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27 제자(弟子)

3학년2반 | 2021.11.30 08:01:06 댓글: 0 조회: 450 추천: 0
분류무협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28622
제자(弟子)

옥항(玉恒)은 오랜만에 와본 중경의 혼잡한 거리를 바라보며 뿌듯한 기분에
괜히 나오는 미소를 참을 수 없었다. 그는 지금까지 검의 명가로 알려진 청성
파(靑城派)에 가서 검을 수련한 후 자신감을 가지고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그는 적전제자(適傳弟子)가 아니었고 또 장문인이 원해서 받은 제
자도 아닌 장군가의 후광(後光)과 위압(威壓)에 의해 받은 제자였기에 그가
배운 무공의 깊이는 얕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아버지인 옥청영 나으리는 꼿
꼿한 성격에 비해 무공의 깊이가 얕아 흑풍단에 있지 못하고 장군으로서 일반
군무에 종사하고 있었기에 그는 이번의 수련을 통해 익힌 무공으로 흑풍단에
들어가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그만큼 관부의 젊은이들에게 대단한
무공이 없이는 들어갈 수 없는 흑풍단은 매력적인 존재였다.

옥항이 관부의 고관대작(高官大爵)들이 모여사는 주작로(朱雀路)에 들어서자
으리으리한 거대한 건물들이 줄을지어 나타났다. 그는 그중에서 그렇게 크지
는 않지만 제법 위용있게 지어진 집으로 들어갔다. 그의 할아버지 옥영진 나
으리는 그를 반겨 맞아주었다. 하지만 그에게 거처를 정해준 다음부터는 만나
기도 어려웠다. 집사에게 물으니 요즘 흑풍단의 재건으로 눈코뜰새없이 바쁘
시다는 답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그정도 고수를 수천명이나 구할려니 하루아
침에 될리도 만무했고 또 새로 받아들인 고수들의 훈련에도 많은 시간이 들었
던 것이다.

그가 할아버지의 집에 들어온 다음 가장 눈에 거슬린 존재는 국광이라는 젊
은이였다. 그는 여태껏 장군가의 손자라는 후광으로 모두에게 깍듯한 존경을
받아왔는데 국광이라는 미친녀석에게는 싸늘한 눈총만을 받았고 그가 질문을
해도 돌아오는 건 모른다는 말이나 싸늘한 비웃음뿐이었다. 그래서 성질같아
서는 주리를 틀겠지만 할아버지의 손님이라는 말에 참고있었던 것이다. 하기
야 국광은 거의 자신의 거처에서 나오지 않았기에 옥항이 그곳으로 찾아가지
않는다면 그녀석을 볼 가능성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하는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국광의 처소 근처에는 가지도
않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옥영진 나으리는 애지중지하는 손자를 불렀다. 옥항이 문 앞
에서 인사를 기별을 드린 후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그렇게 크지 않은 아담한
내부가 나타났고, 여러 무기들이 벽면에 장식되어 과연 무인이 기거하는 방인
듯이 보였다. 이 방은 옥영진 나으리의 서재로 각종 병서 등의 서책이 한쪽
벽면에 있는 서가에 빽빽이 꽃혀있었고 다른쪽 벽면에는 여태껏 옥영진 나으
리가 사용하던 2자루의 검(劍)이 차례로 용의 형상으로 새겨진 흑색 좌대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좌대의 왼편에는 3개의 갑주(鉀 )가 놓여
있었는데 하나는 예식용의 호화로운 경갑주(輕鉀 )였고 또 하나는 흑색의 전
투용 중갑주(重鉀 ), 그리고 근래에 이르러 사용하기 시작한 흑색의 경갑주
였다. 갑주들과 그 뒤쪽에 놓여있는 4개의 방패가 잘 손질되어 있는 걸로 보
아 옥영진 나으리가 이것들의 보관에 대단한 신경을 쓴다는 것을 알 수 있었
다. 방안에는 전체적으로 무기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가구가 없었지만 등불이
나 책상 등 일단 놓여있는 것들은 모두 오래된 최상품인 것이 이 소박한 무인
의 가문이 오랜 전통을 가진 명가임을 드러내주고 있었다.

옥영진 나으리는 근래에 들어 사용하기 시작한 애검을 언젠가 사냥해온 호피
(虎皮)위에 앉아 닦고 있었다. 옥영진 나으리는 과거 정정할때는 대부분의 관
부의 장교들이 그렇듯이 좌대 위에 놓여있는 30근 정도되는 중검(重劍)을 사
용했다. 하지만 요즘은 기운이 딸려서 길이 3척의 13근 정도나가는 靑影(청
영)이라는 보검을 구해서 사용하고 있었다.

