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24. 공감

chillax | 2024.05.24 15:55:50 댓글: 0 조회: 199 추천: 0
분류교양서적 https://life.moyiza.kr/fiction/4570589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24



타인의 고통에

연민을 느껴라

[공감]






“동정심이야말로 우리 내부에 존재하는 근원적인 비이기적 특성이며, 이기주의적 개인이 타자를 도우려하는 것은 기적 같은 일로 찬사를 받아야 한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모든 존재는 이기적일 수밖에 없으며 그로 인해 고통을 겪게 된다. 쇼펜하우어에게 동정심은 세상 모든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느낌으로써 이기심의 벽을 허물어뜨리는 것을 뜻한다. 쇼펜하우어는 진정으로 가치 있는 일이 타인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며 그런 동정심만이 비이기적 행위의 유일한 원천이라고 말한다. 고통은 다른 사람과 나누면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런 연민, 공감, 동정은 쇼펜하우어가 다른 사람과 교제하는 데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꼽았다.

또한 타인에 대한 아량도 필요하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보기 싫은 사람과 같이 지내야 하는 일이 생기는데, 조심해서 행동하고 아량을 발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조심함으로써 손해와 손실을 막을 수 있고 아량을 베풀어 다툼과 싸움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양가감정


쇼펜하우어는 도덕적 관점으로 인간의 행위를 네 가지로 구분한다. 인간의 행동이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행복과 불행을 목표로 할 수 있다고 보고, 기본 동기가 있다고 결론지었다.


첫 번째 동기, 이기주의다.

자신의 평안만을 간절히 추구하는 것이며 그 한계가 없다.


두 번째 동기, 악의다.

다른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으로 작용한다.


세 번째 동기, 동정심이다.

자기 자신이 아니라 전적으로 타인의 평안을 추구하는 것이다.


네 번째 동기, 이름 붙여지지 않은 동기(금욕주의).

행위자 자신의 불행을 욕구한다.


이런 동기 가운데 동정적인 행동은 다른 사람의 행복에 더 큰 관심을 두는 점에서 다른 동기들과 대비된다. 타인의 불행에 대한 동정심은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하는 이기주의를 없애 버린다. 연민은 아가페적인 사랑이다. 즉 타인의 운명을 자신의 운명과 똑같이 여기는 순수하고 비이기적인 인간 본래의 착한 마음씨다. 반면 이기주의나 악의적 행동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욕구한다.

동정심과 반대의 감정을 나타내는 남이 안 돼야 행복이라는 표현이 있다. 독일어에서 유래한 Schadenfreude라는 영어 표현이 있는 것으로 봐서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는 감정은 우리나라에만 해당되는 감정은 아닌 것이다.

40대라면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인 동물인지 경험으로 알고 있다. 누구나 자신의 생명, 가족의 행복, 자신의 성취를 위해 남과 경쟁하면서 살아간다. 남을 짓밟고 올라가야만 자신이 살아남는 살벌한 경쟁을 경험한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는 사고로 인해 생명을 잃는 현장을 보면 그 비극에 가슴 아파하고 함께 울기도 한다. 그때 자신을 가두고 있는 이기심의 벽이 한 번에 무너진다.

인간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이기적이어야 하는 존재다. 우리의 생존을 위해 다른 생명체를 잡아 먹어야 되며 다른 사람을 이겨야만 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불운의 사고에 희생당한 사람에 대해 가슴이 먹먹해지는 모순적인 존재다.



사랑하지 않아도

미워하지 말 것


경제학자 아담 스미스는 경제적인 약자에 대한 사회적인 배려를 강조한다. 그는 초기에는 자유주의 경제학을 주장하면서 시장 경제의 경쟁 원칙을 옹호한 사람인데 나중에 생각이 바뀐 것은 약자에 대한 동정심 때문이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실험이 있었다. 신생아실에서 갓 태어난 아이에게 다른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려줬더니 그 아이뿐만 아니라 모든 아이가 함께 울기 시작했다. 정작 자신의 울음소리를 녹음해서 들려 주면 반응이 없었다. 이것은 타자에 대한 동정심은 타고나며, 다른 사람에게 쉽게 전이 된다는 점을 보여 준다. 이런 측은지심은 살아가는 데 늘 강조됐다.

동정과 연민에 대해 모든 학자가 찬성한 것은 아니다. 독일 철학자 칸트는 팔이 안으로 굽듯이 동정심과 연민이 너무 자아적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우릴 이웃의 피해와 먼 외국의 피해를 비교할 때, 당연히 가까운 쪽의 고통에 더 민감하기 때문에 보편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니체는 동정심도 이타심이 아니라 이기심의 표현이라고 비판했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그것을 통해 이익을 얻으려는 약자들의 이기심이라는 것이다. 그는 동고(同苦,Mitleid)는 낮은 동물들도 느끼는 감정이므로 오히려 인간은 동락(同乐,Mitfreude)을 추구해야 된다고 말한다.

마라톤을 예로 들면 탈락한 사람에게 연민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승리자에게 진정한 축하를 건네며 함께 기쁨을 나눌 것을 제안한다. 스토아학파의 학자 에픽테토스는 너의 콧물은 너 자신이 닦아라라면서 자립을 강조했다. 콧물을 흘린 사람의 콧물을 계속 닦아 주면 스스로 콧물을 닦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약자에 대한 지나친 배려나 후원은 그 사람이 스스로 인생을 완성하면서 행복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다는 주장이다.

우리는 함께 살기 위해서 고통을 함께 나눌 필요가 있다. 실직자, 장애인, 경제적 취약 계층, 노인 등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 동시에 역차별과 자립심을 고려해야 한다.

우리나라 40대는 무한 경쟁, 적자생존(适者生存), 승자 독식의 논리에 따라 살던 시대를 경험했다. 어릴 때는 학교에서, 졸업 후에는 직장에서 또는 사업에서 남을 이겨야 하기 때문에 패배자가 느끼는 고통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남보다 더 잘해야 인정받는 세상에는 이기심이 가득하다. 이웃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느끼는 감수성을 키울 필요가 있다.




자신에게, 상대에게,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을 느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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