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비안 나이트 12장 (끝)

나단비 | 2024.05.21 19:08:13 댓글: 2 조회: 385 추천: 1
분류명작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69904




12장

아부 하산 또는 
자면서 깨어 있는 자에 관한 이야기

 
 
 
 
하룬 알 라시드 왕이 통치하던 시기에 바그다드에 아주 부유한 상인이 살았다. 그에게는 아들이 한 명 있었는데 이름을 아부 하산이라 짓고 매우 엄격하게 교육을 하였다. 아들이 서른 살이 되었을 때 상인은 죽고 말았다. 아부 하산은 그의 유일한 상속인이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근검절약하고 장사에 온 힘을 쏟아 모은 어마어마한 재산을 물려받게 되었다.
평소에 아버지 때문에 사치를 누려보지 못한 아부 하산은 돈을 마음껏 쓰고 싶어 흥청망청 돈을 쓰는 것으로 이름을 날리기로 결심하였다. 그래서 재산을 둘로 나누어 그 절반으로 도시에 있는 집 여러 채와 시골의 땅을 샀다. 땅과 집에서 나온 수입은 화려한 생활을 하고도 남을 만큼 많았는데, 그는 이 수입에는 절대로 손을 대지 않고 저축하기로 결심했다. 현금으로 된 나머지 절반의 재산은 아버지 때문에 늘 옥죄어 사느라 잃어버렸던 시간들을 보상하는 데 쓰기로 작정했다.

그래서 그는 자기와 같은 나이면서 같은 생각을 가진 젊은이들을 모아 클럽을 만들었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시간을 보낼지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젊은이들이었다. 아부 하산은 화려한 연회를 열고 온 도시에 축제를 벌이는 데 수고와 돈을 아끼지 않았다. 그 비용은 어마어마해서 그 목적을 위해 따로 떼어놓았던 돈은 일 년만에 바닥이 나고 말았다. 그래서 아부 하산은 연회를 더 이상 열지 않았다. 아부 하산이 흥겨운 연회를 중단하자 친구들은 그에게 등을 돌렸다. 아부 하산이 보이면 피해갔으며, 아부 하산이 우연히 그들과 마주칠 때 말을 걸려고 하면 늘 이러저러한 핑계를 대며 자리를 피했다.
아부 하산은 바보처럼 흥청망청 돈을 모두 낭비해버린 사실보다도 그에게 끊을 수 없는 우정을 맹세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처럼 비열하고 배은망덕하게 등을 돌리는 친구들의 행동이 더 마음 아팠다. 그는 매우 심통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우울하게 그의 어머니의 방으로 가서 어머니와 멀찍이 떨어져 소파 맨 끝에 앉았다.
 

 
“무슨 일 있느냐, 아들아?” 하고 그의 어머니가 아들이 침울해하는 것을 보고 물었다. “왜 너답지 않게 그리 풀이 죽어 전혀 딴 사람처럼 구는 거냐?”
이 말에 아부 하산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리고는 한숨을 내쉬며 외쳤다. “아! 어머니, 가난이 얼마나 견딜 수 없는 것인지 이제야 알겠어요. 지는 태양이 빛을 앗아가듯, 가난은 기쁨을 앗아가요. 가난은 우리가 부유했을 때 우리에게 쏟아졌던 모든 찬사를 잊어버리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을 숨기고 싶게 만들며, 눈물과 슬픔으로 밤을 지새게 만들지요. 한 마디로, 가난한 자는 친구들과 친척들로부터 이방인 취급을 당하지요. 어머니도 아시잖아요. 지난 일 년 동안 제가 친구들을 어떻게 대했는지요. 저는 온갖 아량을 베풀어 그들을 즐겁게 해 주었고 그러느라 돈이 바닥이 났어요. 그런데 이제 제가 그들에게 더 이상 베풀 수 없다는 것을 알자 모두 절 떠나 버렸어요. 땅과 집에는 손대지 않겠다고 한 맹세를 지킬 수 있도록 도와준 하늘에 감사해요. 이제 남은 것들을 어떻게 쓸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저는 친구라고 부를 가치도 없는 그 인간들의 배은망덕이 어디까지 가는지 알아볼 참이에요. 저는 그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면서 제가 그들을 위해 한 일에 대해 말하고 저를 도와줄 돈을 좀 모아 달라고 부탁할 참이에요. 그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티끌만큼이라도 남아 있는지 보려는 거지요.”
상처받은 아부 하산이 친구들을 설득하기 위해 한 얘기에 마음이 움직인 친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아부 하산은 거의 모든 친구들이 대놓고 자기를 모르는 체하자 굴욕감을 느꼈다.
 
그는 매우 우울한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에게 가서 말했다. “아! 어머니, 그들은 친구들이 아니라 모두들 친구라고 할 만한 가치도 없는, 신의가 없는 배은망덕한 녀석들뿐이었어요. 이제 그들을 친구로 생각하지 않겠어요. 다시는 보지 않을 거예요.”
그는 자신이 한 말을 지킬 결심을 하고 이전의 방탕한 생활로 인해 겪었던 불편을 다시는 겪지 않도록 조심을 하였다. 그리고 앞으로는 죽을 때까지 바그다드에 사는 사람들에게 그 어떤 접대도 하지 않기로 맹세했다.