무림인들과는 달리 관부의 무사들은 무거운 중병(重兵)을 애용한다. 그이유
는 좀 힘이 들더라도 무거워야 단번에 두터운 갑주(鉀 ;갑옷과 투구)를 꿰뚫
고 상대에게 타격을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대부분의 병사들이 두터
운 방패까지 사용하기에 웬만한 고수가 아니라면 관부의 정병(精兵;정예군)과
맞붙어 싸우려는 사람은 없었다.

장교급 정도 되는 장사(壯士)들은 힘이 좋아 두터운 갑주외에 심장을 보호하
는 둥그런 강철판인 엄심갑(掩心甲)을 착용하고 가죽을 몇겹으로 덛대어 어깨
부터 아랫배까지 내려오게 만든 보호의(나시와 비슷하게 생겼음)를 입은 후
그 위에 두터운 갑옷을 착용한다. 갑옷은 보통 2가지로 나뉘는데 갑옷 전체를
용린(龍鱗)과 같이 만든 비늘갑옷이 있는데 기운이 좋은 사람일수록 두터운
비늘의 갑옷을 선호한다. 그리고 또한가지는 어깨나 옆구리 부분, 그리고 허
벅지부분은 비늘갑옷이지만 복부(腹部)와 배부(背部;등쪽)는 둥그런 통짜의
철판을 댄 것으로 일부 갑옷종류는 배부의 철판을 없애고 비늘을 사용하기도
한다. 복부에 철판을 댄 갑옷은 그 철판에 각종 양각을 통해 멋을 낼 수 있기
에 젊은이들이 선호하며 또 통짜 철판이기에 방어력도 좋다. 하지만 노장들의
경우 비늘갑옷을 즐겨입는 것은 그것이 훨씬 움직임이 자유스럽고 편하기 때
문일 것이다.

그런 중갑주에 방패까지 사용하므로 무림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얄팍한 도검
으로 꿰뚫기는 어렵다. 그리고 이놈의 갑주나 방패가 무림인들이 자랑하는 호
신강기(護身剛氣)처럼 보통 2각 정도만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마르고 닳도록
사용자의 몸을 지켜주기에 무림인들로서도 관부와의 충돌은 될 수있으면 피하
는 것이다. 이런 갑주를 뚫고 상대를 공격해야 하기에 관부에서는 무거운 중
병을 애용했고 또 그 중병을 사용함으로서 인해 생기는 체력저하를 방지하기
위해 황궁무예는 날카롭지만 단조로운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신병이기(神兵異器)의 경우 가벼우면서도 쇠를 가볍게 베어낼수 있기에 돈이
많은 노장(老將)들이 즐겨 이용했고 또 그들은 군을 통제하여 효율적으로 작
전을 수행하는데 첫째 목표를 두고있기에 직접 싸울 일이 거의 없어 대부분의
경우 갑주도 얇은 것을, 그리고 검도 될 수 있으면 가벼운 것을 선호했다.

옥항이 한참을 할아버지가 검닦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힐끗힐끗 뒷편에 세워
져있는 할아버지의 전투용의 흑색 중갑주(重鉀 )를 훔쳐봤다.

'흑색 갑주....'

흑색의 갑주를 훔쳐 보면서 그는 가슴을 두근거리며 혹시나 하고 조바심을
치고 있는데 드디어 옥영진 나으리가 입을 열었다.

"청성파에서 얼마나 수련을 했느냐?"

"5년이옵니다."

"5년이라....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세월이구나. 그래 좀 진전은 있었느
냐?"

"예."

"아주 대답이 자신이 있구나."

"예. 소손(小孫)이 그래서 흑풍단에"

"흑풍단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조금 더 검술을 배우거라."

"다시 청성파로 가란 말씀이십니까?"

"아니야. 그보다 더 좋은 상대가 있지. 국광이란 사내를 본적이 있냐?"

"예."

'아주 건방진...'이라는 말이 따라나오려는 것을 황급히 참으며 옥항이 고개
를 숙여 약간 당황한 자신의 얼굴을 숨겼다.

"그에게 검술을 좀 더 배워라."

"그에게 말씀입니까? 제가 보기에 그는 체격이 별로 좋지.."

"무공이란 체격으로 하는게 아니야. 아무리 국광이 나약한 겉모습을 하고 있
다 하더라도 그는 대단한 고수다."

