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읽는 니체 2장 03 사다리 하나만으로 먼 곳까지 휘둘러볼 수 없다

Careme | 2024.06.18 19:06:05 댓글: 1 조회: 127 추천: 0
분류교양서적 https://life.moyiza.kr/fiction/4577692
03

사다리 하나만으로
 먼 곳까지 휘둘러볼 수 없다

• 시도와 질문 •
 
 
 
나는 다양한 길과 방법으로 나의 진리에 이르렀다. 내가 사다리 하나만으로 먼 곳을 휘둘러볼 수 있는 이 높이에까지 오른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고통과 절망으로 가득 찬 오늘날의 우리에게 잃어버린 마음을 되찾는 방법을 알려 주는 독일의 철학자이다. 니체는 19세기 말의 사람인데도 10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그의 철학이 울림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단순히 머리로만 삶을 사유한 철학자가 아니라 온몸으로 삶을 사유한 철학자였기 때문이다. 니체는 질병으로 인해 극심한 육체적 고통을 겪으면서 인생은 그 자체가 고통과 시련의 연속이라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하지만 그는 진짜 삶이 무엇인가를 열렬히 갈망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삶과 열정적으로 사랑에 빠지는 것이 필연적인 과제라고 보았다. ‘저편의 삶’에 대한 동경이 아닌 ‘이편의 삶’을 완전하게 살아갈 갈망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절망과 고통이 니체에게 준 것

니체는 1844년 10월 15일에 독일 프로이센 뢰켄에서 태어났다. 그날은 당시 프로이센의 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의 생일이었다. 니체의 아버지 루트비히 목사는 그 왕의 이름을 따서 아들의 이름을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라고 지었다. 2년 뒤인 1846년 6월 10일에는 니체의 여동생 엘리자베트가 태어났다.

1849년 7월 30일, 니체 인생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바로 아버지의 죽음이었다. 루트비히는 36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병은 뇌연화증으로 밝혀졌다. 아버지를 열렬히 사랑한 니체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런데 니체에게 불행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아버지가 죽은 다음 해에 남동생 요제프도 뇌졸중으로 심한 발작을 일으키다 갑자기 죽었다.

니체는 그의 자서전 《이 사람을 보라》에서 자기 아버지의 삶이 기울던 바로 그 나이에 자신도 삶이 기울고 생명력이 가장 낮은 지점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그는 세 발자국 앞도 보지 못할 정도로 시력을 잃었다. 그때가 1879년이었다. 니체는 그해에 건강 문제로 바젤대학 교수직을 내려놓은 후부터 그림자처럼 방랑자의 삶을 살아야 했다. 그의 삶에서 가장 큰 위기였다.

니체는 오랫동안 병든 생활을 했다. 병든 사람은 대부분 자기 스스로 건강해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니체는 병든 상태가 자신의 삶을 더 풍부하게 하는 효과적인 자극제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자기 자신과 삶을 새롭게 발견하려고 노력했다. 또한 그는 건강에의 의지와 삶에의 의지를 자신의 철학으로 만들었다. 어린 시절부터 염세주의자였던 그는 가장 생명력이 낮았던 1879년 그해에 염세주의자임을 그만두었다. 비참과 낙담의 철학을 금지해 버렸다고 말한다.
 
 
시도와 물음을 두려워하지 마라

우리는 마치 중병을 앓듯 힘겨운 청춘을 보냈다. 그런데 삶을 되돌아보면 실패가 두려워 아무런 시도조차 하지 못했던 적이 얼마나 많은가? 특히 나이가 들수록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크기 때문에 그저 주어진 일에만 열성을 보이기 마련이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시금석은 바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진정한 자아를 어떻게 찾아갈 것인가’이다. 완전한 나 자신에게 이르는 길은 어디인가?
 
일단 시도하고 질문하라

우리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향한 질문거리들을 안고 살아간다. 사람의 수만큼 각자 삶의 모습이 다양하듯이 저마다 해결해야 할 문제도 다양하다. 우리는 생각지도 못했던 질문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해답을 찾곤 한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에게 어떤 질문을 하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은 달라진다. ‘어떻게 해야 완전한 나 자신에게 이르는 길에 도달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심사숙고했던 니체는 기존의 철학자들이 사유했던 방법과는 다른 새로운 시도와 질문으로 그 답을 모색했다. 그의 수많은 작품과 유고는 바로 이런 시도와 질문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우리는 자신을 완전한 자아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수많은 장애물을 마주한다. 우리는 매 순간 선택해야만 한다. 어쩌면 우리의 삶은 이러한 선택지들의 모음일 것이다. 그래서 가끔은 잘못된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이 짐이 되기도 한다. 니체는 1884년 유고에서 새로운 시도를 할 때마다 실패했고 질병과 통증에 시달렸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시도한다면 자신 안에 감추어진 지혜, 즉 본연의 나 자신으로 돌아오게 하는 방법을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만약 우리가 잘못된 선택을 하더라도 언제든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 그 방법은 계속해서 시도하고 질문하는 것이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이렇게 말한다.
  
