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전집4-태항산록-(수필)죄수복에 얽힌 사연

더좋은래일 | 2024.05.06 15:36:06 댓글: 0 조회: 95 추천: 0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66545



수필


죄수복에 얽힌 사연


이전에 일본감옥에서는 미결수에게는 하늘색의 죄수복을 그리고 기결수에게는 붉은 벽돌빛의 죄수복을 입혔다. 기결수중에도 하늘색죄수복을 입은것이 더러 있기는 하였는데 그것은 <<모범죄수>>에게 한하여 베풀어지는 특전 즉 <<영예복>>이였다, 그보다 더 높은 <<최고영예복>>은 흑, 백 두가지 실로 섞어 짠 <<시모후리(霜降)>>였다.

지난 60년대와 70년대의 그 유명짜한 무법천지통에 내가 갇혀있던 추리구(秋梨沟)감옥에서는 일률적으로 회색죄수복을 입히는데-일본감옥에서 번호표를 다는것과는 달리-거기서는 죄수라는 뜻의 <<범(犯)>>을 흰 뼁끼로 또는 붉은 뼁끼로 더덕더덕 찍은것을 입혔었다.

내복은 일년에 런닝샤쯔 하나와 빤쯔 하나밖에 내주지 않으니까 여벌은 다 집에서 갖다 입어야 하였다. 그러므로 옥바라지를 해줄 사람이 있는 놈은 별문제가 없지만 옥바라지를 해줄 사람이 없는 놈은 그 곤난이 말이 아니였다. 알몸뚱이에 헐렁헐렁한 죄수복을 그대로 걸치고 다니는 놈까지 있는 형편이였다.

감옥에서는 어쩌다가 영화를 돌려도 죄수의 탈옥하는 장면 같은것은 의례 카트를 하기 마련이였다(죄수들이 그 본을 따서 도망을 칠가봐). <<꽃파는 처녀>>라는 영화를 나는 본적이 없지만 거기에도 아마 탈옥하는 장면이 있는 모양이였다. 추리구감옥에서 돌릴 때는 그 대목을 카트하였다고 선배죄수들이 서로 지껄이며 비웃는것을, 발언권 없는 후배죄수인 나는 옆에 서서 마음을 가다듬고 삼가 들은적이 있었기에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카트를 하여도 탈옥사건은 심심찮을 정도로 늘 있었다. 이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감옥당국에서는 대책을 강구하였다(참으로 골머리 아픈노릇이였다). 죄수복과 내복들에 전부 뼁끼로<<범>>자와 입은 놈의 이름, 죄명, 형기 등을 밝혀 쓰기로 한것이다.


범-현행반혁명-10년-김학철


오스포드대학의 명예철학박사의 칭호도 이렇게 써붙이고 다니면 그리 보기 좋을것이 없겠는데 하물며 반혁명 운운을! 생각들 좀 해보시라, 이 김학철이의 몰골이 어떠만 하였겠는가!

그런데 바깥사회에서와 마찬가지로 감옥안에서도 <<극단주의>>가 판을 치는 바람에 마침내는 런닝샤쯔, 빤쯔나부랭이에다까지 <<범>>, <<아무개>>, <<현행반혁명>> 또는 <<력사반혁명>>, <<19년>> 또는 <<20년>>... 이따위로 써놓게끔 되였었다.

말을 참지 못하는 나의 <<동범(同犯)>>즉 <<감옥동창생>> 하나가 이것을 못마땅하게 여겨서

<<제기, 어느 미친놈이 맨 빤쯔 바람으루 도망질을 칠라구!>>

한마디를 뇌까렸다가 <<반개조(反改造)분자>>로 몰리여 학질을 뗀 일까지 있었다.

<<장춘문예>> 85년 3호에 실린 졸작 <<죄수의사>>의 주인공 <<장춘생>>이는 나의 <<추리구감옥 동창생>>으로서 본명은 류사곤-구태현 사람이였다. 이 류사곤이도 속옷형편이란 말이 아니여서 차마 눈뜨고 보기가 구차할 지경이였다. 딱하게 여긴 나머지에 나는 여벌의 메리야스내복 하나를 남모르게 넌지시 꺼내다주면서 신신당부를 하였다.

<<류사곤, 너 이거 속에다만 입어라. 아무한테두 보이지 말아. 알았니? 괜히 또 누구 벼락을 맞히지 말구.>>

감옥에서는 죄수끼리 무슨 물건을 서로 바꾸거나 주고받는것을 엄금하였었다. 무슨 꿍꿍이를 할가봐서였다.