그 말을 옥항은 믿을 수 없었다. 처음 봤을 때 그 건방진 태도 하며... 그는
국광이 제법 믿는 구석이 있는 모사(謀事)정도로 봤던 것이다. 옥항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던 옥영진 나으리가 말했다.

"할애비의 말을 못믿는 모양이구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믿습니다."

"검은 가지고 왔느냐?"

"예. 청성파에서 쓰던 것을 가지고 왔습니다."

"중검(重劍)이냐?"

"아닙니다. 무림인들이 사용하는 그런 가벼운 겁니다."

"그럼 그 검을 가지고 국광의 처소로 나오너라. 내 거기 가있을테니 빨리 오
너라."

"예."

옥진영 나으리가 국광의 처소에 도착했을 때 국광은 책을 읽고 있다가 그를
맞이했다.

"어서오십시오."

"자네도 안녕한가? 실은 긴한 부탁이 있어서 왔네."

"부탁이라뇨?"

"손자녀석의 검술을 좀 가르쳐 줄 수 없겠나?"

"싫습니다."

"왜그러나?"

"제가 왜 어린아이의 검술까지 가르쳐야 합니까?"

"허허... 어린아이는 아니네. 금년으로 스물 하나가 되지. 5년이나 청성파에
서 검법을 수련했으니 자네가 조금만 힘을 써주면 될거야."

"저는 검법은 거의 잘 모르고 또 알고 있다 하더라도 기억도 나지않는데다가
과거에 배워 펼치는 기술만 몸에 배여있지 그걸 상대에게 전할 수는 없습니
다."

"허허... 그러니까 누구 하나를 골라 가르치다 보면 좀 더 자극이 되어 과거
의 기억이 떠오르지 않을까?"

"글쎄요... 어쩌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요."

"믿져야 본전이니 한번 가르쳐 보라니까... 가르쳐 보다가 영 재미없으면 그
만두면 될거 아닌가?"

"좋습니다. 하루 한 시진(2시간) 정도 가르쳐 보죠. 그런데 손자는 어디 있습
니까?"

"검을 가지러 갔으니 조금 있으면 올거야."

"알겠습니다."

그런다음 국광은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뒤져대더니 2척 반 정도의 나무 몽둥이
하나를 가지고 나왔다.

"그걸 어디다 쓰려고?"

"검술을 가르치라면서요?"

"진검을 안쓰고?"

"이걸로 충분합니다."

이때 옥항이 들어왔다. 그의 허리에는 무림인들이 보통 사용하는 2척 8촌 길
이의 패검이 걸려있었다. 국광은 옥항의 검집을 힐끗 보면서 말했다.

"검을 좀 보세나."

"여기..."

옥항이 내미는 검을 자세히 들여다 보더니 국광이 말했다.

"이 검을 얼마나 사용했나?"

'이자식은계속 반말이군...'

하지만 할아버지가 묵인하고 있었기에 옥항으로서도 속으로 삭혀야지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10년 정도 되었소."

"흠.... 10년이라... 계속 이검을 썼단 말이지?..."

조금 생각하는 듯 하더니 국광은 검을 다시 주인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자 공격을 한번 해보게나."

그러면서 몽둥이를 잡은채로 가만히 서있었다. 몽둥이를 잡고 그래도 수비 자
세라도 잡았으면 옥항으로서도 그렇게까지 신경질이 나지 않았을 것이다. 안
그래도 몽둥이만 잡고있어 자신을 얕잡아보는 것 같은데거기에 수비 자세까
지 취하지 않으니 옥항은 머리꼭대기까지 화가 치밀어 형식적으로 인사를 간
단히 한 다음 바로 살초(殺初)를 펼치기 시작했다.

각 방향으로 세 번 찌르기를 한 다음 국광의 행동을 보아 후퇴하면 따라 들어
가며 벨려고 했는데 국광은 그냥 살짝살짝 몸을 틀어 세 번의 찌르기를 피하
면서 그대로 몽둥이로 손을 쳐왔다. 놀란 옥항은 조금 뒤로 빠지면서 검길이
에 의존해서 국광의 몽둥이를 후려쳤다. 하지만 국광은 살짝 몽둥이를 틀어
옥항의 검을 흘리면서 앞으로 한발자국 정도 거리를 엄청난 속도로 좁혀오며
옥항의 목을 베어왔다. 아무리 몽둥이라도 그 기세로 보아 맞으면 목뼈가 부
러질 것이 확실하다는 걸 느낀 옥항은 몽둥이의 사거리를 벗어나려고 몸을 뒤
로 빼면서 검을 수평으로 베었다.