그는 집과 땅에서 나온 임차료를 저축해 두었던 금고를 벽감에서 꺼내 빈 방에 두고는 날마다 단 한 사람과 함께 저녁식사를 할 만큼의 돈만 꺼내 쓰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함께 저녁식사를 할 사람은 자신이 맹세한 대로, 바그다드 사람이 아니라 그날 바그다드에 도착한 이방인으로 다음날 아침에 그를 떠나야 하는 사람으로 정했다.
이 계획에 따라 아부 하산은 매일 아침 필요한 것을 준비하고 저녁 무렵이 되면 바그다드 다리 끝에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이방인이 나타나면 다가가서 공손하게 저녁 식사에 초대하고 그날 밤 자기 집에서 묵기를 청했다. 그리고는 자신이 정한 규칙에 대해 설명해 주고는 이방인을 집으로 데려갔다.
아부 하산이 손님들에게 접대한 식사는 값비싼 음식이 아니었다. 하지만 식사를 할 때 그는 예의를 갖추어 차려 입고 훌륭한 포도주를 풍성하게 대접했다. 식사는 보통 밤이 이슥하도록 계속되었다. 아부 하산이 식사를 하면서 손님들과 나누는 얘기는 국가나 가족이나 사업에 관한 얘기와 같은 흔한 얘기가 아니라 여러 가지 유쾌한 이야기들이었다. 그는 천성적으로 매우 쾌활하고 상냥한 성격이어서 어떤 주제에 대해서도 재미나게 얘기를 잘했으며 아무리 우울한 사람이라도 명랑하게 만들었다.
다음날 아침, 손님들을 보낼 때면 그는 항상 이렇게 말했다. “어디를 가시든지 하느님께서 모든 슬픔으로부터 당신을 보호해 주시길 바랍니다. 어제 당신을 저녁식사에 초대할 때 제가 스스로에게 부과한 규칙에 대해 말씀드렸을 것입니다. 그러니 집에서든 어디에서든 다시는 서로 만나거나 함께 식사를 할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씀드린다 해도 서운하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만의 이유가 있어서 그렇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을 잘 인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아부 하산이 다리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하룬 알 라시드 왕이 모술 상인의 복장을 하고 노예 한 명을 데리고 그곳을 지나가게 되었다. 아부 하산은 왕이 상인인 줄 알고 공손하게 다가가 인사를 건네며 말했다. “나리, 바그다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여행을 하시느라 피곤하셨을 테니 저희 집에 가셔서 함께 저녁식사를 하시고 하룻밤 묵으신다면 저로서는 영광이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아부 하산은 처음 만난 이방인에게만 접대를 하는 자신의 규칙에 대해 설명했다. 왕은 아부 하산의 제안이 너무나도 특이하고 기이하여 그 연유를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이방인으로서 기대하지 않았던 그러한 정중한 대접을 받으니 그 친절한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없노라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앞장서서 가면 따라가겠다고 말했다.
자신이 초대한 손님의 신분에 대해서 짐작조차 못한 아부 하산은 손님을 대등한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 접대하고 훌륭하지만 간소한 저녁 식사를 함께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손을 씻자 아부 하산은 포도주를 식탁에 놓으며 왕에게 마시라고 권했다. 왕은 포도주를 기분 좋게 마셨다. 또한 아부 하산이 들려주는 쉽고도 교양 있는 이야기를 즐겁게 들었다. 마침내 아부 하산은 흥이 넘쳐 자신이 겪은 경험담에 대해 얘기했으며 왕은 매우 흥미 있게 들었다. “참으로 다행이오, 너무 늦지 않게 자각을 하게 되었으니. 당신의 행동이 참으로 가상하오.” 하고 왕이 말했다.
그들은 그렇게 앉아서 밤이 이슥하도록 술을 마시며 이러저러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왕이 말했다. “우리가 헤어지기 전에 내가 당신을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는지 말해 주시오. 마음을 열고 허심탄회하게 말해 보시오. 난 상인에 불과하지만 혹시 아오? 내가 당신을 도울 수 있을지, 아니면 친구를 통해서 도울 수 있을지 말이오?”
이 제안을 받자 여전히 왕을 모술의 상인으로 알고 있는 아부 하산이 대답했다. “진심으로 이처럼 너그러운 제안을 하신다는 것은 잘 압니다. 하지만 정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저를 힘들게 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업도 욕망도 말입니다. 그러니 누구한테도 부탁할 일이 없습니다. 제가 말씀드렸듯이 저는 조금도 야망이 없습니다. 현재 저의 상태에 아주 만족하고 살고 있답니다. 그러니 그 친절한 제안에 감사할 뿐이며 약소한 식사를 함께 할 수 있는 영광을 주셔서 감사할 뿐입니다. 다만, 말씀 드리자면,” 하고 아부 하산이 얘기를 계속했다.
“저의 휴식에 방해가 되지는 않지만, 한 가지 마음이 불편한 점이 있답니다. 바그다드가 네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그리고 각 구역에 사원과 함께, 일정한 시간마다 예배를 위해 모인 사람들의 맨 앞에서 예배를 주관하는 성직자가 있다는 것도요. 그런데 제가 사는 구역의 성직자는 근엄한 표정을 짓고 다니지만 참으로 괴팍한데다 이 세상에 다시없는 위선자랍니다. 그 성직자와 다를 바 없는, 이웃에 사는 노인 네 명이 성직자의 집에서 매일 정기적으로 만나는데, 저와 이 지역에 대해 중상과 모략과 악담을 일삼는답니다. 그들을 벌할 수 있는 힘이 제게 있다면 당장 그리 하겠습니다. 폐하께서는 정의로운 분이시니 그들의 행실을 알면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만약 제가 왕과 같은 힘이 있다면 그들의 부당한 행실에 대해 성직자에게는 400대의 채찍질을, 성직자를 부추긴 네 명의 노인들에게는 각 100대의 채찍질을 하라고 명령하겠어요.”
 
왕은 아부 하산이 소원을 이룰 수 있도록 당장 계획을 세웠다. 그는 포도주 병을 들어 포도주를 잔에 따른 다음 아부 하산의 건강을 위해 건배를 하였다. 그리고 또 한 잔을 따르면서 늘 몸에 지니고 다니던 아편 가루를 살짝 넣은 다음, 아부 하산에게 권하면서 말했다. “밤새 저를 접대해 주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으니 그 노고에 대한 보답으로 제가 할 수 있는 자그마한 성의입니다. 이 잔을 받아 저를 위해 마셔 주십시오.”
아부 하산은 잔을 받아들고 손님을 접대할 수 있는 영광을 갖게 되어 매우 기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단숨에 들이켰다. 술을 마시자 곧 아편가루가 온몸에 퍼져 아부 하산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왕은 그를 수행한 노예에게 아부 하산을 등에 업고 따라오라고 명했다. 그리고는 집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잘 봐 두라고 말했다. 잠시 후, 왕은 아부 하산을 등에 업은 노예를 데리고 집을 나왔다. 하지만 나중에 아부 하산을 다시 데려다 줘야 했으므로 문은 닫지 않고 열어 두었다. 그들은 곧장 궁전으로 가서 밀실문을 통해 각료들이 대기하고 있는 왕의 방으로 갔다. 왕은 그들에게 아부 하산의 옷을 벗기고 자신의 침대에 눕히라고 명했다. 각료들이 즉시 실행에 옮겼다.
왕은 이번에는 모든 각료들과 귀부인들을 궁전으로 불러들인 다음 그들에게 말했다. “아침마다 나를 알현하는 모든 이들은 내일 아침에는 나의 침대에 누워 있는 이 사람을 알현하도록 하시오. 내게 하듯이 그에게 존경을 표시하고 그가 무슨 명령을 하든 간에 복종하도록 하시오. 그가 부탁하는 일을 거절하는 일이 없도록 하고, 묻고 대답할 때는 마치 왕인 나를 대하듯이 경어를 쓰도록 하시오. 다시 말하면, 나를 배려하지 말고 진짜 왕을 대하듯이 그를 대하고 추호도 그에게 불복종하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
왕이 기분전환을 위해 그러는 것이라고 이해한 각료들과 귀부인들은 몸을 굽혀 대답을 하고는, 최선을 다해 각자의 역할을 능숙하게 해낼 각오를 하며 물러갔다.
다음으로 왕은 재상을 불러들였다. “지아파,” 하고 왕이 말했다. “그대가 내일 아침 나를 알현하러 올 때 왕의 옷을 입고 내 왕좌에 앉아 있는 이 사람을 보고 놀랄까봐 알려 주려고 불렀소. 나에게 하듯이 이 사람을 경의와 존경심을 가지고 대하시오. 이 사람이 명령을 하면 내가 명령을 한 것처럼 생각하고 즉각 실행하도록 하시오. 이 사람은 많은 아량을 베풀어 그대에게 재물을 나눠 주라는 주문을 할 것이오. 그가 명하는 대로 모두 따르시오. 그의 후한 아량으로 인해 내 금고가 바닥이 날 정도가 되더라도 그리 하시오. 그리고 궁전 밖의 군주들과 각료들에게도 나에게 하듯 이 사람에게 경의를 표하고 내가 꾸민 이 일을 이 사람이 전혀 눈치 채지 못하도록 자연스럽게 행동하라고 전하시오.”

재상이 물러가자 왕은 다른 방에 있는 침대로 가서 환관인 메스로우에게 모든 것이 의도한 대로 성공을 거둘 수 있도록 그가 할 일에 대해 명령을 했다. 왕은 짧은 시간 동안 왕의 권위와 힘을 아부 하산이 어떻게 사용하는지 보고 싶었다. 그래서 아부 하산을 깨우기 전, 반드시 여느 때와 같은 시각에 자신을 깨우라고 지시를 하였다. 아부 하산이 일어날 때 지켜보기 위함이었다.
메스로우는 왕이 지시한 대로 임무를 수행했다. 왕은 아부 하산이 자는 방으로 가서 모든 것을 훤히 내려다볼 수 있는 높다란 벽장에 몸을 숨겼다. 아부 하산을 알현할 각료들과 귀부인들도 같은 시각에 방으로 들어와 지위에 따라 자리를 잡고 왕이 아침에 기상할 때와 마찬가지로 알현할 준비를 갖추었다.
이제 동이 트기 시작하였다. 해가 뜨기 전에 아침 기도를 준비할 시각이었다. 침대 맡 가장 가까이에 있던 시종이 식초를 묻힌 스펀지를 아부 하산의 코에 갖다 댔다. 그러자 아부 하산이 깜짝 놀라며 깨어났다. 그는 화려하게 꾸며진 커다란 방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천장에는 아라베스크 무늬가 곱게 그려져 있었고, 사방은 금과 은으로 된 꽃병들로 장식이 되어 있었으며, 바닥에는 화려한 비단 양탄자가 깔려 있었다. 이불로 눈을 돌리자 진주와 다이아몬드를 화려하게 박아 넣은 금란[1]이 눈에 들어왔다. 침대 옆에 놓인 방석에는 보석으로 수놓인 직물로 된 의복과 왕의 터번이 놓여 있었다.

