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전집4-태항산록-(수필)인육병풍

더좋은래일 | 2024.05.04 14:50:42 댓글: 0 조회: 70 추천: 0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66160


수필


인육병풍


사기 즉 력사적사실을 적은 책들을 읽어보면 재미나는 이야기가 많고도 많다. 어느 통치배가 인간의 호사를 다한 나머지에-그것만으로는 종시 성에 차지 않아서-마침내는 <<인육병풍>>이라는것을 고안해내가지고 사람들에게 자랑을 하였다는 대목을 읽고 나는 기가 막혀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호사로 방안에다 병풍을 둘러치는데 산수화를 그린 산수병풍 대샌에 젊고 고운 시녀들을 죽 둘러세웠다는것이다. 산 사람의 고기로 된 병풍이니까 인육병풍이라는것이다. 겨울에 찬기운을 막는데는 이보다 더 좋은 병풍은 없다고 호기를 부렸다니 사람이 하품을 아니 칠래야 아니 칠수가 없다.

이왕 병풍이야기가 난감에 희한한 병풍이야기 하나를 더해보자.

우린 작은외할아버지란이가 본 세기 20년대에 물상객주를 경영하여 천냥을 좀 모았었다. 물상객주란 장사아치들의 거간노릇을 주로 하는 객주를 말하는것이다. 그 당시 로씨야의 10월혁명으로 조선에도 적잖은 백파 즉 백계로인들이 몰려나와 갈팡질팡 하고있었다. 그자들이 당장 먹고 살기 위하여 걸머지고 나온 짜리로씨야의 쌍독수리가 찍힌 지전들을 헐값에 파는데 분홍색의 10루블짜리는 1전씩에 하늘색의 5루블짜리는 단돈 5리씩에 마구 팔았다.

볼쉐비크가 망하면 도로 제값을 받는다고 그놈들이 드립다 불어대는 바람에 행여나 해서 적잖은 사람들이 그 지전을 사들였다. 우리 그 작은외할아버지란 량반도 그 소리에 귀가 솔깃하여 볼쉐비크가 망하면 벼락부자가 되여볼 생각으로 한 반마대 착실히 사들였었다. 그런데 이제 곧 망할거라는 그놈의 볼쉐비크가 어디 생전 망해줘야 말이지! 한달을 기다리고 또 두달을 기다려도, 일년을 기다리고 또 이태를 기다려도... 망할 기미는 전연 보이지를 않으니 사람이 속이 탈노릇이 아닌가!

끈덕지게 10년을 기다린 끝에 마침내 우리 그 작은외할아버지는 아주 체념을 하고 1928년 가을-내가 소학교 5학년 때-딱지삼아 가지고 놀라고 일인당 150루블씩-10루블짜리 10장과 5루블짜리 10장씩-우리들에게 노나주었다. 종이의 질도 워낙 좋으려니와 인쇄도 아주 정교로와서 지전이자 곧 예술품인데 더구나 마음에 드는것은 그 모두가 손이 베질듯한 새 돈인것이였다. 짜리의 은행에서 무더기로 꺼내다가 한번도 써먹어보지 못한것들이였다.

나는 15루블을 주고 2전짜리 깨엿 한가락을-피동적으로-바꾸어먹었다. 늙은 엿장수가 저의 손자 갖다주겠다고 청을 들어서 아깝기는 하지만 마지못해 1루블을 선사하였더니 그 사례로 깨엿한가락을 집어주어서였다.

그후 우리 그 돈밖에 모르는 작은외할아버지는 천재적령감에서 오는 기발한 착상으로 산수병풍도 아니고 인육병풍도 아닌 <<지전병풍>> 즉 종이돈병풍을 만들기로 하였다. 표구사를 불러다가 반달 걸려 만들어낸 그 열두폭짜리 병풍은 보고 혀를 내두르지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휘황찬란한것이였다. 분홍색 10루블과 하늘색 5루블을 재치있게 배합하여 꾸며낸 걸작품이였다. 돈에 미친 인간들이 한번 해봄직한 장난이였다. 그런데 이것이 소문이 널리 나서 그후부터는 동네에서 무슨 잔치가 있을 때면 의례건으로 이 지전병풍을 빌어다가 둘러치게들 되였다. 재수사망이 대천바다에 물밀듯하라는 미신적관념이 작용을 하였음은 더 말할것도 없는 일이다.