'몸을 뒤로 뺐지만 저녀석의 몽둥이를 피할 수 없어. 그래도 이쪽이 3촌
(10Cm)이 기니까 이쪽이 승산이 있다. 거기에 저쪽은 나무고 이쪽은 쇠니 맞
으면 어느쪽이 타격이 클지는 뻔한 노릇..'

옥항으로서는 꽤 잔머리를 굴려 펼친 초식이었는데 국광이 갑자기 왼발을 이
용하여 옥항의 손을 찼고 동시에 국부에 국광의 오른발이 박혀 들어왔다. 급
소를 차인 옥항은 온 몸에 힘이빠져 일어설수도 없을 지경이었고 그냥 그 부
분을 잡고는 신음하고있는데 위에서 비웃는 듯한 국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리를 생각하지 않았군. 자네와 나의 거리는 충분히 각술(脚術)을 쓸수있었
어. 자네도 머리가 있다면 각술을 썼어야지."

"이... 이건 검술 대련이 아니오?"

"오.... 내가 말 안했던가? 일단 검을 들고 상대와 섰을때는 수단방법을 가리
지 말아야 살아남는다구."

"그건 비겁한 짓이오."

"비겁은... 죽은 녀석이 비겁찾게 생겼어?"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옥항은 계속 국광을 공격했지만 국광의 옷자락도 건드
릴 수 없었다. 국광은 별 치사한 방법을 다 사용했고 심지어는 살짝 흙을 조
금 왼손에 집어 옥항의 눈에 뿌리기까지 했다. 2시간동안 몽둥이와 손발로 얻
어터진 옥항은 아무리 운동으로 몸이 다져졌다 하더라도 대련이 끝나고 나자
안아픈 곳이 없었다. 탈진해서 뻗어있는 옥항에게 국광은 '그럼 내일 봅시
다... 흐흐...' 하는 비웃음만 남겨두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옥항은 국광이 정통적인 검술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
을 깨달았다. 우선 연결되는 똑같은 초식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거기에 초
식은 거의 일격필살을 노려 상대의 헛점을 파고들던지 아니면 헛초로 신경을
그쪽으로 쏠리게 만들어 두고는 비어있는 왼손이나 발을 사용해서 공격했고
그 공격방식도 상황에 따라 계속 바뀌었다. 하지만 국광이 즐겨쓰는 초식은
몇가지로 한정되어 있었고 그것들이 서로 불규칙하게 연결되어 괴력을 내고있
었다. 국광이 공격에 힘을 적절히 안배해 완전히 맞고 뻗을 정도는 아니고 그
렇다고 안아프지는 않은 정도였지만 두들겨맞는 부분이 한정되어 있다 보니
까인 다리가 퉁퉁 부어올라 약을 사용해서 찜질까지 해야 했다. 하지만 그가
공격을 해보면 국광은 움직임이 미꾸라지처럼 빨라 도저히 따라붙기가 힘들
정도였으니 그 경공술과 신법은 어디서 배웠는지 찬탄이 나올 정도였다.

3개월이 지나자 옥항은 겨우 국광의 발차기를 가까스로 한번 피할 수 있었다.
국광은 간발의 차이로 피한 옥항을 보더니 씩 웃으면서 말했다.

"어쭈... 피해? 이건 어때?"

그러더니 더욱 공격에 속도를 붙여 더욱 신나게 두들겨 팼다. 국광의 수법들
은 얄팍한 잔재주들 같았지만 자신도 국광과 상대를 하면서 그런 편법적인 수
법을 사용하지 않으면 도저히 이길수 없음을 깨닫고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곧이어 깨달은 것은 이 특이한 공격 움직임이 아주 자연스럽게
펼쳐지려면 보통 숙련도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이었다.

옥항이 틈틈히 손발을 이용해 반격을 하면서 제법 용을 써대자 국광은 그날
열심히 두들겨 팬 다음 뻗어있는 옥항에게 책 3권을 던져주며 말했다.

"내가 여태까지 사용한 무공은 모두 이것들을 응용한거다."

"이게 뭡니까? 사부? 저는 정파(正派)의 문하라서 사파(邪派)의 무공은 안배
워요."

몇 달 지나면서 옥항의 국광에 대한 말투가 존대로 바뀐 것은 자신보다 뛰어
난 고수에 대한, 또 자신을 가르치는 사람에 대한 예의였다. 국광의 무공은
확실이 뛰어났기에 조금 쯤은 배워볼 생각도 있었지만 명문정파의 무공을 익
혔다는 얄팍한 자존심이, 강하다고 해도 사파적인 무공을 익히는 것을 거부했
다.