[1]금실을 넣어 짠 천
 
아부 하산은 눈부신 물건들을 보고 놀라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으며 모든 게 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꿈이 아니기를 바랐기 때문에 이렇게 중얼거렸다. “나는 왕이야.” 하지만 자신의 처지를 떠올리며 이렇게 덧붙였다. “꿈일 뿐이야. 지난밤에 손님을 접대하면서 내가 품었던 바람이 꿈으로 나타난 것뿐이야.” 그리고는 돌아누워 잠을 자려고 눈을 감았다. 바로 그때 노예가 매우 깊은 경의를 표하며 말했다. “폐하, 기도를 하러 가시기 위해 기상하실 시각입니다. 아침이 밝아오고 있사옵니다.”
그 목소리에 아부 하산은 일어나 앉아 중얼거렸다. “이건 꿈일 리가 없어.” 그는 잠을 깨려고 눈을 비볐다.

눈을 뜨자 햇살이 방 창문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바로 그때 메스로우가 들어와 아부 하산 앞에 엎드려 말했다. “폐하, 황송하옵게도 오늘 따라 늦게 기상하시어 기도 시간이 끝났사옵니다. 지난밤에 별일이 없으셨다면 왕좌에 오르셔서 여느 때처럼 어전회의를 하실 시간이옵니다. 모든 장군과 총독과 각료들이 어전회의실에서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이 말에 아부 하산은 자신이 잠을 자고 있지도 꿈을 꾸고 있지도 않다고 확신하였다. 하지만 동시에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몰라 매우 당혹스럽고 혼란스러웠다. 마침내 그는 메스로우를 진지하게 바라보며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대체 누구한테 말하는 것이오, 폐하라니요? 나는 당신이 누군지도 모르오. 아마도 나를 다른 사람으로 착각한 것 같소.”
메스로우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 질문에 당혹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왕에게 자세한 지시를 받은 터였기 때문에 자신의 역할을 아주 유연하게 잘 해냈다. “저의 주인님이시며 제왕이시여, 소신을 시험하시려고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폐하께서는 대교주님이시며, 동서를 가로지르는 이 세상의 군주이시고, 하느님이 보내신 마호메트의 대리자가 아니십니까? 폐하의 가련한 노예인 이 메스로우는 아주 긴 세월 동안 폐하께 봉사하고 존경하는 영광과 행복을 누려 왔습니다. 그런데 어찌 폐하를 몰라볼 수가 있겠습니까? 소신이 폐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 드렸다면 소신에게 이보다 더 불운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황송하옵지만 이러한 심려를 하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아마도 지난밤의 어지러운 꿈 때문에 마음이 산란하신 것이라 사료되옵니다.”
이 말에 아부 하산은 웃음을 터뜨리며 베개받침 위로 벌러덩 넘어졌다. 이 광경을 보고 왕은 너무도 우스워서 큰 소리로 웃을 뻔했다. 하지만 그가 예상했던 바와 같은 이 유쾌한 광경이 중단될까 두려워 소리를 내지 않도록 조심했다. 웃다 지친 아부 하산은 몸을 세우고 다시 똑바로 앉아 메스로우처럼 흑인인, 옆에 서 있는 소년을 돌아보며 말했다.
“여봐라, 내가 누군지 말해 보거라.”
“폐하, 폐하께서는 모든 신앙인들의 지도자이시며 이 땅에 기거하시는, 하느님의 대리자이십니다.” 하고 소년이 다소곳이 대답했다.
“그럴 리 없다, 이리 오시오, 아름다운 부인.” 하고 아부 하산은 옆에 서 있는 시녀들을 보며 말했다. 아부 하산이 손을 내밀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 있도록 내 손가락 끝을 물어보시오.”
왕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시녀는 아부 하산을 감쪽같이 속아 넘어가게 할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에 매우 기뻐하며 엄숙한 표정으로 다가가 그의 손가락을 이 사이에 넣고 아부 하산이 아파할 정도로 세게 물었다.
아부 하산은 얼른 손가락을 빼며 말했다. “내가 자고 있는 것이 아니라 깨어 있다는 것을 알겠소. 하지만 무슨 기적이 일어났기에 하룻밤 사이에 내가 왕이 되었단 말이오? 이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도 더 기이하고 놀랄 일이 아니오?” 그리고는 손가락을 문 시녀를 돌아보며 말했다. “나는 물론이고 당신도 믿는 하느님의 가호 아래, 제발 나에게 진실을 숨기지 말기 바라오. 내가 진정 왕이오?”
“너무도 자명한 사실이라서, 폐하의 노예인 저희들은 폐하께서 사실을 믿지 못하시니 참으로 놀랍습니다.” 하고 시녀가 대답했다.
“거짓말이오, 나는 내가 누군지 잘 알고 있소.” 하고 아부 하산이 대답했다.

아부 하산은 너무도 어리둥절해서 메스로우가 부축해서 일으켜 주는 것도 노예들이 옷을 입혀 주는 것도 거절할 정신이 없었다. 옷을 다 입자 재상이 이중으로 된 커튼을 지나 어전회의실로 그를 안내한 다음, 왕을 모시는 화려한 의식을 갖추어 왕좌로 안내했다. 아부 하산이 왕좌 앞으로 다가가자 메스로우가 팔을 내밀어 붙잡고 계단을 오를 수 있도록 해 주었으며, 맞은편 각료도 똑같이 팔을 내밀었다. 각료들이 그의 행복과 번영을 외치며 환호하는 가운데 그는 그들을 의지하며 계단을 올라 왕좌에 앉았다. 한편, 왕은 그들을 뒤따라와 들키지 않고 그를 볼 수 있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아부 하산이 왕 자신처럼 매우 근엄하게 왕좌에 앉아서 매우 기뻤다.
아부 하산이 왕좌에 앉자 재상이 앞으로 나와 낮게 절을 하고는 말했다. “폐하, 이 세상에서는 하느님께서 폐하께 축복을 내려 주시고, 저 세상에서는 폐하를 그분의 낙원으로 인도하시며 폐하의 적들을 물리쳐 주시길 기원합니다.”
이제 자신이 실제로 왕이라고 믿기 시작한 아부 하산은 재상에게 다뤄야 할 사안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폐하, 어전회의에 참석할 각료들이 폐하께서 알현을 허락하실 때를 기다리며 밖에 서 있사옵니다.” 하고 재상이 대답했다. 아부 하산은 즉시 문을 열어 각료들을 들여보내라고 명령했다. 각료들이 자리에 앉기 전에 엎드려 절하자 아부 하산은 제왕답게 그들에게 허리를 굽혀 답례했다.
곧이어 그날의 사안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재상은 왕좌 앞에 서서 보고를 하였다.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황제는 아부 하산이 지혜롭게 일을 처리하는 모습을 보고 감탄했다. 아부 하산은 카디[1]를 불러 말했다.

[2]이슬람법에 따라 판결을 내리는 재판관

“특정 구역에 있는 사원으로 가면 나이든 성직자가 있을 것이오. 그를 체포하고 유약한 그를 부추긴 네 명의 노인들을 체포하여 발바닥을 치는 벌을 내리시오. 성직자에게는 400대를, 그리고 나머지 노인들은 각각 100대씩을 치시오. 그런 후 그 다섯 명에게 누더기 옷을 입혀 낙타에 태운 후 얼굴을 길 쪽으로 향하게 하고 도시 전체를 도시오. 도시를 돌 때는 그들 앞에 포고를 하는 사람을 앞장 세워서 큰 목소리로 ‘이것은 참견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받는 벌이다!’라고 외치게 하시오. 또한 그들에게 영원히 그 지역을 떠나라고 명하시오.” 카디는 재상에게 절을 하고 명령을 실행하러 물러갔다가 잠시 후에 돌아와 임무를 완수하였다고 보고하였다.
 왕은 명령을 내리는 아부 하산의 확고부동한 태도가 마음에 들었으며, 아부 하산이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기 구역에 있는 성직자와 네 명의 위선자들을 벌하고자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번에는 재상이 보고를 하였다. 그가 보고를 막 끝냈을 때 치안관이 명령을 집행하고 돌아왔다. 그는 관례적인 예의를 갖추며 왕에게 다가가 말했다.

