 그러지 않을 거야.”
“넌 그래야 해.”
“얘들아!”
앤이 말했다. 앤의 말에는 둘을 움찔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었다. 둘은 앤을 올려다보았다. 전에는 보지 못한 셜리 선생님이 거기 있었다. 생전 처음으로 둘은 권위의 힘을 느꼈다.
“너, 제럴딘. 두 시간 동안 네 방에 가 있어. 너, 제럴드. 두 시간 동안 저 복도 벽장에 들어가 있어. 말은 필요 없어. 너희들은 끔찍한 행동을 했으니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해. 너희 엄마가 너희를 내게 맡겼으니 너희는 내 말을들어야 해.”
앤이 조용히 말했다.
“그럼 우리를 함께 벌주세요.”
제럴딘이 울면서 말했다.
“네, 선생님은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어요. 우리는 한 번도 떨어져 본 적이 없다고요.”
제럴드가 말을 더듬었다.
“그렇다면 지금 떨어져 볼 거야.”
앤은 여전히 조용히 말했다. 제럴딘은 옷을 벗고 얌전히 자기 방 침대로 들어갔다. 제럴드도 순순히 복도 벽장으로 들어갔다. 커다란 창문이 나 있고 그 옆에 의자도 하나 놓인 넓고 통풍이 잘되는 벽장이라서 누구도 아이를 이 벽장에 가두는 것이 심한 벌이라 비난하진 않을 것이다. 앤은 문을 잠그고 책을 한 권 든 채 복도 창가에 앉았다. 이것으로 적어도 두 시간은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몇 분 후에 방을 들여다보니 제럴딘은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잠들어 있는 제럴딘의 얼굴은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그래, 낮잠은 아이에게 좋지. 잠에서 깨면 두 시간이 지나지 않았어도 일어나게 해주어야겠어.
한 시간이 지나도 제럴딘은 잠에서 깨지 않았다. 제럴드도 너무 조용해서 앤은 아이가 남자답게 벌을 받고 있으니 용서해주어도 좋으리라고 생각했다. 결국 아이비 트렌트가 작은 원숭이처럼 자랑이 너무 심해서 아이들이 몹시 심정이 상했다.
앤은 벽장문을 열었다.

그런데 제럴드가 보이지 않았다. 창문은 열려 있고 바로 아래는 베란다 지붕이었다. 앤의 얼굴이 경직되었다. 얼른 아래층으로 내려가 뜰을 살펴보았다. 제럴드는 아무 데도 보이지 않았다. 장작 헛간도 찾아보고 거리로 나가 길 위쪽과 아래쪽도 다 살폈다. 그러나 제럴드는 어디에도 없었다.
앤은 얼른 대문에서부터 이어진 오솔길을 따라 잡목 숲을 지나 로버트 크리드모어 씨네 밭에 있는 작은 연못으로 갔다. 세상에나, 제럴드는 크리드모어 씨네 작은 배를 타고 신나게 노를 젓고 있었다. 앤이 나무 사이로 막 모습을 드러냈을 때 제럴드는 흙탕 속에 깊이 박혀 버린 노를 세 번째로 힘주어 잡아당겼고, 순간 뜻하지 않게 노가 쉬이 빠져버리는 바람에 머리서부터 뒤로 풍덩 물속에 처박히고 말았다.
앤은 그만 놀라 비명을 질렀으나 사실은 놀랄 필요도 없었다. 그 연못은 아무리 깊어도 제럴드의 어깨 높이에도 오지 않았고 지금 제럴드가 빠진 곳은 물이 제럴드 허리 높이밖에 되지 않았다. 제럴드는 엉거주춤 일어서긴 했지만 온통 엉겨 붙은 금발머리에서 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얼이 빠진 듯 그대로 서 있었다. 그때 등 뒤에서 앤의 비명 소리가 다시 메아리가 되어 돌아오는가 싶더니 제럴딘이 잠옷차림으로 나무숲 사이를 달려와 그 작은 배가 매어져 있던 조그만 나무 선착장 끝에 섰다.
이어 “제럴드!” 하는 비통한 부르짖음과 함께 제럴딘이 날쌔게 물로 뛰어들더니 요란한 물보라를 일으키며 제럴드에게 다가갔다. 그 바람에 제럴드를 다시 물속에 처넣을 뻔하면서.
“제럴드, 너 물에 빠졌어? 너 물에 빠진 거야?”
제럴딘이 소리쳤다.