"뭐긴 뭐야. 황궁무공 3권이지. 권법, 검법, 각법인데 꽤 초식들이 재미있으
니 열심히 배워보기를 바래. 모두 읽은 다음 옥 대인께 반납하도록."

"그럼 지금까지 사부가 펼친게 모두 황궁무공이란 말입니까?"

"그럼. 그 세가지를 응용해서 조합한 것이지."

'도대체 어떻게 단순공격 위주의 황궁무공을 조합하면 저런 치사한 공격법이
되는거지?'

대련이 끝난다음 욱신거리는 몸으로 비급들을 읽으면서 그가 놀란 사실은 국
광의 말대로 그가 사용한 모든 초식들이 거기 다 있다는 사실이었다. 국광이
준 3권의 비급은 황실에서 많은 무관들이 익히는, 강하지만 그런대로 잘 알려
진 무공들이었다. 하지만 결코 이들은 광명정대하게 적을 정면에서 힘으로 제
압하는 무공들이지 이런 식으로 서로 조합하여 상대의 헛점을 공격하는데 사
용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정작 옥항이 놀란점은 다른데 있었다. 국광이 즐
겨 쓰는 진린검법(進躪劍法)이란 공격일변도의 검법중 4가지 초식과 칠세연권
법(七勢連拳法) 중 3가지 초식, 천영팔황각법(千影八荒脚法)의 4가지 초식을
보면서 옥항으로서는 그 초식들이 서로 연결되어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 불가
사이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비급 세권을 펼쳐놓고 자신이 열나
게 맞았던 것인데도 비급들의 내용으로는 그것이 도저히 연결되지 않았고 도
리어 서로의 움직임을 방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밤새껏 궁리를 해본다음 날이 밝자 옥항은 국광의 처소로 비급들을 가지고 달
려갔다.

"밤새 생각을 해봤는데 이게 비급 상으로는 사부가 사용하던 초식처럼 도저히
연결이 안되는데요?"

"쯧쯧... 멍청한 녀석. 왜 연결이 안돼. 왼발로 비천각뢰를 쓴 다음 이 상태
에서 흔들린 중심을 오른쪽의 손이나 발을 사용해서 초식을 펼쳐 상대와 부딪
치면 자연스레 중심은 잡히는 것이고 또 이리로 발이 나갔으면 왜 돌아와서
펼쳐야 하느냐? 그 기세를 이용해서 운천직권(雲千直拳)을 펼치면 다시 뒤로
돌아가기도 편하잖아? 그 초식들을 보면 셋을 서로 연결하면 다소 무리가 있
지. 하지만 그걸 상대에게 사용하면 상대는 어떻게 해서든 그걸 막거나 아니
면 맞을테니까 그 반동을 이용하면 초식이 자연스레 연결되는거야."

"아... 상대가 있어야만 서로 연결되는군요."

"대신 상대가 피하면 다른 방법을 써야지."

"그런데.... 언제까지 대련을 계속 하실 생각입니까? 요즘은 저녘에 누우면
안아픈 곳이 없다구요."

"글쎄.... 언젠가 그만 끝이 나겠지. 언제나 명심할 것은 검을 사용하는데 있
어 너무 초식이나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말고 그냥 마음이 가는대로 몸이 따라
가고 몸이 가는대로 마음이 움직이면 되는거야. 황궁무공은 깊게 익히면 아주
대단한 경지까지 들어갈 수 있으니 지금 네가 익힌 수박 겉핥기 식의 무공과
는 확연히 다르지. 정식 사제간은 아니니 지금이라도 내 방식이 싫으면 그만
둬도 상관없고 또 나도 가르치기 귀찮으면 언제라도 그만둘테니 딴데 신경쓰
지 말고 열심히 해봐. 너와 함께한지도 5개월.... 이제 몸이 많이 부드러워지
고 또 안목이 올라갔으니 어느정도 수준이 되었다고 생각되면 그때 대련을 끝
내고 진지하게 교육을 해볼까 생각중이야."

"그런데 지금 제가 하고있는 수련방법은 청성파에서 배우던 것과는 너무 다른
데요?"

"내가 너무 심하게 하나?"

"좀... 그렇죠. 어디서도 이렇게 무공을 가르쳐 주시지는 않고 제자를 이렇게
두들겨 패기만 하지는 않는다구요."

"그럼 넌 내가 어떻게 해주기를 원하는데?"

"강력한 무공을 가르쳐 주셔야죠. 그래야 더 강해질거 아닙니까?"