“폐하, 폐하께서 말씀하셨던 성직자와 그의 네 명의 친구들을 사원에서 찾아내었습니다. 폐하의 분부를 한 치도 어긋남이 없이 집행한 증거로서 그 구역의 원로들이 사인을 한 문서를 가져왔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치안관은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아부 하산에게 내밀었다.
아부 하산이 이번에는 재상을 보고 말했다. “재무상에게 가서 금화 천 냥이 든 지갑을 가져다가 내가 치안관을 보냈던 바로 그 구역에 사는 아부 하산의 어머니에게 전하도록 하시오. 빨리 갔다가 돌아오도록 하시오.”
재상은 머리에 손을 얹고 왕좌 앞에 엎드린 다음 바로 재무상에게 갔다. 재무상이 돈을 주자 재상은 노예에게 그 지갑을 가지고 따르게 한 후 아부 하산의 어머니에게 가서 돈을 전하면서 왕이 선물로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부 하산의 어머니는 너무 놀라서 어쩔 줄 몰라 하며 받았다.
그날의 업무가 끝나고 어전회의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물러가자 아부 하산은 왕좌에서 내려와 식당으로 안내되었다. 그는 춤과 음악가들이 연주하는 음악을 구경하면서 푸짐한 식사를 하였다. 식사하는 내내 일곱 명의 아름다운 여인들이 옆에 서서 그에게 부채질을 해 주었다. 아부 하산은 모든 것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특히 시중을 드는 여인들의 아름다움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는 그 여인들을 유심히 보면서 한 사람만 부채질을 해도 충분하니 나머지 여섯은 그의 양쪽으로 세 명씩 식탁에 앉으라고 말했다. 그러자 여인들이 식탁에 앉았다. 여인들이 그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먹지 않자, 아부 하산은 음식을 권하며 매우 간곡하고도 친절한 어조로 먹으라고 청했다. 얼마 후 아부 하산이 그들의 이름을 묻자 그들은 앨러배스터 넥, 코럴 립스, 문 페이스, 선샤인, 아이스 딜라이트, 하트스 딜라이트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에게 부채질을 해주고 있던 여인의 이름은 슈거케인이었다. 그 이름들 하나하나에 대해 그가 해주는 다정한 말을 보면 그가 얼마나 재기 넘치는 사람인지를 알 수 있었다. 또한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왕이 그에게 품은 존경심이 더 커진 것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식사를 마친 후 아부 하산은 후식이 차려진 다른 방으로 안내되었다. 그 방에는 전보다 더 아름다운 일곱 명의 여인들이 그에게 부채질을 해 주기 위해 대기하고 서 있었다. 하지만 아부 하산은 그들에게 수고를 끼치고 싶지 않아 그의 옆에 앉아 함께 담소를 나누자고 말했다. 왕은 아부 하산이 여인들에게 해 주는 재치가 넘치는 얘기들을 듣는 것이 즐거웠다. 그는 아부 하산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이제 날이 저물기 시작하자 아부 하산은 훨씬 더 훌륭하고 화려하게 치장이 된 방으로 안내되었다. 금빛으로 번쩍이는 일곱 개의 초에서 나오는 불빛이 방안을 화려하게 비추고 있었다. 은으로 된 일곱 개의 큰 병에는 최상의 포도주가 가득 차 있었고, 그 옆에는 최고의 세공을 자랑하는 일곱 개의 크리스털 유리잔이 놓여 있었다. 지금까지 아부 하산은 신분의 높낮이에 관계없이 지켜져 온 바그다드의 관습에 따라 저녁이 되기 전에 포도주를 마신 적이 없었으며 궁전에 와서도 물밖에 마시지 않았다.
 
아부 하산은 방에 들어서자 식탁으로 가 앉아서 넋을 잃고 방안을 둘러보았다. 이제까지 보아왔던 그 어느 것보다도 훨씬 더 아름다운 방이었다. 그는 그의 오른쪽에 서 있던 여인의 손을 잡고 옆에 앉힌 다음 케이크를 권하면서 이름을 물었다. “폐하, 저는 ‘진주 송이’라 불린답니다.” 하고 여인이 대답했다.
아부 하산이 말했다. “그 어떤 이름도 너의 가치를 그보다 더 잘 표현할 수는 없을 것 같구나. 너의 이는 최상의 진주보다도 더욱 아름답다, 진주 송이.” 그가 덧붙였다. “그게 너의 이름이니 그리 부르마. 너의 아름다운 손으로 포도주를 한 잔 따라 주거라.” 여인은 사근사근하게 포도주 잔을 가져와 그에게 내밀었다. 아부 하산은 일곱 명의 여인들에게서 잔을 받아 마셨다. 그가 각 여인에게서 받은 포도주를 모두 마시고 나자 진주 송이는 식당으로 가서 포도주를 따른 다음 왕이 전날 밤 사용했던 것과 똑같은 가루를 조금 넣어 아부 하산에게 주었다.
“폐하, 이 포도주 잔을 받으시길 청하옵니다. 한데 드시기 전에 제가 오늘 작곡한 노래를 들려드릴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제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이 노래가 불쾌하시진 않으실 겁니다.” 하고 그녀가 말했다. 여인이 말을 마쳤을 때 아부 하산은 잔을 들이킨 후 적절한 칭찬의 말을 하려고 여인에게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아편 효과가 급속히 퍼져 그럴 수가 없었다. 그는 갑자기 입을 벌리고 눈을 감고는 고개를 방석에 떨군 채 왕이 아편가루를 주었던 전날처럼 깊은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한 여인이 그의 손에서 떨어진 잔을 잡으려고 일어섰다. 그때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왕은 이 광경에 매우 만족스러워하며 방으로 나왔다. 그는 자신의 계획이 성공한 것을 기뻐했다. 왕은 아부 하산에게 원래 옷을 입히라 명하고, 아부 하산을 궁전으로 데려왔던 노예를 시켜 그를 다시 집으로 데려가 전날 밤 그가 누워 있던 방에 있는 소파에 조용히 눕히고 문을 열어 둔 채 돌아오라고 명했다.
아부 하산은 다음날 아침 매우 늦게까지 잠을 잤다. 아편의 기운이 사라지자 눈을 뜨고 깨어난 그는 집에 있는 자신을 보고 깜짝 놀랐다. “진주 송이! 모닝 스타! 코럴 립스, 문 페이스!” 그는 궁전에 있던 여인들의 이름을 기억해내며 소리쳐 불렀다. “어디 있느냐? 이리 오너라.”
아부 하산이 너무 크게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옆 방에 있던 그의 어머니가 그 소리를 듣고 급히 달려와 물었다. “어디 아픈 거냐, 아들아? 왜 그러느냐?” 이 말에 아부 하산은 고개를 쳐들고 거만하게 자신의 어머니를 보며 말했다. “선량한 여인이여! 누구를 보고 아들이라 하는가?”
“아니, 네가 아부 하산이 아니더냐? 네가 누구인지 잊어버렸다니 참으로 이상하구나.” 하고 그의 어머니가 매우 부드럽게 대답했다.
“내가 당신의 아들이라고? 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아느냐? 나는 왕이다. 아무리 네가 그래도 난 내가 누군지 알고 있다.” 하고 아부 하산이 말했다.
아부 하산이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다고 확신한 아부 하산의 어머니는 주제를 바꾸어 보려 노력했다. 그래서 전날 성직자가 어떻게 처벌을 받았는지에 대해 얘기했다. 아부 하산은 그 얘기를 듣자 소리쳤다. “나는 네 아들도 아부 하산도 아니니라. 나는 제왕이다. 네가 그 얘기를 하는 것으로 보아 그것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성직자와 그의 네 명의 친구들은 바로 내 명령에 따라 처벌받았느니라.”
아부 하산의 어머니는 그의 혼란스런 마음을 진정시키려 노력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녀가 타이르자 아부 하산은 더욱더 격하게 화를 냈다. 그는 너무 격분한 나머지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말리는데도 불구하고 회초리를 들고 불같이 화를 내며 달려들었다. 그리고는 그를 맹목적으로 사랑하는 어머니가 아니었다면 누구라도 무서워했을 위협적인 기세로 물었다. “내가 누군지 당장 말해 보거라. 믿을 수가 없구나.”
그의 어머니는 아들을 아무런 두려움 없이 다정하게 바라보며 대답했다. “자기를 낳아준 어미를 몰라보고 자신을 잊어버릴 정도로 하느님의 버림을 받다니. 너는 분명히 나의 아들인 아부 하산이란다. 우리의 군주이신 하룬 알 라시드 왕만이 갖는 칭호를 사칭하는 것은 큰 잘못이란다. 더구나 왕께서는 어제 우리에게 고귀하고 너그러운 선물까지 보내 주셨는데 말이다.”
이 말에 아부 하산은 완전히 정신이 돌아버렸다. 왕의 관대함에 대해 듣자 더욱더 자신이 왕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재상에게 그 일을 시켰던 것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그는 돈을 보내준 사람은 바로 자기라고 말을 하면서 광분하여 회초리로 자기 어머니를 때렸다. 말을 하다가 그렇게 갑자기 회초리를 들 줄 몰랐던 가엾은 어머니는 큰 소리로 도움을 요청했다. 그 소리에 이웃들이 도우러 달려왔다. 아부 하산은 계속 어머니를 때리면서 때릴 때마다 자기가 왕인지 아닌지를 물었고, 그때마다 어머니는 다정한 어조로 그가 자기 아들이라고 대답했다.
도우려고 달려온 이웃들은 아부 하산이 자신이 왕이라고 하는 말을 듣고 그가 미쳤다는 사실을 더 이상 의심치 않았다. 그들은 그를 붙잡아 묶은 다음 정신병원으로 데려갔다. 그는 창살로 막힌 방에 갇힌 채 제정신으로 돌아오도록 그곳에 남겨졌다. 그는 자신이 왕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도록 매일 발바닥을 50대씩 맞았다.
 