하건만 워낙 정신이 부실한 류사곤이는 얼마 아니하여 나의 그 신신당부를 까맣게 잊어버리고말았다. 어느날 수십명의 죄수들이 움을 파는 작업을 하는데 개밥에 도토리로 류사곤이녀석도 끼여들었었다. 그런데 한바탕 신이 나서 삽질을 하다가 땀이 나기 시작하니까 그 녀석은 겉에 입었던 죄수복을 훌러덩 벗어버리는것이였다. 멀찌감치에서 그 자식의 하는 꼴을 바라보다가 나는 대번에 숨을 들이그었다. 왼새끼를 꼬았다. 손톱여물을 썰었다.

(아이구 하느님 맙소사! 저런 망할 자식 좀 봤나!)

그 녀석이 입은 남색메리야스내복에는 흰 뼁끼로 뚜렷하게

<<범-현행반혁명-10년-김학철>>

이렇게 씌여있지 않은가!

눈치 빠른 간수가 이것을 발견하기가 무섭게 외마디소리를 냅다 질렀다.

<<도대체 이 중대엔... 김학철이가 몇개야!>>

류사곤 이놈은 끝내 내게다 벼락을 맞혀주고야말았다.

나는 톡톡히 야단을 맞고 그리고 시말서까지 써바쳤다-<<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류사곤이는 본시 누구나 다 호의로 치는 인간이였으니까 꾸지람 한미디도 듣지 않았다. 뿐만아니라 그때부터는 도리여 드러내놓고 그 <<김학철 또 하나>>의 메리야스내복을 입을수 있게 되였다. 그것을 몰수하면 류사곤이가 알몸이 된다는것을 간수도 다 알고 있었으므로 크게 선심을 써서 그래도 눈감아주었던것이다.

이듬해 봄, 새 죄수복들을 타는데 류사곤이한테도 물론 례외없이 한벌이 차례졌다. 그 녀석은 새옷 한벌을 얻어입고 좋아서 입이 함박만큼이나 벌어졌었다. 그런데 어떡허다 호주머니에 손을 들이밀어보더니 그 녀석은

<<이?>>

하고 괴상한 얼굴을 하면서 손에 집히는 종이쪽지 하나를 꺼내드는것이였다. 네모나게 접은것을 펼쳐들고 들여다보니 무슨 글자가 적혀있기는 하나 워낙 까막눈이라 알수 있어야지!

<<여보 김학철, 이거 좀 봐주우... 뭐라구 적혀있소?>>
류사곤이는 내가 신문을 보는것을 여러번 본 까닭에 나를 소학졸업정도의 지식은 갖고있는 사람으로 짐작하였었다. 내가 그 쪽지를 받아서 들여다보니 거기에는 그리 잘 쓰지 못한 한문글자로 적혀있기를-

<<친애하는 아들아, 이 엄마가 지어보내는 이 옷을 입고 개조를 잘하여라.>>

내가 그 쪽지를 손에 든채 앙천대소를 하니 다른 죄수들이 무슨 일이 났나 하고 모여들면서

<<무슨 일이야?>>

<<뭐라구 적혔기에?>>

입입이 한마디씩 묻는것이였다. 내가 웬 영문을 몰라서 어리둥절하는 류사곤이의 밤송이 같은 머리를 한번 툭 때리고나서

<<이 자식이 엄마가 생겼어. 수양엄마 하나가 생겼단 말이야.>>

하고 떠드니

<<엄마가 생기다니?>>

<<수양엄마? 무슨 수양엄마?>>

<<어디 그 쪽지 이리 좀 내라구. 대체 뭐라구 적혀있기에?>>

하고 다들 대들어 내 손에서 그 쪽지를 채여가는것이였다. 그리고는 머리르 한데 모으고 들여다보더니 곧 걷잡을수없이 웃음보들을 터뜨렸다.

<<류사곤이 이놈아, 어서 한턱 내봐!>>

<<수양엄마가 생긴 턱을 내란 말이다... 이 녀석아!>>

<<와하하! ...>>

<<멍청이녀석 같으니라구!>>

그들은 대들어서 류사곤이를-추리구감옥의 아Q를-한바탕 시달구어주었다. 다들 동네북처럼 그 녀석의 머리를 툭툭 한대씩 갈겨준것은 더 말할것도 없는 일이다.