 “시도와 물음, 그것이 나의 모든 행로였다. 그리고 참으로, 사람들은 이러한 물음에 대답하는 것을 배워야만 한다!”

모두가 가야 할 단 하나의 길이란 없다. 즉 삶에 정해진 정답은 없다. 니체는 자신에게 길을 묻는 자들에게 그런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마흔, 지금껏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면 이제부터 질문의 대상과 방식을 바꾸어 보아야 한다. 질문의 대상은 타인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다. 다른 사람이 내 삶을 대신 살아 줄 수는 없다. 질문에 대한 답은 다른 곳에 있지 않고 오로지 내 안에 있다. 나를 사랑하려면 자기 자신과 대화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고 답을 구해야 한다.
 
천 개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라

니체는 사태를 바라보는 하나의 눈, 즉 어떤 방향으로든 전혀 치우쳐서는 안 되는 하나의 눈을 가질 것을 요구하는 경우를 경계하라고 한다. 하나의 눈으로만 본다면 사태를 능동적으로 해석하는 힘이 억압되고 결여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고, 천 개의 길을 가지고 있다. 편견, 선입견,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한 사태를 좀 더 다양한 눈으로 바라보아야만 한다.
니체는 다양한 길과 방법을 거쳐 자신의 진리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이것이 니체의 관점주의이다. 니체는 《도덕의 계보》에서 “오직 관점주의적으로 보는 것만이, 오직 관점주의적인 인식만이 존재한다”라고 말한다. 대상을 한 가지 각도로만 바라보지 말고 약간의 거리를 두어야 한다. 한쪽으로만 치우쳐 생각하는 편견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다양한 관점으로 생각해 보는 것이다. 세상은 우리가 보는 대로 보이는 법이다.
 
명사형이 아닌 동사형의 삶을 살라

니체는 《도덕의 계보》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잘 알지 못한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이방인이며, 자기 자신에게 가장 먼 존재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금까지 자기 자신을 탐구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니체는 이런 우리를 꿀벌에 비유한다. 꿀벌이 자신의 벌통을 향해 날아가듯이 우리가 진정으로 관심을 두는 것은 오직 ‘집에 무엇을 가지고 돌아갈 것인가’라고 말이다.

우리는 명사형의 세계에 갇혀 산다. 명사형의 세계는 고정되어 있고, 안정적이며, 예측과 통제가 가능하다. 명사형의 삶은 성공, 명예, 돈, 사랑, 권력 등 물질적인 것을 소유하는 데 관심이 있는 삶이다. 반면에 동사형의 삶이란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행동을 하는 삶을 말한다. 모든 존재가 생성, 변화, 소멸하므로 고정되어 있지 않다. 니체는 우리 가운데 누가 자신의 삶 자체, 자신의 경험에 관해서 진지하게 관심을 둔 적이 있느냐고 반문한다. 즉 니체 철학은 인간이 지금까지 명사형의 삶을 살아왔을 뿐 동사형의 삶에는 관심이 없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돈이나 명예 같은 것들을 한순간에 실수로 잃어버릴 수 있다. 그럼에도 불안정하고 불안하며 예측하기 힘든 동사형의 삶은 회피하려 한다. 명사형의 세계에 익숙한 나머지 동사형의 세계로 이행을 두려워하며 저항한다. 하지만 변화무쌍한 동사형의 세계에서 경험을 통해 쌓은 지혜는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다. 명사형이 아닌 동사형의 삶을 추구할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것이다. 마음을 다해서 하고 싶은 것을 하라.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서 늦은 때란 없다.
 
우리는 매년 새해에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날들을 위한 꿈을 계획한다. 새로 쓰기를 기다렸던 다이어리의 첫 페이지에 새해에 이루고 싶은 결심을 적어 나간다. 이때 적어야 할 것은 삶에 관한 질문이다. 질문이 무엇인지 스스로 알지 못한다면 그에 대한 대답을 얻을 수 없다.

막연히 삶의 의미를 궁금해한다고 해서 삶이 해답을 주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삶의 모습은 개인마다 다르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질문은 항상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적어야 한다. 내가 처한 구체적인 상황에 맞게 질문할 때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해답을 찾게 된다. 어차피 해결하지 못한다고 체념한 채 온갖 질문을 가슴속에 묻어 두고 살아왔다. 우리는 일단 시도해야 하고 그 길 위에서 발생한 문제에 대한 물음, 그리고 물음에 대답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삶에서 최악의 상황은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는 것이다. 시도하는 사람은 언젠가 자신의 질문에 대답을 얻게 될 것이다. 변화를 원한다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스스로에게 질문하라. 꿈꾸는 자만이 삶을 변화할 수 있다.
 
 
 

마흔, 자기 삶에 던져야 할 질문을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적어 내려가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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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로시카 (♡.25.♡.1) - 2024/06/19 09:47:19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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