 
왕의 옷을 입고 왕의 권위를 행사하며 진짜 왕처럼 복종과 떠받듦을 받은 끝에 진짜 왕이라는 확신이 들었던 일들에 대한 아부 하산의 강렬하고도 생생한 기억이 점차 사그라들기 시작하였다. 그는 모든 일이 꿈이었다고 생각하기로 마음먹고 평온한 마음으로 돌아왔다.
그를 보러 온 아부 하산의 어머니는 제정신으로 돌아온 아들을 보고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모든 일을 아주 생생한 꿈이었다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어머니를 심하게 대한 것을 용서해 주세요.” 하고 그가 말했다.
“내 아들아!” 하고 어머니가 기쁨에 겨워 외쳤다. “네가 이렇게 제정신이 돌아온 걸 보니 말로 다 할 수 없이 행복하고 마음이 놓이는구나.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 내 생각에는 이런 일이 일어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네가 아프기 바로 전날 저녁 식사를 함께 하기 위해 네가 데려왔던 그 낯선 손님이 떠날 때 너의 방문을 닫지도 않고 가 버렸단다. 그래서 악귀가 네 방으로 들어가서 너를 그런 끔찍한 환상에 시달리게 했던 것 같다. 그러니 너를 구원해 준 하느님께 감사를 드려야 한다.”
“어머니 말씀이 맞아요, 저를 이곳에서 나가게 해 주세요.” 하고 아부 하산이 말했다. 어머니는 당장 원장에게 가서 말했다. 원장은 아부 하산을 꼼꼼히 살피더니 병실에서 나가게 해 주었다.
집으로 돌아온 아부 하산은 며칠 동안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이방인을 저녁식사에 초대하기 시작했다. 다리로 나간 첫날 그는 그동안에 일어났던 모든 불미스런 문제의 원인으로 생각되었던 상인이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아부 하산은 그를 피하려고 고개를 돌렸으나 상인은 무시하고 곧장 그에게 다가왔다. “오, 아부 하산 형제, 당신 아니요? 이렇게 반가울 수가! 껴안아도 되겠소?” 하고 그가 말했다.