"강해진다... 내가 황궁무고에서 수많은 비급을 읽어보고 느낀점이 뭔줄 아
나?"

"글쎄요..."

"절대적인 신공(神功)이란 존재하지 않아. 어떤 무공이라도 헛점이 있지. 모
든 무공이 물고 물리는 관계에 있어. 갑이라는 무공이 을이라는 무공을 제압
한다면 을은 병에게 제압되지. 그 병은 또다시 돌고돌아 갑에게 지는거야. 이
건 물론 똑같은 수준의 무인들끼리 겨뤘을때에 한해서지. 예를들어 너와 나는
엄청나게 무공수준에서 차이가 나지. 그건 너도 느꼈을거야. 나는 소위 무림
에서 3류축에도 끼지 못하는 무예들만으로 너가 배운 청성파의 1류 무술을 박
살낼 수 있어. 요컨대 무공이 얼마나 강하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걸 사용
하는 사람의 자질이 어느정도냐가 중요한거야."

"그렇다면 강한 무공은 배울 필요가 없다는 겁니까?"

"아니지. 강한 무공을 꼭 배울 필요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 무공이 가진 깊
은 뜻을 이해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

"깊은 뜻이라뇨?"

"가령 네가 한번씩 나한테 사용하는 청성파의 추의환영검법(追意幻影劍法)에
서 환사영주(幻蛇影走)라는 초식이 이렇게 나가지?"

"그렇죠."

"하지만 이렇게 찌르기를 들어간다면 누구나 알아챌게 뻔하쟎아. 대신 초식
사용자가 아주 뛰어난 속도로 전개한다면 상대가 당하겠지만..."

"그 때문에 변초를 쓰는거 아닙니까?"

"그렇지. 변초를 쓰지. 1류의 검법일수록 이 변초가 아주 발달되어있어. 하지
만 꼭 변초까지 외워서 사용할 필요는 없지. 요컨데 상대를 속이기만 하면 되
는 거니까... 어떻게 하더라도 베거나 찌르기만 하면 되지 어떤 틀에 꼭 맞춰
휘두를 필요는 없는거야. 초식이란 그걸 빠른 속도로 펼치자니 능력이 안되어
할수없이 빨리 펼치기 위해 만들어놓은 한가지의 틀일 뿐이야. 상대가 약해서
헛초조차 막지 못하는데 그 헛초를 다시 돌려서 거두어 들인다음 진짜 초식을
쓸 필요가 있을까? 상대가 못막으면 헛초였다고 해도 그대로 찔러 들어가야
해. 그리고 실초라도 상대가 막을 기색이 보이면 회수하여 그걸 허초로 만들
어 상대의 정신을 딴 쪽으로 쏠리게 유도해야 하고... 요컨데 꼭 틀에 맞출
필요는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요. 그런데 그게 저를 두들겨 패는것과 무슨 상관이
있나요?"

"멍청한 녀석! 매에는 장사가 없으니 두들겨 맞다보면 맞기 싫어서라도 피하
게 되어있고 내가 공격하는 방식을 익히게 되어있어. 너도 요즘들어서는 조금
씩 피하고 반격까지 하게 되었잖아?"

"그러고 보니..."

"먼 거리에서 대결한다면 강한 초식이 우위를 차지하겠지만 근거리에서 대결
한다면 누가 실전경험이 많은지가 가장 크게 작용하지. 그러니 잔말 말고 나
한테 맞다보면 모든 걸 다 깨닫게 되어있어."

그러자 옥항은 과장되게 놀란척 하면서 말했다.

"그럴수가? 너무 무책임한 대답인데요?"

"참. 너는 살인을 해본적이 있냐?"

"예? 아직 없습니다."

"무공이 높은 사람은 살인을 잘할 수 있는 소질이 있지. 하지만 반대로 살인
을 잘하는 사람이 꼭 무공이 높지는 않아. 자네가 살인을 안해봤다고 하니 말
인데 꼭 죽여야 할 상대가 아니면 싸울 필요가 없고, 또 그 약점을 발견했으
면 무조건 찔러 죽일 마음가짐이 필요해. 안그러면 그 멈칫하는 순간에 상대
에게 당하게 되지. 상대를 언제든지 죽일 수 있는 마음을 가진자와 그렇지 못
한하는 아주 큰 차이가 있어."

"사부는 할아버지께 들으니 모든 기억을 상실했다고 들었는데 그걸 어찌 아십
니까? 실지 그 후에 사부가 살인한 적은 없잖아요?"