우에서 서술한것은 지금으로부터 반세기이전에 있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근년에 와서 나는 이따금

(이거 나두 무슨 병풍 같은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군한다. 그도 그냥 무슨 보통병풍이 아니라 인육병풍따위 심상찮은 병풍이 된것 같으니 큰일이다. 젊고 예쁜 시녀들로 꾸며진 인육병풍은 보기나 아름답지. 정년퇴직을 한 로인들로 꾸며진-전 부장, 전 국장, 전 주석 따위로 꾸며진-인육병풍이야 무슨 볼품이 있을 거라구!

시내 어느 집에 무슨 잔치가 있을 때면 나도 포함된 이 로인들은 의례건으로 불리워가서 경사스럽게도 상좌에 둘러앉아 빌어온 병풍노릇을 해야 하니 이게 그래 딱한노릇이 아니고 무언가! 물론 잔치집 주인의 심정은 헤아리고도 남음이 있다. 모모한 명사들을 모셔다 앉힘으로써 경사로운 잔치가 보다 더 생광스러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일것이다. 그러나 이른바 명사로 된 덕에-우리 작은외할아버지네 그 지전병풍처럼-이리 불리워가지고 저리 불리워가지고 하는 명사량반들의 속에는 다 남모르는 고통이 있다는것도 좀 알아주어야 할것이다.

청하는데 안 가면 섭섭해할거니와 일단 청하면 죽어도 아니 응하지 못하는것이 우리 인간세상의 불문률인즉 우리 늙은 인육병풍들은 일반적으로 울며 겨자먹기를 아니할수 없는 형편이다. 잔치의 범위를 줄여서 집안끼리 하는것이 제일 리상적이고 그러지 못할 경우에는 당사자들의 소속한 부문에서 적당히 하는게 좋지 않을가? 상술한바와 같이 잔치때 이른바 명사들을 모셔가고 모셔오고 하는것도 사회적페단의 하나로 된 모양이니 역시 개혁의 손을 댈 필요가 있지 않을가?

앞으로 죽는 날까지 이런 인육병풍노릇을 얼마나 더해야 할지 알수 없으니

<<아이구, 답답한 이내 가슴이야!>>

추천 (0) 선물 (0명)
IP: ♡.136.♡.158
23,561 개의 글이 있습니다.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조회
더좋은래일
2024-05-05
0
90
더좋은래일
2024-05-05
0
60
더좋은래일
2024-05-05
0
72
더좋은래일
2024-05-04
0
80
더좋은래일
2024-05-04
0
70
더좋은래일
2024-05-04
0
76
더좋은래일
2024-05-03
0
62
더좋은래일
2024-05-03
0
81
더좋은래일
2024-05-03
0
93
더좋은래일
2024-05-02
0
78
더좋은래일
2024-05-01
1
74
더좋은래일
2024-04-30
1
83
chillax
2024-04-30
0
88
더좋은래일
2024-04-29
1
137
더좋은래일
2024-04-29
1
91
chillax
2024-04-29
0
87
chillax
2024-04-29
0
87
chillax
2024-04-29
0
67
더좋은래일
2024-04-28
1
90
더좋은래일
2024-04-27
4
147
더좋은래일
2024-04-26
4
121
더좋은래일
2024-04-25
3
149
chillax
2024-04-25
1
104
더좋은래일
2024-04-24
3
135
더좋은래일
2024-04-24
3
108
더좋은래일
2024-04-24
3
122
chillax
2024-04-24
1
81
더좋은래일
2024-04-23
3
155
chillax
2024-04-23
1
137
더좋은래일
2024-04-22
3
346
모이자 모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