“난 아니요, 난 반갑지가 않아요. 당신을 반가워하지도 포옹하지도 않을 거요. 어서 가시오!” 하고 아부 하산이 대답했다.
아부 하산이 집으로 돌아간 후 이번 만남을 주도면밀하게 계획해 왔던 왕은 그의 무례한 행동에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는 한번 접대를 한 이방인과는 다시는 말하지 않는다는, 아부 하산이 스스로에게 부과한 규칙을 잘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했다. “아! 아부 하산 형제, 운 좋게도 당신을 두 번이나 만났는데 이렇게 헤어질 생각은 없소. 한달 전에 당신과 함께 잔을 나누던 그 때 베풀어 주었던 환대를 다시 한번 베풀어 주시오.” 하고 왕이 그를 껴안으며 말했다.
아부 하산은 왕을 보내 버리고 싶었지만 그 반갑지 않은 존재를 뿌리치려 해도 소용이 없었다. 마침내 그는 그와 함께 동행하는 것을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단 한 가지 약속해 줄 일이 있소. 지난번 당신의 방문으로 인해 불미스런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줄 테니 다시는 그와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 주시오.” 하고 아부 하산이 말했다.
아부 하산은 자신이 겪은 일을 얘기하고는 왕에게 더 이상 자신의 앞날에 대해 호의를 가지고 어떻게 해 줄 생각은 않겠다는 약속을 하게 했다. 그리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난 이제 만족하오. 지난 일은 모두 용서하겠소.”
아부 하산은 집으로 들어서자 어머니를 불러 촛불을 가져오게 한 다음 손님에게 소파에 앉게 하고 자기는 그 옆에 앉았다. 잠시 후 저녁식사가 들어오자 두 사람은 예의고 뭐고 없이 먹기 시작했다. 식사를 마치자 아부 하산의 어머니가 식탁을 치우고는 아들 옆에 후식으로 과일과 포도주와 잔을 가져다 놓고 물러가서는 다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얼마간 술을 마시다 왕이 물었다. “결혼할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소?”
“없소, 난 자유로운 게 좋소.” 하고 아부 하산이 대답했다.
“그건 온당치 못한 생각이오, 당신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적당한 배필을 찾아보겠소. 당신도 그 여인을 보면 좋아할 거요.” 하고 왕이 말했다. 이렇게 말하고 황제는 아부 하산의 잔을 가져다 아편 가루를 조금 넣은 후 포도주를 채워 권했다. “자, 내가 구해 줄 배필의 건강을 위해 한 잔 하시오.” 하고 황제가 말했다.
아부 하산은 웃으면서 잔을 받고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좋도록 하시오. 당신이 바라는 일이니 무례하게 구는 것에 대해 죄책감이 없소. 그런 사소한 일로 훌륭한 손님의 뜻을 거스르지는 않겠소. 난 지금으로서도 매우 만족하고 당신이 한 약속을 지킬 거라고도 생각지 않지만 당신이 구해 줄 배필의 건강을 위해 마시겠소.”
아부 하산은 잔을 비우자마자 이전처럼 곧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왕은 이전에 똑같은 일을 했던 노예에게 그를 데리고 궁전으로 가라고 명령했다. 노예가 아부 하산을 데리고 나가자 아부 하산을 다시 집으로 돌려보낼 생각이 없는 왕은 자신이 약속한 대로 문을 닫고 노예를 뒤따랐다.
궁전에 도착하자 왕은 한 달 전에 아부 하산이 잠이 든 채 집으로 옮겨졌던 바로 그 홀에 있는 소파에 아부 하산을 눕히라고 명하였다. 하지만 그 이전에 왕은 그에게 왕의 옷을 입히라고 명했다. 그러고 나서 왕은 그가 한 달 전 마지막으로 포도주를 마시고 잠들었을 때 홀에 있었던 모든 각료와 귀부인과 음악가들에게 날이 밝을 때까지 그곳에서 대기하라 명하고 아부 하산이 깨어나면 맡은 역할을 충실히 잘 할 것을 명했다. 그리고는 이전처럼 벽장에 숨어서 볼 수 있도록 메스로우에게 아침에 깨워 달라고 말하고는 자러 갔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왕이 먹인 약이 효과가 사라지자 아부 하산은 눈을 뜨지 않은 채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일곱 명의 가수들이 오보에, 파이프, 플룻, 그리고 다른 악기들의 연주에 맞추어 매우 기분 좋은 화음을 이루며 노래를 불렀다. 아부 하산은 그와 같은 유쾌한 화음을 듣고 깜짝 놀랐다. 하지만 눈을 떴을 때 익숙한 얼굴의 귀부인들과 각료들이 보이자 더욱더 놀랐다. 그가 있는 홀은 처음 그가 꿈을 꾸었을 때 있었던 방과 똑같아 보였으며 화려한 빛도 가구도 장식도 모두 다 똑같았다.
하지만 그는 너무 두려워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하느님이시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제가 악령이 들렸나이다.” 하고 그는 외쳤다. 귀족들은 그가 나쁜 꿈을 꾼 것이라고 설득하려 했다.
“나리, 제 뒤를 봐 주십시오. 제가 헛것을 보고 있는 것인가요? 아직도 악령의 고통이 느껴집니다. 제가 깨어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도록 이리 와서 제 귀를 물어봐 주세요.” 하고 그가 소리쳤다.
한 노예가 다가가 귀를 물었다. 그러자 아부 하산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그 때 갑자기 악단이 연주를 시작하고, 모든 사람들이 아부 하산이 앉아 있는 소파 주위를 돌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여인들 중에서 그가 아는 얼굴이 보이자 아부 하산은 왕의 옷을 벗어 던지고 뛰고 깡충거리며 함께 춤을 추었다. 왕은 너무 재미있어서 벽장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소리쳤다.
“아부 하산, 아부 하산, 날 웃겨 죽일 작정이오?”
왕의 목소리가 들리자 모두가 조용해졌다. 소리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 아부 하산은 왕을 보고 모술의 상인임을 알아보았지만 전혀 겁먹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깨어 있으며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꿈이 아니라 모두 진짜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는 왕의 말에 대꾸를 했다. “하! 하! 모술의 상인, 내가 당신을 죽일 거라고 불평을 하는군. 이제야 모든 걸 알겠소. 자, 어떻게 해서 날 분별없는 사람으로 만들었는지 얘기해 보시오. 그렇지 않으면 난 평생을 반쯤 미쳤다는 생각을 하며 살 테니까.” 그가 확신에 찬 어조로 왕을 보며 말했다.
그러자 왕은 그가 약 때문에 깊이 잠든 사이에 일어난 일들과 어떻게 해서 그가 잠에 빠져들었는지에 대해 모두 얘기해 주었다. “나는 내 백성들이 어찌 지내는지 알고자 종종 변장을 하고 도시로 나간다오.” 하고 왕이 얘기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당신 집으로 가게 되었고 당신이 하루만이라도 왕의 권력을 가지면 좋겠다고 얘기하는 것을 듣고 그 소원을 들어주기로 결심했소. 내가 사실을 밝히지 않음으로 인해 그처럼 불미스런 일들이 생길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소. 하지만 내 힘 닿는 데까지 그에 대한 보상을 하겠소. 당신에게 신세를 지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당신이 보통 사람이 아니란 것을 알았기 때문이오. 바라는 것이 있으면 말해 보시오. 뭐든 들어주겠소.”
“폐하, 저의 고통이 아무리 클지라도 이제 제 기억에서 말끔하게 지워졌나이다. 저의 군주이시자 주인님이 행하신 일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청이 있다면, 평생 폐하의 미덕을 흠모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사 합니다.” 하고 아부 하산이 대답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며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줄 것이며 언제든지 자기를 찾아오라고 말했다. 아부 하산은 적당한 예를 표하고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에게 그동안에 일어났던 일에 대해 얘기하며 꿈이 아니었다고 말해주었다.
왕은 아부 하산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매우 즐거워하며 끊임없이 함께 있고 싶어 했다. 그는 왕비인 조베이데에게도 아부 하산을 데려가곤 했는데, 왕비 또한 그의 모험담을 매우 즐겨 들었다. 왕비는 그를 자주 보고 싶어 했는데, 아부 하산이 자기를 찾아올 때마다 ‘누자툴 아우아다’라는 시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황제에게 그 사실을 말하기로 결심했다.
어느 날 왕비가 말했다. “폐하, 폐하께서 아부 하산을 저에게 데려올 때마다 그가 누자툴 아우아다라는 시녀에게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누자툴 아우아다 역시 그의 관심을 받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 눈치입니다. 두 사람을 서로 맺어주면 어떠할지요.”
왕이 대답했다. “왕비, 누자툴 아우아다가 아부 하산을 남편으로 받아들인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지요. 두 사람이 여기 있으니 당장 결정하도록 합시다.”
 
아부 하산은 왕과 왕비의 발 앞에 엎드려 그들에게 감사를 표한 후 일어나서 말했다. “이보다 더 좋은 아내를 맞이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감히 희망하건대, 제가 손을 내밀듯이 누자툴 아우아다 또한 기꺼이 제게 손을 내밀기를 바라나이다.” 이렇게 말하며 아부 하산은 왕비의 시녀를 바라보았다. 누자툴 아우아다는 공손히 침묵을 지키고 갑자기 얼굴을 붉힘으로써 왕과 왕비의 말에 기꺼이 복종할 것임을 보여주었다.
결혼식 축하 잔치는 며칠 동안 계속되었다. 왕과 왕비 두 사람은 신혼부부에게 멋진 선물을 주었다. 아부 하산은 아내가 더할 나위 없이 마음에 들었으며, 누자툴 아우아다 또한 남편이 마음에 들었다. 사실 두 사람은 천생연분이었다. 결혼식 잔치와 행사가 끝나자 아부 하산과 그의 아내는 정착을 하여 매우 호화로운 생활을 하며 살았다. 그들은 연회를 베푸는 데 물쓰듯 돈을 썼다. 그처럼 낭비를 하는 바람에 결혼한 지 일 년이 채 못 되어 무일푼이 되고 말았다.
궁핍해진 아부 하산은 아내에게 말했다. “우리 둘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 있는데 반대하지 않으리라 믿고 말하겠소. 이처럼 궁핍하다 보니 당분간이나마 우리가 먹고 살 수 있는 방법이 떠올랐소. 작은 속임수를 쓰는 것이오. 나는 왕에게, 당신은 왕비에게 말이오. 그 속임수를 왕과 왕비께서 매우 즐거워하실 테니 우리 두 사람에게 보상이 주어질 것이오. 그 속임수란 바로 당신과 내가 죽는 것이오.”
“전 싫어요.” 하고 누자툴 아우아다가 말을 가로막으며 외쳤다. “죽고 싶으면 당신이나 죽으세요. 전 이 삶에 아직 지치지 않았어요. 당신 생각이 어떻든 간에 그렇게 빨리 죽진 않을 거예요. 달리 방법이 없다면 당신 혼자 죽어도 좋아요. 하지만 함께 죽진 않을 거예요.”