"몇번 초식을 써보면서 느꼈지. 상대가 공격했을 때.... 또 자네와 처음 초
식을 주고받았을 때.... 모두 다 상대의 헛점을 보자마자 아무런 거리낌 없
이 거의 무의식적으로 손발이 나가더군. 내가 힘을 줄이지 않았으면 모두들
저세상에 갔겠지. 그걸 느끼자마자 나는 이전부터 수많은 살인을 하지 않았
을까 하는 생각을 해왔어. 과연 나는 이전에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또 왜
이렇게 무공이 강할까....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지는 않았을까? 나에게 처자
식이 있을까? 하기야 처자식에 대해서는 그리운 생각이 나지 않는걸 보면 아
마 없는 것 같아."

빙긋이 미소짓는 국광을 보면서 옥항은 사부가 무자비한 무례한인줄 알았는
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전부터 조금씩 느껴왔지만 지금에 이르러
확신하게 되었다.

"사부님은 사람을 함부로 죽이는 살인귀(殺人鬼)는 아니었을 겁니다. 너무
심려하지 마세요."

그로서는 국광이 남몰래 과거에 대해 그렇게까지 생각을 하는지 몰랐다. 하
지만 국광의 말을 듣고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이 그 한마디 뿐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할아버지께 기루에라도 모시고 가서 기분을 풀어드리라고 부탁해
야 겠군.'

* * *

잘 정돈된 방.... 방안의 호화로운 가구들이 그 주인의 신분을 알려주고 있
다. 그 방은 둘로 나누어져 있고 그 사이에는 발이 드리워져 있다. 그리고 발
앞에는 두명의 남자와 한명의 아릿다운 묘령의 여인이 부복하고 있다. 그 중
약간 앞쪽에위치한 남자가 발을 향해 말했다.

"금의위에서 비밀리에 조사하는 것을 저희들이 입수하여 조사한 결과 아주
흥미로운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그러자 발 속에서 상큼한 여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금의위에서 하는 일이야 황실 모반따위나 감시할텐데 그걸 조사해 봐야 뭐
좋은게 있다고..."

"아니옵니다. 실은 금의위에서 1년 전부터 비밀리에 무림을 돌며 고수 1명을
찾고있었습니다."

"어떤 인물인가요?"

"거의 화경의 경지에 이를 정도의 초고수인데 갑자기 실종되었다거나 아니면
살해되었다던가 하는 자입니다."

그러자 발 안에서 약간 흥미를 느낀 듯한 목소리가 나왔다.

"그래 찾았나요?"

"예. 찾았기에 말씀을 올리는 겁니다. 그정도의 고수는 거의 무림에서 손가
락에 꼽을 정도로 수가 적습니다. 하물며 갑자기 실종되거나 사망했다면 알아
내기 편할거로 속하가 생각했는데 의외로 힘들었습니다."

"그래 그가 누군가요?"

"마교의 부교주로 묵향이라는 인물입니다."

"묵향? 들어본 적이 없는데..."

"예. 마교의 일은 거의 세상에 들어난 게 없으니까요. 지금 마교가 조금 술
렁거리는 입장이기에 과거와 달리 정보입수가 가능했습니다. 지금 마교는 문
주께서도 아시다시피 교주와 장인걸 부교주가 다투고 있는 중이라..."

알고있는 사실을 주절거리자 약간 짜증난 음성이 들려왔다.

"요점만 말하세요."

"예. 속하가 입수한 정보로는 마교사상 최강의 고수라고 합니다."

"그런자가 어떻게 밖에 드러나지 않았지?"

"그의 출신 때문이죠. 살수출신으로 환사검(幻邪劍) 유백(柳伯)이란 인물의
마지막 제자입니다. 그의 실력은 사부를 넘어서서 최강의 고수로 올라섰지만
살수라는 신분상 마교의 검술만을 익힌 것이 아니라 정파계열의 검법도 많이
익혔기에 외부에 드러내지 않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일종의 이단자인 셈이군. 그래 그자의 무공이 어느정도기에 금의위에서 흥
미를 느낀다는 말인가요?"

"현경의 고수라 합니다."

그러자 약간 놀란듯한 연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현경이라고? 그럴리가... 정파의 무공을 죽을때까지 익힌 자들도 오르기 힘
든 것이 현경이거늘... 하물며 마교에서 엉터리로 배운 정파의 무공으로 현경
에 오른단 말이오? 그의 사부인 환사검 유백이란 인물도 들어본 적이 없고.."