“아니야, 아니야.”
제럴드가 이를 딱딱 부딪치며 동생을 안심시켰다.
둘은 서로를 끌어안고 정신없이 입을 맞추어대기까지 했다.
“얘들아, 얼른 이리 나와.”
앤이 말했다.
둘이 물가로 휘적휘적 걸어나왔다. 아침에는 따뜻하던 9월의 날이 늦은 오후가 되자 춥고 바람이 부는 날씨로 바뀌었다. 둘은 심하게 몸을 떨었고, 얼굴은 파래졌다. 앤은 꾸지람은 삼가고 얼른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가 젖은 옷을 벗기고 레이몬드 부인의 침대에 밀어 넣었다. 발치에는 뜨거운 물주머니도 넣었다. 그래도 둘은 계속해서 몸을 떨었다. 오한이 나나? 폐렴이 되어가는 걸까?
“셜리 선생님이 우리를 좀 더 잘 돌봐주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제럴드가 여전히 이를 딱딱거리며 말했다.
“정말이에요.”
제럴딘도 말했다.
앤은 혼비백산하여 아래층으로 달려 내려가 의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의사가 왔을 때는 쌍둥이의 몸도 녹았고, 아이들의 건강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다는 반가운 얘기를 들었다. 내일까지 푹 쉬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레이몬드 부인은 역에서 돌아오는 길에 의사를 만나서 창백한 얼굴로 거의 히스테리 상태가 되어 집으로 뛰어들었다.

“오, 셜리 선생님, 어떻게 내 소중한 아이들을 그런 위험에 처하도록 내버려두었죠?”
“우리도 그 말을 하고 있던 참이에요, 엄마.”
쌍둥이가 합창을 했다.
“나는 셜리 선생님을 믿었어요. 내가 그렇게 당부를 했잖아요.”
“제가 어째서, 책망을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군요, 레이몬드 부인. 좀 침착해지면 부인도 어떻게 된 일인지 아실 거예요. 아이들은 아무렇지도 않아요. 의사 선생은 만에 하나 문제가 있을까 봐 와달라고 한 거고요. 제럴드와 제럴딘이 제 말을 듣기만 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도 않았어요.”
잿빛 안개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앤이 말했다.
“나는 선생님이라면 아이들을 좀 더 위엄 있게 다룰 걸로 알았어요.”
레이몬드 부인은 신랄하게 말했다.
‘보통 아이들이라면 그렇겠지요. 하지만 이 꼬마 악당들에게는 소용없어요.’
앤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쳤으나 그냥 다음과 같이 내뱉고 말았다.
“레이몬드 부인, 이제 돌아오셨으니 저는 집으로 가겠어요. 이 이상은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할 거고 전 오늘 밤 해야 할 일도 있어서요.”
쌍둥이들이 마치 한몸인 듯 침대에서 뛰어나와 앤에게 매달렸다.

“매주 장례식이 있으면 좋겠어요. 나는 셜리 선생님이 좋아요. 엄마가 없을 때는 선생님이 와서 우리와 함께 있어주세요.”
제럴드가 소리쳤다.
“나도요.”
제럴딘도 말했다.
“나는 프라우티 할머니보다 셜리 선생님이 훨씬 좋아.”
제럴드가 말했다.
“그럼, 훨씬 좋고말고!”
제럴딘도 말했다.
“우리를 선생님 이야기 속에 써주세요.”
제럴드가 졸랐다.
“오, 그렇게 해주세요.”
제럴딘도 졸랐다.
“선생님도 잘하려고 하셨겠지요.”
레이몬드 부인은 마음이 약해져 말했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됐네요.”
앤은 매달리는 아이들을 떼어놓으며 차갑게 대답했다.
“오, 그렇다고 우리 다투지는 말아요. 난 누구하고도 다투는 건 싫어요.”

레이몬드 부인은 커다란 눈에 눈물을 가득 담고 사정했다.
“물론이죠. 다툴 필요는 조금도 없어요. 제럴드와 제럴딘에게야 무척 재미있었던 하루였을걸요. 가엾게도 아이비 트렌트는 아니었겠지만.”
앤의 태도는 더없이 당당했다. 앤도 마음만 먹으면 위엄 있는 태도를 취할 수 있었다.
앤은 몇 년은 늙어버린 기분으로 집으로 향했다.
‘세상에나, 이 아이들에 비하면 데이비는 장난꾸러기라 말할 수도 없어.’
앤은 생각했다.
집에 도착하니 레베카가 땅거미 내린 정원에서 늦은 팬지꽃을 따고 있었다.
“레베카 듀, 난 말이에요, ‘아이들은 그 자리에 있어도 되지만 얌전히 있어야 한다.’는 말을 너무 심한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오늘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어요.”
“오 가엾게도 힘든 하루를 보냈군요. 가요, 내가 맛있는 저녁을 줄게요.”
레베카 듀가 말했다.
“그러니까 내가 뭐랬나요.”
레베카 듀는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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