“왜 그리 의기충천하여 성급하시오, 설명할 시간도 주지 않고.” 하고 아부 하산이 대답했다. “좀 진득하게 기다려 보시오. 그러면 내가 얘기하는 대로 기꺼이 죽고자 할 것이오. 설마 내가 진짜 죽으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럼, 당신이 가짜로 죽으려고 한다면 도와줄게요. 그런 죽음을 기꺼이 도와줄 수는 있어요.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난 정말이지 죽고 싶지 않아요.” 하고 아내가 말했다.
아부 하산이 말했다. “좀 조용히 하시오, 약속한 대로 얘기하겠소. 내가 죽은 척하면 매장지로 갈 준비를 하듯이 나를 방 한가운데에 눕히고 터번을 얼굴에 올려놓고 발은 메카를 향하게 하시오. 그러고 나서 남편이 죽으면 흔히 하듯이 애통해하며 통곡을 하면서 옷과 머리카락을 쥐어뜯으시오. 아니면 그러는 척 하든가. 그리고 머리카락이 헝클어진 상태로 눈물을 흘리면서 왕비를 찾아가시오. 왕비는 당연히 당신을 보고 슬퍼하는 이유를 물을 것이오. 당신이 흐느끼면서 말을 하면 왕비는 당신을 가엾게 여기면서 내 장례식에 쓰라고 돈을 주고, 내 시신을 감싸 나를 더욱 호화롭게 매장하고 당신이 찢어 버린 옷 대신에 새 옷을 만들라고 화려한 양단[1]을 줄 것이오. 당신이 돌아오면 내가 일어나서 이번에는 당신을 눕혀 놓고 폐하를 찾아가겠소. 폐하께서는 왕비님 못지않게 나에게 너그럽게 대해 줄 것이오.”

[1]비단의 종류
 
누자툴 아우아다는 이 계획이 마음에 들었다. 그녀는 즉시 남편의 제안을 실행에 옮겼다. 그녀는 아부 하산을 방 한가운데에 눕히고 두건을 벗겨내 얼굴에 놓고는 흐느끼며 애도를 하면서 왕비를 찾아갔다. 누자툴 아우아다가 동정심 많은 왕비에게 비통한 얘기를 전하자 왕비는 아부 하산이 죽었다는 얘기를 듣고 깊이 슬퍼하였다. 두 여인이 서로 슬픔을 나눈 후 왕비가 노예에게 금화 지갑과 시신을 감쌀 수 있는 양단을 누자툴 아우아다에게 주라고 명했다. 그리고는 누자툴 아우아다에게 잘 돌봐 줄 테니 앞날에 대해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였다.
 
누자툴 아우아다는 왕비의 방에서 나오자마자 눈물을 닦고 기뻐서 아부 하산에게 돌아가 성공적으로 일을 마쳤다고 전했다. 집에 돌아온 그녀는 그때까지 방 한가운데 누워 있는 남편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그에게 다가가 일어나서 뭘 가져왔는지 보라고 말했다. 그러자 아부 하산은 일어나서 지갑과 양단을 보고 아내와 함께 기뻐하였다. 누자툴 아우아다는 자신의 성공에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하며 남편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자, 여보, 이제 내가 죽은 척할게요. 내가 왕비에게 했던 것처럼 당신도 폐하의 동정심을 살 수 있는지 볼게요.”
아부 하산이 말했다. “여자들이란 이렇다니까. 항상 자신들이 남자들보다 낫다고 자만한단 말이야. 잘할 경우라도 남자들의 충고 덕분에 잘할 수 있는 것인데 말이지. 이 계획을 내가 생각해 냈는데 내가 당신보다 못하다면 이상한 일이지. 그나저나 쓸데없는 얘기로 시간 낭비하지 말고 내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서 내가 당신만큼 잘해내는지 그렇지 않은지나 잘 보시오.”
아부 하산은 아내가 자기에게 그랬듯이 아내를 감싸놓고 큰 고통에 빠진 사람처럼 터번을 풀어헤친 채 왕에게 달려갔다. 왕은 비밀회의를 열고 있던 중이었다. 그가 문 앞에 나타나자 그가 자유롭게 드나드는 사람이라는 것을 안 각료가 문을 열어 주었다. 그는 뺨 위로 흘러내리는 거짓 눈물을 감추기 위해 한 손으로는 손수건을 눈앞에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가슴을 치며 슬픔으로 절규를 하며 방으로 들어갔다.
왕은 아부 하산이 그처럼 참담해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이유를 물었다. 누자툴 아우아다가 죽었다는 말을 듣자 왕은 적절한 말로 슬픔을 표현하며 왕비가 누자툴 아우아다에게 그러했듯이 재상을 불러 아부 하산에게 금화와 화려한 비단을 주라고 명령했다. 아부 하산은 왕앞에 엎드려 그의 친절에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계획이 성공을 거둔 것에 기뻐하며 선물을 가지고 서둘러 집으로 갔다.
계속 한 자세로 오랫동안 누워 있느라고 힘들었던 누자툴 아우아다는 아부 하산이 일어나라고 말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그녀는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리자 벌떡 일어나서 남편에게 달려가 왕에게 잘 꾸며댔느냐고 물었다. “보면 알잖소.” 하고 아부 하산이 가져온 물건을 보여주고 지갑을 흔들며 말했다. “당신이 죽지도 않은 남편이 죽은 것처럼 울면서 과부 역할을 잘 해냈듯이, 나도 살아 있는 아내가 죽은 척하면서 슬픈 남편 역할을 잘 해냈소.”
그러나 아부 하산은 이와 같은 이중 음모가 발각되지 않을까 염려했다. 그는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해 아내에게 경계를 하게 하고 그녀와 함께 행동해야 실수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폐하와 왕비를 더욱더 당혹스럽게 하면 사실을 알았을 때 더욱 기뻐하며 더 큰 선물을 줄 수도 있을 것이오.” 하고 그가 말했다.
한편 왕은 결정을 내려야 할 중요한 사안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예를 잃어버리고 슬퍼하고 있을 왕비를 빨리 위로해 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아부 하산이 가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왕비의 방으로 갔다.
왕이 말했다. “부인, 누자툴 아우아다가 죽었다고 하니 당신의 시녀를 잃은 것에 대해 깊은 슬픔을 표하는 바이오.”
“폐하, 잘못 아셨어요. 죽은 사람은 누자툴 아우아다가 아니라 아부 하산이에요.” 하고 왕비가 대답했다.
“아니, 부인, 부인이 잘못 알고 있소. 아부 하산은 건강하게 살아 있소.” 하고 황제가 말했다.

왕비는 왕의 무심한 대답에 마음이 언짢았다. “폐하, 다시 한 번 말씀드릴게요. 죽은 사람은 아부 하산이에요. 내 노예인 누자툴 아우아다는 과부가 되어 살아 있답니다. 나와 함께 울어준 내 모든 시녀들이 그 사실을 증언해 줄 수 있어요. 내가 그녀에게 금화 100냥과 양단을 준 것도 말해 줄 수 있고요. 제가 슬퍼했던 이유는 그녀의 남편이 죽어서였어요. 제가 폐하께 위로의 말을 보내려 할 때 폐하께서 들어오셨어요.” 하고 왕비가 대답했다.
왕비의 이 말에 왕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부인, 이것 참, 오늘 따라 이상하게 고집을 부리는구려. 하지만 누자툴 아우아다가 죽었다는 걸 믿어도 좋소.”
“아니라니까요, 죽은 사람은 아부 하산이라니까요. 아무리 말씀하셔도 다른 건 안 믿어요.” 하고 왕비가 날카롭게 말했다.
왕은 환관을 불러 아부 하산의 집에 가서 사실을 알아 오라고 명했다. 메스로우가 출발하자 왕이 왕비를 보고 말했다. “곧 알게 될 거요. 누가 옳은지 말이오. 난 확신하니 내가 틀리면 내 기쁨의 정원을 내놓고 당신이 틀리면 당신의 그림의 궁전을 내놓기로 합시다. 내 정원이 훨씬 더 가치가 있지만 말이오.” 그들은 엄숙하게 내기에 대한 약속을 지킬 것을 맹세하며 메스로우가 돌아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왕과 조베이데 왕비가 그처럼 진지하고 뜨겁게 논쟁을 벌이고 있을 때, 그들의 의견이 서로 엇갈릴 것이라고 예상한 아부 하산은 다음에 벌어질 일에 대해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창가에 앉아 아내와 얘기하고 있던 아부 하산은 창문을 통해 메스로우가 곧장 그들의 방으로 오는 것을 보고는 그가 무엇 때문에 오는지를 짐작하고 아내에게 지체하지 말고 당장 다시 한 번 죽은 사람 흉내를 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에 아부 하산은 메스로우가 도착하기 전까지 야단법석을 떨며 아내를 감싸고, 왕이 준 양단을 그 위에 덮었다. 그러고 나서 문을 열어 주고는 우울하고 침울한 표정을 짓고 손수건으로 눈앞을 가린 채 거짓으로 죽은 자의 머리맡에 가 앉았다.
 