"묵향이 현경의 고수라고 추정되는 이유는 제령문의 뇌전검황을 벤 자이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묵향의 사부도 마교에서는 환사검(幻邪劍)으로 통하지만 그는 일선에서 은
퇴한 다음 3년 정도 무림을 떠돌며 이름을 날린 인물입니다. 독고구패(獨孤九
敗)라는 명호를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럼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 무림의 내노라 하는 고수들을 쓰러트리고 갑자
기 사라진 그자의 제자란 말인가?"

"예. 속하가 조사해본 바로는 그가 은퇴하기 직전에 가르쳤던 마지막 제자가
묵향이란 인물이고 또 마교에서 은퇴 후 3년여를 무림을 떠돌며 그가 만년에
야 창안해낸 검법을 시험하러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그런다음 묵향이란 인물
이 마교에서 살해된 다음 실종되었습니다."

"살해되었다고? 설마.... 현경의 고수를 누가..."

"그의 무공이 너무 강한것에 위기감을 느낀 교주가 제거했다고 하며 이건 미
확인된 정보지만... 맹주도 그의 제거에 관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가 죽은 것이 무슨 상관이 있다고 금의위에서 수소문을 하고 있
다는 거지요?"

"그래서 속하가 관부쪽으로도 조사를 했더니 아주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습
니다. 그가.... 묵향이 살아있다는 겁니다."

상당히 흥미를 느낀듯한 음성이 날아왔다.

"살아있다고?"

"예. 지금 옥영진 대장군 저택에 식객으로 머물고 있습니다. 그는 국화를 좋
아한다고 해서 국광(菊狂)이라 불리고 있는데, 처음 그가 발견되었을 때 무공
에 의한 상처 외에도 급류에 휩쓸려 극심한 상처를 입고 있었다고 합니다. 전
신의 혈맥이 파괴된데다가 모든 기억까지 상실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실망한 듯한 목소리...

"그런 폐인이라면 이용가치가 없쟎아요?"

"그런데... 그게 폐인이 아닙니다."

"폐인이 아니라니?"

"어느날 갑자기 모든 상처가 다 낫았다고 하더군요."

발 속의 여인은 경악한 듯이 되물었다.

"완전히?"

"예. 거기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기억은 지워졌지만 그가 익히고 있었던 무
공을 몸이 잊어버리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거기에 옥 대장군의 배려로
황궁무고에 들어갔다 나와서 지금은 거의 화경의 경지까지 회복한 상태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구미가 당기는군..."

잠시 생각하는 것 같더니 이윽고 발속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그를 이쪽으로 회유할 수는 없겠나요? 우리편으로만 만든다면 대단한 성과가
될거에요."

"이렇다할 방법이 없습니다. 지금 구명의 은혜를 갚겠답시고 머물고 있는 자
를 어떤 방법으로 끌어내겠습니까?"

"과거의 기억에 대한 정보를 미끼로 한다면?"

"그것도 어렵습니다. 한달도 안되어 금의위에서도 속하가 알아낸 사실을 모두
다 알아낼 겁니다."

"금의위의 정보 입수를 방해할 수는 없나요?"

"그것도 힘듭니다. 잠시... 한달이나 두달정도 지체시키는 것은 되겠지만 그
이상은 무립니다."

"아깝군..... 근래에 드문 먹음직한 먹인데...."

추천 (0) 선물 (0명)
IP: ♡.99.♡.5
23,511 개의 글이 있습니다.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조회
더좋은래일
2024-04-26
1
20
더좋은래일
2024-04-25
2
44
chillax
2024-04-25
1
42
더좋은래일
2024-04-24
3
58
더좋은래일
2024-04-24
3
49
더좋은래일
2024-04-24
3
51
chillax
2024-04-24
1
46
더좋은래일
2024-04-23
3
62
chillax
2024-04-23
1
108
더좋은래일
2024-04-22
3
282
chillax
2024-04-22
1
208
더좋은래일
2024-04-21
3
338
나단비
2024-04-20
1
853
chillax
2024-04-19
2
778
나단비
2024-04-19
0
731
나단비
2024-04-19
0
81
나단비
2024-04-19
0
59
나단비
2024-04-19
0
60
나단비
2024-04-19
0
51
chillax
2024-04-18
2
153
나단비
2024-04-18
0
47
나단비
2024-04-18
0
50
나단비
2024-04-18
0
54
나단비
2024-04-18
0
59
나단비
2024-04-18
0
68
나단비
2024-04-17
0
70
나단비
2024-04-17
0
55
나단비
2024-04-17
0
45
나단비
2024-04-17
0
61
나단비
2024-04-17
0
46
모이자 모바일