류사곤이는 갑자기 동네북이 되여버린 머리를 싸안고 일변 피해 달아나며 일변 두눈을 희번득거리며 투덜거리는것이였다.

<<먹은 밥알이 곤두서나? 왜들 지랄이야!>>

그 쪽지는 죄수복을 만드는 감옥공장에서 일을 하는 녀죄수들이 심심풀이장난으로 적어넣어 보낸것이였다. 새 죄수복에는 가끔 그런것들이 들어있군 하였었다.

나는 <<촉경생정(触景生情)이랄지... 불현듯 집생각이 간절해졌다. 그래서 안해에게 편지를 썼다(한달에 한통씩 집안식구에게 만은 편지를 쓸수 있었다).



혜원:
삼십년전 이달 스무나흗날 대동강변 경제리에서 맺어진 인연은 곡절 많은 삶의 흐름을 이루고 때로는 흐려졌다 때로는 맑아졌다 꾸준히 또 줄기차게 흘러내렸습니다. 은혼의 여울목은 이미 지났고 금혼의 나루터는 어직 멉니다. 애되던 당신의 얼굴에는 년룬의 거미줄이 희미하게 얽혔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눈앞에 푸르싱싱 자라나는 후대들을 봅니다. 부푼 희망속에 기대에 찬 눈으로 푸르싱싱 자라나는 후대들을 봅니다. 삶의 흐름은 앞으로도 의연히 밤에 낮을 이어 흐르고 또 흐르고 자꾸만 흐를겁니다.
이른봄 종다리의 희열을
늦가을 기러기의 적막을
아울러 이 가슴에 안겨주신이
조선의 어엿한 딸 혜원녀사께
삼가 이 몇줄 글을 바치옵니다
삼가 이 몇줄 글을 바치옵니다

학철
일구칠칠년 사월 초하루
산에 둘린 물에 둘린 추리구에서

만기출옥을 할무렵쯤 되면 죄수들은 내복에 찍힌 <<범>>자와 이름, 죄명 따위를 지워버리기에 골몰들 하였다. 그래도 입고 나가기는 난감하고 창피해서였다. 털실내복에 찍힌 글자를 지우려고 감옥공장에서 독한 약품을 훔쳐다 발랐다가 털실이 삭아서 문정문정 나가는 일까지 있었다. 그러나 나는 고스란히 그대로 다 입고, 갖고 나왔다.

(이런 훌륭한 기념품이 또 어디 있어!)

8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아직 그런 내복을 입고있다. 암만 빨아도 지워지지를 않으니까 그대로 입고있을 밖에. 시인 임효원님에게 나는 입은것을 한번 보인 일까지 있다.

감옥안에서 환갑, 진갑을 다 강낭떡과 시래기국으로 잘 쇠고나서 만기출옥으로 집이란데를 돌아와보니 나 없는 사이에 집안에 식구 둘이 늘었는데 그 하나는 며느리이고 또 하나는 낳은지 겨우 다섯달밖에 안되는 젖먹이-손자였다.

손자라는것을 난생처음 안아보는 할애비적마음은 야릇하면서도 또 흐뭇하였다.

세월이 물같이 흘러서 어느덧 그 손자가 네살이 되니까 이놈이 눈만 뜨면 아침부터 밤까지 별의별 말을 다 물어보기 시작하였다. 세상이 온통 알아보고싶은것뿐인 모양이였다. 이 세상에 나온 유일한 목적이 의문을 제기하는데 있는상싶었다.

(이놈이 나올 때 물음표를 한 억개 달고 나온 놈이 아닌가?)

이런 의심이 갈 지경이였다. 그런데 이 녀석이 하루는 느닷없이 엉뚱한 말 한마디를 물어보는것이였다.

<<할아버지 축구선숩니까?>>

<<축구선수? 아니 왜? ...>>

하고 내가 적이 괴이쩍어하니까 그 녀석은 고 조꼬만 고사리같은 손으로 내가 입고있는 메리야스내복을 가리키면서

<<그럼 어째 이런걸 입었습니까?>>

하고 납득이 잘 안 가는 모양으로 되묻는것이였다.

알고보니 어린 무식쟁이놈이 내 내복의 앞가슴과 등판에 찍혀있는 <<범(犯)>>자를 알아보지 못하는 까닭에 축구선수들이 입는 운동복의 번호와 혼동을 한것이였다.

집안은 또 한바탕 유쾌하고 번화한 웃음판으로 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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