 
이 광경을 보고 메스로우는 흡족해하며 자기가 본 광경을 보고하러 급히 왕에게 갔다. 왕은 소식을 듣자 매우 기뻐하며 웃으면서 말했다. “들었소, 부인? 당신이 내기에 졌소.”
하지만 조베이데 왕비는 아무런 증거가 없는 메스로우의 보고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녀는 내기에 대해 반박을 하고 아부 하산이 진짜 죽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왕비의 유모를 보내기로 하였다. 하지만 아부 하산은 창문을 통해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에 유모가 다가오는 것을 보자 당장 침상에 누울 준비를 했다. 그리하여 유모가 방에 도착했을 때에는 누자툴 아우아다가 그를 눕히는 작업을 끝내고 그의 옆에 서서 애도를 하고 있었다.
유모는 그녀에게 위로의 말을 하고는 급히 궁전으로 돌아갔다. 유모가 사라지자 누자툴 아우아다는 눈물을 닦으며 아부 하산을 풀어 주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이 속임수가 어떻게 끝날지 예상하면서 창 옆에 놓인 소파에 앉아 상황에 맞게 연기를 할 준비를 하였다.
유모의 보고는 상황을 더욱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왕과 왕비가 각자 자기가 보낸 심부름꾼의 말이 옳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 모두 서로에게 지지 않으려 했기 때문에 결국 왕과 왕비는 직접 가서 확인해 보기로 하였다. 그래서 두 사람은 수행원을 거느리고 출발했다.
아부 하산은 왕과 왕비가 오는 것을 보고 아내에게 말했다. 그의 아내는 겁이 나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이제 어떻게 하죠? 우린 이제 망했어요.”
“걱정 마시오, 우리가 어떻게 하기로 했는지 잊어버렸소? 둘 다 죽은 척하기로 말이요. 두고 보면 알겠지만 모든 게 다 잘 될 거요. 두 분이 천천히 오고 있으니까 문 앞에 도착하기 전에 모든 준비가 다 끝날 거요.” 하고 아부 하산이 대답했다. 아부 하산과 그의 아내는 몸을 감싸고 양단으로 덮은 뒤 참을성 있게 방문객들을 기다렸다.
먼저 도착한 메스로우가 문을 열고 왕과 왕비가 수행원들이 뒤따르는 가운데 방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충격을 받아 말문이 막혔다. 마침내 조베이데 왕비가 침묵을 깨고 왕에게 말했다. “아! 둘 다 죽었군요! ” 왕비가 왕과 메스로우를 번갈아 보며 말을 이어갔다. “내가 아끼는 시녀가 죽었다고 날 믿게 하려고 애쓰더니 그게 사실이었군요. 남편을 잃은 슬픔에 못 이겨 저 세상으로 간 게 틀림없어요.”

“부인, 그게 아니라,” 하고 그 반대의 생각을 가지고 있던 왕이 말했다. “누자툴 아우아다가 먼저 죽자 아부 하산이 슬픔에 못 이겨 괴로워하다가 사랑하는 아내를 뒤따라 죽은 거요. 그러니 내기에 졌다는 것을 인정하시오. 당신의 그림 궁전은 이제 내 것이오.”
“잠깐만요.” 왕이 반박을 하자 흥분한 왕비가 대답했다. “당신이 기쁨의 정원을 잃게 된 거예요. 아부 하산이 먼저 죽은 거라고요. 내 유모가 우리 앞에서 말했었잖아요. 누자툴 아우아다가 살아서 남편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요.”
“이 두 사람 중 누가 먼저 죽었는지 말할 수 있는 사람에게 금화 천 냥을 주겠다!” 하고 왕이 말했다.
왕의 입에서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부 하산을 덮고 있는 비단 밑에서 이런 목소리가 들렸다. “폐하, 제가 먼저 죽었습니다. 이제 금화 천 냥을 제게 주십시오.” 동시에 아부 하산은 비단 천을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서 왕 앞에 엎드렸다. 그의 아내 역시 일어나서 조베이데 왕비 앞에 엎드렸다. 아끼는 시녀가 죽은 것을 보고 슬픔을 가누지 못하던 왕비는 비명을 지르다가 정신을 차리고는 사랑하는 노예가 다시 살아난 것을 보고 매우 기뻐했다. “아! 짓궂은 누자툴 아우아다, 너 때문에 내가 얼마나 슬펐는지 아느냐? 하지만 네가 죽지 않았으니 진심으로 용서하마.” 하고 왕비가 외쳤다.
왕은 매우 즐거워하며 그와 같은 우스운 일을 꾸민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아부 하산이 대답했다. “폐하, 하나도 숨기지 않고 모든 사실을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아내와 저는 분수를 넘어선 사치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돈이 다 떨어져서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처럼 비참한 상황에 이른 저희 처지가 부끄럽기도 하고 폐하께 차마 말씀을 드릴 수도 없어서 생각 끝에 이 일을 꾸미게 된 것입니다. 폐하께서 기꺼이 용서해 주시고 저희가 필요한 것을 주실 것이며, 저희의 속임수를 즐거워하시리라 생각했습니다.”
왕과 왕비는 아부 하산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처럼 특이한 경험에 계속 웃음을 참지 못하던 왕이 일어서서 아부 하산과 그의 아내에게 말했다. “날 따라오너라. 그대들 둘 다 죽지 않았으니 기쁜 마음으로 약속한 금화 천 냥을 주겠다.”
왕비는 똑같은 이유로 똑같은 금액의 금화를 자기의 시녀에게 선물로 주도록 허락해 달라고 왕에게 말했다. 이렇게 하여 아부 하산과 그의 아내 누자툴 아우아다는 하룬 알 라시드 왕과 조베이데 왕비의 총애를 계속 받게 되었으며, 왕과 왕비의 너그러운 처사로 즐거운 삶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다.




  
​마지막 이야기

 
 
 
 
페르시아 제국의 황제 샤리야르는 무궁무진하게 펼쳐지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보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셰에라자드가 이처럼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동안 1,001일 밤이 지나갔다.

샤리야르는 또한 자신의 아내가 되겠다고 제안한 셰에라자드의 용기에도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셰에라자드로 인해서 황제가 했던 가혹한 맹세는 조금씩 누그러졌다. 황제는 셰에라자드를 차마 죽일 수가 없었다.

“고백할 게 있소, 셰에라자드.” 하고 황제가 말했다. “당신의 재치가 내 마음을 누그러뜨렸소. 날마다 여자를 죽이겠다고 한 끔찍한 맹세를 당신을 위해 포기하겠소. 그러니 당신은 나의 분노의 희생자가 되었을 무수한 처녀들의 구원자로 길이 기억될 것이오. 나의 그러한 처사가 얼마나 부당한 것이었는지 이제야 깨달았소.”

셰에라자드는 황제의 발 아래 몸을 던지며 가장 큰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껴안았다.

이 기쁜 소식을 맨 처음 접한 사람은 재상이었다. 그는 즉시 이 소식을 제국 방방곡곡에 알렸다. 그리하여 아름다운 셰에라자드는 온 나라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축복을 받게 되었다. 황제는 사랑하는 셰에라자드와 행복하게 살았으며 그들은 페르시아 제국 전체에 걸쳐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추천 (1) 선물 (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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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썬2뉘썬2 (♡.169.♡.51) - 2024/05/31 04:44:14

돈으로 우정을 살수없군요.우정은 뭐로 얻을수잇는지.

남편한테 사랑받을려면 셰에라자드처럼 언변과 지식이 잇어야 데갯네요.ㅋ

나단비 (♡.234.♡.106) - 2024/05/31 08:06:44

돈이나 미모는 한순간이고 지혜가 오래 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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